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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요즈음 다시 비정규직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관련 법안에 대하여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안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을 하겠다고 발표하였지만, 정부의 입장은 쉽게 변하지 않을 듯 하다. 정부는 비정규직 고용 자체에 대한 통제가 시장질서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걱정 때문에 사유 제한 방식을 통하여 비정규직의 고용 자체를 통제하자는 노동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해 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오해가 있다. 첫째는,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정규직의 고용 자체를 그 채용 사유에 따라 제한하면 노동시장의 왜곡이 올 수 있다는 우려이다. 순서대로 얘기해 보겠다.     첫째, 우리는 IMF 이전에는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정규직이었고, 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급격하게 비정규직이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IMF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전체 근로자 중 45% 내외가 비정규직이었다. IMF 이후에 7% 내지 9% 증가하였을 따름이다. 이는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가 시장경제질서를 택하는 한 비정규직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노동시장에서의 수요공급에 따라 생겼다고 소멸하고,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다보면 곧바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요즘 들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는 비유를 들어 보겠다. 변호사들은 과로사가 일어나는 시점을 양동이에 물이 넘치는 상황과 비교하곤 한다. 어떤 근로자가 사망한 후 재판 과정에서 그것이 과로사인지 여부가 문제될 때 항상 제기되는 질문이 ‘왜 다른 근로자들은 그 정도의 업무량을 소화해 내는데, 그 근로자만 죽었느냐?’란 것이다. 이 때 변호사들은, 어떤 근로자가 자기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넘어선 일을 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은 스스로 버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런 상황을 양동이에 물이 거의 찼지만 아직 넘치지는 않는 상태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특별한 계기로 비정상적인 과로 상태에 이르거나 충격을 받는 경우를 그 양동이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으로 비유한다. 즉 특정 시점의 물 한 방울로 인하여 양동이의 물이 넘치듯 그 근로자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 같다. IMF 이전 우리 사회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정규직을 고용하기 어렵거나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을 때 비정규직을 채용하였다. 그 비율이 약 45% 내외였던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정도는 우리 사회가 버틸 수 있었다. IMF 이후 우리 사회는 정규직 근로자의 삭감과 비정규직으로의 대체 고용을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 때도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제가 회복되면 다시 정규직 고용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IMF 사태가 극복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사정이 변화되지 않자,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는 늘어난 비정규직을 짊어지고서 일시적으로 버틸 수 있지만,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늘어난 비정규직이 양동이에 떨어지는 마지막 물 한 방울이 되어 우리 사회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인 모습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지 여부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둘째, 비정규직 법안에 관한 정부, 경영계, 노동계의 다툼은 비정규직의 사용을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할 것인지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 정부와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채용. 사용 여부는 시장질서에 맡겨야 하고 법률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한다(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법률로서 제한하자고 주장한다. 비정규직의 고용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제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을 시장질서에 맡겨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장이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노동력의 매매에서 근로자와 자본가 즉, 사용자의 힘은 동등하지 않다. 취업을 할 때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의 연봉이나 근무조건에 관하여 회사와 협상하지 않는다. 근로자들이 게을러서일까? 아니다. 협상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용을 협상하는 근로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가 원하는 조건을 관철시키기는커녕, 그 채용이 거부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근로자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는 일을 하여 돈을 벌지 않으면 굶어죽게 된다. 비정규직 법안의 첫번째 목표는 IMF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 비율을 IMF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노동계도 비정규직의 사용 자체를 금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구호로서의 ‘비정규직 철폐’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때, 혹은 그 사용이 합리적일 때 회사는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막자고 하는 것은 시장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현재 문제되는 것은 사용자측이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법률은 시장질서를 왜곡하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법률이더라도 시장질서를 왜곡시키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훼손한다면, 그것은 경영자뿐만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비극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시장질서가 불공정하게 형성되어 있을 때, 법률은 그 한계적인 상황하에서 개입할 수 있다. 법률은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법률은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하여, 정부는 이것이 시장질서를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노동계가 얘기하는 바대로 비정규직 법안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노동시장에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는 범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는 합리적인 필요에 기하여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 즉 법률이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더라도,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고, 비합리적인 이유에 기하여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하고 있는 일부 사업장에서만 유효할 따름이다. 즉 사유 제한 방식을 택한다는 것은 왜곡된 시장질서에 대하여 경고를 보내는 정도의 역할만 할 따름이다. 이런 결과가 온다고 하여 시장질서가 왜곡된다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의롭지 않던 것이 정의롭게 되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 혹은 비합리적인 상황이 합리적인 상황으로 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누군가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시장이다’라는 얘기를 하였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노동계 역시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 법률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장을 무시한 법률은 효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시장질서가 불공정하거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다른 시민의 생활을 위협할 때, 법률은 적용될 수 있다.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된 노동계의 주장은 한계적인 상황 또는 협소한 범위에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것을 마치 시장질서 전체를 무시하는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유치한 행동이다. 정부가 시장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비정규직 법안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를 기원한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건 무조건 막아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건 무조건 막아. 걔들은 겁이 없잖아. 각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도록 해.”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제5공화국’ 중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이 광주 고등학생들의 동태 보고를 들으면서 하는 대사다. 고등학생들이 무섭기는 무서운가 보다. 그런데 묻고 싶다. “왜? 왜 무서운데?” 사실은 겁이 없어서 무서운 게 아니다. 그 투명함이 무서운 것이다. 그 진실성이 무서운 것이다. 불의 앞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진정 무서운 것이다.     단발의 추억 개인적으로 전두환의 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다.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율화가 그것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교복의 틀 속에서 가두고 짧게 쳐버리는 식민주의적, 권위주의적, 군사문화적 제도를 해체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모양만 바뀐 교복과 여전히 개성이 무시된 짧은 스타일의 머리 모양이 등장했다. 197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선배들에게서나 들을 법한 바리깡으로 학생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일이 오늘의 학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단발령에 항거한 구한말 최익현이 들었으면 땅을 쳤을 일이다. 유교적인 소신이 학생들의 단발을 반대하는 논리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 만큼 소중한 것이고,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천부적 인권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경악한다. 마약 수사를 하면서조차도 피의자의 머리카락 몇 올을 뽑으면서 피의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동의를 얻지 못하면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이 필요하다. “왜 내 몸에 손대? 영장 가져와!!”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뭐라고 할 건가?   ▲ 지난달 14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 앞에서 열린 '학생인권보장 청소년축제'에서 참가 학생들은 자율발언 등을 통해 두발단속, 야간자율학습 강요, 학생회 간섭, 교문앞 용의검사, 인터넷 글쓰기 금지, 단체기합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두발 단속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마지막 바리깡'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너희들은 공부나 해! 수능시험을 보는 중간에 수험생이 자살을 하고, 심지어 인문계고등학교 고교생이 중간고사를 치루는 도중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8학년도 대학교 입시안이 발표되었다. 내신 성적 중시 입시안이었다. 고1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교육청은 학교장 훈화 및 지도 강화로 학생들의 집회 참석을 막겠다고 하고 교육부는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내부방침을 정했다. 너희들은 시키는 대로 공부나 하란 말이다.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출범 2005. 6. 6. 서울에서 13개교, 경기 11개교, 대전 8개교, 경남 3개교, 울산 2개교, 경북 1개교, 전남 1개교 등 전국 47개 고등학교의 학생회가 가입한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한고학연)가 출범했다. 제1기 의장으로 선출된 김백건군은 출범선언문을 통해 “학생다운 생각과 학생 또한 교육의 수혜자로서 학교를 구성하는 주체 중 하나라는 주인의식으로, 명목적인 활동에 그치고 있는 전국 고등학교 학생회의 제자리 찾기와 바람직한 운영을 도모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등학생들의 권익을 보호, 증진하고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교육이념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활동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아니나 다를까. 고등학생들의 전국 조직이 생긴다니 여기저기서 긴장되는 모양이다. 모 신문은 고교생 전국조직 순수성 유지될까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부에서는 특정 정치적 목적을 가진 대학생과 일반인이 이 단체를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학생들이 주장했듯이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노선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방송사는 한고학연의 출범을 두고 ‘한총련과 같은 학생조직이 생긴다.’고 보도했다. 교육부와 교육청 관계자가 출범식에 참관했다. 그래서일까? 의장 김백건군은 비폭력, 비정치성을 근간으로 학생회가 활성화되도록 지원하고 각종 연구 작업을 할 것이라고 한고학련의 활동방향에 대해 말한다. 기대되는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의 활동 고등학교에 적용되는 초중등교육법 제17조와 대학에 적용되는 고등교육법 제12조의 내용은 동일하게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보호되며 그 조직 및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생자치활동의 핵심은 학생회활동으로 나타난다. 현재 대학의 학생회는 학교운영의 한 주체로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학생회는 기껏해야 특별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학생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선거권이 부여되는 연령을 만18세로 낮추려는 움직임이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선거권이 주어지는 상황이 온다. 선거권 부여만으로 그들의 정신적 성숙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기본권을 스스로 행사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고, 자신에게 적용되는 교육제도에 관하여 의견을 피력하며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들의 전국적 조직에 대하여 고등학생은 어리다거나 색깔 시비를 거는 것은 두려움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광주학생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모두 정치적 계기이다. 그 중심에 고등학생들이 함께 했다. 비정치적 노선을 견지하겠다는 선언을 하지만 스스로 활동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어느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노선을 견지할 것을 주문하는 신문 사설과 한총련과 같은 학생조직이라는 방송사의 멘트가 정치적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주체가 소외되어 버린 오늘날 교육현실 속에서, 스스로 주체성을 인식하고 작금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학생들의 참신한 외침, 그 뜨거운 함성을 간절히 고대한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3 | 추천: 0
“손톱은 슬플때 자라고 발톱은 기쁠때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긴긴날 영어(囹圄)의 몸을 견디었던 장기수 선생님들 사이에 새 희망을 기다리는 지혜의 격언으로 구전되었던 말인데 양심수였던 김경환 씨가 그의 책을 통해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숨막히는 더위뿐인 붉은 황토길을 걷다가 신발을 벗으면 발가락이 하나씩 잘렸다던 한센병 환자 한하운의 “소록도 가는 길”만큼 싸리하게 아린 그 말이 더운 계절의 중심을 향해 걷는 저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잠 안오는 새벽, 골목길에 나섰다가 먹다남은 피자박스까지 주워담는 등 굽은 노인을 보며, 생활고에 못이겨 자신과 자신의 살같은 자식을 허공에다 던지고 눈물 한방울을 유서로 남긴 어떤 여인의 죽음을 보며, 가질것 다 가지고도 모자라 더 빼앗을것 찾는 제도화된 자본과 권력의 탐욕을 보며, 또 대학이라는 하찮은 구조에 세상을 꾸깃꾸깃 처넣고 그안에 들어가지 않은 다수를 조롱하듯 히죽거리는 어느 공당의 대변인을 보며, 올한해 부지런히 자라날 내 손톱의 길이를 가늠할수 있습니다. 나의  삶이 슬픔에서 왔으니 슬픔으로 가도 좋지만 그 눈물 떨군 자리 찬란하게 피어날 황홀한 일몰의 깊이는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어야겠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더 지날 하루가 없는날 일지라도 내 시선에 고정된 슬픔이 선홍빛 꽃물드는 그날을 덮어두진 말아야 겠습니다. 손톱을 깎아야 할때가 많이 지났고 발톱은 아직 한참이나 많이 남았습니다만, 저는 부지런히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또 다른 오늘을 터벅터벅 건너가겠습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3 | 추천: 0
3월 이후 지역 건설업체와의 집단교섭 및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던 울산 건설플랜트의 노조의 파업이 71일 만인 5월 27일 노사정 합의를 통해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6월 1일 조합원 투표가 찬성으로 결정나더라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겨두게 되었다. 주요 쟁점이었던 사측과의 집단교섭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고, 노조가 이후 합법적인 활동을 약속함으로써 그동안의 파업이 불법적이었음을 시인한 결과가 되었으며 파업과 관련한 민·형사상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합의 주체인 ‘공동협의회’의 성격이 애매하여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더라도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70여일간의 장기파업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조가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즈음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던 시민사회가 이들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투쟁을 돌이켜 반성하면서 눈 부릅뜨고 합의사항 이행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막노동 하는 노가다는 사람도 아니랍니까?” “저희는 더 이상 남편들이 모멸감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꿈을 꾸며 올라 왔습니다.” 지난 5월 23일 오전 아주머니 몇 분이 갑자기 사무실로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풀어 놓으셨다. 농성 중이거나 구속된 울산 플랜트노조 노동자 가족들이 직접 남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모진 꼴을 겪은 뒤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오신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목이 메어 안타까움을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이미 새로운 천 년이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전쟁과 착취의 20세기 닮은꼴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터였지만, 민주화를 이루었다며 그 성과물들을 자랑해대는 이 대명천지에 80년대에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노동조건과 기업의 행태에 분노를 진정하기 힘들었고 뒤늦게야 남편들의 작업환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 거리에 나선 부인들의 마음이 읽혀져 괴로웠다. ‘정직원 외 출입금지’ 라는 간판이 달린 식당이나 휴게실, 화장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니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겠지만 현장에서 겪었을 모멸감을 20-30년씩 어떻게든 참아가며 일해야만 했을 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법이 있잖아요. 약한 자를 위해서 있는게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게 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하루였어요.” 농담처럼 내뱉곤 하던 말이었는데, 허가를 받은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에서 연행되었다가 나온 한 아주머니가 이야기 끝에 남긴 이 이 한마디가 너무도 절절하게 들렸다. 가족들은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정부에 있음을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근로기준법의 노동보호제도와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 제도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다단계 하도급 체계를 개선할 것과, 화장실과 식당 그리고 휴게실 설치가 요구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전체 72개 하청업체 중 41개 업체가 교섭 대표단까지 꾸렸다가 돌변하여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검찰과 경찰은 파업 돌입 5일만에 노조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발빠르게 과잉진압에 나섰으며, 언론까지 가세하여 노조의 폭력성만을 일방적으로 부각하여 보도하는 등 마치 기업과 공권력과 언론이 사전모의라도 한 듯 삼위일체가 되어 대응하는데 어찌 정부가 이에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인가. 이미 대표적인 비리부패산업으로 알려져 있는 건설 분야에 어떻게든 그들 모두가 깊이 유착되어 있고, 노조로 인해 그 비리구조가 드러나고 끊어져 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막노동이라는 단어는 “닥치는 대로 하는 육체노동, 막일, 대수롭지 않은 허드렛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라면 울산 건설플랜트 현장의 노동자들은 절대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닥치는 대로 하는 성격의 일도 아닐뿐더러 대수롭지 않은 허드렛일은 더구나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결단이 필요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역군들이다.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노가다’가 아니라 이 사회와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하는 일을 막노동이라 부르던 허드렛일이라 부르던, 그들을 노가다라고 부르던 노동자라 부르던 그들이 주인이다. 부디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의 노동자들이 누군가의 도움으로가 아니라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닫고 이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앞으로 상황이 어찌 진행되던 안주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 바란다.   김대원 위원은 현재 성공회 서울교구 신부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7 | 추천: 0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이스라엘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테러다 뭐다 해서 얼핏 위험하고 시끄러운 곳이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인류 역사와 그 역사에 필수불가결하다시피 뒤따르는 분쟁의 축소판이란 생각에, 거기에다 뭔가 재미있는 게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구미가 동했다. 대부분의 여행, 특히 고향땅을 벗어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방문한 나라의 좋은 면만을 보는 게 일반적이다. 비싼 돈까지 들여 큰 맘 먹고 나서는 길이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내게 여행은 언제부터인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수많은 삶,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아픔마저도 함께 하고픈 마음을 잠시나마 풀어놓고 오는 장으로 자리해오고 있다. 그것은 아마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껏 줄기차게 생각해오고 있는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연민이나 안타까움 같은 게 내면 깊숙이 놓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국적기를 이용하는 바람에 이집트를 거쳐 가야하는 여정이 좀 번거로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도착한 날부터 이집트에서는 수십 년만에 일어났다는 데모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색다른(?) 체험이었다. 1981년 집권과 동시에 비상계엄을 실시하며 이집트를 철권 통치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이 나라 안팎의 반대 여론에 밀려 올 2월 26일 직선제 개헌안을 내놓은 이후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데모는 우리가 머물던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시민들에게마저도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그들에겐 생소한 것이었다. 야권과 시민단체 등이 벌이고 있는 무바라크 퇴진 운동은 ‘키파야(‘충분하다’는 뜻의 아랍어) 운동’이라 불리는데 독재도 충분하고, 24년간의 대통령직 재위도 충분하고, 무바라크가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는 정치 조작도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 뼈아픈 독재를 체험해야 했던 시절이 떠올라 어떻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치밀기도 했지만 어찌하랴 잠시 스쳐가는 3자인 것을…. 이스라엘 땅에 첫발을 들여놓던 때는 무척이나 긴장된 순간이었다. 가방에 넣어갔던 ‘팩소주’ 때문에-아마 그들의 입장에선 액체폭발물이 아닐까 염려할 만도 하다-몇 시간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잡혀 있어야 했다는 선배의 경험담이 뇌리에서 생생히 살아난데다 이스라엘 보안요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도 인상이 하나같이 딱딱해 원래 웃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세계지도를 펴놓으면 간신히 점 하나 차지하는 나라, 전라남북도를 합친 크기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인류의 역사에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뭘까?’ 내 생각은 온통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질문은 인류와 인류의 존재양식에 관심을 지닌 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숙제로 연결됨을 알게 됐다.   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군인들. 처음엔 늘 전시상황이니 그런가보다 했는데 군인들의 얼굴이 아무래도 어려 보여 알아보니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이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국민이면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을 의무적으로 군에서 복무해야 한다는 설명에 가슴 한 곳이 무거워졌다. ‘저들이 총을 들기에 충분히 이성적일까?’라는 생각보다는 ‘저들이 왜 비슷한 또래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살상하는 일로 내몰려야 할까’ 하는 생각에 슬픔이 몰려왔다.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답게 인간의 종교 혼으로 이뤄진 듯한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은 저마다의 신을 가슴에 품은 순례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성경을 알면 믿음을 알고, 이스라엘을 알면 세계사를 안다’는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예루살렘은 순례객들로 하여금 지금껏 자신이 지녀온 뭔가를 확인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을 심어주었다. 통곡의 벽(Western Wall), 게쎄마니 동산, 최후의 만찬, 올리브산, 십자가의 길 등 무수히 많은 말들이 역사와 얽히는 땅을 돌아보는 가운데 숨이 턱 막히는 체험을 했으니 그 곳이 바로 분리장벽 건설이 한창인 베들레헴이었다. 2년 전 이스라엘이 “자살폭탄 테러범들의 침입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쌓기 시작한 이 8미터짜리 장벽으로 예루살렘시 경계에 걸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분리장벽에 포위된 모양새였다. 또 팔레스타인 자치도시인 베들레헴 안에 있는 유대교 성지 라헬의 무덤을 시 구역과 분리해 이스라엘 쪽에 포함시킴으로써 흡사 벌레 먹은 사과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례자의 눈을 잠시 떠나자 자신들만의 평화와 안위를 위해 수많은 이들을 감옥 아닌 감옥에 가두려는 인간의 노력이, 하늘에 오르려 바벨탑을 쌓던 그토록 지혜롭던(?) 인류의 조상들에 겹쳐 떠오르며 가슴까지 먹먹해지는 아픔이 밀려왔다. 인류를 분열시키고 전쟁으로 몰아갔던 게 그 알량하고 얄팍한 지식 때문이 아니었던가. 예수가 묻혔다는 ‘거룩한 무덤성전’. 지금도 가톨릭을 비롯해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교회, 에디오피아 정교회 등 수많은 종파가 갈가리 찢어 소유하고 있는 성전은 인류가 그토록 갈구하는 평화와 사랑이 지상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며 저마다의 평화만을 평화로 강요하는 현생 인류의 모자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이 이 오명을 벗고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평화 속에 살기 위해선 그 자신들만의 힘만으로는 힘들다는 게 순례 속에서 건진 결론이었다. 그들에겐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돌아보게 하고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착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하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3 | 추천: 0
이중국적자들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버리는 것을 제한하는 국적법 개정안이 지난 4일 국회를 통과했다. 6월초부터 개정법이 시행되면, 병역 의무를 다하기 전에는 한국 국적을 자유롭게 포기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개정법 시행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매일 백여 명씩 국적 포기를 신청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해 국적 포기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까지는 이중 국적을 가진 남성이 모든 면에서 한국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다가, 17세 이전에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재외동포’가 되면 병역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추가적인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국내 체류기간 한정, 대학 입학 때 재외동포 특례입학과 편입 대상에서 제외, 부동산 취득 제한, 금융거래 제한, 건강보험 적용대상 제외 등을 통해서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버린 사람들이 내국인과 같은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막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포기자는 차후에도 국적회복을 불허하고. 재외동포법상의 모든 권리와 자격을 박탈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라고 한다. 뉴스가 전하는 여론은 새로운 국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쪽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 국민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하는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중국적을 이용하는 계층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속지주의를 채택한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 국적을 얻고, 또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얻은 ‘운좋은’ 어떤 남성이 한국에서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는 한국의 사회적인 혜택을 누리다가, 군대갈 나이가 되어서야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일반 국민들로서는 ‘많이 손해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상당히 여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혜택만 받고 의무는 짊어지지 않으려는 일부 얌체족에 대한 질타는 당연하다(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그들이’ 혜택으로 여기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한편으로는 법이라는 것이 이렇게 특정한 소수의 사람들을 꼭 집어서 주류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논리를 가지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수많은 재외국민, 동포들이 온 세계에 널리 퍼져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이러한 법이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중국적을 얻게 된 사람들의 처지를 포용할 수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한번 국적을 포기하게 되면 다시는 한국 국적을 회복할 수 없고, 재외동포로서의 자격까지 잃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경직된 법적용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런 일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언급된다.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명예로 여겼던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은 서구에서는 기득권층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가해서 목숨을 잃은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 없는 일반 국민들은 훨씬 더 많은 수가 희생을 당했다. 강제징집을 당해서 전쟁에 참여하거나, 군인도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이유도 없이 죽어간 일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사유재산과 그들이 가진 사회적 기반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참전한 기득권층의 ‘이유 있는’ 용기를 칭찬하기 보다는, 저항하지 못하고 전쟁 속에서 죽어간 민간인들이 희생되어야 했던 필연성을 따져보아야 하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던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니라, 전쟁에 대한 반대가 우리의 구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일을 보고 한 원로 소설가는 군대에서 음식쓰레기통에 버려진 음식을 먹고, 드럼통에 얼굴을 처박는 혹독한 기합을 받았던 일을 자랑스럽게 추억하면서, ‘그 모두가 사람 되라고 받은 훈육과 기합’이었다고 감격스럽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군대가 이렇게 추억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군복무를 할 수 있을 때, 군대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기꺼이 국방의 의무를 준수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끝으로,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를 몰아내는 좋은 방법은, 이런 저런 수단으로 껍데기를 분간해내서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감으로써, 기득권에 매달려 체면도 없이 이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껍데기를 골라 버리는 방법이다. 우리가 할 일은 껍데기를 골라내는 데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가 스스로 부끄러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5 | 추천: 0
내신등급제로 시끌벅적합니다. 고등학생들이 시험 때문에 자살을 하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급기야 일군의 고등학생들이 시내 한 복판에서 추모 촛불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교육부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지금의 입시제도는 학생들에게 입시부담을 1/12로 경감시킨 게 아니라 입시부담을 12배로 가중시키는 결과만 낳았다’며 교육부를 맹성토 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교육부 수장에 어떤 사람이 오건, 제도를 어떻게 고치건 지금의 입시문제가 온전히 해결되기란 어려운 일임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 중에서 없어도 되는 부처로 손꼽히는 데가 ‘교육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벌사회를 조장하는 사회시스템의 문제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터에 사회가 바뀌지 않는 다음에야 제도를 어찌 고치건 입시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고질적인 문제로 우리 앞에 태산처럼 다가설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살건 못 살건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교육비를 엄청 쏟아 붓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것처럼 기득권 및 시스템을 유지 온존시키는 가장 강력한 매개는 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들의 사교육비 지출을 위해 맞벌이는 물론이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짤리지 않고 해야 하며, 허리띠 바짝 졸라매 자녀에 대한 교육투자를 해야 합니다. 저축이니 내 집 마련이니 하는 것들은 후순위로 밀려야 하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나 선생을 통해 주입된 일류대 만능의 이데올로기에 그냥 젖어들어 그 황금기를 온통 공부에 찌들어 지냅니다. 좋아하는 운동을 즐기거나 다양한 독서를 통해 세상의 이치에 대한 생각을 해볼 겨를이나 폭넓은 교양을 쌓을 여유도 갖지 못하고 그저 취직의 관문인 대학에 잘 들어가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인이 되기 위하여 귀중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 어떤 때보다 진취적이고 패기와 용기로, 끊임없는 도전의식과 의문부호로 똘똘 뭉쳐있어야 할 나이에 너무 일찍 박제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상태로 자란 아이들에게서 한 사회를 질적으로 한 단계 성숙시킬 만한 상상력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등골이 휘어져라 교육비를 퍼붓고 맹자 어머니 저리가라 할 정도로 10년 이상 온 신경을 곤두세워 자식 교육문제에 골몰해 보아도 서울에 있는 명문대는커녕 전국에 있는 유수의 4년제 대학에 보내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인 실정입니다.   결국 사회에서 출세가 보장된다고 일컬어지는 몇몇 주요 ‘관문’을 통과하는 아이들은 강남 분당권을 비롯한, 이미 어느 정도 선택된 가정의 아이들이 주축을 이루고 강북권 등의 아이들은 졸업해도 취업 여부는 전혀 보장이 안 되는 ‘기타대’들에 가게 되거나 아예 대학 진학의 꿈도 못 이루게 되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반이 넘는 아이들은 이미 교육과정에서 철저히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구요. 부의 대물림이 교육이라는 수단으로 이제 고착화된 것 같습니다.       확률 상 뻔히 보이는 결과인데도 로또대박의 꿈을 움켜쥐고자 하는 부나비처럼 많은 사람이 이런 흐름에 그저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꼭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는 걸까요? 물론 아이에게 성적 때문에 상처받게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게 되거나 또는 아이들이 스스로 학원에 등록해 공부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그 길 밖에는 없는 건지요. 과외나 학원은 꿈도 못 꾸는 절대빈곤 하에 놓인 아이들은 물론이려니와 웬만큼의 투자로는 어림도 없을 일인데도 올인을 하다시피 하여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는 서민들에게 교육을 통한 계급의 변화가 과연 용이한 일일까요. 차라리 그 꿈을 다른 각도로 가지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고 당장, 또는 내일의 행복을 담지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아이의 미래가 반드시 지금의 학업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발상 같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믿음’을 갖고 도도히 흐르는 흐름에서 벗어나 잠깐 둑 위로 올라앉아 보다 넓은, 자유로운 길을 개척할 여지는 없을까요? 학창시절에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게 한다면 더욱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랄 터이고 그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 아 물론 학벌이 필요치 않은 분야에서이겠지만요. 학벌 없이도 사회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또 일정하게 나름의 영역에서 성취해 내는 사람이 늘어나야 학벌사회가 서서히 무너지고 결국 고질적인 입시문제도 서서히 해결되어 나가리라 생각됩니다.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부터 실천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3 | 추천: 0
이만큼 민주화 되었다는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민주화의 현 주소가 여기까지라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위법한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 유가족 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은 입을 모아서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법을 제정하라고 수십 년 동안 목을 놓아 외쳐왔다. 그런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합의를 자축하며 이번 임시국회 회기인 5월 3일에 과거청산법을 처리하였고, 시민단체 등은 과거사청산법을 차라리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해괴한 일인가 영문을 모르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고, 과거청산을 바래왔던 수많은 국민들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는 사이 입법안은 아름다운 합의와 타협, 상생이라는 꼬리표를 자랑스럽게 달고 악법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4년 7월 30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대통령보고, 같은 해 8월 15일 대통령의 강력한 포괄적인 과거청산 의지 표명, 같은 해 12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과거청산 입법안에 대한 행정자치위원회의 공청회까지만 하여도 이제 비로소 해방 이후 단 한번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일제 식민지 강점하의 친일 행위, 6∙25 한국동란 전후의 민간인 학살 문제, 이승만 독재부터 지속된 군부 독재정권 치하에서 자행된 온갖 인권 유린과 국가 폭력의 해묵은 숙제를 풀고 화해를 위한 조치를 밟아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논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그런 바람은 부질없는 것이었고, 국민이 개혁을 위하여 뽑아준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여망을 짓밟고 “과거청산법”이 아닌 “역사왜곡∙은폐법”을, “국민화해법”이 아닌 “국민정쟁법”, “민주인사탄압법”, “신국가보안법”을 한나라당과 손잡고 만들었고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니 기가 막히고, 망연자실할 뿐이다. 통과된 법안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적대시하는 세력들에 의한 폭력과 인권유린, 테러, 학살, 의문사’ 등을 조사 범위로 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일개 조항에 불과하지만, 들여다보면 참으로 무시무시한 독소 조항이고, 악의가 꿈틀대고 있다. 과거 어두운 독재정권 치하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민주화 운동 내지 통일운동을 하였던 모든 진보 세력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덫에 걸려 어김없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자로 처벌을 받았으며,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이 땅에 이만한 정도의 민주화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민주화 운동 세력들을 다시 재조사하겠다는 것은 바로 민주인사를 탄압하겠다는 것과 동의어이며, 고문 등으로 조작된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국가 폭력의 진실규명에도 물 타기를 시도하겠다는 의지이며, 종국에는 조·중·동 등의 보수 신문과 손을 잡고,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켜, 해방 전후의 좌우 대립과 같은 국면을 조성하여 과거청산 자체를 무력화 시키려는 세력들의 음흉한 칼날이 숨어 있는 무서운 조항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부산동의대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1975년 4월9일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게 대법원이 사형 확정판결을 내리자 가족들이 법원 앞길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현실화 할 경우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법의 취지는 전혀 달성하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극심한 국론 분열과 대립만을 초래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청산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과거청산의 주체로 나서 칼을 휘두르는 꼴이니 어떻게 이법을 악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더욱이 이 법은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서 예컨대, KAL기 폭파사건, 인혁당 사건,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사건 등등은 아예 조사조차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으니 과거의 진실을 은폐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정작 조사해야 할 사건은 조사할 수도 없고, 이미 수없이 법을 악용하여 무차별적으로 처벌받아온 민주 인사는 조사를 하겠다는 적반하장도 유분수가 아닌 법이 아닌가. 더욱이 위원회의 구성을 여당과 야당이 나눠 먹기식으로 구성하고 있으니 각자의 정파를 대변하는 자들이 과거청산 기구의 주체로 들어와 정쟁만을 일삼을 것이고, 그 경우 진실 규명은 딴전이 되고, 독립성과 공정성, 중립성을 잃은 인사들에 의한 진실규명의 결과 또한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시민단체와 국민들도 받아들이지 않아 끊임없는 분쟁만 초래할 것이다. 1975년 4월9일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게 대법원이 사형 확정판결을 내리자 가족들이 법원 앞길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과거청산의 대상이 될 대다수의 사건들은 조작, 고문 등의 의혹이 수없이 제기되어왔고, 작게는 십여 년 멀게는 백 년 전의 사건까지 포함되어 충분한 조사 권한이 확보되어도 진실규명이 어려운 사건들인데도 아무런 조사 권한도 없는 껍데기 권한으로 어떻게 진실을 규명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나의 이런 우려가 결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랬지만 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이 같은 우려가 곧 현실화 될 것으로 확신한다. 과거청산법의 악법 독소조항이 위력을 발휘하는 비극적인 현실이 된다면 이 법을 제정한자들 역시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고, 법률 또한 청산이 될 것이다. 피 묻은 역사의 숨결에 귀 기울이고 반성하라. 이제 껍데기는 제발 물러가라.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3 | 추천: 0
새학기가 시작되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특수학급의 학생들이 입학을 하게 된다. 학생들은 담임교사와 함께 하루를 보내던 초등학교 때와 달리 학급에서 독립적으로 생활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학교에 입학할 때 지체부자유가 심한 학생은 특수학교로 지원을 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한 발달장애(영화에서 소개된 말아톤의 주인공이 가진 장애), 경증의 자폐증, 정신지체, 학습장애(정서장애) 등의 경증의 장애를 가진 학생은 일반학교에 입학을 해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통합교육이란 장애를 가진 학생과 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배움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편견 없이 상호 협조하여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자 하는 교육환경을 의미한다. 외국의 대부분의 장애 아동들도 이같은 통합교육의 틀 속에서 장애를 최소화하기 위한 특수교육을 병행하고 있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통합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통합교육의 가장 큰 미덕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장애아동이 장애아동과 함께 어린시절부터 함께 학습하고 생활할 기회가 제공될 경우 장애아동과 비장애 아동 모두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에게 매우 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배형진씨  ⓒ 한겨레신문   하지만 학교에서의 현실은 이와 다르게 통합교육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중학교에는 학교의 학급수에 따라 한두 개 반 정도의 특수학급(개별학습이라고도 함)과 한두 명의 특수교사들이 교육을 한다. 장애학생들은 일반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국어, 수학, 영어시간에는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장애학생들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비장애학생들의 충분한 이해와 배려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입시교육이 강조되는 학교교육에서 일반학생들 또한 성적과 입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로 인해 학생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이 쫓기듯 생활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좁은 교실에서 40여 명의 학생들이 생활을 하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조그마한 피해가 오더라도 참지 못한다. 이 경우 신체적인 장애(두통, 복통, 갑작스러운 경련 등)가 나타나고, 심하면 상대방에게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장애학생에 대해서도 이해와 배려보다는 장애학생들도 자신들과 동등하게 대할 것을 교사들에게 요구하는가 하면, 심지어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장애학생들에게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장애학생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발달장애와 약간의 자폐증상을 가진 문식과 철수가 일반학생에게 매일 붙들려 가서 돈을 빼앗기고, 하교 길에 앵벌이를 강요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이들은 문식이와 철수의 옷을 벗겨 포르노사이트의 행위를 흉내내도록 하면서 그 장면을 즐기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철수가 학교 가기를 거부하면서 어렵게 어머니에게 사실을 이야기 했고, 같은 증상의 장애인인 철수어머니는 학교에 와서 이 사실을 알렸다.(종종 장애 학생 부모 또한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문식과 철수를 괴롭힌 가해학생은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일용 노동일을 하는 아버지와 둘이서 살면서 방과 후에는 늘 PC방을 드나들던 학생이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내용으로 문식이와 철수를 늘 괴롭히면서 교사들과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돌봐 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미처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학생들을 보살피고 올바르고 지도해야 하는 것이 교사들의 역할이지만, 학급학생 스스로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며 생활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장애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색해 한다. 도움을 주는 방법을 모르기도 하지만, 인터넷매체의 영향으로 혼자만의 놀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들이 아름답게 어울리는 모습을 기대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인가.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14 | 추천: 0
고등학교 때, 나는 정기적으로 서랍 검사를 당했다. 아버지가 주도하고 어머니가 거들었다. 덕분에 창간호 때부터 모아둔 몇 달 치 한겨레신문과 각종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히기도 했다.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겨레신문을 ‘소장’하겠다는 욕구를 버리고, 가판에서 사서 읽은 뒤 학교 교실에서 여러 친구들과 돌려 읽었다. (그 시절, 대구에서 고등학생들끼리 한겨레신문을 돌려 보는 것은 ‘지하 유인물’을 읽는 경험과 비슷한 것이었다) 돈을 내고 사서 읽은 책은 다른 친구 집에 (녀석에겐 검열관을 자처할 아버지가 없었다) 맡겨 뒀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딱 하나 있었다. 시 습작 노트였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 끄적거린 잡문 묶음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은밀하고 내밀한 기억과 감상에 대한 기록이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 해도, 그걸 들여다볼 ‘특권’을 허락할 순 없었다. 거의 일주일마다 그 노트를 숨길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머리가 아픈 건 사실 두 번째 문제고, 이걸 누군가 읽어봤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참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시 습작은 대학교 졸업 학기를 끝으로 결말을 내렸고, 신문사 입사 이후엔 단 한번도 이 노트에 ‘신작’을 보태지 않았지만, 이 잡문 묶음은 지금도 내 보물 1호다. 그것은 일기를 대체했던 ‘월기’이자,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청(소)년 시절을 더듬을 유일한 자취다. 초등학교의 일기 검사가 초등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국가인권위의 판단을 둘러싼 논란을 보고, 나는 참 의아했다. 일기의 교육적 효과 운운하는 사람들은 어린시절, 거의 예외 없이 겪었을 일기의 ‘폐해’에 대한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워버렸음에 틀림없다. 의무에 불과한 일기 쓰기 때문에 한 달 전 날씨까지 기억해 내야 했던 일은, 어떤 이유를  더해도 그저 불필요하고 허접한 노동력 낭비다. 그런 일기는 글쓰기 능력 배양에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을 쓰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과의 대화’다. 이는 단단하게 내 자신을 바라보는 ‘성찰’을 전제로 한다. (검사라 불리는) ‘검열’을 의식한 성찰이란, 아예 성립불가능한 말이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나 자신과 어떻게 대화하는 지를 이해한다는 의미다. 교사 또는 부모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 시선에 맞춰 나를 포장하는 기술을 익힌 사람은 결코 ‘글’을 쓸 수 없다. 학교 숙제로서의 일기를 열심히 쓴 학생 가운데 훗날 본격적인 문필가가 된 경우가 얼마나 되는 지에 대한 통계적 수치를 제시할 순 없지만, ‘경험적’으로 보자면 일기와 글쓰기는 결코 ‘길항’의 관계가 아니다. 검열에 익숙해진 세계관으로 ‘창조’를 도모할 수는 없다. 혹시 탈선이나 비행의 ‘조짐’을 일기를 통해 파악하려는 욕구가 ‘교육적 효과’로 표현되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선 어른들이 걱정하는 종류의 탈선과 비행을 (이런 단어 자체가 얼마나 ‘어른 중심적’인 말인가) 꼬박꼬박 일기장에 적을 만큼, 순진한 학생은 많지 않다. (학교 과제로서의) 일기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충실하거나, (내밀한 개인기록으로서의) 일기를 쓸 정도로 자기와의 대화에 목마른 학생들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일탈’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교육적 수단을 고려하자면, 그저 일기를 쓰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구분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일기 쓰기를 '적극 권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한 성찰에 도움이 된다는 ’교육적 효과‘를 강조하면서 말이다.                                                                                                                          ⓒ 한겨레신문  사실 일탈의 조짐을 발견해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철저하게 ‘범죄수사’의 관점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바라보는 행위다. 이런 방식이라면 차라리 거짓말 탐지기를 신체검사 때마다 학교에 들여와 정기적인 ‘바른 생활 점검’을 시도할 일이다. 그런 지경이 되면, 일기 쓰기는 이제 글쓰기와 성찰을 빙자한 국어, 도덕 교육이 아니라, 검열관 앞에서 적어 내려가는 ‘자술서’라는 본질을 보다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정상화를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결국 이런 교육적 효과에 대한 기대는 결국 다른 교육 수단을 통해 도모되는 게 옳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글쓰기 능력을 길러주려면, 책읽기와 독후감 등 ‘공식화’된 작문 수업의 활성화가 더 바람직하다. 청소년기의 일탈행동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손쉬운 자술서 검열 대신 어렵고 힘들지만 가장 효과적인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 게 좋다. 이렇게 ‘교육’이라는 기름을 다 빼고 난 다음에서야, 일기는 제 자리를 찾는다. 자신과의 대화.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나만의 기록. 그 안에 둥지를 틀고 나의 ‘자존’은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인권운동의 출발이 스스로의 인권을 자각하는 일에 있다면, 인권교육의 강화는 ‘누구의 검열도 의식하지 않는 성찰적 대화로서의 일기 쓰기’를 권장하는 일에 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내 서랍을 뒤지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 스스로 시를 쓰기 시작하셨다. 얼마 전에는 지방의 한 문학잡지에 ‘등단’까지 하셨다.  ‘운동권 아들’ 때문에 속을 태우다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자신과 대화하는 ‘성찰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신 듯 하다. 여기에 혹시 아들의 은밀한 기록을 들쳐본 경험이 긍정적 영향을 줬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 들어 부쩍 ‘비밀’이 많아진 7살짜리 딸에게 내 ‘잡문 묶음’을 보여줄까 말까 고민 중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너만의 세상을 일궈가라는 격려와 독려가 될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세상에서, 인권은 그 본래적 가치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다. 시 쓰는 할아버지는 시 쓰는 손녀의 습작노트를 뒤져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시 쓰는 일을 서로 대견하고 존경스럽게 여길 뿐이다. 일기 쓰기는 그렇게 자존을 향한 성찰,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인권의식의 품으로 온전히 돌려보내야 마땅하다.   안수찬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