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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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허윤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태국의 ‘단또’라는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9남매 중 다섯째 딸인 폰피몰은(오빠 3명, 언니 4명, 남동생 1명) 어머니(74세)와 함께 농사일을 도우며 생활했습니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외지로 떠난 형제자매들과는 달리 늙으신 어머니를 수발하며 성실히 사는 평범한 시골 아가씨였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한국인 남편을 만났습니다. 잘사는 나라로 알려진 한국으로 시집갈 기회가 생긴 것이기에 가족들도 기뻐해 주었습니다. 결국 2004년 결혼이민자 여성으로서 한국에 왔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결혼 중개업소를 통해 시집온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많이 있습니다. 언어, 문화, 생활방식, 시댁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온전치 못한 남편과의 생활 등 그 어려움은 다양합니다. 다행히도 폰피몰은 남편과의 사이가 좋았고, 시어머니도 잘 대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폰피몰의 한국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온 한국에서도 가난한 생활이 지속되었습니다. 남편이 일하는 양말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매달 겨우 5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받아 반지하방에서 살았습니다. 양말 공장 사장님은 남편의 둘째 형입니다. 제대로 된 월급을 요구할 수 없는 것도 정신연령이 낮은 남편의 능력으로는 단순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보 같은 동생을 거두어 준 것 만으로도 고마운 형님이었습니다. 어려서 큰 병을 앓았던 남편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정신연령밖에 되지 않아 의사소통과 부부관계 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남편의 일을 돕느라 한국말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으니, 눈치껏 생활해야 하는 폰피몰의 한국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고, 언어장벽, 남편의 장애 등의 어려움 속에서 결국 폰피몰 혼자서 한국생활을 적응해나가야 했습니다. 그래도 폰피몰은 의지가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한국으로 올 때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며 살겠다고 어머니에게 다짐도 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뼈를 묻을 각오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착한 남편이 그녀에게 유일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2007년 폰피몰이 위암판정을 받고 위의 75%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사실 2006년부터 배가 많이 아팠지만, 남편의 무지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었고, 시댁식구들도 음식이 맞지 않아 단순히 체한 것으로 여겨 적절한 치료를 제때에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병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결국 저희 기관에 도움을 청해 왔을 때는 이미 완치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당장의 위급함에 위절제술을 받았지만 뼈까지 전이된 암 때문에 결국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니 마음을 편하게 해주라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폰피몰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남편이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댁식구들도 암이라는 진단에 집안에 우환거리가 들어왔다며 냉대할 뿐이었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폰피물 사진 출처 - 필자    결국 폰피몰은 2009년 2월 태국의 어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어쩌면 가족과의 마지막 만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향에 가서 상태가 더 악화되는 바람에 돌아 올 수 없었습니다.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이제 걸을 수조차 없게 된 것입니다. 태국의 의사들 역시 이제 가망이 없고 편안히 죽음을 준비하도록 가족들이 배려하는 일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폰피몰은 가슴 아래까지 마비가 된 상태로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폰피몰이 남편을 보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시댁식구들은 남편의 태국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인지능력이 떨어져 안전상의 이유로 보낼 수 없다고 했지만, 실상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기관이 모든 재정지원을 하고, 저희 직원과 수녀님이 동행하겠다고 설득했습니다. 부부가 이제 마지막일지 모르는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만남의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인간적인 설득을 계속하였습니다. 마침내 2009년 4월 24일에 태국선교사 1명과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수녀 1명이 남편과 동행하여 4박 5일 동안 태국을 방문하여 폰피몰과 그의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남편은 이번에 가서 꼭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말합니다. 아내인 폰피몰이 얼마나 위독한지 잘 모르고 그저 다리가 아파 누워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빨리 다리가 나아서 한국으로 오라고 합니다. 폰피몰이 그러겠다고 말했지만, 이것이 이 부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많이 부족하고 가난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잘 해주었던 남편이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꼭 나아서 한국에서 남편하고 계속 살고 싶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서 죽고 싶다고 눈물짓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래도 어려움과 아픔보다는 착한 남편과의 좋은 추억만을 이야기해 주는 폰피몰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남편의 위로를 받는 폰피물 사진 출처 - 필자    그로부터 일주일 후 폰피몰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남편이 함께 하지 못했지만 먼 길을 찾아와준 고마운 남편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안식을 누리길 기원했습니다. 병고만 아니었어도 폰피몰의 의지와 착한 남편의 마음으로 행복하게 사는 다문화가정이 되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10여만 명이 넘어가는 결혼이민자 여성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며 한국인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360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기고 간 숙제를 푸느라 사회 각계에서 말들이 많다. 이 많은 말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를 빌며 숟가락 하나 얹어야겠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가장 책임이 큰 집단으로 검찰과 언론이 거론되고 있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하이에나 근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할까. 스스로 몸담고 있는 업역에 대해 심하게 말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차제에 검찰과 언론이 정명(正名)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주지하다시피 검찰과 언론은 공생 관계다. 검찰은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고 언론은 뉴스 소스를 얻는다. 사실 검찰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정부 기관 또는 기업들이 언론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왜 검찰과의 관계가 유독 문제인가.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스스로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특종 혹은 단독 보도에 대한 욕심, 속보경쟁 때문이다. 누구누구를 무슨 혐의로 소환할 계획이라는 기사는 전체 브리핑 형태보다는 특정 언론의 단독보도로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공식 브리핑을 하기에 부담스러운 사안일 경우 검찰은 이런 식으로 특정 언론사에 정보를 흘린다. 낙종한 언론사들은 사실 확인에 바쁘고, 반까이(‘만회’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하려고 열을 올린다.    언론들이 마차를 끄는 말이라면 검찰은 뒤에 앉아 고삐를 쥐고 있는 마부다. 진행 방향과 속도는 전적으로 검찰이 좌우한다. 검찰이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아젠다 세팅을 언론이 아니라 검찰이 하게 된다. 프레임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한 검찰의 브리핑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및 가족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이다. 검찰의 수사망이 노무현 본인을 향해 점점 죄어오고, 언론사들의 경쟁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이 수사는 정치적인 수사니까 나는 물먹어도 돼, 라고 생각하는 기자는 이 세상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스크도 없을 것이다. 지난 주 한겨레신문은 이례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자사의 검찰 발 기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런 자기비판은 사실 한겨레신문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사 차원에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대응해야 하는 문제다. 일개 기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한겨레의 검찰 출입 기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취재하고 기사를 썼을 것이다. 지난 5월 30일 오후 3시 홍만표 대검수사기획관이 대검청사별관에 마련된 임시기자실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수사와 관련 브리핑을 하고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겨레는 자기비판과 함께 검찰 위주에서 법원 위주로 보도의 중심을 옮기거나 적어도 검찰의 기소 전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안 기사를 썼다. 그러면서 한 언론사라도 앞장섰으면 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그 언론사는 당연히 한겨레신문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론계에서 촌지 문화를 뿌리 뽑는데 선봉이 되었던 한겨레가, 모든 언론사가 권력에 굴종하던 시절 과감히 성역을 깨는 보도를 했던 한겨레가 앞장서야 한다. 검찰 발 기사를 두고 언론끼리 벌이는 특종 경쟁은 업계 용어로 이른바 ‘시간차 특종’이다. 몇 시간이나 늦어도 하루가 지나면 모두가 알게 되는 내용이다. 검찰의 입에서 나온 정보이기 때문에 검찰 말고는 검증할 방법도 없다. 이 불안한 특종을 향한 경쟁이 역으로 검찰의 권력을 이렇게 비대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몇 가지 실무적인 문제들이 남는다. 검찰은 고급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기자들은 기사를 매개로 검사와 접촉하고 정보를 얻는다. 때로는 기자가 정보 생산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기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정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정보를 고급 정보로 보고 계속 좇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 난감한 문제가 있기는 하다. 언론의 취재 활동을 감시 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만약 검찰이 여당이나 청와대의 비리 혐의에 대해 단서를 잡고도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개연성 또한 높다. 수사를 하지 않다가도 언론 보도에 따라 마지못해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쉽게 결론 낼 성질의 주제는 아니지만,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런 정보들은 대개 해당 기관 밖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검찰 출입을 한 적이 없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경험상으로 보면, 검찰도 비슷할 것이다. 검찰 발 기사를 포기하는데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또 하나, 그럼 검찰 출입 기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기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검사 방에 드나들기보다는 재판정에 갔으면 한다. 순진한 이야기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서민들이 법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고 주눅이 드는지 기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많은 기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누구를 (자리에서) 날리거나 하는 특종을 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사람을 살리고,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바로 잡는 특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편집국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나쁜 특종에의 유혹을 떨쳐 버리고, 낙종의 민망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차별화된 언론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모든 특종 경쟁이 나쁘다는 주장이 아니다. 빨리 쓰고 먼저 쓰는 건 언론사의 1차적 존재 이유다. 그러나 검찰 발 기사에 관한 한 과도기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인권 보호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우리 사회 권력구조를 정상화하는 첫 단추에 해당하는 과제다. 어떤 국회의원이 몇 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다는 기사가 더 이상 특종이 아니게 될 때(아무도 기사를 베껴 쓰지 않으면 특종이 아니게 된다) 비로소 검찰 중심의 법조 보도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에 쏠린 과도한 권력도 제자리를 찾으리라고 본다.    이런 주장은 내가 신문사 안에서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동료들에게 이런 문제의식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계신 분들에겐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에게도 용기를 줬나 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70 | 추천: 1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경찰이 연일 몸개그와 말개그를 쏟아내고 있다. 개그콘서트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추모 민심이 집중되고 있는 대한문 앞 분향소와 서울광장에서다. 제2의 촛불시위를 제일 두려워했을 것이다. 시민들에 의해 차려진 대한문 앞 분향소를 찾는 기나긴 추모 인파 속에서 불법폭력집회시위를 획책하는 시위꾼들을 발본색원하고자 했을 것이 틀림없다. MB식 법치 이후 지난해 촛불시위 강경진압,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참사, 대전 화물연대 집회시위로 인한 국가브랜드 손상 발언, 집회 원천봉쇄, 도심 집회금지와 같은 사건들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탄압했다. 제2의 촛불시위를 치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서울광장 원천봉쇄와 대한문 앞 분향소 차벽설치라고 믿었다. 경찰버스를 동원해 서울광장을 봉쇄하고,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앞 도로에 차벽을 설치하여 시위꾼들의 진입을 막으면, 국민 여론이 MB 경찰의 몸개그를 지지하고 나올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과잉충성’ 몸개그를 선보였나보다. 반응이 썰렁하다 못해 MB식 법치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역효과만 낳았다. 국민들의 크나큰 분노만 샀다. 이때 작렬한 말개그다. “경찰버스가 분향소를 막아주니까 오히려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부끄러운 체면을 가리는 썰렁 개그다. 2009년 5월 30일 새벽 ‘서울광장 재봉쇄’와 ‘대한문 앞 분향소 강제철거’ 작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전경들의 너무나 지나친 살신성인의 몸개그로 분향소를 부수고 짓밟아버리고 추모객을 잔인하게 강제해산하는 바람에 더욱 수습하기 어려운 후폭풍을 가져다주었다. “작전지역 반경을 조금 벗어난 일부 의경들이 그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대한문 앞 분향소 강제철거에 대한 서울지방경찰청장의 해명 멘트다. 백주 대낮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말이다. 경찰을 풍자하는 노래 가사 내용에도 정신을 놓아버린 듯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해서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다. “인도에 서 있다고 연행하는 나라, 경찰이 집창촌을 운영하는 나라, 경찰이 민간인을 폭행하는 나라, 인터넷에 글 썼다고 구속하는 나라, 경찰이 강도질에 살인하는 나라”, "돌아와요 민중의 지팡이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호, 멋있는 민중의 지팡이 기대해요" 등의 노래 가사 내용이 경찰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가 공권력을 무력화할 우려가 있다고 그 음반 제작 및 유통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였다가 보기 좋게 법원에 의해 기각 당하였다. 민사 가처분 신청과 함께 노래 가사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며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경찰이 피해자로 고소를 하고 경찰에서 이를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공권력의 횡포가 도가 지나쳐 그로 인한 인권침해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5월 30일 새벽 5시20분경 경찰이 서울 덕수궁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침탈해 노 전 대통령 영정을 모셨던 천막 등이 짓밟혀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과잉충성’에 경찰의 꼴이 말이 아니다. 명예와 위신을 아예 내던져 버린 듯하다.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탓일 게다. 궤변을 늘어놓기 십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민심에 화들짝 놀라 버린 경찰의 모습에서 좀체 공권력의 품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쯤 되면 막하자는 거지요?”, 민심을 알지 못하는, 체면 없는 경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광장을 재봉쇄했고 분향소 강제철거를 자행하였다. 몰락해가고 있는 식물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공권력을 틀어쥐고 매달려서 국민들을 위협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파탄의 구렁덩이에서 살아남으려는 절망적 몸부림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최후의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체면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린 공권력의 국민에 대한 불법적, 강압적 공포조성과 인권침해로 우리의 민주주의 앞길에는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부당한 공권력의 횡포에 맞서는 게 쉽지는 않다. 설사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이 피땀 흘려 지키고 가꾸어 온 민주주의는 우리들의 단합된 힘으로 더욱 발전되고 완성될 것이다. 민심은 서민을 배반하고 특권층을 대변하는 정권에 대한 불복종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심의 거듭되는 경고를 외면하고 일방 독주한다면 민심은 촛불이 되어 정권을 철저히 심판할 것이다. 국민주권의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마치 투우사가 미친 듯이 날뛰다 힘이 빠져가는 투우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날로 체면을 있는 대로 구기다가 겁에 질려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는 부당한 공권력을 단숨에 쓰러뜨릴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경찰은 민심에 역행하여 일방 독주하는 정권의 공안탄압과 인권탄압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것인가, 민심을 거스르지 않고 국민의 편에 서서 멋있는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 MB식 법치의 미명 아래 추락하고 손상된 공권력의 체면과 위신을 바로 세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역사는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저항권이야말로 국민을 숨죽이게 만들었던 그 어떤 독재 권력의 칼보다도 더 무섭고 강하다는 것을 똑똑히 증명하여 왔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22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오월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이 있어서 가정과 가족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하는 날이 있고 교사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스승의 날이 있다. 이는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나기까지 올바른 사고와 과정이 중요하고 그 가운데 교사가 역할을 한다라는 것이 전제 될 때 스승의 날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선생님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이가 8개월째 학교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인천의 모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던 예슬양(가명)은 담임교사였던 안 모 씨(29·여)에게 맞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아직까지도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 1학년 때부터 예슬이의 담임을 맡았던 안 씨는 예슬이가 숙제를 안 해오고 물어보는 말에 대답도 안했다며 나무 막대기로 엉덩이 27대를 때렸다. 예슬이는 3주의 상해 치료를 받았다. 체벌이 사회 문제화 된 이후 안 씨는 교단을 떠났지만 예슬이는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과 체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학교 얘기만 꺼내도 질겁을 하고 있다. 지금 예슬이는 정신과 병원 두 군데에 다니고 있다. 한 곳에서는 전문의의 정신 상담을 받고 다른 곳에서는 놀이치료를 받고 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있다. 특히 예슬이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해까지 시도했다는 경향신문(2009.5.11)의 기사는 교사인 나를 부끄럽고 초라하게 했다. 최근에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자본주의적 속성에 부응하는 교육정책들로 인해 구조조정이니 노동의 유연성이니 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과 ‘교사를 지식을 파는 장사꾼’으로 만들어가는 사회 일각의 풍토와 일부 교사의 잘못을 전체교사인 냥 확대하여 부풀리는 언론과, 교육을 “매개”로 돈벌이 하는 사교육 시장의 이해관계에 놀아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더욱 초라해지고 있다. 또한 교사에게 배우는 학생 자신들이 그런 고마움을 지니지 않는 데다 학부모들마저 ‘월급 받고 당연히 하는 일’로 치부하고 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그런 생각을 지니게 된 데는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올바른 정신을 일깨우지 못하는 교사, 교사답지 못한, 교사로 대우할 수 없는 교사 등으로 교사 당사자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일반 직업인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교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능력, 성실, 사랑일 것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지 않을까. 부끄럽게도 나는 사랑이 부족하다 그러기에, 잘못의 지적보다는 칭찬을, 건강한 아이보다는 마음이 아픈 아이를 좀 더 어루만져 주려고 하며, 미리부터 좋은 아이, 나쁜 아이로 구분해서 대하는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즐겁게 여기는 마음, 아이들을 볼 때마다 눈에 어리는 자상함, 아이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따뜻한 교사이고 싶다. 그래서 졸업생들에게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이셨지...” 보다는 “선생님은 우릴 진짜 아껴 주셨지” “언제든 찾아가 상담하고픈 선생님이셨어”라는 말을 듣는 교사이고 싶다. “교단에 서 있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늘 죄를 지으며 살았다”는 존경하는 선배교사의 말처럼 나는 날마다 죄를 지으면서도 그 부끄러움을 잊고 지냈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스승의 날은 나를 가장 부끄럽게 만드는 날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69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잔인한 계절이라 불리는 4월이 지나고, 화려한 외출의 5월, 5·18이 다가왔다. 5·18 민주화운동! 어언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시민은 국가폭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으며, 얼마나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묻고 싶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면서 쟁취한 소중한 우리의 자유와 권리, 그 피고름 속에서 얻은 영혼의 갈망이 지금 존중받고, 기억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법의 이름아래 처벌받아야만했던 수많은 국가폭력의 야만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엄혹한 시절에 ‘법은 법이다’, ‘명령은 명령이다’라고 부르짖으며 자의적이고 무분별하게 시민의 자유와 존엄성을 침해하였던 그 기억들로부터 이제는 자유로워졌는지 묻고 싶다. 아카시아 향기가 넘치는 계절의 광장에서 그렇게 파도쳤던 촛불이 법의 이름으로 1,500∼1,600여명이 처벌되어도, “악” 소리도 못 지르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시민의 미덕인지 묻고 싶다. 이 시대가 독재시절의 오도되고 오염된 법치주의 허울로부터 어느 정도는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도라 부르며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그 시대의 재판도 그렇게 합리화 되었었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묻고 싶다. 뿔난 민초들의 자발적 외침이었던 ‘촛불’ 재판에 관여하신 지체 높은 대법관 나으리께서 머리 숙여 반성하지만, 법에 따라 자신의 권한은 계속 행사하겠다는 장엄한 메시지를 보내셨다. 이것이 법대로 이고 원칙대로 인지 묻고 싶다. ‘사법행정’ 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뚤뚤 말아 사법부와 국민을 능멸하고도 그렇게 책임지지 않아도 좋은지 묻고 싶다. 이 나라 법원에 남아있는 양심을 짓밟고도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 운운하는 것이 무슨 심보인지 묻고 싶다. 이것이 문명국가 최고위직 판사의 양심인지 묻고 싶다. 5명의 시민이 사망한 끔찍한 죽음에 대해서 국가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없는 ‘용산참사’ 사건 재판이 검사들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로 인하여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게 검사가 위풍당당하게 수사기록 조차 변호인에게 제출하지 않아도 법의 이름으로 법대로 하였으니 괜찮은지 묻고 싶다. 철저한 수사, 한 점 의혹 없는 수사 결과라면 왜 수사기록을 변호인에게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러한 검사가 법률에서 말하는 ‘공익의 대표자’로, ‘인권옹호기관’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것이 법치국가 검사의 양심인지 묻고 싶다. 이러한 행위가 검찰이 휘두르는 정의의 칼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유가족과 회원들이 지난 5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진실은폐, 편파·왜곡 수사 검찰 규탄 대회'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한 시대 양심의 꽃들이 시들어가며 5·18 죽음의 장송곡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용산참사 사건을 바라보면서 몇 명이나 이 죽음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이제는 옛날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그리고 재판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는지 묻고 싶다. 역사의 질곡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 우리는 기억과의 투쟁에서 실패하고 있다. 기억과의 투쟁에서 패배는 불행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기억과의 투쟁에서 패배는 우리의 자유와 존엄성을 팔아넘기는 행동이다. 시대의 불감증과 건망증은 이 시대의 정의를 감옥에 보내는 행위이며, 악마와 교접하는 행위이다. 이 기억과의 투쟁을 위해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어머니회’는 오늘도 거리에서 시위를 계속하는 것일 거다. 악마들의 끊임없는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오늘 5·18의 골목길에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그리고 재판’을 생각한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둥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36 | 추천: 0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37살에 대기업 부장이 된 친구는 1억 원 연봉계약을 마친 날 자랑스레 저녁을 샀다. 서울 강남의 집은 나날이 가격이 오르고 있었고, 맏딸은 전국 단위 영어경시대회에서 메달을 땄다고 했다.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단둘이 앉은 3차의 호프집에서, 그는 축축한 눈으로 이렇게 물었다. ‘근데, 산다는 게 뭐냐? 내가 왜 사는지를 모르겠다. 돈을 위해서? 딸을 위해서?’ 말을 마친 그는 급하게 취해갔다.” 이 글은 “CEO가 인문학에 빠진 날”이라는 제목의 어느 잡지(2009년 4월 20일자)의 첫 부분이다. ‘돈’만 추구하다가 ‘혼’을 잃는 건 아닌가 싶은 두려움과 ‘잘 나가는 삶’의 척박함, 그런 깨달음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싶다. 이 기사를 보며 대학시절에 필자의 친구들이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당시에 참으로 잘 나가던 신문방송학과 학생인 친구가 철학과 학생인 다른 친구에게 “넌 왜 철학과를 택했니?”라고 묻자 들려온 답인즉슨, “넌 왜 사니?”였다. 이삼십 년이 지난 지금의 대학에서도 문학, 사학, 철학(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 과목들은 학생 수가 아주 적거나 폐강이 속출하는 반면, 경영학 과목들은 200명 가까운 대형 강의가 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기업이 지배하는, 기업 중심 사회로 들어선 지 이미 오래이며, 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과 기업 문화는 대중들의 민생고와 의식 구조 뿐 아니라 대학 교육까지 흔들고 있다. 대학 교육이 지녀야 할 ‘혼’과 대학 교육의 뒤를 받치는 ‘돈’이 혼돈되고 있는 형국이다. 대학 고유의 교육이념과 교육 철학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재계 인물이 대학총장으로 영입되어 기업식으로 효율을 강조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해야 대학이 경쟁력이 있다는 식의 척박한 혹은 천박한 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헤르만 헤세, 쌩 떽쥐페리 등의 작품이 젊은 가슴들에게 희망과 삶의 의미를 잔잔히 전해주던 시절에는 적어도 ‘돈’이 전부는 아니었다. ‘혼’이 있었고, 배움과 깨우침이 있었고, 스승이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도 있었다. 허나, 지금은? ‘혼’에 대한 목마름이라도 있는가? 사실상 보수와 극우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제 속에서 서민과 노동계급의 이익 및 요구는 대표되지 못하고 좌절될 뿐이며, 노동을 천대하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져, 부동산 투기나 재테크, 펀드 관리와 같은, 생산적 노동을 동반하지 않는 그야말로 돈벌이 그 자체에 우리 사회가 열병처럼 휘말리게 된다.     지난 4월15일 서울대 신양학술정보관에서 기업인 등 미래지도자 인문학 과정에 참여한 수강생들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21    이런 가운데 무엇이 ‘정의’이며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 하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사회정의’ 관련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힘들어지며, ‘효율성’이라는 ‘무규범적 기술합리성의 논리’가 사회 지도층 및 정치인의 언어를 지배한다. 아울러, 이른바 ‘명품’에 대한 맹목적 선호, 외모지상주의가 처절한 생존경쟁, 출세경쟁과 함께 두드러지며, “부자 되세요”라는 터무니없는 인사가 유행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 내면은 돌본 지 이미 오래되어 극도로 황폐하다. 아울러, 대학사회는 더 이상 비판적 지성의 터전이 아니라 사회입시 학원같이 변했고, 지식인들, 학자들 중에서 안락한 보수주의에 빠져 있지 않은 참여적 지성인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느 진보적인 원로 정치학자가 이렇게 한탄하는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있을까? 다시, 이 글의 첫 부분에서 언급한 인문학 강좌로 되돌아가보자. 중견기업의 대표이사, 대기업·중견기업의 임원·간부, 현직 판사, 병원장 등이 서울대 인문대학의 미래지도자 인문학 과정에 모여 스스로에게 ‘왜 살까?’ 질문하며 이제라도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닌 ‘제대로 살자’고 스스로에게 외치는 자리가 이번 달에 시작되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는 그 기사에 따르면, “술과 골프, 부동산 이야기를 바꾸고 싶었다,” “정신적 삶이 없으니 가난하다”며 인간이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음을 새삼 느끼기에 지금껏 돈 안 되는 공부라서 쓸 데 없다고만 여겨진 인문학이 바야흐로 성황을 이루는 거란다. 커다란 조직이나 기업일수록, 그리고 최고위 의사결정권자일수록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엔 외롭고 두렵기조차 하며, 그러한 결정을 좌우하는 것, 혹은 좌우해야 하는 것은 경영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인간관, 혹은 이념, 신념, 신앙이라 한다. 그래서 세계적 기업의 성공한 CEO들 중에는 경영학 전공자보다 인문학 내지 사회과학 전공자가 더 많다고 한다. 위의 기사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클레멘트 코스’의 유래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가 지난 1995년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20대 초반의 한 여죄수를 인터뷰했을 때의 일이다. 살인 혐의로 8년째 복역 중이던 여죄수는 ‘사람들이 왜 가난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신적 삶이 뭐냐’고 되묻는 질문에 그녀는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 같은 거죠. 그냥 인문학이오’라고 답했다. 그 말에 깨달음을 얻은 얼 쇼리스는 곧바로 뉴욕의 노숙자와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클레멘트 코스의 첫 수료자 17명 중 2명이 의사, 1명은 간호사가 됐다. 그들은 그렇게 삶을 되찾았다”고 한다. 인권실천시민연대도 이러한 소신을 갖고 재소자 대상의 인문학 강좌를 열어오고 있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렇듯, 인문학은 사람을 되살린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지만, 더 나은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바다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라 한다. 각자가 자기의 인생을 사랑하고 ‘삶’이라는 큰 바다를 아직 항해할 수 있음을 고마워하게 된다면, 그리고, 정신적 세계에서 맛보는 기쁨과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깨달아 퇴근 후에 종종 서점을 들르는 게 일과가 된다면, 자기의 ‘혼’과 자주 만나 친해지리라. 극도로 황폐해진 마음에 물을 대기 시작하리라. ‘정신’이 황폐해진 자는 ‘인권’을 알 수도 존중할 수도 없다. 현 시기에 더욱 척박해진 인권 현실은 이 시대 지도층 인사들의 ‘정신적 황폐’에 연유하는 바 크다. 이 글 맨 앞처럼, 그들이 축축한 눈으로 “근데, 정치인이라는 게, 사업가라는 게, 가방 끈 길다는 게 다 뭐냐? 내가 왜 사는지를 모르겠다”며 급하게 술에라도 취해갔으면 좋겠다. 그러한 인문학적 목마름과 방황을 거쳐 풍요로워진 정신 속에서 ‘인간’이 왜 그리 귀한 것인지, 왜 ‘인간’이 곧 ‘하늘’인지 새로이 터득하길 기대한다. 자, 건배!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39 | 추천: 0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후 가히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한 열풍이 우리 사회 곳곳에 불어 닥쳤다. 이 신드롬의 기미는 이미 김 추기경 선종 직후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명동성당으로 이어진 40만 명이 넘는 추도 대열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이 마지막 가는 길에 각막을 기증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전 사회적인 신드롬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매스컴은 물론이고 수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알려진 대로 김 추기경 사후 장기기증 신청이 급증하면서 장례 기간을 포함해 일주일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장기기증을 희망한 이만 1500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천주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와 사회 각 분야도 김 추기경으로 인한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해외 언론들까지도 김 추기경으로 빚어진 기이한(?) 현상을 앞 다투어 보도하며 ‘기적’이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까이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미국이나 스페인 등지에서도 김 추기경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친 현상을 특집으로 다루며 그의 이름 앞에 ‘성자(聖者)’라는 표현을 붙이기까지 하는 현실을 보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품게 됐다. 김 추기경의 삶과 그의 죽음에 어떤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해서가 아니라 고인의 살아생전 잠시나마 이어졌던 인연의 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기자로서의 삶에 발을 들여놓고 얼마 되지 않아 선배 기자로부터 물려받은 취재처 가운데 하나가 당시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수환 추기경 집무실이었다. 알려진 대로 김 추기경의 하루 일정은 거의 분 단위로 짜여 있어서 어떤 때는 거의 하루 종일 추기경 옆에 붙어있다시피 할 때도 적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큰 명절이라 할 크리스마스 때나 부활절 무렵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장소를 옮겨 다니며 수행해야 할 정도였다. 더구나 김 추기경의 모친과 필자가 같은 종씨여서 종종 추기경의 살가운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런 고인과의 만남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추기경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었다. 어느 해 성탄절 무렵인가에는 오전 오후에 걸쳐 몇 군데의 철거민촌과 사회복지시설들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 때마다 추기경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따뜻한 아버지’나 ‘인자한 할아버지’ 상 그것이었다. 철거민촌을 찾은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 MBC 스페셜    그런 김 추기경의 상에 흠집이 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5월 고인이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고 몇 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지 30년 만에 물러날 당시 이미 77세로 연로한데다 지병까지 있었던 김 추기경이었지만 은퇴 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누구 못지않은 권위를 누렸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추기경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던 필자의 눈에 추기경의 적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가 바로 이 때다. 물론 이전에도 추기경 주위에는 그를 흠집 내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때만큼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추기경이 지병 등으로 집무실을 벗어나 가난한 이들 가운데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줄어들자 고인의 주위는 이른바 ‘방귀깨나 뀌는’ 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의 육체만큼이나 정신도 어려움에 놓이게 됐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고인이 사랑하며 늘 관심을 기울이던 ‘가난’과 그 가난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멀어지면서 ‘성자’로서의 그의 삶에 흠집이 하나둘 늘어갔던 셈이다. 이미 김 추기경이 갔음에도 그의 적들은 지금도 활개를 치며 다른 대상을 찾아다니고 있다. 김 추기경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관심’이 사그라질 때 내면으로부터 자신의 적이 생겨나고 결국에는 그 적들에게 서서히 질식당하고 마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존재가 삶으로 보여준 진리라 더욱 시리게 다가온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49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몇 년 전 어느 공연장 대기실에서 있었던 풍경입니다. 출연진들이 각자 리허설을 끝내고 주최 측이 마련한 도시락을 저녁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공연전의 긴장감 때문에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는데 갑자기 옆방 대기실에서 큰소리가 나기 시작 했습니다. 내용인즉슨 다른 출연자들은 도시락을 다 줬는데 왜 우리는 안 주느냐. 왜 우리를 푸대접하느냐를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에는 외국에서 모셔온 대규모 예술단(A예술단이라고 해두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주최 측은 A예술단원 전체가 한꺼번에 식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한데 도시락 배달이 늦어지니 개인 출연자에게 먼저 드린 것뿐이라고 해명하고 A예술단을 홀대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술단을 인솔해온 분은 분이 덜 풀렸는지 이후 약 10여분이 넘게 큰소리로 항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뜩이나 공연 전에 먹는 도시락은 넘어가지도 않는데 그거 먼저 먹는다고 텃세 부린 꼴이 되었으니 다른 출연자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습니다. 내 옆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시던 J 선생이 한마디 하셨습니다. “에이그 ~~ 저 엽전들 조금 기다렸다 먹으면 되지 무신 대접을 받을라고 저 지랄이여? 쯧쯧”. J 선생은 무대에서 충청도 사투리로 “아줌마~ 희망한단 에 을마유~~~우?” 하시는 분인데 느릿하고 구수한 사투리조로 “에이 엽전들.....” 하니 웬 말이 그리도 정겨워 나름 심각한 상황에도 모두들 킥킥대고“넌 떠들어라 난 밥 먹는다”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엽전들” 이란 말은 내가 자란 동네에서는 지금도 참 많이 쓰는 용어입니다. 이 말은 전라도 사투리인 “거시기”처럼 사용되는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서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뭔가가 있는 사람. 혹은 집단에 두루 적용 됩니다. 이를테면 작은 교통사고인데도 너무 가해자가 물어내기 버거운 배상금을 요구한 사람. 그저 섭섭하다 한마디 하고 웃고 넘어갈 일을 동네방네 시끄럽게 싸움 거는 사람. 조금 양보하면 될 것을 뭔 영화를 보겠다고 바득바득 우겨서 꼭 상대방을 이기고야 마는 사람. 우리 동네에서는 다 “에그 저 엽전~~” 하는 비아냥을 들어야 합니다. 평소에는 소심하기 이를 데 없구만 술만 먹으면 마누라 패는 사람한테도, 마을사정을 x도 모르는 면서기가 와서 이래라 저래라 왜 내말 안 듣냐 언성을 높일 때도 다 엽전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가 하면 좀 높아 보이는 치들에게는 오금 못 펴고 살살 기는 사람들에게도 이 표현은 적용 됩니다. 주로 마을 상갓집에 국회의원 후보가 오면(실제로 국회의원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일일이 악수시키면서 보좌관인양 행세하는 사람, 군수가 보낸 근조(謹弔)깃발을 내가 얘기해서 갖고 왔소 하는 따위의 공치사를 하는 사람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엽전들”이란 말에는 “허삼관 매혈기”의 “자라 대가리”라는 욕처럼 찌질 하고 궁상맞고 못난 것들이나 “완장” 에 나오는 저수지 관리인 종술이 처럼 서푼짜리 벼슬을 조자룡의 헌 창 인양 휘두르는 어리석은 무리들, 또는 회장님 방귀소리에 화장지 미리 갖다 바치는 그야말로 알아서 척척 기어주는 딸랑딸랑 잔챙이 나리들의 능글맞은 웃음 까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주 올드한 코미디 마니아 이셨던 분들은 배추머리 김병조 선생의 유행어를 기억 하실 겁니다. “나가 놀아라~~아아아”. 실제로 우리 동네에서 엽전소리들은 사람은 그 버릇 고쳐질 때까지 거의 나가놀아야 합니다. 동네사람들이 별 상대를 안 해주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공동체가 지녀야할 가치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엽전”이란 굴레로 경고를 함으로써 자신의 오류를 바로잡도록 하는 것입니다.   4.29 국회의원 재선거를 앞둔 22일 오전 울산시 북구 명촌동에서 한 유권자가 선거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요즘에 “나가 놀아”야 할 사람들 참 많습니다. 찰랑 찰랑대는 엽전들 소리가 안 들리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칼리 쥐 오브 블루하우스, 스프 구락부에 계신 분들 얘기는 하도 지겨워서 이젠 말하기도 싫습니다. 4월 29일엔 국회의원 재선거가 열립니다. 다른 곳은 관심을 놓은 지가 오래인데 유독 울산 북구 상황은 무척 궁금해집니다. 조승수 후보와 김창현 후보가 각각 진보의 기치를 들고 표심을 잡고 있습니다. 진보 단일화가 안 되면 당연히 스프 구락부에서 국자하나 들고 딸랑대실 분이 당선 되실 겁니다. 갖가지 방안으로 단일화를 시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선거 끝나고 나는 그 분들께 “엽전들... 니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니미럴~~”하는 자괴감 섞인 독백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염소새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서로 대가리 디밀고 버티다가 결국 둘 다 개울에 빠지는 요런 부류의 인간형이 우리 동네 “엽전들”의 최고수이기 때문입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66 | 추천: 0
이재상/ CBS PD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인 PSI 참여문제가 논란이다. 국제사회는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채택함으로써 북한의 행동을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그리고 2006년 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 포함된 제재방안의 이행도 밀어붙일 태세다. 우리 정부도 ‘때는 이 때다’를 외치면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인 PSI의 전면 참여를 선언했다. PSI 전면참여를 통해 북한과의 대립을 공식화 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공조강화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PSI 참여문제는 뜨거운 감자라서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때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다. 남-북간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고 PSI가 아니더라도 남북해운합의서가 있기 때문에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북한선박에 대해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이런 논란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PSI는 국제적 규범이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 북한 로켓발사와는 별개로 검토해오던 사안이란 입장이다. 또한 PSI가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이 괜히 긴장하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북한이 PSI 참여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마당에 이번 조치는 강경일변도로만 치닫던 남북관계에서 마지막 고삐마저 놓아버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키리졸브 훈련기간 동안 개성공단 통행중단 조치가 취해졌듯 이번 PSI 참여로 인해 남북간 경협도 더 경색되고 무력충돌의 가능성도 더 높아졌다. 이런 긴장고조는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란 건 분명하다.       이번 참여를 보면, 정부가 군사충돌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굉장히 강경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무기력함과 자포자기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남-북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위기를 증폭시키기 보다는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껏 정부의 대북정책은 기다리는 전략과 강경대응 외에는 보여준 것이 없다. 대화의 기술이나 전략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이고, 이미 꽉 막힐 대로 막힌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셈이다. 747공약이 실질적 알맹이가 없는 빈 공약이었듯 비핵개방 3000도 거기에 버금가는 깡통계좌로 전락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또한, 미국과의 공조강화가 남북관계의 해법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유추가능하다. 북한은 안보리 의장성명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6자회담을 거부하고 그동안 진행해온 핵불능화조치도 다시 되돌리고 폐연료봉 재처리에 돌입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경수로 건설도 검토하겠단 카드도 꺼내들었다. 예상보다 강경한 반발이다. 여기엔 북미 직접대화로 가자는 메시지가 강하게 들어있다. 하지만 북미대화는 상당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북미대화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남북관계가 복원될 것이란 기대는 우리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상당한 비용과 대가가 요구될 것이다. 결국 PSI 전면참여가 북한에 강경대응해서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국제사회와 공조한다는 명분을 얻을지 몰라도 실리와 실용은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이상 고온으로 때 이른 여름이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남-북간에는 봄은 고사하고 여전히 기나긴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에는 언제쯤이나 ‘실용’의 봄이 찾아올까.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22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장자연 사건은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종합세트처럼 보인다.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의 상층부, 그 중에서도 남성 권력 집단이 가진 오래 된 부도덕함이다. 사실 권력자들이 연예계의 젊은 여인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 저 유명한 정인숙 사건까지 가지 않더라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가 젊은 여성 연예인들의 시중을 받던 자리에서 최후를 맞았던 역사를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긴 그 사이 접대를 받는 주체가 정치권력에서 자본 권력과 언론 권력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심장하다. 장자연 사건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연예계, 혹은 연예산업이 엄청나게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체가 늘고 연예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고 하지만 그 바닥에서 스타로 뜨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연예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 까닭이다. 왜 그런가.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와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뀐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신분 상승의 통로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 사회는 매우 급격한 성장과 변화를 겪었고 그 와중에 사회적 유동성이 비교적 높았던 사회였다. 이를테면 시골의 가난한 수재가 이른바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고시에 패스해 팔자를 고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일들을 보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한동안 신분 상승의 지렛대 역할을 하던 교육 체계가 철저히 돈 놓고 돈 먹는 머니 게임으로 변질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더 이상 흔하게 생기지 않는다. 부르주아의 자식이 부르주아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은 노동자가 되는 사회에서 연예계는 몇 남지 않은, 아직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는, 신분 상승의 공간이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연예인을 꿈꾸며 그 바닥에 몰려드는 데에는 이런 구조적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관문은 좁고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많을 때 관문을 쥔 수문장들의 권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수문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 방송제작자, 연예제작자, 언론사 관계자, 대형 기획사 등의 힘은 커진다. 게다가 어찌어찌하여 용케 연예계에 입문한다 해도 치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니 그 바닥 권력자들이 가진 힘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연예계 노비문서니 PR비니, 성접대니 하는 사건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고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러그러한 직업의 사람들인 것도 그러하다. 이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함은 물론이고 자신이 가진 권력의 우산 아래 여배우의 인권을 유린한 부도덕한 자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려지고 단죄되어야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또 이참에 연예계의 불합리한 관행과 부조리가 고쳐져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지 연예계의 좁은 울타리에서 벌어지는 문제 정도로 보거나 일 부 부도덕한 개인들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 그와 함께 이 사건 뒤에 깔려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쟁 만능주의, 승리 지상주의, 게다가 승자 독식의 구조는 비단 연예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25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