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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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주민등록법 제37조 (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 제10조제2항을 위반한 자나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자 국민의 정부 시절 2002년 장상 당시 국무총리 내정자, 장대환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참여 정부 때에는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 최영도 전 인권위원장이 자신 또는 부인의 위장전입 의혹으로 자진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 소속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자녀 징병검사), 현인택 통일부장관(자녀 교육), 이만의 환경부장관(자녀 교육), 김준규 검찰총장(자녀 교육), 오세빈 선관위원 후보자(부동산),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부동산) 등 현 정부 국무위원과 일부 장관급 공직자,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이 있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장남의 고교 배정과 관련해 위장전입 사실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위키백과, 위장전입 사례 중) MB정부의 2010. 8. 8. 개각에 장관 등의 후보로 내정된 자들 중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는 위장전입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고, 심지어 위장전입 사실을 스스로 시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MB정부의 입장은 인사청문회 강행과 돌파로 정리된 듯하다. 범법행위를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자를 정부의 최고위직에 임명하겠다는 MB도 그렇고, 스스로 범법행위를 했다고 시인하면서도 최고위직에 임명되겠다고 버티는 후보자도 그렇고, 참으로 뻔뻔하다. 능력이 있으면 범법자도 장관이 되고, 국세청장이 되고, 경찰청장도 된다. 하긴 MB는 전과가 14가지나 되지만 대통령이 되었으니 위장전입 정도는 범죄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에게 틈만 나면 준법을 강조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모순적인 행태다. 표리부동하다. 조용히 나머지 임기가 지나가기를 바랐지만 그 뻔뻔함에는 속이 메스껍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월 8일 오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등 신임 개각인사를 단행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MB정부의 8.8 개각은 도대체 어떤 심리에서 이루어진 걸까 궁금하다. 밥상 위의 먹거리에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물을 올려놓았고, 22조원이 넘는 혈세를 땅 파는 데만 사용하고, 자신의 고향 인맥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음에도 방치하고, 생존을 외치는 철거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실업자는 늘어만 가고, 국가와 가계 공히 부채만 늘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고, 보궐선거에서도 승리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만해 보인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지나친 감이 있다. 8.8 개각이 MB정부의 오만으로 읽히는 것은 내가 뭐를 해도 국민은 나를 지지할 거라는 생각이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국민을 세금 내는 봉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과연 국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외교, 안보, 국방에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그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은커녕 여전히 중용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사마귀가 달려오는 수레 앞에 두 팔을 들고 수레를 멈춰 세우려 한다. 사마귀는 수레에 깔려 들어간 후에나 자신이 무슨 짓을 했던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철저하게 오만한 태도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려 하는 MB정부의 태도가 수레 앞의 사마귀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마귀는 자신이 깔린 뒤에 무슨 짓을 했던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오만함에 더해 뻔뻔함으로 무장한 MB정부를 보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후에도 과연 자신이 무슨 짓을 했던 것인지 깨달을 수는 있을까 싶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20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이 많은 연예인들이 TV 토크쇼에 나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가운데 “예전에는 연예인이 딴따라로 불리며 천대받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는 게 있다. 이는 대체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배우나 가수 등 연예 종사자의 사회적 지위는 오래 동안 매우 낮았으니까.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달라진 건 대체로 한국 사회가 산업화되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연예산업의 규모가 커진 이후다. 지금은 누구나 알듯 연예인이 한국 청소년들에게 가장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다. 부모들도 더 이상 연예인이 되겠다는 자식을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떡하든 길을 열어주고 도와주고 싶어 한다. 연예인으로서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거나 화려하기만한 게 아니라는 게 어지간히 알려진 터이지만 그에 대한 젊은 세대의 동경이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연예산업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는 대학 학과들이 늘 최고의 경쟁률을 보여주는 게 그 증거라면 증거일 수 있다. 연예인의 사회적 위치는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스타로서의 연예인이라는 위치가 있다. 스타는 대중의 숭배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늘 대중의 타자로 존재한다. 대중은 연예인 스타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할 뿐 그들을 정당한 시민권적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연예인도 남들처럼 똑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똑같은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스타는 대중의 숭배의 대상이 됨으로써 막강한 권력을 누리지만 동시에 대중의 탐욕스런 시선 앞에 무기력하게 발가벗겨지는 타자일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과잉 노출된 존재이다. 과잉 노출은 과잉 소외를 낳을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넘어갈 문제도 그게 연예인이라면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는 게 대중의 시선이다. 바로 이런 과잉 소외가 연예인을 쉽게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두 번째는 상품으로서의 연예인이라는 위치가 있다. 문화산업의 입장에서 연예인은 가장 손쉬운 상품이다. TV방송이 왜 연예인들로 가득 차 있는가? 그들이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이른바 연예인 X파일 사건은 연예인을 인간적, 직업적 주체가 아니라 상품으로 보는 문화산업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 스스로가 자신을 상품으로 보는 시각을 내면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기보다는 상품으로 포장된 이미지만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게 그런 거다. 연예인이 상품으로만 존재하게 될 때 그 상품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그것을 곧 그 인간적 가치가 소멸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연예 저널리즘이 온통 황색지적인 스캔들과 가십으로 점철되는 것은 단지 기자 개인의 인식 때문이 아니라 연예인을 상품으로만 간주하는 사회적 시선의 표현이다. 세 번째는 놀이 대상으로서의 연예인이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연예인은 인터넷 상의 가장 손쉽고 재미있는 놀이 대상이 되었다. 치고 빠지기 쉬운 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즌들은 아주 쉽게 특정 인물을 스타로 만들기도 하고 또한 아주 쉽게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한다. 수많은 팬카페와 안티사이트는 일종의 게임이자 놀이의 장이다. 연예인과 대중은 기본적으로 익명적 관계이고 네티즌은 자신의 개인적 행위가 연예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부담 없이 가지고 놀 대상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연예인들의 인권은 사정없이 침해되곤 한다. KBS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7월19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제목의 KBS 내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네 번째는 지식인, 혹은 예술가로서의 연예인이라는 위치다. 사실 연예인은 어떤 식으로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발언하는 예술인이며 지식인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상품화시키는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지식인이나 예술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스스로를 상품이나 스타로서보다 자의식을 가진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연예인이야말로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를 올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사람들이다. 매카시즘 시기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험프리 보가트, 월남전 시기 반전 운동에 앞장섰던 제인 폰다, 밥 딜런, 존 레논,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정부를 비판하며 반전의 목소리를 높였던 숀팬이나 마돈나 같은 스타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또렷한 주관을 드러내고 분명한 자기 담론을 가진 지식인의 풍모를 보여주는 스타들이 많아질수록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연예인의 사회적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진다. 90년대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자기 담론을 가진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과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것은 단지 연예인이 돈 많이 버는 직업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연예인들에 의해 연예인의 사회적 역할이 부각되고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MB정권은 자기 담론을 가지고 나름의 주관과 지성을 보여주는 연예인들을 하나 둘 밖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윤도현, 김제동, 김미화 같은 연예인들에게 닥친 일들을 보면 연예인들에 대한 권력자들의 시각이 드러난다. 그들은 연예인들이 그저 타자로서, 상품으로서, 놀이대상으로서만 존재하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면 곧 눈 밖에 나 프로그램을 잃고 고소고발을 당해 곤욕을 치룬다. 그렇게 지식인으로서의 연예인들을 제거하고 나면 결국 연예문화는 온통 상품과 놀이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 대중문화 전반에서 엄청난 후퇴를 의미할 뿐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76 | 추천: 0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학자의 책무 중 하나는 현실 법률문제에 대해 내려지는 법원의 판결을 살펴보고 비판하는 일입니다. 그 목적은 좀 더 나은 판례가 정립되도록 하기 위함이고, 따라서 법학자가 구체적 판결에 관해 칭찬하는 것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 전 대법원이 비정규 근로자에 관해 좋은 판결을 선고한 것과 관련하여 칭찬을 하려고 합니다. 같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 근로자 사이에서조차 임금이나 복지·고용 등에서 차별이 있다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비정규 근로자로 자신의 직업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몇 년을 소비하곤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 근로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인 임금액이 낮아지고 그 지급 기간조차 짧아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임금 외에 특별한 사회보장적 기반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이는 노후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런 차별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입니다. 1990년대 이후 기업들은 노동력에 대한 보상을 줄였고, 정규직 인원을 삭감하고 비정규 근로를 확대하였습니다.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이 확대된 1차적 원인은 기업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이 이런 사회적 양극화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권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 정부는 인원을 삭감하는 구조조정 방식을 적극 권장하였고, 그 스스로도 공공 부문 근로자의 약 30%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모범을 보였었습니다. 법원 역시 기업의 구조조정 정책에 동조하고 지원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990년대 초 이후 약 20년 동안 법원은 비정규 근로자를 사법적 보호 범위에서 배제하는 판례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당시 법원의 모습을 보면서 이따금씩 “법리(法理)라는 안대(眼帶)를 스스로 끼고선 현실 문제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 시기”였다고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다행히 2008년 이후부터 비정규 근로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른바 “사내하청 대법원 판결 3부작”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근로자 관련 판결에서 더욱 분명하게 비정규 근로자를 보호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8두4367 판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사내하청 근로자가 자동 흐름 방식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점, 본사가 내려준 작업지시서에 따르는 점, 본사가 근로자의 근태를 파악하는 점 등 고용의 형식보다 실질을 관찰하여 현대자동차가 이들에 대한 노무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한 노무관리를 실질적으로 행한 이상 이들과 현대자동차 사이에는, 노동법적 보호가 배제되는 도급 관계가 아니라, 파견근로 관계가 성립하고 사내하청 근로자들은 파견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판결의 의미를 평가하자면, 대법원은 쓰고 있던 안대(眼帶)를 풀고 스스로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근로자 관련 판결에서 비정규 근로자를 보호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얼마 전 저는 외교부의 고위층이 젊은이들의 투표 행태를 비난하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야당에 대한 투표를 친북행위로 평가한 그 단순함을 별론으로 한다면, 그 분의 말씀이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투쟁을 통해 획득하고 지켜져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분은, 민주적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대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즉 시민이 자신의 민주적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전력을 다할 때 민주주의는 지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제도가 건강한 시민을 육성하고 보호하여야 합니다. 이 점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가 그와 같은, 좀 더 나은, 민주적 체제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비정규 근로자 등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 자들에 대한 보호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정부와 법원, 정당 그리고 시민사회가 계속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의미 있는 개선 방안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이 자신의 소질에 맞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하고 노후를 보장받는 좋은 사회, 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그 체제를 지키려고 하는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참고) “사내하청 대법원 판결 3부작” - 현대미포조선 사건(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다75088 판결), 예스코 사건(대법원 2009. 9. 18. 선고 2007두22320 판결), 현대중공업 사건(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93 | 추천: 1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7월 13일과 14일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시되었다. 소위 일제고사라 불리는 평가이다. 알다시피 일제고사는 전국에 있는 대상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봐야했던 시험이다. 교육당국은 이를 통해 아이들의 학력을 가늠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겉으로 보아선 그럴듯한 정책처럼 보인다. 그리고 학부모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그 정당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왔다. 그러나 일제고사는 지난번에 각종 비리로 구속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사교육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행한 여러 정책 중의 하나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국제중, 특목고, 자사고의 확대를 통해 사교육 시장의 활성화에만 기여했고, 교육 관료들의 매관매직을 추동한 핵심인물이며, ‘똑똑한 한사람이 100만인을 먹여 살린다.’는 소수의 우수한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부르짖었고, 교장의 자율권 강화를 통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비리교장들을 양산해낸 인물이다. 그가 첫 직선 교육감으로 당선되기 위해, 사설학원업체로부터 거액의 선거비용을 차입한 이유가 일제고사의 시행과도 연관이 있고 그로 인해 의도한 목적이 달성된 부분도 상당부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지역과 계층을 고려하여 표집의 형태로 시행하던 시험을 전집으로 시행함으로써 수많은 문제를 양산했다. 어떤 정책이 모두 좋은 점만 있는 것도, 또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교육에 대한 관점이 무엇인가와 나타난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하냐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집으로 시행하면서 전국의 학교와 학생이 서열화 되었고, 이를 통해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각종 파행들이 줄을 이었으며, 소위 평균을 깎아먹는 학생들의 인권도 무참하게 짓밟혔고, 문제풀이식 시험에 좋은 성적을 내기위해 전국의 수많은 아이들이 ‘달빛 학교’와 같은 아름다운 이름을 내건 심야 야간 보충지도를 받게 하고 있다. 교육과정이란 무엇이고 학력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학교란 하드웨어에서 교육과정이란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이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여 독립된 주체로 살아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길러내는 행위이다. 소위 우수한 교육전문가들이 만든 교육과정 속에서 개개인이 가지게 된 실력을 학력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학력을 단순히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험을 봄으로써 측정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학력은 가르친 내용을 가지고 얼마든지 다양하게 측정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전국에서 몇 등을 하는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리고 일제고사가 그 궁금증을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해결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몇 등이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교육과정의 내용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2009년 학력평가를 위해 사용한 예산이 334억원이라고 한다. 반면에 학습부진아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은 같은 해에 243억 원이고... 여기서 일제고사가 과연 무엇을 위한 평가인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기 아이들의 등수에 집착(?)하는 학부모의 심리를 이용하여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한 술수에 넘어가지 말도록 하자. 알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 존재하고 더구나 자라는 과정에 놓인 학생들이 기준이 되지도 못하는 문제풀이 시험의 결과로 알게 된 전국단위 등수는 미리부터 그 아이를 재단하고 속단하는 잣대로 작동하고 있고 정상적인 교육과정의 파행을 몰고 와 공교육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치르는 학생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끝으로 우리 모두 교육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그들이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면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각자가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 학교는 일제고사와 같은 시험을 통해 벽돌공장에서 찍어낸 벽돌과 같이 똑같은 아이를 만드는 장이 되라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숨막혀하고 학교를 재미없다고 하며 다니기 싫어하는 것이다. 이런 학교 교육에서 세계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관련하여 나는 두 가지 점을 제안하고 싶다. 일단 학교를 다양한 교육을 이행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야한다.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특기와 욕구 등을 찾아내고 발전시키기 위한 장이 학교가 되어야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모두 사교육에 일임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물론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면 방법은 반드시 찾게 될 것이라고 본다. 초등학교 체육교과서에 수영을 필수교육이라고 하면서 거의 모든 학교에는 수영장이 없으며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에 대해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 두 번째는 문제해결을 근본적인 것에서 접근해 보았으면 한다. 사회에 나가면 어차피 경쟁을 해야하니 어려서부터 경쟁에 몰입하도록 하자는 생각을 버리면 어떨까?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의적으로 경쟁을 선택할 수 있는 시점까지는 학교교육을 협력적 교육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교육과정이든 교육내용이든 경쟁교육을 바꿔나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꿔 나가 우수한 소수에 방점을 둔 교육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학교로, 그런 교육의 형태로 전환시켜 나갔으면 한다. 경쟁의 구조 속에서 우리 모두가 일등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미수다’라고 일컬어지는 프로그램에 어느 출연자가 미국의 교육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일등 옆에 교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 아이 중 가장 못하는 아이 옆에 교사가 있을 수 있는 학교교육을 만들었으면 한다. 모든 문제해결의 단초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그것이 문제라고 인식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천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01 | 추천: 1
하느님, 드디어 소원을 들어주시다 - 전 ‘펭귄 아빠’의 고백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신이시여! 제발 이 지긋지긋한 징크스 좀 깨주세요.” 누구에게나 남모를(또는 말하기도 거시기한) 징크스가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징크스가 있으니, 선거권을 갖게 된 이후로 내가 찍은 후보 가운데 한 사람도 당선된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하다못해(이렇게 얘기하면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시의원이나 구의원까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런 ‘역사’ 속에서 살아온 내게 지난 6.2 지방선거는 또 한 번의 중대한 고비였다. 이번에야말로 내 삶에 따라붙은 지긋지긋한 징크스 가운데 하나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나선 사람들 가운데 친환경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건 이가 있었다. 아들 넷, 그 머릿수만큼이나 벅찬 교육의 무게에 눌려있던 내게 그의 공약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당시 신문이나 방송의 사회면을 장식하던 ‘기러기 아빠’들의 뒤를 따라 ‘펭귄 아빠’의 삶을 각오하고 아이들을 외국으로 내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 나에게 무상급식이라는 공약은 교육현장에서는 물론 보통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일로 다가왔다. 무상급식은 자라나는 학생들이 한 끼의 식사를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드러나는 현실 외에도 우리 사회에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고 이를 풀어가는 새로운 양식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노둣돌을 놓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또 다시 뇌리 한 구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억의 한 조각. ‘이번에도 내가 찍어서 안 되면 어쩌지….’ 무상급식이라는 공약이 여기저기서 공격당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의 고민은 더 깊어만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의 고민도 덩달아 커졌던 모양이다. 당장 2011학년도부터 무상급식이 이뤄지면 산술적으로 우리집은 매달 수십만 원에 이르는 급식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경기 과천시 관문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급우들에게 점심 배식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투표 당일 우리 부부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마음이었다. ‘하느님, 제발 이번에는…. 제 마음 아시죠.^^;;’ 그리고 이튿날 나는 20년 넘게 나를 따라다녔던 징크스가 깨어졌음을 확인하고 모두에게 감사했다. 기러기 아빠들의 쓸쓸한 죽음에 대한 기억과 펭귄 아빠를 향한 결연한 각오, 세상을 향한 의구심 등이 뭉쳐 몸 속 어딘가에 오래도록 쌓여있던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족쇄와도 같던 징크스를 벗어난 상쾌함이란…. 교육이, 자라나는 아이들은 물론 우리 모두의 미래를 가꾸는 일이라 여기며 세상의 모든 부모들처럼 교육문제에 노심초사해왔던 우리 부부에게 지난 6월의 기억은 가슴 벅찬 현실이자 역사의 새 장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부모의 느낌과 감동이 조금은 전이된 모양이다. 당장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아니지만 바뀔 수 있고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변화를 바랐던 모두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갈 책임은 그 희망에 표를 던진 우리 모두의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끝으로 나의 오랜 징크스를 깰 수 있도록 올바른 선택에 동참한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이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93 | 추천: 1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아직 외국생활이 익숙하지 않다. 특히 한국어와 문법이 비슷하다 하여 쉬우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일본어도 외국어였다. 그나마 발음은 괜찮게 들리는지 준비한 인사말 몇 마디에 모두들 감당하기 힘든 주제로 대화를 시도해 온다. 특히 일본인들에게는 천안함 사건이 여전히 큰 관심거리이다. 물론 대부분 일본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북한의 도발임이 분명하고 전쟁이 곧 일어날듯 한데 일본에게도 심각한 일이라며 호들갑 떠는 내용이다. 그것을 한국인인 나에게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대략의 내용만 접한 것으로 아는 척 하기도 그렇거니와 내 일본어 수준으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도 어려워 별 일 아니라 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의도적인 도발임이 분명한 사건을 겪고서도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느냐고 되물어 오기에, 결국 몇 가지 의문을 이야기하며 좀 더 기다려 볼 일이라 설명하는 중 조금 흥분해서 오히려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로 골머리 앓고 있는 일본과 미국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반문했다. 내 딴에 상식적이라 생각되는 수준에서 가진 의문이었는데 대부분 깜짝 놀란다. 어떻게 매스컴에서 보도하는 내용 이면의 것을 내다 볼 수 있느냐며 대단하다고 한다. 이들이 어찌 알까. 한 두 해가 아니라 수십 년간 당하면서 살아 온 끝에 갖게 된 지혜라는 것을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지혜라 자부하기에는 뭔가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이 정상일까? 주변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사는 것과 어떤 소식이든 들으면서 사실일지부터 고민하며 살아온 우리의 삶. 정상 비정상의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안타까운 일임이 분명하다. 물론 진실을 모른 채 살고 있는 이들도 안쓰럽지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로 구성된 '천안함 조사결과 검증위원회'의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가운데)이 지난 6월 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검증 없이 보도한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늑대소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양치는 거짓말쟁이 소년 이야기가 있다. 몇 번 씩이나 마을 사람들을 속인 끝에 실제 늑대가 나타났지만 결국 아무도 사실이라 믿어주지 않았던 이야기. 물론 거짓말 한 소년 탓이라 여기면 그만일 테지만, 결과를 알고 난 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이 오죽 복잡했을까.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품거나 속은 사람의 마음이 더 혼란스럽고 아프다는 사실을 저들은 알까. 여하튼 그 뒤로 국내 소식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음모론 유포 혐의로 몇몇 사람이 입건까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다 보니 ‘지나치게 사건 진행 간의 개연성에 집착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간과된 가정들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근거로 삼는’ 것을 음모론이라고 한단다. 어느 심리학자는 음모론이 ‘자기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채택하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리는 심리행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여서 사건의 해석이 쉽지 않은 경우 단순명쾌한 음모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누가 음모론자인지 명확하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간과했던 가정을 맹신하며 근거로 삼고 있는지, 누가 자기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고집하는지, 누가 보통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서둘러 단순명쾌한 답을 내놓았는지 분명하지 않은가. 온갖 어이없는 음모론으로 나에게 꽤나 구박받았던 후배에게 오랜만에 연락해보아야겠다. 그 친구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언제나 황당무계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 친구의 의견이 궁금해지다니 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누구 때문일까?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신부로 일본 릿교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91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삼년 이상 두문불출하며 군위에 있는 시골 선방에서 용맹 정진하던 문수스님이 ‘사대강 사업을 철회하고 서민 정책을 펼치라’는 글을 남기고는 소신공양했다. 제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치는 일을 소신공양이라 한다. 부처 앞에 바친다지만, 제 몸을 태울 정도의 행위는 실상 부처에 가까운 행위이다. 제 몸 하나 보전하느라 끙끙대는 것이 중생의 삶인데, 그 생물학적 본성마저, 그것도 개인적 이유가 아닌, 뭇 생명과 가난한 이웃을 위해 훌쩍 뛰어넘었으니, 필경 부처의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들 어쩌랴. 스님이라는 ‘계란’ 하나가 터져나가도 끄떡없을 ‘바위’ 같은 현실을 생각하면 암울할 뿐이다.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에 충격을 받고 이번엔 불교환경연대 대표이자 화계사 주지이신 수경스님이 주지, 승적 등 모든 ‘사회적’ 신분을 내어놓고 잠적하는 일이 벌어졌다. 환경운동의 상징적 존재나 다름없는 수경스님은 나도 좀 면식이 있던 분이라서인지 맘이 더 애잔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스님께 말씀듣기를 청할 때마다 무언가 남다른 존재인 냥 받들어지는 상황을 버거워하셨다. 자격도 없는데 승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대접을 받으니 부담스럽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언젠가 이것저것 죄다 내려놓아야겠다며, 환계(還戒)의 가능성을 몇 차례 비추곤 하셨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진솔한 고백을 할 줄 하는 스님의 겸손하고 솔직한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참 괜찮은 분이라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었다. 그러던 분이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편지 한 장을 가까운 이들에게 남겨 놓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평소의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소신을 일단 실천으로 옮긴 셈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스님의 편지를 한 번 더 인용해본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 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스님의 번민이야 그분대로 있었을 테니, 정말 무엇 때문에 그리도 ‘번다하셨는지’ 외부자로서는 다 알 길이 없다. 그래도 나의 짧은 경험과 그분의 인격에 비추건대 이해가 안 될 것도, 공감이 안 될 것도 없었다. 다만, 번다했던 그대로, 번민을 적당히 숨기고 살던 대로 살지 않고,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에서 나 같은 이와는 다른 수준이 읽혔다. “아버지,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코복음 14,36)라고 기도했던 예수가 생각나기도 했다. 수경 스님이 지난 6월 5일 저녁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문수 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제'에서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특히 마지막 말이 내 마음에 남았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보기에 따라, 집착 없이 자연스런 삶 그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살겠다는 다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소 섬뜩한 상상을 하노라면 자살의 가능성마저 담긴 말임 직도 하고, 하필 ‘바위’ 옆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듣노라면, 바위에서 투신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면서도 ‘죽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죽고 ‘싶다’는 고백은 여전히 삶에 대한 집착을 떠나보내지 못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선승의 세계관을 물씬 담은 고백이기도 할뿐 더러, “대접받는 중노릇은 하지 않으리라”는 일관된 고민은 스님이야말로 제대로 된 수행자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수경스님은 물론이거니와 문수스님도 수행자로서의 첫 길에 들어섰다가, 한 번 더 길을 떠난 분들이다. 한분은 죽음으로 생멸의 길을 떠났고, 다른 분은 모든 신분과 권력을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지면서 생멸의 길을 떠났다. 그렇게 한 분은 무여열반(사후 열반)에의 길에 들어섰고, 다른 분은 유여열반(번뇌는 끊었으나 몸은 남아있는 열반)에의 길에 들어섰다. 종교 공부하면서 느끼던 바이지만, 사람이 제대로 되려면 두 번은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두 분 스님이 시대적 고민 속에서 두 번은 거듭나는 모습을 참으로 실감나게 보여주신 듯하다. 나도 물론이거니와, 이 땅의 수천만 종교인들은 과연 두 번 거듭날 수 있을까. 아니 한 번이라도 길을 제대로 떠나볼 수 있을까. 이찬수 위원은 현재 종교문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208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며칠 전 조용필의 콘서트를 보는 기회가 있었다. 20대부터 그의 노래를 들어오고 열성팬은 아니더라도 노래방에 가면 꼭 그의 곡으로 마무리를 하곤 한다. 약 5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잠실주경기장에 있었고, 2층의 무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비교적 좋은 자리에 앉았다. 가능한 말을 줄이고 노래를 많이, 열성적으로 부르는 그의 프로정신은 훌륭했다. 그런데 객석에 앉아있는 동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조용필은 동전만한 모습으로 보이고 그가 부르는 노래는 가사조차 잘 전달되지 못했다. 적지 않은 가격을 지불하고 콘서트에 왔지만 음악은 사라지고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면 따라 부르면서 그 시절의 감정을 찾으며 나만의 만족을 느끼는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2시간여 동안 피곤함을 넘어 화가 났다. 물론 그런 것까지 감수하면서 콘서트에 와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콘서트라는 목적에 맞지 않게, 보이지 않는 가수와 들리지 않는 노래가 있는 곳에, 소통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있었던 불쾌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요즈음 학교의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모든 학생의 학력향상이라는 교육기관의 목표아래 학생과 교사는 없었다. 학력향상과 학습부진아에 대해 학교장이 책임지도 하도록 하며,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학교장 학교경영능력평가와 성과급에 반영함으로써 교사들에게 성적경쟁을 조장하고 있다. 일제고사 성적이 공개돼 개인별, 학급별, 학교별, 지역별로 서열화가 가능한 상황에서 교육청의 묵인 아래 일선 학교들이 도 넘은 성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7월에 치러지는 일제고사를 앞두고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초등학교들이 '0교시 수업'을 실시하고 엎드려뻗쳐 등의 체벌을 가하며 성적 올리기에 몰두하는 등 교육현장이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뉴스는 이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학력은 단시간 안에 강압적으로 향상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 속도에 맞게 천천히 기다리면서 격려하고 보듬어 키워가야만 된다. 그리고 교사는 이들이 아름다운 나무로 성장하도록 땅이 되며 거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서열을 위한 교육이 아닌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이 언제쯤 가능할까? 그러기에 이번에 당선된 교육감에게 핀란드 교육의 희망을 품어 보고 싶다. ‘북해를 바라보며 그는 울었다’ - 도종환 차고 푸른 수평선을 끌고 바람과 물결의 경계를 바라보며 그는 울었다 내일 학교 가는 날이라고 하면 신난다고 소리치는 볼 붉은 꼬마 아이들을 바라보다 그의 눈동자에는 북해의 물방울이 날아와 고이곤 했다 푹 빠져서 놀 줄 알아야 집중력이 생긴다고 믿어 몇 시간씩 놀아도 부모가 조용히 해주고 바람과 눈 속에서 실컷 놀고 들어와야 차분한 아이가 된다고 믿는 부모들을 바라보며 배우고 싶은 내용을 자기들이 자유롭게 정하는데도 교실 가득한 생각의 나무를 보며 그는 피요르드처럼 희고 환하게 웃었다 아는 걸 다시배우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배우는 게 공부이며 열의의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므로 배워야할 목표도 책상마다 다르고 아이들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거나 늦으면 학습목표를 개인별로 다시 정하는 나라 변성기가 오기 전까지는 시험도 없고 잘했어, 아주 잘했어, 아주아주 잘했어 이 세 가지 평가밖에 없는 나라 친구는 내가 싸워 이겨야할 사람이 아니라 서로협력해서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할 멘토이고 경쟁은 내가 어제의 나하고 하는 거라고 믿는 나라 나라에서 아이가 뒤처지는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게 교육이 해야 할 가장 큰일이라 믿으며 공부하는 시간은 우리 절반도 안 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보며 그는 입꼬리 한쪽이 위로 올라가곤 했다 가르치는 일은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나랏돈으로 교육을 시켜주는 나라 청소년들에게 관련된 제도는 차돌맹이 같은 청소년들에게 꼭 물어보고 고치는 나라 여자아이는 활달하고 사내녀석들은 차분하며 인격적으로 만날 줄 아는 젊은이로 길러내는 어른들을 보며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학교가 작은 우주라고 믿는 부모와 머리칼에서 반짝이는 은빛이 눈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침내 그는 울었다 흐린 하늘이 그의 눈물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경계를 출렁이다가도 합의를 이루어낸 북해도 갈등이 진정된 짙푸른 바다는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가슴에도 진눈깨비에 젖고 있었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201 | 추천: 0
허윤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10여 년 동안 급증한 국제결혼은 대부분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간에 이루어지고 있다. 결혼이민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결혼이민여성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언어의 장벽, 문화 풍속의 이질감, 새로운 가족관계의 어려움을 모두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정의 아내요 어머니로서 살아가고 있을 이 여성들의 안정된 생활은 이 땅의 다문화가족의 안정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한 가정의 아내요 어머니인 여성의 행복이 곧 가족구성원 전체의 건강한 삶과 직결된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분히 이질감을 지니고 있는 다문화가족이 안정된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한국사회에서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 정보와 다양한 만남을 통해 다문화가족의 경제적, 문화적, 가족구성원간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 특히 결혼이민여성이 가지고 있는 생활의 다양한 부적응과 불안,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어려움을 조기에 해소하고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적지 않은 차별과 배타성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과 환대의 노력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좀더 체계적으로 다문화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정책이 이루어질 때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장에서 다문화가족들을 만나보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느꼈고, 법적 제도적 차별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한다. 특히 결혼이민여성들은 가족간의 갈등을 겪고 있음에도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지원체계에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갈등의 골은 가족해체의 위기를 맞기도 하는데, 이러한 부부생활, 경제생활 및 자녀양육, 취업 측면에서 일반가족보다 몇 배의 어려움을 경험함에도 사회적지원이 미비하여 가족 안정성 유지와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와 같이 다문화가족을 위한 사회적 안정망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 하에서 다문화가족의 증가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생산하고 가족해체를 가속화 시켜 우리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시급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2009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연구 p.28). 아무래도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 다문화가족과 결혼이민여성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취약계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회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가 해야 할 바람직한 본분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문화가족지원법(2008)을 제정하여 보건복지가족부, 법무부, 여성부가 공동으로 전국 규모의 ‘다문화가족실태조사연구’(2009)를 실시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다문화가족 실태를 조사 분석해서 정책수립에 필요한 기초 통계자료를 확보하고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는 데 있다. 즉, 다문화가족의 일반적인 특성 및 취업, 경제수준, 결혼생활 및 가족관계, 자녀양육, 건강 및 보건의료, 사회생활을 조사하여 다문화가족의 현황 및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또한 다문화가족의 교육지원 등의 복지욕구를 조사하여 다문화가족을 위한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2009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연구 p.29). 이 조사통계에서 의외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결혼이민자들의 생활만족도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비교적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결혼이민여성 57.0%, 결혼이민남성 53.8%). 또한 가족관계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가족관계별로 매우 만족하는 비율이 배우자 74.8%, 자녀 88.1%, 배우자의 부모관계 64.8%, 배우자의 형제자매관계 60.1%였음). 이는 전체 한국인의 가족관계 만족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배우자 65.7%, 자녀 72.7%, 배우자의 부모 52.4%, 배우자의 형제자매 43%-2008년 사회통계조사). 그런데 생활과 가족관계 만족도에 비해 다문화가족의 경제상태는 많이 낮았다. 월평균 가구소득은 100-200만원 미만이 38.4%로 가장 많았고, 100만원 미만도 21. 3%로 가구소득이 전반적으로 낮았다(2009년 한국의 전체 월 평균 가구소득은 332만 2천원이다). 고향의 전통 복장차림으로 공예품을 판매하는 이주여성들. 국제결혼의 증가로 다문화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렇다면 소득에 비해 가족구성원과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추정해 보는 것이지만, 첫째로 결혼이민여성들의 기대치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동안 정부의 다양한 다문화가족을 위한 정책과 사회 NGO단체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결혼이민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결혼이민여성들의 경우 대부분 가난을 벗어나고자 국내 입국이 손쉬운 국제결혼을 이용한다. 한국인 남성 역시 결혼중개업체에게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나이, 직업, 건강, 경제력과 같은 결혼의 중대한 요소들에 구애받지 않고 손쉽게 외국인 여성을 구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이용한다. 따라서 다문화가족의 경제력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성들에게 심각한 장애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가족 내 환대와 배려가 이 여성들의 삶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환대와 배려를 증진시킬 수 있는 법적인 보호장치가 미흡하나마 실시되고 있고, 갈등 해소의 장으로서 각종 상담프로그램들과 언어교육 및 문화교육 등을 NGO 단체들이 꾸준히 실시해 온 것이 큰 역할을 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앞으로도 정책적, 사회적 지원체계가 더욱 원활해진다면 다문화가족의 삶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한 가지 우려할 점은 가정해체(이혼과 별거)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혼별거 이유로는 성격차이 29.4%, 경제적 무능력 19.0%, 외도 13,2%, 학대와 폭력 12,9%, 심각한 정신장애 9.8%, 음주 및 도박 8.7%, 배우자 가족과의 갈등 7.0%등이었다. 특히 결혼이민여성만이 학대와 폭력을 이혼과 별거의 원인으로 들고 있어 배우자 또는 배우자의 가족과의 관계에서 학대와 폭력이 발생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해체는 결혼이민여성의 자존감을 떨어뜨려 한국생활의 적응을 어렵게 하고, 특히 자녀의 양육에 지대한 피해를 가져온다. 상담현장이나 보호시설에서 만나게 되는 이 여성들은 대부분 정신적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이들의 자활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다문화가족여성들보다 오히려 더 취약한 계층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아 사회의 불안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종교 NGO 단체들 중에는 이들 해체된 가정의 이주여성들의 생활보호와 자립을 돕는 활동을 점점 더 넓혀가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정책적으로 <폭력피해 이주여성 자활지원센터>를 운영하여 폭력피해 이주여성 및 동반자녀들에게 안정된 생활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직업훈련 등을 실시하여 스스로 사회인으로 자활할 수 있도록 추진 중에 있다. 이 자활센터의 운영을 통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주여성들과 그 자녀들이 새로운 삶의 희망으로 홀로서기가 가능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정책도 행사위주의 지원이 아닌 생활의 질을 높이는 교육과 안정된 정착을 위한 삶의 터전을 지원하는 쪽으로 확대 수립되고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생활이 행복하다는 이주여성들의 행복한 미소가 이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213 | 추천: 0
정 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모처럼 정신적 부담이 크지 않은 선거였다. 선거 때마다 ‘비판적 지지’, ‘사표(死票)’ 논란 때문에 평소 소신을 접고 ‘거악(巨惡)’의 출현을 막는데 나 역시 일조해야 하는지 고민했었는데 이번은 그렇지 않았다. 일찌감치 현역 시장은 저 멀리 달아났고, 후발 주자가 따라 잡는 것은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국내 대표적인 방송, 신문, 여론조사기관들은 입을 모아 20% 가까운 차이가 난다며 사실상 게임종료를 선언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찍더라도 별다른 부담감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오후 6시가 되어 방송3사 공동 출구조사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한 대 얻어맞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오차 범위 내 접전으로 조사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실제 개표결과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처음에는 현역 시장이 앞섰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표결과는 역전되었고, 박빙의 우세가 새벽 4시 20분 가까운 시간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다시 역전되었고 현역시장은 힘겹게 승리했다. 6·2 지방선거 KBS 개표방송 화면 사진 출처 - 이데일리 3.3%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의 책임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란은 촛불집회와 용산참사에서 느꼈던 생각과 겹치면서 나를 우울하게 했다. 국민 대다수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낸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된 촛불시위와 달리 용산참사는 극소수의 경제적 약자에 국한하는 문제인 것처럼 오인되었다. 하지만 용산참사 문제처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가 결국은 그 사회의 보편적인 권리 보장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다. 3.3%의 득표를 사표라고 간주하는 생각 속에는 용산참사에 대한 국민 다수의 소극적 입장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김은혜 대변인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나타난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더욱 국정에 매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는 청와대의 입장을 발표했다.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말 보다는 “국정에 매진하겠다”는 말에 무게가 느껴진다. 지금 방식대로 계속 국정에 매진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이제 곧 월드컵이다. 정부는 조금 마음 놓고 있을지 모르겠다. 뜨거웠던 촛불의 위력이 어느 순간 잦아들었듯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 속에 선거에서 표출된 성난 민심이 잠잠해 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월드컵 때마다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 중 하나가 복잡한 16강 진출 방정식이다. 자력으로 진출하기 힘들 때마다 누가 누구를 이겨주거나 비겨주어야 한다는 등의 계산이 횡행한다. 선거에서의 사표 논란 역시 일정 부분 16강 진출 방정식과 닮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파 후보의 책임을 거론하기 보다는 소수파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소망을 끌어내 자신을 지지해 준 국민들의 기대에 더욱 부응하는 것이 보다 확실한 승리방정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지방선거 후의 상황이 어느 순간 잠잠해진 촛불 후(後)의 리바이벌이 되지 않으려면 3.3%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20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