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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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대수는 ‘호치민’이라는 제목의 노래에서 사회주의 베트남 건국의 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을 이렇게 소개한다.(랩이니까 그냥 소리 내어 읽으면 된다. 단, 한대수 식의 경상남도 사투리로. 이 노래에서 멜로디는 후렴구-‘호치민 호치민 호치민’-가 전부이며, 괄호 안의 ‘아 그래요’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20대 여성의 평어체 대사다. ) “호치민에 대해서 말하자면 참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학자의 집안이고 불란서 점령 당시에  왜 서양세력이 자기 나라를 이렇게 장기간 동안 점령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또 워낙 문학가 집안이니까 여러 책을 보면서  연구를 하게 되죠    호치민 호치민 호치민    그래서 적을,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라라는  요런 명언이 있으니까 불어를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요)  그런데 불란서를 가야 되겠는데 유람선의 요리사 조수로 취직하게 됩니다  불란서에서 불란서 공산주의자들과 접촉이 이루어지고  또 거기에서 맑시즘을 배웠고  드디어 어떠한 계기에서 모스크바를 방문합니다 (아 그래요)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대학교에 입학해서  과연, 제국주의, 자본주의 요런 데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다가 러시아의 힘을 얻고 중국에 또 이사를 갑니다  여러가지 민중의 고통, 민중의 핍박, 또 프롤레타리아  거기에 대해서 배우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옵니다  호치민 호치민  미국이 이젠 등장하는데 그 부패된 고딘디엠 정부를 지원하면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아주 지속된 전쟁의 끝없는 폭격  약 3200일의 끝없는 폭격을 밤낮으로 당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이겨낸 유일한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부정확한 서술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한대수 특유의 직관이 십분 발휘된 드라마틱한 설명이다. 부정확한 서술이 있는 곳은 마지막 부분이다. 마치 10년 전쟁 전체를 호치민이 지휘한 것처럼 한대수는 노래했지만, 호치민은 전쟁이 끝나기 6년 전인 1969년 베트남 독립기념일에 세상을 떠났다. 호치민이 주로 활약했던 건 프랑스와의 전쟁이었고, 미국과의 전쟁을 주도한 것은 남베트남 출신의 레 두안이었다. 이미 1960년께 권력의 상당부분은 호전적이었던 레 두안에게 넘어가 있었고, 호치민은 당의 상징적인 얼굴로서, 외교적 대표로서만 활동하고 있었다. 실용주의자였던 호치민은 인민들의 고통만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미국과의 전면전을 망설였다. 나는 평소, 북한의 사회주의가 왜 유난히 교조적이고 전투적인지, 왜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 중에 유일하게 북한에서만 부자 승계가 이뤄지는지 궁금했다. 한때는 모든 걸 기후 탓으로 돌리며 비과학적 결론에 이른 적도 있었다. 호치민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쿠바나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나라들이 북한보다 훨씬 유연하고, 부자 승계도 없는 이유를, 날씨가 따뜻해서 먹을 것이 풍부하니까 사람들이 욕심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마구잡이로 재단했다. 하지만 베트남을 좀 더 들여다보면서, 사회과학에서 이런 식의 ‘기후 결정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레 두안이라는 인물은 갑자기 죽지만 않았다면 거의 김일성처럼 됐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짐작하다시피, 호치민의 권력 행사는 대단히 민주적이었다. 주석의 이름으로 강제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모든 결정을 토론에 의존했다. 호치민은 반대했으나 강경파들에 의해 강행된 토지개혁이 민심의 반발에 부닥쳐 결국 호치민이 나서 사과를 해야했던 것도 좋은 사례다. 호치민의 생애 중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대목은 한대수의 노래에 나와 있지 않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독립에 성공한 뒤, 호치민은 으리으리한 총독궁을 놔두고 그 옆의 정원사(우리로 치면 마당쇠) 오두막에서 살았다. 적어도 주거 면에서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던 백범 김구의 소원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런 겸손함과 청빈함으로 민중들의 마음을 얻었다. 호치민은 여러가지 면에서 김구와 닮았다. 어릴 때부터 독립 운동에 매진했고, 사심이 적었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슴 밑바닥에 깔고 있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호치민이 제국주의를 몰아낼 수단으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데 반해, 김구는 사회주의 역시 외세의 일종으로 보아 배격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를 떠돌며 국제감각을 익힌 호치민이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사회주의를 채택한 반면, 한국과 중국에 시야가 국한돼 있던 김구는 일체의 외세를 배제하고 우리 민족만의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웠다. 호치민이 한 때 미국을 이용해 프랑스를 몰아내려고까지 했을 정도로 국제정치에 민감했던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이 이승만이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이승만은 신탁통치안을 교묘하게 비틀어 ‘찬탁=공산주의’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이를 반공 세력의 결집 기회로 활용한다. 이어 반공의 깃발아래 미국과 친일파, 지주들을 등에 업고 남쪽에서 권력을 잡았다. 백범 김구 사진 출처 - 백범 김구 기념관 이 때 형성된 극우 헤게모니는 군부독재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김구 선생을 존경하지만, 해방 공간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나는 지금 김구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게 아니다. 호치민의 실용주의와 국제감각을 말하는 것이다. 생전의 노무현은 이렇게 썼다.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설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노무현 스스로도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견처럼 보여 슬픈 대목이다. 노무현은 도덕적 수단(당정분리, 권력기관의 자율화)으로 우리 사회의 부도덕(지역주의, 수구언론)을 이기려고 했던 반(反)마키아벨리주의자였다. 그 불가능해 보이던 실험은 예상대로 패배했다. 노무현이 미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김구는 단지 정의의 편이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아까 말한 대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잘 몰랐거나 일부러 무시한 채 어떤 진공 상태의 이상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로서 노무현의 패배는 민중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실체적 관심보다는 일종의 당위로서의 정치투쟁(수구언론과의 싸움을 포함하여)에 치중함으로써 민중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안목에 남달리 예민했던 노무현은 현실의 민중들이 원하는 것을 포착하는데 상대적으로 서툴었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전도된(뒤집힌) 형태다. 역사에 무감하고 도덕에 무관심하다. 역사적으로 부도덕한 자들은 도덕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부도덕을 증명한다. 식언은 예사다. 그리고 자신이 특정 계급의 대표라는 사실을 기술적으로 숨기고 있다. 지지율이 떨어질만 하면 재래시장에 나가 떡볶이를 먹으며 서민 경제를 걱정한다.(이런 정치 쇼야말로 노무현이 가장 혐오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혼부부 보금자리 아파트 같은 기만적인(언발에 오줌누기라는 의미에서!) 술책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위장 전술은 지금까지 잘 먹히고 있다. 한 편으론 정부 기관이 앞장서서 직장 폐쇄를 강행하고, 파업권 등 각종 헌법적 권리를 짓밟고 있다. 리영희 선생이 예견한 대로, 이 정권 하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고(실제로 그렇지 아니한가), 범죄는 늘어날 것이며, 계급 갈등이 격화되는 투쟁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방송을 장악해 정권을 연장한다면 그 갈등은 더욱 커져 폭발 직전에 이를 것이다. 이 정권에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사람이 남아 있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의 감동적인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는 (사담 후세인이 주도한) 이라크 혁명 정부의 청렴성과 과단성, 비전을 상찬하는 대목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정부의 평등의식(준공기념식을 준비하는 현대건설에게 차양을 치려면 수상이 앉아있는 단상과 객석에 똑같이 치던지, 아니면 걷어버리라는 지시가 내려졌다)에 놀라며, 말레이시아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이 때(1995)까지만 해도 인간 이명박에게는 역사의식과 평등의식이 남아 있었다. 이제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라는 것은 정녕 부질없는 권유일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전문)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47 | 추천: 1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려 한다. 평소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발걸음이 내디뎌졌고, 순간 앞사람과 충돌할 뻔 했다. 어제와 달리 에스컬레이터는 하행이 상행으로, 상행이 하행으로 바뀌어 있었고, 우측보행이라는 표어 같은 것이 바닥에 붙어 있다. 한동안 주로 다니는 지하철역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에스컬레이터를 타려할 때마다 발이 꼬이는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아차~. 에이 씨~.” 우측보행이라니.......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밥 먹으며 TV를 보는데 우측보행을 생활화하자는 내용의 공익광고 같은 것이 화면에 흐른다. 선진국에서는 우측보행이 생활화되어 있다는 둥, 어떤 아이가 아빠로 보이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가고 있고, 맞은편에서는 유럽인쯤으로 보이는 백인이 뭔가를 보면서 아이의 정면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아이는 어느 쪽으로 걸어가야 하느냐고 아빠로 보이는 사람에게 묻고, 아빠로 보이는 사람은 아이에게 서로 부딪히지 않고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측보행을 해야 한다는 식의 뜬금없는 얘기를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사촌 형이 대학교 앞 차도에서 뒤에 오던 무보험 차량에 치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칠순을 앞에 둔 나의 어머니는 일방통행로에 서 있다가 뒤에서 오던 차에 발목을 치어 지금도 원활한 보행에 지장을 느끼신다. 내가 아는 대학생 한명은 이면도로에서 뒤에 오던 차가 왼쪽 무릎을 치어 평생 등산하기 어렵게 됐다. 난 어려서부터 좌측보행, 정확히는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으면서도 좌측통행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행동을 하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 나이 먹고 나서 정부가 우측통행 아니 우측보행을 하라고 하니 더 하기 싫다. 더군다나 우측보행을 하는 것이 마치 선진국민, 문명인의 보행방식이라는 식의 얘기를 들으니 하기 싫은 기분을 넘어 역겹게 느껴진다. 난 지금 화가 나있다. 왜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하려고 하는가? 좌측통행도 자연인의 보행방향을 획일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 관점이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평생을 몸에 익혀 살아온 통행방식을 자기들 입맛대로 바꾸고 또 다시 이를 획일화 시키려 한다. 게다가 그것에 선진국형, 문명국형이라는 식의 수식어까지 붙여 한순간에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후진국형, 야만국형 인간으로 만들었으니 화가 안 날 수 없다. 사람의 의식과 행동은 자연스럽게 조화되어야 한다. 설령 아무리 우측보행이 보행방식에 있어서 우수하더라도 그것으로 인간의 행동을 강제하려는 순간, 우측보행은 그 자체로 최소한의 가치도 갖지 못한다. 차량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통행방식이 무엇인지, 사람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보행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 그것을 넘어 우측보행을 일률적인 인간의 보행방법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어떤 문화적 규범, 법률로 만들고(실제로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은 이를 입법추진중이다), 인간의 의식에 주입하려는 것은 규범, 법률을 가장한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심지어 어떤 교통문화 단체에서는 이와 같은 우측보행을 파쇼적인 발상이라거나, 레드 콤플렉스의 반영이라고 아주 강하게 비판한다. 난 현재 진행 중인 우측보행 계도 광고가 정부가 강제력(예산, 광고 내용, 실제 생활에서의 에스컬레이터 등의 배치 변경 등)을 통해 인간의 행동유형을 획일화 시키려는 발상에 연결된 것이라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인 시도라고 비판하고 싶다. 더구나 이번 정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자신의 존재 근거인 국민을 기만하고 또 무시하고 있는 증거라고 비판하고 싶다. 복지예산 증액은커녕 이를 줄이기 급급하면서도 이처럼 근거 없고,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책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정부(물론 이보다 4대강 공사에 쓰일 천문학적인 액수의 예산을 생각하면 목구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에 대하여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잠자코 있으라고 비판하고 싶다. 현재의 보행문화, 통행문화에 문제가 있더라도, 정부로서는 이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앞서 차도와 인도(보도)가 구분되지 않은 전국에 산재한 많은 보차비구분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지방에 가보면 갓길을 걷는 사람들이 빠르게 곁을 지나쳐가는 차량으로 인하여 느끼는 위협이 과연 어느 정도 될 것인지, 그로 인한 생활상의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지 감히 가늠하기 힘든 도로들이 무수히 많다. 이런 위험스런 상황이 정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님 정부고, 무능력하며 무책임한데다 낭비벽 심한 정부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정부가 전체주의적, 파쇼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16 | 추천: 0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11월 13일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의 항소심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지지모임을 꾸리고 그 회원이기도 한 나는 판결 내용도 궁금하지만 재판에서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10시에 시작하는 재판을 방청하였다. 지지모임 회원 4-5명이 이미 와있었고 우리가 관심이 있는 본 사건은 6번째로 판결이 잡혀있었다. 그날의 판결은 성추행이나 성폭력, 강간미수 등의 사건이 대부분이었고 판사가 판결의 이유로 댄 것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여 본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긴장되었다. 드디어 6번째 판결... 피고인 5명이 나란히 서있는 가운데 판사의 판결이 낭독되기 시작하였다. 그 사건의 항소심에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김** 만 항소하였고, 범인도피에 관하여는 검사측과 피고인측이 모두 항소하였다는 말을 시작으로 하여 한 5분여간 낭독된 판결문은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 가지 부분에서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는 운동사회 내에서 상실된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판사는 성폭력이 매우 중한 죄로 피해자의 입장이 명백한 이상 피해자의 의견을 중요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법조계의 가해자 중심주의적인 판결을 꼬집기도 했는데 이는 피해자가 그토록 헌신적으로 활동해온 조직에서조차 채택되지 못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의 판결에서 피해자의 의지와 의견이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약자의 입장을 우선시 한 점에서 한사람의 생존자로서 살아가야하는 피해자의 인권이 지켜진 것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는 술에 취하여 심신미약의 상태로 저지른 우발적인 행위였다고 판시한 원심의 내용을 뒤집은 것이다. 즉, 술이 이유가 되어 양형이유에 있어 감경요소가 되지 않음을 분명히 하며 원심판결에 항소한 가해자에게 반성하지 않는 태도라며 질책하였다. 그리고 심신미약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심신미약과 범행에 대한 책임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그동안 술에 대하여 유독 관대했던 우리 사회에서 법정이 나서서 경종을 울린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건에 대한 공탁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한 점이다. 공탁이란 유가증권 기타의 물품을 변제·담보·보관 등의 목적으로 공탁소에 임치하는 것인데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합의 의사를 공탁으로 변제하려 한 가해자의 의도를 법정이 인정하지 않은 점이다. 2000만원이라는 거금을 공탁함으로써 합의를 거부한 피해자의 뜻을 약화시키려 한 행위에 대하여 그 의미를 분명히 한 점에서 이 또한 환영할 만한 판결이다. 즉, 공탁이 가해자의 사회에 대한 사죄의 의미는 있으나 근본적 해결은 아니며 양형사항에 있어 감경요소가 아님을 적시하였다. 그 동안 돈 있는 사람들의 이런 공탁에 대하여 피해자의 합의의사와 상관없이 인정되고 합의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이번 판시로 공탁 또한 피해자의 의사를 기준으로 해야함을 분명히 한 점에서 이 또한 반갑다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조두순 사건이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넓혔지만 그에 따른 법의 판단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판사는 “범행이 중하므로 감형은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며 형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책임지는 모습이다”라는 말을 이유로 항소를 기각하였고 이 마지막 말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을 가해자에게 주문하였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귀결지어져야할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나 법조계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고 이번 판결이 동종의 사건에 중요한 판례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쁘다. 여성의 옷차림이나 언행이 판단의 중요 기준이 되었고, 여성에 대하여 사회가 부여한 역할 수행이 또한 중요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남성의 시각이 판결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법정이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관점에서 판결을 내린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만약 발생한다면 피해를 당한 약자의 입장에 사회가 또는 법조계가 나서서 그들을 대변하고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지난 11월 13일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의 항소심 판결은 매우 중요한 선례를 남겼고 진심으로 환영한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18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키가 180센티미터가 안 되는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으로 시끄럽다.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여대생의 이 발언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비난을 샀고 급기야 다급해진 KBS가 제작진을 교체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우려 하지만 네티즌들은 아예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단 그 여대생의 어이없는 발언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졸지에 루저라는 낙인을 받게 된 수많은 남성들이 분노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런 발언이 논란을 낳으리라는 예상을 제작진과 그 여대생은 정말 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동안 방송에서의 발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샀던 연예인, 방송인들의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대본에 따랐을 뿐’이라는 여대생의 해명이나 ‘대본은 강제적인 게 아니라’는 제작진의 변명은 더욱 무책임하다. 그런 식의 대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시청률 경쟁을 위해 일부러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자 한 게 아니라면, 이 프로그램 제작진의 한심한 ‘수준’을 폭로하는 일일 뿐이다. 이 발언이 나오게 한, ‘키 작은 남자와 사귈 수 있냐’는 질문부터 양식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 아닌가. 사실 이 ‘미수다’란 프로그램은 오래 전부터 교묘하게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면서 출연한 여성들을 관음적 시선의 대상으로 만들어온 혐의가 짙다. 외국 여성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모습을 짚어본다는 취지로 가끔 의미 있는 담론을 들려주었던 예가 없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외국 여성들의 외모와 성적 매력을 강조하면서 남성적 시선의 눈요깃감으로 만들어왔다. 제목부터 ‘미녀’를 내세우고 있지 않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진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키가 180이 안되면 루저”라는 여대생의 말은 그녀가 남달리 특별한 가치관이나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나온 말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해 있는 어떤 ‘상식’을 정확히 보여준다. 남녀를 불문하고 키 크고 잘 생긴 사람과 키 작고 못 생긴 사람에 대한 사회적 대접은 이미 우리 누구나 알다시피 분명히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키와 외모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상품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있다. 육체적 매력으로 평가되는 인간의 상품 가치를 편의상 육체 자본이라 불러 보자. 주목할 점은 육체 자본이 중요하다는 건 남녀를 불문하고 같지만 그 내용에서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남자의 경우, 육체 자본은 다른 사회적 가치(돈이나 지위, 권력 등)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의 경우, 그것은 온전히 육체 자체가 가진 가치로 측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의 상품화, 요컨대 성적 가치의 결정성이 더 중요해 지는 것은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다. ‘미수다’의 여대생이 한 발언은 이제 남성의 성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압박도 여성 못지않게 강화되고 있음을 은연중 암시한다. 사진 출처 - KBS 홈페이지 육체 자본은 대체로 타고난 유전적 특성에 의해 우선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크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게 결정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성형 수술, 피부 관리, 체형 관리, 헬스 센터, 다이어트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육체 산업들은 사람들의 육체적 매력을 키워주는 것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 육체 자본을 높이려면 그만큼 돈이 든다는 말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돈을 들여가며 육체 자본을 높이려는 것에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육체 자본이 클수록 더 많은 경제 자본을 얻어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육체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육체적 매력이 높은 사람)이 이를 통해 돈을 벌거나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말이다. 물론 그 역도 가능하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육체 자본의 소유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육체 자본과 경제 자본은 상호 교환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 가치, 요컨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모든 다른 가치를 압도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 자본을 높이기 위해 애쓰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 특히 돈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언제든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의 상품화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이며 삶의 조건이다. 그 속에서 시시각각 육체 자본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당연히 엄청나다.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아마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 떨어지지 않을 게다. 그런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 가운데 하나가 TV이다. 우리나라 TV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미인이고 미남이다. 그리고 물론 섹시하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 공개적으로 섹시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수치스럽지 않게 되어 버렸다. TV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서슴없이 ‘섹시하시네요’ 같은 표현을 쓰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고맙다’고 말을 한다.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데 대한 분노보다 자신의 육체 자본을 높이 평가해 주는 데 대한 고마움이 앞선다는 말이다. 연예인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섹시함을 과시하고 남들로부터 섹시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애쓴다. 그만큼 성에 대한 사고가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변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제 육체 자본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사회의 지배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수다’에 나온 문제의 여대생의 발언은 그와 같은 사회적 가치와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상식’을 보여준다. 다만 그것이 ‘키 큰 사람이 더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180이라는 구체적 수치와 루저라는 자극적 표현을 통해 표현됨으로써 공분을 자아낸 것일 뿐이다. 자신의 감정과 상식에 충실할 줄은 알았지만 자신의 발언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사고할 만한 지성은 가지지 못했던 한 여대생을 두고 욕하고 돌팔매질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란 얘기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05 | 추천: 0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울 명동성당 맞은편에는 세칭 ‘판넬골목’이라 불리는 좁은 골목이 있다. 차 한대가 근근이 드나들 수 있는 100미터 남짓한 길이의 골목인데, 한때 이 골목 초입에서 끝이 나는 지점까지 대부분의 담벼락에는 마이클 잭슨, 제임스 딘, 오드리 헵번, 올리비아 핫세, 소피 마르소 등 내로라하는 월드스타 사진부터 그리스도교 성화, 이발소에나 걸림직한 풍경 사진 등 다양한 그림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 소박하지만 인상적인 풍경을 연출해냈다. 지금은 표구하는 가게는 모조리 사라지고 술집과 밥집들만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이름은 여전히 판넬골목이다. 이강서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를 처음 만난 곳도 판넬골목에 위치한 한 허름한 주점에서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술이 몇 순배 돈 후 군종장교 전역을 앞둔 그가 풀어낸 교회에 대한 비전이나 삶에 대한 진지함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신부를 다시 만난 것은 몇 년인가 지난 후 당시 출입처로 드나들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서였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하는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빈민사목위원회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함께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공식 조직이다. 몇 년이나 알고 지내왔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이 신부의 활동이 늘 열성적이면서도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기억만은 뚜렷하다. 그런 그를 용산 참사 현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무릎을 쳤다. ‘그럼 그렇지.’ 알려진 대로 이제 용산은 대표적인 ‘국민’ 전자상가로서의 이미지를 비롯해 미군기지, 호남선 기점, 쪽방촌, 국립박물관 등 수많은 이미지 속에 ‘참사 현장’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더하게 됐다. 입동을 지내며 겨울의 초입을 넘어선 어느 날 바람이 숭숭 통하는 용산거리 한쪽에 친 천막에서 만난 이 신부는 생각대로 따뜻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경찰들에 밀려 찢기고 쓰러졌을 때도 그 특유의 따뜻함으로 냉정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내 물음은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결국은 오히려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신부들이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가?” 신부들이 용산을 지키고 있는 현재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교회 안팎에서 적잖이 들리는 질문들의 요지였다. 이 신부는 “순교를 해야만 할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누구의 허락을 받고 할 것이냐”는 답을 돌려주었다. 속이 뚫리는 듯 한 느낌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이강서 신부는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되도록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 있는 사과 한마디 없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사진 출처 - 가톨릭신문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어떤 종교, 어떤 지위에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에 따라 실존적 결단을 하는 문제입니다.” 4, 5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다는 신자들이나 타 종교인들이 내게 자주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왜 하필 ‘또’ 신부들이냐?”는 거였다. 이러한 물음에 이 신부는 “얼마만큼 하면 충분히 기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 신앙생활을 하면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하는 물음을 되돌려 주었다. 200일 넘게 용산 현장에서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나까지 38번째 언론 인터뷰를 한다는 이 신부, ‘시간의 무게’를 누구 못지않게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그였지만 시간에 대한 기준은 달랐다. “믿음에도 다양한 편차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자와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신자로 곧잘 나눕니다. 그러나 ‘신자’와 ‘예비신자’는 세례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계명을 하느님의 기준에 따라 사느냐 아니냐가 기준입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모였지만 하느님의 기준이 아니라 세속적 시선만을 유지한 채 충분히 영글지 못한 신앙을 지닌 채 살아간다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한다 해도 그것이 신앙 성숙의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속이 후련해졌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이 신부의 목소리에 조금씩 떨림이 실렸다. 눌러 왔던 생각들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모양이었다. “이제 곧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되고 계절이 네 번 바뀌는데, 누구 하나 나서 책임 있는 사과 한마디 없는 이 모습이 과연 이성적이고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커다란 부조리는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눈에 띈다면 그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한 번이라도 용산 참사 현장에 발걸음을 한 1000명이 넘는 신부들, 그들은 우리 시대 헐벗고 굶주리며 병들고 나그네 된 이들을 찾고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04 | 추천: 1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회고 이라크 인류사 최고의 지향점인 평화가 한순간에 깨지는 장면을 보았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공교육을 마쳤고 특별 하지 않은 사회 조건 속에서 비교적 합리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여전히 자기중심성의 늪에서 헤어나고 있지는 못하나 다중(多衆)의 이익을 위한 삶을 가끔은 생각하는 나 같은 부류에게도 국제사회의 온갖 비난과 전 세계적인 반전여론을 무시하고 벙커힐 호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이 바그다드 한복판을 강타했던 2003년 3. 20일 그날은 잊기 어려운 상처였다. 특히나 개전이 시작된 그날 백악관에 앉아 한가롭게 개전 성명을 발표한 원숭이 부시의 표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뻔뻔 지수 측정기가 한계 없음을 깊게 각인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라크전은 도덕적인 전쟁이며 이라크에서 위협을 제거하는 것 이외에 야심이 없다”나 뭐라나.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어떤 교과서, 어떤 가르침 중에 “남의 생명을 빼앗아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법이다” 라고 규정한 대목이 하나라도 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산 인간 몇몇이 1970년대 산(産) 위인전에나 이름을 올린적은 있으나 역사의 평가는 냉혹하지 않았던가. 나폴레옹, 히틀러, 도조 히데키, 맥아더... 그리고 부시 (애비와 아들 둘 다). 수없는 죽음의 하치장을 만들어 그 희생자의 무덤 위에서 반세기도 가지 못할 허명(虛名)의 깃발을 세웠던 사람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이라크에서의 살육과 호전적 제국주의, 이유를 모르는 죽음들과 그 주검을 가슴에 안으며 통곡하는 살아남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돈” 때문이었다는 것과 지구상에서 가장 돈 되는 자원이 석유라는 것, 그리고 이라크에 석유의 매장량이 풍부했다는 것은 이미 어지간히 똑똑한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이라는 고귀한 생명의 가치가 한순간에 사라져도 된다는 은폐된 광기의 표출이 전 세계의 지형을 흔들 정도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천해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나의 목숨 값을 얼마쯤 매기고 있을까도 생각했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숨이 돈으로 매매가 된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혹독한 전쟁을 겪고 있는 이라크의 고통 받는 민중들에게는 그 질문이 가장 현실적인 사실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가정(假定)으로 라도 성립될 수 없었던 질문을 품었던 나의 터무니없는 이성에 분노해야 했다. 니네들은 힘이 세서 좋겠다. 가진 거 많아 좋겠다. 그렇다고 아무나 줘 패면 미친놈 소리 듣는다. 니네 동네에는 어른도 하나 없냐 어찌 그리 막무가내냐 우리 동네에서 너 같은 놈은 열라 맞아 죽는다. 석유가 그렇게도 좋더냐 석유 마시고 살아라. 전쟁 놀음이 그렇게 신나면 니들끼리 싸워라 니네는 평화란 말이 전쟁이냐 이 배워먹지 못한 놈아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 없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너희 눈엔 하나도 안 보였지만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이유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통곡이 너희들은 전쟁이라 우겼지만 우리는 학살이라 말한다. 너희들은 정의라 우겼지만 우리는 탐욕이라 말한다. “돈과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미련한 세상 돈과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미련한 세상 “미련한 세상” - 이지상 글, 곡 전쟁이 빨리 끝나기 전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해서 미국에 눈도장 확실히 찍고 이라크 재건 사업의 국익을 따내자는 국회의원의 소름끼치는 얘기가 들려올 때는 내가 사는 나라가 맞기는 한가 싶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고 수십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파병 반대를 외쳤지만 그 사이 젊디젊은 청춘을 팔아 돈을 벌기위해 그들 스스로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 부르는 살육의 현장에 우리의 병사들을 보낸 참여정부를 원망하기도 했다. “남의 집에 불이 나면 휘발유 더 뿌려 완전히 태운다음 다시 집 지을 때 기둥뿌리 하나라도 더 팔아야 네가 잘산다고” “그런 상황에선 네가 직접 휘발유 들고 가지 말고 만만한 옆의 집 아이를 시키라고. 그 아이가 죽건 말건 상관하지 말라고” 자신의 아이들을 꼭 이렇게 가르쳤을 것 같았던 지독한 파병찬성론자 S의원은 “안보가 남편” 이셔서 아들이 없었고 보수의 원조를 자처하신 K의원은 아들을 군대 근처에도 보내지 않았으며 해병대 출신의 H의원은 본인이 자원해서 이라크에 가겠다고 해놓고는 낙선하신 백수 신분이 오래인데도 여적 소식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했던 다산.동의부대 환송식 (2003년 자료사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똑같다 그들의 얘기... 기분 잡치는 전쟁 참 쉽게 일어난다. 1830년 프랑스가 알제리를 침략한 표면적 이유는 알제리의 태수가 프랑스 장교의 뺨을 때렸기 때문이고 1937년 중일전쟁의 시발(時發)은 노구교를 지키고 있던 일본군 병사가 다리 밑에서 오줌을 누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1964년)의 이유가 된 통킹만 사건도 미국 정보국의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는걸 보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해 안달 하는 특정 이익 집단은 드러나지 않게 많다. 잘 알다시피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80년대 초에 제공한 대량 살상무기를 찾는다는 이유로 시작되었고 아프간 침공은 9.11테러의 주모자로 지목당한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 전쟁의 구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과 다만 특정 이익 집단인 부시와 그 일당이 정권 잡은 기념으로 화끈하게 한탕 땡기기 위해 세계 양심의 조롱을 무릅쓰고 원숭이 짓 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터무니없는 이유 때문에 20세기 이후 전쟁으로 죽어간 생명이 1억하고도 6천만 명이 넘는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고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한지도 9년째 접어들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다산 동의 부대를 파견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해 종교적 신념을 가진 젊은이 둘과 파견비용 꼬박 모아 부모님대출금 갚으라고 송금 했던 젊은 병사를 잃었다. 정부는 그들이 바친 목숨으로 인해 전쟁으로부터 철수한지 22개월 만에 다시 군대를 파견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라크 파병 때는 수십만의 시민이 모여 반대할 기회라도 있었는데 이번 결정은 그럴 기회도 없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이라크 파병당시 파병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논리가 하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방송전파를 탄다는 것이다. 해외 파병이 국위선양과 국민 애국심 강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거나 전쟁터에 생떼 같은 목숨들을 보내면서 국익을 챙겨야 한다거나 UN의 42개국이 파병하고 있으니 파병 안하면 국제사회에서 왕따 된다는 협박 얘기가 대부분이다. 아~ 또 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소원해진 한미 공조 관계의 복원이란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이후 그곳에 의료 선교를 자원해서 간 친구 부부가 있었다. 카불 인근의 열악한 병원에서의 진료와 현지 의과대학에서 수술법등을 가르쳤는데 제일 아쉬운 것이 부족한 약품과 의료 기기였고 아이들이 마땅한 시설 하나 없어 총알 껍데기 만지며 놀아야 하는 교육환경 이라는 소식을 자주 전했었다. 주목할 만한 산업기반이 없고 농지가 부족하니 배곯아 퀭한 눈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기 안쓰럽다는 말도 꼭 전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기구가 지난 9년 동안 아프간에 지원한 돈이 약 150억 달러쯤 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6조원이면 그 나라 돈으로 엄청 날 텐데 나는 그 친구로부터 병원이 하나 더 늘었다거나 공장이 지어졌다거나 적어도 수도 카불 시내 사람들이 밥을 굶지는 않는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프간 남자의 평균 수명이 42세라는 말은 들었다. 내가 거기서 태어났다면 지금쯤은 벌써 하늘의 판결을 받고 내세가 있다면 그곳에 가 있어야 한다. 태어나는 영아의 네 명중 한명은 부모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16조원이면 그 정도의 열악한 상황을 얼마간은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금액인데도 여전히 그곳의 소식은 암울하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 젊은 병사들이 매일같이 쏘아댄다는 포탄이나 군수 지원 비용으로 또는 그들의 목숨값 으로 쓰였을 것이고 그중 아주 일부는 부패지수 세계 8위라는 카르자이 정부의 관료들 손에나 쥐어졌을 것이다. 이전에 파견되었던 특수부대 이름이 “다산”과 “동의” 였다. 병사들 목숨 팔아서 미국상전 잘 모시고 국익 팔아서 자기도 이익 좀 보자는 사람들이 지은 이름이니 허준 선생이나 정약용 선생이 달가워 할 리가 없다. 다산의 시 “애절양”에 나오는 자기 양물을 자른 이가 군포를 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참 그 이름지은사람 양심도 없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380 | 추천: 1
-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을 제공받을 재소자 권리를 중심으로 곽노현/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계인권선언 60주년과 재소자 인권의 의미 지난 2008년은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반포된 세계인권선언이 60돌 환갑을 맞는 해였다. 세계인권선언은 ‘우리 시대 인류양심의 최고의 표현’이자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으로 불린다. ‘아름다운 약속’의 핵심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인권, 즉 존엄성을 누리며 사람답게 살 권리를 존중, 보호, 증진하겠다는 것. 이러한 약속은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재소자도 비켜가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약자와 소수자에게 보장하는 것이다. 약자와 소수자한테도 인권이 보장될 때 강자와 다수자가 인권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재소자로 통칭되는 교정시설의 수용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넘어 정신적, 도덕적 약자라는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약자집단이다. 재소자의 인권상황은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인권보장의 실질적 척도로 기능한다. 재소자집단의 프로필 우리나라의 재소자 수는 08년 9월 현재 47,408명이다. 이중 31,842명은 기결수로 선고형량을 복역 중이고 15,503명은 미결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나머지 63명은 감호처분대상이다. 기결수는 살인범 3,957명, 강도범 4,121명, 조직폭력범 1,838명, 폭행상해범 988명, 사기횡령범 3,545명, 절도범 5,393명 등이다. 기결수 중에는 누범(16,177명)이 초범보다 많다. 연령별로는 40대(9,846명)가 가장 많고 30대(9,350명), 20대(6,384명), 50대(4,378명) 순이다. 60대 이상도 1,269명이나 되고 16세 이상 20세 미만도 251명이다. 그 밖의 재소자 통계, 예컨대 학력별 통계라든가 형기별 통계 등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소자의 대부분이 빈곤층 출신으로 학력이 일반시민과 비교해서 현저히 낮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교육권, 특히 평생교육을 받을 권리 사람은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 특히 문해(literacy)교육 등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선진국 초입에 서 있는 지식경제사회에선 중등교육도 인권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은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기 때문에 초중등학교의 중도탈락자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초중등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지식주기가 짧아지는 시대상황에서 교육권은 불가피하게 평생교육을 받을 권리로 바뀐다. 우리 헌법도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국가에 평생교육 진흥의무를 부과한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에 발생한 초중고교과정 탈락자 수는 초등학교 중퇴자 16,793명을 포함해서 총 55,525명에 달했다. 이들 중 43%(23,645명)가 학업에 복귀하지 않았다. 미복귀 탈락자 중 상당수는 교정시설로 흘러들어온다. 학업중퇴 수용자는 수용기간 중 중단됐던 초중등교육을 계속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재소자교육의 모습 교정시설에선 다양한 학과교육과 직업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학과교육으로는 수용자의 학력수준에 따라 초중고교 검정고시 교육, 방송통신대학 교육, 독학학위 취득교육, 전문대학 위탁교육이 실시된다. 문자해독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가장 기초적인 문해(literacy)교육이 제공되며 소년수용자에게는 방송통신고교 교육과정이 제공된다. 정보화 교육과 외국어 교육도 가능하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직업교육훈련이 실시되며 출소예정자에 대해서는 특별히 창업교육 기타 출소준비교육이 제공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교정시설은 교육훈련 측면에서 구색을 갖춘 것 같지만 실질은 딴판이다. 아프지 않은 이상 재소자는 주간에는 거실 밖에서 작업을 하든가 교육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단적인 예로 2007년 12월 현재 직업훈련 중인 수용자는 모두 3,279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업시설과 교육프로그램이 부족한 탓에 현재 재소자 중 과반수는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거실을 하루 종일 지킨다. 이런 상황에서 교정시설이 범죄학교로 둔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인문학적 평생교육의 중요성 교정당국에서는 초중등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재소자들에게는 최우선적으로 계속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성인 수용자에게 계속교육을 제공하는 특성상 교육내용과 방법에서 많은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2007년 이래 인권연대가 교도소 내에서 인문학 교육을 시도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방적인 인성교육이나 실용적인 직업교육과 달리 자기성찰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인문학적 교육이 처음으로 교도소 담장을 넘은 셈이다. 여기에 참여했던 고병권의 진단에 따르면 “범죄의 기술은 삶의 기술의 부족, 즉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기술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지금과 다르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당신은 인문학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주도적 사고역량으로서의 인문학적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은 대부분 암기대상으로 전락하는 철학사강의를 개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필요한 것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깨우침을 얻는 자기성찰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도에 진행된 안양교도소 평화인문학 수료식 모습 사진 출처 - 안양교도소 쓸모 있는 직업교육의 중요성 중범죄를 저지른 장기 수용자들은 갖가지 자격증을 취득한 후 출소해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과차별이 심한데다 쓸모없는 기술교육을 받은 탓이다. 출소-실업-재범-재입소의 회전문식 인생경로를 방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노동시장에서 쓸모 있는 직업교육훈련이다. 효과적인 직업훈련체계를 갖추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재범의 위험을 줄이려면 교정행정의 초점을 직업교육훈련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교도소별로 효과적인 선택과 집중을 함으로써 교정체계 전체로서는 매우 다양하고 수준 높은 직업교육이 제공되도록 기본방향을 잡으면 될 것이다. 맺음말 재소자들은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폭력에 노출되며 사람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 동네, 학교, 법집행기관 중 어느 한군데서도 인격적 대접을 경험하지 못한 탓에 반사회적 품행으로 기운 경우가 많다. 국가의 교정시설이 단순히 자유가 제약된 상황에서 죄 값을 치르게 하는 형집행 기능을 넘어서 진정으로 수용자의 교정교화를 원한다면 수용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인권피해자’로서의 또 다른 자아를 끄집어내서 치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무 생각 없이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관성적 삶의 모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인문학적 교육이다. 일자리로 통하는 실용적인 직업교육과 자기성찰로 이끄는 인문학적 교육을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보편적으로 제공할 때 비로소 교정시설은 범죄학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곽노현 위원은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65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성서(요한복음 5,1-18)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예루살렘에 있는 ‘베짜타’라는 연못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따금씩 물이 휘도는 일이 있곤 했는데 그 때 제일 먼저 그 물에 몸을 담그면 어떤 병도 다 낫게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연못 주변에는 물이 휘도는 순간 먼저 뛰어들 태세로 온갖 병자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에는 삼십팔 년이나 병을 앓아온 중증 환자도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며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내내 변방에서만 활동하던 예수가 어느 날 예루살렘이라는 이스라엘의 중심지로 올라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가 목격한 현장이 바로 저 베짜타 못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었다. 베짜타 못가는 이른바 선착순의 논리에 따라 일등만 구원되는 곳.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남을 밟아야 하는 곳, 저마다 남의 어깨를 딛고 일등을 향해 치닫지만 결국 자신은 물론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더 큰 아픔과 상처를 남겨줄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 삼십팔 년 된 병자도 언제일지 모를 그 막연한 일등을 꿈꾸며 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하지만 늘 경쟁에서 밀렸다.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소외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나 할까. 그 처절한 현장이 예수의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 오래 된 병자를 보고 예수가 물었다: “낫기를 원하느냐?” 병자가 답한다: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병자는 남이 먼저 연못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병이 낫지 못한다 생각했다. 자신이 먼저 들어간다면 자신 때문에 남은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등을 지향하는 사회에서의 성공이란 누군가의 희생과 탈락을 근거로 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말 예수다운 방식으로 그를 이렇게 구원한다: “일어나 네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어느 새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들고 걸어갔다.” 일어나 요를 들고 걸어간다는 것은 그가 치유되었다는 증거이자, 자신을 격리시켰던 사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공개적 증거였다. 다소 비약처럼 느껴지는 이 간결한 대화와 치유의 사건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치유란 경쟁사회에서 일등하는 방식이 아닌, 경쟁사회를 벗어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를 소외시키거나 낙오시키지 않고서 누군가를 치유하고 살리는 행위, 그것이 예수가 행했던 방식인 것이다. 물론 예수는 성서에 따르면 병을 고쳐주고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성인은 “공을 이루고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功成而不居)는 노자의 가르침과 통한다고나 할까. 이 예수는 누군가를 반드시 죄인으로 만들고 마는, 더 많은 이들을 낙오시키고는 소수만이 의인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독점하는, 그러한 사회적 구조를 거부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예수가 병자를 치유한 날이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이었다. 오늘날도 이스라엘에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은, 율법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밀가루 반죽과 설거지는 물론 글쓰기 같은 것도 거의 할 수 없는 날이었다. 노동을 피하고 그저 쉬는 날이었다. 물론 예수도 그러한 율법적 문화 안에서 태어나 살아간 이로서, 당연히 안식일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문자화된 법적 규정 그대로가 아닌, 법의 ‘정신’을 지키고 실현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안식을 추구했다. 가령 예수가 보건대 병자에게 안식은 치유이고 굶주리는 이에게 안식은 한 끼 식사였다. 그러니 병자 치유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굶는 이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안식일이라도 기꺼이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안식일에 벌어진 그 치유 사건을 두고 당시 지도자들은 예수가 안식일 법을 어겼다며 비판하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예수를 사회적 관례와 질서의 교란자로 간주하고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했다. 이에 대해 성서는 이렇게 전한다: “이 때부터 유다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신다 하여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예수 시대 지도자들에게는 이상하게도 병자가 치유되는 살림과 생명의 사건보다는 예수가 규정과 관례를 어겼다는 사실만 크게 보였다. 고통스러운 병도 앓지 않고 굶을 일도 없던 풍요로운 사람들이었던 탓인지, 아픈 자, 굶는 자의 고통은 안중에 그다지 없었다. 관례적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은 그러한 규정을 관리하는 자신들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예수가 이른 나이에 십자가라는 처절한 사형 틀에서 죽게 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지난 13일, 14일 이틀 간 치러진 일제고사에서 학생들이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다. 이번 시험은 일반 초ㆍ중ㆍ고교, 자립형 사립고, 특수목적고, 전문계고 등 국가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모든 학교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몇 일전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일제고사’(학업성취도평가)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파악하고 각종 문제점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전국의 학교와 학생들을 서열화할 뿐더러 일등을 향한 무한경쟁 체제를 강화시키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행사이기도 했다.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 학교나 학생을 지원해서 학교들 간, 학생들 간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라지만, 그렇지 않아도 뜨거운 경쟁적 일등 지상주의에 다시 불을 붙여 더 많은 심리적 낙오자들을 만들게 될 가능성도 못지않게 큰일인 것도 분명했다. 외고나 자사고 같은 곳에 대한 지원이 일반고보다 세배 이상이나 많다는 며칠 전 뉴스 보도대로라면, 학교 간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계획과 의지도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일제고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서 대안적 체험학습이라도 떠날라치면 그 학습을 주도한 교사에 대한 징계도 대번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기독교 정신대로 세워졌다는 학교들도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나는 교사를 징계하기는 마찬가지이거나 때로는 더하기도 하다. 예수는 일등 지상주의를 거부했지만, 예수를 따른다는 기독교 학교도 일등 지상주의로 내몰기는 매한가지이거나 상대적으로 더 한 경우가 많다. 일착으로 연못에 들어간 날랜 행위만이 하느님의 축복인 냥 가르치기가 다반사이다. 만일 그러한 경쟁 지상주의에 반대했던 예수처럼 행동하면 죽거나 떨려나갈 수밖에 없기는 여전한 상황인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평등 사회를 꿈꾸었던 예수의 선배 요한(루가복음 3,5-6)도 여전히 제 명에 못 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시 헤로데 왕의 실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참수당한 요한을 성인으로 모시고 그 말씀을 따른다면서도 정작 교회 안에서조차 그 요한의 정신은 실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요한이 오늘 우리 시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여러 걸음 양보해 참수는 아니더라도 온갖 징계와 보복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예수와 요한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사형시켰듯이, 오늘 교회도 신앙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전히 무수한 죄인을 양산해 놓는다. 요한의 말을 기억하고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그리스도교인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예수를 따른다면서 경쟁 사회에서의 첫째를 하느님 앞에서의 첫째와 동일시하고 학교의 말째를 하느님 나라에서의 말째로 만들어놓을 수 있겠는가. 무수한 죄인들, 셀 수 없는 낙오자를 양산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이것저것 양보한다 해도, 학자적, 교육적 양심대로 한 일을 두고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이지 규정과 관례 운운하며 징계하고 정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종교문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30 | 추천: 0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9월 18일 한국노동연구원의 박기성 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무총리실 2008 회계연도 세입․세출결산」에 소관기관 배석자로 나와 “사석에서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느냐”는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의 질문을 받자 “나는 그게 소신이다”라고 한 후 “개헌을 하면 (노동3권을 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이 무슨 취지로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묻자 “다른 나라는 노동3권이 법률로 보장되면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는데, 우리는 헌법적 권리여서 현실하고 어긋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9월 18일자 한겨례신문). 그의 전공이 경제학이긴 하지만, 그런 식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경제학자의 전형적 생각 혹은 올바른 태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제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시장이라는 경제적 도구 외의 다른 것(예컨대 민주주의)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9월 18일자 신문에 나타난 위 해프닝은 시장 외의 것에는 무지한 경제학자 중 한 명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치명적 잘못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공 분야 외의 것에 대해서 무지한 것은 거의 모든 학자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전공이 세분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전공 분야에 대해서까지 잘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더 큰 잘못은 그가 자신의 직책에 맞지 않는 언행을 하였다는 점이다. 그의 행동을 비유하자면, 마치 경제 관련 국책 연구기관의 원장이 우리 헌법의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폐지하고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어느 학교의 교수이거나 경제학자에 불과하다면, 이런 말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들이 노동정책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설립된 국책 연구기관의 수장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노동연구원이 중립적 시각에서 국가의 노동정책을 개선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행동은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연구원의 중립성을 훼손한 것으로서 매우 큰 과오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해야만 하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원장으로 부임하지 않는 것이 경제학자로서 올바른 태도였을 것이다. 그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원장으로 재직하다 임기를 마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되지만, 그로 인하여 훼손된 한국노동연구원의 중립성은 남아 있는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치유해야 할 상처가 되고 말았다. 단체교섭 성실 이행을 촉구하며 8일 째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조합은 29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운찬 신임 총리는 한국노동연구원 사태를 즉각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그러나 나는 그의 그러한 발언이 진실성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제헌 헌법 이래 한국 헌법에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계속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노사관계의 현실이 그러한 헌법적 규범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무지한 자들이 국가의 규범 체계를 비난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려 할 때에는 1차적으로 자신의 경험에서 그 정당성을 찾는다. 예컨대 폭력을 행하는 교사는 학생들을 규율하는 방법으로서 체벌(體罰)만을 떠올리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권력을 휘두른 경험을 가진 자들은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공권력의 확대나 민간인 사찰과 같은 과거의 도구만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법제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박기성 원장의 발언은 어느 정도 한국 노사관계에 관한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경험한 바와 같이, 한국 노사관계의 현실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단결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데도, 여전히 사업장에서의 복수 노조의 설립은 매우 어렵다. 공무원이나 교사의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통합된 공무원 노동조합이 민주노총에 가입하려고 하는 행위마저도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의 힘으로 국책 연구기관의 원장에 취임한 자가 헌법의 노동3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렇게 현 정부의 생각을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바람에 여당 국회의원으로부터 질책을 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결국 9월 18일의 해프닝은 노동정책에 관한 현 정부의 생각을 읽는 단초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법 개정 논의를 비롯하여, 향후 노동법 개정 작업과 관련하여 정부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434 | 추천: 0
허윤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최근(2009년) 다문화가정의 실태조사를 진행 중에 있지만, 2005년 1차 조사에 따르면 결혼이주민의 52.9%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구소득을 가지며, 특히 결혼이민여성의 57.5%는 절대빈곤층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는 많은 결혼이민여성이 자국의 가난을 피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본국에서 보다 더 빈곤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쉼터에 입소하거나 상담을 의뢰하는 결혼이민여성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가장 많이 호소합니다. “나는 첫 임신을 했다. 6개월이 되어 간다. 나는 아이를 낙태하고 싶다. 우리는 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남편은 택시 운전을 하고 있지만 거의 생활비를 가지고 오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은 1만원 어느 날은 빈손으로 들어온다. 남편이 회사에 내야 하는 돈은 하루에 78,000원이고 월급은 66만원이다. 만약 상납금을 내지 못하면 월급을 받을 수 없다. 남편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알아서 다 한다고 하는데 나는 두렵고 걱정된다. 산후조리는 어떻게 할 것이고 분유 값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나는 한국에서 우리가 이렇게 가난하게 살줄 몰랐다.”(베트남 N여성) 대부분 저소득 가정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남편의 임금에 전적으로 의존해 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이고 경제활동에 대한 의욕도 강합니다. 하지만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고, 가족들이(남편과 시부모) 일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행히 일자리를 얻어도 이주노동자들에 비해서 낮은 대우를 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사실 이주노동자들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결혼이민여성들은 가사노동과 육아뿐 아니라 시댁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의 제한도 많습니다. 결혼이민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60%정도인데, 음식점 종업원 등 서비스직(52%)이 가장 많습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로는 생계유지가 51%, 자녀교육비 충당이 17%입니다. 취업을 하지 못한 이유로는 자녀양육이 가장 많고(43%), 다음이 구직 실패(21%)입니다. 심각한 것은 15.5%의 가구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끼니를 거른 경험이 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E-6(예술흥행)비자로 한국에 왔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결혼 전 남편은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정말 잘해 주었다. 하지만 나와 결혼하면서 빚을 많이 졌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나 나에게 돈을 벌어 오라고 소리를 친다. 내가 번 돈은 남편이 다 가져가 버린다. 생활이 힘들어서 그런지 늘 싸우게 된다. 이제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남편은 나와 함께 외출하는 것도 싫어한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이 표 나게 될까봐 마스크를 쓰라고 하고 때로는 10m 떨어져 앞서 간다. 함께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없다. 그와 다정하게 웃으며 밥을 먹고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나 싶다. 나는 나를 사랑해 줄 다정한 남편이 필요하다. 아무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는 한국에서 나는 너무 슬프다.”(우즈베키스탄 K여성) 결혼이민여성들은 결혼을 통해 그들에게 친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 땅에서 남편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때로는 의지하는 남편에게조차 말을 걸 수 없는 언어의 장벽을 겪습니다. 더구나 자국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의 도움을 받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자국민을 찾기도 어렵지만, 결혼중개업체들이 자국출신끼리 만나면 도망갈 것이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그래서 어떤 시부모는 며느리가 도망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어도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결혼이민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도 합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결혼이민여성들 사진 출처 -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결혼이민여성들은 여러 가지 편견에 시달립니다. 한국에 ‘불법 체류할 목적’으로 들어온 여성들, 혹은 ‘가난하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게으르고’ ‘돈만 밝힌다’고 말합니다. ‘국적을 취득하면 도망갈 여자들’이라는 편견 때문에 국적취득에 협조하지 않는 남편들도 많습니다. 또 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엄마가 외국인이라 ‘언어지체장애’를 겪게 될 것이고,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해 ‘발달장애’를 보일뿐 아니라 학교에 가면 모두 ‘왕따(집단 따돌림)’를 당할 수 있으니 사회적으로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집단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정확한 조사나 근거자료도 없는 이러한 무책임한 편견들은 고스란히 차별로 이어지고 결혼이민여성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특히, 상담을 하다보면 결혼이민여성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 중에도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당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처음 보는 성인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당연하게 반말을 합니다. 어떤 방글라데시인은 가족들과 함께 외출하였는데 아이들 앞에서 한국인이 자신에게 반말을 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항의도 제대로 못했다고 했습니다. 또 결혼이민여성들은 가족행사에 배제되거나 가정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무시된 경험이 많습니다. 심지어 친척들에게도 소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결혼이민자여성은 시장에서 “외국인이라 표 나면 안 되니 말을 하지 말라”는 시어머니의 요구에 마음이 아팠다며 상담 내내 울고 가기도 했습니다. 사실 상담을 하다보면 밝은 이야기보다는 대부분 어려운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에 화목한 다문화가정도 많이 봅니다. 가족의 격려와 지지 속에 통역사로 활동하게 된 결혼이민여성의 기쁜 새 출발도 봅니다. 미용 기술을 배우고, 자국 결혼이민여성의 생활도우미로도 활동합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도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많은 부분 개방적인 사회로의 모습에 고무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혼이민여성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을 단순히 외국인 여성의 하소연으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이 땅의 아내요 어머니요 국민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상처는 우리의 상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3 | hrights | 조회: 55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