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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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ㆍ미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정부측 해명을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정부 스스로, 30개월 이상의 소를 수입하는 전제조건이 된 미국의 강화된 사료조치 내용을 오역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100분 토론에서 문제를 제기한 송기호 변호사에게 그가 오히려 사료조치를 오해한 것이라고 몰아붙이던 정부측 실무자의 기백은 온데간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unless’(~가 아니라면)를 ‘even though’(~에도 불구하고)로 오역했다는 것이니 변명할 염치가 없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인터넷 ‘괴담유포자’들은 영어몰입교육의 당위성을 국민에게 설득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고도의 전략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ㆍ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을 다루는 정부 관계자들의 영어실력이 이 정도이니 영어몰입교육을 당장 실시해야 한다는 우려가 생길 만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영어실력과는 관계가 없다. 협상단에 포함된 사람 중에 정상적인 상황에서 ‘unless’와 ‘even though’를 착각할 사람은 없다. 협상단 멤버들은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송기호 변호사보다 아마도 영어를 더 잘할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을 뿐이고, 송기호 변호사는 사안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보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또 송기호 변호사가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국제통상법 문제에 대하여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것이 적절한 문제제기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오역 사건은 영어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를 키워주는 교육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오른쪽)가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동물성 사료금지조치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오역 사건에서 더 실망스러운 것은 이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이었다. ‘언론친화적’(press friendly)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여러 사건들을 통해 몸소 설명해 주고 있는 이동관 대변인은 오역과 관련해 “본질과는 관련없는 우리측의 실무적인 실수”라고 해명했다. 실무적인 실수라는 것이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실무(實務)’란 “실제의 업무나 사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대체 정부가 해야 하는 일 중에서 ‘실무’가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러기에 이명박 정부는 내각도 ‘실무형 내각’으로 구성하지 않았던가. 솔직히 실수라고 인정할 것이지 거기에 왜 ‘실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가.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실무’ 내지 ‘실무자’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내 실수가 아니고 아랫사람이 실수한 것입니다”라는 문맥에서 주로 쓰였다. 최근의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내정자 시절 허위경력을 국회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자 실무자의 실수라고 했고, 창조한국당 이한정 비례대표 당선자도 선거공보에 인쇄된 허위경력은 실무자 착오로 기재된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가 재산을 축소신고한 것도 실무자 실수였다. 실무자가 실수를 저지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왜 윗사람들은 실수한 것이 없고, 실무자들만 늘 일을 저지를까. 그 답은 2008년 OECD 통계연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의 연간근로시간은 2005년보다 3시간 늘어나 2357시간을 기록했다. OECD 평균 1777시간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렇게 일을 많이 하니 실무자들이 실수를 저지를 수 밖에 없을 터이다. 앞으로는 실무자들 탓으로 돌리지 말고 본인 탓을 하는 높은 분들을 많이 보았으면 한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258 | 추천: 0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취임 70여일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28%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 임기 초에 이처럼 지지율이 떨어진 전례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의 추세를 보건대 지지율의 하락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처럼 떨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0교시와 심야 자율학습으로 대변되는 ‘교육 자율화’ 정책과 광우병 발생 위험이 높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미국으로부터 뼈 채로 전면 수입키로 한 정책이 민심을 극도로 자극한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의료보험의 민영화를 비롯하여 대운하 추진 등 이명박 정부가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계속 펼쳐가려는 모습에서 불안감을 크게 갖고 있었던 터에 교육자율화며 쇠고기 수입 검역주권 포기 등이 불에 기름을 얹은 격이 되었던 것이겠죠. 그런데 이 성난 민심의 표출 한 가운데에 10대 여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정당이나 단체에서 조직하지 않은 촛불시위에 1만 명에서 2만 명이 모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중에 상당수가 여중고생이라는 사실도 더욱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촛불시위 참여를 놓고 여러 집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고 교육 당국에서는 감시요원까지 파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선 10대들이 이처럼 행동의 전면에 나서게까지 이르게 한 어른 입장에서 너무도 부끄러워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정책들이 교육이든 먹거리든 자라나는 아이들의 생활과 건강에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인데 아이들의 안전이나 건강 등에 대한 고려가 없는 어른들의 정치적 행위 및 정책들이 너무도 한심한 수준이어서 도무지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정말 ‘오죽하면 아이들까지 나서겠는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시위에서 발언하는 10대들의 이야기는 예상 외로 야무지고 당찹니다. 그들은 절박하고도 당연한 요구를 어른들과 대통령을 향해 합니다. 너무도 쉽게 대통령을 향해 욕을 하며 탄핵을 요구하는 그들을 보며 대한민국도 이제 대통령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지난 대선 때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학교생활이 더 힘들어져서 안 된다고 학교 친구들이 이야기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어떻게 거짓말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상식에 기초한 전제도 당연히 깔면서 말이죠. 초등학생들이 장차 겪게 될 교육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벌써부터 갖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에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지난 6일 저녁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학생이 인터넷 용어 ‘2MB’ 를 이용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어쨌거나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갖는 아이들은 갈수록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이처럼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집단적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보며 ‘그런데 대학생들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소위 대학생이 되려면 일정한 경제적 능력이 되는 가정이라야 가능한 일이고 따라서 그들의 계급적 기반이 이미 상층부이며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겠죠. 대입이라는 관문을 뚫기 위해 죽어라고 공부만 하다 보니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며 또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미처 세상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죠. 더구나 앞으로 본인들의 취업문제에만 골몰하게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 놓았으니 그로부터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이라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앞으로의 삶의 시간이 지금의 대학생보다는 조금 더 많을 10대들이기에, 그리고 교육환경 및 급식환경이 얼마나 나빠지게 될 것인지를 뼈저리게 몸으로 느낄 그들이기에 본인들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찾기 위해 구체적 행동으로 나설 수 있게 된 연유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10대들의 반란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또 앞으로 이들이 유권자가 되었을 때 어떤 투표행태를 보일지가 무척 관심을 끕니다. 본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얼마나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스스로 확인한 마당에 장차 그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이들의 등장에서 약 15년 전쯤 서태지의 등장으로 문화적 충격이 생길 무렵 ‘현실문화연구’에서 나왔던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부제-더 이상 탄원은 없다, 돌파하라)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전복적 상상력을 외치던 그때의 메시지가 약 15년의 세월의 간극을 두고서 갑자기 현실화되어 튀어나왔다는 생각에 약간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물론 지금의 10대 부모가 386세대여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이들의 정치의식이 이 상태로 발전해 나간다면 20대 투표율이 하향곡선에서 상향하여 V자를 이룰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로 암울하고 걱정거리가 많은 상황이지만 10대에게서 희망의 싹을 보니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 됩니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289 | 추천: 0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험설계사로 이직한 분이 있다. 사회복지사들의 박봉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가정에 여러 일이 겹치며 늘어난 가계의 부담을 해결할 길이 없어 고민 끝에 다른 길을 찾은 것이었다.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며 묵묵히 일해 왔던 모범적인 일꾼이었기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직 이후 그 분을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보험설계사 교육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가치관이었다.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결국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로 꿈을 잠시 접기는 했지만 인생의 성패를 경제력으로만 설명하려는 것에 꽤나 마음이 상한 눈치였다. 이 어찌 보험회사 직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성공과 실패만 존재하는 단순한 로또식의 인생, TV만 켜면 나오는 드라마의 진부한 세계관이 아니던가.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국민들이 허망한 욕망의 바벨탑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난 4월 9일 총선이라는 한 편의 어이없는 드라마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돈 몇 푼 쥐어주고 표를 구걸하던 소박한(?) 돈 선거는 옛말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표 먼저 주어 당선되면 돈 벌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진보(?)한 뉴타운 공약을 보라.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사람이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가난과 사랑, 그리고 재채기란다. 하나 더하자면 ‘무식’이 아닐까? ‘무식’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지혜의 부족, 철학의 부족을 의미한다. 기술자의 기능, 회계사의 계산능력, 변호사의 법전 암기능력이 탁월하다 해서 지혜롭다 하지 않는다. 단순한 지식을 넘어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철학과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치판단 없이 얻은 평화와 행복은 거짓이다. 젊은이들에게 욕먹을 일이겠지만, 나는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우리사회가 좀 더 성숙한 민주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집값이 올라 손에 몇 푼 쥐는 것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넓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굴리는 것보다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빈민지역에서 주민들을 조직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나눔의 집’이라는 단체가 있다. 최근 그곳에서 20대 실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실무자에게는 성장과정 내내 자신과 비교되었던 사촌형제들이 있는데,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 때마다 곤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올 해 초 명절에도 친척들은 대학 졸업 뒤 대기업에 취직한 그 사촌형제들을 칭찬하던 끝에 자신에게도 연봉이 얼마나 되느냐 물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물음이었지만 거침없이 사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적은 액수의 연봉을 밝혔고, 어릴 적 내내 자신을 옥죄던 자격지심 같은 것은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당당할 수 있었던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지난 총선에서 진보진영이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에 별 관심이 없다. 정치권의 향방과 무관하게 진보적 가치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소수자들의 신음소리 역시 여전하며,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그 세상을 향해 다른 질서를 외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소중할 뿐이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262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찬이는 올해 특수학급의 3학년 학생이다. 찬이를 본 것은 2년 전 학년 초에 화장실에서였다. 지적 장애에 걸음이 많이 불편한 두 다리의 장애를 가진 학생으로 젖은 바지를 어쩌지 못해 엉거주춤 서있었고 그 옆에 할머니가 계셨다.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느껴서 찬이에게 다가갔지만 찬이는 완강히 도움을 거절했고 할머니는 난감한 얼굴로 우리를 보셨다. 그때 우리에게 너무 어눌한 표현으로 마지못해 묻는 말에 대답을 했던 소극적인 찬이를, 최근에 복도에서 마주쳤다. 찬이는 밝은 얼굴로 복도를 씩씩하게 지나갔다. 학교생활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몇몇 교사들과 함께 찬이를 특수학교로 전학을 보내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편한 두 다리로 학교생활을 해나기 힘들 것 같았고(계단과 화장실 등), 표현이 많이 어눌해서 학급 학생들 사이에 적응 또한 힘들어 보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서서 소변을 보는 등의 행동으로 인해 몇 달도 되기 전에 학교에서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찬이는 이러한 우리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빠르게 학교생활에 적응했는데, 학급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생활했고, 복도에서도 밝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교사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찬이는 적응을 잘해나갔다.   청주 금천초등학교에서 열린 통합교육 사례 발표회에서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들이 이 함께 어울려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교사들은 장애를 가진 찬이를 과도하게 보호하려고 했었고, 찬이를 위하는 방식으로 분리되는 교육방식을 택하는 “특수학교 교육”을 생각했었다. 학교는 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만남”을 통해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이질적인 타인에 대한 인정과 용납의 능력을 갖도록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장애를 가진 학생은 사회적응력을 높이고, 비 장애학생은 타인에 대한 관용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참다운 통합교육은 장애를 가진 학생이 비장애 학생들과 교류를 하면서 생활해 나가도록 기다리면서 지켜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백하건 데 떠난 탁이도 그러했다. 탁이는 자폐에 지적 장애를 지닌 학생이었다. 신입생으로 입학한 탁이는 잦은 지각과 결석, 학급에서 학생들의 물건을 훔치는 도벽이 있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수시로 학교를 뛰쳐나가 자전거로 학교 주위를 위험스럽게 다녔고, 학교 안에서는 교사식당과 시청각실 등 각종 특별실 앞에 대변을 보곤 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다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탁이는 학교생활이 1년이 지난 후에 졸업한 초등학교의 학생들에게서 돈을 빼앗았고, 같이 생활하는 특수학급의 여러 학생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보여 교사들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탁이의 격리만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서 탁이에게 전학을 권했고, 학교를 떠나보냈다. 이후 탁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고, 가끔씩 학교 주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탁이를 보면서 그때 우리가 조금 더 기다려 주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아직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270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새 정부 한 달 만에 많은 이들이 피로감을 토로하고 있다. 인수위의 설익은 영어몰입교육 정책 탓일까. 고소영, 강부자 내각 탓이 훨씬 커 보인다. 형님공천 파동에 출범 한 달 만에 맞이한 총선에선 심판론 마저 등장하였다. 대선 때 대표 공약이었던 경부 대운하 건설은 앞날이 구만리 같다. 총선에서는 명함조차 못 내밀었다. 지지하였던 국민들 앞에서 발가벗겨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오죽 실망하였으면 국정파탄 노무현 심판론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봉하 마을에 관광열풍이 불고 있을까 싶다. 까짓 것 한 달 남짓 겪은 일들이야 대통령 초보자로서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서 생긴 이런 저런 시행착오로 볼 수도 있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는데 이번 총선에서 한 번 더 믿고 밀어주면 심기일전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이게 시행착오가 아니라 진정한 본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시행착오는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전봇대, 남대문, 톨게이트, 정부부처 TF팀 해체 관련 소위 ‘MB’말씀은 소위 시이오(CE0)형 리더십의 세심한 현장 챙기기라고 봐 줄 수 있다. 그러나 사기업의 시이오(CE0)형 리더십이 왠지 불안하고 무섭다. 친기업 정부가 되어 기업이 원하는 규제는 모조리 풀겠다는 ‘비지니스 프렌들리(친기업)’정책이 참모습이다. 노사관계 법질서 확립이 시급한 과제란다. 가뜩이나 허리띠 졸라매고 있는데 분배는 나중에 알아서 할 테니 괜히 소란 피우지 말란다.   747 성장의 그날까지 ‘하면 된다. 잘 살 수 있다’라고 선동을 늘어놓는다. 60, 70년 개발독재의 망령이 무덤에서 부활한 느낌이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반대 집회에 백골단 투입, 집회시위 강경대응, 대운하 반대 교수들에 대한 정치사찰 소식을 듣자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떠오르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머슴 노릇은 차라리 쉬워 보인다. 땅도, 집도, 돈도 없는 서민들이 불평 불만하다가는 국민 노릇하기가 참으로 힘들 것 같다. 경기둔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여당의 총선 승리로 ‘성장중심’의 MB노믹스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약과다 싶다. 그나저나 ‘포스트 박정희’가 되고 싶은 MB집권 5년의 역사적 운명은 어떨까. 가설이지만 피력해본다. 그러하리라 확신한다.   MB 노믹스는 수정되지 않는 한 민중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파국이 불가피하다. 아무리 박정희의 성장지상주의를 외쳐본들 현실의 경제 환경이 그때와 다르다. MB 노믹스의 기본은 신자유주의 정책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공공의 분야를 줄여서라도 세계적 차원의 자본의 수익성을 보장해준다. 규제완화, 자유무역, 민영화가 특성이다. 박정희는 그 정반대였다. 국가 주도의 관치경제, 보호무역 아래 수출 위주의 성장이었다. 신자유주의 아래 박정희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포스트 박정희의 747 성장도 없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와 같은 다국적 기업의 수익성 앞에 서민보호 정책은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소위 초일류기업의 글로벌 경영과 서민경제는 상극이다. 글로벌 성장 뒤에 서민의 주름살만 늘어난다. MB 노믹스 아래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될 뿐이다. 행여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한 경부 대운하 건설은 파국을 재촉할 뿐이다. 서민경제의 피폐는 명약관화다. 민중이 대대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정권이 스스로 자초한 경제위기를 민간독재로 정면 돌파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민중은 등을 돌린다. 위기 탈출을 위해 박정희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수법을 차용하기엔 너무나 위험부담이 크다. 일응 형식적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존중해온 소위 좌파민간정부의 유산이 넘기에 만만치 않은 높은 벽으로 다가선다. 세계경제와 연동된 환경에서 경제위기가 도래할 경우 민간독재체제로 나아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민중들의 민주주의 투쟁역량이 신자유주의의 경제위기가 도래한 어느 경우에도 독재의 도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경제위기의 늪에 빠진 중남미 나라들에서 전과 같은 독재의 회귀는 없었다. 군부의 개입도 어려웠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중남미 예에서 보듯 자유무역과 민영화를 통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의 양극화만 심화시켰고 위기상황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중적 저항으로 좌파정권이 등장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중남미 좌파블록이 강화되고 있는 형세다.   한국경제의 불황과 위기가 극심해지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하는 한 위기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여준 소위 MB 노믹스로는 대선에서 지지하였던 고달픈 서민들의 경제현실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 벌써부터 국민들의 지지가 흔들리고 있다. 민중의 저항이 서서히 궤도를 따라 오르고 있다.   부자와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성장지상주의는 박정희를 꼭 빼닮았다. 복지와 분배는 안중에도 없다. 서민을 위한 민생경제는 부자와 재벌을 위한 성장경제의 떡고물에 불과하다. 747 성장정책의 수정 없이 민중을 거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참으로 걱정된다. 민중으로부터 외면당하지 말고 저항을 불러오지 않았으면 싶다. 지금처럼 그대로 가면 위기 탈출구는 없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266 | 추천: 0
-그럴 거 모르셨어요?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예상 했던 일들이 아닌가? 지난해 대선 기간 동안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교 학생들에게 때 아닌 괴담이 떠돌았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면 어찌어찌 교육정책이 바뀔 것이다 하는 내용들이었는데 이를테면 중학교에도 0교시가 생긴다거나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11시 이전엔 집에 못 온다거나 놀토와 방학을 없애고 학력평가 시험을 매주 단위로 치른다거나 하는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루머수준의 얘기들이어서 뾰루퉁 입이 나오도록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넋두리를 웃어 넘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사고 및 특목고 300개 설립, 영어 공교육 강화. 고교등급제의 실질적 부활 등은 이미 공약사항이어서 아이들을 얼마나 학습지옥으로 몰아붙일지는 이미 각오하고 있던 터이니 새 정부 들어 “어륀지”로 상징되는 영어 몰입교육시행 과정의 파행이나 중학교 1학년의 학력 진단평가와 그 후폭풍(사실 이것은 쓰나미에 가깝다. 몇 개 틀리지도 않았는데 강북에 사는 아이가 강남에 가면 하위권이다. 그러니 사교육의 유혹을 떨쳐버릴 부모는 사실상 대한민국에 흔치 않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지난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되었던 사진작가 이시우씨 사건이나 “6.25는 통일전쟁” 발언으로 옥고를 치룬 강정구 교수의 사건 당시 3.500여명의 보안경찰들이 환호 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는 그들이 새 정부 들어 얼마나 많은 공안 사범들을 만들어 내고 잡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경찰의 분위기가 그러하니 정보과 형사들이 대운하 반대 서명을 한 교수들에 대해 사찰을 감행 하거나. 유력한 야당 공동 선대위원장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일이 딱히 새로운 일은 아니다. 백골단 부활까지는 생각을 못했지만... 애초에 대규모 삽질을 공약 했으니 이전 정부에서 대운하에 부정적 의견을 개진했던 논문들을 폐기하고 정부 조직을 개편하며 대운하 기획단을 꾸려 내년 4월 착공을 목표로 은밀히 뛰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지 않고 그들이 만들었다는 대규모 홍보단의 터무니없는 광고가 총선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흩뜨려 놓을 것인가도 감당할 만하다. 작심한 듯 쏟아내는 고위급 관료들의 강경 대북발언들은 철저하게 “상호주의에 입각한 실용외교(?)”를 표방하는 현 정부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 일이라 생경하지 않고 “고소영”내각 “강부자”내각으로 일컬어지는 땅투기 전문 머슴들의 정부 장악도 그리 낯설지 않다. 가끔 이런 저런 모임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위직 공무원인 사촌형은 쌓아놓은 재산이 없어 머슴짓 못하겠다고 울분을 터트리고 새로 영어 학원에 아이를 등록시킨 학부모는 이게 사교육비 줄이는 일이냐며 한탄하고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에 암 치료를 포기한 구멍가게 아저씨는 경제를 살리겠다더니 지들 경제만 살리는거 아니냐며 분노한다.   “그런 거 모르셨쎄요?”    새 정부 들어서 처음으로 귀가 솔깃했던 정책 중에 서민생활 안정 대책 이라는게 있다. 굳이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일단 어감에서 주는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친근함도 호감이 가고 통 크게 **류로 따지면 약 20여개정도 관리가 되어도 충분할 것을 무려 50여개까지 확장 한다니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정리해보자. 서민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 우선 곡물류, 채소류, 육류, 과일류, 주류 등의 먹거리비용이 있어야겠고 대중교통비와 각종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 등을 포함하는 교통비, 우리아이 쪼다 만들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지출하는 학원비와 학교 운영비등을 포함하는 교육비, 의료보험료와 국민연금, 수도, 전기, 가스. 어쩌다가 발부받는 교통위반 스티커를 포함하는 공과금. 집 살 때 은행에서 꾼 돈이 있으니 연리 7%로 꼬박꼬박 나가는 은행융자금과 사무실임대료, 관리비를 포함하는 주거비. 메이커는 아니라도 철마다 한두 벌씩은 사 입는 의류비. 사실 정부에게 관리해달라고 요구하기 미안한 가족 여가비(박물관. 놀이동산. 각종 공원 등의 입장료)나 외식비의 일부도 거기에 포함되면 좋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대략 이정도 목록에 의료비정도를 포함한 서민 생활대책 안정 이라면 그럭저럭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실용정부의 혜택을 느긋하게 누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진짜 몰랐다 이른바 서민생활안정 대책에 포함된 품목이 발표된 날 애초 나의생각과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럼 그렇지”하는 자조와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하는 의구심 “해도 너무하네”하는 분이 치밀어 오른다. **류로 통칭되는 품목이 아니라 아주 친절하게도 단일품목으로 바리바리 싸주셨다. 쌀, 밀가루, 식용유 등 먹거리 23가지. 의류는 달랑 바지 한 가지. 화장지, 유아용품, 세제 등 그야말로 생필품 6가지. 참 열거하기도 치사하다. “발표된 52개 품목은 정부가 관리할 테니 나머지 필요한 수백 가지는 돈 많이 주고 알아서 해결 하세요. 능력이 안 되시는 분들은 꼭 요거만 먹고 싸세요”하는 말과 똑같지 않는가? 그럴 요량이었으면 아예 상표까지 정해주시던지. 이명박 대통령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통해 “공무원은 주인인 국민의 머슴”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내가 부리는 머슴이 “꼭 이것만 처 드세요”하며 차려주는 밥상을 군말 없이 처 드시는 주인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말 뿐인 주인노릇하기가 여간 속 터지는게 아니다. 무식한 국민들 세계시민으로 만들려고 영어 몰입교육으로 난리를 치더니 돈 못 버는 국민들 땅 파서 부자 되는 법 알려준다고 대운하 삽질을 예고하더니, 그도 안타까운지 시대를 잘사는 사람들의 표본을 보인다며 39억짜리 내각 만들더니 그 분들이 이젠 더 불쌍한 국민들 위해 밥상의 반찬 까지 관리 하겠다 하니 “그대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쪼그라들고 그대 등 뒤에 서면 한 없이 끓어오르는”국민의 마음은 감지를 하실런지. 빗겨 때려도 전치4주라고 대충이번 총선이 끝나면 180여석 이상을 가져갈 것이라는 정부 여당의 행태가 눈에 선하다.   물가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을 무시한 물가안정대책은 결국 서민들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사진 출처 - 이코노미21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각종 규제 법안들. 사학비리 줄이자고 만들어놓은 사학 관계법. 언론시장의 비정상적 유통과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신문법, 방송법등이 국회 합의 또는 날치기 정도로 개악될 것이고 더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남북 교류 협력법등의 통일 관련 법안들도 개악될 것이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백두산 관광, 남북한 장성급, 고위급 회담은 열리네 마네 할 것이고 경제 살리겠다고 내려버린 법인세. 부동산세를 포함한 각종 직접세의 세수 부족을 메꾸기 위해 또 다른 세금을 신설 할 것이다. 거기다가 국민연금 시원치 않으니 없던 일로 하십시다 얘기 나올 것이고 의료보험 재정 파탄이니 민간보험 강화하자 할 것이고 당연히 대운하 관계법은 만들어 질 것이고... 그 외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들의 국민 감시 관리 감독 기능들을 최대한 활용할 터이니 이 쓰린 가슴 달래려고 들이키는 막대한 소주 소비량을 국민의 간이 어찌 감당할까(다행히 소주는 이번 관리 품목 안에 있다. 거기다가 해장 하라고 콩나물까지. 참 감읍할만한 배려) 올해 찬바람 부는 가을쯤 또 순도 100% 서민들의 입에서 현 정부 여당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다. 예상하는 일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예상치 못하는 일이라면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 말도 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럴 거 모르셨쎄~~요?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254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매우 오랜 세월이 지난 느낌이 들어간다. 정권교체가 물리적으로 한 달여 남짓한데도 그렇게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지난 국민의 정부와 특히 참여정부에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올라 지탄받았던 온갖 악재들이 불과 한 달여 만에 실용정부에서 그 진수의 맛을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골에서 초롱초롱한 풋내기 대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서 학습효과를 종종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서 곧잘 수업시간에 나는 말하곤 한다. 나한테 배워가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지식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깨우치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나를 통해서 알게 된 지식이, 교과서를 통해서 익힌 지식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여러분들은 그 덫에 빠져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하여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못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람은 왜 배우고 학습하는가. 나는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어서 정확한 내용을 구사하긴 힘들지만, 상식적으로 학습의 목적은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지식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를 알게 되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동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배운다. 배워서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다. 불필요하고 무익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을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간파해 내는 것이 학습의 효과라 본다. 인간이 동물들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차이점도 클 것으로 생각된다. 생쥐가 미로의 길을 수없이 헤매고 반복하다가 탈출구를 찾아서 나가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서 점점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시행착오를 굳이 하지 않아도 제대로 학습을 하면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고등동물로 분류되는 소위 지식인들은 더욱 그러하리라고 본다. 하물며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국가의 정권을 쥔 사람들은 과거의 학습효과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를 다스리겠다고 하면서 국민을 겉보리 보듯이 무시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나라는 절단 나고 파탄의 늪 속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일 한국원자력 연구원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모두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그렇게 국민의 절대적 지지로 선출된 권력이 보여주는 작금의 행태는 무엇인가. 이 정권은 서민들이 잘사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자신과 동종 분류기준에 속하는 대한민국 1%에 들어가는 ‘강부자’ 사람들 일색으로 장관을 임용하였다. 인사는 코드가 아닌 일 잘하는 사람으로 임명하겠다고 하더니 인사 파이프라인이 ‘고소영 에스라인’ 이라는 코미디 같은 기사가 줄이어 나왔다. 경제 살리기를 하겠다는 미명하에 그토록 참여정부에서 비난해왔던 도덕적으로 하자가 큰 사람들, 특히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해서 탈법․불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을 대통령의 측근 사람들로 대거 들이 밀었다. 심지어 여론의 질타를 받고 물러나는 장관 후보자들도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뻔뻔스러운 행태를 반복하는지... 이 정권은 지난 10년간 정권 교체를 준비해왔다고 호언하여 왔다. 준비된 정권으로 경제 살리기를 하겠다고 떵떵거렸다. 그런데 그 준비되었다는 뚜껑을 열어보니 그동안 참여정부 등에서 질타 받았던 온갖 문제점을 그대로 반복하는 시행착오의 준비였다. 학습효과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학습을 통하여 잘못된 시행착오의 기술과 대통령 당선이라는 성취에 몰입하여 불필요한 ‘승부사의 오기’만을 반복하여 습득한 것이었다. 생쥐도 시행착오를 통하여 가장 효율적인 통로를 찾아내는데 그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이제 그 끝에는 ‘또 속았다’ 한숨과 절망으로 시퍼렇게 멍들어 가는 국민의 냉가슴이 있을 뿐이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252 | 추천: 0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매년 9월 10일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그런 연유로 작년 가을에는 특히 그즈음해서 자살관련 언론 보도가 유난히 많았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2005년 자살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26.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이며, 특히 2000년대 들어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 최근 20년간 자살률 증가속도와 노년층 자살률 분야에서도 한국이 각각 1위를 차지했고, 또 회원국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여성 자살률이 증가추세라고 한다. 한국인의 주요 사망원인 가운데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에 이어) 자살이 최근까지 4위를 차지하며, 자살 사망률 증가속도는 최근에 올수록 급증한다. 자살자가 1995년에 4,840명, 2000년에 6,460명이던 것이 2005년에는 12,047명, 즉 5년에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반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00년에 11,844명에서 2005년엔 7,776명으로 34.3% 줄었다. 즉, 2005년 현재, 자살 사망자가 교통사고 사망자의 1.5배인 것이다. 연령별로 보면, 1993년과 비교해서 2005년의 경우, 10대부터 30대까지는 자살 증가율이 2배 미만이다가, 40대와 50대는 2배 내지 2.5배 증가했고, 노년층인 60대 이상의 자살률은 3배 이상 증가, 특히 85세 이상의 자살률이 5.3배로 가장 크게 증가하였다. 아울러, 생산 활동이 가장 왕성한 20대, 30대의 사망원인 1위를 자살이 차지하며, 60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이 전체의 30.3%로, 중년 남성의 자살사망률 23.8%를 크게 웃돌고 있다. 노년층의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으로 노인부양이 거의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겨져 오다가 가족 통합이 약화되면서 그 충격을 노인들이 가장 크게 받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염세비관, 빈곤, 낙망 등의 신변 비관이 2002년엔 전체의 49.4%를 차지했던 것이 2003년 55.6%, 2004년 55.5%로 꾸준히 상승했다(신변 비관, 병고, 치정과 실연, 가정불화 순). 남녀별로는 남자의 자살사망률이 여자의 자살사망률보다 약 2배 정도 높았고, 연령별 자살 사망자수는 한창 일할 중견인 40대가 가장 많았다. 직업별로는, 2003년-2006년의 경우, 일반봉급자 자살이 전체 직업군의 7.3%로 가장 많았고, 농업 종사자가 전체의 6.7%, 노동자가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자살 사망자 중에서 무직자가 거의 60%에 육박한다. 이러한 자살은 개인 탓이라기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불평등구조 탓이 크다. 염세비관에 의한 자살은 2005년의 연령별 자살 원인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20세 이하의 경우가 57.9%로 염세비관으로 자살하는 생애주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고, 그 다음이 21세-30세(52.8%)였으며,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었다. 반면, 20세 이하 염세비관 자살은 2002년 41.9%, 2003년 53.8%, 2004년 56.6%, 2005년 57.9%로 매년 증가했다.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이 사회의 무엇에 대해 그리도 비관하는지 우리 모두 뼈아프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세계자살예방의 날인 지난해 9월 10일 경남 마산시 월영동 경남대 앞에서 경남자살예방협회 관계자 및 학생들이 생명존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어, 자살방지 대책으로는 (1)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정신질환 조기발견과 치료, 재활체계 등의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 강화, (2) 건강한 경제 기반 구축, 사회의 불안정성 감소, 도박과 범죄 등 사회병리 감소를 통한 이기적 자살 방지, (3)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자아 형성을 위한 가정과 학교의 노력, (4)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의 극단적 표현으로서의 자살을 대신할 수 있는 종교 및 문화의 역할 회복 등이 제시되며, 아울러, 남겨진 가족에 대한 정신·심리상담 및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된다. 자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역시도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자살 시도자가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저소득층이라는 점을 고려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친 사람의 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주는 방안,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이 함께 참여하는 ‘생명존중 인식개선 캠페인’ 실시, 자살방지 긴급 상담전화 요원 확충, 자살관련 유해사이트 감독 강화, 농약 농도 하향조정, 건물·다리 등에 자살방지 펜스 설치 의무화, 초·중·고에서의 자살예방교육 확대 등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고민 중이다. 미국은 정부 산하 자살예방센터에 매년 1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고 일본도 후생노동성이 자살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모색하여 2006년 6월 21일에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했다. “자살대책은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인이 있음을 감안하여” “국가, 지방 공공단체, 의료기관, 사업주, 학교, 자살의 방지 등에 관한 활동을 실시하는 민간단체, 기타, 관계하는 자의 상호 밀접한 제휴 하에 실시되어야 한다”며 국가의 책무, 지방 공공단체의 책무, 사업주의 책무, 국민의 책무 등을 규정하고 있고, 의료 제공 체제의 정비, 자살발생 회피를 위한 체제의 정비, 자살 미수자에 대한 지원, 자살자의 친족 등에 대한 지원, 민간단체의 활동에 대한 지원 등을 강구하도록 했다. 이런 사례들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경우에도 안명옥, 황우여 등의 국회의원 10인이 자살예방법안을 안명옥 의원 대표발의로 2006년 9월 19일에 발의한 바 있었다. 2008년 현재도 아직 의안계류 중인데 올해 4월 안에 통과되지 않으면 다시 발의해야 한다. 한국자살예방협회 등이 수정안을 준비하여 다시 발의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며, 정부 차원에서도 일본의 사례처럼 이젠 정부가 나서서 자살예방법을 입법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한다. 자살예방을 위한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인권단체들도 힘을 보태주어야 할 것이다. 자살예방은 이젠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사안이다.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 5개년 종합대책’을 수립해 몇 년째 추진하고는 있지만 역부족 아닌가? 인권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 생명권을 지키는 일에 인권단체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정부 및 국회에 압력을 가하고 시민사회 내에 생명권 의식을 확산시킨다면, 주위의 안타까운 자살이 줄어들고 자살예방법이 제대로 입법화되고 제도화되는데 꼭 필요한 원동력 내지 추진력을 보태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 5분에 1명씩 자살 시도가 이루어지는 등, 그야말로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자살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방치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급한 ‘인권 문제’가 또 있을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335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른바 국민교육헌장이란 게 제정된 1968년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어느 날인가 수업이 끝난 후 담임 선생은 국민교육헌장을 큰 소리로 다 외운 학생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먼저 할 사람부터 손을 들라고 했다. 나는 세 번째로 손을 들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시선을 뒤로 하며 자랑스럽게 교실 밖으로 나왔다. 첫 번째 두 번째 손을 들었던 학생들이 중간에 틀려 다시 해야 했으니 틀리지 않고 제대로 외운 건 내가 처음이었다. ‘민족중흥’이니 ‘인류 공영’이니 ‘상부상조’니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단어들을 앵무새처럼 외워댄 게 뭐 그리 자랑스러울 게 있을까마는 초등학교 3학년 꼬마에게야 남보다 빠른 암기력을 과시하고 남보다 먼저 집에 가는 게 일단 기분 좋은 일이었을 터다. 게다가 하나가 더 있었다. 내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국민교육헌장을 낭송했을 때 담임선생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잘 했어. 넌 애국자다.” 애국자라니... 드디어 나도 안중근 의사나 이순신 장군 같은 애국자 반열에 오른 거다.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었을까. 국민교육헌장이 일본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던 일제의 교육칙어를 본뜬 것이고 군국주의의 잔재이며 온 나라를 병영사회로 만들고자 했던 박정희 통치 이념의 산물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이나 지나 대학생이 된 후다. 적어도 그 이전까지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남보다 빨리 외운 애국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았다. 자긍심을 가지고 뭘 했냐고? 이를테면 이런 거다. 그 시절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 애국가가 울려나왔고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 그럴 때 나는 단 한 번도 자리에 앉아서 개긴 적이 없다. 늘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자리에 일어나 다소곳이 가슴에 손을 얹곤 했다. 속으로 딴 생각을 할지언정 그 경건한 애국 의식을 거부한 적은 없다. 또 있다. 매일 저녁 여섯시가 되면 국기하강식이란 게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국기를 보며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을 때 난 한 번도 이를 무시하고 그냥 간 적이 없다. 내 눈길이야 앞에 있는 아가씨 뒤태에 머물지언정 손은 늘 가슴에 가 있었다. 그 뿐인가. 뻑 하면 열렸던 반공궐기대회에 전교생이 동원될 때도 몸이 아프다든가 바쁘다든가 핑계를 대며 빠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뒷줄에 서서 친구들하고 장난질을 칠망정 나는 늘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의’ 현장에 함께 했다. 그런 대회에는 늘 머리에 띠를 두르고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 아저씨들이 손가락을 깨물어 쓰는 글씨가 무슨 내용인지 저 공설운동장 뒤편에 서 있던 나로서야 알 수가 없었지만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고통을 감수하는 그 아저씨들의 절절한 애국심이야 모를 리가 없었다. “정말 대단한 애국자들이야.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다니...” 나는 마치 내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기라도 하듯 슬그머니 감싸 쥐며 그 아저씨들처럼 애국적이지 못한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곤 했다.   1978년 국기하강식에 맞쳐 발걸음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시민들 사진 출처 - 뉴시스 그 시절에는 또한 애국애족의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에게 가차 없는 제재가 가해지곤 했다. 온 나라가 조국 근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싸우는 마당에 서양 사람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기타를 퉁겨대고 춤이나 추는 젊은이들도 당연히 제재 대상이 됐다. 역시 퇴폐적인 서양 풍조에 물들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아가씨들도 즉심에 걸려 유치장에 갇히곤 했다. 맹세하건대 그 시절 나는 길 가던 청년의 장발을 자르고 아가씨들의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던 국가 권력에 대해 단 한 번도 불만을 표한 적이 없다. 그런 게 다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믿을 만큼 애국자였던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의 애국심을 일깨우는 노래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방송을 타곤 했다. 아침마다 들리는 ‘새마을노래’, 6월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던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하는 6.25 노래, ‘싸우며 일하고 일하며 싸우는’ ‘향토예비군의 노래’, 그리고 ‘백두산의 푸른 정기’가 ‘이 땅을 수호하’던 ‘나의 조국’ 같은 노래들은 달리 배운 적도 없건만 어느 틈엔가 내 입에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늘 하루에 몇 번씩은 애국자가 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극장에서 애국가가 사라지고 국민교육헌장도 잊혀가고 국기하강식도 없어졌고 그 흔하던 궐기대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새마을노래나 ‘나의 조국’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경우도 없다. 툭 하면 사람들을 불러내 애국자로 만들어내던 강제 사항들이 사라졌으니 요즘 사람들은 도무지 애국자 노릇할 기회도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애국자 행세를 할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난리를 치는 모양이다. 월드컵 때가 되면 매일 원수처럼 싸우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함께 어깨를 걸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고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너나없이 독도를 사수하는 애국자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는가. 한때 담임선생이 인정한 애국자였던 나지만 언제부터인가 애국이란 말이 조금도 나를 감동시키지 않게 되었다. 내가 어린 시절 애국이라 믿었던 게 애국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까닭도 있고, 그 시절부터 누구보다 앞장서서 애국을 설파하고 국가관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자기 자식 군대 빼내고 이중 국적 얻기 위해 원정출산하고 부동산투기로 돈을 벌어온, 누구보다 반애국적 반국가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 때문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이제 국가라는 존재보다 나라는 존재, 혹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훨씬 더 가치 있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란 걸 깨닫게 된 까닭이다. 권정생 선생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 깊이 감동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96 | 추천: 0
- 대안적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기러기 아빠의 쓸쓸한 죽음….’ ‘기러기 아빠 주검 뒤늦게 발견’ 잊혀질만 하면 신문이나 방송의 사회면을 장식하던 ‘기러기 아빠’ 얘기는 어느 새 우리 사회에서도 진부한 소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조기유학이 늘어나면서 일반적인 현상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주위에서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아예 전 가족이 이민을 떠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우리 동네에서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반 친구들 가운데 1년에 한두 명씩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꼭 유학을 떠난다는 말을 들은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학을 떠난 친구와 두어 달 동안 인터넷으로 이러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어느 날부터 소식이 끊겼다며 아쉬워하던 아이의 모습에서 격세지감을 느낀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기러기 아빠에서 독수리 아빠와 펭귄 아빠를 거쳐 참새 아빠 등으로 세분화, 다양화(?)되는 이런 현실은 내게 그 실체를 콕 집어 설명하기는 힘들어도 분명 문제성 있는 모습으로 비쳐졌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에 그리 큰 관심을 두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의 삶과는 별개의, 동떨어진 세상의 얘기라는 생각에서였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꿈에도 꿔보지 않았던 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맙소사, 이젠 그게 아니다. 아내가 아이들의 유학 얘기를 꺼낼 때만 하더라도 ‘우리 처지에’ 하는 생각으로 눙치고 지나갔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스스로도 공부할 나이는 지났다며 수없이 머리를 두 손으로 싸매던 아내가 대형사고(?)를 치고만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법 운도 따랐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공부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나설 때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며 얕잡아 본(?)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전직 간호사 경력을 활용해 이러저런 시험을 친다고 준비하더니만 떡하니 생각도 못했던 호구지책에,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 나가는 아내의 모습에 예전의 그를 다시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아내의 새로운 변신은 내 삶의 행로도 다시 수정케 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고 있다. 내심 조금씩 삶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셈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때마다 대답은 대개 아내의 생각에서 결론을 맺게 된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숨 막히는 곳에서 창의력을 죽이는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다. 좀 모자라더라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열어주고 싶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그런 류의 생각이다. 문제는 그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부모의 역량이 평가받는 시대에 아내는 어떤 놀라운 힘으로 그 일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국경제 지금도 아내와는 이 문제를 두고 수시로 얘기를 나눈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하고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인지. 유학의 대상이 꼭 미국일 필요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선택 가능한 곳이 그 곳일 뿐이라는 데는 대체로 공감을 해가고 있는 편이다. (지금의 월급으로는 네 아이의 영어학원비도 댈 수 없는 판이니 경제적으로도 타산이 맞는 일이긴 하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자는 데까지 진척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롯한 개인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등 떠밀리듯 한국을 떠나보내는 것 자체가 ‘현실 회피’라는 열패감으로 괴로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새로운 세상과 부닥쳐야 한다는 점에서 오는 두려움도 적지 않다. 아내의 계획대로라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예의 기러기 아빠, 아니 펭귄 아빠가 되어야 할 판이다. 말 그대로 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나면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없어 1년에 한두 번 만나기 힘들다는. 이런 마당에 새로이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기러기 아빠를 더 두고 볼 수 없어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며 염장을 지른다. 문제는 영어 교육만이 아닌데도 말이다. “저런 철학을 가진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말은 어쨌든 한동안은 ‘펭귄’으로 살아가야 할 내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수없이 대안을 고민하고 그것을 실현하려 애써왔음에도 결국은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야만 하는 현실에 서글퍼지는 요즘이다. ‘참새 아빠’에서 더 분화돼 또 무슨 아빠가 나타날지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은 정녕 힘든 일일까. “학부모들의 허리가 휠 정도로 부담되는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어 교육만 국가가 책임지고 해 줘도 가슴 펴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더 이상 방송이나 신문에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던져주고 싶다. “문제는 그게 아냐, ○○야!”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52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