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펭귄 아빠’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3 18:04
조회
354

- 대안적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기러기 아빠의 쓸쓸한 죽음….’ ‘기러기 아빠 주검 뒤늦게 발견’


잊혀질만 하면 신문이나 방송의 사회면을 장식하던 ‘기러기 아빠’ 얘기는 어느 새 우리 사회에서도 진부한 소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조기유학이 늘어나면서 일반적인 현상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주위에서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아예 전 가족이 이민을 떠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우리 동네에서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반 친구들 가운데 1년에 한두 명씩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꼭 유학을 떠난다는 말을 들은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학을 떠난 친구와 두어 달 동안 인터넷으로 이러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어느 날부터 소식이 끊겼다며 아쉬워하던 아이의 모습에서 격세지감을 느낀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기러기 아빠에서 독수리 아빠와 펭귄 아빠를 거쳐 참새 아빠 등으로 세분화, 다양화(?)되는 이런 현실은 내게 그 실체를 콕 집어 설명하기는 힘들어도 분명 문제성 있는 모습으로 비쳐졌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에 그리 큰 관심을 두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의 삶과는 별개의, 동떨어진 세상의 얘기라는 생각에서였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꿈에도 꿔보지 않았던 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맙소사, 이젠 그게 아니다. 아내가 아이들의 유학 얘기를 꺼낼 때만 하더라도 ‘우리 처지에’ 하는 생각으로 눙치고 지나갔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스스로도 공부할 나이는 지났다며 수없이 머리를 두 손으로 싸매던 아내가 대형사고(?)를 치고만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법 운도 따랐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공부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나설 때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며 얕잡아 본(?)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전직 간호사 경력을 활용해 이러저런 시험을 친다고 준비하더니만 떡하니 생각도 못했던 호구지책에,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 나가는 아내의 모습에 예전의 그를 다시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아내의 새로운 변신은 내 삶의 행로도 다시 수정케 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고 있다. 내심 조금씩 삶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셈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때마다 대답은 대개 아내의 생각에서 결론을 맺게 된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숨 막히는 곳에서 창의력을 죽이는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다. 좀 모자라더라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열어주고 싶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그런 류의 생각이다. 문제는 그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부모의 역량이 평가받는 시대에 아내는 어떤 놀라운 힘으로 그 일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080305web03.jpg

사진 출처 - 한국경제



지금도 아내와는 이 문제를 두고 수시로 얘기를 나눈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하고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인지. 유학의 대상이 꼭 미국일 필요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선택 가능한 곳이 그 곳일 뿐이라는 데는 대체로 공감을 해가고 있는 편이다. (지금의 월급으로는 네 아이의 영어학원비도 댈 수 없는 판이니 경제적으로도 타산이 맞는 일이긴 하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자는 데까지 진척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롯한 개인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등 떠밀리듯 한국을 떠나보내는 것 자체가 ‘현실 회피’라는 열패감으로 괴로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새로운 세상과 부닥쳐야 한다는 점에서 오는 두려움도 적지 않다.


아내의 계획대로라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예의 기러기 아빠, 아니 펭귄 아빠가 되어야 할 판이다. 말 그대로 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나면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없어 1년에 한두 번 만나기 힘들다는.

이런 마당에 새로이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기러기 아빠를 더 두고 볼 수 없어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며 염장을 지른다. 문제는 영어 교육만이 아닌데도 말이다.

“저런 철학을 가진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말은 어쨌든 한동안은 ‘펭귄’으로 살아가야 할 내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수없이 대안을 고민하고 그것을 실현하려 애써왔음에도 결국은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야만 하는 현실에 서글퍼지는 요즘이다. ‘참새 아빠’에서 더 분화돼 또 무슨 아빠가 나타날지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은 정녕 힘든 일일까.

“학부모들의 허리가 휠 정도로 부담되는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어 교육만 국가가 책임지고 해 줘도 가슴 펴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더 이상 방송이나 신문에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던져주고 싶다.

“문제는 그게 아냐, ○○야!”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