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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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수위가 영어몰입교육을 제안했었다. 공교육 강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영어학원의 설레는 들썩임을 이미 누구나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기러기 아빠를 몰아내기 위해서 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더 많은 기러기 가족을 양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학교 현장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인수위의 한심함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정책을 제안하고 시행하려면 해당자들의 의견수렴은 물론 세심하고 정확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져야하고 신중한 계획아래 차분하게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수위는 학교의 영어교육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안다면 그런 정책을 그 여파나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그토록 쉽게 발설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영어몰입교육을 운운하기 이전에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몰입교육을 하는 나라는 오랫동안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나 핀란드처럼 다민족 국가로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다보니 영어를 통해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비교적 단일민족국가이고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과 과학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글이라는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즉 영어를 소통수단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능숙한 영어실력의 보유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열쇠인 것처럼 생각하는 인수위의 태도에 굳이 일본과 필리핀의 경우를 비교의 예로 들지 않더라도 영어가 그 기준이 되지 못함을 인지할 것이다. 영어권 국가들이 세계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지구화시대에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영어가 국제적 소통의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국제적 소통 언어인 영어를 필요로 하는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전 국민이 영어배우기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단지 국가는 필요에 따라 영어 배우기를 원하는 국민이 있다면 어떤 장애도 없이 쉽게 영어를 배우도록 그 여건과 환경을 제공해주면 된다. 그리고 인수위가 영어교육만이 아닌 교육의 목표를 큰 틀에서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틀 속에서 영어교육도 자리매김해야하는데 인수위는 현재 행하고 있는 교육의 목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영어교육을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육의 목표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현재 상황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지만 여타 과목의 수업 내용의 깊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모든 국민을 우매화시키는 것이고 교육의 다양성과 전문성, 창의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물론 여론의 반대로 영어몰입교육이 해프닝이 되었지만 인수위의 영어교육에 대한 인식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영어시간을 주당 1시간 더 늘인다고 영어실력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럴 경우 주당 수업 시간수가 바뀌든가 다른 과목의 시간을 줄여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자의 경우 현재의 많은 주당 수업시간도 문제인데 더 늘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후자의 경우 어느 과목의 시간수를 줄이느냐의 문제가 남게 된다. 여러 과목-특히 국어-을 통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인데 인수위의 생각대로 시행하다가는 영어만 할 줄 아는 국제적 미아를 만드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미국의 속국이니 51번째 주니 하는 비판을 듣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림 출처 - 한겨레21  공교육의 강화가 아닌 영어 사교육의 강화! 기러기 아빠가 아닌 기러기 가족, 펭귄 가족의 확대! 그리고 영어 사교육을 통한 심화되는 교육의 양극화! 그로 인한 부의 대물림 등...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파장을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을 인수위는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체하는 것일까? 진정 공교육의 강화를 원한다면 공교육에 돈을 풀어라! 2, 30년 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학교 환경에서 지구화시대를 논하고 어학을 배우기 위한 Lab실 하나 없는 학교 환경에서 영어몰입교육 운운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한 지금의 학교 현장과 기초 없는 건축이 대비되면서 현실성 없고 대책 없는 정책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면서 말만 공교육 강화란다. 이제라도 인수위는 반성해야한다. 그리고 깨달아야한다. 교육은 인간을 만드는 아주 신중하면서도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지난한 일련의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교육의 중심, 교육의 목표를 잃지 않아야한다. 불도저를 교육에 들이대지 말아야한다. 밀어붙인다고 되지도 않을뿐더러 잘못 밀어붙이고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감내해야하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 이번 영어몰입교육 사태를 교훈삼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열린 마음으로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공교육 강화를 위한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를...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02 | 추천: 0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히 비긴다.” 김훈 <자전거 여행>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치를 혐오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적인’, 혹은 정치지향적인 사람도 혐오하곤 했다. 이런 정치포비아는, 나와 같은 세대라면 지금도 고개를 끄덕일 법한 일종의 암묵적 합의 같은 거였다. 직접적으로는 운동을 출세(정치와 동의어로 인식되는)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부류에 대한 경계가 작동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4‧19 세대의 정치적 행보를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으려했던 386 세대의 순교자적 의식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 생활의 핸디캡이 될 것을 알면서도 정치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386 세대 역시 나이가 들어 학생운동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또한 학생운동 역시 정치의 일환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을 얼굴로 내세운 386 세대(일부)의 정치 참여는 4‧19 세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끝을 맺고 있다. 정치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시켰던, 덕분에 정치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불식하는데 도움을 줬던 민주노동당은 지금 심각한 내홍에 휩싸여 있다. 누가 뭐래도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는 ‘진보’가 잡고 있었다. 민주화는 시대의 명령이었고, 민주화 인사라는 칭호는 훈장이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그 헤게모니는 안티테제로서의 헤게모니였다. 모든 안티는 대상이 사라질 때 힘을 잃는다. 헤게모니의 꼭지점은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였다. 부패척결을 내세운 시민단체들의 이 운동은, 역설적이게도 이 운동이 시들해진 2004년 총선에서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역사는 강물과 같아서 한번 트인 물꼬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범사회적인 개혁 드라이브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고, 2004년 총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상 최초의 진보정당 원내 진출은 이런 개혁 드라이브의 맥락에서 가능했다. 이렇게 말하면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슬프게도, 민주노동당의 강령이 국민들을 설득한 결과가 아니었고, 노동자들이 노동자 후보를 찍는 계급 투표의 결과는 더 더욱 아니었다. 부패와 무능으로 표상되는 기존 정치권의 대안으로 국민들은 새 얼굴, 새 정당을 선택한 것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 역사상 최대의 물갈이가 이뤄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다시 말해 진보정당의 최초 원내 진출은 민주노동당의 자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비롯한 일련의 정치관계법 개정도 시민단체를 비롯한 범진보세력(물론 민주노동당도 포함되지만)의 노력의 결과였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굳이 민주노동당의 자력 운운하는 이유는 작금의 민주노동당 상황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분열’돼 있다.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착잡하다. 그러나 ‘분열’ 자체를 백안시해서는 안된다. 분열이란 내부 토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싸움을 지켜보는 대다수 구경꾼들은 싸움 자체를 즐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싸움 자체보다는 싸우는 이유가 더 중요하며, 궁극적으로는 싸움 이후가 더 중요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더욱 강도 높은 내부 토론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토론을 외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했다. 조승수 전 의원의 발언 같은 민주노동당원들의 공개적인 발언이 진작부터 더 많이 나왔어야 한다. 이른바 진보정당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국민들에게 알렸어야 한다. 그동안 국민들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민주노동당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어하는지. 심상정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대표와 다른 비상대책위원들이 지난 2월 4일 오후 국회에서 총사퇴를 발표한 뒤 “국민과 당원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진보가 새로운 사회의 이미지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분석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수구 혹은 보수는 정확히 그 빈틈을 파고 들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난리를 쳤다.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흔들어댔다.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정리 등에만 매달리는 이념정부라서 그렇다는 각주도 달았다. 결국 21세기판 ‘못살겠다 갈아보자’ 캠페인은 성공했다. 수구세력의 악다구니가 통할만큼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형, 이념적 체력이 허약하다는 점은 통탄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통탄할 일은, 진보에게는 이렇게 취약한 논리의 자기 프로그램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사노맹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윤아무개씨가 “나는 사회주의자요”라고 법정에서 당당하게 외쳐 화제가 됐다. 지금 진보진영은 그때보다 얼마나 발전한 걸까? 사회주의라고 선언적으로 말하는 게 용기 있게 보였던 시절보다 얼마나 더 깊이가 생겼을까? 웬 이념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내가 원하는 사회가 사회주의인지, 사민주의인지, 아니면 제3의 길인지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한 가지로 정리된다면 사회 각 분야별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토론해야 한다. 강령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다. 강령에 동의하지 못하면 따로 당을 만드는 게 낫다. 그 과정을 당원 및 국민들과 적절히 공유할 수 있다면, 작금의 위기는 오히려 약이 될 것이다. 정치를 혐오했지만 나는 늘 정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렇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281 | 추천: 0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1980년대 중반 나는 지방 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학년 여름방학 내내 전국체전 식전 행사 준비를 위하여 학교 근처 운동장에서 마스 게임 연습을 하였다. 2학기에도 10월 전국체전 때까지 오전 수업을 마친 후에는 그 연습을 해야 했다. 2학년 때부터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3학년 때에는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방과 후 10시 30분까지 야간자습을 했다. 그것이 내가 대학 입시를 위하여 한 준비의 대부분이었다. 그 무렵에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모든 과외가 금지되어 있었다. 언론은 학생들의 ‘학원에서의 학습권’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학부모들도 단지 학교가 학생들을 오래 붙잡고 공부를 시켜 주기를 원했다. 내가 살던 도시의 모든 고등학생들은 고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중학교 3학년 때 치른 연합고사 성적 하나로 인문계 고교의 진학 여부가 결정되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특별히 공부한 기억은 없다. 그 때도 과외는 할 수 없었다. 인문계 고교 진학이 결정된 이후 학생 자신이 학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당시 나는 동네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었음에도, 버스로 20분 이상 걸리던 곳에 있던, 설립된 지 10년이 채 안된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나는 별 불만 없이 그 고등학교를 다녔고, 부모님 역시 그 것 때문에 나의 장래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에도 과학 고등학교란 것이 있었다. 그 곳은 과학기술대학교와 같은 특성화된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입학하였다. 실제 그 학생들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이공계통의 전공을 선택하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합격 여부는 내신 등급, 학력고사 성적, 논술시험 등의 성적으로 결정되었다. 현재 제도와의 차이점은 논술시험 점수 편차가 매우 낮았다는 것, 학력고사의 과목 수가 많고 문제 유형이 비교적 단순했다는 정도였다. 내 기억으로는 논술시험의 점수 편차는 1, 2점이었다. 문제 역시 기초적인 작문 실력을 보는 정도였다. 따라서 대학들은 내신 등급과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해야 했다. 당시에도 서울의 어떤 지역의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얘기는 있었다. 그러나 대학이나 언론이 학교 간 학력 편차나 대학의 학생 선택권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고교평준화 시행계획이 발표된 1973년 3월 1일자 한국일보  신문  1980년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나처럼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를 나와 단답식의 학력고사를 치른 후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독재 정권이라는 어두운 환경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는 없었음에도, 학생들은 자기 돈으로 인문사회학 책들을 사서 읽고, 당시 막 판매되기 시작한 퍼스널 컴퓨터를 익히고 공부하였다. 대학원에 진학하였던 학생들은 생활비를 벌며 자신의 공부를 해야 했었다. 그렇게 공부했던 평준화 세대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지금 당연한 것처럼 얘기되는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 등과 같은 기초적인 민주주의 제도, 과거사 청산 등은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다. 그들이 없었더라도 지금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한국 경제가 다시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말하였다. 그 때 평준화 세대들은 부패한 정권을 교체하고, 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하여 새로운 산업을 일으켰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산업 구조가 바뀔 수 있었던 것 역시 평준화 세대의 공이었다. 평준화 세대들이 젊은 시절에 가졌던 희망과 그들이 익힌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하였다. 요즈음 교육 제도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의를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고교 평준화 정책과 대학 입시에 관한 것이다. 그 어지러운 논의를 보면서 나는 궁금해지곤 한다. 평준화 정책 및 획일적인 대학 입시 제도가 철저하게 관철되던 1980년대, 대학에 입학하였던 평준화 세대들이 그렇게 실패작이었던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이 이룩한 발전 중 상당수는 그들의 몫이다. 요즈음 거론되는 평준화 정책의 단점이 나타난 이유는 그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부족하였던 관료와 학자,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평준화 정책의 올바른 운용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 입시 제도를 수차례 바꾸고 특수목적고의 편법적 운용을 방임함으로써 평준화 정책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정책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문제점이 고교 평준화 제도 때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사실, 나는 교육에 관하여 문외한이다. 따라서 내가 교육 제도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말한다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다만 요즈음 교육에 관한 논의를 보면서, 자신의 품질(?)과 인재로서의 적격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평준화 세대로서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10 | 추천: 0
정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당신이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결백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에서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한다. 어차피 죄를 짓지 않았으면 무슨 걱정이냐고 묻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 것일까? 대체로 80~90% 정도의 신뢰도가 있다고 한다. 우리 말의 십중팔구라는 말이 있듯이 거짓말탐지기는 매우 신빙성이 높은 조사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저 80~90% 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의문이 든다.  범죄수사와 관련한 위 통계가 의미가 있으려면 다음 전제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위 통계는 범죄수사와 관련하여 작성된 것이어야 한다. 형사처벌이 전제되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과 형사절차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은 도저히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다. 부모님께 거짓말하는 것과 수사기관에 거짓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긴장되겠는가.  둘째, 대상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여부에 관해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거나 매우 부족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탐지기가 적어도 범죄 입증과 관련해 매우 신뢰성이 높다는 통계는 상당한 정도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원이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입장이라고 하겠다. 문제는 이처럼 신뢰도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조사가 우리 나라에서는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것을 전제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진술거부권을 사실상 침해하는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가능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검사관이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피의자 진술의 진위 여부를 살피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수사기관은 거짓말탐지기 조사시 대상자의 동의를 받기 때문에 진술거부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피의자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BBK 사건의 김경준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했다는 보도를 보고, 내가 처음 했던 생각은 “김경준이 거짓말이 했구나”였다.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더 큰 의심을 낳기 때문에 피의자가 이를 거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형사절차의 기본적 원리에도 반한다. 수사를 하더라도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피의자에 대한 수사절차를 종결해야 한다. 그런데 거짓말탐지기라는 과학적(?) 수단을 동원하여 피의자의 내심까지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의무가 없다. 속마음이야 말로 양심의 기초이며, 인격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사람의 속마음을 거짓/진실로 임의로 구분하여 버린다. 이러한 점 때문에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그 신뢰성 여부를 떠나 적어도 형사절차에서는 실시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프리카 일부지역에서는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끼리 새알을 주고 받도록 했다고 한다. 진범이 가장 긴장하고 있을 것이므로 새알을 깨뜨리는 사람이 진범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소 뭐든지 잘 깨뜨리고 부수는 편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탐지기 조사 역시 새알 주고받기의 진화된 버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64 | 추천: 0
한해가 지나고 새날이 밝았다. 어느덧 2008년. 쥐의 해다. 정신없이 한해가 지나가서 도무지 2007년에 개인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해가 마무리될 무렵의 일과 기억은, 앞으로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겠다는 생각에 좀체 머리에서 그 기억이 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런저런 분석과 전망들이 있지만 어쨌거나 별로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그저 그나마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를 너무 심하게 저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마저 생긴다. 얼마 전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성탄의 의미에 대한 설교 중 ‘금관의 예수’를 목이 메며 부르시는 것을 들었다. 가끔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어 찾아보아도 없던,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였다.   1.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2.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전곡을 다 부르지 않고 설교를 이어갔지만 마음속으로 나머지 가사를 읊어보았다. 70~80년대의 혹독하고도 암울한 상황과는 다른 지금이지만 여전히 상대적 핍박과 빈곤과 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숱한 비정규노동자들과 영세업체의 노동자, 농민, 그리고 이주노동자들...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한국의 숱한 개신교회와 천주교회 등에서 소리 높여 예수의 탄생을 노래하지만 마구간 구유에 첫 보금자리를 튼 예수는, 기득권층인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를 공격했고 또 그들로부터 계속 감시와 노림을 당해왔으며, 세리와 창녀들과 가난한 민중을 친구삼아 함께 먹고 마시며 어울렸던 불온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을 옥죄던 ‘율법’ 대신에 사람을 가장 중심에 놓는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던진 혁명가 예수는 내가 보기에 구약의 이스라엘 부족신인 ‘여호와’와는 많이 거리가 있는 존재로 보인다. 어쨌거나 한국의 개신교를 비롯해 천주교든 성공회든 예수가 아니고는 이스라엘 민족 종교인 유대교 틀 안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예수가 가장 중요한 틀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 예수가 오늘날의 한국에 온다면 과연 어떠할까? 과히 어렵지 않은 상상이니 독자 여러분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긴다.     2006년 12월 21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열린 개정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위한 총회 총대 비상기도회에서 목회자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해에는 옷차림도 괜찮고 얼굴에 기름기도 번지르르한 일군의 사람들이 머리를 깎는 진풍경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개신교의 유력한 목사들이었다. 아마도 개신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장로들이 사립학교를 경영하는 통에 그 눈치를 아니 볼 수는 없겠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들의 행태에 쉽게 동조하다 못해 머리까지 깎은 일은 안쓰럽다 못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나 이주노동자, 또는 부당해고 노동자 등 절박한 입장에 몰린 약자를 위하는 일이었다면 모르겠으되 이 나라에서 아주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가진 자들을 위해 머리를 깎는 그들은 이미 돈의 위력이 막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들의 ‘개’가 되기로 기꺼이 작심한 것일까? 그 누구보다도 사회적 가치 이상의 가치와 도덕을 가르치고 설교해야 그들이 아예 발가벗고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나팔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예수를 팔지 말고, 과감하고 솔직하게 이 사회에서 예수와 기독교라는 종교의 가치는 이제 폐기되었다고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이 사회는 ‘맘몬’이라는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리 알라고 정정당당하게 밝혀야 하는 게 아닐까? 더군다나 그들이 발 벗고 나서서 지지와 성원을 아낌없이 보냈던, 친기업적 정책과 능력 중심의 입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 중심주의 인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이제 아무 눈치 볼 일 없잖은가? 교회에 아무리 부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이 넘쳐도 “신자유주의여 만세!”라고만 외친다면, “부자들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들의 위상과 주머니도 더욱 든든해질 테니 그야말로 ‘지상의 천국’이 당신들에게 보장되지 않겠는가? 물론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하느님과 내세의 부활 및 천국이란 없다고 믿는 불신자들의 전형이니 이생에서라도 맘껏 누리겠다는 생각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단지 그들이 믿지 못하는 종교의 이름으로, 강단에서 궤휼로, 온갖 궤변과 감언이설로 숱한 사람들에게 거짓을 늘어놓으며 혹세무민하지 말고 하루빨리 정체를 밝히길 바랄 뿐이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70 | 추천: 0
우리나라는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7년 9월 30일 현재 국내체류외국인은 1,018,036명이고, 이들 중 합법체류자(등록외국인)는 788,873명이고, 불법체류자(미등록외국인)는 229,163명으로 불법체류율은 22.5%에 달합니다. 또한 결혼이민자는 2002년 34,710명에서 2007년 9월 30일 현재 107,641명으로 불과 5년 사이에 3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100명 중 2명은 외국인으로서, 우리 사회가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급속하게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미등록외국인 단속을 강화하면서 인권침해의 지적도 받았지만, 범칙금 면제 및 입국규제 완화 등을 통해 미등록외국인의 자진출국을 유도함으로써 외국인 체류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인권침해와 노동력 착취의 온상이었던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통한 합법적 노동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신매매의 형태라고 할 수 있었던 결혼이민자 여성들의 정상적인 한국내 정착과 올바른 가정확립을 위해 여성가족부를 통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 확대도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치료를 위해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외국인 산재환자 전용 치료병원을 설립하는 등 많은 노력과 개선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 바탕에는 국내체류 외국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애쓴 수많은 NGO단체들과 종교단체들의 노력과 협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외국인체류자들에 대한 배타성보다는 우리의 이웃으로 여기는 사회통합의 의지가 높아진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경제활동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더불어 사는 성숙된 사회가 된 것입니다.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병원의 병실에서 한 환자가 침대에 누워 병마와 싸우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이러한 배려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가 아닌 지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2007년 10월 1일부터 국가의 의료비 지원이 중단되자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의 무료진료를 담당했던 병원들도 재정적 이유로 치료지원을 중단하였습니다. 특히 중병에 걸린(암, 뇌질환, 심장병 등)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를 중단해야 하며, 죽음의 위험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도 크지만, 이들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자신의 병으로 인한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위협입니다. 사실 이들이 고국에 돌아간들 경제적 이유로 치료받기는 힘들고, 그 부담을 가난한 가족들이 고스란히 받아내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처지입니다. 그렇다고 중병에 걸린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우리가 치료해 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이들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이들이 이렇게 중병을 앓는 이유는 한국에서 일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평소 지병이 있었지만 본국에서는 가난 때문에 병원 진료도 한 번 받지 못하고 그럭저럭 견디다가 한국에서 힘든 일을 하다 보니 그 병세가 악화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료1)노동사목위원회 외국인 상담소 통계(2006년 1월 1일-2007년 10월 30일) 위 상담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의료지원 요청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50%이상이 중병환자이며, 대부분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이들은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신분상의 약자로서 떳떳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 D씨는 38세의 베트남인으로서, 2004년 7월 15일 한국에 입국하여 산업연수생으로 일했습니다. 2년 전부터 배가 아팠으나, 베트남에서 가져온 ‘배 아픈데 먹는 약’을 먹고 견뎌왔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족의 생계비 걱정 때문에 쓰러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아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전부터 통증이 심해져 국립의료원(정부에서 의료비를 지원하는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검사결과 대장암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사실 D씨로부터 도움의 요청을 받았을 때는 단순히 병원진료를 도와주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난감했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고 해서 급하게 수술은 하였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총 11번의 항암치료(항암제 주사와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는데, 매번 230여만 원의 듭니다. 정부의 의료비지원도 중단되었기에 100%로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또한 치료 중 체류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현재 미등록외국인(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되었고, 의료보험도 없어서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D씨에게 지금의 상태를 알려주었을 때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자신이 죽으면 가족이 죽는다고 어떻게 해서든 치료비를 마련하려 애쓸 테니, 꼭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저희도 이천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비용을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D씨의 가족은 아내(38세)와 딸(7살), 아들(2살)이 있는데, 베트남에 살고 있고, 고향에서 D씨를 도와 줄 수 있는 일가친척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의 치료비를 보테기 위해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녀가 벌 수 있는 금액은 우리 돈 5만 원 정도입니다. 남편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하루도 쉴 수 없는 상태이기에 아픈 남편을 간호하러 오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베다니아의 집(외국인 환자 쉼터-까리따스 수녀회 운영)에서 수녀님들이 D씨를 간호하며 치료 일정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먼 타국에서 죽을병에 걸린 남편의 소식을 접한 아내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어린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라 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며, 안타까움 이상으로 공포심으로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픈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 치료하며 도와 줄 수는 없겠지만, 단 한명이라도 살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려 달라 외치는 그들의 부르짖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의 외침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과 걱정에 목메는 외침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도 6백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이민이든 노동이든 학업이든 다양한 형태로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이 모두 건강하게 차별 없이 살기를 희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어려움에, 특히 중병에 처한 이들을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들을 돌보는 것이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가족들을 돌보는 일과도 같지 않을까요? 이들이 돌아가 고마움의 마음으로 그들 곁에 있는 우리 가족들을 잘 돌보아 줄 것입니다. 이것이 함께 사는 지구촌의 모습이 아닐까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3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앞으로 8번 남은 치료비 마련을 위하여 여러 기관과 선의의 뜻을 가진 분들께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무조건적인 자비심이 절실히 필요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55 | 추천: 1
어느덧 2007년도 빠르게 흘러 12월을 맞게 되었습니다. 연말이면 ‘나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여러분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를 풍성하게 살리는 ‘나눔의 신비’를 알고 계십니까? 물론 소극적인 나눔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모두를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천박한 자본주의 현실을 완화시키지는 못하는 줄 압니다. 오히려 칭찬과 드러내기 일색이어서 돕는 사람이나 도움을 받는 사람 모두를 더 천박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몇 해 전 결식아동 돕기가 붐처럼 일어 방송과 신문에서 눈물샘을 자극할만한 사연들을 골라 유독 경쟁적으로 보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방송사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들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한다는 조건을 걸고 어린이 공부방 몇 곳을 소개해 주었다가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TV에 결식아동으로 소개된 몇몇 아이들이 친구들로부터 ‘거지’로 놀림 받고 따돌림을 당한 것입니다. 책임이야 약속을 지키지 않은 방송사에 있었지만 누구 탓을 한다고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 공부방엔 아이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한 아이는 그 일로 학교까지 옮겨야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무료급식현장 노숙인 들에게 보내고 싶다며 모 회사에서 양말과 내복을 들고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넙죽 받았지만 그 뒤 그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적지 않은 실망을 했습니다. 회사 홍보를 위해 띠를 두르고 직원들이 그 선물을 직접 나누어 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물건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건 이후, 어떤 경우에도 수요자를 드러내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던 것입니다. 수요자의 구체적인 신상과 사연을 통해 호소하는 것이 구호단체들의 보편적인 모금기법인데다 구체적인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각종 취재를 매번 거절하는 일도 쉽지 않아 꽤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사실 모금이라는 것 자체가 그 목적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어야 설득력을 갖는 법이기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기부, 봉사, 자선행위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살 빼기를 위해 몇 백 만 원짜리 다이어트 약을 스스럼없이 구입하면서 구걸하는 사람에겐 두툼한 지갑을 뒤져 끝내 동전이나 천 원짜리 한 장 달랑 건네고 맙니다. 앵벌이 하는 아이들에게 동전 몇 닢 던져주며 그 아이들 수입이 적지 않을 것이고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열변을 토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름 석 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향력 있는 신문과 방송을 고르고 골라 기부하는 기업인들이 허다합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것인지, 그 일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줄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설령 무료급식소가 난립하여 노숙인 들이 하루 다섯 끼를 먹고, 앵벌이 아이들이 하루 수 십 만원을 번다고 한들 과연 그들의 삶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구걸의 이유나 그 배후나 그들의 행복 여부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먹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사먹을 만 한 돈을 조용히 건넬 넉넉함이 아쉽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려도 몰랐을 동전 몇 닢에 우리의 양심을 너무 값싸게 팔아버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처럼 기부와 봉사 활동을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사심(私心) 없는 사람을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보석처럼 느껴지는 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특별히 대우해 드리지 않아도, 요란스런 대가가 없어도 묵묵히 보이지 않게 남을 돕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 해 초겨울 일입니다. 추운 겨울 거리에서 무료급식을 받아 드시는 노숙인 들을 본 뒤 두 달이 지난 신문기사를 기억해 내고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엄청난 금액의 급식버스를 기증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느 날 불쑥 찾아와 비밀로 해달라며 적지 않은 후원금을 주고 가신 분들이 있는가 하면, 20년 째 빠짐없이 정해진 날짜에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사심은 사람을 눈멀게 하고 귀를 닫게 합니다. 어찌 나눔과 기부의 현장에서만 겪는 일이겠습니까. 대선을 앞둔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바로 그 사심 때문에 대의도, 진리도 잃고 결국 소인배로 전락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우리 개개인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지요. 가끔이라도 부끄러운 우리의 양심, 불균형한 우리의 가치관, 실종된 사랑을 돌아볼 일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행여 들킬 새라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배려하고 베풀었던 사춘기 시절 짝사랑의 아련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요란하게 떠벌이고 조건을 앞세우는 사랑이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아주 가끔씩이라도 상처받은 이들을 조용히 배려하고 그 은밀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80 | 추천: 0
요즘 제일의 화두는 역시 대선이다. IMF 사태가 발생한지 10년이 지났고, 87년 민주화 항쟁이 있은 지 20년이 지났다. 87년 대선은 노태우를, 92년 대선은 김영삼을, 97년 대선은 김대중을, 2002년 대선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2007년 대선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1997년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 우리 경제는 재벌 위주의 고도성장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며 파산 직전에 이르렀고, 이후 노동자들은 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거리로 내몰렸다. 재벌의 수익은 극대화 되었고, 중소기업의 수익은 반 토막 났다. 국민은 일생을 벌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고, 정상적인 노동을 통한 재산의 증식보다 부동산, 증권 투기를 이용한 재산증식에 온 관심이 뻗쳐 있다. 국가의 공교육은 붕괴되고,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나라 전체 부의 80%를 상위 20%가 전유하고 있고, 아랫목이 데워져야 윗목에 훈기가 돈다는 대통령님의 말씀이 있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윗목은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하고, 아랫목만 엉덩이를 데일만큼 뜨겁다. 20대 청년 실업은 유례를 찾기 어렵고, 그 결과 사고에 있어 진보적이어야 할 20대는 그 어느 세대, 그 어느 시기보다 보수화되었다. 그리고 2007년 대선은 경제를 살릴 적임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 하나로 정리되고 있다. 최근 삼성 문제가 그 정도를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눈을 뜨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심지어 삼성 그룹 차원에서 7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정부, 언론사, 검찰 등 어느 기관도 삼성 비자금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고, 국민은 철저히 기만당했다. 누구에게? 삼성에게? 아니다. 우리 사회 상부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제 세력이 우리를 기만한 주체다. 장롱 속 고이고이 모셔두었던 금붙이를 꺼내 헌납하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팔 걷어 부친 국민들의 귀한 돈은 재벌의 회생을 위한 공적 자금으로 사용되었고, 공적 자금을 수혈 받은 재벌은 오로지 제 배 불리기에만 급급했다. 재벌의 떡고물을 주워 먹은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길 거부하고, 검찰은 재벌의 뒤를 봐주기에 여념이 없고,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노동하기는 죽기보다 싫은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어디까지가 정치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경제의 문제인가?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이런 용어도 있었구나 싶은 말을 들었다. 바로 “선순환”. 악순환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 왔기에 낯설지 않지만 선순환이라는 용어는 30년을 넘게 살면서도 생소했다. ‘순환이 좋음 또는 좋은 현상이 끊임없이 되풀이됨’이라는 뜻의 선순환.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악순환에 너무도 익숙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재벌은 분식회계를 통해 수백억, 수천억, 수조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회사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작업에 사용하고, 비자금의 일부를 뇌물로 받은 검찰, 언론, 정부는 이들의 범죄와 비리가 확대재생산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재벌은 조금은 자신을 가지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다시 비자금을 만들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진학한 대학은 취업을 위해 거쳐 가야 하는 정거장 정도로 전락했고,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청년들은 비정규직이라도 외면하지 못하는 형편에 처해 있으며, 싼 임금의 젊은 노동자들이 넘쳐 나는 경제 구조 속에 30 ~ 50대 가장들은 언제, 어떻게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회사의 눈치를 보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평생을 모아도 월급만으로는 집 한 채 장만키 어려운 형편이 되다보니 전국은 부동산 투기장이 되어버렸고, 온 국민이 주식을 도박 수단으로 삼고 있다. 어느 고리부터 끊어 내고, 어느 고리부터 개혁해야 악순환의 구조가 선순환의 구조로 바뀔 수 있을까? 과연 지금처럼 ‘경제 살리기’라는 슬로건 하나만을 내건 대통령 후보들이 이런 선순환의 모멘텀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까? 총체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 어떻게, 어디서부터 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쇠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 만큼만 강하다.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의 부패를 어느 시점에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곪아가는 상처 부위를 어디서부터 메스를 델 것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부패가 사라진 영역을 투명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그러한 결정을 함에 있어서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치우침이 없는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대통령을 만능 해결사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가져다 줄 것이란 꿈은 일찌감치 버리자. 그리고 지금부터 다시 살펴보자. 우리의 앞으로의 5년을 책임질 대통령으로 누가 적임자인지를.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281 | 추천: 0
수동(가명)이를 만난 것은 3년 전 봄이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수동이는 당뇨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자기표현이 서투르고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못하는 등 매번 당황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였다. 수동이는 생활보호대상자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수동이의 아버지도 당뇨를 앓고 있는데, 고정된 일자리 없이 여러 지역 공사장을 다니면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수동이는 그런 아버지를 가끔씩 만나서 용돈을 받곤 했다. 공사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잇는 가정의 학생을 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니다. 하지만 수동이처럼 당뇨를 갖고 태어난 학생을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여러해 전에 만난 주원이란 아이도 당뇨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주원이는 안정된 가정에서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나름대로 질병을 관리할 수 있었다. 보건 교사로서 내가 주원이를 도울 수 있는 일은 다른 학생들이 모르게 보건실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하고, 혈당이 떨어지면 쇼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등의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수동이에게는 당뇨를 관리해 줄 수 있는 가족이 따로 없다. 관절염을 앓아서 움직임이 불편한 할머니는 노환으로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를 돌보시느라 수동이까지 돌보지를 못했다. 적절한 조치가 없이 그저 ‘방치’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동이는 자기 몸의 질병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렇다보니 보건 교사로서 수동이의 건강 상태를 크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질병에 대한 검진이나 처방, 지속적인 관리 방안 등이 있더라도 이 모든 질병 관리 체제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의학적 관리를 생활 속에서 구현시켜줄 환자의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동이의 경우도 그런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 수시로 수동이의 혈당을 체크하며 당뇨병에 대한 설명과 예방 방법 등을 알려줘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아버지나 할머니에게도 여러 차례 전화하여 수동이의 관리를 부탁했지만, 수동이의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당뇨의 날'을 맞아 무료검진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수동이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다. 돌발적인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수동이를 관리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학년이 바뀌었다. 그 후 매스컴에서 당뇨를 앓았던 유명 연예인이 시력을 상실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수동이의 눈을 보니 동공이 이상해 보였다. 놀란 마음에 급히 부모님께 건강검진을 하도록 하고, 담임교사와 함께 인근의 복지관에 연락해 학생을 돌봐주는 도우미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 후 수동이는 학교생활을 잘 하는 듯 보였다. 가끔씩 학교를 결석하기는 하지만. 당뇨는 음식조절과 운동요법 등을 통해 일생동안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중학생인 수동이는 가정과 학교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수동이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가면서 학교에는 당뇨, 고혈압, 비만인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정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도,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질병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하물며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들의 위험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국가에서 복지시스템을 학교와 연계해서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수동이를 관리해 주었던 지역 복지관이 있었지만, 청소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복지관은 적었고 이마져 홍보가 되지 않았다. 나 역시 어렵게 수동이를 의뢰해서 도움을 받았었다.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학생이 가난하다고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질병에 대한 대처가 사회 전체의 몫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 또한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더군다나 아직 자립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질병과 가난의 고통을 혼자만의 몫으로 떠맡아서는 더더군다나 안 된다. 질병과 가난의 이중고를 겪는 그 어린 학생들을 따듯하게 감싸안고 돌보아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54 | 추천: 0
지난 10월 4일부터 8일까지 오키나와를 방문하였다. 이번 일정의 대부분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를 제대로 보고 듣기 위해서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사이의 평화 교류회 행사도 가졌고 오키나와 주둔 미군 기지들을 둘러보며 기지 주변의 오키나와 주민들, 평화 운동가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3박 4일 동안 오키나와에 대한 향학열에 불타 많은 일정들을 소화해 나가며 호기심을 풀어나갔다. 바쁘게 움직이며 의문들을 풀어나가는 동안 어느새 오키나와에 흠뻑 빠져들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그날그날의 감흥을 도저히 이기지 못해 하루하루 술잔을 비우며 뒤풀이를 이어나갔다. 처음 방문한 오키나와 방문에서 보고 느낀 벅찬 감동의 여운은 “이오샤샤 하이야”로 들려오고 있다. “이오샤샤 하이야”는 오키나와 전통의 춤과 노래, 연주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우리의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오키나와의 전통 북춤 공연에서 무대의 춤꾼들이 전투적으로 북을 치며 “이오샤샤”를 선창하였고 관객들은 “하이야”로 흥을 돋구었다. 오키나와 전통 노래와 연주에서도 고음의 경쾌한 후렴구로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반주에 맞춰 “이오샤샤 하이야”를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오샤샤 하이야”와 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대동놀이의 한판은 두고두고 인상 깊게 남아있다. 며칠 전 딸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흥겹게 “이오샤샤 하이야”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키나와로부터의 감동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어른, 아이 모두에게 한결같다.    “이오샤샤 하이야”는 오키나와 전통의 춤과 노래, 연주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우리의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 그들은 삽시간에 어우러져 정을 나누는 것을 좋아들 한다. 한번 만나면 다 형제라는 오키나와 속담도 있다. 처음 만나 인사하고 음주에 가무로 이어져 형제와 같은 정을 나눌 정도로 정을 중시하였다. 우리와 진한 정서적 만남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의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여 일본 본토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오키나와 전통 무용과 음악 속에 대동의 한판으로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같이 하며 그들과 진정으로 하나 되는 큰 감흥을 얻었다. 류큐 왕국은 19세기말 일본에 정복되었다.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오키나와 말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대동아 전쟁의 목적 아래 오키나와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기지가 되었다. 오키나와의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는 조선인들도 강제 징용되었다. 오키나와는 일제의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의 출격 기지가 되었고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전 당시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군과 함께 동굴에서 옥쇄(집단자결)를 강요당했다. 오키나와인 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도, 오늘날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옥쇄를 왜곡 기술한 고교 역사 교과서에 항의하는 10만여 명이 넘는 오키나와인 들의 항의집회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와 닿았다. 우리와 오키나와는 미군 주둔 문제에 대하여도 동병상련의 처지다. 새로운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평택 주민들의 투쟁은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투쟁과 똑같았다.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후텐마 비행장의 대체시설로 헤노코 비행장의 건설 강행 역시 미국의 해외 미군기지 재편의 일환이었다. 오키나와의 헤노코 신기지는 탄약고, 유류저장고, 해상 비행기지가 한 기지에 일체화되어 확장 건설될 예정이었다. 헤노코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발진기지로 후방 보급기지로 기능할 것이다. 미군기지 건설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오키나와 민중들의 삶과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오키나와와 함께 연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다.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현장은 평화를 향한 의지와 실천으로 가득 찼다. 헤노코 기지 건설의 상징적 인물로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금까지 기지건설현장을 감시하고 있는 “가요” 아저씨의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투쟁열정을 잊을 수가 없다. 헤노코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우리들의 연대의 목소리를 담은 리본을 그 곳 미군기지 철책에 달았다. 한국, 오키나와, 괌을 비롯한 미군이 주둔하는 아시아 지역 민중들의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하 요우이치” 오키나와 기노완 시 시장은 우리들을 만나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를 향한 건설적 합의가 연이어 도출되어 그 이행과정에 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이 추진되는 등 한국과 오키나와, 그리고 괌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기지는 그 존재 이유를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고 하였다. 기노완 시장은 후텐마 비행장 기지를 없애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후텐마 비행장으로 인한 소음문제와 국제대학 헬리콥터 추락 사고와 같은 추락의 위험으로부터 주민들의 고통 해소를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후텐마 미군기지의 폐쇄와 조속한 반환을 비롯한 미군기지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를 위해 시정을 펼치며 반기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기노완 시청 옥상에는 미군 헬기에서 내려다  보이도록 크게 쓰여진 “DON'T FLY OVER OUR CITY! U.S. HELOs OUT NOW!" 라는 글귀가 있다. 기노완 시장의 시정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인상 깊었다.    헤노코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우리들의 연대의 목소리를 담은 리본을 그 곳 미군기지 철책에 달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미군기지 없는 평화를 향한 오키나와와 우리의 뜻이 같다. 함께 연대해야 승리의 길을 열 수 있다.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현장방문을 통해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의 발전을 위한 많은 교훈을 얻었다. 미국의 군사패권 유지를 위한 전략은 어느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미국의 군사전략은 우리는 물론 오키나와 민중들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애호하는 모든 민중, 나아가 전 세계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은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의 유지를 강요하며 한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방해하고 있다. 오키나와 민중들의 평화를 향한 염원과 우리들이 추구하는 반전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열망이 달리 느껴지지 않았다. 언어와 사는 곳이 달라도 오키나와 민중들과 우리는 미군기지 없는 오키나와, 미군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 동북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한반도의 반전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투쟁의 길에 오키나와 민중들의 미군기지 없는 오키나와를 실현하는 꿈이 이루어질 수 있고 오키나와 민중들의 미군기지 철폐를 위한 투쟁 속에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의 위기가 사라지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함께 연대하는 길에서 오키나와 민중들과 “이오샤샤 하이야”를 노래 부르고 싶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08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