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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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정부 각 부처의 브리핑룸과 송고실을 통폐합해 합동브리핑룸을 두는 동시에 전자브리핑제도를 도입하고 정보공개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취재의 제한이 심해지고 이로 인해 언론자유와 국민들의 알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언론보도에 대해 “이번 기자실 개혁조치가 마치 언론탄압인양 주장”하면서 “세계 각국의 객관적 취재실태를 보도하지 않고, 진실을 회피하고 숨기는 비양심적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더 나아가 ‘이런 식으로 특권을 주장한다면 원리원칙대로 대응하겠다’고 말해 바로 방을 빼버릴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집주인과 세입자 싸움도 아닌데 왜 갑자기 ‘방 빼!-못 빼!’ 논쟁이 불붙었는지 모르지만 마음은 착찹하기만 하다. 요즘 나는 국정브리핑 홈페이지를 가끔 들어가 본다.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배경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노리는 효과는 무엇인지가 궁금해서이다. 이 부분에 대해 며칠 전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접수했다는 연락조차 없다. 그중에 눈에 띄었던 글의 제목이 <‘황우석 사건’과 출입처 없는 PD들>이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출입처에 죽치고 앉아서 그저 던져주는 보도자료에만 의존하는 ‘출입처 저널리즘’으로는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도 없고 점점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렇게 우리 언론의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고 나아가 피디저널리즘을 치켜 세워주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지만 이런 제목의 글을 정부사이트에 버젓이 올리다니 한편으론 놀랍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제목을 <황우석 사건과 출입처 없는 PD들>이 아니라 <황우석 사건과 청와대> 또는 <황우석 사건과 정부>라고 바꿔놓고 보면 상황은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출입처에 죽치고 앉아있던 기자들이 당시 제 역할을 못했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과연 정부는 당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도 짚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사진 출처 - 노컷뉴스    2005년 당시 MBC <피디수첩>의 방송으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허위의혹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검증요구가 거셌을 때 황우석 교수에게 막대한 연구자금을 제공했던 과기부는 자신들이 검증할 사안은 아니라며 발뺌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만했으면 됐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식으로 사태를 덮어두기에만 급급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줄기세포가 허위였음이 밝혀진 후에도 당시 과학기술 보좌관을 비롯해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했다는 이야길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으로 물러났던 박기영 전 보좌관이 지난해 말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으로 다시 복귀했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기자실이 없어지고 전자브리핑 제도가 도입돼 취재관행이 바뀌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사건에 있어 실체적 진실이 보다 쉽게 밝혀졌을까? 과기부에 황우석 교수 연구의 실체와 연구자금 지원결정과정, 그리고 사후 검증과정에 대한 브리핑을 요구한다면, 그리고 관련 정보공개를 요구했다면 솔직히 응답해줬을까? 청와대의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과 김병준씨 등 이른바 ‘황금박쥐’ 멤버들은 이런 사안에 대해 어떤 ‘전자브리핑’을 했을까? ‘황우석 사건’과 ‘청와대’는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황우석 사건’ 뒤에 “출입처 없는 PD"를 붙이든 “출입처 없이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된 기자”를 붙이든 실체적 진실의 접근이란 측면에선 달라지는 부분이 과연 있을까? 이 글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라고 선의로 해석하고 싶지만 왠지 제 논에 물대기처럼 이 사안을 끌어들인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이 글에서 황우석 사태의 본질이나 당시 정부의 행태에 대한 반성은 없다. 단지 ‘출입처 없는 피디들도 이 정도 하는데 기자들 니들은 왜 출입처 없앤다고 악악대느냐’는 얘길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번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건 기자실 폐지문제와 기자들의 정부부처 사무실 무단출입제한이다. 언론은 이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이고 정부는 언론자유나 국민의 알권리와 기자실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며, 전자브리핑제도와 정보공개의 확대를 통해 언론자유와 국민들의 알권리는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브리핑제도를 실시하면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좀 더 많은 언론에 공평하게 전달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보는 정부부처로부터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될 뿐이다. 좀더 심층적인 질문과 답변 기회는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든다. 정보공개제도를 확대한다고 해도 정보공개 여부와 범위를 정부가 결정하는 한 일방향성은 마찬가지다. 언론이 정보공개를 요구해도 정부가 공개를 거부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기자실의 폐지는 그만큼 언론과 취재원 사이의 접촉기회가 줄어듦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가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거나’ ‘기자들이 좀 더 발품을 팔아야’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의 정보접근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효과를 초래한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지난 22일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공무원 관료조직은 특성상 정보공개제도가 활성화된다하더라도 정보를 순순히 공개하기 보다는 은폐하고 왜곡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접근 장치마저 막아버리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난 기자실 폐지논란을 보면서 문득 문득 한미FTA 논란이 떠오른다. 여기엔 비슷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선진국’이란 단어도 그렇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단어도 그렇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인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언론이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려면 ‘선진국’처럼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춰 취재지원 시스템도 선진화해야 한다는 주장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미 FTA 협상 때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반대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영화배우 이준기 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얘길 했다고 한다 “우리 영화인들, 그렇게 자신 없습니까?”라고. 요즘 기자실 폐지논란을 보면 나는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향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 기자들,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솔직해 집시다. 기자실 없애고 사무실 출입제한 한다고 해서 기사 못씁니까?”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대통령님,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솔직해 집시다. 기자실 그냥 둔다고 언론개혁이 안됩니까? 언론개혁 하려면 기자실 문제보다는 족벌언론의 문제, 자본에 의한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청와대나 정부가 황우석 사건이나 한미FTA 문제에 대해 솔직한 정보를 제공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피디라서 출입처도 없고 방 빼라고 해도 뺄 방도 없습니다만 대통령께서 이것만 약속해주신다면 저라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라도 기자들보고 당장 방 빼라고 얘기하겠습니다.”라고.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18 | 추천: 0
해외의 한 유명 오케스트라가 내한 공연을 했을 때다. 세종문화회관 앞 넓은 마당에 검은 세단 자동차가 줄지어 늘어섰다. 운전기사인지, 보디가드인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동차 주위에서 웅성거렸다. “여기도 차를 세울 수 있나?” 처음 보는 광경에 갸웃거리던 내게 옆에 있던 음악평론가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위로 올라가려고 기를 쓰죠.” 누구나 거기다 차를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방귀깨나 뀌는 분들에게만 특별히 허용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극장 로비는 서로 인사를 나누는 저명인사들로 붐볐다.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고관대작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자 극장 쪽은 보행자들의 공간을 주차장으로 제공했다. 주차는 주차장에 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은 보기 좋게 깨졌다. 난생 처음 국회의사당에 처음 갔을 때다. 의원회관에 들어가려고 앞문으로 갔다가 무안을 당했다. ‘민간인’은 뒷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였다. 국회 건물은 무지하게 커서 앞문에서 뒷문으로 돌아가는데 한참 걸린다. 한 여름 땡볕에 노트북을 매고 걸으며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회야?” 세월이 10년 가량 흘러 지금은 의원회관의 경우 민간인도 앞문으로 드나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국회 본관은 여전히 뒷문 신세를 져야 한다. 본관은 의원회관보다도 훨씬 더 커서 돌아가려면 5분은 너끈히 걸린다.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곳 중의 백미는 국제공항이다. 공항에는 이른바 ‘귀빈 코스’가 따로 있다. 전‧현직 대통령이나 3부요인, 외국공관장 등을 위한 것이다. 복잡한 출입국 수속을 공항공단이 대신 해주니까 본인은 귀빈실에서 앉아 있다가 비행기에 타면 된다. 전문용어로 ‘의전’이라고 한다. 문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지만, 방귀깨나 뀌는 분들이다. 이들도 특별한 대우를 요구한다. 의전을 받았네 못 받았네 하며 심심찮게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공항은 하나의 작은 정부라고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정부부처가 공항에 파견 사무실을 갖고 있다. 여기 근무하는 직원들은 출타하시는 윗분의 의전을 맡는다. 오너가 있는 언론사들의 경우 공항 출입 기자가 본인의 출입증을 이용해 ‘가방 모찌’를 하며 회장님을 모신다. 김포공항이 국제공항이던 시절, 어떤 언론사의 경우, 기사는 안 쓰고 가방 심부름만 하는 기자도 있었다.   일반에 완전 개방된 김포공항 귀빈실 입구의 모습 사진 출처 - 세계일보 한국의 특권층은 줄 서는 것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대중들 틈에 섞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일은 아랫것들을 시킨다. 그런데 왜 김승연 한화 회장은 맞고 온 아들의 분풀이를 직접 하려고 했을까? 왜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나섰을까? 짜릿한 ‘손맛’을 느끼고 싶었을까? 조폭 영화 흉내를 내고 싶었을까?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서진룸살롱 사건의 당사자-말만 들어도 기가 죽을 만한 ‘센 놈’-들을 데리고 가서 북창동 어깨들을 벌벌 떨게 했을 것이고, 경찰 총수 출신의 그룹 고문이 경찰에 전화도 한 통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누군데….”     돈으로 얻은 특권, 금권은 사상 최고의 자유를 누리고 있고 경제인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정치권력의 특권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부분적으로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돈으로 얻은 특권, 즉 금권은 사상 최고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면서 내야할 세금을 안 낸 이건희씨는 여전히 존경받는 경제인 1위에 랭크된다. 존경의 기준이 ‘돈’으로 바뀐 것인가. 김승연 회장이 무모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쉽게 용서해주는 착한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권의 뿌리는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쉽게 그러려니 하고, 눈감아주고, 잊어버리는….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295 | 추천: 0
오늘은 제26회 스승의 날이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오늘은 학교재량일로 정해졌기 때문에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런 저런 과정이 있었다. 우리 학교는 작년에도 재량휴일로 쉬었다. 올해도 2월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에서 2007년 학사일정을 정할 때 작년과 동일하게 진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휴일이 됐다. 사실 3월 학운위 회의에서는 스승의 날을 25일(올해는 석가탄신일과 노는 토요일 사이의 근무일이 됨)과 바꾸는 것을 안건으로 상정했었으나, 7:5의 결과로 2월 회의에서 정한대로 결정됐다. 사실 어느 날을 쉬건 연간 7일의 재량 휴일은 보장되므로 상관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스승의 날에 대한 학부모들의 부담감 때문이라면 곰곰이 생각해 볼 거리가 된다. 나는 학교 측과 학부모 측이 이런 풍토를 함께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에게 소위 ‘부담’을 주었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한 개인적 이해관계로 교육에 대한 소신이나 신념 없이 스승의 날을 활용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이미 깊은 불신이 팽배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골이 너무 깊어 어떻게 메워 나갈지 막막하긴 하지만, 혼란스러울수록 원칙으로부터 접근하면 항상 답이 있었던 것 같다. 스승의 날 전날인 14일 교무회의 시간에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에게서 하나하나 봉투에 담긴 서신(?)을 받았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자율휴업일로 지정해 휴교한 서울 한 초등학교의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리고 저녁에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스승의 날을 축하한다는 최첨단 동영상 카드를 전자우편으로 받았다. 20년 정도의 교직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보면 변하기는 많이 변했다. 스승의 날 대통령이나 교육감으로부터 축하를 다 받다니... 그러나 그 축하를 넙죽 받기에는 왠지 무엇인가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다. 마치 목에 잘 넘어가지 않는 무언가를 삼키는 것처럼 말이다. 왜 그런 것일까. 공정택 교육감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념일의 참뜻을 훼손하기보다는 교육부조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스승 존경 풍토를 훼손하고 교권을 실추시키는 현상이 반복’돼서인가.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학교가 희망이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익힐 수 있는 곳은 학교밖에 없고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1위가 교사들의 헌신과 노력 때문이라는 글과 본고사와 3불 정책 고수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계층이동의 희망을 살린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인가. 교사로서 솔직하게 자신에게 물어봤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고민해 보니, ‘선생님의 행복한 가르침이 제자들의 바르고 건강한 자람을 이끌고 그래야 희망참 미래를 맞이한다’라는 공정택 교육감의 말이나, ‘학교가 살아야 교육이 살고 교육이 살아야 미래가 있다’ ‘교육이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노 대통령의 말에 진정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진정성은 반드시 그에 대한 실천이 따라야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이 듣기 좋은 말들은 너무나도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책이나 현실적 상황들이 실천적이지 못하다.   진정성 빠진 공허한 교육찬가 그토록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교육재정은 형편없다. GDP 대비 공교육비 투자에 있어서 정부부담이 OECD 국가 평균 5.2%보다 0.6% 낮은 4.6% 수준으로 OECD 국가 상위 21개국 중 17위에 불과하다. 교육부도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국제학업성취도는 영역마다 1~4위를 차지하여 상위권에 속하나 학급당 학생수나 교원1인당 학생수 등의 교육여건은 평균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GDP 대비 학교교육비용 민간 부담률은 세계1위로 학부모의 사교육비 지출이 최고수준이고, 교원1인당 학생수는 30.2명(OECD 평균 16.5명), 학급당 학생수도 34.7명(OECD 평균 21.6명)으로 역시 평균이하다.   스승의 날을 맞은 지난 1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학생들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재정의 뒷받침과 교육여건의 선진화 없이 어떻게 공교육을 강화할 것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사교육 시장으로부터 학교교육을 어떻게 교육의 중심에 둘 것인가! 또한 교원평가에 대한 여러 이견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지만 실제 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체는 진정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교원평가의 전주곡과도 같은 성과급이 어떻게 지급되었는가. 성과급 지급 기준이 되는 지침을 방학 중 학교로 보내고 이틀 뒤에 교사의 등수를 매기고, 이를 기준으로 성과급이 지급됐다. 말이 되는가. 학생들의 성적도 연간 계획을 세우고 여러 단계를 거쳐 평가의 내용과 시기, 방법 등에 대해 적합여부를 판단하여 결정한 후 그것에 따라 교사가 평가하는데, 교육이라는 아주 종합적인 행위를 어떤 식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교사의 가르침이 인간에 영향을 미쳐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에 대해서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알 수 없다. 다만 교육적인 소신과 견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단순하게 줄 서라고 하지 말고 교사의 질을 높여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방법을 진정으로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스승의 날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이 충돌하지만 교육이 중요하다는데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아직 본적이 없다. 이런 저런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교육의 상황들이 아이들이나 교사들, 학부모들 모두를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으리라! 이렇게 서로 부담으로 다가오고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교육의 날’로 정해 보는 것은 어떤가. 우리가 그토록 희망이라고 이야기하는 교육에 대해 정말 희망적으로 돼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공교육 강화를 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를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날로 하는 것은 어떤가! 그래서 조금이라도 말뿐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실천되는지 짚어보는 것은 어떤가! 오늘도 ‘스승의 날’이라며 오래 전 5학년 때 담임이었다던 다 큰 제자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그때는 몰랐었다’며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마음에 남는 무엇에 대해 고백하는 어른이 다 된 제자로 인해 두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 하루였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0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집 마당은 쓸지언정 동네 골목길은 쓸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골목길의 쓰레기가 금방 자기 집 대문 앞도 더럽힐 게 자명한데도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여긴다. 이 근시안과 이기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한다. 자기 딸의 안전을 위해 정거장까지 마중을 나가는 부모가 성폭력의 방지와 예방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에는 냉담하다. 자신의 딸과 아내, 여동생을 위해 평생 그렇게 따라다니며 보호해 줄 작정인가.” 시민운동은 어떤가? “회원이 없고 회비가 없는데 시민단체가 제대로 움직일 리 만무하다. 그러다가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목소리를 높여 비판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슬을 먹고 살란 말인가.” “국민들이 한 푼 두 푼 성금을 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성명을 내고 문을 닫는 이런 상상은 어떤가. “국민여러분, 저희들은 최선을 다해 이 땅에 부패를 물리치고 정의를 세우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정말이지 힘들었습니다. 국민들의 침묵과 무관심에 저희들은 절망했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문을 닫습니다. 국민여러분, 잘 먹고 잘 사십시오.”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박원순,『한국의 시민운동--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중에서). 위의 글에 깊이 공감하면서 필자는 수많은 무심한 국민들, 수많은 무임 승차자들, 인권운동을 자기의 이상한 잣대로 재단하는 많은 이들, 그리고 인권운동가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고,  ‘그만 문 닫는 일’이 현실이 되면 어쩔 것인가라는 걱정도 해 보았다. 우선, 우리 사회엔 공동체에 대해 ‘절망적으로 무심한 국민들’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서울 지역 초등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시력이 나쁘고 또 요즘은 책걸상의 높이가 안 맞아 자세가 나빠지면서 걸리게 되는 척추측만증이 많다고 한다. 자기 아이의 시력이상, 척추 이상엔 관심을 가져도 전교생 대상의 척추검사를 교장선생님께 건의하거나 교실의 조명도가 적절한지 테스트를 의뢰하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권이 무엇이며, 인권운동이 왜 필요한지라도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인권운동에 대해 그들이 갖다 대는 잣대는 어떤 것일까? 옛날 그리스의 악당 프로크루스테스는 밤길을 지나는 나그네를 집에 초대하여 잠자리를 제공했는데, 그 딱딱하고 얼음같이 차가운 쇠 침대에 나그네를 강제로 묶어놓고는 몸길이가 침대보다 짧으면 몸길이를 늘여서 죽였고, 몸길이가 침대보다 길면 그 긴만큼을 잘라 죽였다한다. 그 침대와 몸길이가 똑같은 사람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다. 인권운동의 경우, 그것은 ‘좌파’들이나 하는 것, 반정부 세력들이나 하던 것, 또는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그리고, 매년 장애인주일 미사 때에 성당에 특별헌금 내는 것은 신자들이 할 몫이고 장애인이동권연대에 후원금을 내는 것은 신자 아닌 일반 시민들의 몫이라는 생각 등은 어떤 잣대에서 나올까? 과거 독재시대에 비해 현재 인권상황이 훨씬 나아지게 된 이유조차 인권운동과는 무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혹은 “으쌰! 으쌰! 좀 그만들 하라!”면서, 인권운동이 지금도 꼭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권운동가들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일하면서도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면 민생고 문제 때문에 일을 그만 두는 경우가 허다하게 생긴다. 인권운동가는 어쩔 수 없이 혹은 기쁘게 ‘이슬’을 먹고 살더라도, 그 가족까지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무심이 절망적인 수준이라면, 이제, 그만 문을 닫아버리면 어떨까?   가시 돋친 줄기 위로 피어나는 장미  1987년 6월항쟁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 내의 인권의식에 대한 실망이 ‘장미꽃을 보고 감격하다가 줄기의 가시를 보면서 갖는 실망’이라면, ‘가시 돋친 줄기 위에도 장미가 핀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는 이들은 ‘절망적으로 무심한 국민들’이 ‘희망가득 참여하는 시민들’로 거듭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장미 줄기의 가시를 세는 것보다 장미 봉오리를 꿈꾸며 움트고 있는 싹을 센다.  필자의 경우, 인권연대 운영위원회에 나갈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매달 회계보고를 접하면 몇 달 밀렸다가 내곤 하는 사무실 임대료 까지 감안하면 늘 적자, 인권강좌 열어서 보람 많이 느꼈지만 또 적자, 민생고 문제로 활동가 결원이 생기는 안타까운 상황과 이어지는 새로운 충원도 쉽지 않은 상황, 그리고 숱하게 터지는 인권침해 사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에 ‘절망적으로 무심한 국민들’, 이 모든 것은 장미 줄기의 가시들에 해당된다. 허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줄기 위로 장미가 피고 있다는 사실이며, 믿음이다. 이렇듯, 줄기에 싹들이 움트고 있다는 소식도 많이 접한다. 인권강좌를 수료한 이들이 새로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매번 소식지의 활동일지를 꽉 메울 만큼 인권연대는 활동하는 것이 많고 의욕도 아직 충만하다는 사실, 순수하게 인권운동을 해오고 있다는 평판, ‘인권교육’을 꾸준히 정규적으로 하고 있고 늘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인권단체로서 인권연대가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 동시에 인권운동의 영역도 넓혀가고 있으며 매년 초엔 하고자 하는 사업계획이 너무 많아 한참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 작은 단체인 인권연대를 시민사회 곳곳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고 늘 순수하게 인권운동만을 해왔고 늘 그럴 거라는 믿음과 약속, 이런 것들을 열거해 보면, 우리는 장미 줄기에 난 가시의 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 봉오리를 꿈꾸며 움트고 있는 싹들을 세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많지는 않아도, 매번 인권강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보며, 그들의 진지한 표정과 인권에 대한 호기심과 목마름을 보며, 우리는 ‘절망적으로 무심한 국민들’이 ‘희망 가득한 시민들’로 거듭나는 상상을 하자.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04 | 추천: 0
오부자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가기 돈 많은 부자(富者)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네 아들을 키우고 있어 나까지 합쳐 오부자(父子)이니 곧 내 얘기, 우리 가족 얘기를 하려는 참이다. (이런 나를 두고 富者라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긴 하다) 부끄럽지만 모든 아이들은 천사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 몸으로 느끼고 체득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네 녀석들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이런 부끄러움조차 알지 못하고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때때로, 아니 자주 아이들이 축복이라기보다는 짐으로만 다가오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로서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던 때였다) 이 시기에는 ‘버릇 고쳐준다’는 명분으로 혼도 많이 내고 ‘엄한 아버지’가 당연한 내 몫인 양 생각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내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그러지 않으셨는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품을 때도 없지 않았다. 아마 환경적 요인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조그만 일이 커져,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적인 일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기도 했던 집안의 내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나 나는 대인관계에 있어 무척이나 조심하는 편이다. 나로 인해 어떠한 피해도 상대에게 끼쳐선 안 된다는 의식이 오랜 동안 내면에 자리 잡아 왔다. 이런 의식은 깨닫지 못한 사이 종종 결벽증으로 나타나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런 삶을 스스로가 만든 족쇄로 받아들이고 ‘강박’을 조금씩 허물어내기 시작한 것 또한 네 아이들 덕이니 나는 아이들에게 감사해야 될 게 우선 하나다. 한번은 아내가 “어쩌면 아무개가 당신을 꼭 빼닮았냐?”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아내가 말하는 이유를 들어보니 그 까닭이 내가 평소 그 녀석에게서 답답해하고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바로 그 점이었다. ‘허허 참, 어이없어.’ 겉으론 웃고 말았지만 아내의 조그만 관찰(아니, 이것도 돌이켜보면 나와 아들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과 오랜 관찰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이 가져온 변화는 적지 않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그 녀석이 하는 태를 유심히 지켜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의 어떤 부분과 많이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조그만 단점마저 내가 물려준, 나의 한 부분이며 그 녀석은 아직 그것을 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간 녀석에게 품었던 생각에 미안해지기도 했다. 이 일이 전기가 돼 나는 가끔씩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녀석들의 어떤 점이 내가 물려준 것인지 찾는 재미도 적지 않다.   필화(筆禍) 또는 설화(舌禍) 기억의 내면화 한번은 우리 집에 놀러온 동서가 “녀석들 아빠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네”하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내가 거실에 있으면 안방에 가서 놀고 안방에 들어가면 거실이나 작은방으로 쪼르륵 달려가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나는 그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잔소리꾼’ ‘폭군’이었던 셈이다. 우리 역사에는 몇 줄의 글이나 몇 마디 말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 했던 사례가 적지 않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표현의 자유가 권력을 지닌 이들에 의해 멋대로 재단됨으로써 일어났던 피비린내 풍기는 역사는 그리 멀지 않은 우리 현대사에도 아픔을 새겨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이들과 놀면서 가끔씩 이런 역사를 떠올린다면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아이들끼리 주고받는 말이나 행동거지에서 거슬리는 것이 있을 때 나는 대놓고 야단을 치는 편이다. 가끔씩 내 성에 못 이겨 화를 내기도 한다. 엄한 심판자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아내는 “애들이 다 그렇지”하는 말로 눙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아빠였다. 아마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필화와 설화로 공권력에 적잖이 시달려야 했던 우리 역사나 가깝게는 집안의 내력이 부지불식간에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림 출처 - 동아일보 우리 아이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식은 아이들에게 아이들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셈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이 어떻게 놀든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다. 순간순간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아이들에게서 ‘나’ 찾기 우리 집에서 네 아이의 교육은 거의 아내의 손에 맡겨져 있다. 별난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아내의 교육철학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금껏 어른들의 필요에 따라 아이들을 이러저런 학원으로 내몬 적이 없다. (물론 네 녀석 학원 보내려면 등골 빠질지 모를 일이다) 자기들이 꼭 배워보고 싶다는 수영이나 바둑, 미술 학원에 얼마간 보내본 적이 있지만 그것도 식상해 하면 억지로 보내지 않는다. 전에는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하는 식으로 밀어붙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교육적 효과가 별로여서 이내 생각을 접었다. 한 녀석 한 녀석 재능이 다 달라서 누구는 바둑에 재미를 들여 자기가 다니는 학원에서 1등을 하는가 하면 어떤 녀석은 창작만화 그리기로 생각지 않은 상을 타오기도 한다. 손재주가 좋은 둘째는 종이접기 카페를 운영하며 손수 만든 종이 작품을 올리기도 한다. 누가 시키거나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부모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해내는 모습들을 볼 때면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란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적지 않다. 수많은 피해의식과 자격지심들이 뒤섞인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남자로, 아버지로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을 살며 그 속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나 또한 행복해진다. 부족하기만 한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여기는 아이들, 나는 그래서 아이들과 더 친해져야 하고 그들에게서 더 배워야 한다. 이것이 신이 아이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는 축복의 메시지가 아닐까.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71 | 추천: 0
경찰서 유감- 돌연사 유족 수사에 존중과 배려 있어야 지난 토요일(21일) 오전, 함께 일하는 직원이 갑자기 모친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 중한 병을 앓는다거나 연세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는 터라 깜짝 놀랐다. 서둘러 빈소를 마련했다는 병원에 가 보니, 황망한 일을 당한 우리 직원은 역시 넋을 자주 놓곤 해서 몹시 안타까웠다. 아직 빈소에 시신을 모시지도 못하고 일가친척 몇 명만이 분향소를 마련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경찰이 왔다. 지병이나 노환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돌연사이기 때문에 일단 ‘사고사’로 보고 사체 검안 등, 절차에 따라 수사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경찰은 현장을 처음 발견한 가족인 우리 직원과 부친더러 조서를 작성해야 하니 경찰서로 와 달라고 했다.   기가 막혔던 경찰의 첫 질문 경황없는 두 사람만 경찰서에 보내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동행하기로 했다. 같이 경찰서에 가서, 두 시간이 넘도록 심문을 받고 마지막으로 지문 날인하고 나오는 부녀의 모습을 옆에서 보자니 몹시 안쓰러웠다. 경찰이 제일 처음 물은 질문은 기가 막히게도 망자가 생명보험에 가입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것부터 시작해 여러 정황에 대한 심문을 ‘폭력팀’ 담당 형사가 ‘관례’에 따라 해 나갔다. 그러고 나서 부친과 우리 직원을 한 사람씩 따로 심문했는데, 그때는 가까이 있지 못하게 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지는 들을 수 없었다.  한 사람당 20분 정도만 심문하면 된다고 했는데 우리 직원은 한 시간이 넘도록 심문이 끝나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오후 세 시 반에 경찰서에 도착했는데, 끝난 시간은 여섯 시가 다 된 무렵이었다. 두 시간 반여 동안 지켜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우선은, 유족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졸지에 가족을 잃어 말할 수 없이 큰 상실감과 슬픔에 빠져 있을 식구들에게는 폭력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강력계 형사보다는 전문적인 심리 상담 능력이 있는 수사관이 필요한 게 아닐까. 우리 직원은 어머니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마저 드는 듯 처음에는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했다. 유족에게는 마치 피의자처럼 정황을 되풀이 설명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것 같다. 물론 사고 경위를 정확하게 조사해야 하겠지만, 같은 질문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자칫 사고를 겪은 가족이 한 번 더 같은 고통을 당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일선 형사에게는 그런 요구가 무리일 수 있을 테니 더욱 심리 상담 전문 수사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여성을 남성 형사가 심문하는 상황이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 경찰이 폭력을 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경찰서라는 낯선 곳에 와서 무뚝뚝한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냉정한 질문을 듣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그렇게 느껴졌다. 경찰서에는 피의자만이 아니라 피해자나 참고인으로도 많은 여성이 방문할 텐데 왜 여성 경찰관은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이는 걸까.    존중과 배려가 인권의 기본 남성이라고 무조건 폭력적이거나 여성과 대화를 잘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피의자든 피해자나 참고인이든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상태를 좀 더 세심하게 파악하고 배려하면서 조사한다면 사실 파악도 더 잘 될 것이고 조사받는 당사자도 불쾌한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다. 조사 대상이 여성인 경우 여성 경찰관이 좀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2004년 12월 성폭력 피해자를 수사할 때에는 여성 경찰관이 의무 배치되도록 경찰청이 방침을 정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꼭 성폭력 같은 지독한 일을 당해야만 여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나. 그렇게 범위를 한정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어떤 고통이든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기본일 테니 말이다. 고통의 크기는 남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45 | 추천: 0
영화 ‘300’이 말하는 리더십의 교훈-지도자 개인의 능력보다 구성원과의 소통이 중요 ‘300’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본의 아니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보았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교회 청년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욕 먹어가면서 본 영화지만 억울하게 재미있는 영화도 좋은 영화도 아니었다. 그저 선정적이고 남성적인 영화일 뿐이었다. 전투 장면은 지나치게 잔인했고 벌거벗은 병사들의 근육은 현실 같지 않았다. 이야기의 내용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레오니다스가 의회 원로들의 반대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최정예군 300명을 이끌고 나가 페르시아 군 100만에 맞서 싸우다 전멸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두 인물의 대조(對照)로 전개된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인데, 확연하게 대별되는 두 사람의 리더십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레오니다스는 헌신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구사한 반면 크세르크세스는 공포와 권위로 조직을 장악하며 군대를 이끌었다. 극중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크세르크세스가 “나는 승리를 위해 내 부하들을 죽일 수도 있다.” 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잔혹성과 능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를 비웃듯이 레오니다스 왕은 “나는 내 부하들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 라고 말한다. 참으로 엄청난 차이가 드러나는 말이다. 그리고 레오니다스가 전쟁터로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전하는 한 마디, “그들을 존경하면 너 또한 그들로부터 존경받을 것이다.” 아무리 영화지만 참 멋진 말이었다. 결국 이 희생으로 인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조직적으로 연합하여 전쟁에 나서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 '300'의 포스터 사진 출처 - 영화 '300' 성과지향적 리더십의 위험스러움 ‘리더십(leadership)’, 어디서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인데, 요즘 리더십을 운운하는 사람들의 상당 부분은 역시 ‘경영과 관련한 리더십’을 이야기한다. 리더십이 상품화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2천 년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예수로부터 CEO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의 원형을 찾는다는 ‘최고경영자 예수’라는 책까지 나왔다. 예수가 세상과는 다른 질서를 추구했다고 믿는 나로서는 제목부터가 코미디였다. 백과사전에는 리더십이 ‘집단의 목표나 내부 구조의 유지를 위하여 성원(成員)이 자발적으로 집단 활동에 참여하여 이를 달성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즉, 리더십을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한 것, 혹은 내부 구조의 유지를 위한 것, 즉 성과지향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접근으로는 어떤 리더십이 바람직한 리더십인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목표만 잘 달성하면 폭군이어도 좋고 아무리 민주적인 절차를 중시하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목표를 잘 수행하지 못하면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가 ‘리더십’이라는 말을 성과지향적으로만 이해해 왔다. 성과지향적인 리더십은 지도자와 공동체의 구성원을 하나의 자원으로만 치부하게 되면서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지도자는 끊임없이 구성원에게 일정한 성과를 요구할 것이고 본인 또한 어떤 성과를 달성하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종류의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타인 혹은 다른 집단과의 경쟁이라는 유령 같은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한다. 구성원들에게는 그들의 성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질 것을 약속하거나 암시한다. 이런 지도자들은 질보다는 양, 내용보다는 형식, 과정보다는 결과, 아래보다는 위를 중시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당연히 그 행동양태는 권위주의적이기 쉬워서 일방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독점하며,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따라서 의사소통은 하향적으로만 이루어진다.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한 집단에게 성과는 중요하고 계획된 목표는 달성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과정이다. 성과 자체가 최고의 목표가 되어 과정과 관계 등 여타의 요소들이 성과 달성에만 이용당하는 방식은 경계되어야 한다. 이 방식으로 얻어진 성과는 오로지 지도자 개인의 것일 뿐, 구성원은 철저하게 대상화되고 만다.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소통을 통한 관계를 증진하고 구성원 모두의 자발성을 유도하면서 과제를 처리했을 때의 성과야말로 구성원과 동등하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에게 이러한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나 전두환 때가 좋았다고들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이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참여정부’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말한다 해도 구호뿐이었음이 드러났다. 사실 이전 대통령들도 모두 ‘문민정부’니 ‘국민의 정부’니 하면서 리더십의 원천을 자기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인 국민에게 두려 했던 것 아닌가. 도대체 어떤 차별성이 있다는 말인가. 그저 모두들 권력을 잡은 뒤에는 권위주의적이고 성과지향적인 편리한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리더십의 원천은 구성원인 국민 현실이 영화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서 대안을 찾는 구조에 문제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게으른 국회의원들을 보며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임이 분명하다. 과연 언제쯤이면 그릇된 권위의식에서 비롯된 자의적이고 즉흥적이고 임의적인 정책집행으로 인해 국민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을까. 우리에게 국민을 위해서 자신의 욕심과 의지를 포기하고 희생할 줄 아는 포용력과 안목이 있는 참된 리더십은 요원한 일이기만 한 것인가.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05 | 추천: 0
지난주 토요일,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다 나왔다. 홋카이도 재일조선인 민족학교의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포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 한참이나 여운이 남았다. 사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왜 ‘우리학교’를 보며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을까. 아마도 개, 돼지처럼 강제로 끌려가 일본 땅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 1세들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이었으리라. 영화에서는 일제 치하 망국노의 멍에를 지고 고향을 떠나가 일본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노예처럼 살았던, 해방이 되고도 귀향하지 못한 채 탄압과 차별과 멸시 속에 살아간 재일조선일 1세들의 삶이 재일조선인 민족학교의 오늘과 함께 그대로 전해졌다.   노예처럼 살았던 재일조선인 재일조선인 1세들은 일본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2세, 3세, 4세들이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제대로 쓰고 배우기를 바라며 민족학교를 세웠다 한다. 그러나 일본 땅에서 민족학교는 법적,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민족학교에 대한 일본 당국의 탄압은 물론 우익단체의 테러가 끊이지 않아 초기 재일조선인 민족학교를 다닌 남학생들의 경우 공부할 틈도 없이 민족학교를 지키고 여학생들을 보호하느라 싸우다 졸업을 했다고 한다. 껍데기뿐인 조국해방을 맞은 재일조선인들에게 조국의 분단은 망국 이상의 새로운 멍에였다. 재일조선인 민족학교에 대한 탄압에 항의하고 민족학교를 지원한 곳은 조국의 북쪽이었다. 남과 북이 한 목소리로 부당한 탄압에 항의하고 규탄하고 민족학교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조국의 남쪽은 무관심했다. 조국분단은 일본에 대한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정책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하여 일본의 민족학교에 대한 부당한 탄압과 차별은 북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을 조장하는 가운데 정당화되었다.     사진 출처 -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 홈페이지  그 동안 우리는 ‘우리학교’를 잊고 살아왔다. 더 정확히는 일본의 ‘우리학교’에 대한 탄압과 차별을 방조하였다. 고향은 남쪽이나 조국은 북쪽이라는 민족학교 아이들의 인식은 역사적경위로 보건대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정상적이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비로소 재일조선인 민족학교는 식민과 분단의 모진 세월을 뛰어 넘어 우리의 시야에 조금씩 들어왔다. 마침내 ‘우리학교’라는 숭고한 사명에서 기획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빛을 발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다. 식민의 한을 가슴에 받아 안고 민족적 차별과 멸시의 핍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힘겹게 민족성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민족학교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조선의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그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던 민족학교 아이들 일본 당국과 일본 우익의 북한에 대한 온갖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만경봉호를 타고 또 하나의 조국 북을 방문하고 돌아온 아이들의 모습은 생기발랄함과 자신감 그 자체였다. 무엇이 우리학교 아이들을 그토록 변하게 한 것일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우리말과 우리 음식, 우리 노래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조선의 태양은 일본 땅에서 바라보는 태양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정말 조선의 태양은 일본보다 더 붉고 빛나는 것일까. 아이들은 조선 사람의 눈빛 또한 다르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조국 방문을 안내한 ‘아바이’와 ‘누님’을 비롯한 북쪽에서 만난 동포들의 눈빛이 맑고 빛난단다. 정말 그랬을까. 아이들은 북의 동포들과 만남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던 것일까. 우리말보다 일본말로 훨씬 더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들이 경제대국 일본 땅에서 살며 연일 북조선의 미사일, 핵 위협, 납치, 기아와 인권유린의 실상을 홍보하는 광기의 언론보도에 동화되지 아니한 채 도대체 북쪽으로부터 보고 얻은 것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세습독재의 기아와 비참한 인권유린이 횡행하는 북조선의 실상을 보지 못하였기에 눈감았던 것일까.     사진 출처 -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 홈페이지 2002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대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함께 대회에 참여한 재일조선인 민족학교 아이들이 문화공연에서 합창을 하였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아이들이 부른 노래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였다. 고난의 행군 시절 북쪽 동포들이 마음을 모은 구호의 하나일 터인데 아마도 재일조선인으로 일본 땅에서 핍박을 받고 자라나는 민족학교 아이들에게도 큰 공감이 가는 노래였던가 보다. 태어나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입장에서도 북에 대한 의구심과 경계를 푸는 훌륭한 모토로서 지금도 새겨져 들린다. 그런 공감이 아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일 게다. 허구적 인식과 그릇된 편견을 바꾸고 민족적 정체성을 이어가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이리라.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감을 회복하였을 것 같다.     그들은 우리, 우리는 그들 일본 땅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출세와 경쟁, 이를 위해 민족성을 포기하기보다 차별 속에서도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 문화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이어가는 훌륭한 선생님과 아이들, 재일조선인 동포들의 교육공동체의 모습은 진한 감동이었다. 인간다운 삶,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참교육 공동체의 삶으로 다가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무가 되어 조언을 주고 가르침을 받으며 이끌어 주었다. 졸업식장에서 졸업생들 모두가 ‘우리학교’에서 지낸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며 한결같이 흘린 눈물이야말로 재일조선인으로서 참된 삶을 살아가도록 깨우쳐준 영원한 모교 ‘우리학교’에 아이들의 진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진 고귀한 눈물이었다. ‘우리학교’를 보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은 공감도 공감이거니와 자성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토록 순박하고 아름답고 꿋꿋하게 우리를 지켜나가는 같은 민족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한 데 대한 자성이었다. 무엇인가를 가슴 속 깊이 가득 얻을 수 있는 감동의 영화다. 또 볼 작정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524 | 추천: 0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시집오는 외국인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은 이주노동자와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외국인 여성들은 비록 외국인이지만 이 사회의 한국인으로 정착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웃으로 받아들여짐과 이웃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인도적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들이 이루고 살아가는 가정이 안정되지 않으면 장래에 이 사회의 건강함에 장애 요소가 될 것입니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도 이들이 한국에서 이룬 가정의 안정을 돌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여성들이 한국에서 처한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어적 장벽, 가정폭력, 자녀 양육의 한계, 재정적 불안정 등 많은 어려움들이 산재되어 있어서 이들이 혼자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부간의 나이차가 심하며, 특히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의 여성들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숫자조차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담을 통해 파악되는 자녀들의 경우 대부분 일상적인 음식의 섭취는 물론이고 교육의 기회에서마저 소외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제결혼은 늘어나고 이러한 부적응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장차 사회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이 사회에 잘 적응하며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결혼이민자가족’도 우리의 이웃 이 일을 위해 ‘결혼이민자가족 지원센터’를 여성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개소하게 되었습니다.  이 센터의 가장 큰 목적은 외국인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 사회의 일원으로 홀로 설 수 있도록 북돋우는 것입니다. 센터에서는 외국인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 중 가장 큰 고통인 가정폭력 문제를 상담합니다.  가정폭력 문제를 개인의 가정사로만 치부하여 눈을 돌린다면 그 사회가 건전해 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폭력으로부터 몸을 피할 쉼터를 마련하고, 심리 상담을 통해 정서적 치료와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또 스스로 경제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위축된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일을 찾고, 일을 통해 자신의 성취감을 배양하여 가정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스스로 하고,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한국어 교육에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한국어 습득은 결혼 이민자 여성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한국말을 빨리 익혀 원활히 의사소통을 하고, 한국문화, 특히 생활 풍습을 익혀 제사나 차례 등 명절예법을 익히게 함으로써 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풍습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럴 때 심리적 이방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경제적 가난 속에 자녀양육 및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있어 자녀들이 성장장애, 심리적·지적·육체적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욱이 여성들이 어린 경우 부모로부터 배웠어야할 육아 보육의 기회가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센터가 이 여성의 친정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영·유아들의 건강관리, 인지발달 심리치료, 유치원생들의 학습지도와 또래 형성을 통해 사회성을 배우게 하고, 예·체능 교육을 통해 일반 아이들과 뒤쳐지지 않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심리적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아울러 외국인 여성들이 자신의 모국어를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사실 외국인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 자녀들이 이 사회의 혼혈아로서 소외체험을 받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자녀들이 한국어와 어머니의 모국어를 배움으로써 2개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한국어 습득이 높아질 때 한국어 습득이 늦은 어머니와의 의사소통에 장애가 올 수 있고, 이는 자녀 교육에 커다란 장애요소가 됩니다. 외국인 여성의 자존감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것을 다 버리고 이 사회에 흡수 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 대한 원어민 선생님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혼이민자 가정이 안고 있는 어려움들이 이 사회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외모는 다르지만, 어찌됐든 우리의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땅의 외국인이 아닌 외모가 외국인을 닮은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너그러운 한국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여러 어려움에 힘든 상태이지만, 이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 개소식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57 | 추천: 0
사학은 설립자의 재산? 법 공부 좀 하시라-퀴즈로 알아보는 '사학-설립자'의 법적 관계는?   Q1. “많은 재산을 소유한 ‘갑’은 그가 기르는 고양이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방법은?” 법대를 다녔던 대학시절 2학년 1학기 ‘민법총칙’이라는 과목의 중간고사 문제였다. 민법에 따르면 사람(自然人)과 법인만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고양이는 사람도 법인도 아니므로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고양이에게 직접 재산을 물려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甲의 재산이 고양이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묘가(愛猫家)로 유명한 ‘을’에게 재산을 증여하면서 고양이를 부탁하면 될까? 하지만 을의 마음이 변한다면 고양이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 비교적 현실성 있는 대안은 갑의 재산을 출연해 고양이를 위한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다. 이처럼 재단법인을 설립하면 갑의 재산은 그와 분리되어 별도의 법인격을 부여받게 된다. 이 정도를 쓰면 대체로 맞는 답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신문을 보면서 갑의 고양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무능한 민주화인사’나 ‘퇴물 좌파교수’들이 사학법인을 장악하여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사립학교법 재개정과 맞물려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법인의 본질과 기능을 오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2006년 12월 21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열린 개정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위한 총회 총대 비상기도회에서 목회자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법인, 특히 논의의 중심에 서 있는 사학은 법률상 재단법인이다. 재단법인은 설립자가 정관작성과 출연행위 등 법인 설립행위를 마치면 설립자로부터 독립된 별개의 권리의무 주체로 성립하게 되고 설립자와 법인 사이에 어떠한 법률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설립자의 의사는 재단법인의 정관에 기재되어 법인의 목적과 활동범위를 규정할 뿐, 설립 이후 법인은 설립자 개인과 분리되어 별도의 법적 주체로서 정관 및 법령에 규율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다. 이처럼 법인이 설립자와 분리되는 이상 법인과 관련해 설립자의 사유재산침해는 문제될 수 없음에도 일부 사학재단 운영자는 사유재산권 침해를 주장한다. 그들은 다음의 예를 들면서 임시이사제도의 폐해를 이야기한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기독교사학법인에 임시이사들이 파견되어 불교사학법인으로 학교체제를 바꿀 수도 있다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변경은 정관의 중대한 변경으로서 교육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교육부가 감독권한을 적절히 행사함으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끝으로 다음 문제를 풀어보면 여러분들이 법인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Q2. 독실한 A종교의 신자인 ‘병’은 A종교에 바탕을 둔 교육이념을 펼치기 위해 학교법인을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은 종교적 대각성을 한 후 전격 B종교로 개종하였다. 병은 위 학교법인을 B종교 교육을 위한 학교법인으로 변경하여 운영하려고 한다.  법률상 허용되는가?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2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