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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과 인권운동 (김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1:46
조회
337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매년 9월 10일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그런 연유로 작년 가을에는 특히 그즈음해서 자살관련 언론 보도가 유난히 많았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2005년 자살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26.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이며, 특히 2000년대 들어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 최근 20년간 자살률 증가속도와 노년층 자살률 분야에서도 한국이 각각 1위를 차지했고, 또 회원국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여성 자살률이 증가추세라고 한다.

한국인의 주요 사망원인 가운데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에 이어) 자살이 최근까지 4위를 차지하며, 자살 사망률 증가속도는 최근에 올수록 급증한다. 자살자가 1995년에 4,840명, 2000년에 6,460명이던 것이 2005년에는 12,047명, 즉 5년에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반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00년에 11,844명에서 2005년엔 7,776명으로 34.3% 줄었다. 즉, 2005년 현재, 자살 사망자가 교통사고 사망자의 1.5배인 것이다.

연령별로 보면, 1993년과 비교해서 2005년의 경우, 10대부터 30대까지는 자살 증가율이 2배 미만이다가, 40대와 50대는 2배 내지 2.5배 증가했고, 노년층인 60대 이상의 자살률은 3배 이상 증가, 특히 85세 이상의 자살률이 5.3배로 가장 크게 증가하였다. 아울러, 생산 활동이 가장 왕성한 20대, 30대의 사망원인 1위를 자살이 차지하며, 60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이 전체의 30.3%로, 중년 남성의 자살사망률 23.8%를 크게 웃돌고 있다. 노년층의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으로 노인부양이 거의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겨져 오다가 가족 통합이 약화되면서 그 충격을 노인들이 가장 크게 받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염세비관, 빈곤, 낙망 등의 신변 비관이 2002년엔 전체의 49.4%를 차지했던 것이 2003년 55.6%, 2004년 55.5%로 꾸준히 상승했다(신변 비관, 병고, 치정과 실연, 가정불화 순). 남녀별로는 남자의 자살사망률이 여자의 자살사망률보다 약 2배 정도 높았고, 연령별 자살 사망자수는 한창 일할 중견인 40대가 가장 많았다. 직업별로는, 2003년-2006년의 경우, 일반봉급자 자살이 전체 직업군의 7.3%로 가장 많았고, 농업 종사자가 전체의 6.7%, 노동자가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자살 사망자 중에서 무직자가 거의 60%에 육박한다. 이러한 자살은 개인 탓이라기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불평등구조 탓이 크다.

염세비관에 의한 자살은 2005년의 연령별 자살 원인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20세 이하의 경우가 57.9%로 염세비관으로 자살하는 생애주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고, 그 다음이 21세-30세(52.8%)였으며,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었다. 반면, 20세 이하 염세비관 자살은 2002년 41.9%, 2003년 53.8%, 2004년 56.6%, 2005년 57.9%로 매년 증가했다.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이 사회의 무엇에 대해 그리도 비관하는지 우리 모두 뼈아프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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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살예방의 날인 지난해 9월 10일 경남 마산시
월영동 경남대 앞에서 경남자살예방협회 관계자 및
학생들이 생명존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어, 자살방지 대책으로는 (1)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정신질환 조기발견과 치료, 재활체계 등의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 강화, (2) 건강한 경제 기반 구축, 사회의 불안정성 감소, 도박과 범죄 등 사회병리 감소를 통한 이기적 자살 방지, (3)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자아 형성을 위한 가정과 학교의 노력, (4)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의 극단적 표현으로서의 자살을 대신할 수 있는 종교 및 문화의 역할 회복 등이 제시되며, 아울러, 남겨진 가족에 대한 정신·심리상담 및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된다.

자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역시도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자살 시도자가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저소득층이라는 점을 고려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친 사람의 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주는 방안,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이 함께 참여하는 ‘생명존중 인식개선 캠페인’ 실시, 자살방지 긴급 상담전화 요원 확충, 자살관련 유해사이트 감독 강화, 농약 농도 하향조정, 건물·다리 등에 자살방지 펜스 설치 의무화, 초·중·고에서의 자살예방교육 확대 등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고민 중이다.

미국은 정부 산하 자살예방센터에 매년 1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고 일본도 후생노동성이 자살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모색하여 2006년 6월 21일에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했다. “자살대책은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인이 있음을 감안하여” “국가, 지방 공공단체, 의료기관, 사업주, 학교, 자살의 방지 등에 관한 활동을 실시하는 민간단체, 기타, 관계하는 자의 상호 밀접한 제휴 하에 실시되어야 한다”며 국가의 책무, 지방 공공단체의 책무, 사업주의 책무, 국민의 책무 등을 규정하고 있고, 의료 제공 체제의 정비, 자살발생 회피를 위한 체제의 정비, 자살 미수자에 대한 지원, 자살자의 친족 등에 대한 지원, 민간단체의 활동에 대한 지원 등을 강구하도록 했다. 이런 사례들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경우에도 안명옥, 황우여 등의 국회의원 10인이 자살예방법안을 안명옥 의원 대표발의로 2006년 9월 19일에 발의한 바 있었다. 2008년 현재도 아직 의안계류 중인데 올해 4월 안에 통과되지 않으면 다시 발의해야 한다. 한국자살예방협회 등이 수정안을 준비하여 다시 발의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며, 정부 차원에서도 일본의 사례처럼 이젠 정부가 나서서 자살예방법을 입법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한다.

자살예방을 위한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인권단체들도 힘을 보태주어야 할 것이다. 자살예방은 이젠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사안이다.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 5개년 종합대책’을 수립해 몇 년째 추진하고는 있지만 역부족 아닌가? 인권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 생명권을 지키는 일에 인권단체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정부 및 국회에 압력을 가하고 시민사회 내에 생명권 의식을 확산시킨다면, 주위의 안타까운 자살이 줄어들고 자살예방법이 제대로 입법화되고 제도화되는데 꼭 필요한 원동력 내지 추진력을 보태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 5분에 1명씩 자살 시도가 이루어지는 등, 그야말로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자살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방치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급한 ‘인권 문제’가 또 있을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