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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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2004년 6월 대광고 학생회장이던 강의석 군이 45일간 단식까지 하며 ‘예배 선택권’을 주장한 것은 수십 년 간 금기에 가까웠던 공공영역의 ‘종교강제의식’(예배, 법회 등)을 인권차원에서 제기한 특별한 사건이었다. 고등학생이 문제를 제기했기도 했지만, 학내방송을 통해 선언한 지 열흘만에 퇴학처분을 내린 학교 당국의 ‘일사 분란한 결정’이 주목을 받았고, 또 학교에 재직중인 종교교사이면서 목사였던 류상태 선생의 감동적인 제자사랑이 사회적 성찰을 만드는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종교권력과 결합된 사립학교가 어디까지 전횡을 휘두룰수 있는지 보여준 하나의 사례이며,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과 내용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2007년 10월 대광고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종교의식 강요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강 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종교사학의 종교교육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신앙의 자유와 학습권이 선교의 자유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종교문제로 식상하고 신뢰감을 잃은 국민들에게 모처럼 한 가닥 희망을 던져준 역사적 판결이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8일 고등법원은 ‘학생인 원고의 자발적·자주적인 의사가 충분히 존중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행사나 의식 및 수업이 실시된 동기 내지 목적, 대광고등학교의 기독교 학교로서의 전통 등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원고의 행복추구권, 신앙의 자유 내지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회적인 허용한도를 초과한 위법한 행위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선고했다. 서울고법의 판결을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의 대법원 앞 기자회견 사진 출처 - 필자 판결 차이의 핵심은 강제성 여부이다. 원심은 “기본권의 중대성과 고등학생들이 미성년자로서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없는 무능력자임을 감안할 때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해서 곧바로 동의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본 데 반해, 항소심은 “입학 당시 선서를 해서 학칙을 준수하기로 했고, 고2까지 별다른 의사표현 없이 참석했으므로 강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반대나 항의 표시가 없으면 자동적 동의로 간주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의사결정권과 인권을 심각히 훼손시킬 무리한 주장이다. 더구나 학교 선택권이 없고, 종교를 이유로 전학을 갈수 없으며, 주소지를 옮기는 등 편법을 동원해야 한다. 법원이 예민한 종교인권 문제에 세심한 배려 없이 독실한 개신교인 재판장에 사건을 배정한 사실은 문제이다. 해당 판사는 개인의 양심에 반하지 않고, 법률에 근거해서 판결했다고 한 종교계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재판장인 곽아무개 판사는 대광고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교단과 비슷한 장로가 중심이 된 소속 교회의 장로이며, 통일선교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개인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에 심취해 있는 판사가 타종교인의 심적 고통과 종교인권을 깊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자신의 종교를 위해 결론은 미리 내려놓고 궁색한 변명을 찾으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6월10일 한국언론재단앞 켐페인 모습. "예배강요 싫어요" 작은 현수막과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현수막이 동시에 걸렸다 사진 출처 - 필자 대광학원과 대광학원의 주장을 옹호하는 법률가들의 주장은 그리스도와 바울의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 보편성이 아닌 권력의 논리이며, 로마제국의 세속적 정치논리에 닮아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강의석씨가 입학 당시 기독교 교육과 함께 모든 교과교육을 충실히 받겠다고 선서하였고 피고 대광학원의 종교의식과 종교교육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거부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식이 포함된 각종 학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점을 근거로 원심을 파기했다.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받은 법률가라면 강의석이 했다는 입학당시 선서가 강의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한국의 상황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리 침해적 강요행위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신념은 변화할 수 있다.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변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개종은 불가능하므로 미션 스쿨의 설립 의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참, 역설적이다. 그러나 위법적 선서행위가 오히려 원고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로 제시된 것을 보면, 한국 법원의 수준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결혼할 때 부부간에 성적 결합이 있을 거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부부간에 강간이 성립할 수도 있다는 판례에 공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년자인 남녀가 부부가 되면서 성적 결합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성행위는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서로의 자발적인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동의도 그런 자발성을 묵시적으로 전제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식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이다. 그런 걸 미리 서약서를 받는다고 침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약서를 받는 행위에 종교를 강제할 의사가 숨어 있었다면 그것이 불법인 것이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남의 머릿속 세계관에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강의석군은 한번도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부정하거나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 다만 학교가 종교교육을 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학생도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있으므로 “학생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강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현재 대광고를 비롯한 일부 기독교재단의 학교는 ‘특정종교예식을 전체 학생에게 제도적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이것을 ‘종교교육을 할 자유’와 혼동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도 존중받아야 하는가? 양쪽의 자유가 모두 충족되려면, 학교에는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주되, 학생에게도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지난 6월 10일, 한국언론재단 앞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에게 홍보물을 뿌리는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강의석씨 사건을 맡을 대법관 재판부에 김황식 대법관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것도 비극이다. 김 대법관은 2005년 말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부적절한 인물로 평가 받았었다. 대학채플을 패스하지 않으면 졸업장을 주지 않는 학칙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인물이다. 이런 종교자유에 반하는 대표적인 판례를 만든 장본인이 주심 대법관이라도 된다면 어떤 과정이 일어날까, 본안에서 제대로 심리라도 할까 걱정된다. 그는 이미 2007년 5월 상지대 판례를 주심으로 맡아 사립대학의 민주화 노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장본인이다. 다행인지 또 다른 곳의 불행인지 지난 주부터 감사원장 후보자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15일 이 대통령이 참석한 40주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특별기도를 한 바 있다. (사)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와 대한민국국회조찬기도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였다. 주최 측이 자랑하듯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게 열리는 행사에, 대법관, 공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하여 개인의 순수한 신앙 활동차원에서 특별기도를 하고, 감사원장 후보로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지금은 골방에서 기도할 때이지만, 갈수록 은혜로운 나라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까? 종교권력화를 비판하고, 종교계 설립 사립학교 내 학생의 인권을 주장하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촛불은 대법원을 향하고, 감사원을 향해야 할 지 모른다. 대법관이나 대법원장 그리고 감사원장도 국민이 직접 선출하자며 헌법을 고치자는 운동은 어떤가. 민주주의를 위해 든 촛불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개선과제가 세부적으로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잔치가 아닌 우리들 자신을 위한 촛불잔치를 만들어 보자. 인사청문회에 앞서 선서를 하는 김황식대법과 후보자, 이제 감사원장 후보자로 나설것인가 사진 출처 - 필자
2017-07-11 | hrights | 조회: 445 | 추천: 0
- 저항은 즐겁고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촛불을 드는 시민의 수는 늘어가고, 학생들은 교실을 벗어나 거리로 나서고 있다. 제자들이 동맹휴업으로 길을 트면 교수들은 시국선언으로 화답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월차로 촛불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단위로 참여하는 촛불집회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예 여름휴가를 시청광장에 텐트치고 보내겠다는 농담도 들려온다. 6·10항쟁 21돌을 맞은 10일은 전국이 들썩였다. 서울에서는 50만의 시민이 촛불행렬에 동참했다. 물론 정확한 참석인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50만은 주최 측 주장이고, 경찰은 8만이라고 한다.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그냥 50만이라고 하자. 촛불을 든 사람만 참석자인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던 그 시간대 광화문 일대에 걸음을 서성이고 있던 시민 모두가 참석자다. 집에서 현장생중계를 보며, 뉴스 검색을 하며 마음은 광화문에 있었던 소위 ‘재택촛불’도 참석자다. 그들을 모두 합치면 50만이 아니라 최소 500만은 될 거다. 뻥이 좀 있으면 어떤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해대는 정부에 비하면 이정도 뻥은 뻥도 아니다. 금남로 촛불시위 현장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광주에서도 5만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서울에서는 탄핵시국이 있었지만 광주에서 5만 시민이 금남로에 모인 것은 그야말로 87년 6월 항쟁 이후 21년만이라고 한다. 고사리 손에 촛불을 든 아이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까지 금남로가 간만에 ‘시민광장’이 되었다. 연등을 든 스님들과 피켓을 든 수녀님들, 학생, 노동자, 주부, 상인, 농민 할 것 없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금남로에는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자유발언을 하는 이도 듣는 이도, 주먹밥을 나눠주는 이들도 받아든 이들도, 모금함을 돌리는 이들도 돈을 내는 이들도 즐겁기는 매 한가지였다. 초등학생의 ‘과격한 발언’에 웃고, 고등학생의 집단 ‘땡땡이’를 격려하고, 개사한 진도아리랑에 흥겨웠다. 어른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한 비보이 공연도, ‘프리 허그’도 광장에서는 좋은 볼거리다. 한 상인이 생수 1,000개를 내놓았다는 소식이나 즉석모금이 900여 만 원이라는 소식에는 5월 광주가 오버랩 된다. 아마 이날의 금남로는 시민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권력 앞에 무기력한 시민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과 맞서는 시민으로서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시민광장을 만든 금남로에서 다시금 확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항 그 자체로 즐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회가 즐거운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말들의 잔치’ 때문이다. 촛불집회를 거듭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업그레이드되는 문구와 구호는 언어의 유희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명박 OUT’ ‘고시철회’ ‘너나 먹어 미친소’ 등은 단체 제작하는 피켓의 단골메뉴일 뿐이다. 시민들 개인이, 소규모 그룹이 자체 제작하는 피켓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나쁜 머슴 이명박! 넌 해고다’ ‘닥치고 재협상’ ‘2MB 넌 틀렸어 틀려, 2MB 쓰거브네’라는 직접적인 표현에서부터 ‘소탐대실(소를 탐하면 대통령을 잃는다)’이라는 경고도 보인다. 여기엔 조롱도 함께 한다. ‘이름은 명박, 관상은 쥐박, 개념은 외박, 경제는 쪽박, …언행은 경박.’ 국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고백에 대해서는 ‘소통하기? 개뿔! 소유통하기’로 응수한다. 애꿎지만 삼신할머니도 피해가지 못한다. ‘2MB 점지한 삼신할머니 각성하라.’ 또 ‘백일 됐다. 헤어지자.’는 고백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금남로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 사진 출처 - 필자 온 국민을 무식한 사람으로 만든 주한미국대사에 대해서는 ‘과학 좋아하는 버시바우! 주한미군 10년 먹여 과학적으로 검증하자’고 따진다. 가수 안치환이 촛불집회에서 새롭게 발표한 노래 ‘유언’의 내용도 벌써 피켓에 담겼다. ‘미친소 먹고 민영의료보험으로 돈 없어 죽거든 대운하에 뿌려다오.’ 광우병 괴담과 관련해 한 시민이 현수막에 적은 문구는 간담이 서늘하다. ‘진짜 괴담은 이명박 임기가 4년 9달 남은 거다.’ 즐거운 자리에 기발한 아이디어의 말들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날 금남로 집회에 백미를 이뤘던 것으로 문학적 표현이 압권인 전라도식 욕을 소개한다. “한여름에 염병 걸려 땀도 못 내고 죽을 ○○○” “간에 옴 걸려 긁지도 못하고 죽을 ○○○.” 웃자. 광장의 웃음이 정권에게는 치명적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82 | 추천: 0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참 무덤덤한 사람이다 그는. 가볍게 조금 가볍게 그러면 한결 생기가 돌고 활력이 생길 터.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내가 서울에 가는 이유 중 십중팔구는 그와 술을 마시기 위해 가는 것이다. 오늘도 난 그와 술을 마시기 위해 간다.   약 석 달 만에 서울 가는 길은 벌거벗은 땅과 파헤쳐 허물어진 산들로 아비규환이다. 그 너머로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바벨탑 같은 아파트와 빌딩들. 가슴이 갑갑하고 머리가 아프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데서 살 수 있을까? 숨은 쉴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심란함이 결국 서울행에 대한 후회로 밀려든다. ‘에이 그냥 그가 청주에 내려올 때 만나면 될 걸 괜히 올라간다고 해가지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서울행 차를 탔을 때 습관처럼 드는 감정임을 새삼 발견했다.  지난 3월 말경 이었다. 절친한 사람들과 나는 충주인근의 강변에서 낮술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놀고 있었다. 강변에서 물수제비뜨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때 전화가 왔다. “강의 좀 부탁해요. 충북경찰청하고 군부대 인권강의가 있는데 이국장이 참석해 주세요.” 순간 놀다 들킨 아이처럼(사실 놀고 있었음에도) 나는 짧게 “네 알았어요” 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저쪽에서는 화색이 도는 목소리로 “고마워요” 통화를 마친 후 커다란 숙제를 떠안은 기분과 함께 그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난 놀고 그는 활동하므로). 놀이의 흥은 깨어졌다. 한편으로는 ‘아니 난 백수인걸 아직도 나보고 이국장이라 부르네’ 하며 공연히 보이지도 않는 그를 향해 헛방질을 해대었다. 결국 그날 낮술에 취해 나는 청주까지 시체가 되어 실려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가 부탁한 강의 두건을 모두 하지 못했다. 나중에 담당자들과 다시 통화를 하며 일정을 확인한 결과 그 시기가 일 년 전에 예약을 해두었던 피정 기간과 겹쳐있었다. 피정은 보름동안 진행된다. 이렇게 되다보니 난 그에게 다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정을 말하고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언제나처럼 그는 무덤덤하게 내 사정을 이해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으씨 아주 그냥... 혼자 좋은 거는 다 해요.”  버스에서 들었던 후회감은 지하철을 탈 때면 여실하게 드러나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답답한 공기, 무표정한 많은 사람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 목적지를 향해 이동할 때면 도시의 아주 작은 기계부품이 된 이물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서울 가는 길이 점점 길어지고 숨에 벅차다. 마침내! 그렇다 그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을 표현하기에 이 말이 딱 맞춤이다. “휴~마침내 왔군.” 몸도 무겁고 게다가 성치 않은 무릎으로 날마다 오가는 그가 안쓰럽게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앞에 일이 한보따리 쌓여있었다. 소식지 발송 작업. 단순 반복 작업이 도를 닦는데 제일이다. 다행히 일은 거의 막바지였다. 운이 좋았다. 마무리에 살짝 손끝만 얹어 놓았을 뿐인데도 수고의 인사를 받아먹었다 흡족하게.  차를 마시며 소식지를 펼쳐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 전하는 활동소식을 알고 있음에도 오랜만에 만지는 종이소식지의 촉감이 좋다. “어!!”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아니! 책 나왔네!” 호들갑이다.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떡 하니 나와 있을 줄은 몰랐다. 소식지 귀퉁이에 실린 기사가 참 반가웠다. 이어지는 나의 호들갑에 함께 소식지 작업을 했던 젊은 자원봉사자 친구들은 웃었다. 출판기념회 같은 거는 안하냐? 책은 많이 나가느냐? 또 책을 쓸 것인가? 소문을 많이 널리 내야겠다는 등 그가 맺은 열매를 사람들이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책을 선물로 받고 저녁식사도 맛나게 대접받은 후 우린 술을 마셨다. 근황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많이 피곤해 했다. 지쳐 있음이다. 십 육년을 줄곧 달려왔으니 지칠 법도 하다. 저렇게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것도 용하지 싶다. 그는 쉬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는 쉬라 권했다. 길게 살자며 쉬라고 했다. 좋은 거 혼자 할 수 없으니 같이 쉬자고 했다. 쉬면서 피정도 다니고, 하고 싶은 공부도 여유 있게 하라며. 쉼에도 때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헤어지며 그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서울에 올라 온 진짜 이유가 뭐냐며.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과 술 마시러 왔을 뿐이라며.  청주로 향하는 심야 버스는 언제나처럼 가벼웠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생각했다. 내가 아는 오창익은 언제나 대한민국의 야만과 맞장을 뜨고 있다. 그의 감수성은 매우 여리며 오지랖이 넓다. 그래서 상처와 아픔 따위에 쉬이 동화된다. 함께 숨쉬기 때문이리라. 오창익은 열려있기에 그렇다. “대한민국 너도 사람다워져라.” 사람에게 열려있는 그가 언제나 대한민국과 맞장을 뜨는 이유다.  나는 벗이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잘 놀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활동이 노는 것이라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잘 놀고 푹 쉬는 것이 활동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오창익은 하나다. 나의 오랜 벗에게 실바람처럼 가볍고 편해지기를 권유한다. 그것이 당신의 오래된 권리이며 당장 실현해야만 하는 유일한 권리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41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나는 오늘도 빵을 고르면서 습관적으로 봉지를 뒤집어 칼로리를 확인했다. 저녁 7시 이후에 야식을 먹을 때면 죄의식을 느낀다. 그렇다고 이런 자기 규율이 음식에 대한 욕망을 줄여주는 건 아니다. 금지할수록 욕망은 더욱 커지고 음식과 마주하는 매 순간 내 의지와 독함을 시험해야 한다. 시기에 따라 강도가 다를 뿐 나는 늘 다이어트 중이다. 이 시대를 사는 ‘정상적’인 특히 젊은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다이어트를 생각했을 것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그리고 거리를 지나다 마주치는 광고에서 마주치는 늘씬한 몸매의 모델들 앞에서 ‘나는 왜 자꾸만 작아지는가’. 더불어 얼마나 고마운가. 매 순간 살아갈 의지를 준다. 하면 된다. 아자 다이어트. 몸매를 가꾸지 않는 사람은 자기 관리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라더라. 다이어트는 정치적이다 흔히 다이어트를 개인의 문제라고 여긴다. 내 극복의지의 문제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욕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욕망을 넘어 강박관념이 되어 버린 다이어트가 단순히 개인의 의지 문제일까. 우리 주위에는 온통 다이어트 하라는 침묵의 강요들로 넘쳐 난다. 또 외모와 몸매는 이미 사회의 통과의례와도 같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회의를 느낀다고 해도 별 수 없다. 제 몸을 날씬하게 관리하지 않는 건 반사회적 행위로 취급받는다. 단순히 배고픔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은 음식은 라이프스타일이자 훌륭한 돈벌이의 대상이다. 음식산업은 거대하다. 그리고 그만큼 ‘다이어트 산업’ 역시 어마한 규모로 커가고 있다. 음식은 여성에게 욕망의 대상이자 거세의 대상이다. 무엇이든 상품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자본주의는 다이어트 산업의 무궁무진함을 사랑한다. 다이어트 산업은 해마다 50%의 성장률을 보이며 다이어트 시설, 약품, 패션, 성형 등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성들에게 다이어트에 대한 신뢰를 주면서 과학적 증거도 없는 물품들로 소비를 자극해 이익을 취한다. 이에 질세라 광고는 평균 몸매도 안 되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뿌리며 다이어트 욕망에 불을 지핀다. 필요이상의 다이어트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 외모와 몸매를 여성을 평가하는 필수로 보는 사회. 그러기에 다이어트는 충분히 정치적이다. 평균체중보다 25% 덜 나가는 모델과 배우의 이미지로 도배하는 미디어 산업이 날씬한 몸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의류매장에서 66 사이즈 이상의 여성 옷을 찾기가 힘들다. 대충매체에선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을 인간승리라 말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여성신문은 "다이어트와 바디이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의료 산업, 평균체중보다 25% 덜 나가는 모델과 배우의 이미지로 도배하는 미디어 산업, 그리고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이어트 산업" (여성신문 '다이어트에 관한 진실 알려주는 북미의 안티다이어트 캠페인')이라며 날씬한 몸에 대한 압력을 비판했다. 다이어트로 인한 여성들의 건강 위협 사회적 비만의 기준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다이어트는 만족을 모른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마른 몸의 이미지들에 현혹되어 자신의 몸을 사랑하기를 끊임없이 유예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에 퉁퉁 부으니까 불쾌해져서 그날 하루를 완전히 망치는 거야. 기분이 너무 안 좋고. 그러니까 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너무 없어지는 거죠. 옷 같은 것도 살이 빠질 때에는 막 입고 다니구, 밖에 나가구 싶고 막 이러다가도 그렇게 갑자기 살이 찌면 내 자신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게 되잖아요. (다이어트의 성정치학(한서설아 지음) 중 사례C에서 발췌) 이렇게 여성의 욕망 자체가 다이어트에 맞춰 길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살을 빼기 위해서 국토대장정을 간다는 친구의 농담 아닌 농담을 듣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무리한 다이어트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거다. 흔히 주위 여대생들이 운동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살을 빼려 한다고 생각한다. 몸을 '건강'이 아닌 '다이어트의 대상'으로 관리하고 규제하려는 강박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그 스트레스는 거식증과 폭식증과 같은 몸의 거부 현상을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현재 시중엔 검증되지도 않은 다이어트 약품들이 판매되고 있으며 이는 우울증과 골다공증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다이어트의 배후세력을 잡아라 구토를 안 했으면 좋겠구요. 안토하잖아요? 그러면 살이 쪄요. 진짜 쪄요. 아무래도 먹으니까 살이 찌고. 안토했으면 좋겠구, 또 하나의 나의 이런 강박관념 자체가 없도록 살이 빠졌으면 좋겠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예... (같은 책 p.122-123) 확실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날이야말로 힘든 다이어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 아이러니.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는 끝없는 숙제이고 전쟁이다. 그러니까 말인데 요즘 배후세력이란 말이 심심찮게 소비되고 있다. 이참에 다이어트의 배후세력에 대해서도 성찰해 보는 게 좋겠다. 청소년들을 선동하는 촛불세력의 배후세력을 잡는다 뭐다 할 게 아니라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소리 없이 잠식하는 정교, 교묘한 권력들이 아닌가. 주먹질 하듯 노출돼 있는 날씬한 이미지들 앞에서 감수성 예민한 여학생들이 다이어트 하든 안하든 그건 미국산 쇠고기 먹듯 자율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줄자로 몸의 치수 재듯 외모와 몸매로 평가하는 사회의 시선은 어쩌고? 지난해 9월 스페인에선 체질량지수(BMI) 18 미만인 모델의 패션쇼 출연을 금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또 프랑스는 지난 4월 거식증유발처벌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거식증적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죽음의 메시지'라며 “여성의 건강과 신체 이미지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바랐다”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 거식증 환자가 4만 명을 넘는 프랑스가 먼저 이거 진짜 심한문제야 라고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한국에도 거식증 환자가 1만 명이라 한다. 잠재적 거식증 환자는 셀 수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들이다. 프랑스의 예처럼 더 늦기 전에 여성의 몸에 강요되는 문제들을 담론화해야할 때다. 한번쯤 네이버 지식인에 거식증 걸리는 법을 쳐보라. 거식증 걸리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기겁할 질문이 많다. '저도 몸에 해로운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알려주세요. 제발부탁입니다. 이 방법밖에 없어요...' 라는 한 여학생의 간곡한 부탁. 진짜 무서운 배후세력이란 바로 이런 거다. 왜 우리는 다이어트의 신화에 목숨을 거는가. 욕망의 배치와 작동원리를 곰곰이 따져 볼 때다. 왜. 적어도 나의 자존감이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여기'서 나의 몸을 사랑하기 위해.
2017-07-11 | hrights | 조회: 681 | 추천: 0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축구가 감성의 스포츠라면 야구는 이성의 스포츠다. 우선 축구는 시간의 스포츠다.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은 득점을 하느냐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 전후반 기본 90분을 놓고 인저리 타임을 빼면, 전후반 45분씩 경기를 진행한다. 아무리 경기를 오래 끌어도 100분을 넘어서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일단 전·후반전이 시작되면 45분 동안 거침없이 경기가 진행된다. 비록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지만 그게 선수들의 플레이를 통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선수들은 밀물처럼 상대방 진영을 향해 공을 몰고 들어가다 상대편이 공을 차지하게 되면 다시 썰물처럼 수비 진영을 갖추며 자기편 문지기를 향해 빠진다. 감각적인 밀고 당기기 가운데 순간적인 판단이 있을 뿐 감독과 선수의 이성이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 선수들이 평소 상황에 따라 훈련해 온 양상대로 경기는 흘러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기 내용에 대한 감독의 반응이 격렬하다. 자신의 의지가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으므로... 반면, 야구는 매 이닝마다 상대방에 의해 이뤄지는 플레이에 대한 우리 편의 반응이 그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다. 경기 시간은 매번 다르다. 짧으면 2시간 길면 5시간대이다. 야구의 특징은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타자의 스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루상에 주자가 있다면 그 주자의 액션이 투수의 공 던지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감독의 작전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게 야구의 매력이다. 그래서 야구는 이성의 스포츠이다. 감독이 덕아웃을 뛰쳐나올 때는 심판의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뿐이다. 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현대 축구에 있어 미드필더의 구실은 갈수록 강조된다. 19세기에 대략 현재의 모습을 갖춘 축구에 있어 오프사이드라는 대단히 오묘하고 특이한 규칙은 20세기 초에 도입됐다. 이로 인해 수비수가 공격수에게 일방적으로 공을 차주고 공격수는 그 공을 받아 골문을 향해 슛을 날리던 단순한 경기 양상이 복잡다단하게 진화하게 됐다. 미드필더를 거치면서 상대 수비의 빈 뒷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틈을 잘 치고 들어가는 축구가 재미있는 축구다. 공의 흐름이 가장 빠르다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면 현대 축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깨 두어 번 흔들면 수비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지고 그 사이 슛을 때리는 공격수 호나우두(브라질)의 한 때 화려한 플레이가 더 눈에 띄게 마련이나, 축구를 잘 아는 사람들은 미드필더가 공격과 수비의 중간에서 어떻게 우리 편에게 공을 배급하고 상대방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느냐를 잘 읽는다고 한다. 반면, 야구는 영원히 투수의 스포츠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우리 편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느냐에 경기 결과가 70% 안팎 좌우된다. 배구는 공격수에게 공을 띄워주는 세터의 스포츠이고, 농구도 공을 배급하는 가드의 스포츠인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야구는 투수놀음이기 때문에, 투수의 구실이 매우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 선발, 중간 계투요원, 마무리가 있다. 선발 투수는 5회가 지나기까지 대체로 3점 안쪽에서 상대방 점수를 묶는 구실을 한다. 그 사이에 우리 쪽 타자 요원들이 점수를 뽑아야 한다. 중간 계투는 선발의 힘이 빠졌을 때 등판해 마무리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겨주기까지 관리하는 구실을, 마무리는 그야말로 상대방 타선을 마지막까지 봉쇄하는 구실을 맡는다. 지난 6일 저녁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사회를 스포츠로 비교해봤을 때 도대체 어떤 구실을 맡은 것일까? 축구로 치자면 공격형 미드필더요 야구로 치자면 구원 투수다. 적어도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중원 싸움에서 밀리고 공 배급이 원활치 않아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감독(국민)이 그라운드에 긴급히 투입한 미드필더다. 미드필더의 덕목은 넓은 시야를 갖고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면서 적절한 곳에 공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미드필더가 가만 보니 경기장을 너무 좁게 쓴다. 미국 쇠고기는 별다른 검증 없이 들여오기로 하면서 간과 쓸개를 다 빼어줄 듯 하지만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옹졸하기 그지없다. 공 배분은 더 엉망이다. 그렇잖아도 부자들의 부의 축적과정은 의심스럽고,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모자라 갈수록 강퍅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비즈니스-프렌들리’를 내세우며 한 쪽에만 일방적인 애정의 시선을 보낸다. 또한 구원투수 이명박은 지고 있는 야구 경기에 상대 타선을 꽁꽁 묶기 위해 마운드에 섰다.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는 어떡하든 상대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 홈베이스로 들어오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삼진을 잡으면 좋고, 병살을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의 맹활약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우리 편 타선에 불이 붙어야 조건은 충분해진다. 그런데 이 구원투수가 잇달아 안타를 내어주는가 하면, 사사구를 남발한다. 공 조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모든 걸 저당 잡힌 채 오로지 일류 대학 하나에 목숨을 걸도록 요구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방과 뒤 학교에서 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어차피 ‘강제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어불성설의 타율적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선택은 없다. 서울대에 학생 한 명이라도 더 보내야 명문 소리를 듣는 교장과 재단 이사장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 한 이치다. 이미 바람은 불었다. 시교육청이 0교시는 계속 불허한다니까 이제는 1교시를 조금 당겨서 수업을 한단다. 학교 수업이 빨리 끝나도 학원 강사의 강의와 자율학습이 기다리고 있으니, 학교의 명성과 부모의 만족을 위한 학생들의 ‘노예 학습’ 시간은 더 늘일 수 있다. 보다 못한 누리꾼들이 구원투수 이명박을 강판시키라며 서명을 하고 나섰다. 더 이상 사적 이익이 공공의 안녕을 갉아먹고, 혈맹에 대한 충성에 민족과 국민의 안녕이 위협당하는 사태를 지켜볼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연일 광화문과 여의도에 촛불을 켜게 만든다. 감독이 투수의 강판을 최종 결정하면 투수가 마운드를 내려오지 않을 재간은 없다. 감독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자신의 구실에 충실할 때 패전투수의 나락에 떨어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자, 손가락 사이에 배어 나오는 땀을 닦으면서, 도대체 진짜 감독은 누구이고 감독의 작전지시는 어떤 것인지 차분히 응시할 때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45 | 추천: 0
- 종교계 부패 구조적으로 다뤄야(종교와 세금2)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시민사회단체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하는 유명 인사들이나 상근 일꾼들의 사회적 배경에는 종교계 단체에서 성장해 온 인물이 많다. 여전히 후원을 많이 받고 있고,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에는 종교계 내부 인사들의 여론도 수렴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이나 정부관계자도 마찬가지 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타고 다니는 외제 승용차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물론 전체비율로 따진다면야 소수에 불과하지만... 필자의 경우, 우리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꿔보겠다고 사회운동을 하고자 결심했을 때 그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준 인사들의 절반은 종교계를 기반으로 한 지도자들이었다. 불교계를 비롯해 개신교계의 저명한 목사님들의 강연, 신부님들의 실천적인 모습 그리고 진정성과 현실감 넘치는 비평의 글 들이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성장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종교계의 극소수 인사를 제외하고 소위종교계 제도권에 있는 종교 지도자(목사, 승려, 신부-성직자 수 기준)들의 과시욕은 극에 달해 있는 것 같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상식, 헌법의 약속은 편리한 대로 해석해 버리고 종교지도자가 가져야 할 당연한 근검절약도 이제는 ‘말’ 뿐이다. 소외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할 사명으로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했던 분들이 점차 기득권이 되어가며 언론의 비판에도 무뎌져 버린 것은 아닌지 답답하다. 골프는 도박과 성매매 불러 일으켜 - 무소유를 왜곡하고 외제승용차 끄는 조계종 일부 스님들 지난 2월 개신교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후]가 지난 4월 12일(토) 10시 50분에 ‘사찰 살림 빠듯하다면서…'편을 방송하였다. 네티즌들은 방송사 홈페이지에 수백 건의 댓글을 통해 불교가 이 정도인지 몰랐다며, 수많은 불자들이 창피하다는 의견을 올려놓았다. 불교계 최대 종단인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은 4월 14일 ‘유감’을 밝히는 논평을 통해 방송국의 문화재에 대한 이해 부족을 지적하고 자정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조계종 종무행정에 익숙한 인사들은 외제차와 골프는 개인적인 취향 선택의 문제이며, ‘큰 문제없다’는 인식도 있었고, ‘신도들이 시주한 외제차라면 큰 문제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존경하는 스님에게 외제고급승용차를 선물하는 것은 오히려 스님의 수행을 방해하는 것이며, 스님들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왜곡된 과시욕을 일으켜 문제가 많다는 주장이 대세이다. 스님들 간의 선물로 고급차를 선물하는 일도 극히 일부 스님들의 무용담으로 이야기되고 있으나, 이것도 대가성이 포함된 것으로 청렴하던 스님이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히는 계기가 된 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나온 외제승용차의 가격을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이고, 더구나 유지비와 보험료도 국산차의 몇 배에서 수십 배 차이가 난다. 순수한 신도의 선물이나 개인차원의 취향에 따른 선택으로 보기 어렵다. [도표 참조] 사찰 외제 승용차 이름 차량가격(단위: 만원) J스님 혼다 뉴 코어드 3,500 P스님 포드 링컨 LS 5,000 Y스님 뉴그랜드 체로키 5,800 T스님 렉서스 RX 330 6,800 D스님 BMW X5 9,500 H스님 아우디 Q7 13,000 P스님 포르쉐 카이엔 터보 16,700 소계 60,300 정부는 공용차량관리규정으로, 장차관(급)도 경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최단운행기준 연한을 제시하여 1-2년 만에 교체하는 등의 세금 낭비를 막고 있다. 또한, 정부 전체차량의 20%를 올해까지 경차로 전환할 예정으로, 지난해 국정감사자료에 보고하고 있으며, 환경부 등 장관(급)의 차량은 경차로 바꾸는 게 좋다는 여론의 지적도 있다. 과거 정부에서 장관(급)은 대부분은 대형차를 운영해 왔으니 이명박 정부의 장관들부터 중형차 또는 경차를 타고 다녀 실용 정부의 ‘기개’를 발휘하면 어떨까! 아니다. 정부 고위직이 다니는 교회, 사찰, 성당의 지도자부터 경차로 바꾼다면 많은 국민들이 지지와 존경을 보내지 않을까.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청빈과 정신의 지도자인 조계종 고위직 스님들과 개신교, 천주교의 고위직 지도자들은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업무용 차량을 중형차이하로 하고, 각 종단마다 공용차량관리규정을 만들거나 손질하여 운용하는 등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세금을 내지 않는 지금도 더 철저히 해야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청사에 세워진지 고급 외제 승용차 사진 출처 - 필자 세금 횡령한 고위직 종교지도자가 수배자 돼서야 - 조계종 교구본사 전 주지 명섭스님, 사정기관 자진 출두해야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는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후] 방송이후 문화재보수비 횡령 혐의로 검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전 화엄사 주지 명섭스님이 조계종 소속 사찰에 은거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 사실관계를 조사키로 했다. 명섭스님은 2002년 7월 화엄사 주지로 부임한 이후 석경 복원 등의 문화재보수 용도로 22억7400만원의 각종 보조금을 받아 14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곡성 태안사 주지로 재직할 때도 국고보조금 일부를 업자와 짜고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으나 잠적했다. 한때 중국으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던 명섭스님은 한국에 있었으며, 스님이 은거했던 사찰은 서울의 J사였다고 하며, 전 현직 조계종 고위층 스님들이 사정기관에 구명활동을 벌였다는 제보도 있다. 이 과정에서 거액의 구명자금이 전달되었으며, 전직 최고위층도 관련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제보에 따르면, 명섭스님은 조계종 고위층 간부들과 식사를 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이런 제보들에 대해 호법부가 어떤 조사 결과를 내올지, 또 다시 ‘조사 중지’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명섭스님 스스로 이제 방송에 얼굴까지 공개된 마당에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교구본사 주지까지 지낸 고위직 승려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그럼에도 일부 스님들은 공소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숨어 지내도록 하고 있어 자칫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잘못을 하는 이들은 거액의 구명자금을 받은 이들로 조계종의 전직 고위층이고, 사정기관의 관계자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여 명섭스님의 은신을 도와주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제보들에 대하여 조계종 호법부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부대중이 나서 올바른 조언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변호사 및 사정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명섭스님을 지나치게 도와줄 경우 범인은닉죄 가능 여부도 있어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 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골프 해외 외유, 몇 개월씩 개인콘도 빌려 추진 - 해외골프(태국 치앙마이 등) 수도권 유명사찰 J스님 단골 이용, 친한 스님들과 자주 동행 목격 골프를 치는 것뿐만 아니라 5천-6천만 원을 웃도는 골프회원권의 가격도 ‘별것 아니다’는 인터뷰는 조계종 고위직 스님들의 인식이 일반 사회인의 시각과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 준다. 개인이 사업을 하여 번 돈이 아니고, 신도들이나 구명과정에서 일종의 ‘로비자금’을 받지 않고서는 만질 수 없는 ‘큰 돈’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방송에 보도된, 몽고에 출장 가서 공식행사 후 골프를 치는 것이나, 중국 등지에 신도들과 같이 성지순례를 갔다가 경험차원에서 신도들과 함께 하는 골프도 종교지도자들의 본분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몇 개월씩 개인 콘도를 빌려 생활하는 것은 지나친 호화생활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활을 하기위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부정한 일에 개입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계파에 소속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경험 없는 스님을 유혹하고, 고급 카지노에 출입시키거나 함께 하다보면, 그 액수는 일반 여행객의 수준을 몇 십 배 뛰어넘는 액수의 크기라고 한다. 더구나 유명관광지의 특성 상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전혀 간섭받지 않고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으며, 개인콘도의 특성 상 성매매 등 추문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높다는 것이 제보를 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비단 불교계뿐만이 아니다. 필리핀에서 일어난 목사님의 성추행 사건은 교포사회에서 기억하기 싫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이미 개신교계 언론에 보도된 바 있는 이런 사례들 이외에 되풀이 될 수 있는 ‘개연성’이 더 큰 문제이다. 잘못을 공개하고 진정한 반성을 하는 목사님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하고, 은폐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 ‘묻지마 비호’가 대세인 종교계의 현실. 활동가들과 언론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고 반성해야 할 내용이다. - 공영방송, 좀 더 구조적인 문제로 다뤄야 평신도들의 각성이 필요할 때, 공공재의 중요성이 돋보이게 마련이다. 방송에서 보도 된 일부 사례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나, 후속 예고가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또,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일부분만 보도되었고 ‘수박 겉핥기’ 이었으며, 대안도 제시도 부족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후]가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다. 다양한 언론에서 다뤄져야 대다수 건강한 종교지도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정신은 다 어디로 갔으며, 자신이 다니는 교회, 사찰, 성당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용적인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때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히 내용들이 문화방송(MBC)뿐만 아니라 서울방송(SBS) 등 많은 언론매체에서 종교계의 부패와 부도덕한 문제에 대하여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사례를 연간계획을 세워 보도했으면 한다. 한국방송(KBS)의 시사기획 ‘쌈’의 교회, 정치에 길을 묻다. 2008.04.15(화)는 오랜 준비기간을 갖고 보도한 것으로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직 부족함을 느낀다,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와 더불어 대안에 대해서는 미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는 언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후속보도를 기대해 본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청사 앞에 세워진 고급 승용차 들. 가운데 차량이 고급 외제승용차 렉서스 사진 출처 - 필자
2017-07-11 | hrights | 조회: 815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진보를 향한 열정, 서태지 ○○○를 연주하다” 모 자동차 회사의 광고카피다. 자동차의 컨셉을 진보를 향한 열정으로 설정하고, 한국 가요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던 서태지의 이미지를 차용해 판매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실제로 TV CF에는 서태지가 출연해 열정적인 연주를 선보인다. “진보적인 실내, 보수적인 외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가장 비싼 자동차로 최초로 1억을 넘었다는 ‘○○맨’에 대해 자동차전문가의 평가를 실은 한겨레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회장님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자동차답게 앞차의 속도에 따라 속도를 알아서 조절하는 크루즈 컨트롤 장치, 노면 상황이나 운전자 특성 등에 따라 차체의 높이와 감쇠력을 조절하는 신기한 서스펜션, 버튼 하나로 조작되는 주차 브레이크, 공기압을 알아서 체크하는 타이어 등 진보적인 장치가 가득한데 외모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서 아쉽다는 평가다. 이렇듯 이제 ‘진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상징물이자 인간 소유욕의 표출이고, 계급을 구분하는 척도이기도 한 자동차를 판매하는데 차용되기도 한다.(여기서의 진보는 기술의 진보 또는 진일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개념으로써의 진보임을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자동차조차 진보하지 않으면 인기를 끌 수 없는 모양이다. 자동차에 진보라는 단어가 옳은 설명인지를 따질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혁신이나 쇄신, 첨단 등의 단어로는 충분하지 않은 어떤 의미를 진보라는 단어를 통해 전달하려는 의도로 생각된다. ‘진보를 향한 열정’이라는 말의 강력한 이미지는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 처음에 이런 카피와 기사를 봤을 때는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케팅을 위한 도구로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불쾌함이 앞섰다.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순수함의 투사 체 게바라도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그저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는 전락을 맛보지 않았던가. 그 결과로 체 게바라의 정신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영웅의 이미지, 저항의 상징으로만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자동차를 팔기 위한 진보의 쓰임도 결국에는 마찬가지일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진보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의미는 휘발유처럼 날아가고, 그저 낡은 것과 비교되는 새로운 것, 좋은 것, 좀 더 나은 것이라는 이미지만 남게 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진보라는 말이 그렇게 함부로 쓰이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 앞섰다. 이를테면 ‘니들이 진보를 알아?’하는 심정 말이다. 자동차의 컨셉을 진보를 향한 열정으로 설정하고, 한국 가요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던 서태지의 이미지를 차용해 판매하려는 전략을 선보였던 CF 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얼마 전 끝난 제18대 총선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번 총선의 결과는 그야말로 (넓은 의미의) 진보진영의 참담한 패배였다. ‘그 나물에 그 밥’에 지나지 않는 한나라당,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이 과반을 휩쓸었고, 통합민주당을 포함해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은 다 합쳐 89석을 얻는데 그쳤다. 진보신당은 간판으로 내세웠던 노회찬·심상정 후보가 나란히 석패하는 아픔을 겪었고, 비례대표의 당선 또한 0.06%라는 숫자놀음 앞에서 좌절해야 했다. 81석을 얻은 통합민주당이지만 모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게 중 69명이 중도보수이고 대다수가 구 민주당계라고 한다. 더구나 17대 국회에서 나름대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보여주었던 임종석, 최재천, 우상호 등 386세대의 대표주자들도 고배를 마셔야 했다. 사실 정체성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창조한국당까지를 포함하면 18대 총선에서 진보는 완패한 셈이다. 권영길 의원의 재선 성공, 강기갑 의원의 짜릿한 승리, 노회찬·심상정 후보가 보여준 진보정당의 수도권에서의 가능성만으로는 덮을 수 없는 참담함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결과이기는 했지만 막상 개봉해놓고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정치시계를 정확히 10년 전으로 돌려놓은 이러한 결과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인 것인가. 아니면 경제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이명박식 개발독재에 대한 적극적인 찬성인 것인가. 혹은 지역주의 망령의 부활인 것인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고, 또 특정한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거기에 결정적 작용을 한 것은 아마도 ‘보수=안정, 진보=불안’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단단히 한몫 했을 것이다. 아주 고전적인 명제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정권과 의회를 탈환하고자 했던 보수 세력은 사회양극화의 심화와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이를 활용했다. ‘보수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고, 집값을 올릴 수 있다. 진보가 경제도 안보도 다 망친다.’ 등의 공세는 총선 내내 계속되었고, 이런 설득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시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와 겹치면서 상승작용을 하기도 했을 게다. 자동차를 팔기도 하는 진보이지만 정치와 만나는 순간 위험한 모험쯤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진보는 여전히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진보가 자동차를 팔면 어떻고, 또 아파트를 팔면 어떻겠는가. 오히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진보에 대한 이미지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일이 더 시급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꼭 정치이념으로서의 진보가 아니어도 좋다. 문화코드여도 좋고, 마케팅 전략이어도 좋다. 진보는 불안하고 모험이며 대가를 많이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좋은 것이고 나은 것이고 유쾌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확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보의 이미지가 활개를 칠 때 진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그것이 정치와 만나서도 ‘빨갱이, 체제전복 세력, 친북 또는 종북세력’으로만 곧바로 연결되는 어이없는 상황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세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면서 어차피 이미지를 통한 접근을 외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하는 승부도 중요하다. 더불어 이미지를 통한 승부에서도 이기자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서태지가 모델로 나온 그 자동차 CF, 자주 좀 나왔으면 좋겠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511 | 추천: 0
이라크 난민 친구들과의 이틀간의 재회 2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아부 아핫메트(아핫메트 아버지)의 직업은 경찰관이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부터 미점령 초기까지 바그다드 남부 알 만수르지역의 하위 치안담당이 그의 일이었다. 미국의 점령이 시작되는 2003년 4월부터 이라크 내부 정치는 미국의 권력배분에 따른 다양한 권력집단이 출현하게 되었고, 미국은 사담 후세인시절의 바쓰당과 수니파에 대한 억압과 무력진압을 중점으로 둔 정책을 시도하였기에 상대적으로 그 반대지점에 있었던 정치집단에 대해서는 방조와 선택적 지원을 하였다. 그로인한 내부적 갈등과 혼란 또한 점령이 지속되면서 증가하게 되었는데, 사담 후세인시절 해외에 있었던 정치그룹들은 사담 후세인시절의 권력층에 대한 피의 보복을 하였는데 그 와중에 아부 아핫메트 사진 출처 - 필자 2007년 11월 아부 아핫메트의 직속상관이자 사담 후세인시절부터 바쓰당원이었던 그 지역 경찰서장이 아부 아핫메트의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 되었고, 그 무장 세력은 아부 아핫메트에게도 살해협박을 하며 이라크에서 떠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로 인해 아부 아핫메트는 수십 년간 살아왔던 자신들의 땅에서 요르단으로 자신과 가족들을 피신시켰고, 그 이후부터 난민이 되어 4년 반 동안 요르단에서 지내고 있다. 다시 만난 그 날 밤 서로가 떨리는 인사를 한참이나 나눈 후, 안 되는 아랍어와 영어를 섞어 쓰면서 그들과 헤어져 있었던 1년 반 동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라크 난민으로써 요르단에서 정기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그들의 5남매는 다행히 해외 기독교 NGO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큰 딸 히얌은 자신의 성적표를 수줍은 듯 보여주면서 자신의 높은 등수를 자랑하였고, 막내 후세인은 계속 학교에서 말썽을 부린다고 이야기 도중 어머니에게 꿀밤을 맞았다. 한국의 “경계를 넘어”의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준비한 학용품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주자 그 집 가족의 얼굴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특히나 한국에서 준비해간 스케치북은 연신 신기한지 바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을 한국에 있는 “경계를 넘어” 활동가들에게 보여주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온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 둘째딸 디아나 사진 출처 - 필자 근데 꽤나 늦은 시간이 되었음에도 큰 아들인 아핫메트가 같이 없어서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핫메트가 밤 8시가 훨씬 넘어서 살짝 남루한 복장으로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나를 보고서는 깜짝 놀라면서 연신 소리를 지르면서 나에게 왔다. 반가운 마음에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수줍은 듯 동네 슈퍼에서 일을 하고 왔다고 했다. 알고보니 그는 거의 1년 동안 오전에는 기독교단체 시설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동네 슈퍼에서 물건을 나르고 심부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2006년 내가 요르단을 떠났을 때만해도 아부 아핫메트는 집 근처 식당에서 한 달에 120디나르(한국돈 17만원)을 받으며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였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요르단으로 엄청난 숫자의 난민이 밀려들자 요르단 정부는 그들의 노동을 불허하고 난민증이 없거나 난민증 유효기간이 지난 이라크 난민을 이라크로 추방하였고, 비록 난민증은 있어 추방은 당하지 않았으나 아부 아핫메트는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 이후 기독교 단체의 도움으로 아핫메트 어머니는 기독교 단체에서 보모로써, 큰 아들 아핫메트는 동네 슈퍼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한 달에 벌어들이는 돈은 110디나르(약 15만원 정도)로 한 달 집값과 물, 전기료로 약 80디나르(약 11만원)을 지불하고 나면 약 30디나르(4~5만원)이 남고 그 걸로 한 달을 살아간다. 현지 나이로 13세인 아핫메트의 키는 내 절반정도이다. 그런데 그 녀석의 손을 보니 손 크기가 내 손 만하다. 그리고 얼마나 까칠한지, 그 녀석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녀석의 손을 만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도 그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고만 있다. 뻔한 상황에 그들의 식사에 숟가락 하나 더 놓기가 미안해서 근처 슈퍼에 가서 그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바리바리 사와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일 년 반 만에 먹어보는 양고기 케밥과 닭고기 요리는 요르단 어느 일급호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귀한 맛이었다. 술을 먹지 않는 그들이기에 식사가 끝나면 “차이(아랍식 차, 설탕을 많이 넣어서 먹는 것이 특징)”를 마시며 기억도 가물가물한 아랍어(약 1년간 아랍어 공부를 하였지만)와 영어를 섞어가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막내딸 자하라가 심각한 피부병으로 인하여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가지 못하다가 주위의 도움으로 약을 조제 받은 이야기, 어느 다큐멘터리 감독과 인터뷰한 이야기, 아프칸에서 사망한 한국 병사의 이야기, 이라크 이야기 등등 13살 큰 아들 아핫메트 사진 출처 - 필자 문틈으로 불어오는 찬 바람을 같이 맞으며 하룻밤을 보낸 후 개인적인 볼일을 보고 그 다음날 그들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이웃에서 이라크 빵을 만들 수 있는 화덕을 빌려와서 이라크 전통 빵을 만들어 주었다. 이라크에 약 1년간 체류한 적이 있는 나에게도 너무도 반가운 빵이었기에 연신 그 과정을 지켜보고, 막 나온 빵을 막내 후세인과 같이 슬쩍 먹고서 서로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 커다란 화덕을 이용해서 이라크 전통빵을 만들면서 행복해 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 장소가 요르단 암만이 아닌 그들의 고향인 이라크 바그다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만나는 내내 웃음을 지었던 그들에게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그들은 다시 어두워졌다. 1년 반 전쯤 그들과 이별을 이야기 할 때도 그랬듯이 작은 목소리로 한국에서 혹시 그들이 지낼 수는 없는지 다시 물었다. 한국의 난민정책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대답을 주저하자 그들은 알았다는 듯 다시 알라(하느님)가 그들과 나를 잘 돌보아주실거라고 한다. 조용히 같이 차이를 마시고 그 집에서 일어날 때가 되자 아이들이 울기 시작한다. 부모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처음도 아닌데 처음보다 더 힘든 것 같다.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고작 “다 잘 될거야... 또 올게.” 뿐이었다. 그렇게 그 집 식구들과 이별을 하고 버스 타는 곳까지 따라 나온 아부 아핫메트와 깊은 포옹을 하면서 이슬람 방식으로 서로의 축복을 빌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직도 피부병을 앓고 있는 셋째 딸 자하라 사진 출처 - 필자 일 년 반 만에 그들을 다시 만나고 돌아온 나는 더욱 혼란해 졌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과 다시 헤어졌을 때의 슬픔의 크기는 그들의 삶의 무게에 눌려 답답해졌고, 희망의 메시지로 그들과의 짧은 재회를 표현하기에는 현재 그들의 상황이 내 자신의 무력감과 맞물려 너무 나쁘고 안타깝다. 지난 3월 20일은 미국이 현재의 상황을 만든 이라크 침공이 있은 지 5년이 되는 날이었다. 언론매체에서는 그 날 즈음에서 이라크 관련 여러 가지 미국의 정책, 이라크의 사망자수, 미군의 사망자수, 미국 대선이 이라크에 미치는 영향들을 보도했다. 그러한 보도는 많은 사람들의 잊혀진 기억들을 되돌리지만 또한 사람들 기억에서 ‘아! 그런 일이 있었지’하며 다시 그 기억을 잊혀지게 한다. 적어도 한국 정부는 이라크 침공에 동조하였으며 미국의 점령 최측근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도 점령군의 한편이었으면서 이라크의 재건과 복구를 이야기 했다. 최근에는 이라크의 석유에 노골적으로 침을 흘리며 자이툰의 고생을 이라크의 희망인양 덧칠하고 있다. 무슬림들이 기도를 드리는 모스크 사진 출처 - 필자 아부 아핫메트와 같은 이라크의 난민은 400만 명을 넘어섰고 이라크 전체 인구의 6분의 1인 수치이다. 한 가족의 4년 동안의 난민생활을 안다는 것이 때로는 버겁기도 하다. 때로는 회피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이 나로 인한 것이기도 하기에 피할 수만은 없다. 앞으로 얼마나 그들의 고통이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의 극단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이 있기에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들과 함께 사진 출처 - 필자
2017-07-11 | hrights | 조회: 517 | 추천: 0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이른 아침. 집이 시끄럽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잔뜩 화가 실려 있다. ‘이크 진돌이다.’ 진돌이가 어머니의 심사를 매우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사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진돌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반대하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강아지 밥은 그렇다 치고 그 수선떠는 것을 누가 다 뒤치다꺼리 할 거냐며 볼멘소리를 내셨었다. 마당이 좁고 그것도 대부분 블록으로 덮여있어 흙이라고는 구석에 작은 화단뿐이라 진도견을 키우기에 적당치 않다는 말씀도 곁들이셨다. 어머니가 한구석에 마련해 놓은 화초밭에는 수선화며 넝쿨장미며 허브 등 풀들이 자리 잡은 터였다. 그럼에도 어머니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우리가 잘 키워 보겠다고 나름 설득을 해서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그랬다 우리가 잘 키워보겠다 약속했었다. 한 달 전에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질주하고 있는 큰아이 민주, 둘째 현하와 함께 여행을 했다. 녀석들의 마음을 봄바람으로 다독이며 전남 고흥에 있는 미술관에 다녀오는 길. 함께 동행 했던 후배가 진돗개 새끼를 분양할 테니 길러보라고 권했다. 내가 미처 생각도 해보기전에 현하는 “아빠 우리가 길러요.” 어머니와 아내의 까칠한 대응이 예견되었으며 나의 천부적 게으름은 강아지를 돌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약하다. “음... 그러자 그런데 약속해야 돼. 우리가 할머니, 엄마 손 빌리지 않고 잘 키워보자.” “네 아빠 고마워요.” 하며 볼에다 뽀뽀를 한다. 봄바람에 새하얗게 터진 매화꽃을 닮은 녀석을 보니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최근의 진돌이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아내에게 여행후일담을 들려주는 자리. 엄마들은 자식들의 환한 귀향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현하가 강아지를 길러보고 싶다 하는데...” 순간 엄마들은 머뭇한다. 함께 봄 마중 했던 방금 전의 분위기는 가라앉고 어머니는 예의 논리정연한 말로 반대를 하셨다. “우리가 엄마 손 안 가게 잘할게요.” 우리들은 설득과 억지를 적절히 버무리며 엄마들을 진정시켰다.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약하다. 강아지는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당시 생후 4주차에 접어든 녀석은 걷는 것도 불안해 보였다. 뒤뚱 뒤뚱 걷다 제풀에 푹 주저앉곤 했다. 나와 아이들은 이름을 붙이고 밥을 사고 목줄을 사고 라면박스를 보금자리로 마련하고 허둥지둥. 정작 낡은 이불에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이들의 할머니였다. 잠시 목줄로 매어놓았지만 마음 짠하다며 마당에 풀어놓으라고 했던 것도 어머니였다. 시시때때로 녀석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어머니였다. 물론 아이들, 우리들은 최선을 다했다. 우리들은 강아지가 늘 강아지로 남아있을 줄 알았다. 아이들의 철없음이란... 이제 생후 두 달이 된 녀석은 계단을 자유자재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활개를 치고 있다. 짖지 않아 조용하지만 보이는 데로 물어대고 허물어뜨린다. 대소변을 가리는 것은 용하지만 반드시 화단에다 실례를 한다. 어머니의 봄 화단에 강아지는 무뢰한이었다. 봄비가 내린 후, 마침내 오늘 아침 일이 터졌다. 화단이 어지러이 뭉개져 있었고 곳곳에 녀석의 분비물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어머니의 화는 당연했다. 화단을 정리하시며 “이 좋은 아침에 저 녀석으로 인해 내 마음이 분란하다. 그러니 저 놈을 다른 곳에 데려가든 주든 해라. 더는 못 보겠다.” 봄날 아침 마음에 금이 가셨다. 애처롭게 등이 굽은 수선화가 할 말을 없게 만들고 있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저 녀석이 사람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뭐...”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 것을. “애비가 데리고 왔으니 애비가 알아서 해” 순간 강아지 비린내가 진동하는 마당이 조용하다. “네에...” 어머니 화단의 수선화 사진 출처 - 필자 출근하는 아내가 강아지를 흘깃 보며 한마디 거든다. “참 너도 고생이다.” 어떡한다... 어머니를 설득하기엔 눈앞의 현실이 참담하다. 현하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허둥대는 마음자리. 공연히 강아지 눈을 보고 으르렁 거려보아도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를 않는다. 저 녀석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 단순하게 생각하자.’ 어머니의 화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저녁에는 다섯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 사태에 대한 회의를 갖자 마음먹는다. 그동안 수선화를 위로하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보자. 그래 그러자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맡기고 기다려 보자.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에구 이 철없는 인사야...’ 강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17-07-11 | hrights | 조회: 524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이십년 이상 연배의 선배들도 모인 자리에서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그날의 모임에서도 선배들은 가족, 직장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그 중 한 선배 네의 가족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행복한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배는 휴가를 내서 일 년에 한번은 꼭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한 달에 한번은 꼭 가족회의를 가진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한 반성, 관계에 대한 반성, 목표 같은 것들을 토의한단다. 우아~ 아직도 가족회의를 한다니, 좋구나. 그렇게 선배의 말을 모두 고요히 듣고 있던 중, 마음에 턱 걸리는 말을 듣게 되었다. 중국에서 큰 공장을 운영하시는 그 선배는 “이제 중국 공장도 일단 다 정리해야겠다. 중국 인건비가 비싸져서 더는 중국사람 못 부리겠어” 갑자기 예전에 본 영화가 오버랩 된다. 중국이 자본주의에 가속도를 내면서 무수한 공장들이 생기고 어린 소녀들이 생계를 위해 그곳에 취직을 한단다. 그런데 마치 6,70년대 우리나라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꼭 닮아있었다. 기본권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상태에서 소녀들은 새우잠을 자며 야근을 하고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그런데도 그 돈을 겨우 쪼개 고향에 내려 보내야 한단다. 명절 때 고향 갈 차비가 없는 친구들도 많다. 선배님의 그 한마디에 중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떠올린 건, 가족과 일터를 대하는 이중 잣대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과 달리 싼 월급에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으니까. 기업이 이윤 추구하는 거야 당연한 거지라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 기업이 이윤 추구하는 거 당연한 거겠지, 비정규직 많아지는 거 당연한 거겠지, 회사가 힘들면 내가 잘리는 거 당연한 거겠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의 모습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해를 거듭할수록 세상 돌아가는 작동법이 끔찍해진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눠야만 내가 혹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인정하기 싫지만 모두에게 배인 삶의 방식이다. 어쨌든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거라지만,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범위를 자꾸 줄여 나가는 방식으로 역사는 흐르는 것 같다. 그래 내가 누군가를 배제해나가는 것엔 무신경하다 치더라도, 내가 배제되어 간다는 기분을 느낄 때는 어찌할 것인가. ‘우리’ 라는 테두리를 치고 그 밖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배제하게 되는 세상 작동법. 인종주의, 식민주의, 민족주의 숱하게 배제되어 죽어간 사람들이 썩지 않고 있는 역사. 지금 여기 일상생활의 모습은 어떤가. 아침마다 늘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출근한다며 따스하게 아이들을 안아주고는 일터로 나가는 가장들. 나를 지키고 내 가족을 지키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테두리의 바깥은 전장이다. 하지만 가정 밖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해야만 내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해도 정작 그 위험한 사회에 나와 내 가족이 언제나 위험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신영복 교수가 말한 관계론이 떠오른다. “깜깜한 형장에서 교수형을 받건 찬란한 햇볕 아래서 땅위에 피를 뿌리는 총살형이건 한 개체가 죽는다는 것의 의미가 결코 그 한 개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맺어 온 수많은 인간관계가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무기징역이라는 긴 터널을 마주하면서 느끼기 되는 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 개인의 아픔이나 비극이기보다는 나로 인한 여러 사람들의 아픔이 다시 나의 아픔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는 수많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이구나, ‘관계는 존재’라는 실존철학이 맞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스로도 지루해할 만큼 여전히 고민하는 질문이고 답은 없고 그래도 내겐 가장 중요한 고민. 어떻게 하면 한 사람에게서 숨 쉬는 수많은 관계들을 불러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부터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과제다. 제 3세계 어린이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믹스커피라 해도 내일 나는 여전히 150원을 자판기에 집어넣고 있을 것이고, 버마 군정에 무기를 팔고 티베트를 억압하고 힘없는 자들을 추방하고 있는 중국이 개최하는 베이징 올림픽이라도 우리나라 선수가 나오면 열심히 환호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자기 극복이 언제나 가장 힘들다. 시인은 종이 한 장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는데, 구름 없이 비가 없고 비 없이 나무가 자랄 수 없으며 나무 없이 종이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더욱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들이 그 안에 있는 걸 볼 수 있다는데. 그러게. 우리 사실 믿지도 않잖아. 생존경쟁, 승자독식사회, 무한경쟁사회,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실용주의 같은 거 말이야. 우리가 믿는 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이면서. 아아. 권력이 말하는 것과 예수님이 말하는 것을 자기 삶의 구역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얼마나 실용적인가.
2017-07-11 | hrights | 조회: 47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