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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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지난 7월 14일, 민변을 포함한 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민가협 등 약 30여개 국내 인권단체들은 한국의 촛불상황에게 발생한 인권침해상황을 유엔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내 인권보호시스템인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s)를 이용하여 표현의 자유, 인권옹호자, 자의적 구금, 고문 등의 특별보고관과 워킹그룹에게 긴급청원(Urgent Appeal)을 하였다. 유엔 ‘특별절차’를 설명하면 유엔인권이사회내의 특별 기구로써 긴급하게 벌어지고 있는 특정국가의 인권침해사안에 대하여 당사국이나 주변국의 단체나 개인이 각 인권침해 사안에 대하여 주제별 특별보고관(18개), 실무그룹(Working Group, 4개), 독립전문가(4개), 특별대표(유엔사무총장지명, 4개), 나라별 독립전문가(5개), 특별대표(1개)에게 직접 관련 인권침해사안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진정서(Appeal 또는 Model Questionnaire)를 보내면 이를 접수받은 각 특별보고관 및 실무그룹은 각 인권침해사안을 직접 방문조사(Country Visit)또는 각 당사국 정부에 질의하여 사안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권고사항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는 유엔인권이사회에 한국 촛불집회 상황에서의 인권침해사안을 가져간다는 의미와 함께 국제사회에 이를 공론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 엠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이나 아시아인권위원회(Asia Human Rights Committee)와 포럼아시아(Forum-Asia)로 부터의 각 조사관이 한국에 와서 조사한 결과를 유엔인권이사회에 의제화 하는 것도 우리와 같은 유엔특별절차를 이용하기 위한 하나의 사전 조사 작업인 셈이다. 현재까지 민변을 포함한 30여개 국내인권단체들은 두 차례의 긴급청원을 보냈으며,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한국정부에 의한 인권침해사안이 계속 발생될 것이기에 꾸준히 유엔인권이사회 특별절차를 이용하는 긴급청원은 계속될 것이고, 더불어 유엔인권이사회 차원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국제인권단체들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7월 14일 진행된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하지만 ‘특별절차’를 활용하여 한국의 인권침해사안을 유엔 및 국제여론에 알리고자 했을 때부터 주변의 지인으로 부터의 지적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인권을 자기중심적으로 혹시 보고 있지 않나’ 라는 조심스러우면서 복잡 미묘한(?) 반성의 지점이 생겼었다. 이는 소위 국제연대 활동을 한다고 하면서 실상 한국의 인권침해사안이 발생했을 때 유엔이나 다른 국제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한국을 벗어난 다른 국가 및 지역에서의 인권침해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 또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대했던 경험에서 오는 후폭풍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 인권이란 상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한국의 인권상황은 국제적으로 그리 낮지만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짧게나마 경험했던 중동의 국가들이나 아시아의 국가들의 예를 보면 한국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절차적 제도와 법을 통해 인권이 지켜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은 차치하더라도 그나마 그 법치국가로써의 외형을 갖춘 요르단의 경우에는 모든 정치적 집회는 불허이고 이를 어기고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가 있을 경우에는 모두 구속이 된다. 가장 최근의 정치시위였던 이라크 전쟁 시 요르단 대학 내의 학내 집회의 경우, 경찰이 학내로 들어와서 두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또한 필리핀의 경우에는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활동가나 종교지도자들이 천명이 넘게 지속적으로 살해 및 암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민변에서 약 두 달간 인턴활동을 했던 스리랑카의 한 여성 변호사는 민변을 떠나면서 했던 말들 중에서 자신은 정치적으로 발언할 수 없고 사회 활동을 하고자 해도 생명의 불안을 느끼는 스리랑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속내를 비치기도 했다. 이 글을 통해서 한국의 인권수준이 높으니 상대적으로 낮은 다른 국가의 사안을 먼저 챙겨야 하고 한국의 사안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을 주저해야 한다는 식으로 반성하고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인권을 평가하는 기준은 분명 상대적일 수 있고, 인권 그 자체가 절대적 기준을 가질 수 없는 민주주의와 마찬가지인 하나의 도달해야 하는 그 어떤 과정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한국의 인권상황이나 다른 국가의 인권상황은 두 개의 인권상황이 같이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인 답일 것이다. 다만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그 어려운 일을 겪었던 사람의 느낌을 알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동안 그 도움을 청한 곳이 먼저 요청했던 도움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의 부끄러움과 반성이 남아 있고, 이번 기회에 더 많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에 관련하여 스스로의 시야 확장이 꼭 필요하다는 결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찌 보면 국경이 있을 수 없는 인권의 영역에 경계선을 친 것은 그 곳에서 활동하고 경계선을 걷어내자고 소리친 나의 부끄럽고 편협한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국의 촛불이 어디로 진화해 나아갈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다시금 내안의 경계를 허무는 촛불로 승화 되었으면 한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02 | 추천: 0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날고 있으나 나아가지 않고 공중에 제자리걸음 하듯 날개 짓 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의 폭우로 텅 비어 버린 하늘을 제 세상인 듯 날고 있는 잠자리. 햇볕을 받은 날개는 윤기까지 났다. 잠시 동안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은 맑은 날씨를 기대해도 되겠다 싶었다. 여름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오전에 잠시 밖에서의 일을 보고 늦은 점심을 집에서 먹었다. 중학생인 딸 현하는 여행 가방을 진작부터 챙겨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주말까지 아이는 청원군 어암리에 있는 수녀원으로 피정을 간다.  열흘 전, 아빠와 엄마가 방학선물이라며 선사한 피정을 아이는 거부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가면 친구가 없잖아요, 친구가 없으면 심심하고 재미없어요.” 애초부터 쉽게 응하리라 기대하지 않았었다. “너에게로의 여행을 하는 거야, 침묵하면서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쉬고 하면서 말이지. 무엇보다 수녀님이 초대했잖아, 현하 이쁘다구 하시면서.” 지난겨울 잠시 아이와 나는 수녀원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기억을 상기시켜도 아이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거부했다. 할 수 없다 싶어 준비한 협상조건을 제시했다. “피정 다녀오면 옷 사줄게!” 한창 사춘기인 딸이 머리단장과 옷단장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기에 사후 옷 쇼핑을 협상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아이는 울던 울음을 그치고 금세 웃었다(이 순간 나는 내가 당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네! 그럼 갈게요.” 이를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피정도 선물인데 무슨 옷을 사준다고 그래요?” 어찌됐든 아이는 결정을 했고 나름대로 자신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준비했다. 옷가지며, 세면도구며, 필기도구까지...  아이는 간단하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처음엔 고민했지만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피정을 마친 후의 내 모습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막상 가기로 결정한 후 아이는 오히려 피정을 기다려 왔다.  청주에서 어암리 수녀원까지는 약 50분이 소요된다. 나는 가는 동안 아이에게 피정에 대한 안내와 수녀원 부근의 산책길과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정보들을 제공하기로 마음먹었었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제법 한적한 도로로 접어들었을 땐 아이는 잠이 들어 있었다. “헐~” 입맛을 다시면서도 아이가 깰까봐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차창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비가 내린 후의 날씨는 맛깔나게 선선했으며 주마간산 격이었지만 자연풍경은 여름이 제법 익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추어 섰을 때 나는 잠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계절로 치자면 딸아이는 어쩌면 그녀의 인생에서 초여름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인생이 살고 있다. 다섯 아이들과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들의 할머니).  지난겨울과 봄, 크고 작은 소동으로 아이는 우리를 긴장시키고는 했다. 아이 스스로 억울해하면서도 선생님들에게 찍혀버렸음을 알고 있다. 학교는 예나 지금이나 야생이다. 그런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말뿐이었다. “네 행동에 진중하고 그리고 태도는 당당해라. 우리는 널 믿어.” 내심 나는 아이가 탈학교를 선언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학교는 싫은데 친구들이 좋아서 그리고 비록 꼴찌이지만 공부가 슬슬 재미있어진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말이 진심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상황을 인내함이든 혹은 어쩔 수 없는 순응이든 그 속마음인들 어찌 알 수 있을까마는 자신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음이다. 이미 생겨버린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팽창시키고 있음을 또한 안다.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해 버린 노회한 부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심초사다. 덜 혹독한 인생의 계절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며 다툼과 욕망이 판치는 야생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도 있음을 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세계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맛난 진수성찬도 스스로 입에 넣지 않는 한 억지로 떠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내는 할 수 있어도 선택은 아이의 몫이다.  수녀원에 들어서자 아이는 차에서 가볍게 내렸다. 정해진 숙소에 짐을 풀어 놓고 아이와 나는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아이는 낯익은 신부님과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며 어느새 마음을 풀어놓고 있었다. 네 시부터 시작되는 피정일정 시간이 되었을 때 아이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드디어 나 혼자만의 시간이란 말이지. 기대된다. 으흣” 그러면서 “아빠 안녕히 가세요” 하며 돌아섰다. 나는 아이를 불러 세웠다. “현하야 아빠 안아줘야지.” 아이가 다가와 나를 안았다. 아니 안아 주었다(녀석은 나와 떨어져 있음이 서운하지도 않은가 보다). 가볍게 발걸음을 놓는 아이를 보며 오전에 보았던 잠자리가 떠올랐다. 계절은 흐르고 여름은 익어가고 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93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해야 하는 데라는 생각을 반복하다가 문득 내가 경험한 알바 역사가 떠올랐다. 내 최초의 알바는 돈가스 서빙, 불행히도 첫 알바에서 돈을 떼였다. 가게는 문을 닫았고 다시는 사장을 볼 수 없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서 첫 알바를 한 곳은 여대 근처의 한 카페. 난 2005년 당시 시급 2500원으로 일했다. 사실 그게 잘못 됐는지 몰랐다. 그저 열심히 일하였다. 돈이 필요했으므로. 펜션청소알바라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사장은 내게, ‘넌 너무 말이 없다.’ ‘난 옆에서 얘기 많이 해주는 알바생이 좋더라’ 라고 하기에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난 속으로 궁시렁댔고, 심지어 ‘마사지 받은 경험에다 금액까지 상세히 설명하시며’ 날 불편하게 했다. 생각해보니 성희롱이 아니었을까나 싶다. 아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마음 편히 공부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하기 싫은 알바를 해야 하는 날들이 취업 후에도 이어질까 하는 우려를 하는 내가 제일 싫었다. 그러나 어차피 오래 일할 것도 아니었기에 이 모든 것은 경험이다 위안하며 나는 꿋꿋이 알바를 찾아 전전한다. 요즘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알바는 생계 수단이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높은 등록금은 차치하고서라도 치솟는 물가로 인해 빠듯해진 생활비를 위해서 알바는 필수다. 한편으로 알바는 사회간접경험이라 한다. 모든 경험들이 갚지다곤 하지만 사실 이젠 알바가 대학생활의 유일한 사회간접경험이 될까봐 걱정이다. 사실 난, 학생으로서 좀 더 가치 있는 알바를 하며 만족을 얻고 더불어 생활비 부담도 덜고 싶다. 대학생에게도 학습권을 달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닌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학생이란 신분으로 왜 우리가 학업 이상의 생계라는 무거운 짐을 지어야만 하는가? 대학생들을 사회의 미래라 운운하고 대학생들 공부하지 않는다고 꾸짖기만 하는 기득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에게 얼마나 학습권을 보장해 주었느냐고. 대학진학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모순적이게도 학습권은 없다. 학생으로서의 권리 말이다.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책에서 이 영은 ‘학업에 의사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일을 방지’ 해야 한다 말했다. 이러한 역할을 누가 해주어야 하는가? 이광택 교수의 표현처럼 교육이라는 ‘공공성이 물화’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주위 친구들 중에선 알바가 주인지 학업이 주인지 모르게 한 학기를 보내기도 하고,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조금이라도 등록금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전선에 뛰어든다. 다시 학교 돌아오기가 녹록치 않은 학생은 휴학을 하고 계속 돈을 벌기도 한다. 졸업하고서는 어떤가. 직장엘 들어가면 당분간은 학자금 대출을 갚는데 내 월급을 써야 한다. 불어난 이자와 함께. 그렇게 대학생들은 차분히 노동력을 생산하는 기계로서의 전철을 밟아 나간다. 빚을 지고 그걸 갚기 위해 나의 노동력은 담보로 잡힌다. 공공성의 보장은 국가의 책임 영역이다. 대학생들에게 책값과 생활비를 주고 학업 환경을 높여주는 건 국가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사회적인 투자이다. 그걸 아는 현명한 국가들은 등록금과 책값을 넘어 알바자리까지 구해주며 생활비까지 넉넉히 벌게 해준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소외계층이 되어버린 한국의 대학생들. 우리가 국가에 바라는 것이 없듯이 국가 역시 대학생들에게 바라는 게 없는 걸까. 학생에겐, 대학생에겐, 제약 없이 학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라고 인식하는 건 어려운 일일까. 아르바이트생은 여전히 최저임금제 등에서 소외되어 있다(위 사진은 특정 업체와 관련 없음)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돈벌이’로서의 알바가 아니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알바 노동을 처음 경험하는 통로가 되는 알바가 단순히 생계나 수단으로서만 작용하는 것도 문제다. 최근 들어, 알바 최저시급문제, 성희롱 등 알바와 관련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알바는 노동이다. 하지만 알바는 노동으로 인식되기보다 그냥 단순한 돈벌이로 인식됐기에 알바생의 인권이 침해되는 문제점들이 묵인됐다. 알바를 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최저시급이 얼만지 노동권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노동시장으로 나아가 부닥친다. 교육과정에도 없는 노동권에 대해서 배웠을 리가 없다. 나의 노동을 통해 어떤 실현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기회도 없었다. 잠시만 돈 벌고 말 일이니까 치사하고 부당해도 그냥 참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사회전반의 노동들이 다 돈벌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계속 입에 달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먹고 사는 문제야 정말 고귀한 것이지만 그게 굴레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가 처음 접하는 노동에서부터 권리를 찾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고민들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 또 그게 좀 더 농밀하게 사는 삶일 것이고, 그것은 노동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학생들의 ‘알바’ 를 살피는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돈벌이’ 나 또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만 기능하는 알바가 아니라 노동으로서 ‘자아실현’ 할 수 있고 ‘사회적인 가치’를 실현하는데도 도움을 주는 알바를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대학생 알바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당연히 필요하다. 내 전공에 맞는 일을 해본다던가, 적성에 맞는 일들을 해본다던가. 이런 기회가 아주 운 좋은 몇몇 학생들에게만 돌아갈 것이 아닌 알바를 하길 원하는 대학생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줘야 할 것이다. 또 사회 곳곳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맞벌이 하느라 아이 양육이 힘든 부부들, 특히 학원마저 방학할 때가 되면 어찌할 줄 몰라 한다. 예컨대 나라에서 공부방을 만들어 주고 그 곳에서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할 기회를 얻는다면 서로에게 얼마나 유익할까. 지체장애인 분들의 활동보조를 하며 국가에서 일정 알바 비를 받는 대학생들을 만난 적도 있다. 이렇게 나의 노동을 통해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는 토대가 대학생들에게 생기면 좋겠다. 우리의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은 한에서 알바를 통해 노동권과 노동의 의미를 이뤄나가고, 그 보람과 함께 내가 원하는 것을 정당하게 얻었다는 보상을 얻어나가는 것. 청소년이든 대학생이든 그런 것을 배워나가는 것이 사회에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 믿기에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다. 국가는 학생들의 권리를 보살피고,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들을 만들어 나가며, 그렇게.
2017-07-11 | hrights | 조회: 330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이명박은 물러가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탁!” 경찰이 던진 물건이 내 이마를 맞혔고, 난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순간 의식을 잃었다. “사람이 쓰러졌다.” 주위 사람들이 외쳤다. 점점 의식이 돌아왔다.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시민 의료진으로부터 응급치료를 받았다. 여러 사람이 나를 들어 119 구급차량에 옮겼다. 그 날 새벽, 병원에서 눈 윗부분의 이마를 꿰맸다. “오늘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여기에서 꿰맨 사람만 10명째네요.” 라고 물대포를 맞아 으스스 떨고 있는 나에게 당직의사가 말을 건넸다. 병원 응급실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환자들이 많았다. 책과 영상에서만 겪었던 80년대 독재정권의 모습 같아 몸이 더욱 으스스 떨린다. 심장이 요동치는 공안정국의 새벽이었다. 5월 2일, 청소년들의 촛불행동이 시작된 이래 벌써 60차례가 넘는 촛불행동이 광화문에서,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국민의 건강주권을 미국에게 싸그리 내줘버린 이명박 정부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외쳤다. 그러나 정부는 희망을 말하는 국민들을 불법집단, 폭도로 내몰아갔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가 간 신뢰 문제 때문에 합의 무효화나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며, 국민들을 폭력 진압의 멍울 속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하지만 최근에 미국에서는 우리와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미 연방법원에서 30개월 령 이상 캐나다산 쇠고기에 대해 잠정 수입금지 처분을 내렸다. 법원은 “30개월 령 이상 캐나다 소가 반입될 경우 광우병이 퍼질 위험성이 있다.”는 미 축산업자들의 집단소송에 따라 원고 인용판결을 내림으로써 캐나다와 미국의 잠정 합의에 따라 미 농무부가 작년 11월 19일 발효시킨 내용을 미 법원이 뒤엎어버린 것이다. 더불어 미국의 전통 우방국인 일본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현재 월령 20개월 이하인 일본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 완화를 요구하자 일본 총리가 “식품의 안전, 안심을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과학적인 식견에 근거해 판단해 가겠다.”며 당장은 수입 조건을 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이 이러한 자기 주권을 외칠 때, 대한민국 주권은 이미 이명박 정부의 거대한 음모로 그 존재가 땅 속 깊숙이 박혀 버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했지만, 대통령이 다수의 전과 경력이 있어서인지 MB는 헌법을 뛰어 넘어 국민들의 주권을 마구 짓밟고 있었다. 국민 주권을 짓밟고 초법적 일탈행위의 습성을 갖고 있어서인지 MB는 역시 헌법 제66조의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내용을 어기고 있다. 가만히 남북관계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가 쇠고기 문제로 정부를 상대로 직접행동을 펼쳤을 때, 남북관계 또한 MB 정부의 음모에 의해 치명타를 입고 있었다. 결국 새 정부 취임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얼어버렸다. 가장 큰 문제로 현 정부가 대북강경정책 자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인수위원회 기간 동안에 통일부 폐지 시도와 역할 축소, 대북 강경론자 남주홍 통일부장관 임명 시도와 홍관희 통일교육원장 내정 등이 증명해주듯이 현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전략적 접근이 결여되어 있는 일방주의 접근을 취해 왔다. 최근 발행한 「통일교육지침서」에서도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부정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둘째, 남한 정부가 6.15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MB가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과의 차별화를 꾀하면서 남북 정상간 합의였던 선언들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존중을 언급했는데, 이는 MB 정부가 남북관계의 역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꼼수다. 6.15선언과 10.4선언은 기본합의서가 추진하지 못했던 실행력을 갖췄고, 관계자 정례 회담, 교류 및 경제협력 강화, 이산가족 상봉 등을 실제로 진행해 왔다. 더군다나 기본합의서는 정상 간 회담이 아니라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이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명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촛불행동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여성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셋째, 확실한 대북정책이 없다. 「비핵개방 3000」은 현재의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관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더불어 대선 기간의 선거 구호였지,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이 되지 못한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400억 달러 상당의 국제 협력자금을 투입하고, 현재 약 500달러 정도인 북한 주민의 1인당 소득을 10년 후 3,000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는 전혀 설득력 없는 빛 좋은 개살구 정책일 뿐이다. 남한 정부가 북한의 핵폐기 과정에서 어떠한 활동을 취할 것인지 나타내고 있지 못하며, 대통령 임기는 5년인데, 10년 후의 북한 주민 소득을 언급하고 있는 넌센스의 실정이다. 거기에 엄연히 하나의 주권 국가인 북한의 국민들 소득을 일방적으로 좌지우지한다는 발상은 주권 침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비핵개방 3000」은 전혀 진정성이 담겨있지 못한 허울 좋은 입장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MB는 쇠고기 정국에서 드러난 헌법 제1조의 위반 행위, 그리고 개인의 다수 전과 경력 등의 ‘위법의 추억’을 반성하고, 헌법 제66조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계속해서 위법 행위를 저지를 경우 이는 그 댓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역사적 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나가야 하고 상생·공영의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북강경정책 만을 고집하지 말고, 북한을 진정으로 통일 파트너로 인식하여 상호 교류․협력을 확대해야만 할 것이다. 더불어 「통일교육지침서」 발간 등 대 국민 통일교육을 실시하는 통일교육원장에 홍관희 내정자를 즉각 취소시켜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세에서 홍양호 통일부차관의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답방 우선이라는 비현실적인 발언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둘째, 6.15공동선언, 10.4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북한과 국제사회에 보여야 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국민의 90%와 74%의 넘는 지지에서 보여줬듯이, 총리회담 등 남북 관계자 정례 회담 개최, 개성 등 경제협력 확대, 상설협력기구 설치 등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마지막으로, 비핵개방 3000으로 대표하는 실효성 없는 대북정책을 과감히 폐기해야 하고, 북핵폐기와 관련된 상응 조치에 따른 절차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재 북한이 핵폐기 2단계 과정을 거치면서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이러한 지형에서 절대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이 지난 10년 동안 잘 차려준 남북관계라는 밥상에 기쁜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어야 할 때인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MB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교하는 글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통령 둘 다 장로이고, 나라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수장들이 한승수, 강만수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냥 괴담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남북관계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처럼 삐거덕거리고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해서 지난 6개월 동안 계속해서 남북관계는 후퇴하고 있고, 마치 김영삼 정부 시기처럼 냉랭한 관계로 흐르고 있다. 지금처럼 앞으로 4년 반이 지났을 때, MB는 결국 또 국민 앞에 대통령으로서의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성실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헌법 위반자가 될 것이고, 더 나아가 민족 앞에, 그리고 평화를 원하는 세계인들 앞에서 죄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MB를 불쌍히 여기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아끼는 마음에서 마지막으로 MB에게 얘기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위법의 추억’에 젖어있지 마세요. 지난 날 많이 외롭고 힘들었었죠? 이제 그 동안의 잘못을 용서할 테니, 지금이라도 모두 반성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세요. 아! 그리고 남북이 지금보다 더욱 친해지면 어떨까요? 님의 활약, 기대할게요.”
2017-07-11 | hrights | 조회: 326 | 추천: 0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3년이 조금 더 된 일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한 박사와 저녁 자리를 함께 한 일이 있다. 알코올이 피와 뒤섞여 혈관을 한참 헤매고 다닐 무렵 서울광장이 대화의 도마 위에 올랐다. 잔디를 깐 지 몇 달 안 된 시점이었는데, 서울시가 보수단체에는 사용허가를 마구 내어주면서 진보단체가 사용 신청을 하면 허가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술 한 잔 먹은 김에 필자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 세상에 광장에다 잔디를 깔아놓곤 잔디 보호한다고 못 들어가게 하고 단체도 성향 봐가며 사용을 허가하고말고 이런 게 어딨어요. 도대체 서울시는 광장이라는 공간이 무얼 위한 것인지, 어떠해야 하는지 알기라도 하는지 모르겠어요. 만약 내가 이명박 시장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잔디를 다 걷어낸 뒤 이렇게 선포하는 거에요. ‘세상에 입 달린 자, 할 말 많은 자, 모두 서울광장으로 오라. 어떤 하고 싶은 얘기든 다 하라. 그게 바로 광장이다. 서울광장은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다. 나 이명박이 시장직을 걸고 보장하노라’ 이렇게요. 이러면 이 시장은 열린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얻고 인기도 확 올라갈텐데…” 그리고 나서 거듭 이 시장 비판을 계속 했더니 그 박사 연구원이 “그래도 우리 시장님 욕하는 게 듣기 좋지 않다”고 거듭 자제 요청을 하는 바람에 ‘혀의 칼질’을 멈췄던 적이 있다. 그 뒤 집회시위 취재를 할 때나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서울시청 출입 기자를 하면서도 서울광장은 늘 불편하게 다가왔다. 걸핏하면 잔디보호를 위해 빙 둘러 줄을 쳐 놓고선 못 들어가게 했다. 누구나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광장의 본질적 의미를 배반한 그런 닫힌 공간처럼 느껴졌다. 서울광장의 애초 출발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고종의 국장 행렬이 지나간 곳이자 4·19혁명, 87년 6월 항쟁, 2002한-일 월드컵 등 한국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들이 벌어진 공간에다 온전한 광장을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2004년 3월 서울광장 조성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광장은 조그맣고 차도가 대부분 점거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2003년 1월 ‘서울시청 앞 광장 조성 설계공모’ 결과 서현 한양대 교수가 낸 ‘빛의 광장’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2003개의 LCD 모니터를 바닥에 깔아 밤이면 첨단의 영상 이미지를 주변의 시청 본관, 덕수궁 등 유적과 어울리게 한다는 야심찬 작품이었다. 물론 찬반의 논란이 뜨겁게 일기도 했다. 여러 가지 현실성의 문제가 제기됐다. 작품을 운용할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운용하는데 대한 기술적, 재정적 문제들이 제기됐다. 1년 넘게 어물거리던 서울시는 2004년 5월 1일부터 시작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앞두고 잔디광장을 급조하기에 이르렀다. 설계공모를 거쳐 당선작까지 선정해놓고는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잔디를 깔기로 했다. 2002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깔았던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1년 사시사철 푸르고 교체하기도 쉽다는 설명도 따랐다. 이때부터 이 광장의 주인은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됐다.   53번째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지난달 29일 저녁 6시께 경찰이 서울시청 앞 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싸 시민들의 광장 출입을 막고 있다.(위쪽 사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두 번째 시국미사가 진행된 지난 7월 1일 오후 경찰 버스와 병력이 모두 철수해 광장이 텅 비어 있다. 서울시는 잔디 교체 이유로 다음주부터 시민들의 출입을 금지할 방침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잔디광장이 갖는 미덕도 적지 않다. 광장 전체 1만3207㎡ 면적 가운데 절반가량인 6447㎡을 뒤덮은 녹색의 자연은 보는 것만으로도 회색빛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무더운 여름에는 아스팔트 위를 걷다 그 잔디광장으로 들어가면 체감온도가 확실히 낮아지는 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1년 중 100일 이상은 잔디 보호 등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고 잔디 교체를 위해 연간 수억 원의 시 예산을 쏟아 붇고 있으며, 1㎡당 10원의 사용료를 내고 시에서 사용허가를 받아야 하는 광장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니다. 헌법적 권리이고 ‘허가제로 운영하지 아니한다’고 헌법이 못 박은 집회시위를 경찰이 사실상 제멋대로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만도 충분히 짜증스런 일이다. 게다가 역사적 의미가 큰 서울광장을 쓰기 위해 시에서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니! 서울시가 또 잔디를 새로 심어야 한다며 20여 일 동안 출입을 막겠다고 한다. 서울광장을 본래의 광장으로 기능하지 못하게끔 한 건 이명박 전 시장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비롯한 대미굴욕 협상과 신자유주의를 향한 조건 없는 투항 때문에 거대한 저항에 맞부닥친 상황이다. 그 저항의 공간인 촛불의 집결지, 서울광장을 서울시가 다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겨울이면, 루체비스타니 스케이트장이니 잔디를 괴롭히는 일을 실컷 저질러놓고 초봄이 되면 대규모 잔디 식재를 하는 서울시의 이율배반이다. 잔디광장을 시청 공무원의 개인 정원쯤으로 여기는 행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마찬가지다. 1천만 서울시민의 식수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대운하가 한창 논란일 때 “대운하를 하면 취수원 이전 등의 문제가 발생해 곤란하다”거나 “대운하와 서울시민 식수와는 아무런 상관없다”거나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오 시장이다. 명백한 직무유기였다. 총선 때 한나라당의 수많은 후보들이 너도나도 뉴타운을 거들먹거리며 땅값은 땅값대로 올리고 서민들의 사행 심리를 조장하면서 당 될 때 침묵으로 선거를 도운 이도 오 시장이다. 어려운 말로 ‘부작위에 의한 지자체장의 적극적 선거 개입’이다. 이번에도 행정 관료들의 ‘촛불 끄기’에 다시 침묵으로 답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하나의 문맥으로 엮여 서울시민들에게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줄 것인지 오 시장은 정녕 모르는 걸까? 세금내고 사는 서울시민으로서 켄터키 블루그래스 모시고 살기가 너무나 피곤하다. 땡볕에 조금 더 땀을 흘릴지언정, 눈이 조금 더 피로할지언정, 아스팔트는 시민들에게 스스로를 모시라고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고생하겠다. 켄터키 블루그래스는 시청 공무원 집에다 옮겨 심고 아스팔트를 깔아 달라. 시민 노릇하기도 고역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17 | 추천: 0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2004년 6월 대광고 학생회장이던 강의석 군이 45일간 단식까지 하며 ‘예배 선택권’을 주장한 것은 수십 년 간 금기에 가까웠던 공공영역의 ‘종교강제의식’(예배, 법회 등)을 인권차원에서 제기한 특별한 사건이었다. 고등학생이 문제를 제기했기도 했지만, 학내방송을 통해 선언한 지 열흘만에 퇴학처분을 내린 학교 당국의 ‘일사 분란한 결정’이 주목을 받았고, 또 학교에 재직중인 종교교사이면서 목사였던 류상태 선생의 감동적인 제자사랑이 사회적 성찰을 만드는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종교권력과 결합된 사립학교가 어디까지 전횡을 휘두룰수 있는지 보여준 하나의 사례이며,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과 내용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2007년 10월 대광고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종교의식 강요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강 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종교사학의 종교교육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신앙의 자유와 학습권이 선교의 자유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종교문제로 식상하고 신뢰감을 잃은 국민들에게 모처럼 한 가닥 희망을 던져준 역사적 판결이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8일 고등법원은 ‘학생인 원고의 자발적·자주적인 의사가 충분히 존중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행사나 의식 및 수업이 실시된 동기 내지 목적, 대광고등학교의 기독교 학교로서의 전통 등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원고의 행복추구권, 신앙의 자유 내지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회적인 허용한도를 초과한 위법한 행위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선고했다. 서울고법의 판결을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의 대법원 앞 기자회견 사진 출처 - 필자 판결 차이의 핵심은 강제성 여부이다. 원심은 “기본권의 중대성과 고등학생들이 미성년자로서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없는 무능력자임을 감안할 때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해서 곧바로 동의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본 데 반해, 항소심은 “입학 당시 선서를 해서 학칙을 준수하기로 했고, 고2까지 별다른 의사표현 없이 참석했으므로 강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반대나 항의 표시가 없으면 자동적 동의로 간주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의사결정권과 인권을 심각히 훼손시킬 무리한 주장이다. 더구나 학교 선택권이 없고, 종교를 이유로 전학을 갈수 없으며, 주소지를 옮기는 등 편법을 동원해야 한다. 법원이 예민한 종교인권 문제에 세심한 배려 없이 독실한 개신교인 재판장에 사건을 배정한 사실은 문제이다. 해당 판사는 개인의 양심에 반하지 않고, 법률에 근거해서 판결했다고 한 종교계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재판장인 곽아무개 판사는 대광고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교단과 비슷한 장로가 중심이 된 소속 교회의 장로이며, 통일선교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개인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에 심취해 있는 판사가 타종교인의 심적 고통과 종교인권을 깊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자신의 종교를 위해 결론은 미리 내려놓고 궁색한 변명을 찾으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6월10일 한국언론재단앞 켐페인 모습. "예배강요 싫어요" 작은 현수막과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현수막이 동시에 걸렸다 사진 출처 - 필자 대광학원과 대광학원의 주장을 옹호하는 법률가들의 주장은 그리스도와 바울의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 보편성이 아닌 권력의 논리이며, 로마제국의 세속적 정치논리에 닮아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강의석씨가 입학 당시 기독교 교육과 함께 모든 교과교육을 충실히 받겠다고 선서하였고 피고 대광학원의 종교의식과 종교교육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거부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식이 포함된 각종 학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점을 근거로 원심을 파기했다.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받은 법률가라면 강의석이 했다는 입학당시 선서가 강의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한국의 상황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리 침해적 강요행위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신념은 변화할 수 있다.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변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개종은 불가능하므로 미션 스쿨의 설립 의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참, 역설적이다. 그러나 위법적 선서행위가 오히려 원고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로 제시된 것을 보면, 한국 법원의 수준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결혼할 때 부부간에 성적 결합이 있을 거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부부간에 강간이 성립할 수도 있다는 판례에 공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년자인 남녀가 부부가 되면서 성적 결합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성행위는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서로의 자발적인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동의도 그런 자발성을 묵시적으로 전제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식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이다. 그런 걸 미리 서약서를 받는다고 침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서약서를 받는 행위에 종교를 강제할 의사가 숨어 있었다면 그것이 불법인 것이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남의 머릿속 세계관에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강의석군은 한번도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부정하거나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 다만 학교가 종교교육을 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학생도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있으므로 “학생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강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현재 대광고를 비롯한 일부 기독교재단의 학교는 ‘특정종교예식을 전체 학생에게 제도적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이것을 ‘종교교육을 할 자유’와 혼동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유도 존중받아야 하는가? 양쪽의 자유가 모두 충족되려면, 학교에는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주되, 학생에게도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지난 6월 10일, 한국언론재단 앞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에게 홍보물을 뿌리는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강의석씨 사건을 맡을 대법관 재판부에 김황식 대법관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것도 비극이다. 김 대법관은 2005년 말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부적절한 인물로 평가 받았었다. 대학채플을 패스하지 않으면 졸업장을 주지 않는 학칙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인물이다. 이런 종교자유에 반하는 대표적인 판례를 만든 장본인이 주심 대법관이라도 된다면 어떤 과정이 일어날까, 본안에서 제대로 심리라도 할까 걱정된다. 그는 이미 2007년 5월 상지대 판례를 주심으로 맡아 사립대학의 민주화 노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장본인이다. 다행인지 또 다른 곳의 불행인지 지난 주부터 감사원장 후보자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15일 이 대통령이 참석한 40주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특별기도를 한 바 있다. (사)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와 대한민국국회조찬기도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였다. 주최 측이 자랑하듯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게 열리는 행사에, 대법관, 공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하여 개인의 순수한 신앙 활동차원에서 특별기도를 하고, 감사원장 후보로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지금은 골방에서 기도할 때이지만, 갈수록 은혜로운 나라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까? 종교권력화를 비판하고, 종교계 설립 사립학교 내 학생의 인권을 주장하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촛불은 대법원을 향하고, 감사원을 향해야 할 지 모른다. 대법관이나 대법원장 그리고 감사원장도 국민이 직접 선출하자며 헌법을 고치자는 운동은 어떤가. 민주주의를 위해 든 촛불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개선과제가 세부적으로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잔치가 아닌 우리들 자신을 위한 촛불잔치를 만들어 보자. 인사청문회에 앞서 선서를 하는 김황식대법과 후보자, 이제 감사원장 후보자로 나설것인가 사진 출처 - 필자
2017-07-11 | hrights | 조회: 342 | 추천: 0
- 저항은 즐겁고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촛불을 드는 시민의 수는 늘어가고, 학생들은 교실을 벗어나 거리로 나서고 있다. 제자들이 동맹휴업으로 길을 트면 교수들은 시국선언으로 화답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월차로 촛불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단위로 참여하는 촛불집회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예 여름휴가를 시청광장에 텐트치고 보내겠다는 농담도 들려온다. 6·10항쟁 21돌을 맞은 10일은 전국이 들썩였다. 서울에서는 50만의 시민이 촛불행렬에 동참했다. 물론 정확한 참석인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50만은 주최 측 주장이고, 경찰은 8만이라고 한다.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그냥 50만이라고 하자. 촛불을 든 사람만 참석자인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던 그 시간대 광화문 일대에 걸음을 서성이고 있던 시민 모두가 참석자다. 집에서 현장생중계를 보며, 뉴스 검색을 하며 마음은 광화문에 있었던 소위 ‘재택촛불’도 참석자다. 그들을 모두 합치면 50만이 아니라 최소 500만은 될 거다. 뻥이 좀 있으면 어떤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해대는 정부에 비하면 이정도 뻥은 뻥도 아니다. 금남로 촛불시위 현장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광주에서도 5만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서울에서는 탄핵시국이 있었지만 광주에서 5만 시민이 금남로에 모인 것은 그야말로 87년 6월 항쟁 이후 21년만이라고 한다. 고사리 손에 촛불을 든 아이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까지 금남로가 간만에 ‘시민광장’이 되었다. 연등을 든 스님들과 피켓을 든 수녀님들, 학생, 노동자, 주부, 상인, 농민 할 것 없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금남로에는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자유발언을 하는 이도 듣는 이도, 주먹밥을 나눠주는 이들도 받아든 이들도, 모금함을 돌리는 이들도 돈을 내는 이들도 즐겁기는 매 한가지였다. 초등학생의 ‘과격한 발언’에 웃고, 고등학생의 집단 ‘땡땡이’를 격려하고, 개사한 진도아리랑에 흥겨웠다. 어른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한 비보이 공연도, ‘프리 허그’도 광장에서는 좋은 볼거리다. 한 상인이 생수 1,000개를 내놓았다는 소식이나 즉석모금이 900여 만 원이라는 소식에는 5월 광주가 오버랩 된다. 아마 이날의 금남로는 시민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권력 앞에 무기력한 시민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과 맞서는 시민으로서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시민광장을 만든 금남로에서 다시금 확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항 그 자체로 즐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회가 즐거운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말들의 잔치’ 때문이다. 촛불집회를 거듭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업그레이드되는 문구와 구호는 언어의 유희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명박 OUT’ ‘고시철회’ ‘너나 먹어 미친소’ 등은 단체 제작하는 피켓의 단골메뉴일 뿐이다. 시민들 개인이, 소규모 그룹이 자체 제작하는 피켓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나쁜 머슴 이명박! 넌 해고다’ ‘닥치고 재협상’ ‘2MB 넌 틀렸어 틀려, 2MB 쓰거브네’라는 직접적인 표현에서부터 ‘소탐대실(소를 탐하면 대통령을 잃는다)’이라는 경고도 보인다. 여기엔 조롱도 함께 한다. ‘이름은 명박, 관상은 쥐박, 개념은 외박, 경제는 쪽박, …언행은 경박.’ 국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고백에 대해서는 ‘소통하기? 개뿔! 소유통하기’로 응수한다. 애꿎지만 삼신할머니도 피해가지 못한다. ‘2MB 점지한 삼신할머니 각성하라.’ 또 ‘백일 됐다. 헤어지자.’는 고백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금남로에 걸린 대형 걸개그림 사진 출처 - 필자 온 국민을 무식한 사람으로 만든 주한미국대사에 대해서는 ‘과학 좋아하는 버시바우! 주한미군 10년 먹여 과학적으로 검증하자’고 따진다. 가수 안치환이 촛불집회에서 새롭게 발표한 노래 ‘유언’의 내용도 벌써 피켓에 담겼다. ‘미친소 먹고 민영의료보험으로 돈 없어 죽거든 대운하에 뿌려다오.’ 광우병 괴담과 관련해 한 시민이 현수막에 적은 문구는 간담이 서늘하다. ‘진짜 괴담은 이명박 임기가 4년 9달 남은 거다.’ 즐거운 자리에 기발한 아이디어의 말들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날 금남로 집회에 백미를 이뤘던 것으로 문학적 표현이 압권인 전라도식 욕을 소개한다. “한여름에 염병 걸려 땀도 못 내고 죽을 ○○○” “간에 옴 걸려 긁지도 못하고 죽을 ○○○.” 웃자. 광장의 웃음이 정권에게는 치명적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71 | 추천: 0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참 무덤덤한 사람이다 그는. 가볍게 조금 가볍게 그러면 한결 생기가 돌고 활력이 생길 터.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내가 서울에 가는 이유 중 십중팔구는 그와 술을 마시기 위해 가는 것이다. 오늘도 난 그와 술을 마시기 위해 간다.   약 석 달 만에 서울 가는 길은 벌거벗은 땅과 파헤쳐 허물어진 산들로 아비규환이다. 그 너머로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바벨탑 같은 아파트와 빌딩들. 가슴이 갑갑하고 머리가 아프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데서 살 수 있을까? 숨은 쉴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심란함이 결국 서울행에 대한 후회로 밀려든다. ‘에이 그냥 그가 청주에 내려올 때 만나면 될 걸 괜히 올라간다고 해가지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서울행 차를 탔을 때 습관처럼 드는 감정임을 새삼 발견했다.  지난 3월 말경 이었다. 절친한 사람들과 나는 충주인근의 강변에서 낮술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놀고 있었다. 강변에서 물수제비뜨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때 전화가 왔다. “강의 좀 부탁해요. 충북경찰청하고 군부대 인권강의가 있는데 이국장이 참석해 주세요.” 순간 놀다 들킨 아이처럼(사실 놀고 있었음에도) 나는 짧게 “네 알았어요” 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저쪽에서는 화색이 도는 목소리로 “고마워요” 통화를 마친 후 커다란 숙제를 떠안은 기분과 함께 그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난 놀고 그는 활동하므로). 놀이의 흥은 깨어졌다. 한편으로는 ‘아니 난 백수인걸 아직도 나보고 이국장이라 부르네’ 하며 공연히 보이지도 않는 그를 향해 헛방질을 해대었다. 결국 그날 낮술에 취해 나는 청주까지 시체가 되어 실려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가 부탁한 강의 두건을 모두 하지 못했다. 나중에 담당자들과 다시 통화를 하며 일정을 확인한 결과 그 시기가 일 년 전에 예약을 해두었던 피정 기간과 겹쳐있었다. 피정은 보름동안 진행된다. 이렇게 되다보니 난 그에게 다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정을 말하고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언제나처럼 그는 무덤덤하게 내 사정을 이해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으씨 아주 그냥... 혼자 좋은 거는 다 해요.”  버스에서 들었던 후회감은 지하철을 탈 때면 여실하게 드러나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답답한 공기, 무표정한 많은 사람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 목적지를 향해 이동할 때면 도시의 아주 작은 기계부품이 된 이물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서울 가는 길이 점점 길어지고 숨에 벅차다. 마침내! 그렇다 그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을 표현하기에 이 말이 딱 맞춤이다. “휴~마침내 왔군.” 몸도 무겁고 게다가 성치 않은 무릎으로 날마다 오가는 그가 안쓰럽게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앞에 일이 한보따리 쌓여있었다. 소식지 발송 작업. 단순 반복 작업이 도를 닦는데 제일이다. 다행히 일은 거의 막바지였다. 운이 좋았다. 마무리에 살짝 손끝만 얹어 놓았을 뿐인데도 수고의 인사를 받아먹었다 흡족하게.  차를 마시며 소식지를 펼쳐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 전하는 활동소식을 알고 있음에도 오랜만에 만지는 종이소식지의 촉감이 좋다. “어!!”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아니! 책 나왔네!” 호들갑이다.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떡 하니 나와 있을 줄은 몰랐다. 소식지 귀퉁이에 실린 기사가 참 반가웠다. 이어지는 나의 호들갑에 함께 소식지 작업을 했던 젊은 자원봉사자 친구들은 웃었다. 출판기념회 같은 거는 안하냐? 책은 많이 나가느냐? 또 책을 쓸 것인가? 소문을 많이 널리 내야겠다는 등 그가 맺은 열매를 사람들이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책을 선물로 받고 저녁식사도 맛나게 대접받은 후 우린 술을 마셨다. 근황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많이 피곤해 했다. 지쳐 있음이다. 십 육년을 줄곧 달려왔으니 지칠 법도 하다. 저렇게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것도 용하지 싶다. 그는 쉬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는 쉬라 권했다. 길게 살자며 쉬라고 했다. 좋은 거 혼자 할 수 없으니 같이 쉬자고 했다. 쉬면서 피정도 다니고, 하고 싶은 공부도 여유 있게 하라며. 쉼에도 때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헤어지며 그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서울에 올라 온 진짜 이유가 뭐냐며.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과 술 마시러 왔을 뿐이라며.  청주로 향하는 심야 버스는 언제나처럼 가벼웠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생각했다. 내가 아는 오창익은 언제나 대한민국의 야만과 맞장을 뜨고 있다. 그의 감수성은 매우 여리며 오지랖이 넓다. 그래서 상처와 아픔 따위에 쉬이 동화된다. 함께 숨쉬기 때문이리라. 오창익은 열려있기에 그렇다. “대한민국 너도 사람다워져라.” 사람에게 열려있는 그가 언제나 대한민국과 맞장을 뜨는 이유다.  나는 벗이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잘 놀았으면 좋겠다. 지금의 활동이 노는 것이라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잘 놀고 푹 쉬는 것이 활동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오창익은 하나다. 나의 오랜 벗에게 실바람처럼 가볍고 편해지기를 권유한다. 그것이 당신의 오래된 권리이며 당장 실현해야만 하는 유일한 권리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31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나는 오늘도 빵을 고르면서 습관적으로 봉지를 뒤집어 칼로리를 확인했다. 저녁 7시 이후에 야식을 먹을 때면 죄의식을 느낀다. 그렇다고 이런 자기 규율이 음식에 대한 욕망을 줄여주는 건 아니다. 금지할수록 욕망은 더욱 커지고 음식과 마주하는 매 순간 내 의지와 독함을 시험해야 한다. 시기에 따라 강도가 다를 뿐 나는 늘 다이어트 중이다. 이 시대를 사는 ‘정상적’인 특히 젊은 여성이라면 한번쯤은 다이어트를 생각했을 것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그리고 거리를 지나다 마주치는 광고에서 마주치는 늘씬한 몸매의 모델들 앞에서 ‘나는 왜 자꾸만 작아지는가’. 더불어 얼마나 고마운가. 매 순간 살아갈 의지를 준다. 하면 된다. 아자 다이어트. 몸매를 가꾸지 않는 사람은 자기 관리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라더라. 다이어트는 정치적이다 흔히 다이어트를 개인의 문제라고 여긴다. 내 극복의지의 문제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욕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욕망을 넘어 강박관념이 되어 버린 다이어트가 단순히 개인의 의지 문제일까. 우리 주위에는 온통 다이어트 하라는 침묵의 강요들로 넘쳐 난다. 또 외모와 몸매는 이미 사회의 통과의례와도 같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회의를 느낀다고 해도 별 수 없다. 제 몸을 날씬하게 관리하지 않는 건 반사회적 행위로 취급받는다. 단순히 배고픔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은 음식은 라이프스타일이자 훌륭한 돈벌이의 대상이다. 음식산업은 거대하다. 그리고 그만큼 ‘다이어트 산업’ 역시 어마한 규모로 커가고 있다. 음식은 여성에게 욕망의 대상이자 거세의 대상이다. 무엇이든 상품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자본주의는 다이어트 산업의 무궁무진함을 사랑한다. 다이어트 산업은 해마다 50%의 성장률을 보이며 다이어트 시설, 약품, 패션, 성형 등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성들에게 다이어트에 대한 신뢰를 주면서 과학적 증거도 없는 물품들로 소비를 자극해 이익을 취한다. 이에 질세라 광고는 평균 몸매도 안 되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뿌리며 다이어트 욕망에 불을 지핀다. 필요이상의 다이어트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사회, 외모와 몸매를 여성을 평가하는 필수로 보는 사회. 그러기에 다이어트는 충분히 정치적이다. 평균체중보다 25% 덜 나가는 모델과 배우의 이미지로 도배하는 미디어 산업이 날씬한 몸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의류매장에서 66 사이즈 이상의 여성 옷을 찾기가 힘들다. 대충매체에선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을 인간승리라 말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여성신문은 "다이어트와 바디이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의료 산업, 평균체중보다 25% 덜 나가는 모델과 배우의 이미지로 도배하는 미디어 산업, 그리고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이어트 산업" (여성신문 '다이어트에 관한 진실 알려주는 북미의 안티다이어트 캠페인')이라며 날씬한 몸에 대한 압력을 비판했다. 다이어트로 인한 여성들의 건강 위협 사회적 비만의 기준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다이어트는 만족을 모른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마른 몸의 이미지들에 현혹되어 자신의 몸을 사랑하기를 끊임없이 유예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에 퉁퉁 부으니까 불쾌해져서 그날 하루를 완전히 망치는 거야. 기분이 너무 안 좋고. 그러니까 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너무 없어지는 거죠. 옷 같은 것도 살이 빠질 때에는 막 입고 다니구, 밖에 나가구 싶고 막 이러다가도 그렇게 갑자기 살이 찌면 내 자신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게 되잖아요. (다이어트의 성정치학(한서설아 지음) 중 사례C에서 발췌) 이렇게 여성의 욕망 자체가 다이어트에 맞춰 길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살을 빼기 위해서 국토대장정을 간다는 친구의 농담 아닌 농담을 듣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무리한 다이어트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거다. 흔히 주위 여대생들이 운동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살을 빼려 한다고 생각한다. 몸을 '건강'이 아닌 '다이어트의 대상'으로 관리하고 규제하려는 강박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그 스트레스는 거식증과 폭식증과 같은 몸의 거부 현상을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현재 시중엔 검증되지도 않은 다이어트 약품들이 판매되고 있으며 이는 우울증과 골다공증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다이어트의 배후세력을 잡아라 구토를 안 했으면 좋겠구요. 안토하잖아요? 그러면 살이 쪄요. 진짜 쪄요. 아무래도 먹으니까 살이 찌고. 안토했으면 좋겠구, 또 하나의 나의 이런 강박관념 자체가 없도록 살이 빠졌으면 좋겠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예... (같은 책 p.122-123) 확실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날이야말로 힘든 다이어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 아이러니.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는 끝없는 숙제이고 전쟁이다. 그러니까 말인데 요즘 배후세력이란 말이 심심찮게 소비되고 있다. 이참에 다이어트의 배후세력에 대해서도 성찰해 보는 게 좋겠다. 청소년들을 선동하는 촛불세력의 배후세력을 잡는다 뭐다 할 게 아니라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소리 없이 잠식하는 정교, 교묘한 권력들이 아닌가. 주먹질 하듯 노출돼 있는 날씬한 이미지들 앞에서 감수성 예민한 여학생들이 다이어트 하든 안하든 그건 미국산 쇠고기 먹듯 자율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줄자로 몸의 치수 재듯 외모와 몸매로 평가하는 사회의 시선은 어쩌고? 지난해 9월 스페인에선 체질량지수(BMI) 18 미만인 모델의 패션쇼 출연을 금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또 프랑스는 지난 4월 거식증유발처벌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거식증적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죽음의 메시지'라며 “여성의 건강과 신체 이미지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바랐다”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 거식증 환자가 4만 명을 넘는 프랑스가 먼저 이거 진짜 심한문제야 라고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한국에도 거식증 환자가 1만 명이라 한다. 잠재적 거식증 환자는 셀 수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들이다. 프랑스의 예처럼 더 늦기 전에 여성의 몸에 강요되는 문제들을 담론화해야할 때다. 한번쯤 네이버 지식인에 거식증 걸리는 법을 쳐보라. 거식증 걸리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기겁할 질문이 많다. '저도 몸에 해로운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알려주세요. 제발부탁입니다. 이 방법밖에 없어요...' 라는 한 여학생의 간곡한 부탁. 진짜 무서운 배후세력이란 바로 이런 거다. 왜 우리는 다이어트의 신화에 목숨을 거는가. 욕망의 배치와 작동원리를 곰곰이 따져 볼 때다. 왜. 적어도 나의 자존감이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여기'서 나의 몸을 사랑하기 위해.
2017-07-11 | hrights | 조회: 573 | 추천: 0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축구가 감성의 스포츠라면 야구는 이성의 스포츠다. 우선 축구는 시간의 스포츠다.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은 득점을 하느냐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 전후반 기본 90분을 놓고 인저리 타임을 빼면, 전후반 45분씩 경기를 진행한다. 아무리 경기를 오래 끌어도 100분을 넘어서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일단 전·후반전이 시작되면 45분 동안 거침없이 경기가 진행된다. 비록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지만 그게 선수들의 플레이를 통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선수들은 밀물처럼 상대방 진영을 향해 공을 몰고 들어가다 상대편이 공을 차지하게 되면 다시 썰물처럼 수비 진영을 갖추며 자기편 문지기를 향해 빠진다. 감각적인 밀고 당기기 가운데 순간적인 판단이 있을 뿐 감독과 선수의 이성이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 선수들이 평소 상황에 따라 훈련해 온 양상대로 경기는 흘러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기 내용에 대한 감독의 반응이 격렬하다. 자신의 의지가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으므로... 반면, 야구는 매 이닝마다 상대방에 의해 이뤄지는 플레이에 대한 우리 편의 반응이 그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다. 경기 시간은 매번 다르다. 짧으면 2시간 길면 5시간대이다. 야구의 특징은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타자의 스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루상에 주자가 있다면 그 주자의 액션이 투수의 공 던지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감독의 작전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게 야구의 매력이다. 그래서 야구는 이성의 스포츠이다. 감독이 덕아웃을 뛰쳐나올 때는 심판의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뿐이다. 다시 축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현대 축구에 있어 미드필더의 구실은 갈수록 강조된다. 19세기에 대략 현재의 모습을 갖춘 축구에 있어 오프사이드라는 대단히 오묘하고 특이한 규칙은 20세기 초에 도입됐다. 이로 인해 수비수가 공격수에게 일방적으로 공을 차주고 공격수는 그 공을 받아 골문을 향해 슛을 날리던 단순한 경기 양상이 복잡다단하게 진화하게 됐다. 미드필더를 거치면서 상대 수비의 빈 뒷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틈을 잘 치고 들어가는 축구가 재미있는 축구다. 공의 흐름이 가장 빠르다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면 현대 축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깨 두어 번 흔들면 수비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지고 그 사이 슛을 때리는 공격수 호나우두(브라질)의 한 때 화려한 플레이가 더 눈에 띄게 마련이나, 축구를 잘 아는 사람들은 미드필더가 공격과 수비의 중간에서 어떻게 우리 편에게 공을 배급하고 상대방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느냐를 잘 읽는다고 한다. 반면, 야구는 영원히 투수의 스포츠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우리 편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느냐에 경기 결과가 70% 안팎 좌우된다. 배구는 공격수에게 공을 띄워주는 세터의 스포츠이고, 농구도 공을 배급하는 가드의 스포츠인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야구는 투수놀음이기 때문에, 투수의 구실이 매우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 선발, 중간 계투요원, 마무리가 있다. 선발 투수는 5회가 지나기까지 대체로 3점 안쪽에서 상대방 점수를 묶는 구실을 한다. 그 사이에 우리 쪽 타자 요원들이 점수를 뽑아야 한다. 중간 계투는 선발의 힘이 빠졌을 때 등판해 마무리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겨주기까지 관리하는 구실을, 마무리는 그야말로 상대방 타선을 마지막까지 봉쇄하는 구실을 맡는다. 지난 6일 저녁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사회를 스포츠로 비교해봤을 때 도대체 어떤 구실을 맡은 것일까? 축구로 치자면 공격형 미드필더요 야구로 치자면 구원 투수다. 적어도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중원 싸움에서 밀리고 공 배급이 원활치 않아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감독(국민)이 그라운드에 긴급히 투입한 미드필더다. 미드필더의 덕목은 넓은 시야를 갖고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면서 적절한 곳에 공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미드필더가 가만 보니 경기장을 너무 좁게 쓴다. 미국 쇠고기는 별다른 검증 없이 들여오기로 하면서 간과 쓸개를 다 빼어줄 듯 하지만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옹졸하기 그지없다. 공 배분은 더 엉망이다. 그렇잖아도 부자들의 부의 축적과정은 의심스럽고,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모자라 갈수록 강퍅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비즈니스-프렌들리’를 내세우며 한 쪽에만 일방적인 애정의 시선을 보낸다. 또한 구원투수 이명박은 지고 있는 야구 경기에 상대 타선을 꽁꽁 묶기 위해 마운드에 섰다.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는 어떡하든 상대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 홈베이스로 들어오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삼진을 잡으면 좋고, 병살을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의 맹활약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우리 편 타선에 불이 붙어야 조건은 충분해진다. 그런데 이 구원투수가 잇달아 안타를 내어주는가 하면, 사사구를 남발한다. 공 조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모든 걸 저당 잡힌 채 오로지 일류 대학 하나에 목숨을 걸도록 요구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방과 뒤 학교에서 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어차피 ‘강제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어불성설의 타율적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선택은 없다. 서울대에 학생 한 명이라도 더 보내야 명문 소리를 듣는 교장과 재단 이사장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 한 이치다. 이미 바람은 불었다. 시교육청이 0교시는 계속 불허한다니까 이제는 1교시를 조금 당겨서 수업을 한단다. 학교 수업이 빨리 끝나도 학원 강사의 강의와 자율학습이 기다리고 있으니, 학교의 명성과 부모의 만족을 위한 학생들의 ‘노예 학습’ 시간은 더 늘일 수 있다. 보다 못한 누리꾼들이 구원투수 이명박을 강판시키라며 서명을 하고 나섰다. 더 이상 사적 이익이 공공의 안녕을 갉아먹고, 혈맹에 대한 충성에 민족과 국민의 안녕이 위협당하는 사태를 지켜볼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연일 광화문과 여의도에 촛불을 켜게 만든다. 감독이 투수의 강판을 최종 결정하면 투수가 마운드를 내려오지 않을 재간은 없다. 감독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자신의 구실에 충실할 때 패전투수의 나락에 떨어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자, 손가락 사이에 배어 나오는 땀을 닦으면서, 도대체 진짜 감독은 누구이고 감독의 작전지시는 어떤 것인지 차분히 응시할 때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4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