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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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현재 한국은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또한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 때나 유엔인권조약기구 심의 시에 한국 정부는 한국 사회의 인권보호측면을 무지하게 강조한다. 최근 촛불집회 때의 공권력에 의한 무차별적 연행, 구금, 구속에 대해 한국 시민단체는 유엔인권특별보고관에게 인권침해상황을 알리고, 이에 대한 조사를 청원하였다. 이에 유엔인권옹호자, 표현의 자유, 고문 특별보고관은 한국정부에 한국시민단체의 청원을 바탕으로 한국정부 측에 인권침해사실을 질의하였다. 한국 정부는 10월 16일 공식답변을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인권침해사항은 일방적이고 형평성에 맞지 않고, 불확실하거나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다고 하였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집행을 했을 뿐이라고 답변하면서, 유엔인권조약에 전혀 위배되지 않았고 국제인권기준에 맞는 조치를 취했다고 하였다. 젠장!! 솔직히 단체에서 국제연대활동을 하다보면 가끔 외국 활동가들에게서 한국의 인권상황이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을 듣게 되고, 메일링서비스를 통해 전달되는 아시아 국가의 인권침해사례를 접하게 되면 나 스스로도 한국이 그러한 국가의 상황에 비하면 낫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제기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악수하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물론 여전히 한국에서는 대낮에 총격을 당하거나 납치를 당하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1400명의 사람이 경찰서 신세를 지거나, 수십 명이 구속이 되고, 구백 명이 넘는 사람이 수백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거나, 처할 예정인 사례는 해외에서도 드물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인터넷공간에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가서 몇 시간 내지는 며칠을 조사 받아야 하고, 몇몇 신문사에 광고를 낸 회사에 전화를 걸어 광고 중단을 요구했다고 특정한 사람들을 출국금지 시켜 공포감을 주고, 일부는 주동자(?)라는 이유로 구속시키는 IT강국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고 해서 아동학대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집회 시에 자동차를 끌고 나와서 집회무리와 함께 이동하며 빵빵 거렸다고 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를 받아야 하며, 단순히 집회에 참여하여 차량도로로 다녔다는 이유로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혐의(그럼 월드컵 때 차량시위하고 도로에서 차선을 점령하고 “대한민국”을 외쳤던 사람들도 모두 소환되어 처벌받아야 하나?), 멀쩡한 언론사의 사장을 갈아 치우고 이에 항의하는 노조원들을 이런저런 꼬투리로 해직하는 상황이 버젓이 발생하면서 적법한 진압을 했다고 되레 호통 치는 경찰우두머리가 있는 나라가 과연 인권이사회 이사국의 자격이 있는지, 유엔회의에서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큰소릴 칠 만한 나라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더 큰 문제는 촛불이 사그라진 지 꽤 되었지만 정부 경찰, 검찰의 조사, 구금, 구속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그 범위를 넓혀 먹고사는 문제까지 사사건건 조여오니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한국정부의 인권보호니 인권선진국 발언도 토 나오지만 나 스스로 한때 비슷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심하게 쪽 팔린다. 사실 없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많이 달랐을까 싶기도 하지만 정부가 촛불을 밟아 끄면서 인권의 영역을 계속 침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현재의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다. 더 갑갑한 것은 이제 1년도 안 지났다는 것이다. 날씨도 추워지고 있는데...
2017-07-11 | hrights | 조회: 218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여순사건 답사를 떠나기 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실제 학살현장에 가면 아무 것도 없고 평범한 장소일 뿐이다.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상상하는 것이다. 그 앞에서 몇 십 년 전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나는 역사의 현장 앞에서 얼만큼 상상하고 감응할 수 있을까. 또 대학생으로서 내 공부는 어떠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얼마나 치열하게 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선 우리는 5시간을 달려 벌교에 도착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온 것을 잊을 정도로 전라도 땅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눈부신 가을햇살이 산천을 씻어주고 그 햇살에 산천은 제 모습을 맑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곳이 너무 아름다워 아이러니였다. 여순사건 당시 붙잡힌 좌익계열들이 모두 처형당하고 묻힌 ‘형제묘’ 에서는 눈부신 여수 앞바다가 보였다. 아름다운 바다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형제 묘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1948년, 제주도 4.3사건 토벌을 위한 출병을 거부한 14연대 군인들이 여수와 순천지역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좌익계열이 많던 14연대 군인들은 이승만 정부를 거부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도 개입한다. 이에 정부가 토벌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죽었다. 끔찍한 학살이 일어났다. 이게 60년 전 여순사건이다. 여순사건이후 한국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지고 전라도 사람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피해자들은 고통의 기억에 침묵했다. 그 기억을 안고 사는 노인들이 아직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침묵한 시간만큼 우리의 역사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나아졌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순천과 여수지역에서 여순사건을 겪었던 증언자들을 많이 만났다. 증언자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건 ‘좌우도 모르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나’는 것이다. 광복 이후 가난했던 시기에 민간인들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밤이면 밤사람(좌익계열)들이 산에서 내려와 밥이며 소며 옷들을 갖고 갔고, 낮이 되면 경찰들이 마을로 들어와서 좌익계열에 밥을 해주거나 옷을 대준 사람들을 추궁하고 죽였다. 이념싸움은 알지도,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왜 총살당해야 했을까. 민중을 위해서라고 서로 외쳤던 권력들이 진정 위한 것은 민중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무엇 위에 자신의 권력을 세우려 했던 걸까? 사진1(유해발굴) : 구랑실재 - 당시 진압군들이 봉기군으로 가장하여 마을 주민을 시험한 후 사살한 곳, 시체가 쌓인 골짜기라 하여 송장골이라고도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학살에 우리는 아직도 경악하지만 정작 한반도에서 일어난 동족끼리 죽고 죽였던 학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아직 전라도 땅에는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를 유골들이 산재해 있다. 비단 전라도 땅 뿐이겠는가. 일제시대를 지나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한반도가 드러내지 못한 상처가 얼마나 많을까. 누군가는 현재 한국의 많은 모순들이 일제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한국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걸 은폐하려는 방향으로 여기까지 왔다. 오히려 반성해야 할 자들이 권력의 위치를 계속 지켜왔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쉽게 단절되거나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것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부단한 대화로 이뤄진다. 과거의 사건은 끊임없이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잘못된 과거를 긍정적인 힘으로 바꾸기 위해 현재에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이상 과거는 여전히 부정형의 상태다.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예수가 말한 용서가 이런 상황에도 유효해야 하는가. 누구도 나서서 여순사건에 대해서 공식사과하지 않았다. 국가도 겨우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는가 싶더니 요즘엔 다시 뒷걸음질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부침도 심하다고 한다. 답사 셋째 날, 우리는 여수중앙초등학교를 갔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여순사건 유족회 회장님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마을주민들을 초등학교에 몰아두고 하루 종일 처형을 했다고 한다. 새끼줄을 쳐놓고 손가락총으로 좌우를 갈랐다. 손가락총은 이 사람 빨갱이야 라고 손가락으로 지목하면 곧 총살당한다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군인들은 몇 명을 총살시키고서는 그 시체를 마을주민들이 이고 구덩이에 묻게 했다. 하루 종일 그 일이 되풀이 됐다. 증언을 해주신 분도 그 날 형님을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형의 유골은 찾지 못했다. 형의 유골이 묻혀 있을 곳이라 짐작된다며 가리키는 곳엔 아파트가 서 있었다. 아픈 기억을 시멘트로 발라 버리는 역사에 대한 잔인한 치유방식. 소박한 양복을 입은 유족회 회장님이 담담한 표정으로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 사이, 쉬는 시간 종이 울렸는지 아이들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엄숙하던 운동장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어느새 활기찼다. 또 다시 느끼는 슬픈 아이러니. 이번 답사를 계기로 나는 내 가장 가까운 곳을 들여다보게 됐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살펴보게 된 것이다. 바로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험난한 근현대사를 몸소 겪은 산 증인이었다. 내 가족사가 곧 한국사였다. 나 뿐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다. 내 할머니의 동생은 무척이나 영리했는데 중학교 때 친구랑 산에 놀러 갔다가 납북이 되셨다 한다. 몇 년 전 북한을 찾아가 그 분의 소식을 겨우 알게 됐는데 이미 돌아가신 뒤라고 했다. 내 할아버지는 6.25 참전 군인이셨다. 그때 전쟁포로로 잡혀 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고 한다. 나는 몰랐다. 시골엘 갈 때마다 왜 할아버지는 아픈 모습으로 작은 방에 앉아만 계셨는지. 난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할아버지는 몇 개월 전 돌아가셨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할아버지에게 당신의 역사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을까. 그 아픔을 공유할 수 있었을까. 당시 학살을 겪었던 많은 피해자들은 이미 돌아가셨다. 피해자 중에서도 여전히 세월로 위로를 받으며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분들마저 돌아가시면 우리들은 더욱 쉽게 아픈 역사를 망각할지도 모른다. 요즘 뉴스에서는 좌편향적인 교과서 운운하면서 역사 교과서 개정을 주장하고 나서는 이들이 있다. 오늘은 보수 진영이 경제 교과서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평가절하하고 정부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오류가 빈번하다" 며 문제제기 했다는 기사도 떴다. 살아남는 자가 역사를 쓴다는 강자의 논리가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걸까. 아직도 이념을 인간에게 유용한 칼이 아닌 무기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교과서도 민간인들이 정치적 이익과 이념 논쟁에 무수히 죽었다는 사실과 그걸 감응하고 반성할 계기를 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극단적으로 자신의 입맛대로 국사를 구성하려고 하는 걸까. 사진2(소화다리) : 벌교의 소화다리. 해방 이후 좌우익 대립의 와중에서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에서 숱한 인명이 희생되었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여순사건의 회오리로부터 6.25 의 대 격랑까지 우리 민족이 겪은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더 생각해 본다. 어쩌면 사과는 쉽다. 그렇기에 끝까지 그걸 덮어두려고 하는 가해자들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다. 특히 주체가 국가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가 나서서 사과하고 보상을 하고 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상처를 봉합하는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념비 하나로 쉽게 국사에 수렴되는 임시방편 책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 땅에 다시는 학살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역사라는 것은 일상들이 덧대어져서 만들어낸 하나의 덩어리다. 하지만 이 덩어리들을 누군가는 쉽게 절단하고 채취해서 단순하게 공식기억으로 만든다. 그저 ‘역사를 위한 역사’인 공식기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위한 역사로서’ 개개인의 많은 진실(truths)을 통해 자꾸만 역사들(histories)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요즘 역사학계에서 구술사에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역사의 질곡에 짓눌려 늘 할딱이는 숨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 한명 한명의 치유를 바랄 때, 더디더라도 한명 한명 살펴보며 가는 것이 삶이고 그게 흐름이 될 때 우리가 바라는 긍정적인 역사가 될 것이다. 폭력에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가 생긴 개개인들의 옆에 서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우리는 더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7-07-11 | hrights | 조회: 341 | 추천: 0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이 아무개 경위는 지난해 2500원을 주고 서울시 교통카드를 샀다. 신용카드와 겸용인 교통카드를 잘 쓰던 경찰관이 굳이 별도의 교통카드를 산 이유는 이렇다. “내 행적이 고스란히 기록된다는 게 께름칙하다”는 것이다. 교통카드는 그 카드의 주인이 몇월 몇일 몇시 몇분 몇초에 어디서 지하철을 타고 어디서 다시 버스로 갈아탄 뒤 몇분 몇초에 어느 정류장에서 내렸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된다. 그냥 교통카드는 카드의 주인이 누구인지 개인식별이 되지 않지만, 신용카드는 가입자의 신원이 뚜렷하다. 즉, 교통카드가 삽입된 그 신용카드는 하루 중 나의 이동경로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나를 음해하기 위해, 혹은 범죄에 엮어 넣기 위해 악용할 수도 있는 내 개인정보가 남아있는 건 불안하지 않느냐는 게 이 경위의 설명이다. 교통카드와 신용카드를 별도로 갖고 다니면 지갑이 조금 더 두터워지지만, 그 정도쯤이야…. 시민의 지갑 속에 한두 개 정도는 들어 있을 교통카드에는 RFID칩이 심어져 있다. 내가 아는 박광철(가명)씨는 한국도로공사 직원이다. 그런데 그는 하이패스를 쓰지 않는다. 톨게이트에서 남들은 길게 줄지어 선 채 티켓을 손에 쥐고 기다리는 동안 하이패스 이용자는 그냥 전용선을 질주해도 된다. 그렇게 편리한 하이패스를 박 씨가 쓰지 않는 이유 또한 단순하다. “께름칙하다”는 것이다. 하이패스도 이용자의 이동경로에 대한 명확한 흔적을 갖고 있다. 도로공사 직원이라서 하이패스를 쓰지 않으면 안에서 눈치가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그는 하이패스를 쓴다는 게 마뜩치 않다. 톨게이트에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하이패스에도 RFID칩이 심어져 있다.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이른바 무선인식 기술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예전의 마그네틱 선을 이용한 접촉식에 비해 편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스 탈 때처럼 가방 안에 넣은 채로 인식기에 갖다 대도 인식하는 투과성이 있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달리는 차량 안의 정보를 읽어내는 이동인식 능력 등에서 뛰어나다. 산업계에서 보는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반면, 그것이 실제에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많은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제기된다. 새 기술의 편리성이 커지는 만큼 위험성도 그 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이 경위와 박 씨의 경우도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그런 일이 생길 일말의 가능성 자체가 마음의 불안을 키우게 된다. 정보인권의 핵심은 자신과 관련한 정보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3년 패션 브랜드인 베네통이 유통 과정상 편리한 관리를 위해 모든 제품에 이 RFID칩을 심기로 했다가 소비자단체의 거센 저항에 밀려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만약 베네통의 계획이 실현이 되고 다른 의류업체 등도 이를 따라했다고 생각해보자. 번화한 거리에 RFID 인식기를 갖다놓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입은 팬티와 브래지어, 셔츠, 바지, 점퍼, 신발이 어느 회사 제품이고, 언제 어디서 만들어져 팔렸는지를 알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지에 대한 퍼센티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군가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제로라고 하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후로도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청바지 업체로 유명한 리바이스가 자사의 시슬리 제품에 RFID칩을 심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고, 다른 업체들도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뉴욕의 맨하탄에서는 패션업계가 RFID칩을 제품에 심는 문제와 관련한 모임을 열자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 기업들에서는 아직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미국은 한국의 미래일 수 있다. 개인정보가 전자칩 형태로 내장되어 있는 전자여권 사진 출처 - 노컷뉴스 RFID칩은 이제 한국의 여권에도 삽입이 된다. 이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정보인권 단체들이 직접 시연회까지 열었으나 외교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이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몰래 쓰다가 들통 난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이제 국가가 공인한 개인 식별장치에도 이 RFID칩을 심으려고 한다. 향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확실한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이미 우리는 건물과 거리에 깔린 수많은 CCTV, 인터넷 접속 로그 기록 그리고 신용카드 결제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우리의 행적을 남기고 살고 있다. 경찰은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르는 피의자, 참고인 등의 정보를 ‘심스’라는 망을 통해 축적하고 있다. 그의 종교와 혈액형, 주소, 주량까지 모두 말이다. 물론 경찰이 그런 행정을 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검찰은 형사사법망을 통합작업을 통해 경찰이 심스를 통해 갖고 있는 정보는 물론 관련된 이들의 검찰 수사 기록과 사법부의 재판 기록마저 아우르는 거대한 ‘국민 정보 결집체’를 만들려고 한다. ‘빅브라더’ 세상은 다가오고 있지 않다. 이미 우리는 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느 정도 심화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내 개인정보를 통제하고 살기엔 이 사회의 기술은 너무 진보했다. 하지만 그 기술의 진보에 걸맞은 윤리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민은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 각 개인이 “내 삶의 세세한 흔적과 관련한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그것이 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지면서 기업과 국가가 자본과 재정을 확충해나가는 것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익에 귀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과, 국가의 목표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국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대한민국의 현대 역사는, 그런 측면에서 기업과 국가에 신뢰를 보내기 어렵게끔 한다.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국가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경찰도 불안해하고, 공사의 직원도 불안해하는 RFID가 이미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구체화하고 개별화되지 않은 수많은 권력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이 무섭다. 이쯤 되면 `반문명 전선'을 형성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2017-07-11 | hrights | 조회: 275 | 추천: 0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국정감사에서 비쳐지는 교육감 선생님과 ‘탱크 앞에서 알몸 시위하는 제자를 둔 두 스승을 보며 감회가 새롭다. 고교시절 돈 봉투를 노골적으로 밝혔던 선생님과 일 년에 양복 두벌로 다녔던 선생님이 생각나서다. 교목선생님은 빚잔치에 학교를 떠났다고 하고, 검소했던 ‘파파 스머프’ 선생님은 참교육을 주장하다 학교를 떠났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 류상태 목사님 같이 존경하고 싶은 선생님이 계셨다면 어떠했을까? 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우리시대 진정한 의미의 교회에 나가는 신실한 교우가 되었을 것이다. 제자에게 선거자금 빌린 선생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웃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학원에 특혜를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사적인 인연으로 ‘단지 순수한 빌린 돈’이라는 것이다. 몇 십 년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이 있었고, 그리고 인척이어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리송하고 헷갈린다. 선거과정에 직분을 맡았거나 학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이후 교육정책이 진행될 때 생기는 ‘떡고물’이 왕창 쏟아질게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유엔이 한국의 청소년들이 너무 많은 공부를 한다고 수업일수를 줄이라고 권고했다는 게 수년전이다. 그러나 공정택교육감은 학원영업시간을 1시간이나 연장한 바 있다. 결국 끈끈한 사제의 정을 통해 제자가 학원을 잘 운영하도록 도와주는 꼴 이었던 것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주고받기가 척척 맞는 교육현장의 ‘검은 거래’ 단면이 드러났다. 교육감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학원사업 잘 되게 해준 제자사랑은 사회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사정기관은 철저한 조사를 해서 밝혀야 한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감에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선거비용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학교예배 선택권 주장 제자’ 지지하다 학교 그만둔 선생님. 지난 10월 1일 강남도로 한 복판. 국군의 날 행사 때 탱크 앞 알몸시위 제자 ‘강의석’을 향해 변함없는 신뢰를 보낸 ‘류상태 선생님’. 류 선생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군 제도 폐지에 대해서 논할 때가 왔다. 사람들이 지금껏 군대를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며, 지금이라도 강군이 이 문제를 제기해 준 것이 대견하다"고 했다. 이어 "단지 옷을 벗었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면 강군의 주장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며 "그 속에 담긴 강군의 순수한 동기와 내용 자체를 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분명히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신선하다. 그릇이 큰 아이다‘는 것이다. 강의석은 군대폐지 폐지 주장이전 2004년 고교 3학년 때 학교에서의 예배선택권을 주장하며 45일을 단식하였다. 당시 학교 목사였던 류 선생님은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제자를 지지했다. 이 제자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당시 교목실장이었던 류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학교에 교목선생님은 전혀 다른 분이었다. 성경수업에 늘 ‘불교를 믿는 나라는 가난하게 산다’ 거나 ‘미신을 믿으면 집안에 아픈 사람이 많아진다’ 또는 ‘좋은 대학 가려면 교회 다녀라’는 말씀을 하여 난상토론이 일어나곤 했었다.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 때 불손했던 점은 사과드리고 싶다. 누구에게나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고, 또 존경하고 싶어 하는 선생님을 찾는다. 스승을 찾으려면 스승을 볼 줄 아는 제자의 바른 눈이 있어야 하며, 나의 스승인 초등학교 아이에게 ‘진솔함’이란 스승이 있고. 대가없이 주장하는 ‘기특함’이라는 친구도 있다. 류상태 목사님과 강의석 군 사진 출처 - 필자 그러나, 학원을 운영하면서 교육감선거에 돈을 빌려준 제자는 더 이상 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혹 그게 포괄적인 뇌물이 아니라 정말 빌려준 돈이었다고 해도, 그리고 스승을 위한 선의였다고 해도 바르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선거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으로부터 교육감을 사퇴하라고 질타를 받더라도 웃어도 좋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 때문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을 보면 옷을 벗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종교자유를 강요했던 20여 년 전 모교의 큰 길 앞에 온 몸에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고 외치고 싶다. “선생님, 교목 선생님! 왜 저에게 종교를 강요하셨나요. 어린 나이의 저에게 성경구절만이 옳다고 강요하셨나요? 라고. 그러나 상상과 감정으로 변화를 조직하긴 어렵다.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 주고 있다. 현 교육감 선생님은 업무시간에 기도회에 가서 통성기도를 하고, 업무시스템을 이용해 사적모임을 주선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 또는 사소한 일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계 사립학교의 종교교육선택권과 종교의식 자율을 주장한 것은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중차대한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면 되지. 무슨 예배선택권이냐’ 하며 매질을 하고, 따귀를 때린 D고교 선생님처럼. 현 교육감 선생님은 누군가 분명 검찰에 고발을 할 것이고, 사정기관에 있는 눈 밝은 제자들의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에서 두고두고 기본권 침해여부를 다퉈야 할 것이다. 사정기관에 있는 제자들이 공정하고 엄정한 조사를 해서 선생님의 무죄 여부를 판단할 것이고, 연구관 판사를 지내는 제자들은 법리 논쟁에 선생님의 이름을 수없이 오르내리게 할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활동과 노력을 통해서 더 이상 굶는 제자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수십 년간 선생님을 원망하는 제자들이 없었으면 좋겠고, 옷을 벗는 문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티격태격 싸우는 일도 없어지기를 바란다. 더 약한 사람을 위해, 배려하고 조직하고 교육하는 너무나 당연한 일에 더 매진했으면 싶다. 학원을 몇 개 씩 운영하는 제자보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제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기 때문이다. 나부터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바라며 마음의 평화를 누려보아야겠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68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올 여름은 참 길었습니다. 몇 십 년만의 폭염을 쏟아 부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름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갈 듯 갈 듯 하면서도 좀처럼 발길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찾아와야 할 9월에도 창문을 열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가 곤욕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은 한반도의 기후가 정말로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라며 새삼스레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아! 물론 그렇더라도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켜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요. 그렇게 끈질기던 여름이 드디어 주춤합니다. 지난 주말 갑자기 찾아온 찬바람에 주섬주섬 긴팔들을 챙겨 입느라 부산했습니다. 미처 긴팔을 챙겨 입고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연신 코를 훌쩍거리기도 했지요. 이러다 또 더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것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말을 넘겼지만 날은 더욱 선선해지고 있으니까요. 전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데, 오늘부터는 기숙사에 난방도 가동했습니다. 불과 지난주까지 덥다고 난리들이었는데 이제는 방이 춥다고 난리들이니 참 사람이 간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아침이면 선선한 날씨에 그간 느끼지 못했던 상쾌함도 느껴지고, 10월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걸맞은 날씨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하늘은 또 얼마나 푸르러졌는지요. 아마 서울 하늘도 못지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오후엔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시원해진 바람과 함께 벤치에 앉아 담배 맛을 즐겼답니다. 눈이 시리게 새파란 하늘로 담배연기를 올려 보내다가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문득 스물 예닐곱 시절이 생각나더군요.(아! 물론 제가 나이를 많이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도 이맘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을과 바람과 하늘이 이끄는 대로 서점에 들어갔지요. 가을이라는데 뭐 손에 잡히는 책이 없을까 해서였습니다. 뒤적뒤적 책을 괴롭히다가 시집 한권을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곤 그 시집을 한참 읽다가는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가서 춘천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춘천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고, 갈 곳을 정하지도 않았으니 그냥 무작정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듯합니다. 제가 춘천을 가도록 했던 그 시집은 바로 정호승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인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였습니다. 지금은 그 시의 내용도 그 시집에 담긴 시들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 가을의 손님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제목을 가진 시집이었는지요. 그래서, 그렇게 춘천을 가서 무얼 했느냐구요? 남춘천역에서 내려 커피 한 잔 마시고는 돌아왔습니다. 뭐 딱히 할 일이 있어야지요. 가을바람이 가을바람이기를 그렇게 한참동안 가을 날씨를 만끽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런 저를 맞은편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빤히 내려다봅니다. “가을바람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참 좋겠다”하는 심정으로 말이지요. 그 현수막에는 “OUT! 비정규직, OUT! 2MB”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현수막을 마주보고 서 있는데 제가 참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복잡한 한국사회에서 가을의 여유를 느끼는 사치를 누려서가 아닙니다. 하늘을 보며 감상에 젖어서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느끼는 이 시원한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칼바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준비하던 지난 9월 9일 저녁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노동과 세계(이기태) 초여름에 시작해 아직까지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조합원들에게도 이 바람이 같은 의미이진 않겠지요. 김소연 분회장의 옆에 놓여있는 관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운 고통일겁니다. 기어이 서울역 조명탑으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KTX·새마을 승무원들에게 이 바람은 뼛속까지 스미는 아림이겠지요. 끝이 보이지 않은 싸움에 가을을 넘어 겨울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코스콤, 이랜드, 하이텍알시디 노동자들, 그리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 그들에게 이 바람은 그저 또 다른 고통을 인내해야 함을 예감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한 주 전까지만 해도 때 아닌 더위를 괴로워하다가 금세 춥다고 난리인 것이 사람인데,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에도 가슴은 늘 시베리아의 찬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던 사람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더구나 온기라고는 제대로 느낄 수도 없는 곳에 몸을 뉘어야 하는 사정일진데요. 온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겠지요. 이 상쾌함이 그들을 에이겠지요. 그뿐이겠습니까. 거리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이들, 연탄 한 장이 아쉬운 빈곤 가구들, 연일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정부에 기가 차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난 우리의 이웃들. 그들 모두에게 이 바람은 그저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시원한 바람만은 아니겠지요. 물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자 서글펐습니다. 자연이 주는 고마운 선물조차 그 이면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되새겨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가을바람은 그저 가을바람일 뿐인데, 왜 그것은 또 고통이어야 하는 것인지요. 더구나 그 현수막에 나란히 적혀있던 ‘2MB’라는 문구! 그 어느 때 보다도 잘 어울리는 두 문구입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자본과 그 자본을 위한 정권. 그래요. OUT되어야지요. 기필코 OUT되어야지요. 그래서 내년에는 이리도 좋은 가을바람을 그저 가을바람으로만 느낄 수 있어야지요. 칼바람은 이제 그들에게나 어울리게 말입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61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지난 9월 19일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자이툰 부대가 올해 연말까지 철수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국회에서 올해 말까지 철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파병연장동의안을 처리한데다 동맹국이 자이툰 부대의 파병 연장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언론에서는 보도했고, 이에 따라 쿠웨이트에서 자이툰 부대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군 다이만 부대도 올해 말 철수할 예정이다. 또한 23일에는 자이툰 부대 마지막 교대 병력이 파병환송식을 가지면서 언론에서는 “조국의 이름으로”라는 타이틀로 그들을 환송했다. 9월 23일 자이툰 마지막 교대병력 환송식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003년 가을, 2004년 여름 그리고 그해 겨울, 해마다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오랜 기간 동안 “파병반대, 자이툰 철수”를 외쳤고, 드디어 그토록 바랬던 자이툰 부대가 철수를 하게 되었는데 명쾌하지 않고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솔직해 지자. 그 기분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를지라도 그 크기는 작다. 인정하고 싶지만 점령과 주둔의 시간이 지날수록 이라크와 자이툰의 비중은 작아졌고 그곳에서의 목소리도 고통도 스스로 무뎌졌다. 누군가는 그게 당연하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과 느낌은 희미해진다고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그토록 외쳤던 함성이 쑥스러워진다. 변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비추어보면 올해 말까지 자이툰 부대와 쿠웨이트에서 수송을 담당하고 있는 다이만 부대는 계획대로 철수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국은 명백한 이라크전쟁범죄 국가이고 점령 5년 동안 그토록 신문지상을 피와 고통으로 뒤덮은 이라크 뉴스의 공범이고, 아직도 이라크의 상황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현행범 국가이다. 이 역사를 되돌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이툰 부대의 파병과 철군, 이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냉정한 평가가 꼭 필요하다. 그토록 파병결정시기에 대두되었던 ‘국익’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한미관계’도, 연간 천문학적 비용을 사용하며 무엇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는 자이툰 부대의 활동도 모두 다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자이툰 부대의 철군을 요청했던 활동가의 측면에서는 현재의 결과에 철군운동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2002년과 2003년 그 뜨거웠던 함성이 왜 이렇게 사그라졌는지, 여러 측면에서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철저한 자기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 평가의 마지막 결론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라크 상황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이라크 민중들과의 구체적인 연대의 계획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76 | 추천: 0
이은규/ 전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추석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고 했다. 추석날. 보름달은 구름 뒤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자며 아이들의 약만 올렸다. 아이들이 제풀에 꺾여 잠이 들었을 때에야 가끔씩 맨얼굴을 구름 밖으로 내보이고는 했다. 나는 가만히 달의 맨얼굴을 보며 아이들 몫까지 소원을 빌었다. “다만 평화를” 다음날 아이들과 함께 저녁산책을 나섰다. 맑은 하늘, 둥근 달이 온전히 떠 있었다. 지상의 유혹적인 불빛들과는 무관하게 달은 그곳에 ‘그냥 달’로 머무르고 있다. 아이들은 소원을 빌 수 있는 특별한 추석 보름달이 필요했던 듯 오늘의 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오직 땅을 걷기에만 열중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애들아 하늘에 달 좀 봐! 정말 환하고 둥글다” 아이들은 응답한다. “어! 그러네...” 그리고는 이내 또 걷기에 열중한다. 걷다가 뛰다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암산 아래 명암방죽까지의 산책길은 번잡한 상가건물들을 지나야만 한다. 그곳은 어둠이 잦아들 기미가 없는 땅, 조명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주 열심히들 뛰고 걷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달의 존재를 잊은 것 같이 보였다. 나는 때때로 건물에 가리고 전선줄에 의해 조각난 달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이 너무 환한 거야. 밝기가 너무 강해서 사람들은 어둠을 잊은 것 같아. 존재를 잊은 달이 슬퍼할 일이다...” 몇 해 전 가을, 어느 날 늦은 밤. 나는 해남 미황사 뜰에 서 있었다. 참 많이 지쳤었고 아팠으며 분노와 절망감으로 몸과 맘을 학대하다 한줌 남은 기운을 부여잡고 그곳까지 가게 되었다. 깜깜한 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세상에!!" 달과 별이 너무나 가깝게 내 머리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늘 보는 달과 별이었지만 그토록 소름끼치도록 밝게 빛나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었다. 그때 하늘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낮에도 별과 달은 떠있고 밤에도 태양은 존재하는데 눈앞의 빛 혹은 어둠에 가려 그러한 존재들을 순간순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마음의 집착과 편견이 두려움과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을 하게 되자 묘한 충동이 생기게 되고 곧 실행에 옮겼다. 육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리라 생각하며 절 뒤편의 산길을 걸었다. 깜깜한 어둠이 두려웠지만 평소보다 훨씬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길을 걸었던 같다. 달은 이제부터 점점 야위어 갈 것이다. 실제로 보름달에서 초승달로의 변화는 여기에 사는 우리들의 시야에 드러난 달의 모습 일뿐이다. 달은 언제나 달의 모습으로 존재할 테지만 말이다. 산 아래 방죽에 다다르자 아이들이 말한다. “와아~ 달 정말 크다” 어두움 속에서 은은한 달빛을 의식했나보다. 나는 가만히 나무의자에 앉아 달을 바라보았다. 너무 환하고 밝은 세상에서 달빛에 의지해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그들에게 “다만 평화를, 또한 우리 아이들 가슴마다에 보름달이 오늘처럼 휘영청 빛나기를” (어제 나무의자에 앉아 휴대폰 문장보관함에 쓴 시입니다) 달빛에 별빛에 온전히 맡겨 어둔 밤길 걸어가면 될 일 자연으로 그냥사람으로 달이 밝다 참 달빛만으로 살았던 사람으로 귀향의 삶으로 살 일이다 자연으로 그냥사람으로 달이 밝다 참!
2017-07-11 | hrights | 조회: 406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새 학기가 시작되고 마르고 닳도록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책은 한국 다큐멘터리다. 한 기자가 한국현대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실을 과거 청산, 국가폭력, 레드컴플렉스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알고 있던 역사가 어떻게 왜곡됐고 그것들이 현재 우리들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읽다 보면 많이 혼란스럽고 많이 화가 난다. 그러고 보니 가방 안엔 여순사건 관련 논문집에 김원일의 소설 '노을'도 들어 있다. 문학이라는 것은 체험하게 하기에 의미가 있다고 했던가. 소설 '노을'은 해방정국 14살 갑수가 겪은 충격적인 일들과 40살이 된 이후에도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다. 읽으면서 당장 몇 십 년 전 한국인들이 겪은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몇 번이고 눈물이 났다. 사실 난 역사엔 문외한이다. 아니 무관심했다는 게 더 맞겠다. 하지만 이번 학기 난 제대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현대사. 연유를 말하자면 평소 흠모하던 국문학과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 수업에서 여순사건을 중심으로 관련 논문과 문학작품을 읽고 역사와 기억의 관계를 고찰해보는 것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 답사까지 한다는 것. 막 개강하고 시작부터 몰아치는 엄청난 공부량 앞에서 따귀 맞듯 정신이 번쩍 드는 건 내가 얼마나 역사의식이 없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역사라 해보았자 중고등학교 때 국사책에서 본 내용이 전부다. 중요한 소설들도 늘 시험용이었다. '여순사건' 에 대해선 교과서에 적힌 몇 줄로 접했던 기억은 난다. 하지만 그 무표정한 문장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진 않았다. 이제야 나는 배운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함을, 그리고 역사란 것이 얼마나 현재와의 부단한 대화이며 미래의 많은 운명을 결정짓기도 하는 힘이 있다는 걸 말이다. 새삼 국어사전을 팔랑 뒤적여 본다. 역사의식이라. ‘어떠한 사회 현상을 역사적 관점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그 변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관계를 가지려는 의식!’ 대학 초년, 우연히 얻어 읽은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라는 책이 기억난다. 당시 난 ‘드라마 같다, 내가 알던 역사랑 너무 달라' 하면서 읽었다. 그 책 역시 또 하나의 관점으로 쓴 역사겠지만 사실 역사관에 어찌 완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실증주의라는 게 가능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국가‘가 쓴 역사를 그저 읽고 외우기만 했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역사를 배웠다는 것이다. 국가가 쓴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역사 말이다. 알고 있던 역사를 해체하고 다양한 시각을 배우면서 왜곡되고 침묵당한 소리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또 폭력의 주체가 많은 경우 ‘역사를 쓴’ ‘국가’ 였다는 사실이다. 국가란 권력 하에 폭력은 정당화되고 은폐되었다. 여순사건은 교과서식 정의로 하자면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 좌익계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여기에 이 지역의 좌익계 청년과 주민이 호응한 폭동'이다. 사실 이 한 문장의 정의를 내리기까지도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그저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규정됐었다. 역사의 주체가 누구이냐에 따라 현재의 맥락에서 끊임없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걸 증명한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자기 권력의 정당성을 위해 이 사건을 왜곡했고 반공정신을 이용해 억울하게 죽은 양민들의 입을 닫아 버리게 했다. 80년 이후에서야 피해자들은 말하기 시작했고 진실규명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엔 사건 당시 반란군 뿐 아니라 정부군경들에게도 학살당했다는 것이 법적으로 인정됐다. 하지만 국가는 아직 사과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난 역사 사건을 적은 한 문장 속에서 고구마줄기 같은 사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꼼꼼히 공부하면서 역사의식을 기른다. 그러면서 비판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기르려고 노력하게 된다. 당시 '여순사건'은 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지를. 반란을 일으켰던 그들의 목소리는 대체 어디로 가는지를 질문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왜 무고한 양민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기억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을 해체하는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지금 바라보는 하나의 점일 뿐인 현실에서도 양 옆으로 줄기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래야 거시적인 차원에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다. 한국, 현재 2008년이다. 촛불집회가 있었다. 거대한 사건이다. 우린 ‘존재했지만 느끼진 못했던’ '국가'를 인식했다. 그만큼 ‘국가’의 폭력과 비상식적인 일들에 절망해야 했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임시방편으로 자꾸 덮으려고만 했고 그때마다 폭력이 동원됐다. 집회자들의 폭력에 국가의 폭력이 정당화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에겐 뜻 깊은 경험일지 모른다. 역사를 공부하며 느낀다.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구나.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또 다른 얼굴로 다시 드러나게 마련이구나. 지금 여기의 현재는 후세에 어떻게 쓰일까. 이곳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과 목소리들이 제대로 전달될까. 지금 벌어지는 국가의 폭력 앞에 그냥 흠칫 해버리고 만다면 여전히 악순환이겠지? 안달이 나서 말이다. 역사의 수많은 주름들 속에 있던 힘없고 억압받았던 목소리들이 다림질 당했듯이 지금 여기 한국에서 쓰여지고 있는 역사도 미래에 그렇지는 않을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수많은 기억들이 국가가 쓰는 역사에 의해 쉽게 총체화되지 않도록 우린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나, 겉멋만 들어 타자라거나 오리엔탈리즘 같은 말들을 쓰곤 했지만, 정작 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에 대해선 나와 무관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 80년대에 태어났고 당장 몇 십 년 전부터 꾸준히 일어나고 있던 학살과 전쟁과 항쟁들에 대해선 너무나 표층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역사의식은 없는 채 역사만 알고 있다면 난 지금의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주체로서 깊이 있는 통찰은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는 계속 흘러간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풍부하게 역사를 공부하고 다분히 흔들리면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다독다독 심어나가야 할 것 같다. 그것이 곧 내가 지금-여기에서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사회적 시간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주시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준비해 가기 위한 과거 성찰의 토대는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 " (집합기억의 사회사적 지형과 동학, 김영범) 그래서 난 이번 학기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하며 역사의식을 길러 보련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32 | 추천: 0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지 열흘 가까이 되어간다. 메달 순위로 역대 최고성적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환호했고,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이명박 대통령이 7대 강국 공약을 스포츠에서 먼저 이뤘다며 정치적 과대포장을 하였고, ‘엠비어천가’도 등장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올림픽을 돌아보면 많은 선수들이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여자 장대높이뛰기 종목의 브라질 선수 무러레를 떠올려 본다. 무러레 선수? 많은 이들의 기억 공간에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올림픽 선수이다. 전 세계가 러시아의 이신바예바에게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 그녀의 세계신기록에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와 터질 듯 한 함성이 터져 나왔을 때, 무러레는 한쪽에 주저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대회 주최 측에서 그녀의 장대를 분실하였고, 그로 인해 처음 접하는 장대를 사용하면서 높이뛰기를 모두 실패하여 경기장을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다. 남북관계로 눈을 돌려보자. 북핵 불능화 조치, 북미관계, 금강산 피격사건, 베이징올림픽 등에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 우리는 인도주의적인 대북 식량지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쇠고기 협상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명박 정부가 좋아하는 국제적 기준의 세계식량계획(WFP)의 계속되는 대북 식량지원 요청에도 이명박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최근 거듭되는 세계식량계획의 대북 식량지원 요청에도 한국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다. 이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사에서 “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습니다.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다른 정책과 같이 역시 꼼수에 그쳤다. 지난 6개월간의 남북관계를 돌이켜보면 생산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념의 잣대에 허우적거리며 비생산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변질되었다. 더불어 북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도 대북 지원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고, 그나마 지난 금강산 피격 사건 이후에는 모든 남북교류가 끊겨 버렸다. 거기다 최근에는 경찰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관련자 7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하였다. 사흘 후, 서울중앙지법이 “사노련이 국가의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조성된 단체라는 점, 또는 그 활동이 국가의 존립 및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함에 따라 풀려났지만, 이는 여전히 이명박 정부가 실용이 아닌 반공 패러다임이라는 이념의 잣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보여준 아찔한 ‘반공의 추억쇼’였다. 이러함에도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얘기하는 것에는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北 10년만에 최악의 식량난,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 사진 출처 - 뉴시스 정부는 ‘상생과 공영’이라는 남북관계 정책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 6개월 간 정책적 과오를 범하고 있다. 상생·공영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는 굳게 얼어버린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6자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관계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바로 이 남북 간 상생과 공영의 첫 출발은 인도주의적 대북 식량지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0년 만에 북한 주민 최악의 기아 사태, 세계식량계획의 계속되는 식량지원 요청, 북한의 남한 민간진영의 식량지원 수용의사 등을 고려해볼 때 이는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인도주의적인 대북 식량지원마저 우리 정부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외면한다면, 이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매우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상생과 공영의 정책을 구현시키기가 요원해질 수 있다. 시간을 더 끌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민족의 구성원이 쓰러져가는데, 옆 동네 사람들의 분주한 손길만 지켜볼 수는 없다. 이건 우리 민족의 정서에도 맞지 않다. 인도주의적 대북 식량지원이 지금 절실히 필요한 때이며, 이게 곧 실용의 잣대로 본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 정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88 | 추천: 0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인권을 말하기 참으로 어려운 시대가 왔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지나는 동안 한국 사회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을 하고 한국 사회의 내적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왔다고 생각한 건 신기루였는지 모른다. 일종의 철인 정치적 환각에 빠져 있던 건 아닌가 싶다. 상대적으로 더 민주적이고 덜 권위적인 ‘통치자’가 청와대에 있는 동안 분명 일정 정도의 자유권과 사회권이 향상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 주의적 시각에서 모든 사회 문제를 치환하는 상당수 민중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새로운 사회의 분위기를 제도적으로 공고화하기 위한 법 개혁도 일부분에 머물고 말았다. 우리 사회가 뒷걸음질하지 않을 안전판 마련에 소홀했던 데 대한 처절한 복수가 시작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천박하고 무식한 방식으로 진행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을 쫓아낼 때처럼 감사원과 검찰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되고,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로도 모자라 취재 원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겠다는 몰상식한 발상까지 하는 데서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국민의 생명권과 국가의 검역 주권을 등한히 한 협상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대를 막겠다며 이 나라에서 가장 넓다는 16차선 도로를 콘테이너 박스로 빈틈없이 막는 경찰, 신고하지 않은 집회에 참가해 도로를 점거했다는 이유로 신분도 밝히지 않고 미란다원칙도 고지하지 않는 불법 연행과 감금을 일삼는 경찰, 그런 남부끄러운 짓을 한 경찰을 잘 했다고 칭찬하는 대통령도 있다. 지금 정부는 어차피 앞으로도 한나라당을 찍지 않을 것이 분명한 30%는 확실히 버리고 가겠다고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거칠게 몰아붙이는 것을 봐서는, 단순히 버리고 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목적을 가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반대 세력에게 공포를 내면화시켜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숨죽여 살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한 줌에 불과하던 국정수행 지지율이 두 줌으로 늘자 본전 생각이 난 것이다. 정치적 기반이 되는 지역에서의 응원도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다. 2주 전 취재차 통화한 한 언론학자는 “얼마 전 부산에 갔더니 그 쪽은 정연주 사장이 ‘당연히 물러나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들을 갖고 있더라. 시작해보지도 못한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는 것 같다. 방송 때문에 대통령이 할 일 못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고… 조중동식의 여론 확산이 그 쪽은 강한 것이다”라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 학자는 현재 언론계 상황에 대해 “(현 정부가)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지금은 언론학자가 얘기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껴 그의 말은 기사에 인용할 수도 없었다. 다가올 날들을 놓고도 당분간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겠다. 대선에 이은 총선에서 민중의 열렬한 지지로 국회의 레비아탄이 된 한나라당은 다가오는 정기 국회에서 공적인 구실을 민간에게 넘김으로써 ‘왜 국가란 게 존재하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드는 법안을 입안하고, 그렇잖아도 집회와 시위를 옥죄기 위해 존재해 민중의 자유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쓰레기 같은 집시법에 분칠을 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다수당이던 시절에도 악법을 입으로만 철폐하고 국회에서는 무능하기 그지없던 민주당이 반토막난 의석으로 무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바보는 없을 터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야 현실정치적인 의석수의 제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의회에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시민사회 세력은 계속 거리의 정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 또 경찰은 악법을 무기로 삼아, 자의적인 “법치주의”를 부르대는 대통령을 비빌 언덕 삼아 설쳐댈 터이니 ‘반민주주의의 악순환’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보라. 지난 10여 년간 숨직이며 조직 감축을 참고 있던 경찰내 보안 세력들이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7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갔지 않은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주로 비정규직 투쟁을 해왔으며, 공개적 활동을 해왔다. 북한 체제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이들은 이적단체를 구성하고 국가 변란을 선정선동하고 안보에 위해를 끼치는 문건을 제작 반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들의 활동이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보기 어려움에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포하려 했다는 이유로 보안법을 걸었다. 1948년 만들어져 올해 환갑을 맞은 보안법은 이와 같은 보안 경찰들을 통해 싱싱한 젊음을 언제든 뽐낼 수 있는 것이다. 엄혹한 시기가 왔다. 반동의 파고가 우리 사회의 도저한 흐름을 유지하던 주요 지점들을 밀물처럼 덮고 있다. 그렇더라도 보다 나은 사회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 곳을 향해 어렵지만 한 발짝 내디디는 게 우리의 역사적 숙명으로 믿는 이들은 분명히 있다. 이 사회가 진보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정도가 될 것이다. 우선 땅에 발을 굳건히 내디딘 채 현실의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 싸워나가는 것. 그리고 법조문을 구성하는 문장을 자구 그대로 해석해 입법의 취지, 헌법의 정신을 훼손해가며 생각에 굴레를 씌우는 이들에 맞서 끊임없이 자유로운 상상을 해나가는 것이다. 깊은 어둠일수록 새벽이 가까웠다는 신호일 수 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5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