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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비판, 멋대로 맘대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5 15:32
조회
208

최철규/ 인권연대 간사


   지난 1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NAP, 이하 권고안)을 둘러싸고 그간 인권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던 우리 사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인사들이 각종 보수 언론의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이번 권고안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으로 불손한 도발’로 규정하고, 헌법을 중심으로 한 ‘국가정체성 수호’의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로 귀결될 ‘헌법정신’ 파괴의 근거로 내세우는 내용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인권위의 ‘크나큰 착오와 무지, 그리고 월권’으로 인해 총체적인 혼란과 불안 등 암울한 질곡으로 빠져 들어갈 것만 같다. 그러나 인권 앞에서 혼란과 불안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소수 기득권층일 뿐이며, 인권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인한 낭비성 혼란일 뿐이다.


인권위의 정체성을 밝혀라??
대표적인 기득권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일제히 성명을 내어 권고안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저항해 나갈 것을 천명하였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경제 문제까지 인권이라는 잣대로 보려고 하면 (이것은) ‘평등주의’를 하자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라고 자랑스럽게 인권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동아일보 14일자 인터뷰 내용 중)
보수적 정치집단의 맹목적인 비난도 그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이번 권고안을 인권친화적 사회로의 진전을 위한 일보로 환영한 반면, 한나라당은 “권고안은 사학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정부-여당의 음모를 확연히 드러낸 것”이라며 진부한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오직 북한인권만이 인권의 전부라는 ‘신종 인권론’도 이 대목에서 빠질 수 없다. 한나라당의 임태희 의원은 “인권위가 북한인권 등에 대해선 입을 다물면서 국보법 폐지, 교사의 정치활동 등 정치적 부분에 치중해서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일침(?)을 놓았다.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인권위는 인권을 논할 자격이 없다라는 것이다.
보수 언론들도 사용 가능한 지면을 총동원하여 권고안을 비난하기 바쁘다. 조선일보는 “대학 수험생의 수능 답안지 수준도 안 되는 보고서”, “무능·무책임한 무국적자 집단의 잠꼬대만도 못한”내용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주저하지 않았다.(10일자 사설, 세금만 축내는 ‘무국적 인권위’의 잠꼬대) 이번 권고안은 “인권위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자기 고백이라 할 만하다”라는 것이 결론이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정권 이후 가장 크게 정치적 유행어가 된 이른바 ‘코드론’을 들이댔다. 인권위가 “법치를 무시한 채 좌편향 ‘이념 코드’에 빠져있”고, 결국 “국가정체성의 혼란만 부채질할 우려”가 있다고 한다.(11일자 사설, 헌법 상처내기 ‘밥 먹듯 하는 국가인권위’) 문화일보는 아예 인권위를 무정부주의자로 몰아 세웠다. 이번 권고안에 포함된 국보법 폐지, 종교적 병역거부 인정 등의 사안들이 대부분 그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그 ‘부당성’이 입증된 것이라며, 인권위가 국가최고 사법기관의 결정을 부정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흔드는 무정부주의 시각으로 넘쳐난다”라고 한다.(10일자 사설, 국가인권위,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나)
반면에,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번 권고안의 내용을 “인권의 존엄성을 곧추세우라는 시대적·역사적 요구의 응축”으로 요약하고, 인권국가로의 전환을 위해 이러한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을 “정부의 책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0일자 사설,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중한 권고) 한겨레도 이념논쟁의 편견을 극복하여 우리 사회가 “권고의 집행력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부가 권고안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인권정책의 기조로 삼을 것을 요구하여, 앞선 신문들의 비판과 큰 차이를 보였다.(11일자 사설, 인권청사진, 이념잣대로 매도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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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레


  그들만의 세계, 그들만의 ‘인권’
권고안의 내용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의 뒤편에는 오직 ‘그들만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원칙이 있다. 인권? 이해도 없을 뿐더러 관심도 없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헌법-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원리-인권’의 순으로 매겨진 중요도가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을 뿐, 헌법에 우선하는 인권의 원칙에는 무지하다. 인권이 사회의 모든 제도와 문화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기준으로 최소한의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며, 이번 권고안 또한 국가의 모든 정책과 운영에 기본적인 인권의 잣대를 놓으려는 초보적 수준의 작업이라는 것도 애써 외면한다.
사실 그들이 한번이라도 제대로 권고안을 들여다보았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허용,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노동쟁의 직권중재제도 폐지, 비정규직 고용 억제, 사형제 폐지, 집시법 완화 등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일부 쟁점화 되었던 사안만을 ‘취사선택’하여 의도적으로 권고안 전체를 매도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정치화하고 있을 뿐이다.
권고안에 포함된 장애인, 이주노동자, 난민, 시설생활인, 성적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인권피해계층의 인권보호문제와 정부에 의한 일률적인 인터넷 내용규제 최소화,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대상 확대, 최저임금 결정방식 개선 및 적용대상 확대, 작업장 감시기술 도입운영 정보 공개, 학교부문·공직종사자·시민사회 인권교육 등의 강화 방안에 대한 권고 내용은 그들의 ‘눈·밖에·있다’.
오히려 이번 권고안은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빈부 격차 등 사회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 접근이 부족한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단순한 권고의 수준을 넘어 어떻게 정부 각 부처의 구체적인 이행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프로그램의 이행을 관리·평가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부 부처 간의 유기적 협력을 이끌어내고 인권의 원칙을 보다 강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과제도 남겨져 있다.
인권의 역사는 피폐해진 현실을 직면한 비관주의자의 투쟁의 역사다. 사회적 차별과 소외, 가난과 죽음의 공포에서 인권은 태어났고 자랐다. 권고안에 대한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불과한 기득권층의 목소리는 이러한 인권의 역사를 역으로 실감하게 해준다. 이나마의 국민적 교훈이라도 안겨주니, 이들의 목소리가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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