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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다시 민중가요를 주목하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5 14:41
조회
258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


  그대가 진보적인 의식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요즘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묻고 싶다. 2006년 1월, 그대는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이 된 김광석의 옛 노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는가? 아니면 김종국이나 이수영, 패닉의 새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가? 그도 아니면 혹시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들으며 세대차이를 절감하거나 요즘 노래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민주화운동을 경험했거나 진보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진보적이라는 것에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이 진보적이며 대안적인 문화로 재구성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정치문화의 변화만으로 진보를 구성하는 앙상한 진보주의자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먹는 밥과, 매일 보는 TV 프로그램과, 매일 오가는 출근길과, 매일 일터에서 나누는 대화와, 벗들과 어울리는 자리와 여가시간 속에 얼마나 대안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자본이 부추기는 욕망 속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라는 것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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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초창기 공연 모습  /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그중에서 대중음악 이야기를 좀 하지면 적어도 90년대 중반까지는 진보적인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민중가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노래라는 장르 자체의 대중적 친화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중가요는 집회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서 불리며 진보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한국 대중음악씬에서 언더그라운드/인디 음악들과 함께 대안적 질서를 구축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상업적 속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고 사회운동이 분화/쇠퇴하면서 민중가요는 이전의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10대 위주로 재편된 대중음악시장에서 진지한 음악적 접근들은 무참히 묻혀버린 채 저주받은 걸작의 묘비명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전투적인 민중성을 생명으로 했던 민중가요 역시 대중음악 환경의 변화와 민중운동의 퇴조, 386세대의 보수화 등에 맞물려 자신들의 활동방향을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제 민중가요는 더 이상 집회장에서 불리거나 전파되지 않는다. 두 번의 촛불시위과정에서 윤민석의 기동성 있는 역할은 매우 돋보였지만 그것만으로 대안을 채울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대안적인 노래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불리며 순환되는 것이다. 그러나 집회장에서 불리는 노래는 20년 전의 노래이며 소위 활동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민중가수들을 집회장의 들러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운동 진영의 공동 모색과 실천은 대체로 실패하고 중단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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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무효 집회때 공연 모습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조호진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민중가수들은 여전히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 줌’되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단순히 운동의 무기로서만 불리는 노래가 아니라 예술성과 독자성을 갖는 생명체로서의 노래를 위해 많은 팀들이 어려운 생활을 견디며 더 깊이 고민하고 연습하며 현장과 소통하려 애쓰고 있다. 꽃다지, 소리타래, 우리나라, 희망새 같은 노래패들은 여전히 굳건하다. 그리고 이제는 더 많은 개인가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음악적인 완성도과 주제의식은 훨씬 더 치밀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나온 민중가요 음반 중에서 문진오의 울림 깊은 보컬과 박창근의 생태주의, ‘소풍가는 날’의 서정성, 손병휘의 도저한 평화주의는 이제 우리 민중가요가 제 2의 부흥기를 준비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특히, 연영석의 3집 <숨>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솔직하고 통렬한 문제의식을 잘 벼린 록음악으로 담아낸 뛰어난 작품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창작물들이 진보적 대중들에게도 잘 소통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음악운동 진영의 책임이겠으나 또한 진보세력의 문화적 감수성과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민중운동이건 시민운동이건 문화적 감수성과 진보성은 사실 낙제점에 가깝다. 무엇보다 집회장에서 의례적으로 노래 시켜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음반도 사고, 공연도 보며 적극적인 향유자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일상의 진보적 재구성에 대해, 문화의 가치에 대해 획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단언하건데 20년 전의 민중가요들만을 기억하고 있는 마인드로는 결단코 ‘해방의 그날’을 맞이할 수 없다. 반전집회에 참여하고 농민운동에 연대하듯 문화운동에도 우리의 열정과 노력을 나누어야 한다. 생태적 감수성과 소수자적 시각으로 운동을 재구성하듯 문화적 감수성으로 운동도 재구성되어야 한다. 진보적인 문화의 시대를 일구는 길에서 민중가수들은 누구보다 소중한 동지이며 또한 소중한 예술가들이다. 이들이 더욱 당당하게 노래하고 그 노래가 우리의 일상을 바꿀 수 있도록 뜨겁게 연대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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