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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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올해 2007년 10월에 인권 회복 사례 2가지가 일간지에 보도된 바 있다. 유방암 투병 이후 신체검사에서 2급 장애판정을 받고 강제로 퇴역되었다가 외로운 싸움을 통해 시행규칙의 개정과 복직 가능성을 얻어낸 예비역 중령 피우진씨의 경우와 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다 제적된 후 퇴학처분 무효소송에서 이겨 학교로 돌아갔던 현재 서울대학생인 강의석씨가 학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승소한 사례가 그것이다. 이런 성공 사례는 인권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사례를 접하며 필자는 인권의 회복에 대한 희망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람의 외로운 노력, 그리고 희망의 이루어짐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평소 좋아하던 시 구절들과 명언들을 그러한 사례 속에서 새삼 떠올리게 된다. 남들과 다른 의견이라고 여겨져도 굽히지 않는 소신, 그것을 위해 벌이는 외로운 투쟁, 결국은 이루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자세로 생각이 이어진다. 우선, 필자는 피씨와 강씨가 지녔던 소신과 그것을 위한 외로운 싸움에 대해 생각한다. 피씨의 경우는 유방암 진단이 나와 절제술을 받은 후 수술 경과가 양호하고 완치 가능성이 90% 이상이며, 그 후 3년간의 체력검사에서 모두 합격 판정을 받았고 수술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현역으로 복무하는데 아무런 장애 사유가 없음을 주장하며 육군본부 전역심사위원회에 인사소청을 냈으나 기각된 후, 국방부 장관에게 소송을 냈고, 그 후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퇴역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강씨의 경우는 대광고 3학년때 “모든 학생은 예외 없이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학교 방침에 대해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20조)는 짧고도 또렷한 소신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다 한 달 만에 제적되었고, 그 후 학교를 상대로 법원에 낸 퇴학처분 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대에 진학한 강씨는 “학교가 종교 행사를 강요해 헌법에 보장된 종교 및 양심의 자유,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침해당했다”고 학교와 서울시에 손해배상청구를 냈고 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또 한번 승소했다.   피우진 중령과 강의석씨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러한 사례는 조각가 로댕이 남긴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깊고 의연하고 성실하십시오. 여러분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그 발표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인간에게 깊은 진실인 것은 만인에게도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두 사례는 한 사람이 지닌 깊은 진실, 그 확고하면서 정의로운 소신은 결국 만인에게도 진실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신 때문에, 더욱이 한사람의 의로운 싸움을 너무나 쉽게 무시하는 권력에 의해, 수없이 상처받아도 꿋꿋이 버틴 그 외로운 투쟁, 그리고 절망을 넘어 그들이 지닌 희망에 대해 생각하며 고정희 시인의 시 구절도 떠올리게 된다. 건강함을 증명하고자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피중령이 벌인 20여 일간의 1인 행군, 그리고 어린 고등학생이었던 강군이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헌법20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예외다?!”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지속적으로 벌인 1인 시위, 그 하루도 쉽지 않았을 서럽고 외로웠을 그들의 투쟁에 대해 숙연히 생각한다.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서)   그리고, 그러한 꿈은 결국 길이 된다. 박노해 시인이 노래하듯, “좋은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와 있는 좋은 삶,” “이루어놓은 작은 기쁨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닮고 싶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 된다.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으로 세상 힘겨울 때 우리 속에 이루어놓은 작은 기쁨들을 봐 . . . . . . 저 아득하고 먼 아직과 이미 사이를 내가 먼저 좋은 세상 이루어내는 우리 닮고 싶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이제 우리는 그들의 외로운 투쟁에 손잡아 주었어야할,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에서 그러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이제라도 “마주잡을 손”으로 다가가야 할 우리에 대해 생각하자. “어느 한사람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을 때는 우리 모두의 인권도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우리는 생각하는가? 인권을 말함은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이 외롭게 당한 억울한 고통이 함께 했어야 할 우리 모두의 고통이었음에 대한 고백이며, “마주잡을 손”으로 다가가고자 연대하겠다는 다짐 아닌가? 인권은 참으로 진실 된 소신과 희망이다. 우리 모두가 “깊고 의연하고 성실”하게 추구할만한 보편적인 가치이며,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기준이자 가르침이다. 그리고, 인권의 회복은 연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서로 서로가 있음에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의 어려움에 대해 두 눈을 감고 온갖 허상을 향해 손짓하는 이 시대에 인권 회복을 위해 손잡는 연대만큼 절실히 요청되는 도덕률이 또 있을까? 희망을 갖기에 사람이며, 사람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이루게 하는 친구, 곧 연대이다.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21 | 추천: 0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었다. 올해 추석연휴에는 태국여행을 계획했다. 우리 부부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첫 해외여행이었다. 장인, 장모님도 모시고 갔다. 평소에도 놀아주지 못한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신혼여행을 근사하게 가보지도 못한 아내와 모처럼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좋은 여행이 될 거야...’ 태국의 첫 인상은 스산했다.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고가도로 위에서 본 콘크리트 건물들. 다음날부터 우리 가족을 포함한 열두 명의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버스를 타고 방콕과 파타야를 오가며 이곳저곳 관광지를 다녔다. 장인, 장모님은 의외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잘 다니셨다. 아이들도 좀 피곤해 보였지만, 정작 가장 힘이 딸린 것은 우리 부부였다. 밤 12시까지 <관광>을 하고 다음날에는 새벽 6시 30분에 모닝콜을 해서 다시 새로운 <관광>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다닌 길에 참 많았던 고가도로들은, 수도 방콕과 휴양지를 연결하고, 그 밑에 얼기설기 지어진 양철집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관광객들을 태국의 여기저기로 효율적으로 실어 날랐다. 아마도 국민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사회적 인프라를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관광수입을 챙기기 위한 좋은 선택이었겠지. 관광객들은 태국 사람들의 삶은 전혀 접촉할 필요가 없고 유명 관광지를 오가기만 하면 되니까. 밤 11시에 안마를 받으러 가는 다른 일행들을 뒤로 하고 우리 부부와 아이들만 픽업트럭을 개조한 택시의 짐칸(승객석)에 타고 숙소로 이동한 일이 그나마 태국 사람들의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것이었다. 우리 부부가 생각한 <여행>은, 에머랄드사원 같은 곳에 가면 휘~둘러보고 으레 정해진 장소에서 사진 찍고 나오기 보다는, 한나절을 거기 앉아서 태국의 역사가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벽을 꽉 채운 벽화들에 대해서 조곤조곤 설명을 들으며 그곳의 기운에 젖어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녁 6시쯤이면 숙소에 돌아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그곳의 풍광과 사람들과 우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한비야씨처럼 몇 달씩 머물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살지는 못해도, 태국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그런데 기대를 안고 떠난 여행이 사실은 <관광>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를 인솔한 가이드는 말했다. “3일 동안 여러분은 방콕과 파타야를 알짜배기로 다 돌아본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태국에 여행 오지 마세요.”   여행은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을 되돌아 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르페르  돌아와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관광> 오는 외국인들도 고궁을 둘러보면서 내가 태국에서 <관광>한 것처럼 다니겠지. 내가 겉돈 것처럼, 그들도 겉돌고 돌아가겠지. 그리고는 한국을 얼마간이라도 경험했다고 생각하리라... 여행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삶을 접해 보기. 그래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나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기. 그러려면 그곳의 보통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어야 할 테고, 쳇바퀴 같은 삶이지만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을 되돌아 볼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요해졌다고 동남아를 다니면서 마련해 놓은 여행의 방식이 이런 식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이렇게 <쉬고> 집에 돌아가면 어떻게 재충전이 되는지 어쩌면 이런 모습은 평소 사는 모습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고, 또 다른 목표가 생기면 뒤돌아 볼 새도 없이 또 달려가고... 어른들이 그렇게 살고, 학생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대로 여행하려면 평소에 제대로 살고 있어야 하는가 보다. 다음 기회에는 진짜 <여행>을 갈 수 있게 조심해야겠다. 또 <관광>에 붙잡히지 않도록.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285 | 추천: 0
출판업을 하는 한 선배가 자조하듯 한 이야기가 있다. "세상이 이렇게 웃기고 재밌는 일로 가득한데 책이 팔리겠어?" 신문보도를 보니 작년도 출판 매출이 그 전해에 비해 13% 가량 줄었단다. 올해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는데 이래저래 책은 더 안 팔리게 생겼으니 그 선배 처지가 더 딱하게 됐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사회는 웃지 못 할 코미디와 예상 못할 드라마로 가득하다.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가 드러나자 숱한 유명인사들의 학력 위조에 대한 폭로와 고백이 줄을 이은 것도 하나의 코미디다. 영화배우, 연극배우, 탤런트, 만화가, 코미디언, 외국어 강사, 거기에 종교인까지. 재미있는 건 이들 대부분이 주로 문화예술계 쪽 인사들이란 점이다. 문화의 시대라느니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느니 하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아마 상상력과 창의력도 학벌로 결정되는 모양이다. 하긴 그걸 잘 보여준 사례가 있긴 하다. 어디선가 신정아씨의 누드 사진을 입수한 한 신문사는 그걸 일면에 게재하면서 권력자에 줄을 대기 위한 '성 로비'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누드 사진을 게재한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코미디로 화답했단다. 국민들이 남의 나체를 '알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누드 사진을 곧바로 '성 로비' 의혹으로 연결하는 그 사고의 비약이야말로 기막힌 상상력과 창의력의 발로 아닌가. 모르긴 해도 그 신문사 기자와 간부들 대부분 이른바 '좋은 대학' 출신일 가능성이 높으니 상상력과 창의력이 학벌로 정해진다는 게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최근에 벌어진 코미디 가운데 압권은 남북정상회담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3일 서울역 앞에서 벌어졌다는 보수 단체들의 집회였다. 남북정상회담을 규탄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자는 이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두 손을 쳐들고 기도를 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저주하는 연사들의 발언이 쏟아질 때마다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쳐댔다.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해병대 복장의 아저씨들과 단상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아가씨들의 모습은 가히 부조리극의 극치라 할만하다. 최근 웃을 일이 없었던 사람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이 동영상을 꼭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10월 3일 서울역에서 벌어졌던 보수 단체의 집회 모습.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특히 웃겼던 장면은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에 맞추어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이었다. '아, 대한민국'이라.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폭력과 공포가 우리의 일상을 조이던 그 치 떨리던 시절에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가 있는' 대한민국을 찬양하던 이 노래, 한때 대학생들의 노래가사바꿔부르기, 요즘 말로 패러디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를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그런데 '아, 대한민국'에 성조기라니. 정말 웃기지 않는가. 하여튼 이 나라의 '어떤' 개신교 사람들과 '어떤' 보수주의자들은 정말 심심치 않게 우리를 웃긴다. 하긴 그 사람들의 코미디는 한참 낄낄거리며 웃다 보면 기분이 오히려 나빠진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최근 임기가 만료된 한 주한 외국대사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가 보여줄 온갖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다며 임기 연장을 신청했다는 얘길 들었다. 그 외국 대사가 말하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아, 대한민국'을 틀어놓고 성조기를 흔드는 식의 블랙 코미디가 포함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것보다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그런 역동성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드라마틱한 과정을 궁금해 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런 드라마를 보고 싶으니까. 예상을 뛰어 넘는, 그러나 끝나고 나면 아, 역시 대중의 지혜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는 그런 역동성의 드라마 말이다. 그거야 말로 내가 진정 보고 싶은 코미디이다. 그런 코미디라면 책이 좀 덜 팔린다 한들 출판업 하는 내 선배도 그리 섭섭해 하진 않을 것 같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289 | 추천: 0
오늘은 6학년 사회과를 가르치면서 발생한 교사로서의 정체성 문제와 학교의 위계체제, 그리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부여된 권리이자 의무인 학습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몇 자 끄적이고 싶다. 왜냐하면 추석 연휴기간동안 이 생각이 잠자리가 맴을 돌 듯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담임이 아닌 교과를 선택했고 6학년 사회를 주로 가르치게 되었다. 6학년 사회는 1학기 때에는 우리나라 역사를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2학기 때에는 정치 분야를 지도하게 되어있다. 1주일에 3시간을 배당하여 가르치기에는 그 양이 방대하여 아이들의 수업참여를 보장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정치 분야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표면적으로 볼 때 아이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뜬구름잡기식의 재미없는 수업이 되기 십상이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인기 있는 드라마나 눈에 띄는 CF, 우리 생활주변의 실제적 이야기로 집중도를 높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내용 중 시민단체의 종류와 하는 일, 활동에 대한 부분이 나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민단체가 어떤 활동을 하며 역할이 무엇을 하는 단체인가에 대하여 낮은 이해도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과 친숙한 매체에서 다뤄지는 소재도 아니었고 주변의 생활과도 친숙한 단체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본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여 체험학습을 계획하였고 시민단체인 0000와(과) 6학년 담임교사들의 양해를 구하였다. 그러나 6학년 전교사들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지하철 이용이라는 데에 대한 안전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의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소위 브레이크가 걸렸는데 안전문제는 표면적인 것이었고 진짜 이유는 0000(이)라는 단체가 너무 비판적이고 평소 본인의 언행으로 보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키워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어 체험학습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재고를 당부하며 이야기를 종료했지만 추석 연휴동안 교사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였다. 국가로부터 공인된 자격을 지닌 교사의 학습에 대한 재량권은 어디까지이고 아이들에게 부여할 학습의 내용을 결정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학습에 적절한 내용인가의 여부를 교육활동을 진행하는 교사가 아닌, 직접적인 교육활동에서 떠나있는 관리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체험학습의 필요 여부와 내용 결정은 관리자의 몫인가? 관리자의 교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있을 시에 관리자의 시각에 의존하여 학습권을 포기하는 것이 마땅한가?   한강시민공원에서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이 래프팅 등 수상레포츠를 즐기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학교는 가르침의 대상자와 수행자, 그를 보조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각자의 영역과 역할을 규정짓고 수행하면서 생활한다. 한사람의 비뚤어진 시각은 교육의 내용도 재단한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의 입장에서 가르치면서 늘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하여 일상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교육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한순간 한순간의 교육내용이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인간 육성’을 강조하는 교육목표는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진다. 한 일간지에서 읽은 어떤 교장선생님이 퇴임하면서 읽은 30년 교직생활에 대한 회고문이 생각난다. 일상적 회고문은 자신의 교육자로서의 공적을 나열하기가 일쑤지만 그 글은 교육자로서 잘못된 지시나 지침에 용기 있게 항의하지 못한 죄와 그것을 당당하게 교육한 것을 스스로 양심선언하는 내용이었다. 10여년의 남은 교직생활을 남기고 있는 교감선생님에 대하여 ‘아! 당신은 그런 의식을 지닌 사람이군요~~’ 라며 웃어 넘기기에는 어려운 그 무엇이 있다. ‘10년 후에 어떤 회고문을 읽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식은 하고 있는 것일까? 교사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재량은 중요하다.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와 각종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오는 것도 체험학습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시민단체 방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재량권을 강화시킨 7차 교육과정상으로도 그렇다. 그 필요성과 교육활동의 선택에 대한 권한은 교사에게 있어야 마땅하다. 한 개인의 왜곡된 시각이 깊은 고민과 성찰로 계획한 교육활동이 마음대로 재단되는 것은 폭력이고 난폭함이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94 | 추천: 1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은 많이 변하였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생겼고, 거기에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외제 차들이 많이 다니고, 시내버스는 깔끔해졌습니다. 시내 곳곳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마치 20년 전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요즈음 저에게 서울은 조금은 신기한 도시입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보다 조금 더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퇴근 무렵 전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불쾌함을 겪고 싶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굳이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여 이동하고, 그래서 서울 시내의 거리는 그렇게 붐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리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더 친절해졌습니다. 사람들도 도시의 여러 규칙들을 좀 더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특히 가게에서 겪는 친절함 중에는 과잉된 것도 있습니다. 마치 친절함 역시 그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 중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때에는 낯선 사람에 대한 무례함이 좀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친절이 불편한 이유는 그 친절함 안에 있는 그들의 삶의 고단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그 때보다 더 발전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고, 근로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고, 사회보장제도는 더 확대되었지만, 그런 사정을 들어 한국 사회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진행된 사회 양극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은 민주화의 중심 세력이었던 근로자들의 삶이 더 피폐해졌고, 그들의 지지로 2명의 대통령이 집권했음에도 그 현상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절망하곤 합니다. 자신들이 지지한 정당이 지지자들을 위한 정책조차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을 절망하게 합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많은 돈을 들여 아이들에게 사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20년의 경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은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노력을 공공연하게 비웃습니다. 20년 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희망, 즉 좋은 사회를 함께 노력하여 만들자는 바람은 웃음거리에 불과합니다. 정부나 정당은 현재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처방으로서 단순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간혹 그것이 정책인지 아니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협잡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문제들은 복잡한 원인들로부터 나오는데 그에 대한 정책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원인에 대해 단순하게 대응하는 것은, 그것이 이론적인 것이 아닌 이상, 거짓말이거나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달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은 무지하거나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희망이 없다는 점 혹은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지금 희망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생각입니다. 사회에 대한 희망은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 질서에 순응하면 저절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시장에는 ‘질서’란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원래 질서란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서’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 질서는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에 관한 것입니다. 그에 관한 정책과 대안은 복잡하고 어수선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필요합니다. 희망이 없는 오늘 보다 10년 후에도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더 힘듭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하여 대안을 만들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조금은 용기가 필요하거나 귀찮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25 | 추천: 0
평소 알고 지내던 분들로부터 사건을 의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을 때가 있는데, 사정상 내가 맡아서 처리하기는 곤란한 일들이 종종 있다. 이 때 직접 수임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 드리고 나면 내가 잘 아는 변호사를 추천해 달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변호사를 추천하는 것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건의 성격, 경제적 가치, 난이도를 고려하여 의뢰인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를 소개해 드렸다. 그리 어렵지 않은 사건일 경우 굳이 많은 보수를 주고 경력이 화려한 변호사를 선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불만을 듣게 되었다. 전부 승소할 줄 알았던 사건에서 일부 패소를 했는데 그 이유가 우리 쪽 변호사는 내가 소개해 준 사법연수원을 이제 막 수료한 변호사였고, 상대방은 최근 법원에서 퇴직한 전관 변호사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그 사건은 의뢰인이 일부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었고, 변호사를 추천할 때부터 그 점을 알려드렸는데, 내가 소개해 준 변호사 때문에 일부 패소했다는 원망을 듣게 되니 참으로 억울했다. 그 후로는 되도록 전관 출신 변호사를 포함해 복수의 후보를 추천한 후 의뢰인이 직접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한 다음부터는 특별히 원망을 듣고 있지는 않은데,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찜찜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법원이나 검찰이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관대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법무부는 최근 차관급 이상 고위직 판ㆍ검사가 퇴임하고 변호사 개업을 할 때 퇴임 직전의 법원이나 검찰이 관장하는 사건은 일정 기간 수임하지 못하게 하는 변호사법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은 입법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위헌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이미 전관출신 변호사의 개업지역을 제한하는 내용의 구 변호사법은 1989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결정을 받았다). 아무리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고 하여도 단지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개업지나 수임 업무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침해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면 어떠한 방안이 좋을까. 의뢰인들로부터 전관 출신 변호사들에 대해 법원이 보다 관대한 판결을 선고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나왔지만 답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법관을 자유롭게 만나서 변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의식해서인지 법원은 작년 정도부터 법관의 면담에 관한 내규를 제정, 시행함으로써 판사를 집무실에서 만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가 방문하는데, 이를 막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법원 직원이 변호사에게 방문대장에 방문일시와 면담사유를 기재하도록 요구하기도 어렵다. 과거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법정 외에서 변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정 외 변론은 소송상 주장을 법정에서 열리는 변론절차에서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반한다. 일방의 주장이 공개되어야만 상대방 역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법관에게 법정 외에서 소송절차 등에 관한 논의를 할 때에는 반드시 상대방 변호사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논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부득이 먼저 논의하게 된 경우라면 상대방 변호사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절차적인 공정성이 확보된 후에 비로소 실체적 판단의 공정성을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관예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 법정 외에서 변호사가 판사를 방문해 소송과 관련된 주장을 할 경우에는 그 내용을 기록하여 소송기록에 첨부하고, 상대방 대리인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부득이하게 판사 집무실에 찾아가 사건에 관하여 설명을 하더라도 떳떳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전관예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29 | 추천: 0
국정원이 지난 05년 5월부터 2년 넘게 부패척결TFT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이명박 후보의 부동산관련정보의 유출배후로 한나라당이 국정원을 지목해 검찰에 고소하고 항의방문을 하는 등 부산한 가운데 국정원이 실토한 내용이다. 나는 지난 10년 내내 내부개혁을 외쳐온 국정원이 공식 조직의 하나로 부패척결TFT를 만들어 운영해 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부정부패는 필경 국가안보를 좀먹기 때문에 부패정보 수집 역시 국정원의 소관업무라고 강변하는 국정원과 청와대의 억지에 대해 절망한다. 부패척결TFT는 명백히 국정원법 위반이다. 국정원법상 국정원은 ‘국내보안정보’, 곧 ‘대공, 대정부전복, 대북, 대테러, 방첩, 국제조직범죄’ 관련정보만 수집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국방안보 부문의 부패척결에 필요한 정보수집을 넘어 사회 각계의 부패척결에 필요한 무제한적 정보수집은 결단코 국정원의 업무가 될 수 없다. 첨단 도청 도촬 장비와 주변 탐색 기법으로 무장한 국정원이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국가와 사회의 모든 지도급인사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엿보기와 엿듣기를 시도한다면 그것이 Big Brother의 사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일까? 소속진영을 막론하고 국정원의 부패척결TFT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는 논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득권층은 자칫 입을 놀리다 국정원의 부패척결TFT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입을 다물고 사회운동권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반감으로 입을 다무는 게 아닌가 싶다. 둘 다 큰 문제다. 하나는 문어발식 국내정보 수집관행을 버리지 못한 국정원에 대해 여전히 공포를 느낀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성 정보를 수집 중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위법적 부패척결TFT 운영사실은 지난 10년간 추진돼 온 국정원 내부개혁이 실패했다는 점을 웅변한다. 그동안 보안감사권과 수사권 축소, 직원의 정치개입 처벌, 국회 정보위원회 신설, 국정원과거사위원회 운영 등 눈에 띄는 제도개혁과 과거청산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밖에서 누구 하나 들여다볼 수 없는 ‘그들만의 내부개혁’ 제스처였기 때문에 늘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정부 국정원의 광범위한 도청사실과 참여정부 국정원의 부패척결TFT 운영사례는 국정원과 같은 비밀권력기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불신과 경계가 불가피함을 일깨워준다.     향후 국정원 개혁과 관련하여 두 가지만 주문한다. 첫째, 국정원 개혁의 목표를 종전의 정치개입 예방과 근절을 넘어 인권보장을 위한 법치적, 민주적 통제 확립으로 이동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의 정보수집과 비밀공작은 법치적, 민주적 통제의 실패로 말미암은 병리적 현상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정원 개혁은  정보기관 내부에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는지, 법령준수에 필요한 내부감찰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회의 예산통제 및 행정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이나 언론집회 등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인권을 부당하게 제약할 위험은 없는지를 종합적, 객관적으로 검토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다. 둘째, 국정원 개혁은 더 이상 내부인사한테 맡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선진국에서 국내공안기관이 부패척결TFT를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났다면 당장 국회나 총리 밑에 국회정보위 소속 국회의원, 전직 고위판사, 법학교수 등 외부전문가로 독립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을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이삼십년 전부터  공안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중심의제로 설정해서 이런 과정을 거쳤다. 미국의 Church 위원회와 Pike 위원회, 캐나다의 McDonald 위원회와 Arar 위원회, 호주의 Flood 위원회, EU의 Venice 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의 부패척결 TFT 운영사실이 드러난 이상 국회는 하루바삐 국정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국정원의 업무수행 전반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전면 검토해서 인권보장에 소홀함이 없는 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곽노현 위원은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22 | 추천: 0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 도법스님의 탁발순례 동행 후기 지난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1주일 간 휴가를 내어 중3인 아들과 함께 도법스님의 탁발순례 강원도 태백일정에 합류하였다. 2004년 3월 1일, 당시 북핵 실험으로 (미국 주도의)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었을 당시, 전쟁을 막기 위해 온몸을 내어던질 사람이 10만 명만 있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생명평화결사’를 조직하여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 시작한 탁발순례 여정은, 이제 농촌을 비롯한 각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 지역 현안이나 고충 등을 경청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을 가지며 전국을 거의 다 돌고, 올해 강원도 지역과 내년 경기 · 서울 지역만을 남기고 있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과 함께 한 시간도 별로 없었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 더더욱 함께 할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방학이 끝나기 전에 모처럼 한 주간 휴가를 내서 아들과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탁발순례에 동행하게 되었다. 한 번 스치듯 지나가기만 했던 태백은 과거 광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최근에는 정선에 카지노가 들어서서 잘 알려진 지방 소도시이다. 한참 석탄이 국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일 당시 이곳 태백지역(정확히는 황지, 철암, 장성, 도계, 사북)의 인구는 13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5만 명 정도라고 한다. 지금은 석탄산업을 대체할 지역경제와 날로 줄어드는 인구 문제가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라는 몸자보를 걸치고 태백시 한복판에 있는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에서 생명평화기원제를 100배 절 명상으로 드리면서 시작된 순례 일정은 이후 아침 100배 절 명상(약 35분 소요)으로 시작하여 하루에 약 40~50리 정도를 걷고, 지역의 기관이나 단체 및 농민들과 만남 등으로 진행되었다. 참회와 서원의 내용이 낭송되는 가운데 처음 올리는 100배의 절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체투지를 통한 ‘하심’이 발심하면서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얼굴 가득하게 되었다.   강원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고 있는 탁발순례단이 22일 한강 발원지 강원 태백 검룡소에서 생명평화기원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태백생명의숲’과 ‘전교조 태백지회’, ‘의제21’ 등의 단체에서 한 주간의 일정과 길 안내 등을 도맡아 주셔서 순례단 일행은 비교적 아주 편안하게 순례를 하였다.(매일 아침 차가운 생수와 간간이 간식거리 등을 준비해 주시는 등 너무 감동적인 대접을 받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100배 명상을 하고 아침은 준비해 갖고 다니는 누룽지를 쑤어서 눌은밥으로 해결하고, 걷다가 점심과 저녁은 일체 주는 대로 먹고 저녁 명상을 한 뒤 정리 시간을 가지고 교회나 성당, 또는 폐교나 단체 사무실 등에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대략 11시 내외. 과히 많이 걷는 것은 아니지만 뙤약볕 속에서 꽤 빡빡한 일정들을 소화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쉴 시간들이 별로 없는 편이어서 제법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도로를 걸을 때는 마주 오는 차량과 마주 대하는 도로 왼 편에서 운전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걸었다. 왕복 2차선 국도는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마주 오는 운전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는 것이 곧 평화의 정신이라고 도법스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의 80% 이상의 차량 운전자나 동승자들이 반응을 보인다. 함께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만면의 미소와 더불어 박수까지 쳐주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히 운전자들과 시선을 마주하며 손을 흔들게 되었고 그 숱한 손 흔드는 일이 결코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소도’와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는 단군 제사단인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 등 그 의미가 자못 깊은 명소들이 의외로 많은 태백이었다. 천제단에서 내려다보이는 비행기 사격장. 매향리 사격장이 없어진 이후 부쩍 비행기 출격이 많아진 것 같다는 ‘태백생명의숲’ 관계자 이야기다. 이 사격장 자리에 있던 마을은 이 일대가 ‘소도’였던 지역으로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핍박을 받으며 지내왔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 또한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천제단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 있는 ‘장군단’은 그들이 독립을 기원하며 수년 동안 몰래 축조하였다는데 일본 패망 3년 전에 마지막으로 독립기원제를 지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옥고를 치른 마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태백 문화원 사무국장의 증언) 그러던 그들이 한국전쟁 후에는 마을을 송두리째 비행기 사격훈련장으로 내주게 되었으니 오랜 기간 핍박과 설움만 받아온 슬픈 마을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는 끝내 보상금 수령을 거부한 이도 있다고 한다. 이 비행기 사격훈련장 때문에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이 산의 야생동물들이 비행기 소음으로 얼마나 몸살을 앓다가 떠났을까? 서학골이라는 데를 잠시 들렀다. 산 정상에서부터 도무지 얼마나 되는 면적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숲을 파헤쳐 온통 누런 상처투성이다. 태백시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공동으로 2~3천억 원을 투자해 골프장과 스키장을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지방 자치단체들이 경제적 목적으로 이처럼 레저단지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하는데 전 국토의 레저단지화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그 수가 지금 계획처럼 늘어나게 된다면 분명 적자에 허덕이다가 문 닫을 곳도 많이 생길 텐데 그때까지의 적자와 투자금액은 어디에서 벌충할 수 있을런지... 결국 지역경제가 더욱 휘청하게 되는 일이 되지는 않을는지.... 풍력발전기로 유명하다는 매봉산 정상엘 올라갔다. 멀리서 볼 때는 산 정상까지 온통 목초지들이 펼쳐져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그게 이 지역의 가장 큰 작물인 배추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순례를 시작하면서부터 이곳이 고랭지배추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배추밭이 생각 밖으로 많은 것에 은근히 놀라기 시작하다가 가파른 산 중턱까지 나무들을 베어 밭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 심하다 싶었다. 그러나 매봉산 정상 가까이까지(약 해발 1,200미터) 100만 평 내외의 배추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거의 경악할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걸까? 백두대간 정상에 대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당국의 몰지각을 비판하는 ‘태백생명의숲’ 사무국장의 안내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 눈은 배추밭을 향하게 된다. 이 배추밭 고랑에는 풀 한포기 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제초제와 농약을 치면 이럴까? 경사가 심한 이 배추밭의 농약들은 또 비가 오면 얼마나 순식간에 하천으로 유입될까?   지난 5월 괴산 감물면내를 지나 농장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순례단이 걷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전날 밤 지역 농민과의 대화의 시간에 도법스님께서 ‘우리가 약 5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100배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못살겠다며 아우성이지 않느냐? 지금처럼 개발과 성장을 부르짖다가 과연 지금보다 100배 잘 살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과연 행복하다고 하겠는가? 외려 더 큰 욕심과 욕망으로 더욱 피폐해지지 않겠는가? 문제는 만족의 기준이 행복을 담보하는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그때 일부 농민들의 반응은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도법스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기는커녕 코웃음 치는 듯했다. 수만 평의 배추밭 경작을 통해 평균 4년에 한 번 대박을 터뜨리면 억대를 만지게 된다는 이들 ‘대농(大農)’들에게 실상사 근처에서 유기농 농사로 많아야 한 달 평균 100만원을 버는 농민들이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그날 그래도 도시로 돈 벌러 나갔다가 다시 귀농한 마을 청년(그래도 50대 초반이다)의 ‘돈 벌자고 도시 생활을 해 보았지만 사람 살 곳이 못되었다. 이제부터 돈을 좇기보다 그저 욕심 안내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자 한다.’라는 말미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면 지나친 농촌에 대한 선입견인지 모르겠다. 하루는 철암어린이도서관엘 갔다. 상근자 두 명과 자원봉사 대학생들, 그리고 밝은 표정의 아이들이 우리를 맞았다. 최근 신축이전한 도서관을 짓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물을 보고 그곳에서 제공한 점심을 맛있게 먹은 다음 우리는 작은 희망을 발견한 부푼 가슴들을 안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날 한강 발원지라는 검룡소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생명평화기원제를 드리며 일주일 간의 태백지역 생명평화순례 일정은 막을 내렸다. 나는 아이와 함께 서울로 향했지만 일행은 이내 다음 구간인 삼척으로 향했다. 한 주간 태백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사실을 확인한 소중한 기회였다. 사람들이 떠나고 젊은이가 지역에서 보란 듯이 정착할 만한 일자리가 잘 안 보이는, 보기에 따라서는 지방 소도시의 척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지역을 사랑하며 잘 지켜내고자 애쓰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기에, 태백지역은 이내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살맛나는 곳이 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미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는 선진국인데도 여전히 대선주자들은 성장과 발전을 통한 선진국 진입을 구호로 외치는 이상한 현실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지만 사회안전망을 비롯한 복지정책, 교육인프라,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정신 등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일진대 좀더 성숙한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할 텐데, 사람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발전 없이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심어놓는 이 사회는 한참 비정상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과 지역 사람들이 더 이상 개발과 발전이라는 끝 모를 성장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속히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다시 한 번 이 염원을 되뇌어본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68 | 추천: 0
호국의 달이었던 6월의 마지막 주에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 노래 가사쯤은 알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나에게 ‘6 · 25의 노래’를 한번 불러 보라고 한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부른 6 · 25의 노래다. 착잡함과 더불어 내가 이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서글프다. 교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온몸이 섬뜩해진다. 조국의 원수들이 누구였던가?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떨어야 할 정도로 그들은 惡 그 이상이었단 말인가. 쫒기는 적의 무리 쫒고 또 쫒다니…… 그렇게 끝까지 쫒아서 무엇을 빛내자는 거였나. 안타깝고 부끄러운 민족의 상잔을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고한 신념으로, 이렇게까지 잔인한 노래로 우리를 세뇌하고 분노의 철창 안에 우리를 가두고 담금질한 그 시대 문인이었던 박두진의 간교한 지식 앞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요즘 뉴스에 빠지지 않는, 학벌 시비와 그 학벌을 앞세워 지식인 양 행세하려고 억지를 부렸던 사람들이 창피한 꼴을 당한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게 무언가? 그 시대를 통과하는 역사 앞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나팔을 불어대는 좋은 학벌의 가짜 지식인이 판을 치고,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노라면 분노와 함께 처연함마저 느낀다.  지난 5월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안내와 설명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돌아보면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당대의 지식인이며 걸출한 건축 설계사였던 ○○○의 악마와 같은 이중적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불의의 수단으로 전락한 지식은 타인의 피와 눈물을 양분 삼아 그 허망한 빛을 더한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 사건으로 시작된 논란은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출처 - 경향신문  이 시대 참 지식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知行合一의 참여와 실천이 따르는 지식인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알고 있다면 침묵하지 말고 느끼지 못한다면 제발 나서지 말아야 한다. 알고 있음에도, 일신의 안위나 세상일의 허무를 핑계 삼아 현실을 외면하는 것 또한 지식인의 옳은 자세는 아닐지다. 그런 의미에서 아는 만큼 행동하고 느낀 만큼 실천하는 시민운동가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지 않겠는가!   최용철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두리미디어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411 | 추천: 0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모두들 하루빨리 협상이 타결되어 더 이상의 희생 없이 남은 사람 모두 무사귀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한 쪽에서는 여러 이유로 피랍자들과 한국 개신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과 가족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순간이고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적어도 한국의 개신교는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을 무력으로 침공하고 한국을 전쟁에 끌어들인 미국은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을 중지하고 아프간의 운명을 아프간 민중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탈레반의 비인도적 행태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투쟁의 목적이 무엇이든 방법도 정당해야 한다. 봉사활동이 목적이었던 무고한 민간인들을 인질로 삼아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평화를 열망하는 종교인들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방인 미국의 요청’ ‘국익’ 운운하며 강대국의 요구에 끌려 다닌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아프간과 이라크 등에 파견한 우리 군을 철수하고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해야 한다.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이 납치의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 대상은 대부분 개신교의 해외선교사나 자원봉사를 위한 단기방문자들이었다. 국내에서 “불신지옥”을 외치며 거리에서 폭력적으로 전도하는 일부 개신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문제는 한국교회의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선교활동 형태에 있다. 상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하는 사람의 열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방적 교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 신념을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야 당연한 욕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관계에서도 나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대의 조건을 고려하듯이 해외선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인데 한국 개신교의 경우 현지인을 역사와 문화를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선교 대상으로만 여겨 왔다는 것이다.     출처 - 한겨레21  한국 개신교의 해외선교사는 지난 2006년 말 기준으로 173개국에서 1만 6천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어떤 목사는 해외선교사 파송 1위 국가가 목표라고도 한다. 세속과는 다른 권위와 질서를 이야기하는 기독교마저 성장주의 물량주의적인 한국인의 습성으로 물들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타종교와 타문화에 대한 배려나 이해 없이 경쟁적으로 해외로 나섰기 때문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피랍자들과 같은 단기선교는 더욱 문제일 수 있다. 분당 샘물교회 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형교회들이 지금도 위험한 곳에 청년들을 단기선교라는 명목으로 보내고 있다. 순수한 봉사가 목적이라고 하지만, 이번 피랍자들의 경우만 보아도 이동시간을 빼면 5-6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세 군데 지역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도대체 무슨 효과를 기대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효과와 무관하게 단기선교를 강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부 대형교회의 성직자들이 교회를 위해 무엇인가 큰일을 하고 있음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작년 8월에는 한국 개신교회가 이번 납치사건이 벌어진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서 한국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했던 ‘2006 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라는 대규모 종교집회가 단적인 예이다. 결국 이슬람 성직자들의 반발과 신변 안전 문제로 한국인 신자 1,200여 명이 출국 명령을 당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말았다.     상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하는 사람의 열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선교활동 형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출처 - 세계일보  물론 분쟁지역이야말로 어느 곳보다 봉사와 구호활동이 절실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지인의 삶과 함께 하려는 봉사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토록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멀리 해외로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 주변에서 선교와 봉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이웃, 거리에 나앉은 노숙인,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노인들에게는 어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잠시 언급한 것처럼 세계 유례가 없는 성장가도를 치달아 온 한국 개신교는 무한경쟁 속에서 성공과 성장이 곧 진리라는 자본주의 속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랜 기독교 역사 속에서 소중한 가치로 여겨져 온 겸손과 절제와 헌신 등은 설 자리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강해지는 법, 성공하는 법, 남을 이기는 법을 교회에서 가르치는 지경이다. 어찌 이러한 가운데에서 타종교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경쟁 속에서 도태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가능했겠는가. 한국 개신교는 이제 대답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선교’라는 것이 과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함께 제3세계에 전파되었던 형태의 정복주의적인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경계를 넘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평화를 위해 하나 되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부디 참다운 선교는 남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기 위한 신앙의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그래서 배타성을 극복하고 한국사회와 해외 선교지의 문화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타종교와도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인류사회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집단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29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