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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만화책보다 만화가가 좋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1:08
조회
341

여준민/ 인권연대 회원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이런 날은 ‘추워야 겨울이지’ 하면서도, 좀처럼 따뜻한 방에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넘기며 깔깔거리고 싶은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거리로 나섰다. 만화 그리는 사람이 만화책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와 상상이 내 몸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발걸음도 가볍고 칼바람마저 상쾌하다. 일을 핑계로 평소 사모(?)해오던 사람과 가까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여간해선 오지 않는 행운! 오늘 같은 날, 난 일과 놀이의 일체감, 노동해방의 참 맛을 느낀다.




interview03s-park.jpg 만화에 대한 편견을 버려!
 솔직히 말하자면 만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어려서 오빠들이 빌려다보는 야구, 권투가 주였던 만화책들을, 소외당하기 싫어 몇 권 읽어본 것이 전부고, 만화방이 주무대였던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을 내 인생의 영화로 등극시킬 정도로 좋아하지만 한 번도 가 본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나를 바꿔놓았다. 매일 아침 신문을 펼쳐들면, ‘이번에는 또 어떤 주제로 누구를 넉아웃 시켰을까, 수많은 편견의 덩어리를 어떻게 쪼개고 부수었을까, 가슴 저미는 안타까움을 어떻게 서로 어루만져주고 있는가…’ 그것들을 찾기 위해 신문 아래쪽 네모 칸을 제일 먼저 찾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난 유치하고 시간 때우기용이라고 생각했던 ‘만화’란 예술의 장르를 - 사랑하는 후배 강풀(강도영)과 미아자키 하야오 같은 사람들의 덕도 있겠지만 -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의미 있는 작업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그 한가운데 박재동(52세) 화백이 있었다.


인권연대, 스승과 제자의 만남을 주선하다


 한겨레 그림판은 참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는 확실히 국민들의 가슴과 머리에 각인된 사람이다. 간간이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얼마 전 KBS의 동요세상에 출연해 고운 가성으로 섬집아기를 부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나와 오창익 국장이 그 프로를 보았다고 하니 “나 잘 하지 않았니? 내가 별명이 동요대왕이었거든. 한 번 들은 동요는 거의 잊지 않고 2,3절을 다 외울 정도였지.” 하며 자만인지 자부심인지 모를 당당한 표정이다. 그러나 목소리 하면 누구나 알아주는 오 국장이 자만심 가득 찬 바리톤 목소리로 “에이 그리 잘하시는 것 같진 않던데요?”하며 치고 받는다. ‘아니 제자가 어찌 스승에게 감히?’란 생각이 일순간 들었지만, 박재동 화백이 얼른 꼬리를 내렸다. “그래? 아니 잘한다고 하길래, 난 정말 잘하는 줄 알았지. 나 기 안죽이려고 그랬구나.” 스승의 넓은 아량이 제자의 무례함을 슬며시 덮어준다. 인권연대가 찾아간다고 하니, 인터뷰에 능숙한 사람답게 다양한 인권을 주제로 먼저 말들을 꺼내놓는 솜씨 있는 배려를 발휘하는 박재동 화백. 십이지궤양이 있어 술, 담배를 거의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약간의 병이 몸에 대한 주의집중을 불러와 건강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이 앞에서, 그래도 제자 오 국장은 연실 줄담배의 풍경을 자아낸다. 존재감이 중요하다며, 작지만 옹골찬 조직활동이 자랑스럽다며, 스승은 마냥 제자를 대견해 한다.


악동 같은 교사 박재동


 박재동 화백과 오 국장은 중경고등학교 미술교사 재직시절에 만난 스승과 제자 사이다. 오 국장이 천주교 인권위 활동을 할 당시 박재동 화백을 찾아가 제자라고 인사를 드리고 인권연대를 만들자 스승은 기꺼이 제자의 활동에 힘을 더해 주었다.


 오 국장의 기억에 의하면, 긴 머리에 고무신 신고 다닌 점이 특이했지만 바로 전 휘문고등학교에서 문제교사로 찍혀 왔을 때였기 때문에 그다지 튀지 않는 조용한 교사로 남아있다.


 하지만 박재동 화백은 그 시절 운동장 조회 시간에 맨 뒤에 학생에게 담배를 빌려달라고 했던 일, 미술실에 들어와 학생들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했더니 차마 선생님에게 담배를 건네지는 못했고, 알아서 석고상 밑을 뒤져 찾아낸 일(자기가 한 방식 그대로였기 때문이란다)을 회상하며 은근한 악동기질이 있었음을 감추지 못한다. 교사시절의 남다름을 제자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특이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시험점수란 것을 학생들에게 스스로 매겨오도록 한 적도 있고-신기하게도 그게 대부분 자신이 평가한 것과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어떤 학생은 A라고 했다가 나중에 B가 맞는 것 같다며 고쳐달라고 한 적도 있단다- 학교 주변 쓰레기 매립장에서 미(美)를 찾아 그리라고도 했단다. 네모 칸 안에 종이비행기를 그리는 시험도 있었는데, 최고점수는 구멍을 뚫어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학생에게 돌아갔다. 장난기인지 억눌린 청년의 기상인지 모르겠지만 학생들과 함께 바로 옆 여학교까지 종이비행기 접어 날리기를 한 적도 있다는데,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풍경이 그려지기도 했다. 학창시절 저런 스승을 만났다면… 하는 생각에 괜한 시기심과 질투가 느껴졌다.


질투는 나의 힘


 질투. 그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호기심인 것 같다. “난 애들 같아서 어떤 사람이 뭘 잘 하면 나도 하고 싶어져.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오래 살 것 같기도 하지.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그림공부도 더 하고 싶고. 젊었을 때는 왜 생각만 하고 손을 안 움직였는지 몰라. 좀 건방지고 노력을 덜 하기도 했지.” 몇 해 전 실크로드 기행을 만화책으로 엮어낸 그였는데, 그는 지난 해 이라크도 가고 싶었단다. 하고 싶은 일들이 무궁무진한 청년 같았다. 그래서 나이 차별을 하는 건 아니지만 50을 넘긴 사람이 ‘쉼’과 ‘되돌아보기’보다는 계속 앞만 보고 가겠다고 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너무 바쁘고 힘들다고 투정만 부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지는데, 그가 갑자기 묻기 어려워 고심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스스로 이어갔다.


 “난 게으르면서 부지런한 사람인데, 하기 싫은 건 어떻게 해봐도 잘 움직여지지 않지만, 하고 싶은 것이 생겨 뭔가 하나에 매달리면 끝장을 봐야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도 많이 변했지. 실은 이라크에도 다녀오고 싶었어. 직접 보고 느끼고 표현하고 싶었지. 하지만 사무실 도 운영해야 하고 사람들과 함께 작품 하는 일에 매어 있으니까 쉽지 않지. 그래도 언젠가는 할꺼야. 이제 서서히 준비해야지.” 대대적인 국민주 모금을 했던 작품 ‘오돌또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박재동, 숨을 고르고 있다
 그가 더 잘 알겠지만,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 10년 전 제주 4.3항쟁을 배경으로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겠다며 한겨레 그림판을 떠나던 그 때를. 더구나 국민주 모금형식으로 출발했고, 10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 사람들은 언제 그 혼이 담긴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인지 사뭇 궁금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내년부터 시작된단다.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 돈을 마련하지 못해서가 맞지”라고 말할 정도로 재정부분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중요한 건 시나리오라고 한다. 섣불리 접근해 어중간한 작품이 되어서는 안되며, 만화는 ‘재미있다’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아야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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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는 현실을 인정하는 단계였던 것이다. 함께 힘든 시기 겪으며 작업했던 사람들의 밥벌이는 현실이고, 그들이 있어야만 그이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왜 이렇게 되었나’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단다. 결코 재정문제가 아니더라도 작품 하나하나에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결국 마지막에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늦더라도 철저하고 내용으로 승부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해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해 국가인권위와 6명의 만화가와 6가지 인권을 주제로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청소년 인권을 맡았고 제목은 ‘사람이 되어라’란다. 선생만 인간이고 학생은 모두 고릴라인데 대학에 가야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내용- 올해는 어린이용 삼국유사를 출판하기로 해서 작업이 한창이란다. 깊은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한  박재동 화백. 10시경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긴 머리 휘날리며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 풍경이 꼭 만화의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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