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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봄날, 이사할 계획 (한상봉의 세상 사는 이야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1:11
조회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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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농부, 예술심리치료사


 어제는 햇살이 가득한 가운데 눈이 내렸습니다. 이미 자신의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봄과 이승의 산천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겨울이 못내 아쉬운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겨울을 춥게 보낸 사람들이나 겨우내 웅크리고 굴속에서 지냈던 짐승들이야 바야흐로 힘을 얻어가는 봄을 환영하겠지만, 겨울 동안 입을 닫고 지내면서 세계와 일상을 명상하는데 길들여졌던 목숨들은 서둘러 입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에 당혹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정작 겨울에도 생명이란 생명이 생명의 순환을 거듭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면, 이게 다 부질없는 사람의 편견일 것입니다. 짱짱하게 얼어버린 저수지의 얼음장 밑에서 속 깊은 물길과 물길이 서로 부딪치며 고함치는 우르릉 소리를 듣는 게 무섭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짐승과 초목들은 최소한의 방비책을 마련하고 내부에선 끊임없이 살아서 소리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겉모습이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는 더욱 두렵게 느끼는 것이지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약속을

 자연은 앙탈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겨울도 봄도 죄다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요. 다만 인간의 마음이 제 상태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입니다. 농부들에게 봄은 노동의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고, 그 노동의 결과로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을 것입니다. 산천초목은 사람의 무의식처럼 잠겨있던 자신의 생명력을 드러내 생육번성 할 것입니다. 봄이 되면 ‘새롭다’하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마당에선 거친 막대기 같던 오갈피 나뭇가지에도 연하고 순한 새잎이 돋을 것입니다. 그 잎사귀가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흔들릴 때 ‘온 세상이 새롭다’ 말하게 됩니다.

 이 봄볕을 따라서 우리는 삶의 자리를 옮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무주 산골 광대정에서 살았던 지난 5년 동안의 삶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약속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지요. 처음 귀농할 때는 이곳에서 십년은 ‘버티어’ 보리라 생각했지만, 한 땅에서 가다듬는 우리의 호흡이 짧은 탓일 수도 있겠고, 이곳을 일종의 디딤돌 같은 땅이라 생각하는 탓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게 공간적 거리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과의 거리가 좀 더 가까운 곳이길 바랍니다. 좀 더 쉽게 다중(多衆)에게 접근할 수 있는 곳, 그들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의 삶속으로 진입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기다리고 있길 바랍니다.

 자연에 깃을 치고 살면서도 여전히 소중한 ‘사람들’에게로 가고, 또한 그들과 나눌 부분이 좀 더 많은 곳을 기대합니다.

봄이 오면 우리의 영혼도 환해지기를

 아마도 지난 3년 동안 공부해 왔던 ‘예술심리치료’라는 영역이 그들과 저를 맺어주는 구체적인 다리가 되어줄 듯 합니다. 실상 운동도 치유의 연장일 테지요. 우리의 삶이 치유받기를 청하듯이, 우리 사회도 치유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치유됨 속에서 세상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상처받은’ 노동자의 아픔은 구조적일뿐더러 심리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애를 통하여 노동자 스스로 상처받을 뿐 아니라, 그 가족들 역시 상처받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몸으로 투쟁하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공격성은 자신의 영혼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겠지요. 결국 속사람이 해방되기를 기대하는 게 ‘예술치료’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다지고 있습니다. 심리치료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에만 그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정작 사회적 약자가 심리적 약자가 되는 게 세상 이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천에 봄이 오면, 세상은 좀 더 밝아지고, 우리의 영혼도 더욱 환해지기를, 그리고 우리가 옮기는 터전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작지만 튼튼한 전진기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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