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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노래꾼에서 지혜로운 살림꾼으로, 회원 김미영씨 (인권연대가 만난 사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1:11
조회
453
interview08-kim3.jpg

여준민/ 인권연대 회원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두 아이를 둔 주부이며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고 인권연대 회원이라는 것뿐이었는데 시간 잡기는 만만치 않았다. 오후에 뭔가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인지 오전시간을 고집했는데, 같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요즘이기에 ‘전업주부가 바쁜 일이 뭐가 있을까?’하는 부정적인 편견보다는 뭔가 다른 꿍꿍이를 도모하는 사람일 것 같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그래서 ‘전업주부’와 ‘사회활동 하는 여성’을 딱 갈라


놓은 것을 근대화의 부산물이라 생각해 못마땅하게 생각해 온 터라, 오전 10시란 시간은 기꺼이 할애할만한 시간이었다. 물론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번 달 인권연대가 만난 사람의 주인공은 지혜로운 살림꾼 김미영(42세)씨다.


초대가수로 나왔다가 회원으로 가입


 “어, 여자 분이시네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말을 그녀에게도 들었다. “이름만 보고는 남자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내가 일했던 장애인 전문잡지 월간 [함께걸음]의 오래된 독자였던 것이다. 캬! 첫 순간부터 뭔가 잘 풀릴 것 같다는 안도감과 반가움이 그녀와의 즐거운 수다를 예견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우린 벽 없는 대화를 술술 풀어갔다.

  “인권연대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후원을 하고 있어요. 많은 소식지들을 보는데, 인권연대 소식지는 소박하고 두껍지 않아 금방 볼 수 있으니 손이 갈 수 밖예요. 다른 두꺼운 것들은 한번 훑어보고 나중에 봐야지 하면서 결국 놓치고 마는데….”

 올 해부터 새롭게 만든 ‘인권연대가 만난 사람’의 코너를 보아 알고 있지만, 왜 자신에게 연락이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하지만 원칙은 없다. 다만 그때그때 다를 뿐인데, 허창영 활동가가 궁금증을 풀어준다.

 “3년 전 김경환씨 후원의 밤 행사 때 초대가수로 나와 노래 부르신 것이 아마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 같아요. 거의 환상이었다고 하던데요? 준민 선배의 예견이 맞았어요. 학교 노래패 출신이시래요.”


지식보다는 삶의 지혜로 산다는 그녀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민중가요의 대부라 하는 김호철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노래운동의 역사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고대 노래얼과 김광석, 안치환 등이 활동했던 전문 노래단 ‘새벽’ 출신이었다.

 “성공회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는데, 친구 남편이자 인권연대 운영위원인 김대원 신부님이 추천을 하셨죠. 그때 공연이 인연이 되어 인권연대 회원이 되고….” 초대가수로 초청 받아 자발적으로 회원에 가입한 경우다. 가끔 단체 활동 해볼만하다는 생각은 이런 사람들 때문인데, 그녀가 그랬다.

interview04-kim3.jpg 그녀 꿈을 이루다 ‘엄마’
 하지만 그녀는 전문적으로 노래를 하는 가수는 아니다. 실력은 갖고 있지만 지금은 그저 두 아이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모시고(이 부분에서는 서로 공감했지만 두 어르신께서 자식들을 거둬들였다는 게 적절할 듯 싶다) 사는, 가정을 삶터로 일터로 갖고 있는 살림꾼이다.

 전공이 무엇이었냐? 배운 거 써먹을 생각 안했냐? 부모님이 서운해하시지는 않냐? 등등의 질문이 오갔지만, 한시의 지체함도 없이 답변이 쏟아져 나온다.
 “영어교육을 공부했지만 전공이라 할 것도 없지요. 배운 게 없는데 어떻게 써먹어요? 그건 저희 엄마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고, 제가 83학번인데 그 당시에 공부 안했죠, 물론 노래를 하기는 했지만 그건 언제나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구요. 학교 졸업 후 직업을 갖기 전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아이들 양육하며 살아오고 있죠. 직업을 가질 생각은 안했어요. 제 꿈은 원래 엄마 되는거였거든요.”


‘내’아이들에서 ‘우리’아이들로


 하지만 그녀는 자기 아이들만 키우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을 함께,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동네’를 자신의 확실한 근거지로 자리매김 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무렵이 되고 보니 출구로 나올 수 있는 계단이 하나밖에 없어 화재나 사고시 대처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게다가 영어공부 시킨다고 하고. 영 개운치 않아 뜻맞는 엄마들과 함께 품앗이 유치원을 만들었죠.”

 아이가 6살이 될 때까지 바깥출입은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그녀가 나서야 될 때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원 보내고 안보내고 하는 문제가 중요할 것도 없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보낼만한 유치원 하나 없다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다고 한다.

 “집 지하에 방을 두 개 만들어 공동육아 비슷하게 한 거죠. 7가구가. 택견, 풍물 등 엄마들과 함께 알차게 노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현미밥, 채소 중심의 식단을 짜서 함께 생활한 거예요. 수화도 배웠어요. 수화도 또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가 들어온 적이 있는데 함께 생활하기가 잘 안되었다며 당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늙었나봐요. 지금 그 때 일지를 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일들을 했나 재밌어요. 원래 소극적이고 생각만 많은 사람이라 실천력이 부족한데, 말을 하면 주변에서 먼저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실현할 수 있었죠. 공동체란 것이 마음을 맞춰야 하는 것이라 가끔 삐그덕거리고 힘겨워도 서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죠. 부족한 면을 서로 메워주니까요.”

 그녀와 함께 사는 사람은 지금 성공회대에서 평화교육,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 고병헌 교수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소박하면서도 자본과 부당한 제도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늦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인데, 그이는 공을 타인과 공동체로 돌리고 있었다. 지금 품앗이 유치원은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발전적 해체를 거듭해 동네 공부방으로 이어가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나 행복한 그녀


 참, 고병헌 교수와는 그가 총학생회장이었고 그이가 신입생이었던 때 만났다고 한다. 당시 동아리방에 누군가를 찾아왔다가 김미영씨를 보고 “노래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고 은근히 관심 아닌 듯한 추파를 던졌는데, 한마디로 ‘흥! 뭐야?’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그녀의 집인 인천까지 가는 지하철에서 연애를 하며, 부부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대놓고 연애하기 힘든 때였기 때문에 맘 고생도 많았다고 하고 다른 사람과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해 억울(?)하다고도 말하지만 여전히 웃는 얼굴로 생글생글이다. 아줌마로 보기에는 참 앳된 모습이다.

 중3인 딸과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친구처럼 지내고 있단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예민해져 있고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풀무학교 같은 대안학교를 추천하기도 하지만, 매사에 “내가 왜?”라고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어, 머리 굴려 답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나? “부모가 아이들 이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예요.”라고 말하지만 짐짓 그 모습도 행복 자체로 전해진다.


지식보다 삶의 지혜로 살아가는


 어렸을 적 힘든 집안 살림 때문에 상고를 가서 은행에 취업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극구 말리며 “너의 인생을 살아라”고 이야기 해주신 그녀의 어머니(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물어보지 않아도 같은 여성으로 이해하고도 남는 순간이었다), 고 교수와 가끔 냉전인 경우에는 “아빠가 말발이 쌔서 그렇지 엄마가 맞아”라고 편들어 주는 딸, “니 잘못 아니다, 내 잘못이야”라며 솔직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어머니.

 그래서 그이는 직장에서의 성차별 같은 것을 경험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성으로 태어나 경험하는 것들이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기에 좋다며, 다시 태어나도 여성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교정교열, 자연치료요법, 집짓기, 우리 음악, 양육 등 매사에 소홀히 흘려보내는 것 없이 우리 모두가 풍요로워 질 수 있는 일상의 것들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는데, 한 분야에서 지식을 쌓는 일보다 삶의 경험을 통해서나 나올 수 있는 지혜로움을 소중히 여기는 소박함과 겸손함이 온전히 전해진다.

 돌아오면서…, 감히 그녀 따라하기를 시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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