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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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윤미/ 국민대 학생 KBS의 제야 방송이 시위장면을 의도적으로 은폐, 조작하면서 말이 많자, 당시 프로그램의 제작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시위를 방송하려고 중계하러 나간 것은 아니다. 사실은 우리 행사가 방해받은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당시 시위대의 구호와 피켓이 생방송을 방해한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방송수칙이란 무엇보다 깨끗하고 사고 없는 방송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방송과 그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에 충실하겠다는 태도를 어찌 쉽게 탓하랴. 어차피 미디어라는 것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을 보여줄지를 선택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미디어의 힘이자 권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여주지 않았나’ 프레임 안의 내용만이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 것들에 늘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미디어는 항상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보여지는 것보다 보여지지 않은 것들이 카메라의 시선을 더 잘 보여준다. 오히려 보여지지 않은 것들을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다. 나는 당시 KBS의 ‘태도’에서 그들의 ‘시선’을 본다. 시위대의 구호가 누군가에게는 귀담아들어야 할 민중들의 분노를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생방송을 망치는 ‘사고’였다. 작년 한해 쇠고기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고 연말마저 법안 상정 문제로 전기톱에 소화기로 싸움을 벌이는 국회의 모습은 국민들을 불쾌하게 했다. 이런 정국인데 제야 방송 당시 시위대의 구호를 소음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상황에 가장 민감해야 할 언론의 태도와는 영 맞지 않다.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방송무대 위에 뛰어든 방해자와 같은 취급을 한다는 것은 현 사태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어리석음을 보여줄 뿐이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본다. 과연 방해자와 같은 취급을 한 것일까?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가려버린 건 아닐까. 언론 수난시대다.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으로 인해 정부에 치이고 공영방송위기에 국민들도 예민하다. 국민들은 비판적 지지를 한다. 지지를 하면서도 잘못하면 크게 질타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그래서 기회다. 원하면 누구나 정보 생산자가 될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주류 미디어인 언론은 그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위기다. 이 위기 앞에서 오히려 언론의 본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언론은 취약해진 역할을 새로이 확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제나 권력에 포획되지 않는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언론 투쟁 목표의 핵심일 수밖에.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주류 미디어 언론은 오히려 무가치의 길로 갈 것이다. 김수영은 ‘창작자유의 조건’이란 글에서 “적어도 언론 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 자유가 있다고’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 된다.” 했다. 곧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입맛대로 검열할 것이라는 예상은 지나친 것‘이라 할지라도 지나침이 없다. 50년대 작가가 쓴 이 글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 다만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입막음이 있던 그때와 다르게 ’언론법은 민생법‘이라는 경제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성장은 대부분이 바라는 욕망이다. 의심하지 않고 포획되는 순간 언론은 언론이 아니게 될 것이다. 물론 언론의 자유에서 말하는 이 자유가 제 멋대로를 뜻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쉽게 경제의 논리에 포섭되므로.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용되는 자유는 쉽게 오용된다. 돈이 가장 강력한 척도인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돈 있는 자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누구나 체감한다. 그래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가 만들어내는 계급과 위계마저도 비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이 그런 역할에 앞장서고 힘없는 목소리들에 목소리를 입혀 주어야 할 일이다. 타종 왜곡방송 논란이 불거진 KBS 1TV '가는 해 오는 해'. 사진 출처 - 마이데일리 불현듯 대학방송기자 시절 떠올라 대학생인 나는 언론의 자유하면 학교 방송국 기자 활동이 떠오른다. 아프다. 부끄럽다. 누군가는 ‘모르는 것이 많은 학생에 대한 가르침이야’라고 토닥이지만 실지 그것은 명백한 검열이었다. 대학 언론의 위기라는 말이 많은데 그 원인 중 하나가 학교 당국의 지나친 검열로 인해 말 그대로 대학의 ‘부속’ 언론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검열을 받는 자가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며 또 얼마나 쉽게 그걸 내면화하는지 안다. 대학생 기자였던 내가 이러할진대 실전에서 뛰는 기자들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등록금 관련 보도를 할 당시 멘트를 수없이 고쳐야 했다. 교수의 권유로 내보내지 못한 방송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열 때문에 복잡해질 것 같은 주제는 피해가는 내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충격으로 남는 기억 하나는, 멘트를 결재 받을 때 ‘대학의 주인으로서 학생은’ 이라는 문구를 빨간 동그라미로 꽁꽁 싸서는 문장 밖으로 빼내며,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야? 라고 묻던 누군가의 그 음성과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난 몇 주에 걸쳐 멘트를 계속 수정해야 했고 결국 남은 글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논쟁될 부분이 없는 앙상한 몇 가지 사실들뿐이었다. 기계적 중립성을 강요당하면서도 내 주장을 힘껏 하지 못했던 그 무력한 내 입을 아직 부끄러워한다. 나는 대체 언론보도는 무엇이냐고 수없이 반문하며 소심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원래 그런 거지’라고 자위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대학생기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위태로워 했다. 언론은 위기다. 그리고 기회다. 주류 미디어인 언론에 대한 불신과 목마름을 느끼는 국민들에 의해 이미 제야 행사의 보여 지지 않은 장면들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언론이라 불리어 왔던 언론들은 과연 어떤 제 역할을 찾아갈 것인가. 여전히 그 힘과 그 중요성을 믿는 사람들은 정부의 미디어 악법 개정에 투쟁하고 지지한다. 나 역시 언론의 자유와 공영성을 침해하는 것들에 반대하며 싸우는 자들을 지지하고 지켜볼 것이다. 언론의 목소리를 들어줄 ‘귀’는 바로 이곳에 있다. 나는 언제 언론의 심장이 가장 뜨겁게 뛰는지 알고 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26 | 추천: 0
체험학습 허락이 성추행보다 더 나쁜 한국 사회를 고발한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16일 오후, 결국 서울시교육청이 7명의 교사에게 파면·해임을 최종 통보했다. 그리고 학교 교장들이 17일부터는 학교에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 학생들과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이 없는 빈 교실에서 쓸쓸히 겨울방학을 맞이해야만 한다. 지난주에 서울시교육청 앞을 두 번 갔었다.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이 ‘일제고사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던 7명의 교사들에게 파면·해임 중징계를 내린 후, 교육청 앞에 철야농성장이 마련되었다. 매서운 겨울 날씨 속에 새벽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천막을 설치할 수 없어 이동용 난로, 은박지 깔개, 무릎 위 침낭이 전부였다. 파면·해임의 찬바람 속에서 관련 교사들은 다시 한 번 겨울의 칼바람과 싸우고 있었다. 7명의 교사 중 2명의 교사를 알고 지냈다. 이 중 한 여교사는 나와 목소리가 비슷해 형, 동생 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일요일, 이 교사의 제자들이 찾아왔다.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한 손에는 직접 제작한 ‘표현의 자유권’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교육청 앞에서 함께 농성장을 지켰다. 얼마 후, 선생님이 서대문역까지 아이들을 바래다주었다. “오늘 추운데, 와줘서 고마워~” “...” 아이들이 말을 잘 잇지 못한다. 그리고 슬픈 목소리로 말을 해본다. “선생님~ 또 올게요~” 여교사는 아이들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서로 침묵의 포옹을 한다. “부모님 걱정하시고, 날씨도 추우니까 집에 빨리 들어가야 돼~”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서로 손을 흔든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마음이 아팠다.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있는 선생님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 파면·해임이 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슨 꿈을 꾸며 살 수 있을까? 이 아이들에게 ‘정의’를 말하는 어른 중의 한 사람으로서 두려움이 앞선다. 다시 교육청 농성장 바닥에 앉았다. “OOO쌤~ 안 추워?” “모자 쓰고 있으니까 안 추워~” 방한용 토끼모자를 쓰고 있는 OOO 선생님이 환하게 웃는다.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처음에는 화를 내셨지.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많이 추우니까 따뜻한 옷 사 입으라고 돈도 주셨어~ 하하하” 오랜만에 엄마가 주신 용돈(?)에 밝게 웃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어제 스무 분이 넘는 학부모님들이 모임을 하셨고, 날 초대했어. 그리고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더라~” 말하는 동안 OOO 교사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계속 이어졌다. 차가운 아스팔트와 매서운 겨울바람의 추위도 잊혀진 얼굴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0월 실시된 초·중학교 '일제고사' 당시 학생들의 야외체험학습을 허락한 전교조 소속 공립교사 7명에 대해 중징계(3명 파면, 4명 해임)를 결정한 가운데, 지난11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앞에서 열린 징계 철회 및 공정택 교육감 퇴진 촉구 기자회견에서 파면통보를 받은 정상용 교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7월 선거에서 선거비의 약 80% 가량인 18억여 원을 학원 및 사학 관계자, 급식업자 등에게서 빌리거나 후원받았다. 그러함에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눈 가리고 아웅식 수사만 펼쳐지고 있다. 더불어 서울시교육청이 이전에 성추행 및 촌지 교사에게는 3개월 정직 및 감봉이라는 경징계만 내렸는데, 이번 파면·해임과는 형평성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결국 이번 중징계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의 날인 12월 10일에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현 정권 비판에 따른 보복성징계를 내린 암울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었다. 암울한 한국사회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민들 잘 살게 해주는 정책이라고 하며 부자 감세·대기업 규제 완화 등의 꼼수정책 구현, 건국60주년 기념 영상에 ‘4.19데모’ 라고 헌법 유린, 일본 우익의 교과서 개악의 논리와 똑같이 근현대사 왜곡·강제 집행, 대운하 준비단계인 4대강 사업 예산 증액 등의 2009년도 예산안 단독 처리, 남북관계 파탄, 언론 통제 등 헤아릴 수 없는 위기이다. 최근에 현대리서치와 경향신문의 설문에 의하면 63%가 민주주의가 후퇴되었다고 말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25%), 정부(22%), 한나라당(14%), 야당(8%) 순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결국 20여 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쌓아왔던 절차적 민주주의는 다시금 후퇴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기관이 저질러왔던 잘못을 밝히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과 보상을 병행하였다. 그러나 올 해 아직 많은 과거사가 해결되지도 못한 채 여러 과거사위원회가 폐지되었고, 이명박 정부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후퇴와 위기가 드러났다. 이는 결국 훗날 불편한 진실의 또 다른 과거사를 양산한 것이다. 2008년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내일의 또 다른 과거사로 판을 치고 있다. 몇 년 후, 혹은 몇 십 년 후에 우리는 또 다시 오늘의 어두운 민주주의의 후퇴를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할지 모른다. 지난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과거 권위주의 시절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과 관련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미래를 향하여 새로 출발하려면 먼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도덕적 용기와 자기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이제 곧 파면·해임교사들의 소청심사 청구와 행정소송이 진행될 전망이다. 더불어 다가오는 23일에도 학부모, 청소년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교사들이 이를 허락하고자 하는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이 관련 교사들을 중징계한다고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과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았다. 이명박 권위주의 정부의 전교조 교사 파면·해임의 보복성 징계라는 불편한 진실이 훗날 과거사 청산으로 등장하지 않는 판결을 기대해본다. 더 이상 과거사로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는 미래사가 생겨서는 절대 안 된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38 | 추천: 0
-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등 종교계 설립 사립대학 사례를 보면서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종교계 관련 언론 기사를 보면, 참 좋은 일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만 포기의 김장김치를 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한 집안 김장도 제대로 함께 못해 구박당하는 처지에서 보면 더욱 존경스럽다.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종교계지만, 그래도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나눈 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종교지도자가 직접 나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하루 일정을 내어 몸으로 봉사를 하고, 성심 성의껏 낮은 자세를 보여준다는 것은 흐뭇하다. 비록, 단 하루 언론에 비쳐지는 ‘쇼’라고 치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다. 수십 년 전 공부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시절에 사립학교를 세워 근대교육을 일구어준 종교지도자들의 정신은 그래서 존경스럽다. 그러나 이런 고귀한 정신을 갉아 먹는 일부 사례들이 있어 안타깝다. 특히, 학교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종교계 설립 대학에서 일어나는 합법을 앞세운 소송방식의 처리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강남대학교는 신학교로 출발해 복지관련 계통에서 주목받아온 수도권 인근에서 급성장한 종합대학이다. 학교 측은 ‘이찬수 교수’에 대한 교육부 소청심사위의 결정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하였고 최근 강남대 패소가 확정되었다. 이제 강남대 스스로가 답할 차례인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 강남대의 당시 교목실장 등 종교지도자들은 합법이라는 괴물을 앞세워 총장, 이사장에게 승소를 확신했다고도 한다. 사실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다들 잊어버린 한 교수의 사례이지만, 인권 종교관련 시민단체들은 대책위까지 구성하고 계속 주장해 왔다. 학교 측은 소송으로 시간을 끌다 제풀에 지쳐 포기하게 하거나 보상금으로 대충 덮어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강남대에서 부당하게 해직되었던 이찬수 교수는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하였지만 아직 복직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 교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강좌를 진행하였다. 다른 학교의 사례를 보아도 보통 힘 있는 종교사학이 쓰는 방법은 법정 소송이다. 법대로 해 나갈 테니 법정에서 다퉈보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종교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종교사학에서 이런 합법이라는 괴물을 이용하고 있다. 어느 사학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든다는 대형 법무법인에게 소송을 맡기거나 전관예우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한다. 막대한 재력과 대학이라는 인맥을 갖고 대응하며, 여기에 상당한 종교적 결집력과 맹목성도 결합되어 위력을 발휘하려 하였다. 목사님이라는 지위를 가진 강남대와 관련된 종교지도자들은 반성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이다. 또한 총장이면서 신실한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천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학력위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먼저 고백한 사람과 끝까지 숨기려한 사람 어떤 사회지도자가 대중의 심판을 받았는지 곱씹어보아야 한다. 내일 강남대 홈페이지에 이찬수 교수가 복직되고 자신의 기본권과 명예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강남대를 지켜보던 종교계 등 시민단체에게 또 하나의 공부할 사례가 생겼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원생 35명이 제적을 당했다. 전체 대학원생 150여 명 가운데 5분의 1에 해당한다. 학생들의 종교는 다양하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무종교인 학생이 절반정도, 불교를 믿는 학생과 가톨릭과 기독교학생이 반반으로 정부 통계청 인구조사 상황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학 분규가 일어난 대학에서 등록금 미납을 이유로 석·박사 과정 학생이 제적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조계종 스님이자 중앙종회(국회의원 격)까지 지낸 스님이 학교법인 이사장인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사태를 불교계에 알리기 위해 서울 조계사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불교계 언론들은 이 대학의 복잡한 사정은 종교계의 재산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대학 설립자이기도 한 전 이사장(덕해 스님)과 그의 제자(상좌)인 현 이사장(지욱 스님)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전 이사장과 가까운 총장을 현 이사장이 해임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히 현 이사장 지욱스님 측은 설립자인 은사가 판단력이 흐려져서 친인척들이 개입하여 불교대학을 다른 대학에 팔아넘기려 했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학교를 지키려 총장을 해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이사회 구성원 자신이 주지로 있는 사찰신도회 회장 및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인 중진 스님을 이사로 새로 영입하는 등 측근으로 이사회 구성을 모두 마친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들에 대한 해임 및 징계를 위해 학생들부터 ‘기강’을 잡기위한 조치라는 것이 졸업한 한 학생의 주장이다. 여기에 학교 측의 ‘서투른 대응’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 등록의 조건으로 ‘확인서’ 서명을 요구한 것이나 특정 교수들이 학생을 선동한다면서 교수 2인에게 조건부 사직서를 요구한 것에 대해 제적 학생들은 ‘비상식인 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신입생 면접일에 용역 직원을 고용해 재학생들이 학교에 출입하는 것을 막았고, 분규 이후 갑자기 학내에 CCTV를 설치한 것도 학생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요인으로 한 시사주간지는 보도하고 있다. 총장 직무대행 김 모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장 해임 사건을 계기로 교수협의회와 학생회가 유착해 조직적으로 등록 거부를 한 것이다. 등록 기회를 충분히 주었는데, 등록기일 안에 등록을 안 하면 제적 처리한다는 학칙에 따라 행정적 처리가 끝난 사안이다. 확인서 작성은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한 것이었고, 학생들을 살리기 위한 학교 측의 구제책이었다”라고 말했다. 현재 직위 해제된 황 모 전 총장은 ‘총장 지위 보전 가처분 신청’을, 제적 학생들은 ‘학생 지위 보전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놓은 상태이다. 지난 12월 2일 법원은 조정을 거쳐 학교 측과 제적학생들이 합의하도록 하였다. 특별한 이의가 없는 한 제적된 학생들은 다시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제적학생대표는 재학생, 교육과학기술부, 불교 언론계, 종단,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정신치료학회, 기타 제적생 측에서 외부에 분규상황을 알렸던 곳에 공식사과문을 전달하고 학내분규의 종식과 학교복귀를 공식 발표하겠다는 조정안을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4명 중에서 10명이 속해 있는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은 또 다른 법정공방에 처해 있다. 학교법인 측은 사학법이 위임한 모든 권한을 동원하여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한 절차를 밟아 교수들을 처리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월 15일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학생들의 제적만은 강행하지 말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이사장 스님도 가처분의 결과와 상관없이 본 소송으로 들어갈 것을 직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언론에서 비추어지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종교계 인사들은 빠르게 지나가는 광고의 한 장면이 되고 만다. 더 강렬한 인상은 종교계 설립 대학이 더 이익을 챙기고,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처신을 한다는 이미지가 더 남는 이유가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고, 서민들의 얇은 살림살이에 자녀들의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수조원에서 수천억 원을 대학 적립금으로 쌓아 놓는 대학이 많다는 지적이다. 특히 종교계 설립 사립대학이 돈을 많이 쌓아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돈을 무기로 종교사학은 좋은 일을 해야 한다. 연말 김장을 담아 어려운 이웃을 나누어 주듯 국가의 복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가야 한다. 그런데, 현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와 학교법인 보문학원은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불교계 시민단체는 지난 10월말 학교 측에 공문을 보내 1)법적공방을 마무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방안협의 2)조계종 중진 스님들이 배석하여 공동 협의 3)교수협의회 및 학생회 대표자와 협의할 사항 검토를 요청했다. ‘법적공방으로 엄청난 송사비용은 결국 막대한 낭비가 되며, 모두가 피해자가 만드니, <중재법>과 같은 내용을 검토하여 서로 화해할 길을 찾아보자는 주장이다. 아직 중재보다는 대형 법무법인을 통한 소송이 더 확실한 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또 다른 이찬수 교수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종교지도자의 결단은 다소 독단적이고 위법적이어도 밀어 붙이는 힘이 있다. 좋은 일에 쓰면 약이 되지만 반대인 경우 답이 없다. 수만 명이 모여 종교차별을 주장하다가도 종교지도자의 한마디에 없던 일이 되기도 한다. 어이없는 경우여도 대놓고 비판하지도 못하는 것이 종교계 내부의 현실이며, 과제이다. 더구나 사립학교법 등 법이 권한을 위임해 준 대학법인의 경우 종교지도자의 권한은 막강하다.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진 강자가 휘두르는 합법의 폭력은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권 시민단체의 역할과 중재가 필요한 이유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62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전임연구원, 전임 간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과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헌법과 국민에 의해 확인받고 있지 않은 몇 개의 공화국이 존재한다. ‘공화국’이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역설적인 의미에서 많이 붙여 쓰곤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소위 ‘삼성공화국’ ‘부동산공화국’ ‘서울공화국’ ‘강남공화국’ 등이다. 어느 것 하나 공화국의 의미와는 먼 것들이다. 공화국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야 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지만 이들 공화국은 그저 삼성, 부동산, 서울, 강남만이 주인공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대한민국에 그런 공화국이 또 있다. 바로 ‘CCTV공화국’이다. 범죄예방, 도난방지라는 명분을 가지고 태어난 CCTV는 목욕탕, 지하철, 엘리베이터, 사무실, 사업장, 은행, 병원, 상점, 길거리, 교도소, 공공기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 기술 또한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쪽으로만 고정되어 있고 사람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화면은 이제 옛말이다. 360도 회전은 기본이고, 줌 기능에 음성녹음까지 최첨단의 길을 걷고 있다. 어떤 감독처럼 CCTV를 활용해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어도 될 정도다. 기술발전과 확대일로를 걷는 CCTV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우려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잇따르자 2007년 「공공기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CCTV 관련 조항을 신설해 공공기관에서의 CCTV 운영에 제한을 하는 듯 했다. 그렇지만 동법 제4조의2 제1항에서는 CCTV의 설치를 “범죄예방 및 교통단속 등 공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고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사실 ‘공익’이라는 명분만 있으면 설치에 아무런 제약도 없다. 또한 제2항에서는 “설치목적 범위를 넘어 카메라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추어서는 아니 되며, 녹음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지만,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심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회전과 줌 기능은 물론이고 음성녹음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CCTV 설치 운영을 법으로 제한받고 있는 공공기관도 이런 상황인데, 관련 법률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민간분야에서의 오남용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대한민국은 ‘CCTV공화국’ 문제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는 CCTV가 정말이지 우후죽순처럼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CCTV가 안전과 보안에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이제 CCTV는 그야말로 프라이버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터와 공원까지 진출하려고 한다. 이는 경찰청이 아동과 부녀자 실종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놀이터에서도 옷매무새를 매만져야 하고, 공원에서의 낭만적 연애도 이제는 망설여질 것이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과학부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2010년까지 초·중·고 70%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고스란히 대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만 예를 들어도 이미 기숙사 입구는 수위아저씨 대신 CCTV에게 안전을 맡긴 상태다. 도서관 또한 도난방지를 위한 CCTV 15대가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당국은 최근 이를 66대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사생활 침해가 잠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도서관 자치위원회는 “찬성 의견이 약 97%”에 이른다는 근거를 제시해 당위성을 제공했다. 그동안 대학생들이 지문인식, 스마트카드 학생증, 대학 게시판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노출에 대해 별다른 감수성을 보이지 않아 97%라는 찬성률은 새삼 놀랍지도 않다. 다만 CCTV를 학문의 전당인 도서관까지 끌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도난의 문제가 큰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CCTV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상력의 빈곤은 유감이다. 경찰서 CCTV 관제센터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CCTV는 사적인 영역을 무분별하게 감시하고 이를 화상이라는 형태의 기록으로 남기는 그 자체도 인권침해이지만, 또한 목적과는 다른 오남용을 통해 적극적 인권침해로 이어진다는 점이 더 문제다. 그리고 오남용의 내용 또한 설치목적에서 범죄예방, 교통단속, 도난방지 등을 내세우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즉, 불특정 다수를 지켜야 할 CCTV가 불특정 다수 또는 특정한 소수를 감시하는 역할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교통상황 체크나 주차단속용 CCTV가 ‘집회채증용’으로 활용되고, 도난방지를 위한다는 목욕탕 CCTV가 ‘음란물 배포’의 주범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어디에선가 찍힌 내 모습이 어느 날 인터넷에서 인기게시물로 떠돌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을 예방하겠다는 CCTV는 학생들의 숨통을 조일 것이고, 도난을 방지하겠다는 도서관 CCTV는 또 다른 음란물 또는 개그물로 떠돌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뿐만 아니라 CCTV는 절대로 예방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사후적 처리에 조금 도움이 될 뿐이다. 범죄를 계획한 사람이 CCTV 때문에 망설일까.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 마스크 등 훌륭한 수단이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전혀 효과가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투여되는 예산의 크기와 다수 대중의 인권을 침해하고 얻는 효과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만족할만한 수준인지 의심스럽다. CCTV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CCTV는 이제 보편의 언어가 되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오남용 대상이 바로 자신이 될 수 있음에도 별 문제의식을 갖지도 않는다. 우리는 나오고 싶은 텔레비전과는 달리 출연하지 않고는 하루를 넘길 수 없는 ‘CCTV공화국’에 살고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안전’을 담보로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 하루하루 첨단기술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이 아니던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설치된 CCTV를 잘만 활용하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부러울 이유가 없다. ‘실용’을 부르짖는 이명박 정부에게 이를 적극 활용할 것을 조언하는 바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27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현재 한국은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또한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 때나 유엔인권조약기구 심의 시에 한국 정부는 한국 사회의 인권보호측면을 무지하게 강조한다. 최근 촛불집회 때의 공권력에 의한 무차별적 연행, 구금, 구속에 대해 한국 시민단체는 유엔인권특별보고관에게 인권침해상황을 알리고, 이에 대한 조사를 청원하였다. 이에 유엔인권옹호자, 표현의 자유, 고문 특별보고관은 한국정부에 한국시민단체의 청원을 바탕으로 한국정부 측에 인권침해사실을 질의하였다. 한국 정부는 10월 16일 공식답변을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인권침해사항은 일방적이고 형평성에 맞지 않고, 불확실하거나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다고 하였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집행을 했을 뿐이라고 답변하면서, 유엔인권조약에 전혀 위배되지 않았고 국제인권기준에 맞는 조치를 취했다고 하였다. 젠장!! 솔직히 단체에서 국제연대활동을 하다보면 가끔 외국 활동가들에게서 한국의 인권상황이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을 듣게 되고, 메일링서비스를 통해 전달되는 아시아 국가의 인권침해사례를 접하게 되면 나 스스로도 한국이 그러한 국가의 상황에 비하면 낫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제기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악수하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물론 여전히 한국에서는 대낮에 총격을 당하거나 납치를 당하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1400명의 사람이 경찰서 신세를 지거나, 수십 명이 구속이 되고, 구백 명이 넘는 사람이 수백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거나, 처할 예정인 사례는 해외에서도 드물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인터넷공간에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가서 몇 시간 내지는 며칠을 조사 받아야 하고, 몇몇 신문사에 광고를 낸 회사에 전화를 걸어 광고 중단을 요구했다고 특정한 사람들을 출국금지 시켜 공포감을 주고, 일부는 주동자(?)라는 이유로 구속시키는 IT강국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고 해서 아동학대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집회 시에 자동차를 끌고 나와서 집회무리와 함께 이동하며 빵빵 거렸다고 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를 받아야 하며, 단순히 집회에 참여하여 차량도로로 다녔다는 이유로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혐의(그럼 월드컵 때 차량시위하고 도로에서 차선을 점령하고 “대한민국”을 외쳤던 사람들도 모두 소환되어 처벌받아야 하나?), 멀쩡한 언론사의 사장을 갈아 치우고 이에 항의하는 노조원들을 이런저런 꼬투리로 해직하는 상황이 버젓이 발생하면서 적법한 진압을 했다고 되레 호통 치는 경찰우두머리가 있는 나라가 과연 인권이사회 이사국의 자격이 있는지, 유엔회의에서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큰소릴 칠 만한 나라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더 큰 문제는 촛불이 사그라진 지 꽤 되었지만 정부 경찰, 검찰의 조사, 구금, 구속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그 범위를 넓혀 먹고사는 문제까지 사사건건 조여오니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한국정부의 인권보호니 인권선진국 발언도 토 나오지만 나 스스로 한때 비슷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심하게 쪽 팔린다. 사실 없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많이 달랐을까 싶기도 하지만 정부가 촛불을 밟아 끄면서 인권의 영역을 계속 침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현재의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다. 더 갑갑한 것은 이제 1년도 안 지났다는 것이다. 날씨도 추워지고 있는데...
2017-07-11 | hrights | 조회: 320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여순사건 답사를 떠나기 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실제 학살현장에 가면 아무 것도 없고 평범한 장소일 뿐이다.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상상하는 것이다. 그 앞에서 몇 십 년 전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나는 역사의 현장 앞에서 얼만큼 상상하고 감응할 수 있을까. 또 대학생으로서 내 공부는 어떠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얼마나 치열하게 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선 우리는 5시간을 달려 벌교에 도착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온 것을 잊을 정도로 전라도 땅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눈부신 가을햇살이 산천을 씻어주고 그 햇살에 산천은 제 모습을 맑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곳이 너무 아름다워 아이러니였다. 여순사건 당시 붙잡힌 좌익계열들이 모두 처형당하고 묻힌 ‘형제묘’ 에서는 눈부신 여수 앞바다가 보였다. 아름다운 바다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형제 묘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1948년, 제주도 4.3사건 토벌을 위한 출병을 거부한 14연대 군인들이 여수와 순천지역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좌익계열이 많던 14연대 군인들은 이승만 정부를 거부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도 개입한다. 이에 정부가 토벌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죽었다. 끔찍한 학살이 일어났다. 이게 60년 전 여순사건이다. 여순사건이후 한국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지고 전라도 사람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피해자들은 고통의 기억에 침묵했다. 그 기억을 안고 사는 노인들이 아직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침묵한 시간만큼 우리의 역사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나아졌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순천과 여수지역에서 여순사건을 겪었던 증언자들을 많이 만났다. 증언자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건 ‘좌우도 모르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 했나’는 것이다. 광복 이후 가난했던 시기에 민간인들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밤이면 밤사람(좌익계열)들이 산에서 내려와 밥이며 소며 옷들을 갖고 갔고, 낮이 되면 경찰들이 마을로 들어와서 좌익계열에 밥을 해주거나 옷을 대준 사람들을 추궁하고 죽였다. 이념싸움은 알지도,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왜 총살당해야 했을까. 민중을 위해서라고 서로 외쳤던 권력들이 진정 위한 것은 민중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무엇 위에 자신의 권력을 세우려 했던 걸까? 사진1(유해발굴) : 구랑실재 - 당시 진압군들이 봉기군으로 가장하여 마을 주민을 시험한 후 사살한 곳, 시체가 쌓인 골짜기라 하여 송장골이라고도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학살에 우리는 아직도 경악하지만 정작 한반도에서 일어난 동족끼리 죽고 죽였던 학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아직 전라도 땅에는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를 유골들이 산재해 있다. 비단 전라도 땅 뿐이겠는가. 일제시대를 지나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한반도가 드러내지 못한 상처가 얼마나 많을까. 누군가는 현재 한국의 많은 모순들이 일제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한국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걸 은폐하려는 방향으로 여기까지 왔다. 오히려 반성해야 할 자들이 권력의 위치를 계속 지켜왔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쉽게 단절되거나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것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부단한 대화로 이뤄진다. 과거의 사건은 끊임없이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잘못된 과거를 긍정적인 힘으로 바꾸기 위해 현재에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이상 과거는 여전히 부정형의 상태다.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예수가 말한 용서가 이런 상황에도 유효해야 하는가. 누구도 나서서 여순사건에 대해서 공식사과하지 않았다. 국가도 겨우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는가 싶더니 요즘엔 다시 뒷걸음질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부침도 심하다고 한다. 답사 셋째 날, 우리는 여수중앙초등학교를 갔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여순사건 유족회 회장님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마을주민들을 초등학교에 몰아두고 하루 종일 처형을 했다고 한다. 새끼줄을 쳐놓고 손가락총으로 좌우를 갈랐다. 손가락총은 이 사람 빨갱이야 라고 손가락으로 지목하면 곧 총살당한다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군인들은 몇 명을 총살시키고서는 그 시체를 마을주민들이 이고 구덩이에 묻게 했다. 하루 종일 그 일이 되풀이 됐다. 증언을 해주신 분도 그 날 형님을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형의 유골은 찾지 못했다. 형의 유골이 묻혀 있을 곳이라 짐작된다며 가리키는 곳엔 아파트가 서 있었다. 아픈 기억을 시멘트로 발라 버리는 역사에 대한 잔인한 치유방식. 소박한 양복을 입은 유족회 회장님이 담담한 표정으로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 사이, 쉬는 시간 종이 울렸는지 아이들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엄숙하던 운동장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어느새 활기찼다. 또 다시 느끼는 슬픈 아이러니. 이번 답사를 계기로 나는 내 가장 가까운 곳을 들여다보게 됐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살펴보게 된 것이다. 바로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험난한 근현대사를 몸소 겪은 산 증인이었다. 내 가족사가 곧 한국사였다. 나 뿐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다. 내 할머니의 동생은 무척이나 영리했는데 중학교 때 친구랑 산에 놀러 갔다가 납북이 되셨다 한다. 몇 년 전 북한을 찾아가 그 분의 소식을 겨우 알게 됐는데 이미 돌아가신 뒤라고 했다. 내 할아버지는 6.25 참전 군인이셨다. 그때 전쟁포로로 잡혀 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고 한다. 나는 몰랐다. 시골엘 갈 때마다 왜 할아버지는 아픈 모습으로 작은 방에 앉아만 계셨는지. 난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할아버지는 몇 개월 전 돌아가셨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할아버지에게 당신의 역사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을까. 그 아픔을 공유할 수 있었을까. 당시 학살을 겪었던 많은 피해자들은 이미 돌아가셨다. 피해자 중에서도 여전히 세월로 위로를 받으며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분들마저 돌아가시면 우리들은 더욱 쉽게 아픈 역사를 망각할지도 모른다. 요즘 뉴스에서는 좌편향적인 교과서 운운하면서 역사 교과서 개정을 주장하고 나서는 이들이 있다. 오늘은 보수 진영이 경제 교과서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평가절하하고 정부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오류가 빈번하다" 며 문제제기 했다는 기사도 떴다. 살아남는 자가 역사를 쓴다는 강자의 논리가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걸까. 아직도 이념을 인간에게 유용한 칼이 아닌 무기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교과서도 민간인들이 정치적 이익과 이념 논쟁에 무수히 죽었다는 사실과 그걸 감응하고 반성할 계기를 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극단적으로 자신의 입맛대로 국사를 구성하려고 하는 걸까. 사진2(소화다리) : 벌교의 소화다리. 해방 이후 좌우익 대립의 와중에서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에서 숱한 인명이 희생되었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여순사건의 회오리로부터 6.25 의 대 격랑까지 우리 민족이 겪은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더 생각해 본다. 어쩌면 사과는 쉽다. 그렇기에 끝까지 그걸 덮어두려고 하는 가해자들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다. 특히 주체가 국가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가 나서서 사과하고 보상을 하고 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상처를 봉합하는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념비 하나로 쉽게 국사에 수렴되는 임시방편 책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 땅에 다시는 학살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역사라는 것은 일상들이 덧대어져서 만들어낸 하나의 덩어리다. 하지만 이 덩어리들을 누군가는 쉽게 절단하고 채취해서 단순하게 공식기억으로 만든다. 그저 ‘역사를 위한 역사’인 공식기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위한 역사로서’ 개개인의 많은 진실(truths)을 통해 자꾸만 역사들(histories)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요즘 역사학계에서 구술사에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역사의 질곡에 짓눌려 늘 할딱이는 숨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 한명 한명의 치유를 바랄 때, 더디더라도 한명 한명 살펴보며 가는 것이 삶이고 그게 흐름이 될 때 우리가 바라는 긍정적인 역사가 될 것이다. 폭력에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가 생긴 개개인들의 옆에 서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우리는 더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7-07-11 | hrights | 조회: 442 | 추천: 0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이 아무개 경위는 지난해 2500원을 주고 서울시 교통카드를 샀다. 신용카드와 겸용인 교통카드를 잘 쓰던 경찰관이 굳이 별도의 교통카드를 산 이유는 이렇다. “내 행적이 고스란히 기록된다는 게 께름칙하다”는 것이다. 교통카드는 그 카드의 주인이 몇월 몇일 몇시 몇분 몇초에 어디서 지하철을 타고 어디서 다시 버스로 갈아탄 뒤 몇분 몇초에 어느 정류장에서 내렸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된다. 그냥 교통카드는 카드의 주인이 누구인지 개인식별이 되지 않지만, 신용카드는 가입자의 신원이 뚜렷하다. 즉, 교통카드가 삽입된 그 신용카드는 하루 중 나의 이동경로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나를 음해하기 위해, 혹은 범죄에 엮어 넣기 위해 악용할 수도 있는 내 개인정보가 남아있는 건 불안하지 않느냐는 게 이 경위의 설명이다. 교통카드와 신용카드를 별도로 갖고 다니면 지갑이 조금 더 두터워지지만, 그 정도쯤이야…. 시민의 지갑 속에 한두 개 정도는 들어 있을 교통카드에는 RFID칩이 심어져 있다. 내가 아는 박광철(가명)씨는 한국도로공사 직원이다. 그런데 그는 하이패스를 쓰지 않는다. 톨게이트에서 남들은 길게 줄지어 선 채 티켓을 손에 쥐고 기다리는 동안 하이패스 이용자는 그냥 전용선을 질주해도 된다. 그렇게 편리한 하이패스를 박 씨가 쓰지 않는 이유 또한 단순하다. “께름칙하다”는 것이다. 하이패스도 이용자의 이동경로에 대한 명확한 흔적을 갖고 있다. 도로공사 직원이라서 하이패스를 쓰지 않으면 안에서 눈치가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그는 하이패스를 쓴다는 게 마뜩치 않다. 톨게이트에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하이패스에도 RFID칩이 심어져 있다.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이른바 무선인식 기술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예전의 마그네틱 선을 이용한 접촉식에 비해 편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스 탈 때처럼 가방 안에 넣은 채로 인식기에 갖다 대도 인식하는 투과성이 있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달리는 차량 안의 정보를 읽어내는 이동인식 능력 등에서 뛰어나다. 산업계에서 보는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반면, 그것이 실제에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많은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제기된다. 새 기술의 편리성이 커지는 만큼 위험성도 그 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이 경위와 박 씨의 경우도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그런 일이 생길 일말의 가능성 자체가 마음의 불안을 키우게 된다. 정보인권의 핵심은 자신과 관련한 정보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3년 패션 브랜드인 베네통이 유통 과정상 편리한 관리를 위해 모든 제품에 이 RFID칩을 심기로 했다가 소비자단체의 거센 저항에 밀려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만약 베네통의 계획이 실현이 되고 다른 의류업체 등도 이를 따라했다고 생각해보자. 번화한 거리에 RFID 인식기를 갖다놓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입은 팬티와 브래지어, 셔츠, 바지, 점퍼, 신발이 어느 회사 제품이고, 언제 어디서 만들어져 팔렸는지를 알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지에 대한 퍼센티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군가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제로라고 하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후로도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청바지 업체로 유명한 리바이스가 자사의 시슬리 제품에 RFID칩을 심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고, 다른 업체들도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뉴욕의 맨하탄에서는 패션업계가 RFID칩을 제품에 심는 문제와 관련한 모임을 열자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 기업들에서는 아직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미국은 한국의 미래일 수 있다. 개인정보가 전자칩 형태로 내장되어 있는 전자여권 사진 출처 - 노컷뉴스 RFID칩은 이제 한국의 여권에도 삽입이 된다. 이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정보인권 단체들이 직접 시연회까지 열었으나 외교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이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몰래 쓰다가 들통 난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이제 국가가 공인한 개인 식별장치에도 이 RFID칩을 심으려고 한다. 향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확실한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이미 우리는 건물과 거리에 깔린 수많은 CCTV, 인터넷 접속 로그 기록 그리고 신용카드 결제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우리의 행적을 남기고 살고 있다. 경찰은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르는 피의자, 참고인 등의 정보를 ‘심스’라는 망을 통해 축적하고 있다. 그의 종교와 혈액형, 주소, 주량까지 모두 말이다. 물론 경찰이 그런 행정을 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검찰은 형사사법망을 통합작업을 통해 경찰이 심스를 통해 갖고 있는 정보는 물론 관련된 이들의 검찰 수사 기록과 사법부의 재판 기록마저 아우르는 거대한 ‘국민 정보 결집체’를 만들려고 한다. ‘빅브라더’ 세상은 다가오고 있지 않다. 이미 우리는 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느 정도 심화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내 개인정보를 통제하고 살기엔 이 사회의 기술은 너무 진보했다. 하지만 그 기술의 진보에 걸맞은 윤리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민은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 각 개인이 “내 삶의 세세한 흔적과 관련한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그것이 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지면서 기업과 국가가 자본과 재정을 확충해나가는 것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익에 귀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과, 국가의 목표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국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대한민국의 현대 역사는, 그런 측면에서 기업과 국가에 신뢰를 보내기 어렵게끔 한다.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국가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경찰도 불안해하고, 공사의 직원도 불안해하는 RFID가 이미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구체화하고 개별화되지 않은 수많은 권력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이 무섭다. 이쯤 되면 `반문명 전선'을 형성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2017-07-11 | hrights | 조회: 375 | 추천: 0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국정감사에서 비쳐지는 교육감 선생님과 ‘탱크 앞에서 알몸 시위하는 제자를 둔 두 스승을 보며 감회가 새롭다. 고교시절 돈 봉투를 노골적으로 밝혔던 선생님과 일 년에 양복 두벌로 다녔던 선생님이 생각나서다. 교목선생님은 빚잔치에 학교를 떠났다고 하고, 검소했던 ‘파파 스머프’ 선생님은 참교육을 주장하다 학교를 떠났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 류상태 목사님 같이 존경하고 싶은 선생님이 계셨다면 어떠했을까? 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우리시대 진정한 의미의 교회에 나가는 신실한 교우가 되었을 것이다. 제자에게 선거자금 빌린 선생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웃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학원에 특혜를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사적인 인연으로 ‘단지 순수한 빌린 돈’이라는 것이다. 몇 십 년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이 있었고, 그리고 인척이어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리송하고 헷갈린다. 선거과정에 직분을 맡았거나 학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이후 교육정책이 진행될 때 생기는 ‘떡고물’이 왕창 쏟아질게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유엔이 한국의 청소년들이 너무 많은 공부를 한다고 수업일수를 줄이라고 권고했다는 게 수년전이다. 그러나 공정택교육감은 학원영업시간을 1시간이나 연장한 바 있다. 결국 끈끈한 사제의 정을 통해 제자가 학원을 잘 운영하도록 도와주는 꼴 이었던 것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주고받기가 척척 맞는 교육현장의 ‘검은 거래’ 단면이 드러났다. 교육감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학원사업 잘 되게 해준 제자사랑은 사회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사정기관은 철저한 조사를 해서 밝혀야 한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감에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선거비용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학교예배 선택권 주장 제자’ 지지하다 학교 그만둔 선생님. 지난 10월 1일 강남도로 한 복판. 국군의 날 행사 때 탱크 앞 알몸시위 제자 ‘강의석’을 향해 변함없는 신뢰를 보낸 ‘류상태 선생님’. 류 선생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군 제도 폐지에 대해서 논할 때가 왔다. 사람들이 지금껏 군대를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며, 지금이라도 강군이 이 문제를 제기해 준 것이 대견하다"고 했다. 이어 "단지 옷을 벗었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면 강군의 주장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며 "그 속에 담긴 강군의 순수한 동기와 내용 자체를 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분명히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신선하다. 그릇이 큰 아이다‘는 것이다. 강의석은 군대폐지 폐지 주장이전 2004년 고교 3학년 때 학교에서의 예배선택권을 주장하며 45일을 단식하였다. 당시 학교 목사였던 류 선생님은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제자를 지지했다. 이 제자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당시 교목실장이었던 류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학교에 교목선생님은 전혀 다른 분이었다. 성경수업에 늘 ‘불교를 믿는 나라는 가난하게 산다’ 거나 ‘미신을 믿으면 집안에 아픈 사람이 많아진다’ 또는 ‘좋은 대학 가려면 교회 다녀라’는 말씀을 하여 난상토론이 일어나곤 했었다.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 때 불손했던 점은 사과드리고 싶다. 누구에게나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고, 또 존경하고 싶어 하는 선생님을 찾는다. 스승을 찾으려면 스승을 볼 줄 아는 제자의 바른 눈이 있어야 하며, 나의 스승인 초등학교 아이에게 ‘진솔함’이란 스승이 있고. 대가없이 주장하는 ‘기특함’이라는 친구도 있다. 류상태 목사님과 강의석 군 사진 출처 - 필자 그러나, 학원을 운영하면서 교육감선거에 돈을 빌려준 제자는 더 이상 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혹 그게 포괄적인 뇌물이 아니라 정말 빌려준 돈이었다고 해도, 그리고 스승을 위한 선의였다고 해도 바르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선거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으로부터 교육감을 사퇴하라고 질타를 받더라도 웃어도 좋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 때문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을 보면 옷을 벗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종교자유를 강요했던 20여 년 전 모교의 큰 길 앞에 온 몸에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고 외치고 싶다. “선생님, 교목 선생님! 왜 저에게 종교를 강요하셨나요. 어린 나이의 저에게 성경구절만이 옳다고 강요하셨나요? 라고. 그러나 상상과 감정으로 변화를 조직하긴 어렵다.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 주고 있다. 현 교육감 선생님은 업무시간에 기도회에 가서 통성기도를 하고, 업무시스템을 이용해 사적모임을 주선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 또는 사소한 일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계 사립학교의 종교교육선택권과 종교의식 자율을 주장한 것은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중차대한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면 되지. 무슨 예배선택권이냐’ 하며 매질을 하고, 따귀를 때린 D고교 선생님처럼. 현 교육감 선생님은 누군가 분명 검찰에 고발을 할 것이고, 사정기관에 있는 눈 밝은 제자들의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에서 두고두고 기본권 침해여부를 다퉈야 할 것이다. 사정기관에 있는 제자들이 공정하고 엄정한 조사를 해서 선생님의 무죄 여부를 판단할 것이고, 연구관 판사를 지내는 제자들은 법리 논쟁에 선생님의 이름을 수없이 오르내리게 할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활동과 노력을 통해서 더 이상 굶는 제자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수십 년간 선생님을 원망하는 제자들이 없었으면 좋겠고, 옷을 벗는 문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티격태격 싸우는 일도 없어지기를 바란다. 더 약한 사람을 위해, 배려하고 조직하고 교육하는 너무나 당연한 일에 더 매진했으면 싶다. 학원을 몇 개 씩 운영하는 제자보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제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기 때문이다. 나부터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바라며 마음의 평화를 누려보아야겠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64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올 여름은 참 길었습니다. 몇 십 년만의 폭염을 쏟아 부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름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갈 듯 갈 듯 하면서도 좀처럼 발길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찾아와야 할 9월에도 창문을 열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가 곤욕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은 한반도의 기후가 정말로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라며 새삼스레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아! 물론 그렇더라도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켜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요. 그렇게 끈질기던 여름이 드디어 주춤합니다. 지난 주말 갑자기 찾아온 찬바람에 주섬주섬 긴팔들을 챙겨 입느라 부산했습니다. 미처 긴팔을 챙겨 입고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연신 코를 훌쩍거리기도 했지요. 이러다 또 더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것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말을 넘겼지만 날은 더욱 선선해지고 있으니까요. 전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데, 오늘부터는 기숙사에 난방도 가동했습니다. 불과 지난주까지 덥다고 난리들이었는데 이제는 방이 춥다고 난리들이니 참 사람이 간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아침이면 선선한 날씨에 그간 느끼지 못했던 상쾌함도 느껴지고, 10월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걸맞은 날씨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하늘은 또 얼마나 푸르러졌는지요. 아마 서울 하늘도 못지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오후엔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시원해진 바람과 함께 벤치에 앉아 담배 맛을 즐겼답니다. 눈이 시리게 새파란 하늘로 담배연기를 올려 보내다가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문득 스물 예닐곱 시절이 생각나더군요.(아! 물론 제가 나이를 많이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도 이맘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을과 바람과 하늘이 이끄는 대로 서점에 들어갔지요. 가을이라는데 뭐 손에 잡히는 책이 없을까 해서였습니다. 뒤적뒤적 책을 괴롭히다가 시집 한권을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곤 그 시집을 한참 읽다가는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가서 춘천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춘천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고, 갈 곳을 정하지도 않았으니 그냥 무작정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듯합니다. 제가 춘천을 가도록 했던 그 시집은 바로 정호승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인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였습니다. 지금은 그 시의 내용도 그 시집에 담긴 시들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 가을의 손님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제목을 가진 시집이었는지요. 그래서, 그렇게 춘천을 가서 무얼 했느냐구요? 남춘천역에서 내려 커피 한 잔 마시고는 돌아왔습니다. 뭐 딱히 할 일이 있어야지요. 가을바람이 가을바람이기를 그렇게 한참동안 가을 날씨를 만끽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런 저를 맞은편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빤히 내려다봅니다. “가을바람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참 좋겠다”하는 심정으로 말이지요. 그 현수막에는 “OUT! 비정규직, OUT! 2MB”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현수막을 마주보고 서 있는데 제가 참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복잡한 한국사회에서 가을의 여유를 느끼는 사치를 누려서가 아닙니다. 하늘을 보며 감상에 젖어서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느끼는 이 시원한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칼바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준비하던 지난 9월 9일 저녁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노동과 세계(이기태) 초여름에 시작해 아직까지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조합원들에게도 이 바람이 같은 의미이진 않겠지요. 김소연 분회장의 옆에 놓여있는 관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운 고통일겁니다. 기어이 서울역 조명탑으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KTX·새마을 승무원들에게 이 바람은 뼛속까지 스미는 아림이겠지요. 끝이 보이지 않은 싸움에 가을을 넘어 겨울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코스콤, 이랜드, 하이텍알시디 노동자들, 그리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 그들에게 이 바람은 그저 또 다른 고통을 인내해야 함을 예감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한 주 전까지만 해도 때 아닌 더위를 괴로워하다가 금세 춥다고 난리인 것이 사람인데,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에도 가슴은 늘 시베리아의 찬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던 사람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더구나 온기라고는 제대로 느낄 수도 없는 곳에 몸을 뉘어야 하는 사정일진데요. 온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리겠지요. 이 상쾌함이 그들을 에이겠지요. 그뿐이겠습니까. 거리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이들, 연탄 한 장이 아쉬운 빈곤 가구들, 연일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정부에 기가 차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난 우리의 이웃들. 그들 모두에게 이 바람은 그저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시원한 바람만은 아니겠지요. 물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자 서글펐습니다. 자연이 주는 고마운 선물조차 그 이면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되새겨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가을바람은 그저 가을바람일 뿐인데, 왜 그것은 또 고통이어야 하는 것인지요. 더구나 그 현수막에 나란히 적혀있던 ‘2MB’라는 문구! 그 어느 때 보다도 잘 어울리는 두 문구입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자본과 그 자본을 위한 정권. 그래요. OUT되어야지요. 기필코 OUT되어야지요. 그래서 내년에는 이리도 좋은 가을바람을 그저 가을바람으로만 느낄 수 있어야지요. 칼바람은 이제 그들에게나 어울리게 말입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55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지난 9월 19일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자이툰 부대가 올해 연말까지 철수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국회에서 올해 말까지 철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파병연장동의안을 처리한데다 동맹국이 자이툰 부대의 파병 연장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언론에서는 보도했고, 이에 따라 쿠웨이트에서 자이툰 부대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군 다이만 부대도 올해 말 철수할 예정이다. 또한 23일에는 자이툰 부대 마지막 교대 병력이 파병환송식을 가지면서 언론에서는 “조국의 이름으로”라는 타이틀로 그들을 환송했다. 9월 23일 자이툰 마지막 교대병력 환송식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003년 가을, 2004년 여름 그리고 그해 겨울, 해마다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오랜 기간 동안 “파병반대, 자이툰 철수”를 외쳤고, 드디어 그토록 바랬던 자이툰 부대가 철수를 하게 되었는데 명쾌하지 않고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솔직해 지자. 그 기분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를지라도 그 크기는 작다. 인정하고 싶지만 점령과 주둔의 시간이 지날수록 이라크와 자이툰의 비중은 작아졌고 그곳에서의 목소리도 고통도 스스로 무뎌졌다. 누군가는 그게 당연하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과 느낌은 희미해진다고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그토록 외쳤던 함성이 쑥스러워진다. 변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비추어보면 올해 말까지 자이툰 부대와 쿠웨이트에서 수송을 담당하고 있는 다이만 부대는 계획대로 철수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국은 명백한 이라크전쟁범죄 국가이고 점령 5년 동안 그토록 신문지상을 피와 고통으로 뒤덮은 이라크 뉴스의 공범이고, 아직도 이라크의 상황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현행범 국가이다. 이 역사를 되돌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이툰 부대의 파병과 철군, 이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냉정한 평가가 꼭 필요하다. 그토록 파병결정시기에 대두되었던 ‘국익’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한미관계’도, 연간 천문학적 비용을 사용하며 무엇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는 자이툰 부대의 활동도 모두 다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자이툰 부대의 철군을 요청했던 활동가의 측면에서는 현재의 결과에 철군운동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2002년과 2003년 그 뜨거웠던 함성이 왜 이렇게 사그라졌는지, 여러 측면에서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철저한 자기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 평가의 마지막 결론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라크 상황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이라크 민중들과의 구체적인 연대의 계획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7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