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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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끝내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고 말았다. ‘뚝심의 정치인’ 노무현의 리더쉽은 다시 한번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지층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권의 “능력부족”과 “좌파 논리” 때문에 ‘실패한 정권’이라고 규정하던 주류 보수 언론들이 이제는 앞장서서 노무현을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우며 용비어천가를 쏟아내고 있다. 한미FTA가 새마을 운동, 서울 올림픽과 함께 한국의 “국가 수준을 끌어 올린” “건국 이후 최대의 치적” 가운데 하나라나. 하지만 한편에서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수많은 민초들의 통곡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4월 1일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협상이 열리던 하이야트 호텔 앞에서 택시 노동자 허세욱(54)씨가 온몸에 신나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그는 온몸이 장작처럼 활활 타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한미 FTA 반대 구호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무정한 불길은 빠른 속도로 번져 구호를 외치던 목구멍까지 태우고 그의 뇌 속에서 의식을 빼앗아 갔다. 숯덩이로 변한 그의 육신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그 언덕길엔 달랑 동전 몇 개 떨어져 있었다. 허세욱씨는 노동운동, 시민운동의 지도적인 인사도 아니었고, 언변이 출중한 선동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빠듯한 월급을 쪼개 여러 시민단체 회원이 되었고 민주노동당 평당원으로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집회 현장을 지켰다. 그와 절친했던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반전 집회, 노동자 집회, 촛불시위... 각종 시국 집회 현장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3월 30일, 그가 분신을 결행하기 이틀 전 나는 광화문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시한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알고 보니 이것도 쇼였지만) 광화문 열린 시민공원에서 단식농성을 진행하던 범국본 농성단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청운동 동사무소 앞으로 이동하려 하자 수천 명의 전경들이 달려 나와 곳곳을 에워 쌓다. 처음에는 공원 입구를 봉쇄하더니 인도와 지하도까지 틀어막았다. 지난 1일 저녁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던 시위대가 '한미 FTA 중단'을 외치며 서울 을지로, 안국동을 거쳐 청와대로 진출하려했으나 광화문 앞에서 경찰에 막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각종 행사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허세욱 아저씨 삼삼오오 이동하던 대열이 광화문 일대 지하도를 틀어막은 전경들 때문에 30분 넘게 오도 가도 못한 채 갇히게 되었다. 전경들은 몸자보를 두른 농성단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일반 시민들의 통행까지도 차단하고 있었다. 경찰의 막가파식 인권 침해에 일반 시민들까지 나서서 목이 터져라 항의해 봤지만 막무가내였다. 경찰은 주권자인 평범한 국민들의 목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상사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그들은 우리들의 인권을 감금했다. 허세욱씨는 나와 함께 그곳에 갇혀 있었다. 열이 받쳤다. 그들 말대로 “불법 집회”를 한 것도 아닌데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인도를 지나가겠다는 건데 그것까지 가로막다니... 감금상태에서 풀려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숱한 항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무전기를 든 채 느물느물 웃고만 있던 전경부대 중대장 앞으로 달려갔다. 그에게 소속이 어디냐고 물었고, 경찰이 이렇게 불법을 저질러도 되냐고 따졌다. 그는 여전히 이죽거리며 “서울 경찰”이라고만 답변했다. 옆에 있던 허세욱씨는 나보다 더 화가 나 있었다.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경찰에게 달려들었고 주변 사람들이 간신히 뜯어 말렸다. 우리는 결국 몸자보를 벗고 일반 시민처럼 위장(?)하고 나서야 전경들 없는 골목길을 따라 청운동 사무소 앞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허세욱 이름 석자를 알지 못했다. 그때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절벽 앞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자유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다수 민중의 생존권과 자유를 마음대로 농단하고 있는 파렴치한 독재권력 앞에 순간 떠밀릴 수밖에 없는 저항하는 소수의 정당한 울분. 어떤 사람이 택시노동자가 한미FTA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 분신까지 하느냐며 악플을 달았다고 한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갖추지 않은 그가 밉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죽음의 방법으로서 가장 처절한 자살을 선택해야 했다면 그가 왜 그런 길을 선택했는지, 결단의 순간에 그가 던졌을 실존적 물음은 무엇이었는지 반추해 보는 게 예의가 아니겠는가? 한미 FTA가 타결 된 지난 2일 세종문화회관에 모인 시민들이 허세욱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한미 FTA 원천무효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더 미운 것은 진실을 호도한 채 엄청난 광고와 물량 공세로 대중에게 한미 FTA가 ‘대한민국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라며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있는 노무현 정권과 보수 언론이다. 그들의 입에서 잠시 눈을 뗀 다음 냉철한 이성으로 협상 과정과 내용을 들여다보라! 그들이 말하는 “경제 체질 개선”이 다 무엇인가? 한국의 경제와 사회제도 전반을 신자유주의 첨단국가인 미국을 본 따(글로벌 스탠다드) 강력한 구조조정을 해버리겠다는 것이다. 지난 경제위기 과정에서 보았듯이 기업 구조조정의 고통은 노동자, 서민들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한국 경제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지 않기 위해 세계 최대 시장 미국과 서둘러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겨가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진짜 “샌드위치”가 되는 것은 국적을 불문하고 서로 피 튀기며 경쟁해야 하는 기업체의 노동자들이다. 저들은 그 고통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있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는 것도 우스운 논리다. 미제 골프채, 미제 승용차 값이 조금 싸진다 해도 한 달 백만 원 안팎의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것을 구입할 능력도 없고 사용할 일도 없다. 치솟을 약값 때문에 몸이 아파도 치료받지 못할 일이 더 걱정이다. 광우병 의심나는 쇠고기, 몸에 해로운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비싼 국산 농산물을 대신해서 먹게 되는 게 혜택일 수 있을까? 한미 FTA를 밀어붙인 정부 관료와 기업주들은 이런 음식물은 먹지 않을 것이다. 허세욱 아저씨, 살아만 계셔 주십시오! 허세욱씨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가족도 없이 16년째 택시 운전을 하며 어렵게 살아오면서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의 삶은 나의 형, 삼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때문에 더욱 착잡하고 분통이 터진다. 한미 FTA가 파괴하는 것은 평범한 우리 모두의 삶인데 우리가 세운 대통령과 국회는 우리와 한마디 상의도 없었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공장을 멈추고, 생업을 멈추고 거리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노무현은 한미FTA 체결로 전경련, 경총 등 대한민국 대주주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혹자의 말대로 그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노동자, 민중에게 영웅 따위는 필요 없다. 허세욱씨 처럼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새롭게 투쟁 대열에 합류하고 묵묵히 실천할 때만이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백사람의 노무현 보다는 한 사람의 허세욱이 더욱 소중하다. 허세욱 아저씨, 당신이 그립습니다. 제발 살아만 계셔 주십시오!
2017-07-11 | hrights | 조회: 370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세상의 흐름을 읽는 열린 리더십”, “상생의 메신저”, “‘투쟁보다 일자리’라는 한마디로 수백만 구직자와 가족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바로 위원장님에게 쏟아지는 보수언론의 찬사입니다. 위원장님이 이처럼 재계와 언론으로부터 한국의 어떤 노동운동 지도자도 들을 수 없었던 상찬을 받는 데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9월 11일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노사관계 로드맵”을 처리한 후 위원장님의 파격적인 행보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일본, 미국, 유럽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셨고 최근에는 세계적 신용평가업체 무디스 대표단을 불러 그들의 “송곳”같은 시험문제에 답하시느라 “진땀”깨나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위원장님의 이런 노력은 아마 어떤 외교통상부 관료나 대기업체 CEO 못지않은 활약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저는 아둔해서 그런지 위원장님이 보여주신 “파격적인” 행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가 더 궁금했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단순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인데 위원장님이 혹 현장 감각을 잃어버리신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위원장님은 국가 이미지 개선으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면 기업 수익이 커지고 그만큼 노동자들의 권익도 향상 될 거라는 재계와 보수언론의 ‘경제성장 도미노 이론’을 그대로 재생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수도 없이 강조돼왔고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그런 과정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도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위원장님은 금융노조에 계셨기 때문에 론스타 같은 “먹튀 자본”의 폐해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위원장님께서 유치해야 한다고 보는 해외자본도 이런 투기성 자본이 아니라 건실한 산업투자 자본을 의미하시겠지만 그 둘은 칼같이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한국노총을 방문한 무디스 대표단은 위원장님에게 한국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경직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형용모순에 가까운 말을 하고 갔을까요? 그들의 관심사가 바로 그곳, 여전히 강력한 노조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대기업·공공부문에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위원장님은 이 질문에 노조 조직률 10%와 영세 중소노동자를 예로 들며 “전체적으로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답변하셨는데 이것은 그들에게는 동문서답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어쨌든 위원장님의 노력 덕분에 건실한 외국인 투자가 많이 이루어진다 해도 노동자들의 권익은 그다지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해고된 채 300일 넘게 투쟁하고 있는 하이닉스·메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 한라·라파즈 사내하청인 우진산업 노동자의 사례를 보십시오! 한국노총을 방문한 무디스 대표단과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들이 해외에서는 어떻게 했을지 모르나 한국에 와서는 국내 기업들과 똑같이 정규직 이 아닌 비정규직들을 많이 고용하고,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대량해고 시켰습니다. 노동부,노동위원회가 나서서 ‘부당해고’라고 말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위원장님은 너는 “전투적 조합주의”신봉자지, 민주노총 똘마니지? 라고 추궁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지도 않고 감옥에 있는 구속노동자들을 옥바라지 하는 작은 인권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희 단체는 민주노총 , 한국노총 조합원, 이주노동자, 한국노동자 가리지 않고 노동운동, 정치 투쟁 과정에서 구속된 노동자들이라면 조직과 정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글이 조금 길어지고 있지만 정말로 제가 진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부터입니다. 영등포구치소에는 지난 9월 19일 한국노총 사무실로 위원장님을 방문했다가 구속된 8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중 5명은 한국노총 조합원들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9월 11일 위원장님이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정부와 재계와 손을 잡고 “노사관계 로드맵”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켰을 때 누구보다 분노했던 노동자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대부분 버스, 택시 등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어용노조”를 혁파해 보려다 미운털이 박혀 해고된 노동자들입니다. 해고로 인해 생계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민주노조”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넘게 풍찬노숙하며 복직 투쟁을 전개해왔습니다. 위원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노사관계 로드맵”에 명시된 “복수노조 3년유예”, “해고자 금전보상제” 규정은 바로 이들 해고노동자들에게 “핵폭탄”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9월 11일 위원장님은 합의안에 서명한 후 당당히 노사정위원회 사무실을 걸어 나오며 항의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향해 “야합 같은 거 안한다.”며 거칠게 맞대응을 하셨습니다. 이렇게도 당당했던 위원장님의 태도를 보면서 위원장님과 한국노총 간부들의 확고한 소신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사안은 한국노총, 민주노총 조합원, 더 나아가 1,500만 노동자들의 이해가 걸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노총 조합원들 중에서도 위원장님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구속된 해고노동자들처럼 자신의 생각을 격렬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노총이 민주적인 노동조합이라면 이와 같은 의견에 대해 열어놓고 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원장님과 한국노총 간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9월 19일 해고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시도하려 하자, 곧장 경찰을 불렀고 해머와 야구방망이를 동원해서 벽을 부수고 노동자들을 7층 난간으로 내몰았습니다. 무려 네 번이나 구속된 경험이 있는 강성철씨는 “개인적으로는 악질 자본에 의해서 몇 번의 구속 경험이 있긴 했어도 이렇게 슬프고 원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노동조합 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1심 판사들은 8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조직적, 계획적, 지능적”으로 쇠파이프와 신나통을 가지고 한국노총 건물을 방화하려 했다며 1년에서 1년6월까지 실형을 선고해 놓고 있습니다. 두명의 노동자는 집행유예 기간이기 때문에 항소시에서 실형이 확정되면 곱징역을 살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구속된 노동자들은 편지에서 “조합원의 피눈물로 지은 사무실 벽을 해머와 야구방망이 등으로 부수고 들어오는” 경찰과 한국노총 간부들을 보면서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노동자들이 과연 판사의 말처럼 “계획적, 조직적, 지능적”으로 방화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당시 농성장은 7층이었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기 때문에 불을 부친다면 그들의 생명마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위원장님은 지난 1월 2일 신년사에서 재계를 향해 “법률에만 기대지 말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실천해나가자고 말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많이 대립되는 사용자들에게 이토록 자애로우신 위원장님께서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활동했던 옛 동지들은 법에 따라 “응징”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위원장님과 한국노총이 나아가고 있는 길이 진정 우리 사회 다수인 노동자, 서민들을 위한 길이라면 노선이 다른 노동자들일지라도 포용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노동운동 내부의 의견 충돌에서 빚어진 사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편파적인 국가 권력에게 내맡겨 일단의 노동자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도록 강요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원장님의 결단을 기대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98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새해 벽두부터 언론에 연속으로 얻어맞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다. 현대자동차노조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은 언론의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 조그만 사실을 부풀리는 건 기본이고 없던 사실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일치단결해서 ‘탐욕의 화신’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의 주장만 듣다보면 지난 IMF 경제 위기를 불러 온 책임도 현대자동차노조에 있고 앞으로 불거질 위기 또한 그들의 책임인 것처럼 들린다. 1월 3일 시무식 무산 사태만 해도 원인은 사측이 관례적으로 지급해 오던 150%의 상여금 가운데 50%를 떼먹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세간에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엄청난 고임금을 받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들만큼 일을 많이 하는 노동자들도 없을 것이다. 자동차 업계가 몇 년간 호황을 유지해 온 덕에 잔업, 휴일 특근이 연중 계속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 요량으로 쉬지 않고 일하다보니 평균 주 50시간을 근무하고 있는 처지다. 그들은 일한만큼 더 받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상여금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은 현대자동차 경영진은 내버려 둔 채 이번 사태의 책임을 온통 현대자동차노조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이런 파상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지켜보면서 이번 사태가 단지 ‘상여금 50%를 더 줄 것이냐, 안 줄 것이냐’에 한정되지 않는, 전체 노동계와 재계 사이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매우 중대한 쟁점이 숨겨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자동차노조가 민주노총이 주도한 정치파업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34시간가량의 생산 손실이 빚어졌고 이 때문에 생산목표를 98%밖에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삭감해서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노조와 회사 측 사이에는 단체협약 내용을 둘러싼 해석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그동안 관례적으로 연말 150%의 상여금을 생산목표에 관계없이 받아왔던 것은 명백하며 지난 해 단체협상 과정에서 윤여철 사장 또한 이를 인정한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지난 해 현대자동차는 1조 2천억 가까운 순이익을 남겼다. 더욱 교활하게도 현대자동차와 언론은 현대자동차노조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개악법안, 한·미 FTA 반대 파업 등 정치파업에 ‘개근’한 것을 계속 문제 삼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이러한 공세를 펼치는 목적은 상여금 삭감이라는 직접적 손실을 입을 조합원들에게 ‘노동자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파업해서는 안 되고 잦은 파업은 나에게 불리할 뿐’이라는 생각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울산에서 올라온 현대자동차 노조원과 금속산업노련 소속 노동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몽구 회장이 노사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 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동안 정부와 언론은 현대자동차노조를 비롯한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를 끊임없이 비난해 왔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노조가 참여했던 정치파업이야말로 저소득층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나락으로 빠뜨리는 비정규직 개악법안, 한·미 FTA를 좌절시키기 위한 사회적 연대였다. 비록 파업이 전국적으로 더욱 강력하게 전개되지 못해 비정규직 개악안 등을 막아내지 못했지만 현대차 노동자들은 1인당 30만 원 정도의 임금 손실을 무릅쓰면서도 이 같은 정치 파업에 참여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상여금 50%(조합원 1인당 100여만 원)를 아까와 하는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어떠했는가? 경영권을 아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회사공금 수천억을 횡령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불법 증여 행각을 벌이다가 발각이 되어 구속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의 ‘솜방망이’처벌에 의해 두 세달 만에 풀려났고 곧 사면될 거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쓴 변호사 비용만도 4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물 쓰 듯 써대는 돈은 바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삶을 쥐어짜서 얻은 것들이다. 특히나 98년 이후 현대자동차 그룹 산하에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대거 채워지면서 그 수가 1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밖에 안되고 생산라인이 폐쇄되면 언제든지 해고되는 등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려 왔다. 심지어 근로기준법에 주어진 연, 월차 휴가마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얼마 전,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실형을 살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한 분이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와 함께 상고이유서를 보내왔다. 지난해 7월 13일 현대자동차로부터 법원의 “출입금지가처분명령을 위반”했다며 고소를 당해 1심에서 실형 8월을 선고받았고 11월 10일 항소심마저 기각돼 대전교도소에서 꼼짝없이 징역을 살고 있는 전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부지회장 권수정씨였다. 그녀를 포함해 해고자 신분인 세 명의 전직 비정규직 간부가 모두 같은 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건으로 실형을 살아야 하는지 의아스럽기만 했는데 읽다보니 더욱 분노가 치민다. 2003년 3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는 의장라인 하청 노동자였던 송성훈 씨가 월차를 쓰겠다고 했다가 관리자에게 칼로 아킬레스건을 절단당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적어도 근로기준법에도 보장된 월차를 쓰다가 칼에 찔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금속노조 산하)를 만들었고 그녀는 부지회장이 되었다. 2004년 초 사내하청지회는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노동부에 고소하였고, 2004년 10월 노동부는 현대자동차 울산, 전주, 아산공장이 ‘파견근로’가 허용되지 않는 업종임에도 1만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고용해왔다고 판정하였다. 그러나 국가기관인 노동부가 불법이라고 판정해도 현대자동차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들도 그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오히려 회사는 노조 간부들을 대량해고 하고 법원에 출입금지 가처분을 신 청해서 공장 출입마저 가로막았다. 그러던 중 2005년 9월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었던 류기혁씨가 사측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참변이 벌어졌다. 아산 비정규직지회는 연대파업에 돌입했고, 9월 7일 공장안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 그 때 회사는 백주 대낮에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권수정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을 납치해서 봉고차에 태우고 30여 분이 넘게 돌아다니다가 외딴 산골 논바닥에 유기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조합원들은 회사와 용역깡패들을 모두 고소했지만 검찰은 “출입금지 가처분 명령을 받은 자가 회사 안에서 업무방해 하는 것이 인정되므로 납치해서 내다버린 회사의 폭력 또한 이유가 이해된다”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회사로부터 고소·고발당한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은 줄줄이 경찰에 소환되어 ‘업무방해’,‘공무상 표시무효’등의 혐의로 잇달아 구속되고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녀만 해도 세 차례나 구속을 당해야 했고 이번엔 끝내 실형을 살게 되었다. 검찰은 최근 현대자동차가 저지른 “불법파견”에 대해 기소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에 고용된 1만 여명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는 바로 세계 시장에서 현대 자동차가 가지는 가격 경쟁력의 원천이요, 기업 대물림을 이루는데 필요한 불법 자금의 돈줄이 되어 왔다. 때문에 현대자동차로서는 불법으로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법도 정부도 그들을 강제하지 못한다. 이런 현대자동차가 이제는 정규직 노조의 정치파업을 문제 삼으면서 그들에게 지급해야 할 상여금마저 깎으려 하고 있으니 만일 여기에 노조가 굴복하게 된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현대자동차 계열사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지금보다 더욱 후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현대자동차노조의 이번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언론은 더 이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라! 기업 위기의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돌려지고 기업 성장의 과실은 “배부른” 기업주들이 몽땅 챙겨가는 현실에서 ‘희생과 양보의 미덕’을 실천해야 할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2017-07-11 | hrights | 조회: 343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감옥에 있는 조선남 시인이 우리 단체로 스무 편 가량의 시를 보내왔다. 침침한 불빛아래서 볼펜으로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쓴 정성스런 원고, 시인의 피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번진 이 의지의 덩어리를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여기에 소개하기로 하였다. 조선남은 누구인가. 본명은 조기현. 건설 일용직 목수로 전국의 건설현장을 오가며 일했고 1989년부터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시 쓰기를 시작했다. 제1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고 『희망수첩』 등 몇 권의 시집을 낸 바 있다. 그의 시에는 땀에 찌든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의 애환이 오롯이 담겨있고, 노동자·민중이 바라는 ‘해방세상’의 밑그림이 새겨져 있다. 대구경북건설노조 위원장이었던 그는 지난 6월 “불법파업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구속 돼 1심에서 3년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선고공판이 있는 날 새벽 4시 일어나 가슴을 친다/ 나의 미욱한 싸움은 수많은 동지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평생 일 밖에 몰랐던 동지들이/ 폭도로 몰려 줄줄이 잡혀와 중형을 선고 받았고/ 또 오늘 저들의 법정에 죄인이 되어 선다” (『우리가 다음에는』) 그는 “밤새 가슴을 쮜어 뜯으며”“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미친듯이” 부른다고 했다. (『미친듯이 부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였던가. “신혼여행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마석 모란공원을 둘러보았고/ 초겨울 전국노동자 대회 전야제에 첫아이 핏덩이를 엎고 따라나서던 아내”(『아내의 사랑』중에서)도 있고 “가족들도 생각해야지....”하며 “안타까운 눈빛”“간절함”으로 “가슴을 찌르는 비수”같은 “처가 식구들”도 있다.(『천형의 길』중에서)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손톱이 다 닳도록” 비좁은 독거방 벽에 “그리움의 피”로 새기는 이름은 동지들이다.(『벽』중에서) “모래 바닥에 혀를 묻고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노가다 밥 먹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맹세를 하면서도/ 죽지 못해 다시 새벽에 현장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절망보다 무거웠던 생의 피울음으로 살아”(『형산강 다리, 해방의 다리를 건널 때까지』중에서)온 건설일용직 노동자들. 그들은 “차별없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미친듯이 부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더니/ 우리 가슴팎에 대못을 꽝꽝” 박았다.(『비둘기』중에서) 그러더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포스코 자본의 70%가 넘는 외국인 주주를 위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라”며 “살인명령”을 내렸다. “전국에서 불러들인 수백,수천의 전투경찰들은/ 집회를 하고 있는 일당쟁이 건설노동자들을 포위했다”(『살인명령』중에서) 그들은 “함정을 파고, 덫을 놓고, 언론까지 대기 시켜놓고/ 토끼몰이를 하듯, 해산명령도 없이 굶주린 이리떼처럼 덤벼들었다”(『우리가 다음에는』에서) 7월 16일. 하중근 열사는 경찰의 “방패에 찍혀, 뒤통수를 내리치는 소화기에 맞아/ 두개골이 깨어지고/ 진압봉과 군화발에 밟혀/ 갈비뼈가 부러졌다”(『살인명령』중에서) 시인은 이 땅의 깨어 있는 모든 양심들을 향해 부르짖는다. “살해당한 하중근 동지의 넋은 끝내 형산강 다리를 건너지 못했습니다/ 살인자도, 살인교사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끝나지 않은 부상당한 동지들은 다리를 절며 병원을 오가고, 다친 상처보다/ 피가 솟구치는 분노를 삭일 수 없는 먹먹한 가슴이 더욱 아픕니다/ 세상의 밝은 빛 한번 보지 못한/ 우리 아가의 영혼은 어디에 떠돌고 있을까/ 이대로 끝나는가?/ 참혹한 투쟁의 상처는 아직 피가 흐르는데/ 무장한 경비대에 가로막혀 정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출근을 저지당해 일자리를 빼앗긴 동지들/ 노동조합 탈퇴를 조건으로 취업하라는/ 굴욕과 모멸 속에 얼마나 더 서럽게 울어야 하는가/ 밤마다 포스코 높은 굴뚝에 불기둥이 솟는데/ 끌려간 동지들은 쇠창살을 부여잡고/ 이 밤 피울음을 토해내고 있는가/ 연락이 끊긴 애비가 구속된 줄도 모르고/ 울면서 애비를 찾는 착한 딸 아이의/ 서러운 흐느낌이 가슴을 저려오는데/ 우리의 투쟁은 여기서 끝났는가/ 동지여!”(『형산강 다리, 해방의 다리를 건널 때까지』중에서) 다음은 시인의 결론이다. “그날/ 아! / 그날의 함성과 만세소리/ 목이 찢어져라 부를 동지의 이름 기억하며/ 오늘의 모멸과 매질을 견뎌내자/ 감옥의 무거운 철문에 동지의 이름을 새겨 넣듯 노동자의 가슴에 해방의 이름을 새겨 넣자/ 형산강 다리/ 건설노동자의 해방의 다리를 건널 때까지/ 오늘을 잊지 말자!/ 동지여!”(『형산강 다리, 해방의 다리를 건널 때까지』중에서) 지난 28일 서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고 하중근 열사 공동대책위원회' 사진 출처 - 프레시안 국가인권위원회는 11월 27일, 하중근 열사가 사망한 지 119일 만에 무거운 입을 열었다. “지난 2006.7.16 포항 형산로터리 노조 집회와 관련하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제출한 진정사건을 조사한 결과 경찰의 금지통고 남용, 과잉진압 행위 등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하중근 씨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수사의뢰, 과잉진압 등에 대해서는 현장지휘관인 포항남부경찰서장을 징계, 서울지방경찰청 특수기동대장을 경고 조치할 것 등을 권고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회주의적인 국가인권위원회 관료들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비겁한 결정문이었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당시 집회 시위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은 인정되나 이것 때문에 하중근 열사가 사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경찰 현장 책임자에게만 과잉진압 책임을 물어 적당히 징계할 것을 권고하며 사망원인은 검찰이 알아서 잘 밝혀 주기를...’ 과연 검찰이 하중근 열사를 죽인 살인범을 잡아낼 수 있을까?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포항건설노조 구속 노동자 한 분이 11월 13일, 검찰의 항소이유서 사본과 함께 한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 9월 25일 대구지법 포항지원(1심)은 포스코 점거농성으로 구속된 노동자 58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하고, 그 중 27명에게는 1년 6월에서 3년 6월까지 실형을 선고했다. 노무현 정권 들어 최대의 ‘옥사’였고 가장 가혹한 실형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지경 포항건설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17명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내린 판결이 “지나치게 가볍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검찰의 항소이유서에는 삶의 벼랑 끝에서 목숨을 건 파업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의 기본권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쇳가루 한번 뒤짚어 쓰지 않고도 한해 6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챙겨가는 포스코의 대주주들을 위해서 건설노조의 파업을 “포항지역 최대의 불법집단 행동”으로 둔갑시켜 놓았고, 조합원들을 “소요죄에 상당하는 사회적 위험을 야기 시킨 자들”이라고 비약시키며, “집단 흉기 등 감금”“집단 흉기 등 폭행” 등 다섯가지나 되는 ‘폭처법’ 죄목으로 단단히 엮고 있다. 검찰은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쟁취를 위해 법질서를 파괴”했다며 “법의 준엄한 심판”을 요구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2만 5천명이나 되는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포스코의 불법대체인력 투입을 도왔고, 평화스런 집회 시위현장을 폭력으로 유린하며 하중근 열사와 임산부의 뱃속에 든 태아까지 살해했다. 경찰, 지역 언론과 포항시장, 지역 유지들은 합세해서 건설노조를 고립시키고 경찰폭력을 부추겼다. 진정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파괴한 자들은 누구인가. 이들을 단죄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하중근 열사가 생겨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중근 사망사건”을 또 다른 ‘살인의 추억’으로 남겨놓아선 안 된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90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구속노동자후원회]라는 자그마한 인권단체다. 하는 일은 파업투쟁, 노조활동, 정치활동 과정에서 억울하게 구속된 노동자들에게 서신, 책, 영치금 등을 보내며 후원하는 활동을 한다. 올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아주 바빠 질 때는 대부분 안 좋은 일이 터졌을 때이다. 월평균 30명 내외, 많으면 50명 선에 이르던 구속 노동자 수가 올해 들어 100명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다른 어떤 운동보다 여전히 많은 탄압을 받고 있다는 건 구속노동자 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감옥에 있는 양심수 가운데 70% 가량은 언제나 노동자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양심수가 대폭 줄어들었던 김대중 정권 시기에도 노동자는 892명이나 구속되었고 노무현 정권 들어서는 4년도 안돼 868명이나 구속되었다. “민주화 시대”이후에도 연평균 200~300명씩 꾸준히 구속을 당해 온 것이다. 노동운동에 가해지는 의도적인 탄압은 운동 전반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지고 있고 “국가 안보”를 빌미로 한 “공안정국”으로의 회귀 가능성마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이 끝나고 포항건설노동자 58명이나 대거 구속되고 난 뒤 어느 날,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오십 대로 추정되는 어떤 아저씨의 목소리였는데 우리 단체가 발간하는 소식지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내가 수화기를 들자마자, 말 한마디 할 틈도 주지 않고 마구 퍼부어 대기 시작한다. “뭐 이런 놈들을 석방하라고! 대한민국엔 법도 없냐?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순간 ,우리 사회가 온통 집단 마취에라도 걸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루 종일 우울했었다. 바야흐로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위상이 몰라보게 커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70~80년대 학생운동이 가지고 있던 위상을 노동운동이 이어받았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마저도 ‘대기업 노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기득권을 포기하라!’며 “대기업 노조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노조를 “사회악” “사회적 약자의 탈을 쓴 폭도”라고 매도하는 언론들도 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의 이런 공격은 노동조합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하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면서 군사독재가 자행한 “노조는 빨갱이”라는 식의 참주 선동이 어느 정도 잊혀질 만 했는데, 다시 많은 사람들의 뇌뢰 속에 새로운 편견과 오해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KTX 승무원들이 노동부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 거점으로 잡은 곳은 민주노동당 당사였다. 사진 출처 - 매일노동뉴스 우선 ‘노조의 파업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노동자들이 오랜 세월 투쟁을 거쳐 국제적으로 공인받게 된 기본권인데 파업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계속 심어줌으로써 파업을 탄압하고 규제하는 정부의 정책을 정당화 시켜준다. 물론 파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산이 중단되고 그로인해 기업의 대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는 있다. 하지만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이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면 소비여력이 생겨나고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내수 부진에 따른 투자위축이라고 많이 들 이야기 하는데 그 책임을 노동자들의 파업권 행사에서 찾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인권을 부정하는 발상이다. 경제 불황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지 못하고 사회적 필요보다는 이윤을 좇아 생산하다보니 ‘과잉 생산’은 늘 문제가 된다. 즉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업주들이 시키는 대로 너무 많이 일하다 보니 필요 없는 상품들이 시장에서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은 갈수록 줄어들고 불황은 악순환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대기업 노조는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특권집단이다.’ 노동조합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전부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자기 ‘밥그릇’을 확실하게 챙긴다면 우리 사회 ‘삶의 질’은 확실히 나아질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처럼 약 11% 가량인 소수의 노동자들만 노조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헌법, 노동법쯤은 가볍게 무시하고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려먹기 위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는 식으로 집요하게 탄압하는, 삼성 같은 생각을 가진 기업주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이들의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면서 어렵게 생존해가는 노동자들이 현실의 장벽을 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소수지만 선두에서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 “대기업 귀족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전반적인 노동자들의 생활이 향상되거나 더 나빠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대기업 경영자들이 노조에게 양보한 만큼 하청기업을 후려쳐서 결과적으로 하청노동자들이 더욱 어려워진 문제는 대기업 노조가 의도했다기보다는 한국의 잘못된 기업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므로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다. 분명한 건 하청노동자들도 노조를 자유롭게 만들어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만 그들의 현실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하중근 조합원 장례식 날의 모습 사진 출처 - 매일노동뉴스 세 번째 “노조는 사회적 약자의 탈을 쓴 폭도”라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여름 포항 포스코 점거처럼 과격투쟁을 도맡아 하는 것도 민주노총이고, 지난 5년간 100일 넘게 파업한 장기 분규 사업장 54곳 중 51곳도 민주노총 소속”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구속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들이 주장하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죄목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1500만 노동자 가운데 60% 가량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법으로는 노조활동이 보장되어 있지만 노조를 만들어도 친목단체 이상의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업주하고는 교섭조차 할 수 없고 생산라인을 끊는 파업을 벌이거나 공장에서 천막치고 농성하다 보면 “업무방해죄” “폭력죄” 등이 성립된다. 지난 9월 30일까지 집계한 2006년 구속노동자 218명 가운데 86%인 187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사용자들은 법에 어긋난 줄 알면서도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 용역깡패들을 버젓이 투입해서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그래도 그들은 구속되지 않는다. 오로지 일방적으로 얻어맞다가 분에 못 이겨 몇 대 때린 노동자들만 구속당한다. 그래도 “폭력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사용자와 합법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100만원도 안되는 쥐꼬리만한 전임비를 지급받았다는 것 때문에 “공동공갈범”으로 몰려 구속 기소된 한 건설노조 간부의 편지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건설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누군가가 얘기 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건설노동자들은 수십 년 동안이나 법의 사각지대에서 사회적 냉대와 목숨을 담보로 한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 누군들 세상을 살면서 빡세게 투쟁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억울하게 당하고만 사니까, 하다하다 안되니까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까 투쟁하고 투사가 되어지는 것 아닙니까?.....건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은 정치권으로 수천억씩 흘러 들어가고 정치하는 놈들은 그 돈 받아 처먹고 건설 자본가 놈들 뒤치다꺼리나 해주니까 건설현장이 온갖 부조리와 불법이 판을 쳐도 어떤 놈 하나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불법을 까발려 봤자 결국 자기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건설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별거 아닙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건설노동자들 등골 좀 이제 그만 빼먹고 건설현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시민들이여, 이제는 그만 노동운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보자!!
2017-07-11 | hrights | 조회: 350 | 추천: -1
무원칙의 대북정책을 원칙 있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요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살펴보면 무엇이 ‘원칙’이고 무엇이 ‘유연성’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요즘 개그 유행어처럼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똑바로 해 이것들아~~”와 같은 답답한 심정이다. 물론 대북정책뿐만이 아니다. 서민을 위한 정부라면서 정부 인사의 사교육 감소 정책 발언에 대통령이 나서서 자중하라고 경고하고 있고, 부자감세 등으로 줄어든 세입을 채우기 위해 추경예산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덮어씌우고 있는 현실 또한 답답하다. 여기에서는 최근의 남북관계를 살펴보자. 지난 4월 5일, 북한의 인공위성 로켓 발사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 정세는 계속 요동치고 있다. 로켓 발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내부 결속 증대와 대미 협상력 강화에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악화된 남북관계 또한 이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모두 인지하듯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다는 ‘듣보잡’ 구호 아래 대북정책에서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비핵개방3000 대북정책 등장, 무조건 기다리겠다는 엄격한 상호주의 전략, 통일부 폐지 시도, 통일부 내에 외교안보라인 강화 결과는 북한의 대남강경 입장들만 강화시켜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대남 협상세력보다는 강경세력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지난 두 달여 동안의 대북정책은 그야말로 무원칙, 감정 대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몇 달 전부터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전면 참여를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내부 진통 등으로 현재까지도 혼선을 빚고 있다. 이렇게 전면 참여를 하지도 않을 바에 왜 그렇게 빨리 발표를 했었는가. 대북 엄포용이었나? 격한 감정을 드러낸 것인가? 혹시 대중들에게 정치적 쇼를 한 것이었나? 또한 최근에는 한 달이 넘게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 직원 신병 처리 문제에서도 물의를 빚고 있다. 보름 전에 유명환 장관이 이 문제를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기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도 행동에 못 옮기고 있다. 주변의 상황을 고려하다보니 일이 더 커져버릴 것 같은 판단 때문이다. 역시 실효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진행한 무원칙, 감정 대응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지난 4월 21일, 22분 만에 끝나버린 남북 당국자 첫 공식 접촉은 북한의 개성공단 특혜조치 전면 재검토로 마무리되었다. 현 남한 정부가 6.15와 10.4선언을 인정하지 않는 만큼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원칙은 사라졌고, 더 이상 특혜를 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통보한 것이다. 개성공단 확대·발전은 경제적 이익을 뛰어넘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불러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북관계의 뒤틀림 속에서 개성공단 운영마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무원칙과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상호 신뢰 회복을 위한 여러 조치들을 즉각적으로 취하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첫째, 6.15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의 개성공단 문제는 단순히 무상 사용료, 낮은 임금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볼 때는 남한이 서로 약속한 공동선언을 파기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한국은 지금 깊이 논의되고 있는 PSI에 전면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 PSI의 강제차단 행위는 국제법 논란 여지가 있으며, 무기 확산 의혹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으며, 한 국가에 군사적 행동과 경제봉쇄까지 가져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시스템이다. 특히 한국이 PSI에 전면 참여할 경우, 영해상에서 군사적 충돌 위험성이 커지고, 이는 결국 남북 간에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므로 글로벌 차원이 아닌 우리 문제로서의 로컬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남북이 서로 맞대고 살아가는 운명공동체인 만큼 기존의 남북해운합의서 틀과 PSI의 부분적 참여를 유지하면서 슬기롭게 남북관계를 관리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미관계의 변화를 주목하여 한국의 실리를 챙기는 적절한 대북정책을 펼쳐야 한다. 사실 이번 로켓 발사는 미국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졌다. 오바마가 조만간 대북정책에 대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할 경우, 대북정책 기조가 비핵화와 비확산인 만큼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펼쳐나갈 것은 분명하다.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 간의 끝없는 대화이고, 역사철학자 액튼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했다. 바로 지금의 남북관계의 답답한 상황을 우리는 어디에선가 경험한 듯하다. 바로 김영삼 정부 시기와 유사하다. 당시 93년 북핵 1차위기 때 김영삼 정부는 “핵을 가진 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고 했고, 이후 조문 파동 등까지 겹쳐 남북관계는 김영삼 정부 말기까지 노태우 정부보다 더 냉랭해졌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클린턴 정부와 불협화음을 보였고, 북미 간에 발전된 행보를 멀뚱히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지금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실효성 있는 대응을 내놓기도 전에 원칙 없는 발언과 행동 등으로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벌써부터 오바마 정부와의 대북정책이 삐걱거리며 혼선을 빚어가고 있는 듯싶다. 지난 김영삼 정부의 남북관계 추락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대북정책을 실효성 있는 화해·협력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면서 신중한 접근을 통해 한국의 발언력을 계속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요즘 남북관계가 15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만약 개성공단이 이대로 문을 닫아버린다면 남북관계는 30년 전 이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암울한 현실에 놓여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경제공동체를 뛰어넘는 통일공동체로의 변화·발전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지난 4월 5일, 이대통령이 “북한은 로켓을 쏘지만 우리는 나무를 심는다.”고 언급하였다. 이렇듯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지난 10년 간 남북 화해·협력 정책이 성공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점을 깊이 살피고,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는 취임사와 같이 지금은 한국의 국익을 생각하여 대북정책을 펼쳐가야 한다. 이 정책이 바로 ‘원칙’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56 | 추천: 0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개인 호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 시민단체 회비도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다. 몇 군데 내는 후원금조차도 망설이며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는 자괴감과 동시에 반발심이 생기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배운 얄팍한 모든 것이 동원되면서, 무엇 때문에 사는 지 스스로 점검하게 되는 ‘경지’에 다다른다. 어쩌다 시간을 내서 단체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제대로 못해 미안해하던 마음에서 내가 지지하는 단체는 무엇을 해왔는지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때 마음을 스스로 관찰해 보면 이기적인 속물이 되어 있는 ‘나, 개인회원’을 확인하게 된다. 최고 권력자나 기관을 비판하는 일은 유명한 시민사회단체에서 하는 일이고, 상당히 유명한 시민단체 운동가가 하는 일이라고 미뤄 두었던 일이 이젠 과감하게 ‘내 일이 되는 비약’이 생기게 된다. 자신이 쓴 원고의 글 한 줄도 혹시 정보기관의 감시는 받지 않는 지 자신의 일터나 관계되는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는지 숱한 자기검열을 한다. 동시에 망설이던 초라한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배짱 두둑하게 단체 일에 비판도 하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왜 노력이 부족하고 결과는 미미한지 꾸짖어 보는 ‘객기’도 벌이게 된다. 이때가 회원 한사람으로 단체 활동을 가장 빛나는 순간이며, 스스로 역설적인 ‘최고회원’이 되는 때인 것 같다. 지난 4월 17일에 있었던 '4.19 혁명 국가조찬기도회' 모습 사진 출처 - 국민일보 한 단체의 회원인 현직 대통령이 ‘주책’맞은 일을 했다. 지난 4월 17일 ‘4.19 혁명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국가보훈처장을 시켜 대신 읽게 한 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하심이 북녘 땅에도 함께 임하여...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던 것처럼,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라고 말했다. 이 기도회는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 족회, 4·19혁명공로자회 등이 공동 주관하고 4·19선교회가 주최한 행사이다. 기도회를 주관한 3단체는 법률로 정한 국가유공자 단체이다. 반면 기도회의 주최기관은 4.19선교회이다. 이 단체는 지난 84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4.19혁명의 이념을 역사 속에서 선양, 계승하고 정의사회와 국가번영, 조국통일을 위한 사명을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립했다. 선교를 목적으로 한 임의단체이다. 이 대통령은 또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 극복을 칭송하면서 아예 따라 배우자고 제안했다. 올해 초 가자지구를 초토화한 이스라엘의 만행을 알고는 있는가! 남의 땅을 가로채고, 국제법을 어기고, 무고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이들을 따라 배우라니.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4.19와 폭력적 국가주의문화의 상징인 이스라엘을 연결시키는 대통령의 착시와 종교적 맹신이 놀라울 뿐이다. 이 정도면 대통령의 종교관, 정치관, 역사관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것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근무시간에 국가조찬기도회에 나아가 ‘여호수아의 말씀을 깊이 새겨 국정운영에 반영하겠다’고 하여 물의를 빚은바 있다. 대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왜 이렇듯 부적절하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앞세우는 것도 모자라, 아예 이스라엘의 열렬한 추종자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기도회에 축사를 한 것 자체도 문제다. 4.19를 기리는 기도회를 하려면 선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조찬기도회를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법률로 인정하는 3단체를 주관단체로 내세워 ‘국가’조찬기도회라는 명칭으로 행사를 하였다. 기도회 자체가 마치 국가행사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는 정교분리 위배 혐의가 농후한 행사에 대통령이 가세해 매우 극단적인 종교적 언사를 일삼는 것을 국민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대통령 개인의 신앙은 중요하다. 그러나 제발 대통령이라는 공직의 테두리에 종교를 갖고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 왜 신앙고백은 꼭 그렇게 시장이나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앞세워야만 되는 것인가?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난국에 대통령이 다시 이 문제에 불씨를 지피는 발언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공무원복무규정과 행동강령이 만들어지고, 문광부에 공직자종교차별신고센터가 설치되고,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이 개정되어도 종교차별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이렇게 대통령부터 정교분리 헌법을 유린하는 것 때문이라는 세간의 지적을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현직 대통령도 한 단체의 회원으로, 한 교회의 신자로 ‘객기’를 부릴 수 있겠지만 이 정도면 그냥 봐 줄 수 없다. 문제점을 인식한 한 사람부터 스스로 한 단체의 회원으로 더 열심히 회비를 내고 글도 쓰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이명박 회원’도 하는 마당에 더 주저할 필요도 없다. 개인이 속한 단체에서부터 열심히 활동하는 이웃단체까지 스스로 최고의 회원이 되어 일하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 최고의 회원들끼리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놓고 겨뤄보아야 행복한 세상이 온다는 평범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99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작년, 이명박 정부는 출범초기부터 무척이나 법과 원칙을 강조해왔다. 집권 2년차인 올해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촛불을 들었던, 인터넷에 글을 남겼던, 생존권을 주장하는 많은 이들을 법과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꾸준하게 탄압하고 있으니 말이다. 말이 탄압이지 올해 초에는 생존권을 요청하는 철거민들과 경찰 포함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정부는 법과 원칙만을 되풀이했다. 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유엔인권이사회 주거권 특별보고관 발표 시에 한국의 엔지오들이 용산참사를 언급하며 문제제기를 하였을 때에도 한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반론권을 사용하며 용산참사에 관하여 시위자의 불법성을 강조하며 경찰의 법집행은 적법하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작년에 타올랐던 촛불집회와 관련된 검찰의 약식기소와 불구속 기소가 (현재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만) 이미 600건 가까이 접수되어 진행되고 있고, 10개월 전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고등학생을 경찰이 최근까지 3차례나 경찰서로 불러 조사 하고 있는 모습도 모든 것이 법과 원칙하의 행동이라 한다. 여기에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법과 원칙이라는 옐로카드 앞에선 별다른 저항 없이 수긍하고 그 무게감을 동의하고 있다. 어찌 보면 어릴 때부터 준법정신과 공동체 정신을 도덕적 중요 덕목으로 여기고 생각해 왔던 우리들에겐 어쩔 수 없는 한계이자 솔직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그토록 그들이 강조하는 법과 원칙이 현실에서 객관적으로 적용되고 있을까? 한참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촛불을 탄압할 때 경찰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경찰직무집행법을 준수하였나?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체포하고 연행했을 때 미란다원칙 고지나 현행 형사소송법을 준수하였나? 집시법과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여 적어도 600명이상의 사람들을 사법처리하면서 집회시의 경찰 폭력에 대해서 피해 받은 다수의 시민들이 제기한 고소고발에 대해서는 사법처리를 진행하고 있는가? 이후에 인터넷상에 글을 써서 유명세를 받은 사람이 정부정책에 반한다하여 사법처리하는 것은 적법하였는가?(최근의 판결로 인하여 미네르바는 무죄를 받았다.) 재미있는 예가 또 있다. 지난 3월 신문보도에 의하면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다주택자에게 양도소득세 중과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 채 세금을 깎아 주는 행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쉽게 이야기 하면 여러 채의 주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집을 사고팔 때 내야 하는 세금을 행정부에서 일부러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금 징수여부는 철저히 법에 의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부동산 활성화라는 정부정책에서는 법도 그리 중요치 않는가 보다. 사진 출처 - 필자 또 있다. 현재 용산참사 관련하여 재판이 진행 중인데, 변호인단 측에서 검찰의 수사기록을 열람하기 위해 재판부에 신청을 하였고 재판부는 검찰수사기록 열람 결정을 하였는데도 검찰 측은 열람을 거부하였다. 거부하였을 때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법의 사각을 이용한 것이다. 변호인단 측에서 아무리 주장을 하여도 심지어 재판부의 결정이 있어도 검찰은 그냥 무시한다. 짧은 지면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정부와 경찰, 검찰이 무원칙하고, 법률을 어긴 부분은 대단히 많다. 도대체 뭐가 법과 원칙이란 말인지?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다. 약자들에게는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들과 가진 자들에게는 탈법과 무원칙을 적용하는 경우는 도대체 어느 나라 법과 원칙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인권의 관점으로 정부가 법 집행을 할 것은 애당초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법과 원칙을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한 바람이지 싶다. 권력의 유지도구로써 사용되는 법과 원칙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36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대통령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홀트 일산요양원에서였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요양원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은 장애아로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노래를 듣던 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공연이 끝나자 “여러분 노래가 가슴속, 영혼에서 나오는 소리같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며 “위로하러 왔는데 우리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애인의 날이었던 20일 우리는 언론에서 ‘이 대통령의 눈물’을 만날 수 있었다.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거의 대다수의 언론이 일제히 이 대통령의 눈물 사진 또는 영상을 큼지막하게 보여주었다. 이날 눈물에 대한 사연도 비교적 자세히 소개했다. 그 논조도 대부분 ‘감성이 풍부한 이 대통령’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눈물이 반갑지 않은 건 왜일까? 장애아들의 아름다운 공연을 보고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장애인의 날이라는 적절한 시기를 이용해 “쑈”를 한 것에 대해서도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눈물에 감춰진 진실은 좀 따지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장애인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이 정말로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 한 보수언론과 낙태에 관한 인터뷰에서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라고 말한바 있다. 즉, 장애인을 ‘낙태할 수도 있는’ ‘죽여도 되는’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장애를 가진 것은 비정상이기 때문에 제거해도 된다는 천박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이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장애아들의 공연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니 어찌 그 눈물이 진정성을 가진 것으로 보일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의 눈물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악어의 눈물’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리는데, 그것은 슬픔이나 참회 때문이 아니다. 종종 자기 입보다 훨씬 큰 덩이를 삼키기도 하는데 그러고 나서 숨을 급하게 들이 쉬면서 눈물샘이 눌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먹이를 먹을 때 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것’처럼 위선적인 눈물이고 이 대통령의 눈물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홀트일산요양원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아로 구성된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노래를 듣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이 대통령은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장에 영상메세지를 보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에게 먼저 묻고 싶다. 장애인에 대한 당신의 편견은 정말로 없어진 것입니까? 눈물이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눈물이라는 감성으로 접근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장애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피눈물 나는 싸움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장애인은 이동할 자유조차 제약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교육에 있어서의 차별과 배제는 뿌리 깊다. 민간영역에서의 장애인 고용은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다. 방송에서 장애인을 빗댄 개그와 코미디가 아직도 먹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그저 비장애인들의 시각일 뿐이다. 정부의 정책은 훨씬 걸음마다. 장애관련 예산을 보자. 이 대통령은 선거 공약에서 장애인 예산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은 OECD 평균 2.5%의 1/9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또 올해 장애인 예산은 3.6% 상승했지만 이는 물가상승에도 미치지 못해 실제로는 준 것이라고 한다. 장애인 고용은 어떤가. 2008년 공공부문 장애인 의무고용률도 1.76%에 불과해 법적 규정조차 공공연히 어기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장애인의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축제여야 할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 당사자들은 거리에서 ‘투쟁’을 외치고 길바닥에서 노숙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화려하게 진행된 장애인의 날 행사장에 가지 않고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장애인차별철폐의날’ 행사를 가진 이들이 주장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탈시설-주거권 전면 보장 △장애인차별금지법 무력화 시도 중단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개악안 철회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실질적 정책수립 △장애인연금제도 즉각 도입 △활동보조권리 보장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 △장애인교육법 실효성 제고 정책 시행 △장애인 의료보험 및 의료정책제도 개선. 이른바 장애인 생존권 9대 요구안이다. 이런 일들이 어찌 손수건으로 훔칠 정도의 눈물로 해결될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이 정말로 장애인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립서비스’나 ‘쑈’가 아니라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위로 받을 수 있는 정책’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35 | 추천: 1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올해에는 새로 신입생 1학년을 맡게 되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볼을 하고 아직은 어색한 교복을 입고 부산하게 수업준비를 하고 교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는 것 자체가 교사로서 큰 행복이다. 이 눈망울을 마주대하면서 교사들은 수업이나 교육활동에 대한 최선을 새삼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1학년 신입생들을 지도하는 데에는 어려움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처음’ 이라는 것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넘쳐나는 의욕으로 반짝거리고, 그 모습에 교사들은 힘들지 않게 수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마다 조금씩 그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싱싱하고 보송보송해야 할 우리 새내기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모든 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배추 고갱이와도 같은 싱싱함을 지니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아침부터 늘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사들끼리 올해 신입생 아이들에게 ‘절여진 배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수업시간마다 절여진 배추 헹구느라 힘들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많다. 이 지역의 많은 아이들은 입학 전에 이미 엄청난 선행학습을 하고 온다. 수학과목의 경우, 이미 1학년 과정, 또는 2학년과정까지 마치고 고교과정인 ‘수학정석’을 풀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아이들이 많은 이 지역의 특성상 영어사교육 또한 엄청나다. 대학교수준에 해당하는 ‘TEPS’를 공부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며, 더 나아가 아침 7시에 영어 학원 수업을 1시간 듣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력수준이 제각각인 이런 아이들 40여 명이 앉아 있는 교실에서의 학교수업이 학생들 개개인에게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쳐 늘어져 있는 이 아이들과 하루하루 씨름을 하고 있는 우리 교사들도 수업이 끝난 후 뒤통수 개운하게 교실문을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달 KBS 추적60분에서 방송한 ‘이래서 사교육이다!’라는 프로그램은 현장교사로서 정말 착잡하다 못해 참담한 기분을 떨칠 수 없게 했다. 일명 ‘스타강사’로 불리우는 대치동 학원가의 강사들과 학부모들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학교현장에서는 열심히 하려는 교사가 왕따 당한다.” “교사들이 다시 열정을 가지고 교육활동을 하면 공교육은 살아날 것이다.” “우리도 공교육이 잘 되길 바란다.” “성과급을 주면 뭐하냐? 1/n로 나눠 갖는데...” “학교에서는 인성교육도 학력신장도 다 제대로 못하고 있다.” 등등. 그리고 한 해 20조원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 사교육시장, 거기다 600억 원을 재투자하는 명문학원들, 카이스트졸업생들을 연구원과 비서진으로 10여 명 씩 두고 있는 연봉 수십억의 스타강사들의 모습, 월 평균 한 아이 당 300만 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쓴다는 강남 학부모들의 이야기, 족집게 강의를 받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 학생들의 서울대 입학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자료들.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는 거였다. “입시제도나 정책만 탓할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스스로 변화해야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을 것” 이라고. 그 방송을 보면서 정말 프로그램 기획자의 의도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타강사나 학부모들의 인터뷰내용에 진정성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웬만한 가정의 한 달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사교육에 쏟아 부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저지른 심각한 오류를 지적하고 싶다. 10여 명의 연구진을 거느리고 오로지 성적향상만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몇 몇 스타강사의 일상과 하루에도 몇 건 씩 보고해야 하는 공문처리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겸하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학교교사의 일상을 단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했다. 어느 교육학자의 말처럼 학력신장을 학교교육의 목표로 삼는다면 공교육이 이미 골리앗이 돼버린 사교육을 이긴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앵커의 주장을 존중해 교사가 현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변화한다고 해도 학원을 따라잡을 순 없다. 차라리 이 정부가 좋아하는 ‘효율’을 따진다면 학부모에게 이중과세하지 말고 차라리 공교육기관인 학교를 모두 없애고, 이 정부가 진리로 믿는 ‘시장의 원리’에 교육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알아서 학부모의 경제력에 맞게 능력껏 학원에서 ‘실력’을 향상시키면 될 일이다. 이 해괴한 우리의 교육현실이 빚어진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경쟁제일주의’라고 봐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경쟁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육감이 승인한 국제중을 비롯한 자립형사립고들이 늘어나고, 대학들이 고교를 등급화 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 일이 중단되지 않는 한 모든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1등과 꼴찌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수학도 아닌 산수로 풀어도 되는 쉬운 문제 아닌가? 이렇게 쉬운 답을 애써 외면하고 공교육 부실의 원인을 교사들의 탓으로 슬쩍 넘겨버리는 프로그램 기획자의 의도에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추진할 교사평가를 위한 초석을 다지려는 의도는 아닌지 말이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차분히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공교육기관인 학교의 교육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민주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게 한다.’로 기억하고 있다. 이게 잘못된 것이라면 지금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학교교육의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하지 않을까. 교사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싶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과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있도록,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타성에 젖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점검하는 일도 우리 교사들의 몫임은 인정한다. 며칠 전 또 100여 명의 교사들이 ‘진단평가’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일제고사에 ‘불복종선언’을 한 바 있다. 공교육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이 진정이라면, 학교현장에서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교사들의 주장을 ‘불법집단행동’으로만 매도하는 것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3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