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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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세종시 논란이 뜨겁다. 정부와 지방 정부, 해당 주민들, 국민 여론, 정부 여당 내부, 정당 간 등 나라가 들썩거린다. 세종시와 관련해서는 참여정부 시절 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신행정수도 정책으로 처음 등장했고, 이후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판결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정책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이 정책을 대폭 수정하려고 한다. 이러면서 시끄러워졌다. 나는 세종시 정책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런데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 바꾸기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현 대통령은 행복도시 정책을 계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가 안 될 거라고 하는데 자신은 ‘꼭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역설했다. 공식 석상에서 약 열 다섯 차례의 세종시 공약 이행 발언을 해 왔음에도 최근 말을 뒤집었다. 그리고 행동대장으로 정운찬 신임 총리를 내세우고 뒤에 숨어 있다. 더불어 작년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때도 느꼈지만, 역시 이번에도 해당 정부기관에서는 정책변경에 대한 근거 자료를 확 바꿨다. 현 정부 들어와 세종시 공약만 수정, 폐기된 것은 아니다. 대학 등록금 반 값, 통신비 인하, 신혼부부 아파트 공급, 저소득층 복지예산 감소 등 하나 둘이 아니다. 더불어 경제성장률 7%, 임기 내 국민소득 4만 불과 7대 강국 진입, 주가 5,000포인트, 300만 명 일자리 창출도 결과적으로 헛공약 남발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미국에서 느닷없이 서울-평양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쇼도 씁쓸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렇게 공약 폐기와 헛공약 남발을 일삼는 이명박 정부는 ‘나들섬 프로젝트’ 또한 올 해 슬그머니 간판을 내렸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강화도 북서쪽 한강하구에 약 900만평(여의도의 10배) 크기로 복토하여 인구 20만 명 규모의 국제 비즈니스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밝혔다. 동북아 물류거점 확보와 남북경제협력의 터전으로 만든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 개성공단의 확대·발전을 경계하였다. 그러나 통일부의 2008년 계획에도 존재했던 나들섬 구상이 2009년에는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현인택 현 통일부장관이 나들섬 구상의 핵심 인물이었음에도 말이다. 열흘 전에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다녀왔다. 한강하구를 건너 정면으로 북한 황해남도 당두포가 자리하고, 북서쪽으로는 정부가 구상했던 나들섬이 보였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섬 가운데가 잘려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는 서해 바닷물로 인한 조수 간만의 차와 한강하구 유역의 물살 흐름이 유동적인 것에서 기인한다. 정부가 기존 섬에 엄청난 토사를 쏟아 부어 900만평의 섬으로 만든다 해도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의도적으로 개성공단 2단계 발전을 축소하고, 현 남북관계의 냉랭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정책이었기에 폐기되었다고 보여진다. 한강하구의 조수 간만 차이로 나들섬이 두 섬으로 나뉘어졌음 사진 출처 - 필자 이렇게 ‘빚 좋은 개살구’ 대북정책을 일삼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9월, 미국에서 ‘그랜드 바겐’ 정책을 제시했다. 결국 북핵 폐기와 북한 체제 보장을 동시에 일괄적으로 타결하자는 정책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책이 과연 현실성이 있냐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두 비현실적이거나 정치적 위장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조차 정운찬 총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그랜드 바겐 정책에 대해 엇갈린 해석을 내놓을 정도로 다듬어진 정책이 아니다. 남한 정부는 최근 북한의 대남 유화적 태도를 엄격한 상호주의를 펼친 대북정책의 치적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남북 교류협력사업 진행에 대한 승인을 불허하면서 기다림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그랜드 바겐 정책을 ‘비현실적이며 얼빠진 제안’이라고 부정적으로 일축하였다. 결국 행동 대 행동 원칙 해법이 아닌 그랜드 바겐이라는 ‘한 방 해법’은 지난 정부와 다른 대북정책을 내놓겠다는 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한미 간에 아프간 파병, 그랜드 바겐, FTA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그랜드 바겐이 미국 대북정책과 유사성을 갖추고 있다고 수사적 발언으로 대국민 홍보를 하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다음 달 보즈워스 미국 대북 특사의 평양 방문으로 개최되는 북미회담의 결과는 그랜드 바겐 원칙과는 멀어 보인다. 일괄 타결이 아니라 행동 대 행동 원칙 속에서 북미관계의 진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더불어 일본 하토야마 총리도 곧 방북하겠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결국 북핵해결에 있어 남북관계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one shot deal’이라는 그랜드 바겐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남북관계를 조금씩 진전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남북이 주도해가는 분위기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남북이 미국, 중국, 일본 등과 공동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결국 그랜드 바겐 정책으로는 더 이상 한국이 설 자리가 없다.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 쇼는 멈춰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나는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다. 지금은 기아 타이거즈가 됐지만, 그 이전인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의 팬이었다. 순천이 고향인 탓이 크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이거즈 소속 야구선수들은 늘 우상으로 존재해왔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호남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던 시절 타이거즈는 전성기를 누렸으니 더 그랬을 법도 하다. 해태 타이거즈를 5월 광주와 연관 짓는 묵시록적 경향은 비단 황지우 시인 세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열광하게 하는 무언의 힘이 분명 존재했다. 야구장에서 타이거즈 선수들이 날리던 한방은 그야말로 카타르시스였다. 그러던 타이거즈의 야구가 기아로 넘어가면서 영 맥을 못 추었으니 팬들은 무언가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정치적으로는 해빙기가 아니었던가. 때문에 타이거즈 팬들에게 올해는 최고의 해였다. 그토록 열망하던 열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V10’을 기어코 달성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나지완의 역전 홈런이 있고 나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은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해태 시절부터 선수로 뛰었던 이종범의 눈물은 팬들의 가슴 속에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하필 또 다시 정치적 상황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광주에서 근무하고 있는 터라 올해 야구장을 여러 번 찾았다. 기억 속 저편에 자리 잡고 있던 카타르시스의 열망도 있었다. 올해 유난히 잘 나가는 타이거즈의 야구를 보며 소주 한 잔 하는 즐거움은 서거정국의 암울함을 잊게 하는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내 정치적 지향과는 거리가 있는 얘기지만 ‘야당이 되니까 타이거즈 야구가 살아난다’는 말은 올해 내내 술자리의 좋은 안주였다. 다만 이러한 흥겨움 속에서도 늘 불만이었던 것은 타이거즈가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무등야구장의 형편없는 열악함이었다. 만 5,000석밖에 안 되는 관중석은 너무 비좁고 불편하다. 좁은 복도에 편의시설도 제대로 없다. 그라운드 사정은 최악이고 선수들은 부상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지은 지 40년이 넘는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열 번의 우승이라는 대단한 역사를 썼으니 그저 신기한 일이다. 이런 타이거즈의 선수와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새로운 야구장을 짓겠다는 박광태 시장의 약속이다. 타이거즈가 페넌트레이스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부터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니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실시되자 기정사실처럼 소문이 흘러나왔다. 급기야 한국시리즈 우승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야구장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나왔다. 포스코와의 돔구장 건설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광주 시민들과 타이거즈의 팬들도 소원하는 것이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돔구장’이어야 하는 것일까? 새로운 야구장이 돔구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이는 내년에 있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 둔 ‘정치쇼’라는 지적들이 일고 있다. 3선을 노리는 박광태 시장과 새롭게 출사표를 준비 중인 인사들과의 정치적 공방은 분명 가열될 것이다. 어찌 선거와 관련성이 없겠는가마는 사실 이는 정치권의 관심사일 뿐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돔구장이 합리적인 결정인가이다. 광주시가 포스코 건설측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돔야구장 신축문제가 지역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낡고 오래돼 원성을 사고 있는 무등경기장 야구장. 사진 출처 - 광주드림 우선 결정과정에서 광주 시민들과 타이거즈의 팬들, 구단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양해각서가 체결되기까지 광주시의 일방적인 결정이 있었을 뿐 사업설명회나 공청회는 있지도 않았다. 그 흔한 여론조사조차 없었다. 시민들의 염원, 팬들의 하소연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업이 철저한 밀실행정에서 이루어졌다. 새로운 야구장에 대한 소문에서 돔구장으로의 확정까지 걸린 시간은 검토조차 이루어졌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러한 행태는 야당이 그렇게도 비난하던 현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꼭 닮았다. 또한 돔구장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업이다. 일반구장이 1,000억이면 가능하지만, 돔구장은 4,000억 정도가 소요된다. 물론 민간에 의한 기부체납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구장으로 지을 경우 광주시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3-400억의 재정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단순 계산일뿐이다. 개발업체는 ‘공’으로 기부체납을 하는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대형 상업시설의 입주와 주변 상권에 대한 권리행사로 광주시의 소상공인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연간 100억 원의 유지비도 문제다. 그런데도 시, 시민, 지역기업, 소상공인 공동출자 등 다른 방식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개발방식도 문제다. 돔구장 주변을 스포츠·레저 중심의 신도시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또 부대시설을 짓고 경기장에서 일 년 내내 문화이벤트를 해서 관광자원으로 쓰겠다고 한다. 인구 140만에 불과한 광주시는 이미 주택공급이 넘쳐나고 있다.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 지역의 미분양 사례는 속출하고 있고, 지난해는 아파트 분양시장이 최악의 불황을 겪어야 했다.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돔구장을 위한 신도시라니 이것 또한 ‘삽질’하고 보자는 현 정부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또 인구 규모나, 야구장이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 들어서 접근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수익성에도 의문이다. 외곽도 아닌 광주월드컵경기장과 일본 돔구장의 적자운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야구장을 환경과 바꾸어야 하는지도 회의적이다. 시민들의 숙원이었고, 나를 포함한 타이거즈 팬들의 염원이지만 자연녹지를 훼손하면서까지 추진할 일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광주에 야구돔구장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인천 문학구장 정도의 일반야구장이면 훌륭하다. 좀 더 나은 환경의 야구장에서 타이거즈 팬임을 긍지로 느끼며 야구를 즐기고 싶다는 광주 시민들과 팬들의 소박한 꿈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양해각서라는 것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닌가. 오히려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는 ‘정치쇼’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이지 도시락이나 싸야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0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Frank La Rue, 이하 특별보고관)는 지난 10월 13~14일 동안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아 지역의 사이버 표현의 자유 현황과 과제”의 국제심포지엄과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과 유엔특별절차 활용방안” 국제 워크샵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였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제도)는 유엔인권메커니즘 중 하나로써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인권침해사항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 당사자 또는 피해 당사자와 연관된 개인이나 단체에서 특별보고관에게 관련 사항을 알리고 이에 대해서 개입을 요청하면, 특별보고관은 그 사항에 대해서 당사국에 관련 사항을 질의하고, 필요시 당사국에 방문하여 조사방문을 수행할 수도 있고, 이에 대해서 유엔차원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번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 방문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사실에 대한 보고관으로서의 조사방문이 아니라, 아시아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와 민변을 포함한 인권시민단체들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하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표현의 자유 사례에 대해서 언급을 하거나 한국 정부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도 할 수 없는 순수 학술차원의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런데, 10월 13일자 동아일보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떴다. "4박5일간 진보단체들만 접촉, 일정 안맞아 정부면담 거절, "한국 인권상황 왜곡전달" 우려" 그리고 이어 조선일보에서는 이 기사를 받아서 "좌파단체들만 면담… 한국 인권상황 왜곡 우려" (역시 조선이 한수 위, 동아는 진보인데 그대로 받아 베낀 조선은 헤드라인에 좌파, 이 미세한 차이가 어쩌면 조선과 동아의 차이일수도 ^^)를 내보냈다. 내용은 간단하다. 특별보고관이 한국 진보단체만 만나고, 법무부 면담을 거절했고, 그러니까 진보이야기만 들으면 편향될 수 있다라는 이야기이다. 어처구니없는 보도와 관련해 주최측은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으나, 다음날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서 "유엔 표현자유 특별報告官과 자유 대한민국의 명예" 를 통해서 "좌파 이념에 입각해 민주질서를 흔드는 불법·폭력 집회를 주도하거나 옹호한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대한민국의 인권상황을 세계에 전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우리는 유엔 특별보고관으로서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특별보고관의 자격도 인정할 수 없고, 이 초청을 추진한 세력은 한국국민의 명예를 실추시킨 반국민집단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프랭크 라 뤼 보고관이 만난 개인과 단체는 소위 동아, 조선이 찍고 싶은 진보, 좌파단체 뿐만 아니라 외교통상부 관계자와 국가인권위 관계자들, 고려대학교 로스쿨 관계자들도 있었다. 아주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된 기사이기에 좀 더 멋진 논리로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이유를 찾자면, 설령 고려대학교와 외교통상부, 국가인권위 담당자들을 만나지 않았다고하여도 이 심포지엄이 특별보고관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아시아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가 추진했던 행사임에도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신문사와 반대편에 있는 단체들의 행사를 진보 또는 좌파로 맞추고 싶은 그들의 비합리적, 비상식적 과도한 의미부여에 있다는 것이다. 참가자들과 초청자는 조선과 동아가 믿고 싶어 하는 단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법무부의 태도도 정말 우습다. 법무부는 이 사실이 언론에 의해 조금 이슈화되자 보도자료를 통해 법무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빠져나가려 했다. 보도자료의 내용을 보면 “1개월 이상의 지속적 면담 요청에도 면담 일정 조정 무산” 또한 “'09년 10월 7일 특별보고관을 법무부 차원에서 면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 외교통상부에 관련 사실을 전달함”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외교통상부에서는 덜컥 특별보고관과 15일에 면담을 하였다. 이건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이는 법무부가 일정조정하다가 특별보고관측과의 면담이 무산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말 못할 또는 말 할 필요도 없는 이유 때문에 일정이 안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동아와 조선에게는 특별보고관이 정부 측은 안 만나고 진보, 좌파단체만 만나려고 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지 도통 모르겠다. 사실 그 특별보고관이 누구를 만날지는 특별보고관이 결정을 한다. 특별보고관이 이 행사를 주최하는 주최측의 꼭두각시가 아닌 이상 법무부의 아무개를 만날지 외교부의 누구를 만날지는 자신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고, 주변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던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특별보고관 한국 방문일정 조율 중에 특별보고관이 가능하다고 제시한 날짜에 법무부측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외교부는 가능하다고 했기에 면담이 되었던 것이고 이는 그 자체가 특별보고관이 동아와 조선이 말하는 진보좌파단체만 만나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건 기본적인 사실관계일텐데, 법무부는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자신들은 노력했지만 특별보고관이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전체행사의 코디 중 한 명으로 활동했던 개인이 지켜본 프랑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한국 방문동안 거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고, 동아와 조선이 걱정하는 좌파 빨갱이만 만난 게 아니고, 외교통상부, 국가인권위, 고려대학교,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부담당자, 심포지엄과 워크샵에 참석한 수많은 개인, 학자, 엔지오활동가, 정부관계자, 국경없는 기자회 관계자, 국제앰네스티, 포럼아시아, 심지어 동향인 과테말라 유학생도 만났다. 사진 출처 - 필자 일정 중 특별보고관도 동아와 조선의 기사를 접했다. 그랬더니 한국 기자들과의 기자간담회를 자청하면서, 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사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면서 “나는 누구하고도 만날 수 있고, 만나고 싶다. 심지어 그 기사를 썼던 (동아, 조선) 기자들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내년 즈음에 한국에 정식으로 조사방문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사실 내가 보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는 인권적인 측면에서 전 정권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후퇴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그런데 특별보고관은 동아, 조선일보를 통해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 하고 싶어 했지만, 학술방문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진정한 표현의 자유 실상과 한국 메이저 언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정 중 자신의 방문이 조사방문이 아님을 무던히 강조하던 특별보고관에게 이번 일이 한국이라는 외형적 인권 발전국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알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 동아와 조선이 없었다면 내년의 한국 조사방문 희망사항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2017-07-12 | hrights | 조회: 318 | 추천: 0
- 연극 ‘완득이’를 관람하며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신종플루의 확산에 대한 우려로 학교행사가 취소되고, 학급단위로 체험학습을 하기로 결정된 순간 선생님은 지난 여름 가족들과 함께 봤던 연극 ‘완득이’를 떠올렸단다. 지방공연 중이라는 극단 측과 협의 끝에 결국 우리 학교 학생들만을 위한 공연을 약속받았고, 너희들의 의견은 한 마디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덜컥 예약까지 마쳐 버렸다. 놀이공원 타령을 하며 입이 한 뼘이나 나와 있던 너희들의 불만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이렇게 대학로에 입성하게 되었더랬지. 공연 예약을 해놓고도 걱정이 많았단다. 대부분 유복한 집안에서 왕자님 공주님으로 자라온 너희들이 협소하고 어두침침한 지하의 소극장 연극을 잘 감상할 수 있을까? 너희와는 많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회 약자들의 삶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런 염려를 뒤집어 보면, 사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 이 연극관람을 굳이 밀어붙인 이유였단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거의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천진한 너희들, ‘글로벌 시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 세계지도를 가슴에 품고 교과공부 외에도 텝스와 토플을 공부하느라 주변을 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너희들에게 도심 한 구석 가난한 달동네 옥탑방에 사는 우리 이웃의 삶을 보여 주고 싶었다. 지하철에서 단속원을 피해가며 천 원짜리 스타킹을 파는 난쟁이 아버지와, 가난한 외국인에게 인심 사나운 한국 땅에서 ‘그 짝 사람’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식당 종업원으로 살아가는 베트남인 엄마의 일상을 통해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의 팍팍한 삶과 우리 사회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고 싶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던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과 좌충우돌하며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은, 상황은 다르겠지만 가족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아픔(성장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을 겪고 있을 너희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완득이는 친구들의 놀림감인 난쟁이 아버지를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또 ‘쪽팔리고 창피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베트남 엄마의 존재도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 킥복싱에서도 3전 3패를 당하지만, ‘아유, 쪽팔려!’하고는 금세 다시 일어선다. 완득이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자신을 움츠려들게 했던 비루한 현실과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실망하고 아파하지만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건강함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당당하고 세상에 당당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연극 <완득이> 스틸 모음. 완득이는 현실을 긍정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는 건강한 청소년의 표상이다. 사진 출처 - 김동수 컴퍼니 이 세상에 혼자 커가는 사람은 없단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상처 난 가슴을 보듬어 주고 온정을 나누어 주는 가족과 친구, 이웃이 있기에 우리는 삶을 지탱하고, 꿈도 가꿀 수 있는 것이란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완득이의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은, 조폭선생처럼 굴지만 가슴가득 완득이를 사랑하는 담임 ‘똥주’와 베트남 엄마, 난쟁이 아버지의 진정어린 노력, 또 여자친구 윤하의 관심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것은 ‘똥주’선생님처럼 자신의 안락과 풍요로운 삶은 접어둔 채, 어려운 이웃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꽃보다 아름다운’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끝으로, 어찌 보면 초라할 수도 있는 소극장에서 혼신의 연기로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배우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단다. 물질적인 안락함과 풍요와는 상관없이, 각기 다른 자신들의 ‘꿈’을 가꾸기 위해 땀을 흘리면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이런 바람이 과한 욕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것들 중 하나만이라도 들어맞았다면 선생님은 대만족이란다. 막상 연극이 시작되면서 너희들은 놀라울 정도로 빨려 들어갔지. 열정적인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었겠지만, 관람하는 내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암전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도 많이 행복했다. 연극이 끝나고, 재잘거리며 극장을 나오는 너희들 얼굴마다에 피어오른 환한 미소는 가을햇살보다 더 눈부시고 예뻤단다. 애초에 가졌던 걱정들이 기우였음을 확인하면서 너희들이 가진 가능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의 편협함을 잠시 반성해 본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좀 더 가지게 된다면 학업에 대한 중압감에 짓눌려 있는 너희들의 몸과 마음도 크게 기지개를 켤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우리가 대학로 소극장에서 만났던 완득이를 세상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거든, 친구 윤하처럼 믿어주고 좋아해 줄 수 있겠지? 그리고 너희가 가는 길에 무수히 맞닥뜨리게 될 장애물 앞에서 완득이처럼 잠시 동안 무릎이 꺾일지언정 영영 엎어지지는 않을 거지? 금세 털고 일어날 거지? 누가 뭐래도 너희 스스로를 사랑하며 당당할 수 있겠지? 주변의 이웃과 벗들의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속 깊은 어른으로 자라줄 거지?
2017-07-12 | hrights | 조회: 313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아내가 결혼했다? 출근을 할 때 문 앞에서 나를 배웅하는 건 이제 아내가 아니라 갓 두 돌이 된 아들 몫이다. 아들은 처음엔 가지 말라며 울기도 하고 했지만 요샌 인사를 꾸벅 한 다음 내가 집어 온 조간신문을 받아들고 엄마에게 간다. 그 틈에 얼른 현관문을 닫고 출근을 한다. 아내가 잠에서 깨는 시간은 아들이 눈을 뜨는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아내는 곧바로 아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한다. 아들은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을 먹는다. 내 것까지 신경을 쓰게 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시간대가 맞질 않기도 해서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지 꽤 됐다. 아내와 나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주고받는 편이다. 내용은? 절반 이상은 아들에 관한 얘기다. 퇴근 후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역시 절반 이상은 아들이 주제다. 그 중에서도 아내는 어쩌면 꺼내는 거의 모든 얘기가 아들과 연관될 거다. 우리는 오늘 아들이 뭘 하고 놀았는지, 낮잠을 몇 시간이나 잤는지, 어떤 이쁜짓을 했는지, 뭘 얼마나 먹었는지 하며 대화를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나 할까. 아들은 제 엄마 아빠가 가까이 붙어 있는 걸 꽤나 싫어한다. 특히 자기 전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장난삼아 아내 옆에 꼭 붙어 있어 봤는데 아들은 고개를 처박고 울먹인다. 결국 아내 옆자리는 아들 차지가 된 지 오래다. 갓난아기 때는 아들을 따로 재우도록 버릇을 들이려 했다. 하지만 새벽마다 일어나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결국 셋이서 자게 됐고 어느새 아들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솔직히 불만스럽다. 나는 지금도 아들을 따로 재우는, 2+1을 아내에게 주장하지만 아내는 내가 한쪽에서 자는 2+1로 응수할 뿐이다.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인 <아내가 결혼했다>를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인공 남편이 느꼈을 당혹감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좀 더 현실감 있게 말한다면, 자식을 낳는 순간 세상의 모든 아내는 결혼한다. 나는 그런 현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가끔은 아들이 부럽다. 아내가 이젠 내게 신경을 안써주는 것 같아 섭섭하다. 아내와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렵다. ‘가족한테서 고립된 중년 가장’ 얘기가 예전처럼 먼 나라 얘기로 느껴지질 않는다. 나는 날마다 아들에게 버림받는다 갓 두 돌이 된 우리 아들은 내가 문을 여는 소리만 들리면 냉큼 뛰어와서 온 집안이 들썩일 정도로 반갑게 나를 맞는다. 놀아달라며 나를 애타게 쳐다본다. 오로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 순간을 1초라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아끈다. 나 역시 아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둘도 없이 소중하다. 아들 수준에 맞는, 남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이를 한다. 요샌 날씨가 추워져서 힘들지만 목욕도 같이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삶의 초창기를 복습하고 되새김질한다. 아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영혼의 정화의식같은 시간이다. 나는 아들과 일체감을 느낀다. 그리고 파국이 찾아온다. 한참을 뛰어놀다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즉시 아들은 나를 외면한다. 얼굴 들이밀지 말라며 나를 밀친다. 내가 장난으로 삐진 것처럼 하면 재미난 구경꺼리인양 입으로 손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는다. 하루 종일 행복한 데이트를 즐기고 나서 다음날이면 전혀 기억을 못하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는 여성을 소재로 한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있다. 그래도 그 영화에선 잠들 때까지는 기억을 하는데. 우리 아들은 잠이 오면 나를 밀쳐낸다. 아들은 취침 시간에 내가 팔베개를 하거나 품에 안으려 하면 화를 낸다. 그리고는 엄마 옆으로 기어들어간다. 갓난아기 티를 벗고 나서 한 번도 아들을 품에 안고 자본 적이 없다. 팔베개를 하고 자 본 적이 없다. 내가 날마다 “잊혀진 여인”이 되어야만 우리 식구들에게 행복한 잠자리가 찾아온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아빠는 질투중 가끔은 나 자신도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내의 관심과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간 아들놈을 질투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내를 질투하는 것일까? 내가 가끔 섭섭한 건 아들에게 배웅을 맡기고 아들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바쁜 아내일까, 아니면 내가 건네주는 조간신문을 받자마자 그걸 엄마에게 전해주느라 뒤도 안 돌아보고 냉큼 고개를 돌려버리는 아들일까. 아들이 잠들어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혼자만 듣는 아내가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건가, 아니면 다만 아내 옆자리를 돌려달라는 내 간절한 외침을 모른 척하는 무심한 아들놈이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건가. 아빠는 오늘도 질투하며 잠이 든다. 그리고 남편은 샘을 내며 아침에 눈을 뜬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97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용산 국민법정 기소인 모집 캠페인을 하느라 서울역에 있었다. 용산 국민법정은 용산 사건에 대해 인권의 기준으로 다시 한 번 심판해보겠다는 것이고 책임자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소환해보자는 취지다. 오고가는 분주한 사람들의 틈을 잡고 유인물 돌리며 기소인이 되어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냥 스쳐가 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잠시라도 멈추어서 얘기를 듣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기소장까지 써 주기도 했다. 마침 서울역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30대를 막 넘은 것 같았고 표정이 밝진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유인물을 건네며 ‘용산 국민법정을 하려 합니다’, 라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천 원만 줘요” 당황한 나는 멈칫거리며 그 짧은 순간 돈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느냐 고민했다. 불친절하게 들이대니 돈을 주는 게 영 내키지 않아 급히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꺼냈다.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는 비웃음이 가득 섞인 얼굴로 코웃음을 치며 내 앞을 지나갔다. 마치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순간 나는 멍해져서 가버리는 그를 돌아볼 생각도 않고 허공만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대체 뭔가. 왜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 걸까.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그는 나를 조롱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거 하지 말고 나도 불쌍하니까 돈이나 달라, 거리낌 없이 줄 수 있니? 못 주잖아. 거칠게 말하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너 같은 사람 잘 안다는 듯한 그 조롱의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이런 느낌 처음도 아닌데 그날따라 유난히도 마음이 찝찝했다. 뭘까. 천 원만 달라는 그 한마디에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초라해지는 그 기분, 새삼 바르르 떨렸다. 또 하나, 최근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지인들이 모인 술자리였는데 내 옆에 있는 분은 내가 사회 운동하는 걸 못미더워하는 듯했다. 일단 너부터 잘 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백 번 맞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 바뀌지 않으면서 사회 변화를 얘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 그가 꺼낸 한 마디. ‘그리고 진짜 도와주고 싶으면 니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도와줘라. 그게 진짜 돕는 거다.’ 타이르듯 한 말이었다. 사실 흔히 듣는 말이다. 내가 잘 돼서 돈 많이 벌면 훨씬 더 크게 도울 수 있다고, 어른들이 쉽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건 참 씁쓸한 일이었다. 연민에 젖어, 희생정신에 젖어, 그렇게 남을 돕고 싶어 안달 난 착한 아이로만 취급받는 것이 싫었다. 내가 믿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걸 무기력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캠페인을 하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것, 남들 싸우는데 옆에 가서 같이 힘이 되어주는 것. 이런 게 훨씬 더 값진 것, 아니,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런 게 현실적인 거야” 라고 했을 때 “그 현실이 대체 뭔데요”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공격 안 하니만 못 한 너무나 허약한 말이 되어 버린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준비위원회’(위원장 강경선)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사고현장(오른쪽 건물) 옆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달 18일 사회 각계 대표인사 9명과 50명의 국민배심원으로 구성된 국민법정을 열겠다”고 밝히고 있다. ‘용산 국민법정’은 경찰의 강경진압과 무분별한 재개발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호중 준비위원장(서강대 법대)은 “국민법정은 시민 이름으로 시민 법정에 세워 용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정부가 하는 저소득층 정책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마치 자비로운 일이라는 듯이 유가환급금을 준다고 하고 저소득층에게 저이자 대출을 해준다고 하는 그런 정책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게 인권이라는 것인데, 원래 가진 걸 자꾸 빼앗아 가놓고선 조금 주고 생색내고 자꾸 채무를 만드는 악순환에 빠뜨리는, 그래도 그게 현실적이라는 말에, ‘이거라도 어디야’, 하면서 겨우겨우 살아내는 모습들. 왜 돈으로 돕는 것은 위대하고 자비로운 일이 되고 사회운동을 하는 일은 쉽게 선동이라 치부되고 현실성 없는 이상적인 일로 취급받는 걸까. 그래도 더 속상한 건 그런 말들에 흔들리는 나다. 난 여전히 ‘잘 싸우지 못 한다’ 요즘 겪는 이런 일들은 내가 왜 인권운동에 끌렸고, 몇 년 동안이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왜 계속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어쨌든 좋은 일이니까, 한편으론 나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내겐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까’, 이 정도의 답변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고민이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내가 나 스스로를 자원 활동가라고 칭하는 것도 내 의지로 내 활동을 구성하고 방향을 고민하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엄마와 통화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엄마는 공부를 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곧잘 전화해서 이런저런 걸 물어 본다. 어느 날 나는 불쑥 이런 얘길 꺼냈다. “엄마, 그래도 내가 엄마 공부할 때 이렇게 꼼꼼히 가르쳐주고, 돈 없어도 내 있는 거 다 꺼내서 선물사고 그러는 게 더 기특한 효도 아니겠나?” 딸의 말에 엄마는 한 마디 툭 던지셨다. “그래도 난 니가 돈 많이 벌어오는 게 훨씬 좋다.” 난 낄낄대며 웃었지만 전화를 끊고는 눈물이 왈칵 났다. 아, 내가 믿는 건 뭐지? 사실 되게 무력한 거 아닌가. 이게 진짜라고 믿는 것마저 나의 착각이 아닐까. 그나저나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걸까.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야할진대 아직도 나는 확신을 갖지 못 하고 말만 앞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 말들은 허영일 뿐이다. 돈이 아니더라도 옆에서 함께 하는 게 더 좋은 것이고, 얄팍한 거 말고 더 근본적인 것들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내 마음은 당장 가족 앞에서부터 휘청거린다. 물론 마음가짐도 좋고 돈도 많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내가 지금 믿는 윤리를 가지고선 겨우 겨우 살 궁리를 하며 살 거라는 게 미리 보인다. 어찌 보면 참 빤한 세상이지만 그게 또 맞다. 이 정도 생각할 수 있는 게 지금 내 역량인 것 같다. 어쨌든, 믿다가도 의심하고 지치니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엎어지고 주저앉고 그러면서 살아간다. “저는 세상과 싸우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뭐가 옳은지는 제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좀 서툽니다. 아마 계속 서툴 거예요. 그렇다고 서툰 게 싫진 않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07 | 추천: 0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나는 이른바 캥거루족이다. 마치 어미 캥거루 뱃주머니 속 아기 캥거루마냥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 세들어 살고 있다. 그러던 지난 겨울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와 여러 차례에 걸쳐 다투는 일이 벌어졌다. 아들이자 세입자인 내 입장에서는 결코 유리할 것 없는 다툼이었다. 까닭은 이랬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큰 아들 녀석을 데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골목길 앞 쪽으로 주소지를 옮기겠다고 했다. 그 쪽 주소지라야 인근 ㅁ초등학교로 입학하라는 취학 통지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소지에서는 다른 ㄱ초등학교로 입학해야 한다. 그런데, ㅁ초등학교는 나와 내 누이가 졸업을 한 유서 깊은(?) 초등학교인지라, 어머니는 유달리 그 학교에 애착을 느끼시는 듯했다. 지금보다 더 가난했던 시절, 누나는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다 전학 왔고, 얼마 뒤 나마저 입학해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공간이라,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ㅁ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애틋하다. 어머니는 주변 이웃들에게 물어봐도 ㄱ초등학교보다 ㅁ초등학교의 평가가 훨씬 더 낫다고까지 주장하셨다. ㅁ초등학교가 ㄱ초등학교보다 더 가깝다는 억지 주장까지 펴는 등 어머니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반대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식으로, 살지도 않으면서 주소지를 옮기는 건 주민등록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요즘 공직자들 청문회하는 것 보세요. (당시는 물론 최근의 청문회가 열리기 한참 전이다.) 내가 공직에 진출할 일은 없지만, 기사에서 당위를 주장하는 기자가 그런 식으로 위장전입해서 되겠어요?"라고 설득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래도 못내 아쉬워하셨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는 게 없다"며 속상해하셨다. 그 뒤로도 설전은 몇 차례 파도를 더 타야 했다. 결국 할미의 입김보다는 애비의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한 결과, 큰 녀석은 지금 ㄱ초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그러다 최근 총리나 장관직 지명자들의 청문회를 보면서 열 달 전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 위장전입에 탈세에, 우리 사회에서 돈 좀 있고 힘깨나 쓴다는 자들이 저지를 법한 웬만한 탈법은 다 저지른 그들. "이른바 총리하실 분은 물론이고 장관 하실 분들마저 다 저러는데, 저들과는 달리 이른바 공인의 범주에도 끼지 못하는 내 주제에 그냥 어머니에게 위장전입을 하시라고 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고, "저런 범법자들이 청문회에서 고개 한 번 숙이고는 우리나라의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장관 자리에 앉는 게 이명박 대통령이 걸핏하면 입에 달고 다니는 법치의 실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가, 1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영선 민주당 의원(오른쪽 사진)이 부동산 거래 등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 따져묻는 동안, 입을 굳게 다문 채 땀에 젖은 손가락(가운데 사진)으로 자료를 짚어가며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쌍하게 된 건 법이다. 비로소 법은 그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총리와 장관들이 내리는 명령에 법은 순종해야 하는가? 보나마나 저들은 웬만한 집회는 금지한 뒤 그 집회를 연 주동자를 잡는다며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열 것이고, 총리와 법무장관은 엄단 의지를 담은 담화문을 내놓을 것이다. 자신들의 범법 행위보다 처벌규정상으로는 훨씬 가벼운, 집시법상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는 집회 주동자들을 반드시 검거한 뒤 처벌해 우리 사회의 기강을 잡겠다며 기염을 토할 것이다. 그들이 불법 집회 참가자들을 잡아갈 때 애용하는 도로 교통법상 교통방해죄(도로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 교통을 방해한 죄)는 기껏해야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그친다는 것을 저들은 알까? 법무부나 경찰 등이 애용하는 형법 이론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공중전화 유리가 깨진 걸 그대로 놔두면 거기에 쓰레기가 쌓이고 그러다보면 그 곳에서 더 큰 범죄가 일어나더라, 따라서 작은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강력히 처벌해야 큰 범죄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 동안 참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미신고 집회 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이 이론을 들이댔다. 이 정부 들어 총리와 장관직 후보자들이 각종 불법, 탈법을 저지른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스스로에게 적용할 수 있는, 터럭만큼의 양심도 없는 것일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306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지난 9월 23일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사무실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날 기자회견은 이주노동자이자 기독교인이고 난민인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란출신 난민 O씨는 3년9개월째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다. 그는 두 달 가까이 곡기를 끊은 채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외국인보호소는 공식적인 국내 체류자격을 얻지 못한 외국인들을 “강제 퇴거” 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수용하는 구금시설인데, 그 환경이나 구금자에 대한 처우는 일반 형사범을 수용하는 교도소보다 훨씬 못하다. 일반적으로 교도소에서 3년 이상 복역한다면 매우 중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라 볼 수 있는데, 난민 O씨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어떤 범죄행위도 하지 않았다. 다만 출입국 관련 행정절차를 어겼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난민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죄(?) 밖에 없다. 올해 2월 대법원은 O씨의 난민인정 요구를 최종 기각했다. 이것은 그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난민 O씨는 2005년 5월 31일 한국에 입국했다. 무슬림이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이 곳 저 곳에서 일을 하다가 동두천 모 교회에서 열린 쿠르드 예배에 참석하고 나서부터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그런데 그해 11월 한국에 와 있는 어떤 이란 사람과 술을 마시다 취한 상태에서 그가 권한 “하쉬쉬”라는 담배를 받아 피웠다.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경찰이 들이닥쳐 ‘마약 복용’ 혐의로 그를 체포했다. 한국은 범죄와 연관되지 않은 마약흡입 행위에 대해서조차 대단히 엄격하게 처벌하는 나라다. 전인권, 김부선 씨 등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이 때문에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그 문제점 또한 적지 않게 지적되었다. 결국 그는 뜻하지 않게 체포되어 집행유예지만 유죄를 선고받게 되었고, 2005년 12월 12일 “강제퇴거” 명령과 더불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갇히게 된다. O씨는 이곳에 수감되자마자 본국으로 돌아가면 기독교로 개종한 것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된다며 난민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듬해 3월 그의 신청을 기각했고,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O씨의 3년여에 걸친 기나긴 법정투쟁이 이어지게 되었다. 대법원은 그가 한국에 입국하게 된 동기가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보호소에 수감된 이후 뒤늦게 세례를 받았고, 이란 영사관 직원에게 개종사실을 알렸다는 사실만으론 난민협약상의 박해라고 부를만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을 거라 예상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난민신청을 기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란의 현실상황을 모르고 내린 판결이다. 2009년 9월 9일 이란 정부는 “배교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입국 동기야 어떻든 간에 3년여에 걸친 기나긴 재판과정에서 그의 개종사실을 이란 정부가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고, 만일 이대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장기 구금된 이란인의 강제송환과 장기 구금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한국의 난민인정 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출입국 관련 통계에 따르면 1994년 한국이 난민협약을 비준한 이래 올해 4월까지 난민신청자 2,262명 가운데 107명만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채 5%도 안 되는 수준이다. 특히 비자기간이 만료돼 “불법체류자”로 몰려 외국인보호소에 갇히게 된 난민신청자들의 경우 인정받게 될 확률은 소수점 이하다. O씨는 그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를 걸고 3년9개월을 기다려 왔다. 이것만으로도 개종 때문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그의 진정성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 아닌가? 한국을 비롯해 난민협약에 가입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난민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정치적, 종교적 난민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지만 ‘경제적 난민’의 경우 아예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하지만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정치상황이 불안정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 서민들이다. 이런 나라들에 있어서 난민 협약상 박해의 사유가 되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독재국가일수록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당연히 이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불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정권은 이것을 분쇄하기 위해 종교를 내세워 국민을 분열시키고 인권을 탄압한다. 난민 협약이 단지 립 서비스가 아니라면 협약 비준국들은 이런 사정을 정확히 반영해서 원래 취지인 인도주의 정신에 맞게 난민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난민문제를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와 연결시켜 난민인정 절차를 더욱 까다롭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고서도 대외적으로는 “따뜻한 다문화 국가”를 지향한다며 선전한다. 장기간의 단식투쟁에다 3년 9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겪고 있는 난민 O씨의 건강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그를 만나서 문진하고 돌아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한 의사에 따르면 “하루 내내 지속되는 가슴통증과 복부통증을 호소하고 있고 점점 증상이 심해지고 있으며 최근 흑색 변이 잦다는 것으로 보아 십이지장 출혈도 의심”된다고 한다. 난민 O씨에겐 긴급한 의학적 조치가 필요한데도, 화성외국인보호소가 자체 의료진에 의한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다. 출입국 당국은 그동안 법원에서 난민인정 요구가 기각된 만큼 행정절차에 따라 강제 송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난민 인정여부와 관계없이 자국에 송환되면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들은 난민이라 할 수 있다. 본국으로 송환되면 생명마저 보장받기 어려운 난민을 강제 송환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금지되어 있다. 인권보장을 존재이유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더욱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난민 심사 및 재판과정이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었지만 출입국 당국이나 재판부 모두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O씨의 박해 가능성을 정확히 진단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절차가 공정했다고 볼 수 없다. 아무리 본인이 원했다 해도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3년9개월을 교도소보다 더 못한 구금시설에 가둬 놓는 것은 반인권적인 처사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O씨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법무부는 지금 당장 난민 O씨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석방하고 난민 심사를 다시 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지 O씨의 경우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희망의 땅”으로 여기고 왔다가 절망만 가득안고 다시 위험 속으로 내던져지고 있는 이주노동자, 난민신청자들을 위한 제도개선과 적절한 인권구제조치가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5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지난 여름, 여순감옥에서 이회영 선생을 만나고 왔다. 위장전입으로 시끄러웠던 민일영 대법관의 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위장전입 5회 경력, 김준규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후보자 등 요즘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 정부 초기 때는 사퇴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퇴도 임명철회도 없다. 사과 한마디가 전부다. 거기에 정부여당 사무총장이 어려운 경제를 극복하려면 이제는 국민들이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접어줘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는 판국이다. 그러면 말이다. 위장전입으로 기소돼 전과자가 된 사람들이 많은데, 이제 모두 사면해줘도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은 눈 감고 넘어가도 된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후자 같다. 위장전입 5회라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는 몇 번의 위장전입은 공무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현 정부를 부르는 말들이 참 많다. 친서민 중도실용정부, 강부자․고소영정부, 기업프렌들리정부, 반서민정부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위장전입 정부’도 추가되었다. 정부 고위공직자 중 5명 가운데 1명꼴로 위장전입을 했으니 말이다. 정책과 사법처리를 집행할 집단 지도자가 위장전입 범법자들로 넘쳐나고 있으니, 사회 도덕성과 양심, 정의는 사라졌다. 존경해야 할 지도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지도자의 사회적 책무정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청문회에서 민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 암울한 현실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이 떠오른다. 이번 여름에 중국 대련에 있는 여순감옥을 갔다 왔다. 안중근 의사, 신채호 선생이 서거한 곳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회영 선생도 이곳에서 서거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독립운동으로 살다가 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생을 마감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삶을 보여주신 분이다. 조선과 대한제국 말기 많은 지배계층이 친일로 변절했을 때, 조선조 10명의 재상을 배출한 선생의 가문은 항일운동의 길을 걸었다. 선생은 한일병합 이전에는 을사늑약 오적 암살 시도,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운동, 최초의 독립운동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한일병합 후에는 6형제 중의 넷째였던 선생의 제안으로 6형제와 그 가족 등 60여명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고, 만주에서는 전 재산을 들여 신흥무관학교 등의 여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20년 봉오동, 청산리 대첩 또한 약 3,500여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상해 임시정부 초기에 참여했으나, 권력집중에 반대하여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무정부투쟁에 나섰고, 분권화된 지방정부를 강조하며 마을공동체 설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재중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과, 절대 자유평등의 이상적 신사회를 건설코자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일본 고위관료와 친일파를 암살할 목적으로 비밀행동단인 흑색공포단을 결성하였다. 결국 이회영 선생은 1932년, 만주일본군사령관을 암살코자 대련으로 이동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서거하였다. 이 때 선생의 나이는 65세였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펼치는 동안, 거대 명문집안이었던 선생 일가는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빈민으로 살아갔다. 교육도 못 받고, 옷을 팔아 연명하며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굶어 죽기까지 하였다. 5남이었던 이시영 선생을 제외하고는 남은 5형제와 그 가족 대부분이 먼 이국땅에서 굶주림과 병, 고문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또한 선생의 장남이었던 이규창 열사는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행동단체였던 흑색공포단을 조직한 후, 친일파 이용로를 암살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1년을 복역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많은 자녀들이 여러 특혜를 받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선생은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재혼금지를 반대하고, 신분 평등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회영 선생은 암울한 대일항쟁 시기에 평생 동안 지도자의 사회적 책무를 끌어안고 행동으로 실천하신 참 지도자였다. 현 정부와 여당은 연일 불법집회, 노조 이기주의를 언급하면서 ‘법치’를 외쳐댄다. 또 지난 4월, 법의 날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성숙한 법치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기 전에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며 “국회의원, 공무원, 법조인들이 먼저 높은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도 있다. 이렇게 법치를 중요시하는 정부와 여당이 범법자들을 임명, 동의하고, 임명받은 자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는 이 현실이 그들이 말하는 ‘성숙한 법치주의’인지 묻고 싶다. 그 뿐인가. 용산에서 일반 서민을 폭력 철거민으로 둔갑시켜 불태워 죽이고도 수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반면, 한 방송국 작가의 이메일을 세상에 낱낱이 공개하였다. 재판에 개입한 대법관도 문제되지 않고,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등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과 단체가 표적감사와 수사 등으로 잡혀가고, 물러나고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도 탄압받고 있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성숙한 법치주의를 외치는 정부와 여당에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숭고한 정신, 자유와 평등의 인간의 기본권을 존엄하는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자들이 많을 때 성숙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지도자 층의 위장전입 등을 접어주고 가는 것이 성숙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를...
2017-07-12 | hrights | 조회: 327 | 추천: -1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2009년 7월 1일 이후 공소 제기되는 사건부터 적용하는 최초의 양형기준을 발표하였다. 형사사법의 투명성과 합리성 재고에 기여하기 위해 뇌물범죄, 성범죄 기준은 엄정한 양형을 구현하였으며, 횡령. 배임범죄 기준으로 이른바 ‘유전무죄’ 시비를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또한 유형별로 합리적인 형량범위를 설정하여 양형의 편차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첫걸음이니 시비를 걸기보다 더 기대를 갖고 제안을 해 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종교계에서 일어나는 뇌물범죄와 국고보조금을 타내 횡령, 배임하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엄격하게 세워주길 제안한다. 개신교계의 일부 횡령사건 및 성범죄에 대한 사건도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불교계에서 몇 년 동안 일어난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소득이 있는 곳에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지만, 한 푼도 내지 않고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타다 쓰는 조계종을 중심으로 보자. 정부당국은 국고보조금의 관리가 너무 허술하고, 법원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해 법원이 앞장서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아래도표에서 보듯이 2007년과 2008년 수십억의 국고보조금을 타내려다 미수에 그쳤거나 자부담액을 채워 넣어야 함에도 적당히 넘어가려했다. 이전에는 관례, 관행으로 그냥 넘어가던 일인데 하며, 억울해 하는 불교지도자들까지 있다. 세상이 맑아지면서 생기는 선의의 피해자라는 말을 접하면 이 분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스님’이 맞나 다시 돌아보게 된다. 유무형의 많은 특혜를 받는 종교인 또는 지도자들에 대한 엄한 양형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다 보면, 반대의견이 훨씬 많다는데 또 놀란다. 어떤 종류의 종교를 갖고 있는 가를 뛰어 넘어 필자가 만난 법조인들은 대부분 관대하다. 더 심각한 부패한 범죄가 많은데 종교인들의 수십억 횡령과 배임은 ‘새 발의 피’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 경험의 차이를 느끼게 되고, 종교계 시민단체 담당자로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답답한 마음이 일어난다. 권력과 기업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바른 태도와 단호함은 어디로 가고, 자신이 믿는 종교계 부패에는 눈 감는 또 하나의 다른 ‘우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종교계 스스로 내부로 부터 투명하고 엄격하게 처신한다면 사회법의 관용도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종교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현재까지 내부를 맑게 하는 일에 소홀하다. 먼저 불교계 최대 종단이고 국민의 세금을 가장 많이 타다 쓰는 조계종이 그렇다. 아래 도표에 제시된 조계종의 24개 교구본사 중 5개의 교구본사에서 저질러져 사회법적으로 유죄의 판결을 받은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교구본사 이외 개별 사찰의 횡령사건을 합산하면 국민들의 세금이 허투루 쓰인 사례는 훨씬 늘어난다. 2001년 부산 범어사에서 발생한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에 대해 법원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였고 총17억 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하여 결국 범어사에서 피고인을 대신하여 2007년 14억 원을 구청에 납부했다. 이 건에 대해 조계종의 대법원격인 재심호계원은 ‘공권정지 4년’을 선고했다. 종교계 내부의 자기 점검이 너무나 부족하다. 약 8년 간 교구본사에서 일어난 횡령금액이나 횡령하려했던 금액을 합치면 서민의 입장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이다. 점심을 굶는 결식아동의 지원비로 손색이 없는 기금이 될 수도 있다. 연도 교구 본사사찰 결과(진행) 적용법률 2001-2007 ㅂ사 대법원 확정 판결, 2007. 12 17억여원 환수(부산 00구청) 횡령 등 2005-2009 현재 진행 ㅎ사 14억여원 횡령혐의 기소중지(4년간 수배 받다 09년 초 검거) 1심 징역3년(집행 예5년)에 추징금 3억원 선고 횡령, 사기 등 2006-2007 ㅁ사 2007. 12 1년 실형 확정, 1심 4억6천 추징 고등법원 원심 확정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2006-2008 ㅇ사 1심판결(집유, 사회봉사명령) 벌금 2천만원, 1억7천여만원 반환 대법원 원심 확정 사기,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 2007-2008 ㅌ사 1심판결, 선고유예(500만원 벌금) 울산지법 보조금의예산및관리에관한법률 2008 ㅌ종단 총무원장 벌금형 보조금의예산및관리에관한법률 자료 출처 - 참여불교재가연대 전문기관 교단자정센터 지난 2005년 전남 화엄사 전 주지 ㅁ스님은 재임 중 사찰 소유 문화재 관리 및 보수비로 지급된 국고보조금 13억 원을 수차에 걸쳐 장기간 횡령해 도피하다 지난 2009년 2월 서울 도심에서 불심검문에 의해 체포된 후 구속되었다가, 1심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5년 추징금3억을 선고받고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13억 원을 화엄사에 반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법원 양형위의 아래 기준으로 보면 실형이 선고되어야 하고, 오히려 장기간 도피하였고 교구본사 주지라는 고위직이라면 가중치를 줘야한다. 그러나 종교인의 심판은 거꾸로다. 스님, 목사님 이라는 이유로 교구본사주지로 지역사회에 공헌한 점. 동종범죄에서 초범이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종범죄에서 재범일 확률은 95%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 횡령 배임범죄 양형기준> 구분 감경 기본 가중 제1유형(1억원미만) ~ 10월 4월~1년4월 10월~2년6월 제2유형(1억원이상, 5억원미만) 6월~2년 1년~3년 2년~5년 제3유형(5억원이상, 50억원미만) 1년6월~3년 2년~5년 3년~6년 제4유형(50억원이상,300억원미만) 2년6월~5년 4년~7년 5년~8년 제5유형(300억원이상) 4년~7년 5년~8년 7년~11년 자료 출처 - 대법원 홈페이지 한편, 뇌물사건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09년 1월 30일 경기도 전 시흥시장에게 개발제한구역 내에 설립한 사찰의 납골당 승인을 받는 대가로 5천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된 ㅎ스님의 경우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편 실형이 확정된 이 시장은 일반 형사사건에 연루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지방자치단체장직을 상실토록 규정한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시장 직을 잃었지만 뇌물을 준 ㅎ스님은 예외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뇌물범죄]에 있어서 뇌물액수에 따라 형이 결정되도록 하고, 뇌물액수에 따라 가중처벌을 규정한 입법자의 의사를 반영하였다. 또한 엄정한 형량범위를 제시해 형량을 규범적으로 상향 조정하여 종전 양형실무의 개선을 모색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5천만 원 이상 뇌물을 수수한 경우에는 원칙적인 실형을 권고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라면 이 ㅎ스님의 경우도 엄정한 법원의 징계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심 이후 보석으로 나온 이 스님은 조계종 한 교구의 고위직에 출마하려다 포기했다고 한다. 조계종에서는 사회법으로 금고이상의 형을 받아야만 공직에 진출할 수 없게 조계종 종법에 명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종교교단이 금고이상을 기준으로 내부 징계를 하다 보니, 오히려 법원의 결정이 면죄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불교계의 몇 가지 사례로 살펴보았지만, 거대 종교계의 고위직 인사들의 부패 사례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법관이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 않고, 법관의 종교 선호도에 따라 양형기준이 달라지고 ‘종교는 많이 봐준다’는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종교계 관련 범죄인’의 기준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또한 종교계 스스로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예방을 철저히 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엄정한 자체 징계를 해야 한다. 교회나 사찰이 ‘인사청탁’이나 ‘뇌물전달’의 연결도구로 전락했다는 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양형기준이 필요하다. 예방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불교계는 그렇다고 본다. 국민 53%가 종교인이고, 종교인도 모두 공평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유권무죄, 무권유죄가 되어서 안 되고,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면 큰 문제이다. 유리한 판결을 이끌기 위해 종교시설에 찾아가 같은 종교의식을 하며 양심에 어긋나는 보이지 않는 로비를 벌인다는 의혹이 있다면 더 큰일이다. 대법관부터 시작해 모든 법관들이 ‘종교’에서 자유로운 심판을 하기 위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나쁜 종교인들에 대한 엄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