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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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간사),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임아연/ 한밭대 학생   '필리핀 마닐라에서 생활한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필리핀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아니 어떤 면에선 끔찍했다. 필리핀 번화가(특히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에) 어디에나 퍼져있는 성매매부터 시작해, 한국 사회에선 거의 보기 드문 가족노숙까지. 그로 인해 방치되고 학대받는 아이들은 <긴급출동 SOS>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런 상황들이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질 만큼 흔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함부로 말을 꺼내놓기 어려웠던 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짧은 시간동안 겪은, 혹은 보고 들은 모습으로 한 사회를 함부로 속단하는 우를 범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 생각이 한 나라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사람들에게 '필리핀? 그럼 그렇지' 하는 식으로 회자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다. 또 내가 살고 있는 마닐라의 모습이 곧 필리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많은 곳을 여행하고자 했다. 그런 노력덕분인지 내가 생각해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필리핀의 모습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동안 내가 겪은 이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 놓는다. '한국은 이런데 여긴 왜이래?'라는 생각을 가져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필리핀과 대한민국, 그 두 사회가 엇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 모습들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쉽게 얕잡아 보던, 흔히 '후진국' 이라고 말하는 한 사회의 문제를 우리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좀 낫지' 하는 식으로 자위하기엔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며칠 후면 한국의 대학들은 새 학년도 새 학기 개강이겠다. 듣자하니 올해도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들에서 등록금을 동결했다고 한다. 이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기엔 속이 좀 쓰리다. 동결됐다 하더라도 이미 대학의 문턱이 높다. 아니 대학 '등록'의 문턱이 너무 높다. 사실 진부한 이야기다. 그러나 다시금 또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무나' 교육 받을 수 없는 이곳의 현실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국등록금네트워크와 한국대학생연합 회원들이 지난 2월 24일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혹자는 한국이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으로 높은 교육열과 교육 수준을 꼽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개천에서 용' 나는 방법은 교육 뿐 이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 곳 사정을 보면 더 와 닿는다. 그나마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교육수준이 나은 편이라는 필리핀 역시 교육비가 여간 비싼 게 아니라서 웬만큼 '사는 집', 혹은 웬만한 열의가 아니고서야 대학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거의 모든 대학과 교육기관이 밀집해 있는 마닐라에서 조금만 떨어져 살아도 태어난 곳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 일이 흔하다. 예컨대 바다에서 방카 보트를 운전하는 아버지 밑에 태어난 8살짜리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면서 그 일을 계속한다든지, 관광객에게 말을 태우는 일이 전부인 곳에서 어렸을 때부터 마부로 길러져 왔다든지.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There is no choice.(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이렇게 단편적인 사실들만 보아도 교육이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이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자. '서울대'와 '서울에 있는 대학', 그리고 '서울 밖에 있는 대학'과 같은 출신성분에 따른 직업선택의 차이, 아니 차별은 차치하고서라도, 대학의 이름과 상관없이 마냥 높기만 한 대학 등록금은 대학생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누군가는 노래방 도우미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호스트바에 나간다고 하는 이야기들은 더 이상 신문지면 안의 뉴스가 아니라 내 주변의 이야기가 돼버렸다. 지금 한국사회의 대학 교육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지만, 적어도 지식과 진리를 구할 기회가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 있겠으나, 비싼 등록금은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와 취업, 스펙에 목매달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어 있다. 대학이 학생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외려 피폐하게 만들어, 대학은 '무식한 대학생'을 키워 내고 학생들은 또 등록금을 걱정하면서 돈을 버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 지독한 고리를 끊어낼 칼자루를 쥔 정부는 임기 3년이 지나도록 대학 등록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학생들은 매년 반복되는 협상 아닌 협상에 지쳐가고, 변함없는 상황에 그들의 관심도 점점 사그라졌다. 체념하듯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간다. '큰 배움' 없는 대학에서 그저 비싼 등록금 영수증 같은 졸업장만 손에 넣는다. 공부, 혹은 배움이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우리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일까? 아예 대학 문턱 조차 넘기 힘든 필리핀의 상황과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필리핀에서 부끄러운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들여다 볼 일이 많아졌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조금은 객관적으로 한국 사회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꾸 이러면 안되는데…'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그저 외면해 버리기엔 먼 이야기가 아니라서, 특히 교육 없인 정말로 희망이 없을 것만 같아서 부질없이 조급증만 커져간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6 | 추천: 0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존경받아야 할 분들이 많아야 행복한 세상이 된다. 새해에는 ‘자유와 평화’가 넘쳐나고 자신의 위치에서 양심과 인권이 편안하게 펼쳐지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장도 특정 종교모임에서만 존경받지 않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소신과 원칙’이 강물처럼 흘러나가길 ‘애교’있게 권고해 본다. 세금을 꼬박 꼬박 내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이지만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면서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평소 다른 사람의 인권을 이해하고 공감이 부족한 내게 ‘인권감수성’이란 단어는 때론 도전적이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 현실을 공부하다 보면 ‘한마디’로 압축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대법원장의 인권감수성을 도마 위에 올려 놓은 불손함을 저지른다고 해도 ‘애교’로 봐주실 것 같아 덕담을 드리고자 한다. 이미 아시는 분들도 많다.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은 “대통령을 모신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법관에게 기도를 부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대법관 제청권을 가진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투정도 부려봤다”고 말했다. 이어 “가능하면 모든 대법관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이들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내가 (조찬기도회장) 해보니까 그런 것(기독 대법관)이 없어서, 법원 측에 그런 투정을 했다는 것도 내가 선배니까…. 법원이 내 고향, 친정 아니예요? 그러니까 그런 취지로 내가 애교 있게, 즉흥 연설이니까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라며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 계셨던 대법원장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야당이나 시민, 종교단체까지 나서서 사회적 논란이 되었으나 현 대법원장은 아무런 의견이 없으시다. 침묵은 금이라서 아니면, 개인적이고 사적인 종교모임이었기 때문일까. 여기에서 대법원장의 인권감수성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판사 출신인 황우여 한나라당 의원(4선·인천시 연수)이 “가능하면 모든 대법관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이들이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종교 편향 논란을 낳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용훈 대법원장은 1월1일자 신년사에서 “새해에도 더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의 시각에 맞추어 변화와 혁신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며,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치료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재판다운 재판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민이 감동하는 사법부를 만들어 가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따뜻한 격려와 엄중한 질책을 아끼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년사와 특정종교모임의 내용은 사뭇 다르다. 사적인 자리이고 대법원장 개인의 종교자유도 보장되어야 하지만,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신년을 맞이하는 평범한 시민이나 국민의 48%를 차지하는 무종교인 국민에게 신뢰받을 만한 ‘침묵’인지 의문이다. 당당한 대법원장의 ‘소신’을 펼쳐 보이길 기대하는 하는 이유가 있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 2010년 7월2일 가인 김병로 선생을 기념하는 가인연수원 개관 치사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출처 : 대법원 홈페이지) “가인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으로 9년여 동안 재직하시면서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는 사법부 독립의 기틀을 마련하셨고, 대내외적으로 줄곧 사법부의 엄정한 독립을 천명하셨고, 법관들에게도 항상 다른 사람의 어떠한 간섭도 배격하고 법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만사에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 있을 때도 몸을 삼간다는 뜻의 '계구신독(戒懼愼獨)'을 좌우명으로 삼고 평생 절제되고 검소한 삶을 사셨습니다. 공직에 계실 때에도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여 일을 처리하셨다”고 밝혔다. 또한, 이 대법원장은 “선생께서는 사법부 구성원에게도 인격 수양과 청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법관으로서의 청렴한 본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될 때는 사법부를 용감히 떠나라’고까지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우리 사법부는 아직도 많은 국민들로부터 더 높은 수준의 청렴성 및 공정성에 관한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선생의 가르침은 사법부 구성원 모두에게 귀중한 경구이자 채찍질이 될 것입니다.”고 치사에게 언급하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치사와 신년사에서 언급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는 사법부가 되도록 국민의 엄중한 질책’을 받겠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황 의원의 ‘애교’에는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법부를 대표하는 이 대법원장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무종교인들의 기본 인권을 생각한다면 초대 대법원장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의 자리에서 ‘애교로 한 덕담’을 한 어느 국회의원의 ‘말’에 대법원장은 침묵하고 있다.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했지만 미처 못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새로 추천해야 할 대법관 자리가 여럿이라 고민할 상황이기도 하겠지만 ‘소신과 원칙’으로 대답해 주길 바라면서 ‘신년 덕담’을 해본다. 법관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법원장의 ‘인권감수성의 잣대’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384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개인적으로 소셜 네트워크라는 것에 시큰둥하다. 싸이월드도 안하고 트위터도 개설만 해 놓고, 그나마 페이스북만 지금 단체에서 활동하기 전에 사귄 외국의 친구들의 성화로 4년 전 즈음에 개설 해놓고, 가끔 외국친구들의 근황을 알기 위해 들어 가 보는 정도였다. 근데 요즘 이 소셜 네트워크가 난리다. 특히 트위터하고 페이스북은 완전 붐이다. 그리고 그 위력 또한 대단하다. 최근에 나도 페이스북의 위력을 실감했던 사건이 하나있었다. 평소 때처럼 잘 들어가지 않는 페이스북에 별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낯익은 이름 하나가 친구를 신청하여 왔다. 쉐이마 하심, 내가 2003년 중순경에 이라크에서 반전평화팀 일원으로 있을 때 바그다드 빈민지역 알 마시텔 놀이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개인적으로도 친하게 지냈던 여성 선생님의 이름과 같은 이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수락을 하였더니 그리 오래지 않아 그쪽에게서 대화를 신청하여왔다. 당시 일과 중이라 여유가 있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기대반 의혹반이어서 대화를 시작하였는데, 맙소사! 2003년 이후에 연락이 끊어졌던 이라크 바그다드 알 마시텔 놀이방의 그 선생님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고 너무나 반가웠다. 운이 좋게도 페이스북 상의 내 이름은 이전 외국 친구들을 위해서 영어 이름으로 적혀있어서 그 선생님은 어렵지 않게 나를 찾았다고 했다. 난 바그다드에서 어떻게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도 했다. 참고로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내 기억속 2003년도 당시의 이라크 바그다드의 상황은 이메일 한통 보내기 위해서 시내 한복판으로 나와서 비싼 돈을 지불해야만 하고, 컴퓨터도 굉장히 열악하였다. 반가움과 흥분을 감추며 대화를 진행하였다. 그 선생님은 당시에도 바그다드의 주요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인재였으며, 영어도 능숙하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변화된 개인상황에 대해서도 주고받으면서 나는 아주 당연한 듯이 요즘의 바그다드 상황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은 현재 자신이 미국 마이애미에 있다고 했다. 갑자기 바그다드에서 마이애미로 이동한 그 이유가 궁금하여 물었더니, 상황은 이러했다. 이라크자살폭탄공격사진 사진 출처 - 신화통신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후, 이라크 내부는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혼란은 전쟁을 주도했던 미군조차도 컨트롤 할 수없는 극한의 불안정 상태로 진행되었고, 2005년 2006년이 되면서 이라크 내 종파간 지역 간 가족간 극한 갈등상황으로 치달았다. 당시 매일 종파간 분쟁으로 수십, 수백명씩 죽어가고, 서로가 복수를 다짐하며 상대편에 무력을 행사하며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2005년 초반에 결혼을 한 그 선생님 집안도 위험이 닥치기 시작했다. 특히 남편의 집안이 종파간 분쟁에 휩싸이면서 그 선생님과 그 가족은 신변에 큰 위험이 닥쳤고, 그들은 무작정 바그다드를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간 정처 없이 인근 국가를 떠돌다가 미국에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선생님은 현재 난민이 되어 2년 전 2008년부터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고 했다. 놀라움에 미국에서의 생활을 물었다. 그 선생님은 거의 2년간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고 있었고, 그 남편은 얼마 전부터 어디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려움을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나에게 자신의 지난 몇 년간의 과거를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 선생님의 모습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을지 짐작이 가서 마음이 먹먹했다. 그 선생님은 조만간 자신도 외부생활을 하고 싶고, 공부도 더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향 이라크의 모든 것이, 이라크에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립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계속 이야기 하자고 했다. 요즘 그 선생님과는 페이스북의 열렬한 친구가 되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이 공간을 통해서 언급한 바가 있었는데, 2006년 말까지 이라크 전쟁과 점령으로 인하여 이라크 인근 국가인 요르단과 시리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수백만의 이라크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라크 내부에도 수백만 명의 내부난민들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2005년 2006년 내가 요르단에 있을 때 나와 함께 지냈던 분들도 이라크 난민 가족이었다. 2003년 초반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으며, 2004년 한국 사회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으로 격렬히 갈등하였으며, 2008년말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한다. 그리고 2010년 미국도 이라크에서 전투 병력을 철군시키고 있다. 그리고 2011년 오늘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의 2003년 친구는 난민이 되어 이라크가 아닌 미국에서 2011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리고 아마도 이 전쟁과 점령으로 인하여 수백만의 이라크 난민은 지금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2003년도 이전을 그리워하며...
2017-07-12 | hrights | 조회: 362 | 추천: 0
전국완/ 중학교 교사   한 해를 마치면서 겨울방학 즈음이면 연례행사처럼 온몸이 아프곤 했었다. 에너지가 소진되었음을 알리는 방학증후군이랄까. 그런데 올해는 그 놈의 행사가 유난히 요란한 것이 근 한 달이나 약을 달고 살았다. 약에 취해 해롱거리면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게 되다 보니 요란하게 소리치며 새해를 향한 카운트다운을 해대는 TV 속 군중들의 모습이 너무도 생뚱맞아 보였다. 저들은 밝아오는 새해에 대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몸살’ 앓으랴, 학년말 업무하랴 정신없이 지내고 있는데, 전에 없이 여기저기서 인권연수 듣자는 연락이 오고 부랴부랴 마감직전에 연수신청을 하고는 참가하게 되었다. 와서 보니 왜 이리 아는 얼굴들이 많은지, 지금까지 들은 인권연수 중 제일 많은 ‘우리’들이 모인 것 같다. 이들을 보며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 우리 모두 심각한 위기감에 몰려 발길이 모아진 것이 아닌가 싶다. 시험 때마다 스트레스로 유리창을 깨는 아이들의 유혈이 낭자한 주먹을 보는 일, 지역교육지원청의 채근 탓인지 재학생들로도 성이 차지 않아 인근 초등학생들마저 방과후 수업으로 끌어들여 방과후수업의 새 역사(?)를 여는 중학교,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경기인 지금도 연일 매출액을 경신하고 있는 사교육비에 삶이 파탄 날 지경인 서민들, 막대한 국민혈세를 지원받으면서도 가르치는 일보다는 우수학생 선점에만 혈안이 되어 고등학교 중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대학들, 사교육비에다 천만 원이 넘는 대학등록금 탓에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는 세상,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 속에서 절대 다수의 시민을 ‘루저’로 전락시키는 괴물인 경쟁과 물신주의……. 이런 비교육적인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불법적인 정치행동으로 매도하여 범법자로 만드는 정권, 여당의원에게 수백만 원을 후원한 교장은 놔두고 야당후보에게 몇 만원의 후원금을 건넨 전교조교사들은 무더기로 해고하려는 정권과 검찰의 후안무치,…….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해 온 골수보수언론들이 무더기로 종편채널권자로 선정되는 현실, 도심 한복판에서 무자비한 철거에 저항한 서민들이 폭도로 몰려 불타 죽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을 건 절규가 메아리 없이 스러지는 곳,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75만원에서 1만원 올려달라는 청소부아주머니들의 요구에 해고로 답하는 대학이 있는 나라, 노조 가입했다고 매값 운운하며 야구방망이로 근로자를 패는 CEO가 있는 나라, 어린애들과 장애인 밥그릇 빼앗아서 삽질에 쏟아 붓는 나라, 정권비판하면 언론이든 국민이든 고소고발로 응수하는 무시무시한 나라, 대를 이어 군대 면제받은 사람들이 전쟁부추기는 나라, 그리고 이렇게 속은 곪아 터져서 문드러지고 있는데, ‘G20회의’ 개최를 떠벌이며 ‘국격 향상’ 운운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 어느 쪽을 둘러봐도 절망적이다. 이제는 누구를 탓하고 비난할 기력도 없다. 지지율 50%에 한껏 고무되어 있는 대통령과 정부여당, 보수언론, 이 사회의 기득권층. 그들은 모두 벽창호들이다. 아니, 우리의 외침에 설득당할 가슴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너무나도 야만적이고 폭력적인데다가 점점 가속이 붙어버린 이 ‘몰상식’과 ‘파렴치’의 급류에 자칫하면 나도 쓸려갈 수도 있겠다는, 아니 이미 쓸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무언가 붙들고 싶어졌던 것 같다. 나름 씩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이런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연수에 참가했지 싶다.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가 기대했던 ‘희망’의 전조는 찾을 수 없었다. 이 정권을 택한 건 천박한 물신주의와 이기주의의 포로가 된 우리 스스로였다는 통렬한 자책밖에는. 1월 3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칼럼 <‘착한 우리’에 대한 환상 깨기>에서 소중한 힌트를 얻기로 한다. ‘…… 권력자들도 오로지 당장의 사리사욕을 좇고, 대중들도 ‘성공’만 한다면 파렴치한 모리배를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볼 준비가 돼 있는 사회에서는, 권력자들에게의 직간(直諫)이나 그들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도덕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은, 모리배들이 매체를 통해 유포하는 환상에 넘어가고 마는 대중들에게 혹은 대중들에 대해서 바른말을 하는 것이다.…… 이윤만 알고 정의를 모르는 국가인 대한민국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경쟁과 착취에 길들여진 유순한 노예인 우리들의 실제적 상황에 대한 바른말이 대중화돼야 노예상태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경쟁만능의 기조 속에서 각자가 힘없는 개체로서의 삶을 꾸려가느라 일상이 버겁겠지만, 결국 ‘희망’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 자체’일 수밖에 없다는 어느 강사님의 말씀이 현재로선 최선의 답일 듯싶다. 이번 연수를 통해서 우리 각자가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을 밑천 삼아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희망을 만드는 일이리라. 보수언론들에 힘겹게 맞서고 있는 진보언론매체 하나 더 구독하고, 나아가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구독시키자. 자신들이 기득권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들이 계급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 강사분이 말씀하신 책읽기 모임을 꼭 시작하자. 우리들이 외면하거나 보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들을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저들이 감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지난할 수밖에 없는 노정 중에 계속 깨어있기 위해서라도.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이지만, 지난해 끄트머리에서 겪어낸 ‘몸살’에 대한 의사의 진단은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온 것이다. 매일 매일의 스트레스가 해결되지 못한 채 누적된 결과,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체내 모든 기관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몸의 건강한 순환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무력감으로 인한 우울과 스트레스 알갱이들이 암덩이로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아 세포증식을 통해 몸 전체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서둘러 해체작업을 시작해야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76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지난 12월 16일,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이 1975년에 발동한 ‘긴급조치 1호’의 ‘허위 사실 유포’ 부분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한편 헌법재판소도 12월 28일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구속시킨 ‘인터넷 시대 긴급조치법’인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두 판례를 통해 우리는 이명박 정권과 박정희 정권의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뒤늦게나마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사상·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들은 곳곳에 널려 있다. 2010년 12월 28일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심판에서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던 ‘미네르바’ 박대성씨(오른쪽) 사진 출처 - 한겨레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의견의 발표를 억누르게 할 때 나타나는 특유한 해악은 그것이 전 인류의 행복을 빼앗는 점에 있다.”고 했다. 사상과 토론의 자유에 대한 완전한 보장은 밀이 제시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다. 그런데도, 국가 권력자들이 집요하게 이를 탄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그럼으로써 기득권 세력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자·서민들의 생존권을 빼앗아, 엄청난 경제적 이익과 함께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까지도 누리게 된다. 지난 11월 28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SK 재벌가 2세 최철원이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화물연대 조합원을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매 값으로 2천만 원을 던져 준, 충격적인 만행이 폭로되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때리면 엄중하게 처벌받을 수 있는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간 크게도 그런 범죄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까? 노동자나 서민들이 사소하게 법을 어기면 엄히 처벌하는 검찰과 사법부가 ‘가진 자’들이 저지르는 심각한 범죄 행위에는 ‘국가 경제 공헌’ 운운하며 불기소, 솜방망이 처벌, 특별사면을 남발한데 큰 원인이 있다. 구속노동자후원회가 조사·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아래서 정당한 노조 활동, 파업·집회 같은 집단행동으로 구속된 노동자는 385명에 이른다(외국인 보호소에 장기 수감된 이주노동자들은 정확히 수치를 파악할 수 없어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들을 포함하면 수치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촛불항쟁’이 전국으로 퍼지던 2008년도에 140명의 노동자가 구속되었고, 용산참사, 쌍용차 점거 파업이 일어난 2009년도엔 214명, 노동자 투쟁이 다소 잠잠했던 2010년에는 31명이 구속되었다. 얼핏 수치만 견주어 보면 김대중, 노무현 때보다 노동 탄압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촛불항쟁’, ‘용산참사’, ‘쌍용차 점거 파업’에서 볼 수 있듯이 이명박 정권은 대중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어떤 정권보다도 잔인하고 집요하게 노동자·민중 투쟁을 탄압했다. 불법 민간 사찰과 도·감청이 기승을 부리면서 2003년 이후 줄어들던 ‘공안’(국가보안법. 형법상 내란·외환죄 등) 및 ‘공안 관련’ 사건(집시법, 노동관계법 들) 기소율이 이 정부 들어 50퍼센트를 넘어섰고, 전체 양심수도 계속 늘고 있다(<경향신문> 2010년 10월 13일자) 하지만 정권과 자본의 집요한 탄압 속에서도 한진중공업, 기륭전자, 동희오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전주 버스 노동자 파업 등 2010년 한 해 동안 곳곳에서 불완전 고용과 정리 해고로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이 터져 나오면서 대중적 지지를 받았고 값진 승리를 일구어 냈다. 이명박 정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투쟁을 억누르기 위해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싹쓸이 연행하고 구속하려 했지만, 노동자 투쟁에 대한 지지와 더불어 갈수록 번져가고 있는 대중들의 ‘반MB 정서’ 때문에 법원이 나서서 이를 말리는 형국까지 됐다. 혁명가 트로츠키도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법조문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세력들의 투쟁’에 의해 좌우된다.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보장받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100년이 넘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여전히 짓밟히고 있고, 민주주의는 노동과 자본의 세력 관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극심한 탄압을 받는 건 따지고 보면 지배자들과 사상과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추운 날 노동자들은 무엇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면서 파업이나 시위, 심지어 아찔한 철탑위에서 동상에 걸려가며 처절하게 농성을 벌이고 있는 걸까?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진 자’들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접받기 위해서다.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지만 안정적인 일자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처지에서는 법 앞의 평등, 권리의 평등은 고사하고 평생 노예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현대차 같은 기업체 사장들과 그들의 수족 노릇을 하는 정부 기관들은 그 때마다 얼굴을 부라리며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의사표현을 ‘불법’으로 몰아간다. 대중에게 ‘경제 살리기’,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해묵은 이데올로기를 우려먹이며 ‘귀족 노동자’와 ‘서민 노동자’로 편 가르고, 마지막에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자들에게 ‘범법자’, ‘폭력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어 감옥에 보낸다. 구속노동자는 첨단 과학기술 문명을 자랑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야만의 그늘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신묘년 새해, 노동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이 지배자들의 인권 탄압에 맞서 함께 분노하고 투쟁하면서, 야만의 그늘을 걷어내고 진정한 민주주의 세상을 꽃 피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9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좀 지난일이기는 하지만 시사주간지인 <시사인> 제162호(10월 23일)에 우울한 기사가 하나 실렸었다. ‘집이 가난하면 꿈도 가난하다’는 기사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의 보고서를 기초로 한 이 기사에서는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와 관악, 구로, 금천구 초·중·고 아이들의 꿈을 비교했더니 가난하면 꿈도 가난하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강남 3구의 아이들은 의료인, 법조인, 학자 등 사회지배계층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는데, 관악, 구로, 금천구 아이들은 직업안정성이 높은 교사, 회사원, 공무원 등에 대한 선호가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고등학교로 갈수록 확연했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부의 편중이 극심해진 사회구조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꿈마저 양극화라는 사실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물론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떤 직업이 더 좋은 직업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업의 세습, 엘리트 집안의 대물림 등 ‘왕후장상의 씨앗’이 굳어져가는 현실이 아이들의 상상력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우울한 일이다. 얼마 전 북한의 권력세습이 한참 도마에 올랐었다. 남한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중대한 배신’이라며 이례적으로 강력한 비난성명을 내놓았고, 정당들도 너나없이 비판하고 나섰다. 보수정치권은 간만에 좋은 안주를 만나 말잔치를 벌였다. 현실적으로 어떻든 간에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권력을 세습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민중에 대한 배신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세살 때부터 총으로 과녁을 명중할 정도로 위대한 능력을 가진 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권좌에 오를 정당성을 확인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북한만 비판한 일은 아니다. 사실 북한의 3대 세습은 이제야 구체적인 사실로 확인된 것일 뿐 우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다. 당연히 비판해야 할 일이지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습부터 차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재벌의 2세 경영 등 부의 대물림,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나오는 우리 안에서의 세습을 막아야 한다. 물론 간단치 않다. 세상을 확 뒤집지 않고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운동 또한 조금씩 가능한 변화를 꿈꾸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우리 안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된다. 이와 관련해 사회권 또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권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이르는 말로 흔히 사회적 생존권으로 표현되는 권리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노동, 교육, 주거, 건강 등 사회복지로 표현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이 사회권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사회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원이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이나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산참사와 관련해 철거민들이 주거권 침해를 놓고 국가와 개발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반대로 법원은 경제적 자유권(재산권 등)을 보호하는 일에는 적극적이다. 파업으로 인한 거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기업규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원도 부자들의 권리에는 민감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에는 무관심한 셈이다. 인권운동의 화살은 바로 이런 지점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권에 대해 소극적인 법원의 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시작되어야 한다. 마침 2008년에 UN의 사회권규약 선택의정서도 채택되지 않았던가. 그만큼 사회권 또한 중요한 권리구제의 대상이 된다는 인식이 인류의 보편적 인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효제 교수가 번역한 <인권의 대전환>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담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사회권에 대한 침해를 놓고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는 일이 가능하도록 하는 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권 또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임이 우리사회에서 확인되고, 사회권의 확장을 통해 양극화의 격차를 조금씩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가난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아이들의 꿈까지 가난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는 작지만 중요한 시작일 수 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1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년간 내세울만한 ‘업적’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가지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바로 국민들에게 ‘국가재정’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국민들에게 뼈저리게 가르쳐준 은혜다. 개인적으로는 남북한 소득수준을 (하향) 평준화해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필적한다. 추위를 이기려 두 주먹 꽉 쥔 우리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든 그들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는 국민들에게 또 한 번 엄청난 학습효과를 안겨다주었다. 먼저 간략한 경과를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도 예산안을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인 12월 9일까지 통과시켜달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계수조정을 마치기도 전에 회의를 중단시켰다. 이주영 예결특위 위원장과 이종구 기획재정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기획재정부 예산실 관계자 등이 함께 밤을 새가며 벼락치기를 했다. 그리고 12월 8일 야당 저항을 뚫고 통과시켰다. 날치기 이후 여러 가지 후폭풍이 불고 있다.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 사업을 두고 진실공방이 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2011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쟁 가운데 본질을 가리는 것들이 적지 않다. 또한 본질적인 내용을 외면하기 위해 덜 본질적인 내용만 부각시키는 것들도 있다. 먼저 상황을 이렇게 만든 책임을 거론해야겠다.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게 있다. 당초에 왜 9일까지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했는지부터 의문이다. 헌법상 어차피 12월 2일 이후엔 위헌사태였다. 지난 8일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나서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특징 등을 설명하는 보도 자료를 12일에야 냈다. 덕분에 예산안통과 다음날이면 신문마다 등장하던 ‘새해 이렇게 달라진다’ 기사를 스크랩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나흘 동안 얼마나 철야작업을 했을지 상상하는건 어렵지 않다. 9일까지도 국회 홈페이지에선 내년도 예산안 관련 자료를 게시하지 않았고 같은 날 예산전문가 소리를 듣는 민주당 모 보좌관은 아무런 자료도 확보하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었다. 상황은 한나라당도 다르지 않았다. 곳곳에서 터지는 지뢰 막기에 급급했다. 졸속행정보단 차라리 뒷북행정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정부와 여당은 속도만 추구하다 사고를 친 셈이다. 조선일보가 11일자 기사 제목으로 뽑은 “몸싸움만 잘했던 ‘무능한 巨與’”는 정확한 지적이다. 지난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측의 본회의 진행을 저지하려고 국회의장석을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동료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의장석을 점거하기 위해 기어오르다 경위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지역구예산 논란은 핵심을 ‘살짝’ 비켜났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10일 템플스테이, 재일민단,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세 가지 예산이 누락된 것에 대해 문책 의사까지 밝혔다. 이런 게 바로 전형적인 핵심을 가리는 연막전술이다. 그건 한나라당 대표의 정세분석능력 부족을 반증할 뿐이다. 절차상 문제를 제외하고 예산 자체만 놓고 보면 세 가지 사업 예산을 깎은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일단 템플스테이 지원사업은 예전부터 문제가 많았다. 민단 지원도 감사원 지적을 받았던 사안이다. 전세계 재외동포가 700만명인데 왜 재외동포지원예산의 절반 이상을 민단에 쏟아 부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사업은 국토해양부 타당성 조사에서 부적격 사업 판정을 받았다는데 이런 사업이 예산반영된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다. 지역구 챙기기 문제도 본질에 ‘살짝’ 비켜 서 있다. 한나라당에서 야당 실세도 예산 많이 챙겼다는 식으로 물타기하려 하는건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물론 이상득 의원의 형님예산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예산을 쌈짓돈으로 생각한다는 건 국가를 운영할만한 자질을 의심하게 만든다. 지난 3년 동안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포항에 가져간 예산이 1조 1000억 원인데 이건 전형적인 ‘도덕적해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모든 지역구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에 한 푼이라도 예산을 더 많이 배정받도록 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많은 유권자들도 그걸 바라고 투표를 한다. 특히 도로건설 등 각종 토건예산이나 특별교부세, 특별교부금 등이 대상이 된다. 이번 예산안처리가 특히 문제가 되는 건 ‘게임의 규칙’ 자체가 깨져버렸다는 측면도 있다. ‘형님예산’을 규탄하는 한편에선 ‘우리 지역은 홀대받았다.’는 전제가 숨어있다. 지금 같은 소선거구 선거제도에선 국회의원이 사실상 서울에 파견된 지방의원이나 다름없다. 결국 비례대표 대폭확대만이 해법이다. 그럼 예산안 날치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부분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건 정부와 한나라당의 복지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과 진보신당 사이에 ‘삭감’이 맞냐 틀리냐 논쟁이 있었지만 ‘삭감’이 아니라 깎였다는 표현을 써도 본질은 어차피 마찬가지다. 친서민은 목도리 풀어주는걸로 되는 게 아니다. ‘70% 복지’라는 구호로 되는 것도 아니다. 영유아예방접종사업이나 양육수당 청소년 공부방 예산삭감에서 ‘예산없는 정책은 말대포에 불과하다’는 평범한 진리가 다시 드러난다.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사업을 보자. 애초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이 320억 5600만원이었다. 2010년도 예산 379억 3800만원보다 60억 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방학중 결식아동 급식 국비지원도 2009년 542억, 올해 203억에서 내년도 예산에선 0원이 됐다. 정부가 복지예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보다 더 잘 드러나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도 다르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증액시키기로 해놓고도 정작 최종적으로는 정부안을 따라가 버렸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쓸 돈’이 없는 거다. 보건소 시설 확대에 힘쓰지도 않으면서 보건소 핑계 대는 건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의지도 부족할 뿐 아니라 철학도 부재하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단기처방에만 급급할 뿐 본질적 대책인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을 외면한다. 이런 ‘복지철학 부재’를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내년에 확충하려는 국공립보육시설이 10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대다수 학부모들이 국공립어린이집이나 국공립유치원을 선호한다. 그런데 국공립어린이집 신축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2008년 50개, 2009년 38개, 2010년 10개소, 2011년 10개소로 해마다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국공립보육시설 비중이 전체 보육시설 가운데 5.5%에 불과하고 공립대기자수는 16만 명이나 되는데도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청사 어린이집이나 국회 어린이집에 한번이라도 가봤다면 왜 학부모들이 국공립어린이집을 원하는지 알 것이다. 그곳은 영유아보육법이 규정한 대로 시설이나 인력과 예산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들은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보육시설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대다수 어린이들은 법이 규정한 것보다도 열악한 환경에서 크고 있다. 정부는 ‘공공형 보육시설’을 강조하지만 이건 인증제도다. 서울형 어린이집과 다를 게 없다. 세 번째로 꼬집을 부분은 ‘지역에 떠넘기기’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란 이름으로 귀찮고 번거로운 건 지방에 떠넘기는 행태를 보여 왔다.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정부 당시 지방분권이라며 복지사업을 대폭 지방사무로 바꾼 것이다. 덕분에 제일 먼저 나타난 현상은 지자체에서 노인 장애인 지원예산을 깎는 것이었다. 논란이 되는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이 딱 이 경우다. 기획재정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동 사업은 '05년 분권교부세 도입시 지방이양된 사업이나'09년 및 ‘10년의 경우에는 경제위기에 따라 각각 542억 원, 203억 원을 한시적으로 국비 지원한 바 있음”이라며 정부예산안 원안을 유지한 이유에 대해 “작년 예산심의시 예결위 부대의견으로 ’10년 국비 한시 지원키로 명시된 사업임. ‘11년에는 경제위기 이전대로 각 지자체에서 전체 결식아동 급식 소요를 편성하여 차질 없이 지원할 계획(내년 지자체 예산에 3,105억원 기편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실제 지방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어떨까. 국민일보 14일자 기사에 따르면, “전라남도의 경우 중앙정부의 국비지원이 전액 삭감하면서 전남도가 현재 확보한 올 겨울 방학기간 결식아동에 대한 급식예산은 30억3천만 원으로 소요 예산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는 도내 결식아동 2만2천700명의 49.3%인 1만1천200명만이 급식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부산이나 경기도 등 다른 곳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복지예산 삭감 논쟁은 국회와 정부 가운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보여준 점에서도 흥미롭다. 양육수당 문제를 보자. 정부는 올해보다 241억 증액한 898억 원을 정부예산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국회 복지위원회는 지원대상을 차상위 이하에서 소득하위 70%로 확대하기 위해 2,744억원을 추가 증액했다. 여기까지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천명한 ‘70% 복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결국은 정부원안대로 돼 버렸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내년도 보육 예산은 무상보육 확대(전체가정의 50%→70%) 등 정부안에서 이미 금년보다 대폭 확대”됐다면서 “보육료지원 확대로 지방재정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양육수당까지 추가 확대할 경우 지방재정의 어려움 가중 우려… 향후 양육수당 지급대상 확대는 정책효과 등을 고려하여 단계적 추진 필요”라고 주장했다. 기재부가 지방재정 걱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지만 예산을 최종적으로 심사하고 편성하는 곳이 국회라는 헌법조항조차 무시하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서두르다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으니 기재부한테 무시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대통령은 반대의견 듣기를 싫어하고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시키는대로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 슬픈 초상화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77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대한민국 20대는 참 별 게 다 힘들다. 이 무슨 어린애 같은 투정이냐고? 하지만 사실이다. 적어도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취업을 위한 '스펙'의 하나로 트위터를 시작하진 않을 테니까. 그야말로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시대다. 국내 싸이월드는 물론이고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미투데이, 마이스페이스 등등 이름도 낯선 온갖 SNS가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한국의 평범한 대학생 임 모 양도 오바마와 '친구'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대중들은 SNS를 통해서 유명 연예인, 정치인과 자유롭게 소통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현상이 탐탁치만은 않다. 어느 순간부터 SNS엔 소통을 가장한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한 과시욕이 만연해 있는 걸 느낀다. 마치 싸이월드 '투데이(하루 동안 나의 미니홈피에 다녀간 사람 수)'에 집착하듯 사람들은 페이스북 친구 수와 트위터 '팔로워(트위터에 올린 나의 글을 구독하는 사람)' 수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숫자는 이제 한 사람의 인기를 나타내는 척도가 됐다. 심지어 가뜩이나 힘든 취업 현장에 까지 영향이 미쳤다. 어느 기업은 지원자에게 트위터 팔로워 수를 물었다고 했다. 팔로워가 300명은 넘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숫자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과 트위터 20대는 또 분주해졌다. 스펙의 기본인 학벌, 그리고 학점과 토익점수 관리는 기본이고, 취업 5종 세트(공모전 입상ㆍ인턴경험ㆍ봉사활동ㆍ각종 자격증 취득ㆍ아르바이트)에 더해 이제는 트위터 팔로워 수도 관리해야 한다. 트위터의 정보전달 속도와 그 영향력을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취업 때문에 관계 맺고 소통하는 것까지도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싫은 거다. 20대의 대부분의 일상은 '취업 때문'에 이뤄진다. 봉사활동 조차 사회적 의미를 담기보다 취업 때문에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른 세상,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며,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그러한 동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화의 내용보다 숫자에 집착한다. 세상이 SNS의 영향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SNS 상에 등장한 어느 정치인의 발언이 이슈가 되기도 하고 SNS를 통해 실종된 사람을 찾거나, 절망한 누군가의 자살을 막기도 한다. 또 뉴스보다 더 빠르게 정보가 전달되면서 현장성도 높아졌다. 필자 역시 어디서나 누구와도 쉽게 안부를 전할 수 있는 SNS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영향력 아래 숨겨진 현실을 발견할 때마다 밀려오는 회의감은 어쩔 수 없다. 한 인간의 존재가치가 초ㆍ중ㆍ고등학교부터 등수로 매겨져온 것도 모자라 이제는 관계조차 숫자로 치환됐다. 내가 어떤 사람과 무슨 대화를 나누느냐 보다 몇 명이 팔로워 했느냐를 궁금해 한다. 서글프다. 관계조차 스펙으로 남아버린 사회. 관계조차 경쟁하듯 맺어야 하는 현실. 이와 더불어 모든 20대가 취업만을 위해서 살지는 않을 것인데, 정말로 세상과 함께 호흡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도 그런 굴레가 덧씌워 지는 게 안타깝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71 | 추천: 0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연말이 다가오면서 훈훈한 감동을 주는 종교지도자들이 많다. 스님이나 목사, 신부님이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김장담기’를 기업의 협찬을 받아 함께 벌이는 현장. 종교계 최고 지도자들이고, 종교 행정을 맡고 있는 책임자들의 활동은 매년 보는 드라마지만 기분 좋은 이벤트이다. 불교계 최대 종단 조계종은 소위 달동네라 불리는 산비탈에 사시는 이웃들을 위해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 이벤트를 벌였다. 어떤 이는 스님들이 연탄까지 나르는 ‘쇼’를 한다고 비판도 하지만, 4년 임기 내 한 번도 이웃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 지도자보다야 낫다. 그런데, 언론에 소개되는 좋은 기사 말고도 사회법의 심판을 받는 소위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스님, 목사님들의 경우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자신이 좋아하는 종교에 ‘사랑의 콩깍지’가 끼면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보인다. 인터넷 검색창에 몇 가지 열쇠 글만 통합검색해서 올 한해 보도된 것을 보면, 전형적인 공금횡령 사건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주최로 조계사에서 '행복나눔 김장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김근상 주교,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김종성 목사, SK텔레콤 정만원 대표이사와 시민, SK텔레콤 직원, 군인, 대학생 등 자원봉사자 600여명이 참여했다.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주지인 승려 1억여 원 횡령 충남의 한 경찰서는 지난 1996년부터 2004년 7월까지 약 8년 간 B군청으로부터 사찰관람료 명목으로 입금되는 금액을 인출해 임의 소비한 전 사찰 주지 모 승려를 지난 10월 구속했다. K사찰 주지(46세)는 1996~2004년 7월경까지 주지로 근무할 당시 B군청으로부터 매월 입금되는 사찰관람료 중 약 9500만 원을 종단의 승낙을 받지 아니하고 개인 용도로 써 공금을 횡령했다. 불교계에서 이런 공금횡령사건은 매년 1~2건 정도 언론에 보도되는 편이고 드러나지 않는 사건은 더 많다. 정교분리 위반, 특혜받기 위해 뇌물 살포한 승려 올해 부정부패 사건의 백미로 특별 선물세트는 ‘지방자치단체와 연결된 납골당 사업 승려’이다. 지난 10월 경남 함안에 있는 한 사찰의 주지가 납골당을 지어 분양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과 유착돼서 각종 비리를 저질러 왔고, 유명 정치인들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대부분 농민들인 이 지역 특성상 한 푼 두 푼 모은 세금을 타 내 사리사욕을 취한 사례이다. 이 승려는 지난 2008년에 납골당을 함안군에 팔면서 군비와 도비 12억 원을 받아냈으며, 이 과정에서 당시 함안군수와 군의원에게 금품을 ‘베푼’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밖에도 이 승려가 사찰에 들어온 기부금을 도내 유력 정치인들에게 전달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단다. 검찰은 이 승려가 J시 한 소방시설 업자와 지역 국회의원을 연결해 주는 대가로 업자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를 포착하고, 실제로 이 돈이 해당 국회의원 측에 흘러갔는지 보좌관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승려가 본드 흡입하려 도둑질 지난 10월 경찰서 '경승(警僧)'으로 활동하는 승려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공업용 본드를 훔치다 발각돼 경찰에 입건됐다. 제주의 한 경찰서는 제주시 모 사찰 주지 박 모(45) 씨를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 박 씨는 밤 9시경 모 철물점에서 공업용 본드 3개(5,100원어치)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씨는 물건을 훔쳐 나오다 철물점 주인 김 모(38) 씨에게 발각돼 곧바로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경찰은 "박 씨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본드를 흡입하기 위해 절도 행각을 벌인 것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한편, 박 씨는 제주 모 경찰서에서 경찰관들의 불교 신앙을 돕는 경승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분을 경승으로 위촉한 경찰서도 문제지만, 이런 승려를 경승으로 추천한 종단은 더 심각한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공공기관은 종교계의 자원을 활용할 때 더 엄격한 검증 절차를 가져야 한다. 조계종 중앙종회 감사보고 장면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최근 조계종의 ‘국회’격인 중앙종회는 3년 만에 ‘국정감사’격인 종정감사를 실시하고 ‘본회의’ 보고를 하였다. 국회의원 격인 한 중앙종회의원 스님은 “본사 5곳을 감사했는데, 관람료 수입 5억이 5천만 원으로 기재되는 등 오점이 있었음에도 그간 누구하나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며 조계종의 발전을 위해서 매년 감사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감사를 하지 않는 종교계보다야 낫다고 할 수 있지만 불교계 최대 종단임을 감안하면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내부 활동이 심각하게 미진하다. 불교계의 청렴성을 확대하고, 부정부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승려 내부의 자발적 개선은 기본이다. 또한 평신도들로 조직화된 ‘모니터’ 및 사찰평가를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이제는 종교계는 더 이상 ‘권위의 성역’도 아니다. 더구나 한국불교계가 인도불교처럼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함께 협력하고 회향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찰재정 공개를 꾸준히 요구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부정부패의 통계를 내고, 공공기관에서 불교계에 지원한 세금을 올바르게 집행 감독하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평신도의 ‘사찰재정 투명성 모니터’활동 등 시민 사회적 경험 교류와 교육기회가 많아질 때 변화의 큰 흐름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불교계 시민사회세력이나 제도권 안의 신도회 조직은 매우 취약하다. 바로잡아야 할 종단 제도권과 스님에게 ‘쓴 소리’를 내는 측은 소수이고, 오히려 승려들의 이해관계에 이용당하거나 ‘침묵’과 ‘방관’이 대세인 상황이다. 최근 목소리를 내는 평신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고 ‘나도 사찰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흐름이 다양한 종교인권감수성 교육과 연계되어 ‘민주시민의식’으로 발전되는 데 시민인권단체들의 관심과 연구도 필요하다. 우리사회에서 세금 한 푼 내지 않으며 특혜를 가장 많이 받는 종교계가 이웃을 돕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불교계는 문화재, 템플스테이 등을 이유로 다양한 국가예산을 지원 받는다. 이런 불교계가 부정부패의 흐름을 개선하지 않고, 내부 자정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연탄 나르기’나 ‘김치담기’는 진짜 ‘쇼’로 의심받을 수 있다. 종교계 내부의 부정부패의 흐름 막고, 재정투명성을 높이는 데 평신도들의 더 많은 노력이 절실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90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이명박 정권은 국가인권위를 어떻게든 자기 뜻대로 해보려 무던히도 애를 쓴 듯싶다.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화한다고 해서 인권활동가들이 풍찬노숙(風餐露宿) 농성을 하였고, 유엔인권최고대표로부터 우려가 담긴 공개서한을 받고 나서야 직속화 계획을 철회하였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후에는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의 조직을 21%나 줄여서 인권위 역할을 최소화시키고 독립성을 훼손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에 끝나지 않고 인권위원장을 전혀 예상외의 인물을 발탁(?)하여 인권시민단체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경우는 도대체 뭐람? 하는 혼란을 주었다. 이에 단체 측에서는 이 위원장의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의 부재를 이유로 삼으며 이 위원장이 무자격자임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인권위원장은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해 보이기 시작했다. 인권위가 반드시 의견을 표명해야 할 중요한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때로는 직권으로 인권위 의견표명을 틀어막았고, 인권위원회 운영에 관련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며 독재자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문경란, 유남영 상임위원의 사퇴를 시작으로 조국 비상임위원, 61명의 인권위 전문위원들의 줄 사퇴, 국내 인권시민단체들, 전직 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들의 위원장 사퇴요구가 빗발치며, 해외 인권단체들로부터도 현(現)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쯤 되면 솔직히 X 팔려서라도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인권위원장은 11월 16일 입장표명을 통해서 “인권위 독립성(?)을 흔드는 여러 시도들에 흔들리지 않고 업무를 지속하겠다.” 라고 하며 꿋꿋이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현위원장이 임명이 되었을 때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과거에 어떠한 행적이 있었는지, 심지어 경력과 전공, 그동안의 학문적 자료(그나마 교수니깐)를 살펴보아도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인권위원장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청와대에서 도무지 무슨 의도로 이 사람을 위원장으로 지명했는지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었으나 이쯤 되니 청와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을 찾는데 얼마나 고심을 많이 했는지, 인물선정에 신중을 기했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젠장....... 사진 출처 - 필자 인권위의 독립성을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닌 인권과 민주주의로부터 독립하여야 한다고 인식, 주변의 질타와 진심어린 충고를 자신에 대한 지지와 성원으로 받아들이며 이해력(사실 비꼬는 건데 이 분은 왠지 진심으로 그러지 않을까 싶다 T,.T), 자신으로부터 야기된 이 모든 사태에 대해서 절대로 책임지지 않는 뻔뻔함, 국내외를 망론하고 인권위원장으로써 부적격하다는 평가에 꿋꿋이 개의치 않고 버티는 끈질김, 이 얼마나 이명박 정권이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인권위원회를 한방에 잠재워 버리는 놀라운 자격이 아니겠는가 싶다. 어떤 활동가는 현위원장이 사퇴하고 더 반인권적인 인물이 위원장으로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를 하던데 음.. 글쎄.. 이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위원장보다 더 청와대의 입맛을 맞출 인물이 또 누가 있을까 싶어 그건 기우가 아닐까 싶다. 자고로 맹자가 이르기를 부끄러움을 알아야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음.. 젠장 이것도 방법이 없나 싶어 우울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14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