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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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간사),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전국완/ 중학교 교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작년에만 4명의 교사가 명퇴하였다. 올해도 이미 40대 교사 한 명이 명퇴에 들어갔고, 두 명의 교사가 8월 말 명퇴를 신청한 상태다. 이 글을 끄적거리고 있는 필자도 명퇴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학교 밖에서는 교직만큼 편하고 든든한 직업이 어디 있냐며 시기어린 부러움의 시선으로 교사들을 바라본다. ‘잘릴 염려 없지, 일찍 퇴근하지, 방학 있지, 퇴직하면 연금 나오지……’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마는, 최근 몇 년 사이 ‘그 좋은 일터’를 중도에 관두는 교사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이다. 누가 들으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장에선 교사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교직도 엄연히 생계의 수단이지만, 그래도 우리 교사들을 버티게 했던 것 중에 많은 부분은 학생들과의 생활에서 얻는 기쁨과 보람이었다. 한창 몸과 마음에 변화를 겪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얻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뭉클함과 감동이 이제는 거의 없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지만 한 때 나누었던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으로서의 교감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학원공부가 끝나고 매일 밤 11시가 넘어 귀가해 모자란 잠을 자고, 얼굴에 피곤을 덕지덕지 바른 채 학교수업을 듣는 아이들과의 수업시간, 수업시작 후 20여 분을 넘기지 못하고 여기 저기 조는 아이들을 깨우는 일도 이제는 지친다. 하루 열 시간이 넘는 공부에 치인 아이들의 날카로워진 신경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봉변당하는 것도 보통이다. 섣부른 선행학습으로 이미 신선함을 잃은 학교수업을 듣는 일이 아이들에겐 또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생활비의 1/2에 육박하는 사교육비를 대느라 부모들이 밤낮없이 허둥대는 사이, 아이들은 각종 인터넷 게임에 중독이 되어 가고, 우범지대화 되어버린 공원 등지에서 술과 담배와 놀고, 친구들을 때리고 금품을 갈취하는 무서운 아이들로 변신을 한다. 집단따돌림부터 폭력, 금품갈취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학생사안으로 학생생활지도에 학부모면담까지 정신없이 가버리는 교사의 하루가 너무 고단하다. 이런 현실엔 아랑곳없이 학업성적부진학생 수를 가지고 학교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교간 차등 지급되는 성과급, 이웃나라에서 수 천명이 죽어나가고,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방사능 피해로 전 세계가 떨고 있는 지금, 그래서 국내 과학자들이 당장 올여름 몰려 올 태풍과 함께 닥칠 방사능 오염을 지적하며 정부대책을 촉구하는 뉴스가 나오던 날 ‘원자력...’ 문구가 새겨진 볼펜 한 자루씩 주면서 ‘원자력이 얼마나 안전하고 뛰어난 에너지인지 학생들에게 홍보하라’고 강조하는 교직원회의….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는 학교일상 속에서 아이들에게 치이고, 교육정책에서 소외된 채 영혼 없는 허깨비가 되어 가고 있는 교사들…. 교육정책에 경쟁이라는 시장주의를 도입하면서 가장 힘들어지는 건 학생들이다. 교육의 시장화는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부산일보 요즘 경기도에 이어,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인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 말엔 왠지 학생인권을 위협하는 집단이 다름 아닌 교사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아 불편하다. 연전에 현 교육감께서 당선되기 전 교사들과의 대화중에 ‘교사인권’ 관련 질문에 대해 ‘수업공간에서 교사는 절대적인 권력자이며, 당연히 절대적 약자인 학생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답변을 하신 적이 있다. 완전히 잘못된 말은 아니나, 교사와 학생을 대결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학생의 상대는 교사가 아니다. 수업이든 생활지도든 간에 학교의 교실공간에서 교사와 학생의 인권은 하나의 덩어리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종이호랑이격인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 밤잠을 재우지 않는 이 사회의 무한경쟁시스템이며, 현장교사의 소리는 묵살한 채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로 교육정책을 쏟아내는 오만한 교과부관료들이며, 등록금으로 배불리는 사립대학들이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토해내는 한숨과 신음은 교원평가가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다. 아이들을 체벌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무한경쟁’, ‘평가를 통한 교사통제’, ‘교육의 시장화’ 라는 세 개의 톱니바퀴 속에 갇혀 질식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부품으로의 삶을 강요당하다보니 우울하고 불행하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우리 사회가 배부른 투정으로 일축하지 않기를 바란다. 요즈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가장 힘든 건 물론 학생들이다. 밤잠을 못자고 해롱거리며 도처에 널려 있는 자극에 빠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아이들. 밑빠진 독에 물 붇는 사교육비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학부모. 이미 지쳐있는 학생들과 제대로 교감하지 못하고 교육정책에서 소외된 채, 스스로를 지탱해왔던 교육적 신념을 버려가며 현장에서 이율배반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고통스러워하는 교사들. 이는 우리 교육이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심각한 신호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소생하는 길은 각각 다르지 않다. 하나다. 이제 범사회적으로 우리 경쟁교육에 대해 심각한 논의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05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현재 광주는 전남대학교에 있는 ‘헌혈의 집’ 문제로 시끄럽다. 중앙일간지에는 잘 소개가 안 되고 있지만 지역 언론에는 연일 관련 기사가 실릴 정도로 ‘뜨거운 감자’다. 급기야 정치권까지 가세해 북구의회가 유감을 표시하고, 시의원이 1인 시위에 나설 만큼 이슈가 되고 있다. ‘전남대학교 헌혈의 집’을 놓고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 학교 측과 이전 불가를 주장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전남대학교 후문 쪽에는 1997년에 생긴 ‘헌혈의 집’이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기부채납 방식으로 건물을 지었으며, 전남대는 3년간 무상사용을 허가했다. 이후 2009년까지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12년간 무상으로 사용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전남대는 2009년 3월 광주전남혈액원에 ‘헌혈의 집’ 반환을 요청했다. 교육, 연구 공간의 부족이 이유였다. 그렇지만 광주전남혈액원이 재사용을 요구했고 전남대는 2011년 4월 30일까지 2년간만 연장을 허용했다. 당시 허가서에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요청할 경우 반환할 뿐 아니라 허가기간이 종료된 경우 원상회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남대는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전남대의 요구가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정당하다. 총장이 직접 나서 ‘정당한 재산권 행사’라고 강변하지 않아도 모두들 동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만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학교가 겉으로 내세우고 있는 ‘교육, 연구 공간의 부족’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헌혈의 집은 고작 건평 40평 정도에 지나지 않는 좁은 공간이다. 공간이 부족하다는 말의 진실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좁은 곳을 어떤 교육, 연구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학에서도 구체적인 사용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남대 헌혈의 집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또 하나는 그간 전남대가 헌혈의 집을 홍보의 수단으로 잘 활용해왔다는 점이다. ‘전남대 헌혈의 집’은 전국 대학에 설치된 21개 헌혈의 집 중 헌혈 실적이 1위라고 한다. 이에 대해 모 교수는 “5·18정신의 현대적 승화”로 이해하기도 했다. 80년 광주에서 피를 나누었던 것이나 8-90년대에 불의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에 앞장선 것, 2000년대에 피가 부족한 이웃과 동료들을 위해 헌혈운동에 나선 것 모두 같은 봉사정신의 발로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대학이 이런 해석에 동의하는지는 모르지만 대학을 홍보하는데 있어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총장이 송년사에서 “4년 연속 헌혈 1위라는 영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전남대의 교시가 ‘진리, 창조, 봉사’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에서의 우려의 목소리가 있고, 전남대 구성원 5명 중 4명이 이를 반대하고 있지만 대학의 입장은 강경하다. 총장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환을 거부하는 혈액원에 대해 “사람이 할 짓거리입니까?”라고 격앙된 어조로 얘기한 것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간 전남대의 배려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왔고, 대학 차원에서 헌혈을 독려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경영대 뒤쪽에 대학 소유의 25평 공간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그렇지만 유동인구를 고려하면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안이다.) 때문에 이토록 대학이 강경한 이유는 일종의 ‘괘씸죄’일 가능성이 높다. 혈액원은 2011년 4월 30일에 계약이 만료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2년 동안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3월에 와서야 대학에 재사용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동안 별다른 요청이 없다가 갑자기 재사용을 요구했으니 대학으로써는 뜬금없을 수 있다. 또 혈액원의 태도가 여론의 유리함을 등에 업은 ‘막무가내’로 해석 수도 있다. 그렇지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에서의 대학의 공적 역할이니 국립대가 가진 사명이니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가 지적한 ‘소탐대실’이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헌혈의 집이라는 좁은 공간을 돌려받고 지역사회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면 전남대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헌혈 전국 1위’가 가진 대학의 영예를 어떤 경제적인 가치와 바꿀 수 있는가? ‘봉사’를 교시로 삼고 있는 전남대에 남겨지는 오점을 무엇으로 치유할 것인가? 결국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얻을 게 없는 다툼을 끌고 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전남대의 경고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참 대학 못났다’라는 말까지 들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2017-07-12 | hrights | 조회: 396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먹튀 VS 변양호 신드롬 한국에서 금융·투기자본의 폐해가 본격화 된지 이미 10년이 넘는다. 그 중 대표적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건이 “론스타게이트”이다. 론스타게이트란 2003년 투기자본 론스타와 인허가권을 지닌 경제관료,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의 전문가 집단이 공모해서 외환은행을 불법적으로 인수한 사건이다. 이미,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도 이 사건은 널리 쓰인다. 이 투기자본 론스타의 외환은행 재매각을 두고 우리사회는 극단적인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하는데, 이 두 시각을 대표하는 두 가지 단어도 있다. 하나는 “먹튀”이고, 다른 하나는 “변양호 신드롬(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승인의 책임이 있는 관료-노무현 정권에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다. 이 단어들의 생성기원을 보면, 전자는 필자가 활동하는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후자는 삼성재벌 신문인 중앙일보가 만든 조어이다. 먹튀는 금융투기자본이 단기간에 무자비한 방법으로 고수익을 챙겨 시장에서 떠난다는 의미, 분노의 목소리이다. 반면, 변양호 신드롬은 인허가권을 가진 고위 관료가 세상의 비난이 두려워 지닌 권한을 사용하지 않아 시장에서 수익을 남기지 못했다는 의미, 안타까움의 목소리 또는, 다른 한편의 분노의 목소리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전자는 금융투기자본의 무자비한 고수익 축적으로 피해를 입은 대중들이 주로 사용할 것이고, 후자는 고수익의 기회를 놓친 소수의 자본, 금융투기자본들이 주로 사용할 것이다. 대법원 판결보다 투자자 보호! 이제, 론스타가 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먹튀 수익을 챙겨 떠나려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론스타게이트의 불법성에 언제나 면죄부를 내리던 대법원이 이전과는 다른 판결을 낸 것이다. 지난 3월, 대법원(주심 안대희)은 2003년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범죄를 저질렀음을 명확히 밝히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순간, 모든 것은 명확해 졌다. 은행법 등 관련법에 불법을 저지른 자가 대주주 자격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어서,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박탈은 명백한 진실이 된 것이다. 대주주 자격박탈과 강제매각을 내릴 주체인 금융위원회도, 비록 위원장인 김석동과 금융위원인 심인숙이 론스타게이트 주요 책임자 또는 법률 대리인 출신임에도 론스타 먹튀를 승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한국 사회 대부분의 언론과 방송은 일제히 “변양호 신드롬”을 말하며, 금융위원회를 질타하고 나섰다. MBC, 조선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이데일리, 연합뉴스, 국민일보, 이투데이, 아시아경제, 서울신문, 아주경제... 모두 헤아리기도 힘들다. 모두들 금융위원회의 관료들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능동적으로 외환은행의 재매각-론스타 먹튀를 승인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한다. 그럼 주가조작을 위해 “사제폭탄”을 투척해도 투자자만 보호되면 된다는 소리인가! 즉, 소수의 자본, 금융·투기자본이 먹튀로 큰 돈 버는 것이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보다 우선하는지 밝혀야 한다. 아울러, 이완용은 자신이 지닌 “애국의 소신”이 한일합방이었다는데, 그의 정책결정을 가속화한 일진회 100만 회원의 여론 조작과 이들 언론과 방송의 행태가 무엇이 다른가? 다른 무엇보다, 다수 대중이 아닌 고수익을 챙길 소수 자본-론스타, 론스타 투자 한국인, 하나금융 등을 대변하는 그들은 대중 언론인지, 아니면 금융·투기자본의 대변인인지를 답을 해야 한다! 나찌에 부역한 세력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드골이 가중 처벌한 대상이 언론과 지식인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세상 그 어떤 압제보다 민중에게 가장 큰 해악은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 때문이다. 변양호 신드롬 운운하는 언론과 방송은 이 세상 그 어떤 오염물질 보다 강력한 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이비 진보와 무식한 진보 그리고,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전에도 투기자본 론스타 먹튀를 옹호해왔던 김상조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가 보수지인 조선비즈(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또 한 번의 그 “소신”을 밝혔다. 언제나처럼, “론스타가 팔고 나가게 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라고 했고, 먹튀를 중단시킨 금융위원회를 비겁하다고 맹비난했다. 김상조 교수의 그런 소신은 솔직히 놀랍지도 않다. 이것이 그와 그의 단체의 일관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여연대에 있을 때인 2006년도부터, 론스타가 천문학적인 먹튀 수익을 챙기고자 벌린 재매각 협상이 있을 때마다 그러했다. 그 뿐이 아니다. 론스타게이트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표적인 투기자본 문제인 쌍용차 사태에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기술유출 방지방안 마련이 외국인 투자를 막는다고 반대 했다. 이것은 우리센터의 노력이나 시민사회 분노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모두 15명의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쌍용차 사태를 외면하는 행태이다. 같은 사례는 찾으면 많다. SK-소버린 사태에서도 투기자본인 소버린을 대변 아니, 법률적으로도 대리하였다. 이처럼, 그와 그의 단체의 오류는 찾을수록 발견된다. 아무튼, 이제 다시 한번 더 나서서 론스타 먹튀를 옹호하고 있는데, 시민단체, 시민운동가의 금도를 이미 넘어 섰다고 판단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와 그의 단체가 전문가로 유명세를 타고 진보로 자처한 것은 금융•투기자본의 문제가 미국 월가의 일로 치부하는 우리사회의 무지 때문이다. 특히, 진보진영이라고 불리는 단체와 개인 명망가들의 책임이 크다. 그와 그의 단체의 본질은 그냥 신자유주의 금융화로 무장하고, 주주자본주의를 옹호하는데 있다. 삼성재벌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들이 삼성 노동자들의 권리나 원하청 관계를 통한 수탈의 문제로 고민하고 싸운 적을 본 적이 있는가! 이건희-이재용의 불법상속으로 손해를 입은 다른 주주-외국인 주주(삼성전자는 50%에 육박)를 위해 싸운다는 판단은 왜 못하는가! 그들과 관련된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실제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성과는 물론, 노동탄압의 문제, 반사회적 영업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 진실을 외면하였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사진 찍는 것을 즐겼고, 진보언론매체는 지면을 아낌없이 할애하였고, 진보정당은 주요 간부로 임명하며 자랑하였다.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잘못이다. 정말 몰라서 그랬다면 묻고 배워라! 하지만, 몰라서 묻고 배우는데, 상대를 불쌍한 피해대중과 소위 유명한 전문가를 구분하는 태도는 오만한 엘리트주의일 뿐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쌍용차 사태를 다룬 진보적인 방송-PD수첩 등에서도 사태 원인-투기자본 상하이차 자체를 다룬 것을 본적이 없다. 그냥, 쌍용차 노동자가 불쌍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방송만을 주로 접했다. 오히려, 경제 전문가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지금의 경제체제 하에서 존재하는 이데올로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안이라는 것도 현 경제체제 하에서 이미 (타국에서) 허용되는 법제도이거나, 현재의 대주주에서 다른 대주주로 주인을 바꾸자는 수준의 주장일 것이다. 이는 현재의 경제체제-금융·투기자본의 폐해는 피해대중이 더 잘 알지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론스타와 김앤장, 그리고 경제관료들의 투기동맹을 조사하고 책까지 낸 사람은 외환카드의 해고 노동자였다. 상하이차가 먹튀 방식으로 회계를 조작하고 정리해고를 한 것을 최초로 밝힌 사람은 77일 파업으로 감옥에 있던 50대의 고졸 학력의 쌍용차 생산직 노동자였다. 결코, 많이 배운 교수나 TV출연이 잦은 전문가가 아니다! 자칭 진보라면, 이들을 과격하고 조야하다 말고 이들 피해대중의 경험과 소망에서 배워라! 그것이 아니라면, 그런 진보 또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일 뿐이다! ※ 이글은 금융위원회의 론스타 대주주 적경성 심사유보 결정 후, 필자가 속한 단체의 두차례 촌평(필자 집필)을 기초로 쓰였음을 밝힙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99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한 여자가 찾아왔다. 친구 집에서 홈스테이를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웃이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이제 겨우 스물 두 살이라던 그는 다짜고짜 내게 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줬다. 남자는 얼핏 봐도 나이가 꽤나 있어 보이는 한국인이었는데, 얼마 전 그와 결혼했다며 곧 남편이 데리러 오면 한국에 가서 함께 살 작정이라고 했다. 궁금한 것이 많은 듯 내게 한국어 몇 마디, 한국 문화 몇 가지를 물어 보는 얼굴엔 온통 한국으로 간다는 설렘과 들뜸으로 가득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그에게 나는 축하한다든지, 앞날을 축복한다든지 하는 행복을 빌어주는 말을 하는 것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남편이 몇 살이냐, 어떻게 만났냐, 남편이 영어나 타갈로그어를 좀 할 수 있느냐 등을 꼬치꼬치 물었던 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필리핀 처녀와 결혼하세요' 따위의 현수막을 보게 될까봐, 아니 그걸 읽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게 될까봐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꽃다운 청춘을 40대 남자에게 판 건지 어쩐 건지는 내게 솔직하게 털어 놓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나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사람을 사고파는 것은 이미 역사책 속에서 노예제도 철폐 이후에 끝난 일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비인간적 행위들이 모양새를 바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급에 따른 봉건 질서가 막을 내린 이후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해졌다고 말하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소위 선진국 여성이 아닌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 제3세계 국가 여성들만 상대로 거래(?)하는 것만 봐도 자본에 따른 권력이 작용 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다문화가정 합동 결혼식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백번 양보해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서로 인연이 닿으면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치자. 그래서 그들의 만남이 알선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해도 이렇게 돈 주고 사들인 '사람'을 말이 안 통한다며 무시하고,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때릴 수도 있다는 데에 문제가 또 다시 발생한다. 마치 비싼 돈 주고 사들인 물건이 생각보다 맘에 들지 않을 때 보이는 반응처럼 돈을 지불한 만큼 제 값을 하길 사람에게 바라는 형국이 되고 만다. 더 이상 인간은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지 않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과 권력에 따른 불평등, 비인간적 행위, 인간 존재가치의 추락을 보여주는 일들이 비단 이것뿐이겠냐 마는 몇몇 필리피노들이 내게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마음이 쓰라렸던 건 이들이 생각해온 한국에 비해, 이들이 경험한 한국이 더없이 초라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류 문화의 영향으로 포장되어 만들어진 한국의 이미지보다, 그래서 그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한국보다 실제로 부딪혀 경험했던 한국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너무나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집 근처에서 마주치던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을 때 이미 한국으로 떠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앳된 얼굴엔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생글 거리던 미소로 가득했었다. 철모르고 마냥 좋아하던 그에게 만큼은 뉴스에서 마주치던 이주 여성들의 문제가 피해가기를, 내가 걱정했던 부분들이 한낱 기우였기를 바라본다. 부디 여느 새댁들처럼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부디.
2017-07-12 | hrights | 조회: 405 | 추천: 1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파업에 참여했던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하면서 노조를 무너뜨리고 있다. 지금까지 해고,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울산공장 539명, 아산공장 269명이다. 하지만 아직 징계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회사가 2차 징계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31일 나는 법률가·인권단체 활동가들로 구성된 ‘인권침해 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징계를 당한 현대차 아산공장 조합원들을 만나고 왔다. 그들의 입을 통해 우리는 현대자동차라는 세계적 기업이 저지르고 있는, 파렴치한 노동 탄압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속노조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300명쯤 된다. 이 가운데 90퍼센트가 징계를 받았다. 두 차례 진행된 징계에서 해고(39명)나 정직(158명) 처분을 받은 조합원들은 현재 공장 출입이 봉쇄돼 노조 사무실마저 들어갈 수 없다. 징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합당한 절차도 없었다. 노조 간부나 대의원, 현장위원들에겐 정직 이상의 중징계가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데 하청 업체마다 강도가 달랐다. 파업 투쟁의 주축을 이뤘던 남명기업의 경우 32명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았다. 대부분이 평조합원들이었다. 1차 징계 때 감봉 처분을 받은 남명기업 조합원들은 계속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장이 ‘노조 활동을 계속하면 추가로 징계하겠다.’며 조합원들을 한 사람씩 불러 징계를 약하게 해 주는 조건으로 3가지 서류(노조 탈퇴서와 “다시는 노조 활동을 안 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와 반성문)를 작성하라고 강요했다. “자식들을 생각해라!”, “네가 잘못되면 집안은 어떻게 되겠냐.”는 끊임없는 회유에 노조 활동 경험이 짧거나 형편이 어려운 조합원 한두 명이 넘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조합원들이 ‘우리 파업은 정당하다. 더 이상 바지 사장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며 사장과의 면담을 거부했다. 그러자 2차 징계로 해고가 통보되었다. 또 다른 하청 업체인 금파산업은 2차 징계위원회가 열리던 날 조합원들이 ‘잔업 거부 투쟁’을 하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관리자들이 와서 ‘너희는 왜 안 나가냐? 일해도 돈 안 준다, 나가라”면서 사실상 파업을 유도했다고 한다. “공장에 있다 보면 더럽고 치사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1차 파업을 마치고 공장에 출근했는데 날마다 주던 간식을 비조합원들한테만 주고 조합원들한테는 주지 않은 일, 조합원들에게는 ‘불법 집단행동을 할 우려가 있다’며 법에 규정된 월차조차도 쓰지 못하게 한 일, 심지어 한 조합원은 임신한 부인이 몸이 아프다고 해서 잔업을 안 하고 집에 가 보겠다고 했더니 사장이 여유 인원이 있는 데도 못 가게 해 부인이 유산을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난 3월 4일 아침, 현대차 관리자와 용역업체 경비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사진 출처 - 참세상 면담이 거듭될수록 조합원들은 가슴에 맺힌 이야기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감정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증언하던 조합원들이 한 사건 앞에서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작년 11월,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5일간 1공장을 멈춰 세우고 파업을 벌이는 동안 아산에서도 점거 파업이 벌어졌다. 11월 17일~18일 그리고 12월 9일,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 200여 명은 대체 인력 투입에 항의하며 공장 안으로 들어가 생산 라인을 세워 버렸다. 곧이어 십 분 안에 나가지 않으면 책임지지 않겠다는 짤막한 경고 방송이 나왔고 대장이 손짓을 하자, 500여 명의 용역 깡패와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을 막무가내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몸에 문신을 새긴 우락부락한 용역 깡패들이 떼로 몰려와 공장 안에서 연좌하고 있던 조합원을 다짜고짜 때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신은 안전화 앞코엔 단단한 쇠심이 박혀 있었다. 공장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조합원의 얼굴을 발로 뭉개는 자들도 있었다. 공장 안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30여 명의 조합원들이 갈비뼈와 이가 부러지고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용역 깡패들한테 그렇게 얻어터지며 끌려 나오는데 ‘내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를 떠올리던 강 모 조합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때 현장에는 경찰이 있었는데 사측의 테러 행위를 보고도 모른 체했다고 한다. 지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자들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고발했지만 검찰은 고소인들인 조합원들만 조사했을 뿐 피고소인들은 소환조차 하지 않았다. 때렸다는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공장에서 쫓겨난 조합원들은 회사 앞에서 아침마다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지만 수백 명의 용역 깡패들이 몰려나와 폭력을 휘두르며 감시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정직자들은 회사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공장에 드나들 수 있는데도, 사측은 남아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명찰까지 바꿔 버리면서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측은 “정직 기간에도 회사의 근로자 신분이 유지되므로(……) 징계에 반발하는 집단행동을 주동하거나 동참할 경우 인사규정에 따라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내용의 경고문을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보냈다. 조합원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노동자는 힘이 없다. 정당한 요구를 내걸고 합법적으로 싸워도 사측은 우리한테 불법 딱지를 붙이고 폭력까지 휘두른다. 저들의 불법을 처벌할 법은 없는가?” 사내하청지회 지현민 사무국장은 파업이 벌어지기 전 2년 2개월 만에 복직 판정을 받고 출근했다가 다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회사에서 30분 만에 쫓겨났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 ‘공장 출입금지 가처분’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오지환 교선국장과 함께 200~300만원의 벌금을 물게 생겼다. 법원에 이의 제기를 했지만 원청의 압박 때문인지 순식간에 집안 살림살이에 압류 딱지가 붙고 경매 절차가 진행되었다. 그는 말한다. “징계를 받았지만 노조의 힘은 더욱 강해졌어요. 하지만 투쟁이 길어질수록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날 거예요. 정규직 노조가 전주 공장만큼만 연대해 준다면 상황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을 텐데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숨 가쁜 만남을 끝내고 일어서려니, 어느 덧 날이 저물었다. 그날 현대자동차 공장 위로 떠오른 큼직한 달은 노동자들의 피를 머금은 듯 유난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94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1. 튀니지에서 시작된 북아프리카, 중동지역에서의 민주화바람과 민중들의 투쟁은 이제 시리아와 바레인, 예멘 등지의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 대지진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더 이상 큰 이슈가 아니어서인지 한국의 뉴스나 매체에서 이전처럼 그 지역의 민주화 혁명 소식을 듣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리비아에서의 연합군 공습이나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소식 정도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의 민주화 혁명, 저항과 전쟁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2. 국내 뉴스를 보고 있으면 내심 짜증이 울컥 한다. 민중들의 투쟁을 반정부군, 시위세력, 반정부세력 등으로 명명한다. 국내 언론들은 시민들과 민중들의 민주화시위에 굳이 정부에 반대된다는 용어를 사용하며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는 듯 한데, 오히려 나에게는 독재에 대한 저항을 반정부로 굳이 묘사하는 모습에 다수 국내언론의 정치색이 묘사되는 듯 싶다. 민주화 시위와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반정부 행위로 믿고 싶은. 3. 3월 20일 “오딧세이의 새벽” 이라는 작전명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주도의 군대가 리비아를 전격 공습하였다. 20일 1차 공습, 21일 2차 공습, 이후 공습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공습의 이유는 리비아의 독재자인 카타피와 그 무리들이 정전의 약속을 깨뜨리고 반대 측 리비아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말처럼 카타피와 그 무리들의 공격행위가 리비아 민중들의 뜻에 절대적으로 반하고, 전쟁범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서방국가의 공습이 과연 리비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튀니지와 이집트처럼 리비아의 민주화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시리아, 예멘에서도 독재자와 독재정권의 민주화 시위탄압이 지속되는데 그때의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국가는 외교적 성명만 내놓다가 왜 긴급하게 리비아에 군사개입을 하였을까? 음... 2003년의 미국이나 지금의 프랑스, 영국 등도 여전히 석유에 집착하고 있는 듯싶다. 리비아 동부 벵가지에서 지난 4월 12일(현지시각) 한 노인이 카다피 퇴진 및 프랑스 개입 지지 시위에 참가했다가 카다피 정권 아래에서 실종되거나 살해당한 희생자 사진 포스터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4. 한국은 물론 다른 국가의 소위 중동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이들도,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민중들의 시위와 혁명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우리가 무지했을 수도 있고 그 지역의 민중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 지역을 석유와 전쟁, 종교 이외의 주제로 바라보지 못한 점이 우리의 무지를 그리고 현재 어떻게 연대를 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지켜만 보고 있는 것 같아 우울하다. 5. 누군가는 이 지역에서의 민주화 혁명이 민중들의 요구와는 다르게 권력집단(종파적, 군벌들)간 분열의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하야하고 난 이후에 각계각층의 민중 대표들에 의한 것이 아닌 군부에 의한 과도정부구성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집트에서 무바라크의 퇴진을 위해 처절히 저항했던 민중들의 시위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고 그동안 다른 지역과 나라에서의 민중들의 시위,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외침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87년 민주화 투쟁이 그러했듯이 민주화 혁명은 어느 한 순간의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들에 의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민주화 혁명은 어떻게 진행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에 의해 진행이 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6. 결국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지지하고 연대할 것인가이다. 이는 방법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누구와 무엇을 연대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그곳에는 대단히 복잡한 정치적 역사와 지형, 권력집단들, 명확하지 않은 시민들의 대표체들이 존재한다. 특히 리비아의 경우에는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하느냐는 기본적인 부분조차 확실하지 않다. 정답은 나도 모른다. 다만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민중들을 중심에 놓고 그곳의 저항과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외침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는 것이 먼저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적으로 멀다고 심정적으로도 멀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7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작년 11월 11일부터 올 1월 23일까지, 74일 동안 유럽의 12개국 26개 도시를 다녀왔다. 평소 사회 공공성 확대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장기근무 안식월을 이용하여 유럽 시민사회를 답사한 개인연수였다. 이에 영국(스코틀랜드 포함),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이탈리아, 터키, 스페인 등 유럽의 많은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였다. 물론 보다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연수가 되지 못해 아쉬움을 가지면서 이곳에 일부를 간략하게 써본다. 여기에 두 가지 정도를 첨언해 본다. 첫째, 그동안 한국 사회가 서구(유럽)중심주의적 사고에 빠져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한국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된 서구(유럽) 시민사회의 모습을 우리 사회에 대입해 운동의 전망을 가져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또한 한국과 유럽시민사회의 형성 배경, 역사, 문화, 경제수준 등의 상이함이 존재하기에 무조건적인 비교는 무리가 있겠으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잘 먹고, 개인의 표현 및 이익이 구현되면서 공동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시민사회와의 비교분석도 필요하다. 1.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야 건강한 사회다. 이게 선진국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반 회사 노동자와의 대화를 가졌다. 본인은 여름에 한 달 동안 유급휴가를 받아 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 만약 이게 실현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파업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근 프랑스는 주요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영국 런던에서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자주 있었다. 정부의 지하철 발매창구 직원 감축 방침에 지하철 노조가 대대적으로 동참하였고, 하루씩 주기적으로 모든 역이 폐쇄되었다. 런던 시민들은 불편했지만, 고용 안정을 위한 파업이라는 노조의 직접행동에 높은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만난 유럽 4개국 사람들 사진 출처 - 필자 더불어 공공 및 사적영역의 서비스업을 통해 만난 유럽노동자들의 평균나이는 한국보다 매우 높았다. 바로 고용의 보장이었다. 유난히 더 추웠던 올 겨울,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에게서는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보이는 그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문득 떠올랐다. 고용과 복지, 의료보험, 교육 등 사회보장제도의 안전망 속에서 살아가는 유럽인들이 있는 반면에, 대기업의 성장률은 사상 최고인데 반해 실업률, 비정규직율, 청년실업률 또한 사상 최대의 현실에서 허우적거리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크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EU) 국민들의 조세부담률이 평균 50%로 한국보다 약 19% 높다는 현실을 짚고 가야 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지속가능한 성장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득 수준에 따라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법인세를 더 내는 기업에서도 지속가능한 성장 측면에서 자신들을 위해 투자한다며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더불어 보수정책을 펼치는 영국 보수당에서도 사회복지정책 강화, 북유럽의 보수정당도 사회복지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보수정권의 집권 하에 대기업 최대 성장률 이면에는 최고의 실업률, 비정규직율, 청년실업률, 양극화가 실존한다. 복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고용 보장이 더 어려워진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다. 수천 년의 한국 역사 동안에 요즘 청년들만큼의 대단한 스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함에도 이 청년들은 여전히 취업을 못하거나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더불어 일자리 불안도 계속 증대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진짜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보다 일찍 형성된 유럽 시민사회의 복지현황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2. 가해자로서의 독일과 일본의 반성은 다르다. 독일 베를린 등 독일 곳곳을 다녀왔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승전 4개국에 의해 동서독 분할 통치를 받았다. 이후 1990년, 동서독은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이제는 통일국가의 수도 베를린이 하나의 큰 관광 상품이 되어 있었다. 무너져버린 베를린장벽, 그리고 그 장벽 위에 그려진 각종 그림들, 브란덴부르크문, 체크포인트 찰리검문소 등 각종 건물 등이 많은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었다. 또한 베를린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는 과거 2차 대전 기간의 폭력성에 대해 반성 하는 상징물들이었다. 그 중 베를린 장벽을 따라 설치된 토포그라피 데스 테러 건물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었다. 과거 나치 통치 시절 게쉬타포 등 나치 친위대 건물로 사용되었던 터에 만들어진 전시관으로서 2차 세계대전 준비 및 기간 동안에 나치와 독일이 유럽인들에 행한 폭력성을 전시하고 반성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우리가 일제의 잔혹행위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것과 같은 끔찍한 사진 및 영상들이 담겨 있었다. 전시관에서 지켜보던 독일인들과 외국인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베를린 '토포그라피 데스 테러' 건물에서 전시물을 보는 사람들 사진 출처 - 필자 이를 보면서 문득 진심어린 사과도 보상도 없는 일본의 과거 전쟁 범죄가 떠올랐다.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박물관에도 핵무기의 피해성만 강조되어 있고, 그들의 가해성은 전시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왜 이렇게 다를까? 가장 큰 해답은 그 원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독일은 전쟁범죄국가로서 분열되었고 통제를 받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오히려 피해국인 한반도의 남북이 갈라졌다. 이 역사적 비극은 미국이 동북아전략의 이유로 일본 천황을 전쟁범죄자로서 법정에 세우지 않고, 한반도 분할을 추진했기에 이뤄졌다. 그러면서 일본 A급 전범자들 7명만 처형을 당하고, 오히려 조선인을 포함한 강제 징병된 외국인 B, C급 전범이 훨씬 더 많이 처형당했던 역사적 상처를 남겼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거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후손들이 여전히 일본의 정치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는 과거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역사를 우리가 배우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보다 더 건강하게 만들어 가고,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함이다. 결국 일본의 시행되지 못한 과거 청산이 오늘날의 군사 대국주의와 우경화의 길로 나서는 현실을 낳았다. 최근 일본 내 유일한 가해자의 폭력성을 담은 단바망간기념관 재건 운동에 흥사단을 포함해 많은 단체들이 나서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돌아봤다. 우리는 지난 날 일제 및 군사정권에서 이뤄졌던 폭력성에 대해 제대로 청산을 하였던가. 오히려 과거의 억압을 청산하고, 역사적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자는 취지에서 설립, 운영되었던 여러 과거사위원회들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우리 스스로가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닫아 버렸다. 참 씁쓸한 일이다. 유럽연수를 다녀온 후 유럽 시민사회를 더 알고 싶어졌다. 최근에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을 읽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적 안정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했으며, 실제로 놀라울 만큼 그것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실행 프로그램을 개발해 낸 것은 바로 사회민주주의였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마지막으로 ‘키 큰 나무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고, 깊은 강을 건너니 내 혼이 더 깊어졌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유럽연수가 나에게는 키 큰 나무숲, 그리고 깊은 강이 되어주었다. 앞으로 내 삶의 마디마디에, 그리고 운동의 걸음걸음에 이러한 정신들이 더욱 더 깊이 새겨져 있으리라 본다. * 보태기 - 최근 대지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일본의 많은 생명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이 상처가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는 일본과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 일본이 큰 상처를 입은 시기임에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전쟁과 폭력에 대한 반성의 내용을 담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 검사의 문초 중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웃인 대한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아니 될 것이다. 원한 품은 이천만을 억지로 국민 중에 포함하는 것보다 우정 있는 이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득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위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도산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풀려나 2개월 후인 1938년에 경성대학병원(현 서울대병원)에서 서거하셨다. 모범적인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독립된 나라를 끝내 만나지 못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10 | 추천: 0
김현진/ 에세이스트 녹즙 배달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했던 상식은 이 녹즙은 어디에 좋고 저 녹즙은 저기에 좋고, 라든가 접객 요령이라든가 밀린 돈을 칼같이 받아내는 수금의 요령이라든가 신규 고객을 칼같이 낚아채는 세일즈의 기술 같은 게 아니라 ‘걸을 때 소리 나지 않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제일 중요했다. 가정집에 배달하는 것은 일반 지사라고 하고, 사무실에 다니는 것을 특판 지사라고 하는데 내가 찾아간 곳은 특판 지사였다. 워낙 모든 사람이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하는 과로의 시대다 보니 업무 시간은 아홉 시부터 시작이래도 사무직 노동자들은 몇 시든 나와서 일했다. 고무창이 잘못되었다거나 조금이라도 딱딱한 굽이 있는 신발을 신어서 소리가 나면 안 됐다. 살금살금, 쥐도 새도 모르게 없는 듯이 다닐 수 있도록 소리 안 나는 신발을 신는 게 제일 중요했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도 하나같이 부드러운 밑창의 효도화를 신고 일하셨다. 편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주머니들도 죄다 살금살금 다녀야 했다. 청소도 소리 안 나게 살금살금 하고, 삐걱삐걱 큰 소리 나는 금속 쓰레기통도 살금살금 비우고, 사무직 노동자들이 출근하지 않는 새벽 네 시부에 일단 진공청소기를 돌린다던가 하는 큰 청소들을 죄다 해 놓고 오후 네 시까지 건물 구석의 방에서 교대로 일하면서 구겨서 버린 종이컵, 뱉어 놓은 침, 바닥에 쏟은 커피 같은 걸 살금살금 치웠다. 사무실 사람들도 아주머니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아주머니들도 살금살금 재빠르게 사라지느라 사람들과 눈을 안 마주쳤다. 출처 - 경향신문 가끔 스키니 진 입었다고 청소 아주머니들한테 혼나곤 했다. 살금살금 다녀야 할 주제에 그딴 걸입었기 때문이었다. 청소 아주머니들은 그럴 때마다 번번이 사무실 분들, 사무실 분들이라고 불렀다. 사무실 분들이 보시는데, 사무실 분들이 불편해 하시는데. 우리는 사무실 분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소리 나지 않게 다니면서, 살금살금 일해야 했다. 죽은 듯이 일하는 게 우리 일이었다. 그럴 때 가끔 슬퍼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금살금 다녀야 하나. 죽은 듯이 일해야 하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을지 몰라도 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귀천이 있구나. 먹고 산다는 것은 고귀할지 몰라도 먹고 살고 있는 사람은 고귀하고 아니고가 있구나. 사무실 분들이 있고 아닌 분들도 있구나. 물론 나는 아닌 분이었다. 물론 살금살금 다녀야 하는 사람들끼리 죄다 연대한 건 아니었다. 녹즙 샘플 안 준다고 꼬집히고 옷 가지고 괜히 쥐어 박히고 나는 살금살금 다녀야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먹이사슬로 따지자면 플랑크톤 수준이었다. 뭐 입맛 다실 거 없나? 하고 멀리서부터 효도화 신고 살금살금 오셔서 누가 이야기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괜히 트집 잡아 나를 꼬집고 밀치고 쥐어박던 아주머니를 보면 이가 갈렸지만, 일년 지나서 계약 연장이 안 되어 다른 아주머니들로 싹 갈린 걸 보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갈린 아줌마나 다시 온 아줌마나 나나 죄다 우리는 죽은 듯이 일해야 하는 건 똑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죽은 듯이 일하면, 정말 죽은 걸로 아는 거였다. 홍대 청소용역 노동자 투쟁은 다행히 복직으로 해결되었지만, 지금까지 그분들의 하루 식대가 300원으로 책정된 걸 보면 이 사람들은 이거 먹고도 살 수 있겠거니 하는 것이다. 하도 없는 듯이 일하니까, 살금살금 일하니까, 죽은 듯 일해 주니까 너무 낯설어서 유령이라도 된 듯 정말 죽은 걸로 아는구나 싶었다. 소리 나는 신발을 또각또각 신고 일할 생각은 없지만, 죽은 듯이 일하지 말고 다들 산 것처럼 일해야 사무실 분들 아닌 분들 없어지지 싶다. 나 불편할 때는 반짝 살아 일하고 내 눈에 거슬릴 때는 죽은 듯이 일해 달라, 이런 요구 없이 일할 수 있어야지 싶다.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 취급하니까 유령도 하루에 300원 갖고 먹고 살 수는 없겠건만 산 사람보고 300원 갖고 자꾸 먹고 살라는 거지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18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대부분의 TV 뉴스가 마칠 때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주식시장 동향이다. 어떤 때는 한국의 것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의 것도 나오고 때론 금 시세나 환율 동향도 등장한다. 한국만 그런지, 자본주의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들도 예외 없이 같은지 늘 궁금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나라가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주식도 단 한주가 없는 나 같은 이에게도 예외 없이 주식시장 동향을 왜, 보여줄까.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주식시장, 환율시장, 채권시장 등 자본시장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기업의 활동과 국민경제 전반이 그렇다. 더 이상 세상의 자본주의는 정상적인 생산과 소비, 저축이 아닌 주식시장의 표시된 숫자가 경제자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빨간 색에 웃고, 파란 색에 운다. 하지만, 그 숫자는 정당할까.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점점 증명된다. 오히려, 그것은 거품 덩어리에 불과하고, 지금은 그 거품의 붕괴를 세상 모두가 두려워한다. 주식 포인트 2000이 붕괴되면 그 주식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도 떨어야 한다. 자신이 고용된 기업의 경영목표도 생산이나 고용이 아닌 주가 상승이고, 국민노후를 위한다는 국민연금을 동원해서 주가를 더 받치고 있으니 말이다. 기업의 생산성에 관계가 없이 기업파산과 일자리 증발을 가져와 자신의 삶이 당장 파괴될 수도 있고, 성실하게 납부한 국민연금이 바닥이 나서 거리에서 폐지를 줍다가 생을 마감할 수도 있기에 그렇다. 정말, 웃기고도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이 합리적으로 운용되도록 우리 모두가 참여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그것은 더 웃기는 소리이다. 한번이라도 기업의 주주총회 같은 것을 본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가 헛소리라는 것을 단번에 느낄 것이다. 우리 같은 시민들이 참석하는 회의는 대부분 “성원 보고”를 한다. 보통 “총원 00명 중, 00명 참석으로 성원이 되었습니다.” 하는 식의 의장 개회선언이 있다. 하지만, 그곳은 성원 보고가 아닌 “출석 주식 보고”를 한다. 보통 민주주의가 상식인 세상에서 1인 1표가 아닌 보유주식에 따른 의결을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아닌 돈이 지배하는 것이다. 이 대명천지 21세기에 재산에 따라 투표권 행사를 하는 유한선거제나 귀족정을 하는 곳이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정말, 반인권적이고 반동적 작태이다. 사실, 주주총회 따위도 필요도 없다. 그냥 대주주 마음대로 하면 되니까 그렇다. 3대 세습을 하던, 노동자를 죽이던, 탈세를 하던. 그나마 소액주주는 주주총회장에나 들어가지만, 한주도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주주총회장의 결정에 지배를 받지만 철저히 배제된다. 이를 유식한 말로 “주주자본주의”라고 한다. 그럼에도 소수의 대주주가 거대 기업을 지배하고, 거대 자본의 욕망에 따라서 주식시장은 춤을 춘다. 그리고, 그들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 따라서, 일부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소액주주운동’이나 ‘소유지배 개선’은 넌센스, 몰상식이다. 차라리, 대주주와 대자본이 기업과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직접적이고, 효과적이며, 합당한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TV에서는 왜, 주식시장을 생중계할까? 여러모로 생각을 해보았지만, 적절한 답은 평범한 대중들에게 알량한 자본이라도 들고 주식시장에 참여하라고 꼬드기는 것에 불과하다. “한탕 크게 하면 대박”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박은 누가 날까? 주식시장에서 통용되는 여러 법칙들과 경제지표라는 것이 실물경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소위 전문가들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다. 즉, 실질성장이나 기업가치가 아닌 배팅을 잘해서 단기간에 고수익을 내는 것이 주직시장의 목표이다. 한마디로 그냥 “투기”이다. 결코, 주식시장은 기업 생산에 필요한 건전한 투자금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그건 고등학교 사회책에나 있는 말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배팅에 거는 돈도 많다. 시중 부동자금이 800조원이라는 언론보도를 본 지도 1년이 넘었다. 그 돈은 다 누군가의 소유이고, 도박판 투기에서는 큰 배팅을 해야 고수익도 본다. 물론, 고위험도 있다. 더욱이 과도한 차입금으로 조성된 “투기자본”이라면 위험도는 커진다. 투기자본이 무자비한 것은 시장의 다양한 위험 속에서 단기간에 고수익을 챙겨 먹고 튀어야(먹튀)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투자자와 “신용”을 지키게 되고, 더 많은 차입금이 생길 것이다. 이 때, 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가 국가를 장악 또는 매수해서 소위 ‘공적자금’을 마음대로 빼먹는 길이다. 이 때, 그들이 금융기관을 소유하면 모두가 찬양까지 하며 국민혈세를 바친다. 한국의 “론스타게이트”가 그런 것이고, 미국의 월스트리트가 금융위기에 벗어난 방식이다. 지금도 국민연금을 통해 늘 주가를 부양하는 것이 국가 정책목표이기도 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변호사, 교수 등 소위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투기자본과 국가 관료집단 간의 삼각동맹일 것이다. 때로는 이들은 “회전문 인사”로 연결된다. 한국의 경우,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대형 로펌들, 삼일과 삼정 같은 회계법인들을 감시하면 잘 보인다. 다른 하나는 무지한 대중을 현혹해서 자신들의 투기장-주식시장에 끌어드리는 것이다. 대박의 환상은 TV를 통해 이미 많이 유포됐다. 또, 실제로 국가는 그 투기장과 투기자본을 적극 보호하고 육성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다른 나라는 약 30여년, 한국은 십 수 년 전부터 그랬다. 민주정부 10년,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소리는 마치 도박판에서 판돈 잃은 투기꾼이 개평 좀 달라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껏 국가는 투기자본 양성을 위해 입법을 했고, 사법으로 보호했고, 행정 서비스를 제공했다. 투기자본이라는 야수를 시장에 풀어서 마음대로 사냥하라고 부추겼고, 사냥감도 제공했다. 그것이 공기업 민영화이고, 빅딜이고, 사모펀드 활성화인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투기자본의 사냥에 미쳐 죽지 않고 피 흘리며 저항하는 다른 시장참여자 - 노동자, 소지자, 지역주민이 있으면 경찰까지 동원해 대신 죽여 먹잇감으로 던져 주었다. 제 3세계의 경우, 군대까지 보내 대신 사냥한다. 더불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세금”이다. 한국은 자본가도 그렇지만, 노동자도 세금을 매우 적게 낸다. 언제나, 국가는, 역대 정부는 감세정책을 시행했고, 요즘은 여러 공공부문에서 적자라는 말도 들린다. 그러니, 사회복지도 없고 시민사회 연대의식 따위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세금부과가 적어 가처분 소득이 풍부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박의 환상을 불어 넣어 투기장으로 밀어 넣기만 하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노동소득으로 노후가 불안하다면, 은행의 예금 금리보다 더 벌고 싶다면, 아파트 평수 늘리자면 등등.. 남들 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자면 투기는 확실히 인생목표가 될 것이다. 결국, 대중이, 개미들의 작은 자본들이 모여 투기자본에 투자되고, 모두가 두 손을 모아 그들의 투기성공을 빈다. 이것이 천만 펀드시대에 대박 열풍에 놀아나는 대중의 불안이고, 신앙이며, 몰염치이다. 하지만, 그들의 투기가, 되돌아 올 투자수익이 누군가의 피눈물이고 청년들의 고용불안이라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 많은 중국펀드, 베트남펀드를 생각하면 이것은 전 지구적인 문제이다. 론스타펀드의 주요 투자자가 미국의 교사 노동자들의 연금이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과 한국의 어떤 노동자는 론스타 덕에 행복하고, 한국과 미국의 어떤 노동자와 서민들은 불행한 것이다. 그 투기수익은 제조업의 경우는 노동자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고배당이나 부동산 매각과 유상감자, 기술유출 같은 약탈대상 기업의 자산 빼먹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약탈적 대출행위나 사기수법을 동반한 파생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각종 부외수익과 수수료에서 나온다. 그래서, 매년 수조원의 고수익을 번다. 이를 두고, 유식한 말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고 한다. 그 투기로 인한 고수익의 부스러기를 약간이나 주어먹고 행복해 하는 행위는 참으로 비윤리적인 일이다. 주식투기, 부동산투기에 투자(은행과 금융기관에는 부동산 기획 대출상품이 참 많다!) 하는 것 보다 밤에 술 많이 사먹고, 택시는 꼭 타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팁’도 많이 주고,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지방에 놀러가 서울만 쳐다보는 지방민들에게 돈 좀 쓰고, 대형마트 “정크 푸드”말고 재래시장에 가서 제발 깍지도 말고 식재료 사먹는 것이 한국 정규직 노동자 수준에 딱 맞는 “윤리적 소비”이고, 소득재분배 없는 나라에서 “사회연대”라는 것이 내 솔직한 생각이다. 불행이도 말이다. 하지만, 노동시간 줄이고 세금 더 내자는 말은 차마 못해도, 고액연봉이나 스톡옵션 더 달라는 뻔뻔한 노동조합은 이제는 제발 사라지길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요즘 한국을 표현하는 적절한 표현으로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개인들’이란 말이 자주 보인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예전에는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면 온 사회가 분노로 다 들고 일어나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대중적 관심은 누가 대박이 났을까 이다. 결국, 주식 투기 또는 부동산 투기에 환장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천년만년 지속될 수 없다. 문제는,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것은 그 투기에 실패할 때, 우리사회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개인의 희생을 치러야한다는 점이다. 이제라도 시민사회가 나서서 자본시장으로써 순기능 따위는커녕, 다수대중들의 영혼과 노동을 파괴하는 주식시장 폐지를 주장해야 한다. 더는 우리사회가 망가지고,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이 글은 필자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거리낌 없이 썼지만, 필자가 속한 단체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00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대해 리비아 정부가 벌인 대응방식은 말 그대로 ‘막가파’다. 이 정도면 학살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는 발표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초강경 시위 진압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리비아의 국가원수 무아마르 알 카다피(69)는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다. 그런데 말이다. 그 역시 한때는 부패한 왕과 낡은 전제군주제를 몰아내고 국가의 면모를 일신했던 젊은 혁명 영웅이었다. 하지만 42년이라는 시간은 눈에 총기가 가득한 새 세대 지도자를 권력의 단맛에 취해 눈이 풀려버린 똠방각하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카다피는 1942년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한 뒤 군사학교에 들어가 직업군인이 됐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나세르를 모방해 젊은 장교들로 구성된 ‘자유장교단’을 구성한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일개 대위에서 일약 혁명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해 권력을 장악했다. 즉각 국부 유출의 원흉으로 규탄의 대상이던 외국 석유회사들을 추방하고 석유를 국유화했다. 민간인을 상대로 패악질을 일삼아 원성이 자자하던 미군들을 몰아내고 기지를 철수시키고 비동맹운동에 참가하는 등 독자외교노선을 견지했다. 과거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식민잔재도 철폐했다. 하지만 카다피는 단일 이슬람 국가 건설을 시도하고 엄격한 금욕주의 정책을 시행하는 등 점차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외교무대에서 숱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중동사 전문가 고 앨버트 후라니는 저서 ‘아랍인의 역사’에서 정권을 잡을 당시의 카다피에 대해서는 ‘장교 출신의 탁월한 인물’로 표현한 반면 권력을 장악한 뒤의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이런 엽기 행각 때문에 점차 카다피는 괴팍하다거나 ‘4차원’이라는 평판을 받게 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그를 일컬어 “중동의 미친 개”라고 했던 게 대표적이다. 카다피는 미군 기지를 철수시키는 등 반미노선을 견지했고 그 대가로 리비아는 오랫동안 미국과 군사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대외적으로 고립을 감수해야 했다. 미국은 1979년 시위대가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을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1980년 외교관계를 끊었고 이후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레이건은 미국을 겨냥한 테러사건의 배후라는 이유로 1981년과 1986년 두 차례 리비아를 폭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비아와 미국은 2003년 12월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에 전격 합의했고 이후 관계개선을 거쳐 2006년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외교관계를 전면 정상화했다. 혹시 1980년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출동 에어울프’라는 미국 드라마를 아시는지. 그 드라마 첫 회에 보면 에어울프 제작에 참여한 어떤 미치광이 박사가 에어울프를 탈취해 향하는 곳이 바로 리비아다. 그는 그곳에서 미녀들에 둘러싸여 미친 짓을 서슴지 않고 미군 함정을 공격해 침몰시키기도 한다. 카다피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있다.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은 또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하지만 관계정상화 이후 미국에서 카다피 비판은 사라져 버렸다. 미국 정부는 입을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싹 씻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리비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숱한 미국계 석유기업들이 리비아로 몰려들었다. 부족들 간의 알력을 이용하고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이익을 독차지하는 통치행태는 결국 민중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다. 이제 카다피는 사실상 트리폴리와 그 지역 일부만 지배하는 일개 군벌로 전락했다. 지난달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카다피와 일가, 측근들 16명을 여행금지 대상자로 지목했다. 향후 안보리 결의가 있으면 국제형사재판소(ICC) 전범재판에 회부될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카다피 본인을 뺀 15명 가운데 카다피 친인척이 아닌 인사는 5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카다피가 얼마나 카다피 일족을 중심으로 한 전근대적인 독재정권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남 무하마드(41) 리비아 올림픽위원장, 3남 사아디(38) 리비아 축구협회장 겸 특수부대 사령관, 7남 사이프 알아랍(29)을 빼고는 역시 자산동결 대상에 올랐다.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9) 국제 카다피 자선·개발 재단 이사장은 여러 차례 공개연설을 통해 시위대를 겨냥한 폭력행위를 부추겼다. 5남 무아타심(35) 국가안보보좌관과 6남 카미스(33) 32여단 사령관은 유혈 시위진압을 주동했다. 사이드 모하메드 카다피 알담(63)은 카다피의 사촌이다. 유엔 안보리에 따르면 그는 1980년대 암살단에 관여했으며 여러 암살사건의 용의자이기도 하다. 압둘라 알세누시(62) 군 정보부장(대령)도 카다피와 동서지간이다. 카다피는 최근 외신 인터뷰를 통해 리비아는 평온하다거나 리비아 국민들이 모두 자기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망발을 일삼아 또 한 번 비웃음을 샀다. 그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극단적 자기애에 빠지면 그리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성공한 사람들 중 일부에서 나타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바탕으로 특권의식 아래 타인에게 착취적인 행동을 하는 병이다. 물론 망상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란 분석도 있다.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표창원 교수는 미국 방송과 인터뷰를 하거나 ‘오바마는 좋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에서 볼 때 막다른 골목에서 미국에 타협을 타진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누구라도 카다피처럼 될 수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과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자만, ‘이 나라를 신(神)께 봉헌하겠다’는 망상만 있으면 권력이라는 사카린 한 숟가락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면에서 카다피는 팀플레이가 아니라 개인기로만 골을 넣으려다 공 뺏기고 나면 도와주는 선수가 없어서 힘들다고 푸념하는 어떤 축구선수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겐 안해본게 없는 경험 많은 지도자보다는 개인의 한계를 절감하며 제도와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하루에도 몇번씩 속으로 ‘뒈져라 카다피’를 외치는 와중에 그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반면교사가 아닐까 싶다. 뱀다리(蛇足): 이슬람에서 유일신으로 숭배한다는 ‘알라’란 말 그대로 ‘신’을 뜻한다. 그러므로 알라신이란 말은 ‘역전앞’처럼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또한 코란은 아브라함부터 다윗, 솔로몬, 성모 마리아, 독생자 예수(그의 부활까지) 모두 선지자로 인정하고 그들을 보내주신 신(=알라)를 경배한다. 그러니 카다피가 이슬람국가를 세운다고 했던 것이나 온 세상을 ‘교회 천국’ 만드느라 불철주야 노력하는 한국의 ‘일부’ 목사들이나 내 눈엔 똑같이 보일 뿐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