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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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현정/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간다. 전쟁 발발, 전면적 대결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천안함 사고로 불거진 남북 대결 국면은 마치 치킨게임처럼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와 같다. 94년 한반도 전쟁 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출구 전략도 없어 보인다. 지난 20일 허울뿐인 민군합동조사단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해 북한 어뢰 소행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24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전쟁기념관에서 남북교류 중단과 자위권 발동 기조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물기둥 시뮬레이션이 7월에 완료되고, 어뢰 공격을 입증할 가스터빈실도 조사가 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이렇게 서둘러 최종 발표를 하는 것은 그 결과가 지방선거용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었다. 의문점이 이 뿐만이 아니다. 침몰 직전의 TOD 영상만 없다는 - 군은 사고 초기에 영상이 없다고 거짓 발표를 하였음 - 것과 보안상의 이유로 교신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발표 5일 전에야 쌍끌이 어선 그물로 낚여 파란 매직으로 ‘1번’이라고 적힌 어뢰는 공개하면서, 이보다 더 확실하게 북한 소행 증거가 될 수 있는 침몰 영상과 교신 기록은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북한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이명박 정부 동안 남북관계의 중단, 남한의 보복론에 대비한 전쟁 태세, 그리고 확성기 조준 격파사격 등 강경 자세이다. 이러한 것이 맞물려서였을까. 최근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한반도 리스크를 인정하고 있다. 결국 북한에 고통을 준다는 것이 우리한테 고통으로 되돌아온 꼴이 되었다. 북한의 지난 두 번의 핵실험 등이 있었을 때에도 이처럼 타격을 입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는 남북 간에 대화 채널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는 한반도 위기가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결국 남북 간 대화 채널을 만들고, 협력 체제를 가져온 6.15공동선언의 정신이 천안함과 더불어 완전히 침몰해 버렸다.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한 2000년 6.15공동선언이 곧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러나 10주년의 반가움보다는 슬프게도 한반도에서 그 정신은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이번 천안함 사건과 같은 남북 간 전면적 대결 구도는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공격으로 드러난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 지난 24일 오전 서울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현 정부의 비핵개방3000정책, 무조건 기다리겠다는 전략, 6.15와 10.4선언 이행 유보, 맹목적 인권문제 접근, 북한의 구조적 변화 강조 정책 등은 결국 대북공세정책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지난 2월 개성실무회담에서의 남한 대표단의 강경 자세로 남북 간의 지렛대는 사라져버렸고, 이러한 정세 가운데 천안함 사고 발발은 남북 간에 돌이킬 수 없는 대결 구도를 양산해버렸다. 결국 수 년 동안 중국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방중을 애타게 요청했으나, 미국과 남한과의 외교 등에서 줄타기를 해오면서 거절했지만, 지난 5월 초에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의 비호를 받게 됨으로써 한미와 북중 구조라는 냉전의 산물도 남겨버렸다. 6.15공동선언은 북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 발전의 규범적 지위 확보, 분야별 대화의 제도화 실현, 교류협력 확대,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 계기 마련 등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이는 남한에도 전쟁의 공포가 아닌 평화 공존 확립, 외세의 영향보다는 자주성 확립, 한반도 리스크 감소와 안정적 경제 성장, 대륙 진출로의 가능성 등의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결국 풍전등화와 같은 한반도 대결 상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6.15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출구 전략도 없이,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남북 대결 구도의 지속이 아니라, 남북 간에 현 상황을 대화와 만남으로 이어가야 한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있고, 계속해서 대북강경정책을 펼치는 남한과,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에는 남북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북한과의 전면적인 대화와 협력은 현실 불가능하다. 6.15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상대방 체제를 존중하면서 대화의 자세를 취하자는 것이고, 당장 천안함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조사단과 중국 등의 국제조사단 등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전히 남한 정부가 선거용 북풍으로 몰아가기 위해 북한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선거 투표나 직접행동을 통해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중심은 어디일까? 가슴, 머리, 손과 발일 수 있겠지만, 중심은 바로 가장 아픈 곳이다. 세상 이치 또한 그러하다. 지금 우리 한반도의 가장 아픈 곳은 전쟁 불안과 남북 간 신뢰이다. 그로 인해 그 동안 추진해온 남북경협사업,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이 문을 닫았고, 그러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번 남북교류중단 발표에서 현인택 통일부장관이 개성공단을 북한지원사업 범주에 넣었던데, 개성공단은 평화와 경제 차원에서 철저하게 남한에 더 큰 도움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원했던 사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남북 간 협력이 사라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외세 영향력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자주적 외교력 차원과 다자적 안보협력체제에도 매우 부정적인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지난 미국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후세인 축출에 있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존재는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더불어 미국의 7년의 대북 강경책이 성공하지 못해 오히려 북핵 위기만을 불러왔고, 더불어 정권 말기에 온건책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우리 또한 설득력이 부족한 정권의 안보불안 정책, 대북 강경책으로만은 변화보다는 오히려 위기를 맞는다는 역사를 똑똑히 기억해야만 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경제도 발전시키고, 한반도 안정을 관리하고, 6자회담 등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남북 간 소통과 신뢰 구축 회복, 바로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83 | 추천: 0
감현진/ 에세이스트 항상 전라도 남자가 좋았다. 물론 여자도 좋다. 아마도 대구에서 태어나서 평생 경상도 사투리로 박정희 때문에 우리가 잘살게 된 거 아이가, 전두환이 그래도 참 화끈했다 아이가, 현철이 그거 뭐 김영삼이 그래도 참 깨끗하다 저거 아들한테만 몰아 줬다 아이가, 뭐 이런 소리만 듣고 커서 그런 것 같다. 훌륭하고 공정한 경상도 남자 분들께 죄송하지만 혈족 여부를 막론하고 내 주위의 아저씨들은 죄다 저런 말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박근혜를 매우 사랑하는데 그들은 다행히 혈족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누군가의 칭찬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이 빨갱이라는 것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것처럼 당연했고, 그를 따르는 전라도 ‘놈’들도 빨갱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금마들은 김대중 선생님이라고 안 하면 잡아물라칸다 안카나, 하며 혀를 차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는 셀 필요도 없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도 저거 완전 빨갱이 신문 아이가, 하며 혀를 차는 소리는 열렬히 계속되었다. 빨갱이가 뭔지는 몰랐지만 나쁜 거라는 건 알았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던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미움 받는 사람들에게 호감이 간 것은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그들에게 들어 온 80년의 광주 시민들은 당연히 ‘폭도’였고 그게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하고 턱 하고 알아챈 것은 머리보다 혓바닥이었다. 요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머리보다 짤막한 세 치 혀가 훨씬 더 정직했다. 오랫동안 가마솥 안에서 끓인 순대국과 젓갈을 가득 넣은 전라도 김치를 처음으로 맛보았을 때 머리로 생각할 틈도 없이 혀가 먼저 탄식했다. 얘, 네가 태어나서 스무 해 동안 먹어 온 김치는 김치가 아니라 잔디 뜯어다 대강 양념한 거였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지의 지역적 특성상 일단 신선하고 다양한 식재료 조달이 어렵고, 늘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맛이 얼른 가 버리거나 혹은 맛이 제대로 들지 않는 음식을 먹는 우리에게 끼니란, 음식이란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아무거나 먹고 치우자, 우리는 종종 그렇게 말했고 빠른 시간 안에 후딱 먹어 치워버렸다. 하지만 절대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먹어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 이후 <광주집>이나 <나주순대국>같은 곳에서 막걸리와 각종 안주를 탐하면서 간혹 80년의 광주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살아 온 사람들은, 세상에 맛있는 게 있다는 걸 알면서 살아 온 사람들은 보다 용감하고 너그러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몇 년 전 광주 출장을 갔을 때 들른 식당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두 아이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있던 그 부모는 먹어 ‘치울’ 생각을 않고 끝없이 먹는 얘기를 했다. 내가 처음 순대국을 먹어 봤을 때 이렇더라, 내가 처음 부대찌개를 먹어 봤을 때 그 맛이 저렇더라, 우리 집에서 만들었던 최고의 송편이 언제 적 그 때 그 송편이었는데 비결은 거기에 넣은 이것이 이러저러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주에 비가 오면 만두 빚어 먹고 싶다 저번에 비올 때 해 먹은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어린 아이들도 풋고추에 된장을 잘도 찍어 먹으며 쉬지도 않고 조근조근 먹는 이야기를 하던 그 가족은 고기를 다 구워 먹고 나자 살뜰하고도 노련하게 누른밥 한 공기와 냉면, 동치미국물에 만 국수를 청해서 바지런히 마지막 젓가락까지 꼴깍 넘기고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공수부대와 대치한 가운데 집회를 갖고 ‘전두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5·18기념재단 산해진미의 문제가 아니다. 김치 한 그릇을 먹더라도 양념 사이에 좀 눕혀 뒀던 배추조각이 아니라 온갖 오묘한 맛을 내는, 말 그대로 ‘김치’를 먹으며 살아 온 사람들은 앞으로 남은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할까. 먹고 ‘치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아직 먹어보지 못한 ‘맛’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기대하는 사람들은 인생에도 보다 많은 맛을 기대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란, 어차피 더 많은 ‘맛’의 문제가 아닐까. 니 맛도 있고 내 맛도 있어야 하고 이 맛도 있고 저 맛도 있어야 하고 그게 이상할 것 없이 저마다 제 맛이 있고 제 입맛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 ‘민주주의’란 것이 아닐까. 그래서 80년 광주의 도청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꼭 먹는 생각이다. 아무도 장사를 치러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삼십 년 전 오늘 새벽 깨끗이 씻고 속옷까지 새 것으로 갈아입은 채 꾸벅꾸벅 졸며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청에 남았던 그 사람들이 투사로서 생각했던 것은 물론 역사의 장엄한 부름과 민주주의의 승리였겠지만 ‘사람’으로서 생각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따뜻한 밥 한 공기 아니었을까. 살아서 내일도 맛있는 밥을 먹어야지, 열심히 싸워서 후세에게는 뜨거운 자유를 먹여야지, 민주주의의 참된 ‘맛’을 보아야지, 그것이야말로 영웅들의 ‘밥심’이 아니었나 생각하면 번번이 눈물이 난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삼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끼니를 그들에게 빚졌는가. 그 빚진 끼니, 앞으로도 빚지고 살아갈 끼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서 해마다 5월이면 고인들의 영전에 뜨끈한 순대국과 막걸리 한 사발 올리고 싶다. 앞으로도 주신 끼니 소중히 하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면서.
2017-07-12 | hrights | 조회: 288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현 정부 들어 많은 부분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87년 이후 눈물겹게 쌓아왔던 민주주의의 성과가 ‘좌빨들의 편향’으로 공격받으며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촛불세력의 반성’ 운운하는 대통령의 한심한 발언은 불의의 시대라는 진단에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일련의 후퇴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경찰이다. 경찰의 후퇴는 한심한 수준을 넘어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미 촛불국면에서 보여주었던 경찰의 대응은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국치안에 힘쓰지 말고 민생치안에 힘쓰라는 국민의 요구는 물대포 직사로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또한 촛불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열풍도 군사정권이 보여주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 활동에 국민은 없고 정권의 요구만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런 경찰 활동이 최근 들어 공안경찰로 굳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4월 일부언론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경찰청이 진보성향 교육감 후보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정보과 형사들에게 좌파 후보들의 선거 전략과 지원세력, 자금 및 조직 현황 등을 파악하라고 되어 있다. 반대로 우파 후보들에 대해서는 우파 후보 승리를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일이 벌어지자 소위 진보후보들은 “경찰의 선거개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악할 일은 또 있다.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전남대 학생을 벌건 대낮에 학교 안까지 들어와 강제 연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봉고차를 대동한 사복경찰들이 몸싸움까지 벌이며 강제 연행했고, 경찰을 깡패로 오인한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헤프닝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연행된 학생은 2008년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한총련의 의장 대행을 한 이후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수배를 받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혐의라고 하는 것이 실익이 불분명한 국가보안법 위반이었고, 고작해야 학교에 숨어 지내야 하는 연약한 존재였다. 과연 이 학생에게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대학 안에서의 연행을 할 만큼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본관 건물 사진출처 - 문화일보 이 뿐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공안경찰로 급격하게 후진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수사권 조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활발하게 논의되다가 좌절되었던 것이 검찰의 일탈을 기회로 해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 설치, 중수부 폐지 등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주장도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게만 인정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게도 일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안이 있지만 수사의 개시와 진행은 경찰이 하고, 종결은 검찰이 하도록 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수사권 조정은 경찰 활동이 완전하게 민생치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과거 경찰은 정보와 보안 등 소위 공안부서가 밥을 먹여주는 꼴이었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사와 생활안전부서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시국치안에서 민생치안으로 조금씩 이동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권 조정 요구도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고, 시민사회와 국민의 지지 또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경찰 스스로는 실력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찰 활동의 변화 없이는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경찰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수사권 조정이 경찰에게는 검찰과의 자존심 문제를 넘어 사활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보와 보안에 무게가 실린 공안경찰에게 수사권이라는 무기까지 주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권의 입만을 바라보는 경찰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사권과 공안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으나 국민의 감정은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찰이 진심으로 수사권 조정을 하고 싶다면 공안의 탈을 벗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수사가 아니라 국민의 힘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94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현 정부 들어 많은 부분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87년 이후 눈물겹게 쌓아왔던 민주주의의 성과가 ‘좌빨들의 편향’으로 공격받으며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촛불세력의 반성’ 운운하는 대통령의 한심한 발언은 불의의 시대라는 진단에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일련의 후퇴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경찰이다. 경찰의 후퇴는 한심한 수준을 넘어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미 촛불국면에서 보여주었던 경찰의 대응은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국치안에 힘쓰지 말고 민생치안에 힘쓰라는 국민의 요구는 물대포 직사로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또한 촛불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열풍도 군사정권이 보여주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 활동에 국민은 없고 정권의 요구만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런 경찰 활동이 최근 들어 공안경찰로 굳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4월 일부언론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경찰청이 진보성향 교육감 후보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정보과 형사들에게 좌파 후보들의 선거 전략과 지원세력, 자금 및 조직 현황 등을 파악하라고 되어 있다. 반대로 우파 후보들에 대해서는 우파 후보 승리를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일이 벌어지자 소위 진보후보들은 “경찰의 선거개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악할 일은 또 있다.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전남대 학생을 벌건 대낮에 학교 안까지 들어와 강제 연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봉고차를 대동한 사복경찰들이 몸싸움까지 벌이며 강제 연행했고, 경찰을 깡패로 오인한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헤프닝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연행된 학생은 2008년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한총련의 의장 대행을 한 이후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수배를 받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혐의라고 하는 것이 실익이 불분명한 국가보안법 위반이었고, 고작해야 학교에 숨어 지내야 하는 연약한 존재였다. 과연 이 학생에게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대학 안에서의 연행을 할 만큼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본관 건물 사진출처 - 문화일보 이 뿐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공안경찰로 급격하게 후진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수사권 조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활발하게 논의되다가 좌절되었던 것이 검찰의 일탈을 기회로 해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 설치, 중수부 폐지 등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주장도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게만 인정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게도 일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안이 있지만 수사의 개시와 진행은 경찰이 하고, 종결은 검찰이 하도록 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수사권 조정은 경찰 활동이 완전하게 민생치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과거 경찰은 정보와 보안 등 소위 공안부서가 밥을 먹여주는 꼴이었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사와 생활안전부서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시국치안에서 민생치안으로 조금씩 이동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권 조정 요구도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고, 시민사회와 국민의 지지 또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경찰 스스로는 실력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찰 활동의 변화 없이는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경찰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수사권 조정이 경찰에게는 검찰과의 자존심 문제를 넘어 사활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보와 보안에 무게가 실린 공안경찰에게 수사권이라는 무기까지 주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권의 입만을 바라보는 경찰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사권과 공안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으나 국민의 감정은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찰이 진심으로 수사권 조정을 하고 싶다면 공안의 탈을 벗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수사가 아니라 국민의 힘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77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 중이다. 일부에선 ‘이러다 조선이 동북4성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정부는 2008년부터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2년 이상 강경자세를 유지해 왔다. 대북 인도적지원도 끊겼다. 그렇게 강하게 나가면 조선도 더 못 버틸 것이고 그러면 남북관계가 ‘정상화’된다고 했다. 그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상식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평양에 있는 정책담당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뭐하러 자존심 굽히며 한국에 무릎을 꿇겠는가. 60년을 이어온 ‘혈맹’ 중국이 있는데 말이다. 해마다 대규모 인도적 지원도 해주고 경제지원도 해준다. 대접은 또 얼마나 극진한가. 결국 기다리며 압박한 결과가 동북4성인 셈이다. 남북관계에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11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실장단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처음 썼다고 한다. 정석구 한겨레 선임논설위원이 5월4일자 칼럼에 쓴 증언을 들어보자. “이 대통령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 있는 말투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남북문제는 김대중 정권 초기에도 8개월, 노무현 정권 초기에도 10개월(?)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런 (대화 중단) 전략을 써왔다. 대화 중단하고 이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권은) 북한과 색깔이 다르니 (다른 정권에 비해 대화 중단 기간이) 몇 달 더 걸릴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 위원도 지적했듯이 기다리기 전략의 결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바로 조선이 경제와 정치 안보 모든 면에서 갈수록 중국의존도가 심해진다는 점이다. 이제는 거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10년 전인 2000년 조선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일본과 비슷한 25% 수준이었지만 2008년에는 73%가 됐다. 교역액은 10년 사이에 5배 넘게 증가했다. 조선에 대한 총투자액의 90%를 중국이 차지하고 석유는 이미 사실상 100%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은 꾸준하고 ‘통 큰’ 대북지원을 통해 명분과 실속을 동시에 챙기고 있다. 지난 2007년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신압록강대교 건설을 제안하면서 공사비 전액(약 2200억 원)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집행한 대북지원예산 2조 366억 원(식량차관 8715억 원 포함)의 10%가 넘는 액수다. 북중교역은 최근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조선의 대중 주력 수출품은 2000년대 초반 어패류 등 동식물성 식품(38.51%)이었지만 최근에는 철광석, 석탄, 아연 등 광물성자원(41.3%)으로 바뀌었다. 중국은 대북 총투자액의 70%도 지하자원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해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조선을 방문해 중국 훈춘과 조선 함경북도 나선항을 잇는 93㎞ 도로를 건설해주는 대가로 나선항 부두 개발권을 확보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북지역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는 중국은 북·중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대북 인프라(SOC)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북중 경협 확대가 곧 동북지역 개발인 셈이다. 북중교역과 남북교역은 반비례관계다. 남북교역이 약화되면 북중교역이 늘어났다. 북중교역은 2001년과 2008년 증가세가 두드러졌고, 2002년과 2006년, 2007년에는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다시 말해, 최근 급격히 증가한 북중교역은 지난 2년간 ‘관계’ 자체가 없어져 버린 남북 간 갈등의 산물이다. 미국이 이란을 경제 제재하는 사이에 중국이 어부지리 챙기는 것과 닮은꼴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정권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 말고 전략이 없다’는 말이 더 맞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무대뽀’였고 천안함 사고 이후엔 거의 정신줄 놨다고 보면 너무 심한 말인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 말을 아끼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는데 한국 혼자만 난리치는 것을 보면 뒷감당 어찌하려 그러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조선(=북한) 연계”를 자꾸 흘리는 것과 검찰이 즐겨 쓰는 ‘피의사실 공표’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은 나 혼자 드는 망상일까?) 이와 관련 에이던 포스터 카터 영국 리즈대 연구원은 지난달 15일 미국 주간 뉴스위크에 기고한 ‘조선을 잃어버리고 있다: 한국은 북방정책 펴야’라는 글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이 대통령을 G20 정상회의 의장이 아니라 조선을 잃은 남한의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는 “한국의 우파들은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된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라면서 “한국의 근시안적 보수파들은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쌀을 보내는데 필요한 적은 돈에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역시 귀담아 들을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생각한 화두는 “조선이 중국에 팔려가고 있다”였다. 거기서 나오는 질문을 던져보자. “조선을 중국에 팔아버린 자는 누구인가.” ‘퍼주기’라는 조악한 유언비어를 유포했던 자들과 거기에 고개 끄덕거렸던 이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 흘리며 반성할지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85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옛말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상황을 보면 죄보다 사람을 더 미워하게 만드는 것 같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 같은 흉악 범죄 사건이 벌어지면 정부와 언론은 범인의 잔혹성을 최대한 부각시킴으로써 재판도 받기 전에 ‘그놈은 죽일 놈’이라는 여론 판결을 이끌어 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가 전보다 안전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잃는 게 더 많다. 정부는 ‘범죄 예방’을 핑계로 감시와 통제를 확대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누려야 할 자유들을 하나 둘 빼앗아 가고 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고 불심검문이 강화된다. 인터넷에 마음대로 글을 올릴 수도 없고 거리에서 조금이라도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은 ‘예비 범죄자’로 간주돼 잡혀가는 일도 벌어진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간다는 것일 게다. 연쇄살인범, 성추행범이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세상이라며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이웃에게 호의를 베푸는 건 미덕이 아니라 범죄 예비 행위 내지는 범죄에 노출당하는 ‘바보짓’으로 폄하된다. 이러니 감옥에 갇힌 재소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위정자들은 ‘국민 정서’를 핑계로 가뜩이나 열악한 감옥 환경이나 재소자 인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않은 채 관련 예산을 줄여 버렸고, 교정 관료들은 ‘사고만 안 터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법에 규정된 재소자들의 인권마저 무시한 채 감시와 통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3월 22일 구노회가 전국 교도소(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구속노동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일제히 ‘수신 불허’ 되었다. 지난 15년 동안 책과 영치금을 보낼 때마다 편지를 동봉해 왔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저지당한 적이 없었다. 비록 광범위한 단서 조항이 달려 있긴 하지만 ‘형집행법’에도 ‘서신 무검열 원칙’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서울구치소에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은 ‘교정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으면 예방 차원에서 편지를 교부하지 않을 수 있다’ ‘일부 편지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며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저들이 문제 삼은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죄인’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법에 보장된 권리조차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른 말하는 사람들은 당국에 찍혀 징벌과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억압과 착취로 유지되는 사회다 보니 어디를 가나 투쟁해야 할 문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당히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인간 대우조차 받을 수 없다는 점은 감옥 안이나 밖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소 내에서 부당한 처우나 인권침해 문제가 있을 때는 혼자서 해결하려 마시고 외부로 꼭 알려 주십시오!” 교도관들의 시각에서 보면 불편하고 거슬리는 편지다. 하지만 그동안 구속노동자들과 편지와 면회로 소통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이고, 혹시나 부당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는 일이 없도록 외부에 알려 달라고 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저들은 이 편지가 ‘교정 질서를 심각하게 해칠만한 우려’가 있다는 걸 입증조차 하지 못하면서 검열과 불허 조치를 정당화했다. 명백한 근거를 대라며 계속 추궁하자, 더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번 편지는 다른 데(법무부 교정본부로 추정)서 인지해서 지시를 내렸다’ ‘밖에서는 양심수라고 부르지만 어쨌든 사회질서를 해치는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구노회에서) 일괄적으로 지령을 내리면 (소 내에서) 단체 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큰 집’에서 ‘조인트 깐다’는 이야기가 이런 경우에도 적용되는가보다. 정권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으면, 가당치도 않은 ‘소설’을 써대며 편지 한 장에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2007년 ‘석궁 사건’으로 구속된 김명호 교수는 지난 3월 25일 원주에서 춘천교도소로 이송돼 오자마자,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알몸 검신’을 당했다. 공포에 질린 김 교수가 경찰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입방을 거부하자, ‘금치 10일’이라는 첫 징벌이 떨어졌다. 또한 면회 온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자 이번에는 ‘허위 사실 유포’라는 이유로 더 가혹한 ‘금치 21일’의 징벌을 부과했다. ‘금치’는 규율 위반을 이유로 재소자를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0.75평 크기의 징벌방에 가둬 놓고 면회는 물론 서신 수발, 텔레비전 시청, 운동마저 제한하는 무시무시한 행정 처분이다. '석궁사건'으로 구속된 김명호 교수가 춘천교도소로 이감되는 과정에서 교도소 측으로부터 알몸 신체검사 등 인권유린을 당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알몸 검신’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투쟁한 덕분에 이제는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곳곳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춘천교도소는 지난해 3월에도 서울구치소에서 이감 온 촛불양심수 권 아무개 씨의 옷을 벗긴 뒤 항문 검사까지 해서 문제가 됐다. 교도소 측은 ‘알몸 검신’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하지만 형집행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불가피하게 신체검사를 하게 되더라도 재소자가 “불필요한 고통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아니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특히나 “신체를 면밀하게 검사할 필요가 있을 때는 차단된 장소”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춘천교도소가 어떠한 방식으로 신체검사를 했는지는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김 교수가 수치심을 느낀 건 분명하다. 통상 면밀한 신체검사는 마약, 담배, 흉기 등 반입금지물품 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게 목적인데 과연 김 교수에게 이런 방식의 신체검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춘천교도소에서 ‘알몸 검신'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던 권 씨에 따르면 모든 재소자가 이 같은 ‘알몸 검신’을 받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심수나 일부 껄끄러운 재소자들을 ‘군기 잡기’ 위해 이런 식의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원주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법부부의 자의적인 경비 등급 책정, 교도소의 서신 검열과 통제에 항의하며 소송을 진행하다 갑자기 춘천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지금까지 예로 든 단적인 사례들을 통해서도 이명박 정권 이후 구금 시설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 인권적이고 자의적인 ‘법 집행’의 실상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통계를 보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구금시설에서 접수된 인권침해 진정 건수가 해마다 15% 이상씩 늘어났다. 하지만 수사 의뢰나 권고 등 인권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한 사건은 1.6%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침해를 하소연하는 재소자들의 진정은 빗발치고 있지만 국가인권원회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 구제해 줄 능력도, 의지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걸 증명한다. 그런데도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의 인권 의식도 신장돼 있고, 인권침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가 완비되어 있는데 ‘너희 인권 단체가 무엇 때문에 나서냐?’며 볼멘소리를 해 댄다. 민주주의와 담쌓은 독재 정권일수록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서, 사회 구성원들을 철저하게 분열시킨다. 입버릇처럼 ‘범죄와의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되면서 흉악한 범죄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금언을 되새기며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 길에서 툭하면 사람을 잡아 가둔 채 ‘교정’은커녕 ‘죄 값’ 이상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하면서 ‘범죄 양성소’로 전락한 감옥을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 당연히 범죄와는 무관한데도 정치적 탄압에 의해 부당하게 옥살이를 강요당하고 있는 구속노동자, 양심수들은 하루 빨리 전원 석방되어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64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가뜩이나 천안함 사고와 한명숙 재판, 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기분이 영 별로인 요즘에 또 답답한 소식들이 들려온다. 참 답답하다. 솔직히 이러한 상황에 답도 안 나온다. 이 정권 들어오고 나서 집회와 시위라는 것이 얼마나 행사하기 힘든 우리의 권리인지 촛불집회이후 지금까지 무척이나 느끼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참나 1인 시위도 막히고 봉쇄된다고 한다. 정권시작부터 법대로 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던 이 정부도 집회와 시위에 관한 합법과 위법의 결정은 일선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내려지는 모양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자 하여도 사람들은 대나무숲 근처에도 못 가고 연행이 되고 있는 꼴이다. 그리곤 예전처럼 훈방이 되지 않고 입건이 돼서 나중에 벌금을 내라고 고지서가 날아온다고 하니 도대체 우리보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말고 몸이 있어도 표현하지 말라는 명령인 듯해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4월 5일 공무원 해고자 1인 시위를 둘러싸고 막고 있는 경찰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이야기인즉, 4월 12일 지방선거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2010유권자희망연대’ 소속 활동가들이 4대강 저지와 무상급식을 위한 지방선거 투표참여를 위한 1인 시위를 서울 곳곳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청와대 앞과 광화문 앞에서의 1인 시위는 경찰의 봉쇄로 인하여 무산되었고 한다. 그리고 4월 1일 덕수궁 앞에서 천안함 관련 1인 시위를 하고 돌아가던 최 모 환경단체 활동가를 경찰이 강제연행하고 누리꾼 2명도 함께 연행하였다. 또한 4월 4일 저녁, 천안함 사고 희생자와 실종자를 추모하기 위한 촛불집회도 경찰은 미신고 집회로 10분 만에 해산시켰고, 4월 5일에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근처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공무원노조 해고 노동자의 1인 시위(위 사진)도 봉쇄하고 현수막과 몸자보를 뺏고 연행하였고 한다. 이 외에도 무척이나 많은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초간단 상황묘사를 해본다면, 누군가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 몸자보와 피켓을 들고 어딘가로 이동하면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삼삼오오 시위자를 쫓아가다가 시위자가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피켓을 들면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시위자 주변을 철통같이 에워 쌓고(지나가는 어떤 사람도 그 곳에서 그 사람이 피켓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름) 자기들끼리 무전기로 삐리리삐리리 어쩌고저쩌고하다가 시위자에게 “당신은 변형된 집회 또는 미신고 집회를 하고 있으니 당장 해산하라고 한다.” 사람들이 적으니 거의 허공에 대고 이야기 하는 꼴이다. 하지만 이는 1인 시위자에게 충분한 위협이 되기에 시위자들은 웬만하면 시위를 포기한다. 그래도 좀 강단 있는 시위자는 항의도 하지만 그러면 바로 둘러싸고 있던 경찰에 의해 고이(?) 경찰차로 모셔져 경찰서 또는 파출소로 넘겨진다. 경찰은 연행 근거로 집시법상의 미신고집회, 즉 불법집회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적용기준은 의외로 일관되지도 않다. 4월 12일의 경우에 1인 시위는 서울 각 지역 동시다발이었는데, 명동거리나 다른 지역에서는 평화롭게 진행이 되었으니깐 말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갔는가 싶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 1인 시위까지 막히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서로가 한숨을 쉬면서 “진짜 답이 안 나온다. 이거 진짜 막가자는 거 아냐?”하는 푸념 섞인 이야기를 나누며 “그래도 이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하며 부질없는 과거의 경험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집회, 시위의 자유가 억압되는 모습은 현재의 한국이 공안정국으로 가고 있다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전(前)정권들을 이데올로기로 색칠하고, 경제를 무기삼아 거창하지 않은 보수언론의 지원을 등에 업어 공안과 획일적인 사회로 가는, 그만큼 실체가 잘 들어나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 저항을 하지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사회가 그만큼 뒤로 가버린 유연한 지배의 시간이 아닌가 싶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가 어떠하냐는 진단보다는 이 사회를 어떻게 다시 앞으로 아니 적어도 그나마 얻었던 권리와 공간을 되돌릴까하는 고민과 실질적 방법을 만들고 논의하고 실천할까 하는 것들일 것이다. 예전에는 어땠냐는 회상은 현재를 변화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 만난 노조활동가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라고 이야기 한 적 있다. 그래서 한국 시민단체에서 국제연대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작년에 학술심포지엄으로 한국에 방문한 적 있는 유엔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을 한국에 정식 조사 방문시켜 한국에서의 이 많은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를 알리고 조사시켜서 한국정부에 권고하는 역할을 진행시키려 했고, 다행히 올해 5월 5일부터 10일간 한국에 정식으로 조사방문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현재 한국 정부와 스케줄 조율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말한 노조활동가의 말처럼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으로 한국의 표현의 자유 상황을 전달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우리의 문제를 남에게 고자질 하는 모습인 듯 비쳐질 수 있어 마음이 산뜻(?)하지는 않지만 어쩌나, 사회가 이런 지경까지 가고 있으니.......
2017-07-12 | hrights | 조회: 285 | 추천: 0
전국완/ 중학교 교사     엊그제 동료선생님들과 함께 모처럼 짬을 내 인근의 ‘진달래 동산’엘 다녀왔다. 3월 개학이후 줄곧 담당업무와 교재연구로 정신이 없었고, 휴일에까지 출근해야 할 정도로 바빴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지내는 동안 아쉽게도 벌써 진달래가 끝물이었다. 언제 왔는지 모를 봄이 금세 떠나버릴 것 같은 아쉬움에 업무 핑계대면서 짬을 못 냈던 나의 게으름을 탓해 본다. 겨울 빛이 아직 가시지 않은 산에서 가끔씩 진달래의 연한 분홍빛을 만나는 마음이 애틋함이라면, 진달래가 뒤덮은 동산 속을 거닐어 보는 기분이란 벅찰 정도의 설렘과 행복이라 할만하다. 화사한 봄기운이 내 몸 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내가 동산에서 진달래 향기에 흠뻑 취해 있을 때, 우리 학교의 많은 아이들은 아직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방과후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교육청의 지속적인 채근에 각 단위학교들이 실적 올리기에 나서면서 비교과만이 아닌 교과수업반을 대폭 신설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내신반’. 또는 ‘선행학습반’. 주요과목이라 일컬어지는 영어, 수학, 국어, 과학, 사회 등을 학교 교사들이,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신 성적을 내는 학교 정규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교사들이 지도한다는 점이 눈치 빠른 학부모들에게 먹힌 것이다. 인근의 어느 학교는 학생들이 너무 몰려 쉬는 토요일까지 방과후수업을 운영하는 등의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이에 그 학교의 교감 선생님께서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신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녁식사까지 제공해 가며 9시까지 수업을 하는 반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몇 몇 열악한 지역, 또는 결손가정이나 맞벌이 부모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가정의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버블쎄븐’으로 손꼽히는 서울의 어느 부자동네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들 중 몇 %의 아이들은 학원에서 방과후수업으로 옮긴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두고 교육당국에서는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방과후수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자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은 학원에 매일 다니고 있으며, 방과후수업과 학원을 동시에 다니는 아이들도 매우 많다. 결국 방과후수업이 성황을 이룬다는 것이 사교육의 축소와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똑똑한’ 엄마들은 학원에서 실력을 다지고, 학교 방과후수업으로 시험과 관련한 내신을 관리하려는, 즉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요량인 것이다. 결국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새벽 1시, 2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교과공부를 하느라고 10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학원으로, 다시 학교로 뺑뺑이를 돌고 있는 것이다. 10시간 공부하면 10시간만큼의 효과가 나고, 20시간 공부하면 20시간만큼의 성과가 날 거라는 산술적 계산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투입하면 투입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는 기계라도 된다는 것인가? 새 학기 들어 맡게 된 ‘부진아 지도’ 때문에 지난 달 치렀던 진단평가 결과를 토대로 국어점수가 하위 10%에 드는 아이들의 명단을 뽑아 보충수업 일정을 짜고자 아이들을 만나 보았다. 그런데 웬걸 국어점수가 30점 안팎인 이 아이들이 나보다 더 바쁜 것이다. 학원은 매일 가고, 거기다가 몇 명은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수업까지 듣는다는 것이다. 우리글을 제대로 읽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들에게 이런 처방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는 어이없음은 잠시, 이 아이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답답했다. 국어점수가 30점이 안 나온다는 것은 교과서 내용은 물론이려니와 교사의 지도내용을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런 아이들에게 학교 수업 6시간도 모자라 하루 온종일 책상 앞에 앉혀 놓는 것은 혹사를 넘어 폭력에 가까우리라 생각된다. 이 정부 들어서 사교육비 줄이기의 차원으로 강화되고 있는 방과후수업. 높으신 분의 말 한마디에 각 지역교육청마다 소속 학교를 채근하여 참여 학생 늘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학교에 따라서는 막대한 교육청 예산까지 들여 방과후수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단위 학교들도 교사들을 달래가며 과목 당 2개 이상의 교과내신반을 운영하면서 실적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일단은 일부나마 사교육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또 정말 어려운 여건 속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에게는 교육적으로 필요한 부분일지 모른다. 방과후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학교의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하지만 이것이 본질이 아니지 않은가. 학원 대신 방과후수업을 듣는 학생이 아무리 많아진다고 해도 이것은 공교육의 정상화라고 볼 수 없다. 단지 학교 안에 학원이 들어온 격으로, 또 다른 성격의 사교육일 뿐이다. 또한 학교에서 교과수업을 제대로 못 가르쳐서 학원에 다닌다기보다는 다른 아이들을 뛰어 넘는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 보내는 것이다. 공교육의 목적이 교과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특목고 많이 보내고 대학 많이 보내는 데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본질은 사교육 없이도 공교육만으로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찾아내고 계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일 것이다. 더 나아가 학력이 아니라 다양한 소질과 능력에 따라 자기실현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10시간, 20시간을 공부해도 변하지 않는 등수에 절망하고 주눅들어가며, 오로지 성적을 향해 한 줄 서기를 해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교육적으로 덜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말 그대로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동산을 도는 동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겨울의 끝자락인 2월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뒷동산에 함께 오르던 삼촌이 물었다. “지금 이렇게 바람이 불어대는 이유가 뭐게?” “ …… ” “겨우내 잠자고 있던 나무를 깨우는 거야. 봄이 오고 있으니 어서 일어나라고….” 어린 맘에도 삼촌의 그 말에 왠지 모를 신비스러움을 느꼈고, 나도 나무처럼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는 시늉을 해 보이던 기억이 난다. 그 바람 덕에 잠에서 깨어난 나무들이 혼신을 다해 양분을 끌어올려서는 갖가지 향기를 뿜어내며 다양한 빛깔과 모양으로 꽃잎과 여린 새순을 피워내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에 새삼 뭉클해진다. 이 나무들만큼이나, 아니 더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지닌 우리의 아이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언제까지 그들의 소중한 오늘을 저당 잡힌 채 시들어가게 할 것인가.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며 생명을 잉태하고, 또 다른 생명을 깃들이며 하늘을 향해 당당히 팔 벌린 채 살아가는 나무들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싱싱하게 자라게 할 순 없을까? 누군가 가져온 친환경방울토마토 한 팩. 뚜껑을 열고 보니 색깔도 크기도 가지각색인 놈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들어앉아 있었다. 이게 자연의 원래 모습이지 않을까. 원래부터 다른 빛깔과 모양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아이들에게 한 가지 모양과 크기를 강요할 게 아니라 자신들의 서로 ‘다름’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며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어른들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326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일주일 전 작업하던 다큐의 촬영이 끝났다. 아니 더 이상 찍을 수 없게 됐다. 이미 다 결정돼 있던 결말이었다. 그가 감옥에 가는 것. 내가 카메라에 담은 인물은 병역거부자다. 병역거부자라, 사실 ‘병역거부자’라는 수식어를 쉽게 붙이기가 고민된다. 그 인물을 어떤 틀에 딱 가둬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라는 게 낙인 같은 말이긴 하지만 반면에 더없는 의지의 증거가 되기도 하다. 어떤 대의를 가지고 무엇에 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의 이미지다. 하지만 내 카메라에 담긴 그 인물은 기존의 병역거부자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병역거부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비난받는 일이긴 하지만 또 어떤 집단에서는 영웅으로 인정받는다. 엄청나게 큰 것에 저항하는 투사의 이미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내 욕심이기도 했다. 병역거부자 기자회견에서 보는, 전쟁에 반대한다거나 국가에 저항한다거나, 그런 몇 줄의 기자회견문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병역거부 하는 일이 엄청나게 비장하고 슬픈 일이 되어버리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그는 기자회견 대신 열장짜리 소견문을 써서 파티 형식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줬다. 대학신입생 때, 오태양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의 고민은 시작된다.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총을 들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군대 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나는 왜 군대를 갈 수 없는지 8년간을 끙끙대며 고민했다. 결국 그는 군복을 입는 것보다는 차라리 죄수복을 입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부를 했고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언어로 나름 풀어낼 수 있게도 됐다. 이런 나의 문제가 단순히 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엄청 용기 있고 강한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처럼 찌질 하고 약한 사람도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오히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로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는 걸, 자신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누군가는 총을 만졌을 때 손의 떨림, 그 탄약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들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도저히 들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그가 솔직하다며 지지를 했고 또 누군가는 결국은 가기 싫다고 쓰면 될 말을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느냐고도 했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에 오히려 답답해했다. 나는 그의 훌륭한 점만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끝까지 뭐든 물고 늘어져야 했다. 그의 진짜 속마음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를 통해 드러났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의 모호한 대답들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유도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모순이었던 거다. 결국 그에게 명확한 대답을 원했던 거니까. 하지만 애초 그에게 명확한 답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그는 그의 길을 간 것일 테고. 재판엘 따라갔다. 1차 재판에서였다. 형사재판이었다. 그때 그는 죄수복을 입고 있진 않았지만 재판장 안의 죄수복 입은 ‘피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갑갑해졌다. 따지고 보면 그는 죄를 지은 게 아니다. 판사는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더 상위에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게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한계인가. 자유가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논리들. 최후진술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면서, 수십수백일을 잠 못 이루고 괴로워하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전 날아온 공소사실에는 단 두 문장이 적혀있을 뿐입니다. 허망했습니다. 법이 이토록 사람의 삶에 무감각하고 잔인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물어보고는, 병역법을 위반했다는 한마디 그리고 훅 하고 읽어내려 가버린 최후진술, 짧았던 순식간. 그곳엔 오직 선고만 있을 뿐이었다.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앞두고  대기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서른 인생 가깝게 끙끙댄 자신의 고민이 단지 두 문장으로 기소장에 적히는 구나, “몇 월 며칠 입영날짜를 보고도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써 병역법을 위반했다”는 두 문장으로 설명되는 거였구나 싶어서 속상했다고 했다. 그는 법원에 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생겼다. 사건번호의 피의자로만 호명되는 게 싫었지만 형사재판이라는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지막 재판 때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제출한 자료들을 다 읽어봤다고, 그런데 당신이 주장하는 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고. 사실 나는 판사의 그런 발언이 정말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게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주장하는 바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고 한 거면, 거꾸로 판사가 조사내용이나 내가 제출한 소견서를 꼼꼼히 봤을 것이라고. 내가 무슨 평화주의자라고 쓴 소견서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사례가 판사입장에서는 별로 관심가질 만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표현한 그런 말이, 결국은 법률적인 틀로써 잘 잡히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그래서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고. 이제 그는 감옥에 있다. 죄수복을 입었고 이름이 아닌 번호로 호명된다. 더하다면 군대보다 더할 감옥으로 그는 갔다. 모두 다 똑같은 삶을 살 순 없다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계속 짐이었던 군대라는 문제에, 어쨌든 그는 한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했던 말처럼, 병역거부가 인생의 한 지점에서 점을 찍는 행위라면 그러고서 앞으로도 자기를 배신하지 않고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법률적이고 획일적인 어떤 체에 걸리지 않고 더 잘 도망치면서 말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91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어느 고대생이 자퇴했다. 아니 대학을 “거부했다.” 남들은 못가서 안달 내는 그 ‘명문’ 대학을 스스로 포기하는 ‘배부른 짓’을 저질렀다. 요샛말로 그는 ‘용자’다. 대학 졸업장 없이는 사회적 불구자로 취급받는 세상에서 꽤나 매끈하게 잘빠진 한 쪽 다리를 스스로 부러뜨린 셈이다. 그의 생각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홍세화 선생의 표현처럼,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학사 학위가 아니라 4년 동안 그 비싼 등록금을 착실하게 잘 냈다는 증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교육제도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따위에 관심 없는 대학생들도 ‘빛나는 졸업장’이 큰 배움(大學)을 말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용기내지 못했을 뿐.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 일을 지켜본 ‘어느 지방대생’은 좌절했다. 그 용자의 이름은 ‘고대 자퇴녀’였기 때문에. 만약 한밭대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박수는커녕 눈길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까? 많은 대학생들이 여전히 학력과 학벌로부터 자유롭진 않지만 그와 비슷한 지점을 고민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무수한 대학생들은 마음으로 이미 자퇴했고, 그들 중 일부는 조용히 교문을 나서기도 한다. 더 이상 이는 낯선 얘기가 아니다. 이렇게 명문대 학생도, 비 명문대 학생도 진정으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지만 사회는 단 한 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지난 11일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던 중 그가 용기를 냈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 한 대학생이 대학으로 대표되는 한국교육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퇴했다는 것 보다 ‘고대생’이 그랬다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가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녀의 껍데기에 주목했다. ‘고대를 관둘 정도면…’이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자본과 빈곤한 교육철학으로 점철된 ‘그 대학’을 스스로 거부한 그를 마지막까지 빛나게 한 건 명문대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고대는 놓치고 싶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고대가 포기하기 힘든 이름인 만큼 한국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설령 2년제 지방대학일지라도.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대한민국 교육현실에 대한 성찰과 대학생들의 방황에 대한 고민이지, 고대냐 아니냐가 아니란 말이다. 고대 자퇴녀로 인해 끊임없이 경쟁만 부추기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불안함을 조장하는 사회에 큰 울림이 일었다. 그러나 나 같은 어느 지방대생의 이야기는 열등감 따위로 치부되기 일쑤다. 이런 사회가 명문대생도 아니고, 용기 내지도 못한 대부분의 ‘우리’를 더 외롭게 하고 소외시킨다. ‘SKY’, ‘in 서울’, ‘지잡대(지방의 잡다한 대학)’ 등의 천박한 용어들이 스스럼없이 통용되는 한 여전히 나의 고함은 한낱 발악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건, 고대 자퇴녀에 대한 나의 ‘열등감’을 아닌 척,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것이 내가 지방대생이라는 것보다 더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서울대 출신이 학벌폐지를 요구할 때의 반응과 지방대 출신이 학벌폐지를 요구할 때 반응이 어떻게 다를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소혹성B612를 발견한 터키의 천문학자의 주장이 옷차림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몇 년 뒤 양복을 차려입고 다시 발표하자 사람들이 그 주장을 인정하게 됐다는 ‘어린 왕자’ 속 이야기와 묘하게 겹치는 이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