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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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신혜연/ 청년 칼럼니스트 ‘청춘시대’라는 이름의 칼럼을 쓰다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인권을 고민하는 밝고 활기찬 청춘의 이야기를 써야 할 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신파극으로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청년 알바몬입니다’, ‘관심의 추억’, ‘응답하라, 안녕하지 못한 그대들’, ‘나도 비정규직이다’ 등 제목에서부터 청춘들이 맞닥뜨린 시대의 설움이 뚝뚝 묻어난다. 청년들은 한국에서 선택권을 가진 주체가 아니다. 그들은 늘 동원되는 객체다. 고액의 등록금 및 생활비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저임금 노동시장에 동원되고, 취업을 미끼로 한 인턴 등 취업 대비시장에 동원되며,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동원된다. 그 중에서도 군대는 국가가 청년을 착취하는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젊음을 국가에 바치길 강요당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진 못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을 견뎌내야 한다. ‘저항’이란 선택지는 없다. 군대는 청년들에 대한 국가의 착취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최근 한 병사가 선임들의 연이은 구타 끝에 사망했다. 선임들은 사망한 윤 일병에게 침을 뱉고 핥게 하거나 치약을 먹이는 등 인권모독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폭력에 익숙해진 병사들은 구타 행위를 보고도 입을 다물었고, 수십 명의 묵인과 동조 속에서 윤 일병은 죽어갔다. 주검으로 돌아온 그의 온몸은 멍투성이였다. 군내에서 ‘관심병사’로 분류되던 임 병장이 총기난사로 십여 명의 사상자를 낸 지 불과 두 달 만의 일이다. 무섭게 반복되는 군내 폭력 사태는 2014년 대한민국의 군 인권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군대에서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 되는 것 아니냐”는 시민들의 한탄은 ‘전쟁터로 내몰린 청년들에게 선택권은 없다’는 진실과 함께 한국사회를 관통한다. 우리는 불과 몇 개월 전에 침몰하는 세월호에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을 잃었다. 그 학생들은 기울어가는 배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따랐다가 봉변을 당했다.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처럼 군대에 갇힌 청년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억압된 명령 체계 안에서 자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밝고 활기찬 ‘청춘시대’를 만들기 위해 청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월호 사건 이후 계속되는 무능한 수습조처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향할 무렵, 열 명 남짓한 대학생들은 세종대왕상을 점거하고 국가의 의미를 물었다. “우리는 누구에게 보호받아야 하나, 누구를 위해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지나. 아이들을 위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표했는데….” 국가의 본질을 묻는 청년들의 질문은 계속돼야 한다. 여야가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한 지금,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자 하는 시민들의 소망은 끝내 묻혀버렸다. “청년들이 지키고자 하는 국가는 어떤 곳인가? 그리고 지금 국가는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착취와 동원의 대상에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청년들은 다시 국가의 의미를 묻고 있다. 신혜연씨는 노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48 | 추천: 0
이다솜/ 청년 칼럼니스트 이스라엘군이 지난 8일부터 팔레스타인 공습에 나섰다.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에서는 1,050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이스라엘에서는 53명의 군인이 숨졌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의 지상군이 투입되고, 또 학교와 놀이터 같은 민간시설까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희생자의 수는 더 늘어나는 중이다. 지구촌의 한 구석이 핏빛으로 물드는 순간이다. 우리가 노래해야 할 세상의 붉은빛이 ‘피’가 아닌 ‘장미’이길 기대한다면 그것은 요원한 바람일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그 공격의 목표라고 밝혔지만, 결코 이것이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하마스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팔레스타인의 다수당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정당한 권력이 아닌 ‘테러집단’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2013년 발간된 미 국무부의 테러보고서에도 하마스는 ‘국제테러조직’으로 분류된 상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협상이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지난 26일 짧은 정전 이후, 소강국면을 보이던 공방은 28일 재개되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의 땅굴이 모두 파괴될 때까지 우리 군은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겠다”며 장기전 대비를 공언하고 나섰다. 평화의 언어는 좀체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좌절하지도 않는다.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칼을 겨누는 무력대결 대신에, 언어를 주고받는 행위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믿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샬롬’과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뜻의 아랍어 ‘앗살람 알레이쿰’ 같은 ‘언어’ 말이다. 잠식해오는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팔레스타인 저항시인의 작품을 꺼내 읽는다. 고통을 재료로 글을 써내려간 이들이다. 팔레스타인의 시인 압드 안나시르 살리흐는 이스라엘 침략자를 비판하고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염원하는 시를 쓴 죄로 열다섯 차례나 체포되었다. 그는 <감옥>이라는 시를 통해, 감옥이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화해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때로는 시를 읊고 있다는 행위 자체가 낭만적 놀음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공격’을 외치고, 우경화된 이스라엘의 거리는 “아랍인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로 뒤덮이는 중이다. 특히 지난 17일부터 이스라엘이 ‘강철화살탄’을 동원하기 시작하면서는 인명피해가 더욱 극대화되었다. 이 무기는 탱크에서 발사된 뒤 수천 개의 화살로 흩뿌려지는 대량살상무기다. 게다가 지난 23일에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의 상수도 시설을 파괴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물론 이스라엘에서도 희생자가 나오지만, 이 모든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는 ‘복수’라는 외침에 지워진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군의 한 병사는 소총의 십자선을 통해 보이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머리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것은 곧 전 세계적 지탄을 받으며 논란이 되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과거에도 SNS 스캔들을 일으켰는데, 한 병사가 자신의 SNS 계정에 토마토케첩 사진을 올려놓고 “엿 같은 아랍인들. 그들의 피는 맛있다”는 글을 쓴 것이 그 발단이었다. 하지만 이 핏빛 세상에서 장미의 붉은빛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평화를 향한 릴레이 외침이다. www.refusersolidarity.net에 접속하면 이들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서안과 가자, 그리고 유대인 정착촌에서의 군복무를 거부한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대인이 과거 강력한 군대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잔인한 대량학살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 젊은이들은 바로 그렇게 ‘명령에 따랐을 뿐인’ 나치 병사의 손에 유대인이 죽어나갔기 때문에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외친다. 물론 이스라엘의 보수 언론과 정치 세력은 이 젊은이들을 ‘조국의 반역자’라 몰아붙이며 공세를 펼치는 중이다.   사진 출처 - ALJAZEERA   상관의 명령이 아니라 각자의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이들. 이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전율이다. 보복에 보복을 거듭하고 살해를 살해로 돌려주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 용감하게 ‘평화’를 외칠 줄 아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눈물겹도록 기쁘다. 군사형무소에 갇혀 지내면서도, 변호사 접견의 권리까지 침해당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바로 희망의 증거다. 팔레스타인 군사작전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이유로 군사형무소에 갇혔던 다비드 하함 헤르손은 감옥에서의 편지(국내에는 ‘제4 군사 형무소에서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군사주의에 저항한다’를 통해 소개되었다)를 통해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바로 탱크를 능가하는 무기”라고 말하면서 “나의 투옥에 대해 생각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뭔가 달라진다”고 호소한다. “팔레스타인은 점령자로서의 우리를 바라고 있지 않다”며 점령지구에서의 군복무를 거부하고 투옥된 우리 야코비의 사례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 23일에는, 50여 명의 이스라엘 예비군이 팔레스타인을 향한 군사행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는 기사가 워싱턴포스트에 실렸다. 이들은 갈등을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절망감을 표시했다. 이건 마치, 그 자신이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 입국을 거부당할 정도로 미국-이스라엘의 유착과 팔레스타인 점령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노암 촘스키를 볼 때의 전율과 비슷하다.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에 대해 쓴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2005년 5월, 촘스키의 입국 신청을 거부했다. 이들로부터 얻은 강렬한 에너지를 원천으로 ‘지금,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필사적으로 절망의 한 구석에서 희망의 물결을 찾는다. 이 몸짓은 절박하면서 무모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치지 않는 희망으로 이스라엘의 지성에 호소하려고 한다. ‘살림’의 논리로 ‘죽음’에 대항하자고. 부디 이 전쟁을 함께 끝내자고. 핏빛 세상이 아니라 장밋빛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한반도와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물리적 거리를 초월해 연대할 방법은 꽤 많다. 우선,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1인 시위에 참여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 접속하여 자신이 1인 시위를 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신청을 하면 된다. 꼭 이런 단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개인 자격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활동가 새라 씨는 “가자 지구 출신으로 10년째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머물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도 있다”며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등 핏빛 전쟁을 지탱하는 기업, 은행에 대한 보이콧 서명운동이 있다. (https://secure.avaaz.org/kr/israel_palestine_this_is_how_it_ends_loc/?bZhxjdb&v=42 677) 또, 이스라엘의 군비 확충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힘을 보태는 방법도 있다. (http://www.bdsmovement.net/stoparmingisrael) 덧붙여, 앞서 언급한 www.refusersolidarity.net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의 평화주의자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미리 작성되어 있는 탄원서 양식도 있어서 이들을 위한 탄원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다. 이렇게, 미미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려고 한다. 내가 쓴 글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에 어떤 방식으로건 책임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희망을 갖고 인내하는 것만이 삶을 지속해나가는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결코 이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고통’ 만큼 보편적인 것도 없다. 이 ‘고통’을 통해 ‘연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가능성은 빛난다고 믿는다. 이다솜씨는 여성과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0
이재영/ 청년 칼럼니스트 “장애는 나의 일부이다. 나는 그것과 화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원한, 편견, 증오와 같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타인의 장애와도 화해했다.” 위의 말처럼 진저 허튼은 장애를 이렇게 정의했다. 장애는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면 그 아픔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장애’에 대한 우리의 실존적 이해와 노력이 중요하다. 대학 새내기 시절 만난 석준이는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였다. 나는 석준이와 2년을 함께 했고, 그 시간 동안 나의 ‘장애’에 대한 관점은 바뀌었다. 석준이 집에 놀러갔을 때였다. 어머니가 나를 조용히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준이는 자기가 장애를 가진지 모른단다. 그러니 절대로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석준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겪어온 그의 고민을 깊이 알 수 있었다. 나와 석준이는 더욱 가까운 친구사이가 되었고,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사진출처-Autism Aspergers Advocacy Australia 우리의 전공이었던 사회복지학과에서 장애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일반적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석준이를 굉장히 기분 나쁜 태도로 대했다. 차이가 아닌 차별적인 시선과 언행으로 석준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한 친구가 수업 중에 석준이에게 “이 장애인 새끼야.”라고 했다. 그 언행은 사회복지를 배우는 학생이라는 사실조차 부끄럽게 만들었다. 석준이는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에는 그만큼 차이가 있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다는 사실이 장애에 대한 우리의 성숙한 인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만약 그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 우리는 존중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정작 타인에 대한 존중은 부족해 보인다. 다름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머리로는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 상처받은 장애인은 더 깊이 움츠러들고 더 위축된다. 장애인은 그저 ‘장애’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러한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일반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역할극을 통해서 자신이 장애인의 입장에서 일반인에게 모욕의 말이나 상처를 주는 말을 듣고, 그 아픔을 겪어봄으로써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장애를 실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많아졌고, 제도적 지원도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우리의 인식과 마음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든다. 그것은 어쩌면 진정으로 장애를 겪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더 마음으로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인이 겪는 일상적 폭력을 체감하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먼저 이뤄질 때 비로소 마음에서의 그 차별이 없어질 것이다. 일상에서 얼마든지 누군가를 위해서 보듬을 수 있고, 대화를 통해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수 있다. 장애에 대한 진정한 화해는 그 사람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길에서부터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석준은 가명입니다. 이재영씨는 월드비전에서 세계시민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15 | 추천: 0
안우혁/ 청년 칼럼니스트 관심에도 등급이 있다. 내가 받은 관심은 A급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각별하진 않았다. C급도 아닐 것이다. 종종 선임들과 언쟁을 벌이곤 했으니. 아마 B급쯤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관심병사’였다. 훈련보단 작업이 많았던 후방 부대였다. 자대 배치를 받고서 한동안 미화 작업에 투입됐다. 화단에 장미와 칸나를 심었다. 빨리빨리 하라는 명령에 다들 급하게 땅을 파고 묻기에 바빴다. 그렇게 심은 꽃이 필 리가 없었다. 뽑고 다시 심었다. 그래도 피지 않았다.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취사병 자리가 비어 자원을 받는다고 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죽을 꽃을 심는 것보다, 만들면 누군가는 먹는 밥을 짓고 싶었다. 취사장으로 올라갔다. 주말은 없었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었다. 요리라기보다 ‘생산’이나 ‘가공’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재밌는 일이었다.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터졌다. 부대원들 사이에 소문이 돌고 있었다. “훈련 째고 싶어서 취사장 간 거 아니냐, 벌써부터 빠졌다.” 운운. 대가도 없고 의미도 없는 고통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군 생활의 많은 갈등이 여기서부터 생긴다. 병사들끼리의 서열 놀이도 대개는 이 ‘고통의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모두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다들 ‘내가 제일 힘들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보단 편하다고 상상한다. 그렇게 일종의 피해의식을 키워 간다. 미필자와 여성을 대하는 예비역 남성들의 시선도 이와 같다. 내가 일할 때 누군가는 쉬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고 미움이 쌓일 수밖에. 그리고 그 미움은 군대에서든 사회에서든 상대적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2012)의 한 장면   소문은 빠르게 돌고 돌아 취사장의 선임에게까지 갔다. 갓 병장을 단 그는 나를 ‘빡세게’ 조련해 자기의 일을 모두 넘기고 남은 군 생활을 편하게 보내고 싶어 했다. ‘빠진 이등병’을 후임으로 받은 그의 불안감을 이해했다. 꿀은 내가 빨아야 하는데. 이 놈 때문에 내가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그 이후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병태 같은 생활을 했다. 사소한 실수에도 한 시간 남짓 ‘갈굼’을 먹어야 했다. 벌로 수십 킬로그램짜리 쌀 포대를 들고 뛰었다. 쉬는 시간은 없었다. 그런 생활이 한 달 쯤 계속되었을 때다. 참다 참다 이렇게는 못 하겠다고 말했다. 소문은 다시 퍼졌다. “누가 개겼다더라”, “이등병이 왕고한테? 미쳤네, 부대 개판이다.”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됐다. 일과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오면 내 관물대(사물함) 안에 있던 여러 물건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친한 동기와 후임들은 좀 견뎌보자고, 곧 나갈 사람들이지 않느냐고 나를 달랬다. 그러마고 했다. 하지만 선임병들이 내가 받은 편지와 일기장을 돌려보던 걸 발견했을 때,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 정도의 사적 공간은 보장해줘야 하지 않나. 견뎌야 할 최소한의 이유조차도 찾기 힘들었다. 한판 대거리를 하고 간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되레 징계위원회에 불려간 것은 나였다. 죄목은 하극상. 부당함에 항의했을 뿐이었지만, 휴가는 날아갔고 보직은 바뀌었고, 나는 관심병사가 되었다. 특별히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 생각했다. 휴가를 나와 자기 부대의 관심병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나보다 먼저 입대했던 친구들의 모습과 부대 선임들의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휴가를 나온 나를 맞아준 친구들 앞에서, 나는 나의 고민과 내게 찍힌 관심병사라는 낙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가장 친하던 친구들한테도 속마음을 토로하지 못하던 그 순간엔 술도 들어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먹고 싶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부대의 동기들을 제외하곤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휴가를 나오면 혼자 영화를 보거나 조용히 방에 누워 책을 보곤 했다. 다행히 갈등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나는 오해를 덜어내기 위해 애썼고, 나와 다투던 선임들은 차츰 전역했다. 간부들은 나를 ‘할 말은 하는 녀석’ 정도로 여겼다. 내가 겪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했기에, 후임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누가 군대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나는 대체로 즐거웠다고 이야기한다. 사실이다. 나완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과 만날 수 있던 기회였고, 그들과 2년을 살아내며 성장할 수 있던 계기이기도 했다. 낙인을 지우고 다시 돌아간 취사장에선,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며 몸으로 일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다만 GOP에서 동료들을 살해하고 도망쳤던 임모 병장의 생포 속보를 보면서, 나는 ‘관심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때 그 순간의 단절감과 고립감을 되새긴다. 내가 속한 곳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느낄 때의 무력함을 기억한다. 운 좋게 그 낙인에서 벗어났던 나와는 달리, 그 낙인에서 끝내 헤어 나오지 못했던 그와 그 낙인 때문에 고립돼 있을 수많은 평범한 병사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밀어줄 사람들이 곁에 있길 바란다.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명복을 빈다. 안우혁씨는 인문사회과학 강의 <자유인문캠프> 기획단으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23 | 추천: 0
송이/ 청년 칼럼니스트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출처-인터파크 도서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은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에서 이처럼 말했다. 나이를 먹어도 수없이 저지르는 시행착오로 매 순간 성장통을 겪는 우리이기에 아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으레 수식어처럼 붙는 이 시대에. 어쩌면 우리는 내 안의 어린아이에 귀 기울이기보다 외부에서 환기할 요소를 찾아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20대 중반의 나이.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면 힘들어, 불안해, 지쳤어, 부족해, 이게 맞는 걸까. 와 같은 말을 달고 산다. 아직은 파릇해도 될 나이에 색깔로 비유하자면 회색의 모습을 띠고 있는 모습이라니 암울하기까지 하다. 이를 지켜보는 어른들은 ‘원래 취업 앞두면 다 그래’ ‘그럴 시간에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라’ ‘너의 기준치를 조금 더 낮춰’ ‘졸업은 안 하니’ 하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낸다. 얼마 전까지 같이 고민하던 친구도 취업만 되면 갑자기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돌변하기도 한다. 가끔은 이걸 조언이라고 위로라고 하는 말이 맞나 싶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하니 부정할 수도 없고 끊임없이 내 탓이려니 하며 묵묵히 들을 뿐이다. 얼마 전 나를 돌아보는 한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연령층은 6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했다. 성별, 나이, 직업이 너무 달라서 과연 이곳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괜히 훈계나 듣다 오는 것 아닌가? 솔직히 난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별별 생각과 걱정이 들었지만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참가했다. “무엇이 가장 힘드냐?”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냉소적인 답변도 들렸지만 ‘내 돈 주고 내가 술 먹는데 왜 먹지 말라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의 시선이 부담 돼요’ ‘조별과제에서 의사소통이 어려워요’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사생활이라 이 글에 상세히 담을 수 없지만 힘들다는 마음은 그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었다. 아침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사연에서부터 자잘한 것까지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래, 나 같아도 저땐 저랬을 거야.’ 혹은 ‘내가 이렇게 행동했을 때 상대는 저렇게 느끼는구나!’ 하고 공감이 됐다. 상대방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라는 말이 새삼 와 닿는 순간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 문득 느끼게 된 사실은 내가 남의 말에 경청하거나 내 생각을 나누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너는 직장이 있으니까. 너는 결혼은 했으니까. 너는 그래도 ~라도 있으니까. 와 같이 끊임없이 사회적 관념에서 남과 나를 비교 해온 것 같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거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살 청년이라고 해서 고민이 없을까? 돈이 많거나 건강해도 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어떤 상황과 위치에 있더라도 이해받고 싶고 나누고 싶은 존재란 뜻이다. 실제로 힐링의 명소라고 불리는 마포대교(생명의 다리)에 적힌 자살방지를 막기 위한 문구를 봐도 ‘잘 지내지?’ ‘무슨 고민 있어?’ ‘바람 참 좋다’ 와 같이 소박하지만 따뜻한 문구이지 않나. 맨 정신으로는 못하고 술기운을 빌려 주절거렸던 것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내 마음의 아이를 다독여 주고 보살펴 준다면 힘들다며 보채던 모습이 눈 녹듯 사라지지 않을까.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야 네가 행복하다 송이씨는 '문화적 소통'을 통해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0
신혜연/ 청년 칼럼니스트 올해로 대학 3년차인 나는 10명의 학생을 거친 베테랑 과외교사다. 요즘 수업하고 있는 학생은 선미다.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생인 선미는 학급반장을 맡을 정도로 성실하고, 정이 많은 아이다. 영어단어도 곧잘 외워오고, 숙제도 빠짐없이 해온다. 칭찬해 줄 때마다 수줍게 웃는 모습이 참 귀여운 선미는 ‘사회 선생님’이 되고 싶단다. 하지만 선미의 꿈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학원에 거의 다니지 않았다는 선미는 학교 수학 진도를 따라잡기 힘들어한다. 영어해석도 아직은 더듬더듬 걸음마 수준이다. 선미와 같은 또래 아이들이 지금쯤 2학년 수학 진도를 이미 떼고, 수능영어기출을 풀고 있을 거란 생각에 내 마음이 다급해진다. 따라오는 선미도 꽤나 초조해 보인다. 평범한 일상의 균열은 세월호 사건에서 시작했다. 사건 당일 날 선미네 집에 도착해 보니 TV가 틀어져 있었다. 단어 안 외우고 TV 보고 있었냐고, 조금은 장난스럽게 물으니 친구가 배에 탔는데 생존자 명단에 없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밤새 한숨 못 자고 지켜봤단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살아있을 거야”라고 짧게 위로한 뒤 수업을 시작했다. “밤새 봤으면 충분하니, 이제 TV는 그만 보자”는 현실적인 충고도 잊지 않았다. 어느 날은 시내에서 열린 세월호 집회에 참가했다고 했다. 이상한 아저씨들이 “집에나 가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수줍게 말하는데, 역시나 할 말이 없었다. 조용히 책을 펴고 진도를 나갔다. 한때 대학생이 돼도 절대 과외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교육 체제를 옹호하고 권력의 재생산 구조에 동참하라고, 그로써 체제를 지탱하는 충실한 부품이 되라고 아이들을 채찍질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최저 시급으로는 용돈조차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대학생에게 들어오는 과외를 거부하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나는 그렇게 베테랑 과외교사가 됐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할 수 있다”,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사기와 협박으로 무장한 자신을 발견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한국 교육의 유일한 철학이 수많은 어린 생명을 수장시킨 후에도 전과 다름없이 수업을 계속하는 교사들, 그리고 이 낡은 매뉴얼로 여전히 대한민국호를 운전하는 기득권층의 모습은 나와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은 계속됐다. 이 거짓말은 처음엔 그저 ‘보호’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입과 귀를 막지만, 머지않아 숨통까지 막아버리리라.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어 온 우리는 이 참극의 공모자였다. 국민들이 ‘진보 교육감’을 선택한 심리 또한 같을 것이다. 부채감과 변화에 대한 욕구. 이것이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유례없이 많은 진보진영 교육감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은 “과열된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살피겠다”며 ‘혁신학교’ 설립에 뜻을 모았다. 사회 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을 접어야만 하는 한국 교육의 메커니즘. 이를 바꾸려는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이를 위해 진보 교육감 뿐 아니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달. 우리는 남은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안산 단원고 정문에 가득 묶인 노란 리본들 뒤로 한 학생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베테랑 과외선생 입장에서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불필요한 입시경쟁을 완화하는 것은 전혀 이득이 아니다. 그러나 너도나도 동조하던 구조가 결국 파멸의 먹이사슬이란 걸 알아차렸다면, 더 이상 그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있어서는 안 되겠지 않나. 소수의 이윤을 위한 잔인한 굴레는 모두의 침묵으로 유지돼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은 아이들이라도 살릴 수만 있다면, 베테랑 과외선생 노릇은 기꺼이 포기하련다. 오늘은 선미와 떡볶이라도 나눠 먹으며 수업시간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선미는 가명입니다. 신혜연씨는 노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27 | 추천: 0
송현주/ 청년 칼럼니스트 한창 잘 나가는 연예인이 검은 슈트를 입고 화면에 나와서 강렬한 어필을 한다. “연락 주십시오. 30만 개 일자리 중에 당신 자리 하나 없겠습니까?” 최근 방영되고 있는 유명 구인구직 업체의 광고 카피다. 헌데 막상 구인 공고를 보고 알음알음 찾아간 일자리들의 실체는 알바생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다. 짜디짠 시급, 모호한 일의 구분, 결코 만만치 않은 노동 강도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해고의 불안까지……. 게다가 청년 알바의 대다수가 서비스직종인 탓에,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병행은 기본이다.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일부 사업장에서는 폭언이나 폭행, 심지어 성희롱이나 성추행까지 횡행하다고 하니, 새삼스럽게 알바생 팔자는 왜 이리도 서러운가 싶다. 젊은 계층들 사이에 나도는 말 중에 ‘알바몬’이라는 말이 있다. 아르바이트(Arbeit)와 괴물(Monster)이라는 의미가 합쳐진 신조어인데, 노동 현장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의 낮은 지위를 꼬집는 말이다. 나 역시 그 필드에서 허덕이고 있는 대학생 ‘알바몬’이다. 한 4-5년을 쉬지 않고 알바를 전전했으니, 이제 알바에 있어선 어느 정도 잔뼈가 굵다. 돌이켜 보면 별의별 알바가 다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이 남았던 경우는 전통찻집 알바였다. 조건은 주 5일에 하루 10시간 근무, 시급 4,500원이었다. 근로계약서 작성은커녕 최저임금조차 준수하지 않은 사업장이었다. (참고로 2013년 기준, 최저임금은 4,860원이었다.) 흔히 찻집이라고 하면 편하다고만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최소의 인원으로 가게가 운영되기 때문에 일의 강도는 더 고되다. 손님 주문받고, 차 만들고, 테이블 치우고, 계산하고, 청소하고, 재료준비하고, 발주하는 것까지, 나 역시 가게의 거의 모든 일을 전담했었다. 힘겹게 일하고 첫 월급을 받는 날, 왠지 입금된 금액이 모자란 것 같기에 이상해하며 물었던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중도에 도망가는 알바생들을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보증금을 제하고 준 것이란다. 순간 울컥했지만, 항의조차 못했다. 그녀는 알바생인 나의 생사여탈권을 쥔 고용주였기 때문이다. 2012년7월 알바몬 광고 사진 출처 - 네이버   2011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은 전체 54만 명에 육박한다. 그리고 그 54만 명 중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학생이 17만 명(31.9%)이나 된다. 이 17만 명이 법정 보장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멍청해서일까? 결코 아니다. 내가 그러했듯, 최저임금의 보장과 일련의 부당대우에 대해 그들은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단지 그럴 수 없는 이유는 고용주와 알바노동자 간 형성된 갑을 관계와 동등하지 않은 지위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임금문제부터 노동조건, 노동 강도, 해고문제까지 알바생의 권리 전반에 대한 고용주의 배타적 권한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그리고 때때로 과한 고용주의 권한 남발은, 노동문제에 여전히 둔감한 정부와 한국 사회의 시선에 의해 묵인되고 있다. 한편, 이러한 구조적인 알바노동자의 노동인권 침해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낮은 시급이 청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올해 5월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전국 4년제 대학 남녀 대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대학생들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33만 4,000원에 이른다. 그러나 최저임금 시급 5,210원을 받으며, 한 달 생활비를 충당하기란 너무나 빠듯하다. 그나마 빠듯하게라도 살려면 주 3일에 하루 5시간은 일해야 하는데, 청년 알바의 대부분이 대학생 혹은 ‘취준생(취업준비생)’임을 감안하면 너무나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알바를 하다보면 상대적으로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그로인해 학점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도태되면 장학금이나 학자금 무이자 대출 등 각종 수혜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다반사다. 막대한 학자금 대출의 압박, 그리고 생활비의 필요로 인해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알바 일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알바노동의 저임금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청년들을 생계형 알바로 전락시키고, 궁극적으로 청년 세대 빈곤화에 일조한다. 정부 역시, 청년 알바 노동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여러 정책적인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근로계약서와 최저임금 미준수 사업장에 대한 벌금제, 아르바이트 노동자 인권 선언 발표 및 홍대인근을 ‘알바 안심구역’으로 선포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들이 사실상 법을 준수하자는 캠페인 수준에 그쳐 한계가 많다.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은 노동 권리 구제에 대한 법률적 지원이나 근로기준 위반 사업장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알바 연대 알바 노조’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과 최저임금 만원 캠페인과 같은 시민사회의 노력이 함께 동반된다면, 청년 알바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송현주씨는 정치와 경제, 복지에 관심이 있는 정치외교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288 | 추천: 0
이다솜/ 청년 칼럼니스트 독일에서 팔레스타인 출신의 한 이민자가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는 소식이다. 사민당 소속의 그는 부드럽고 신선한 이미지로 호감을 얻으며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물론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미국 내 유색인종의 지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듯,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여성인권이 '즉각적으로' 향상되지는 않았듯, 낭만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연극 <황금용>을 보았다.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쓴 희곡을 한국어로 풀어낸 이 연극은 이주자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무대는 독일의 한 도시에 위치한 작은 아시아 식당이다. 중국, 태국, 베트남 음식을 취급하는 이곳에서는 다섯 명의 아시아 출신 요리사들이 일을 한다. 이들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주문에 맞춰 국수를 볶아낸다. 어느 날, 중국인 요리사 '꼬마'가 이가 아프다며 비명을 지른다. "억!" 소리를 내는 그를 동료 요리사들은 "큰 소리 내지 말라"며 말린다. 불법체류자로 병원에 갈 수조차 없는 그는 결국 술을 마취제 삼아 식당 주방에서 이를 뽑는다. 그러다 과다출혈로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연극이 죽은 '꼬마'에게만 동정적인 것은 아니다. 식당을 찾는 독일인 손님들 역시 삶이 주는 이런저런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젊어지고 싶은 할아버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연인, 새 애인을 따라 떠나간 아내를 원망하는 남자, 장거리 비행과 감정노동에 지친 스튜어디스들. 이들 역시 삶이 주는 그 본연의 슬픔으로 아파한다. 특히 '베짱이'라는 이름의 인물은 '여성' 이주노동자이기에 겪는 삼중고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성매매로 음식을 얻는다. 사람들은 그녀를 망가져도 상관없는 상품쯤으로 여긴다. 아내에게, 여자친구에게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킬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나서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떳떳하게 여긴다. 연극은 이 장면을 매우 재미있게 표현하는데, 그 익살스러움은 현실의 부조리가 겹쳐지는 것이기에 더욱 슬프다. 사진 출처 - 플레이DB   과다출혈로 사망한 중국인 요리사 '꼬마'의 장례는 급하게 처리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죽음이 기억되고 애도되는 방식이란 천차만별이다. 슬프게도 세상은 가치 있는 죽음과 무가치한 죽음을 구별한다. 이런 비극은 독일에서만 벌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이런 소외된 죽음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도 '소외된 희생자'는 있었다. 모든 사람이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할 때, 한 중국동포의 죽음은 지워지고 가려졌다. 잔업과 특근에 지쳐 떠난 여행길에서 참변을 당한 그녀. 그녀는 죽을 때조차도 차별받았다. 중국의 고향에 식당을 차리는 게 꿈이었던 그녀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3개월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일을 했다. 그뿐인가. 우리나라에 연고가 없거나 장례비용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시신 송환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여 한국이주노동재단은 2008년부터 국제장례지원센터를 발족해 이주노동자들의 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2003년까지 10여 년 동안 이주노동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해온 김해성 목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확인했다"고 밝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가 출국을 하기 전까지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만들어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 결과 올해 7월 29일부터 이주노동자는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에도 퇴직금을 받기 위해 출국할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또, 퇴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도 이를 받을 수 없다.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퇴직금을 본국으로 돌아가 있는 상황에서 받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온오프라인 10만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가 지목한 '노동기본권 탄압 감시 대상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독일에서 날아온 연극 <황금용>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더욱 각별하다. 환대와 공감의 자세로 볶아낸 국수 <황금용>이 전해주는 의미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미해보시기를 권한다. 또, 가능하다면 앞서 언급한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폐지 서명운동에도 참여하시기를 권한다. 이다솜씨는 여성과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19 | 추천: 0
박보경/ 청년 칼럼니스트 “거기는 치료도 못하고 깁스도 못해요. 당분간 가마니처럼 가만히 집에서 쉬세요.” 쇄골이 욱신거려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경고했다. 23년 평생 자전거 페달 한 번 밟아본 적 없는 주제에 자전거 국토 종주에 도전한 대가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넘어지기를 몇 번, 급기야 고개를 내려가다 낭떠러지로 굴렀다. 뼈에 금이 간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이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다치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 사고를 쳤으면 철이 좀 들 법도 했지만, 가마니처럼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여러 사람이 말렸지만 나는 이틀 만에 제주도로 떠났다. 내 하루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내 쇄골은 튼튼하다. 1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며칠 전, 집으로 가는 길. 김해 중심가에 조촐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다섯 명.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박근혜 정부 OUT”이라 쓰여 있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행인들은 흘깃 쳐다볼 뿐 다들 제 갈 길을 갔다. 초라한 모습.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어디선가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괜히 끼지 말고, 가마니처럼 가만히 쉬세요.’ 끝내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진 출처 - 참세상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배 안에서 죽어간 아이들,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잔인한 체제, 무능한 정부, 실망스러운 언론…. 세월호 참사를 보며 분노하는 사람들은 많다. 특히 SNS로 보면, 세상은 분노한 사람들로 가득 찬 듯하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정부에 분노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평화로운 침묵을 택했다. 피해자는 한 명도 없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죄송하다고 속삭이는 대통령과, 현실에서는 아무 행동도 않으면서 SNS로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는 얼마나 다를까.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여러모로 그렇게 볼만한 측면이 있지만, 특히 하나를 꼽아보자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만히 있으라’고 주문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답답한 공간에 꼼짝없이 갇혀, 누구를 향하는 건지도 모를 침묵만을 속삭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마니처럼 있다간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내일을 위해 가만히 있기를 거부했던 나,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박보경씨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254 | 추천: 0
한은석/ 청년칼럼니스트 그 동안 한국에서 수많은 말들이, 이념들이 명멸해갔지만 오랜 시간 동안 힘을 잃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이념이 있다. 나는 진정성의 이념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이 실패하고, 비판과 철학이 실패했지만 진정성의 이념은 진심으로, 때로는 사람으로, 때로는 마음으로 말만 조금씩 바뀌어가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 한국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성지로 진정성의 이념을 꼽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최후의 보루는 사회과학이 실패하고, 비판과 철학이 실패한 오늘날에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에 명사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가장 원초적인 공간에서도 최후의 피난처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대중적인 이념이다. 전향서를 쓰고 출소한 혁명가, 정치적으로 실패한 대통령, 명성에 눈이 멀어 실험 결과를 조작한 사기 과학자, 단 2석의 국회의원직을 위해서 어제의 동료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회운동가, 동료들에게 범죄를 저지른 뒤 발뺌하는 뻔뻔한 범죄자에 이르기까지 진정성은 변절과 뻔뻔함의 낙인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해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진정성은 이념을 넘어선 진리라 할 만하다. 스탈린주의 교과서도, 대통령의 권력도 신도시 아파트와 자녀들의 학벌 문제를 넘지 못했는데 이를 진리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 시대의 이념 중에 이념이라 할 만한 이 진정성은 또 한 번, 그 거룩한 대행자를 시대에 불러냈다. 물론 앞선 경우에 비하면 조촐한 규모이며, 사회 공학적 합리성의 기준으로 보아도 우스꽝스럽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거룩한 대행자의 행보가 아니라, 이 시대에 대행자를 요청한 우리 사회의 진정성의 이념이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이 짧은 글에서 진정성의 이념이 어떤 구조와 운동을 가지고 있는지 밝혀내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지는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진정성의 이념이 가지는 특징으로 인식과 판단에 있어서의 자의성을 꼽을 수 있다. 누가 보아도, 허술하고 타당하지 않은 자의적인 인식과 판단이라 할지라도 진정성은 이를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진정성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거짓과 사기로 몰렸을 허황된 판단이겠지만 진정성의 이념은 거짓과 사기가 아니라 진실과 진리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또한 진정성의 이념은 위선의 특징을 가진다. 인식의 자의성 때문에 형성된 내용은 충분하지 못하다. 이 불충분함을, 인식 현실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움켜쥐지 못함을 보충하기 위해서 진정성은 자신의 필요를 입증할 선과 악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 선과 악의 구분 역시 자의적인 것이기 때문에 악의 모습 역시 선의 필요를 위해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선은 선 고유의 속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위선이다. 진정성의 이념이 강력할수록, 인식이 자의적일수록 현실을 더 강하게 움켜쥐기 위해서 위선성은 더욱 강해진다. 상대는 악이고, 나는 선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타자와의 대화가 아니라, 타자를 악으로 여기고 진정성이 있는 선을 따르는 것이다. 진정성의 이념을 따를 때, 제 아무리 복잡한 세계와 섬세한 타자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이분법적으로, 선과 악, 우리 편과 적으로 나눌 수 있다. 자의성과 위선성을 통해서 진정성은 절대적 지위를 누린다. 진정성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진정성은 인식의 체계를 닫아서, 강고하게 만든다. 다른 것과 모르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진정성은 역량과 목표를 넘어서서 존재하며, 모든 이상 징후들을 차단한다. 역량의 실패와 숨겨진 목표는 진정성의 부정이 아니라 진정성의 강화로 귀결된다. 이런 점에서 진정성은 영원하다. 진정성의 이념이 움켜쥔 대상들은 분석될 수도, 논박될 수 없으며, 단지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된다. 마음의 논리에 있어서 중간은 없다. 그러나 진정성의 이념이 개입하기에는 현실의 사회는 매우 복합적이고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이념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 이념들은 앞의 위선성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세속적인 이념들이다. 정상국가, 수십조 원의 국익과 경제적 효과, 선진조국, 정세 등, 이런 이념들은 현실을 구체적으로 붙잡아 진정성의 이념을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런 이념의 언표들은 겉보기에 추상적이라 할지라도, 현실을 계량하는 공리주의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진정성의 절대적 이념 아래에서 줄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준들은 위선적이고, 자의적이다. 물론 진정성의 이념을 받아들인 이상, 필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그럴 듯하게 느껴지는 느낌들이기 때문에, 이들 이념들은 효율성의 외장만을 갖추고 효율성의 느낌만을 제공한다. 정리해보자. 진정성의 이념은 자신의 운동 과정에서 위선성, 자의성, 계량성의 특징을 드러낸다. 진정성의 이념이 움직이는 주요한 무대들을 생각할 때, 감성의 열정적인 움직임을 진정성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효과이거나 정치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지 진정성의 이념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은 아니다. 진정성의 이념은 과학의 이념과 대립된다. 인식하라는 스피노자의 유물론과 대립되며, 반증 불가능한 것은, 오류가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포퍼의 과학 철학과도 대립된다. 또한 위선성을 따라, 타자를 악마화하여 의사소통 불가능한 괴물로 만들고 대안적 노력의 시도 자체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이념과도 대립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진정성의 이념은 존재의 이유를, 왜 없지 않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존재에의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질문의 해답은 잘 조율되고 약정되어 있는 것이지만, 일상 속에서 존재에의 경험에 다가가게 해주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진정성의 이념이 사라지지 않으며, 오랫동안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이 존재에의 경험이 가지는 강력함 때문일 것이다. 진정성의 이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3000자 남짓한 이 짧은 글에서 다룰 수 없다. 이 글은 단지 인식하고자 하는 시도일 뿐이다. 또한 진정성의 이념은 그 특유의 존재-경험이 대체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극복이나 비판을 말할 수 없다. 진정성의 이념을 어떻게 대할지는 거의 전적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는 문제다. 부족한 글을 봐주시느라 고생하신 김도원 기자님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신 인권연대에게 감사를 드린다. 한은석씨는 사회 내 불평등에 관심이 있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30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