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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와 공감으로 볶다, 연극 <황금용> (이다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37
조회
524

이다솜/ 청년 칼럼니스트



독일에서 팔레스타인 출신의 한 이민자가 시장 후보로 출마했다는 소식이다. 사민당 소속의 그는 부드럽고 신선한 이미지로 호감을 얻으며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물론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미국 내 유색인종의 지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듯,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여성인권이 '즉각적으로' 향상되지는 않았듯, 낭만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연극 <황금용>을 보았다.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쓴 희곡을 한국어로 풀어낸 이 연극은 이주자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무대는 독일의 한 도시에 위치한 작은 아시아 식당이다. 중국, 태국, 베트남 음식을 취급하는 이곳에서는 다섯 명의 아시아 출신 요리사들이 일을 한다. 이들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주문에 맞춰 국수를 볶아낸다.

어느 날, 중국인 요리사 '꼬마'가 이가 아프다며 비명을 지른다. "억!" 소리를 내는 그를 동료 요리사들은 "큰 소리 내지 말라"며 말린다. 불법체류자로 병원에 갈 수조차 없는 그는 결국 술을 마취제 삼아 식당 주방에서 이를 뽑는다. 그러다 과다출혈로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연극이 죽은 '꼬마'에게만 동정적인 것은 아니다. 식당을 찾는 독일인 손님들 역시 삶이 주는 이런저런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젊어지고 싶은 할아버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연인, 새 애인을 따라 떠나간 아내를 원망하는 남자, 장거리 비행과 감정노동에 지친 스튜어디스들. 이들 역시 삶이 주는 그 본연의 슬픔으로 아파한다.

특히 '베짱이'라는 이름의 인물은 '여성' 이주노동자이기에 겪는 삼중고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성매매로 음식을 얻는다. 사람들은 그녀를 망가져도 상관없는 상품쯤으로 여긴다. 아내에게, 여자친구에게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킬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나서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떳떳하게 여긴다. 연극은 이 장면을 매우 재미있게 표현하는데, 그 익살스러움은 현실의 부조리가 겹쳐지는 것이기에 더욱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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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플레이DB


 

과다출혈로 사망한 중국인 요리사 '꼬마'의 장례는 급하게 처리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죽음이 기억되고 애도되는 방식이란 천차만별이다. 슬프게도 세상은 가치 있는 죽음과 무가치한 죽음을 구별한다.

이런 비극은 독일에서만 벌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이런 소외된 죽음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도 '소외된 희생자'는 있었다. 모든 사람이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할 때, 한 중국동포의 죽음은 지워지고 가려졌다. 잔업과 특근에 지쳐 떠난 여행길에서 참변을 당한 그녀. 그녀는 죽을 때조차도 차별받았다. 중국의 고향에 식당을 차리는 게 꿈이었던 그녀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3개월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일을 했다.

그뿐인가. 우리나라에 연고가 없거나 장례비용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시신 송환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여 한국이주노동재단은 2008년부터 국제장례지원센터를 발족해 이주노동자들의 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2003년까지 10여 년 동안 이주노동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해온 김해성 목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확인했다"고 밝힌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가 출국을 하기 전까지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만들어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 결과 올해 7월 29일부터 이주노동자는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에도 퇴직금을 받기 위해 출국할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또, 퇴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도 이를 받을 수 없다.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퇴직금을 본국으로 돌아가 있는 상황에서 받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온오프라인 10만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가 지목한 '노동기본권 탄압 감시 대상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독일에서 날아온 연극 <황금용>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더욱 각별하다. 환대와 공감의 자세로 볶아낸 국수 <황금용>이 전해주는 의미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미해보시기를 권한다. 또, 가능하다면 앞서 언급한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폐지 서명운동에도 참여하시기를 권한다.

이다솜씨는 여성과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