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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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최근 10년간 일본에 있는 조선인 학교(통칭 민족학교)의 수가 1/3로 줄어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찾아온 해방의 기쁨을 그리던 조국의 형제들과 함께 누리지도 못하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수 없어 낯선 이녘의 땅에 차가운 냉대를 삭이며 살아온 재일조선인 1세대들의 한과 눈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몸서리 쳐 지도록 묻어있는 민족학교. 적국은 패배했으나 그들의 땅에서 또다른 패배자로 몸사리며 살아야 했던 조선인 1세대들이 강제동원되어 살과 피를 묻었던 방제공장, 군수공장의 학대와 채탄장과 돌산과 비행장 활주로 공사의 피를 짜내는 노동의 설움을 딛고 조선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황무지를 눈물로 가꿔온 땅에 세운 조선학교.     ⓒ한겨레21  가끔씩 일본인에 의해 치마 저고리가 찢기는 일이 있을때나 관심을 갖다가 이내 냉담해지는 조국을 그럼에도 고향하늘로 섬기며 간절히 통일을 염원하는 그들의 역사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1946년. 쓰레기 매립장으로 강제이주 당한 조선인들이 비가오면 무릎까지, 태풍이 불면 허리까지 차는 오염된 물줄기를 쓸어내고 터를 닦아 세운 도쿄도의 에다가와 조선학교도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도쿄도(도지사가 이시하라라고 툭하면 망언을 일삼는 극우인사죠)에서 지난 13년간의 토지사용 임대료 4억엔을 물어내라고 소송을 건것입니다. 얼마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에다가와 민족학교 대책회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그전에 그일을 담당하신 지구촌 동포 청년연대의 담당자께서 행사 내용에 관한 연락을 해 주셨지만 이미 그전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던것은 몇년전 방문했던 토쿠야마 민족학교나 쿄토의 우토로 마을에 대한 강한 인상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학생수가 더 줄어들었을테지만 유치원.초.중.고등학교를 불과 40여 가정에서 내는 교육비로 운영을 해야하는 토쿠야마 민족학교의 운영실태와 그럼에도 똘똘하고 맑은 아이들,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그와 다르지 않을 에다가와 민족학교의 모습속에 투영이 되었고 이번 에다가와 재판이 일본내에 있는 재일교포들의 교육에 대한 탄압의 도미노로 이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염려가 앞섰기 때문이겠지요. 이사건이 단순한 토지 사용료 부담을 둘러싼 재판이라기 보단 점차로 우경화 되어가는 일본사회의 반 평화 분위기가 차별의 극단으로 치달아 천황을 앞세워 총칼을 이웃들의 가슴에 들이댔던 지난 역사의 반복으로 이어질까하는 우려 때문이구요.   ⓒ 한겨레21  "평화와 공존 상생"이라는 인류의 화두에 반대하는 호전적 무리들의 준동에 대한 분노이기도 합니다.  "거세되지 않은 반역의 역사는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의 목줄기에 복수의 칼을 겨눌것이다" 과거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언제고 다시 움직이는 현재로 이해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진상 규명에 관한 일들도 바로 현재의 왜곡된 역사의 형태를 바로잡는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토쿠야마 학교에 갔을때 20대 여선생님이 당돌하게(?) 질문을 했던일이 생각납니다.  "이 선생님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낯부끄러운 삶은 살지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만... 그때 저는 사실 저 스스로에게 무척 자랑스럽지 않았나 싶습니다. 21세기에도 해방을 맞이하지 못한 에다가와 소식을 들으며 훗날 낯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내가 되지 않길 바라며...    ⓒ 한겨레21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613 | 추천: 2
지난 7월 중순 기획예산처는 2006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요구안에 대한 검토의견서를 통해, 자활후견기관 운영비 지원단가를 1억5천5백만원에서 1억4천만원으로 감액해서 심의하고 있음을 밝혔다. 감액이유는 ‘목적사업비보다 기관운영비를 초과 집행하는 기관과 자활공동체를 3년간 구성하지 못하는 기관에 대한 지정취소 또는 통폐합’을 통보했던 ‘04년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자활후견기관의 목적사업비 비율은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물을 일이며, 자활공동체 구성 역시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감사원의 감사는 탁상감사의 표본이라 할만 했고, 보건복지부 역시 이를 인정하여 지정취소 및 통폐합 조치를 유보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기획예산처가 다시 그것을 예산삭감의 근거로 들이대는 것은 정부의 예산안 검토작업이 매우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빈민’ 들의 자립을 돕는 복지단체와 종교, 시민사회단체 등 전국 242개 자활후견기관의 활동가들이 지난 8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 종묘공원에서 자활사업의 참여권리 확대와 민간 구실 축소 중단, 운영비 정부보조금 증액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한겨레 . 이 기회에 가난한 이웃들의 경제적 자립과 자활사업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힘쓰는 모든 분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정부가 빈민운동세력의 ‘생산공동체운동’에 주목하고 이를 법제화하여 ‘생산적 복지’의 한 사업으로 시작했던 ‘자활사업’과 ‘자활후견기관’의 참의미를 되새기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피하려는 것만 같은 정부 자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자활사업을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예산편성이 경제적 성과에 의존하여 진행된다는 것이다. 자활사업을 통해 얻어야 할 공공선은 빈곤가정이 사회적 박탈감을 극복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자활사업에 대해 수량적 근거에 의하여 그 성과를 판단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을 실현하는 장으로 진행되어야 할 자활사업을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논리로 해석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를 공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자활사업에 대해 탈수급, 자활공동체 창업 등의 평가기준은 가난한 이들을 다시금 시장의 경쟁체제로 밀어 넣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과 제도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둘째, 민관 협력관계가 깨어지고 관 주도의 자활사업이 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설계 당시의 자활사업은 지역 현장에서 가난한 이웃들과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활동한 민간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창출하여 자활 자립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더 이상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사람들이기에 지역의 민간자원을 동원하고 틈새시장을 찾아 공략해야 하는 등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민간역량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더불어 민간의 현장성과 정부의 자원 및 추진력이 보완되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연합뉴스  그러나 자활사업에 대한 방향과 결과물에 대해 정부가 지역상황과 참여주민들의 노동현실을 무시한 성과위주의 정책을 일관함으로써 민간은 그저 국가예산을 집행하고 전달하는 역할로 축소되고 말았다. 더 이상 민간자원의 자발성과 현신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요구하는 성과를 채우기 위해 지자체를 설득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참여주민들에게 성과를 독려하는 역할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자활사업 참여 주민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는 관점이 없다는 것이다. 자활사업 현장에서 만나는 참여 주민들은 이미 민간시장의 경쟁체제에서 밀려나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다. 자본의 경쟁 속에서 그들의 노동능력에 맞는 노동으로 자립 자활을 일구어 가는 것은 너무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은 이들에게 최선의 노동을 보장하고 그 노동의 대가가 적절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보호된 시장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량적 목표치에 급급하여 단기간에 자활후견기관을 전국 곳곳에 지정하고 운영하면서 이에 따른 정부의 역할이 지정-예산투입-감사-행정조치로 일관한다면, 더 이상 기대했던 민간참여의 성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자활후견기관을 운영하는 민간자원은 거대한 자본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열정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부가 법과 제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민간이 그들과 함께 노동하고 삶을 나누고 교육을 통해 변화를 체험하면서 사회적 소외와 빈곤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활사업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대원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신부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473 | 추천: 1
눈만 뜨면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기기들로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면서도 내심 위축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새로운 소식에 먼저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기자로서의 생리가 이런 처지에 당혹감을 더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괜한 걱정’에다 ‘사서 하는 고생’까지 더해서. 출근하면서, 출근하자마자, 쉬면서…. 틈나는 대로 각종 소식지나 인터넷을 뒤져야만 불안감을 털어낼 수 있는 신세는 간혹 ‘이러고 살아야 하나’하는 자문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디지털문화와 그것이 용해된 사회 속에서 개인은 일상적으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정보와 그 양에 의해 평가받는 듯하다. (여기서 정보의 질은 그 다음 문제인 것 같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몇 전문가의 영역이다시피 하던 ‘저장 용량, 처리 속도, 화소…’ 등의 용어는 이미 어린아이들의 대화에서조차도 생소하지 않다. 따라서 이런 일상 속, 낯설지 않은 생활 속에 놓인 ‘허구’와 ‘부조리’를 놓치지 않고 살기란 갈수록 쉽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기록에 민감한 기자이다 보니 기록 매체를 둘러싼 허구적(?) 현실에 혀를 차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예로, 한계가 어디일 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고 있는 카메라 화소수 경쟁만 하더라도 조금만 떨어져 살피다 보면 근본도 모른 채 ‘광고’라는 타자(他者)에 휘둘리는 군중들의 모양새를 어렵지 않게 발견케 된다. ‘폰카’(이제 이 말도 따로 설명을 달 필요 없이 대중화된 세상이다)를 애용하는 이들 가운데서 ‘이 정도면 쓸만한데’라는 자만심을 가지는 순간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가 되고 마는 세상. 그래서 이른바 ‘마니아그룹’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정보 세상을 휘젓고 다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다. 그들이 그렇게 매달리는 화소수라는 게 일정 수준 이상이면 눈으로 봐선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화소라는 게 디지털 카메라에서 빛에 반응하는 필름 역할을 하는 반도체 센서(CCD 또는 CMOS)에 담긴 회로의 집적도를 말하는데, 사진의 화질은 이 화소와 함께 렌즈의 정밀도에 좌우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소수가 아무리 높아도 렌즈가 따라주지 않으면 헛물만 켜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귀하의 탁월한 선택’이라는, ‘자존심’으로 포장된 ‘허영심’을 채우는 것으로 우리의 선택은 귀결되고 만다. 여기에다 ‘광고’를 통한 선택 행위가 수용자 자신은 물론 주위에 적잖은 귀감이 되는 양, 그래서 리더라도 되는 양 그럴싸하게 포장까지 하고 있으니 선택은 갈수록 쉬워지면서도 쉬운 것만은 아닌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자신들이 구축한 독점적 질서(질서라 부르기도 뭣하지만)를 자연스럽게(?) 강제하는 파쇼적 기제를 ‘광고’ 속에서 읽어낸다면 논리적 비약일까.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다소 무식하게 비치더라도 먹고 사는 일, 책임져야 할 나를 둘러싼 환경에 당장 문제를 낳는 일이 아니라면 조금은 디지털세상에 무관심해지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무식한 듯 보이더라도 ‘손맛’과 ‘경험’에 의지하는 우직함이 값어치 있어 보인다. 이런 일탈(?)을 즐기다 보니 디지털이라는 ‘편리’를 외피로 내 속에 잠재돼온 파쇼적인 본질에도 눈을 뜨게 되는 요즘이다. “그 또래라면 누구나 다 하니 너도 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이번에 ○점 이상(누구는 그까짓 점수라고 할 지 모른다) 못 받으면 컴퓨터 못하는 거야” 말이야 부드럽게 하지만 얼마나 아이들을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떠밀어댔는지 돌아보게 된다. 부끄럽게도 너무 늦게 그런 자신을 발견하면서 아이들에게 두 번 다시 이런 일로 용서를 청하지 않길 다짐하게 되는 요즘이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529 | 추천: 2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검사들이 삼성으로부터 떡값 받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폭로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당사자로 지목된 검사들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자신들은 전혀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는 가운데 법무차관이 사표를 냈고, 법무부 장관은 감찰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을 수사하여야 할 주체인 검찰이,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 도청 파문으로 권력과 언론의 불법적인 유착관계를 보여주는 범죄행위를 자행한 삼성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 수사할 의지조차도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울 뿐이다. 과연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검찰인지, 이런 검찰에게 수사권을 독점케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검찰이 말하는 것을 그냥 믿어야 하는 국민들만 불쌍하다. 검찰 스스로 지난 세월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들을 가지고 법원에 기소를 하였고, 또한 법원은 적법 절차 없이 취득한 압수물이라고 할지라도 증거 능력이 있다고 하며 검찰과 궁짝을 맞추면서 판결하여 왔음에도, 마치 검찰은 지난 세월동안 적법절차를 준수하였던 것처럼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정말 이율배반을 넘어 후안무치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먼저 스스로 지난 세월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를 가지고 사용한 사실부터 먼저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나도 검찰에서 검사를 몇 년 하면서 명절 때 떡값을 받은 사실이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를 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돌을 던진다면 기꺼이 받겠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 대다수의 검사들은 변호사 등으로부터 떡 값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았던 관행이 있었고, 이후 의정부 법조비리, 대전 법조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이런 검찰의 떡값 문제가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오래된 떡값 관행에 대하여 그 어느 누구도 사죄를 하지 않는 작금의 행태도 이제는 극복해야 할 때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떡값 문화는 역사적으로 그 뿌리가 깊다고 생각한다. 온정주의적 사회 행태는 촌지라는 명목으로,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이러한 떡값 문제를 단순히 일시적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범사회적인 ‘떡값 퇴치 문화 운동’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언론 보도들은 이러한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 폭로된 검사들의 떡값 사건은 단순한 떡값이 아니고 뇌물 사건으로 불러야 마땅한데도, 각종 언론들은 그야말로 단순한 ‘떡값’ 문제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행태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번 사건은 ‘뇌물 사건’이다. 뇌물 사건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 그 금액의 과다 문제다. 과연 떡값이 얼마나 비싸기에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 단위까지 지불되어야 하는가. 금액으로 볼 때 이는 분명 뇌물의 성격이다. 둘째는 업무의 연관성이다. 이미 공개된 녹취록에서 드러나듯이 뇌물을 제공한 삼성은 분명히 삼성과 관련된 사건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검사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제는 투명하고 정직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 사회의 법조인들부터 양심 고백을 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기를 국민 앞에 맹세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를 받을 수가 없다. 이제 그 부끄러운 떡값 문제를 떨치고, 검찰이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하여 국민 앞에 스스로 옷을 벗는 용기가 필요할 때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584 | 추천: 1
엊그제 짧은 구간을 급하게 이동할 일이 있어 개인택시를 이용하게 되었다. 택시의 라디오에서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는데 마침 8.15 북측 방문단의 동정에 관한 보도가 있었다. 현충원 참배에 이어 국회의 초청을 받아들여 국회를 공식 방문하게 되었다는 보도였다. 보도를 접한 택시 기사 분은 이내 “저거 나중에 남측 방문단이 북한 방문할 때 김일성이 묘에 참배하게 하려고  저러는 거지.”라고 내뱉는다. 북측 방문단의 심려 끝의 결단을 다 ‘꿍꿍이’가 있어 하는 행동이라고 쉽게 단정하는 것을 보니 북측의 모든 언행들에 대하여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는 듯했다. 조중동을 보지 못해 단정은 못하겠지만 인터넷 매체에 소개된 짧은 기사를 보건대 그들은 잉크를 튀기며 반대 논조의 기사로 도배를 했음이 틀림없다. 아마도 그들의 ‘교시’는 나름의 네트웤을 통해 금세 퍼져나갔을테고... 설사 ‘꿍꿍이’가 있으면 또 어떤가?     기껏 김일성 묘소에 대한 참배 유도가 그들의 속셈이라면 아 그까짓거 뭐가 대수라고 주저하며 마다하겠는가? 그 정도 행위가 영혼을 파는 행위인가? 김일성 묘소에 대하여 참배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게 되고 통일이 한 십년은 앞당겨진다면 당연히 취해야 할 것 아닌가? 북측도 그런 기대로 현충원을 방문하지 않았을까? 한반도에 긴장이 계속되기를 원하는 외세(대표적으로 일본과 미국)의 입장을 앵무새 되뇌듯하는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묻고 싶다.     8.15가 가져다 준 분단이라는 불완전한 해방과 광복이 정녕 계속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칭 보수라고 일컫는 그들도 언젠가는 통일이라는 지상명제를 피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라는 것을 안다면 과정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야 할 터인데 도무지 과정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적어도 한 나라에서 집권을 하겠다고 하거나 주류언론의 반열에 오르고 싶다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시의적절하게 발전 단계별 의제들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고작 그들은 외세의 이익을 대변하는  ‘용병’ 내지는 ‘기관지’의 역할 밖에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정녕 한반도에서 전쟁을 획책하고자 하는 미국이나 일본의 ‘꼬붕’인가? 오랜 기간의 단절을 메울 수 있는 길은 교류의 확대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여러 관문이 있을 텐데 이번 북측 방문단은 일종의 터부를 깨는 듯한 과감한 결단을 내린 셈이다. 어차피 거쳐야 할 관문이라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북측이 보여준 이번의 소위 ‘파격적’ 행동들은 너무도 반갑다. 오랜 기간 굳어진 생각과 틀들이 과감히 깨지며 ‘부드러운’ 통일에 대한 염원이 널리 퍼지고, 한반도에서 주변 열강이 감히 삿된 마음으로 넘보기 어려운 평화의 기운이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가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581 | 추천: 1
며칠 전 한 인디 밴드가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성기를 노출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해당 프로그램은 당분간 방송중단 되었고 제작진들이 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뿐 아니라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들에까지 불똥이 튀어 ‘퇴폐적인 공연을 하는 밴드를 단속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는 서울 시장의 지시까지 내려졌다고 한다. 공중파의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성기를 노출한 행동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나마 이번 사건의 주인공들은 그 행위 속에 별다른 명분이나 특별한 주장을 담을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방송인 줄 몰랐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은 것을 보면 그 ‘생각 없음’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는 한 인디 밴드가 철없이 벌인 멍청한 해프닝’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그 바보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만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철없는 젊은이들이 벌인 해프닝에 대해 이 사회가 보여주는 반응은 가히 마녀사냥을 방불케 한다. 블랙리스트라니, 한동안 듣지 못했던 그 단어가 이런 맥락에서 튀어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 우리가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아연해 지는 순간이다. 극단의 정치적 보수주의가 근엄한 문화적 도덕주의와 그리 멀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문제가 된 MBC TV의 ‘음악캠프’는 오랜 역사를 가진 대중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포함해 다른 방송사들도 방송하고 있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대중가요 시장을 신세대 취향의 주류 대중가요 중심으로 왜곡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MBC의 ‘음악캠프’는 그런 비판을 나름대로 수용해 공중파를 통해 접하기 어려운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음악평론가들이 번갈아 가며 한 팀씩 추천해 출연시키는 이 코너를 통해 그동안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이앤트메리, 허클베리핀, 싸지타 등의 인디 밴드, 천지인 같은 민중음악 그룹, 그리고 이승렬, 변재원 같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공중파를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코너 하나로 금방 대중음악 문화의 다양성이 회복되고 인디 음악의 성장이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동안 비주류 문화에 인색했던 공중파 방송이 이런 코너를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을 터이다. 요컨대 한 인디 밴드가 벌인 어처구니없는 해프닝 때문에 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갖지 못한 도덕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비주류 문화 전반이 퇴폐의 온상쯤으로 매도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슨 블랙리스트니 방송에 대한 규제 강화니 인디 밴드 공연에 대한 단속이니 하는 것은 이 사건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또 다른 반문화적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인디 음악을 포함한 비주류 문화는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대중문화 풍토에서 그나마 문화적 창의성과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이자 보루이다. 도덕주의로 포장된 마녀사냥으로 비주류 문화를 매도하는 행태는 그들이 주장하는 ‘건전한 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다시 한번 예술적 창의성을 옥죄면서 대중문화의 불모성만을 조장할 뿐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743 | 추천: 1
대학에서 인권관련 교양과목을 강의하는 나는 강의 첫 시간에는 늘 학생들에게 우리가 인권에 대해 흔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이번 한 학기가 지난 후에 아마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잘못된 이해 내지 오해들이란, 예를 들면, “인권타령은 70년대, 80년대 민주화 투쟁 때나 필요했던 것이지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인권타령이냐?,” “국가보안법은 운동권 학생들에게나 문제 되는 것이지 나 같이 법 잘 지키고 죄 안 짓고 사는 선량한 시민들과는 무관한 것이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이 먼저 갖추어진 후에야 비로소 인권을 언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교회가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개입을 하는 것은 교회의 본분을 넘어서는 것 아닌가?” 그리고, “과거 시절에 무장공비가 출현했을 당시 그를 체포하여 공개처형을 방불케 처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었나?” “딴 나라의 인권문제는 그 나라의 문제일 뿐이며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 그리고, “인권은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권리만 너무 강조하는 건 아닌가?” 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독재정권에 의해 침해되던 인권을 지금 우리는 누리고 있지만 인권문제는 축소된 것이 아니라 더욱 확장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에 의해 우리 국민 모두는 자기검열 및 사상검열에 알게 모르게 이미 익숙해졌다는 사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은 인권이라는 목적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가치에 불과하다는 사실, 성서에 담겨있는 ‘하느님 나라’, 이웃에 대한 사랑 및 정의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이 인권이라는 사실, 즉, 성서는 하나의 인권교재이기도 하다는 사실, 무장공비에게도 인권이 있기에 적어도 그는 죄수복으로라도 옷을 갈아입고 재판을 기다리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까지는 아니라도 사형을 앞두고 스스로를 뒤돌아볼 기회라도 가졌어야 한다는 사실, 더 나아가, 극형을 언도받아야 했던 것은 그 어린 청년이 아니라 그에게 주입되었던 이데올로기와 분단이라는 민족의 원죄였다는 사실, 과거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학살을 경험했던 우리는 더 가까운 과거에 동티모르에서 벌어졌던 학살을 외면하지 말아야 했다는 사실, 그리고, 끝으로, 다른 이들의 인권과 공동체 전체를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나는 인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을 그 학생들이 깨닫게 될 때까지는 사실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     청소년 대상의 소그룹 강의에서도, 또 종교단체인 가톨릭 수도단체에서의 특강에서도 이러한 오해들이 발견된다. 청소년 대상으로 ‘세계인권선언’을 중심으로 인권을 강의한 후 어떤 학생이 물은 질문인즉슨, “이렇게 인권의식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게끔 만드는 건 아닌가? 책임질 수 있는가?”이었고, 어느 수도회 수사의 질문은 “성서에서 하느님은 사랑하라고 강조하셨는데, 인권은  싸우라는 것 아닌가? 인권을 주장함보다는 원수라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이 분부하신 것 아닌 가?” 더 하여, 인권단체 주최의 시민 인권교육 강좌를 하면서 성인 시민들의 수강소감을 들어보면, “인권이라 하면 어려운 것이고 나랑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 일상생활 영역에서 인권침해의 피해자 및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얘기들을 한다. 청소년들부터 인권이 입에, 몸에, 그리고 가슴에 베어야  그들이 살아갈, 그리고 그들이 책임질 장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사실, 굶는 이들에게 매번 가져다주는 자선도 중요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굶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도록 일깨워주고 힘을 실어주는 일도 분명 커다란 사랑이라는 사실, 악한 이들에게 그들의 악함을 그들 스스로가 깨닫도록 해주는 일도 그들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등도 깨닫기가 어렵지는 않다. 인권강의는 그런 분명한 깨달음을 주는 일이며, 깨달음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어쩌면, 인권강의를 하는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 즉,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는 인권교육을 제대로 받아볼 기회가 없었기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교육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사실 인권교육에 별 관심도 없는 것 같다”라는 생각도 맞는 말이면서도 혹시 오해는 아닐까?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가 내게 던진 말인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면 안 되지요”라는 말 속에, 그리고, 바쁘고 피곤하기 마련인 평일 저녁에 인권강좌를 들으려 모이는 시민들을 보며 나는 내 오해에 대해 돌이켜보며 동시에 인권교육은, 인권운동은, 그리고 인권의 실현은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라고 다시금 깨닫게 된다. 끝으로, 정치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정치학자들이라면 인권에 대해 당연히 고민해보았고 공부도 많이 했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인권” 운운 하는 모든 정치인들은 당연히 인권에 대해 나름대로 올바른 일가견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도 또 하나의 오해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적어도 정치 공동체의 올바른 형태, 그 안에서의 올바른 분배와 올바른 행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면,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이 정치”임을 잊지 않는 정치인들이라면, 그리고, 적어도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헛된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분명 그들은 궁극적으로는 인권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또 하나의 오해는 아닐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근 60년, 독재정권이 무너진 87년 6월항쟁 이후에만도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으면서도 정작 우리는 우리에게 인권에 대해 배울 권리가 있음을, 그리고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인권 가운데 하나임을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권에 대한 오해에 의해 뒷받침 되던 인권 침해의 권력구조와 의식구조를 이제라도 깨달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양학부에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929 | 추천: 1
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지면을 즐겨 읽는, 적지 않은 수의 법률가 또는 법학자들에게는 죄송하게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법이란 그저 거만한 권위와 고리타분한 구습의 결정체라고 나는 믿었다. 법에 갇히는 순간, 법의 권위에 굴복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장엄함과 현실의 생동감은 그 빛을 잃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이런 정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개혁진보 진영에서 이어져 내려온 ‘관습 헌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법에 목매달아서는 안 된다는 그 불문율 말이다. (대신 ‘권력’에 목매달았던 셈인데, 생각해 보면 권력이나 법이나 뭐 다를 게 있다고, 그 둘 사이에 넓고 깊은 해자를 파고 법 제도 일반을 ‘사갈시’했는지 모르겠다) 법을 폐지하자는 데모는 해봤어도, 실제로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활동은 그래서 여전히 낯설다. 그것은 길게 잡아야 시민단체들이 제 자리를 잡은 지난 10년 안쪽에 시작된 일이다. 그나마도 여전히 운동의 중심은 ‘법’이 아니라 ‘광장’에 있다는 게 이들 시민단체의 믿음이자 나의 믿음이다.     지난 15일, 한 학술대회에서 나는 그 ‘믿음’이 묘한 균열과 긴장에 놓여 있음을 절감했다. 분명 그것은 민주주의의 에네르기가 광장에서 제도로 전화하는 (또는 전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 ‘역사적 순간’의 도래를 웅변하는 현장이었다. 물론 이때의 ‘순간’이 1-2년 안에 마무리될 리 만무하고, 사실은 앞으로 또 다른 반세기가 더 필요한 ‘긴 과정’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여하튼 민주주의 균형추가 광장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법과 제도를 향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하루 종일 열린 그 학술대회의 주제는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이었다. 창비와 함께하는시민행동이 공동 주최한 이 학술대회에는 지난 1년여 동안, ‘헌법의 민주적 개혁’ 또는 ‘(현행 헌법으로 대표되는) 87년 체제 극복’을 고민한 각계 학자들이 함께 참가했다. 여기서 시시콜콜 그날의 발제와 토론 내용을 옮길 생각은 없다. 궁금하신 분은 <한겨레>에 쓴 제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다만 그 기사에 온전히 담지 못한 한 ‘장면’을 전하고 싶다. (기사보기 클릭 ☞ 87년 헌법, 변화된 가치 반영 역부족                          ‘시민헌법 대토론회’ “개헌 논의는 사회개혁 큰 줄기”                          “87년 개헌은 정치세력 임시협정 시민헌법 만들자”)   오전 발제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현행 헌법의 민주적 개혁을 강하게 주창했다. 6월 항쟁의 성과물이지만, 실제로는 그 함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민주주의의 진전에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는 현행 헌법을 정치협약이 아닌 시민의 헌법으로 개혁하자는 게 그 요지였다. 그런데 오후 토론에 나선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주의의 진전은 (계급계층에 기반한) 정당정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헌법의 권위에 기대는 헌정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헌정주의는 원래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인데, 진보개혁 진영이 이제 그 ‘헌정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박명림 교수는 시쳇말로 최장집 교수의 ‘수제자’다. 공개 석상에서 이런 중대 이슈에 대해 그것도 스승이 제자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한 가지 더. 사실 박 교수의 ‘민주적 헌정주의’ 또는 ‘헌법의 민주적 개혁’은 최장집 교수의 몇몇 저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바 크다. 김대중 정부 시기 <월간 조선>의 마녀사냥에 크게 ‘데인’ 최 교수는 한동안 정치사회적 발언을 아끼다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저런 글과 말을 집중적으로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는 헌재를 포함한 사법권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 민주주의 심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데 모인다. 그리고 이 무소불위의 사법권력은 87년 헌법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박명림 교수는 자신의 헌법 개혁 논의를 ‘민주적 헌정주의’라고 표현한다. 최장집 교수의 이날 비판은 아직 헌정주의로 옮겨갈 단계가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 그 자체에 집중할 때라는 지적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정치학적 논쟁을 더 길게 풀어쓰지는 않겠다. 다만 이들이 고민하는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제도화(헌법화)’의 핵심은 바로 인권의 제도화, 정치화의 문제와 잇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박명림 교수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는 ‘인권’의 지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 ’ 정도가 개인이 갖고 있는 원천적 권리에 대한 규정이라 ‘해석’할   만하다. 다만 그 내용의 상당수는 ‘국가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그에 따른 국민의 지위를 정하는 ‘발상’이 깔려 있다. 헌법 제2장에는 모두 29개조에 걸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적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차별금지’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 침해 금지’ ‘통신비밀 보장’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재산권 보장’ ‘교육권’ ‘노동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등이 여기에 모두 명문화돼 있다. 다만 그것은 난삽하고 복잡한 나열에 불과해 보인다. 인권의 여러 양상과 국면을 어떻게 계통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2장 전체를 차지한 여러 권리와 자유는 ‘생동하는 권리장전’이자 ‘민주주의의 고향’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그저 ‘화석화된 문자’로 읽힌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면, 헌법 개혁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기본적으로 이런 인권 조항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박명림 교수와 최장집 교수의 논리를 이 문제에 대입하자면 이렇다. 박 교수는 사실상 ‘사문화’돼 있을 뿐 아니라, 인권 개념의 적극적 확장을 막는 현행 헌법을 ‘시민들의 공론장’에서 의제로 설정해, 사문화된 조항은 되살리고, 부족한 조항은 더 강화해 진정한 인권헌법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셈이다.   최장집 교수 반면 최 교수는 현단계의 문제는 여러 인권 조항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정치 권력과 기관이며, 나아가 헌법 해석의 보수화를 가능케 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왜곡이이며, 궁극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왜곡시키는 정당구조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의 현실은 최 교수의 지적에 힘을 싣는다. 헌법보다 더 큰 권위를 보안법에 부과하는 원천은 헌법 조문이 아니라, ‘정치’다. 그러나 동시에 보안법이 합헌이라고 판단하는 헌재의 권위에 힘을 싣는 것은 헌법 조문이기도 하다. 그 조문을 바꾸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의 실현이기도 하다는 게 박 교수의 이야기다. 앞에서 민주주의의 추가 ‘광장’에서 ‘제도’로 넘어가고 있다고 감히 말했다.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와 박 교수의 논쟁은 이미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전화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아마도 최 교수와 박 교수의 주장을 가로지르는 지점 어디엔가 합리적 대안의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것은 이런 것이다. 법학자도 정치학자도, 구체적으로 현행 헌법의 어떤 조항이 ‘인권’의 걸림돌인지, 어떤 조항을 더 확대 강화해야 하는지, 어떤 조항을 새로 추가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적 헌법 개혁의 논의는 인권단체들의 몫이기도 하다. 최 교수의 방법론을 빌리건, 박 교수의 방법론을 빌리건, 인권의 사회화 과정은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고리이자 가장 첨예한 대척점이 될 수 있다. 이념의 시대는 갔고, 광장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면, 모든 운동과 역사의 출발점은 결국 자유롭고 그래서 무한히 존귀한 개인일 수밖에 없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 그리고 그 총합으로서의 헌정 제도를 고민한다면, 그 출발 역시 ‘인간’ 각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인권은 지금 한국 사회의 ‘말과 글’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를 바로 잡는 데서,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띠엔 발리바르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는 ‘인권의 정치’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계급의 정치에 발목 잡힌 좌파의 도그마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내가 보기에 인권의 정치는 대단히 급진적인 구호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헌법을 말한다 할 때, 가장 할 말이 많아야할 사람들도 바로 인권운동가들이어야 옳을 것 같다. 정치학자들은 지금 ‘헌법을 민주주의의 품으로’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헌법을 인권의 품으로’라는 슬로건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민주주의는 그 곳으로 가는 길에 붙여진 이정표다.   안수찬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530 | 추천: 1
교사들이 잘 관찰해보면 학급마다 거의 한 두 학생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매우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쉽게 흥분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에, 이 학생은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로 진단될 가능성이 높다.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 ADHD)는 아동기에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장애로서 지속적인 주의력 산만(Inattention) 및 과다활동(Hyperactivity), 충동성(Impulsivity)을 특징으로 한다. 최근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부모가 학생과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는 경우, 가정에서마저 소외되면서 적절한 관심과 치료를 못하게 돼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2학년의 명수(가명)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의 증상을 보이는 학생이다. 교과시간에 매우 산만하고 과제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는다. 수시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교실을 나오며, 지갑을 훔치는 경우도 목격되었다. 이를 나무라는 교사에게 훔친 돈을 나쁜 데 쓰지 않았다고 항변하면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술을 가져와서 교실에서 마시려고도 했다. 다른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수시로 싸움을 하고, 여학생들에게는 성적인 희롱도 자주 한다. 담임교사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생을 지도 하려고 노력했지만 명수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자기가 야단을 맞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명수의 부모는 음식점을 하는 관계로 명수를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아, 혼자 있게 된 명수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PC방에서 늦게 까지 시간을 보냈고 돈이 필요하면 친구들의 돈을 훔쳐서 PC방을 다녔다. 문제는 명수의 부모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서 더 꼬이기만 했다. 담임교사는 명수 부모와 상담을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의사의 자문과 처방을 구하도록 권유했지만 명수의 부모는 명수의 행동에 대해 그럴 리가 없다며 문제 해결을 회피했다. 오히려 담임교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학교에서 다시 잘 지도해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까지 했다고 한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는 산만함, 도벽, 공격성, 자기통제의 결여, 양심의 결여, 행동의 결과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는 약물요법과 행동치료 그리고 부모와 교사들의 학생에 대한 이해와 배려이다. 그러나 명수 부모의 이러한 태도는 명수를 더욱 고립시켜 치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도록 만들고 있다.   사진협조  ⓒ KBS  명수의 행동이 계속 방치될 경우 이는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의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틀어박히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수년 동안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방에서만 생활하는 사람을 일컬는 말이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가족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는다. 대화도 없다. 밀폐된 방안에서 오로지 혼자만의 생활을 한다.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가정에서의 불화와 폭력, 부모와의 대화 단절, 인터넷 게임 중독의 공통성을 보인다. 일본에서는 이미 이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지난 2월 초등학교 시절 따돌림을 당하던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사 3명을 찔러 1명이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심지어는 부모를 살해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우리의 경우도 일본의 사례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전조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핵가족화와 결손가정의 증가, 인터넷의 확산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외톨이 현상을 보이는 학생이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학생의 정서, 친구관계, 학업성취도 및 일반적 행동에 대하여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 해결에 부모 못지 않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교사들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확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서울의 초, 중, 고등학교의 학급 인원은 대체로 35명 정도이지만 40명 이상이 되는 곳도 많다. 학급 인원이 교사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은 학급의 학생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는 데 있다. 학생수와 함께 수업시수도 줄어들어야 하며,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시성 행사나 잡무, 공문 처리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근무여건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학교부적응학생에 대한 교육적 지도는 해당 학생은 물론 다른 학생들과 교사들까지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교육당국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877 | 추천: 1
‘지속가능한 발전(개발)’이란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한창 운동의 다양한 조류에 민감하던 대학생시절이었다. 인권운동을 얘기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거론하는 것은 근래 들어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거닐 삶의 지형을 떠올리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를 되살려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세계 각국의 대표들과 비정부 민간단체 대표들이 함께 한 가운데 열린 이른바 리우환경회의에서 '환경과 개발을 위한 리우선언'을 채택하면서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설명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컸던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때 이 개념이 내게 ‘가슴’으로 와닿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회주의 몰락 후 이념의 푯대를 잃고 부유하던 소위 운동진영에 있던 이들에게 이 개념은 건강한 노동이나 삶을 위한 이론으로 다가섰다기보다 현학적 지식욕을 만족시켜주는 좋은 구실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코앞에 닥친 농촌활동 준비까지 보류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언급한 이러저런 책들을 섭렵했던 것은 그만큼 갈증이 컸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무지한 탐식의 결과 그나마 오늘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개념 한 덩이가, 거칠게 표현하면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것 모두가 과거, 그리고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책에서는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하는 여건을 훼손함이 없이 현 세대의 욕구에 부응하는 수준의 개발’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변증법적 사고에서 보면 하등 새로울 게 없는 귀결이었기에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을까, 이후 ‘지속가능’이란 개념은 당장 ‘삶의 지속’을 힘들게 하는 세파 속에서 옅어져갔던 것 같다. 새삼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예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찌됐든 지금껏 삶의 뿌리이자 전부라고 생각하며 이어온 이 운동이 ‘지속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자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물음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운동이랍시고 해온 것을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놓여 있다. 이른바 소비자운동이니 무슨 권리운동이니 하는 ‘운동’이 팔리고(?) ‘운동권’이었던 게 ‘돈’이 되는 상전벽해의 시대를 살다보니 갖게 되는 혼란도 이런 생각에 일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떠올려보면 그리 오래 전도 아닌 시기, 운동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삶을 담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지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이들 사이에는 ‘기분좋은’ 비장미 같은 게 흘렀고 웬만한 허물은 서로 덮어줄 줄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는 지금, 비장미는 둘째치고 운동이 운동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비애가 서리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리는 상품(?)이 되었으니 축하할 일일지 모르지만, 문제는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상품으로 내어놓기까지 한다는데 있다. 좀더 비싸게 팔리기 위해. 그러나 본질적이고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한 ‘상품화 과정’에서 드러난다. 더 잘 팔리는 상품이 되려다 보니 내용보다 포장이 우선되기도 하고 ‘경쟁’이 도입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를 닮아 있다. 자신의 경쟁 상대가 될 만한 ‘운동’은 아예 배제하든지 철저히 억눌러야 하는 자본주의 기제가 발동하는 것이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 인권운동가의 어린 아들은 장래 꿈이 제 아버지를 닮은 ‘인권운동가’라고 한다. 또 다른 인권 단체의 동지는 그런 아이의 아버지를 꼼수나 부리는 이라고 폄훼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과연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지 되묻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고 저항이 있는 곳에 운동이 있다’ 학생시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던 이런 류의 구호도 ‘과연 그런 운동이 가능할까?’라는 자괴감으로 바뀌는 요즘이다.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우리가 해오고 있는 운동을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과장일까. 지금의 운동이 지속가능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을 최소한 우리가 물려받은 수준’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자본 위에 눌러 앉아(그럴 수도 없겠지만) 그 달콤한 유혹을 향유할 것인지 아니면 자본이 드리우는 그늘 속으로 더 깊이 나아갈 것인지.   서상덕위원은 가톨릭신문 기자로 재직중입니다.
2017-05-31 | hrights | 조회: 554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