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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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변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처럼 별로 없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평택 대추분교 정문 앞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법원의 강제집행의 현장에서 몸서리치도록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전개되는 합법을 가장한 폭력! 빼앗는 자들의 거대한 음모와 횡포가 평택 주민들의 파란과 곡절 많은 삶의 한복판을 뒤덮고 있었다.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떠올린다. 눈길을 멀리 돌린다. 온통 들로 가득한 평화의 땅 평택. 그 평택의 수평선을 넘어 침략의 기지가 들이닥치고 있다. 조상들이 두고두고 피땀으로 싸워 일구어 놓은 생명의 땅 평택은 지금 홀로 반제 반침략의 역사와 대면하고 있다.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미군기지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온 몸을 던져 막아 나서는 거기에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분단 현실의 총체적 모순구조가 녹아나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세계평화의 걸림돌이요, 세계 제1의 악의 축 국가의 음흉한 촉수가 평화의 땅, 생명의 땅, 투쟁의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에서 국방부가 팽택지원 집달관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해 학교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을 강제로 내보내려고 절단기로 학교 철망과 쇠사슬을 자르자 문정현 신부(왼쪽)와 인권단체 회원이 기둥을 부둥켜안고 막고 있다.  -사진출처 : 한겨레   필사즉생의 각오가 애달프다. 연약한 촌로들의 외침이 그대로 무겁게 전해진다. 태엽에 감겨 노는 장난감마냥 그저 얌전히들 제국의 역사가 달려온 그 방향대로 그 장대한 침묵의 시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투항하면 그만인 것을 주름살 핀 일그러진 얼굴로 고난의 역사를 불러오고 극복되지 않을 비극의 역사를 찾아 세찬 바람 앞에 촛불을 들고 몸서리들 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비웃는 자들의 두려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평택에 드리운 제국의 마수를 깨뜨리는 촛불의 힘, 제국의 손과 발이 되어 합법을 가장한 폭력을 휘두르는 친미사대 사이비 개혁 정권의 본질을 꿰뚫어 버리는 촌로들의 기상이 평택이 갖는 진정한 참모습이었다. 주한미군 철거가가 울려 퍼지고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판을 가르는 싸움터로 치달아가고 있는 역사의 땅이 바로 평택이었다. 고난의 현장에서 역사는 웅대한 투쟁의 삶을 부여하고 있다. 항쟁의 땅에서 반제자주, 반전평화의 정신은 그 폭이 넓어지고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미국의 군사 패권 전략을 실현하는 침략의 발진기지가 되어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동북아 신냉전을 초래하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미군기지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피맺힌 진리를 되새기고 있다. 바로 그 곳에서 나는 당혹감이 느껴졌다. 합법의 외피를 쓴 법 집행자들은 내게 침묵과 굴종을 강요하고 있었다. 긴박한 호흡과 짧은 휴식으로 합법을 가장한 폭력에 맞서 싸우는 평택의 투쟁 현장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변호사로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외피 삼아 법 집행자들에 맞서 본들 그들이 강요하는 육중한 침묵과 굴종을 견디어 낼 수 없다. 그렇다. 바로 그 때 내게 솟구쳐 오르는, 역사의 복판을 흘러가는, 모든 외피를 스스로 털어버리고 역사의 땅에서 항쟁의 동지들과 함께 역사와 대면하는 흥분과 설레임이 있었다. 그 눈물겨운 투쟁에서 전달되는 정서를 느끼며 나는 아름다운 참모습을 발견하였고 평택은 또 하나의 비극이 아니라 승리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 정문에서 평택지원 집달관과 경찰 병력이 대추분교의 강제퇴거를 위해 시민단체 회원들이 막고 있는 정문을 뚫으려 하고 있다./ 신영근    -사진출처: 연합뉴스   합법을 가장한 폭력이 판치는 역사의 땅 평택에서 나는 모든 외피를 털어버리고 역사와 마주서 그 항쟁의 고귀한 땅을 껴안고 승리하는 역사의 전설을 모든 평택 지킴이들과 펼쳐 내보이고 싶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560 | 추천: 0
‘최근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아동에 대한 성폭력과 살인 범죄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성범죄자들에게 전자팔찌나 신상공개 등의 처벌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한 분이 신문사 여기자의 가슴을 만진 사건이 폭로되었고, 그는 지금 국회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국민들과 정치권의 압력을 받고 있다. ‘해바라기 아동센터’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성폭력의 의미는 성기 삽입에 의한 강제적인 성관계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성기나 유방, 엉덩이나 배 등 신체를 강제로 만지는 것도 성폭력이며, 행동으로 하지 않더라도 신체 부위나 성행위에 대한 말로 기분 나쁜 농담을 하거나 놀리는 것도 성폭력이라고 한다. 성폭력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성기 삽입에 의한 강간만을 엄격한 의미의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그 외의 신체 접촉은 성추행이라고 구분해서 보는 현재의 법률과 언론의 시각을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여론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그 국회의원은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고, 같은 당 의원이 주장하고 있는 성범죄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는 법안의 첫째 번 ‘수혜자’는 그 국회의원이 될 듯하다.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 사진출처: 노컷뉴스  많은 국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 딸을 가지고 있거나 여성, 또는 약자에 대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요즈음 신문을 장식하는 이런 일들에 크게 분개하고 있다. 그래서 성범죄자에 대한 대책으로 거론되는 전자팔찌 등의 부가적인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어느 때보다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범죄자 대책에 대해 인권적인 측면에서 반대의사를 밝힌 인권 단체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일부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새로운 모습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범죄자의 인권만이 있고,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없느냐고 항변을 한다. 인권은 적극적인 의미의 인권과 소극적인 의미의 인권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에는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돈이 없어도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면, 후자에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할 권리, 설혹 범죄자로 확정 판결을 받아서 수형 생활을 하더라도 개, 돼지 같이 취급받지 않을 권리 등이 속한다고 본다. 성범죄 피해자의 적극적인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성범죄자의 소극적인 인권을 어디까지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 이번 논란의 요체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인권이란 한 사람의 가치에 관한 판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극적인 인권이, 주로 국가권력과 같은 권력에 의해 어느 개인의 생각, 신체가 구속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면, 성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인신구속은 다른 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인신구속으로 확대되고 나아가 불특정 다수 국민들에 대한 인신구속으로 번질 수 있다. 성범죄가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지운다는 점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팔찌 착용을 옹호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관점이라면, 학교에서 왕따를 시키는 범죄도 피해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며, 살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왕따를 시킨 학생들, 여러 유형의 살인범들에게도 전자팔찌는 유효한가.   사진출처: 노컷뉴스  위중한 범죄를 저질렀던 기결수들을 다시 인신구속하는 보호감호제도가 이중처벌의 위헌적 요소를 지녔던 것처럼, 전자팔찌 같은 제도는 이미 법률적인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계속되는 인신구속을 부과하는 것이다. 더구나 신체에 개, 돼지 같은 속박을 가하는 전자팔찌를 한 채로 여름에 반팔 옷을 입거나, 공중목욕탕이나 수영장 같은 곳에 갈 수 없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재 지나치게 관대하게 적용되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보다 엄격하게 가하는 것이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보인다. 누구나 그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주홍글씨’를 새겨넣으면서까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을 서둘러 사회에 돌려보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묻고 싶다. 아울러, 성범죄 예방교육의 강화, 성폭력범죄의 비친고죄로의 전환, 성범죄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대책 등을 우선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어느 네티즌의 의견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권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수사관행에 남성중심적인 잘못이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하여, 피해자들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의식의 근저에 "살인범보다 강간범이 더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 "강간피해자에게 더 혹독한 사회"와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한 성찰이 함께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느 네티즌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453 | 추천: 0
바야흐로 축구의 황금시절이 다가오고 있다. 2002년 광화문 사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티셔츠 물결이 2006년 여름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다. 포백이 어떻고, 스리백이 어떻다는 것 정도는 이제 상식적인 얘기가 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머리가 좋다. 현재도 진행 중인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이 시작될 무렵 이미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생명공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처럼 한국 사람들은 이제 현대 축구 전략과 전술을 훤히 꿰뚫고 스스로 감독이 되어 자신만의 대표팀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의 음식점, 술집 등에서 경기를 TV중계 한다고 광고문구를 써 붙이는 것은 이미 예삿일이다. 축구가 끝난 다음이면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경기결과를 알리고, 그 분석 기사를 내놓는다. 한국이 이기는 경우에는 희망이 보인다거나, 지칠 줄 모르는 압박이 승리를 견인했다고 하거나, 지는 경우에는 골 결정력이 약하다거나 수비 뒷공간이 자주 열렸다거나 하는 식이다. 한국이 이긴 경우는 다른 어떤 사건보다 축구경기에 대한 보도가 앞선다. 사람들도 경기 결과와 그 분석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건에 언론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언론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문은 판매부수에 신경을 써야 하고 방송은 시청률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런데, 축구에 대한 기사가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다른 뉴스들을 사장시켜 버릴 만큼 그렇게 삶에 소중하고, 긴요한 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좋아하지만, 축구를 통한 국민 통합, 국위 선양 어쩌구 하는 얘기는 믿고 싶지 않다. 2002년 6월의 한 신문의 기사를 보면,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일들은 그저 외면당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제대로 인식되지도 못한 채 지나가 버렸다. 대우자동차 판매노조의 임금체계 개악반대 시위,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단식농성, 병원파업 노조간부의 기습연행, 미군부대 고압선에 감전된 전동록씨의 사망,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 지문날인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신분증 발급 거부로 인한 참정권의 사실상 박탈, 병원에서의 슈퍼박테리아 감염 뒤 해당 병원으로부터 퇴원 압력을 받은 환자들 문제, 노바티스에 대한 백혈병 항생제 글리벡 가격인하 요구,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의 위헌적인 등급분류 보류제도 적용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서해안에서 북한과의 교전이 있었고, 국제형사재판소의 근거규정인 로마규정이 발효됐으며, 지방선거도 있었다. 무엇하나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사안들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대~한민국” 한방에 덮였다. 월드컵을 통해 확인되었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동성은 어찌 보면 과장된 것일 수 있다. 순간의 기쁨과 환희를 같은 장소에서 발산하고 싶은 젊은 세대의 열병일 수 있다. 1965년 4월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시위대는 그 규모가 40만명에 이르렀고, 그해 11월 워싱턴에서는 10만명의 반전시위대가 운집했다. 2004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전쟁 1주년이 되는 날 이탈리아에서는 100만명, 런던에서는 20만명, 뉴욕에서는 10만명이 참여한 반전집회가 열렸다. 이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만 따진다면 2002년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다. 이들의 역동성이란, 그 참여의지란 정말 굉장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동성, 역량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 이후의 각종 촛불집회, 탄핵집회 등을 통해 보여준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량은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러나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너무나도 차분한 것이 사실이다. 아니 무관심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무관심은 조장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관한 문제, 외국인노동자에 관한 문제, 사학법에 관한 문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문제, 쌀 개방에 관한 문제, 국가보안법에 관한 문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이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표류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2006년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또 다시 한달, 그리고 그 여파가 미칠 여러 달 동안 많은 문제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될 수 있다. 또 다시 무관심이 조장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으로 머리가 좋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문제의 본질까지 꿰뚫어 본다. 그 해결책도 생각해 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문의 끄트머리에 놓일지 모르는 일들을 눈앞에 붙잡아 둘 각오를 다져야 한다.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는 순간 상황은 악화되고 해결의 실마리도 놓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고 하여 국가위상이 드높아 지는 것은 아니다.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고 하여 국민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형식적인 수치로 발견되는 국가위상보다 내실 있고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국가위상은, 방치되고 악화되어 곪아터진 제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는데서 발견되고, 고양되어야 한다. 고통받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함께 하고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통합은 그 기초가 마련된다. 대본 없는 연극의 짜릿한 감동, 기쁨, 환희, 그것은 순간의 고통을 잊게 하는 몰핀에 불과하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465 | 추천: 0
내쳐 한달음이면 닿을 거리를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갑니다. 잘 펴지지 않는 팔을 흔들고 가누기 힘든 머리를 곧추 세우다 마음이 앞서 넘어지기도 합니다. 먼저 굴러가는 공을 차지하기 위해 뛰다가 몸을 세워줄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상대방과 심하게 부딪히고 깨져서 피가 흐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웃음 입니다. 부상을 당해 그라운드 위에 몇 분을 누웠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면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돌진 합니다. 효율의 최대치를 인간의 가치로 보는 세상에서 그들은 늘 찬밥 입니다. 능력이라는 듣기 좋은 언어로 포장된 효율이라는 잣대는 알을 많이 얻기 위해 좋은 사료를 공급받는 양계장의 닭과 똑같은 방식의 삶을 인간에게 요구 합니다. 한계를 가지지 않은 경쟁체제의 또 다른 말인 효율성 중심의 세계에서 그 안에 갇힌 모든 것 들은 벼슬의 색깔이 점점 시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알 낳기에 열심인 양계장의 닭처럼 자신의 생산력에 감탄하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자랑스레 설파합니다.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대회때의 모습 나는 그들의 뜀박질보다 훨씬 빠르게 공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내가 뛰는 걸음의 소리를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혼신의 힘을 다한 한 걸음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나는 1분에 책 몇 페이지를 읽을 수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 진정한 삶의 언어 단 한마디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온몸을 비틀며 전하고자 하는 그 단 한마디의 진정성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효율이 인간의 기준인 세상이 아니라 삶의 진정성이 기준인 세상이라면 장애우……. 그들의 삶은 시대의 큰 울림 입니다. 지난해 말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대회가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서 있었습니다. 일본의 뇌성마비장애인 축구단도 참여를 했구요. 그 행사에 초대받아 축구도 하고 응원도 했습니다. 덕분에 축구마니아로써는 무척 영광스러운 이름들……. 홍명보, 조영증, 김진국, 김재한, 김호곤 또 정몽준과 친선경기도 했습니다. 애초에는 이 경기를 위해 갔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더디 걷는 사람들의 눈빛이 더 맑은 이유를 보고 왔습니다. 축구대회때의 모습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435 | 추천: 0
며칠 전 나눔의집에서 빈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시는 한 신부님이 외국인 가족 중 두 사람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며 자랑하셨습니다. 신부님이 이태원의 모스크 지도자들의 협조로 외국인 이주노동자 상담사업을 진행하여 오던 중에 만나게 된 미얀마 사람들인데, 2년간 애태운 끝에 얻은 쾌거였습니다. 그 두 사람은 미얀마의 로힝야(Rohingya) 부족입니다. 로힝야 부족은 1962년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 이후 단지 무슬림이란 이유로 온갖 박해와 차별을 당해 왔습니다. 사유제산을 몰수당하고 거주제한과 강제노동에 시달렸으며 심지어는 무슬림인 그들에게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1970년 이후로는 시민권조차 얻지 못하여 현재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무국적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결국은 그 박해를 피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는데, 특히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에만 25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에서마저 본국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이자 그 위기를 피해 지난 2003년 11월 한국으로 왔습니다. 난민신청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다가 다행히 지난 해 12월과 올 1월 6일 법무부로부터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되어 추방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기뻐할 일이었지요. 그러나 아직도 수백 명이 난민인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의 난민정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1992년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그 뒤로도 난민을 인정하지 않아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8년만인 2000년 1월에 처음으로 한 명을 난민으로 인정하였고, 2003년에 12명, 2004년 12월에 17명을 인정하는 등 현재까지 40여명이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난민허용에 관한 국제적인 책임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 사회 단체 참여 등의 이유로 인한 박해의 공포를 피해 조국을 떠난 후, 귀환하지 못하거나 귀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사진 출처-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UNHCR) 서울사무소   우리나라 난민정책의 첫 번째 문제는 난민인정 절차의 후진성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문적인 기관이나 담당 공무원이 아니라 출입국관리국의 불법 체류를 단속하는 부서에서 난민인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백 건의 사건을 1, 2명의 비전문 공무원이 담당하고 있으니 신청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난민신청인을 불법 체류자라고 보는 경향이 농후한 것입니다. 난민신청인이 법무부 심사를 받기 위해 1, 2년 이상 대기하고 있는데 이들이 적정한 심사 아래 난민으로 판정 받는 것은 사실상 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민인정 절차에 하루빨리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난민에 대한 처우의 문제입니다.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체류 자격을 주는 것일 뿐 아니라, 그들이 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난민들의 사회 정착과정에 정부는 무관심하기만 합니다. 현재 난민 보호의 내용은 대한민국에서 쫓아내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난민들은 외국인에게 더 척박한 노동현실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UNHCR) 서울사무소  난민문제를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멀게는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나 미국 및 유럽 등에서 활동을 하던 선조들이 바로 난민이었습니다. 가깝게는 군사독재 시절 민주인사들이 외국 망명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되어 이국에서 조국 민주화를 위해 투쟁을 계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추방되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목숨이 위태로울 게 뻔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이제는 갚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땅에 와서 외롭게 투쟁하는 망명객들과 민주화운동의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그들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도울 때가 왔다는 말입니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387 | 추천: 0
황빠’ 바람이 한창 기세를 부리고 있던 당시 필자는 필자가 속한 신문사 덕분에(?) 예기치 못한 눈초리에 시달려야 했다. 이른바 “너 ‘황까’ 아냐?”하는 시선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소지는 다분했다. 세상이 다 ‘배아줄기세포’의 유용성에 대해 확신을 넘어선 신앙으로 한 방향으로 쏠려 가고 있을 때 필자가 몸담은 신문사는 일찌감치부터 ‘배아도 생명이다!’는 깃발을 내걸고 싸움도 되지 않을 법한 전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1년여 전까지만 하더라도 황우석 교수나 그의 오른팔이라는 안규리 교수를 웃으면서 만나던 처지였으니 그 곤혹스러움은 이루 말로 다하기 힘든 것이었다. 신문사 사옥에 ‘황우석 교수님, 힘내세요!’라고 쓰인 대문짝만한 플래카드마저 내건 타 종단 신문 기자를 만나도 웃음을 주고받기가 서로 머쓱해서 인사 한 마디 없이 지나치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런 ‘황빠’ 바람이 태풍이 되어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동안에도 필자의 뇌리에는 희미하게 보일망정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스러졌다 생겨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은 막연한 희망이라기보다 다른 의미의 ‘의지’였던 것 같다. 과학적 지식이나 여론의 흐름 등을 감안할 때 필자는 그런 대세에 영향을 줄만한 어떤 힘도 없었다. 가깝던 지인마저도 당신 생각이 잘못될 수 있다며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보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해올 땐 비참한 생각마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필자가 속한 신문사는 속칭 ‘황까’ 논리가 분명한 내용을 담은 신문을 찍어내는 걸 무슨 사명감으로까지 여기고 있었다. 당연히 신문사 홈페이지나 관련 사이트들은 ‘너희들 ○○○와 한 통속 아니냐?’는 투의 댓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이런 흐름은 하루 이틀 새 ‘두고 보자’식의 협박성(?) 말투로 바뀌기 십상이다. 무수한 말과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이 난무하는 속에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넘긴다는 건 무척이나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 짜증은 익명을 대하는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보인 전반적인 가벼움, 나아가 타인의 인권이라고는 차분히 생각해볼 대상도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니 이른바 ‘황우석 신화’가 어처구니없는 거짓임이 드러났음에도 “너 처음부터 ‘황까’였지?”하는 반인권적이고 이분법적인 재단이 여전히 기세를 올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다행히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통해 거짓으로 가득 찬 ‘신화’가 미망임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희망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희망에 더해 이제는 이 거짓된 신화가 준 교훈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배워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대세에 휩쓸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는 않았나’ ‘진실에 애써 눈감으려 하지 않았나’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하고 있는지 않나’…. 이번 사태를 통해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홍역을 치르고도 면역력을 갖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황까’는 아니었던 필자가 보기에 ‘황우석 사태’는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 시스템의 필요성 등 많은 교훈들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생명에 대한 경시와 인권에 대한 무지에 있다고 본다. 배아 연구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으로 인해 인간 배아의 생명권은 아예 고려의 축에도 들지 못했고, 우려되는 부작용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은 채 무지막지하게 난자를 채취함으로써 여성 인권을 묵살했는가 하면, 연구 성과를 부풀려 난치병 환자들에게 허망한 기대를 갖게 함으로써 다시 한번 인권을 유린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런 모습은 결코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소수 과학자들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모두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동조한 정부와 언론,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침묵한 과학자들, 비판적 성찰 없이 국익과 경제적 논리에 눈이 멀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낸 모두가 공동 책임자가 아닐 수 없다.   사진 출처 - 쿠키뉴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가 지닌 가벼움을 돌아보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인간 생명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착각을 착각인지도 모르고 있던 적잖은 이들을 깨어나게 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비록 배아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이란 사실만은 착각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한때는 배아였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 때문에 종국엔 필자도 의도하지 않게 ‘황까’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412 | 추천: 0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말은 이제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아날로그 세대는 물러가야 할 세대이며, 디지털 세대만이 미래를 창조하고 바꾸어갈 위대한 힘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는 황우석이 그동안 전 세계, 온 국민, 과학계, 대한민국을 기만하면서 사기극을 연출하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한동안 이 땅을 들끓게 했던 황우석과 그의 찬란한 연구 성과들이 사회적·윤리적 측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과학적 측면에서도 거짓이며, 결국 황우석은 희대의 사기꾼에 불과했다는 내용이다. 거짓이냐 참이냐라는 단순 편리한 이분법으로 한국 사회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온 발표를 들으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말이 빙빙 돌아다닌다.   ▲ 황우석 파문 최종 발표.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 정명희 위원장이 10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황우석교수의 연구에 대한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백승렬/사회/과학/ 2006.1.10 (서울=연합뉴스) srbaek@yna.co.kr   디지털 시대가 인류의 현실에 펼쳐진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상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만남이 이어지고 의견을 개진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황우석의 문제를 두고도 수많은 네티즌들이 서로 입장을 달리하면서 물고 물리는 사이버 소리 전쟁이 가능하였다. ‘아이러브 황우석’이라는 카페에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회원으로 가입하고, 진실을 국익의 이름으로 호도하며 황우석을 옹호하는데 앞장 설 수 있었던 것도 디지털 시대를 증명하는 현상이다. 다른 한편, 그동안 수없이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은폐된 진실을 추구하였던 소중한 프로그램이었던 MBC 방송의 PD 수첩을 초토화시키고, 광고 중단과 방송 중단이라는 참으로 어이없는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도 역시 디지털 시대의 엄청난 힘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인간 사회에서 이중적인 위상을 지닌다는 것, 즉 누가 무슨 목적으로 과학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과학기술에 대한 평가가 좋고 나쁨의 극단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번 사태에서도 또 한번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인간 줄기세포 논문 조작 여부에 대하여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던 것도 어찌 보면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젊은 과학자들의 인터넷 공간인 BRIC이란 온라인 모임에 논문 조작 사진과 DNA 지문 데이터 내용이 올라왔기 때문에 맹목적인 황우석 신화가 덮고 있던 ‘단순한 사실’이 밝혀질 수 있었다. 결국 황우석 사태를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디지털의 어둠과 밝음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황우석 사태와 디지털 세대를 화두로 좀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보자. 황우석의 난자 매매, 연구원 난자 제공의 강제성 문제도 어떻게 보면 황우석이라는 정신피폐아가 빚어낸, 속도를 중시하고 속도를 생명으로 아는 디지털 사고방식으로부터 빚어진 일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빠른 속도로 무엇을 전달할 것이며, 빠른 속도로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것이 인간에게 보다 중요한 문제 아닌가. 나는 인간이 숨쉬고, 냄새 맡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위대한 감성과 힘은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가능하며, 그런 위대한 힘을 나눌 수 있는 원천은 바로 생명의 소중함이고, 인간의 소중함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아날로그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황우석의 디지털 사고방식 때문에 아날로그적 인간성과 동떨어진 일련의 사태들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조지 오웰이 소설의 힘을 빌려 상상한 ‘1984년’이 이미 손에 잡히는 현실로 되고, 온갖 다양한 명분을 들이대며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제한하는데 이용하는 감시 체제인 CC-TV와 첨단의 기술을 이용한 도청 등이 가능한 것도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들의 소중한 ‘아날로그’를 무시하기에 가능한 처사이다. 인권을 외치고, 인권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막상 우리 주위에 수없이 늘어선 CC-TV의 문제점을 제기하면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별다른 반응이나 지지를 보이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과학 제일주의의 가치를 필두로 하는 디지털 만능의 사고방식이 뇌를 지배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고, 소중한 아날로그의 감수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싶다. 내가 자라고 성장했던 시대는 분명히 아날로그 시대였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디지털로 돌입하면서 우리 세대들은 분명히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정체성마저도 흔들렸었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의 명암을 보면서 나는 어느 정도 안도를 하게 됐다. 디지털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는 영원하다는 믿음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날로그가 디지털보다 더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히 카세트테이프의 음질보다 CD의 음질이 뛰어나고, 디지털 TV가 아날로그 TV보다 선명한 화질을 제공해주는 과학의 시대, 디지털 우수성의 시대가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계와 문명 속에 담겨있는 내용은 여전히 우리 인간의 문제이고, 인간의 감수성에 자리 잡은 소리와 빛, 맛, 감정 등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를 디지털이라는 외형이 전적으로 결정하거나 조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디지털의 세계 속에서 아날로그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아날로그의 내용을 구현하는 것이 어찌 보면 현 디지털 세대를 자임하는 세대들이 완수해야 할 미래상으로 보인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자그마한 인터넷 신문인 코리아포커스 역시 디지털 시대이기에 가능한 언론 매체이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철저하게 아날로그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며, 어떻게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 속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남아 있는 과제이다. 디지털이 결코 만능일 수 없는 세상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날로그여 이제 힘을 내라. 아자! 아자!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427 | 추천: 1
얼마 전 초등학교(1학년)에 다니고 있는, 셋째인 딸내미가 함께 나란히 티브이를 보다가 질문을 합니다.        “아빠, 학교는 왜 가야 되는 거야?”   갑작스런 질문이기도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에 얼결에 그냥      “.... , 응~ 그건 어린아이들이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기 때문이지.”   하고 대답했습니다. 딸은 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말을 잇습니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가르쳐주면 되잖아.”     “.... 엄마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하잖아.”     “그럼 아빠가 돈 벌어오고 엄마가 집에서 가르쳐 주면 되잖아.”     “....................”   잠시의 당황스러운 순간을 묵묵부답으로 지나고서야 딸내미는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하는 자괴감도 잠시였고 어느새 1학년에 불과한 이 아이가 학교라는 대형 교육시스템에 만족을 못한달지, 적응을 못한달지, 하여튼 문제제기를 하는 셈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 간디 마을 학교 현판식. 2005년 3월 6일 ⓒ2005 이정민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엊그제 보도를 보니 교육부에서 초등학교를 포함한 대안학교의 학력인정 및 지원정책을 발표했다고 하는 것을 보고 교육의 다양성이 보다 확대될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대안학교라는 것도 부모가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질만한 여건(경제적이든 교육환경이든)이 되어야 생각을 해볼 수 있는 형편이고 보면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홈스쿨은커녕 대안학교를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의 많은 서민들은 좋고 싫은 것을 따질 겨를도 없이 일단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관내(은평구)의 한 초등학교와 더불어 전국에서 제일 높은 과밀학급을 자랑(?)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1학년 아이들은 한 학급에 40명 정도이고 5,6학년쯤 되면 한 학급에 48명 내외가 됩니다. 게다가 한 학년에 열두 반이 편성되어 있어 이 학교의 전체 학생 수는 3천 명을 훌쩍 넘어 섭니다. 급식 환경(이 학교는 현재 2학년부터 급식이 시행되고 있는데 2006년부터는 3학년부터 급식이 시행될 거라는 괴소문이 나돌고 있는 형편)이나 체육시간 등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고생이나 그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결국 방임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는 모 지역의 학교 교육환경을 소개하면서 한 반에 20여 명 되는 아이들이 훌륭한 시설에서 교육받고 있는 모습을 보도한 적이 있었는데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졌더랬습니다. 한 담임선생이 맡아 잘 지도할 수 있는 학생 수의 한계가 20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규모를 넘게 되면 교육의 질을 따지기가 어려운 형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기존의 틀에 억지로 구겨 넣을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거의 숨막힐 듯한 환경에서 이런저런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인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2006년에는 국방예산을 대폭 교육예산으로 이관시켜 아이들이 티없이 맑고 밝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드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나라의 미래 아니겠습니까? 국익을 외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410 | 추천: 0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너무 많다. 연일 각종 언론 매체의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줄기세포 논란은 전문적인 용어들이 마구 넘쳐나서 그렇다고 하자. 아무리 살펴봐도 이렇다할 전문적인 용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역시 사학법이란 놈이다.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아이들을 전교조에 맡길 수 없다’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를 박차고 차디찬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거룩한 성직자들도 더 이상을 참을 수 없다고 떨쳐 일어섰다. ‘범교단적으로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단다. 그동안 보였던 교파간의 질시와 반목, 분열은 이 사학법 개정안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좀더 나아가 교파간의 단순 연합을 넘어 종교적 배타성도 버릴 태세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사학을 설치하고 있는 타 종교 및 사학 관련 기관과 연대투쟁을 하여야 한다’라며 성전(聖戰)의 기세도 보인다. ‘순교의 각오로 거룩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 한다. 이왕 하는 것 ‘이런 만행을 국내외에도 호소’해야 한단다. 세상에 이런 악법은 없단다. 도대체 뭣 때문에 한나라당이나 사학교단들은 이렇게 떨쳐 일어난 걸까. “만일 이번에 불의한 방법으로 강행처리 된 이 법이 시행된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문장들을 읽는다) “사유재산권 침해, 법인 이사회의 무력화, 건학이념 및 신앙교육 말살, 교육현장의 불온사상 도구화,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대립 등 상상을 초월한 불행이 한국 교육계에 닥칠 것이다.” 진짜 안 좋을 것 같은 건 다 들어있다. 큰일이다. 이 사람들 말마따나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만한’ 결과다. 이게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필코 이 법의 시행을 막아야” 한단다. 그동안 이라크 파병문제나 쌀 개방으로 인한 농민들의 시위, 그리고 시위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농민들이 죽어나가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불행한 사태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한국의 기득권 교단이나 사학재단들이 이렇게 분연히 떨쳐 일어서는걸 보면 뭔가 큰일은 큰일인가 보다.   사진출처 - 노컷뉴스 나도 학부모 1년차로서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니 마구 걱정된다. 나도 촛불집회에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그네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연이 동참해야 하는데, 날이 추워서 귀챠니즘이 발동하니까 좀 미안한 생각은 든다. 그래도 그토록 중차대한 일이라니까 그냥 모른 척 하기엔 좀 꺼름직하다. 머리 쓰는 거 진짜 싫어하지만 좀 따져보자.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사학법 개정안은 사학재단 이사진에 교사,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이 추천하는 이사를 선임하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 핵심이라고 한다. 사립학교 이사진 7명중 이 개방형이사를 4분의 1이상 채울 수 있고, 학교운영위 등에서 2배수의 개방형이사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최종 선임하는 식이다. 절반도 아니고 기껏해야 반의 반인데 이것으로 사학의 자율권이 훼손되고 전교조의 손아귀에 학교가 넘어가는 걸까? 이 때문에 건학이념이 훼손되고 학교에 갈등이 심해진다고? 도대체 어떤 산수이길래 이런 계산이 나오는 걸까. 남의 손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이제 내줘야 할 반의 반이 1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걸까. 안 그래도 잘 안돌아가는 내 머리에 자꾸 과부하가 걸린다. 근데 난데없이 사유재산권의 침해는 또 무슨 소리인가. 학교가 자기 재산이란 말인가. 그럼 그동안 학교를 가지고 장사해왔다는 말밖에 안되는데... 그럼 그동안 건학이념이니 하는 건 장사를 위한 선전문구에 불과했다는 얘긴데...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우리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덕망 높으신 분들이 학교를 가지고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다니, 이런 정말 불온한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된다. 걱정이다. 내년부터 신입생도 안받고 정부 지원도 거부한다는데 이 사태를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진짜 걱정이다. 날은 추워지는데 그 자체로 준엄한 국가기관인 의원들과 이 나라의 교육을 자기 손아귀에만 짊어진 어르신들이 밖으로만 나다니니 참 안쓰럽다. 그래도 어쩌랴.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는데...!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473 | 추천: 0
  30년 전의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되고 박정희 자신에 의해 지시된 사법 살인이라는 사실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 의해 공식 발표되었다. 이 발표를 통해 30년의 금기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난 셈이지만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비롯한 정당한 조치가 취해지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박정희 자신의 딸이 야당의 당수로 있고 당시의 권력자들 상당수가 아직 살아있을 뿐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못 잊어 하는 세력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과거사를 들추는 일체의 시도에 친북좌파 따위의 딱지를 붙이고 싶어 하는 천박한 논리도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과거사위의 발표 내용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을 그저 공식 확인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이 정도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새삼 치떨리고 우울하게 실감될 뿐이다. 더욱 우울한 것은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인혁당 사건의 진실 따위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당장 눈앞의 거리에서 농민이 맞아 죽어 가도 아무런 관심도 없는 판에 30년 전의 죽음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언제 그 성과가 나올지조차 알 수 없는 유전 공학이 가져다준다는 ‘국익’에만 눈이 멀어 그 과정의 진실성에 대한 질문조차도 ‘매국’이라며 몰매를 던지는 세상에서 30년전의 진실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인혁당 사건 발표조차 MBC살리기이며 노빠들의 불끄기 전략이란 식의 주장조차 나오는 모양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나는 그런 맹목의 논리에서 30년전 박정희가 뿌려 놓은 차가운 권력의 의지와 물신의 논리를 읽게 된다. 진실과 정의보다는 권력과 눈앞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고 이를 위해 폭력조차 정당화하는 그런 논리 말이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소수 권력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권력 의지에 의해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일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정당성과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권력일수록 바로 그 권력의 보전을 위해 늘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거기에는 언제나 일말의 인간적 회의조차 찾기 어려운 물신화된 폭력, 가공하리만큼 차가운 폭력이 개입한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조차도 아주 쉽게 내던져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아무렇지 않게 눈감아 버리는 물신화된 권력의 논리를 깔고 있다.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를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 가공할 폭력의 시대가 지금 여기로부터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전율한다. 아니 그 시절을 관통하던 그 비인간의 증오와 물신화된 권력의 논리를 여전히 미신처럼 떠받들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아니 그런 증오와 권력의 논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퇴행이라고 못 박는다. 과거는 그만 덮어 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의 명백한 잘못이 가려지지 않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야만이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되지 않을 때 도대체 미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결국 ‘죽은 자만 억울한 것’이고 그래서 ‘지금 내 손의 권력과 내 앞의 밥그릇을 챙기는 일이 최선’이라는 논리만이 남게 될 때 미래는 훨씬 더 끔찍한 악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975년 4월9일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게 대법원이 사형 확정판결을 내리자 가족들이 법원 앞길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과거의 여러 사건들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피해자들을 복권시키며 가해자들에게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 하는 것은 따라서 바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것은 역사가 결국 정당한 자의 몫이란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며 그렇기에 한번 잡은 권력과 기득권 위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결코 거기 그대로 있지만은 못할 것임을 알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란 없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1 | hrights | 조회: 40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