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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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임아연(주간함양 편집국 부국장),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2년 전, 셋째인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위의 두 아이들 때와는 달리(5년 전부터 맞벌이 가정이 된 고로) 아내보다 내가 좀더 아이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었다. 해서 아이가 1학년 때는 1주일에 한 번씩 청소봉사와 학교도서관 봉사를 했다. 그러다가 올해 2학년이 되자 학교운영위원 선출이 있다고 가정통신문이 왔다. 마침 주위에서 학교운영위원회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들은 바도 있고 해서 신청했고 학부모운영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운영위원의 권한과 한계를 잘 몰랐는데 막상 겪어보니 상식선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이나 지적을 하는 정도였다. 운영위원이 되고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중요한 일이 지난 4월에 했던 전년도(2005년) 결산에 대한 심의였다고 기억한다. 수십 쪽에 걸쳐 잔글씨로 빼곡히 적힌 항목과 숫자들은 많이 생소해 보였다. 짧은 시간(운영위원회는 통상 한 달에 한 번, 두 시간여 동안 열렸다)에 꼼꼼히 살피기도 어려웠고 일일이 영수증이나 거래명세서를 요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내가 전년도 예산안 심의에 참여하지 않은 탓도 있겠다. 교장선생님의 발언 중에 ‘아이들은 아주 많은데 예산이 모자라서 힘들다’라고 여러 번 강조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교장선생님은 급식비를 안 내는 아이들 때문에 연간 400만 원 이상 적자가 발생한다며 급식비를 안내는 아이들에 대한 대처 방법을 공개리에 묻기도 했다. 그런 중에 이해가 가지 않는 지출 항목 및 금액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지급할 목적으로 구입한 피복비(단체 트레이닝복) 지출과 교장실의 회의용 테이블 구입 및 골프연습장 조성비 등이었다. 우선 5억 정도인 예산에서 무려 1100만원이나 들여서, 안정된 급여생활을 하고 있을 학교선생님들의 단체복을 산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 물었다. 학교장의 ‘선생님들 숫자가 많아요’라는 납득 못할 답변을 듣는 중에 한 교사운영위원이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이 옷이 올해 예산에서 구입한 옷’이라며 별일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한다. 그때 내가 알기로 그 선생님은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다른 운영위원은 별로 발언도 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혼자 계속 추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낼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내년도 예산 심의를 벼르며 지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운영위원회의 모습 사진출처 - 한겨레 그러다가 지난 11월 운영위원회에서 다른 학부모운영위원이 한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학교의 도서관 도서구입비로 700만 원이 책정되어 있는데 그중 도서구입비로는 2십만 원 남짓만 쓰이고 대부분의 돈이 3, 4, 5, 6학년의 한자교재 구입에 지출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학교장은 한자교재도 ‘책’이라며 예산 운용상 별문제가 없다는 투로 일관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평소에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운운하던 학교장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다니... 말은 예산 부족 때문이라며 둘러대지만 연초에 이처럼 집행한 것은 애당초 도서관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이 갈 수 있는 일이 학습준비물센터와 도서관 운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을 위한 예산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교육현장이 과연 제대로 된 교육현장인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관계 교육청에 질의해 보아도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되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모호한 답변만 나올 뿐이었다. 아무리 예산을 잘 짜고 그 예산안에 대해 눈을 부릅뜨고 심의를 한다 해도 이처럼 교장 임의로 예산 전용이 가능하다면 도대체 학교운영위원회는 무엇 하러 두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행과 타성에 젖어 문제의식이 둔해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생각하지 아니하는 한, 전교조라는 울타리도 전혀 학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한 해였다. ‘학운위’는 심의만 할 뿐 매사의 결정권은 교장에게 있다며 수시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권위와 권력을 으스대는 교장의 모습과 실제로 새퉁빠지게 무보수 봉사만 할 뿐 학교 운영에 있어서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수십 년 전 학창시절 때 느꼈던 학교장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새삼 느끼게 된 한 해였다. 이처럼 막강한 학교장의 권력 때문에 어떠한 학교장이 오느냐에 따라 교육환경이 천양지차가 되는 학교의 현실을 보며 그저 하늘(교육청의 인사)만 바라보아야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불쌍하기가 그지없다. 이런 교장의 권력행사를 보며 또한 전교조의 방침에 심한 회의가 들었다. 지난번 이른바 ‘교원평가’와 관련한 전교조의 ‘무조건적인 반대’ 투쟁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현재의 교원평가(승진과 관련한 고과 평가)는 교장과 교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연히 학교의 모든 권력이 교장과 교감에게 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니겠는가. 이런 구조를 깨지 않고 소위 교육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런 승진제도를 개혁하지 않고 ‘참교육의 실현’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교원평가’와 이른바 ‘교장선출보직제’ 같은 것을 맞바꿀 순 없었을까? ‘교원평가’를 받아들이는 대신 획기적인 평가시스템을 내놓을 순 없었을까? 상당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어떤 교사가 있었다. 그는 전교조에 소속되진 않았었지만 그가 쓴 [어린 종달새의 죽음]을 보면 그 어떤 전교조 선생님보다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교장이든 교감이든 저항했던 훌륭한 교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교단에 머무는 것은 계속 자신과 아이들을 기만하며 죄만 저지르는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더니 어느 날 홀연히 사표를 던졌다. 그가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교단에는 100년이 흐르도록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당연히 깨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 시대 이래 내려오는 군국주의 시대의 교장 권력이다. 그것은 전교조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 한다. 그들도 결국 교감, 교장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권력을 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란다. 제발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교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하면 교육환경의 개선에 일조할 수 있을까 하는 데만 골몰한다면 이 땅의 교육환경은 획기적으로 좋아지지 않을까? 학교장 단체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들은 모여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 걸까? 교장, 교감을 목표로 삼지 않고 오로지 ‘참교육의 실천’만을 위해 묵묵히 교단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며 평생을 보내신 선생님이 교장, 교감을 역임하지 못했어도 그 어떤 선생님보다 존경받으며 퇴임하는 아름답고 훌륭한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무너진 교권이 진정으로 되살아나고 학교가 살아나는 꿈을 꾼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소망일까?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62 | 추천: 0
사람들은 마지막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관대하다. 극단적인 예로 죽음을 앞둔 사형수에게도 살아서의 모든 죄에 대해 사하여 주는 미덕(?)까지도 베풀고 말이다. 그래서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을 아쉬워하며 연말에는 여러 가지 이름의 성금들이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모아지고 있다. 본인이 속한 학교에서도 어김없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성금 모으기 행사가 있었다. 전교어린이회에서 결정된 3일 동안의 불우이웃돕기성금 행사가 담임교사들의 교육적 지도와 어우러져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과정상에 발생하였다. 문제가 진행된 경위는 이렇다. 성금을 모으고 교장, 교감, 교무부장, 담당부장, 담당계원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모여 수혜자 선정을 하였는데, 교장선생님께서 기사(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교를 관리하는 행정실 소속의 공무원) 두 분이 어려우니 수혜자에 포함시켰으면 좋겠다. 그러나 일부만 포함시키는 것이 좀 그러하니 네 분 모두와 교무보조(교무실에 비치된 행정보조역으로 보통 아르바이트생들이 많으며 교사들의 업무지원이 목적이나 현실적으로는 교감의 비서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음), 우유배달 아주머니(우유를 각 반에 가져다주는 분으로 비정규직) 등을 포함시키자고 제안하였다. 담당부장이 기사 분들을 모두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전교어린이회에서 결정하거나 교직원 회의 시 의견을 모아 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에 교장선생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냥 관례대로 하자고 하며 담당부장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1학년을 담임하고 있는 담당부장은 코흘리개 아이들의 돈을 모아 정규직에 연금까지 있는 분들에게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본인과 의논을 하기위해 찾아왔었다.   강원도 속초시내 유치원 어린이들이 13일 시청 광장에서 열린 불우이웃돕기 공동모금회 모금행사에 참가해 모금함에 성금봉투를 넣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일단 성금수혜자선정 원칙이나 기준여부에 대하여 확인하고 동학년 및 다른 학년 교사들의 의견을 조사하였다. 결과는 특별한 기준이나 원칙이 없다는 것과 수혜자선정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는 교사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교감, 교장선생님께 수혜자원칙을 만들자는 것과 각 학년의 교사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시 선정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모든 일에 대하여 교사들의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것과 교육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들에게 지급된 것이므로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교장선생님은 계원의 일에 월권을 행사하는 사람,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기사 분들을 고려하지 않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매도하며 원천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없도록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등 수장으로서의 처신으로도 적절하지 않은 행동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담임교사들이 추천한 어린이들을 포함한 수혜자들에게 지난 18일 성금이 지급이 되고 말았다. 이에 해당교육청에 학교장에게 적절한 지도가 이루어지도록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하였으나 돌아오는 답변 또한 가관이었다.             ‘불우이웃돕기 수혜자 선정과 관련하여            적정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수혜자 선정 원칙 및 기준을 정하여 수혜자를 선정하고            투명하게 집행하도록 귀교에 지도하였습니다.’   ‘어떻게 지도하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없는 것이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역시 이후 학교의 어떤 변화에 대하여 들은 바도 아는 바도 없었고 의견수렴과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는 본교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전에 근무한 학교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하였고 그 결과 원칙대로 해당 어린이들에게 지급되도록 개선시킬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얘기하고 있는 관례라고 하는 것도 역시 그전부터 아무 문제제기 없이 해오던 방식이다. 정확한 내용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서울시내 학교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모을 때는 교육적... 운운하며 막상 성금을 전해 줄 때는 마치 개인 돈인 양 인심 쓰듯 하는 행태들! 또한 이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저질러버리는 관행에 젖은 관료들과 가재는 게편이라고 그들과 한통속인 상부의 행정기관들 모두 한심하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앞으로도 얼마동안은 학교 행정을 맡아 진행할 것이라는 현실이 한숨 나오게 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작다면 작은 이런 일들이 원칙 없이 행해지고, 당연한 원칙들이 초라한 권력 앞에 기도 펴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현실은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많은 교사들을 좌절시키고 입을 다물게 한다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교육은 교사가 말로 하는 가르침이 아닌 행해지는 실천 그 자체라고 했다. 교사개인의 행동은 개인의 행동만이 아닌 교육으로 승화될 좋은 바탕이 되는 것인데 이런 환경은 가지고 있던 원칙마저 현실과 타협하게 만들어 버린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이런 일들이 이런 지면을 통해 고쳐지기를 희망하는 것은 지나친 꿈인가! 아니면 이렇게라도 몇 마디 끄적여서 위안을 삼을 것인가!!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808 | 추천: 0
2005년 성탄절 즈음에 서울대병원 소아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어린 생명의 보호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만한 어린 생명이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온갖 장치에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이 땅에 일하러 온 부모는 우즈베키스탄인 아버지와 엄마는 러시아인이었습니다. 힘겨운 삶에 낙태를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시기가 지나 출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2개월 이상 먼저 세상에 나오다보니 900g에 36cm도 못 미치는 미숙아로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소한 300g이상의 몸무게가 더 나갈 때 까지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살아야 한답니다. 병원비도 2000만원이 넘어가고 결국 엄마 아빠도 떠나버렸습니다. 아이를 불쌍히 여긴 신생아실 수간호사가 이주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도 돌보고 있는 ‘베들레헴 어린이 집’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투를 벌인 어린 생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기도 합니다.  조막만한 것이 또랑또랑한 큰 눈, 참 귀엽습니다. 수녀님이 자주 방문해서인지 수녀님이 움직이는 곳으로 눈을 옮겨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아기가 뭔가 아는 것 같아요.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이 누군지 아나 봐요!” 의사와 간호사의 말에 수녀님이 안타까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이 죄 없는 어린 생명을 어찌해야 할지……. 삶의 모진 가난이 인정머리 없는 부모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에 지친 그 부부를 어찌 손가락질 할 수 있겠습니까?  진향이와의 첫 만남 우리 주변에는 사고로 인해, 또는 부모의 무능력으로 인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린 생명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딱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이웃과 사회가 그 부모의 역할을 해 준다면 죄 없는 소중한 생명이 밝게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의 손길에 힘입어 그 어린 생명은 퇴원을 했고, 지금 ‘베들레헴 어린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진향(眞香)이라는 한국 이름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2006년 11월 26일에 돌잔치를 했습니다. 이제 진향이는 7.9kg으로 1년 동안 7kg이 늘었습니다. 돌상을 차려서 돌잡이를 했더니 붓을 잡고 놓지 않더니 나중에는 돈을 잡았습니다. 앞으로 좋은 학자가 되어 세상에 큰 공헌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11월13일 서울대병원 소아과에서 베일리 발달검사를 했는데, 인지능력과 운동능력은 뛰어난 편이고 언어와 사회정서, 적응행동에서 모두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진향이를 돌보아 주신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직 갑상선약을 복용해야 하고 난청문제도 안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밝고 예쁘게 웃는 공주님입니다. 아직 걷지는 못하지만 벽을 잡고 일어서서 한 발짝을 떼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힘찬 첫걸음입니다.   세라피나 수녀님과 함께 2007년도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앞 다투어 내놓는 전망 덕분에 국민들은 너나없이 심리적 어려움을 지니고 한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돌봐 줄 손길 하나 없는 주변의 어린 생명들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말로만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어린 생명들에게도 메리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움츠린 마음에 우리 본연의 선한 마음의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야 하겠습니다. 돌아보면 늘 다사다난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뿌듯한 일 한 두 가지는 있습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이 참 대견하게 여겨지는 일이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내 행위를 생각하면 굳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착한 일을 하면 행복해지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 행복을 느끼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36 | 추천: 0
“멕시코에서는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일 하는지 대충 알 수 있어.”  멕시코에서 유학 중이던 누나가 한국에 잠깐 왔을 때 한 말이다.  유럽계 백인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라면 대기업 임원이나 은행장 등 경제계 유력인사일 가능성이 높고, 백인 혈통에 약간의 원주민 혈통이 섞여 있다면 공무원이나 회사의 중간 간부급 정도, 원주민과 비슷한 피부색이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거나 농부라는 것이다. 유학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자연스레 깨닫게 된 사실인데 그 후 실제 만나는 사람에 대입해보면 틀린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다만 한국의 모 자동차회사 계약체결과 관련해 통역을 할 때 원주민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벤츠를 타고 나타나서 순간 당황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피아였다고 한다. 누나에게 얘기를 들을 때는 그럴 법한 얘기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는데, 그 후 문화인류학 관련 서적에서 누나가 해 준 이야기가 학술논문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피부색을 보면 신분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단지 멕시코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반에 적용되는 이론이었던 것이다. 스페인계통 백인지배층이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장악하면서 경제력이 이들 계층에 집중되었고, 비슷한 계층끼리 혼인이 이루어지면서 피부색과 경제적 지위가 강한 상관관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직 라틴아메리카 정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 두 가지 점을 고려하면 라틴아메리카의 사례로부터 우리가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먼저 외모가 사회적 성공과 관련성이 크다는 인식이 고착되고 있는 점이다. 이는 곧 외모에 따라 사람을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이야기다. 특히 매스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이 선호하는 외모라는 것이 획일적으로 정해지고, 그러한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이다. 링컨 대통령이 “40대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에서 이야기하는 외모가 아닌 경제적 능력으로 관리되는 외모가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과거 의술에서 별다른 비중을 갖고 있지 않던 피부과는 의과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여 각축을 벌이고 있는 반면,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흉부외과나 신경외과는 해마다 미달사태가 반복되어 교수님들이 전공의 지원자들을 룸살롱에서 ‘접대’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베트남 결혼 광고는 동네 어귀까지 치고 들어왔다. 광고에서 베트남 여성은 인격체이기보다는 교환가능한 상품으로 취급된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또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가정 및 그 자녀들에 대한 차별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농촌 남성 10명 가운데 4명이 외국여성과 결혼을 하였고, 2005년에 출생한 아이들 중 약 1%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다문화가정 자녀들 및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상당수는 어머니가 한국어에 서툴어 필수적인 예방접종을 제때에 하지 못하고 있고, 피부색이나 생김새 차이 때문에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존중 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순혈주의와 단일민족주의가 장기간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로 교육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초겨울 오랜만에 떠나 본 드라이브에서 “***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노골적인 현수막이 오골계, 토종 닭 전문식당 현수막과 나란히 걸려있는 풍경을 보니, ‘국민’윤리에 앞서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인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 원 위원은 법무법인 지평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714 | 추천: 0
한달 전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3학년 남학생이 보건실에서 쉬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보건교사를 경찰에 신고한 사실이 뉴스에 알려졌다. 학생은 그날 6교시에 보건실로 찾아와 “머리가 아파 침대에 누워 있겠다”고 말했고 이에 보건교사는 “수업에 불참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담임교사와 학과 담당교사의 사인을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이에 학생은 욕설과 함께 출입문을 주먹으로 치고 112로 전화를 걸어 “몸이 아파서 쉬고 싶은데 보건교사가 내말을 안 믿어준다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 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서구식 평등개념과 자유개념으로 자신의 표현에 적극적인 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에서 스스로 지키는 규율과 의무는 무시한 채, 뜻대로 하고 싶은 일이 좌절되면 매사에 비협조적이고, 어른(교사)에게 대들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매번 남 탓으로 돌리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한 학교의 수업 모습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수업시간에 옆의 친구와 너무 심하게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쳐서 교실 뒤에서 벌을 서게 하면 오히려 뒤에서 왔다 갔다 장난을 치곤하여 수업이 중지되기도 하고, 교실 밖 복도에서 벌을 주면 이들은 열려있는 교실 창문으로 교실안의 학생과 말을 주고받고, 눈장난을 하는 등 오히려 처벌을 받는 동안 다른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수업하던 교사가 훈계를 하면 “장난 안했는데요?” 하며 눈을 흘기며 쳐다보곤 한다. 심지어 수업 중 제자리에 가만 앉아 있지 못하고 복도를 배회하는 아이들조차 있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수업을 진행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 선생님이 꾸중을 하면 눈을 똑바로 뜨고 덤비기도 하고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 버리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친구들 간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화를 잘 내고 이해하거나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에 복종의 시대를 살아왔던 교사들은 당황하고 고통스럽다. 억압과 통제가 심했던 시대에서 복종이 미덕임을 강요받았던 교사 세대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학생 세대 간의 차이도 심각하고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학생들과 마찰은 당연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잘못한 일을 하다가 들키면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것이 정상인데 말이다. 선생님에게 눈을 부릅뜨고 교사에게 반항심을 숨기지 않는 아이들! 나에게 손해만 되지 않는다면, 아니 내게 이익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학생들이 잘못되는 것은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 가정교육의 실종, 성적지상주의와 사회적 존재로 키우지 못하는 학교교육,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위주의 교육, 그리고 상업주의 속의 사화문화적인 환경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에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뚜렷하게 반항적이고, 불복종적이고, 도발적인 행동과 함께 규칙을 어기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반사회적 행동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반항장애 학생이 10%전후로 나타난다고 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이러한 질병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유병률이 차이가 심하다고 한다.     지난 4월 서울시 소아청소년 정신보건센터에서 서울시내 초-중-고교 19개 학교의 학부모, 학생 2천700여 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초-중-고생의 3분의 1 이상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다. 우리는 성적이 아니라 먼저 우리의 학생들에게 인성을 가르치고 사람다움을 가르쳐야 하겠다. 그리고 교육은 비단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은 가정에서 맡아야 한다. 그다음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학교란 더불어 살 때 즐겁고 행복한 곳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47 | 추천: 0
근래에 여러 단체가 소속회원들 중 대의원을 파견하여 이루어지는 한 협의회의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내가 속한 단체의 대의원 자격으로 그 회의에 참석한 것이었다. 안건 중에 그 단체의 개혁안에 대한 심의가 있었다. 지난 회기 총회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그 단체의 개혁방안에 대해 연구할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그 위원회가 회의와 공청회 등 27차례의 모임 끝에 마련한 ‘헌장개정안’이었다. 당연히 특별위원회에는 각 단체의 대표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그 개혁안이란 것은 각 단체의 처지를 반영하기 위해 첨예한 논의를 거친 중재안이었다. 그런데, 무난하게 진행되던 회의가 그 안건에 대한 심의방법 문제로 마감예정시한을 넘겨 무척 늦은 시간까지 연장되었다. 짧지 않은 준비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견을 제시할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문구 몇 개를 들어 두 개 단체의 대의원 전원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다분히 준비과정에서 자기 단체의 안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세를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여하튼 논의가 길어지다 보니 새로운 중재안이 나오고, 그 안의 적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의원도 있었으며, 원안과 중재안의 처리방법에까지 이견이 속출하면서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다행히 대의원 대부분 협의정신에 충실하자는 데 합의함에 따라 적절히 양보하며 새로운 안을 만들어 통과시켰지만, 끝까지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는 대의원이 있어 문제의 불씨를 남겨둔 채 회의가 종료되었다.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건 폭력문화 돌이켜 보니 오랜 시간 회의를 하고도 얻은 것 없이 머리만 아픈 적이 많다. 결론이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각자 자기주장만 반복하며 돌고 도는 회의 말이다. 물론 신중한 결론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사전에 안건과 관련하여 고민하지도 않았고 가능한 해결방법을 모색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저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데 의의를 두거나 준비 없이 회의만 하면 무엇이든 얻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회의는 십중팔구 참석자들을 지치게 하고 결론을 다음으로 미루거나 무리하게 결론을 도출하기 십상이다. 우리의 독특한 문화라 치부할 일이 아니지 싶다.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반복하는 것, 회의 전단계로서의 협의 과정과 결과를 무시하는 것, 회의 중 숫자로 세를 과시하려 드는 것, 규정이나 관행을 무시한 회의진행 방법 등등, 모두 우리 사회의 심각한 폭력문화와 이기주의의 한 단면일 뿐이라면 지나친 투정일까?   생산적인 회의의 중요성 “건강한 회의문화는 강한 기업을 만드는 시작점이다.” 기업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회의시간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시작과 마감 시간을 정해 놓고, 활발한 의견개진을 위해 상석(上席)을 지정해두지 않거나, 모든 참석자는 최소한 1회 이상의 발언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기도 하며, 엄숙한 분위기여야만 한다는 통념을 깨기 위해 회의실의 인테리어를 밝은 분위기로 바꾸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과중한 회의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나 시간 낭비를 줄이고, 생산적인 회의가 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단지 형식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회의의 질적인 수준을 높였는지 그 결과를 알 길은 없지만 ‘회의비용 산출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니 기업에게도 효율적인 회의가 꽤나 중요한 일이긴 한 듯하다.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게 회의방식까지 배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비영리 시민단체들의 회의도 한층 업그레이드되고 세련되어져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두 가지만 지적하려 한다.   직장 내 회의문화가 바뀌고 있다. 건설회사인 신영은 주간 회의 때마다 차장급 이상은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해 앉는다.   (위쪽)카페처럼 꾸민 회의실에서 직원들이 간식을 먹으며 토론하는 코카콜라.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첫째, 시간이다. 발전적인 회의가 회의 소요시간과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회의 참가자와 회의 진행자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짧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자료를 미리 준비하여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면 회의 시간이 필요 이상 길어질 이유가 없다. 물론 중요한 말을 여러 번 반복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지나친 반복을 일삼는 사람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둘째, 토론문화이다. 모든 의견에 마음과 귀를 열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가능할 때만 회의가 회의다워질 것이다. 성공적인 회의문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다.   회의를 업그레이드 하자 회의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 중요한 시간에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서로를 소모시키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이타주의야 말로 올바른 회의를 만드는 기초이자 인권의 출발점이 아닐까?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49 | 추천: 0
자존심 없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인생은 자존심으로 산다. 그래도 곱씹어 보면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은 생존의 경쟁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이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자존심은 무너지기 일쑤다. 알량한 자존심은 버려야 산단다. 자존심 타령은 상전의 눈치 보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본주의 체제 부적응자의 사치스런 헛소리로 전락하였다. 약자에게는 아부하고 타협하는 처신술만이 삶을 그르치지 않는 능사요, 살아가는 지혜가 된다. 약자는 강자의 횡포에도 맞서기 어렵고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조아리기를 강요당한다. 대중의 혼을 쏙 빼간다. 주변에서 알량한 자존심 내세우는 이 치고 제대로 부유하게 잘 사는 모습을 아직까지 제대로 본 바 없다. 자존심 있고 성실하게 일 잘하는 그런 이들 중에 부자는 없다. 부자가 되려면 자존심 꾹꾹 눌러 뱃속 밑에 집어넣거나 자존심 없는 인생을 찬양하고 즐겨야 한다. 조금은 엉겨 붙어야 돈을 벌 수 있다. 엉기지 않고 돈 벌 수 있는가. 절대로 없다. 정경유착, 관언유착 등 무수한 유착 없이 돈 번 사람 못 봤다. 변호사가 의뢰인과 만나 장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건 걸고 수임하잔다. 로비 해달란다. 눌러둔 자존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장난치나. 앞으로 변호사 욕하지 말라고 한소리하고 온갖 푸념 떤다. 그런 이에게 하는 법조비리의 수임 현실에 대한 푸념은 길게 돌고 돌아 그러니 강자 탓하며 강자에 엉겨 값없이 살지 말라는 거로 맺는다. 결국 꾸짖고 내보낸 꼴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그냥 의뢰인의 기대를 좇아 적당히 유연성을 발휘하며 같이 엉겼으면 돈 좀 버는데. 사건 하나 없이 수개월 주구장창 허송세월하며 마누라 푸념 듣고 남몰래 스트레스 받느니 좀 하면 어때서. 모든 에너지를 돈 버는데 집중하자 맹세해도 삼일천하.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돈 벌자 주문을 외워야 제 버릇 고칠까 웬만해서 어려울 것 같다. 참으로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이 부럽다. 강자의, 강자를 위한, 강자에 의한 체면을 중시하는 그런 자존심 말고(그런 알량한 자존심이야 버려야 사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 말이다. 이건 지켜야 사는 것이다. 걸고 지켜야 한다. 뭇 사람들은 그런다. 자존심을 지키는 인생을 존경하나 그 자신은 그렇게 따라 살기 어렵단다. 그런 사람 존경하면 따라 살게 된다. 다만 돈 못 번다. 지배적이고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강자 앞에서 머리 숙여 굴종을 강요당하는 피말리는 긴장된 싸움의 현장에서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 일로 매진해야 우리가 산다.  변호사는 직업적 자존심으로 살아야 한다. 형사 피의자를 위한 변호권은 변호사직을 걸고 지켜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원칙에서 추호도 동요하거나 물러서서는 안 된다. 정신력이다. 겁을 집어 먹는 순간 끝이다. 한 번 물러서면 바보 된다. 강자는 가지고 논다. 밀리면 변명하기 십상이다. 약자를 위해 강자 앞에서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고 약자에게 실리가 생길 것이라 변명치 말자. 겁을 집어 먹은 약자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용기를 불어넣고 강자 앞에 결코 쓰러지지 않는 역사와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을 찬양해야 한다. 약자를 위한 성실한 자세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서로 마음과 몸이 엉기어 난관을 뚫고 포기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낙관과 긍정의 힘을 체험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주체로 우뚝 서 나가야 한다. "참으로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이 부럽다. 강자의, 강자를 위한, 강자에 의한 체면을 중시하는 그런 자존심 말고,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 말이다."    그런 현장에서 항상 뇌리를 스친다. 눈물 많고 억척스런 어머니의 푸념어린 말씀들, 어릴 적 귀 닳도록 들었던 식상한 말씀. ‘죽으라는 법은 없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 땅의 민중들이 험한 세상에서 두려움과 초조함을 물리치고 마음을 뭉치고 난관을 극복한 철학이다. 한줄기 빛과 소금과 같다. 마누라의 푸념이 무섭고 주눅 든다. 그 사랑에 일편단심으로 바쳤고 바치고 있건만….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돈 벌라, 일찍 들어와라, 애들과 자주 놀라, 몸 챙겨라” 등등. 허나 자존심으로 살고자 하는 내게 마누라의 그런 얘기는 가당찮은 푸념으로만 들린다. 그렇더라도 마누라는 항상 나를 믿어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해 주는 또 다른 어머니인데, 사랑 앞에 알량한 자존심 타령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 그래도 필경 인생은 자존심으로 산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825 | 추천: 0
경찰청에서 12일과 25일로 예정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를 불허했다는데, 그 이유가 교통 혼잡 때문? 그 동안 경찰청은 법적 근거가 없어서 교통 혼잡을 야기한 집회와 시위를 방치했나? 뜬금없이 교통 혼잡을 내세우며 도심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이유는 뭘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2조는 당해 도로와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는 집회와 시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던데, 경찰청은 이걸 몰랐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법을 무시했던 걸까? 그렇다면, 경찰들은 지금까지 직무유기를 한 건가? 혹시 지금까지 집회와 시위는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없었나? 아니면 집회, 시위 신고자들이 허위로 신고하고 집회, 시위를 개최했기 때문에 경찰이 몰랐던 걸까? 그건 그렇다 치고, 교통 혼잡이 없는 집회, 시위하고 교통 혼잡이 발생하는 집회, 시위는 어떻게 구별하나? 어느 정도면 금지되는 교통 혼잡이고, 어느 정도면 허용되는 교통 혼잡일까? 교통 혼잡이 있을지 없을지는 누가 판단하나? 발생할 교통 혼잡이 집회, 시위를 허용할 정도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하나? 교통 혼잡이 없을 집회인데 잘못 판단해서 불허했다면 어떻게 하나? 불허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국가가 배상해주기나 하나? 문화행사는 괜찮을까? 집회, 시위와 문화행사는 어떻게 구별하나? 문화행사가 교통 혼잡을 야기하면 어떻게 하나?     수구언론이 연일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고, 여기에 경찰청이 도심집회 불허로 화답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도심 집회 막으면 행복해지니? 일부 언론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들어 반색하던데, 교통 소통이 잘되면 행복해지나? 교통 소통이 잘 되서 행복해지는 사람은 어디에 사는 사람일까? 집회와 시위를 하지 않아 교통 소통이 잘 되는 지방 도시의 사람들은 지금껏 행복할까? 왜 지방에 사는 분들은 서울 도심에서 승용차 타고 다니는 사람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서울로 올라와서,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원정 집회와 원정 시위를 하는 걸까? 지방에서 집회하고 시위하면 안 될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서울 도심에서 집회, 시위를 하지 못해 자신의 요구를 알리지 못한 사람들의 행복은 누가 책임지나? 그 사람들의 문제는 행복추구권보다 다급한 생존권 문제라고 하던데 경찰청은 알고 있나? 혹시 그 사람들 생존권에 문제가 생기면 경찰청이 책임지나? 아니면 서울 도심에서 승용차 타고 다니다 교통 불편으로 호소할 사람들이 책임지나? 스스로 책임 못 질 것 같으면 다른 부처, 다른 사람이 책임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행복추구는 고사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집회와 시위하는 사람보다 서울 도심을 대중교통도 아닌 승용차로 통행하려는 사람들의 행복추구권이 우선하는 걸까? 이런 목소리라도 듣지 않는다면, 정부와 언론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때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경청한 적이 있었나? 헌법에 보니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고,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경찰청에서 불허한다는 것은 집회, 시위를 허가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는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제한’과 경찰청의 ‘불허’는 어떤 관계가 있나? 경찰청이 ‘불허’한다는 한 것은 헌법을 위반하겠다는 의지 표명인가? 헌법에서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 놓았던데, 왜 집회, 결사는 교통 혼잡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았을까? 혹시 경찰청은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나?     '‘집회·시위의 자유’와 ‘도심 교통난 유발’ 사이에서 논란을 빚은 민주노총 집회가 지난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으나 일부에서 우려했던 교통 혼잡 없이 무난히 진행됐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요즘 집회, 시위도 군사독재시절처럼 아예 도로를 전부 점거하면서 진행하던가? 주말에 보면 집회, 시위대는 많아야 두개, 적으면 한개 차로로만 행진하던데 딴 나라 사람들이던가? 집회 현장을 시민들과 아예 차단하는 전투경찰 버스들은 한개 차로를 아예 점령한 채로 기름 낭비하며 공회전 시키고 있던데, 이 버스들이나 먼저 좀 치워줄 수는 없나? 이 버스들이 일으키는 대기 오염과 교통 혼잡이 경찰 눈에는 보이지 않나?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 경찰청은 알고나 있나? 만일 군부독재시절 지금보다 더 폭력적이고, 교통 혼잡 정도가 아니라 교통을 아예 마비시키는 정도의 집회와 시위가 없었다면, 지금 정도의 민주주의가 과연 가당키나 했겠나? 도대체 경찰청은 집회와 시위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나? 이나마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나? 서울 도심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알고나 금지하겠다는 건가? 서울 도심이 왜 항상 집회와 시위의 장소가 되는지 알고나 금지하겠다는 건가?     도로를 점거한 전경버스부터 치우라 솔직하게 말해서, 경찰청이 금지하겠다는 집회와 시위가 지금까지 정부와 기득권층에 불편한 요구를 해오던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 아닌가? 불편하면 금지한다, 금지하고 안 듣겠다? 정말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하는 거 아닌가? 차라리 헌법을 개정해서 집회와 시위를 아예 금지하는 게 낫지 않겠나? 그나저나 지금까지 서울 도심에서 집회하고 시위하던 분들은 이제 어디서 집회하고 시위하나? 얼마 전 보니 통행료 문제로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시위하려던 분들이 있던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집회하고 고속도로 위에서 행진하라는 건가? 쌀 개방을 반대하면서 한강 다리 위에서 시위하려던 분들도 있던데 이제부터는 한강 다리 양쪽에서 집회하고 다리 위에서 고공 시위하라는 건가? 아무튼 경찰청이 말한 대로 교통 혼잡을 야기하는 도심 집회, 시위를 불허하면 과연 이제부터 서울 도심에서는 항상 교통 소통이 원활해지는 걸까? 그래도 계속 교통이 막히면 기대했던 행복추구권 침해로 경찰청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나 해볼까?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94 | 추천: 0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를 읽으면서 내 기억의 조각들을 훑고 지나가는 문장마다 쏟아냈던 저의 감동이나 윤금이씨 추모제때 들려줬던 “보산리 그 겨울”에 손수건을 적셨다고 하던 어느 한 여성 운동가의 눈물은 한 시대를 아파한다는 동일한 경험 속에서 만난... ..."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를 읽으며 김중미의 최근작 “거대한 뿌리”를 읽습니다. 몇 페이지 못가 등장하는 낯익은 이름들. “보산리” “동두천 중앙시장” 지금은 사라진 “어수동역”. 소설속 인물들의 표정을 따라 한뜸한뜸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나도 30여년의 긴 시간을 되돌려 동두천의 한 거리에 와있는 듯 합니다. 미국으로 입양가는게 소원이었던 초등학생 임경숙이나, 보산리 기지촌의 포주집 딸 해자, 해자네 집에서 제일 나이가 많지만 “꿈이 양갈보는 아니었다”고 넋두리하는 미자언니, 동광극장 옆 산파집 에서 제이콥을 낳은 주인공의 육촌언니 윤희나, 튀기 만들기 싫어 결혼하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첫사랑 백인혼혈 재민이. 나는 이들을 잘 압니다. 어릴 적 나의 어머니는 동두천 광암리에서 “왕뱅이 고개”를 넘어 포천으로 시집 오실 때의 기억을 자장가처럼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만석까지는 안 되더라도 제법 넉넉했던 외가댁의 살림 얘기며 미군 2사단 사격장 안쪽의 넓은 밭에서 자란 여린 목화를 씹는 달콤함이며, 외삼촌이 그 땅을 빼앗기고 미군부대 세탁소에서 일을 하게 된 얘기를 들으면서 잠이든 날이 한 서너 달쯤은 될 듯싶습니다. 외숙모는 외삼촌이 미군부대 내 세탁소 일을 하면서 가져온 옷들을 수선하는 세탁소를 운영하셨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속칭 “양색시”들을 대상으로 하숙을 치셨습니다. 나는 동갑내기 사촌과 죽이 잘 맞아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주로 그곳에서 방학을 보냈는데 얼추 학년이 높아지면서는 외갓집 옆에 바짝 붙어있는 외국인 전용클럽 “보난자”의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거나 집에 세든 양색시 누나들의 밤을 궁금해 하기도 했을 겁니다.       92년 가을, 윤금이, 그리고 보산리 누이들 그때도 가을이었습니다. 궁핍한 사람들이 겨울나기를 걱정하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던 92년 10월의 하순, 갑자기 날아온 먼 친척의 부고장처럼 일간지 구석에 가지런히 적혀진 이름 윤금이, 그녀의 상처 깊은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날 말입니다. 1966년생 전라도 정읍이 고향인 그녀가 왜 고향과 그토록 멀리 떨어진 동두천 보산동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는지를 물으며 많이 아팠었습니다. 윤금이는 케네스 마클이라는 그녀를 죽인 미군병사의 술 취한 조롱 혹은, 그녀의 몸을 찔러댄 우산대나 콜라병보다 더 많은 아픔을 이미 그녀를 학대했던 세상으로부터 받아 삼켰던 것이 확실했습니다.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갓 마치고 취직한 구로공단이나 청계천, 성수동 방직공장, 커피 값도 못되는 일당에 갖은 잔병에 시달리다 때로는 사창가에 몸을 의지하기도 했던 그 시대 우리 누이들의 고단한 행적을 생각하면 윤금이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약 같은 세상의 아픔을 토해내는 그녀들의 신음소리가 사랑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 보산리의 저녁에도, 내가 어릴 적 치기로 훔친 양색시 누이들의 밤에도 있었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해 가을 윤금이의 상처 깊은 죽음은 내 유년기 동두천에 대한 기억과 추운 자취방의 몇날을 거쳐 울림이 작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보산리 그 겨울]                                   좁다란 골목 뒤 계단에 늦은 별빛이 떨어지면                     그 고운 두 눈 입술위에 화장을 드리우고                     누구에게 배워본 적 하나 없는 낯선 이방의 말 읊조리며                     누굴 찾아 집을 나서니 가로등 너머 이방의 땅                     무슨 잘못이 네게 있어 그 슬픔 모두 남겨두고                     무슨 잘못이 네게 있어 그렇게 아프게 떠나갔니                     보산리 그 겨울에 남겨둔 상처가 너무 많아                     그 추운 겨울 지나 봄을 찾아 떠나갔니                     너 떠나간 그 빈 거리에 늦은 별빛이 떨어지면                     지워져도 잊을 수 없는 우리들 슬픈 그림자                     세상 속에 노래가, 예술이 있다 때로 예술가란 존재는 고집은 뱀 같은 동물처럼 다른 곳을 볼 줄 모르고 자신의 작품에는 베짱이처럼 관대하며 자존(自存)을 지키기 위해선 외나무다리의 염소처럼 싸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회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의 존재를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이 품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과 고민의 폭이 남 달리 넓다는 것을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게릴라와도 같은 위험한 상상을 통한 예술가들의 위대한 소통 능력은 한 시대의 환부를 꿰매기도, 해부하기도 하며 막강한 대중적 지지를 토대로 사회를 진보의 단상 위로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진보의 역사위에는 늘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예술가와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술가의 고집이나 자존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 독립된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불화(不和)속에서도 적극적인 치유의 방식을 찾아 나서는 순례자의 고통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예술가의 예지적 능력 또한 스스로 만들어내는 상상력 보다 사회와의 관계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합니다.   삶에 대한 경외와 노래가 만날 때 누군가 “험난한 노래의 길”이란 표현을 했습니다. 이는 사랑이든 이별이든 그 어떤 추상명사이든 개인의 사소한 감정을 말하기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보편적 정서를 끌어내기 위한 고민이 담겨진 표현입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의 사랑은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들춰내고 또 그 고통과 연대하며 결국은 그 고통을 넘어서고자 하는 가장 아름다운 투쟁의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험난한 노래의 길”을 찾는 과정을“삶에 대한 경외”라고 얘기 합니다. “험난한 노래의 길” 속에서 만나는 고통과 희열, 분노와 사랑의 에너지를 오선지속의 선율로, 가슴속 깊은 폐부의 음성으로 토해내는 창작자가 있습니다. “험난한 삶의 길”에서 창작자와 같은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고자, 노래를 찾는 수용자가 있습니다. 이 둘에게 “삶에 대한 경외”라는 말은 함께 적용되며 음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이 둘의 만남 사이에는 눈물이라는 감동의 최고치가 경계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를 읽으면서 내 기억의 조각들을 훑고 지나가는 문장마다 쏟아냈던 저의 감동이나 윤금이씨 추모제때 들려줬던 “보산리 그 겨울”에 손수건을 적셨다고 하던 어느 한 여성 운동가의 눈물은 한 시대를 아파한다는 동일한 경험 속에서 만난 “삶에 대한 경외”의 산물이겠지요. 레지스탕스와 반체제 활동으로 구금과 석방, 그리고 정치적 망명까지 해야 했던 그리스 최고의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나 민중의 한과 슬픔 분노를 노래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망명까지 해야 했던 아르헨티나 민중의 목소리 메르세데스 소사. 혹은 미국의 지원 아래 이뤄진 군부쿠데타 시기에 오직 노래했다는 이유로 손목이 부러진 채 숨진 칠레의 혁명가수 빅토르 하라의 음악이 그 당시에는 물론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희망이 되는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감동과 울림이 있는 노래 그러나 사람들이 진정으로 노래를 통해 감동받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출강중인 성공회 대학교의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라는 과목에서 “노래듣고 울어보기”란 과제를 제출하게 하는데 학생들은 무척 생소해 합니다. 문자나 영상매체에 비교할 때 노래라는 장르가 갖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는 우선 차치합시다. 듣고 떠올릴만한 메시지가 부재한 관계로 노래방에 가야만 노랫말을 확인할 수 있는 요즘의 음악, 그리고 춤, 비트, 가수의 현란한 모습 등 노래 외적인 요소들이 경쟁의 주요 쟁점이 된 가요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노래를 듣고 울어본 경험을 적어내라는 저의 과제는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겐 한때 사랑의 기준이었던 그 사람을 생각하면 설레임이었고 눈물이었던, 비슷한 선율만 흘러도 지금 역시 가슴 두근거리는 “April”(노래 Deep Purple)이 있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간 91년 분신정국의 거리에선 눈물보다 더 진한 분노를 토해냈던 “그날이 오면”(노래 노찾사) 이 있었구요. 요즘은 ‘넌 눈물이 있으니 참 좋겠다 눈물 보일 수 없는 난 어쩌겠니’라는 가사가 있는 ‘가을이 빨간 이유’(노래 김원중)같은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힐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로서는 노래 한 줄이 가지는 해원(解怨)의 힘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와 노래가 단순한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자신을 구성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여 사시는 나눔의 집 에서 부른 “사이판에 가면”, 고 임종국 선생(친일문학론의 저자)의 묘소 앞에서 부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일본 도쿄의 에다가와 조선학교 (도쿄도지사 이시하라의 부당한 불법점유 소송으로 폐교의 위기에 처한 민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부른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 ... 이 노래들은 그 속에 담겨진 “삶에 대한 경외”로서의 눈물에 애써 담담해 지려 눈을 감았던 화자, 그리고 눈을 감고 노래하는 무대를 외면하듯 고개를 숙였던 청자의 숙연함에 녹아  “험난한 노래의 길”에 가장 찬란한 화답으로 다시 태어났던 일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민병일 시.                    만주벌에서 풍찬 노숙하던 조선 청년 이우석                   서로군정서에서 북로군정서까지 병서를 다 옮기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사들인 신식총 백두산 화룡헌 청산리 가져왔지                   삼일 밤낮을 싸워 청사를 빛냈건만 마침내 부대원들 뿔뿔이 흩어져                   로스케 한인부대 찾아갔지만 볼셰비즘에 물든 사람들과 다투다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했지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했지                   눈보라 몰아치고 달님도 잠든 날 밤 시베리아 탈출한 그 사내                   다시 만주벌을 누비는데 조국은 해방됐지 그러나 상처뿐인 몸뚱이로 엿장수가 되었지                  의혈남아 기개와 순정뿐인 그 사내 포상심사에서 빠지더니                  십팔 년 꼭 십팔 년 만에 오만 천 원씩 연금 받았지                   난곡 철거민촌 단칸셋방에서 부인은 파출부로 여든일곱 그 사낸 막노동판에서 노익장 자랑한다지.                   공장에서 첫 월급 십이만 원 받아온 외아들                   만주벌에서 풍찬 노숙하던 조선청년의 기쁨이지                   만주벌에서 풍찬 노숙하던 조선청년의 마지막 희망이지     매체독점 시대 우리음악의 풍경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래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음악 프로그램, 또는 유력한 인터넷 사이트가 고작입니다. 음악 전문잡지나 음악 웹진 등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소수 매니아층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노래를 수용할 수 있는 매체가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자신이 선택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전에 라디오에서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나 Alan parsons project의 Ammonia Avenue같은 대곡들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 8분대의 대곡을 들고 방송국에 찾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러닝타임이 짧은 노래들을 더 많이 방송에 내보내 가요 시장의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방송의 상업성이 3-4분대의 일반적인 노래에 비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한 창작자의 음악성을 누른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전문 케이블 TV에 주도권을 빼앗긴 공중파 방송국들은 있던 음악프로그램도 축소하면서 노래하는 사람들을 토크쇼에서 말 잘하는 재담꾼으로 만들어 시청률을 보장 받습니다. 노래는 그나마 토크쇼의 말미에 들리는 듯 마는 듯 현란한 뮤직비디오로 대신 합니다. 어쩌다 보는 음악전문 케이블 TV는 대부분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뮤직 비디오나 과감한 댄스 경연 같은 선정적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채널고정에만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 이유로 이미 “돈이 되는” 일에만 몰두해 있는 매체를 정보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의 음악선택은 역시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음악이 아닌 음악 산업 선택은 여러 개의 것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집어내는 일입니다. 상업적으로도 한계에 다가가고 있는 매체가 제공하는 한정된 정보 중에서 몇몇을 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마나 인터넷은 TV와 라디오에서 버렸던 노래의 영역들까지 포함하고 있어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웹에서의 음악 산책이 몇몇의 포털을 통해서만 이뤄진다면 기성매체을 통한 선택과 다를 바가 없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인터넷 P2P 사이트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는 다운로드가 창작자의 의욕을 꺾고 음악을 고사시키는 행위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삶에 대한 경외”를 품는 창작자의 욕구는 시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가의 고집과 자존은 시대와 사회적 관계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지 단 몇 푼의 돈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음악 산업이 고사하는 것이지 음악 자체가 고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업적 영역으로부터 눈을 떼게 되면 그전에 알았던 노래보다 더 많은 노래의 선율이 역동성 있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외로움은 꼭 그만큼의 사랑으로부터 외로움은 꼭 그만큼의 사랑함에서 나옵니다.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되면 그 많은 것만큼 외로워집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 두려워 사랑하는 일을 포기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을저녁 내장을 훑고 지나가는 소주한잔의 전율 같은 삶의 긴장감이 그 외로움을 덮어줄 수 있습니다. 길고 긴 기다림이 결국은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이면 메마른 가슴을 눈물로 덮어줄 노래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기다림이란 부정을 희망이란 긍정으로 전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은  최선의 발자국으로 이 가을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경외(敬畏)로운”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 안도현  사랑-   이 글은 문장 웹진(www.munjang.or.kr) 11월호에 함께 실립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865 | 추천: 0
“… 이제 노숙자 신세가 된 정씨가 지하철 역 바닥에서 맞이하는 차가운 새벽은 언제나 악몽으로 끝난다. 악몽 속의 그는 시민을 학살한 특전사 3공수특전여단 11대대 4지역대 하사다.” 2001년 5월18일 <한겨레> 사회면 머리기사다. 내가 썼다. 광주항쟁을 기리는 날의 대표 기사를 장식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비장하고도 애잔하게 쓰겠노라, 딴에는 작정하고 달려들었던 기사에 이런 대목도 있다. “…정씨가 방아쇠를 당기자 2명이 쓰러지고 1명은 달아났다. 내려가 확인한 '폭도'들은 무장하지 않은 와이셔츠 차림의 시민이었다. … 정씨는 피 묻은 손을 숨기고 새 출발을 준비했다. 82년 5월 전역해 그해 10월 9급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다. … 그러나 부인이 정씨 몰래 빌려 쓴 1억여 원의 빚이 그를 다시 좌절로 몰아넣었다. 빚 독촉에 쫓긴 정씨는 서울 을지로역, 시청역 등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 ‘노숙자 정씨’가 신문사를 찾아온 것은 그해, 5월 초였다. 언론사에는 수많은 종류의 ‘기인’들이 찾아와 “내 귀에 도청장치 있다”는 식의 제보를 한다. 처음에 나는 그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다소 건성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대단한 특종까진 아니어도 괜찮은 기사가 충분히 될 듯 했다. 그를 데리고 직접 광주로 내려갔다. 현장을 둘러보며 확신했다. 정씨는 예전의 건물과 거리를 정확히 기억했다. 여러 사실관계들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극적인 인생행로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벌을 받느라 노숙자 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이제라도 양심선언을 하고 고인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광주에 진입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5 ·18 문화재단    “… 21년 만에 광주 5.18 묘지를 찾은 정씨는 끝내 통곡을 참지 못했다. 눈물은 80년 5월21일 사망한 광주 시민 임은택씨의 묘비 위로 떨어졌다. 죽은 자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의 숭고한 뜻은 커다란 사랑으로 남아 바른 삶의 지표가 됐습니다. 못다 이룬 한을 훌훌 털고 가소서.'” 모처럼 뿌듯한 기사를 썼다며 제법 자위하고 있었는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정씨였다. “기사 나왔다면서요.” “예, 아직 못 보셨습니까.” “아니, 그러면 미리 말을 해야지.” “18일에 쓰겠다고 제가 말씀 드렸었는데.” “그게 아니라, 돈을 줘얄 것 아뇨.” “저희는 인터뷰 대가로 돈을 드리는 일은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일보>는 안 그러던데.” “예?” 순간 머리속이 하얘졌다. 5년차 사회부 경찰기자는 그제야 뭔가 일이 잘못 됐음을 느꼈다. 옛 기사들을 찾아봤다. 그 전 해, 그리고 그 전전 해의 5월, 어느 중앙일간지와 시사주간지에 ‘노숙자 정씨’의 기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연례행사처럼 ‘양심선언’을 반복했던 것이다. 지난 9년 동안 부실하게 양산한 수많은 기사 가운데서도 이 기사는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다. 가장 부끄러운 기사다. 일반적인 뉴스가치의 잣대로 보자면 정씨의 이야기를 다시 다루는 것은 기자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내가 쓴 기사의 틀은 광주사태의 한복판에서 시민을 학살한 군인이 ‘처음으로’ 그 사실을 고해한다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를 절대로 미워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더 애잔해지긴 했지만, 나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거짓말을 한 셈이 돼버렸다. 그 악업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이젠 해마다 ‘그날이 오면’ 광주 대신 정씨를 떠올린다. 광주를 생각하건 정씨를 기억하건, 옷깃을 여미며 “똑바로 정신 차리고 살자”는 결심을 하는 것은 매 한가지다. 그 때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취재원(news source)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데 있었다. 첫 순간, 행색만 보고 상대를 의심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그걸 극복한답시고 전폭적인 믿음을 걸고 모든 기사를 그에게 내맡긴 것이 더 큰 잘못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원을 의심하고 뒤집어보는 일을 생략한 것이다. 이른바 ‘불량기사’의 상당 부분은 기자-취재원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어떤 취재원을 얼마나 만나, 무엇을 물어보고, 그 대답을 제한된 텍스트에 어떻게 담을 지가 기사의 내용을 결정한다. 앞으로는 언론 환경과 취재 관행이 나아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기자 노동은 ‘시간 싸움’이다. 5분 안에 기사를 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30분 안에 기사를 다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 시간 안에 취재를 마쳐야 하는 식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씨름하고 다시 다음 반나절을 준비하는 ‘하루살이’가 기자들이 미쳐 돌아가는 이 바닥의 대강이다. 어떻게 하면,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취재원을 가급적 최소한(최대한이 아니라) 만나 기사가 갖춰야할 그럴듯한 모양새를 꾸며 제 시간에 마감할 수 있을지가 기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한국 언론이 양산하는 기사의 대부분은 그래서 ‘패스트푸드-저널리즘’에 비유할 수 있겠다. 준비된 재료만 들어간다. 모든 재료는 순식간에 요리되거나, 이미 요리돼있다. 그래도 몸에 좋고 맛도 좋다고 선전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그런 음식들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먹는다. 그래서 또다시 ‘준비된 재료’를 다시 챙겨 내알 장사를 준비한다. 가끔 그 음식에 파리 날개, 쥐꼬리, 바퀴벌레 더듬이 등이 들어가 항의를 받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사람들은 계속 이 식당을 찾을 테고, 나는 계속 음식을 팔아 해치울 것이다…. 최근 ‘피디 저널리즘’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한정된 취재원에 대한 무비판적 의존이라는 기자들의 관행과 관련이 있다. 바쁘기로 따지자면 피디 역시 기자 못지않겠지만, 여하튼 그들은 작가 등 스텝을 동원해 다각도로 취재할 인력을 갖추고,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호흡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여러 취재원을 두루 만나 복잡한 사실관계의 풍부한 이면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기자는 ‘사실’에 목숨을 건다. 이 말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그 사실이 ‘진실’을 드러낸다는 조건 하에서만 사실은 존귀하다. 사실은 취재원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취재원의 성격과 숫자에 따라 진실은 다른 모습을 띤다. 때로는 ‘명백한 사실’이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사건 과정에서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취재 내용이 취재윤리 위반을 넘어 진실로 드러나면서 ‘피디 저널리즘’은 언론 보도의 한 정점을 보여준 탐사 저널리즘의 또다른 이름이 됐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사회부 경찰기자 시절, 종로경찰서를 출입했다.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귀찮을 정도로 많았다. 써야할 기사는 쌓여 있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집회를 모두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자들은 이럴 때, 경찰을 활용한다. “얼마나 와 있어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 몇 명 안 되죠? 근데 언제까지 한대요? 뭐, 굳이 해산시키고 그런 일은 없겠죠? 하하. 그럼요. 경비과장님 고생하시는 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근데 주로 어떤 구호를 외치던가요? 그 단체 대표 이름이 뭐였더라. 과장님은 알고 계시죠?” 어지간한 경우라면, 현장에 나간 경찰의 정보는 ‘사실’이다. 여기에 중대한 거짓은 없다. 잘못 꾸며 말했다가 기자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싶은 경찰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공하는 사실에 의존하는 한 그 집회의 ‘진실’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는다. 경찰서 기자실에 앉아 취재한 집회는 귀찮고 시끄럽고 가망 없는 짓거리일 뿐이다. 평일 오후, 지역 주민들이 몰려와 청와대를 항의방문 하겠다고 기를 쓰는 일은 이제 기사 속에서 ‘도심 소음 공해의 하나’로 취급된다. 만일 그 기사의 취재원에 집회 참가자가 추가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고 보니, 미군 사격 훈련 때문에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지역 농민들의 시위다. 마감에 쫓기느라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면, 그게 불량기사가 된다. 사회의 악성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패스트푸드-저널리즘이다. 이는 다시 출입처 관행과 연결돼 있다. 피디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에는 유난히 ‘현장의 목소리’가 많다. 반면 기자들의 보도에는 ‘고위 관계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자는 힘 있는 기관의 내부자로부터 정보를 구한다. 분명히 출입처는 내부자와 친밀해질 수 있는 강력한 발판이다. 외부적으로 폐쇄적인 권력기관을 감시하기 위해 한국 언론이 부여잡고 있는 코뚜레다. 그러나 이 ‘내부자에 대한 유혹’이 기자들을 망가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기자들은 틈만 나면 고위 관계자, 유력자, 명망가, 권력자들과 친분을 쌓으려 애를 쓴다. 바로 그들이 특종을 건네줄 취재원이기 때문이다. 자꾸 만나면 정든다. 검찰 출입 기자는 검사의 관점에서, 정당 출입 기자는 국회의원의 관점에서, 청와대 출입 기자는 대통령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자신의 뿌리는 시민사회에 있고, 그 구실은 권력기관의 숲에 보내진 감시견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때로는 주인인 시민사회를 향해 외려 사납게 짖기도 한다. 제가 검사고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인줄 안다. ‘권력자의 언어’로 소통하는 기자들에게 익숙해진 권력기관의 내부자들은 뜨내기 같은 피디들을 좀체 만나주지 않는다. 출입기자들의 높은 벽에 가로막힌 피디들은 하는 수 없이 ‘현장’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오히려 그 과정이 피디 저널리즘을 건강하게 살찌우고 있다. 피디 저널리즘에는 넥타이 멘 익명의 관계자 대신, 생생하게 살아 분노하는 실명의 시민들이 있다. 피디 저널리즘에 등장하는 고위 관계자는 시민의 분노 앞에 제대로 변명도 못하는 무능력자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취재원이 기사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하는 동시에,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되면 기사의 방향이 어떤 취재원을 선택할지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수습기자 시절, 모든 기자는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화재, 살인, 성폭행, 재난현장, 시위현장 등을 취재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방식을 전수받는다. 좋게 말하면, 이는 미숙한 사회초년생이 기자노동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과정은 패기만만한 초년기자가 기성의 매체가 쌓아올린 거대한 ‘도그마’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를 통해 매체는 또 하나의 부속품을 복제한다. 기자가 바뀌어도 특정 매체가 생산하는 기사는 모두 닮은꼴이다. 종업원은 바뀌어도 그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은 매양 패스트푸드다. 농민 시위가 일어났다. 사회부 초년 기자는 능숙하고도 당연하게 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취재한다. 몇 명이 어디에 모였는지, 어디로 행진하는지, 전경들은 몇 명이나 동원했는지, 폭력시위는 없었는지, 성명서에선 뭐라고 이야기했는지를 기계적으로, 그러나 빠르게 취재해 원고지 5장의 단신 기사로 쓴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보다 많은 취재 시간을 허락한다 해도 불량기사가 눈에 띠게 줄어들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층 취재를 위한 시간적, 물질적 환경을 바꾸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 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기자 각자에게 내면화돼 있는 취재 관행, 특히 취재원의 취사선택에 대한 메카니즘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사이더’에게 의존해 권력관계의 치부를 폭로하는 특종기사가 아니라, ‘아웃사이더’에 눈길을 돌려 소외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로부터 사회의 혈맥을 찾아가는 심층보도는 하나의 대안이다. 이때 아웃사이더의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정권을 비판하고 친일파를 저주하고 미국을 고깝게 여기며 가난한 부모를 탓하면서 강남 아파트에 군침 흘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분명하고 명확한 것은 없다. 단정적으로 확실하게 말하는 인사이더들에 비하자면, 아웃사이더는 귀찮고 짜증나는 취재원이다. 아웃사이더를 수없이 만나고 난 다음에야 하나의 흐름을 잡아 기사를 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취재를 위해 기자는 술잔을 기울이는 대신, 책을 펼쳐들고 자료를 찾고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북핵 사태와 관련해 여러 ‘인사이더’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넘쳐나고 있다. 실명 또는 익명의 ‘관계자’들이 북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 일부는 한국 정부 관료이고 일부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관료이며, 일부는 한국의 대학 교수이고 일부는 미국, 중국, 일본의 대학 교수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 한국은 세계사적 위기의 진앙지다. 내가 보기에 그 말에 거짓은 없다. 대부분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예컨대 세계사적 위기의 한복판에 서있는 한국인들은 왜 여전히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그들을 태연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어떤 ‘인사이더’들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북핵과 관련해 지금 한국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해야 할 것은 ‘아웃사이더’인 시민이다. 본래적 의미에서 이번 사태의 진정한 인사이더가 바로 그들이기도 하다. 전쟁이 나면 그들이 죽을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져도 그들이 먼저 굶을 것이다. 아마도 관료와 교수들은 포화를 피해 다닐 것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뭐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북핵 사태의 진실의 상당 부분은 ‘암시랑도 않는’ 시민들에게 있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는 방법에 대해 한국의 기자들이 낯설어 할 뿐이다. 내가 쓴 ‘노숙자 정씨’의 기사는 불량기사일까. 그렇다. 단수의 취재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괜찮은 기사를 쓰려면 취재원의 숫자가 많아야 하고, 그들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그러나 ‘노숙자 정씨’의 기사가 치명적으로 악질적인 기사는 아니었다고 감히 변명해 본다. 어떤 면에서 나는 ‘아웃사이더’인 필부들의 이야기를 보다 중요하게 다루고 싶었던 것이다. 시행착오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미숙한 사회부 기자는 노숙자 정씨로부터 한 수 배웠다. 다만 세상의 더 많은 ‘정씨’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무능이 여전히 부끄러울 뿐이다.   안수찬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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