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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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한달 전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3학년 남학생이 보건실에서 쉬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보건교사를 경찰에 신고한 사실이 뉴스에 알려졌다. 학생은 그날 6교시에 보건실로 찾아와 “머리가 아파 침대에 누워 있겠다”고 말했고 이에 보건교사는 “수업에 불참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담임교사와 학과 담당교사의 사인을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이에 학생은 욕설과 함께 출입문을 주먹으로 치고 112로 전화를 걸어 “몸이 아파서 쉬고 싶은데 보건교사가 내말을 안 믿어준다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 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서구식 평등개념과 자유개념으로 자신의 표현에 적극적인 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에서 스스로 지키는 규율과 의무는 무시한 채, 뜻대로 하고 싶은 일이 좌절되면 매사에 비협조적이고, 어른(교사)에게 대들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매번 남 탓으로 돌리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한 학교의 수업 모습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수업시간에 옆의 친구와 너무 심하게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쳐서 교실 뒤에서 벌을 서게 하면 오히려 뒤에서 왔다 갔다 장난을 치곤하여 수업이 중지되기도 하고, 교실 밖 복도에서 벌을 주면 이들은 열려있는 교실 창문으로 교실안의 학생과 말을 주고받고, 눈장난을 하는 등 오히려 처벌을 받는 동안 다른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수업하던 교사가 훈계를 하면 “장난 안했는데요?” 하며 눈을 흘기며 쳐다보곤 한다. 심지어 수업 중 제자리에 가만 앉아 있지 못하고 복도를 배회하는 아이들조차 있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수업을 진행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 선생님이 꾸중을 하면 눈을 똑바로 뜨고 덤비기도 하고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 버리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친구들 간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화를 잘 내고 이해하거나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에 복종의 시대를 살아왔던 교사들은 당황하고 고통스럽다. 억압과 통제가 심했던 시대에서 복종이 미덕임을 강요받았던 교사 세대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학생 세대 간의 차이도 심각하고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학생들과 마찰은 당연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잘못한 일을 하다가 들키면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것이 정상인데 말이다. 선생님에게 눈을 부릅뜨고 교사에게 반항심을 숨기지 않는 아이들! 나에게 손해만 되지 않는다면, 아니 내게 이익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학생들이 잘못되는 것은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 가정교육의 실종, 성적지상주의와 사회적 존재로 키우지 못하는 학교교육,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위주의 교육, 그리고 상업주의 속의 사화문화적인 환경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에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뚜렷하게 반항적이고, 불복종적이고, 도발적인 행동과 함께 규칙을 어기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반사회적 행동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반항장애 학생이 10%전후로 나타난다고 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이러한 질병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유병률이 차이가 심하다고 한다.     지난 4월 서울시 소아청소년 정신보건센터에서 서울시내 초-중-고교 19개 학교의 학부모, 학생 2천700여 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초-중-고생의 3분의 1 이상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다. 우리는 성적이 아니라 먼저 우리의 학생들에게 인성을 가르치고 사람다움을 가르쳐야 하겠다. 그리고 교육은 비단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은 가정에서 맡아야 한다. 그다음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학교란 더불어 살 때 즐겁고 행복한 곳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10 | 추천: 0
근래에 여러 단체가 소속회원들 중 대의원을 파견하여 이루어지는 한 협의회의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내가 속한 단체의 대의원 자격으로 그 회의에 참석한 것이었다. 안건 중에 그 단체의 개혁안에 대한 심의가 있었다. 지난 회기 총회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그 단체의 개혁방안에 대해 연구할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그 위원회가 회의와 공청회 등 27차례의 모임 끝에 마련한 ‘헌장개정안’이었다. 당연히 특별위원회에는 각 단체의 대표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그 개혁안이란 것은 각 단체의 처지를 반영하기 위해 첨예한 논의를 거친 중재안이었다. 그런데, 무난하게 진행되던 회의가 그 안건에 대한 심의방법 문제로 마감예정시한을 넘겨 무척 늦은 시간까지 연장되었다. 짧지 않은 준비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견을 제시할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문구 몇 개를 들어 두 개 단체의 대의원 전원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다분히 준비과정에서 자기 단체의 안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세를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여하튼 논의가 길어지다 보니 새로운 중재안이 나오고, 그 안의 적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의원도 있었으며, 원안과 중재안의 처리방법에까지 이견이 속출하면서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다행히 대의원 대부분 협의정신에 충실하자는 데 합의함에 따라 적절히 양보하며 새로운 안을 만들어 통과시켰지만, 끝까지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는 대의원이 있어 문제의 불씨를 남겨둔 채 회의가 종료되었다.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건 폭력문화 돌이켜 보니 오랜 시간 회의를 하고도 얻은 것 없이 머리만 아픈 적이 많다. 결론이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각자 자기주장만 반복하며 돌고 도는 회의 말이다. 물론 신중한 결론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사전에 안건과 관련하여 고민하지도 않았고 가능한 해결방법을 모색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저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데 의의를 두거나 준비 없이 회의만 하면 무엇이든 얻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회의는 십중팔구 참석자들을 지치게 하고 결론을 다음으로 미루거나 무리하게 결론을 도출하기 십상이다. 우리의 독특한 문화라 치부할 일이 아니지 싶다.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반복하는 것, 회의 전단계로서의 협의 과정과 결과를 무시하는 것, 회의 중 숫자로 세를 과시하려 드는 것, 규정이나 관행을 무시한 회의진행 방법 등등, 모두 우리 사회의 심각한 폭력문화와 이기주의의 한 단면일 뿐이라면 지나친 투정일까?   생산적인 회의의 중요성 “건강한 회의문화는 강한 기업을 만드는 시작점이다.” 기업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회의시간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시작과 마감 시간을 정해 놓고, 활발한 의견개진을 위해 상석(上席)을 지정해두지 않거나, 모든 참석자는 최소한 1회 이상의 발언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기도 하며, 엄숙한 분위기여야만 한다는 통념을 깨기 위해 회의실의 인테리어를 밝은 분위기로 바꾸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과중한 회의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나 시간 낭비를 줄이고, 생산적인 회의가 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단지 형식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회의의 질적인 수준을 높였는지 그 결과를 알 길은 없지만 ‘회의비용 산출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니 기업에게도 효율적인 회의가 꽤나 중요한 일이긴 한 듯하다.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게 회의방식까지 배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비영리 시민단체들의 회의도 한층 업그레이드되고 세련되어져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두 가지만 지적하려 한다.   직장 내 회의문화가 바뀌고 있다. 건설회사인 신영은 주간 회의 때마다 차장급 이상은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해 앉는다.   (위쪽)카페처럼 꾸민 회의실에서 직원들이 간식을 먹으며 토론하는 코카콜라.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첫째, 시간이다. 발전적인 회의가 회의 소요시간과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회의 참가자와 회의 진행자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짧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자료를 미리 준비하여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면 회의 시간이 필요 이상 길어질 이유가 없다. 물론 중요한 말을 여러 번 반복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지나친 반복을 일삼는 사람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둘째, 토론문화이다. 모든 의견에 마음과 귀를 열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가능할 때만 회의가 회의다워질 것이다. 성공적인 회의문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다.   회의를 업그레이드 하자 회의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 중요한 시간에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서로를 소모시키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이타주의야 말로 올바른 회의를 만드는 기초이자 인권의 출발점이 아닐까?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12 | 추천: 0
자존심 없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인생은 자존심으로 산다. 그래도 곱씹어 보면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은 생존의 경쟁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이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자존심은 무너지기 일쑤다. 알량한 자존심은 버려야 산단다. 자존심 타령은 상전의 눈치 보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본주의 체제 부적응자의 사치스런 헛소리로 전락하였다. 약자에게는 아부하고 타협하는 처신술만이 삶을 그르치지 않는 능사요, 살아가는 지혜가 된다. 약자는 강자의 횡포에도 맞서기 어렵고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조아리기를 강요당한다. 대중의 혼을 쏙 빼간다. 주변에서 알량한 자존심 내세우는 이 치고 제대로 부유하게 잘 사는 모습을 아직까지 제대로 본 바 없다. 자존심 있고 성실하게 일 잘하는 그런 이들 중에 부자는 없다. 부자가 되려면 자존심 꾹꾹 눌러 뱃속 밑에 집어넣거나 자존심 없는 인생을 찬양하고 즐겨야 한다. 조금은 엉겨 붙어야 돈을 벌 수 있다. 엉기지 않고 돈 벌 수 있는가. 절대로 없다. 정경유착, 관언유착 등 무수한 유착 없이 돈 번 사람 못 봤다. 변호사가 의뢰인과 만나 장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건 걸고 수임하잔다. 로비 해달란다. 눌러둔 자존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장난치나. 앞으로 변호사 욕하지 말라고 한소리하고 온갖 푸념 떤다. 그런 이에게 하는 법조비리의 수임 현실에 대한 푸념은 길게 돌고 돌아 그러니 강자 탓하며 강자에 엉겨 값없이 살지 말라는 거로 맺는다. 결국 꾸짖고 내보낸 꼴인데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그냥 의뢰인의 기대를 좇아 적당히 유연성을 발휘하며 같이 엉겼으면 돈 좀 버는데. 사건 하나 없이 수개월 주구장창 허송세월하며 마누라 푸념 듣고 남몰래 스트레스 받느니 좀 하면 어때서. 모든 에너지를 돈 버는데 집중하자 맹세해도 삼일천하.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돈 벌자 주문을 외워야 제 버릇 고칠까 웬만해서 어려울 것 같다. 참으로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이 부럽다. 강자의, 강자를 위한, 강자에 의한 체면을 중시하는 그런 자존심 말고(그런 알량한 자존심이야 버려야 사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 말이다. 이건 지켜야 사는 것이다. 걸고 지켜야 한다. 뭇 사람들은 그런다. 자존심을 지키는 인생을 존경하나 그 자신은 그렇게 따라 살기 어렵단다. 그런 사람 존경하면 따라 살게 된다. 다만 돈 못 번다. 지배적이고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강자 앞에서 머리 숙여 굴종을 강요당하는 피말리는 긴장된 싸움의 현장에서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 일로 매진해야 우리가 산다.  변호사는 직업적 자존심으로 살아야 한다. 형사 피의자를 위한 변호권은 변호사직을 걸고 지켜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원칙에서 추호도 동요하거나 물러서서는 안 된다. 정신력이다. 겁을 집어 먹는 순간 끝이다. 한 번 물러서면 바보 된다. 강자는 가지고 논다. 밀리면 변명하기 십상이다. 약자를 위해 강자 앞에서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고 약자에게 실리가 생길 것이라 변명치 말자. 겁을 집어 먹은 약자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용기를 불어넣고 강자 앞에 결코 쓰러지지 않는 역사와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을 찬양해야 한다. 약자를 위한 성실한 자세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서로 마음과 몸이 엉기어 난관을 뚫고 포기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낙관과 긍정의 힘을 체험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주체로 우뚝 서 나가야 한다. "참으로 자존심으로 사는 인생이 부럽다. 강자의, 강자를 위한, 강자에 의한 체면을 중시하는 그런 자존심 말고, 약자의, 약자를 위한, 약자에 의한 자존심 말이다."    그런 현장에서 항상 뇌리를 스친다. 눈물 많고 억척스런 어머니의 푸념어린 말씀들, 어릴 적 귀 닳도록 들었던 식상한 말씀. ‘죽으라는 법은 없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 땅의 민중들이 험한 세상에서 두려움과 초조함을 물리치고 마음을 뭉치고 난관을 극복한 철학이다. 한줄기 빛과 소금과 같다. 마누라의 푸념이 무섭고 주눅 든다. 그 사랑에 일편단심으로 바쳤고 바치고 있건만….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돈 벌라, 일찍 들어와라, 애들과 자주 놀라, 몸 챙겨라” 등등. 허나 자존심으로 살고자 하는 내게 마누라의 그런 얘기는 가당찮은 푸념으로만 들린다. 그렇더라도 마누라는 항상 나를 믿어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해 주는 또 다른 어머니인데, 사랑 앞에 알량한 자존심 타령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 그래도 필경 인생은 자존심으로 산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779 | 추천: 0
경찰청에서 12일과 25일로 예정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를 불허했다는데, 그 이유가 교통 혼잡 때문? 그 동안 경찰청은 법적 근거가 없어서 교통 혼잡을 야기한 집회와 시위를 방치했나? 뜬금없이 교통 혼잡을 내세우며 도심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이유는 뭘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2조는 당해 도로와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는 집회와 시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던데, 경찰청은 이걸 몰랐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법을 무시했던 걸까? 그렇다면, 경찰들은 지금까지 직무유기를 한 건가? 혹시 지금까지 집회와 시위는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없었나? 아니면 집회, 시위 신고자들이 허위로 신고하고 집회, 시위를 개최했기 때문에 경찰이 몰랐던 걸까? 그건 그렇다 치고, 교통 혼잡이 없는 집회, 시위하고 교통 혼잡이 발생하는 집회, 시위는 어떻게 구별하나? 어느 정도면 금지되는 교통 혼잡이고, 어느 정도면 허용되는 교통 혼잡일까? 교통 혼잡이 있을지 없을지는 누가 판단하나? 발생할 교통 혼잡이 집회, 시위를 허용할 정도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하나? 교통 혼잡이 없을 집회인데 잘못 판단해서 불허했다면 어떻게 하나? 불허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국가가 배상해주기나 하나? 문화행사는 괜찮을까? 집회, 시위와 문화행사는 어떻게 구별하나? 문화행사가 교통 혼잡을 야기하면 어떻게 하나?     수구언론이 연일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고, 여기에 경찰청이 도심집회 불허로 화답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도심 집회 막으면 행복해지니? 일부 언론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들어 반색하던데, 교통 소통이 잘되면 행복해지나? 교통 소통이 잘 되서 행복해지는 사람은 어디에 사는 사람일까? 집회와 시위를 하지 않아 교통 소통이 잘 되는 지방 도시의 사람들은 지금껏 행복할까? 왜 지방에 사는 분들은 서울 도심에서 승용차 타고 다니는 사람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서울로 올라와서,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원정 집회와 원정 시위를 하는 걸까? 지방에서 집회하고 시위하면 안 될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서울 도심에서 집회, 시위를 하지 못해 자신의 요구를 알리지 못한 사람들의 행복은 누가 책임지나? 그 사람들의 문제는 행복추구권보다 다급한 생존권 문제라고 하던데 경찰청은 알고 있나? 혹시 그 사람들 생존권에 문제가 생기면 경찰청이 책임지나? 아니면 서울 도심에서 승용차 타고 다니다 교통 불편으로 호소할 사람들이 책임지나? 스스로 책임 못 질 것 같으면 다른 부처, 다른 사람이 책임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행복추구는 고사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집회와 시위하는 사람보다 서울 도심을 대중교통도 아닌 승용차로 통행하려는 사람들의 행복추구권이 우선하는 걸까? 이런 목소리라도 듣지 않는다면, 정부와 언론은 이들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때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경청한 적이 있었나? 헌법에 보니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고,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경찰청에서 불허한다는 것은 집회, 시위를 허가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는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제한’과 경찰청의 ‘불허’는 어떤 관계가 있나? 경찰청이 ‘불허’한다는 한 것은 헌법을 위반하겠다는 의지 표명인가? 헌법에서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 놓았던데, 왜 집회, 결사는 교통 혼잡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았을까? 혹시 경찰청은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나?     '‘집회·시위의 자유’와 ‘도심 교통난 유발’ 사이에서 논란을 빚은 민주노총 집회가 지난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으나 일부에서 우려했던 교통 혼잡 없이 무난히 진행됐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요즘 집회, 시위도 군사독재시절처럼 아예 도로를 전부 점거하면서 진행하던가? 주말에 보면 집회, 시위대는 많아야 두개, 적으면 한개 차로로만 행진하던데 딴 나라 사람들이던가? 집회 현장을 시민들과 아예 차단하는 전투경찰 버스들은 한개 차로를 아예 점령한 채로 기름 낭비하며 공회전 시키고 있던데, 이 버스들이나 먼저 좀 치워줄 수는 없나? 이 버스들이 일으키는 대기 오염과 교통 혼잡이 경찰 눈에는 보이지 않나?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 경찰청은 알고나 있나? 만일 군부독재시절 지금보다 더 폭력적이고, 교통 혼잡 정도가 아니라 교통을 아예 마비시키는 정도의 집회와 시위가 없었다면, 지금 정도의 민주주의가 과연 가당키나 했겠나? 도대체 경찰청은 집회와 시위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나? 이나마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나? 서울 도심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알고나 금지하겠다는 건가? 서울 도심이 왜 항상 집회와 시위의 장소가 되는지 알고나 금지하겠다는 건가?     도로를 점거한 전경버스부터 치우라 솔직하게 말해서, 경찰청이 금지하겠다는 집회와 시위가 지금까지 정부와 기득권층에 불편한 요구를 해오던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 아닌가? 불편하면 금지한다, 금지하고 안 듣겠다? 정말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하는 거 아닌가? 차라리 헌법을 개정해서 집회와 시위를 아예 금지하는 게 낫지 않겠나? 그나저나 지금까지 서울 도심에서 집회하고 시위하던 분들은 이제 어디서 집회하고 시위하나? 얼마 전 보니 통행료 문제로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시위하려던 분들이 있던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집회하고 고속도로 위에서 행진하라는 건가? 쌀 개방을 반대하면서 한강 다리 위에서 시위하려던 분들도 있던데 이제부터는 한강 다리 양쪽에서 집회하고 다리 위에서 고공 시위하라는 건가? 아무튼 경찰청이 말한 대로 교통 혼잡을 야기하는 도심 집회, 시위를 불허하면 과연 이제부터 서울 도심에서는 항상 교통 소통이 원활해지는 걸까? 그래도 계속 교통이 막히면 기대했던 행복추구권 침해로 경찰청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나 해볼까?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51 | 추천: 0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를 읽으면서 내 기억의 조각들을 훑고 지나가는 문장마다 쏟아냈던 저의 감동이나 윤금이씨 추모제때 들려줬던 “보산리 그 겨울”에 손수건을 적셨다고 하던 어느 한 여성 운동가의 눈물은 한 시대를 아파한다는 동일한 경험 속에서 만난... ..."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를 읽으며 김중미의 최근작 “거대한 뿌리”를 읽습니다. 몇 페이지 못가 등장하는 낯익은 이름들. “보산리” “동두천 중앙시장” 지금은 사라진 “어수동역”. 소설속 인물들의 표정을 따라 한뜸한뜸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나도 30여년의 긴 시간을 되돌려 동두천의 한 거리에 와있는 듯 합니다. 미국으로 입양가는게 소원이었던 초등학생 임경숙이나, 보산리 기지촌의 포주집 딸 해자, 해자네 집에서 제일 나이가 많지만 “꿈이 양갈보는 아니었다”고 넋두리하는 미자언니, 동광극장 옆 산파집 에서 제이콥을 낳은 주인공의 육촌언니 윤희나, 튀기 만들기 싫어 결혼하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첫사랑 백인혼혈 재민이. 나는 이들을 잘 압니다. 어릴 적 나의 어머니는 동두천 광암리에서 “왕뱅이 고개”를 넘어 포천으로 시집 오실 때의 기억을 자장가처럼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만석까지는 안 되더라도 제법 넉넉했던 외가댁의 살림 얘기며 미군 2사단 사격장 안쪽의 넓은 밭에서 자란 여린 목화를 씹는 달콤함이며, 외삼촌이 그 땅을 빼앗기고 미군부대 세탁소에서 일을 하게 된 얘기를 들으면서 잠이든 날이 한 서너 달쯤은 될 듯싶습니다. 외숙모는 외삼촌이 미군부대 내 세탁소 일을 하면서 가져온 옷들을 수선하는 세탁소를 운영하셨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속칭 “양색시”들을 대상으로 하숙을 치셨습니다. 나는 동갑내기 사촌과 죽이 잘 맞아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주로 그곳에서 방학을 보냈는데 얼추 학년이 높아지면서는 외갓집 옆에 바짝 붙어있는 외국인 전용클럽 “보난자”의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거나 집에 세든 양색시 누나들의 밤을 궁금해 하기도 했을 겁니다.       92년 가을, 윤금이, 그리고 보산리 누이들 그때도 가을이었습니다. 궁핍한 사람들이 겨울나기를 걱정하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던 92년 10월의 하순, 갑자기 날아온 먼 친척의 부고장처럼 일간지 구석에 가지런히 적혀진 이름 윤금이, 그녀의 상처 깊은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날 말입니다. 1966년생 전라도 정읍이 고향인 그녀가 왜 고향과 그토록 멀리 떨어진 동두천 보산동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는지를 물으며 많이 아팠었습니다. 윤금이는 케네스 마클이라는 그녀를 죽인 미군병사의 술 취한 조롱 혹은, 그녀의 몸을 찔러댄 우산대나 콜라병보다 더 많은 아픔을 이미 그녀를 학대했던 세상으로부터 받아 삼켰던 것이 확실했습니다.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갓 마치고 취직한 구로공단이나 청계천, 성수동 방직공장, 커피 값도 못되는 일당에 갖은 잔병에 시달리다 때로는 사창가에 몸을 의지하기도 했던 그 시대 우리 누이들의 고단한 행적을 생각하면 윤금이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약 같은 세상의 아픔을 토해내는 그녀들의 신음소리가 사랑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 보산리의 저녁에도, 내가 어릴 적 치기로 훔친 양색시 누이들의 밤에도 있었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해 가을 윤금이의 상처 깊은 죽음은 내 유년기 동두천에 대한 기억과 추운 자취방의 몇날을 거쳐 울림이 작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보산리 그 겨울]                                   좁다란 골목 뒤 계단에 늦은 별빛이 떨어지면                     그 고운 두 눈 입술위에 화장을 드리우고                     누구에게 배워본 적 하나 없는 낯선 이방의 말 읊조리며                     누굴 찾아 집을 나서니 가로등 너머 이방의 땅                     무슨 잘못이 네게 있어 그 슬픔 모두 남겨두고                     무슨 잘못이 네게 있어 그렇게 아프게 떠나갔니                     보산리 그 겨울에 남겨둔 상처가 너무 많아                     그 추운 겨울 지나 봄을 찾아 떠나갔니                     너 떠나간 그 빈 거리에 늦은 별빛이 떨어지면                     지워져도 잊을 수 없는 우리들 슬픈 그림자                     세상 속에 노래가, 예술이 있다 때로 예술가란 존재는 고집은 뱀 같은 동물처럼 다른 곳을 볼 줄 모르고 자신의 작품에는 베짱이처럼 관대하며 자존(自存)을 지키기 위해선 외나무다리의 염소처럼 싸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회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의 존재를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이 품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과 고민의 폭이 남 달리 넓다는 것을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게릴라와도 같은 위험한 상상을 통한 예술가들의 위대한 소통 능력은 한 시대의 환부를 꿰매기도, 해부하기도 하며 막강한 대중적 지지를 토대로 사회를 진보의 단상 위로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진보의 역사위에는 늘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예술가와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술가의 고집이나 자존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 독립된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불화(不和)속에서도 적극적인 치유의 방식을 찾아 나서는 순례자의 고통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예술가의 예지적 능력 또한 스스로 만들어내는 상상력 보다 사회와의 관계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합니다.   삶에 대한 경외와 노래가 만날 때 누군가 “험난한 노래의 길”이란 표현을 했습니다. 이는 사랑이든 이별이든 그 어떤 추상명사이든 개인의 사소한 감정을 말하기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보편적 정서를 끌어내기 위한 고민이 담겨진 표현입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의 사랑은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들춰내고 또 그 고통과 연대하며 결국은 그 고통을 넘어서고자 하는 가장 아름다운 투쟁의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험난한 노래의 길”을 찾는 과정을“삶에 대한 경외”라고 얘기 합니다. “험난한 노래의 길” 속에서 만나는 고통과 희열, 분노와 사랑의 에너지를 오선지속의 선율로, 가슴속 깊은 폐부의 음성으로 토해내는 창작자가 있습니다. “험난한 삶의 길”에서 창작자와 같은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고자, 노래를 찾는 수용자가 있습니다. 이 둘에게 “삶에 대한 경외”라는 말은 함께 적용되며 음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이 둘의 만남 사이에는 눈물이라는 감동의 최고치가 경계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를 읽으면서 내 기억의 조각들을 훑고 지나가는 문장마다 쏟아냈던 저의 감동이나 윤금이씨 추모제때 들려줬던 “보산리 그 겨울”에 손수건을 적셨다고 하던 어느 한 여성 운동가의 눈물은 한 시대를 아파한다는 동일한 경험 속에서 만난 “삶에 대한 경외”의 산물이겠지요. 레지스탕스와 반체제 활동으로 구금과 석방, 그리고 정치적 망명까지 해야 했던 그리스 최고의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나 민중의 한과 슬픔 분노를 노래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망명까지 해야 했던 아르헨티나 민중의 목소리 메르세데스 소사. 혹은 미국의 지원 아래 이뤄진 군부쿠데타 시기에 오직 노래했다는 이유로 손목이 부러진 채 숨진 칠레의 혁명가수 빅토르 하라의 음악이 그 당시에는 물론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희망이 되는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감동과 울림이 있는 노래 그러나 사람들이 진정으로 노래를 통해 감동받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출강중인 성공회 대학교의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라는 과목에서 “노래듣고 울어보기”란 과제를 제출하게 하는데 학생들은 무척 생소해 합니다. 문자나 영상매체에 비교할 때 노래라는 장르가 갖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는 우선 차치합시다. 듣고 떠올릴만한 메시지가 부재한 관계로 노래방에 가야만 노랫말을 확인할 수 있는 요즘의 음악, 그리고 춤, 비트, 가수의 현란한 모습 등 노래 외적인 요소들이 경쟁의 주요 쟁점이 된 가요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노래를 듣고 울어본 경험을 적어내라는 저의 과제는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겐 한때 사랑의 기준이었던 그 사람을 생각하면 설레임이었고 눈물이었던, 비슷한 선율만 흘러도 지금 역시 가슴 두근거리는 “April”(노래 Deep Purple)이 있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간 91년 분신정국의 거리에선 눈물보다 더 진한 분노를 토해냈던 “그날이 오면”(노래 노찾사) 이 있었구요. 요즘은 ‘넌 눈물이 있으니 참 좋겠다 눈물 보일 수 없는 난 어쩌겠니’라는 가사가 있는 ‘가을이 빨간 이유’(노래 김원중)같은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힐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로서는 노래 한 줄이 가지는 해원(解怨)의 힘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와 노래가 단순한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자신을 구성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여 사시는 나눔의 집 에서 부른 “사이판에 가면”, 고 임종국 선생(친일문학론의 저자)의 묘소 앞에서 부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일본 도쿄의 에다가와 조선학교 (도쿄도지사 이시하라의 부당한 불법점유 소송으로 폐교의 위기에 처한 민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부른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 ... 이 노래들은 그 속에 담겨진 “삶에 대한 경외”로서의 눈물에 애써 담담해 지려 눈을 감았던 화자, 그리고 눈을 감고 노래하는 무대를 외면하듯 고개를 숙였던 청자의 숙연함에 녹아  “험난한 노래의 길”에 가장 찬란한 화답으로 다시 태어났던 일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민병일 시.                    만주벌에서 풍찬 노숙하던 조선 청년 이우석                   서로군정서에서 북로군정서까지 병서를 다 옮기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사들인 신식총 백두산 화룡헌 청산리 가져왔지                   삼일 밤낮을 싸워 청사를 빛냈건만 마침내 부대원들 뿔뿔이 흩어져                   로스케 한인부대 찾아갔지만 볼셰비즘에 물든 사람들과 다투다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했지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했지                   눈보라 몰아치고 달님도 잠든 날 밤 시베리아 탈출한 그 사내                   다시 만주벌을 누비는데 조국은 해방됐지 그러나 상처뿐인 몸뚱이로 엿장수가 되었지                  의혈남아 기개와 순정뿐인 그 사내 포상심사에서 빠지더니                  십팔 년 꼭 십팔 년 만에 오만 천 원씩 연금 받았지                   난곡 철거민촌 단칸셋방에서 부인은 파출부로 여든일곱 그 사낸 막노동판에서 노익장 자랑한다지.                   공장에서 첫 월급 십이만 원 받아온 외아들                   만주벌에서 풍찬 노숙하던 조선청년의 기쁨이지                   만주벌에서 풍찬 노숙하던 조선청년의 마지막 희망이지     매체독점 시대 우리음악의 풍경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래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음악 프로그램, 또는 유력한 인터넷 사이트가 고작입니다. 음악 전문잡지나 음악 웹진 등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소수 매니아층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노래를 수용할 수 있는 매체가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자신이 선택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전에 라디오에서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나 Alan parsons project의 Ammonia Avenue같은 대곡들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 8분대의 대곡을 들고 방송국에 찾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러닝타임이 짧은 노래들을 더 많이 방송에 내보내 가요 시장의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방송의 상업성이 3-4분대의 일반적인 노래에 비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한 창작자의 음악성을 누른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전문 케이블 TV에 주도권을 빼앗긴 공중파 방송국들은 있던 음악프로그램도 축소하면서 노래하는 사람들을 토크쇼에서 말 잘하는 재담꾼으로 만들어 시청률을 보장 받습니다. 노래는 그나마 토크쇼의 말미에 들리는 듯 마는 듯 현란한 뮤직비디오로 대신 합니다. 어쩌다 보는 음악전문 케이블 TV는 대부분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뮤직 비디오나 과감한 댄스 경연 같은 선정적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채널고정에만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 이유로 이미 “돈이 되는” 일에만 몰두해 있는 매체를 정보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의 음악선택은 역시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음악이 아닌 음악 산업 선택은 여러 개의 것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집어내는 일입니다. 상업적으로도 한계에 다가가고 있는 매체가 제공하는 한정된 정보 중에서 몇몇을 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마나 인터넷은 TV와 라디오에서 버렸던 노래의 영역들까지 포함하고 있어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웹에서의 음악 산책이 몇몇의 포털을 통해서만 이뤄진다면 기성매체을 통한 선택과 다를 바가 없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인터넷 P2P 사이트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는 다운로드가 창작자의 의욕을 꺾고 음악을 고사시키는 행위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삶에 대한 경외”를 품는 창작자의 욕구는 시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가의 고집과 자존은 시대와 사회적 관계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지 단 몇 푼의 돈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음악 산업이 고사하는 것이지 음악 자체가 고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업적 영역으로부터 눈을 떼게 되면 그전에 알았던 노래보다 더 많은 노래의 선율이 역동성 있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외로움은 꼭 그만큼의 사랑으로부터 외로움은 꼭 그만큼의 사랑함에서 나옵니다.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되면 그 많은 것만큼 외로워집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 두려워 사랑하는 일을 포기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을저녁 내장을 훑고 지나가는 소주한잔의 전율 같은 삶의 긴장감이 그 외로움을 덮어줄 수 있습니다. 길고 긴 기다림이 결국은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쯤이면 메마른 가슴을 눈물로 덮어줄 노래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기다림이란 부정을 희망이란 긍정으로 전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은  최선의 발자국으로 이 가을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경외(敬畏)로운”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 안도현  사랑-   이 글은 문장 웹진(www.munjang.or.kr) 11월호에 함께 실립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815 | 추천: 0
“… 이제 노숙자 신세가 된 정씨가 지하철 역 바닥에서 맞이하는 차가운 새벽은 언제나 악몽으로 끝난다. 악몽 속의 그는 시민을 학살한 특전사 3공수특전여단 11대대 4지역대 하사다.” 2001년 5월18일 <한겨레> 사회면 머리기사다. 내가 썼다. 광주항쟁을 기리는 날의 대표 기사를 장식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비장하고도 애잔하게 쓰겠노라, 딴에는 작정하고 달려들었던 기사에 이런 대목도 있다. “…정씨가 방아쇠를 당기자 2명이 쓰러지고 1명은 달아났다. 내려가 확인한 '폭도'들은 무장하지 않은 와이셔츠 차림의 시민이었다. … 정씨는 피 묻은 손을 숨기고 새 출발을 준비했다. 82년 5월 전역해 그해 10월 9급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다. … 그러나 부인이 정씨 몰래 빌려 쓴 1억여 원의 빚이 그를 다시 좌절로 몰아넣었다. 빚 독촉에 쫓긴 정씨는 서울 을지로역, 시청역 등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 ‘노숙자 정씨’가 신문사를 찾아온 것은 그해, 5월 초였다. 언론사에는 수많은 종류의 ‘기인’들이 찾아와 “내 귀에 도청장치 있다”는 식의 제보를 한다. 처음에 나는 그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다소 건성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대단한 특종까진 아니어도 괜찮은 기사가 충분히 될 듯 했다. 그를 데리고 직접 광주로 내려갔다. 현장을 둘러보며 확신했다. 정씨는 예전의 건물과 거리를 정확히 기억했다. 여러 사실관계들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극적인 인생행로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벌을 받느라 노숙자 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이제라도 양심선언을 하고 고인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광주에 진입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5 ·18 문화재단    “… 21년 만에 광주 5.18 묘지를 찾은 정씨는 끝내 통곡을 참지 못했다. 눈물은 80년 5월21일 사망한 광주 시민 임은택씨의 묘비 위로 떨어졌다. 죽은 자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의 숭고한 뜻은 커다란 사랑으로 남아 바른 삶의 지표가 됐습니다. 못다 이룬 한을 훌훌 털고 가소서.'” 모처럼 뿌듯한 기사를 썼다며 제법 자위하고 있었는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정씨였다. “기사 나왔다면서요.” “예, 아직 못 보셨습니까.” “아니, 그러면 미리 말을 해야지.” “18일에 쓰겠다고 제가 말씀 드렸었는데.” “그게 아니라, 돈을 줘얄 것 아뇨.” “저희는 인터뷰 대가로 돈을 드리는 일은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일보>는 안 그러던데.” “예?” 순간 머리속이 하얘졌다. 5년차 사회부 경찰기자는 그제야 뭔가 일이 잘못 됐음을 느꼈다. 옛 기사들을 찾아봤다. 그 전 해, 그리고 그 전전 해의 5월, 어느 중앙일간지와 시사주간지에 ‘노숙자 정씨’의 기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연례행사처럼 ‘양심선언’을 반복했던 것이다. 지난 9년 동안 부실하게 양산한 수많은 기사 가운데서도 이 기사는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다. 가장 부끄러운 기사다. 일반적인 뉴스가치의 잣대로 보자면 정씨의 이야기를 다시 다루는 것은 기자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내가 쓴 기사의 틀은 광주사태의 한복판에서 시민을 학살한 군인이 ‘처음으로’ 그 사실을 고해한다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를 절대로 미워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더 애잔해지긴 했지만, 나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거짓말을 한 셈이 돼버렸다. 그 악업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다. 이젠 해마다 ‘그날이 오면’ 광주 대신 정씨를 떠올린다. 광주를 생각하건 정씨를 기억하건, 옷깃을 여미며 “똑바로 정신 차리고 살자”는 결심을 하는 것은 매 한가지다. 그 때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취재원(news source)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데 있었다. 첫 순간, 행색만 보고 상대를 의심했던 것도 잘못이었지만, 그걸 극복한답시고 전폭적인 믿음을 걸고 모든 기사를 그에게 내맡긴 것이 더 큰 잘못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원을 의심하고 뒤집어보는 일을 생략한 것이다. 이른바 ‘불량기사’의 상당 부분은 기자-취재원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어떤 취재원을 얼마나 만나, 무엇을 물어보고, 그 대답을 제한된 텍스트에 어떻게 담을 지가 기사의 내용을 결정한다. 앞으로는 언론 환경과 취재 관행이 나아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기자 노동은 ‘시간 싸움’이다. 5분 안에 기사를 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30분 안에 기사를 다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 시간 안에 취재를 마쳐야 하는 식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씨름하고 다시 다음 반나절을 준비하는 ‘하루살이’가 기자들이 미쳐 돌아가는 이 바닥의 대강이다. 어떻게 하면,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취재원을 가급적 최소한(최대한이 아니라) 만나 기사가 갖춰야할 그럴듯한 모양새를 꾸며 제 시간에 마감할 수 있을지가 기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한국 언론이 양산하는 기사의 대부분은 그래서 ‘패스트푸드-저널리즘’에 비유할 수 있겠다. 준비된 재료만 들어간다. 모든 재료는 순식간에 요리되거나, 이미 요리돼있다. 그래도 몸에 좋고 맛도 좋다고 선전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그런 음식들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먹는다. 그래서 또다시 ‘준비된 재료’를 다시 챙겨 내알 장사를 준비한다. 가끔 그 음식에 파리 날개, 쥐꼬리, 바퀴벌레 더듬이 등이 들어가 항의를 받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사람들은 계속 이 식당을 찾을 테고, 나는 계속 음식을 팔아 해치울 것이다…. 최근 ‘피디 저널리즘’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한정된 취재원에 대한 무비판적 의존이라는 기자들의 관행과 관련이 있다. 바쁘기로 따지자면 피디 역시 기자 못지않겠지만, 여하튼 그들은 작가 등 스텝을 동원해 다각도로 취재할 인력을 갖추고,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호흡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여러 취재원을 두루 만나 복잡한 사실관계의 풍부한 이면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기자는 ‘사실’에 목숨을 건다. 이 말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그 사실이 ‘진실’을 드러낸다는 조건 하에서만 사실은 존귀하다. 사실은 취재원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취재원의 성격과 숫자에 따라 진실은 다른 모습을 띤다. 때로는 ‘명백한 사실’이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사건 과정에서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취재 내용이 취재윤리 위반을 넘어 진실로 드러나면서 ‘피디 저널리즘’은 언론 보도의 한 정점을 보여준 탐사 저널리즘의 또다른 이름이 됐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사회부 경찰기자 시절, 종로경찰서를 출입했다.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귀찮을 정도로 많았다. 써야할 기사는 쌓여 있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집회를 모두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자들은 이럴 때, 경찰을 활용한다. “얼마나 와 있어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 몇 명 안 되죠? 근데 언제까지 한대요? 뭐, 굳이 해산시키고 그런 일은 없겠죠? 하하. 그럼요. 경비과장님 고생하시는 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근데 주로 어떤 구호를 외치던가요? 그 단체 대표 이름이 뭐였더라. 과장님은 알고 계시죠?” 어지간한 경우라면, 현장에 나간 경찰의 정보는 ‘사실’이다. 여기에 중대한 거짓은 없다. 잘못 꾸며 말했다가 기자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싶은 경찰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공하는 사실에 의존하는 한 그 집회의 ‘진실’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는다. 경찰서 기자실에 앉아 취재한 집회는 귀찮고 시끄럽고 가망 없는 짓거리일 뿐이다. 평일 오후, 지역 주민들이 몰려와 청와대를 항의방문 하겠다고 기를 쓰는 일은 이제 기사 속에서 ‘도심 소음 공해의 하나’로 취급된다. 만일 그 기사의 취재원에 집회 참가자가 추가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고 보니, 미군 사격 훈련 때문에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지역 농민들의 시위다. 마감에 쫓기느라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면, 그게 불량기사가 된다. 사회의 악성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패스트푸드-저널리즘이다. 이는 다시 출입처 관행과 연결돼 있다. 피디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에는 유난히 ‘현장의 목소리’가 많다. 반면 기자들의 보도에는 ‘고위 관계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자는 힘 있는 기관의 내부자로부터 정보를 구한다. 분명히 출입처는 내부자와 친밀해질 수 있는 강력한 발판이다. 외부적으로 폐쇄적인 권력기관을 감시하기 위해 한국 언론이 부여잡고 있는 코뚜레다. 그러나 이 ‘내부자에 대한 유혹’이 기자들을 망가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기자들은 틈만 나면 고위 관계자, 유력자, 명망가, 권력자들과 친분을 쌓으려 애를 쓴다. 바로 그들이 특종을 건네줄 취재원이기 때문이다. 자꾸 만나면 정든다. 검찰 출입 기자는 검사의 관점에서, 정당 출입 기자는 국회의원의 관점에서, 청와대 출입 기자는 대통령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자신의 뿌리는 시민사회에 있고, 그 구실은 권력기관의 숲에 보내진 감시견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때로는 주인인 시민사회를 향해 외려 사납게 짖기도 한다. 제가 검사고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인줄 안다. ‘권력자의 언어’로 소통하는 기자들에게 익숙해진 권력기관의 내부자들은 뜨내기 같은 피디들을 좀체 만나주지 않는다. 출입기자들의 높은 벽에 가로막힌 피디들은 하는 수 없이 ‘현장’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오히려 그 과정이 피디 저널리즘을 건강하게 살찌우고 있다. 피디 저널리즘에는 넥타이 멘 익명의 관계자 대신, 생생하게 살아 분노하는 실명의 시민들이 있다. 피디 저널리즘에 등장하는 고위 관계자는 시민의 분노 앞에 제대로 변명도 못하는 무능력자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취재원이 기사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하는 동시에,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되면 기사의 방향이 어떤 취재원을 선택할지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수습기자 시절, 모든 기자는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화재, 살인, 성폭행, 재난현장, 시위현장 등을 취재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방식을 전수받는다. 좋게 말하면, 이는 미숙한 사회초년생이 기자노동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과정은 패기만만한 초년기자가 기성의 매체가 쌓아올린 거대한 ‘도그마’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를 통해 매체는 또 하나의 부속품을 복제한다. 기자가 바뀌어도 특정 매체가 생산하는 기사는 모두 닮은꼴이다. 종업원은 바뀌어도 그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은 매양 패스트푸드다. 농민 시위가 일어났다. 사회부 초년 기자는 능숙하고도 당연하게 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취재한다. 몇 명이 어디에 모였는지, 어디로 행진하는지, 전경들은 몇 명이나 동원했는지, 폭력시위는 없었는지, 성명서에선 뭐라고 이야기했는지를 기계적으로, 그러나 빠르게 취재해 원고지 5장의 단신 기사로 쓴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보다 많은 취재 시간을 허락한다 해도 불량기사가 눈에 띠게 줄어들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층 취재를 위한 시간적, 물질적 환경을 바꾸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 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기자 각자에게 내면화돼 있는 취재 관행, 특히 취재원의 취사선택에 대한 메카니즘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사이더’에게 의존해 권력관계의 치부를 폭로하는 특종기사가 아니라, ‘아웃사이더’에 눈길을 돌려 소외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로부터 사회의 혈맥을 찾아가는 심층보도는 하나의 대안이다. 이때 아웃사이더의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정권을 비판하고 친일파를 저주하고 미국을 고깝게 여기며 가난한 부모를 탓하면서 강남 아파트에 군침 흘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분명하고 명확한 것은 없다. 단정적으로 확실하게 말하는 인사이더들에 비하자면, 아웃사이더는 귀찮고 짜증나는 취재원이다. 아웃사이더를 수없이 만나고 난 다음에야 하나의 흐름을 잡아 기사를 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취재를 위해 기자는 술잔을 기울이는 대신, 책을 펼쳐들고 자료를 찾고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 북핵 사태와 관련해 여러 ‘인사이더’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넘쳐나고 있다. 실명 또는 익명의 ‘관계자’들이 북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 일부는 한국 정부 관료이고 일부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관료이며, 일부는 한국의 대학 교수이고 일부는 미국, 중국, 일본의 대학 교수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 한국은 세계사적 위기의 진앙지다. 내가 보기에 그 말에 거짓은 없다. 대부분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예컨대 세계사적 위기의 한복판에 서있는 한국인들은 왜 여전히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그들을 태연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어떤 ‘인사이더’들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북핵과 관련해 지금 한국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해야 할 것은 ‘아웃사이더’인 시민이다. 본래적 의미에서 이번 사태의 진정한 인사이더가 바로 그들이기도 하다. 전쟁이 나면 그들이 죽을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져도 그들이 먼저 굶을 것이다. 아마도 관료와 교수들은 포화를 피해 다닐 것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뭐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북핵 사태의 진실의 상당 부분은 ‘암시랑도 않는’ 시민들에게 있다. 그들에게 귀 기울이는 방법에 대해 한국의 기자들이 낯설어 할 뿐이다. 내가 쓴 ‘노숙자 정씨’의 기사는 불량기사일까. 그렇다. 단수의 취재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괜찮은 기사를 쓰려면 취재원의 숫자가 많아야 하고, 그들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그러나 ‘노숙자 정씨’의 기사가 치명적으로 악질적인 기사는 아니었다고 감히 변명해 본다. 어떤 면에서 나는 ‘아웃사이더’인 필부들의 이야기를 보다 중요하게 다루고 싶었던 것이다. 시행착오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미숙한 사회부 기자는 노숙자 정씨로부터 한 수 배웠다. 다만 세상의 더 많은 ‘정씨’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무능이 여전히 부끄러울 뿐이다.   안수찬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748 | 추천: 0
지난 23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렸다. 2차 핵실험의 징후가 포착되었다는 뉴스가 소시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은 의외로 차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반도 남쪽 사람들의 신경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북한의 도발적인 행태에 그만큼 면역이 되었다는 뜻일까.... 여러 여론매체에서는, ‘이제는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거나 ‘그동안 햇볕정책, 포용정책을 하면서 북한에 퍼다준 돈이 북한 인민에게 가지 못하고 핵개발을 앞당기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실패한 대북 포용정책을 이제는 포기해야 한다’ 라는 의견을 퍼뜨리고 있다. 하루하루 환자들과 마주하면 좁은 진료실에서 살아가는 치과의사가 복잡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뭐 있겠느냐고, 혹 다른 사람들이 북한의 핵실험을 화제로 꺼내더라도 입을 닫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북한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에서 무언가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낀다.   2004년 9월 체첸 반군 테러범에 의해 인질극이 벌어졌던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 지역 제1소학교에 러시아 특수부대 요원들이 진입해 1천여명의 대규모 사상자를 내고 종결되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북한 핵실험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한 바는 이렇다. 몇 해 전에 러시아에서 체첸 반군들이 한 학교에 침입하여 학생들을 인질로 삼은 일이 있었다. 러시아 당국은 처음에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군대를 투입하여 인질극을 종료했다. 물론 체첸 반군과 인질, 러시아 군인들의 상당한 희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체첸 반군의 인질극과 북한의 현 상황은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죄없는 러시아 학생들과 죄없는 북한 주민들이 인질처럼 잡혀 있는 것이 비슷하다. 북한은 확실하게 개발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핵무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해외 계좌를 틀어막아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은 대가로 더욱더 어려운 상황을 이끌어 내었다. 리영희 선생의 말씀대로, 북핵사태는 본질적으로 미국의 제네바 협약위반 사태를 오도하는 패러다임이라고 본다. 이라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그렇듯이, 어쩌면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도 사실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느냐, 핵실험을 하느냐 보다는 미국이 북한을 어떻게 요리하고자 하느냐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오직 대화와 협상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를 앞세운 강력한 대응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길을 돌아가야 한다. 국내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답답하더라도 돌아 돌아가는 길을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이, 어째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도직입적인 시원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것일까. 국내 문제에는 기득권이 달려있지만, 북한은 그냥 몰아부치기만 해도 상당수 기성세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안타깝다. 정치도, 외교도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일 텐데, 작게는 한반도, 크게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하는 일을 반대하며 무작정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 현실이.   위성에 바라본 북한 영변 핵 시설단지. 사진 출처 - 2003 몬테레리 연구소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657 | 추천: 0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던 사형수가 수감 8년 만에 지병으로 숨졌으며, 사형수가 사형 집행을 통하지 않고 자연사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보도가 신문 한 구석에 보이더니, 사형수 23명의 삶 마감전 행동이 미국 AP 통신의 정보공개로 입수된 내용이라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통화 “엄마 ---”라는 제목으로 신문 한 자락에 소개되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가 잔잔한 파문을 이으며 사형 제도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보도에 이어, 10월 10일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 행사를 갖는다는 단신 보도로 이어졌으나, 북핵 사태에 휩쓸려 주목도 받지 못한 체 쓸쓸이 뒷전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사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깊다고 이야기된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도 그렇고, 고조선 8조금법에도 나오는 사형, 중세의 암울한 마녀재판과 화형 시대를 지나, 이성과 계몽의 시대라는 근대에 들어와서도 우리가 어쩌면 눈에 익히 알고 있는 근대 위대한 사상가들이었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몽테스키외, 장자크 루소, 칸트 등도 모조리 사형 제도를 지지하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사형 제도의 견고함을 볼 수 있고, 칸트의 ‘국가를 해체하더라도 감옥에 있는 사형수를 먼저 처단해야 한다’는 말에서는 전율까지 느끼게 만들며, 아직도 국민 여론 조사를 하면 사형제도 존치 의견이 많다는 보도에서는 벽을 느끼지만 이는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 분명해 보인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도 물론 사형 제도에 대하여 정당한 것이고,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힌 지 오래 되었다. 헌법재판소분들의 의견은 이렇다.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으로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반하지 않고, 헌법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종류이기도 하므로 헌법 질서에 반하지 않으며, 우리의 문화수준이나 사회 현실에 비추어 완전히 무효화 시키는 것이 타당치 않다’고 설시하면서 친절하게 뒤에서 부기하기를 ‘--- 비록 법정형으로서 사형이 적정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선고함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충고하신다.     물론 이런 견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분들 중 극히 일부가 ‘사형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고, 형벌의 목적인 범죄의 예방, 응보, 범죄인 개선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 달성에 필요한 한도를 넘어서므로 비례원칙에 반한다’고 반대 의견을 펴시는 분들도 있다. 문제는 헌법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 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사형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은 사형은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가 아니라고 하고,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사형이 기본권의 본질적인 침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법을 모르는 사람도, 법을 좀 아는 사람도 참으로 헷갈리게 생겼다. 그런데 법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보인다. 왜 그럴까. 그래야 법률가들이 법을 가지고 밥을 먹고 살 것이며, 모든 법령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에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 신체, 자유가 天賦不可讓權利(하늘이 내려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가르치고 배우는데,  불가양의 권리라고 떠들다가도 사형 제도에 들어가면 위 말이 쑥 들어가 버린다. 결론은 그렇다. 생명은 누구에게 양도할 수 없고, 양도 될 성질의 것도 아니고, 생명과 생명을 비교하는 것은 물건과 물건을 이익형량 비교하듯이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동의한다면,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데 이론이 생길 수 없는 것인데 현실은 아득하다. 국회의원들은 16대에 이어 17대에도 사형폐지법안을 과반수 이상 의원들로부터 동의 받아 법안 발의를 해 놓은 채, 여기 저기 눈치만 보고 정치적 제스처만 취하는 선량(?)들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어 보인다. 결국은 프랑스 미테랑 같은 지도자가 나와서 헌법적 결단으로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는가 보다며, 미래의 지도자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 그런데,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 곧 한반도가 전쟁에 휩쓸리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태평스레 웬 사형제도 운운하냐고 ? 그것은, 전쟁의 위협과 가능성이 커질수록 우리는 목이 터지도록 평화를 외쳐야 하고, 폭정과 억압이 심할수록 자유의 깃발을 높이 쳐들어야 하는 것처럼, 너무도 절박한 생명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지 못할수록 더욱 생명을 외쳐야 하지 않겠냐고 ---   김희수 위원은 현재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677 | 추천: 0
어제 네가 보여준 미소가 눈에 선하다. 집합 장소로 들어가다가 나를 돌아보며 씨익 웃더구나. “걱정 마세요. 잘 할 테니까.” 그 순간 이 녀석이 그새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남들 다 가는 군대 가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었는데 막상 네가 군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 한 것이 착잡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아들 둔 이 땅의 부모들이 모두 한번씩은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겠지.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얼마 전부터 그럴 수도 있겠다 어느 정도는 예상도 했던 일이건만 하필이면 아들 군대 보낸 날 그런 뉴스를 듣게 되니 이래저래 기분이 더 착잡해 지더구나. 문득 20년 전 네 첫 돌잔치 때 광경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의 친구들이 모여 축하를 해 주고 함께 술잔을 나누었지. 너도 대강 알겠지만 그 당시는 너희 세대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던 살벌한 시기였다. 멀쩡한 젊은이가 군대에 끌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대학생이 경찰에 고문을 당해 죽기도 하던 그런 때였다. 그날 아빠와 우리 친구들은 네 돌잔치를 핑계로 오래 만에 마음껏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때 아빠 친구 하나가 마치 약속이라도 하는 듯이 너를 보며 이야기 했었다. “그래, 네가 이 담에 어른이 됐을 때는 더 이상 전쟁도 없고 강제로 군대 끌려가는 일도 없고,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필요도 없는 세상이 와 있을 거다. 꼭 그렇게 만들어 주마.” 말귀를 알아들을 리 없는 돌배기 어린 아기에게 자못 진지한 어조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그 친구를 보고 모두 웃었지만 적어도 그 약속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단다.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사진 출처 - 2006 육군훈련소 국방화보 그로부터 정말 눈 깜짝할 새에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넌 대학생이 되었고 우리 사회도, 나 자신도, 아빠의 친구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우리가 네게 약속했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구나. 전쟁의 위협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이 있고 여전히 젊은이들은 원하건 원치 않건 군대를 가야만 한다. 대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죽어가고 운동이냐 취업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민주주의를 외치며 지금도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고 여전히 젊은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한다. 도대체 지난 20년간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 놓은 걸까. 새삼 이런 질문이 아프게 고개를 내민다. 그래, 우리가 네 돌잔치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는 못한 것 같다. 미안하구나. 어쩌면 다시 너와 네 친구들이 너희의 아들들에게 똑 같은 약속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꼭 그래주길 바란다. 어쨌든 세상은 그런 약속들로 인해 조금씩 좋아지지 않겠니? 너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이라고 했지만, 난 네가 좀 다르게 생각하면 좋겠다. 내가 늘 하던 이야기 있지 않니?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 이거 말이다. 생각해 보면 군대 생활은 네가 밖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군대가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웠을 사람들을 만나 서로를 겪어내는 것도 어쩌면 너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2년 남짓의 기간 동안 졸병에서 고참까지를 압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도 군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중에라도 네 인생의 그 2년이 결코 헛된 시간이 되지는 않을 것 같구나. 너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네가 보낸 이메일이 와 있더구나. 어제 밤 잠들기 전에 보내 놓은 모양이지? 걱정 말라는 이야기, 내 건강 걱정, 그리고 맨 마지막에 써 있는 한 마디, ‘사랑합니다. 아버지.’ 순간 울컥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단다. 이 녀석이 이제 다 컸구나. 자식,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줄도 아네... 그래. 나도 사랑한다. 너도 잘 지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꾸나. 아빠가.(넌 이제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난 여전히 아빠란 호칭이 좋단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835 | 추천: 0
‘인권 감수성’이란 말을 우리는 종종 접하며 인권 감수성의 개발은 인권교육의 기본이자 목표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자극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서 흥분하기 쉬운 상태 또는 성질”을 ‘감수성’ 혹은 ‘민감성’이라 할 때, ‘인권 감수성’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극이나 사건에 대하여 매우 작은 요소에서도 인권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하면서, 인권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부연하자면, ‘인권 감수성’이란 “인권문제가 재개되어 있는 특정상황에서 그 상황을 인권관련 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며, 그 상황에서 가능한 행동이 다른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알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식하는 심리과정,” 즉, “상황을 인권관련 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인권을 옹호하는 행동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과정”이기 때문이다.(국가인권위원회 사이버인권배움터 참조). 대학에서 인권교육을 하는 필자 역시 학생들에게 ‘인권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떠한 것을 예로 들면 좋을지를 늘 생각하는데, 다음의  세 가지를 자주 원용하곤 한다. 첫째는, 주부 내지 어머니의 인권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에서 언급되듯, “모든 인간은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갖는다.” 주부습진과 함께 유달리 우리나라의 주부들에게 많은 병이 울화병이라 한다. 백과사전을 보면,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은 장년의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정신 질환이며, 화를 참는 일이 반복되어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키는데, 가슴이 답답하며, 불면증, 거식증, 성기능 장애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아울러, 화병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질환이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는 1996년에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했는데, 이 질환을 영어로 'hwa-byu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국의 주부들은 곧 아내이자 어머니이다. 이들에게도 행복추구권과 휴식의 권리가 있음은 당연하다. 아마도, “나도 주말엔 쉬고 싶다. 친구들과 영화 한편이라도 보고 싶고, 책방에도 가보고 싶고, 부엌도 한주에 한번이라도 휴업하고 싶다. 방 한 칸을 따로 갖진 못한다면 마음속에라도 방 한 칸 갖고 싶다. 주부이기 전에 나도 인권이 있는 한 명의 존엄한 인간이다”라고 아주 조용하게라도 때로는 절규하고 싶진 않을까? 둘째는, 정신지체장애를 포함한 모든 장애인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성(性)에 대한 권리이다. 강의 시간에 “그들의 사랑할 권리--정신지체인의 성(性)과 결혼”이라는 다큐스페셜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때, 필자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미소와 함께 인권 의식이 생겨남을 읽는다. 그 TV 프로는, 그에 대한 소개 기사대로, “흔히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상인도 잘 살기 힘든 세상에, 정신지체인 끼리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일반이 장애인에 지니는 편견과 무관심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했는지 살펴본다. 행복하게 사는 정신지체 부부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사랑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생각한다.” “성년에 이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를 이유로 한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갖는다”(세계인권선언 제16조 1항)는 것은 이들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 그러나, 이들의 그러한 인권은 혹여 금기시 되거나 논외로 여겨지지는 않는가?     장애인의 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핑크팰리스’ 사진 출처 - 네이버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권도 비슷한 같은 맥락 아닐까? 이들 역시도 행복추구권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 의해 홀대 당하거나 방치되기 일쑤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는 일생을 간다 한다. 사랑을 느끼는 마지막 순간은 병상에서 접하는 위로와 미소, 더 나아가 임종의 순간에 눈을 감겨주는 손끝까지 아닐까? 외로운 노년, 특히 홀로 남은 노인들의 경우 그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싶고 더 나아가 사랑하고 싶은지 우리는 헤아려 보았는가? 홀로 남겨진 노인들은 홀로 살다가야만 하는가? 그들에게 이러한 인권은 시효가 이미 지났는가? 셋째로, 몇 년 전에 TV에서 ‘태조 왕건’을 보면서 철원에서 나주로 왔다 갔다 하는 왕건을 보면서, 더욱이 말을 탄 왕건이 발이 불편할 군화와 녹슨 창 하나 들고 마라톤을 해야 하는 수많은 보병들을 이끌고 가면서 “빨리 가자”고 외치며 말을 달릴 때, 필자는 그 보병들에게 눈을 돌리곤 했다. 그들에게 과연 그 전쟁은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을까?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온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배 굶으며 죽음의 공포에도 사로잡힌 채 왕건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며 달리는 가엾은 그 병사들도 왕건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들 아닌가? 칼과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무명의 병사들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그 약속과 기다림과 절망도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함께 읽어야하진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TV 드라마는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텍스트라 하겠다. 주인공에게만 주목하는 우리들은 이젠 장군이나 미남, 미녀가 아닌 주변의 등장인물의 처지에서 드라마를 거꾸로 읽을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수많은 영화와 아이들의 동화 역시도 속속들이 인권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주와 왕자가 아닌, 임금과 장군이 아닌, 게다가 선남선녀가 아닌 이들까지 모두가 전 인류에 보편적인 인권의 주인공들이다. 이렇듯, 인권 감수성은 중심에서 주변으로의 여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을 가능케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과 낮은 곳에 눈을 돌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감수성이 있는 이들은 남들이 ‘작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에서 자주 슬퍼하고 자주 기뻐한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인권 감수성’이라는 기차는 우리를 기다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거리이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은 못해보는 여행인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이 우리를 초대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인 가을에 이런 기차여행은 어떨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8 | hrights | 조회: 121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