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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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사교육비가 엄청 늘어 상반기에 그 액수가 15조를 돌파했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사람들이 물가가 너무 올라서 살기 힘들어하고 가계 내의 소비를 줄이며 생활하는데, 가계당 상반기 교육비 지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여 무려 9.1%나 늘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 때 분명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을 부르짖었었다. 그래서 돈 없이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즉 공교육을 강화시켜 누구나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사교육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교육의 현실을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떠들썩했던 영어 몰입교육도 그렇거니와 0교시와 밤 10시 이후의 심화보충학습 실시에 관한 정책, 학교 성적에 따른 우열반 편성과 고3학생들의 수능 이후 학원수강 학교 출석 인정이라든지 사설 모의고사와 관련한 지침 등이 포함된 4.15 학교 자율화 정책이 그것이다. 이 정권이 화려하게 주장한 이러한 정책들은 말 그대로 학교 자율화를 위한 정책이 아닌 범국가적 사교육 장려 정책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공교육을 운운하다니 사실 어불성설이다. 학교의 민주화나 공교육의 강화나 정상화를 포기한 이정권이 지난 6개월간 쌓은 업적(?)이 바로 수치로 나타난 상반기 사교육비 증가가 아닐까 생각된다. 참교육학부모회 등 20여개 단체로 구성된 ‘4·15 공교육 포기 정책 반대 연석회의’가 주최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관리공단에서 열린 ‘국제중 설립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게다가 지난 7월말에 처음 실시된 서울시 교육감의 주민직선제의 결과 또한 사교육을 장려하는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었다. 17개 구에서 지지를 받지 못했었어도 사교육의 왕국인 강남, 서초, 송파구의 단결된(?) 지지를 받은 공교육감은 당선되자마자 서울시내 국제중학교 설립과 고교 선택제를 추진하여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국제중학교에 대한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설명에서 이명박 정권이 취했던 유사한 수법이 발견된다. 국제중학교는 수업은 영어로 실시하겠다고 하는데 입학 할 때 학생을 영어시험으로 선발하지 않으니 영어 교육에 대한 사교육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올 10월에 치러질 전국단위 성취도 평가는 공교육감이 야심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정책 중 하나이다. 말로는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정책이라고 하지만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는 시험하나가 학업성취도를 높인다면 말이 되는가? 오로지 일련의 정책을 통한 사교육 시장 키우기 정책이고 이 정책에 모든 교육공무원을 동원시키고 행정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지침에 따르지 않으면 교원에 대한 인사권도 동원하여 징계나 고발을 운운하여 압력을 행사한다. 그러면서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한단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다. 강남 모 동네에 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 공교육감에 대하여 집값의 하락을 염려하여 유래 없는 투표참여율을 보여준 강남 유권자들의 단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대조적으로 사교육비 감소를 희망하는 유권자들은 왜 하나의 힘을 모으지 못했을까하는 탄식을 금할 수 없다. ‘사교육비 확 줄이겠습니다.’, ‘아이들만 생각하겠습니다.’라는 선거 문구에서 진실성이 있었는가? 정말 공교육감이 주장한 선거문구대로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믿었는가? 겉과 속이 다른 말도 안 되는 정책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거짓으로 운운하지 말고 솔직하게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서 정책을 내세우는 것이 교육에 대한 사회적 혼란을 막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공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공교육에 투자할 자본도 없고 투자할 마음도 없다. 사교육을 통해서든 아니든 오로지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자들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이것이 진정한 자유주의이고 이 정부와 공교육감의 교육적 소신이라고!’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473 | 추천: 0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요즘 광고 불매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형법이 제정된 이래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 예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당연한 법리 적용인데 쓸데없는 트집을 잡는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50년 동안 하지 않던 일을 갑자기 하겠다는 것인데 논란이 없을 수가 없다.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형법에서 규정하는 업무방해죄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처벌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광고 불매 운동을 한 것이 형법에서 규정한 ‘위력’에 해당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결국 이 논쟁의 중심은 인터넷에서 광고 불매 운동을 한 것을 ‘위력’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력이란 어떤 사람이 난폭한 행동을 해서 다른 사람의 의사를 제압하고 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자신의 생각과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교환한 것을 위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업무방해죄에 대한 위와 같은 해석은 일반인의 상식에 어긋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검찰이 이렇게 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법원은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통해 여러 근로자들이 파업을 결정하는 것을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인터넷상의 카페로, ‘여러 근로자들’을 시민으로 바꾸면, 광고 불매 운동에도 업무방해죄를 규율할 수 있다는 논리가 쉽게 만들어진다. 검찰이 광고 불매 운동에 대해 자신 있게 기소한 것, 법원이 그 관련자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검찰과 법원의 행동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왜 검찰과 법원은 50년 동안 광고 불매 운동을 처벌하지 않았던 것일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매우 자주 조직적인 불매 운동을 해 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불매 운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본 회사들이다. 멀게는 교과서 파동, 가깝게는 독도 분쟁에 이르기까지 일부 일본 정치인의 행동 때문에 의의 일본 회사들은 예기치 못한 손해를 입곤 하였다. 그들에 대한 불매 운동은 인터넷을 떠나 오프라인에서 존재하는 여러 단체에 의해 조직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한 기관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거나 그 관련자를 구속한 예는 아직껏 없었다. 이것은 한국 검찰과 법원이 국수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주도했던 다음 카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이 지난 30일 창립총회를 열고 같은 이름의 정식 언론운동시민단체로 출범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광고 불매 운동에 대한 사법부의 대응을 보면, 중국의 고사성어 중 하나인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떠오른다. 중국 진시황이 죽은 뒤 어린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삼은 환관 조고는 자기를 반대하는 중신들을 가려내기 위해 사슴을 황제에게 바치면서 ‘말’이라고 하였다. 신하들 중에는 조고의 말이 맞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하는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였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업무방해죄에 관한 형법 규정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광고 불매 운동에 그 규정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사슴을 말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슴이란 용어를 없애고 말 가운데 ‘뿔이 있는 말’과 ‘뿔이 없는 말’이 있다거나 ‘큰 말’과 ‘작은 말’이 있다는 식으로 분류하면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사슴은 ‘뿔이 있는 작은 말’에 속하게 된다. 조고의 말이 맞다고 한 진나라의 신하 중에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사슴을 말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석상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 사법 질서의 본래 취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근대 사법 질서는 국가의 행동자유(行動自由)를 억제하고 시민의 행동자유를 확대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국가의 행동자유를 억제하는 가장 큰 원칙이 이른바 죄형법정주의이다. 이걸 통하여 시민들은 군주나 귀족의 전제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형벌은 과잉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도 포함된다. 형법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면 위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다. 모호한 규정은 본질적으로 형벌의 과잉 적용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그 대표적 예이다. 우리가 사법시험을 치러 검사와 법관으로 임용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우리는 전문적 지식을 가진 법률가들이 정치적․사회적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을 적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요구가 없다면, 우리는 검사나 법관 역시 선거를 통해 선출하였을 것이다. 사회의 많은 부분이 민주화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사법 영역에서 선거 제도의 도입 문제가 거론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결국 검사와 법관이 이러한 취지를 무시한 채 법률을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그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사법 질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초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 사법부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 결과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사법 관료가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와 가치관에 빠져 사회 일반인의 상식을 깨기 시작할 때, 그 사회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인터넷상의 어떤 그룹이 일본 회사에 대한 불매 운동을 전개하고 그 회사가 이들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한 경우, 검찰과 법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이들을 처벌할 것인가? 만약 아파트 부녀회에서 특정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과 법원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할 따름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495 | 추천: 0
정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 1964년은 아시아 최초로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그 해 미국에서는 풍진이 유행했는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에도 풍진이 옮겨왔다. 임산부가 임신 초기 풍진에 걸리면 선천적으로 청각 장애를 갖는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 오키나와에는 그 무렵 500여명의 청각장애아들이 태어났고, 이들을 위해 오키나와에는 기타지마 고등농학교가 설립되는데 이 학교 학생들의 고시엔(甲子園, 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의 별칭) 도전기를 다룬 만화가 ‘머나먼 갑자원’이다. 그런데 이 만화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투수-타자 대결구도를 줄거리로 하는 일반적인 고교야구만화와는 전혀 다르다.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고시엔에 도전하는 과정이 일반인과 비교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이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청각 장애’가 아니었다. 고등농학교는 고시엔 자체에 출전할 권한이 없었던 것이다. 고시엔에 출전하려면 일본고교야구연맹에 가입해야 하는데 고등농학교는 ‘정식 고등학교’가 아니라서 연맹가입이 불허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고등학교 지위를 인정받아 고시엔 출전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 이 만화의 주된 내용이다(기타지마고등농학교는 고시엔 지역예선에서 3년 동안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선천적 장애보다 사회 제도의 제약임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몇 년 전 조총련계 학교가 고시엔 출전자격을 얻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정식 고등학교’가 아니므로 고교야구연맹 가입이 그동안 불허되어왔던 것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 1988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린 서울올림픽에서는 베이징올림픽 중국 관중들의 반한(反韓) 응원 못지않게 우리 관중들의 반미(反美) 응원이 대단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이 경기를 할 때 관중 상당수가 ‘U.S.S.R’을 외치며 소련을 응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988년만큼 서울 하늘에 적성국 국기가 휘날리고 국가가 울려 퍼졌던 때도 없었다. 지금은 정치인이지만 그 때는 검사였던 함승희는 「성역은 없다」라는 책에서 88올림픽 당시 잠실주경기장에서 소련 국가가 연주될 때 주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련 국기를 향해 경의를 표할 때 저 많은 사람들을 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처벌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었다고 고백하였다. 검사라는 직업이 일반인과 다른 상식에 근거해 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이었다. 요즘 검찰이 벌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함승희의 글을 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이 마지막 귀국 준비에 여념이 없던 지난 8월 25일 오전 베이징올림픽 덕을 톡톡히 본 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주년’ 법률가대회 개회식에서 유달리 ‘법치주의’를 강조한 연설을 했다. 우리 사회에 최근 “선동적 포퓰리즘의 폐해가 심각하며”, “국가의 존재의의와 공권력의 권위를 무력화시키고, 주권자인 국민이 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행동도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가 생각하는 법치주의란 ‘준법정신’ 한 단어로 요약되었다. ‘법을 지키자’는 것이 전부이다. 법치주의에 대한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이러한 인식 수준은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추어 본다면 ‘올림픽 예선탈락’ 정도의 수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법치주의는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공동체 보장과 기본권 보장이라는 상위 가치에 복종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가지는 원리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법치주의는 법치주의가 달성해야 할 상위가치에 복종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아마도 ‘일단 법을 지켜라’일 것 같다. 요즘 들어 부쩍 변호사로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예전에 배운 것에 비추어 생각해 보았을 때 그 결론대로 되지 않는 일이 점점 늘어난다. 특히 업무상 배임죄가 그렇다. 언제가 돼야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찾을 수 있을까.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480 | 추천: 0
허윤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 문제가 가진 복잡성을 이해한다고 종종 말하고 있으나, 이와 동시에 직장에서 비정규직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목원 대학 강의에서). 또한, 새 정부의 첫 번째 노동관련 행동은 코스콤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장기 농성장인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앞 천막을 철거하는 것이었다.      2007년 9월부터 약 200일 동안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 측에 정규직으로 자신의 지위를 승격시켜줄 것을 요구하며 여의도에 있는 회사건물 근처에서 농성시위를 벌였다. 자기들 자리가 뉴코아와 홈에버 아울렛의 아웃소싱 직원들로 대체되는 것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인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랜드 노조원들은 모두 불법행위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벌금부과를 받았다. 이랜드의 노조원(KCTU)들은 2007년 7월 8일부터 파업에 들어가 비정규직 직원, 특히 뉴코아 및 홈에버 슈퍼마켓의 계산원들을 해고하는 회사를 고발하였다. 회사 측에서는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아웃소싱 노동자로 재신청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그들을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생기는 비용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노동자들이 이 요구를 거절하고 파업을 결정하자 회사 측에서는 수퍼마켓 몇 군데를 닫아버렸다. 그들은 곧 다시 수퍼마켓 영업을 시작하였으나 이전의 비정규직 직원들은 다른 회사들에서 아웃소싱으로 들어 온 새 직원들로 교체하였다. 여기에 대한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랜드와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정치적 또는 이념적 동기를 띤 파업으로 보고 완력을 사용하여 해체시키는 정부의 행동은 공정하지 못해 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념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생계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모든 고용주들이 적어도 2년 이상 회사에서 근무한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기업 관계자들은 이 법에 대해 맹렬하게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정규직 직원들은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업 재해보험 및 국가 연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톨릭 사회교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모든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사회 보장, 특히 4대 보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임금 외에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활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 보장’이 여기에서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건강 보험을 위한 비용, 특히 노동 중에 일어나는 사고의 경우, 의료혜택이 노동자들에게 쉽게 베풀어져야 하며, 가능한 한 그 혜택은 저렴하거나 무상이어야 한다. 사회 보장의 다른 측면은 ‘휴식의 권리’와 장기간의 휴가, 즉 1년에 한 번의 연가 또는 가능하다면 연중 수차례의 단기 휴가를 포함한다. 사회 보장의 셋째 분야는 연금의 권리와 노후 대책, 그리고 산업 재해 보험에 대한 권리이다. 이러한 기본 권리들의 영역 안에서, 노동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노사 관계를 결정하는 전체적인 특수 권리 체계가 발전되어 나온다. 이러한 권리들 가운데서 노동자의 신체적인 건강이나 정신적인 건강에 손상을 끼치지 않는 노동 환경과 작업 과정에 대한 권리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 19항, ‘임금과 기타 사회적 혜택’에서 인용). 파업 400일째를 맞은 이랜드 노조원들이 지난 1일 홈플러스 영등포점 앞에서 ‘파업 400일 투쟁문화제’를 열고 회사 쪽에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비정규직 보호법은 2006년에 국회에서 힘들게 통과했으며, 2007년 7월에 실시되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 직원들을 도와 그들이 상당한 임금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노동 전문가 및 노동자들의 걱정은 이 법이 실시되기 몇 주 전에 현실화되었다. 어떤 회사들은 실제로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 직원으로 변경했으나, 어떤 회사들은 정규직 직원으로의 계약 갱신을 회피하기 위해 근무기간 2년이 채워지기 직전에 비정규직 직원들을 해고한 경우도 있다. 이것은 그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생기는 비용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국의 비정규직 직원들은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즉 그들은 자기가 언제 해고될지 또는 감원이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들은 또한 보험이나 연금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다. 2007년 노동부에서는 42,161개 직장을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직원들은 정규직 직원들보다 평균 임금 34%를 덜 받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비정규직 직원의 월급은 한 달에 평균 120만원이다. 이 금액은 정부에 의하면 4인 가족의 최소 생활비이다. 이런 상황은 빈부 차를 더 확대시킬 뿐 아니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적했듯이 비윤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아웃소싱(자체 인력이나 설비를 이용해서 하던 업무를 고용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부용역으로 대체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의 회사들 중에는 상당히 많은 일을 인도와 필리핀의 용역회사로 아웃소싱하고 있는데, 값싼 외국 인력을 이용함으로써 비용절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합법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많은 한국 회사들이 더 많은 정규직 직원의 고용을 회피하고 비정규직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외국 인력을 이용할 것이고, 노동자들과의 계약을 합법적으로 만들기 위해 점점 더 아웃소싱을 선호할 것이라 추측된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래 노동자들의 고용 기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번 정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으로의 생계를 위한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비정규직 보호법’이 보호법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보지만, 왠지 답답함이 커진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478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터넷 괴담에 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소위 “광우병 괴담”에서 전기, 수도, 의료, 방송 등 “민영화 괴담”까지 쉴 새 없이 “촛불 괴담”이 터져 나오고 있다. 괴담에 부화뇌동하며 MB를 모욕하는 네티즌들은 사법처리 영순위가 되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이 검토되기까지 한다. 촛불 괴담의 원흉으로 낙인이 찍힌 괴담은 광우병 괴담이다. 광우병 괴담의 진원지는 PD수첩으로 확인되고 있단다. MB정부와 조, 중, 동이 맞장구를 친다. 한나라당은 미국산 쇠고기 국정조사에서 광우병 괴담의 실체를 선량한 국민 앞에 밝히겠단다. 검찰은 “정치검찰”, “공안검찰”의 표찰을 달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괴담은 괴담다워야 한다. 괴담은 허위요, 날조요, 왜곡이다. 언필칭 괴담이라 치부하는 속에 진실이 담겨 있고, 국민의 바램이 실려 있다면 민심이 된다. 민심이 된 괴담을 이길 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겸허히 수용하면 다 된다. 민심에 귀 기울여 인사를 새로 하고 정책을 바꾸지 않은 채 민심이 된 괴담의 유포자를 발본색원하고자 한다면 괴담은 끝이 없고 촛불항쟁은 횃불항쟁으로 타오를 수밖에 없다. 민심을 괴담으로 호도하며 이를 억누르는 허위, 날조, 왜곡이야말로 괴담이다. 민심이 항쟁으로 표출될 때 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등장하는 아주 오랜, 질긴 진짜배기 괴담이 있다. 배후론과 색깔론 괴담! 촛불에 배후가 있다, 그 배후는 빨갱이 좌파다 등등. 에이 모지랄 녀석들, 그 낡은 괴담에 시효가 없는 줄 아는가 보다. 배후 중 배후는 반미친북세력이란다. 기실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분단냉전시대의 괴담은 성난 민심을 옥좨는 만병통치약으로 군림해 왔다. 허나 바야흐로 배후론, 색깔론 괴담이 그 오랜, 질긴 수명을 마감할 때가 도래하였다. 21세기 한미전략동맹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좌파정권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고자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만나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재개하는 결정을 내렸건만 돌아온 것은 광우병 괴담이요, 상전 같은 동맹국의 불신뿐이었다. 좌파정권의 반미친북정책을 모조리 폐기하여 우파정권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6.15공동선언이며 10.4남북정상선언이며 모두 부인하였건만 배후론, 색깔론 괴담의 약효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세상에 믿었던 그이가 이럴 수는 없다. 부시는 악의 축, 불량 깡패국가와는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놓고 이제와서 북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겠다 의회에 통보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겠다,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좌파정권이 합의한 10.4선언에 대한 국제적 지지가 확산되고 있다. 아! 어미한테 버림받은 새끼마냥 우파정권을 이렇게 배신하고 무시하면 어쩌란 말인가. 대들 의사도 능력도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 대한민국 우파정권의 명예를 이토록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지난 4월,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하는 양국 대통령 사진 출처 - 청와대   촛불괴담을 끝내야 하는 MB정권에게는 사라져가고 무너져가는 배후, 색깔론 괴담이라는 끊어질 운명의 명줄 밖에 없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분발할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아 보이건만 의존할 것은 한미동맹이요, 괴담의 배후 반미친북세력을 척결하는 길 밖에 달리 탈출구를 찾지 못한 모양이다. 부시가 8월 5, 6일 서울을 답방하면 이번에는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요청을 수용해서라도 한미동맹과 우파정권을 살려 달라 부시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애원할 태세다. 지난 4월 캠프데이비드 별장의 쇠고기 악몽은 안중에도 없다.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주한미군을 위해서라면 혈세를 지출하더라도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미국에 방위비분담금을 퍼준다는 인터넷 괴담의 배후는 반미친북세력이다. 이번에야말로 토를 다는 인터넷 댓글 괴담과 그 배후의 씨를 말려 촛불을 끌 작정이다. 더 이상 배후론과 색깔론을 극복하지 못할 민심은 없다. 국민을 이기는 대통령은 없다. MB가 살 길은 잘못된 정책의 과오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며 스스로 잘못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8월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쇠고기 파동의 전철을 밟는 어리석은 행위를 한다면 타오르는 촛불과 함께 MB 정권의 운명은 파탄을 면치 못할 게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33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2006년 2월 방학숙제를 하러 방으로 들어간 초등학교 6학년아이가 방문손잡이에 도복 끈을 묶고 목을 매 자살했다 아이가 평소 자주 하던 말은 “학원을 조금만 다녔으면 좋겠다” -EBS 뉴스 중- 서울교육은 지난 4년 동안 완전히 후퇴했다. 초등학생들까지 일제고사를 부활하면서 시험 몰입이 이루어지고 있고, 지난 4월에 발표한 현 정부의 학교자율화 계획은 0교시, 일제고사 부활, 사설모의고사 등을 보장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약속한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절반으로 만들겠다”는 두 가지 공약에 심하게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초. 중. 고교생의 약 77%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사교육비가 작년에 비해 15.7%나 늘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줄 세우기 교육, 입시몰입교육 때문에 사교육이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이런 글귀가 적힌 손 팻말을 들고 5월 2일 청계광장 첫 촛불시위를 시작으로 거리로 뛰어나온 것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촛불을 든 우리 학생들이 핵심을 찌른 것이다. 영어몰입교육과 딱 1년 해 보고 고쳐 버린 수능등급제와 같은 대입제도로 인해서 아이들 희생은 더욱더 커져 갈 것이다. 잠도 못 자게하고 밥도 못 먹게 하는 이명박 정부 교육이 미친 교육이 아닐까. 서울시교육감은 얼마 전 서울시의회에 학원 수업 24시 허용에 관한 조례안을 제출해 문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강남지역의 국민 임대아파트 건립사업을 놓고 저소득층 학생이 많아져 교육환경이 나빠질 것이란 이유로 임대아파트 건립 재고를 요청하는 공문을 서울시에 보낸 것으로 확인돼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서울은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가 밀집된 곳이다. 넘쳐나는 사교육과, 고교 평준화, 공교육 붕괴 등의 쟁점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서울은 이러한 교육의 문제가 집약된 곳으로, 문제점들이 가장 먼저 일어나는 곳이다. 서울이 아닌 한국의 교육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이런 곳의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지금 당장 영어 몰입 교육과 0교시 허용 등 현 정부의 교육 시장화 정책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는 이번 교육감선거를 통해 달라질 것이다. 사교육의 근원지인 학원단체로 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것도 중요하며, 확고한 교육철학을 갖고 의연한 자세를 가진 사람이 교육감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이제 서울 시민들의 힘으로 '미친 교육'을 고칠 때이다. 교육부 지침보다도 서울시교육청의 정책 결정을 따라하게 되는 다른 시도교육청들,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교육을 인간답게 바꿀 수 있기를 이번 선거를 통해 기대해 본다. - 한 평범한 초등학생이 완성한 문장 -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이번에 친 시험점수다) 우리 가족이 나에 대해서? (공부 잘하는 것만 밝힌다) 나의 가장 큰 결점은?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ㅇㅇㅇ를 이기고 싶다) -EBS 지식채널e 중-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17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7. 3. 대한변호사협회는 ‘흔들리는 촛불 너머 길 잃은 법치주의를 우려한다’는 대단히 감성적인 단어의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대한변협은 이 성명서에서 “ -- 사태는 광우병 확산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불안 때문에 식탁의 안정성 확보를 내세우며 광장으로 모였던 시민들의 촛불집회의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헌법적 절차에 의거해 출범한 합법정부에 대하여 퇴진을 요구하는 현재의 사태야 말로 오히려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헌정질서가 파괴되지 않도록 엄정대처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명서는 다음과 이유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개탄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먼저 대한변협 집행부의 역사인식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변협 홈페이지에는 대한변협의 업적을 자랑하면서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자 처벌 요구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변협 집행부의 한심스럽고 천박한 역사인식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로 ‘광주사태’ 이상의 단어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런 천박한 역사인식 시각으로는 오늘의 촛불광장이 헌정질서 파괴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률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들인데 이미 대법원 판결로도 천명된 광주민주화 운동과 항쟁을 아직도 전두환ㆍ노태우식의 광주사태로 인식하는 자들이 대한변협의 집행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성명서 바탕에 깔려 있는 비극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과정 또한 민주적인 의견수렴절차, 적정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각 지방변호사회의 의견 수렴을 요구하고는 의견 수렴 마감시간도 되지 않아 부랴부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법률 전문가 집단을 대표한다는 대한변협에서 민주주의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적정절차를 무시한 범법집단으로 돌변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사다.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 가치를 숭상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논하면서 거꾸로 절차적 민주주의 원리를 짓밟고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집단이 되고 싶어 한다면, 이는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셋째, 이들 성명서는 헌법의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는 반 헌법적 행위다. 현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선택으로 출발한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으며, 당장 이명박 대통령을 하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왜 촛불들은 ‘명박퇴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겠는가. 그 원인은 전적으로 국민의 절박한 요구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아무런 실효성 있는 대책도 내놓지 않는 현 정부에 극도로 분노한 나머지 나온 감정의 표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인다는 점이다. ‘명박퇴진’이라는 구호가 진심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보호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 영역이다. 모든 권력은 총구가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우리 헌법의 요체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뜻을 무시ㆍ폄하하는 상황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현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적 표현행위인 것이다. 현재의 촛불 시위 구호들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라는 것을 법률가 집단으로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대한변협이 헌정질서 파괴 운운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진주만 폭격과 다름이 없다.   “현 시국과 관련해 귀 회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니 7월 4일(금) 18:00까지 의견을 정리해 보내 달라”는 공문 사진 출처 - 한겨레   1984년 미 공화당 전당대회 때 국제청년당이라는 좌익단체가 레이건 행정부의 외교정책과 대기업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가두시위를 벌이면서 존슨이라는 청년이 국기게양대에 걸린 성조기를 끌어내려 석유를 뿌리고 불태운 사건으로 기소되었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미 연방대법원은 성조기를 훼손하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보호를 받는 행위로 판결하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 판결에서 ‘강요된 침묵이 아닌 더 많은 표현’을 옹호하였고, ‘성조기를 훼손하는 사람들조차도 법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이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바로 그러한 관용이 성조기가 상징하는 미국사회의 근본이념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미국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숭상하는 미국의 이런 힘과 정신을 왜 법률가 집단인 대한변협은 외면을 넘어서서 오히려 짓밟으려고 하는가. 집회를 통한 표현의 자유 즉 민주주의 혈관을 짓밟아 막는 행위는 대한변협의 치욕스런 역사의 한 장면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평가될 것이다. 넷째, 대한변협은 기본적 인권옹호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이다. 성명서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법치질서 확립’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왜 1천명의 시민이 다치고 연행되었으며,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활동하던 한 변호사가 그 어떠한 폭력행위를 한 바도 없는데 경찰로부터 방패로 머리를 찍혀 두개골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침묵하는가. 이것이 인권옹호 단체가 할 일이며, 균형 잡힌 시각인가. 대한변협은 검찰이 아니다. 대한변협 회장이 1987년 6월 국민항쟁 당시에 대검찰청 중수부 과장으로 근무한 전력이 있어도 지금은 검사 신분이 아니다. 그런데 대한변협 회장은 검찰과 입을 맞춘 듯이 똑같은 소리를 내는가. 대한변협은 청와대 소속도, 한나라당 소속도, 검찰 소속기관도 아니다. 사회정의를 무시하고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는 반 헌법적이고, 편향적인 행위는 국민들에게 법조인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키는 것이다.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연행과 구속을 일삼는 수단으로 국민의 입과 귀를 막으면서 정의 없는 질서를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고사시킨다. 대한변협은 본래의 임무로 돌아와 자중자애하고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민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변협이 살고, 법률가도 살고, 국민도 사는 길이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55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촛불집회가 두 달을 넘겼다. 10대 여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처음 촛불을 들었을 때 이 모임이 이토록 오래 가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여학생 몇몇의 만남은 수십만 시민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몇 번의 곡절을 겪으며 촛불은 두 달 너머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촛불 집회에 대해 많은 평가와 진단들이 나온 바 있지만 내가 보기에 촛불 집회의 가장 큰 의미는 그것이 많은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는 산 교육장이자 체험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지 않나 싶다. 우리 사회가 오랜 군사 독재의 수렁을 헤쳐 나와 민주화를 이룩하기는 했지만 사실 민주화 이후 지난 20년의 세월은 어찌 보면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했다기보다 차라리 부르주아 형식 민주주의의 한계만을 도드라지게 느끼게 했던 세월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다고 해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가치가 함께 민주화되는 것이 아님을 지난 세월 우리는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늘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경제라는 요구 앞에서 좌절해 왔고 민주적 가치는 곧잘 냉소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사람들은 어느 틈엔가 민주주의보다 경제의 양적 성장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간 듯 했다. 이명박의 당선은 정말로 우리 사회가 다시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했다. 그런데 어린 소녀들의 촛불이 이 모든 흐름을 순식간에 뒤바꾸어 놓았다. 광우병 소고기에 반대하며 촛불을 켜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일차적 관심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권, 그것이지만 이는 곧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라는 보편적 문제와 직결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국민의 건강권 따위를 아주 쉽게 내팽개치는 정권의 실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정치적 주권과 국가 권력에 대하여, 요컨대 민주주의에 대하여 생각하고 느낄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난 두 달간의 촛불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성과는 조중동의 실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언론으로서의 기본 윤리조차 깡그리 버린 채 위선적인 정치 집단으로 변한지 오래인 조중동 부자신문들의 실체를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야말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안티 조선 운동이 시작된 지 10년 남짓 되었다지만 그 10년 동안 이룬 성과보다 지난 두 달 동안 이루어진 변화가 훨씬 크다. 시민들은 조중동을 비판하는 데서 나아가 그 신문들에 광고를 낸 기업들을 대상으로 광고 거부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의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게시글을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그런 식으로 조중동 거부 운동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섣부른 대응은 현 정권과 조중동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만을 더욱 키우게 될 공산이 크다. 지난 두 달의 촛불을 경험한 시민들은 이미 과거의 시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말마다 수많은 인파가 시내 한 복판에 모여 밤을 새워 노래하고 토론하는 국민MT를 경험한 시민들이다. 지난 7월 5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승리선언 범국민촛불대행진'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촛불 집회의 향방을 두고 말들이 많다. 심지어 벌써부터 그것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는 담론까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이명박 정권이 수많은 시민의 목소리를 짐짓 못들은 체 하고 있고 게다가 5공 시절의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을 곳곳에서 목도하게 되는 지금, 촛불 집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는 참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촛불을 그저 소고기 문제의 틀 안에 두는 것도, 그 이상으로 확산시키며 정권 퇴진까지 가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촛불 집회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든 나는 지난 두 달간의 촛불은 우리 사회에,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엄청난 흔적을 남겨 놓았다고 생각한다. 집회 현장에서 노래로 울려 퍼지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의미에 대한 전면적인 각성이 그것이고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이 세상을 바꿀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라는 사실에 대한 새삼스러운 확인이 그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491 | 추천: 0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계속 되다 최절정에 이른 지난 2008년 6월 28일 오후, 정부는 “심야 불법·폭력 시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고 저녁엔 서울시청 앞 광장을 경찰병력으로 에워쌌다. 그리고 6월 29일 새벽 서울 한복판 태평로에서는 “착검한 총만 없을 뿐 1980년 ‘5·18’의 광주 모습 그대로”가 재현되었다.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6·29’선언과 함께 항복한지 정확히 21년 후였다. ‘두 달 가까이 광화문을 무법천지로 만든 시위대’를 비난하는 정부와 ‘두 달 가까이 외쳤는데도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오만함’에 분노한 시민들의 싸움, “청와대 앞까지 진출하려는 군중을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관용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과 “오죽하면 청와대까지 가려하겠는가? 대통령과 대화를 원한다”는 입장은 서로 정면으로 대립한다. 4·19때 경무대로 달려가던 시민들이 지금은 청와대로 달려가려 한다, 혁명보다 소통을 요구하면서. 그러한 정면충돌은 기독교계 안에서도 그대로 재생된다. 한편에서는 사탄을 들먹이며 이명박 대통령을 지켜달라는 기도가, 다른 한편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이라는 제목의 시국미사 강론이 낭독되었다. 둘 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인들인데 어찌 그리 서로 정반대일까? 촛불집회가 날로 격화되던 지난 2008년 6월 5일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청와대 비서관과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은 촛불집회에 기름을 끼얹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주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기도회 축사에서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린다”며, “마치 모든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린 것처럼 순수한 학생에게 촛불을 주고, 마치 이 나라 정부가 미국인이 버리는 것을 국민에게 먹이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세력은 거짓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고 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고 했다. 또 김홍도 목사(금란교회)는 “경찰, 검찰, 기무사, 국정원을 동원해 빨갱이들을 잡아들이라!” “그러면 (촛불집회 하는) 그 사람들이 쑥 들어가고 국민들 지지율이 다시 올라간다”고 주장했으며, “지금 이 촛불은 이명박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고, 좌파 노릇을 하는 엠비시(MBC), 케이비에스(KBS)를 척결해 달라”고 기도했다 한다.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지난 6월 30일 저녁 ‘국민존엄 선언·국가권력 회개 촉구 비상시국 미사’를 집전하려고 십자가를 앞세운 채 서울시청 앞 광장 한복판으로 줄을 지어 들어서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반면에, 사제단은 지난 2005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반대 때 이후 3년 만에 다시 시국미사에 나섰다. 사제단 주최로 ‘국민존엄과 국가권력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열린 2008년 6월 30일 저녁 7시 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신부와 수녀, 평신도 및 일반시민 1만여 명이 참가했으며, 시국미사가 끝난 후 사제단 200여 명과 시민 8천여 명(경찰 추산, 주최 측 추산 12만여 명)은 오후 9시 시청 앞 광장을 출발해 시내 거리를 행진하여 약 1시간여 만에 다시 서울 광장으로 돌아왔다. 십자가를 앞세우며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다. 오늘 비폭력 원칙이 만약 깨지면 촛불은 영영 꺼지는 것”이라며 비폭력 원칙을 강조하며 평화행진을 주도한 사제단은 “국민에게 힘이 되는 시점까지 우리 사제단은 단식을 계속 하겠다”며 천막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도 오늘 신부들이 외치는 비폭력 구호에 많이 공감했다” “비폭력일 때 더 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일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러한 사제단의 등장으로 그동안 정부와 경찰의 ‘불법시위 엄단’ 방침과 일부 시위대의 과격 폭력이 충돌했던 최근의 촛불집회 양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촛불집회에 종교계가 가담하면서 집회가 비폭력적으로 순화되는 면은 있지만, 그동안 대열에서 이탈되던 일반 시민들이 가세하며 집회가 다시 장기화될 것 같아 검찰과 경찰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7월 4일에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의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촉구하는 제1차 시국법회,’ 5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1천인 기독교 합창단’ 행사 등 비폭력 평화 기조의 종교계 집회가 잇따라 예정되어 있다. 예상치 않은 복병이 특히 기독교, 더 나아가 범종교계임을 알게 된 개신교 장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기도를 할까? 하느님께서도 대략 난감해하시지 않을까? 정의구현사제단은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이라는 강론에서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개탄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었다. 특히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 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이라며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 드는 맹목적 사대주의”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를 강하게 규탄했다. 아울러, 이번 대통령은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뽑혔을 뿐이고 국민의 그 기대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는데,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렇다면, 성서에서 말하는 올바른 통치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 통치자는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며, 고관들은 “법대로 나랏일을” 본다. 그들은 “바람을 막아 주고 소나기를 긋게 하여 주고 메마른 곳을 적셔 주고 타는 땅에 바위처럼 그늘이 되어 주리라. 민정을 살피는 눈이 어두워지지 아니하고 민원을 듣는 귀가 막히지 않으리라”(이사야, 32). 그 정반대로, 통치자와 고관들의 민정을 살피는 눈이 어둡고 민원을 듣는 귀가 꽉 막힌, 혹은 특유의 오만함이 그 귀를 꽉 막은 현 상황, 즉,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가톨릭교회는 “국민은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고, 그러한 거부와 저항은 도덕 의무이기도 하다. 양심에 따르는 이 거부권은 법 처벌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곧 통치 행위 또는 공권력의 행사가 실정법에 근거한 것이라도, 그것이 그보다 우위에 있는 자연법의 근본 원리를 위배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것은 정당하다. 인간의 양심을 저버리도록 강요하거나 인권 침해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법이나 제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그것에 복종하는 것만큼이나 도덕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물론, 비폭력 저항을 강조하면서.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840 | 추천: 1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며칠간 미국으로 우울한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의 기러기 아빠로의 ‘변신’을 위한 통과의례 차원의 여행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로 인한 갖가지 상념이 던져주는 우울함은 일정 내내 온 전신을 무겁게 짓눌러댔다. 이번 미국행은 지금껏 전 세계 수십 개 나라를 돌아다닌 내게도 미국이란 나라가 여전히 두려운 존재로 남아있음을 새삼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란 존재가 내게 던져주는 두려움은 상식선에서 떠올릴 수 있는 어떤 ‘공포스러움’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그 ‘괴기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적절할 듯하다. 몇 년 전 취재 차 꽤 오랫동안 미국에 머문 적이 있던 터였지만 이번 경험도 그 때의 체험들, 그리고 그 체험에서 비롯된 느낌과 생각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길지 않은 방문 기간 중에도 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만들어내는 괴기함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인류 공동의 문제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와 시각 때문이다. 얼마 전 외신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사이 태평양에 텍사스 주 두 배 넓이의 거대한 쓰레기 섬이 떠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한반도 넓이의 6배에 해당하는 크기의 섬이 바다에 떠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 쓰레기의 80%가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삶의 자세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대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동시대인으로서 서글프기까지 했다. 미국인의 수는 전 세계 인구의 5%에 못 미치지만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33%를 사용하고 있다. 복된 땅을 타고났기에 사막과 황무지 등 남아도는 땅에 묻던 쓰레기를 언제부터인가 바다에 쏟아 붇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쓰레기 섬이 천천히 바다 위를 움직이면서 해마다 10만종에 가까운 바다 생물을 죽이고 있다. 1950년대부터 10년마다 열배 크기로 늘어나고 있는 이 쓰레기 섬을 치우는 일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유럽인들의 몫이라는 게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사진 출처 -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 홈페이지    이런 현실을 확인해준 건 다름 아닌 미국에 사는 친구들이었다. 보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그들 틈에 살며 보게 된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은 그들이 자랑하는 ‘일류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보였다. 우선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재활용이나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만 봐도 그렇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소소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자신들의 일상에 생각 외로 무관심한 듯해 보였다. 먹다 남은 음식물이나 음식 쓰레기는 당연한 듯 다른 쓰레기들 틈에 끼어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내 눈으론 충분히 재활용할 만한 것들도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순간 어쩌지 못할 쓰레기가 되고 만다. 그리곤 자신들이 버린 쓰레기가 어떻게 되는지 까맣게 잊고 만다. 음식물 쓰레기는 집집마다 있는 음식물 분쇄기를 통해 예외 없이 하수구로 흘러들어가 바다로 배출된다. 자신들의 풍요로운 소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다른 존재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별반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러면서도 방송과 신문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국에서 벌어지는 ‘미국산 쇠고기 사태’에 대해 이상하다는 몸짓과 함께 입질을 해댄다. “우리도 먹는 건데”라며. 하지만 그들도 안다. 자신들의 땅에서, 세계적인 체인망을 지녔다는 패스트푸드점 ○○킹에서 팔리는 1달러짜리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가 30개월이 넘은 소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만이 그런 곳을 찾고, 그들 대부분이 나이를 떠나 비만도가 높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사람들로 북적여댈 점심시간임에도 수십 개의 테이블 중 두어 개만, 그것도 벌이가 없을만한 노인들로 채워져 있던 풍경이 생경함을 넘어 괴기스럽게까지 다가왔음을 모를 것이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게 그들만의 방식 ‘아메리칸 웨이(American Way)’다. 손쉽게 “싫으면 관두면 되지. 선택의 문제잖아”라고 말하는 미국인 친구들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들이다. 자신들이 선택의 권리를 누리는 건 당연하고, 자신들이 지닌 선택권이 다른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고 믿는 그들은 선의를 지닌 원칙론자인가, 자신마저도 속이는 경지에 오른 사기꾼인가. 그렇다면 미국은 집단최면에 걸린 거대한 사기꾼 집단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한동안 미국인들 틈에 끼어 아메리칸 웨이를 배우며 그들의 삶을 따라갈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것만큼은 몇 번이고 당부하고 돌아왔다.   “누가 뭐래도, 100명 가운데 99명이 따라간다고 해도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일에는 기웃거리지도 말라”고. 그래서 아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질없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열심히 분리수거를 할 것이고 재활용품을 모아 내놓을 것이다. 이게 미국인들이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는 ‘코리안 웨이’다. 아직도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 이유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1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