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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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89년 동구, 91년 소련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미국 중심의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자본주의로의 질서 재편은 시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로 보였다. 좌파들은 비관적이었고 우파들은 찬연한 자유주의를 설파하였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사라지는 자유 시장을 향한 맹신은 거침이 없었다. 정부의 공공적 역할은 축소되거나 무시되었다. 낙관보다는 비관이, 확신보다는 회의가, 참여보다는 냉소가 지배하는 사상적 전환기에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역사변증법은 현실에서 설 자리를 잃고 쇠퇴를 거듭하였다. 97년 IMF 긴급구제금융사태를 맞아 한국 자본주의는 자본 금융시장의 완전개방과 노동의 유연화(정리해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실시하였다.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 벼랑 끝 위기에서 건져 올린 기업과 은행의 경영권은 재벌로 불리는 국내자본이 그대로 유지하거나 외국자본이 독차지하였다. 실업과 비정규직화의 고통은 경제 위기를 헤쳐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더 나은 자본주의 미래를 위해 서민들이 숙명적으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재수 없는 불행으로 치부되었다. 금을 모아 국난의 위기를 넘긴 그 자리에는 지구촌 무한경쟁으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의 일상이 똬리를 틀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넘긴 바로 그곳에서 국내외 글로벌 자본은 살판이 났고 경쟁과 효율을 추구한다는 구조조정의 미명 아래 노동자 민중의 일상에는 바람 잘 날 없고 눈물 마를 날이 없는 생존의 위기가 불어 닥쳤다. 서민경제의 불황과 고통은 커져만 가고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은 세습이 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불황을 탈출하는 희망의 대안으로 소위 신자유주의 좌파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 FTA)을 적극 추진해 나섰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을 좌파로 여기는 소위 경제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신자유주의 좌파 대통령의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거의 대부분의 역량을 바쳐온 와중에도 유독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는 좌파 대통령의 설거지 역할을 자임하며 부자 감세, 공기업의 민영화, 교육의료주택의 시장화 등 공공복리를 축소하고 이를 대체하는 자유 시장 정책을 맹렬히 밀고 나가고 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12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FTA가 제2의 IMF를 불러올 것'이라며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 움직임을 규탄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유행어를 날리는 소위 신자유주의 좌파 대통령, 경제대통령을 연이어 계속 뽑았기에 지금의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과 혼돈의 신자유주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벼랑 끝 위기에 직면하여 서민들은 더 이상은 재수 없는 불행을 맞딱드리거나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고 무탈하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실패를 예정하지 않은 채 파멸의 끝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자유주의가 드디어 몰락의 길을 재촉해 나가고 있다. 1930년대 세계경제 대공황 이후, 90년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새로운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직면한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의 실상을 근본적으로 직시하고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해결해 주는 경제적 대안을 실천하는 나침반이 절실히 요청되어지고 있다.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 신자유주의의 낡은 이념과 정책을 붙잡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역사적 전환기에 맞는 사상과 정책을 가져올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세상을 움직여 나가야 한다. 전 세계 노동자 민중들이 혼돈과 불행에서 벗어나 자본의 운세보다는 노동의 운세가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이 불확실한 위기의 전환기를 맞아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인문사회과학의 전통을 대중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531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예상대로 오바마의 압승으로 끝났다. 오바마의 승리 이후 그에 관해 쏟아지는 환호와 관심은 역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 그 누구보다도 폭발적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데다 심각한 경제 위기를 벗어날 계기를 바라는 심리가 크고 무엇보다도 워낙 깽판을 쳐 놓은 전임자 부시에 대한 환멸이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그만큼 더 크게 한 탓이다. 오바마의 승리는 비교적 일찍부터 예상되던 바다. 변화를 바라는 미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마음도 있었고 심각한 경제 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그의 승리를 일찌감치 예감했던 것은 그에 대해 압도적으로 쏠린 이른바 엔도스먼트(endorsement)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선거에서 언론인, 연예인, 지식인 등 유명 인사들이 특정 후보에 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일이 많은데 이를 엔도스먼트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오바마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지지는 매케인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특히 헐리우드의 유명 연예인 다수가 오바마를 적극 지지한 바 있다. 원래 헐리우드가 친 민주당 성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이번 만큼 그 강도가 컸던 적은 없다. 조지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우디 앨런, 오프라 윈프리, 스칼렛 요한슨, 톰 행크스, 로버트 드 니로, 숀 펜, 브래드 피트, 멧 데이먼 등 오바마 지지 스타들의 면면은 현재 헐리우드 메인스트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에 비해 매케인 지지 스타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실베스타 스탤론, 로버트 듀발, 존 보이트 등이 거론되는데 그 무게감도 그렇거니와 일단 노쇠한 느낌이 역력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대중매체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인들은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되고 역할 모델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의견은 그 영향력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인기 있는 대중 스타들이 선거나 전쟁, 인종 문제 같은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해 온 전통이 매우 뿌리 깊다. 스타들의 사회정치적 활동들은 대중들 마음을 움직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스타들 자신이 단지 가벼운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지성을 가진 존재임을 부각시켜 스스로 이미지를 높이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미국에서 그런 전통이 뿌리내릴 수 있던 데에는 정치적 발언과 행동이 어떤 보복이나 불이익을 낳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몇 년 전 이라크 전 당시 전쟁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일부 스타들이 이런저런 보복과 불이익을 당했던 사례가 있으니 그런 경우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한국 사회에서도 연예 스타 등 유명인들이 선거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런 저런 정치적 발언을 하기도 하고 사회 활동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도 민주화가 낳은 새로운 풍속도다. 군사 독재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하긴 그 때도 이런 저런 사회 활동 속에 스타들이 등장하긴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던 반공 궐기 대회니 국산품 애용이니 숱한 관제 캠페인에는 으레 눈에 익은 연예인들이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그 시절 연예인들은 ‘참여’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동원’되었을 뿐이다. 연예인이 그저 ‘동원’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지성과 영혼을 가진 지식인일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 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대중가요 검열에 정면으로 저항했던 가수 정태춘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이후 분명한 자기 주관으로 사회적 발언을 내놓거나 촛불 집회 같은 데 적극 참여하거나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을 자주 보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KBS 사장을 필두로 이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줄줄이 쫓겨나고 있다. 온갖 압력 수단을 동원해 자진 사퇴를 강요하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갖가지 무리수를 동원해 결국 쫓아내고 마는 일이 되풀이 되더니 최근에는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도 결국 쫓아내고 말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이른바 코드 인사를 그토록 비난해마지 않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자마자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한숨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오래 동안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을 졸지에 그만두게 된 가수 윤도현이나 방송인 정관용씨와 같은 경우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게 된 것에 어떤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윤도현이 평소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 발언에 적극적인 연예인이었고(게다가 2002년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전력이 있고) 정관용 역시 현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넷 언론의 이사를 맡고 있는 등 진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계속된다면 인기 스타 등 유명인들의 사회적 발언과 참여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자리에서 잘리고 프로그램을 뺏기는 등 보복이 빤히 눈에 보이는 길을 쉽게 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방송사측의 변명을 들으며, 그래, 설마 그 정도로 치졸하지는 않겠지 싶다가도 이 정부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그런 변명이 곧이들리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보수적인 거야 그런가보다 참아주겠지만 치졸한 건 정말 참아주기 힘들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508 | 추천: 0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속초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익숙한 미시령 고개 대신 빠른 속도로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편리함 보다 비록 차를 이용해서나마 정상에 올라 잠시 휴게소에 머물며 동해를 내려다보는 감개나 곧게 뻗은 도로에 묻혀버린 구불구불 백담계곡 맑은 물과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이 눈에 밟혔다. 결국 일정에 없던 백담사 방문을 위해 곁길로 빠져나왔다. 십 수년만이었다. 전두환이 이곳에 머문 이후로는 발길조차 주기 싫었던 것이다. 계곡 입구에서 백담사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부터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아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백담사는 내설악 중에서도 깊은 오지여서 웬만해선 접근조차 어려웠던 곳이다. 1990년대 초부터 손님이 늘었다니 전두환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흐를 만큼 흘렀기 때문인지 그 사실보다는 한 시간 이상 힘든 발걸음도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답던 계곡을 깎아 길을 낸 것과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태가 먼저 안타까웠다. 일행을 뒤쫓다 보니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정면의 대웅전이 아니라 오른편의 ‘만해(萬海)기념관’을 먼저 들르게 되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출가와 수행, 3·1운동과 옥중투쟁, 계몽활동, 문학 활동, 신간회활동 등을 분야별로 나누어 한눈에 만해의 일생을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고뇌에 찬 만해의 초상 앞에 선 순간 앞 관람객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았을 수 없었다. 만해의 모습이 전두환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꾸짖고 말았는데, 주변에 전두환 전(前) 대통령의 팬들이 많으니 말조심하라는 그들의 대답은 더욱 가관이었다. ‘전(前) 대통령’이라니. 이미 군사반란 및 내란죄가 확정되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예우도 정지된 상태일 뿐 아니라 수천여 명의 국민을 살해한 학살자가 아니던가. 애써 점정을 억누르고 밖으로 나왔다. 깊은 산 숨은 골짝 사찰 한 모퉁이에서 만나는 만해(萬海)와 일해(日海) 전두환,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대비가 아닌가.     사진 출처 - 백담사 홈페이지   복잡한 심경도 잠시 또다시 일행에 이끌려 백담사의 중심불전인 극락보전(極樂寶殿)으로 향했다. 실수였다. 아니 예기치 못했다. 극락보전 왼쪽에 자리한 화엄실(華嚴室)의 방 한 칸 문 위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화엄실은 만해가 ‘님의 침묵’을 집필한 장소이기도 하다. 화엄이란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서 덕과(德果)를 장엄(莊嚴)하게 한다는 뜻이다. 어찌 ‘화엄실’이라는 현판 밑에 ‘전두환’이라는 살인마의 이름을 붙여놓을 생각을 했단 말인가. 그 많다던 팬들인지 만해기념관보다 화엄실 앞에 더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인가 전시해놓은 듯했지만 도저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발길을 돌려 나와 버렸다. 황망히 돌아 나오다 들어갈 때는 무심코 건넜으나 오래된 절과는 어울리지 않게 길고 깔끔한 돌다리가 눈에 띄여 들여다보니 ‘수심교(修心橋)’라 이름 붙여져 있었다. 일행의 설명으로는 전두환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지어져 그가 이름 짓고 쓴 것이라 한다. 극락보전의 현판 역시 전두환이 쓴 것이었단다. 이곳에서 전두환은 여전했던 것이다. 아무런 원망이나 울분의 시선 없이 그를 단지 ‘전직 대통령’으로 보고 있는 현실 앞에 그저 나는 부끄러울 뿐이었다. 한 친구가 ‘반야심경’의 한 구절을 도인처럼 들먹이며 날 위로하려 들었다. 모든 현상계가 본질적 차원에서는 생겨나는 일도 없고 없어지는 일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감소하는 일도, 증가하는 일도 없다는 뜻을 가진 심오한 구절을 읊으면서 말이다. 종교인으로서 수양이 덜 된 탓인지 오히려 애꿎은 그 친구에게 분풀이를 해대고 말았다. 20여 년간이나 일부러 찾지 않았던 산사를 생각 없이 들어 제 탓이나 할 일이었는데 말이다. 사진 출처 - 백담사 홈페이지   추한 역사는 잊는 순간 되풀이된다고 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기억함으로써 절대 어리석게 강도당하는 역사만큼은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분에 겨운 내 마음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돌아오는 길 내내 이어진 산과 계곡, 북한강 물줄기는 여전히 아름답고 시원했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87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경제성장 7%에 4만 불의 국민소득, 7대 선진강국을 만들어 주신다는 007작전 아닌 거룩한 747 약속에 니나 네나 앞 다퉈 도장 찍어 훌륭한 대장을 뽑았으니 그 얼마나 축복이여. 풍악을 울려라! 고렇게 손가락 걸고 대장 취임 몇 개월 만에 후다닥 올림픽 7개 강국 목표를 달성하였으니 어찌야 쓴데. 고것이 하나님 거룩한 은혜가 아니것어. 얼쑤! 대장 눈은 단추구멍처럼 작지만, 두 눈 부릅뜨고 온 국민을 상전으로 받들어 모신다고 하나님 앞에 굳은 맹세를 혔으니, 그 어찌 복 많은 국민이 아니더냐. 좋다. 풍악을 울려라! 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의 대장 준비팀을 누가 ‘고소영’이라고 하더냐. 그들은 국민 아닌겨? 강남의 부동산 부자 내각, ‘강부자’ 내각이라꼬. 너희들 왜 그렇게 대장을 못믿는겨? 믿어라!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 얼쑤! 우리가 살아갈 길은 우리의 맹방이요 혈맹인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니것어? 친구끼리는 서로 손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것어? 맞어 백번 맞는 말이제. 친구가 어려운디 미친 소 쬐께 수입한다고 뭐시 문제여? 미친 소 먹고 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난리는 그 난리여? 맞당께. 친구가 잘돼야 나도 자∼알 되지. 자∼아 풍악을 울려라! 허--허 그려도 그렇게 촛불 앞에 몰려드니 ㅉㅉ. 근게 속도 몰라주니 야속하당께. 아무리 묵어도 배탈 안 난당께. 그려도 힘이 부칠 때는 뒤로 한발 물러서는 것이 일보 전진을 위한 후퇴 전술 아니것어. 뒷동산에 올라서 눈물도 쫴끔 흘리고, 잘못했응께 용서해 주시라우 빌어 보면---. 얼쑤! 우리 대장이 두 번씩이나 잘못도 없이 잘못했다고 했는디, 그래도 멍∼야박하게 구는 놈은 정말로 인정머리도 없고, 의리도 없는 놈 아니여?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거여. 화끈하게 용서하고 새롭게 출발하장깽. 좋지. 조∼아. 풍악을 다시 한 번 울려라! 그려도 의리 없이 배후에서 욕지거리하고 촛불 민심 운운하는 놈은 용서할 수 없지라우. 여기가 어디라고 산성을 넘으려고 혀. 애들을 인질 삼고 촛불을 들고 나와. 집에서 밥이나 하고 애나 보지. 법대로 히야지. 그려 법대로 하는 거여. 얼쑤! 갱제를 살리려면 돈 많은 사람들 도움이 필요하지. 안그려. 돈 많은 사람이 돈을 꽁꽁 숨기고 쓰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이 어쩨 돈을 벌것어. 그렁께 걔들이 쫴가 잘못혔어도 봐주장께. 사면해주면 될 거 아녀. 그려∼그려. 다 같이 시작하지 뭐. 풍악을 한번 울려봐! 어메, 오메. 돈 많은 사람 돈 쓰게 할려면 세금도 파박 깍아줘 버려야 하지 않것어. 요새 그들도 세금 내느라 호주머니에 돈이 말라부럿어. 모든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인디 세금 좀 깎아주는 것이 뭐 대수것어. 그런 거시여. 법 고치는 것---그러라고 찍어 주엇잔어. ♬♬♬ 얼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오전 과천정부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하이고메, 친구 집에 불나 부럿어, 친구 집이 불타면 우리 집도 온전허지 못혀. 친구가 아파불면 우리도 죽는 수가 생긴당께. 어찌 해부러야 되것어. 친구랑 같이 살 방도를 찾아야 쓰것당께. s-S-스와프 통화협정 그려 그거면 돼. 아이꾸 살았네. 학실하게 이제 풍악을 울려라! 보랑께 내 뭐라코 했노. 친구가 우릴 도와주잖아! 겁나게 애섰제. 지금이야 말로 주식 투자할 때여. 주식을 투자허라고 대장이 말했당게. 그런디 왜 그런디야. 널뛰기 주식을 알 수 없구먼. 대장이 주식 사라고 하였는디. 뭐가 잘못된거여. 허∼ 친구 집에 불나서 그런당께. 대장 말을 믿어야지. 그려. 그럼 나도 빚내서 주식 한번 사볼까. 주식을 사자꾸나. $∼$ 얼쑤! 바다 건너 친구 집에 불났는디 왜 건축하는 작자들은 저렇게 비틀거리것이여. 끄응 그들도 우리 친구 아니여. 친구는 구해줘야지. 친구 어려운디 모른 척 하는 놈은 진짜 망할 놈이여. 안그려? 그려 맞어∼맞어. 죽을 때 까지 의리를 지켜 보자꾸. 진짜 풍악을 한번 울려봐! 돈을 확 풀어보지 뭐. 돈이란 것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거 아니것어. 내가 묵는 돈도 아닌디. 힘든 친구를 위하여 돈 좀 펑∼팡 한번 써불자. 낸 영원한 의리파로 남것제? 하따 우리 대장은 정말 모르는 것도 없어 부리네. 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 학실하당께. ♨♨♨ 얼∼쑤!   김희수 위원은 현재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70 | 추천: 0
("일제고死= 일제히 고통스럽게 죽임" (프레시안 기사 내용에서 인용))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에 일제고사가 전국에서 치러졌다. 일제고사는 학업성취 수준 및 변화 추이를 분석하고, 학력격차를 해소하여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업성취도 점수가 공개되어 전국의 학교 성적이 서열화 되고 학교 간 학력 경쟁으로 학교와 학생은 줄 세우기 경쟁으로 내몰리고,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돼, 사교육비 폭증 등 시행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 14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인터넷카페 모임인 '무한경쟁·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모임 Say, No'가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좀 놀자!”며 등교 거부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일제고사 시행은 청소년을 공부하는 기계와 성적의 노예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호소하였다. 또한 이날 시험을 치룬 강남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 수십 명이 일제고사에 반발해 집단으로 백지 답안을 낸 일도 있었다. 내가 있는 학교의 학생들도 “중간고사가 며칠 전 끝났는데 불과 보름도 지나지 않아 또 시험을 보고 또 보름 있다가 기말고사를 보는 게 말이 되냐”며 대다수의 학생들이 10분 안에 답을 적고 잤다고 했다. 이처럼 일제고사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아이들의 외침에서 일제고사를 막아내지 못한 교사로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정말로 이렇게 우리의 아이들을 일제히 고통스럽게 죽일 작정인가!! 일제고사가 진정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분노와 창피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전국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지난 14일 오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등교와 시험을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모든 학생에게 시험을 보게 해서 학습 부진학생을 최소화하고 학력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 일제고사의 목적이지만, 일제고사 결과 후에 나타날 학습부진학생을 위한 대책이 며 지역별, 계층별 교육격차 해소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교육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경쟁 만능의 시험지옥으로 아이들을 내몰게 될 일제고사를 중단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별별이야기(2005)”란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6편의 애니메이션을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하여 ‘차별’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풍자하였다. 그중에 하나인 “사람이 되어라”(학생들은 대학을 가기 전에는 모두 동물이었다가 대학을 가면 비로소 사람이 된다)라는 단편을 보고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난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 체육, 음악, 미술을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머리가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다. 난 나중에 내가 뭐가 될지도 불확실하고, 그냥 대학만 가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명문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솔직히 좀 무서울 때도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키워주고 소외되지 않게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교육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최근 많은 교사들이 느끼는 학교교육의 궁극적인 귀결점은 일류대학의 입학이다. 대학 입시로 인한 학력 경쟁이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이로 인해 학부모 등쌀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으로 새벽까지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많이 외우고 문제풀이에 달인이 되어야 결국 점수 경쟁에서 이기고 일류대학이 보장되고 학벌사회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교육이 희망이 되려면, 성적 서열로 줄을 세우는 학벌교육이 아니라 창의적 재능을 일깨우는 교육이어야 한다. 교사로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아이들을 먼저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79 | 추천: 0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국민 탤런트’라는 애칭에 걸맞게 20년간의 연예생활 동안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함께 있던 최진실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참으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슬퍼하고 있다. 최 씨의 자살 이후 TV에서는 이전 그녀가 출연했던 장면들이 여러 채널에서 회고 형식으로 방영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3,000개의 악성 댓글(악플)에 관한 것이었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최씨는 “20대에 데뷔했을 때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만일 지금과 같은 악플을 접했다면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밤마다 인터넷 댓글을 보려고 하는 자신이 싫으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데 밤새 악플을 세어보니 3,000개여서 깜짝 놀랐으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회의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2007년 1, 2월에 잇따라 자살한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 등에 대한 애절하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던 최 씨는 결국 “최 씨가 사채업을 하면서 안재환씨에게 빌려준 25억 원을 받아내기 위해 안 씨를 협박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의 악성 루머에 의해 목숨을 끊었으며, 심지어는 그 이후에도 “악성 루머가 사실로 확인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자살한 것은 아니냐?”는 2차 악성루머까지 떠도는 등, 한번 퍼진 루머는 악플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필자는 최 씨를 경악케 했던 그 3,000개의 악플에 대해 생각해 보며 성서 말씀이 떠올랐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예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리고 나와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니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씩 모두 가버렸다는 일화가 나온다. 물론 최 씨는 그러한 죄인이 아니었고 비운을 무릅쓰고 삶과 연기에 최선을 다하려 억척스럽게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악플을 다는 누리꾼들은 죄 없는 여인에게 인터넷 악플 달기라는 돌팔매질을 일삼으면서도 익명성 안에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죄가 있어도 여전히 그 현장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이들이 아닌가 싶다. 악플은 인터넷 돌팔매이며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이 시대의 치명적인 살상 무기라 하겠다. 연예인들은 그 살상 무기의 가장 쉬운 표적이며, 사냥감이기 쉽다. 영화제 때마다 레드 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화려한 의상의 배우들, 수많은 팬들의 환호 속에 열창을 다하는 가수들, 그들이 한 몸에 받는 ‘동경’이 동전의 한 면이라면 다른 면은 곧 ‘질시’가 아닐까. 인간이 지닌 야누스적인 본성은 ‘동경’과 ‘질시’ 사이를 변덕스럽게 오가며 대중 심리 내지 영웅 심리에 의해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큼 한쪽 극단으로 증폭되기도 한다. 아울러, 스타를 만든 언론은 그 스타의 사생활 곳곳을 선정적으로 파헤침으로써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혹한다. 그러다보면 스타들이 결국 언론에 의해 탄생되어 언론에 이용되고 언론에 의해 감시당하다가 결국 언론의 돌팔매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대중들 또한 진지한 대화의 주제가 아닌 심심풀이의 대상으로 흔히 연예인들을 입방아에 올린다. 연예인들의 말실수나 음주 운전, 사소한 거짓말 등에 대해서는 매우 냉혹하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대중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은 약자에게 유달리 냉혹한 우리 사회의 특성과 겹쳐진다. 자신의 삶에서 만족감을 찾지 못하고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이 많이 쌓인 수많은 이들, 과도한 입시 경쟁에 지친 10대, 제대로 된 직업을 찾지 못한 ‘88만원 세대’,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30, 40대들은 날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그들의 좌절감을 이들을 속죄양으로 삼아 해소하는 건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배려’와 ‘연대’의 따뜻한 정을 못 느껴보았을 그들에게 이런 미덕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무차별한 악플의 급속한 증가는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의 하나라 할 만하다. 악플 중에 특히 초등학생의 것이라고 보이는 것들도 많다. 초등학생들이 어쩌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이러한 우리 사회엔 연예인들의 인권에 대한 배려가 절실히 요청된다. 대중적 인기에 목숨을 거는 연예인들은 순식간에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는 참으로 불안한 지위에 있다 할 것이다. 게다가, 유명해지기까지 무명의 긴 세월을 겪어야 하는 수많은 연예인들은 불확실한 성공 가능성 앞에서 한 두 번씩은 꼭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우울증, 인기 하락에 대한 우려, 그리고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사업에 손대다 결국 사채에 빠져 빚더미에 앉게 되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그 일에만 몰입했기에 인생의 다른 대안 내지 직업에 대한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경우도 많다.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은 불신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대중뿐만 아니라 제작진들까지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쉽게 우울증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연예인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자 해도 혹시 엉뚱하게 퍼져나갈 소문이 두려워 치료조차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최진실 사망사건'을 보도한 <중앙일보> 10월 2일자 인터넷판 기사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자살 후에도 연예인들은 그의 자살이 ‘모방 자살’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 ‘베르테르 효과’는 그 연예인을 따라 죽는 이들과 언론의 보도 태도 탓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연예인들을 또 한 번 욕되게 한다. 최 씨의 경우 특히 <중앙일보>는 10월 2일자 인터넷 판 기사에서 “자택 욕실 샤워부스에서 압박붕대로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됨”이라고 구체적인 자살 사망 방법을 묘사했고, 더 나아가 “압박 붕대는 일반 시중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며 “3m짜리가 4만~7만 원 정도”라고 하여 ‘사망도구’의 구입 방법까지 안내했다. 이로 인해 벌어진 몇 차례의 ‘모방 자살’까지도 이미 고인이 된 이 탓이란 말인가? 2004년 복지부와 자살예방협회,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자살보도 가이드라인’만 지켜졌어도 모방 자살 가운데 많은 경우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가이드라인은 자살 방법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자살 동기를 판단·단정하지 말고,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삼지 말자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밝은 미소로 우리와 늘 같이 있었던 ‘국민 탤런트’ 최진실씨가 우리에게 남긴 유언이 있다면, 심심풀이 삼아 던지는 돌멩이 하나에 치명상을 입는 연예인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더 쉽게 상처를 입고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이런 연예인들이 곧 우리 사회의 약자, 모습만 화려한 ‘사회적 약자’이기도 함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 좋아하는 스타라면 제발 그들의 ‘인권’도 존중해 달라는 것 아닐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508 | 추천: 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1. “깜냥이 드러난 거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때 백낙청 선생은 싸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2004년 3월,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나는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사회 원로들의 반응을 취재 중이었다. 알듯 말듯 한 선문답을 피해가려 내쳐 물었다.   “누구의 깜냥 말씀입니까?”   “양쪽 다죠.” 양쪽이란 노무현 대통령 본인과 한나라당을 말한다. 이후에 전개된 탄핵 사태의 전말은 익히 아시는 바와 같다. 차마 신문에는 옮기지 못했지만, 역사는 백 선생의 이 쓴소리가 탁견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나는 요즘 노무현의 깜냥과 이명박의 깜냥에 대해 생각한다. 공무원도 운동은 해야 한다고 주장하시어 골프 치는 공무원들을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시키셨으며, 퇴임 후에도 자기 부하들의 골프장 결혼식에서 주례를 더블로 뛰시며 골프 사랑이 여전함을 뽐내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깜냥과, 일찍이 히딩크와 사진 찍으면서 자기 아들과 사위를 불러 같이 사진을 찍게 하는 등 공사 구분을 못하시다가, 본인 소유의 건물에서 영업 중인 유흥업소가 성매매 의혹에 휩싸여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강심장의 소유자이신 이명박 현 대통령의 깜냥을. 노무현이 서구의 앞선 제도와 관습을 부러워하며, 현실을 무시하고 국민정서를 깔보다가 큰 코를 다쳤듯이, 이명박은 70년대식 일사 분란함을 그리워하며 여론을 무시하고 국민정서를 깔보다가 큰 코를 다칠 공산이 크다.   #2.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과천정부청사에 출입할 때 일이다. 청사 내의 한 식당에서 경제부처의 차관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 양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90°로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대체 누구 길래 이 점잖은 양반이 오버를 하나 싶었더니, 다름 아닌 신승남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다.(호남 출신인 그는 이 요직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냈다) 검찰의 서슬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지만, 한 부처의 차관이 다른 부처의 국장에게, 그것도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조폭 인사를 하는 풍경이 무척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이 낡은 에피소드를 굳이 꺼내는 건, 검찰이 얼마나 중요한 집단인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자괴감이 들어서다. 김영삼 정부 시절, 검찰은 야당 인사만을 잡아 족쳤다. 검찰을 출입했던 우리 신문사의 한 선배는 “검찰은 개다.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문다.”는 글을 신문에 싣기도 했었다. 그러던 검찰이 달라진 건 김대중 정부 시절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였다. 야당 시절 검찰 독립을 목 놓아 외치던 김대중 정부는 정권을 잡은 뒤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노무현은 달랐다. 그는 정말로 검찰을 독립시킬 태세였다. 검사들은 물을 만난 듯 했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을 상대로 맞장을 뜨기도 했고, 좌희정으로 불리는 사람을 구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변화의 노력이 허사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다시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돌아간 지 오래다. 정권의 정치적 반대자만을 골라서 수사하고 있으며, 시민단체든 일반 시민이든 학생이든 가리지 않고 마수를 뻗치고 있다. 이제와 생각하니, 검찰 독립이니, (검찰로부터의)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니 하는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이들을 어떻게 국민의 통제 아래 둘 것인가를 고민하고 토론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바뀌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역사에서 배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3.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청와대 만찬에서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유모차 엄마’ 수사 문제를 지적하자,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와선 절대 안 된다. 아이를 시위에 데리고 나오는 건 아동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앞으로 아이를 못 데리고 나오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한겨레>)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여야 원내대표단 및 정책위의장과 만찬을 하기에 앞서 청와대 상춘재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사진기자단   몇 일전 신문을 보다가 이런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야당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지만, 이건 부적절한 정도를 지나, 사실상 대통령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는 걸 자인하는 것이다. 검찰의 네티즌 수사, KBS 수사, 시민단체 수사도 마찬가지 맥락 아닐까?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작금의 퇴행은 심히 곤혹스럽다. 지금의 청와대는 이른바 뉴라이트(하나도 ‘뉴’하지 않지만!) 진영의 주장을 바이블로 모시는 종교집단처럼 보인다. 친일의 역사를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그렇고, 부자들을 위한 티가 팍팍 나는 부동산 세제 개편이 그러하며, 경쟁을 격화시키는 방식의 교육 정책이 그러하다. 이 모두가 정권을 잡기 전에 뉴라이트 집단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때 써먹었던 준거들이다. 부질없는 짓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요즘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이명박 대통령이 부자들을 위한 일방적인 세제개편을 철회하고, 이적용공세력 만들기에 열을 올리지 않는 대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 집 없는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갖게 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에 적극 나서며, 양극화 문제 해결(노무현 정부 시절 언론들이 떠들던 양극화 문제는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덜 하지 않다. 그런데 양극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다 어디로 갔나. 양극화란 단어는 확실히 노 정권 비판을 위한 작명이었나 보다.)에 나선다면? 그렇다면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정부는 그런 고민이 생길 여지를 전혀 주지 않고 있다. 저자거리에 나가서 들어보라. 장삼이사들이 독재를 운운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작 중요한 건 국민들의 깜냥 아닐까. 잘잘못을 명확히 가리고, 기억하고,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깜냥 말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96 | 추천: 0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구약성경의 초반부를 이루는 부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이야기는 비그리스도교 신자라도 웬만한 이라면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얘기다. (모르는 이라도 영화 ‘십계’를 떠올리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는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까지 이끌었으면서도 끝끝내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한마디로 모세는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존재였다.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적들의 추격을 뿌리치는가 하면 사막에서 샘물도 만들고,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등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인류사에 있어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였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모세에 이은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여호수아였다. 몇 번이고 이런 장면을 접한 그리스도인들도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가슴 한 켠이 쓰릴 지경인데, 성경을 처음 대한 이들이라면 이러한 신의 모습에 야속함마저 느낄지 모르겠다. (모세 개인적으로는 또 얼마나 신이 야속했겠는가.) 하지만 멀리 성서학자들에게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앞뒤 문맥을 읽을 줄 아는 이라면 이러한 구약의 이야기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이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하신 것은 그에 대한 벌이 아니라, 모세가 요르단 강을 건넌 다음에 죽게 된다면 모세의 후계자이자 민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훼손될 것까지를 내다본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광에 가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었을 법하다. 실제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보임으로써 오늘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영화 '십계'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씨네21    수천 년 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성경이 이처럼 지도자의 중요성과 더불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생생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정치 현실만 보더라도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하는 지도자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그 실체적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버겁기까지 하다.) 미국산 쇠고기문제에서 촉발된 촛불 시위를 비롯해 종교 편향 문제로 인해 빚어진 정부와 불교계, 나아가 불교계와 개신교계와의 갈등 등 이명박 정부 들어 거의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난맥상들도 따지고 보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모르는, 때로는 외면하는 지도자들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모르진 않을 텐데, 이러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암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같은(아니, 실제 그와 나는 상당히 다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조금은 멀러 서있는 듯한 ‘갈라진 형제’를 위해 기도라도 바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위대한 모세가 되기도, 그렇다고 새로운 세대인 여호수아가 되기도 거부하고 오로지 스스로 또 다른 예수가 되길 원하는 듯 한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하게 된다면 과장일까. (과장이라고 하자.) 하지만 이런 기우가 점점 현실적 무게를 더해 가는 이 시점에서, 어쩌면 우리 세대는 ‘또 다른’ 성경으로 ‘또 다른’ 교리를 배워야 할 지 모르겠다는 염려가 커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지. 그렇게 되면 ‘MB인’인가? 하긴 벌써 기독인에서 ‘MB인’으로 전향한 이들이 나타나고 있질 않나.)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96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1. 밤참을 먹으려고 라면 물을 올려놓고 파를 썹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잘게 썰어지는 비취색의 파뿌리가 참 곱습니다. 칼질이 서툴러서일까요 가끔씩 싱크대 수챗구멍으로 튕겨져 나가는 놈들이 있습니다. 저걸 건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칼질을 멈추고 수챗구멍에 떨어진 파 조각 몇 개를 건져 올립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가치없는 것 없다고. 눈앞의 먼지 하나, 매일 빠지고 또 생겨나는 머리카락 하나에도 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사소한 자연의 이치를 그냥 한번 흉내 내어 보는 겁니다. 내가 끓이는 라면 그릇에도 섞이지 못한다면 파 한 조각이 지녀왔을 존재의미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거라는 숨은 자책이 조금은 깔려 있습니다. 사실 내가 보내고 있는 짧은 시간 시간의 조각이. 또 늘 나의 발뒤꿈치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따라오는 발자국 한걸음 한걸음이 내가 버린 파 조각처럼 쓸데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건 아닌가 하는 작은 애정이 내가 건져 올리는 파 조각 속에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를 허투로 다루지 않는 일. 그래서 아주 작은 나로 그냥 머물러있는것도 꽤나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닫는 일, 가끔씩 라면을 끓이면서 느끼는 나의 소중한 교훈입니다. 그래서 도마 위에서 튕겨져 나간 파를 주섬주섬 주워 끓인 라면은 더 맛있습니다.   2. 조안나 메이시라는 심층 생태학자이자 작가인 분이 티벳에서 겪은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입니다. 메이시는 현지 불교신자들과 회의를 하면서 공예품 조합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통과시키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파리 한 마리가 찻잔에 빠졌는데 메이시는 대수롭지 않게 건져내어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도 겉으로 무슨 반응을 보였던 모양입니다. 초에걀 린포체라는 열여덟 살의 라마승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메이시 쪽으로 몸을 구부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습니다. 메이시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저 찻잔에 파리가 빠졌다고 대답했지요. 린포체가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자 메이시는 스님이 자기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거듭 말하며 찻잔을 옆으로 치웠습니다. 하지만 라마승은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끝에 메이시의 찻잔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파리를 건져내더니 방을 나갔습니다. 회의는 다시 진행되었고 메이시는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얼마 후 다시 방에 들어선 필포체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메이시에 다가가더니 파리가 괜찮을 거라고 조용히 말해주었습니다. 찻물에 흠뻑 젖은 파리를 문밖에 있는 잎사귀 무성한 나뭇가지에 내려놓고 파리가 날갯짓을 할 때까지 지켜보았다고 설명하고 이제 곧 파리가 날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며 메이시를 안심시켰답니다.   -조안 엘리자베스 록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중에서 종부세 무력화로 수혜가 예상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고층아파트 밀집지역.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3. 백 명 중에 가장 재산을 많이 가진 1명에게 1000원을 주고 나누라고 한다면 가장 가난한 1명이 가질 수 있는 돈은 얼마가 될까요? 계산이 안 되지만 0.00............1원쯤 될 겁니다. 백 명 중 가장 가난한 1명에게 1원을 준다면 나머지 99명은 최소한 1원 이상씩은 다 가지게 될 겁니다. 요즘 들어 한명의 천재가 수천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재벌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중소기업 서민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이론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겠지만 반재벌 정책을 폈다던 참여정부기간동안에도 기업 실질 소득증가율이 38%에 이른 반면, 물가 상승률(3.6%)에도 현저히 못 미치는 자영업자 소득율(2.6%)이나 상승하는 청년 실업율(7.9%) 같은 수치를 보면서 “트리클 다운”효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2005년 기준-한겨레)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정부여당에서 시행하려는 각종 세제 개혁안 하나만 보더라도(종부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등의 감면) “만 명의 환자에게 약을 썼는데 서너 명에게만 효과가 있다면 그것을 약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던 춘추전국시대의 묵자(墨子)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는 속담에서 미운 놈은 자신에게 피해를 준 나쁜 사람을 뜻한다기 보다는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수자(minority)를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백 명 중 가진 게 많아 시기 받는 몇 명이 아니라 가장 가진 게 없어 피 눈물 흘리는 몇 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의 이해와 도움이 없이는 정상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떡 하나 더 얹어주어 그 사회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공동체적 인식과 합의가 이 속담에 배어있습니다. 수챗구멍에 빠진 파 한 조각을 건지는, 찻잔에 빠진 파리의 생명을 걱정하는 사람의 손길에서 우리는 선조들이 남겨놓은 속담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556 | 추천: 0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보수진영의 인사들이 이르면 10월부터 서울시내 고교생들을 상대로 ‘현대사 새로 알기’ 특강을 한다고 한다. 20일 쯤 구체적인 커리큘럼이 나온다고 하는데 특강의 주요 내용은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노선’, ‘선진 서구 문명과의 교류’, ‘시장경제 원칙 고수’ 등 크게 세 가지가 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 특강에는 북한민주화 포럼 이동복 대표, 나라정책연구원 김광동 원장, 서울대 이영훈 교수 등 보수진영의 인사 30여명이 강사로 나설 것이라 하고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언론기사를 보면 이들은 이 강연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사로 나서게 될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자신의 강의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지금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중심으로 강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특강을 주도하는 전국학교운영위원회 총연합회 송인정 회장은 ‘기존 교과서가 대한민국 건국과정과 성장과정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폄훼하고 있으니 이제 ‘건국’ 60주년을 맞이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주눅 든 역사가 아니라 짧은 기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현대사가 있다는 걸 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이들의 문제의식을 담아 좌편향 사교과서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이른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다. 교과서포럼의 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실사구시 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역사교과서가 나와야 한다는 일념 하에’ 대안교과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교과서에선 일제의 위안부 강제동원 얘기도 빠져있고, 일제에 의한 수탈 주장도 잘못되었으며 일제하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의 기반이 닦여졌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고등학생들에게 ‘새로’ 알려줘야 할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앞서 나온 일본의 우익단체가 만든 후소사 역사교과서에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이미 담겨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이런 현대사 새로 알기 노력이 민간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편향된 이념을 담은 역사교과서의 채택을 막겠다고 했고,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념논쟁이 일고 있는 역사교과서를 수정하겠다며 로드맵까지 밝히고 나섰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금성출판사판)도 이미 4년 전 국사편찬위원회와 전문가의 검토를 거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국사편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수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불편한 과거사를 들춰내는 것보다 보다 긍정적인 면을 우리역사에서 찾겠다는 노력이라면 지금 진행되는 현대사 새로 알기 특강에 시비를 걸 생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과거역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회피하면서 역사와 과거의 기억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15일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고 있다. 뒤 전광판에 적힌 ‘위대한 국민, 기적의 역사’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역사 새로 알리기 작업은 여러 방면에서 추진됐었다. 4.3 추모행사에 대통령이 불참했고 5.18 기념행사에도 대통령의 참석여부가 논란이었다. 나아가 올 8.15를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바꾸자는 입법안까지 제출되는 등 현대사에 대한 인식의 충돌은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역사해석의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실용노선과 결합하면서 단순히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로도 부상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일 관계이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보다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한일관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실용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어찌 보면 자유지만, 그렇다고 과거로부터 잉태되어온 오늘의 현실까지 바꿀 수는 없다. 더구나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현실정치를 풀어가려 한다면 이는 더 큰 재앙으로 다가오지 않을 지 걱정이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9 | hrights | 조회: 46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