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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않은 변호사 ‘우영우’(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9-14 14:41
조회
397

정한별/ 사회복지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근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 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드라마는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많았다. 여기저기서 드라마 속의 ‘우영우’ 캐릭터가 사랑스럽다느니, 귀엽다느니, 자폐성 장애를 알게 되었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우영우 신드롬’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니, 뒤늦게 드라마를 본 나도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우영우라는 변호사가 다양한 사건을 변호하고,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자폐가 있는 딸을 혼자서 기른 아빠, 우영우와 학창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친구, 있는 그대로의 우영우를 사랑하는 같은 로펌의 송무팀 직원, 우영우를 이해하고 챙겨주는 봄날의 햇살 같은 직장동료, 편견을 걷어내고 우영우의 능력을 본 직장상사까지.
드라마는 제목을 잘 못 지었다. 정작 이상한 것은 ‘우영우’가 아니라, ‘우영우’ 주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폐성 장애는 매우 독특한 장애 유형이다.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장애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장애인복지법」을 따른다. 이 법에 정의된 자폐성 장애인은 “소아기 자폐증, 비전형적 자폐증에 따른 언어·신체표현·자기조절·사회적응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의미한다.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정의 규정처럼 자폐성 장애로 인한 모습 역시 매우 다양하다. 적어도 현실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운영 우’와 비슷한 자폐성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옆집의 자폐성 장애인


 은미(가명)씨는 자신의 아이를 외딴 섬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아이가 가진 장애를 먼저 알렸고, 새 학기가 되면 같은 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파티를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우관계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아이는 그런대로 학교에 잘 다녔다.


 그러나,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자 괴롭힘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해의 대상이었던 자폐가, 중학교에선 놀림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지켜줄 수 없는 사회, 낯선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폐를 가진 아이가 당당히 살 수 있도록 십 수년간 지속했던 노력들이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 나가버렸다. 아이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학교 역시 학교의 안위만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자폐성장애가 있음에도 교내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역량이 있다고 인정되었던 아이는, 그 어떤 말도 믿을 수 없는 그저 자폐성 장애인이 되었다. 아이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


 형진(가명)씨의 손끝엔 굳은살이 많이 있었다. 손등과 팔, 그리고 다리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았다. 불안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고, 손과 팔다리를 긁어대는 통에,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곤 했다. 형진씨는 세탁기를 잘 돌렸다. 집에 돌아오면, 세탁기에 자신이 입었던 옷을 모두 넣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일을 좋아했다.


 그는 사람을 쳐다보고, 맨살을 쓰다듬는 일 자체를 좋아했다. 처음 나와 만난 날에도, 갑자기 내 손목을 쓰다듬고는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의 다리에 아주 잠깐 손을 댔다(만졌다고 할 수 없을 정도). 피해자의 부모는 형진씨를 신고했고 경찰 조사에서 수사관이 물었다.


수사관: “다리 만졌죠?”
형 진: “다리 만졌죠”
수사관: “모두 인정 하시는 거죠?”
형 진: “모두 인정 하시는 거죠”


 수사관에게 형진씨의 반향어 1) 에 대해 설명했다. 수사관은 어차피 CCTV에 모두 찍혀 있어, 그런 건 상관없다고 했다. 경찰은 사건을 송치했고, 검사는 형진씨를 기소했다.


 재판과정 중에 피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는 형진씨를 이해해주었다. 법원 역시 형진씨의 의사무능력을 인정했다. 다만, 법원은 치료감호 처분을 통해, 자폐성 장애가 있는 형진씨를 사회로부터 격리한 후 치료할 것을 제안했다. 법원은 ‘자폐증은 사회와 격리가 필요하며,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형진씨를 진료한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과 발달장애인지원센터 2) 등 다양한 발달 장애 관련 기관의 지원 덕에 형진씨는 치료감호 처분 대신 지역사회에서 전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출처 - pixabay


우영우 변호사의 이상한 지인들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가 직장 생활을 하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우영우 변호사의 능력이나, 우영우 개인의 특성 덕분만은 아니다. 초점화된 ‘우영우’라는 캐릭터 옆에 존재하고 있던 현실에서 보기 드문 ‘이상한 지인들’의 공이 크다. ‘장애’라는 인식을 넘어 우영우라는 사람을 바라보던, 아버지,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직장상사가 자폐성 장애인 우영우가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흔히 발달장애인(한국에선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합쳐 발달장애인이라 부른다)은 혼자서 살 수 없다고 한다. 자립해서 살 수 없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누구도 혼자서만은 살 수 없다. 혼자서 살 필요도 없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우리 동네에 있는 사람, 우리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살고 있고, 함께 살아야만 한다. 서로 돕고 이해하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발달장애인을 조금만 더 이해하고, 양보하며, 돕는다면 발달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도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남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 속 우영우의 지인들처럼...


1) 타인의 말을 의미를 알지 못한 채로 그대로 메아리처럼 되받아서 따라 하는 말이다. 언어발달 과정에서 생후 9개월경부터 영아는 주변 사람의 말을 의식적으로 그대로 모방한다. 반향어는 영아의 어휘발달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반향어는 자폐증(autism)의 전형적인 한 증후이기도 하다.(교육심리학용어사전)
2) 2015년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발달장애인에 대한 권리보장 및 통합적인 지원을 위하여 설치된 발달장애인 전문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