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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또 ‘연대’다 -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8:02
조회
309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교실 풍경 하나.
모둠수업을 위해 모둠을 짜고 있다. 교사는 모둠별 수학능력의 편차를 되도록 최소화하기위해 모둠원을 모두 짜서 칠판에 판서한다. 모둠별 학생이름이 한 명 한 명 적혀질 때마다 학생들의 격렬한 반응들……. 아이들의 이런 저런 요구사항을 들어주다가는 원활한 모둠구성과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아 교사는 단호하게 밀고 나간다. 결국 한 모둠에 속한 여학생 한 명이 ‘와앙’ 울음을 터뜨린다. 사연의 내막은 그 학급에서 가장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남학생이 그 모둠에 배정되었다는 것이다. 함께 협동해서 수행평가점수를 받아야 하는 모둠활동에서 그 아이는 모든 아이들의 기피대상인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표정관리를 못하고 있는 그 남학생, 그리고 계속 훌쩍거리는 여학생, 본수업도 아닌 모둠구성에서부터 기운을 빼며 진땀 흘리는 교사.
- 수업능력이 떨어지는 친구와 한 모둠이 되기를 거부하는 학생들, 모둠활동에서 중요한 건 우리 아이가 다 했는데, 같은 모둠이라고 같은 점수를 주는 건 부당하다고 또박또박 항의하는 학부모,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 거부당한 아이의 맘 속 생채기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교실풍경 둘.
중간고사 시험 예비종이 친다. 일사불란하게 시감 교사들은 문제지와 답안지를 챙겨 교실에 들어간다. 교실 뒷벽까지 8~10명 씩 5줄로 늘어서 앉은 아이들에게 교사는 책상 줄을 똑바로 맞추게 한다. 신속하게 문제지와 답지를 배부하고는 ‘모두 머리 위에 손을 올리라’고 엄격하게 말한다. ‘시험지에 표시한 답이 옆에 앉은 친구에게 보이지 않도록 4절 시험지를 반으로 접고 풀어라’,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부정행위다’고 엄포를 놓는다. 뒷면 중앙에는 시감을 보조하러 온 학부모가 긴장한 채 학생들을 둘러본다. 5분 뒤 본종이 치고 아이들은 마른침을 꼴깍이며 문제를 푼다. 고개를 정면에 박아 둔 채.
- 앞, 뒤, 옆에 앉은 친구들이 볼까봐 시험지를 가리고 문제를 푸는 아이들. 우리 애가 뒷자리에 앉아 시험지를 늦게 받아서 문제 푸는 시간이 부족했다며 항의하는 학부모. 이런 살벌한 시험을 겪으며 우리 아이들은 어떤 가치를 가슴에 담아두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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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가 실시된 지난 3월 31일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교실(교무실) 풍경 셋.
고개를 삐딱하게 외로 꼰 채 연신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빗고 있는 한 여학생. 책상위에는 교과서도 노트도 없다. 수업을 진행하다가 그 여학생에게 몇 번 시선을 주던 교사는 뚜벅뚜벅 걸어와 여학생 앞에 선다.
“너 지금 뭐하니?”
“머리 빗는데요.”
“지금 수업시간이다. 책이랑 노트 펴.”
마지못해 교과서를 펴는 여학생. 여전히 삐딱하게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다. 치미는 화를 삼키던 교사, 수업이 종료되자 여학생을 데리고 교무실로 간다.
“선생님이 너 왜 불렀는지는 알겠지?”
“모르겠는데요.”
“너 요즘 태도가 왜 이래? 통 공부엔 관심이 없어 보이고.”
“네, 저 공부에 관심 없어요.”
“그럼, 학교는 왜 다니는데? 너 처음엔 안 그랬잖아.”
“ …….”
“중간고사 점수 보고 선생님 깜짝 놀랐다. 공부를 하긴 한거야?”
“열심히 했는데요. 했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누구에겐가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그래서 이제 공부 관두기로 했어?”
“……” 여전히 삐딱한 표정으로 교사를 바라보는 여학생.
- 3월 초 정부회장 선출 전 임시회장을 했던 예쁜 아이가 있었다. 얼굴뿐 아니라 온몸으로 환하게 웃음 짓는 게 매력이었던 그 아이. 그 아이의 중간고사 성적은 정말 형편없었다. 초등학교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점수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어느새 얼굴도 일그러져 가고 내 수업시간에도 엎드려 있기 일쑤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환하게 웃지 않는다.
교단에 선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매년 새봄에는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에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 오랜만에 맡은 1학년 담임. 지난 3월 2일 입학식이 진행되던 날, 운동장에서 처음으로 만나 본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직은 어색한 교복을 입고 멋쩍게 서 있던 그들의 얼굴에는 새로운 ‘시작’과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두려움까지 서려 있었다. 교사로서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란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고 또 뭉클하다. 그러면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잘 해 보자’라는 다짐도 하게 되는 것이다.
3월 초 제각기 다른 빛깔과 향취를 지닌 채 너무도 예쁘게 반짝이던 내 반 아이들이 실력이 모자라는 친구를 거부하고, 함께 도와가며 공부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냉정한 아이가 되어가고, 다른 아이에 비해 떨어지는 시험성적 때문에 상처받고 절망하면서 반짝임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자기 아이가 받을지도 모르는 작은 불이익에 건건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조급증을 내는 학부모 옆에서 아이들은 또 시들어간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사교육을 요령껏 동원하여 자신의 아이들은 특목고에 보내는 교사들, 이러한 성공사례를 부러워하며 그 비결을 연수(?) 받고자 하는 또 수많은 젊은 학부모교사들. 이 교사들의 이율배반적인 삶의 모습을 우리는 간단히 질책할 수 있을까?
위의 모습들은 일제고사의 확대와 특목고 자사고 난립, 이미 공공연해진 고교 등급제, 학벌위주의 사회구조. ‘경쟁제일주의’를 무슨 금과옥조처럼 섬기는 정부.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만들어낸 괴이한 풍경들이다.
이 땅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 택배기사의 처절한 죽음, 벼랑 끝으로 내몰린 비정규직의 생존권 등의 절박한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고도, 가슴에 아스팔트 깐 것처럼 의연할 수 있는 것은 내 옆의 아이를 밟고 올라서야 성공하게 되는 우리교육의 구조에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도대체 우리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해 왔던 것인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는 불행한 사태들이 단순히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도록 뿌리내려버린 사회전체의 시스템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욱 무겁고 우울하다. 거대한 공룡이 돼버린 이 시스템을 개선하기에 우리 개개인은 너무 힘이 없다.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도 꿋꿋하게 공안정국으로 밀어붙이는 이 정권의 대책 없는 무식함과 뻔뻔스러움에 너무 많이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변명을 해가며 침묵하기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엄중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너무 암담하다. 우리들의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참혹해질 게 뻔 한 현실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그런 마음들끼리 모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결국 우리가 가진 건 ‘머릿수’다. 모여야 한다. 스크럼을 짜고 그들보다 더 견고한 연대를 만들어 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