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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목에 칼을 겨누는 경찰 -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8:01
조회
271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1995년 4월 28일 대구에서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나 101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가 있었다. 당시 방송에서 야구경기를 생중계하면서 사고 상황은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던 기억이 난다.

5월 18일 즈음 대구 경북대에서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출범식이 열릴 예정이었는데, 한총련은 꽤 똑똑하게도 대학생 헌혈운동을 조직했다. 몇 천 장은 모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기꺼이 헌혈했다. 그렇게 모은 헌혈증을 모조리 대구에 갖다 줬다.

지금도 그러겠지만 당시 한총련 출범식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대구에서 데모하다가는 경찰한테 잡혀가기 전에 대구 시민들한테 돌 맞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광주, 전남, 전북에서 모여든 대학생 수천 명도 은근히 그런 게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게다. 그런데 웬걸. 출범식을 마치고 시내행진을 하는데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게 아닌가.

가스폭발사고에 대처하는 정부 측의 처리방식에 대한 불만과 헌혈증 수천 장을 기꺼이 보내온 학생들이라는 건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대비되는 연상 작용을 일으켰다. 그들은 운동권 학생들을 환영한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시내행진을 하는 동안에도 교통경찰을 빼고는 경찰 구경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의 정치 감각이 대단했다. 어차피 한총련에서도 평화시위하기로 명확한 방침을 정했다 대구시민들이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매우 좋지 않았다. 괜히 충돌이 일어나면 고스란히 정부에 짐이 될 뿐이었고 지지기반인 대구 시민들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 때 대구는 아무런 충돌도 없이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총련 출범식은 대구에서 벌어진 한바탕 축제로 끝을 맺었다.

당시 보여줬던 정치 감각을 오늘에 되살릴 수는 없는 노릇일까. 경찰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날 가만히 있었더라면 ‘소요 사태 우려’는 애초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원한 건 추모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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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분향소 주변을 여전히 차벽으로 에워싼 경찰의 '조문 방해'가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경찰이 시청 앞 광장을 개방했더라면 적어도 현 정권에 마음이 가고 노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시민들은 자기편으로 남겨둘 수 있었다고 본다. 1주일간 경찰이 시청 앞 광장과 청계광장을 막아서 시민들의 조문행렬을 방해하자 시민들이 너나없이 “이건 좀 심한 거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법주차를 해놓고 검은 옷을 입은 전의경들이(혹은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심지어 대나무 만장이 아니라 PVC 만장을 보여주자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도 자신이 없단 말인가. 이리 소심해서야 남은 3년 반을 어떻게 버티겠다는 걸까.”

이제 우리는 안다. 경찰이 없으면 정권안보 유지가 불가능해졌다. 경찰은 더욱더 정권유지에 매진할 꺼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길어도 3년 반이다. 경찰 수뇌부는 10만 경찰들의 자부심과 성실함을 대가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더구나 지금 경찰의 행태가 그 3년 반조차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경찰의 곤봉은 지금 대통령의 목을 겨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