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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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고은애/ 전남대 법학과 학생 - 이번 글은 허창영씨가 진행했던 글쓰기 공부모임의 글로 대신 합니다.- 얼마 전 지방 모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해당 대학을 노동청에 고소하는 일이 일어났다. 대학이 2000년부터 8년 동안 강사료의 일부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그 액수만 해도 수십억에 이른다고 한다. 시간강사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평균적으로 시간강사가 대학 강의의 50%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대학에서 그들에게 보장하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이 주는 것이라곤 강사료 몇 푼이 고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대학의 냉대는 물론이고 불확실한 미래라는 더 큰 짐은 시간강사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런 시간강사를 대상으로 지성의 요람인 대학이 벌인 일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렵지만 현재 이것이 우리 대학의 사정이다.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듯 하다. 그런데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어야 할 대학만 오히려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나누어 쓰면 얼마든지 있을 것 같은 연구실 공간이지만 시간강사에게는 해당이 없다. 그나마 휴게실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시간강사는 차 안에서 연구한다”는 말이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강의에 대한 연속성도 보장되지 않는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일방적인 통보만 있을 뿐이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대학과 시간강사 사이에는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만이 존재 할 뿐이다. 그런데 이는 시간강사의 처우가 단순하게 개인적 이익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대학이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과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이 시간강사를 냉대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이는 연구실 공간조차 주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교양과목을 수강했을 때의 일이다. 성적에 의문이 들어 담당 강사와 면담을 하고 싶었다. 전임교원이라면 연구실로 찾아가면 되지만 시간강사는 그럴 수가 없다. 연락처도 몰랐던 터라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주소가 틀렸는지 ‘확인되지 않음’이라는 메시지만 있고 답도 오지 않았다. 의문만 잔뜩 담긴 성적을 받아들여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연락처라도 알면 해결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강사들은 대부분 교양과목을 담당한다. 때문에 강사의 연락처를 알기 위해서는 교양과목을 개설한 해당 단과대학의 행정실이나 조교실에 문의를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성적에 대한 것이라 여차저차해서 겨우 연락처를 얻기는 했다. 당시에는 연락처만 알면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웬걸. 강사와 통화를 하는데 만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연구실이 없어 강의 때만 학교에 잠깐 머무르니 당연한 일이다. 결국 우리는 학생들이 오고가는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성적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성적 확인을 위해 기꺼이 와준 강사의 착한 마음씨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렇듯 성적 확인이라는 쉬운 일도 시간강사에게는 그렇지 않다. 면담할 공간도 문제려니와 그 한 명을 위해 먼 거리를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불편함은 고스란히 학생의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시간강사에게 개인연구실을 제공하는 것이 재정적인 부담과 공간 부족 등의 어려움이 있다는 대학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그렇지만 이는 손가락 뒤에 숨은 달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태도이다. 시간강사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다. 결국 학생을 위한 일인 것이다. 시간강사를 냉대하는 대학, 그것은 결국 학생들의 교육권을 방치하겠다는 반인권적인 태도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67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한국에서의 국제연대활동의 유형은 시기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는 한국의 인권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기위한 고전적 국제연대활동이다. 대규모의 인권침해가 만연했고,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가 부재했던 암울한 독재 정권 시기에는 각 분야별 노동이슈면 노동단체들이, 환경 관련이슈면 환경단체들이, 여성은 여성단체들이 단체 내에 국제연대 부서를 두어서 각 이슈에 대한 상황을 관련 국제단체들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서명이나 항의 전화나 항의 편지 등의 구체적인 액션을 외부로부터 요청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규모가 큰 단체에서의 국제연대부서의 활동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외국의 사례를 한국에 알리고 이를 이슈화하며, 한국 내에서의 활동을 조직하는 활동인데 이는 아마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1991년도 미국에 의한 걸프전 때 몇몇 여성, 평화단체에서 했던 반전시위가 그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전쟁과 점령, 외국의 정치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침해사례가 발생할 때 한국 내에서 단체들끼리 꾸준한 연대대응모임과 활동이 있어왔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민변이라는 단체에서도 국제연대활동 부서는 단체 창립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쭉 있어왔다. 주로 했던 활동은 앞서 말한 유형 중 첫 번째인 주로 국내의 인권침해 사례 등을 유엔인권메커니즘을 통해서 제기하고 이슈화하고, 외부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행동을 이끌어 내는 활동이었다. 하지만 단체 내에서 서서히 국내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필요할 때 연대를 요청하는 이기적(?) 활동보다는 다른 나라의 인권침해상황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이 생기기 시작했고, 특히나 국제연대단체들끼리 공유하는 메일이나 간간히 국제회의에 참석하면서 해외 인권침해사례와의 접촉 빈도가 높아지면서 앞서 밝힌 두 번째 유형쪽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실제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 내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해외 각 국에서 활동하는 국제단체들과 연대하는 활동이 시작되었다. 통계적으로 최근 2~3년 내의 활동을 살펴보면 필리핀에서의 시민활동가 탄압(말이 탄압이지 실재 도로에서 총기를 사용하여 활동가들이나 성직자를 살해하는 수준)에 연대하는 활동, 버마에서의 민주주의 열망에 대한 버마군정의 탄압에 항의하는 활동, 중국정부의 박해를 받는 티벳인들과 연대하는 활동,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학살에 항의하는 활동 등 다양한 이슈와 영역에 걸친 국제연대 활동들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활동들은 자연스럽게 이전만큼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게 솔직한 상황이다. 단체내의 모습을 보면 다시 국내의 여러 인권침해사례에 대해서 기존에 했던 활동(유엔인권메커니즘 활용)에 더하여 유엔 이외의 국제기구에 한국의 사례를 알리고 이에 대한 연대를 요청하는 활동이 더욱 늘어났다. 그것도 거의 하나의 사안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사안이 터지고, 네버엔딩 사안폭발이라 이러한 사안을 계속 알리다 보면 나중에는 창피하기까지 하다. 요즘처럼 데모한번 할라치면 오만절차를 다 치르더라도 나중에 불허되기 십상이고 광장이 경찰차로 삥 둘러 쳐진 사안을 해외에 보낼 때 “정말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모양까지 갔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청 앞 광장과 태평로 일대를 둘러싼 전경버스 사진 출처 - 뉴시스 앞서 밝힌 두 가지 유형은 어느 것이 옳다는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어떠한 활동을 보다 집중하고 역량을 투여해야 하는지와 같은 선택의 문제이다. 인권보호에 국경과 민족이 있을 수 없기에 차이를 두지 않고 모두 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활동함에 있어 비현실적이다. 개인적으로 솔직히 한국의 시민사회는 국외의 인권탄압상황에 눈을 돌려 그에 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게을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현재는 그 쪽의 상황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활동가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관심을 가지냐가 활동에 중요한 동인이겠지만, 외부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뭔가 발전된다는 느낌보다는 쓸데없는 고민만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장 좋은 모습은 국제연대 활동의 외연이 넓어져서 국내와 국외, 주제와 주제를 넘어 활동함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경계를 넘는 국제연대활동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모든 게 이명박 때문이야!’라고 하며 스스로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양심상 그렇게는 하기에는 너무 민망하다. 가슴 속 켕기는 것도 있고.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면밀하고 냉정하게 봐야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은 이러한 고민을 무척이나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이씨~~MB(에구, 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냐?)
2017-07-11 | hrights | 조회: 237 | 추천: 0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교실 풍경 하나. 모둠수업을 위해 모둠을 짜고 있다. 교사는 모둠별 수학능력의 편차를 되도록 최소화하기위해 모둠원을 모두 짜서 칠판에 판서한다. 모둠별 학생이름이 한 명 한 명 적혀질 때마다 학생들의 격렬한 반응들……. 아이들의 이런 저런 요구사항을 들어주다가는 원활한 모둠구성과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아 교사는 단호하게 밀고 나간다. 결국 한 모둠에 속한 여학생 한 명이 ‘와앙’ 울음을 터뜨린다. 사연의 내막은 그 학급에서 가장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남학생이 그 모둠에 배정되었다는 것이다. 함께 협동해서 수행평가점수를 받아야 하는 모둠활동에서 그 아이는 모든 아이들의 기피대상인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표정관리를 못하고 있는 그 남학생, 그리고 계속 훌쩍거리는 여학생, 본수업도 아닌 모둠구성에서부터 기운을 빼며 진땀 흘리는 교사. - 수업능력이 떨어지는 친구와 한 모둠이 되기를 거부하는 학생들, 모둠활동에서 중요한 건 우리 아이가 다 했는데, 같은 모둠이라고 같은 점수를 주는 건 부당하다고 또박또박 항의하는 학부모,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 거부당한 아이의 맘 속 생채기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교실풍경 둘. 중간고사 시험 예비종이 친다. 일사불란하게 시감 교사들은 문제지와 답안지를 챙겨 교실에 들어간다. 교실 뒷벽까지 8~10명 씩 5줄로 늘어서 앉은 아이들에게 교사는 책상 줄을 똑바로 맞추게 한다. 신속하게 문제지와 답지를 배부하고는 ‘모두 머리 위에 손을 올리라’고 엄격하게 말한다. ‘시험지에 표시한 답이 옆에 앉은 친구에게 보이지 않도록 4절 시험지를 반으로 접고 풀어라’,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부정행위다’고 엄포를 놓는다. 뒷면 중앙에는 시감을 보조하러 온 학부모가 긴장한 채 학생들을 둘러본다. 5분 뒤 본종이 치고 아이들은 마른침을 꼴깍이며 문제를 푼다. 고개를 정면에 박아 둔 채. - 앞, 뒤, 옆에 앉은 친구들이 볼까봐 시험지를 가리고 문제를 푸는 아이들. 우리 애가 뒷자리에 앉아 시험지를 늦게 받아서 문제 푸는 시간이 부족했다며 항의하는 학부모. 이런 살벌한 시험을 겪으며 우리 아이들은 어떤 가치를 가슴에 담아두게 될까? 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가 실시된 지난 3월 31일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교실(교무실) 풍경 셋. 고개를 삐딱하게 외로 꼰 채 연신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빗고 있는 한 여학생. 책상위에는 교과서도 노트도 없다. 수업을 진행하다가 그 여학생에게 몇 번 시선을 주던 교사는 뚜벅뚜벅 걸어와 여학생 앞에 선다. “너 지금 뭐하니?” “머리 빗는데요.” “지금 수업시간이다. 책이랑 노트 펴.” 마지못해 교과서를 펴는 여학생. 여전히 삐딱하게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다. 치미는 화를 삼키던 교사, 수업이 종료되자 여학생을 데리고 교무실로 간다. “선생님이 너 왜 불렀는지는 알겠지?” “모르겠는데요.” “너 요즘 태도가 왜 이래? 통 공부엔 관심이 없어 보이고.” “네, 저 공부에 관심 없어요.” “그럼, 학교는 왜 다니는데? 너 처음엔 안 그랬잖아.” “ …….” “중간고사 점수 보고 선생님 깜짝 놀랐다. 공부를 하긴 한거야?” “열심히 했는데요. 했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누구에겐가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그래서 이제 공부 관두기로 했어?” “……” 여전히 삐딱한 표정으로 교사를 바라보는 여학생. - 3월 초 정부회장 선출 전 임시회장을 했던 예쁜 아이가 있었다. 얼굴뿐 아니라 온몸으로 환하게 웃음 짓는 게 매력이었던 그 아이. 그 아이의 중간고사 성적은 정말 형편없었다. 초등학교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점수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어느새 얼굴도 일그러져 가고 내 수업시간에도 엎드려 있기 일쑤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환하게 웃지 않는다. 교단에 선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매년 새봄에는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에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 오랜만에 맡은 1학년 담임. 지난 3월 2일 입학식이 진행되던 날, 운동장에서 처음으로 만나 본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직은 어색한 교복을 입고 멋쩍게 서 있던 그들의 얼굴에는 새로운 ‘시작’과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두려움까지 서려 있었다. 교사로서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란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고 또 뭉클하다. 그러면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잘 해 보자’라는 다짐도 하게 되는 것이다. 3월 초 제각기 다른 빛깔과 향취를 지닌 채 너무도 예쁘게 반짝이던 내 반 아이들이 실력이 모자라는 친구를 거부하고, 함께 도와가며 공부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냉정한 아이가 되어가고, 다른 아이에 비해 떨어지는 시험성적 때문에 상처받고 절망하면서 반짝임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자기 아이가 받을지도 모르는 작은 불이익에 건건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조급증을 내는 학부모 옆에서 아이들은 또 시들어간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사교육을 요령껏 동원하여 자신의 아이들은 특목고에 보내는 교사들, 이러한 성공사례를 부러워하며 그 비결을 연수(?) 받고자 하는 또 수많은 젊은 학부모교사들. 이 교사들의 이율배반적인 삶의 모습을 우리는 간단히 질책할 수 있을까? 위의 모습들은 일제고사의 확대와 특목고 자사고 난립, 이미 공공연해진 고교 등급제, 학벌위주의 사회구조. ‘경쟁제일주의’를 무슨 금과옥조처럼 섬기는 정부.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만들어낸 괴이한 풍경들이다. 이 땅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 택배기사의 처절한 죽음, 벼랑 끝으로 내몰린 비정규직의 생존권 등의 절박한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외면하고도, 가슴에 아스팔트 깐 것처럼 의연할 수 있는 것은 내 옆의 아이를 밟고 올라서야 성공하게 되는 우리교육의 구조에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도대체 우리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해 왔던 것인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는 불행한 사태들이 단순히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도록 뿌리내려버린 사회전체의 시스템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욱 무겁고 우울하다. 거대한 공룡이 돼버린 이 시스템을 개선하기에 우리 개개인은 너무 힘이 없다.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도 꿋꿋하게 공안정국으로 밀어붙이는 이 정권의 대책 없는 무식함과 뻔뻔스러움에 너무 많이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변명을 해가며 침묵하기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엄중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너무 암담하다. 우리들의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참혹해질 게 뻔 한 현실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그런 마음들끼리 모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결국 우리가 가진 건 ‘머릿수’다. 모여야 한다. 스크럼을 짜고 그들보다 더 견고한 연대를 만들어 야 할 것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07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1995년 4월 28일 대구에서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나 101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가 있었다. 당시 방송에서 야구경기를 생중계하면서 사고 상황은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던 기억이 난다. 5월 18일 즈음 대구 경북대에서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출범식이 열릴 예정이었는데, 한총련은 꽤 똑똑하게도 대학생 헌혈운동을 조직했다. 몇 천 장은 모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기꺼이 헌혈했다. 그렇게 모은 헌혈증을 모조리 대구에 갖다 줬다. 지금도 그러겠지만 당시 한총련 출범식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대구에서 데모하다가는 경찰한테 잡혀가기 전에 대구 시민들한테 돌 맞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광주, 전남, 전북에서 모여든 대학생 수천 명도 은근히 그런 게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게다. 그런데 웬걸. 출범식을 마치고 시내행진을 하는데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게 아닌가. 가스폭발사고에 대처하는 정부 측의 처리방식에 대한 불만과 헌혈증 수천 장을 기꺼이 보내온 학생들이라는 건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대비되는 연상 작용을 일으켰다. 그들은 운동권 학생들을 환영한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시내행진을 하는 동안에도 교통경찰을 빼고는 경찰 구경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의 정치 감각이 대단했다. 어차피 한총련에서도 평화시위하기로 명확한 방침을 정했다 대구시민들이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매우 좋지 않았다. 괜히 충돌이 일어나면 고스란히 정부에 짐이 될 뿐이었고 지지기반인 대구 시민들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 때 대구는 아무런 충돌도 없이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총련 출범식은 대구에서 벌어진 한바탕 축제로 끝을 맺었다. 당시 보여줬던 정치 감각을 오늘에 되살릴 수는 없는 노릇일까. 경찰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날 가만히 있었더라면 ‘소요 사태 우려’는 애초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원한 건 추모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지난 5월 2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분향소 주변을 여전히 차벽으로 에워싼 경찰의 '조문 방해'가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경찰이 시청 앞 광장을 개방했더라면 적어도 현 정권에 마음이 가고 노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시민들은 자기편으로 남겨둘 수 있었다고 본다. 1주일간 경찰이 시청 앞 광장과 청계광장을 막아서 시민들의 조문행렬을 방해하자 시민들이 너나없이 “이건 좀 심한 거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법주차를 해놓고 검은 옷을 입은 전의경들이(혹은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심지어 대나무 만장이 아니라 PVC 만장을 보여주자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도 자신이 없단 말인가. 이리 소심해서야 남은 3년 반을 어떻게 버티겠다는 걸까.” 이제 우리는 안다. 경찰이 없으면 정권안보 유지가 불가능해졌다. 경찰은 더욱더 정권유지에 매진할 꺼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길어도 3년 반이다. 경찰 수뇌부는 10만 경찰들의 자부심과 성실함을 대가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더구나 지금 경찰의 행태가 그 3년 반조차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경찰의 곤봉은 지금 대통령의 목을 겨누고 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69 | 추천: 1
장윤미/ 국민대 학생   언제부터인지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다. 관심사가 많이 달라져서이기도 하지만 정치, 사회면의 기사들이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느껴지기 시작해서다. 정치판의 모습은 어느새 장난 같고 사회면의 사건사고를 보는 건 오히려 내 삶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정치에 대한 불신이 더욱 심해졌다. 어쩌다 보게 되는 방송 뉴스에서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나올라치면 울컥 분노가 치밀었고 또 그 분노가 낭비 같아 차라리 신경 끄자며 고개를 돌렸다. 사실 ‘우습다 우습다’ 했어도 한 국가의 국민으로 사는 이상 ‘정치판’이라는 건 내 일희일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더욱 그랬던 것일 게다. 지난 토요일 아침 촬영 때문에 어느 부동산엘 앉아 있었는데, “노무현이 죽었대요.” “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이 자살하는 건 아니지 않아요?” “그럴만하니까 그랬겠지요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두런두런 논쟁하는 소리는 어느새 희미해지고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무엇이 나를 이토록 충격을 주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이토록 마음이 아픈 건 자꾸 그의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노무현으로만 보였는데 자꾸 인간 노무현이 보인다. 나에겐 늘 비판의 대상이었던 그. 정치인이니까 욕먹는 게 당연하다 싶었고 그게 정치인의 운명이라고 믿었으니까. 또 어떤 매개를 통해서만 그를 보았고,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론이 작정하고 몰아세우면 그에 대한 부정적인 면밖에 볼 수 없었다. 그걸 떠나서라도 나는 노무현 대통령 정권의 정책을 지지하진 않았다. 그의 임기 중 나는 사회라는 게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레 정치판이라는 곳은 의문이 대상이 되었고 그랬기에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부가 하고 있었기에 비난할 수 있는 건 노무현 대통령뿐이었다. 작년 촛불집회 때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선 이명박은 안 돼 노무현 때가 잘했지 그리워 라고 할 때,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고 감정적으로 과거를 향수하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안의 책임 대상을 찾다가 만난 게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나는 늘 그렇게 그와 대면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지난 24일 오후 국화꽃을 들고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모든 것을 대통령 탓이라고 돌리고 마는 우리네 정서는 문제다. 실제로 그렇지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데, 우리는 쉽게 화살을 대통령 탓이라고 돌린다. 마치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줄 거라고 믿고 잘못된 건 모두 그가 다 책임져야 할 것처럼 말한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대통령제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하는 일이 너무 많지만 그의 탓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탓하는 무게만큼 국민의 탓이, 내 가족의 탓이, 나의 탓도 무거워 져야 할 거다. 화살을 여러 개 만들지 못 한다면 또 그 화살을 나 스스로에게도 날리지 못 한다면 앞으로도 변할 건 별로 없을 거다. 쉽게 노무현 탓이라고 해버리고 말았을 때 그의 잘못 이상으로 너무 많은 짐을 지워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을 바꾸지 않으면서, 점점 더 갑갑한 사회의 모습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비난을 그에게 돌려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그냥 모두 다 이명박 탓이라고, 설령 장난처럼 내뱉더라도 그 말 한마디로 다른 것들을 너무 많이 가려버리는 건 아닌가 싶다. 이건 정말 철저히 자기반성, 우리 반성일 수밖에 없다. 참 싫다. 자살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신문에도 실리지 않는 수많은 자살 사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연예인 사건. 그래도 대통령은 자살 하면 안 된다고, 그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럴까 하며 이해하면서도 입 밖으론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고 말하는 건,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이렇게 돌아가는 나라가 싫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보도되는 그의 죽음과 관련한 뉴스와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수많은 글과 동영상 앞에서 최면 걸리듯 나라 전체가 우울증에 빠져 버리는 것도 두렵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던지는 문제들에 모두가 다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언론 역시 보도를 위한 보도가 아닌, 슬픔을 강요하는 보도가 아닌 그의 죽음이 남긴 문제들을 더 많이 얘기해야 할 것이다. 그의 죽음 앞에서 새삼 인간으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어떻게든 죽지 말고 살아야지” 라고 말하면서도 산다는 건 매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문제들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강해보이던 사람을 꺾이게 한 지독한 고뇌를 떠안은 느낌이다.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의 양심에 우리가 존경을 표하고 있는 거라면, 그래도 우리는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지점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정치판은 더러운 거라며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해선 안 된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다시 무관심하거나 모든 건 이 정부의 탓이라고 해버리는 상황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건 다 이명박 탓이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사회를 욕하며 자위거리를 찾아 다시 정치를 외면할 순 없다. 도덕이라는 말, 참 고리타분하고 굴레 같지만 지금 우리에게 도덕적 양심 때문에 죽음을 택한 노무현의 죽음이 이토록 절절한 건 그게 너무 무너져버린 사회에 대한 탄식일 것이다. 다들 깊은 절망에 아예 침잠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혹여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이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야만 하는 물음으로 이내 바뀌었으면 좋겠다. 사회에 만연한 정치 혐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떠올리며 정말 정치인들을 사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당위로서 섬김을 받는 주권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건 꼭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지는 거겠지. 어쨌든 우리가 한 국가 안에 국민으로 살아갈 것이라면, 국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국가를 만들고 싶은 거라면 말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72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지난 5월 1일부터 대한민국은 사실상 경찰 계엄 상태다. 5월 1일과 2일, 촛불집회 때 241명이 연행된데 이어 5월 16일 대전 노동자대회에서 457명이 연행되었다. 여기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어제(20일)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갖고 ‘폭력시위가 우려되는 도심 대규모 집회를 원칙적으로 불허 하겠다’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생민주국민회의, 전교조, 아고라, 촛불시민 연석회의 등 20여개 시민, 네티즌 단체를 “불법좌파 단체”로 규정하고 “상습 시위꾼” 2500여명을 검거하기로 했다는 경찰의 비밀문건도 공개되었다. 그런가 하면 수십 년간 통일운동을 해왔던 단체 인사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잇달아 구속되고 있고 평택 미군기지 반대투쟁, 뉴코아-이랜드 투쟁 등 이미 사법처리가 마무리된 사건들을 다시 끄집어 내 체포하고 구속시킨다. 하기야 술기운에 어떤 시민이 경찰에게 말을 걸면서 대통령 흉을 좀 봤다 해서 잡아가는 세상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요즈음엔 경찰이든 교도소든 정부기관을 찾아가 인권이 어떻고 이야기하면 들으려고도 않는다. 저들은 늘 저들 나름대로의 고정된 관점과 논리가 있다. 사실관계만이라도 왜곡하지 않으면 다행일 뿐이다. 그러고 나서 명령한다. 마치 국민에겐 정부의 명령을 따를 의무만 있지 요구할 권리는 없는 것처럼. 지난 5월 4일, 나는 경찰청 앞에서 ‘메이데이 촛불집회’ 강제연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이틀 동안 유치장 신세를 졌다. 내가 왜 그 고생을 해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한 거라곤 기자회견 장소를 내주지 않기에 무슨 근거로 그렇게 하냐고 경찰 간부에게 따진 것, 그들이 지정해 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데도 “정치적 발언” 한다면서 “불법집회”라고 해산을 명령 하기에 “기자회견 방해하지 말라”고 소리친 것뿐이다. 그런데 돌아온 건 “현행범” 긴급체포다. 경찰은 이제 의사 표현의 구체적인 방법, 내용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정치적 발언”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오로지 경찰만이 알 수 있다.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내 주장이 어디까지가 “정치적”인지 따져가며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정치로부터 소외된 서민들이 기자회견(기자도 별로 오지 않지만)을 하는 것 자체가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준엄한 목소리를 알리고자 함인데, 그런 발언을 하지 말라니? 차라리 옥외에선 ‘절대 기자회견 금지’라고 밀어 붙이는 게 더 솔직하겠다. 그건 그렇고 집회가 뭐 범죄행위라도 되나? 현행 집시법 아래서, 경찰이 집회 ‘허가권’을 쥐고 흔드는 한 언제든 범죄행위로 치부될 수 있다. 이것은 누누이 지적돼 왔지만 언론, 출판,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헌법 21조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나 경찰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는 최대한 보호하겠지만 불법폭력 집회는 엄단 하겠다’며 입버릇처럼 떠든다. 경찰이 보호(?)해주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 어떤 것일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 경찰버스 차벽과 전경들로 삥 둘러쳐진 고립된 공간에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며 노래도 불러보지만 집회장 밖에 있는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언론을 타기라도 하면 다행일 텐데 쉽지가 않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여론을 형성해 보자는 게 집회·시위의 목적인데 이렇게 하고나면 별 효과도 없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맥이 빠져 버린다. 물론 관제 행사나 보수 우익 단체들의 집회는 예외가 된다. 5월 16일 대전에서 노동자들이 죽봉을 들고 시위 좀 한 거 가지고 난리다. 나도 그날 현장에 있었지만 이명박 정권의 광기가 어떤 것인지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 집회는 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다 산화해간 故 박종태 열사를 추모하고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을 촉구하는, 숙연한 분위기의 집회였다. 게다가 비까지 내렸다. 대전 정부청사 앞 광장에 모인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파업을 결의했고 연대하러 왔던 많은 노동자, 시민들이 뜨거운 박수로 지지를 보냈다. 물론 합법적인 집회였다. 그런데 경찰이 허용한 행진 코스는 정말 이상했다. 보통 행진은 어느 목적지를 정해놓고 집회현장에서부터 걸어가는 게 일반적인데 이 날은 그게 아니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차량을 타고 이동해서 대전 도심에서 벗어난 중리 사거리(신탄진 방면)에 내려 열사의 시신이 안치된 대전 중앙병원까지 약 1.7km 정도만 행진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경찰은 표면적으로는 “도심교통방해”를 우려해서 그렇게 했다지만 비도 내리는데다가 이동 차량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일대 교통은 더 혼잡스러워졌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난 16일 대전 서구 둔산동 정부청사남문광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뒤 대나무 깃대에 꽂은 만장을 든 채 대한통운 대전지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날 병원 앞에서 대한통운 물류기지까지 1.7km 더 가는 게 문제 해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도 그랬고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죽어라고 부려먹기만 하다가 운송료 30원 더 올려 달랬다 해서 문자 메시지로 78명의 택배 노동자들을 해고해 버리고 열사를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한통운 앞에 가서 고함이라도 한 번 질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대한통운은 아직도 이명박 정권의 빽을 믿고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지 않은가? 경찰이 행진을 더 이상 막을 명분도 없었다. 그곳은 비교적 한적한 곳인데다가 먼저 신고 된 집회는 열리지 않았으니까 만약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이런 요구를 허용했다면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대응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4차선 도로에 차벽을 쌓아 놓고 색소와 최루액을 섞어 물대포를 쏘아댔다. 초장부터 부상자가 속출했다. 내가 아는 어떤 여성 사진기자는 전경의 방패에 코뼈가 부러져 들려나왔다.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경찰 저지선이 뚫렸고 우리는 대한통운 앞에까지 갈 수 있었다. 집회 대열이 전경들의 수보다 더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들뜬 기분도 잠시, 날이 어둑해질 무렵, 방송차에 올라간 사회자가 집회 종료를 선언하자마자, 경찰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긴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최루액을 발사했다. 쫓겨 가다 넘어지면 압사까지 우려되는 상황, 뒤처진 사람들은 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히며 난타를 당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집어 들어 사람을 팼다. 150여명의 부상자가 그렇게 해서 발생했다. 나와 함께 갔던 한 여성 활동가는 인도에서 토끼몰이를 당한 후 방패에 어깨를 맞고 쓰러졌는데, 전경이 죽봉으로 배를 찌르면서 확인 사살(?)까지 했다고 한다. 세상에 그런 악귀들이 따로 없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죽창을 든 폭도’라고?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1980년 5월, 광주를 그렇게 매도하고 고립시키면서 학살로 몰아가지 않았던가? 집회의 자유는 언론, 사상, 표현의 자유 등과 더불어 민주주의의 척도이고,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지금 민주주의를 절단 내고 있다. 왜? 9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되고 있고 실질 실업자가 340만 명이 넘어가는 상황임에도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가 “한 치도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며 밀어붙이고 있는 저들의 정책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인권을 위해 필요한 법 절차는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저들과 ‘죽창이냐, 죽봉이냐’ 따위의 논쟁을 벌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 사이 죽어가고 있는 서민들의 숫자는 늘어만 간다. 이제는 당장 살기 위해서, 뭐든지 들어야 할 때다. 대규모 집회와 강력한 파업 그리고 필요하다면 죽창까지도!
2017-07-11 | hrights | 조회: 373 | 추천: -1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봄비가 내려 땅바닥에 파헤쳐진 웅덩이를 자연스레 메워 버리듯 이명박 정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질과 눈가림으로 용산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태를 뒤덮으려 한다. 지난 3월11일 용산 상가 재개발 5구역에 일단의 용역직원들과 포크레인이 다시 나타났다.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아무 것도 해결된 게 없어 장례조차 치루지 못한 유족과 철거민들은 분노하며 서럽게 울부짖었지만 무정한 철거 굉음에 묻혀 버렸다. 국가폭력에 의한 명백한 살인사건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법을 우습게 아는 전문 시위꾼들’의 폭력이 더 큰 문제인양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찰은 지난 9일 ‘용산 참사 추모집회’ 때 ‘경찰관 10여명을 폭행하고 무전기를 탈취했다’며 연행한 8명의 시민 가운데 2명을 구속시켰다. 조선일보는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을 밟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한줌밖에 안 되는 시위 전문가들에게 농락당하는 후진적 상황”을 개탄하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경찰 지갑 탈취 등)을 가지고 마구 소설을 써댄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상습 시위꾼들은 200여명 정도로 그간의 채증 자료 등을 바탕으로 전원 검거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분석하고 있는 “도심 상습 시위대” 200여명은 어떤 사람들인가? 140여명은 학원 강사, 자영업, 종교인, 화가 등 직업을 가진 사람, 나머지 60여명은 무직자나 자퇴생이라고 한다. 이들은 지난 해 촛불 시위가 잠잠해진 이후에도 다음 ‘아고라’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활동해 왔고 대부분 집시법 위반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 가운데 무직자나 자퇴 학생들이 “폭력 시위의 주동자‘들일 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구속된 사람들 모두 무직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다. 그동안 경찰은 파업 또는 시위 과정에서 연행, 구속된 민주노총 조합원, 사회단체 회원 들을 이런 식으로 불러왔다. 그런데 이제는 ‘아고라’를 통해 활동하는 “상습 시위꾼”이라니......‘아고라’가 뭐 ‘불법폭력시위 단체’라도 된단 말인가? 머지않아 ‘아고라’를 “불법폭력시위의 온상”으로 규정하고 회원들을 대량 검거하는 사태를 예상해야 할 지 모르겠다. '용산참사’' 벌어진 서울 용산재개발 4구역에서 재개발조합 측이 지난 3월 11일 중장비를 동원, 철거작업을 재개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먼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잘못을 규탄하는 국민의 정당한 목소리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전문 시위꾼”의 돌출 행동으로 폄하하면서 인권을 유린한 것 자체가 문제다. 국민의 60% 이상이 검찰의 용산참사 관련 수사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답변하고 있고 부자들만을 위한 재개발 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용산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거리에 나온 시위대의 규모가 기백명 정도로 작다 해도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 행동하지 않고 있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소수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최소한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들의 손에는 촛불과 손 피켓 외에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다. 그런데 시위대의 1.5배나 되는 경찰병력을 배치해서 거리 곳곳을 틀어막아 놓고는 “교통흐름을 방해 한다”며 시위와 행진을 ‘불허’하는 현실 때문에 고성과 폭력이 오가는 “무법천지”가 재현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권으로선 그동안 “법과 원칙”을 외치며 더 많은 인력과 첨단 장비를 투입해서 탄압을 지속했건만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습 시위꾼”들의 숫자에 신경이 곤두설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돈도 권력도 없고 조직되지도 않았기에 우리 사회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던 사람들,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지내면서 나날이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바로 이명박 정권이 상정했던 “국민 성공시대”의 주역들이고 우리 사회의 다수다. 그런데 지금 세계 경제위기와 잘못된 정부 정책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이들이 촛불을 내려놓지 못한 채 “명박 퇴진”을 외치며 집회 현장을 찾아다니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투쟁이 거듭될수록 이들은 국가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습 시위꾼’으로 변모해갔다. 이명박 정권이 과연 이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국민과의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고 민의를 표출할 수 있는 정당한 통로마저 막아버린 주제에... 조선일보와 이명박 정권의 말대로 ‘공권력’은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을 죽인 경찰은 물론이고 사회적 신분이나 정치적 풍향계에 따라 제멋대로 형벌을 남발하는 검찰과 법원 또한 마찬가지다. 저들이 자주 쓰는 표현처럼 ‘공권력’ 자체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신뢰의 위기”가 온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에 따르면 근대국가는 ‘외부의 적과 내부의 질서교란자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 한다’는 약속아래 폭력을 독점했고 국민은 그 약속을 믿고 국가에 복종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국가가 폭력을 독점한다는 말은 무기를 독점하고 국민의 신체를 독점함으로써 군대나 경찰을 창설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이 정당한 폭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권한까지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똑 같이 ‘타인의 신체를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쓴다 해도 군대나 경찰이 사용하면 폭력이 아니라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정당화 된다. 마치 내가 하면 로맨스요,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인 것처럼... 하지만 국가의 폭력독점은 근대이래 끊임없이 도전받아 왔다. 생산수단과 부를 독점한 소수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장악하다 보니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국가는 특정 계급의 사익을 정당화해주는 ‘억압기구’에 불과한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고는 하지만 현대에 와서도 국가기구의 계급 편향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야바위꾼 같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대표랍시고 의사당에 앉아 졸속으로 만들어 낸 “MB악법” 같은 것들을 ‘지엄한 국법’이니 지키라고 말한다면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는 건 당연할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그런 엉터리 법을 지키지 않는다며 경찰을 동원해 군화 발과 몽둥이로 짓밟아 버린다면, 당하는 국민들은 살기 위해서 국가의 폭력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도 권력자들이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통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해결책은 혁명을 통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38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새해 벽두부터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의회 쿠데타”, “MB(이명박)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매일 밤 야당의원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촛불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밤을 지새우다 연행까지 당하는 그야말로 비상시국이다. 하지만 일상에 묻혀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민주적 권리에 대한 MB정권의 위협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아직까지는 실감이 안 날 수 있다. 그런 분들에겐 빠르게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는 교도소(구치소)의 인권상황을 주시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감옥은 한국사회에서 민주화의 햇볕을 가장 뒤늦게 받았지만 가장 빠르게 사그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폐쇄적인데다 “범죄자”를 수용하는 곳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쉽게 묻혀져 버린다. (당국에서는 감옥이란 말은 사라진 용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내가 이 용어를 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오늘 아침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민주노총 울산본부 배문석 문화국장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구치소에서 지난 12월 23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중간을 가위로 난도질해서 들여보냈다는 것이다. 신문을 난도질해서 들여보내는 것은 유신이나 5공 시절에 자행됐던 악랄한 인권침해다. 감옥에 갇힌 수많은 양심수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면서 이런 야만적인 관행들이 사라졌는데 MB정권이후 몇 달 사이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정된 행형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금지된 서신 검열도 버젓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비단 부산구치소 만의 문제가 아닐 터. 안동교도소에 4년째 수감 중인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정창윤 씨는 한 달 가까이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난방도 변변치 않은 감방에서 그나마 지급되던 부실한 식사마저 끊어 버렸으니 그의 체력은 지금 고갈 될 대로 고갈된 상태다. 출소를 불과 몇 개월 앞 둔 그가 왜 이렇게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걸까? 안동교도소는 지난 12월 8일, 정창윤 씨의 전화통화 신청을 불허했다. 12월 19일에는 지인이 정창윤 씨 앞으로 보낸 전자서신을 본인에게 통보조차 해주지 않은 채 폐기시켰다. 전화, 서신, 접견 이 세 가지는 자유를 박탈당한 구금시설 재소자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다. 만일 이것들이 금지되거나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면 재소자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고 만다. 감옥 안에서 심각한 가혹행위를 당해도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UN의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 같은 국제인권규범에서는 최대한 완벽하게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기본적인 인권 사항이다. 지난 해 12월 22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행형법도 서신검열을 원칙적으로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화사용의 권리 또한 확대했다. 그런데도 안동교도소는 버젓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관례에 따라 함부로 제한해 버린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를 들어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전화통화를 불허한 이유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법령 어디에도 가족이 아닌 사람과 통화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교도소(구치소)들은 툭하면 “가족이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 걸음마 단계의 어린 아이도 아니고 가족들하고만 소통하라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된 전자 서신은 “단식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본인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은 채 폐기 시켰다. 본인의 동의 없이 발송된 서신을 폐기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다. 교도소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더니, 교화과장은 전자서신은 웹상에서 한 달 동안 자동 보관되기 때문에 폐기한 건 아니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본인에게 전자서신이 온 것을 알리지도 않았으니 정 씨가 계속 모른 채 한 달을 넘겼다면 자동 폐기되었을 것이다. 교도소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개정 행형법에 서신내용을 검열하지 못하게 한 조항(43조 4항)이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수많은 단서조항들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예를 들면 “수형자의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불허하도록 돼있다. 상당히 애매모호한 규정이다. 그러다보니 법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데 이럴 경우 재소자들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정립된 판례의 입장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과잉금지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니까 단서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우려”들이 발생할 개연성이 명백한 경우에만 제한은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법을 적용하는 공무원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좌우된다. 정창윤 씨가 단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안동교도소의 열악한 처우 때문이었다. 안동교도소가 “교정·교화”에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재소자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먼저다. 그러지 않고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재소자들을 “문제수”로 찍어놓고 징벌을 가하는 등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갈수록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창윤 씨가 단식을 하고 있던 지난 12월 19일, 안동교도소에 있던 청년 재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사동 복도 난간에 목을 맨 것이다. 일부 언론에 나온 쪽 기사를 보니 교도소 관계자는 고인이 여러 차례 자살, 자해 소동을 벌였던 사람이라며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고인과 같은 병 사동에 수감되어 있던 이진강 씨(국가보안법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의 주장은 다르다. “무책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교정행정체제”가 꽃다운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유명을 달리한 故 이정훈(24) 씨는 교도소에 입감되자마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두 달 남짓 전에 대전에서 안동으로 이송되었다. 교도소 측의 주장처럼 그가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대전에서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지만 후유증 때문에 한 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생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죽기만을 원했던 것 같지는 않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했던 이 씨는 죽기 얼마 전까지도 작곡 공부를 하고 싶다며 음악잡지를 구독하게 해달라고 교도소 측에 간절히 요청했다. 하지만 일고에 거절당했다. 그 때의 좌절감이 너무나 컸던지 죽기 이틀 전까지 “대전에서는 되는데 왜 여기서는 안 된다는 거야. 나보고 죽으라는 얘기야”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교도관들과 상담을 할 때도 여러 차례 “자살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며 구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은 암보다 치사율이 더 높은 사회적 질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밖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들도 쉽게 걸리는 병인데 하루 종일 갇혀 지내는 재소자들은 오죽하겠는가? 행형법(제39조)에 따르면 “소장은 정신질환이 있다고 의심되는 수용자가 있으면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치료감호시설로 이송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씨가 대전에 있을 때부터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는데도 당국은 왜 그를 치료시설이 있는 진주가 아니라 환경이 더 열악한 안동으로 보냈던 것일까? 결국 재소자 인권보다는 행정 편의를 앞세우는 억압적인 교도소 환경이 안타까운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평소 우울증 환자들에게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고인은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MB 독재’가 심화될수록 인권사각지대가 확대되면서 안타까운 죽음은 늘어만 갈 것이다. 감옥의 높은 장벽 탓에 세상 밖으로는 잘 들려 나오진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최소한의 인간다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재소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77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기초 질서만 잘 지켜도 GDP가 1%는 올라 갈거”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이 있고나서 지방자치단체, 경찰서, 교도소 할 것 없이 관공서에서 국민을 계도하겠다며 앞다퉈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이란 걸 벌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월드컵을 응원하던 시민들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집회장소를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며 성숙한 시민의식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이명박 정부 들어 “기초 질서”가 안 잡혀서 경제가 어려워졌다 말하니 당황스러울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기초질서” 더 나아가 “법질서 확립”이 교통질서 잘 지키고, 거리에 침 안 뱉고, 담배꽁초 안 버리고... 뭐 이 정도로 가벼운 수준이 아닌 건 분명하다. “떼 법 청산”을 들먹이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짓밟고 있고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옭죄는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당장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조차 “불법”이라고 꼬투리를 잡고 있다. 최근 감옥에서도 대대적인 “기초 질서 확립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이 전국교정기관장회의에서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취지는 “과거 민주화가 와전되면서 수용자들의 기강이 나태해졌으니 기본질서를 바로 잡아 여러 사람이 편안할 수 있는 수용환경을 만들라”는 것이다. 재소자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돼 거의 하루 종일 갇혀 지내야 하는데다 행동을 제약하는 수많은 법규들이 있어 이를 어기면 엄한 징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기초질서”라 해서 또 다른 규율을 강제하고 있다. 감옥안의 “기초질서”란 알고 보면 재소자들을 옴짝 달짝 못하게 옭아매 놓고 군대식의 위계질서를 강제하는 걸 의미한다. 최근 안동교도소에서 그 문제점들이 속속 도출되고 있다. 안동교도소는 4월 셋째 주부터 “기초질서 확립기간”으로 돌입했다. “기초 질서”가 잡힐 때까지 무기한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안동교도소에는 오산 수청동 철거민 투쟁으로 구속된 정창윤 씨와 소위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이진강 씨가 수감돼 있다. 그런데 최근 두 사람은 모두 “기초 질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벌방에 갇히거나 형사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진강 씨는 그동안 양심수로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규율을 다잡으며 생활해왔고 동료 재소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교도소 간부들도 그를 “모범수”라고 칭찬하기까지 했다. “기초질서 확립기간”이 시작되고 나서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진강 씨에게 처음에는 하루에 두 번 있는 점검시간에 정면을 응시한 채 부동자세로 앉아 있지 않는 다고 지적했다. 점검을 하는 목적은 오로지 인원을 파악하고 재소자들의 사고발생유무를 확인하는데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식으로 “군대식 점호”를 강제할 규정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 이진강 씨는 그동안 점검시간이 되면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 독서를 하곤 했다. 이렇게 해도 전에는 문제 삼지 않았다. 지난 4월 21일 저녁 8시경, 교도소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재소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여러 명의 교도관들이 한꺼번에 이진강 씨가 혼자 생활하는 거실에 들이닥쳐 난폭하게 방문을 열어 젖혔다. “기초질서를 해치기 때문에 계도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이동 감찰반” 이라고 했다. 안동교도소는 교도관들을 퇴근도 못하게 붙잡아 놓고 재소자들이 취침에 들 때까지 사동을 돌면서 “기초 질서”를 잘 지키는지 감시하라고 조를 편성해서 운용하고 있다. 그들은 방안을 둘러보더니 책상위에 노트가 몇 권 놓여 있는 걸 보고 “책상 정리가 안 되었다”며 트집을 잡았다. 티셔츠를 입던 이진강 씨에게 관복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는 관복을 입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런 규정을 듣도 보도 못한 이진강 씨는 규정을 가져와보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감찰반장이란 사람이 대뜸 반말로 “그런게 다 있어!”라고 한마디 하고는 지시명령을 위반했다고 기록했다. 그들은 마치 동네 불량배처럼 이진강 씨를 위협했다. 다음 날에도 또 그런 일이 또 반복되었다. 이진강 씨는 교도소장 면담을 신청했다. 감찰반장이 규정에도 없는 명령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건 직권 남용이고 반말과 폭언으로 인격을 침해했으니 징계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장 면담은 신청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이진강 씨는 “기초질서를 세 번 위반했다 해서 징벌조치 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징벌 조사를 받으면서 이진강 씨는 교도소 측이 터무니없이 사실을 조작해서 검찰에 고소까지 했음을 알게되었다. 그가 교도관에게 욕설을 하고 베개를 집어 던지며 감찰반원들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이진강 씨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한 건 자신이라고 했다. 교도소 측의 이런 조치는 이진강 씨의 정당한 항의와 징계요구에 대한 보복이며 양심수들에 대한 “군기 잡기”라고 생각된다. 이진강 씨는 4월 29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법무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법질서 캠페인 그림 출처 - 법무부 정창윤 씨는 지난 4월 22일 또 다시 징벌방에 갇혔다. 한 달 전 교도관의 소내 재소자 구타사건을 알려내기 위해 “부정서신”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10일간의 금치(징벌방 수용) 처분을 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또 다시 징벌을 받게 된 것이다. 정창윤 씨가 징벌에서 풀려난 후 교도소 측은 정창윤 씨가 “문제수”라도 되는 양 “개별처우”를 한다며 직원 2명과 경교대원 1명을 붙여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들은 운동이나 목욕, 세탁물 건조할 때라든지 심지어 종교집회를 갈 때조차 따라다니며 캠코더로 채증을 했다. “기초질서 확립”을 핑계로 하루에 한 번 씩 검방(교도관들이 불시에 재소자들의 방을 이 잡듯이 뒤지는 것)도 실시했다. 검방 도중 정창윤 씨의 방에서 목공용 작업 본드(환각성이 없는 흰색 접착제)와 작업용 비닐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동료 재소자가 출소하면서 본드는 벽지 바를 때, 작업용 비닐은 세탁물 담을 때 쓰라며 건네주고 간 것이었다. 그러나 교도소측은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었다며 또 다시 20일간의 금치 명령(징벌방 수용)을 내렸다. 보안상 큰 문제가 없는 이런 물품들까지 광범위하게 금지시키고 있는 규정 자체가 문제다. 교도관들도 이전까지는 이런 물품들이 재소자들의 수형생활에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적발되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창윤 씨가 수감된 사동에서 검방을 통해 많은 부정물품(?)들이 회수되었는데 유독 그에게만 징벌이 떨어진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비단 안동교도소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초질서 캠페인”은 교도소 당국이 재소자들의 인권을 더 한층 옭죄고 군사적인 위계질서를 강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규정에는 없는 자의적인 명령과 징벌권을 남발하면서 소내 분위기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가려 한다. 이진강, 정창윤 씨에 대한 징벌과 고소는 부당한 인권침해에 저항해온 양심수들의 기를 꺽어 놓기 위한 보복조치라 할 수 있다. 재소자들의 인권을 말살하는 “기초질서 캠페인”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안동교도소는 양심수들에 대한 보복성 징계조치를 즉각 중단하라!
2017-07-11 | hrights | 조회: 301 | 추천: -1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지난 주 정창윤씨를 면회하기 위해 안동교도소에 전화를 걸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돌려서 전화를 받더니 하는 말이 징벌 중이라 3월 13일까지는 면회가 안 된다는 거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금치(규율 위반을 이유로 재소자를 0.75평 정도의 좁은 징벌방에 가두고 외부와의 소통을 금지시키는 가혹한 징벌)10일이면 상당히 과중한 징벌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며 따져 물었다. “다른 수형자에게 불법 서신을 보냈습니다. 더 이상은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문득 며칠 전 정창윤씨가 편지와 전화로 다급하게 면회를 와달라며 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면서 온 몸에 소름이 느껴졌다. 현재 안동교도소장인 한 모 씨는 부산교도소에 있을 때 교도관들에게 조사를 받는 모든 재소자들에게 사슬, 수갑 등 ‘계구’ 사용을 적극 독려하는 방침을 내렸고 이로 인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권고까지 받았지만 “직원 사기 및 근무의욕을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오히려 “인권위 진정 등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직원은 위로·격려”한다며 포상까지 내린 문제의 인물이라고 했다.(<한겨레신문> 1월 25일자 참조) 정창윤 씨는 전국철거민연합 회원으로 2005년 6월 ‘오산 수청동 철거반대투쟁’ 때문에 구속 돼 지금까지 옥살이를 하고 있고 앞으로 1년은 더 있어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그는 안동교도소에 2년 가까이 수감되어 있으면서 열악한 재소자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차례 단식투쟁을 했고 2006년에는 그 때문에 한 달 동안 징벌을 먹기까지 했다. 지난 해 8월 정창윤씨는 같은 사동에 수감되어 있던 포항건설노조 심진보씨와 함께 쥐가 들락날락거리는 ‘푸세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고, 법정 공휴일 재소자 운동시간 보장, 생방송 뉴스 시청을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하며 보름 넘게 단식투쟁을 벌였다. 두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정당했지만, 교도소 측은 예산 핑계를 대며 버티다가 여러 노동, 인권 단체들이 합세해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자, 화장실 개선 등 몇 가지 처우개선 요구를 수용하였다. 그 일이 있고나서 안동교도소는 점차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자마자 정창윤씨로부터 편지가 온 것이다. 서신 검열을 의식해서인지 교도소 상황에 대해 에둘러 말하고 있었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어렴풋이 그간의 사정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지난해 3월 사슬이 채워진 부산교도소 수용자 홍아무개씨의 발목에 깊은 상처가 패여 있다. 아래는 한아무개 전 부산교도소장이 재임 때 적극적인 계구 사용을 지시한 문건.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 지난 1월경, 안동교도소에서는 교도관에 의한 재소자 폭행사건이 벌어졌다고 했다. 맞은 재소자는 스스로 ‘민주노동당 당원’이라고 밝힌 원 모씨였다. 인권을 억압하는 잘못된 법과 제도 탓에 억울하게 구속된 양심수들에게 감옥은 또 하나의 투쟁현장이다. 자신의 요구뿐만 아니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다른 재소자들의 개인적 불만이나 인권침해 사례까지 떠안고 교도소 측과 투쟁을 벌이면서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떠맡아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창윤 씨처럼 불의를 보면 용납하지 않고 단호하게 투쟁해서 안 될 것 같은 요구들도 쟁취해 내는 ‘투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창윤씨는 원 씨로부터 구타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같은 사동에 있는 심진보씨와 함께 ‘투쟁계획’을 짰다. 원 씨에게 우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부터 하라고 했고, 적절한 날을 잡아서 소내에서 함께 단식 등의 방식으로 강력하게 항의를 해보자고 권유했다. 구속노동자후원회에도 서신을 보내 시급히 연대해 줄 것을 호소했다. (다른 일정 때문에 개입할 시기를 놓쳐 한탄스럽다.) 세 사람이 D-DAY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교도소 측이 낌새를 챘다. 그들은 원 씨에게 먼저 접근해서 모종의 압력을 넣은 것으로 추측된다. 3월 들어 먼저 싸워보자며 문제를 제기했던 원 씨가 갑작스레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던 진정을 취하해 버렸다. 2월말 경 투쟁의 동지였던 포항건설노조 심진보 씨를 갑작스레 포항교도소로 이감시켰다. 예전에 심 씨가 가족들이 있는 포항으로 보내달라고 한 적은 있었으나 그동안은 콧방귀도 뀌지 않다가 왜 하필 이맘 때 이감을 보낸 것인지 석연치가 않았다. 그리고 나서 3월 4일, 정창윤씨에게 “불법서신 수수”라는 올가미를 씌워 징벌을 내렸다. 아직까지도 감옥에서는 다른 사람과 서신을 교환할 때 “소장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행형법 제18조) 정창윤씨가 피해자인 원 모씨에게 허가받지 않은 쪽지 편지-감옥 은어로 “비둘기”-를 보냈다는 게 징벌 사유다. 원 씨는 소 측의 압력에 굴복해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정창윤씨가 전달한 “비둘기”를 교도관들에게 넘겨주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끼리 쪽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사실 같은 교도소내 재소자들끼리 편지를 교환하지 못하게 막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교도관들은 그동안 알아도 모른 체하며 지나칠 때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정창윤씨는 이번에 ‘금치 10일’이라는 중한 징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간의 과정을 통해 징벌을 내린 교도소 측의 속내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소 측은 문제가 된 ‘재소자 구타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외부로 알려지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또한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고 하니, 이번 기회에 인권문제라면 물불 안 가리고 저항하는 정창윤씨 같은 “골치 아픈” 사람들에게 본 떼를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와 유사한 일들이 전국 각지의 교도소에서 일어나고 있다.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감옥이란 폐쇄 시설에서 ‘교정’ 관료들은 재소자들을 그야말로 지배하고 있다. 지배를 받아야 하는 재소자들의 인권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그릇’과도 같다. 그나마 마련되어 있는 공식적인 통제장치들이 제 구실을 못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해 8월 28일, 구속노동자후원회는 안동교도소 문제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독거사동의 화장실을 비롯해서 정창윤, 심진보 씨가 제기했던 8가지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무려 7개월만인 지난 2월 15일, ‘사건처리 결과’를 통지해 왔다. 하나같이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고 “구제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둥의 무성의한 내용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 제2위원회가 통보한 사항 중 몇 가지만 훑어봐도 이들이 정말 안동교도소를 갔다 왔는지 의심스럽고, 설사 갔다 왔다 해도 소 측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반영한 듯하다. 안동교도소는 겨울에 난방시설이라고는 사동 복도에 설치된 라지에이터가 전부고 재소자들은 온기 하나 없는 마룻바닥에서 온수를 담은 페트병을 끌어안고 새우잠을 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라지에이터를 통하여 난방을 하고 수용 거실 내 온도를 측정하여 난방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조사결과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며 기각결정을 내렸다. 거실과 복도는 두터운 벽으로 막혀있는데, 라지에이터를 틀어준다고 해서 실내 온도를 얼마나 끌어 올릴 수 있을까? 몇 몇 교도소에서는 온돌을 설치하거나 전기 매트를 깔아주는 방식으로 난방을 하고 있는데, 이런 곳과 비교하면 안동교도소 재소자들은 분명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UN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제60조)이 규정한 “유사성의 원칙”(수형생활과 자유생활 사이의 차이를 극소화 할 것)에 비춰보면 어림없는 수준이다. 행형법상 매일 1시간 이내 운동시간을 보장하도록 돼 있는데도 안동교도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주 5일 근무 시행이후 일요일과 공휴일에 재소자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근무자 인력의 운영상 불가피”하므로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재소자 권리 보장을 위해 당장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재소자들이 일요일과 공휴일에 1시간 정도 운동할 권리를 영원히 박탈당할지도 모르는데 태연하게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소수자 종교의 자유 보장과 관련한 진정, 구체적으로는 무슬림들의 종교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동문서답 하듯이 “매월 종교 집회를 실시하고 있으므로 사실이 아니”라며 기각했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종교집회는 물론 매월 이루어진다. 종교집회는 사회에서는 보통 매주 1회인데 감옥이라고 해서 매월 1회만 보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의 요구는 이슬람교를 비롯한 상대적 소수 종교인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든 종교집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감옥인권 개선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갈수록 현실에 안주해서 정부 관료들과 똑 같이 ‘상황의 불가피성’만을 되된다면 인권 진전에 도움이 안 되거나 걸림돌 밖에 될 게 없다. 만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재 안동교도소장이 부산교도소에 재직하면서 저지른 “계구”착용 남발 등 명백한 재소자 인권유린과 위원회의 권고마저 이행하지 않는 안하무인식 태도에 분명하게 경종을 울렸다면 안동교도소에서 이와 같은 구타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정창윤씨에게 부당하게 징벌을 가하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안동교도소의 최근 상황은 일시적으로 감옥인권 상황이 나아졌다고 해서 안심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더 커다란 투쟁으로 나아가야 함을 일깨워 준다. 안동교도소장은 지금 당장 정창윤씨에 대한 부당한 징벌을 철회하고, 재소자 구타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혀라!
2017-07-11 | hrights | 조회: 394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