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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꽤’ 옹졸하다 (허창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1:47
조회
216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현재 광주는 전남대학교에 있는 ‘헌혈의 집’ 문제로 시끄럽다. 중앙일간지에는 잘 소개가 안 되고 있지만 지역 언론에는 연일 관련 기사가 실릴 정도로 ‘뜨거운 감자’다. 급기야 정치권까지 가세해 북구의회가 유감을 표시하고, 시의원이 1인 시위에 나설 만큼 이슈가 되고 있다. ‘전남대학교 헌혈의 집’을 놓고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 학교 측과 이전 불가를 주장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전남대학교 후문 쪽에는 1997년에 생긴 ‘헌혈의 집’이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기부채납 방식으로 건물을 지었으며, 전남대는 3년간 무상사용을 허가했다. 이후 2009년까지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12년간 무상으로 사용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전남대는 2009년 3월 광주전남혈액원에 ‘헌혈의 집’ 반환을 요청했다. 교육, 연구 공간의 부족이 이유였다. 그렇지만 광주전남혈액원이 재사용을 요구했고 전남대는 2011년 4월 30일까지 2년간만 연장을 허용했다. 당시 허가서에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요청할 경우 반환할 뿐 아니라 허가기간이 종료된 경우 원상회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남대는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전남대의 요구가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정당하다. 총장이 직접 나서 ‘정당한 재산권 행사’라고 강변하지 않아도 모두들 동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만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학교가 겉으로 내세우고 있는 ‘교육, 연구 공간의 부족’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헌혈의 집은 고작 건평 40평 정도에 지나지 않는 좁은 공간이다. 공간이 부족하다는 말의 진실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좁은 곳을 어떤 교육, 연구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학에서도 구체적인 사용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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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헌혈의 집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또 하나는 그간 전남대가 헌혈의 집을 홍보의 수단으로 잘 활용해왔다는 점이다. ‘전남대 헌혈의 집’은 전국 대학에 설치된 21개 헌혈의 집 중 헌혈 실적이 1위라고 한다. 이에 대해 모 교수는 “5·18정신의 현대적 승화”로 이해하기도 했다. 80년 광주에서 피를 나누었던 것이나 8-90년대에 불의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에 앞장선 것, 2000년대에 피가 부족한 이웃과 동료들을 위해 헌혈운동에 나선 것 모두 같은 봉사정신의 발로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대학이 이런 해석에 동의하는지는 모르지만 대학을 홍보하는데 있어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총장이 송년사에서 “4년 연속 헌혈 1위라는 영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전남대의 교시가 ‘진리, 창조, 봉사’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에서의 우려의 목소리가 있고, 전남대 구성원 5명 중 4명이 이를 반대하고 있지만 대학의 입장은 강경하다. 총장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환을 거부하는 혈액원에 대해 “사람이 할 짓거리입니까?”라고 격앙된 어조로 얘기한 것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간 전남대의 배려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왔고, 대학 차원에서 헌혈을 독려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경영대 뒤쪽에 대학 소유의 25평 공간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그렇지만 유동인구를 고려하면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안이다.)

때문에 이토록 대학이 강경한 이유는 일종의 ‘괘씸죄’일 가능성이 높다. 혈액원은 2011년 4월 30일에 계약이 만료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2년 동안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3월에 와서야 대학에 재사용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동안 별다른 요청이 없다가 갑자기 재사용을 요구했으니 대학으로써는 뜬금없을 수 있다. 또 혈액원의 태도가 여론의 유리함을 등에 업은 ‘막무가내’로 해석 수도 있다.

그렇지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에서의 대학의 공적 역할이니 국립대가 가진 사명이니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가 지적한 ‘소탐대실’이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헌혈의 집이라는 좁은 공간을 돌려받고 지역사회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면 전남대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헌혈 전국 1위’가 가진 대학의 영예를 어떤 경제적인 가치와 바꿀 수 있는가? ‘봉사’를 교시로 삼고 있는 전남대에 남겨지는 오점을 무엇으로 치유할 것인가? 결국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얻을 게 없는 다툼을 끌고 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전남대의 경고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참 대학 못났다’라는 말까지 들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