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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교직 (전국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1:48
조회
218

전국완/ 중학교 교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작년에만 4명의 교사가 명퇴하였다. 올해도 이미 40대 교사 한 명이 명퇴에 들어갔고, 두 명의 교사가 8월 말 명퇴를 신청한 상태다. 이 글을 끄적거리고 있는 필자도 명퇴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학교 밖에서는 교직만큼 편하고 든든한 직업이 어디 있냐며 시기어린 부러움의 시선으로 교사들을 바라본다. ‘잘릴 염려 없지, 일찍 퇴근하지, 방학 있지, 퇴직하면 연금 나오지……’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마는, 최근 몇 년 사이 ‘그 좋은 일터’를 중도에 관두는 교사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이다. 누가 들으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장에선 교사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교직도 엄연히 생계의 수단이지만, 그래도 우리 교사들을 버티게 했던 것 중에 많은 부분은 학생들과의 생활에서 얻는 기쁨과 보람이었다. 한창 몸과 마음에 변화를 겪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얻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뭉클함과 감동이 이제는 거의 없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지만 한 때 나누었던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으로서의 교감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학원공부가 끝나고 매일 밤 11시가 넘어 귀가해 모자란 잠을 자고, 얼굴에 피곤을 덕지덕지 바른 채 학교수업을 듣는 아이들과의 수업시간, 수업시작 후 20여 분을 넘기지 못하고 여기 저기 조는 아이들을 깨우는 일도 이제는 지친다. 하루 열 시간이 넘는 공부에 치인 아이들의 날카로워진 신경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봉변당하는 것도 보통이다. 섣부른 선행학습으로 이미 신선함을 잃은 학교수업을 듣는 일이 아이들에겐 또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생활비의 1/2에 육박하는 사교육비를 대느라 부모들이 밤낮없이 허둥대는 사이, 아이들은 각종 인터넷 게임에 중독이 되어 가고, 우범지대화 되어버린 공원 등지에서 술과 담배와 놀고, 친구들을 때리고 금품을 갈취하는 무서운 아이들로 변신을 한다. 집단따돌림부터 폭력, 금품갈취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학생사안으로 학생생활지도에 학부모면담까지 정신없이 가버리는 교사의 하루가 너무 고단하다.

이런 현실엔 아랑곳없이 학업성적부진학생 수를 가지고 학교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교간 차등 지급되는 성과급, 이웃나라에서 수 천명이 죽어나가고,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방사능 피해로 전 세계가 떨고 있는 지금, 그래서 국내 과학자들이 당장 올여름 몰려 올 태풍과 함께 닥칠 방사능 오염을 지적하며 정부대책을 촉구하는 뉴스가 나오던 날 ‘원자력...’ 문구가 새겨진 볼펜 한 자루씩 주면서 ‘원자력이 얼마나 안전하고 뛰어난 에너지인지 학생들에게 홍보하라’고 강조하는 교직원회의….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는 학교일상 속에서 아이들에게 치이고, 교육정책에서 소외된 채 영혼 없는 허깨비가 되어 가고 있는 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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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에 경쟁이라는 시장주의를 도입하면서 가장 힘들어지는 건 학생들이다.
교육의 시장화는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부산일보


요즘 경기도에 이어,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인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 말엔 왠지 학생인권을 위협하는 집단이 다름 아닌 교사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아 불편하다. 연전에 현 교육감께서 당선되기 전 교사들과의 대화중에 ‘교사인권’ 관련 질문에 대해 ‘수업공간에서 교사는 절대적인 권력자이며, 당연히 절대적 약자인 학생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답변을 하신 적이 있다. 완전히 잘못된 말은 아니나, 교사와 학생을 대결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학생의 상대는 교사가 아니다. 수업이든 생활지도든 간에 학교의 교실공간에서 교사와 학생의 인권은 하나의 덩어리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종이호랑이격인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 밤잠을 재우지 않는 이 사회의 무한경쟁시스템이며, 현장교사의 소리는 묵살한 채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로 교육정책을 쏟아내는 오만한 교과부관료들이며, 등록금으로 배불리는 사립대학들이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토해내는 한숨과 신음은 교원평가가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다. 아이들을 체벌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무한경쟁’, ‘평가를 통한 교사통제’, ‘교육의 시장화’ 라는 세 개의 톱니바퀴 속에 갇혀 질식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부품으로의 삶을 강요당하다보니 우울하고 불행하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우리 사회가 배부른 투정으로 일축하지 않기를 바란다.

요즈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가장 힘든 건 물론 학생들이다. 밤잠을 못자고 해롱거리며 도처에 널려 있는 자극에 빠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아이들. 밑빠진 독에 물 붇는 사교육비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학부모. 이미 지쳐있는 학생들과 제대로 교감하지 못하고 교육정책에서 소외된 채, 스스로를 지탱해왔던 교육적 신념을 버려가며 현장에서 이율배반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고통스러워하는 교사들. 이는 우리 교육이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심각한 신호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소생하는 길은 각각 다르지 않다. 하나다.

이제 범사회적으로 우리 경쟁교육에 대해 심각한 논의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