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나는 'A급'이 되길 포기했다. (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4:26
조회
222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나는 항상 B급, 아니 C급이었다. 몇 편 안되는 나의 지난 글들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다한)’ 지방대학 출신에 가난한 두부장사의 막내딸로, 천 만 원이 넘는 학자금대출 빚을 안고 작은 지역 언론사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그야말로 B급도 안 되는 ‘C급 인생’이다. 실력 탓이 크겠다. 썩 좋지 않은 머리로 ‘죽어라’ 공부하지 않았으니 지방대를 갔던 것이고, 이렇다 할 스펙도 없으니 중앙 언론사엔 고개도 못 내밀었다.

‘A급 인생’을 꿈꿔보지 않은 건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 없던 것도 아니다. 비겁하게도 나는 'A급 인생'을 살기위해선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경쟁에 뛰어드는 게 자신 없었다. 길게 줄 세워진 대열에서 차라리 뒤부터 세는 게 편할지도 모르는 내 위치를 확인하는 게 나는 솔직히 두렵기도 하고 ‘존심 상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는 것”처럼 ‘C급 인생 지질이’라고 해서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니까.

우습지만 이런 나 역시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시험 점수 1, 2점 가지고 웃었다, 울었다 했다. 경쟁은 상위권에서만 피터지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중위권에서도, 하위권에서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자신을 발견하기위해 모두가 아등바등 했다.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서고 싶어 안달하고 그 목적이 달성되면 뭔지 모를 짜릿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 쾌감은 이내 또 다른 경쟁으로 무너지곤 했다. 우리의 존재감은 매순간, 경쟁을 통해서만 확인됐다.


00422538801_20120301.JPG
▲ 사진 출처 -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비교와 경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10대 땐 점수로, 20대 취업 전엔 '스펙'으로, 취업 후엔 결혼으로, 30대 땐 연봉, 4~50대엔 재산과 자식으로, 그렇게 사회에서 값이 매겨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데 경쟁사회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경쟁과 비교로 미쳐있는 세상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C급 인생'을 자처하기로 했다. 당신들이 정해 놓은 낙인을 내게도 찍어 놓길 바란다면, 어떻게든 A급 도장 받으려고 쫒아 다니거나, 하급 도장 피하려 도망 다니지 않겠다. 그냥 나는 행복한 'C급'으로 살겠다.

'함께', 그리고 '연대'라는 말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기면 지는 사람이 생기고, 누군가가 우월감을 가지면 열등감을 갖는 이들이 있다. 때로는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을 에너지로 쓰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편에선 도태된 자신에 대한 실망과 피해의식으로 절망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함께 연대하자"는 말은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말이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경쟁을 통해 줄 세우는 게 아니라, 주저앉아 있는 사람을 부축해 함께 가는 것이다. 좀 모자라고 초라한 나 같은 이들도 서로 다독이며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음 싶다.

나이, 외모, 학벌, 재산, 부모에 까지 점수를 내고 급수를 매겨 결혼하는 세상에서 최상급은 언제나 주목 받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다른 '언론고시생'들에 비하면 길지만은 않은 몇 달간의 서울살이를 접고, 당진이라는 작은 도시로 내려왔다. 한창 땅을 파헤치고 바다를 메워 공장 짓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아직까지는 소박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로 가득한 곳이다. 지긋지긋했던 경쟁으로부터 도망쳐 '오프로드'로 밀려난 내가 이들과 부데 끼며 살게 될 날들이 정말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