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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정보활동 전체가 문제 (허창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3:50
조회
21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민간인 사찰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총선 정국을 요동치게 할 정도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서로를 질타하고 있다. 민간인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은 흔히 도덕적 문제로 인식돼 선거에서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보여준 사회적 파장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여야는 서로 인정도 하지 않거니와 먼저 나서 사과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탓하는 격이다.

물론 현 정부에서의 사찰과 지난 정부에서의 정보활동은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 현 정부에서의 사찰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자행되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소위 공직윤리를 바로잡기 위해 있는 기관이다. 이러한 성격의 기관은 이름만 달리 했을 뿐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찰의 범위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혹 공직비리와 관련된 민간인이 있을 경우에는 민간인에 대한 조사권한이 있는 기관으로 이첩해서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이를 민간인 조사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직접 ‘암약’하며 사찰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직비리와 특정한 연관이 없는 연예인들까지 포함해 광범위하게 사찰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 전근대적이고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통해 ‘국민기강’을 바로잡으려 했던 셈이다. 정말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아니 ‘막걸리보안법’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뒷덜미가 서늘해질 일이다. 그런데도 관련자들은 입 다물고 있고, 관련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검찰이 칼을 빼어 들었으니 이번에는 제발 무라도 자르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이번일과 관련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사찰파문에 기름을 부은 것은 ‘KBS 새노조’가 ‘리셋 KBS 뉴스9’에서 사찰보고서를 공개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중 80%는 지난 참여정부 때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사찰은 참여정부에서도 자행되었다’며 물타기를 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공개된 보고서가 경찰에 의해서 이루어진 통상적인 정보활동이라고 일축했다. 다시 말하면 법적 권한이 있는 경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현 정부에서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과는 차원이 다르고, 내용도 사찰이 아니라 정보활동이라는 얘기다. 물론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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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각계 인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news1


하지만 문 후보가 한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대자동차 노조 동향에 관한 보고서, 화물연대에 관한 보고서, 전공노 동향에 관한 보고서 3건을 보면 불법사찰에 관한 자료가 아니라 일선 경찰의 정보보고, 통상활동, 직무범위 내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활동 보고서”라고 했다. 즉 경찰이 노조활동에 대해 정보활동을 빌미로 ‘합법적인 사찰’을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사실 이런 식의 경찰 정보활동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노조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동향을 살피고 있다. 심지어는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걸거나 찾아와 행사의 성격과 목적 등을 ‘캐묻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한다. 사찰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동향보고’ 또는 ‘정보활동’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만 했을 뿐 그 내용은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찰은 사회갈등을 최소화하고 평화적 조정자가 되기 위해 정보활동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노조활동이, 시민단체의 활동이 사회갈등으로 치부되는 것이 정당한가? 그리고 경찰이 평화적 조정자를 자임할 이유 또한 뚜렷하지 않다. 그보다는 정권에 대한 충실한 ‘하수인’이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런 활동에 대해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사람이 문제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현 정부에서 이루어진 민간인 사찰과는 성격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리고 ‘물타기’도 적절치 않다. 그렇지만 경찰에 의한 광범위한 정보수집이 과연 꼭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권력의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간략하게 정리된 동향보고서가 매력적인지 몰라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공포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경찰에 의해서 건 아니면 검찰 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정보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는 공포다. 따라서 지금의 논의는 민간인 불법사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합법의 탈을 쓰고 있는 불필요한 정보활동 전체가 재검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