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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과 아동학대 사이의 간극(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5-09 10:18
조회
361

정한별 / 사회복지사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한다(아동복지법 제6조).


1923년 방정환을 포함한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방정환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배포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



  1.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2.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3.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 맞춰하도록 하여 주시오.

  4.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5.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6.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주시오.

  7.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8.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갓 태어난 고작 팔뚝만한 아이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고, 졸리다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아프다고 운다. 그저 운다.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을 부모가 처리해 줄 수 있도록 우는 일이 그 첫 번째다.


 

내내 울고 잠을 자기만 하는 아이가, 가끔 부모를 보고 웃는다. 정말 부모를 보고 웃는 것인지, 기분이 좋아 웃는 것인지, 반사반응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조그마한 아이가 배냇짓을 한다. 아이의 우는 소리에 지치다가도 가끔 보여주는 배냇짓에 부모는 따라 웃고는 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우는 소리에 힘겨워 이 아이가 정말 죄없이 맑고 깨끗한 존재인가를 의심하다가도 아이의 웃음에 부모는 육아로 지친 마음을 위로 받는다. 동시에 아이로 인해 차올랐던 분노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자신 스스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갓난 아이는 외부(부모)에 의존해 살아 남는다. 아이는 기고 앉고 일어서고 걷고 뛰게 된다. 울고 웃고, 옹알이를 하고 엄마, 아빠, 맘마 하다, 말을 하게 된다. 아이는 점점 외부(부모)의 의존에서 떨어져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도 성장이 필요하다.


 

방정환이 첫번째 어린이날 행사에서 보낸 편지처럼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고 아이를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을 갖는 일, 아이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인정하는 일, 아이의 성장에 비례하여 부모의 개입을 줄이는 일, 아이가 충분히 배울 수 있도록 부모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는 일.


 

성장하지 않는 부모 아래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고작 8살짜리 아이가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은 부모와 자신이 함께 있는 집이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꽤나 소란스럽고, 어지간히도 말을 듣지 않고, 제법 건방진 아이. 그런 아이 곁에 있는 부모는 어떤 사람이어야하나.


 

부모는 사는게 녹록치 않았다.


 

아이의 아빠는 오랜 시간 일을 했다.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려울만큼 일을 할수록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일은 되려 어려워졌다.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 지 고민해 본 일 없던 아빠에게,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이뿐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 었다. 다른 가족과 친구를 떠나 남편만 보고 이룬 가정이 아이의 엄마에겐 점점 섬처럼 변했다. 엄마가 속한 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다루는 일 뿐이었다.


 

어느덧, 커가는 아이의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는 부모가 아닌 스마트폰이 돼버렸다. 친구도 스마트폰을 통했고, 세상도 스마트폰을 통했고, 부모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실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떼를 쓴 것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였다. 부모의 요구로 아이에게 쥐어준 스마트폰. 아이를 보는 일이 힘들어서, 아이가 혼자 있는 게 불안해서, 아이가 심심해 할까봐 쥐어준 스마트폰은 어느덧 부모 자신의 권위를 대체해버렸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아빠 대신 스마트폰을 보고 웃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늦은 시간까지 스마트폰을 하면 안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존경과 사랑을 빼앗긴 분노에 불과했다. 아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때리고 욕을 했다. 엄마는 남편의 옆에는 있었지만 아이의 곁에는 없었다.


 

며칠이 지나, 아이의 엄마도 아이를 때렸고 아이는 폭력을 피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 조사를 앞둔 부모는 아이가 배냇짓을 하던 때처럼 한없이 사랑해 주었다.


 

"엄마한테도 혼이 나긴했는데, 기억은 잘 안나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엄마, 아빠 모두 잘 해줘요."


 

아이는 부모를 끝없이 용서한다. 학대의 원인을 자신 안에서 찾는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가 날 미워할 리 없다. 부모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 잘못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부모가 내게 사과를 했다. 이제 괜찮다.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부모는 날 다시 예뻐할 것이다.


 

아이의 용서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한없이 연약한 존재가 더없이 거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본능이다. 울고, 웃고, 용서하는 아이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마주한 어른들 역시 선택을 해야 한다. 100년 전 첫 번째 어린이날에 방정환이 쓴 편지는 민법상 징계권(민법 제915조 부모의 징계권은 2021년 삭제됨)이 사라진 2023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2014년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수 14명,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 2020년 43명.

2014년 아동학대 발생 건수 10,027건, 2015년 11,715건, 2016년 18,700건, 2017년 22,367건, 2018년 24,604건, 2019년 30,045건, 2020년 30,905건.

2021년 아동학대 발생건수 37,605건, 하루평균 아동학대 피해아동수 103명, 재학대 발생건수 5,517건(재학대 발생비율 14.7%),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 수 40명.

<출처: 아동학대 주요통계, 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