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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에게, 국기에게 애국심을 묻지 마세요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12
조회
389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정부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가의식을 고취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폐지된 학교의 국기하강식을 부활하고, 청소년들에게 태극기 게양사진을 찍어 제출하는 방안까지 추진한다는 기사가 얼마 전 언론을 통해 흘러 나왔다.

이를 강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정부는 이에 연례적인 행사일 뿐 법 개정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이고 다시 국기하강식을 하려는 이유는 국가의식, 즉 애국심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지나간 삼일절에는 아파트부녀회 등에서 태극기를 무료로 각 세대마다 나눠주는 아파트단지가 많았다고 한다.

태극기는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가의 여러 이미지를 대신하는 대체재로서 작은 천 조각(정부보급형은 60㎝ⅹ90㎝)인 태극기는 그 존재의 이유만으로, 단순히 많이 접하는 것만으로 애국심을 고취 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올해부터 경기수가 늘어나 한 해 총 720경기의 정규시즌을 치르는 프로야구는 매 경기시작에 앞서 애국가가 나오면 모든 선수와 대부분의 관중들은 일어나서 오른손을 가슴에 얹는다.

경기 시작 전부터 치킨과 맥주를 마시던 사람도, 족발에 소주를 들이붓던 사람들도, 몸을 푸는 상대팀 선수를 향해 계속 욕을 하던 아저씨도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애국가가 나오면 일어나 외야 중앙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애국가가 끝나자마자 다시 앞서 하던 행동은 다시 계속된다. 나는 가끔 야구장에서 실제 그런 행동을 하거나 지켜본 사람이다. 아니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애국가를 들은 적이 더 많았지만 고백하건데 단 한 번도 그 현장에서 ‘애국심’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그냥 그 상황은 웃겼고 애국가는 지루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 몰래 영화 출연자들의 맨살이 상대적으로 많이 보이는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다. 지방의 작은 도시라서 거의 다 두 편 동시상영이었는데 한번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작영화인 심형래씨 주연의 아동영화 ‘우뢰매’와 몇 번을 돌고 돌아 다시 상영한 성인영화 ‘어우동’을 동시상영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영화 시작 전 인상적인 장면은 상영하는 영화가 ‘어우동’이건 ‘뽕’이건 ‘변강쇠’이건 간에 고향 사람들은 영화내용에 상관없이 애국가 전주 시작과 함께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 엄숙한 표정으로 애국가가 끝날 때 까지 서 있었다. 물론 우리들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엉거주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분위기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애국가를 듣는 동안 극장 안 관객들 대다수는 ‘애국심’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은 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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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서울시청 앞을 지나던 시민과 학생들이 국기 하강식을 하는 동안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물론 삼일절과 광복절 같은 국경일에 거리마다 아파트 베란다 마다 빼곡히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는 것은 썩 괜찮은 장면이다. 하지만 과거의 국경일을 기념하여 국기를 게양하는 것과 그것으로 현재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국기의 게양숫자와 애국가를 듣는 국기하강식의 존재유무는 애국심의 고취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한 해 동안 경기 전에 144번의 애국가를 경건한 분위기에서 듣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애국가를 들을 일이 10번도 되지 않는 나보다 수십 배 이상 애국심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제는 사라진 국기하강식을 통해 청소년들의 국가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발상은 야구장 안에서 술 마시고 듣거나, 성인애로영화 상영 전에 듣는 애국가처럼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무리한 국기게양과 국기하강식 사업 속에 애국심 고취를 빌미로 시민들에게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어느 한 정권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체제가 곧 독재이다.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독재정권 아래에서 교육을 받으며, 학교에 등교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하교할 때 거리에서 국기하강식을 접한 세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세대는 1980년대에 대학과 공장 등에서 역사상 가장 활발한 반체제 활동을 벌였던 세대였다. 우리의 현대사가 증언하는 이 역사적 아이러니를 정권 담당자들은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5포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에게 포기를 희망으로 바꾸는 정책들이 하나씩 이어질 때, 그래서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것이 절망스럽지 않다고 생각될 때 국가의 존재는 조금씩 긍정을 넘어 사랑(愛)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이 텍스트가 아닌 현실로 구체화 될 때 애국심은 생겨날 것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