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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저지리 마을과 만나다. (이현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13
조회
590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두 달 전 아내와 딸과 함께 서울을 떠나 제주 시골로 이사하였다. 바람 많은 곳 제주로 훌러덩 날아왔다. 아,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은 한경면 저지리다. 제주 서쪽의 중산간마을이다. 제주가 고향이라서 제주로 온 것은 아니다. 육지가 고향인 놈이 서른아홉에 제주로 온 것은 나이 사십이 되기 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였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서울보다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 2월 경,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제주로 이사하면 어때?” 아내가 바로 답했다. “그럴까?” 결국 우린 대화를 시작한지 30분도 안 돼 제주행을 무모하게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은 개인적인 글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매번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만 글로 담다보니 이번 글은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라 필자와 마을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저지리 마을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써보기도 한다.

사실 이 마을에 우리 부부만 내려온 것은 아니다.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빈집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자 하는 문화예술가, 사회활동가 청년 8명이 함께 모였다. 1년여 전에 먼저 내려온 친구 부부, 서귀포에서 여기로 들어온 부부, 우리처럼 서울에서 작년 연말에 일을 그만두고 내려온 친구 등 여러 청년들이 모였다. 각자, 그리고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마을 활동들을 펼쳐가고자 한다. 서로 지인 관계이지만, 살아온 결이 다르다보니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논쟁도 치열하다.

저지리 마을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경면 주민들이 사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제주에서는 보통 중산간마을이라 한다. 제주의 중산간마을은 매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해방 이후 4.3사건 당시 제주 일대의 중산간마을 95% 정도가 불에 탔다. 그리고 대한민국 군인, 경찰의 비호를 받은 서북청년회로부터 어린이, 부녀자까지 엄청난 학살을 당했다. 이곳 저지리 마을도 4.3 때 불타 버렸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불에 타지 않았던 성읍 중산간마을이 이제는 민속마을 문화재로 보존되는 아이러니한 현실도 존재한다.

저지리로 이사 온 후 마을 이장, 청년회장 등 마을일을 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났다. 우리 이주 청년들이 마을과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저지리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았다. 특히 이곳은 마을 구성원 중 50대가 가장 많으며, 40대도 매우 많은 젊은 농촌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제주 중산간마을 중에서 유일하게 중학교가 있기도 하다. 저지리에는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도 선정되었던 저지오름과 마을 곳곳에 곶자왈(화산지대 천연 숲길)이 자리한다. 그렇다보니 해안가도 아닌 이 중산간마을에 올레길이 있다(13코스 종점, 14코스와 14-1코스 시작점). 더불어 문화예술인마을, 도립 현대미술관, 필자가 활동하는 탐라표류기 등 문화예술활동도 잘 준비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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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리 환상숲 곶자왈
사진 출처 - 인터넷


결국 필자가 이장님과 얘기한 것 중에 하나가 ‘마을주민 해설사 양성’ 활동이었다. 마을의 이 좋은 생태환경을 보고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해설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마을 탄생의 이야기부터 생태환경 모습 등 마을 스토리를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공부하고, 방문객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잘 돌보지 않았던 마을의 주변 생태환경도 함께 보존하자는 마음도 커나갈 것이라 본다. 더욱이 체험 프로그램 계발, 마을 농산물 및 생산품 판매, 숙박 등으로 마을 주민들의 복지 향상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다행히 필자가 KYC(한국청년연합)에서 시민 대상 평화*인권 안내해설사 ‘평화길라잡이’ 활동을 10여 년을 해온 터라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최근에는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181시간 교육도, 제주참여환경연대 생태문화해설사 교육도 신청하였다. 여기에서부터 마을 분들과 작은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시작해볼까 준비 중이다.

저지리 마을공동체라디오도 준비하고 있다. 제주에 개인별 팟캐스트 방송은 많지만, 마을방송국으로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탐라표류기 문화예술창고에 작은 라디오 부스도 설치하였다. 4월에는 라디오를 함께 하고자 하는 주민들을 모집하고, 5월부터 교육과 방송 제작 등을 함께 하려고 한다. 중앙 언론에서만 다루는 거대한 뉴스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 마을의 이야기들을 직접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활동이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 개인의 삶과 마을살이가 보다 풍요로워지는 마을방송국을 꿈꿔본다. 안타깝게도 라디오 주파수가 통신법상 승인이 나지 않아 인터넷으로만 송출이 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극복해 제주와 육지 곳곳에 저지리 마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필자가 우선적으로 하고자 하는 위 활동들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가져갈 것인가가 핵심일 수 있겠다. 당연히 필자도 어려움 속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겠다. 아무래도 위 활동에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족 생계를 위해서는 다른 소득 활동을 하면서 흔들리면 안 되겠다. 장기적으로는 마을 분들과 ‘커뮤니티 비즈니스’ 차원으로 발전시켜 저지리 마을의 공유 자원을 키우고 주민들과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릴게 있다. 저지리 마을에 어떠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셨으면 한다(wepeace07@daum.net). 제주 지역 한 마을과 자매결연을 고민하는 육지의 마을과 기업, 생태관광을 꿈꾸는 곳, 감귤, 딸기, 제주 로컬푸드 농산물 직거래를 원하는 곳,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지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연락을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