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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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은 많이 변하였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생겼고, 거기에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외제 차들이 많이 다니고, 시내버스는 깔끔해졌습니다. 시내 곳곳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마치 20년 전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요즈음 저에게 서울은 조금은 신기한 도시입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보다 조금 더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퇴근 무렵 전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불쾌함을 겪고 싶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굳이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여 이동하고, 그래서 서울 시내의 거리는 그렇게 붐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리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더 친절해졌습니다. 사람들도 도시의 여러 규칙들을 좀 더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특히 가게에서 겪는 친절함 중에는 과잉된 것도 있습니다. 마치 친절함 역시 그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 중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때에는 낯선 사람에 대한 무례함이 좀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친절이 불편한 이유는 그 친절함 안에 있는 그들의 삶의 고단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그 때보다 더 발전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고, 근로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고, 사회보장제도는 더 확대되었지만, 그런 사정을 들어 한국 사회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진행된 사회 양극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은 민주화의 중심 세력이었던 근로자들의 삶이 더 피폐해졌고, 그들의 지지로 2명의 대통령이 집권했음에도 그 현상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절망하곤 합니다. 자신들이 지지한 정당이 지지자들을 위한 정책조차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을 절망하게 합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많은 돈을 들여 아이들에게 사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20년의 경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은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노력을 공공연하게 비웃습니다. 20년 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희망, 즉 좋은 사회를 함께 노력하여 만들자는 바람은 웃음거리에 불과합니다. 정부나 정당은 현재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처방으로서 단순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간혹 그것이 정책인지 아니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협잡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문제들은 복잡한 원인들로부터 나오는데 그에 대한 정책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원인에 대해 단순하게 대응하는 것은, 그것이 이론적인 것이 아닌 이상, 거짓말이거나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달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은 무지하거나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희망이 없다는 점 혹은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지금 희망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생각입니다. 사회에 대한 희망은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 질서에 순응하면 저절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시장에는 ‘질서’란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원래 질서란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서’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 질서는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에 관한 것입니다. 그에 관한 정책과 대안은 복잡하고 어수선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필요합니다. 희망이 없는 오늘 보다 10년 후에도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더 힘듭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하여 대안을 만들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조금은 용기가 필요하거나 귀찮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39 | 추천: 0
평소 알고 지내던 분들로부터 사건을 의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을 때가 있는데, 사정상 내가 맡아서 처리하기는 곤란한 일들이 종종 있다. 이 때 직접 수임하기 힘든 이유를 설명 드리고 나면 내가 잘 아는 변호사를 추천해 달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변호사를 추천하는 것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건의 성격, 경제적 가치, 난이도를 고려하여 의뢰인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를 소개해 드렸다. 그리 어렵지 않은 사건일 경우 굳이 많은 보수를 주고 경력이 화려한 변호사를 선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불만을 듣게 되었다. 전부 승소할 줄 알았던 사건에서 일부 패소를 했는데 그 이유가 우리 쪽 변호사는 내가 소개해 준 사법연수원을 이제 막 수료한 변호사였고, 상대방은 최근 법원에서 퇴직한 전관 변호사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그 사건은 의뢰인이 일부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었고, 변호사를 추천할 때부터 그 점을 알려드렸는데, 내가 소개해 준 변호사 때문에 일부 패소했다는 원망을 듣게 되니 참으로 억울했다. 그 후로는 되도록 전관 출신 변호사를 포함해 복수의 후보를 추천한 후 의뢰인이 직접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한 다음부터는 특별히 원망을 듣고 있지는 않은데,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찜찜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법원이나 검찰이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관대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법무부는 최근 차관급 이상 고위직 판ㆍ검사가 퇴임하고 변호사 개업을 할 때 퇴임 직전의 법원이나 검찰이 관장하는 사건은 일정 기간 수임하지 못하게 하는 변호사법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은 입법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위헌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이미 전관출신 변호사의 개업지역을 제한하는 내용의 구 변호사법은 1989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결정을 받았다). 아무리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고 하여도 단지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개업지나 수임 업무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침해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면 어떠한 방안이 좋을까. 의뢰인들로부터 전관 출신 변호사들에 대해 법원이 보다 관대한 판결을 선고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나왔지만 답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법관을 자유롭게 만나서 변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의식해서인지 법원은 작년 정도부터 법관의 면담에 관한 내규를 제정, 시행함으로써 판사를 집무실에서 만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가 방문하는데, 이를 막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법원 직원이 변호사에게 방문대장에 방문일시와 면담사유를 기재하도록 요구하기도 어렵다. 과거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법정 외에서 변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정 외 변론은 소송상 주장을 법정에서 열리는 변론절차에서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반한다. 일방의 주장이 공개되어야만 상대방 역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법관에게 법정 외에서 소송절차 등에 관한 논의를 할 때에는 반드시 상대방 변호사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논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부득이 먼저 논의하게 된 경우라면 상대방 변호사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절차적인 공정성이 확보된 후에 비로소 실체적 판단의 공정성을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관예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 법정 외에서 변호사가 판사를 방문해 소송과 관련된 주장을 할 경우에는 그 내용을 기록하여 소송기록에 첨부하고, 상대방 대리인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부득이하게 판사 집무실에 찾아가 사건에 관하여 설명을 하더라도 떳떳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전관예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43 | 추천: 0
국정원이 지난 05년 5월부터 2년 넘게 부패척결TFT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이명박 후보의 부동산관련정보의 유출배후로 한나라당이 국정원을 지목해 검찰에 고소하고 항의방문을 하는 등 부산한 가운데 국정원이 실토한 내용이다. 나는 지난 10년 내내 내부개혁을 외쳐온 국정원이 공식 조직의 하나로 부패척결TFT를 만들어 운영해 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부정부패는 필경 국가안보를 좀먹기 때문에 부패정보 수집 역시 국정원의 소관업무라고 강변하는 국정원과 청와대의 억지에 대해 절망한다. 부패척결TFT는 명백히 국정원법 위반이다. 국정원법상 국정원은 ‘국내보안정보’, 곧 ‘대공, 대정부전복, 대북, 대테러, 방첩, 국제조직범죄’ 관련정보만 수집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국방안보 부문의 부패척결에 필요한 정보수집을 넘어 사회 각계의 부패척결에 필요한 무제한적 정보수집은 결단코 국정원의 업무가 될 수 없다. 첨단 도청 도촬 장비와 주변 탐색 기법으로 무장한 국정원이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국가와 사회의 모든 지도급인사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엿보기와 엿듣기를 시도한다면 그것이 Big Brother의 사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일까? 소속진영을 막론하고 국정원의 부패척결TFT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는 논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득권층은 자칫 입을 놀리다 국정원의 부패척결TFT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입을 다물고 사회운동권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반감으로 입을 다무는 게 아닌가 싶다. 둘 다 큰 문제다. 하나는 문어발식 국내정보 수집관행을 버리지 못한 국정원에 대해 여전히 공포를 느낀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성 정보를 수집 중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위법적 부패척결TFT 운영사실은 지난 10년간 추진돼 온 국정원 내부개혁이 실패했다는 점을 웅변한다. 그동안 보안감사권과 수사권 축소, 직원의 정치개입 처벌, 국회 정보위원회 신설, 국정원과거사위원회 운영 등 눈에 띄는 제도개혁과 과거청산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밖에서 누구 하나 들여다볼 수 없는 ‘그들만의 내부개혁’ 제스처였기 때문에 늘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정부 국정원의 광범위한 도청사실과 참여정부 국정원의 부패척결TFT 운영사례는 국정원과 같은 비밀권력기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불신과 경계가 불가피함을 일깨워준다.     향후 국정원 개혁과 관련하여 두 가지만 주문한다. 첫째, 국정원 개혁의 목표를 종전의 정치개입 예방과 근절을 넘어 인권보장을 위한 법치적, 민주적 통제 확립으로 이동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의 정보수집과 비밀공작은 법치적, 민주적 통제의 실패로 말미암은 병리적 현상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정원 개혁은  정보기관 내부에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는지, 법령준수에 필요한 내부감찰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회의 예산통제 및 행정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이나 언론집회 등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인권을 부당하게 제약할 위험은 없는지를 종합적, 객관적으로 검토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다. 둘째, 국정원 개혁은 더 이상 내부인사한테 맡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선진국에서 국내공안기관이 부패척결TFT를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났다면 당장 국회나 총리 밑에 국회정보위 소속 국회의원, 전직 고위판사, 법학교수 등 외부전문가로 독립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을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이삼십년 전부터  공안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중심의제로 설정해서 이런 과정을 거쳤다. 미국의 Church 위원회와 Pike 위원회, 캐나다의 McDonald 위원회와 Arar 위원회, 호주의 Flood 위원회, EU의 Venice 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의 부패척결 TFT 운영사실이 드러난 이상 국회는 하루바삐 국정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국정원의 업무수행 전반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전면 검토해서 인권보장에 소홀함이 없는 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곽노현 위원은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32 | 추천: 0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 도법스님의 탁발순례 동행 후기 지난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1주일 간 휴가를 내어 중3인 아들과 함께 도법스님의 탁발순례 강원도 태백일정에 합류하였다. 2004년 3월 1일, 당시 북핵 실험으로 (미국 주도의)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었을 당시, 전쟁을 막기 위해 온몸을 내어던질 사람이 10만 명만 있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생명평화결사’를 조직하여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 시작한 탁발순례 여정은, 이제 농촌을 비롯한 각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 지역 현안이나 고충 등을 경청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을 가지며 전국을 거의 다 돌고, 올해 강원도 지역과 내년 경기 · 서울 지역만을 남기고 있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과 함께 한 시간도 별로 없었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 더더욱 함께 할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방학이 끝나기 전에 모처럼 한 주간 휴가를 내서 아들과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탁발순례에 동행하게 되었다. 한 번 스치듯 지나가기만 했던 태백은 과거 광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최근에는 정선에 카지노가 들어서서 잘 알려진 지방 소도시이다. 한참 석탄이 국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일 당시 이곳 태백지역(정확히는 황지, 철암, 장성, 도계, 사북)의 인구는 13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5만 명 정도라고 한다. 지금은 석탄산업을 대체할 지역경제와 날로 줄어드는 인구 문제가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라는 몸자보를 걸치고 태백시 한복판에 있는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에서 생명평화기원제를 100배 절 명상으로 드리면서 시작된 순례 일정은 이후 아침 100배 절 명상(약 35분 소요)으로 시작하여 하루에 약 40~50리 정도를 걷고, 지역의 기관이나 단체 및 농민들과 만남 등으로 진행되었다. 참회와 서원의 내용이 낭송되는 가운데 처음 올리는 100배의 절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체투지를 통한 ‘하심’이 발심하면서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얼굴 가득하게 되었다.   강원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고 있는 탁발순례단이 22일 한강 발원지 강원 태백 검룡소에서 생명평화기원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태백생명의숲’과 ‘전교조 태백지회’, ‘의제21’ 등의 단체에서 한 주간의 일정과 길 안내 등을 도맡아 주셔서 순례단 일행은 비교적 아주 편안하게 순례를 하였다.(매일 아침 차가운 생수와 간간이 간식거리 등을 준비해 주시는 등 너무 감동적인 대접을 받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100배 명상을 하고 아침은 준비해 갖고 다니는 누룽지를 쑤어서 눌은밥으로 해결하고, 걷다가 점심과 저녁은 일체 주는 대로 먹고 저녁 명상을 한 뒤 정리 시간을 가지고 교회나 성당, 또는 폐교나 단체 사무실 등에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대략 11시 내외. 과히 많이 걷는 것은 아니지만 뙤약볕 속에서 꽤 빡빡한 일정들을 소화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쉴 시간들이 별로 없는 편이어서 제법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도로를 걸을 때는 마주 오는 차량과 마주 대하는 도로 왼 편에서 운전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걸었다. 왕복 2차선 국도는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마주 오는 운전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는 것이 곧 평화의 정신이라고 도법스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의 80% 이상의 차량 운전자나 동승자들이 반응을 보인다. 함께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만면의 미소와 더불어 박수까지 쳐주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히 운전자들과 시선을 마주하며 손을 흔들게 되었고 그 숱한 손 흔드는 일이 결코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소도’와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는 단군 제사단인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 등 그 의미가 자못 깊은 명소들이 의외로 많은 태백이었다. 천제단에서 내려다보이는 비행기 사격장. 매향리 사격장이 없어진 이후 부쩍 비행기 출격이 많아진 것 같다는 ‘태백생명의숲’ 관계자 이야기다. 이 사격장 자리에 있던 마을은 이 일대가 ‘소도’였던 지역으로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핍박을 받으며 지내왔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 또한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천제단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 있는 ‘장군단’은 그들이 독립을 기원하며 수년 동안 몰래 축조하였다는데 일본 패망 3년 전에 마지막으로 독립기원제를 지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옥고를 치른 마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태백 문화원 사무국장의 증언) 그러던 그들이 한국전쟁 후에는 마을을 송두리째 비행기 사격훈련장으로 내주게 되었으니 오랜 기간 핍박과 설움만 받아온 슬픈 마을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는 끝내 보상금 수령을 거부한 이도 있다고 한다. 이 비행기 사격훈련장 때문에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이 산의 야생동물들이 비행기 소음으로 얼마나 몸살을 앓다가 떠났을까? 서학골이라는 데를 잠시 들렀다. 산 정상에서부터 도무지 얼마나 되는 면적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숲을 파헤쳐 온통 누런 상처투성이다. 태백시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공동으로 2~3천억 원을 투자해 골프장과 스키장을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지방 자치단체들이 경제적 목적으로 이처럼 레저단지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하는데 전 국토의 레저단지화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그 수가 지금 계획처럼 늘어나게 된다면 분명 적자에 허덕이다가 문 닫을 곳도 많이 생길 텐데 그때까지의 적자와 투자금액은 어디에서 벌충할 수 있을런지... 결국 지역경제가 더욱 휘청하게 되는 일이 되지는 않을는지.... 풍력발전기로 유명하다는 매봉산 정상엘 올라갔다. 멀리서 볼 때는 산 정상까지 온통 목초지들이 펼쳐져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그게 이 지역의 가장 큰 작물인 배추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순례를 시작하면서부터 이곳이 고랭지배추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배추밭이 생각 밖으로 많은 것에 은근히 놀라기 시작하다가 가파른 산 중턱까지 나무들을 베어 밭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 심하다 싶었다. 그러나 매봉산 정상 가까이까지(약 해발 1,200미터) 100만 평 내외의 배추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거의 경악할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걸까? 백두대간 정상에 대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당국의 몰지각을 비판하는 ‘태백생명의숲’ 사무국장의 안내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 눈은 배추밭을 향하게 된다. 이 배추밭 고랑에는 풀 한포기 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제초제와 농약을 치면 이럴까? 경사가 심한 이 배추밭의 농약들은 또 비가 오면 얼마나 순식간에 하천으로 유입될까?   지난 5월 괴산 감물면내를 지나 농장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순례단이 걷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전날 밤 지역 농민과의 대화의 시간에 도법스님께서 ‘우리가 약 5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100배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못살겠다며 아우성이지 않느냐? 지금처럼 개발과 성장을 부르짖다가 과연 지금보다 100배 잘 살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과연 행복하다고 하겠는가? 외려 더 큰 욕심과 욕망으로 더욱 피폐해지지 않겠는가? 문제는 만족의 기준이 행복을 담보하는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그때 일부 농민들의 반응은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도법스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기는커녕 코웃음 치는 듯했다. 수만 평의 배추밭 경작을 통해 평균 4년에 한 번 대박을 터뜨리면 억대를 만지게 된다는 이들 ‘대농(大農)’들에게 실상사 근처에서 유기농 농사로 많아야 한 달 평균 100만원을 버는 농민들이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그날 그래도 도시로 돈 벌러 나갔다가 다시 귀농한 마을 청년(그래도 50대 초반이다)의 ‘돈 벌자고 도시 생활을 해 보았지만 사람 살 곳이 못되었다. 이제부터 돈을 좇기보다 그저 욕심 안내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자 한다.’라는 말미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면 지나친 농촌에 대한 선입견인지 모르겠다. 하루는 철암어린이도서관엘 갔다. 상근자 두 명과 자원봉사 대학생들, 그리고 밝은 표정의 아이들이 우리를 맞았다. 최근 신축이전한 도서관을 짓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물을 보고 그곳에서 제공한 점심을 맛있게 먹은 다음 우리는 작은 희망을 발견한 부푼 가슴들을 안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날 한강 발원지라는 검룡소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생명평화기원제를 드리며 일주일 간의 태백지역 생명평화순례 일정은 막을 내렸다. 나는 아이와 함께 서울로 향했지만 일행은 이내 다음 구간인 삼척으로 향했다. 한 주간 태백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사실을 확인한 소중한 기회였다. 사람들이 떠나고 젊은이가 지역에서 보란 듯이 정착할 만한 일자리가 잘 안 보이는, 보기에 따라서는 지방 소도시의 척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지역을 사랑하며 잘 지켜내고자 애쓰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기에, 태백지역은 이내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살맛나는 곳이 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미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는 선진국인데도 여전히 대선주자들은 성장과 발전을 통한 선진국 진입을 구호로 외치는 이상한 현실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지만 사회안전망을 비롯한 복지정책, 교육인프라,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정신 등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일진대 좀더 성숙한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할 텐데, 사람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발전 없이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심어놓는 이 사회는 한참 비정상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과 지역 사람들이 더 이상 개발과 발전이라는 끝 모를 성장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속히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다시 한 번 이 염원을 되뇌어본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87 | 추천: 0
호국의 달이었던 6월의 마지막 주에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 노래 가사쯤은 알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나에게 ‘6 · 25의 노래’를 한번 불러 보라고 한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부른 6 · 25의 노래다. 착잡함과 더불어 내가 이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서글프다. 교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온몸이 섬뜩해진다. 조국의 원수들이 누구였던가?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떨어야 할 정도로 그들은 惡 그 이상이었단 말인가. 쫒기는 적의 무리 쫒고 또 쫒다니…… 그렇게 끝까지 쫒아서 무엇을 빛내자는 거였나. 안타깝고 부끄러운 민족의 상잔을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고한 신념으로, 이렇게까지 잔인한 노래로 우리를 세뇌하고 분노의 철창 안에 우리를 가두고 담금질한 그 시대 문인이었던 박두진의 간교한 지식 앞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요즘 뉴스에 빠지지 않는, 학벌 시비와 그 학벌을 앞세워 지식인 양 행세하려고 억지를 부렸던 사람들이 창피한 꼴을 당한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게 무언가? 그 시대를 통과하는 역사 앞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나팔을 불어대는 좋은 학벌의 가짜 지식인이 판을 치고,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노라면 분노와 함께 처연함마저 느낀다.  지난 5월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안내와 설명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돌아보면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당대의 지식인이며 걸출한 건축 설계사였던 ○○○의 악마와 같은 이중적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불의의 수단으로 전락한 지식은 타인의 피와 눈물을 양분 삼아 그 허망한 빛을 더한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 사건으로 시작된 논란은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출처 - 경향신문  이 시대 참 지식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知行合一의 참여와 실천이 따르는 지식인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알고 있다면 침묵하지 말고 느끼지 못한다면 제발 나서지 말아야 한다. 알고 있음에도, 일신의 안위나 세상일의 허무를 핑계 삼아 현실을 외면하는 것 또한 지식인의 옳은 자세는 아닐지다. 그런 의미에서 아는 만큼 행동하고 느낀 만큼 실천하는 시민운동가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지 않겠는가!   최용철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두리미디어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426 | 추천: 0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모두들 하루빨리 협상이 타결되어 더 이상의 희생 없이 남은 사람 모두 무사귀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한 쪽에서는 여러 이유로 피랍자들과 한국 개신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과 가족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순간이고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적어도 한국의 개신교는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을 무력으로 침공하고 한국을 전쟁에 끌어들인 미국은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을 중지하고 아프간의 운명을 아프간 민중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탈레반의 비인도적 행태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투쟁의 목적이 무엇이든 방법도 정당해야 한다. 봉사활동이 목적이었던 무고한 민간인들을 인질로 삼아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평화를 열망하는 종교인들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방인 미국의 요청’ ‘국익’ 운운하며 강대국의 요구에 끌려 다닌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아프간과 이라크 등에 파견한 우리 군을 철수하고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해야 한다.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이 납치의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 대상은 대부분 개신교의 해외선교사나 자원봉사를 위한 단기방문자들이었다. 국내에서 “불신지옥”을 외치며 거리에서 폭력적으로 전도하는 일부 개신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문제는 한국교회의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선교활동 형태에 있다. 상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하는 사람의 열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방적 교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 신념을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야 당연한 욕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관계에서도 나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대의 조건을 고려하듯이 해외선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인데 한국 개신교의 경우 현지인을 역사와 문화를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선교 대상으로만 여겨 왔다는 것이다.     출처 - 한겨레21  한국 개신교의 해외선교사는 지난 2006년 말 기준으로 173개국에서 1만 6천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어떤 목사는 해외선교사 파송 1위 국가가 목표라고도 한다. 세속과는 다른 권위와 질서를 이야기하는 기독교마저 성장주의 물량주의적인 한국인의 습성으로 물들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타종교와 타문화에 대한 배려나 이해 없이 경쟁적으로 해외로 나섰기 때문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피랍자들과 같은 단기선교는 더욱 문제일 수 있다. 분당 샘물교회 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형교회들이 지금도 위험한 곳에 청년들을 단기선교라는 명목으로 보내고 있다. 순수한 봉사가 목적이라고 하지만, 이번 피랍자들의 경우만 보아도 이동시간을 빼면 5-6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세 군데 지역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도대체 무슨 효과를 기대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효과와 무관하게 단기선교를 강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부 대형교회의 성직자들이 교회를 위해 무엇인가 큰일을 하고 있음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작년 8월에는 한국 개신교회가 이번 납치사건이 벌어진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서 한국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했던 ‘2006 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라는 대규모 종교집회가 단적인 예이다. 결국 이슬람 성직자들의 반발과 신변 안전 문제로 한국인 신자 1,200여 명이 출국 명령을 당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말았다.     상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하는 사람의 열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선교활동 형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출처 - 세계일보  물론 분쟁지역이야말로 어느 곳보다 봉사와 구호활동이 절실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지인의 삶과 함께 하려는 봉사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토록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멀리 해외로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 주변에서 선교와 봉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이웃, 거리에 나앉은 노숙인,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노인들에게는 어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잠시 언급한 것처럼 세계 유례가 없는 성장가도를 치달아 온 한국 개신교는 무한경쟁 속에서 성공과 성장이 곧 진리라는 자본주의 속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랜 기독교 역사 속에서 소중한 가치로 여겨져 온 겸손과 절제와 헌신 등은 설 자리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강해지는 법, 성공하는 법, 남을 이기는 법을 교회에서 가르치는 지경이다. 어찌 이러한 가운데에서 타종교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 경쟁 속에서 도태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가능했겠는가. 한국 개신교는 이제 대답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선교’라는 것이 과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함께 제3세계에 전파되었던 형태의 정복주의적인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경계를 넘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평화를 위해 하나 되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부디 참다운 선교는 남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기 위한 신앙의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그래서 배타성을 극복하고 한국사회와 해외 선교지의 문화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타종교와도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인류사회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집단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0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자랑이요 행복입니다. 유구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은 물론이거니와 눈부신 경제적 성장은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는 자랑입니다. 작은 땅덩어리에 그나마도 남북으로 갈라진 작은 나라지만 국민의 부지런함과 피땀으로 일구어낸 행복한 결실입니다. 이 자랑스러움의 한가운데에 산업의 역군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현대화에 제일 공헌이 높은 사람들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며,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가족의 행복과 나라의 발전을 염원하며 부지런히 일한 근로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산업의 역군’이란 호칭은 자부심이었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사회성장의 기초를 놓은 초석으로서 존경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근로자 스스로도 이 땅의 산업의 역군이라는 자부심으로,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가정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몸 바쳐 일해 왔습니다. 이는 지난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지금의 모든 근로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 중에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이들의 수고가 산재의 고통 속에 늙어 가고, 오히려 사회부담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흘린 땀과 피는 과거의 추억 정도로 여겨지고, 그들이 겪고 있는 병고와 가족의 고통은 현대화 과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작은 부정적 산물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눈부신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산재환자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는 이 사회의 부끄러운 일면입니다.   크라프샤프트 진폐요양병원(독일) 사진 출처 - 필자  물론 현대사회 안에서 산업재해로부터 모든 근로자들이 100% 안전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아픔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산재환자들이 잘 치료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와 안전망은 이 사회가 만들어야 할 책임이자 사명입니다. 특히 산업 발전의 원동력인 석탄 에너지를 캐내기 위해 수백 미터 갱도 속에서 일하다가 진폐에 걸려 늙어 가며 숨쉬기조차 힘든 진폐환자들과 그 가족의 고통을 그저 안고 가야할 아픔정도로만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재가진폐환자들의 아픔과 그 가족들의 마음의 상처는 결코 산업화의 부정적 산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전국진폐재해자협회, 한국진폐재해자협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근로복지공단, 노동부, 산재의료관리원, 산재의료관리원 직업성폐질환연구소가 함께 독일의 재의료재활센터, 진폐요양 및 의료기관을 방문하였습니다(2007년 4월 29일-5월 8일). 세계에서 가장 잘 되어 있다는 산재노동자와 진폐환자들을 위한 독일의 복지 실태를 알아보고, 주요시설, 운영현황, 직업병환자의 요양 및 복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7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폐, 독일 의료 재활시설 시찰 연수 보고 및 간담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간담회에서 진폐제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으며, 앞으로 여러 기관과 부서들의 협의를 거쳐 국회에 건의할 계획입니다. 이는 단순히 현재의 산재법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산업의 역군들’과 그 가족들이 병고의 고통 속에서 희망과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보다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진폐, 독일 의료 재활시설 시찰 연수 보고 및 간담회 사진 출처 - 필자  아무쪼록 이 땅의 근로자들이 산재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사회 안정망을 믿고 각자의 노동현장에서 가족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즐거움에 행복하기를 희망합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296 | 추천: 0
사람을 일정한 장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여 신체적 활동의 자유를 장소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형법은 감금죄로 처벌하고 있다. 이런 행위를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수단으로 하여 행하는 경우는 특수감금죄로 가중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법이다. 눈물겨운 사연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를 멀리서 쳐다만 볼뿐 만나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고등학생 아들의 이야기, 보름동안 농성장에 있는 아들을 보기 위해 병에 걸려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먼 길을 찾아왔다 먼발치에서 보고 돌아가야 하는 노부모의 이야기... 기독교기업이라는 이랜드 노조 노동자들의 가족 이야기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홈에버 매장과 뉴코아 강남점은 현재 이랜드 노조 노동자들이 19일째 점거 농성 중에 있다. 발단은 비정규직보호법이 통과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이랜드 사측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했기 때문이다. 홈에버 매장과 뉴코아 강남점은 전투경찰과 그들이 타고 온 버스로 봉쇄되어 농성중인 노동자들의 가족들조차 서로 만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심지어 기자도 출입이 제한되고 의료지원도 제한되고 있는 형편이니 가족들이 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16일에는 경찰이 직접 이랜드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매장의 출입문을 쇠파이프와 쇠사슬로 봉쇄하면서 용접까지 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는 경찰이 살수차와 버스로 매장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도대체 이런 짓을 하는 경찰은 대한민국 경찰이 맞는가? 혹시 이랜드 사측으로부터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용역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용역의 지위에서 한 것이든, 경찰의 지위에서 한 것이든 어쨌든 농성 중인 매장의 출입문을 용접까지 해서 봉쇄할 정도면 이것은 엄연한 감금이다. 경찰이 다중의 위력으로 타인의 매장 출입을 봉쇄하며 출입문을 용접까지 해가며 막아버린 것은 더도 덜도 아닌 특수감금죄에 해당한다. 누가 그런 결정을 하여 지시했는지 철저히 밝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특수감금)죄로 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최신 기사를 보니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18일 “오늘 밤 이랜드 노사의 교섭이 자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점거 농성을 강제로 해산하겠다.”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랜드 사측은 일관되게 노조의 농성 해제를 교섭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노조가 단체행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그런 수단을 통해서만 유일하게 사용자인 자본가와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식적인 노동자 대량 해고 앞에서 노동자 개인으로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리하고 결과를 알 수 없는 법정 공방을 통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뿐이다. 하지만 같은 일의 재발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구제수단은 매우 부적절할 뿐 아니라 같은 처지의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와 관련해서 볼 때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집단 해고된 노동자들의 구제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섭을 위해서라도 이랜드 노조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매장 점거 농성뿐이다. 이런 점거 농성만이 이랜드 소속 노동자들이 이랜드 회사 측과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는 지위를 보장해주는 유일한 수단이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노동부 장관이라는 분께서 교섭이 자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점거농성을 강제로 해산하겠단다. 왜 자율적인 교섭이 이뤄지지 않는데 그 결과에 대해 일방적으로 노조 측에만 불리한 지위를 강요하려고 하는지 의심스럽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산재를 입은 경우 치료비를 지원하는 등 노동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일자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노동부의 존재 목적인 점을 잊은 것인가? 그런 존재 목적이 없다면 왜 노동부 홈페이지에는 이런 기만적인 말들을 남겨두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왜 이름이 노동부 장관인가, 차라리 기업부 장관이라고 할 것이지... 하긴 대통령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여념이 없으니 일개 장관이 대통령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도 들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동자를 위한 장관이 정부에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18일 저녁 이랜드 노사는 협상을 재개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뭐 생각해보니 정부가 힘 있고 돈 많은 자들에게 굽신거리면서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 가혹하게 군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5년을 겪으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을 보니, 아무리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외쳐보아도 참으로 정부란 주권자인 국민들의 정부는 아닌가보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어이가 없고 화가 난다. 어디다 대고 욕지거리를 퍼부어줘야 속이 풀릴 것 같은데, 욕지거리를 퍼붓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고...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이랜드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니 그래도 위안이 된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17 | 추천: 0
 서약이란 게 맹세도 하고 거기에 약속까지 더한다는 말이니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건 지키겠다는 뜻이겠다.  어느 단체의 모임에 가거나 길거리라도 지나치다보면 내 이름석자 적어 넣을 용지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나는 비교적 자발적으로 서명에 참여하는 축에 속한다. 굳이 부연하지 않더라도 생명, 평화, 나눔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일렬횡대로 정돈되어있는 사고구조를 가진 세대라 이 비슷한 주제를 가진 서명운동이라면 내 이름을 일부러 뺀 적은 없다. 별것도 아닌 이름과 주소가 무슨 힘이 될까마는 사람 없는 집회에 머릿수라도 채우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심정으로 쓴다. 도룡뇽 살리자는 데도 썼고 새만금, 장항 갯벌 살리자는 데도 썼다. 구속 노동자 석방하자는 데도 쓰고 국가보안법 폐지하자는 데도 쓴다. 나는 살리는 게 좋다. 다 살리자는 서명용지에만 내 이름을 썼다. 딱히 내가 가진 게 없으니 더 가질 것도 없고 세상에 큰 이익이라는 게 뵈질 않으니 눈 부라려 싸울 일도 별로 없다. 그러니 실천이 어려워서 서명을 못할 이유도 없다. 딱 하나 맘에 걸리는 게 “빈 그릇 운동”, 그거 서명해놓고는 거의 실천 못하고 있다.     FTA 반대 서명운동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십 수 년 전 나는 결혼 서약을 했다. “나는 그대의 또 하나의 몸 그대는 나의 또 다른 영혼”이라는 사랑의 거대한 약속을 마음으로 확인하는 일이므로 가끔 만나는 서명용지의 날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서약을 하면서 가슴 한구석엔 묵직한 책임감이 있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일종의 환희와 같은 것 이었다. 덕분에 나는 궁할 때 소리 없이 지갑을 채워주는 후원자를 얻었고 매일같이 세상 잔일까지 얘기 할 수 있는 술친구를 얻었고 배고플 때 맛난 밥상을 올려주는 요리사도 얻었다. 또 가끔씩 착한 일 했다고 선물 사달라는 딸아이의 투정도 들을 수 있으니, 지금까지 수천 번의 약속을 했으나 그중 가장 잘한 약속이 결혼서약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머리에 담는 게 마음에 품는 이만 못하고 마음에 품는 게 발 가는 이만 못하다. 서명은 마음으로 품는 일이지만 서약은 발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게 있다. 1911년 조선 교육령에 의해 예비 황국신민들을 훈육했던 “교육칙어”의 정신은 1968년 “국민교육헌장”의 등장으로 새 빛을 발한다. 그 정도의 충성도 모자라는지, 어떤 놈이 또 말을 안 들었는지 우리의 나랏님들께서는 국기에 대해서까지 몸과 마음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급회의라는 게 생기고 나서부터 이후 내리 8년을 쉬지 않고 반공부장만 맡았었던 나는 매일 오후 5시면 울리는 국기 강하식 음악에 가던 길 멈추고 가슴에 손을 올렸고 나처럼 하지 않는 어른들에게는 국기를 존중하라고 따지고 들었었다. 물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잘 외우자는 실천사항은 삐라를 잘 줍자는 말과 함께 나의 학급회의 단골 메뉴였고.   “이날은 대성전기념일도 축제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받은 깃대에 국기를 한번 꽂아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땀까지 흘려가며 벽장 속에서 국기를 꺼내어 그 깃대에 매었다. 탄탄한 깃대에 비해서는 벌써 장만한지 해가 겹친 국기의 깃폭은 낡아 보였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 뒷집에서 깃대를 주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나는 거기에 맞추어야 할 새로운 깃폭을 준비할 생각은 하지 못하였던 것인가. 나는 깃대에 꽂힌 국기를 방 아랫목에 세워두고 한참동안 합장을 하고 있었다.” - 일장기 앞에서 전문 - 미당 서정주.   따지고 보면 나는 경건한 서약을 매일같이 했던 것인데, 문장은 아니로되 국기에 대한 정성만큼은 서정주 시인의 일장기와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시를 그때 알았더라면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어서 암송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가가 개인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참 난감하고 불경스런 질문을 나는 아직도 달고 다닌다. 군대 가서 나라 밥, 나라 옷 입고 각종 작업 기술 익혔으니, 의무교육으로 보낸 학교에서 나의 딸아이는 열심히 경쟁을 배우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노동의 권리는 없는 나라에서 그나마 의무라도 있으니, 버는 만큼 쓰는 만큼 내는 세금의 혜택은 없어도 늙으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에 감사해야하나. 가장 최근에 나의 의지로 서명한 것이 한미 FTA반대였다. 그전에 비정규직 보호법 반대였고 사립학교법 재개정 반대였다. 불행하게도 국가는 나의 의지를 모두 다 꺾어 버렸다. 아직도 국가는 내게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보다 내가 국가에 무엇을 바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바쳤는데 뭘 또 바치라고. 국기에 대한 맹세 문구가 바뀐단다. 내용을 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국가는 나에게 서민경제 활성화도 약속했었고 비정규직 보호, 고용시장의 안정, 일자리 창출. 별거 별거 다 약속 했었다. 또 2년 전 국가는 자국민인 교토 우토로 마을의 할머니들에게 국가예산으로 부지매입을 돕겠다고도 약속했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인권·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11일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없애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002년 월드컵 경기장에서 내 마음은 무척 뜨거웠다.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붉은악마 응원석으로 대형태극기가 펼쳐질 땐 저절로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외쳐 불렀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한국 축구팀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지나보니 나의 생활과 아무 상관없는 그 기억이 국가가 나에게 준 최대의 선물이었다. 약속은 상대적인 것이다.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국가를 위해 충성을 맹세할 국민은 없다. 무엇하나 나올 것 없는 국가에 대해 서약과 같은 맹세를 요구하는 일이라면 국가는 국민의 의식위에 군림하는 신이어야 한다. 나는 그런 신을 섬길 이유가 없다. 고작 문구 몇 개 바꾼 “국기에 대한 맹세” 따위로 국민에게 거짓 충성을 강요할 순 없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41 | 추천: 0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이다. 바쁘던 1학기가 지나고 어느새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이때쯤 교실의 풍경은 나른함과 무기력함으로 가득하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늦은 밤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밤새 컴퓨터에 집중하다가 학교에서는 점심도 거르고 잠에 빠져드는 아이들, 무더위에 지친 아이들 등. 교사들 사이에서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난 철수(가명)가 자면 못 깨우겠어! 수업을 하라고, 또는 시험범위에 대한 중요한 설명이 있으니 들으라고 깨우면 거친 몸짓과 목소리로 항의를 하는데 너무 힘들어! 철수와 실랭이를 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게 되고.... 그리고 솔직히 철수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고 수업을 하기도 해.” 힘겨운 날씨만큼이나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때쯤 교실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한계상황이다. “지난해 말 충남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수업시간인데도 한 학생은 엎드려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H교사는 이름을 불러도, 야단을 쳐도 반응이 없자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등을 한 대 쳤다. 그 학생은 “학교 때려 치면 될 것 아니냐”며 의자를 들어 칠판 쪽으로 향하던 H교사 등 뒤로 의자를 던졌다. 여교사인 H씨는 의자에 맞아 쓰러져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해럴드 경제신문 2007.6.1)라는 뉴스는 교사들을 더욱 위축시킨다. 심리학자들은,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요인에 후천적인 환경(사회문화적) 요인이 합쳐져서 한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선천적인 요소와 후천적인 요소 중 어느 부분에 더 가중치를 두느냐는 연구결과를 접하는 연구자 개인에 따라 다르다. 어떤 연구들에서는 비행과 불륜을 저지르는 유전인자 등을 거론하며 선천적인 요소가 삶을 지배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게 교사들에게 유용한 변명 - 더군다나 학술적으로 근사하게 정리된 것이 아닌가! - 이 될 때가 있다.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안 될 때에는 “정말 유전인자의 문제인가 보다”라며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교사들의 푸념이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이전 교육 방식이나 환경에 익숙하신 분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부 학생들은 자기가 공부하는 교실 바닥에 서슴없이 가래침을 뱉거나, 먹고 난 과자 껍질을 교실이든 복도든 길거리든 간에 하등의 망설임 없이 마구잡이로 버리기도 한다. 자신의 몸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함부로 하는 경우도 있고, 도저히 교육을 받는 학생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욕설이나 비속어를 예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이런 경우를 접하면 혼란스러워진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공동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하고 싶지만, 이를 통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학생들을 보게 되면 그 정도 혼란은 기본이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 교육이 무엇을 담당해야 하는가 ! 질문에 질문을 더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긴 어려워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교사의 몫이 아닐까, 라는. 교사를 그만두면 모르되, 그런 걸 못 보아내는 사람들이 결국 교사라는 것이며, 교육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살면서 아무리 요령피우고 대충대충 현실과 타협하고 넘어가도 “아직 배우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칠 수는 없다”라는 게 교사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의 마침표가 되곤 한다. 사실 그렇다. 학업이나 올바른 가치판단을 위한 도덕성 기르기, 인격형성을 위한 일들은 굳은 의지와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지와 부단한 노력을 전문적으로 떠 맡는 것이 바로 교육이며, 교사다. 학교는 가만히 두어도 너무나 잘 따라하는 그런 분야 말고 무심코 두면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해 버릴 그런 일에 문제를 제기하고, 올바른 의미를 가르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려운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여잡고 함께 가는 것, 이것이 바로 교육의 몫이다. 무더운 더위와 갖가지 스트레스에 지쳐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의 뒷모습에서 교사가 서 있을 자리를 본다. 그곳에 또한 우리 사회 교육이 나가야 할 나침반이 놓여 있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3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