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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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어느덧 2007년도 빠르게 흘러 12월을 맞게 되었습니다. 연말이면 ‘나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여러분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를 풍성하게 살리는 ‘나눔의 신비’를 알고 계십니까? 물론 소극적인 나눔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모두를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천박한 자본주의 현실을 완화시키지는 못하는 줄 압니다. 오히려 칭찬과 드러내기 일색이어서 돕는 사람이나 도움을 받는 사람 모두를 더 천박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몇 해 전 결식아동 돕기가 붐처럼 일어 방송과 신문에서 눈물샘을 자극할만한 사연들을 골라 유독 경쟁적으로 보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방송사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들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한다는 조건을 걸고 어린이 공부방 몇 곳을 소개해 주었다가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TV에 결식아동으로 소개된 몇몇 아이들이 친구들로부터 ‘거지’로 놀림 받고 따돌림을 당한 것입니다. 책임이야 약속을 지키지 않은 방송사에 있었지만 누구 탓을 한다고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 공부방엔 아이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한 아이는 그 일로 학교까지 옮겨야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무료급식현장 노숙인 들에게 보내고 싶다며 모 회사에서 양말과 내복을 들고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넙죽 받았지만 그 뒤 그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적지 않은 실망을 했습니다. 회사 홍보를 위해 띠를 두르고 직원들이 그 선물을 직접 나누어 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물건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건 이후, 어떤 경우에도 수요자를 드러내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던 것입니다. 수요자의 구체적인 신상과 사연을 통해 호소하는 것이 구호단체들의 보편적인 모금기법인데다 구체적인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각종 취재를 매번 거절하는 일도 쉽지 않아 꽤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사실 모금이라는 것 자체가 그 목적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어야 설득력을 갖는 법이기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기부, 봉사, 자선행위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살 빼기를 위해 몇 백 만 원짜리 다이어트 약을 스스럼없이 구입하면서 구걸하는 사람에겐 두툼한 지갑을 뒤져 끝내 동전이나 천 원짜리 한 장 달랑 건네고 맙니다. 앵벌이 하는 아이들에게 동전 몇 닢 던져주며 그 아이들 수입이 적지 않을 것이고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열변을 토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름 석 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영향력 있는 신문과 방송을 고르고 골라 기부하는 기업인들이 허다합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것인지, 그 일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줄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설령 무료급식소가 난립하여 노숙인 들이 하루 다섯 끼를 먹고, 앵벌이 아이들이 하루 수 십 만원을 번다고 한들 과연 그들의 삶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구걸의 이유나 그 배후나 그들의 행복 여부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먹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사먹을 만 한 돈을 조용히 건넬 넉넉함이 아쉽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려도 몰랐을 동전 몇 닢에 우리의 양심을 너무 값싸게 팔아버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처럼 기부와 봉사 활동을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사심(私心) 없는 사람을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보석처럼 느껴지는 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특별히 대우해 드리지 않아도, 요란스런 대가가 없어도 묵묵히 보이지 않게 남을 돕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 해 초겨울 일입니다. 추운 겨울 거리에서 무료급식을 받아 드시는 노숙인 들을 본 뒤 두 달이 지난 신문기사를 기억해 내고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엄청난 금액의 급식버스를 기증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느 날 불쑥 찾아와 비밀로 해달라며 적지 않은 후원금을 주고 가신 분들이 있는가 하면, 20년 째 빠짐없이 정해진 날짜에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사심은 사람을 눈멀게 하고 귀를 닫게 합니다. 어찌 나눔과 기부의 현장에서만 겪는 일이겠습니까. 대선을 앞둔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바로 그 사심 때문에 대의도, 진리도 잃고 결국 소인배로 전락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우리 개개인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지요. 가끔이라도 부끄러운 우리의 양심, 불균형한 우리의 가치관, 실종된 사랑을 돌아볼 일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행여 들킬 새라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배려하고 베풀었던 사춘기 시절 짝사랑의 아련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요란하게 떠벌이고 조건을 앞세우는 사랑이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아주 가끔씩이라도 상처받은 이들을 조용히 배려하고 그 은밀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387 | 추천: 0
요즘 제일의 화두는 역시 대선이다. IMF 사태가 발생한지 10년이 지났고, 87년 민주화 항쟁이 있은 지 20년이 지났다. 87년 대선은 노태우를, 92년 대선은 김영삼을, 97년 대선은 김대중을, 2002년 대선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2007년 대선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1997년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 우리 경제는 재벌 위주의 고도성장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며 파산 직전에 이르렀고, 이후 노동자들은 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거리로 내몰렸다. 재벌의 수익은 극대화 되었고, 중소기업의 수익은 반 토막 났다. 국민은 일생을 벌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고, 정상적인 노동을 통한 재산의 증식보다 부동산, 증권 투기를 이용한 재산증식에 온 관심이 뻗쳐 있다. 국가의 공교육은 붕괴되고,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나라 전체 부의 80%를 상위 20%가 전유하고 있고, 아랫목이 데워져야 윗목에 훈기가 돈다는 대통령님의 말씀이 있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윗목은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하고, 아랫목만 엉덩이를 데일만큼 뜨겁다. 20대 청년 실업은 유례를 찾기 어렵고, 그 결과 사고에 있어 진보적이어야 할 20대는 그 어느 세대, 그 어느 시기보다 보수화되었다. 그리고 2007년 대선은 경제를 살릴 적임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슬로건 하나로 정리되고 있다. 최근 삼성 문제가 그 정도를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눈을 뜨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심지어 삼성 그룹 차원에서 7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정부, 언론사, 검찰 등 어느 기관도 삼성 비자금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고, 국민은 철저히 기만당했다. 누구에게? 삼성에게? 아니다. 우리 사회 상부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제 세력이 우리를 기만한 주체다. 장롱 속 고이고이 모셔두었던 금붙이를 꺼내 헌납하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팔 걷어 부친 국민들의 귀한 돈은 재벌의 회생을 위한 공적 자금으로 사용되었고, 공적 자금을 수혈 받은 재벌은 오로지 제 배 불리기에만 급급했다. 재벌의 떡고물을 주워 먹은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길 거부하고, 검찰은 재벌의 뒤를 봐주기에 여념이 없고,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노동하기는 죽기보다 싫은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어디까지가 정치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경제의 문제인가?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이런 용어도 있었구나 싶은 말을 들었다. 바로 “선순환”. 악순환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 왔기에 낯설지 않지만 선순환이라는 용어는 30년을 넘게 살면서도 생소했다. ‘순환이 좋음 또는 좋은 현상이 끊임없이 되풀이됨’이라는 뜻의 선순환.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악순환에 너무도 익숙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재벌은 분식회계를 통해 수백억, 수천억, 수조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회사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작업에 사용하고, 비자금의 일부를 뇌물로 받은 검찰, 언론, 정부는 이들의 범죄와 비리가 확대재생산 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재벌은 조금은 자신을 가지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다시 비자금을 만들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진학한 대학은 취업을 위해 거쳐 가야 하는 정거장 정도로 전락했고,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청년들은 비정규직이라도 외면하지 못하는 형편에 처해 있으며, 싼 임금의 젊은 노동자들이 넘쳐 나는 경제 구조 속에 30 ~ 50대 가장들은 언제, 어떻게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회사의 눈치를 보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평생을 모아도 월급만으로는 집 한 채 장만키 어려운 형편이 되다보니 전국은 부동산 투기장이 되어버렸고, 온 국민이 주식을 도박 수단으로 삼고 있다. 어느 고리부터 끊어 내고, 어느 고리부터 개혁해야 악순환의 구조가 선순환의 구조로 바뀔 수 있을까? 과연 지금처럼 ‘경제 살리기’라는 슬로건 하나만을 내건 대통령 후보들이 이런 선순환의 모멘텀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까? 총체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 어떻게, 어디서부터 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쇠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 만큼만 강하다.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의 부패를 어느 시점에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곪아가는 상처 부위를 어디서부터 메스를 델 것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부패가 사라진 영역을 투명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그러한 결정을 함에 있어서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치우침이 없는 사람이 우리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대통령을 만능 해결사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가져다 줄 것이란 꿈은 일찌감치 버리자. 그리고 지금부터 다시 살펴보자. 우리의 앞으로의 5년을 책임질 대통령으로 누가 적임자인지를.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285 | 추천: 0
수동(가명)이를 만난 것은 3년 전 봄이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수동이는 당뇨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수동이는 자기표현이 서투르고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못하는 등 매번 당황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였다. 수동이는 생활보호대상자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수동이의 아버지도 당뇨를 앓고 있는데, 고정된 일자리 없이 여러 지역 공사장을 다니면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수동이는 그런 아버지를 가끔씩 만나서 용돈을 받곤 했다. 공사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잇는 가정의 학생을 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니다. 하지만 수동이처럼 당뇨를 갖고 태어난 학생을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여러해 전에 만난 주원이란 아이도 당뇨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주원이는 안정된 가정에서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나름대로 질병을 관리할 수 있었다. 보건 교사로서 내가 주원이를 도울 수 있는 일은 다른 학생들이 모르게 보건실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하고, 혈당이 떨어지면 쇼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등의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수동이에게는 당뇨를 관리해 줄 수 있는 가족이 따로 없다. 관절염을 앓아서 움직임이 불편한 할머니는 노환으로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를 돌보시느라 수동이까지 돌보지를 못했다. 적절한 조치가 없이 그저 ‘방치’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동이는 자기 몸의 질병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렇다보니 보건 교사로서 수동이의 건강 상태를 크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질병에 대한 검진이나 처방, 지속적인 관리 방안 등이 있더라도 이 모든 질병 관리 체제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의학적 관리를 생활 속에서 구현시켜줄 환자의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동이의 경우도 그런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 수시로 수동이의 혈당을 체크하며 당뇨병에 대한 설명과 예방 방법 등을 알려줘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아버지나 할머니에게도 여러 차례 전화하여 수동이의 관리를 부탁했지만, 수동이의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당뇨의 날'을 맞아 무료검진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수동이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다. 돌발적인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수동이를 관리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학년이 바뀌었다. 그 후 매스컴에서 당뇨를 앓았던 유명 연예인이 시력을 상실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수동이의 눈을 보니 동공이 이상해 보였다. 놀란 마음에 급히 부모님께 건강검진을 하도록 하고, 담임교사와 함께 인근의 복지관에 연락해 학생을 돌봐주는 도우미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 후 수동이는 학교생활을 잘 하는 듯 보였다. 가끔씩 학교를 결석하기는 하지만. 당뇨는 음식조절과 운동요법 등을 통해 일생동안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중학생인 수동이는 가정과 학교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수동이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가면서 학교에는 당뇨, 고혈압, 비만인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정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도,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질병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하물며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들의 위험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국가에서 복지시스템을 학교와 연계해서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수동이를 관리해 주었던 지역 복지관이 있었지만, 청소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복지관은 적었고 이마져 홍보가 되지 않았다. 나 역시 어렵게 수동이를 의뢰해서 도움을 받았었다.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학생이 가난하다고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질병에 대한 대처가 사회 전체의 몫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 또한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더군다나 아직 자립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질병과 가난의 고통을 혼자만의 몫으로 떠맡아서는 더더군다나 안 된다. 질병과 가난의 이중고를 겪는 그 어린 학생들을 따듯하게 감싸안고 돌보아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59 | 추천: 0
지난 10월 4일부터 8일까지 오키나와를 방문하였다. 이번 일정의 대부분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를 제대로 보고 듣기 위해서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사이의 평화 교류회 행사도 가졌고 오키나와 주둔 미군 기지들을 둘러보며 기지 주변의 오키나와 주민들, 평화 운동가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3박 4일 동안 오키나와에 대한 향학열에 불타 많은 일정들을 소화해 나가며 호기심을 풀어나갔다. 바쁘게 움직이며 의문들을 풀어나가는 동안 어느새 오키나와에 흠뻑 빠져들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그날그날의 감흥을 도저히 이기지 못해 하루하루 술잔을 비우며 뒤풀이를 이어나갔다. 처음 방문한 오키나와 방문에서 보고 느낀 벅찬 감동의 여운은 “이오샤샤 하이야”로 들려오고 있다. “이오샤샤 하이야”는 오키나와 전통의 춤과 노래, 연주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우리의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오키나와의 전통 북춤 공연에서 무대의 춤꾼들이 전투적으로 북을 치며 “이오샤샤”를 선창하였고 관객들은 “하이야”로 흥을 돋구었다. 오키나와 전통 노래와 연주에서도 고음의 경쾌한 후렴구로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반주에 맞춰 “이오샤샤 하이야”를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오샤샤 하이야”와 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대동놀이의 한판은 두고두고 인상 깊게 남아있다. 며칠 전 딸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흥겹게 “이오샤샤 하이야”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키나와로부터의 감동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어른, 아이 모두에게 한결같다.    “이오샤샤 하이야”는 오키나와 전통의 춤과 노래, 연주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우리의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 그들은 삽시간에 어우러져 정을 나누는 것을 좋아들 한다. 한번 만나면 다 형제라는 오키나와 속담도 있다. 처음 만나 인사하고 음주에 가무로 이어져 형제와 같은 정을 나눌 정도로 정을 중시하였다. 우리와 진한 정서적 만남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의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여 일본 본토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오키나와 전통 무용과 음악 속에 대동의 한판으로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같이 하며 그들과 진정으로 하나 되는 큰 감흥을 얻었다. 류큐 왕국은 19세기말 일본에 정복되었다.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오키나와 말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대동아 전쟁의 목적 아래 오키나와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기지가 되었다. 오키나와의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는 조선인들도 강제 징용되었다. 오키나와는 일제의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의 출격 기지가 되었고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전 당시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군과 함께 동굴에서 옥쇄(집단자결)를 강요당했다. 오키나와인 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도, 오늘날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옥쇄를 왜곡 기술한 고교 역사 교과서에 항의하는 10만여 명이 넘는 오키나와인 들의 항의집회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와 닿았다. 우리와 오키나와는 미군 주둔 문제에 대하여도 동병상련의 처지다. 새로운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평택 주민들의 투쟁은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투쟁과 똑같았다.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후텐마 비행장의 대체시설로 헤노코 비행장의 건설 강행 역시 미국의 해외 미군기지 재편의 일환이었다. 오키나와의 헤노코 신기지는 탄약고, 유류저장고, 해상 비행기지가 한 기지에 일체화되어 확장 건설될 예정이었다. 헤노코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발진기지로 후방 보급기지로 기능할 것이다. 미군기지 건설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오키나와 민중들의 삶과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오키나와와 함께 연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다.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현장은 평화를 향한 의지와 실천으로 가득 찼다. 헤노코 기지 건설의 상징적 인물로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금까지 기지건설현장을 감시하고 있는 “가요” 아저씨의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투쟁열정을 잊을 수가 없다. 헤노코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우리들의 연대의 목소리를 담은 리본을 그 곳 미군기지 철책에 달았다. 한국, 오키나와, 괌을 비롯한 미군이 주둔하는 아시아 지역 민중들의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하 요우이치” 오키나와 기노완 시 시장은 우리들을 만나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를 향한 건설적 합의가 연이어 도출되어 그 이행과정에 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이 추진되는 등 한국과 오키나와, 그리고 괌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군기지는 그 존재 이유를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고 하였다. 기노완 시장은 후텐마 비행장 기지를 없애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후텐마 비행장으로 인한 소음문제와 국제대학 헬리콥터 추락 사고와 같은 추락의 위험으로부터 주민들의 고통 해소를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후텐마 미군기지의 폐쇄와 조속한 반환을 비롯한 미군기지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를 위해 시정을 펼치며 반기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기노완 시청 옥상에는 미군 헬기에서 내려다  보이도록 크게 쓰여진 “DON'T FLY OVER OUR CITY! U.S. HELOs OUT NOW!" 라는 글귀가 있다. 기노완 시장의 시정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인상 깊었다.    헤노코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우리들의 연대의 목소리를 담은 리본을 그 곳 미군기지 철책에 달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미군기지 없는 평화를 향한 오키나와와 우리의 뜻이 같다. 함께 연대해야 승리의 길을 열 수 있다.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현장방문을 통해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의 발전을 위한 많은 교훈을 얻었다. 미국의 군사패권 유지를 위한 전략은 어느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미국의 군사전략은 우리는 물론 오키나와 민중들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애호하는 모든 민중, 나아가 전 세계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은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의 유지를 강요하며 한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방해하고 있다. 오키나와 민중들의 평화를 향한 염원과 우리들이 추구하는 반전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열망이 달리 느껴지지 않았다. 언어와 사는 곳이 달라도 오키나와 민중들과 우리는 미군기지 없는 오키나와, 미군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 동북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한반도의 반전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투쟁의 길에 오키나와 민중들의 미군기지 없는 오키나와를 실현하는 꿈이 이루어질 수 있고 오키나와 민중들의 미군기지 철폐를 위한 투쟁 속에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의 위기가 사라지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함께 연대하는 길에서 오키나와 민중들과 “이오샤샤 하이야”를 노래 부르고 싶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612 | 추천: 0
지금으로부터 어언 20여 년 전 어떤 분께서 말씀하셨다. 상납이나 청탁을 위해 뇌물을 건네야 할 때는 정성을 다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별것 아닌 선물로 위장해서 전달할 것. 5공.6공 시절 자알 나가셨던 어떤 분은 아마 사과상자를(사과 진짜 들 은거) 다섯 개 정도 샀다지? 그중에 아래 깔린 찌질한 것들 다 빼고 때깔 나고 먹음직한 것들로만 골라서 한 상자에 옮겨 담고 그 밑에 사과 한 상자 값의 1000배 쯤 되는 수표를 쫙 깔아서 목표지점에 발~사. (뭐. 그때야 계좌추적이니 수표추적이니 그런 거안해도 시비 거는 놈 없을 때니깐 그러려니 하고) 그 정성이 하늘까지 뻗치니 돈 받은 사람 기뻐하며 국회의원 공천에 도지사 장관자리까지 옜다~ 너가져라 싶었을 거고 돈 보내신 그 어떤 분 하나님 부처님 마고할머님 조상님께 감사한다고 십일조에 시주까지 넉넉히 했겠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10여 년 전 한동안 난해한 수학문제 같은 게 횡횡한 적이 있었다. 사과상자 한 개에는 현금이 얼마나 들어갈까? 별 실없이 쉰 밥 먹고 가죽피리나 나불대는 치들의 농(弄)으로 여겨졌던 말들이 전 국민의 관심을 산 적이 있는데 그게 글쎄 사과상자에 사과는 빼고 과감하게 현금으로 다 채워 고급승용차 뒷바퀴가 철렁 가라앉을 정도 꼬락서니를 해 갖고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은밀한 거래를 한 것이 들통 났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야 그런 걸 시도조차 해볼 능력은 고사하고 거기까지의 상상력도 미치지 못하니 역시 뭔가 해본 놈들은 달라 싶다가도 편지봉투 달랑 한 장에 꽉 채운 현금 액수도 모를 형편이니 꿍시렁 시부렁거리기에는 딱 그만인 문제였겠다. 정답은 2억원 가로 161㎜, 세로 76㎜인 1만 원권으로는 사과상자(가로 51㎝, 세로 34㎝, 높이 28㎝ 기준)에는 1만 원짜리 2만장, 즉 2억원 분량이 들어간다. (새 지폐는 쪼끔 작아졌으니 1천만 원 추가 되겠습니다).사실 이 방식도 상당히 낡은 거라 앞으로 시도를 할 바보들은 없겠지만 우리 사임당엄니, 김구 쌤 등장 하시면 그 금액은 한층 화끈해 진다. 사과박스 한 상자에 현금 21억원...이야~~ 어언 20여 년 전의 그 어떤 분 통탄하시겠다. 요즘 애들은 스케일 죽이는데 영 정성이 읍써....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으로부터 딱 5년 전 역시 세상은 창의력의 시대라 어린아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 태교 강조 하시더니 뭔가 하신다는 분덜. 세계 최초의 창발적 방식을 몸소 보여 주셨다. 개그맨 노 모씨가 유행시킨 “그래 가는 거야”가 이 냥반들의 오션스13 같은 멋진 한판 사기극에서 착안 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그래 가는 거야! 어디로? 고속도로 휴게소로. 뭐타고? 트럭타고. 뭐실코? 사과박스(사과 안 든거) 정말 화끈했다. 이른바 차떼기 난 이냥반들 이런 짓 하기 전까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머리 참 아둔하다. 이렇게 해서 거둔 돈이 한 팔백 몇 십 억쯤 된다지? 기업 리스트 쫙 뽑아놓고 “니네 우리 돈 안주면 창자를 뽑아놀껴~”라고 위협하는 듯한 야릇한 미소. 날카로운 눈매 앞에 기업들 열심히 보험 들었다고 하던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드디어 그 보험 다시 들 기회가 생겨 버렸다. 세풍에 총풍. 병풍. 차풍까지 온갖 바람을 몰고 다니시는 그분께서 다시 오셨으니 세상은 추풍 맞고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이파리에 헤딩하며 쏘주 한잔을 향해 달려가는 쓸쓸 한 사내의 가슴처럼 싸아 하게 외로워진다. 그때 삥 뜯긴 기업들 이번에도 “쓰라린 가슴안고 오늘밤도 이렇게 울다 잠이 들어야” 할까? 말까? 다시 어쨌든 차떼기 정말 대단하다. 집안에 발 디딘 것도 아니고 문고리 잡고 살짝 잡아다닐까 말까만 했는데도 온 나라가 난리다. 이전에 주식 떼기 땅 떼기 했다고 의심을 받는 그분. 대통령 다 된 것처럼 어디가도 시커먼 라이방 쓰고 사열 받던 그분의 위상을 거의 작살수준까지 만들어 놨으니... 우리 국민들의 수준도 정말 대단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 보는 법 국민들 대다수가 흠모해 마지않는 뭉텅이 돈의 위력을 단 43일 만에 동지섣달 눈발 날리듯 뿌려주실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미리 알아보지 않나? 뭐 ~ 다시 어쨌든 그분. 차떼기의 그분 돈 정말 잘 걷는다. 다들 잘 아시는 농담 누가 지옥엘 갔는데 여기저기서 앗뜨거 앗따거 옴매 나죽어 하는데 제일 편해 보이는 게 화장실에서 담배 피는 놈이더래 그래서 저 이거 할래요 그랬더니 5분 휴식 끄~~~읕 500년간 잠수 그랬다며? 아 ~ 까먹었다. 돌아온 그분께서 예전 대선 때 쓰신 안기부돈 1200억 국세청 돈 230억도 다 국민 세금이라지?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38 | 추천: 0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 연장이라는 또 한번의 통-큰 결정을 내리시면서 국회와 국민의 이해·협조를 부탁드렸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하여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주둔은 이라크 정부와 쿠르드 지방정부의 강력한 요구가 있고, 현지 주민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으며 현지에서도 가장 모범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한∙미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라크 진출 기업이 늘고 있는 점 등을 구구절절 말씀하시면서 대통령으로서의 고민을 토로하였습니다. 다양한 이유 중에서 단 한 가지 핵심적인 이유를 말한다면 그것은 한∙미공조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고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심정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의 5천년 역사에서 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았던 시기는 과연 몇 년이나 될까. 과거 동북아를 호령하면서 당당하게 중국과 맞서 싸우고 조국의 정체성을 지켜낸 위대한 시기와 중화사상에 찌들어 빌빌대면서 중국을 떠받들고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던 시기가 있었다. 위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이 위대한 국가였고 민족이었는지 국민은 다 알고 있다. 그러면 이라크 파병과 미국 그리고 우리는 무엇인가. 해방이후의 공간에서 미국은 냉전의 전초기지로 남한을 선택하였고, 냉전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정통성 없는 정권들을 묵인 지원하였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에 대해서도 기꺼이 두 팔을 벌리고 포옹하였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다고 우리 국민들을 조롱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욕구가 엄청난 힘으로 분출하자 더 이상 독재정권을 용인하고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재빨리 깨닫고 마치 민주주의의 전도사가 되는 양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취한 행동의 변화였지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민주화를 위하여 취한 행동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국 친구가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기여한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며, 긍정적인 기여도 일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러한 식의 침략전쟁에 몸 팔기를 요구하는 것은 분명한 죄악이며 진정한 친구로서 할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해방전쟁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가하여 베트남 민족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을 남긴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하기 두려운 역사의 진실과 교훈을 어느덧 잊고 또다시 미국의 침략전쟁지인 아프간과 이라크에 용병을 파병하는 우를 저질렀다. 그 결과로 우리가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이라크에서의 김선일씨의 죽음, 아프간에서의 민간인 납치와 살해, 국민적인 고통과 충격 그리고 국력의 낭비, 이라크와 아프간 민중들의 고통, 아랍권에서의 성토와 불신 이런 것을 얻었으니 국익에 부합한다는 것인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역 앞 광장에서 파병반대국민행동 주최로 자이툰 파병 연장 반대와 이라크 점령 종식을 위한 한-미 공동 반전 행동이 열렸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세계평화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침략전쟁에 우리가 꼭 몸을 팔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계평화에 기여할 방법은 널려 있다. 어떠한 이름으로도 전쟁이라는 악마는 해당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도 한풀 뒤집어 보면 모두가 위선이고 허위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이기적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죄악이었다. 심지어 중세의 십자군 전쟁도 정당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절대적 평화론자인것도 아니다. 만일 조국이 위험에 처한다면 나부터라도 총을 잡고 나갈 것이기에 나는 스스로 평화론자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헤겔같은 철학자까지도 전쟁은 인류문화의 진보를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며, 영구적 평화상태는 마치 고인물이 썩듯이 국민의 심성을 부패하게 한다고 헛소리를 지껄였지만, 이는 아니다. 전쟁은 결코 인간과 국가를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도 패배하는 자도 모두 파탄만을 경험하게 만들 뿐이며, 진정한 평화만이 인류문화의 진보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겪은 한국전쟁을 통해서 우리 민족은 숭고해졌는가 아니면 도탄에 빠졌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답이다. 우리가 겪은 전쟁의 참화를 기억한다면 다른 국가와 민족들이 겪을 전쟁의 참상도 기억해야한다. 미국의 침략전쟁에 들러리로 참가해서 다른 국가와 민족을 피폐하게 만들고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미국의 눈치 보기와 비위 맞추기식으로 국가의 정책 방향이 천박∙궁색하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정한 미국의 친구로 남으려면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오히려 친구다운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눈치보고, 들러리 서면서 몸을 판다고 해서 우리의 우정이 깊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도 우리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더 이상 나쁜 들러리를 요구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의 선택에서 국민은 대통령 후보자 중에서 누가 진정으로 평화와 생명을 존중하고 살아온 사람이며, 위장세력과 무리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창조한국당 전북도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35 | 추천: 0
올해 2007년 10월에 인권 회복 사례 2가지가 일간지에 보도된 바 있다. 유방암 투병 이후 신체검사에서 2급 장애판정을 받고 강제로 퇴역되었다가 외로운 싸움을 통해 시행규칙의 개정과 복직 가능성을 얻어낸 예비역 중령 피우진씨의 경우와 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다 제적된 후 퇴학처분 무효소송에서 이겨 학교로 돌아갔던 현재 서울대학생인 강의석씨가 학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승소한 사례가 그것이다. 이런 성공 사례는 인권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사례를 접하며 필자는 인권의 회복에 대한 희망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람의 외로운 노력, 그리고 희망의 이루어짐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평소 좋아하던 시 구절들과 명언들을 그러한 사례 속에서 새삼 떠올리게 된다. 남들과 다른 의견이라고 여겨져도 굽히지 않는 소신, 그것을 위해 벌이는 외로운 투쟁, 결국은 이루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자세로 생각이 이어진다. 우선, 필자는 피씨와 강씨가 지녔던 소신과 그것을 위한 외로운 싸움에 대해 생각한다. 피씨의 경우는 유방암 진단이 나와 절제술을 받은 후 수술 경과가 양호하고 완치 가능성이 90% 이상이며, 그 후 3년간의 체력검사에서 모두 합격 판정을 받았고 수술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현역으로 복무하는데 아무런 장애 사유가 없음을 주장하며 육군본부 전역심사위원회에 인사소청을 냈으나 기각된 후, 국방부 장관에게 소송을 냈고, 그 후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퇴역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강씨의 경우는 대광고 3학년때 “모든 학생은 예외 없이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학교 방침에 대해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20조)는 짧고도 또렷한 소신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다 한 달 만에 제적되었고, 그 후 학교를 상대로 법원에 낸 퇴학처분 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대에 진학한 강씨는 “학교가 종교 행사를 강요해 헌법에 보장된 종교 및 양심의 자유,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침해당했다”고 학교와 서울시에 손해배상청구를 냈고 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또 한번 승소했다.   피우진 중령과 강의석씨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러한 사례는 조각가 로댕이 남긴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깊고 의연하고 성실하십시오. 여러분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그 발표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인간에게 깊은 진실인 것은 만인에게도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두 사례는 한 사람이 지닌 깊은 진실, 그 확고하면서 정의로운 소신은 결국 만인에게도 진실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신 때문에, 더욱이 한사람의 의로운 싸움을 너무나 쉽게 무시하는 권력에 의해, 수없이 상처받아도 꿋꿋이 버틴 그 외로운 투쟁, 그리고 절망을 넘어 그들이 지닌 희망에 대해 생각하며 고정희 시인의 시 구절도 떠올리게 된다. 건강함을 증명하고자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피중령이 벌인 20여 일간의 1인 행군, 그리고 어린 고등학생이었던 강군이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헌법20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예외다?!”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지속적으로 벌인 1인 시위, 그 하루도 쉽지 않았을 서럽고 외로웠을 그들의 투쟁에 대해 숙연히 생각한다.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서)   그리고, 그러한 꿈은 결국 길이 된다. 박노해 시인이 노래하듯, “좋은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와 있는 좋은 삶,” “이루어놓은 작은 기쁨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닮고 싶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 된다.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으로 세상 힘겨울 때 우리 속에 이루어놓은 작은 기쁨들을 봐 . . . . . . 저 아득하고 먼 아직과 이미 사이를 내가 먼저 좋은 세상 이루어내는 우리 닮고 싶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이제 우리는 그들의 외로운 투쟁에 손잡아 주었어야할,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에서 그러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이제라도 “마주잡을 손”으로 다가가야 할 우리에 대해 생각하자. “어느 한사람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을 때는 우리 모두의 인권도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우리는 생각하는가? 인권을 말함은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이 외롭게 당한 억울한 고통이 함께 했어야 할 우리 모두의 고통이었음에 대한 고백이며, “마주잡을 손”으로 다가가고자 연대하겠다는 다짐 아닌가? 인권은 참으로 진실 된 소신과 희망이다. 우리 모두가 “깊고 의연하고 성실”하게 추구할만한 보편적인 가치이며,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기준이자 가르침이다. 그리고, 인권의 회복은 연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서로 서로가 있음에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의 어려움에 대해 두 눈을 감고 온갖 허상을 향해 손짓하는 이 시대에 인권 회복을 위해 손잡는 연대만큼 절실히 요청되는 도덕률이 또 있을까? 희망을 갖기에 사람이며, 사람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이루게 하는 친구, 곧 연대이다.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38 | 추천: 0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었다. 올해 추석연휴에는 태국여행을 계획했다. 우리 부부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첫 해외여행이었다. 장인, 장모님도 모시고 갔다. 평소에도 놀아주지 못한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신혼여행을 근사하게 가보지도 못한 아내와 모처럼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좋은 여행이 될 거야...’ 태국의 첫 인상은 스산했다.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고가도로 위에서 본 콘크리트 건물들. 다음날부터 우리 가족을 포함한 열두 명의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버스를 타고 방콕과 파타야를 오가며 이곳저곳 관광지를 다녔다. 장인, 장모님은 의외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잘 다니셨다. 아이들도 좀 피곤해 보였지만, 정작 가장 힘이 딸린 것은 우리 부부였다. 밤 12시까지 <관광>을 하고 다음날에는 새벽 6시 30분에 모닝콜을 해서 다시 새로운 <관광>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다닌 길에 참 많았던 고가도로들은, 수도 방콕과 휴양지를 연결하고, 그 밑에 얼기설기 지어진 양철집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관광객들을 태국의 여기저기로 효율적으로 실어 날랐다. 아마도 국민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사회적 인프라를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관광수입을 챙기기 위한 좋은 선택이었겠지. 관광객들은 태국 사람들의 삶은 전혀 접촉할 필요가 없고 유명 관광지를 오가기만 하면 되니까. 밤 11시에 안마를 받으러 가는 다른 일행들을 뒤로 하고 우리 부부와 아이들만 픽업트럭을 개조한 택시의 짐칸(승객석)에 타고 숙소로 이동한 일이 그나마 태국 사람들의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것이었다. 우리 부부가 생각한 <여행>은, 에머랄드사원 같은 곳에 가면 휘~둘러보고 으레 정해진 장소에서 사진 찍고 나오기 보다는, 한나절을 거기 앉아서 태국의 역사가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벽을 꽉 채운 벽화들에 대해서 조곤조곤 설명을 들으며 그곳의 기운에 젖어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녁 6시쯤이면 숙소에 돌아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그곳의 풍광과 사람들과 우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한비야씨처럼 몇 달씩 머물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살지는 못해도, 태국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그런데 기대를 안고 떠난 여행이 사실은 <관광>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를 인솔한 가이드는 말했다. “3일 동안 여러분은 방콕과 파타야를 알짜배기로 다 돌아본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태국에 여행 오지 마세요.”   여행은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을 되돌아 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르페르  돌아와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관광> 오는 외국인들도 고궁을 둘러보면서 내가 태국에서 <관광>한 것처럼 다니겠지. 내가 겉돈 것처럼, 그들도 겉돌고 돌아가겠지. 그리고는 한국을 얼마간이라도 경험했다고 생각하리라... 여행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삶을 접해 보기. 그래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나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기. 그러려면 그곳의 보통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어야 할 테고, 쳇바퀴 같은 삶이지만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을 되돌아 볼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요해졌다고 동남아를 다니면서 마련해 놓은 여행의 방식이 이런 식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이렇게 <쉬고> 집에 돌아가면 어떻게 재충전이 되는지 어쩌면 이런 모습은 평소 사는 모습 그대로인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가고, 또 다른 목표가 생기면 뒤돌아 볼 새도 없이 또 달려가고... 어른들이 그렇게 살고, 학생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대로 여행하려면 평소에 제대로 살고 있어야 하는가 보다. 다음 기회에는 진짜 <여행>을 갈 수 있게 조심해야겠다. 또 <관광>에 붙잡히지 않도록.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297 | 추천: 0
출판업을 하는 한 선배가 자조하듯 한 이야기가 있다. "세상이 이렇게 웃기고 재밌는 일로 가득한데 책이 팔리겠어?" 신문보도를 보니 작년도 출판 매출이 그 전해에 비해 13% 가량 줄었단다. 올해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는데 이래저래 책은 더 안 팔리게 생겼으니 그 선배 처지가 더 딱하게 됐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사회는 웃지 못 할 코미디와 예상 못할 드라마로 가득하다.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가 드러나자 숱한 유명인사들의 학력 위조에 대한 폭로와 고백이 줄을 이은 것도 하나의 코미디다. 영화배우, 연극배우, 탤런트, 만화가, 코미디언, 외국어 강사, 거기에 종교인까지. 재미있는 건 이들 대부분이 주로 문화예술계 쪽 인사들이란 점이다. 문화의 시대라느니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느니 하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아마 상상력과 창의력도 학벌로 결정되는 모양이다. 하긴 그걸 잘 보여준 사례가 있긴 하다. 어디선가 신정아씨의 누드 사진을 입수한 한 신문사는 그걸 일면에 게재하면서 권력자에 줄을 대기 위한 '성 로비'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누드 사진을 게재한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코미디로 화답했단다. 국민들이 남의 나체를 '알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누드 사진을 곧바로 '성 로비' 의혹으로 연결하는 그 사고의 비약이야말로 기막힌 상상력과 창의력의 발로 아닌가. 모르긴 해도 그 신문사 기자와 간부들 대부분 이른바 '좋은 대학' 출신일 가능성이 높으니 상상력과 창의력이 학벌로 정해진다는 게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최근에 벌어진 코미디 가운데 압권은 남북정상회담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3일 서울역 앞에서 벌어졌다는 보수 단체들의 집회였다. 남북정상회담을 규탄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자는 이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두 손을 쳐들고 기도를 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저주하는 연사들의 발언이 쏟아질 때마다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쳐댔다.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해병대 복장의 아저씨들과 단상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아가씨들의 모습은 가히 부조리극의 극치라 할만하다. 최근 웃을 일이 없었던 사람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이 동영상을 꼭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10월 3일 서울역에서 벌어졌던 보수 단체의 집회 모습.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특히 웃겼던 장면은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에 맞추어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이었다. '아, 대한민국'이라.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폭력과 공포가 우리의 일상을 조이던 그 치 떨리던 시절에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가 있는' 대한민국을 찬양하던 이 노래, 한때 대학생들의 노래가사바꿔부르기, 요즘 말로 패러디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를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그런데 '아, 대한민국'에 성조기라니. 정말 웃기지 않는가. 하여튼 이 나라의 '어떤' 개신교 사람들과 '어떤' 보수주의자들은 정말 심심치 않게 우리를 웃긴다. 하긴 그 사람들의 코미디는 한참 낄낄거리며 웃다 보면 기분이 오히려 나빠진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최근 임기가 만료된 한 주한 외국대사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가 보여줄 온갖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다며 임기 연장을 신청했다는 얘길 들었다. 그 외국 대사가 말하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아, 대한민국'을 틀어놓고 성조기를 흔드는 식의 블랙 코미디가 포함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것보다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그런 역동성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드라마틱한 과정을 궁금해 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런 드라마를 보고 싶으니까. 예상을 뛰어 넘는, 그러나 끝나고 나면 아, 역시 대중의 지혜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는 그런 역동성의 드라마 말이다. 그거야 말로 내가 진정 보고 싶은 코미디이다. 그런 코미디라면 책이 좀 덜 팔린다 한들 출판업 하는 내 선배도 그리 섭섭해 하진 않을 것 같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301 | 추천: 0
오늘은 6학년 사회과를 가르치면서 발생한 교사로서의 정체성 문제와 학교의 위계체제, 그리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부여된 권리이자 의무인 학습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몇 자 끄적이고 싶다. 왜냐하면 추석 연휴기간동안 이 생각이 잠자리가 맴을 돌 듯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담임이 아닌 교과를 선택했고 6학년 사회를 주로 가르치게 되었다. 6학년 사회는 1학기 때에는 우리나라 역사를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2학기 때에는 정치 분야를 지도하게 되어있다. 1주일에 3시간을 배당하여 가르치기에는 그 양이 방대하여 아이들의 수업참여를 보장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정치 분야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표면적으로 볼 때 아이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뜬구름잡기식의 재미없는 수업이 되기 십상이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인기 있는 드라마나 눈에 띄는 CF, 우리 생활주변의 실제적 이야기로 집중도를 높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내용 중 시민단체의 종류와 하는 일, 활동에 대한 부분이 나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민단체가 어떤 활동을 하며 역할이 무엇을 하는 단체인가에 대하여 낮은 이해도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과 친숙한 매체에서 다뤄지는 소재도 아니었고 주변의 생활과도 친숙한 단체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본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여 체험학습을 계획하였고 시민단체인 0000와(과) 6학년 담임교사들의 양해를 구하였다. 그러나 6학년 전교사들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지하철 이용이라는 데에 대한 안전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의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소위 브레이크가 걸렸는데 안전문제는 표면적인 것이었고 진짜 이유는 0000(이)라는 단체가 너무 비판적이고 평소 본인의 언행으로 보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키워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어 체험학습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재고를 당부하며 이야기를 종료했지만 추석 연휴동안 교사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였다. 국가로부터 공인된 자격을 지닌 교사의 학습에 대한 재량권은 어디까지이고 아이들에게 부여할 학습의 내용을 결정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학습에 적절한 내용인가의 여부를 교육활동을 진행하는 교사가 아닌, 직접적인 교육활동에서 떠나있는 관리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체험학습의 필요 여부와 내용 결정은 관리자의 몫인가? 관리자의 교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있을 시에 관리자의 시각에 의존하여 학습권을 포기하는 것이 마땅한가?   한강시민공원에서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이 래프팅 등 수상레포츠를 즐기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학교는 가르침의 대상자와 수행자, 그를 보조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각자의 영역과 역할을 규정짓고 수행하면서 생활한다. 한사람의 비뚤어진 시각은 교육의 내용도 재단한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의 입장에서 가르치면서 늘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하여 일상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교육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한순간 한순간의 교육내용이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인간 육성’을 강조하는 교육목표는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진다. 한 일간지에서 읽은 어떤 교장선생님이 퇴임하면서 읽은 30년 교직생활에 대한 회고문이 생각난다. 일상적 회고문은 자신의 교육자로서의 공적을 나열하기가 일쑤지만 그 글은 교육자로서 잘못된 지시나 지침에 용기 있게 항의하지 못한 죄와 그것을 당당하게 교육한 것을 스스로 양심선언하는 내용이었다. 10여년의 남은 교직생활을 남기고 있는 교감선생님에 대하여 ‘아! 당신은 그런 의식을 지닌 사람이군요~~’ 라며 웃어 넘기기에는 어려운 그 무엇이 있다. ‘10년 후에 어떤 회고문을 읽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식은 하고 있는 것일까? 교사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재량은 중요하다.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와 각종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오는 것도 체험학습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시민단체 방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재량권을 강화시킨 7차 교육과정상으로도 그렇다. 그 필요성과 교육활동의 선택에 대한 권한은 교사에게 있어야 마땅하다. 한 개인의 왜곡된 시각이 깊은 고민과 성찰로 계획한 교육활동이 마음대로 재단되는 것은 폭력이고 난폭함이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09 | hrights | 조회: 409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