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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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뿌연 미세먼지마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운치를 더하는 강변의 풍경을 보며 강원도로 향했다. 춘천과 화천을 잇는 배후령 터널을 지나 북으로 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른 곳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 터널이 뚫린 후 인적이 뜸한 배후령 고갯길에는 한국전쟁 이전까지 그곳이 분단선이었음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여기가 3.8선입니다’ 한때는 이북 땅이었던 이곳 화천 땅과 그 일대는 한국 전쟁 시기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자 지금도 휴전선에 인접해 군부대와 군시설이 대거 들어서 있는 곳이다.  2020년 새해 들어 베트남 전쟁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첫 일정으로 오음리를 찾았다. 우리끼리는 모임 이름을 ‘베공모임’이라 줄여 말하기도 하는데 베트남 전쟁의 역사에 관심 갖는 교사, 활동가가 함께하고 있다. 오음리로 가는 편도 2차선 도로로 군트럭과 장갑차 행렬이 끝없이 지나갔다. 군사훈련 중인 장갑차가 넘어와 비좁은 길을 아슬아슬 지나 목적지로 향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며,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의 기억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는 베트남 전쟁 참전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소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6개월 동안 32만여 명의 병력을 베트남 전쟁에 파병했다. 전투부대가 파병된 첫 해를 제외하고, 1966년부터 이곳 오음리는 월남파병 훈련소로 자리 잡게 된다. 지금은 파병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이곳에 2008년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 조성되고 ‘월남참전기념관’이 들어섰다. 야외에는 월남파병용사추모비와 당시를 재현해 놓은 취사반 막사, 조악하지만 월남의 집들과 구찌 땅굴 모형도 조성되어 있다. 월남참전기념관은 두 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시의 구성과 내용은 용산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에 전시해 놓은 것과 대동소이하다. 박정희 정부 시기 파병 결정과 과정, 그로 인한 한국의 경제 발전, 한국군의 활약과 전쟁무기, 1973년 철군까지 전쟁에 대한 ‘기념’과 ‘국가주의’ ‘영웅주의’가 넘쳐난다. 필요한 정보만으로 서사를 만들어 역사를 취사선택하고 있다.  최근 읽은 책 비엣 타인 응우옌(Viet Thanh Nguyen)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_베트남과 전쟁의 기억>은 이 전쟁에 참전한 한국에 대해 극명하게 엇갈린 타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고, 보트피플로 미국에 건너가 성장한 그는 베트남 전쟁이야말로 한국이 아제국주의(Subimperialism)의 강국으로 떠오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그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합중국을 비난하기도 한다. 한국이 처해 있던 복잡한 상황을 감안하면서, 한국인들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범죄도 너그럽게 보려 한다. 이러한 서사로 기억을 세탁하면서, 돈이 기억을 지배하고 기억이 돈을 지배하는 지본주의의 세계에서 한국은 새로운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 (중략) 한국은 스스로를 일본이나 미국 혹은 북한에 대해 피해자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국은 피해자에 머무른 적이 없다. 냉전시대나 그 이후에 한국인들은 측근, 용역 혹은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그들의 주인에게 잘 배웠다. 우수한 학생인 한국은 인간 이하의 자리에서 졸업하여 아제국주의자의 지위에 올랐다.’ 그의 주장은 국가주의로 위장된 우리의 기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무엇으로 포장하든 전쟁은 한낱 전쟁에 불과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베트남에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그래서 한국은 얼굴성형 말고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자본주의와 산업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수술하는 외과 의사들이 잔혹성을 제거하고 인간성을 이식한 전쟁 기억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서울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며, ‘해외파병’ 전시실은 베트남, 캄보디아 혹은 방글라데시라는 알쏭달쏭한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으로 메이드인 코리아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길, 춘천역 옆에 있는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을 들렀다. 한국전쟁 시기 격전이 벌어졌던 이곳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무공탑과 육이오참전학도병기념탑, 기념 조각이 서 있다. 2017년 10월, 이곳에 월남참전기념탑이 들어섰다. 오음리에서 훈련받고 이곳 춘천역에 집결해 부산항으로 떠나는 출발지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전국 도처에 이런 베트남 전쟁 기념비가 넘쳐난다. 사진 출처 - 필자  1월 22일,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란과 미국 간 긴장이 잦아들면서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동의 절차도 없이 한국 정부는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독자 활동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결정에 이란 정부는 반발하고 미국은 환영입장을 밝혔다. 프랑스가 주도한 유럽 7개국도 ’호르무즈 호위작전‘을 별도로 꾸렸다고 하니 이 일대 군사적 긴장은 갈수록 더해만 간다.  나는 ‘독자적 활동’이라는 모호함과 그것이 열어갈 전쟁의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국익과 실리적 판단이라는 파병의 명분에 분노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에서 나는 전쟁의 고통 속에 살아야했던 사람들의 삶을 만나지 못했다. 기념의 공간엔 영웅과 애국만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삶 속에서 만난 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비통함으로 남는다. 어떤 명분으로 포장해도 전쟁은 전쟁이다. 국익을 위한 전쟁이란 없다. 베트남전참전기념탑 옆에 호르무즈참전기념탑이 들어서는 기막힌 장면을 상상해 보았는가.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에 메이드인 코리아 꼬리표를 더 이상 추가하지 말자. 
2020-01-22 | hrights | 조회: 986 | 추천: 6
이윤/ 경찰관  DNA 대조에 의해 30년 전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라는 사람으로 밝혀졌다. 이춘재의 DNA가 당시 3건(5, 7, 9차 사건)의 현장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였다. 이에 경찰은 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를 상대로 면담하여 14건의 살인사건과 30건의 성범죄에 대한 자백을 받았다.  DNA가 일치해도 자백은 필요하다. DNA 증거는 범행현장에 그 사람이 있었다거나 범행과 관련된 물건이나 사람과 접촉했음을 입증하는 간접증거일 뿐 범행의 동기, 고의, 방법, 범행 전후의 행적까지 알려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재구성을 위해서는 행위자나 목격자의 기억에 의한 정확하고 진실한 진술이 필요하다.  이춘재는 계속 범인이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9차에 걸친 면담 끝에 모두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였다. 언론에서는 어떻게 이춘재의 자백을 이끌어냈는지에 관심을 보였고, 일부 전문가들은 프로파일러들의 ‘라포형성’이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라포형성(rapport building)’은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대단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이나 신뢰관계’를 의미하는 라포형성은 교육이나 상담, 그 밖의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기본이고 필수이다. 라포가 형성되면 긴장과 불안이 감소하고 의사소통의 장벽이 제거되기 때문에 정확하고 풍부한 기억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범죄처럼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것까지 말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라포를 형성하는 구체적 방법은 언어적/비언어적 경청, 공감하기, 동작 따라하기(미러링), 상대 배려하기 등이 있다. 이런 방법들은 기법이라기보다는 태도에 더 가깝다.  ‘겨우 이런 것으로 자백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하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수사면담 교육을 받은 많은 수사관들이 라포라는 생소한 외국어와, 조사할 때 꼭 라포를 형성하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의 실증연구에 의하면, (고문이 없다는 전제하에) 라포형성이 포함된 인간적(humanitarian) 면담방법이 많이 사용될수록 자백 가능성이 높아지고, 적을수록 자백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한다. 또 범죄자의 60%는 다른 기술 없이 라포형성만 잘 되어도 자백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라포형성이 된 모든 사례에서 꼭 자백을 하는 것은 아니다. 즉, 라포형성은 자백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춘재와의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백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이 유일하고 핵심적인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진 출처 - 구글  1990년대 이후 심리학자들은 수사 피의자를 상대로 범죄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신문’이나 ‘조사’ ・ ‘취조’라는 용어보다 ‘수사면담(investigative interview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전 세계의 수사면담기법들 모두 라포형성을 강조한다. 인간적 면담방법에 해당하는 인지면담, 영국의 PEACE 모델, 스웨덴의 SUE(전략적 증거 사용), 노르웨이의 TIM(전략적 면담 모델), 네덜란드의 GIS(일반적 면담 전략)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압적 면담방법으로 분류되는 미국의 리드(Reid) 테크닉도 면담을 시작할 때부터 피면담자와의 사이에 라포를 형성하라고 한다.  만일 화성 8차 사건 수사관들이 라포형성에 의한 인간적 면담방법을 알았더라면 무고한 윤 모 씨가 허위자백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억울한 옥살이도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 경찰도 2007년부터 수사연수원에 ‘수사면담 전문과정’을 신설하여 수사관들에게 라포형성을 포함한 인간적 면담방법을 교육시키고 있다. 문제는 교육받은 수사관의 수가 너무 적어서 당시에도 1년에 280명뿐이었지만, 최근에는 1년 동안 100여명(1회 35명씩 1년 3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수사경찰관의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많은 수사관들이 피의자와 라포형성을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꾸짖고, 호통치고, 비난하고, 비웃고, 경멸하고, 창피 주는 방법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수사를 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수사를 포함한 모든 경찰활동은 사람을 상대로 한다. 현장에서 분노, 불안, 두려움의 정서가 각성된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신고나 업무 관련 대화를 하기 전에 라포를 형성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더욱 수월해질 것이고, 경찰관에 대한 불신도 줄어들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라포형성을 하면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과 ‘억울한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라포형성과 인간적 면담에 대해 영국처럼 수사 분야를 넘어 모든 경찰관에게 교육·훈련시킨다면, 인권경찰, 유능한 경찰, 공정한 경찰에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2020-01-15 | hrights | 조회: 1412 | 추천: 9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지역화폐1)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동네 이웃들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 특히 어르신들이 왜 지역화폐가 필요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 배경에는 왜 멀쩡한 돈을 두고 또 다른 돈을 만드냐는 힐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럴 때면 ‘그러니까 예전에 어른들이 돌고 돌아 돈이라고 하셨지 않겠습니까…’로 일단 말문을 연다. 그런 후 ‘그런데 돈이 이름값을 못하고 제대로 안 도니 우리가 돈을 만들어 돌려보자는 것이지요’라고 답을 한다.  대부분 고개를 끄떡이지만 그래도 ‘나라에서 만든 돈은 어쩌라고 무슨 돈을 또 만드냐’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2단계 심층 질문이 오는 경우도 있다. 국가 경제가 어려운데 지역마다 따로 돈을 만들어 지역에서만 돌리면 지역 간 자원의 순환을 막는다는 이른바 폐쇄경제론과 돈을 많이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보수·진보를 떠나 공히 나오는 이 같은 지적들은 사실 현황자료만 살펴봐도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연구원이 2018년 11월 발표한 ‘지역소득 역외유출의 결정 요인과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1년에 전국에서 서울·수도권으로 빠져 들어가는 지역소득은 62조3271억 원(서울 40조3807억원, 수도권 21조9464억원)에 달한다.  좀 더 실감나는 데이터를 살펴보자. 2016년 한국은행이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 서울을 제외한 전국 평균 역외소비율은 45.5%이었다. 100만원을 소비하면 45만5천원은 지역 외로 빠져나간 셈이다. 어디로 갔을까?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저녁이면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하는 나와 대형마트에서 1+1 상품이면 묻지도 않고 집어서 후불(외상) 신용카드로 긁는 당신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사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돈이 한 곳으로 쏠려 ‘돈맥경화’를 일으키는 것이다.(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지역사랑을 운운하며 서울사랑상품권을 내놓은 것은 참으로 괴이하다)  소위 정통 경제학자는 물론, 지역화폐를 엥겔스가 비트코인하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며 일종의 보호무역처럼 보는 쪽에서는 먼저 이 같은 현실에 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가 발생한다는 것도 공허한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10월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광의통화(유동성 현금)는 2,874조원이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0년 전국 지자체 지역화폐 발행목표는 3조원이다. 지역화폐가 인플레를 유발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규모이다.  무엇보다 지자체 발행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일대일 태환하는 구조이다. 지자체장이 마구 찍어내는 돈이 아니니 문제제기 자체가 문제다. 지역화폐가 법정화폐의 통화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불안에서 나온 이야기일 텐데,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의 대안화폐가 아닌 보완화폐이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의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은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보완하기 위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 브리스톨, 프랑스 낭트, 네덜란드 마키 등 6개의 지역화폐 시범사업을 완료하고 2050년까지 지역화폐를 유럽연합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상한 돈이 도처에 많다  시야를 좀 넓혀 보자. 돈이 가진 본래의 기능인 거래의 매개와 가치의 척도에 집중하고 돈을 숭배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축장과 투기의 기능을 거세한 지역화폐가 많다.(아래 소개하는 전 세계 지역화폐 사례는 인천대학교 지역공공경제연구소 이점순 박사의 최근 정리에서 주로 발췌했다)  지역화폐의 이론적 배경으로 독일의 경제학자인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 이론’을 꼽을 수 있다. 게젤은 ‘모든 상품은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거나 가치가 하락하는 반면 화폐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이자가 붙어 축적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보고 화폐를 교환의 도구로 환원시키기 위해 일반 재화처럼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하락하는 화폐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걸 실제로 구현한 사례가 등장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를 겪던 독일의 탄광지역 슈바넨키르헨에서 게젤의 아이디어를 받아 ‘Wear’라는 지역화폐를 발행한다. 이 화폐는 매월 액면가의 2%에 해당하는 인지를 별도로 구입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쌓아놓지 말고 빨리 쓰라는 것이었다.  지역화폐 또는 대안화폐의 대명사로 익숙한 ‘레츠’(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는 1983년 캐나다 코목스밸리 지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마이클 린튼이 목재산업 침체로 경기가 나빠진 지역 내 주민 간 노동과 물품을 거래하고 컴퓨터에 거래 내역을 공유하는 형태의 ‘녹색달러’를 만든 것이 시초이다.  두 경우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경제 불황기에 지역화폐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돈이 안돌면 우리가 돈을 만들어 돌려보자는 생각이다.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한 주민 간 노동과 물품의 거래를 위해 만든 지역화폐의 형태는 ‘레츠형’으로 불리며 현재 전 세계에서 2,000여종이 통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츠형과 달리 법정화폐 환전 가능여부, 결제방식, 운영방식 등에서 제각각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지역화폐가 전 세계에서 1,000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놀랍게 바라보는 것이 시간화폐이다.  198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서비스 교환을 통한 공동체적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타임달러’(Time Dollar)가 등장한다. 개인의 자원봉사 활동에 따라 발생한 가치를 화폐로 환산해 회원 간 계좌에 등록한다. 타 회원에게 1시간 서비스를 제공한 회원은 ‘+1 타임달러’, 서비스를 받은 회원은 ‘-1 타임달러’로 기록되며 순환한다. 시간이 가치의 척도이며 상호간 부조 및 기부도 가능하다.  미국 이타카시에서 1991년부터 시행 중인 ‘이타카 아워’(Ithaca Hours)도 유명하다. 1 이타카 아워는 1시간 노동의 가치를 지니며 1시간 노동은 법정화폐 10달러의 가치를 부여해 실물화폐 형태의 이타카 아워가 회원 간 유통된다. 특히 지역사회 공헌사업 등에는 이타카 아워를 무이자로 융자 해주기도 한다. 이타카 아워로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은 1,000여종에 달하며 2015년부터는 전자화폐인 ‘이타캐쉬’(Ithacash)가 주로 통용되고 있다.  이타카 아워는 상당히 성공한 지역화폐 사례이다. 특히 법정화폐가 다국적 기업과 은행에 점점 종속되는데 비해 지역 사회 내 거래를 활성화하고 환경보전 및 사회정의를 고려하는 거래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경북 구미의 사랑고리 화폐가 시간화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 아톰이 지역화폐에 등장하는 이유  해당 국가 법정화폐와 호환되는 지역화폐도 많다.  프랑스 낭트에서 유통되는 ‘소낭트’(SoNantes) 화폐는 유로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분산시키고 지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했다. 지역의 경제주체들은 시립낭트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유로화와 소낭트를 일대일로 교환한다. 지역 내 기업에서 지불 및 저축의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며 기업 간 거래 뿐 아니라 최근에는 기업과 개인 간 거래에도 활동된다.  소낭트는 환경 관련 기업과 각종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등 공공이익을 창출하는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대기업은 참여할 수 없다. 낭트 내 약 2만6천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 파운드는 최근 국내 지역화폐 도입 주체들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지역화폐이다. 2012년 영국 브리스톨시에서 자금의 역외유출 완화를 통한 지역 내 소매점 및 시장 활성화, 지역고용 유지 등을 위해 도입됐다.  브리스톨 파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 시민사회가 주도한 점이다. 비영리단체(공동체이익회사)인 브리스톨 파운드 사무국(CIC)이 지역 은행과 협약을 맺고 시스템을 공동 운영한다. 브리스톨 시는 감사와 홍보 등을 담당한다. 지류권과 ‘Text to Text’ 방식의 전자화폐를 통해 발행하며 소비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10%의 인센티브를 포인트 방식으로 제공하고 가맹점은 결제와 환금 시 총 4%의 수수료를 낸다. 시장이 월급을 브리스톨 파운드로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역화폐를 ‘에코머니’라고도 부르는 일본의 사례는 더 재미있다. 2004년 일본 와세다 다카다바바(만화 아톰의 주 무대였던 동네)에서는 지역공동체를 육성하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아톰화폐를 만든다. 아톰화폐 실행위원회 사무국에서 발행하며 지역주민들은 지역사회, 환경, 국제협력, 교육 등 4가지 원칙에 맞는 프로젝트나 이벤트에 참가해 아톰화폐를 획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지정된 레스토랑에서 개인 젓가락 사용, 지역 제품으로 만든 요리 주문, 쇼핑 시 개인봉투 사용, 공공장소 청소, 지역축제 참여 등이다.  아톰화폐를 받은 사람은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고 가맹점은 아톰화폐 실행위원회 사무국에서 법정화폐로 환금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아톰화폐의 연간 발행액은 2,000만 마력(1마력=1엔)이며 대중교통, 체육문화시설, 친환경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법정화폐로 환전하는 비율은 발행액의 50% 정도라고 한다.  우주소년 아톰의 작가 데즈카 오사무가 ‘사람들 간의 연대를 소중히 하여 지구의 미래를 지킨다’라는 이념을 작품에 반영했다고 하니, 그 정신에 딱 맞는 돈이다. 정초부터 돈 이야기라니…  한국에서 최근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지자체 주도형 지역화폐가 위에 열거한 지역화폐와 비교할 때 지역화폐 원래의 목적과 가치를 잘 알고 지키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왜 만들었는지 수시로 되새기지 않는 지역화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역화폐는 돈이 안돌아서 생겨났다.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공동체 내에서 스스로 만든 돈이다. 최근의 지역화폐 붐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은 사실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유동성 현금이 2,874조원이 풀려있고 매월 증가폭이 커지고 있음에도 돈 구경하기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돈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인 물(요즘은 긍정적인 표현이기도 하더니만 은)은 썩는다. 핏줄에 흐르는 피처럼 순환되어야 할 돈이 고여 있으면 나라는 썩는다. 만일 그렇다면 안도는 돈 대신 도는 돈을 만들어 쓰면 된다.  정초부터 돈 이야기를 꺼내 면구스럽지만 자,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이다. 1) 지역 내 소비의 부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지역 소상공·자영업자들의 매출을 증진시켜 지역순환경제 구축을 도모하기 위해 현재 전국 177개 지자체에서 도입 중이다. 대형마트, SSM,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사용자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불편한 소비’에 대한 보상으로 구매 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3,000개의 지역화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대부분 공동체 회원 간 노동력 등 자원을 교환할 때 쓰이는 매개로 법정화폐와 교환이 불가능하지만 한국의 경우 법정화폐와 교환(태환)이 가능하다. 또 민간 영역이 아닌 행정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는 경우가 많으며 ‘공동체 복원’의 목적보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 복원에 따른 사회적 자본 강화라는 비전을 가진 지자체도 있다.(예를 들어 경기도 시흥시^^)
2020-01-15 | hrights | 조회: 810 | 추천: 1
: 이스라엘-UAE 및 아랍 동맹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이스라엘-아랍 동맹을 견인하는 UAE  2019년 12월 21일, 아랍에미리트(UAE) 외교국제협력부 장관 압둘라 빈 자이드는 아랍-이스라엘의 동맹을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고,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로부터 즉각 환영을 받았다.  압둘라 빈 자이드 장관은 “이슬람의 개혁: 아랍-이스라엘 동맹이 중동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제목의 영국 주간지 더 스펙터의 기사를 링크해 트위터에 올렸다. 네타냐후는 압둘라 장관의 글에 화답하는 트위터에서, “나는 이스라엘과 많은 아랍국가들 사이의 더욱 긴밀한 관계를 환영한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에 관계 정상화와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썼다.  현재 이스라엘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는 아랍 정부들은 UAE,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사우디, 바레인, 수단과 리비아 동부의 군벌인 칼리파 하프타르 정부 등이다. UAE가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이 축을 이끌고 있다. 특히 최근 UAE 중개로 이스라엘과 리비아 동부의 하프타르 정부의 군사적 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2017년 8월 8일, 미들 이스트 아이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우리의 친구의 친구, 우리의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다. 리비아 동부를 통치하는 칼리파 하프타르는 우리의 친구인 이집트, 요르단, UAE의 친구이며, 우리의 적인 IS와 싸운다. 그러므로 하프타르는 우리의 친구다.”라고 밝혔다. 2018년 UAE가 중개한 이스라엘-하프타르 회담에서 이스라엘은 하프타르 군대에게 무기를 공급하기로 합의하였다. 미들이스트 모니터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현재 하프타르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UAE가 이끄는 축에 맞서는 정부들은 터키, 카타르, 튀니지, 리비아 서부의 국민합의정부(GNA)와 UAE의 이슬라흐, 사우디의 알 사흐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각 국가 내 정부반대파인 무슬림형제단 세력들이다. 이 축을 선도하는 국가는 터키이며, 상호 협력의 매개체로 이슬람을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스라엘-하프타르 관계 강화에 맞서, 최근 터키와 유엔이 인정한 GNA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19년 11월 27일, 터키와 GNA는 지중해에서의 배타적 경제수역 지정을 포함하는 ‘해상관할구역 경계협정’과 ‘안보와 군사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터키와 GNA가 공유하는 이 해상관할 구역은 동부지중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터키와 리비아 서부를 이어 주며, 이스라엘이 이 구역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2019년 12월 26일, 이란과 터키는 이슬람을 매개로 종교 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등, 최근 터키와 이란이 가까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최근 이스라엘은 왜 UAE가 이끄는 아랍 국가들, 특히 리비아 동부의 하프타르 세력과 협력 강화에 적극 나선 것일까?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타마르와 레비아탄 가스전을 비롯한 이스라엘 연안 동지중해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의 유럽 수출을 위한 허브를 구축하고, 지중해를 동서로 관통하여 유럽으로 가는 수출용 가스관의 안전망 확보를 위한 것이다. □ 이스라엘 천연가스 소비시장: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요르단, 이집트  미국회사 노블에너지는 2009년-2010년에 동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타마르와 레비아탄 가스전들을 발견하여 개발하고 있으며, 이 가스전들에 대한 최대 지분(타마르 유전의 36%, 레비아탄 유전의 39.66%)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외국과 가스협정을 체결하는 주체다. 사실상, 이스라엘 연안 동지중해에서 생산되는 천연 가스 수출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미국회사 노블에너지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2017년 9월 미국은 이스라엘 항구 도시 하이파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였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도움 허가’ 라는 제목이 붙은 2017년 미국방수권법 1259항은 “동지중해는 이스라엘 안보뿐만 아니라, 미국 안보 이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미 국방부는 이 지역에서 안보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고, 증진시켜야한다.”고 규정한다. 사실상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터키와 시리아 등 이스라엘 인근 국가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지중해 패권을 확보하고, 동지중해 유전 지대를 안정적으로 개발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스라엘 주변 아랍 국가들은 동지중해에서 생산되는 천연 가스 소비 시장이 되었다. 2014년 1월 6일, 노블에너지와 서안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전력회사(PPGC)는 제닌 지역 발전소에 20년 동안 공급할 12억 달러 상당의 천연가스 구매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 연안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구매하는 첫 번째 주체가 되었다.  2016년 9월 노블에너지와 요르단 국영회사 NEPCO는 요르단에게 15년 동안 100억 달러 상당 천연가스를 공급하기로 사이에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때, NEPCO는 “이 협정은 역내 협력을 강화시킬 것이고, 요르단을 동지중해에서 발견된 가스전을 활용하기 위한 지중해 프로젝트 연합과 EU의 일부로 만들 것이다.”라고 발표하였다. 또 이스라엘 에너지장관 유발 스테이니츠는 “이 가스협정은 극히 중요한 국가의 업적이며,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유대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초석”이라고 밝혔다.  2018년 2월 노블에너지, 이스라엘회사 델렉 시추와 이집트회사 돌피너스 홀딩스가 이집트에게 150억 달러 상당 천연가스를 공급하기로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이 협정을 이스라엘 가스 산업 사상 최대 규모의 협정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2019년 10월 이집트가 가스 수입을 34%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약 200억 달러 상당으로 수입액이 증가하였다.  2019년 1월 카이로 회의에서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는 역내 가스 시장을 창출하고, 인프라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공하기 위한 지중해 프로젝트인 ‘동지중해 가스포럼’을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2019년 7월 25일 카이로에서 미국 에너지 장관 릭페리, EU 에너지 사무총장, 프랑스, 세계은행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 에너지 장관들은 ‘동지중해 가스포럼’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사실상 이 포럼은 이스라엘 연안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인근 아랍 국가들에게 수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시장인 유럽으로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2016년 9월 요르단국영회사 NEPCO가 예견한 것처럼, 천연가스를 매개로 한 지중해 프로젝트 연합의 형태로 EU국가들과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협력관계가 창출되었다. □ 전운이 감도는 동지중해: 이스라엘-UAE/터키-GNA  이스라엘 공군은 2017년 3월 27일-4월 6일, 2018년 3월, 2019년 4월에 그리스에서 실시된 이니오호스 연례 훈련에 UAE 공군, 미국 공군과 나란히 연합 훈련에 참가하였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영국, 키프로스 공군들이 이 훈련에 참가하였다.  이니오호스 훈련 실시 중인 2017년 4월 3일, 이스라엘,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는 이스라엘연안에서 시작하여 지중해를 관통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이 공동선언에 대하여 이스라엘 에너지 장관인 유발 스타이니츠는 “이것은 지중해 4개국, 이스라엘,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 사이의 경이적인 우정의 시작이며,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깊은 해저 파이프라인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2017년 6월 15일,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 키프로스 대통령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는 지중해 연안유전에서 나오는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파이프라인 건설을 진행하기로 합의하면서,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몇 달 전까지도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은 환상의 영역에 있었는데, 이제 현실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 해저 파이프라인은 2천 2백㎞가 될 것이며, 이스라엘과 키프로스 연안 가스 유전을 그리스와 이탈리아까지 연결시키면서, 이스라엘을 역내 에너지 중심축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25년경에는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천연가스가 이스라엘로부터 유럽으로 수출될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책에 맞서 2019년 11월 27일,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과 GNA 대표 파예즈 알 사라지(리비아 대통령위원회의 의장 겸 총리)는 지중해에서의 배타적 경제 수역 지정을 포함하는 ‘해상관할구역 경계협정’과 ‘안보와 군사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12월 5일 터키 국회는 이 협정들을 비준하였다. 터키와 GNA가 공유하는 이 해상관할 구역은 지중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터키와 리비아 서부를 이어 준다. 이 협정에서 터키는 이 지정된 관할 구역을 지역을 지나는 선박을 억류, 검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이 이 해역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이 해상관할 구역은 이스라엘에서 그리스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결정적인 장애물이다.  이 협정에 대한 대응 조치로, 12월 6일 그리스는 GNA가 파견한 리비아 대사에게 72시간 내에 그리스를 떠나라고 명령했고, 이집트는 12월 15일 리비아 대사관을 폐쇄하고, 대사를 추방했다.  2019년 12월 현재 동부지중해를 관통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한 리비아 상공에서는 UAE와 터키 사이에서 새로운 양상의 드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은 2019년 4월 동부지역을 통치하는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이 GNA가 통치하는 서부지역 트리폴리를 공격하면서 발발하였다. 하프타르 군대는 UAE, 이스라엘, 이집트, 사우디, 수단(5천명 용병), 프랑스, 러시아(2천명 용병)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단과 러시아 용병들에게 UAE가 자금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하프타르의 가장 큰 버팀목은 UAE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12월 15일 다급해진 GNA 대표 파예즈 알 사라지는 카타르를 방문하여 카타르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 싸니로부터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GNA를 계속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연루된 이 전쟁에서 카타르가 적극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터키는 GNA에게 드론 공격 및 무기를 지원하는 유일한 외부 세력이다. 2019년 12월 25일,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이 튀니지를 방문하여 까이스 사이드 대통령과 리비아 문제에서 협력할 것을 밝히면서, 튀니지 안보, 터키 안보, 지중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리비아 분쟁에서 GNA를 지원하기로 합의하였다. 12월 26일,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은 GNA의 요청이 있을 경우, 2020년 1월에 터키 군대를 파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스라엘이 GNA에 맞서는 하프타르 군대를 돕는 주된 동기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동지중해연안 유전으로부터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관 건설을 위해 터키-GNA 연대를 부수고, 안전한 동부 지중해의 해상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정책에 UAE와 이집트는 적극 협력하고 있다.
2020-01-07 | hrights | 조회: 2185 | 추천: 3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내 80평생에 잊을 수 없는 55년 전, 1965년 1월초, 군 말년에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해외파병요원 지원자 모집”이었다. 파병될 나라는 전운이 감도는 월남이라 했다. 파병지원자 신청 마감은 1월 20일까지였다.  당시 나는 원주 제235부대 서무계에 있었고 전역 3개월을 앞둔 육군병장이었다. 2년 전에 입대하여 오직 제대할 날만을 달력에서 하루씩 지워가고 있었다. 전통 내용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전쟁지역이기에 전사가 속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지 않는가?  헌데 슬그머니 모험적 마음들이었다. 제대하면 복학해 공부할 것이다. 9살에 6.25전쟁을 목도하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란 영화도 보았다. ‘전쟁과 평화’를 실제 경험할 수 있기에, 나에게 체험의 기회라 생각했었다.  우리나라 정부수립 후 최초의 해외 파견으로, 어떤 일이든 최초라는 단어는 호감이 간다. 그런데 신원조회가 걱정이었다. 해방공간에서 맏형이 건준과 통일운동으로 재판도 없이 죽어갔었다. 의용군 둘째형과 부친도 부역자였기에 신원조회가 문제였다.  이번 신원조회를 만약 통과한다면 걱정을 덜 수도 있었다. 전언통신문을 정리하여 부대장에 올리고 부대원에 공람을 했다. 130명중에 단 2명만이 지원 했다. 그런데 부대장과 군종신부는 나의 지원 사실을 철회하라고 했다. 지금 월남 사이공 수도가 구정공세로 함락될지도 모를 위험한 곳이기에 살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허나 나는 한번 결심한 이상 지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일단 지원자 중심으로 부대편성을 하면서, 나는 서무사병계 직무를 맡았다. 인사계 최 상사와 강 부대장과 함께했다. 양평으로 이동하여 부대편성과 참전교육을 받을 때였다. 1군사령부 인사참모 김 중령이 찾아와 지원을 철회하라고 했다. 부모님과 할머님이 파병사실을 아시고는 지인을 통해 철회부탁을 한 것이다.  군청에 다니던 맏형이 22살에 사상범으로 죽고, 둘째형이 참전으로 부상당했기에 셋째인 나를 죽음의 전쟁터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번 결심을 번복 않는다,”고 단호하게 의견을 말하니, 인사참모도 “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어찌 고집부리나. 그러나 그리 결심이 강하니 어쩔 수 없네.”하면서 돌아갔다.  걱정이던 신원조회는 어인 일인지 통과되었다. 현리에서 2천명이 결단식에 2월 7일 서울운동장에서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한 ‘한국군최초해외파견’ 평화의 사도 “비둘기부대” 국민환송식을 가족과 시민도 함께 했다. 전선 없는 월남전이기에 참전자들에게 특별히 범국민적 성대한 환송식이 거행되었는데 운동장 곳곳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2월 11일 부산 제3부두에서 해군엘에스티함대에 탑선한 선발대 600명이 주야 2주간 공해를 항해하여 베트남 붕타우에 도착했다. 두 달 전 와 있던, 이동외교병원 간호장교와 요원들이 함정가까이 와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5일 만에 월남의 수도 사이공항구에 도착했다.  당시 월남의 정부수반인 판칵수와 국방장관 티우 중장, 키 공군사령관과 실세인 칸 소장도 환영식에 함께해 비둘기부대원 선발대 600명을 환영해 주었다. 다음날 사이공에서 26킬로 떨어진 비엔호아 지안에 도착했다. 부대 2킬로 반경이나 된 부대막사에서 우리 전우들은 첫날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본대 1,400명이 ‘유에스메이카’호로 도착해 도합 2천명 부대원이 함께했다. 첫날 부대본부 연병장에서 조문환 준장(단장)이 훈시를 했다. 경례는 “경계철저” 그리고 “살아서 돌아가자”였다. 조 준장은 “이곳은 한국이 아닌 우방국이다. 내나라 수호한 것도 아니고 타국에서 헛되이 죽어갈 수는 없다”며 강하고 진한 훈시를 했다.  조문환 장군의 훈시에 전부대원들은 숙연했다. 전선 없는 전쟁터인 월남 현지는 당시 제네바협정에 의거 17도선, 북은 월맹, 남은 월남이었다. 프랑스와 80년 전쟁에 항쟁한 베트콩(베트남민족해방전선요원)이 월남의 3분의1을 관할하고 있었다.  우리 부대가 주둔 후, 첫 교전은 4월 2일, 본대에 도착한지 7일만이었다. 그날 “또순이”란 우리 영화를 상영해 이국의 향수를 달래주었었다. 밤10시에 전원취침에 들어갔는데 나는 당직을 맡고 있어 잠에 들지 않았었다. 11시에 베트콩 2개 중대는 비둘기부대 단 본부를 겨냥한 박격포탄 80여발을 선제공격하고 부대에 침공을 했다.  본부 가까이 포탄이 떨어져 나는 바로 비상벨을 눌렀다. 처음 겪는 실제전쟁 상황이었다. 베트콩의 포탄에 바로 응사하고 조명탄이 터지고 총소리가 요란했다. 어쩌면 교전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부 전우들은 우왕좌왕 오락가락 했다.  1시간여 교전 끝에 아군 8명의 중경상자가 붕타우로 후송되었다. 베트콩 1명 사망, 수십 명 중상, 총 5자루 노획을 상부에 보고했다. 그날이 ‘한국군 해외파견 최초 교전 승리’했다고 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이후 한국전투부대파병을 사전에 차단하는 작전을 펼쳤다.  그해 8월과 9월에 전투부대 맹호사단과 청룡여단과 백마사단이 퀴논과 나트란 캄란에 주둔했다. 10월에 주로 월남군과 미군이 함께한 베트콩 소탕작전을 전개했었다. 미숙한 정글전이기에 연전연패로 전우 수백 명이 전사하고 부상당했다. 나는 천주교 신자로 군종신부와 함께 탄산누트공항 영안실에서 전사한 맹호와 귀신 잡는다는 청룡전우 영혼에 미사를 올리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죽지 말고 살아가자고 했는데... 죽음은 일부 지휘관의 공명심과 무모한 소탕작전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더 슬픈 사실은 우리 전우들이 벌인 베트콩 소탕작전에서 월남 민간인을 첩자로 여겨 우리 전사자 숫자와 같은 수천여 명이 희생된 것이다. 한 ․ 베트남 수교 후에 김, 노 대통령이 방문하여 특별히 사과는 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에서도 미군이 우리 민간인을 희생시킨 것과 같은 처지로 인한 죽음이었는데 과연 쉽게 잊히겠는가?  9년 동안 한국군 33만 명이 파병되고 6천여 명이 전사하고 2만 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고엽제 유사환자까지 수만 여명에 이르렀다. 나는 베트남에 파견 온 것에 대해 남루한 후회를 했다. 내나라 통일도 못하면서, 월남의 민족해방통일을 방해하는 용병으로 지원해 파병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항상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오래전 프랑스와의 80년 전쟁을 이겨내고 제네바협정으로 17도선 남북으로 나뉘어 다시 미국을 비롯한 한국 필리핀 여러 나라 외세가 참전해 전쟁이었다. 진정 월남인들은 말한다. 우리는 “공산 사회주의도 자본 민주주의도 싫다. 오직 외세의 간섭 없는, 전쟁 없는 베트남 민족으로 통일되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고.  미군은 한국군 10년 파병에 전투수당 기타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는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고엽제 피해 건은 빠져 있었다. 그간에 수차례 고엽제 보상을 미국법원에 제기했으나 64년 한미월남파견각서에 들어있지 않다며 패소하였다. 내 참전전우 수 명도 고엽제 환자로, 또는 유사환자로 치료 중이다.  미국이 월남을 동남아 기지로 삼았기에 발생한 과다 군사비용과 인명손실이었다. 우리도 월남전에 참전하여 한때는 적대국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를 이기고 73년에는 세계강국인 미국을 이겨내고 남북베트남의 민족 통일을 이루어 냈었다. 이제는 외세도 전쟁도 없는 평화를 얻고 있었다. 도이모이 정책으로 날로 성장하는 베트남이다. 사진 출처 - 구글  참전 이후 항상 마음 한 가운데 아픔이었는데, 다행이도 우리와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하는 수교국이 되었다. 나는 수교된 후에 3차례나 참전 전우들과 하노이와 호치민시, 붕타우, 지안, 나트란, 캄란 등을 방문하면서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베트남을 보면서 고맙기도 하다. 특히 근간에 우리나라 축구 박 감독이 베트남의 국가대표 감독으로 영웅적 칭송을 받고 있어 한 베트남 선린관계에 마치 지난 용병의 아픔을 덜어 주는 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자주 국립묘지를 찾아 전우의 묘소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또한 고, 조문환 장군 묘소에서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가자”는 훈시를 기억한다. 지난번 운명한 채명신 주월 한국사령관이, 장군 묘를 사양하고 사병묘소에 묻혀, 사병과 함께하는 부하사랑 영혼이기에 명복을 빌었다. 필자 또한 살아서 이글을 쓰고 있어 감회가 깊다.  베트남 참전 반백년을 기억하면서 그들은 호치민 같은 민족지도자가 있었기에 미국을 이겨냈다. 우리는 언제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패권에서 벗어날까. 수치스러운 지구상 마지막 분단 70년, 한반도 주변 강국들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양상이 아닌, 새우가 주름잡는 우리의 소원인 남북평화통일이 오는 그날을 염원해 본다. * 윤영전 : 작가(수필, 소설, 서예 칼럼니스트) 아호:九巖. 당호:傳孝堂. 한국작가회의 소설회원                수필집 (도라산의 봄) 소설집 (못다핀 꽃) 에세이집 (평화, 그 아름다운 말)                고희문집 (인연, 아름다운 만남) 수필선 (강물은 흐른다) 희수기념문집 발간                평화통일 삶을 살다(평화연대문집) 구암애창가곡집(CD) 등 다수 저서.
2019-12-26 | hrights | 조회: 982 | 추천: 4
- 지극히 ‘사적인’ 강사법 단상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대학에서 시강강의를 시작한 지 올해로 만 이십년 되었다. 외국에 나가 있던 몇 해를 제외하면, 거의 한학기도 거르지 않고 대학에서 무엇인가 가르치는 일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2010년 조선대에서 근무하던 고 서정민 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시간강사의 열악한 현실이 공론화되었고, 문제의식을 가진 소수의 강사들이 나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2018년 8월부터 고등교육법이 개정 시행되었다.  일명 강사법이라 알려진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법적지위와 처우 등을 개선하기 위해 오랜 진통 끝에 만들어지고 현실화된 것이지만, 그것을 실감하는 현직 강사들의 온도차는 제법 큰 것 같다. 2018년 법안의 국회통과 전후로 우리에게 알려진 법안의 핵심 내용은 강사의 법적지위 부여, 1년 이상 최대 3년까지 근무보장, 4대 보험 가입, 그리고 방중 임금과 퇴직금 보장 등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교육부가 이것을 안정적으로 시행할 만한 예산 확보에 실패하고, 강의인력 및 강좌축소라는 방식으로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대학 측의 공격적 방어가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난겨울, 그러니까 강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에 이미 대학들은 충분히, 이러한 일들을 진행했고, ‘강사공채’의 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했다. 그 결과 대략 7,800 여명의 강사가 실직했고 많은 수의 강좌가 축소 ․ 통폐합 되었는데, 그중 소규모 강좌 6,000 여 개가 폐지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육부가 대학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안에 대한 경고와 권고밖엔 없었고, 법안 구축에 개입했던 노조집행부의 활동은 반복적으로 대학의 악마성을 고발하거나 강사법의 훌륭함을 선전하는 데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현장 강사들 다수는 강사법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거라고, 강사법으로 자신들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고 믿지 않았다.  2019년 5월, 기존에 알려졌던 강사법의 핵심내용은 교육부, 대학, 노조 3주체로 구성된 TF팀 테이블에서 수정과 합의를 거쳐 <강사제도 운영 매뉴얼 시안>의 형태로 결정되었다. 이것에 따르면, 강사의 시회적 지위와 법적 신분을 보장했지만,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및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을 적용할 때에는 교원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방학 중 임금지급을 명시했지만, “임금수준이나 산정방법 등 구체적 사항은 강의 및 수행 업무 등을 고려하여 개별 대학의 임용계약으로 정하도록”해서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했다. 내가 출강하고 있는 대학의 경우, 방중 임금은 ‘2주치’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또 매뉴얼에는 “퇴직금은 현행 근로관계 법령에 의거하여 1주간의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경우에 대하여는 지급 의무사항이 아님” 국민건강보험은 “1개월 동안의 소정 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단시간근로자는 건강보험의 직장가입자가 될 수 없어 강사는 적용되지 않음”이라고 되어 있다. ‘한 명의 강사가 한 대학에서 주당 6시간 이하의 강의만 할 수 있다’는 강사법에 따라 애초에 건강보험 혜택은 불가능했고, 퇴직금의 경우에도 대학 측의 호의에 기대는 것 말고는 어떤 법적인 권리행사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아름답고 완벽한 강사법의 실제 내용이지만, 어쩐지 제대로 된 언론 보도는 극히 드물었다. 모두 다 아는 사실은 이 과정에서 적게는 7,000여 명에서 많게는 만여 명의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 강좌의 축소 통폐합으로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 기회와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의 결과가 대학교육의 전면적인 황폐화와 연결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만으로 보자면, 강사법은 누구의 행복도 보장하지 못한다. 지난여름 전국의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던 ‘강사공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블랙 코미디였다. 특정인의 독점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한 학교 6시간 제한 시수’로 인해 적어도 두 세 학교 강의를 해야 기초생활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전업강사들 다수는 닥치는 대로,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많은 대학들이 연구업적, 강의경력, 면접 등에서 전임교수 선발에 준하는 요구들을 내놓았고, 그 과정은 응시자들의 피로, 자존감 하락, 마음의 상처를 대가로 요구했다. 법적인 연구와 강의 경력은 석사학위 소유자 정도, 특정한 분야의 경우 예외조항도 둔 터였지만, 강박적으로 내외부에서 작동되는 ‘시선의 검열’은 ‘정량평가’를 공정함의 최우선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학들은 대체로 전임자들을 선택하기도 했는데, 이미 검증되고 익숙한 강사를 제외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모험을 대학은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경험도 연고도 없는 대학과 관계를 맺으려면 탁월한 경력과 업적이 있거나 아주 운이 좋아야만 했다. 어떤 대학들은 겸임 혹은 초빙의 형태로 강사들을 유인하기도 했다. 비용은 줄이고 대학평가점수는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SBS  사실, 강사법의 가장 큰 수혜자는 대학이다. 재정상의 부담과 학령인구의 감소 등을 이유로 최대한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며 안정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시대의 대학은 더 이상 선량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적어도 사학들은 예전부터 기업의 돈세탁과 감세의 주요 통로로 활용되어 왔고, 지금은 대학 자체가 사업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등록금 동결 10년, 학령인구 감소 등의 이유로 학내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감축하는 동안에도 대학들은 외국인 학생들을 착실히 유치해왔고, 정원 외 외국인 학생들은 대학재정의 핵심적인 불로소득이 되어주었다. 자본가의 마인드로 무장한 대학은 비용 절감과 이윤생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할 것이다. 자본은 이해득실을 따지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선악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학의 행태를 규탄하고 그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자기위안이나 책임회피의 태도일 뿐,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애초에 법안이 시행되기 전 다수의 현장 강사들, 대학 내부의 일부 관계자들, 교육관련 전문가들과 소수의 노조활동 유경험자들은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했고, 법안의 보완을 주장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10여 년 간의 힘겨운 싸움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독한 ‘강사공채’의 시간을 통과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쨌든 약간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비록 1년 혹은 최대 3년짜리 비정규직 교원의 신분이지만 법적 지위를 얻게 되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오피스365’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쓸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정말 기뻤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매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시간과 노력과 비용의 문제도 있지만, 후배 강사와 하나의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 교수 신분으로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있는 또 다른 후배와 마주쳐야 하는 상황들은 다시 떠올려도 불편하고 괴롭다. 언제까지 이런 과정을 견딜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 좋은 내용으로 학생들을 만나는 괜찮은 선생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이 와중에 한 무형문화재급 인사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20여 년 동안 출강하던 대학에서 더 이상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생활의 문제, 자존감의 문제로 시름이 깊었다고 한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강사법에 흠집이 날까 두려웠는지 즉각적으로 이것은 강사법 때문이 아니며, 비정규직의 문제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맞다. 강사법이 무슨 죄가 있나. 죄가 있다면, 이 강사법의 효과, 법을 효과적으로 자기성장의 기회로 삼는 대학의 무자비한 활동에 있고, 스스로 자긍심을 잃고 번민하며 노조 활동도 안 하는 주제에 볼멘소리나 하는 나 같은 철없는 일부 강사들의 태도에 있고, 예산도 확보 못한 채 대학의 자율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교육부의 무능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선의와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개인의 진정성을 공적 정의와 등가적인 위치에 올려놓으면서, 그것과 다른 의견은 적대하거나 계몽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맹목적 선민의식, 그 고집스러운 태도가 세상을 망치는데 뜻밖의 기여를 하기도 하는 법이다.  고 김정희 선생은 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로 이름이 높았고, 한예종 전통예술원의 겸임교수로 오래 후학을 양성해 온 분이었다고 한다. 언론에 알려진 것 외에 복잡하고 내밀한 사정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한예종에 출강하는 강사들 중에는 현장경험을 인정받아 학위 없이도 강의를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법안 자체와 예외규정에 따라 선택권자가 유연하게 강사채용을 할 수도 있는 구조인 것이다. 강사법 시행으로 강사들의 생사여탈권이 담당교수 개인에게서 작게는 학과나 단과대로, 나아가 학교행정시스템 자체로 옮겨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안에도 여전히 미시적인 차이들이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권력관계의 부딪침이 빈번한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다. 이 얄팍하고 유약한 강사법에 무엇인가를 더 보태거나 빼는 일이 가능할까? 누군가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복잡하고 중층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누가 감히 나설 수 있을까? * 고 김정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9-12-18 | hrights | 조회: 628 | 추천: 4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우파 시온주의 정치인들의 反아랍 경향  최근 몇 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우파 시온주의자들과 아랍계 소수자들의 관계는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대민족 국가법’ 제정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책으로 이스라엘 내에서 유대인/아랍인 분열이 더욱 강화된다면, 이스라엘 정치와 사회에 폭발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스라엘 중앙통계국 분류에 따르면, 2018년 7월 이스라엘 전체 인구는 840만 명 정도다. 전체 인구의 74.2%(623만 명)는 유대인이며, 전체 인구의 21.4%(약 181만 명)를 차지하는 아랍계 소수자들은 무슬림 약 150만 명, 기독교인 16만 8천 명, 드루즈 13만 9천 명으로 구성된다. 나머지 4.4%는 ‘기타’로 분류된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단일한 종족, 종교, 문화 공동체라기보다는 여러 종족과 다양한 종교와 문화 집단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사회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고위급 정치인들은 흔히 인종차별적인 메시지를 유포시킨다. 2019년 9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크네세트(의회)선거 유세에서 “만약 당신이 리쿠드 당에 투표하지 않는다면, 아랍인들이 우리 모두를 전멸시킬 것이다. 아랍들은 여성, 어린이, 남성 등 우리 모두를 파괴시키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랍인들을 적으로 돌리는 선거 메시지를 통해서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유대인 독점을 주장하는 우파 시온주의 리쿠드당으로 유대인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려고 시도했다. 2019년 10월 라디오 방송에서, 이스라엘 공안부장관 길라드 에르단은 “아랍인들은 천성적으로 폭력적이다. 유대인들은 법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만, 아랍인들은 칼을 빼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反아랍 정서는 이스라엘 주류 정치의 특징이다. 아랍어 사용지역 □ 인종차별적인 유대민족 국가법  이러한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인종차별적 주장은 앞서 2018년 7월 기본법으로 제정된 ‘유대민족 국가법’에 이미 반영되었다. 우파 시온주의자들이 이 법 제정을 주도하였다. 사실상 헌법으로 작용하는 이 법은 이스라엘의 민주적인 특성과 인종적 소수자들을 무시하면서,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유대인의 독점권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기본법: 유대민족을 위한 민족국가로서의 이스라엘 2018년 7월 19일,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여러 시간의 논쟁 끝에 다음을 명시한 기본법, ‘유대민족 국가법’을 120명 의원 중 찬성 62표 대 반대 55표, 기권 2표로 통과시켰다. 1. 세 가지 기본 원칙 1) 이스라엘 땅은 이스라엘 국가가 건설된 유대인들의 역사적 고향이다. 2) 이스라엘 국가는 유대인들의 천부적, 문화적, 종교적, 역사적 자결권을 실행한다. 3) 이스라엘 국가 내에서 민족적 자결권을 행사할 권리는 유대인들에게만 있다. 2. 국가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3. 통합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다. 4.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는 히브리어다. 아랍어는 이스라엘 국가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5. 이스라엘은 유대인 이민과 귀환을 위해 개방될 것이다. 6. 이스라엘은 유대 정착촌 개발을 민족의 가치로 간주하며, 정착촌 건설과 강화를 고무시키고 촉진시키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 법은 이스라엘 내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평등이나 민주주의를 언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점령지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과 강화를 규정함으로써,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동예루살렘, 서안, 가자)과 시리아 지역(골란고원)으로 이스라엘 국가 영역의 확장을 꾀하였다.  이러한 인종차별 정책의 법제화는 특히 군복무를 하는 등 이스라엘 국가에 충성해온 아랍계 소수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아랍계 소수자들은 텔아비브 시내에서 시위를 조직하는 등 유대민족 국가법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2018년 8월 11일, 유대민족 국가법에 반대하여 북부 갈릴리, 남부 네게브 등 전국에서 온 수 만 명의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들이 “우리는 이등 시민이 아니다. 유대민족 국가법은 공식적인 인종차별주의”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텔아비브 시내에서 행진했다. 이 시위대에게 고등 아랍 감시 위원회의장 무함마드 바라카는 “국가의 목표를, 한 인종 집단의 소유물로 만드는 조항이 있는 헌법은 오늘날 이 세상에 없다. 모든 시민과 거주자들의 평등권 조항을 포함하지 않는 헌법은 세상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내 아랍계 소수자들은 이스라엘이 모든 시민권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8년 8월 7일, 유대민족 국가법 반대 시위를 주도한 드루즈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 셰이크 모아파크 타리프는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우리의 충성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간주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유대인들을 대신해서 아랍인들을 공격하는 드루즈  드루즈들은 동예루살렘이나, 서안 소재 이스라엘 검문소, 가자/이스라엘 경계 등 점령지, 즉 팔레스타인인들과 직접 부딪히는 지역에서 이스라엘을 수호하는 국경 경찰이나 군인들로 3년간 의무 복무를 한다. 즉 상대적으로 위험한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대신해서 드루즈 아랍인들이 다른 아랍인들과 맞서 싸운다.  예를 들면, 드루즈 출신 준장 가산 알리안은 2014년 7월 8일-8월 26일까지 7주 동안 진행된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지휘하였다. 이 공격으로 1,400명의 팔레스타인인들과 13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희생되었으나, 이 희생된 군인들도 대부분 아랍인들이었다. 또 2017년 7월 14일(금), 동예루살렘 알 아크사 모스크 입구에서 권총과 사제 총으로 무장한 아랍계 이스라엘인들 3명이 이스라엘 국경 경찰관 2명을 사살했다. 이 3명의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 북부 아랍도시 출신이고, 사살된 2명의 이스라엘 국경 경찰관은 드루즈들이다. 결국 이 사건은 아랍인들이 드루즈 아랍인 이스라엘 군인들을 사살한 사건이었다.  드루즈들은 1956년 5월 ‘유대인과 드루즈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 군대에 의무병으로 징집된다. 따라서 드루즈를 제외하고, 유대인과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들은 의무 징집 대상이 아니다. ‘유대인과 드루즈 협정’ 체결 당시. 이스라엘 총리 데이비드 벤구리온은 “드루즈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협정은 단지 종이 위에 쓰인 글이 아니다. 드루즈 전사들의 피로 이루어진 신성화된 것이다.”라고 찬양했다. 이스라엘 국가에 피를 받친 드루즈들의 충성은 이후 이스라엘의 인종차별적인 정책과 유대인 독점권을 강화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게다가 2018년 7월 드루즈 출신 크네세트 의원 가운데 이스라엘 우파 시온주의당 소속인 아유브 카라(리쿠드)와 하마드 아마르(이스라엘 베이테누)는 유대민족 국가법 제정에 찬성표를 던졌다. 아유브 카라는 서안에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찬성하는 인물이며, 크네세트 부대변인, 총리실 장관, 2017-2019년 통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19년 9월 선거에서 재선된 하마드 아마르의 선거 슬로건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충성 없이 시민권 없음은 드루즈 공동체에게 당연한 것이다’였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유대민족 국가법’ 제정 등 이스라엘의 소수자 차별과 배제 정책은 이스라엘의 필요성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며, 소수자들의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충성도와는 관계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정치적 통합 강화  드루즈 정치인들과 우파 시온주의자들의 적극적인 연대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서는 아랍인들 사이의 정치적 통합은 아랍인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면서 강력한 정치 세력화를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아랍계 소수자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민주주의와 평등한 국가로 가는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크네세트 총 120석은 전국 단일 선거구에서 비공개 단일 정당 명부 비례대표로 선출된다. 유권자들은 선호 정당에 투표를 한다. 각 정당들은 최소 득표율 3.25%를 넘어야한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최소 4석 규모의 정당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서 정당들 사이에서는 의석 확보를 위한 연합이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아랍계 소수자들은 유대 시온주의자들이 결성한 거대 정당에 이름을 올려 크네세트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전체 인구의 약 21.4%를 차지하는 아랍계 소수자들이 최근 10년간 배출한 크네세트 의석은 각각 11-16석에 이른다. 특히 2015년 선거에서는 주요 4개의 비시온주의 아랍 정당들이 공동명부를 작성해서 통합 세력으로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446,583표(10.54%)를 얻어서 공동명부로 13석(유대인 1석 포함)을 획득하고, 이스라엘 내 3대 정당으로 발전하였다. 이 때 전체 아랍인들은 크네세트 총 의석의 13%인 총 16석을 획득하였다. 이 선거에서 드루즈가 5석(리쿠드 1석, 시온주의자 연합1석, 쿨라누 1석, 이스라엘 베이테누 1석, 아랍 공동명부 1석), 즉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시온주의 정당들에서 4석, 비시온주의 아랍정당들 공동명부 1석을 획득하는 선거 돌풍을 일으켰다. 이 때 아랍계 유권자의 투표율은 역대 최고로 63.7%였고, 드루즈 중 81%가 시온주의 정당들에 투표한 반면, 드루즈 이외의 아랍인들 중 19%가 시온주의 정당에 투표했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2019년 9월 선거에서 아랍인들은 공동체별로 드루즈 3석(블루앤화이트1석, 이스라엘 베이테누1석, 공동명부 1석), 기독교인 2석, 베두인 1석, 수니무슬림 8석을 획득하였다. 드루즈 2석은 시온주의당 소속이었고, 드루즈 1석, 기독교인 2석, 베두인 1석, 수니무슬림 8석은 모두 공동명부 소속이었다. 그 결과 470,211표(10.60%)를 얻은 공동명부는 13석(유대인 1석 포함)을 획득함으로써 블루앤화이트(33석), 리쿠드(32석)에 이어 3대 정당 자리를 유지하였다. 이 때 드루즈를 제외한 아랍계 투표자들 중 82%가 공동명부에 투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랍계 소수자들이 투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한다면, 공동명부 의석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 정부의 강력한 유대화 정책 및 아랍계 소수자 분열 정책과 아랍계 소수자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아랍계 소수자들은 크네세트 선거에서 비시온주의 정당들이 연합하여 공동명부를 작성함으로써 통합세력의 힘을 맛보았다. 앞으로 아랍계 소수자들은 ‘유대민족 국가법’ 제정 등 이스라엘의 강력한 인종차별적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통합을 더욱 강화하면서 이스라엘 내에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2019-12-03 | hrights | 조회: 1634 | 추천: 3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최근 심사가 계속 혼란스럽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와 ‘전광훈 무리’ 그리고 자유한국당 세력이 거동해 대대적인 광화문 집회를 연 뒤부터다. 솔직히 충격이 컸다. 정권에 대항하는 대대적인 시위는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60년 4.19 혁명, 79년 부마항쟁, 80년 5월의 봄과 5.18 민주 항쟁, 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 혁명 등, 면면히 이어져 온 민주화를 위한 대투쟁은 역대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고 또 그 잔재를 일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들은 말 그대로 투쟁이었기에 참가자들로서는 직간접적으로 목숨을 건 불안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혀 반대 성격을 띤, 그러니까 민주화 투쟁의 성과인 민주정권을 오히려 타도하자는 대규모 집회 시위가 발생한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현상인가, 이 묘한 광기가 어디에 어떻게 잠복해 있다가 이렇게 분출하는가, 전반적인 성격으로 보아 분명 파시즘적인 대중 동원이 분명한 것 같은데 무조건 그렇게 예단해버릴 수도 없을 것 같으니, 도대체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여러 물음이 떠오르면서 심지어 불안한 느낌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조국 사태를 기화로 대학가에서조차 이에 편승하는 것 같은 시위들이 생겨났으니 더욱 심사가 복잡했다.  ‘우리’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인데, 처음 생각대로 결국, 반동적 성격을 띤 대규모 집회 시위라고 규정하게 되었다. 반동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하는 운동이 자신에게 가해질 때 부정적인 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반작용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반동인가가 문제다. 몇 가지로 추슬러 보았다. 첫째는 촛불 정권이 내세운 ‘적폐 청산’ 작업에 대한 반동이다. 둘째는 정부 주도의 남북평화 기조의 형성에 대한 반동이다. 셋째는 민주화 투쟁과 성취의 전유(專有)에 대한 반동이다. 이 셋이 상호 강화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적폐는 크게 보아 두 가지가 맞물린 것이다. 하나는 권력에 편승한 부정부패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사법기관의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처리다. 그 핵심은 신성해야 할 국가 권력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뿌리를 내린 특정 이익 세력에 의해 근본적일 정도로 크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이다. 적폐 청산은 바로 국가 권력을 특정한 세력으로부터 독립시켜 철저하게 보편적인 중립성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재벌 기업이나 보수 언론 및 검찰과 법원 등이 카르텔을 형성하여 국가 권력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뿌리에서부터 싹을 잘라내겠다는 것이 적폐 청산의 취지다.  각성한 시민들의 대대적인 봉기로 세워진 민주정권은 그 정당성에 따른 자신감으로써 적폐 청산이란 ‘엄청난’ 구호를 내걸고 기존의 사회 권력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 기소되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 기소되었다. 재벌 기업의 총수들이 줄줄이 부패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전개된 것이다.  그동안 이들이 그렇게 불법적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일반 대중의 사회집단 심리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반 대중들 역시 적당한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부당한 사회 정치적인 권력에 알게 모르게 편승함으로써 하부에서 그들을 옹호하는 두터운 층을 형성한 것이다. 여러 기업의 고위 임원을 비롯해 저 스스로 사회 엘리트로서 자부하는 사람들, 기존의 사회 형태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점에서 충분히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종교 권력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예속되었던 사람들을 위시해 이들처럼 자신의 존재를 심리적으로 맡길 영웅적인 대리인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 등이 이 일반 대중에 속한다. 이들은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만으로도 그들이 그동안 살아온 삶과 그 존재의미가 삭제당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니 적당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들은 반동적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제까지만 해도 핵미사일 공격이니 사드 배치니 하면서 적대적인 분단과 그에 따른 절체절명의 위협이 난무하다가 남북뿐만 아니라 북미 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평화 분위기가 삽시간에 불어 닥쳤다. 그리고 이를 현 민주정권의 수장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최대한 확대 심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말한 그동안의 현 상태에 충분히 만족하거나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기던 위 일반 대중들은 이 급작스러운 대대적인 분위기 반전에 일종의 아노미 심리 상태에 빠져든 셈이다. 그들은 남북분단과 한반도 내전으로 인해 적대적인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냉전 상태에 맞추어 삶을 이행했고 그런 가운데 나름 자부할 수 있는 자신의 삶과 존재를 형성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북분단에 따른 모순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적대적인 상태를 체화하여 알게 모르게 그 분단 상태를 즐기고 누려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적폐 청산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사회적인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저 정권의 수장이 이제 그동안 철천지원수라 여겼던 적의 수장을 이 땅에 불러들이는가 하면 적진에 올라가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파안대소하는 모습으로 희희낙락하듯 한다. 그들은 이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여긴다.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자, 주사파, 공산주의자, 빨갱이, 나라 팔아먹는 놈, 심지어 찢어 죽일 놈 등 그들로서는 최고의 악담이자 저주라고 여기는 욕설들을 마음껏 퍼붓게 된다. 그런데 이런 분통 터지는 심정을 대낮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안심 놓고 분출하여 마음껏 외칠 기회가 주어졌으니 게다가 모이라는 동원령이 떨어졌으니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그들은 군사독재 국가건 시장 자유주의에 의한 잔인한 자본주의 국가건 저들 스스로 애써 세우고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고 믿었기에 단 한 번도 나서서 나라를 비판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관제 데모를 제외하고는 대대적인 집단 시위를 해 본 적도 없다. 말하자면, 부당한 정권에 맞서서 정치적으로 대대적인 집단 시위를 할 때, 각자가 어떻게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공동체적인 위력을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확장 심화하는가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민주화 투쟁을 위해 떨쳐 일어서서 ‘산 자여 따르라!’ 하고서 거대한 물결을 형성하는 ‘우리’의 존재 방식을 내심 부러워했을 수 있다. 비판적인 힘을 발휘해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을 감히 분쇄하고자 하는 저 ‘황당한’ 뚝심이 어디에서 나온단 말인가, 하고서 의아해했을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억압받으면서도 순응해 왔기에 순응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저항이니 비판이니 하는 데서 건립되는 삶의 의미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저 이렇게 살다 가면 되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부추기도 독려하고 끌어내고 밀어주는 이상한 동지들이 나타난 것이다. 더군다나 태극기를 들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진정한 애국자임을 확신할 수 있고, 더불어 미국 국기를 들고 흔드는 것만으로도 세계 최고의 제국 시민이 된 것 같은 정확한 착각이 일기도 하는 데다, 수시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스타 정치인들이 함께 행진의 발을 맞추고 나를 향해 위대한 행동을 한다고 찬양하니 어찌 존재가 발양하지 않을 것이며 충동적인 흥분과 광기를 마다할 것인가. 더군다나 지금껏 절대적인 성역이라 여겼던 현직 대통령 이름을 마음껏 짓밟아 욕할 수 있으니 이 쾌감이라니. 그야말로 뜻하지 않게 대통령 이상으로 기세등등한 ‘완장’을 찬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대적인 집단 시위에 참여하게 되자 동원이 아니라 자발적인 봉기라 여기게 되고 봉기라 여기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자발적인 동원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에 집단적 충동에 의한 카니발적인 쾌감에 빠져들게 된다. 자유한국당 정치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마주한 경험이 없는 엄청난 인파를 눈앞에 두게 되니 그들 모두가 나 때문에 흥분하는 것 같고,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내가 아니면 누가 저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위대한’ 착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연단에 나서서 기염을 토하게 되니, 정치적 인생이란 바로 이 맛이구나 하면서 더없는 환희가 밀려온다. 선전 선동이야말로 정치인의 본령임을 몸소 체험하게 되고, 그래서 마약처럼 광장이 그리워진다. 정권 담당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치 제 무덤을 파는 것 같고, 승리하여 최고 권력을 거머쥘 날이 멀지 않다는 정확한 오인이 자리를 잡는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그들 ‘광화문 세력’들은 가상적인 초자아에 길들어 있는 자들이다. 숭배할 대상이 있어야 하고 자발적으로 순응할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의 체계가 있어야 하고, 아울러 역설적으로 그 금기의 체계를 위반하는 적들이 있어야 한다. 독재가 있어야 하고, 제국이 있어야 하고, 제국 속의 제국이 있어야 하고, 그것들은 영원해야 하고 본질상 완전해야 한다. 그 완전하고 영원한 본질적인 가치를 의심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심지어 그 가치가 완전하고 영원하고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굳이 반성해서 자각할 필요조차 없다. 따라서 진실과 정의와 진리를 알게 되면 그들도 깨닫고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자가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래서 그들의 대대적인 준동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들을 치유 내지는 처리할 방법은 폭력뿐이다. 그들의 자아는 제국 속의 제국이고, 그 제국을 지배하는 원리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미시적 파시즘의 물방울들이 모여 제법 큰 잠정적 파시즘의 강물을 형성한 셈이다. 잠정적인 파시즘의 강물이 현실화되어 범람하기 전에 그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국가 권력의 댐을 건설해야 한다. 국가 권력의 원천은 합법적인 폭력이다. 파시즘적인 폭력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민주적인 합법적 폭력 즉 민주적인 국가 권력뿐이다. 대내적으로 제대로 된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대외적으로 국가 주권이 확고해야 한다. ‘광화문’의 저들이 미국 국기를 흔드는 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정확하게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저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이유는 남북 간의 평화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화문 세력’의 등장은 한편으로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임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2019-11-27 | hrights | 조회: 651 | 추천: 5
이윤/ 경찰관  1990년대 중반, 수사업무를 시작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나에겐 수사관으로서의 엉뚱한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죄가 없는 사람도 죄가 있는 것처럼, 죄가 있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증거를 조작하거나 고문을 하지 않고 단지 글쓰기만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생각만 했다. 진짜)  조서는 그런 힘을 지녔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들을 비교해보자. 문: 당신이 그 자전거를 훔쳤나요. 답1: 아니요, 저는 그 자전거를 훔치지 않았습니다. 답2: (주위를 둘러보며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아... 아니요. 저는... 그걸 안... 가져갔는데요. 답3: (화난 듯 눈을 크게 뜨고 큰 목소리로) 왜 저에게 그런 걸 물어봐요? 네? 제가 그랬다는 증거라도 있나요? 경찰이 이래도 되는 거예요? 참! 이거 생사람 잡으시네.  답들은 모두 범행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다만 답1은 단순한 범행 부인일 뿐 답을 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의 여지가 없는 중립적 답변인데 비하여, 답2는 범인이 범행을 들키자 불안해하는 모습이라고 평가될 수 있고, 답3에 대해서는 뻔뻔한 범인이 딱 잡아떼며 오히려 화를 내는 모습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아마 답2나 답3을 조서에서 읽으면 피의자가 부인한다는 사실보다는 진술한 사람의 인성과 성격, 심리상태에 대한 평가가 개입되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는 답1과 같이 말했는데 조서에 답2나 답3처럼 쓰는 것은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피의자가 이 정도의 변형에 대해 내가 말한 것과 다르다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또 확실하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답2나 답3으로 말한 것을 답1처럼 쓰는 것은 왜곡이라고 할 수 없다. 정리해서 취지만 기록한 것이니까. 수사관은 왜곡의 경계에 이르지 않는 작은 변형으로 얼마든지 피의자에 대한 인상을 바꿀 수 있다.  조서(調書)란 녹취록과 달리 ‘조사한 사실을 기록한 문서’다. 따라서 말한 그대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수사관이 관찰한 진술자의 행동이나 태도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 수사기관이 쓰는 조서에는 진술조서나 피의자신문조서 뿐만 아니라 압수조서나 검증조서도 있는데 기재되는 내용이 진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조서는 수사관이 경험한 내용을 작성하는 일종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기에 피의자가 말한 모든 것을 그대로 기재할 필요는 없다. 그러다보니 말한 사람의 기억과 진술이 조서를 작성하는 수사관을 거쳐 문자화되는 과정에서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조서는 수사관의 개인적 관점과 판단, 의견에 의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하기에는 위험하다. 조서 작성 후 진술자에게 읽어보게 하고, 매 장마다 간인하고, 서명날인하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 일부 유명하신 분들 외에는 그렇게 꼼꼼하게 늦은 시간까지 읽어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분들도 조서의 트릭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조서에 나의 의도 및 기억이 원래의 그것과 다르게 기재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므로 누구라도 수사기관에서 이를 행사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글로 쓴 보고서일 뿐인 조서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조서의 증거능력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에 의해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대로 기재되어 있음이 인정되면(실질적 성립진정) 내용을 부인해도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법정에서 ‘말한 대로 기재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할 경우(내용 부인)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경찰에서 자백한 누군가를 기소하기 전에 검찰에서는 경찰 작성 조서와 같은 내용으로 다시 조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그래야 그 자백을 유죄판결의 증거로 사용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KBS  이런 증거능력의 차이 때문에 자백을 받으려는 검사의 욕구가 경찰보다는 클 것이다. 자백을 받으려는 욕구가 크면 부인하는 상대방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히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가족들의 계좌나 행적을 표창장까지 모두 조사하고, 사업장의 모든 자료들을 압수수색하고, 친구와 거래 상대방을 뒤져 위법한 무엇 하나라도 건지려 한다. 자신의 괴로움은 물론이고 자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까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피의자는 없는 죄도 인정하게 된다. 이 때 어쩔 수 없이 했던 소극적 인정이 조서에는 적극적 인정으로 기재될 수 있다.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고 한다(경향신문, 19. 5. 21). 15년 전 읽은 논문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4개국(한국, 일본, 중동과 북유럽에서 1개씩)만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거나 1등을 해도 별로 자랑스럽지 않다.  다행히 패스트트랙으로 12월 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경찰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정도로 약화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개정되면 수사기관이 피의자 신문과정에서 어떻게든 자백을 받아 조서에 기재하려고 하는 동기가 사라질 것이고, 결백한 사람이 억울하게 유죄판결 받을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2020년에는 꼭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시행되길 바란다.
2019-11-20 | hrights | 조회: 2335 | 추천: 13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지역화폐가 유행이다. 민간 부문에서 공동체 구성원 간 회원제처럼 거래되는 대안화폐로 시작된 국내의 지역화폐가 최근에는 관의 주도로 법정화폐와 교환이 가능한 형태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70여 곳에서 운영했던 지자체 지역화폐는 올해 현재 160여 곳으로 확산되었다. 확산의 배경에는 소상공 자영업자 살리기 차원의 적극적인 중앙정부 지원이 있다. 지역 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등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대신 소비자가 지역화폐를 구매하면 지자체별로 3~11%의 선할인, 캐시백,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데, 이 인센티브의 상당수를 올해부터 국비로 지원하고 있다.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지역화폐를 바라보는 시각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국가 차원의 통화 질서를 교란한다는 다소 공상적인 지적부터 기본소득의 지급 매개로 활용한다면 복지와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정책적 선택도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최근 현실적인 상황에 맞부딪치고 있는 지역화폐 관련 논란거리가 있다. 바로 ‘혈세 퍼주기’이다. 최근에 터져 나오는 지역화폐 관련 이슈를 보면 일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표현을 정말 오랜만에, 맞춤형으로 떠올리게 한다.  이제 김영민 교수식으로 보다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지역화폐란 무엇인가?  지역화폐의 대전제는 이렇다.  1. 지역 내 소비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역외유출을 막아 지역에 돈이 돌게 하여 순환경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2. 지역을 생각하는 협력적 소비가 지역공공체성 강화로 이어져 지역의 사회적 자본을 키운다.  2번이 전통적인 지역화폐(대안화폐)가 견지하는 공동체 활성화 및 자급자족 지향과 궤를 같이한다면, 1번은 경제적 효과에 초점을 맞춰 최근 특히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지향점이다.  지역화폐는 바야흐로 양적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자치단체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발행규모 000억 원’ 부터 걸고 나선다. 그러기위해선 쉽고 빠른 도입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지역화폐라고 하면 명칭 그대로 지역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하고 지역 주민의 이해와 요구가 충분히 모아진 후 도입이 이뤄져도 성공여부를 장담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다이내믹 코리아의 진가는 지역화폐 도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발행액에 초점이 맞춰진 실적 올리기 방법은 이제 표준화모델이 되어가고 있다. 묘수라고 할 것도 없다. 구매 인센티브의 폭을 늘릴 수 있는 만큼 늘리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지자체 지역화폐의 구매 시 혜택은 3~6% 선할인이 평균적이었다. 혜택을 받는 기준도 1인당 월 30~50만원 수준이었고, 법인은 구매만 가능하고 할인은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거 상품권 유통시장에서 벌어졌던 각종 폐해를 극복하고 지자체 예산으로 지급되는 인센티브가 과도한 재정투입으로 이어져 지역화폐의 지속가능성을 저해시키는 것을 경계한 기준이 이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앙정부의 지원을 지렛대삼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건 지자체의 지역화폐가 나오기 시작했다. (굳이 ‘지자체’ 지역화폐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수 십 년 전부터 공동체형 지역대안화폐 활동을 벌여온 민간영역 분들의 수고가 떠올라서다. 그 분들이 최근 느끼는 자괴감도 함께 떠올려진다) 이어 발행(판매) 실적이 경쟁적으로 발표된다.  그런데 슬슬 이구동성으로 묻기 시작한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지원이 끝난 후에도 소비자 혜택을 유지할 수 있는가?  답은 나와 있다. 공짜 점심은 계속 될 수 없다.  앞서 1, 2의 대전제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신뢰 획득이 관건이다. 통화의 기본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파격적인 인센티브 도입 이후 재정의 문제로 혜택범위가 급감하자마자 사용자들이 보여준 반응은 대체로 ‘혜택이 좋아 잘 썼는데 이제 빠염(bye)~’이 주류다. 일부는 ‘이제 혜택 좀 보려고 했는데 벌써? 니들이 그렇지~’ 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지역화폐는 불편한 돈이다. 온라인쇼핑몰에서도 백화점에서도 대형마트에서도 스타벅스에서도 못 쓰는 돈이다. 동네 골목가게나 전통시장,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에서 쓰는 돈이다. 그래서 인센티브를 준다. 촉진의 역할이다.  이 인센티브는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요인이다. 예산을 들여서라도 마중물 효과를 보기 위해 필요하다. 전통시장현대화사업으로 전국의 시장에서 어기영차 지붕을 올렸지만 손님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지역화폐는 매우 직접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소프트웨어다. 골목상권 살리기를 위해 그간 무수히 쏟아 부은 예산보다 훨씬 효과적인 재정정책이 지역화폐 인센티브 예산이다.  그렇다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선 안 된다. 인센티브가 지역화폐 사용의 주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혜택이 떨어지면 쉽게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힘들다. 이것이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지역화폐의 더 큰 위기징후이다.  지역화폐의 존재이유는 내가 쓰는 이 돈이 우리 집 가계에도 좋고 동네경제와 지역공동체를 살릴 수 있다는 인식이 함께 공동체에 쌓일 때 유효하다. 왜 지역화폐를 쓰냐는 질문에 할인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면 지역화폐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지역화폐의 중간 목표이다. 궁극적인 지향은 공동체를 강화하고 사회적 자본을 쌓는 수단으로 지역화폐가 활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지역화폐의 지속가능성이며 경쟁력이다.  한편에서는 인센티브를 강조하다 삐끗했지만 다른 부가서비스를 강화해 다시 소비자와 지역민들의 발길을 돌려세우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건투를 빌면서도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서도 안 되겠지만 사실 꼬리로 몸통을 흔들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가서비스가 아무리 좋더라도 본 상품이 좋아야 손님이 온다.  어쨌건 다시 김영민 교수식 표현을 빌자면, “테이블을 당수로 쪼개고 목젖을 끄집어내 줄넘기를 하면서…” 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화폐에 대한 진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자칫하다간 댕댕이에게 죽을 먹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먼저 논의할 지점은 ‘왜 지역화폐를 해야 하나?’겠다.
2019-11-13 | hrights | 조회: 799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