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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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다. 감염병에 대한 공포, 마스크 대란, 위생수칙의 학습, 국경을 넘는 외국인에 대한 불편과 방역에 대한 자긍심, 닫힌 교문과 온라인 학습, 활기를 잃어버린 공항과 터미널들, 폐업을 선언하는 작은 가게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감염의 공포 속에서도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 이 모든 비일상적인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 벌써 반년도 더 지났다.  2월 졸업식도 3월 입학식도 없이 대학에 들어온 스무 살 청춘들은 집이나 카페에서 온라인으로만 ‘대학의 맛’을 간신히 허락 받았고, 일주일에 두 번 출강하던 그 대학의 단과대학 건물을 나는 학기 내내 한 차례도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의 강좌로 묶여 있었지만, 가상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식으로만 만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가을학기에도 비대면이 강의의 기본값이 될 것이다.  3월이 시작되고도 한참동안 대학들은 강의방식을 결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했고, 비대면 온라인 수업 방침이 정해지고 나서는 각 과목 교수자들의 좌충우돌이 시작되었다. 방송장비를 구입하고, 프로그램을 숙지하고,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강의내용을 녹화하고 업로드 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이전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새로운 교육방식이었다. 이 과정 속에서 단기계약직 강의노동자인 강사들은 난데없이 새로운 불안과 의문 또한 가져야만 했다. ‘온라인 강의가 자리잡게 되면, 대학은 비용절감의 차원에서 교과목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강사 수를 대폭 줄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까?’ ‘2년 후, 대학들이 다시 공채시스템을 가동시킬 때까지 코로나 정국이 지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와 같은.  처음 시도해보는 낯선 강의방식에 준비시간도 몇 배로 늘어났다. 강의 내용에 대한 공부 외에도 프리젠테이션에 쓸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감각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글자체와 색깔 음악과 이미지 자료들까지 꼼꼼히 신경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반복해서 재녹음하는 자발적인 수고를 하는 동안, 남의 속도 모르고 ‘온라인 강의, 수업의 질 떨어져’ ‘학생들 등록금 환불 주장’과 같은 뉴스들이 넘쳐났다. 대학이 어떤 식으로든 강의에 대한 모니터링을 할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던 강사들은 양질의 온라인 강의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는 걸 모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는데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삶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관계가 그렇겠지만, 교육의 영역에서도 ‘실감’은 중요하다. 교수자는 자신이 전달하는 교육의 내용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기색을 살피고 눈을 맞추며 질의응답과 수행을 검토하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확인해 나간다. 반드시 강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특정한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시간의 두께 속에서 관계는 복제 불가능한 고유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학기가 끝난 후 그것은 학점이나 몇 가지 인상적인 크고 작은 사건으로만 잠깐 기억되다 곧 잊혀질지라도.  대면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실감’을 강의의 척도로 잡는다면, 모든 온라인 강의는 ‘질이 떨어지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익숙한 관념을 지우기 위해서는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오래전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모든 미디어 중에서 라디오가 가장 ‘내밀한’ 성격을 지닌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비대면의 조건 속에서 미디어 장치를 경유하면서도 감응적 시너지를 불러일으키기엔 라디오 방송 컨셉으로 강의를 만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대학 강의실에서 딱딱한 표정으로 지루한 교양서적을 설명하는 선생이기를 그치고, 심야라디오방송 교양프로그램의 디제이가 되기로 했다.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늦은 밤에 녹화를 했고, ‘애청자사연코너’를 통해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문학’과 관련된 교과목의 특성 덕이기도 했겠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매주 도착하는 정성들인 ‘사연들’(정확히는 사연이라는 이름의 수업내용과 관련된 질문과 의견)을 읽어주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는 누구, 매일 밤 조금씩 자기 전에 듣고 있다는 누구, 방송을 듣고 책을 다시 찾아 읽었다는 누구, 자료화면의 색감에서부터 어떤 문장들에 대한 취향까지 꼼꼼하게 말해주던 누구, 다른 사람의 사연에 대한 감상을 전해주던 누구,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도 수업에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던 누구. 어느 순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 누구들은 강의실의 학생이기를 그치고 프로그램의 애청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온라인 비대면 수업시간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 진행했던 어떤 대면강의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학생들과의 따뜻한 ‘교감’을 경험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었다.  9월이 되면 다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겠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코로나와 동거하는 삶의 양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 수업은 계속될 것이고, 대학들은 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요청이나 휴학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며 비용의 보존과 절감을 계산할 것이다. 대학이, 대학의 형태가, 교육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든 달라지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지금의 대학구성원 누구라도 고통 받지 않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이 낯설고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일자리’와 ‘배움’의 권리는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더 나은 삶을 기획하는 희망과 상상의 실천들은 멈추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
2020-07-29 | hrights | 조회: 1126 | 추천: 5
이윤/ 경찰관  故 최숙현 선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과 팀닥터 등의 상습적인 폭행사건이 수사 중에 있다. 현재 검찰과 경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피해자나 다른 사건 관계인들은 수사 사항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위 사건에서 최 선수의 가족이 기자들에게 제기하거나 다른 동료 선수들이 기자회견에서 제기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 수사의 문제점을 언론 기사에 의해 파악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최 선수가 고소한 내용이 아닌 자극적인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며 수사관이 일부 진술을 삭제했다. 2. 벌금 20~30만원에 그칠 것이라고 말하여 고소인이 좌절하게 했다. 3. 고소하지 않을 것이면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위 내용만 보면 경찰 수사관이 매우 소극적으로 수사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이 역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1번은 고소인이나 주변 참고인들의 진술 중 일부 내용을 고소내용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관이 조서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 중 피해자와 참고인들은 무척 많은 진술을 한다. 그 중에는 범죄사실과 관련된 것도 있지만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주변적 정황 및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였지만 범죄까지는 이르지 않는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 수사관들은 처벌 대상이 아닌 내용도 들어주기는 하지만 굳이 조서에 기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조서는 녹취록이라기보다 보고서이므로 나중에 수사결과를 쉽게 정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조서에 진술인이 말한 내용을 모두 그대로 기재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다. 이 때 만일 진술내용을 녹음하거나 녹화한다면 조서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까지 나중에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조서에서 삭제된 ‘자극적인 진술’이 무엇일까? 그 내용은 범죄혐의 입증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불필요한 것이었을까? 삭제는 정당한 것이었을까? 이를 명확히 하는 것은 진술인뿐만 아니라 수사관에게도 도움이 된다. 녹음된 진술을 근거로 진술을 모두 청취하고도 조서에 기재하지 않은 것은 수사상 필요에 의한 취사선택에 불과했음을 항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사건에서는 진술이 녹음·녹화되지 않았다.  2번은 필자도 과거에 피해자나 피의자들로부터 ‘수사가 끝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나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기에 나름 상상해 볼 수 있다. 수사는 과거에 어떤 위법행위가 있었는지를 탐색하여 조사하는 과정이고, 이를 통해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재판에 의해 법원에서 처벌여부 및 양형이 결정된다. 수사관은 처벌의 주체도 아니고 양형을 판단할 수도 없으므로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수사관으로서는 ‘저는 처벌을 어떻게 받을지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도 ‘수사를 많이 하셨으니까 어느 정도 처벌을 받을지 아시잖아요’라며 계속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폭행사건은 벌금형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상해정도가 심하고, 피고인이 주거부정이거나 도망우려가 있거나 하면 구속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이런 문답은 당연히 조서에 기재하지 않는다. 보통은 조서작성을 다 마치고 열람 내지 간인, 날인하는 중에 이루어지거나 전화상 대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 수사관이 어떤 취지로 어떻게 말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녹음·녹화 하였다면 (조서 열람 등 종료과정도 모두 녹화한다) 수사관의 소극적 수사에 의한 응답이었는지, 문의 사항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이었는지 명확해 질 것이다. 언론에 발표된 전화통화 녹취록에 의하면 일반적인 답변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번은 다소 모호하다. 참고인 조사 중에 참고인 자신이 당한 피해사실을 진술하니 ‘그건 고소할 생각이 있으면 별도로 고소하고 지금은 고소된 사건인 최 선수 관련된 내용만 말하라’고 한 것인지, 참고인이 최 선수 관련된 내용을 진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고소된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별건에 해당하기에 ‘새로운 내용으로 고소하지 않을 것이면 여기서는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전자라면 수사관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그래도 진술을 못하게 하면 안 된다), 후자라면 고소인에게 그 내용도 고소내용에 포함되는지 확인 후 조치할 수 있다. 수사관이 했다는 말의 맥락과 진의를 알기 위해서는 역시 녹음·녹화가 필요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나는 이 글에서 위 사건 수사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만일 위 수사관이 운동선수가 감독을 고소한 폭행사건 수사 과정에 피의자들이 부인하고, 대부분의 동료선수가 피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음에도 한 두 명의 참고인 진술이나마 청취하여 이를 근거로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 과정에서 양형과 수사사항에 대해 일반적인 내용으로 응답한 것 때문에 감찰조사와 징계를 받는다면, 이 또한 가장 만만한 한 사람의 희생양을 찾아내어 제물로 바침으로써 감정의 정화조로 삼고자 하는 또 하나의 사회적 폭행이 될 수 있음을 염려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사과정의 진실을 확인하여 잘잘못을 가리는 데에 녹음·녹화는 필수적이다. 녹음·녹화를 하면 진술인뿐만 아니라 수사관도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런데 참여인 조항과 함께 녹음·녹화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으니 그것은 ‘의무적 조서기재’ 조항이다. 형사소송법 제244조 제1항은 ‘피의자의 진술은 조서에 기재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진술녹화실에서 조사하면서도 별도의 조서를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면 편리성이나 용이성이 없는데도 굳이 녹화실을 이용하려는 수사관은 많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나 참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형사소송법에 피해자나 참고인의 진술을 반드시 조서에 기재하라는 조항은 없으나 제313조 제1항에 의해 이들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가 몇 가지 조건에 의해 증거능력이 인정되므로 수사관으로서는 녹음·녹화를 하면서도 별도의 조서를 따로 작성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형소법 하에서 영상녹화물은 조서를 대체한 증거가 될 수 없다(성폭력 사건은 예외).  녹음·녹화물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조작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다만 녹음·녹화를 장려하여 억울한 질타로부터 진술인과 수사관의 인격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전 글과 같이 녹음·녹화할 경우 참여인을 두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하는 것과 함께 조서 작성을 생략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고(피의자의 경우), 전체 진술의 취지만 기록한 간이한 조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검사와 판사의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조서는 단지 수사관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일 뿐이다.  이미 14년 전 전국 경찰관서에 마련된 진술녹화실 사용을 이제라도 활성화함으로써 진술인과 수사관 모두 보호받을 수 있도록 형소법 일부를 개정하고, 조서를 중시하는 사법 제도/관행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변화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2020-07-22 | hrights | 조회: 910 | 추천: 1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코로나19로 인한 골목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급격하게 나빠진 지역경제가 그나마 버티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의 법률상 명칭)으로도 지급되다보니 지자체 지역화폐 담당자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 몇 달 동안 왜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냐는 항의를 많이 받았다. 왜 우리 가게는 재난지원금으로 받은 지역화폐를 쓰지 못하게 하느냐는 가게 점주들의 민원은 더 많았다. TV광고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점들이다.  ‘침체된 지역 골목상권에 온기를 불어넣고자 대형마트,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이 아닌 전통시장, 소상공·자영업 가게에서만 쓸 수 있습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지역에서 함께 살기위한 정책임을 이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상생을 강조하며 양지를 구하면 수긍하는 점주들이 많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지 않는 점주들이 더 많다는 게 함정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반발이 ‘우리도 소상공인인데!’라는 항변이다. 그런데 참 소상공인의 범주가 너무 크다. 소상공인법에 따르면 소매업의 소상인 기준은 매출 50억 이하이다. 골목경제의 현실을 반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한 기준이 있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의 계열사 및 업체는 지역화폐 도입 목적과 의미에 부합하지 않다고 보고 유통산업발전법에 가맹점 제한규정을 둔 것이다.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다. 가게를 내고 싶어도 상당한 재력이 없는 한 내기 힘든 곳들이다. 멤버십카드로 수 십군데 이상 제휴점에서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업체들이다.  ‘코로나19 정국에서 모든 곳이 힘드니 특수한 상황임을 고려해서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받아야 하지 않냐’는 요구도 나온다. 그렇다. 지금 안 힘든 곳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동네가게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곳 들이다. 또한 업종 내 시장 지배적 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이들 업체가 ‘이번 기회에’ 지역화폐 가맹점이 된다면 지역화폐 소비의 쏠림현상은 공고화 될 것이 자명하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이해를 구하면서 설득했지만 점점 압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같은 프랜차이즈 점주들끼리 단체 민원을 넣기 시작함과 동시에 다른 통로를 통해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시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라운 단결력과 힘이었다.  ‘재난자본주의’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를 빌미로 원격진료 등 그동안 숨죽이던 자본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상황이 어쩌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프랜차이즈들은 재난기본소득 지급 이전에는 지역화폐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민원이 온 업체는 다양했다. 의식주를 망라해 골목경제를 구성한다고 보기 힘든 모든 곳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가게도 위치는 골목에 있다’고 목청 높여 주장하신 분도 있었다. 다른 결에서 특이했던 건 유흥주점에서 온 전화였다. 가게를 내놓아도 나가지도 않는데 술장사 한다고 너무 괄시하는 거 아니냐면서 사장님은 통곡을 했다. 그냥 듣고만 있었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국내에서 가장 큰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온 전화였다. 다짜고짜 ‘000000부 협조 공문이 갈 텐데, 우리는 언제 가맹점이 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일단 000000부 공문은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다. 완곡하게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기 위해 도입한 지역화폐의 의미를 알려드리고 역제안을 던졌다. 가맹점은 되기 어렵지만 대신 지역 사회공헌 차원에서 영화 상영 전 지역화폐 광고를 해 줄 수 없겠냐고.  그런데 진짜 그런 경우가 있었다. 시흥화폐 시루를 도입하기 전, 또 다른 경쟁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먼저 지역화폐의 취지에 동감한다며 몇 달 간 홍보영상을 틀어줬었다. 비슷한 예로 지역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영업장 내부에서 지역화폐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것을 흔쾌히 허락한 경우도 있었다. ‘같이 살자’에 동의한 통 큰 결단이 고마웠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어쨌건 지역화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채 모두에게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다보니 생긴 일들이다. 엄청나게 풀린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사실 카드를 선택한 국민이 훨씬 많았다) 받지 못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점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지역화폐를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소비쿠폰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화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프랜차이즈 공세에 허물어져 가는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소비의 부 절반이 서울·수도권으로 쏠리는 한국경제의 고질병인 역외유출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한 방책이다. 소비자는 발행규모 세계 1~2위인 후불제 카드소비에서 벗어나 할인혜택을 받으며 선구매한 지역화폐로 나와 지역을 생각하는 계획적 소비를 할 수 있다.  지역화폐가 지역화폐답기 위해서는 가맹점 기준이 핵심이다. 지역 내 모든 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기존의 소비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역화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몰리던 발길을 동네 가게로 돌리기 위해 세금을 들여 협력적 소비, 지역 순환경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수 년 동안 급속하게 성장한 지역화폐를 만능열쇠로 여기는 인식이 있다. 코로나19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넘기면 많은 거품들이 사그라질 것이다. 지역화폐 역시 지금 방향을 잃고 엇나가다보면 거품과 함께 사그라질 수도 있다. 기우로 그치길 빌 뿐이다.
2020-07-15 | hrights | 조회: 882 | 추천: 0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내 지난날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 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효지초등학교에 우리 8남매가 모두 수학했는데, 맏형이 1회 졸업생이고 3, 4년 사이로 선후배가 되고, 조카까지도 이어간 광주효덕초등학교다. 당시에 오랜 선생님께서 우리 8남매와 조카들까지 담임을 맡아 주셨기에 많은 추억을 안긴 모교였었다.  70년이나 정들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모교를 우리 형제자매는 자주 찾는다. 오랜 세월이기에 모교 주변들이 많이 변해있었다. 학교에 인접한 도로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늘어났고, 초기에 하루에 4차례 증기기관차가 다녔는데 오래전에 중단되었다. 교실이 단층에 6학급이었는데, 이제는 60학급으로 4층의 교사가 신축되었다. 재학생도 10배나 증가해 빛고을에서 대단히 크고, 모범적인 초등학교로 발전되고 있었다.  내 학창시절에는 광주의 변두리로 잘 알려지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학교주변에 신규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살기 좋은 전원마을로 소문이 나면서부터 위상이 달라졌다. 시내 중심 유명세의 그 어느 학교보다 우수 모범학교로 변해 있었다. 광주시의 중심가 학생들이 전학을 해오고, 경쟁이 센 일류 학교가 되어 있었다. 특히 중학교 진학률이 높고,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도 발전된 모교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되어 어느 사이 이름난 학교가 되었다.  내가 재학 중에 공부하던 그때의 교사와 운동장의 터도 확장되어 지금은 3동의 교사가 늘어났다. 당시 운동장과 교사 주변에 작은 나무들도 이제는 엄청 큰 나무가 되었다. 교목이었던 히아시스 나무도 교사 한 가운데 우뚝 자라나고 있었다. 그때에는 나무들이 내 품안에 쏙 들어왔었는데 이제는 큰 나무로 우뚝 서 있었다. 또한 교사 외에도 대형 강당과 연구실과 실험실도 신축되어 계속 발전하는 학교가 되었다.  모교는 무등산자락에서 남쪽으로는 태봉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금당산이 있었다. 제일 높은 산은 해발 6백 미터의 옥녀봉이었는데, 학창시절 자주 오른 봉우리로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 때는 너무 높아서 오르기가 쉽지 않았었는데도, 자주 오르내렸다. 산위에서 바라보면, 광주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세월이 흘러서 산에 올라가 보니, 그리 높지도 않았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높게만 보였을까? 아마도 어린 마음의 눈높이였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한 세대 전부터 총동문회에서 가끔 모교를 빛낸 동문에 상을 주었는데 나도 받았었다. 모범 동문으로 거듭나고 모교에 도움을 주는 일을 이어가라는 뜻이었다. 허나 일들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내가 펴낸 저서와 어린이 도서를 특별 기증하였다. 3년 전에도 모교를 찾아 제16회 졸업생이라 인사하고, 그간 뜻 한 바 생각을 전했다. 비록 작은 성의지만 모교 발전과 후배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참여하겠다고 하니,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반가워하시었다.  그동안 총동문회에서 장학금 명목으로 졸업생에게 표창을 해 왔는데 끊겼다며 반가워하였다. 예절바른 효행학생에게 효행장학금을 수여하는데 선발은 학교에 일임했다. 교장선생님은 어느 사이 나의 재학 6년간 학교생활기록표를 보셨는지, 성적도 우수해 모범상을 자주 받았고 학예회서 독창을 하고 시군 음악경연대회에서 독창과 합창으로 입상을 한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졸업식 날에 직접표창과 축하노래까지 부탁하였다. 피아노 반주는 음악선생이 맡아주시겠다고 했다.  몇 년 전 모교의 졸업식 날에 식장에서는 졸업생과 재학생대표 5백여 명에 내외 귀빈과 졸업생가족 등 1천여 명이 참석했었다. 강당이 꽉 차니 밖에서 졸업식 광경을 지켜보는 학부형들도 있었다. 내 순서에 먼저, 교장선생님은 특별히 효행장학생 표창과 축하와 노래까지 불러주실 모교 16회 선배 졸업생이라고 소개를 하시었다. 그동안 졸업식에 정식으로 자주 없었던 순서였다.  장내 외의 큰 박수를 받고 등단하여 간단한 인사를 “내 사랑하고 그리운 효덕초교는 우리 8남매가 총동문이고 내 생애에 많은 추억을 남긴 모교이기에 이렇게 달려왔다” 하고 “60년 전에 학예회 때마다 불렀던 독창을 오늘 후배들에게 들려주려니 감회가 깊다”고 해, 장내에 큰 박수를 받고 식장을 떠나왔다. 지난 모교와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마치 활동사진처럼 펼쳐지고 있어 감회가 깊었다.  내 만 7살에 아버지를 따라 입학식에 참석해서 교훈이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였다.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배움에 대한 문구였다. 그리고 1학년 2학기 겨울방학 전, 어느 날 폭풍과 폭설이 몰아쳐, 그만 등교를 하지 못했었다. 오후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학교로 불러 교실에 갔다. “아니 이런 정도의 날씨에 학교를 결석하다니! 책상위에 올라가 손을 들라”는 벌을 내렸다. 무려 2시간을 손을 들고 섰었는데 “배움을 게을리 하면 장래가 없다”며 호통도 치셨다. 나는 울면서 자괴하고 다짐하였다. 배움에서 결석이란 절대 자제했던 기억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리고 나에게 크나큰 충격은 1학년 때, 22살의 맏형이 건준에 가입했다가 붙잡혀 조직을 불지 않는다고 재판도 없이 총살을 당한 사실이다. 똑똑한 형을 잃고 방황하였던 어린 시절이었다. 2학년에 올라가 6.25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와 둘째형이 부역자가 되어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그때 맏형과 모교 1회 동문인 김종길 선생님이, 제자가 상처를 받을까봐 위로해 주셨다. 그때 전쟁과 평화에 마음이 깊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나에게 슬픔만이 아닌 기쁨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줄곧 우등상을 탔다. 학예회 독창과 합창경연에서 입상하고 소풍가면 노래를 불러 상을 탄 공책과 연필이 쓰고도 남았다. 입학 전에 서당에 다녀 습자부장이 되고, 개교기념 글짓기에 뽑혀 전체 조회에서 낭독도 하였었다. 그리고 총학생회장이 되어 전교 전체 조회에서 쩌렁쩌렁한 구령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또한 비록 가난했지만 야간으로 진학을 계속해 공부를 이어갔다.  당시에 어린 마음에도 우리가정의 형편으로는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배워야 산다,’ 좌우명으로 신문배달을 하며 야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야간대학에 진학해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그리고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여 제대말년에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주는 죽음과 공포와 삶의 아픔을 느끼면서 용케도 무사히 귀국하였다. 만기 제대를 한 후에 부족한 공부를 위해 서울대학교에 근무하면서 공부를 이어갔다.  내가 서울대에 근무했던 시기는 분단국가의 민주화가 절실히 요구되었던 80년대 초였다. 당시 서울대 법대는 민주화의 불길을 당기는 촛불의 근원이었다. 나는 서울법대와 연구소 교직원으로 재직하면서도 열렬한 학생들의 정의의 깃발에 동화되었다. 끝없는 법대생들의 항전에 동화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이 민주화의 길이었다. 박종철을 비롯한 많은 정의 학생들의 죽음은 결국 민주화의 길이었다. 문경새재에서 본 백두대간 사진 출처 - 한겨레  서울대 정년을 하고 자유로운 평화통일 운동가로서 분단조국의 평화통일 대열에 함께 하였다. 너무도 긴 분단 76년, 이제는 우리 8천만 동포들과 함께 평화통일이라는 그 길을 용기 있게 가는 길이 정도임을 알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분단조국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비록 팔순의 노구로 힘이 달리겠지만 그 대열에 당당히 지금까지 함께 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삼천리금수강산에 평화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매진할 것이다. *필자 : 작가[소설. 수필. 서예] 칼럼니스트, (사)평화연대이사장, 한국작가회의 소설가 *한국서예, 초대작가, 한국전통서예, 초대작가, 한국미술관, 초대전, 서울미술관.초대작가전. *저서: 소설집(못다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에세이(평화)고희문집(인연, 아름다운 만남), 수필선집(강물은 흐른다) 구암애창가곡(CD) 편저(평화의 삶을살다. 한반도 평화통일) *<평화만들기>, 오마이뉴스, 통일신문기자, 공동선, 글의 세계, 실험수필, 문학의 강 필진
2020-06-24 | hrights | 조회: 939 | 추천: 0
: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평화를 통한 번영”을 지지하는 사우디와 반대하는 하마스  2020년 1월 28일, 트럼프는 세기의 협상안으로 알려진 “평화를 통한 번영: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의 삶을 증진시키기 위한 비전”을 공표하였다. “평화를 통한 번영”은 1967년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한 서안을 공식적인 이스라엘 영토로 합병하고, 이스라엘과 역내 아랍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데에 집중한다. 결국 이 기획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역내 아랍국가들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이스라엘의 번영을 목표로 한다.  2020년 1월 29일, 트럼프 협상안을 지지하는 사우디 외교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포괄적 평화계획 수립을 위한 미국 행정부의 노력에 감사하며, 미국이 후원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직접 평화협상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또 사우디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사우디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으며, 모든 아랍인들과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있다.”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연대의사를 밝혔다.  현재 표면적으로 또는 체면치레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트럼프의 협상안을 거부하는 듯하다. 그러나 오슬로 협상의 중간 결과물로 창설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결국은 트럼프 협상안을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에 1967년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한 지역(동예루살렘, 서안, 가자)을 대상으로 추진된 오슬로 협상은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PLO 직접 협상이었으며, 마흐무드 압바스 자신이 이 협상의 주역이었다. 트럼프의 협상안은 오슬로 협상의 마무리 작업인 듯 보인다.  이에 맞서 2020년 1월 30일, 하마스 정치국장 이스마일 하니야는 이슬람 및 아랍국가 통치자들에게 미국의 이른바 '세기의 협상'을 거부할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세기의 협상을 거부하기 위해 긴급하게 행동할 것"을 요청했다. 하마스는 1990년대에도 오슬로 협상에 반대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왔으며, 하마스가 가자를 통치하기 시작한 2007년 이스라엘은 가자를 ‘적지’로 선언했다. □ 팔레스타인의 영토 주권 박탈, 이스라엘의 역내 영향력 강화  “평화를 통한 번영”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의 관계정상화 추진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스라엘과 대부분의 이슬람 및 아랍국가들 사이의 공식적인 관계의 부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을 악화시킬 뿐이다. 더 많은 이슬람 및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 대한 정당하고 공정한 해결을 앞당기고, 급진주의자들이 역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데 이 분쟁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평화를 통한 번영”의 핵심 내용은 1967년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한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 수립을 공식화하고, 동시에 이스라엘과 역내 아랍국가들 사이의 경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화를 통한 번영: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의 삶을 증진시키기 위한 비전] Ⅰ.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 수립 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사자 간의 합의(UN 및 국제사회 관여 없음) 2. 경계 재설정: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으로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돌려줄 의무 없음, 요르단 계곡은 이스라엘의 주권, 이스라엘 정착촌은 이스라엘 국가로 통합 3. 예루살렘: 분할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수도 4. 난민: 난민지위와 관련된 모든 청구권의 완전한 종료와 해제.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없음 -> 팔레스타인 난민지위는 사라지고, UNWRA는 종료. 난민촌 해체. 5. 팔레스타인 국가: 비무장 상태로, 보안대를 유지함으로써, 테러리즘과 맞서 싸움 6. 가자: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 등 테러 단체의 무장해제, 완전한 비무장화 7. 협상과정에서 PLO 및 PA는 다음을 수행해야 함   1) 이스라엘 국가의 동의 없이, 국제기구에 가입하려는 모든 시도 중단   2) 국제형사재판소, 국제사법재판소 및 기타 모든 재판소에 이스라엘, 미국 및 그 시민들에 대한 모든 계류 중인 사항들을 모두 취소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 것   3) 인터폴이나 비이스라엘 또는 미국법 제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또는 미국시민에 대항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서는 안 됨   4) 이스라엘 감옥에서 복역하는 테러리스트들뿐만 아니라 사망한 테러리스트들의 가족에 대한 급여 지급 즉시 중단 Ⅱ. 이스라엘-아랍국가들: 지역 경제통합 파트너십 확보 1. 역내 모든 국가들의 이익을 위해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 국가와 완전히 협력해야함. 예를 들어, 교차 관광을 촉진하고,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항공편을 운영할 것 2. 이스라엘 국가, 팔레스타인 국가와 아랍 국가들은 헤즈볼라, IS, 하마스와 다른 모든 테러 단체 및 단체, 그리고 다른 극단주의 단체들에 대항하기 위해 협력할 것 3. 경제적 상황과 이란의 악의적인 활동은 역내의 많은 국가들에게 실존적인 위협임. 역내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통합하는 것은 이란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적 도전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4. 이스라엘과 GCC국가들은 긴밀한 유대관계 수립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이집트 아랍 공화국, 요르단 하심 왕국, 이스라엘 국가(역내에서 협력하기를 희망하는 국가들 포함)는 ‘유럽 안보협력기구’와 유사한 ‘중동 안보협력기구’를 구성할 것  아래 그림은 “평화를 통한 번영”에 첨부된 지도다. 이 지도는 1990년대 오슬로 협상이 제시한 지도와 매우 유사하다. 이 지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정착촌과 도로 등으로 둘러싸인 토막 난 영토에 갇혀서, 물, 자원, 군사에 대한 지배권을 모두 박탈당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주거지 밖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운영하는 농업, 건설 분야 등 저 임금 직종의 노동 시장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이 제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슬로 협정의 연장이며, 오슬로 협상 과정에서 창출된 현실을 공식화하려는 것이다. 2020년 1월 트럼프 기획  오슬로 협상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967년 무력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실효적인 지배권을 승인한 것이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안대는 이스라엘 방위군과 안보협력을 하면서, 서안 거주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보호하는 등 이스라엘 안보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이번 트럼프 협상안은 실권 없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국가라는 이름을 붙여주어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공식화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안보 지킴이 역할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또 이 협상안은 이스라엘 정착촌을 포함하는 이스라엘 영역을 우회하는 도로와 터널 건설 등을 통해서 토막 난 팔레스타인 영토를 연결시키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협상안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유대민족 국가로 인정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인종분리와 인종차별 정책을 유지하면서, 이스라엘 영역으로 합병된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 시민권 요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협상안은 팔레스타인의 영토 주권을 박탈하면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의 긴밀한 경제 및 안보 협력관계를 공식화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역내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 하마스를 강력하게 탄압하는 사우디  1987년 창설된 하마스 지도부는 사우디와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사우디 정부는 하마스를 직접 지원하지는 않았으나, 사우디 내에서 하마스를 위한 모금활동을 허용했다. 그런데 2019년 4월, 20년 이상 사우디와 하마스 관계를 관리해 온 무함마드 알 쿠다리 박사를 비롯한 수 십 명을 하마스 소속이거나 지지자라는 혐의로 체포하여 기소하였다. 사우디는 이들의 자산을 동결하였고, 가자로의 송금을 거의 완전히 차단하였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들은 그 이후 정확한 혐의도 알려지지 않았고, 법적 대리인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구금됐으며, 일부는 독방 감금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2019년 5월 11일, 사우디에서 발행된 『메카』 신문은 “무슬림형제단 사상의 영향을 받는 국제 테러리스트 40명”을 발표하였다. 이들 중에는 6명의 하마스 지도자들, 즉 이스라엘이 표적 살해한 하마스 공동 창건자들인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과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비롯해서, 전임 하마스 정치국장 칼리스 마샬, 현재 하마스 정치국장 이스마엘 하니야, 하마스 군사조직 이즈 앗딘 알 까삼 여단 지휘관 무함마드 데이프, 현재 가자지구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 등이 포함되었다. 이 발표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 충격을 주었으며, 네티즌들은 이 발표의 배후로,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했다.  2020년 3월 8일 사우디는 2019년 4월 체포 수감된 무함마드 알 쿠다리와 그의 아들 하니를 비롯한 사우디 거주 팔레스타인인인들과 요르단인들 68명을 ‘특별 테러 재판’에 회부했다. 사우디 대학의 IT 교수인 하니와 학생, 학자, 기업인을 포함하는 수감자들은 사실상 정치 활동과는 거의 무관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엠네스티는 “알 쿠다리 부자를 체포 수감한 것은 사우디 당국이 하마스와 연관성이 있다고 파악한 사우디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 2020년 3월 9일 하마스는 성명을 내고, “사우디에서 재판에 직면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혐의는 위조된 것이며, 재판을 불공정하다. 이들은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대의와 예루살렘 및 알 아크사 모스크의 수호를 지지했기 때문에 유죄다. 즉각적인 이들의 석방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하마스의 든든한 후원자 카타르  2019년 12월 17일 알 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를 대표하는 정치국장 이스마일 하니야는 도하에서 타밈 빈 하마드 카타르 국왕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타밈 국왕은 합법적인 민족의 권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이들은 12년 동안 계속되는 가자 봉쇄, 예루살렘, 서안의 유대 정착촌, 팔레스타인 난민 지위 및 귀환권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 정부는 카타르 정부로부터 매달 3천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이는 10만 9천 가구의 가난한 가구에게 원조로 제공되는 것이다. 이스마엘 하니야는 타밈 국왕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노력에 대한 감사를 표하였다.  2020년 2월 2일 아사르끄 알 아우사트에 따르면, 이스마일 하니야는 2020년 후반이나 2021년까지 카타르에 머물면서 터키, 이란, 오만, 말레이시아, 러시아, 레바논, 모리타니아, 쿠웨이트를 방문하는 등 하마스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한 외교행보를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3월 23일, 미들이스트 모니터에 따르면, 이스마엘 하니야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카타르 타밈 국왕이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전폭적인 물질적,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카타르 국왕은 UNRWA원조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팔레스타인인들에게 1억 5천만 달러를 원조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제휴하고 있는 하마스의 확고하고,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이러한 카타르의 하마스 지원은 이스라엘의 승인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및 중동 분할통치전략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와 하마스를 지원하는 카타르라는 역내 대립 구도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할 통치 전략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2014년 3월 사우디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2016년 6월에는 무슬림형제단 지원과 친이란 정책을 문제 삼아 카타르에게 단교를 요구하였으며, 2017년 6월 사우디는 카타르를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하면서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2020년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후원하는 사우디-아랍에미리트-바레인-이집트-요르단과 이에 맞서는 하마스를 후원하는 카타르-터키-이란 역내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이 대립 구도는 트럼프의 “평화를 통한 번영”을 실현시키기에 매우 활용도가 높다. 팔레스타인 및 역내에서 하마스-카타르-터키-이란 동맹의 영향력이 강할수록,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사우디-아랍에미리트-바레인-이집트-요르단 동맹은 이스라엘 및 미국과 연대를 강화하면서, 트럼프의 협상안을 강력하게 후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타르와 터키가 후원하는 역내 무슬림형제단 분파들은 사우디(알 사흐와), 아랍에미리트(알 이슬라흐), 바레인(알 이슬라흐), 이집트(무슬림형제단), 요르단(이슬람행동전선)에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강력한 정부 반대파로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사우디와 연대한 아랍 국가들은 국내 정부 반대파 및 하마스 등 역내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들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인 알 사흐와 등 국내 반대파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유로도 무함마드 빈 살만에게 이스라엘과 미국은 정권 유지에 꼭 필요한 정치적 동맹이다. 또 2019년 9월 이란의 사우디 아람코 석유시설 공격은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안보에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일깨워주었다.  이렇게 하마스 등 역내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과 이란의 위협은 이스라엘에게 사우디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트럼프의 ‘평화를 통한 번영’을 수월하게 진행시키는 촉진제로 작용한다.  2020년 6월 1일 이스라엘 하욤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동 예루살렘 소재 알 아크사 모스크 관리기구인 이슬람 와끄프 위원회에 사우디 대표를 포함시키기 위하여 비밀회담을 개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동 예루살렘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대한 관리권 장악을 시도하는 터키에 맞서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터키는 알 아크사 모스크 관리권을 장악하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 동 예루살렘에 상당한 투자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하던 1924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요르단 하심 왕가가 누려온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 독점 관리권이 위기를 맞이하였다.
2020-06-17 | hrights | 조회: 1398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비록 개원에 진통을 겪고 있긴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잘 극복한다는 평가를 비롯해 다른 요인들이 긍정적으로 함께 작동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근본적으로는 촛불 혁명의 민주적인 정신이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 총선에까지 힘을 발휘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총선 전 수개월 동안 불안했었다. 속칭 태극기 부대, 광신적인 전광훈 무리, 이에 편승한 보수 우파의 정치꾼들과 언론 집단이 대대적으로 거동하여 만만찮은 세를 과시했다. 그들은 촛불 혁명에 의한 현 정권에 최대한 흠집을 내고 끌어내리기 위해 온갖 극언을 스스럼없이 쏟아내었다. 그 핵심은 문재인 정권이 친북 사회주의적인 정권으로서 나라를 북한의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저들의 본심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저들은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는 걸까, 아니면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혹세무민의 빌미로 내거는 전술적인 구호에 불과한 걸까? 어느 경우건, 저들이 격렬한 충동적인 감정을 끌어모아 대대적으로 터뜨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광화문을 휩쓰는 저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특히 손수 지어 입은 괴이한 군복을 차려입고서 대오 정렬하여 행진하면서 마치 쿠데타라도 일으켜 세상을 뒤집는 데 성공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노라면 절망적인 분노가 일었다.  저들이야말로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설립을 부정하고 방해하던 세력이 아니던가. 그런데 애써 길 닦아놓으니까 미친 X가 먼저 지나가는 식이었다.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갖은 고초와 희생을 거쳐 겨우 민주주의 체제의 길을 닦아놓았더니 오히려 저들 반동의 세력들이 얼씨구나 광란의 집회를 마음껏 벌이면서 잡아가지 않는다고 안심 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극언의 막말을 대명천지에 마음대로 쏟아내면서 기염을 토하는 것이었다. 같은 국민이라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절망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대다수 국민이 이처럼 대대적인 총선 승리를 가져다주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지나고 보니 그럴 리가 없다고 여겨지지만, 혹시라도 만약 저들 광란의 세력이 지지하는 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과연 이 나라가 얼마나 어떻게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면서 퇴행의 길을 재촉하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어질병이 인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보고 싶은 사실을 실제 일어난 사실로 둔갑시키는 데 열을 올려 경쟁하게 될 것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적개심으로 자발성에 의한 평화 대신에 약육강식의 예속만이 살 길이라고 외칠 것이고, 참다운 상호 인격적 삶을 위한 자유 대신에 남을 억누르는 부와 권력에 의한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여겨 추구할 것이고, 가난한 자들은 본래 게으르고 무능력한 자신들의 탓에 그러하니 국가가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강변할 것이고, 일인숭배의 파시즘적인 형태의 종파들이 대세를 이루며 종교 생활을 미신의 늪으로 몰고 갈 것이고, 첨단의 과학기술들을 오로지 경제 성장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 미래의 인간과 지구가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달시키고자 할 것이고, 차기 정권을 잡는 일에 몰두하여 불리한 위치에서 차별받는 뭇 소수자들을 인권과 상관없이 내팽개칠 것이고, 민족의 역사와 미래를 걱정하여 과거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들에 관련해 시비곡직을 제대로 가리고자 하는 노력을 과거에 얽매어 분열을 조장하는 짓이라고 매도하면서 덮어놓고 뭉치자는 파시즘적인 얼빠진 정치놀음을 일삼게 되었을 것이다.  총선 개표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쾌재를 부른 것은 그동안 조금의 양식이라도 있는 자라면 도대체 입에 올릴 수 없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말을 예사로 하면서 미쳐 날뛰던 정치꾼들이 하나같이 다 낙선했다는 것이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씻은 듯 내려가는 것 같았고, 심지어 드디어 해방되었구나, 하는 심정에 이르기까지 했다. 국회의원이란 국민을 대표하는 독자적인 헌법 기관일 정도로 그 어떤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특한 짓에 조금의 여지를 주어서도 안 되는 준엄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직무인데도, 그들은 이를 전혀 망각한 채, 마치 막말의 극단적인 정도가 곧 그들 당에 제대로 충성하고 아울러 국민의 원한을 제대로 풀어주고, 따라서 진정한 정치적 행위를 하는 기준인 양 여겨 광분했다. 몇몇 초선 국회의원들은 도무지 창피해서 국회의원을 더는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진해서 총선 출마를 포기한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저들 국회의원이라는 명함을 앞세운 정치꾼들이 무작한 광화문 세력과 한통속임은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한통속의 선두에 당 대표라는 자가 나서 지휘를 했다.  당 대표라는 자가 정치인으로서 전혀 자격이 없다는 것은 개표하는 밤에 여실히 드러났다. 명색이 당 대표로서 총선을 지휘했다는 인물이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에서 낙선이 확실해지자 간단하게 당 대표직을 사임한다 하고서 그날 밤에 자리를 뜬 뒤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았다. 당 대표직 사임이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었다. 낙선한 자들을 위로해야 하고, 물러나더라도 대참패에 대한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사과한 뒤 앞으로도 백의종군하듯 당에 계속 충성하겠다고 하고서 물러나야 하지 않는가. 어찌 보면 사필귀정이긴 하나 예상치 못한 참담한 모습이었다. 저런 자가 제1야당의 대표였으니, 어찌 국회를 비롯한 정국이 마비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싶었다. 말로만 앞세운 국민이고 당원 동지 여러분이었지, 실상 그의 내심에는 저 자신뿐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해 보였다. 그의 단식과 삭발의 장면이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함께 떠올랐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충동과 광기다. 설혹 대의명분이 정당한 혁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충동과 광기로 돌변한 원한과 복수심에 의해 수행되면,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프랑스 혁명이 그랬고, 러시아 혁명도 그랬다. 우리의 촛불 시민혁명은 원한이나 복수심 그에 따른 충동과 광기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고자 하는 냉엄한 조치로써 대중적인 이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이성의 힘이 반동적으로 날뛰는 충동적인 광기를 눌러 이긴 것이 이번 총선이다.  이로써 이제 더는 저 광신의 무리로 출몰하는 충동과 광기에 의한 정치 행위가 시민 정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되었으면 한다. 물론 전혀 낙관할 수는 없다. 이렇게 정치 지형이 유리한 쪽으로 바뀔수록 오히려 더 경계해야 하고, 더 깊은 성찰의 허리끈을 동여매야 한다. 이제 합법적인 강력한 무기를 갖추었으니,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하여 선진적인 민주국가를 이룩하는 데 진심과 성실을 다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해결되었으면 하는 현안들은 많아 복잡하고 그렇기에 마음은 더욱 성급하다. 언제쯤이면 국가 사회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정도로 흔쾌한 마음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상존한다. 동서 양쪽에서 북쪽을 향한 평화의 철길이 열려 남북으로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가 미국의 간섭에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와중에 분단과 전쟁에서 입은 트라우마와 같은 깊은 상처가 아물어 이데올로기적인 사유가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암시되는 반(反)생태적인 경제 성장을 지양하면서 안정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이루어 빈부귀천의 질곡을 벗어났으면 한다. 돈 벌어 부유하게 잘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인문예술적인 교양의 깊이를 더해 서로가 공유하면 할수록 더욱 풍부해지는 정신적인 삶을 목적으로 삼는 일이 아예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그럴 수 있도록, 특히 거대 금융자본이 세계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크게 완화되었으면 한다. 성별, 인종, 성적 특수성, 계급, 민족 등에 따른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누구나 타고난 신성한 인권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길에서건 카페에서건 어떤 종류의 모임에서건 만나는 사람마다 좋고 힘찬 건강한 긍정적인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특히 A.I. 기술을 비롯한 NBIC의 기술융합, 즉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정보기술, 인지과학기술 등의 융합이 인간 존재를 무시하고 삭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인간 존재의 신비를 축성하는 쪽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서로 인간임을 더욱 다행스럽게 여길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 그리하여 비관적이고 종말론적인 사념을 불식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바람들이 각기 외따로인 것은 아니다. 서로 얽혀 연동한다. 천재일우의 기회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크고 좋은 기회를 맞은 이번 21대 국회의 구성에 크게 기대를 건다. 통속의 정치에 휘둘려 좌고우면하는 일이 더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명하고 성실하고 실천력 있는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국가와 민족의 책사들로 전면에 나서서 흔쾌히 용기 있게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20-06-10 | hrights | 조회: 1186 | 추천: 3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2009년 여성학을 배우면서 정대협 운동이 여성주의운동인가? 민족주의운동인가? 에 대해 학습을 한 적이 있다. 위안부 –성노예라는 말을 당사자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할머니들은 여성폭력의 희생자들이지만, 다른 어떤 여성운동단체들과는 달리 남자들의 지지와 지원이 유난했고, 수요 집회에도 남자들의 수가 여자들의 숫자만큼이나 컸었다. 왜 남자들은 유독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심을 보인 걸까?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도 남자들은 유독 비슷한 관심을 보였다. 이 두 이슈의 배경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복선이 깔려있다. 그리고 구식민지든, 신식민지든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이나 미국이나 식민 지배국가라는 관점이 존재했고, 따라서 위안부 사건과 미군 장갑차 사건은 식민 지배국이 피 식민국을 대상으로 한 멸시와 혐오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전선이란 배열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란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성연대’에 지나지 않았고, 그 국가들은 국경을 초월해서 여성들의 성을 전시에 군인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위안’으로 소모되는 데 기꺼이 합의하였다.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을 제일 먼저 징집한 것도 한국 남자들이고, 끌고 가서 강간의 대상이 되도록 하고 실제 강간한 가해자들도 남자들이다. 그리고 그 남성연대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한 쪽은 외면하고, 권력에 짓눌렸던 다른 한 쪽은 ‘쪽팔려서’ 할머니들 얘기가 나오면 과장된 반응들을 보인다. 과연 할머니들 문제가 일본과 한국간의 문제가 아닌 전시강간당한 여성들의 인권문제로 정확히 논해진 적이 있던가? UN에서 여성의 전시강간 문제를 여성인권의 주요의제로 다루고 있고 한국의 할머니들도 많이 참석하시고 발언하신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전시강간 문제도 한국에만 돌아오면 국가와 민족의 문제로 포섭되기 때문이다. 위안부 사건은 정확히 남성지배에 의한 여성의 성적 착취이다. 이 문제는 어디서나 발생되기 쉽고 발생되고 있는 문제이다. 때문에 전시강간, 전시 성 착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런 일이 왜 발생되는가? 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성의 성을 착취와 노리개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남성연대, 가부장제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논의해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의 말씀처럼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하고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먼저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며 차세대 젊은이들,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동의하고 합의하는 일본인이 많아지고 사과할 줄 아는 일본시민들이 많아질 때, 일본 당국의 사과와 배상이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의 시민들이 모은 기금마저 거부하며, 대화와 타협이 아닌 증오와 혐오로 일본 당국과 일본시민을 대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주장하는 것은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이지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그 한 방편으로서의 전시강간의 인권침해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 담벼락 사진 출처 - 한겨레  민주당이 윤미향 당선인과 정의기억연대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을 ‘친일파’나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의연의 운동이 이들에게는 여성주의운동이 아니라 민족주의운동 프레임에 갇혀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단서가 된다.  5월 12일 34개 여성단체들은 “국내 최초의 미투운동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며 정의연 지지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후 5일 만에 신속하게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직 의혹당사자인 윤 당선자의 충분한 입장발표나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랬다는 것에 여성운동에 몸담았었던 필자로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성운동에서 여성들은 여성운동가/활동가, 회원, 피해당사자 등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공간에 기반한 여성조직에서 여성은 대체로 피해당사자, 회원, 활동가/운동가로 구분된다. 여성인권에 기반한 대다수 여성조직들에서 실제로 활동의 주체는 피해당사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기획, 집행하는 활동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회원들은 자발적 동의자이고, 일 년에 한 번 총회를 통해 사업 및 예산의 기획과 집행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을 통해 의사결정에 참여할 뿐이다. 아니면 세미나 모임이나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거나 전달 받고 대다수는 온라인 소식지등을 통해 소식을 전달받을 뿐이다. 여성조직의 정책의 일차적 대상은 피해당사자들이다. 이들의 경험을 여성문제로 일반화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여성조직의 주된 사업이 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객관성’과 ‘합리성’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폭력은 주로 은밀히 발생함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관적 주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성피해자들의 입장과 관점,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였다. 때문에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경험과 주장을 수용하고 이들이 운동의 당사자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여성조직의 운동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적극 경청하고 개별 피해자들의 의견이 상호간의 의견이나 조직의 의견과 다를 때는 모두가 모여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 피해자를 감싸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들을 소극적이고 두려움에 떨며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관점을 장착해야 가능한 일이다. 피해자들은 ‘남자들의 보호 안에 있어야 하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심신미약자의 위치성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보호만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그 여성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직업과 계층도 다르고, 삶을 대해 온 경험과 피해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를 일원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임파워먼트를 통해 여성운동의 주체로 변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에서는 특히 그러한다. 항간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다시 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하면서 행동은 그렇지 않는 조직들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원칙으로써 고수해야 한다. 다만 피해자들끼리, 피해자들과 조직 간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이견이 발생할 때 문제해결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다양한 고민을 하게 한다. 여성운동 안에서 여성주의운동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가?, 남성들의 민족주의에 기대고 의지하는 방식은 아니었는가? 라는 성찰과, 피해자 중심주의가 다만 구호와 외양으로만 존재하고 실재로는 조직, 단체, 활동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는 않았는가? 라는 고민들. 앞으로 여성운동은 이 문제들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대안을 찾길 바란다.
2020-06-03 | hrights | 조회: 958 | 추천: 4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살며 무당이 되어 본 적이 있다. 진짜 무당을 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무당처럼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하는 일을 했다고 하면 될까?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2007년부터 3년간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조사관을 했다. 위원회는 군 사망사건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되었다. 군 사망사고 유가족과 인권단체의 노력으로 설립된 이 위원회에는 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해 600여건에 달하는 사건이 접수되었다. 진정을 제기한 것은 대부분 가족이었다. 유가족이자 피해자인 그들은 자랑스러운 아들이 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에 대해 국가가 진실을 밝혀주길 바랬다.  그들의 아들들에 대한 사인은 대부분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었다. 사건 당시 작성된 헌병대 수사기록을 보면 자살의 이유는 대개 가족, 애인, 성격문제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당시 군복무와 관련이 없다고 본 그들의 죽음은 국가로부터 명예로운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상이 아닌 일반사망 ‘사상’으로 처리되었다. 가족들은 억울했다. 사회에서 누구보다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나라의 부름으로 군에 갔는데, 자살이라니 웬 말인가. 헌병대의 수사과정도 믿음이 안 갔다. 군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사건을 처리하고 종결하는데 급급했다. 사망의 이유도 석연치 않은데, 헌병대의 처리 과정도 의심을 키웠다. 더구나 천편일률적인 사망 동기와 처리방식은 더 그랬다. 군의문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실제로 강한 의혹이 제기된 사건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 외 많은 사건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의문사가 되었다. 유족들은 자식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닐 것이라고 믿으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조사관이 사건을 배당받고 조사계획서를 작성하며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진정인, 곧 유가족의 진술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진정인이 조사방향과 결과에 동의하는 지 여부는 사건을 종결하는데 결정적인 열쇠였다. 따라서 사건 관련 문서를 찾고, 관계자를 찾아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사고 현장을 방문해 정황을 살피고 단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사관이 제일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진정인과의 소통이었다. 그들이 제기하는 의혹에 따라 조사활동은 ‘타살’ 혐의에 방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난관에 봉착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위원회가 조사한 많은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다. 비록 사망의 유형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원인에 있어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군복무와의 연관성이 상당부분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사망의 유형으로 전공사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더라도 군복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면 ‘진상규명’을 결정하였고, 이후 전공사상 심의를 다시 진행해 공상처리 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문제는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진정인이 자식의 사망을 ‘자살’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헌병대 수사를 믿을 수 없어 또다시 국가에 호소하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유가족에게 다시 자살을 인정하도록 하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고성이 오갔다. 조사관 중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도 생겼다. 유가족 몇몇은 조사결과를 부정하며 위원회 입구에 자리를 깔고 농성에 들어갔다. 어려웠다. 피해자와의 소통은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위원회 사건 중 일부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건은 진정인과 소통하여 조사를 종결하고 잘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역시 피해자와 더불어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때 경험한 피해자와의 관계는 나에게 많은 배움이 되었다. 피해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며,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피해자성이나 피해자다움에 갇혀있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바라보는 자들의 편견이라는 것을, 그리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는 존재여야 한다. 지금 이용수 할머니를 둘러싼 위안부 운동 관련 논란을 보며 그 시절 ‘무당’이 되어 피해자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이어온 30년을 부정하는 현실에 마음 무거운 요즘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이때 함께 뭇매를 맞으며 또 한 고개를 넘는다.
2020-05-28 | hrights | 조회: 899 | 추천: 4
이윤/ 경찰관  93년 흥행에 성공한 ‘투캅스’라는 영화를 보면 ‘취조실’에서 피의자를 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성기 배우가 연기한 조형사는 자해를 했던 피의자를 앞에 놓고 갑자기 타자기에 자신의 머리를 찧어댄다. 이마에 피를 묻힌 채로 ‘아~~ 이자식이 경찰을 때린다!’라고 소리친 후 취조실 벽에 스스로 몸을 부딪치며 계속 ‘으아아~’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구른다. 피의자는 왜 그러시냐며 어쩔 줄 모른다. 결국 조형사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결한다.  예전에 경찰을 다룬 한국 영화들은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아 현실감이 부족했다. 위 장면의 취조실은 현실 경찰서에는 없는 것이었다. 웃자고 만든 영화를 다큐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타당도가 부족한 장면들은 감상을 위한 몰입을 방해했다. 그 와중에도 실재하지 않는 그 취조실이 나에게는 참으로 부러웠다. ‘우리 경찰서에도 저런 조사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90년대 중반 경찰서에는 조사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없었다. 30명이 넘는 수사관들이 함께 사용하는 널찍한 조사계나 형사계, 또는 5~6명이 사용하는 강력반 사무실에서, 평소 사무용으로 사용하는 책상 앞에 피의자를 앉히고 조사를 했다. 내가 근무한 조사계 사무실은 명절 전날의 재래시장처럼 늘 시끌시끌했고, 베테랑 수사관 분들의 구형 크로바 타자기 소리가 총성처럼 귀를 때리던 곳이었다. 수사관과 조사받는 사람(고소인/피고소인 불문) 간에 난타 공연하듯이 책상을 치며 고성이 오갔다. 큰소리가 아니면 서로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사람이 많은 만큼 꾸리꾸리한 냄새는 코를 괴롭혔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던 94년 여름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버티면서 땀에 젖은 타자기 자판을 두드려야했다.  고통 받는 나의 오감에 연민을 느끼며 투캅스처럼 타자기를 이용해서라도 그 곳을 피하고 싶었지만, 내 타자기는 사비로 구입한 전동타자기여서 아깝기도 하고 피도 잘 안날 것 같아서 차마 실행을 못했다. 때로 내 앞에 앉은 간통사건 피의자와 민망한 문답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는 신용카드 대금을 못 갚아서 고소된 젊은 여성이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피조사자 간 비밀도 유지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이런 환경에서 조사받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좀 쾌적하고, 조용하며, 비밀도 유지되는 조사실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나의 기도가 통했는지 2006년 전국 경찰관서에 녹음과 녹화(무려 디지털 방식)가 가능한 ‘진술녹화실’이 설치되었다. 녹화가 가능하므로 수사관이 타자기에 자기 머리를 찧어대면 당연히 나중에 탄로가 나고, 폭행, 폭언, 협박, 회유도 어려우며, 조용하고 차분한 대화 속에 상대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전략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진술녹화실은 피조사자가 거짓으로 수사관에게 맞았다고 하거나, 하지도 않은 욕을 들었다고 생떼 쓰는 것으로부터 수사관을 보호할 수도 있다. 당시에 직접 수사하는 부서에 근무하지 않았던 나는 그런 멋진 조사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수사관들이 부러웠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진술녹화실은 수사관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어서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검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좀 이상한 성향인건가? 혼란스러웠다.  2009년 수사관들에게 왜 진술녹화실 사용을 꺼려하는지 설문조사를 해 보았는데,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이 ‘참여인 대동 등 준비절차가 번거롭다’였다.(첫 번째는 ‘수사관의 언행이 부자연스러워진다’였다) 진술녹화실에서도 피의자를 신문할 때에는 담당 수사관 외에 다른 수사관이 참여자로서 입회해야 한다. 수사관들은 각자 자신의 사건을 수사하느라 바쁜데, 자기 사건을 놓아두고 녹화실에 참여하고 있으면 그 시간 동안 고스란히 일이 쌓이게 된다. 그래서 차마 내 사건 피의자 신문하는데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기가 매우 어렵다. 서로 품앗이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녹화실 사용 시점에 참여자에게 다른 일이 없을 때만 가능하다. 참여자를 구하기 어려우니 진술녹화실 사용을 멀리하게 된다.  형사소송법은 제243조에서 피의자 신문 시 담당 수사관 외의 사법경찰관리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신문 과정에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신문하는 장소에 변호인도 아니고 다른 수사관이 참여한다고 해서 임의성이 얼마나 많이 확보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애초 이 조항에서 참여자의 역할은 기록관 내지 수사보조자일 뿐이라는 연구도 있다.  설혹 이로 인해 임의성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녹화장치에 의한 객관적 감시가 다른 수사관의 참여보다는 훨씬 임의성 보장에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진술녹화실 내 피의자 신문에 대해서는 참여규정의 예외를 둠으로써 되도록 많은 수사관으로 하여금 진술녹화실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피의자 인권을 더욱 보장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조서에는 담기지 않는 진술의 뉘앙스와 분위기, 진술의 세부사항, 수사관과 피의자의 태도 및 표정/말투까지도 녹화기기는 온전히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진술녹화실 사용이 많을수록 피의자 인권은 더 많이 보호받게 될 것이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중요한 장치인 진술녹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상 피의자 신문 시 참여규정을 삭제하거나, 예외규정을 두거나, 참여가 의무로 되어 있는 조항을 ‘참여하게 할 수 있다’는 재량조항으로 변경하는 법률 개정작업이 필요하다.
2020-05-20 | hrights | 조회: 1523 | 추천: 2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드디어 지역화폐가 호적에 올랐다. 그동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았던 지역화폐가 지난 5월 1일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됐다.  다소 호들갑스럽게 지역사랑상품권 법률안 통과를 경축하는 이유는, 지난 2~3년여 사이 지역사랑상품권이 물밀듯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들에 대응하는 법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지역사랑상품권 관련 법률안은 사실 일찌감치 만들어졌지만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방치됐었다. 일 안하는 국회의 정석을 구현한 20대 국회의 사정을 떠올려보면 그럴 만도 했지만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전격적으로 통과된 배경에는 코로나19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이 있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수단 중 하나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이 검토되면서 시행을 앞두고 관련 법 제정의 필요성이 역시 긴급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국회도 일을 할 수 있다! 지자체의 자율 강조한 제정 의미  법률안 원안의 제안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상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조례에 근거해 발행․유통하여 지역 내 영세․중소상공인의 소득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고 있음’으로 명기하며 지역사랑상품권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지목했다.  이어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상품권 사업은 법률의 근거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어 상품권 발행, 유통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바, 상품권을 불법으로 환전(일명 상품권 깡)하거나 무리한 상품권 유통 활성화 정책으로 인해 상품권을 지방공무원 보수로 지급하는 불법행위가 나타나는 등 명확한 법적 근거 및 체계적, 제도적 지원의 부족으로 인해 지역사랑상품권 이용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존재함’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퍼져나가며 특히 언론이 문제로 지적했던 ‘깡’ 행위에 대한 제재를 제정목적에 명확히 명시한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의 부정유통은 대형마트, 대기업프랜차이즈점 등 지역 내 소비로 생겨난 부가 외부로 빠져가는 통로에서는 쓰이지 못하게 한 대신, 골목가게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소비자 인센티브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을 환금할 수 있는 가맹점주가 친인척을 동원해 물건을 판매하지 않고 바로 환금을 한 후 차익을 나눠 갖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사업자등록만 한 페이퍼 컴퍼니가 가맹점으로 신청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깡 행위를 하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마침 과태료 2천만 원이라는 명확한 제재가 법률에 명시됐고,(위반행위 조사 거부, 방해 또는 기피도 500만 원 이하 과태료) 한국 조폐공사의 상품권 관리 프로그램이 구축됨에 따라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 하나가 치워진 셈이다. 앞으로 깡 행위의 유혹거리를 던져준 과다한 인센티브와 범위를 잘 조절한다면 부정유통은 해소될 것이다.  지역상품권이냐 지역화폐냐를 놓고 벌어진 명칭 논란도 해소가 됐다. 법률 제2조(정의) 제1항은 ‘지역사랑상품권이란 지역상품권, 지역화폐 등 그 명칭 또는 형태와 관계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일정한 금액이나 물품 또는 용역의 수량을 기재(전자적 또는 자기적 방법에 의한 기록을 포함한다)하여 증표를 발행, 판매하고, … 물품 또는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유가증권, 선불전자지급수단, 선불카드를 말한다’라고 규정했다. 명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이제부터 이 글에서는 지역화폐라고 기술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역화폐 운영의 ‘주체’를 명확히 한 점이다.  법률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발행하는 상품권의 발행, 유통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규정하되 그 운영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등에 위임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사랑상품권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임’을 천명했다.  법률을 정해 지역화폐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고 유통질서 교란을 막을 방도를 구축한 뒤, 세부 운영은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한다는 뜻이다. 본질을 잃는 순간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법률의 제안이유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이 밀려왔다. 그동안 마치 통화 질서를 혼란케 할 불령선인처럼 취급받기도 한 지역화폐가 당당하게 양지로 나온 것을 넘어 다가올 자치분권시대에 조응하는 자율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내일’(Demain, Tomorrow, 2015)이라는 영화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영화로 알려졌다.(유명한 사람 많이 나온다. 네이버 영화 광고문구가 ‘슬기로운 지구시민을 위한 솔루션’이다^^)  영화에서는 버려진 땅에 농사를 짓는 디트로이트 시민들의 아이디어, 화석연료 없이 전기를 생산하는 코펜하겐의 혁신,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환경 정책, 시민참여로 빈곤을 퇴치한 인도 쿠탐바캄의 기적, 행복한 어른을 키워내는 핀란드식 교육 철학 등 인류가 직면한 농업·에너지·경제·민주주의·교육 문제에 대해 유쾌한 해답을 만날 수 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몇 번을 볼 때마다 자극을 받는다. 같은 이슈를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영감이 가득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유럽 각지의 지역화폐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영화는 지역화폐를 단일재배를 통해 무너지는 생태계와 접목해 비교한다. 단일재배가 병과 화재에 더 취약하고 그로 인해 생태계 전체에 교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단일화폐 역시 역사적으로 수많은 통화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당시 유럽 각 국가가 입은 타격은 심대했고, 이후 유럽연합 차원에서 지역화폐 도입을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생태계의 종 다양성이 중요한 만큼 통화 역시 단일화폐를 보완하는 지역화폐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영화에서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스위스의 유명한 지역화폐 ‘위어’(WIR) 운영자의 설명이었다. 지역화폐가 단일 법정화폐의 대안이 되면 장점을 잃게 되고 ‘같은 병’에 걸린다는 지적이다. 대체되는 순간 구체제가 되고 본질을 잃으면 결국 사라진다. 만일이라는 가정이 달린 전제이지만 패권적 관점에서 지역화폐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결과일 것이다. 사진 출처 - 영화 '내일' 포스터 지역화폐 발전의 3가지 조건  우리나라의 지자체 주도 지역화폐는 최근 코로나19 정국을 맞아 확산의 바람을 더 세게 타고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과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모두 지급 형태 가운데 하나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빠른 확산도 좋지만 동시에 이런 저런 우려를 낳는다. 속도도 좋지만 방향을 잃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름 정리해본 3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ㅇ [지역성] 지역화폐(Local Currency)는 해당 지역 또는 공동체의 특성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ㅇ [거버넌스] 지역화폐의 이해관계자들이 지역화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ㅇ [지속가능성]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참여자들이 지역화폐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 사용해야 한다.  먼저 ‘지역성’은 지역화폐의 도입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 내 소비의 부가 역외로 유출하는 것을 막고, 그렇게 남게 된 소비의 부가 지역 내에서 균형 있게 배분되는 순환경제를 이루기 위한 것이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도입한 지역화폐의 최고 목적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모델이 적립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시흥시는 대기업 편의점이 시흥화폐 시루의 대상 가맹점이 아니다.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상 편의점 수만큼 동네 슈퍼마켓이 많기 때문이다. 또 주유소도 대상이 아니다. 서울 및 수도권 인근도시로 출퇴근하는 시민이 많은 관계로 대기업 계열사이기도 한 주유소로 시루 소비가 쏠릴 것이란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지역과 공동체에 맞는 모델, 부합하는 가맹점 기준은 지역화폐 운영의 핵심이며 지역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지자체의 지역화폐 실적경쟁이 이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지역화폐의 유통 규모보다 실제 지역화폐 결제가 이뤄진 가맹점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두 번째 ‘거버넌스’는 첫 번째 조건을 뒷받침하는 기본 전제이다. 시흥에서 편의점과 주유소가 시루 가맹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결정은 시루의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와 가맹점, 행정이 머리를 모아 결정된 것이다. 시흥화폐 시루 운영의 최고 심의, 의결기구인 ‘시흥화폐 발행위원회’는 민간의 위촉위원 19명, 시장 포함 행정의 당연직 위원 10명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이다. 시루와 관련한 주요 결정은 발행위에서 이뤄지며 분기 1회 전체회의, 월 1회 분과(공동체분과) 회의를  가진다.  만일 행정이 지역화폐 운영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있다면 다양한 정치적 풍향에 휩쓸려 흔들리다 결국 부러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역화폐 정책이 시장·군수가 바뀌자 바로 ‘일몰사업’이 된 경우가 부지기수다.(그러다 최근 다시 도입 한 지자체도 있다)  세 번째 ‘지속가능성’은 지역화폐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최근의 지역화폐 붐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만 집중적인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런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에 돈이 돌게 하는 이유가 뭘까?  곳간에서 인심 나듯 지역경제가 살면 동네 이웃 간 웃음꽃이 핀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게 된다. 사회적자본이 구축되고 확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화폐의 본질이다.  그런데 속도와 성과를 좇다보니 시민들이 높은 인센티브 혜택의 소비쿠폰 정도로 지역화폐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봐야 할 때다. 너무 늦기 전에, 나와 이웃이 모두 웃는 협력적 소비, 공생과 공존을 위한 도구로 지역화폐를 자리매김 시켜야 한다.  현재 약 190여개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도입하거나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연 3년 뒤에는 얼마나 활성화되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기본적인 전제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유행이 될 수도 있다. 지역의 자율성은 뒤로 한 채, 패권적 관점에서 휘두르려 한다면 역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성과의 압박에서 벗어나 본질을 잊지 않고 꾸준히 기반을 닦는다면 무엇보다 든든한 공동체의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2020-05-14 | hrights | 조회: 850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