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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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출퇴근길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 한쪽으로 항아리 가게가 있고 앞으로는 고물상이 있다. 그 공터는 대형버스며 택시, 화물차들의 주차장이었다. 공터를 끼고 골목 맞은편에는 ‘시골백반’의 상호를 단 허름한 식당이 있다. 식당 아주머니 음식 솜씨는 모르지만 생명을 키워내는 솜씨만은 탁월했다. 겨울 지나 코끝에 따스한 바람이 묻어나기 시작할 즈음이면 공터를 둘러싼 울타리 아래로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고무다라 화분이 이십여 개가 넘었다. 삐죽삐죽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피고 지는 꽃들은 봄을 지나 여름이면 무성해졌고, 가을 넘어 겨울 문턱에 다다를 때까지 피고지곤 하였다. 아주머니의 취미생활은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한테 가지각색의 꽃을 보는 재미를 주었다. 그뿐 아니라 아주머니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어떻게 생명을 길러내는지도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의 화분이 놓인 울타리에서는 진남보랏빛의 나팔꽃이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 때까지 마치 배경을 이루듯 피고 졌다. 2.  고물상이 있는 도로가로는 오래된 벚나무 여남은 그루가 있었다. 그늘진 곳에서 피는지라 늦게 핀 벚꽃은 색도 진하고 오래갔다. “이곳 벚꽃은 다른 곳보다 색이 진하구나~” 벚꽃 피는 무렵이면 일부러 꽃구경 나간 엄마는 늘 그렇게 말하곤 하였다. 그러다 먼저 들어선 고층 빌딩에 벚나무 서너 그루가 먼저 베였다. 혹시라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지기를 바랐다. 그래도 대여섯 그루 남은 벚나무는 봄이면 꽃비를 날릴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여름이면 너른 가지를 펼쳐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햇살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었다. 고물상 주변을 환하게 밝히던 벚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둥치가 크고 우람하였다. 새벽녘으로 그곳을 지나다 보면 고물상 문 열기를 기다리며 밤새 폐지를 모아온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서는 고단한 얼굴마저 환해 보이곤 하였다. 사진 출처 - 경남신문 3.  먼저 항아리 가게가 자리를 옮겨 이사를 갔다. 그래도 공터는 오랜 시간 주차장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고물상이 이사를 갔다. 그러고도 공터는 한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작년 여름, 식당 아주머니가 울타리 아래 있던 화분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화분을 정리하던 아주머니 딸이 “우리 엄마 저 화분 치우고 우찌 사노~ 이제 어떡하냐! 어떡하냐?”며 친구한테 넋두리를 하였다. 그 말을 듣던 내 가슴 한쪽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서늘해졌다. ‘시골백반’ 식당은 그러고도 또 한동안 장사를 했다. 그리고 울타리 아래 있던 화분 몇 개가 아주머니 가게 앞으로 옮겨와 꽃을 피웠다. 그렇게 한 철을 보내고 겨울 즈음에 ‘시골백반’ 식당은 문을 닫았다. 같은 건물에 있던 미용실이며 치킨 가게가 문을 닫은 지는 더 오래전이었다. 4.  지난겨울 공터는 울타리를 걷어내고 담을 쳤다. 39층의 건물이 들어선다는 공지가 나붙었다. 울타리를 타고 오르던 나팔꽃은 자취를 감췄고 공터를 밝히던 벚나무 대여섯 그루도 베어졌다. 봄이면 꽃비를 날리고, 여름이면 그늘을 드리우며 도로를 환히 밝혀주던 벚나무는 이제 한 그루도 남지 않았다. 그곳에, 40층이 넘는 건물 옆으로 또 다른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 울컥, 가슴 한쪽이 또다시 서늘해진다. 5.  어릴 때 세 살던 우리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으로 우물이 있었다. 우물 옆으로는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 아래로는 봉숭아며 맨드라미, 과꽃 들이 피고 졌다. 담벼락 아래로는 해바라기가 피어올랐다. 여름이면 엄마는 마루에 앉아 세 자매의 손에 봉숭아물을 들여 줬는데, 그때 손가락을 감싼 것은 커다란 피마자 잎이었다.  우물이 있는 그 집엔 세 가구가 살았다. 안쪽으로 주인집과 그 옆으로 초등학교 선생님이 세 살았고, 대문 앞으로 우리가 살았다. 시골에 일이라도 생기면 엄마는 우리를 주인집 아줌마한테 맡겼다. 아줌마는 엄마가 없는 동안 우리를 먹이고 재워 주곤 하였다. 그런 우리 집 옆으로는 쪽문이 있는데 그 쪽문을 열고 나가면 공터가 있고, 주욱 달려나가면 논밭이 나왔다.  겨울이면 집집마다 치운 눈이 공터에 산처럼 쌓였다. 동네 오빠들이 산처럼 쌓인 눈을 다져 굴을 만들었다. 그 굴속에서 노는 게 우리의 겨울 놀이였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는 볏짚 낟가리가 올라갔다. 숨바꼭질할 때면 숨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하루종일 뛰어놀다 해거름 녘이면 온통 볏짚을 옷에 묻힌 채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정월 보름에는 깡통에 나뭇가지를 넣어 불을 붙여 휙휙 돌리는 쥐불놀이를 하던 곳도 그 논이었고, 한쪽에 물을 가둬 얼려 썰매를 타던 썰매장도 그 논이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씀바귀와 냉이를 캐던 곳도 그 논밭이었다. 6.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부자도 마당이 없는 집에서 산다.”  벚나무 사라진 곳에서, 나 어릴 적 살던 집이 생각났다. 요즘이야 ‘대문, 마당, 우물, 장독대, 볏짚 낟가리, 쥐불놀이’가 무엇인지도 모를 텐데, 그저 넋두리인 것을. 많은 사람이 꽃구경을 가고 단풍놀이를 가고 물놀이를 가는데, 예전에는 그냥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하던 놀이였다는 것을, 아니 그냥 삶이었다는 것을 고층 건물이 들어설 담 아래서 곱씹어 봤다.  부동산 논란, 아니 광풍인지도 모를 이즈음에, 내가 사는 집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마주친 ‘BEST HOME’, ‘元家’라고 표기된 빌라 한 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말은 곧 정신이라고도 하고! 우리는 HOUSE가 아닌 HOME이어야 할 집을 그저 자산의 하나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비록 마당은 없더라도 집은 ‘HOUSE’가 아닌 ‘HOME’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집 이름. 내가 사는 집 이름이 그냥 아파트면 남한테 밀리니 캐슬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이마저도 촌스러운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사는 집은 집[HOME]이기를 바란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졌다고들 하는 이 시간에 말이다.
2021-05-10 | hrights | 조회: 908 | 추천: 4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지난달 24일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통과되었지만, 그 전날인 23일 온라인게임을 통해 알게 된 여성이 연락을 받지 않고 만남을 거절하자 그와 여동생, 어머니까지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만 최대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인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처벌받게 될 뿐이다. 스토킹으로 인한 범죄는 최대 징역 5년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나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9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법이 제정된 이후인 4월 18일에도 스토킹 범죄는 발생하였다. 직장동료의 집을 찾아가 귀가하던 직장동료를 잔인하게 공격한 사건이다. 범인은 다음날 바로 잡혔고 현재 구속상태에 있지만, 9월 이전에 판결을 받는다면 이 또한 ‘경범죄’로 끝나고 만다. 이렇듯 스토킹은 벌금 10만 원 이하의 경범죄로 취급받아왔으나 실제 범죄의 내용은 살인 등 중대범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3년 312건, 2015년 363건, 2018년 544건, 2019년 583건으로 스토킹 범죄는 증가추세에 있다. 또한, 한국여성의전화의 2020년 분석에 따르면 살인, 방화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스토킹 범죄의 경우, 50%가 전/현 배우자(13.5%) 또는 전/현 애인(36.5%)이며, 직장 관계자가 12.3%, 동네 사람 및 지인이 5.9%, 학교 관련자가 3.6%, 의료기관 및 수사기관이 0.9%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다음의 사례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김홍일 사건은 2012년 울산에서 발생한 것으로 주택에 침입해 자매를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 언니를 따라다니고 집착했던 그는 “이별 통보에 분노해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대낮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헤어진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도 피해자가 이별을 요구하자 협박과 위협을 일삼다가 끝내는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다. 2019년 윗집에 사는 미성년자를 따라다니며 그 가족에게도 욕설과 위협을 일삼았지만, 경찰은 ‘사소한 시비’라며 돌아갔고 피해자 가족이 협박 증거 영상을 제출한 후에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신고 후 약 한 달 뒤, 여성 5명을 살해했다. 또한, 2020년 5월에는 식당을 운영해 온 60대 여성이 40대 남자 손님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3개월 동안 100여 통이 넘는 전화와 문자를 발송했고, 사건 전날 식당에서 행패를 부리는 가해자를 신고했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풀려난 가해자는 피해자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다 미리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사진 출처 - 뉴스1  이 사건들의 공통성은 미리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는 점이다. 미리 동선을 파악하고, 협박과 위협을 통해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범죄 도구를 준비하고,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살해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또 하나 위의 사례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경찰의 초동대응이 둔감했다는 점이다. 가정폭력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토킹 또한 친밀한 관계의 치정사건쯤으로 치부되어 버리기 쉽고, 이로 인해 막을 수 있었던 강력범죄의 초동대응에 실패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스토킹을 경범죄로만 다스려온 법체계를 통해서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폭력에 둔감한지를 알게 하는 지점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여자의 NO는 YES!”라는 왜곡된 남녀관계에 대한 통념 역시 이러한 범죄를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 아니 조장하는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왜곡되고 폭력적인 남녀관계의 결과물인 것이다.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여성의 거부를 불쾌하게 여기는 문화와 정서는 여성이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이 없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인형이거나 물건으로 대상화하는 관점에서 발현된다. 이들에게 여성은 성적 판타지를 실현할 대상/물건일 뿐이다. 그리고 그 물건은 자신의 소유일 뿐이다. 여성에 대한 모든 범죄나 폭력이 여성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보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관점에서 비롯되지만,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해는 여성의 생사여탈권을 남성이 가져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와 제도에서 비롯된다. 스토킹법이 처음 발의된 것은 1999년이다. 그러나 22년 만에야 제정이 되었다. 그 22년 동안 앞의 사례처럼 수많은 흉악범죄가 발생했다. 그러나 드러나지 못한 사건들은 더욱 많을 것이다. 지난해 스토킹 범죄는 4500여 건이지만 이 중에 10%만이 처벌되었고, 약 90%에 해당하는 사건은 현장에서 종료되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경찰 스스로 경미한 사건으로 판단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킹은 피해자의 의사나 경찰의 판단과 무관하게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범죄이다. 그러므로 현행법안에 남아있는 ‘반 의사 불벌죄’ 조항을 폐기하고, 오히려 스토킹 범죄의 초기대응과 처벌을 강력히 할 필요가 있다.  늦었지만 ‘스토킹 범죄 처벌법’의 제정을 환영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법이 제정되었다고 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종류의 범죄의 심각성에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만큼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역으로 보여 주고 있다. 법은 항상 현실보다 한발 늦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실효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사법당국의 실천이 강조되어야 한다.
2021-04-28 | hrights | 조회: 706 | 추천: 2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옥수동 오름길에는 미얀마 대사관 무관부가 있다. 지하철 3호선 옥수역 4번 출구로 나와 오름길을 따라오면 옥정초등학교가 나오고, 조금 더 가다 보면 왼편 5층짜리 건물 옥상에 미얀마 국기가 보인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그곳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다.  건물 명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Embassy of 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office of The Military, Naval and Air Attache 미얀마 대사관 국방 및 해군, 공군 무관부’  미얀마 대사관은 이곳으로부터 2km 정도 떨어진 한남동에 있다. 왜 대사관과 무관부가 따로 떨어져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 의문이 해소됐다. 이곳이 쿠데타 세력인 군에서 파견한 이들이 근무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얀나잉툰이 얼마 전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이 무관부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유학생이나 노동자를 감시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독재정권 시기 안기부나 기무사가 행했던 사찰업무 아니던가. 세상에나! 미얀마 쿠데타 세력의 한국 본거지와도 같은 이곳은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 상황과 민주주의를 위한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점차 주목받는 곳이 되었다.  시민 700여 명 이상이 희생된 미얀마 상황 속에 지난 4월 24일 아세안(ASEAN) 중재로 반쿠데타 진영과 군부가 대화를 하겠다는 깜짝 합의문이 나왔다. 군부가 여전히 폭력을 행사하고 시민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어 합의가 성실히 이행될지 여부는 앞으로 지켜봐야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미얀마에 대한 지지와 연대는 꾸준히 이어가야할 것이다.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을 향한 한국 시민들의 연대는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불교, 기독교, 원불교, 가톨릭 등 교계에서는 미얀마의 평화를 기원하는 종교행사가 열리고, 언론사는 캠페인과 기획기사를 통해 응원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모금활동, 미얀마 민주주의 지원 사진전도 열렸다. 11개 영화제가 미얀마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선언을 한 것은 물론 ‘Everything will be OK’라는 곡을 노래한 한국의 힙합 가수는 음원 수익금을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전액 기부하겠다고 나섰다. 타국의 폭력적 상황에 대해 이렇게 각계각층의 지지와 연대가 두루 이뤄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우리도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평화연대에 동참하고 있다. 옥수동 오름길 끝에 있는 한베평화재단은 4월부터 미얀마 대사관 무관부 앞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어쩌다 한 동네에 같이 있다는 인연으로 이것만큼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 무관부 앞 말고도 주한미얀마대사관, 미국대사관, 청와대 앞 등 곳곳에서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1인 시위에는 한베평화재단 회원과 시민들이 동참하고 있다. 지금까지 성동구 시민, 목사, 학생, 교수, 애니메이션 창작자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로 소식을 보고 동참한 시민 등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 때는 우리와 무관하게 자신이 만든 피켓을 가지고 1인 시위를 하러 온 시민을 만나기도 했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응원하는 한국 시민들의 열기가 느껴졌다. 사진 출처 - 필자  동네 사람들은 몰랐다. 이곳이 미얀마 무관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응원의 손짓을 보내며 지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 “미얀마 사람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그리곤 “남의 나라 일에 우리가 간섭해서야 되겠느냐”,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느냐”는 질문도 따라온다. 어느 날은 누군가 무관부 건물에 던진 달걀 한 알로 경찰과 정보과 형사가 들이닥쳐 시끌시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시민들의 반응은 지지와 격려가 대부분이었다.  옥수동 오름길에는 한베평화재단이 있다. 평화의 연대에 동참하고자 하는 분들은 언제든 그 길을 오르시라.
2021-04-27 | hrights | 조회: 850 | 추천: 2
이윤/ 경찰관  나는 간이 콩알만 하다. 그래서 크게 한탕보다는 가늘고 길게 가는 걸 선호한다. ‘고’보다 ‘스톱’을, ‘레이스’보다 ‘콜’을 선택하기에 고스톱이나 포카 판에서는 잘해야 본전이라 웬만하면 끼지 않는다. 10년여 전 친구 권유로 주식을 샀었는데, 가격 등락이 계속 신경 쓰여서 그냥 조금 손해보고 다 팔아버렸다.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3배 이상 올랐을 텐데...  빚을 내기보다는 얼마 안 되는 공무원 봉급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왔다. 그런 이유로 19년째 무주택자다. 평생 무주택자가 아닌 이유는 IMF 경제위기 때 전세 살던 신혼집이 경매에 넘어가 세입자인 내가 울며 겨자 먹기로 경락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 집도 3년 후에 팔았고, 이후 쭉 전세를 살고 있다. 지금 나는 집도 없고 빚도 없는 쌍무자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관점에서 보면 나는 무능력의 표상이다.  나 같은 성격이 공무원에 어울린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 왔다. 특히 경찰관은 약소한 금품 유혹이 잦은 직종이다. 겨우 몇십만 원에 퇴직금과 연금을 포기하기엔 내 간에 오는 부담의 크기가 우루사 한 통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지금까지는 가늘고 길게 잘 살아왔다.  그런데 모든 공무원이 나와 같지는 않은가보다. 몇억씩 대출받아 개발 계획이 나오기도 전에 토지, 특히 농지를 사다니. 그건 상위 0.1%에 속하는 그릇의 간을 가지고 있거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인생 역전의 통 큰 베팅을 한 사람들을 보면 그 호연지기에 괜스레 내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신의 직무와 지위를 이용하여 큰 돈을 도모하는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옛날 공무원들이 뜯어먹은 삥 쯤은 그들의 농지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묘목 한 두 뿌리 값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공직자에게 재산등록을 하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의 불만이 많다는 기사들을 보았다. 재산등록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93년부터 무려 28년간 재산을 등록해왔고, 등록할 재산이라야 전셋집과 자동차 한 대, 은행예금뿐인 나로서는 그저 무덤덤하다.  경찰은 처음부터 경사 계급 이상이 재산등록 대상이었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연말정산과 함께 매년 초에 찾아오는 상당히 번거롭고 짜증나는 행사였다. 전세 계약서, 통장, 보험금 납입 영수증 등을 모두 사본을 첨부하여 수기로 신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는데, 할 때마다 나 같은 하위직까지 매번 이렇게 가난을 신고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간편하게 클릭 몇 번으로 내 재산변동 사항을 체크할 수 있고 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 쉬워진 만큼 그다지 불만은 없고 1년에 한 번 내 재산변동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간이 작은 만큼 조직에 순종적이고 적응도 잘 하니 천생 공무원이다. 나에겐 어차피 큰 돈 생길 일은 없지만, 어쩌다 하늘에서 돈벼락 맞는 상상을 하다가도 재산등록 할 때 그 돈의 출처를 뭐라고 적어야 하나 하는 쓸데없는 고민이 자동으로 생기는 걸 보면 이 제도가 가진 부패 예방 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겠다.  재산등록 제도가 공무원들의 모든 부패를 걸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벤츠 여검사나 스폰서 검사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차명 은닉한 재산이나 친구가 대납해준 오피스텔 임대료 등은 재산등록 시스템이 미리 밝혀내지 못한다. 96만 원짜리 불기소 세트도 당연히 찾아낼 수 없다. 마시고 논 것까지 등록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일반적 수준 이상 재산 증감이 있을 때 그 사유를 소명해야 하는 찝찝함만으로도 수억 원씩 하는 부동산 투기는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인천일보  논어 위정편의 ‘錄在其中’이라는 어구를 나는 다음과 같이 멋대로 해석한다. ‘굳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재테크를 하지 않더라도 공직자로서 직무에 충실하고 가치 있는 일에 주력하면 재물은 저절로 따라서 온다’라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경쟁과 배금주의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공무원까지 이해충돌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그 즐거움의 노랫소리에 맞춰 원망의 소리도 높아질 것이다(歌聲高處 怨聲高).  나에겐 감히 도로시 데이처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줄 용기는 없다. 그래도 그녀의 “우리 모두 조금씩 더 가난해지도록 노력합시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서 기꺼이 벼락 거지의 길을 가고자 한다.
2021-04-07 | hrights | 조회: 1343 | 추천: 22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지난 2012년에 시작해서 전 세계적인 지역화폐 모범도시로 일컬어지던 영국 브리스톨시의 지역화폐 브리스톨 파운드가 얼마 전부터 유통을 중단했다.  브리스톨 파운드가 미친 영향은 컸다. 특히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지역화폐 도입을 검토할 때 항상 거론되던 사례였다. 기존 법정화폐와 동일한 가치로 환전이 가능하면서도 공동체 경제를 지키기 위한 목표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적지 않았다. 시가 지원을 하되 운영은 민간영역이 담당하는 시스템은 지역화폐의 대안이 될 만했다.  하지만 가맹점 관리 및 운영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코로나19 시국이라는 대외변수도 있었지만, 정책 또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재정에서 파열음이 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구글  우리나라도 이미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미도입 지역을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여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어쩌면 예고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지역화폐의 특징은 지자체가 적극 나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민간의 공동체형 지역화폐와 별도의 트랙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난 1996년 충북 괴산에서 먼저 시작된 지역사랑상품권은 2018년까지 60여개 남짓한 지자체에서만 운영되고 있었다. 명색만 유지할 뿐 사실상 유통이 안 되는 지역화폐도 많았다.  그러나 2019년 정부가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이를 타개할 정책을 찾다가 지역화폐 활성화에 눈을 돌리면서 불과 2년여 만에 지역화폐 전성시대란 기사제목이 붙을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불붙기도 했는데, 이와 별개로 이렇게 지역화폐가 활황을 누리는 것은 유통촉진을 위한 ‘인센티브’ 때문이라는 의견에 반론이 없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에서는 못 쓰고 지역 골목상권에서만 쓸 수 있는 불편한 돈이기 때문에 재정을 들여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인센티브의 규모가 이제 ‘10% 할인’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것이 폭발적인 성장의 견인차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높이 날수록 떨어질 때 더 아프다.  정부는 2019년 지역화폐 활성화 방침을 세우고 첫해에는 전국 지역화폐 발행액 목표 2조원을 수립했다. 2년 뒤인 2021년엔 15조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10% 인센티브의 8할이 정부재정이다.  정부는 애초 4년간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원을 예고했다. 2022년까지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역화폐가 이미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변수도 크다. 어쨌건 언제까지 인센티브를 정부 재정으로 이어갈 수는 없다.  만일 정부 재정지원이 끊어지게 된다면 각 지자체의 지역화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시흥시청 지역화폐팀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전화내용이 있다. ‘10% 언제까지 해요?’ 어제는 이런 전화도 받았다. ‘10% 안 하면 누가 지역화폐 사용해요.’  ‘원래부터 소비쿠폰이었어’라고 지역화폐의 역할을 규정하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으면 할 말이 없다. 지역화폐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함이며 이를 통해 지역 내 사회자산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은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마도 10%의 유혹이 없어진다면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는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이제라도 달콤한 인센티브 없이도 굴러가는 지역화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공동체 경제의 선순환을 위한 지역화폐 사용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고 싸운다. 지난 30여 년간 별다른 지원 없이 공동체형 지역화폐를 일구기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면구스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와중에 공문 하나가 떨어졌다. ‘지역 차원의 4차 산업에 대응하고자 새로운 산업기회 창출, 사회적 취약계층 포용, 지역 현안 효과적 해결 등을 위한 지능 정보화 기술 기반의 지역화폐 활성화 우수사례 평가…’ 읽기도 숨차다.
2021-03-31 | hrights | 조회: 1139 | 추천: 4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코로나19 사태에 휘말려 누구를 만나기 위해 어디로의 외출조차 쉽지 않다. 더군다나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닐 수 있는 법적 노인이 되고 보니 더욱 집에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바람을 쐬지 않을 수는 없다. 동네에 넓고 깔끔한 카페가 생겼다. 거기 평소 좋아하는 에스프레소의 맛이 그럴듯하다. 진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미루었던 책을 읽기도 하고, 그동안 거의 실행한 적이 없는 육필로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글을 거의 컴퓨터로 썼고 간단한 메모조차 폰의 메모장을 이용했다. 그런데 해마다 인권연대에서 보내오는 수첩을 활용해 쓰다가 빈칸이 채워져 새로운 수첩을 사서 볼펜 등으로 육필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오랜만의 육필 운용은 마치 잃어버린 분신 하나를 찾은 듯 신선했다. 그러던 중 아래의 글을 쓰게 되었다. 자유롭게 마음 이는 대로 쓴 것이니, 주제가 오락가락할 수도 있고, 내용이 그저 직관의 심상에 따른 것일 수밖에 없다. 대략 고쳐서 올린다. 2. <2021년 3월 7일 일요일, Trini에서>  욕망에 관해서는 생명과 소유 또는 향유와 관련해 제법 오랜 세월 생각해 왔으나 뚜렷하게 그 작동의 얼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밥이 하늘이다.” 김지하 선생의 말이다. 일본의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는 ‘직경(直耕)’을 주장했다. 누구건 저 자신이 경작한 밥을 먹어야지, 천황이건 쇼군이건 사무라이건 남이 경작한 밥을 빼앗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인터넷을 통해 그가 쓴 『법세 이야기』를 읽고 있다.  욕망에 관한 생각을 ‘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생명에 조건을 걸어 욕망을 이야기하겠다는 뜻이다. ‘밥’은 노동의 목적이고, 노동 및 노동의 결과를 상징 · 은유하기도 한다. 그 직접성에서는 생명을 유지 · 강화 · 재생하는 것을 지시할 것이다.  ‘밥과 일’,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 신약성서의 이야기다. 일은 생산 활동이다. 일의 출발은 생명의 압력을 따르는 수동성을 띠지만, 그 과정은 계획과 효율 그리고 재활성화를 염두에 둔 능동성을 띤다.  일 즉 노동은 여러 관계를 따른다. 일하는 자와 일의 대상과의 관계, 생산과 소비의 관계, 생산과 소비의 효율을 위한 타인들과의 관계, 교환관계를 규정하는 법과 제도와의 관계, 소유와 처분의 관계, 몸과 도구의 관계, 도구와 사물 그리고 생산-소비에서 주어지는 과제와의 관계, 지식과 실행의 관계, 궁극적으로 욕망과 그 충족/결핍의 조건과의 관계 등으로 일에 연관된 관계들은 사뭇 복잡 다양하다.  욕망에 관한 이론을 구축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이러한 뭇 관계들을 망라하면서 그 맥락과 계기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워낙 많고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욕망의 문제가 활동 즉 실천 또는 실행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앎과 일’로 달리 말할 수 있는 ‘이론과 실천’에 관해서는 특히 사회개혁 또는 사회혁명에 관련한 담론에서 워낙 많은 논의가 있었다. 추상화해서 보면, 앎은 진(眞) 즉 옮음과 짝하고, 일은 선(善) 즉 좋음과 짝한다. 앞에 따라 지식과 학문이 설립되고, 뒤에 따라 윤리와 도덕 및 경영이 설립된다.  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일 즉 실천(praxis)은 혁명이었다. 혁명은 노동과 욕망을 둘러싼 법적 · 정치적인 체제를 위시해 심지어 사회문화적인 구성을 크게 바꾸는 것이다. 혁명과 비슷한 어감을 띤 것으로 전향(轉向), 전회(轉回), 회심(回心) 등이 있다. 어느 것이건 기본은 역(逆)의 역(易)이다. 회귀가 아니라 창조다. ‘dynamis’ 즉 잠재적인 위력을 창조를 위한 본질로 본다면, 혁명은 그 본질을 창조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革命’의 ‘革’ 자가 궁금하다. 인터넷을 찾아본다. <周易>에서 ‘革’은 ‘택화(澤化)’ 즉 불이 연못의 물이 끓도록 하여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풀이됨을 알았다. 흥미롭다. ‘革’ 자는 ‘革帶(혁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짐승의 가죽을 일컫는다. 그런데 가죽을 얻기 위해 짐승의 털을 벗기면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니 ‘革’은 크게 바꾸는 것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혁명적 실천을 위한 지혜를 철학으로 본다면, 그 철학은 결국 욕망(欲)과 행동(行)과 즐김(樂)으로 요약될 것이다.  좋다는 것은 욕망을 충족하는 데서 출발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플라톤이 어떤 것에 대해 가장 좋은 것을 이데아(idea)라 한 사상은 이성과 지혜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는 일반적인 해석과는 달리, 나로서는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속에서도 그렇고 남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한데, 문제는 욕망들 사이의 충돌이다. 자장면을 먹고 싶고 짬뽕을 먹고 싶다. 선택해야 한다. 지금 먹고 싶다고 모조리 먹어치우면 나중에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조절해야 한다. ‘선택과 조절’, 욕망과 실행에서의 기본 원리다. 선택은 당면한 현재의 문제이고, 조절은 미래를 향한 문제다. 선택을 위해서는 사물의 특질을 알아야 한다. 조절을 위해서는 욕망의 특질을 알아야 한다.  사물과 욕망의 관계에 일정한 본질적인 내용이 있을 것이고, 그 내용을 점차 추상화 · 일반화 · 순화하다 보면 이데아에 이를 것이다. 이데아를 안다는 그 지혜는 결국 욕망과 사물의 본질을 알아 가장 적절한 선택과 조절을 통해, 이른바 탁월성 즉 덕을 이루는 행위를 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앎과 함’의 일치, 즉 흔히 말하는 ‘지행합일’의 덕목이 설립된다.  사물과 욕망의 관계가 크게 문제로 나서는 경우는 타인이 사물로 등장할 때다. 그 타인 역시 욕망과 행위의 적절함을 위해 선택과 조절을 할 것이고 해야 한다. 나의 선택과 조절이 타인의 선택과 조절과 ‘합(合)’을 맞출 수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양자가 ‘리(離)’ 또는 ‘충돌’로 나타나면 고약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자장면을 먹을 테니, 너는 짬뽕을 먹어라.” ― “싫어, 나도 자장면을 먹을래.” ― “자장면이 한 그릇밖에 없는데 어쩌지? 나누어 먹으면 어떨까?” ― “싫어, 나누면 내가 배고픈 걸, 아니면 먹어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 때문에 먹는 기분이 나지 않는걸.”  나와 남의 욕망 관계에서 선택에 따른 충돌을 조절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예사로 자존심이 개입된다. 내가 너보다 적게 먹을 이유가 어디 있어? 네가 나보다 잘난 게 뭐 있어? 인정할 수 없어. 네가 뭔데!  욕망을 둘러싼 나와 타인의 관계는 그저 욕망을 충족할 사물 즉 재화를 향한 것만이 아니다. 그 사물을 매개로 서로의 인격 또는 존재의 높낮이를 가늠하면서, 결국에는 서로를 대상으로 삼는 노릇이다. 동일성이나 유사성보다 차이를 중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차이를 통해서만 우열의 차별이 가능하고 그 차별을 통해 동물과는 다른 인간 고유의 사회정치적인 욕망을 일으키고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욕망 관계에서 작동하는 차이가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라면, 즉 서로 질이 다른 대상을 욕망한다면, 선택도 수월해지고 조절도 쉽다. 특질에서의 종류가 다르니 굳이 비교우위의 결판을 내야 할 까닭도 없다.  그런데 묘한 일은 나도 너처럼 하고 싶다는 욕망의 전이(轉移)다. “네가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하겠어. 네가 누리는 것을 나도 누려야 하겠어.”라는 타인의 욕망을 흉내 내지는 전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경향 내지는 습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 ‘욕망 전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불안이지 싶다. 귀하다고 여겨지겠지만 남은 가지고 있는 무엇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할 때, 남이 자신이 소유한 그것으로 나를 무시하고 억압하려 하고 심지어 내가 가진 것마저 빼앗는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심리가 작동하는 데서 ‘욕망 전이’가 생겨나 작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 타협책이 등장했다. 내가 가진 것을 줄 테니 네가 가진 것을 나에게 줘! ‘교환’이다. 교환은 선택과 조절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는 탁월한 기교다. 과연 그럴까? 선택과 조절에서 충돌을 완화하고자 고안한 교환이 오히려 선택과 조절에 영향을 미쳐 큰 문제를 일으킨다. 아무렇게나 교환하지 않을뿐더러, 교환의 편리를 추구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가 막힌 기교를 생각해 발휘하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교환관계는 순식간에 확산해 모두와 모두의 교환관계가 되고, 거기에 나와 모두의 관계가 아울러 자리를 잡는다. 모두가 모두를 대상으로 직간접적인 교환관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럴 때, 당연히 교환의 보편적인 척도가 요구된다. 교환하고자 서로가 내놓은 재화 사이에 교환 비율을 조절해서 손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손쉽게 선택해서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교환의 수단이자 척도로 기능하는 화폐 즉 돈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화폐를 통한 선택과 조절에 따라 시간의 활용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교환에서 재화 즉 내가 가진 물건이나 노동력을 주고 화폐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화폐의 선택은 재화의 선택이 아니다. 돈을 먹고 마시고 입을 수는 없다. 재화를 주고 화폐를 선택한 것은 일단 아무것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뤄지는 교환에서 화폐의 선택은 필수적이다. 지갑 속의 화폐는 당장 어느 재화를 소비하고 향유할 것인가를 미결정으로 미룬 시간의 양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화폐는 알 수 없는 미래에 재화와 교환하리라 작정한다는 증표다. 이에 화폐는 미래의 시간을 늘려 내 삶의 구체적인 시간을 재구성한다. 과거와 결합하지 않은 현재가 없듯이, 미래와 결합하지 않은 현재는 없다. 화폐가 쌓이면 쌓일수록 미래의 시간이 늘어나 현재에 결합한다. 여기에 화폐의 또 하나의 본질이 있다. 화폐가 제공하는 그 미결정의 미래는 현재에서는 순전히 잠재적인 것일 뿐 현행의 충족이 아니다. 화폐는 미래의 시간을 영원하게 만들고, 그 영원성을 현재에 결합함으로써 현재가 마치 영원한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많이 소유해 쌓이면 쌓일수록 그 착각은 더욱 굳건해진다. 사진 출처 - freepik  이에 화폐는 가상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각종 이미지와 상징을 가능케 한다. 기호학적인 용어를 빌어 말하면, 그리하여 기의(記意)가 사라지고 없는 기표(記標)만의 시간과 그에 따른 세계가 대대적으로 연출되는 것이다.  불안은 미래에서 온다. 미래의 시간이 짧을수록 불안의 양은 커진다. 불치병으로 곧 죽을 것 같을 때, 불안은 극대화된다. 돈을 많이 쌓아두고 있으면 불안의 양이 적어지는 것은 돈이 미래를 늘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 만들어내는 미래는 가상적이기 때문에, 불안의 양이 줄어드는 것 역시 가상적이고, 실질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잠복한다. 거꾸로 보면, 돈을 통해 불안을 줄이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실제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돈에 집착하는 자들의 불안은 강박이라 할 정도로 강하다. “너의 부가 쌓이면 쌓일수록 너의 존재는 빈곤해질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이다. 여기에서 ‘존재의 빈곤’은 실질적인 미래의 불안으로 인해 현재의 삶에서 제대로 된 창조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할 수 있다.  화폐가 전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너도나도 미래의 가상적인 시간을 최대한 늘리고자 하는 욕망으로 빠져든다. 욕망은 미래에서 열리는 가상의 폭과 깊이를 향해 힘을 발휘한다. 욕망이 영원한 시간 즉 불멸을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멸에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 하지만, 화폐는 가상적인 불멸을 약속한다. 사탕발림의 이 약속에 모두가 미혹되어 넘어져 자신의 존재를 절뚝거린다.  하지만, 화폐를 둘러싼 욕망의 분출과 실행의 길은 누구건 쉽게 비켜 갈 수 없다. 그것은 앞서 말한바, 모두가 모두를 교환하는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차이와 그에 따른 차별, 그 차별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화폐를 통해 실현 · 충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른바 화폐를 통한 인정 투쟁이 벌어진다. 말하자면, 화폐가 제공하는 가상적인 불멸의 시간 속에 뭇 인간들이 들끓으면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권력이 생겨난다. 긴 미래의 시간을 확보한 자가 짧은 미래의 시간을 가졌을 뿐인 자를 지배한다. 화폐가 개입한 상태에서 권력은 가상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지배와 피지배다. 그런데 그 가상은 이미 모든 사람을 휘어잡고서 오히려 실재로서 다가와 힘을 발휘한다. 권력은 가상적 실재를 놓고서 진정한 실재인 양 착각하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비록 기술이라는 말을 예술로 달리 번역하긴 했지만, 어쨌든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돈은 길고 인생은 짧다.” 또는 “권력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했다고 해보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첫눈에 벌써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시간은 돈이다.”라는 항간의 말을 “돈은 시간이다.”라는 말로 바꾸었다고 해서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맞는 말 같다. “내가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어.”라는 말을 “내가 가진 것은 돈밖에 없어.”라고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가 가진 것은 돈밖에 없어. 그러므로 나는 시간이 풍부해.”라고 말한다면, 제법 맞아들어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돈을 향한 욕망, 즉 불멸을 향한 욕망, 그 가상적인 환상이 마치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것 같다. 씁쓸하다.
2021-03-24 | hrights | 조회: 839 | 추천: 3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올해는 지방자치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2020년 12월 9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1988년 이후 3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주민주권과 참여확대, 지방의회의 독립성 강화, 중앙과 지방의 협력, 대도시 등의 특례부여 등이 주요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주민자치 원리 강화, 주민참여권 신설, 지자체의 주민에 대한 정보공개 의무규정 신설 등 자치분권 확대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자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맹이가 빠졌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지방분권, 자치분권의 핵심은 ‘주민자치’에 있다. 주민자치(住民自治)는 중앙집권적이며 관료적인 지방자치를 배제하고 주민이 지방자치의 주권자가 되어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영국에서 발달한 제도이다. 지방분권이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의 권한만 강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지만 실제로는 주민의 참여와 권한을 확대, 강화시킴으로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풀뿌리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함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지난 2013년부터 7년간 행안부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과 지방조례에 근거해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하고 있으며 2020년 6월 현재, 118개 시군구 626개 읍면동에 주민자치회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이 모두 삭제된 채로 통과되었다. 이번에 정부가 제출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은 ‘주민자치회 운영과 기능 수행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명확히 하여 현재 시범사업으로 운영 중인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서 풀뿌리 주민자치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국민을 아직 미성숙하다고 보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주민자치에 대한 부동의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는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의 활성화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으로 2020년 7월 전국 최초로 시 출연재단으로 출범하여 민관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주민과 마을, 행정을 연결하고 협력, 협치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춘천시 민선 7기 시정 철학은 ‘춘천, 시민이 주인입니다’라는 슬로건에서 말해주듯이 시민을, 주민을 주체로 세우고 시민의 권한을 강조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민자치회’ 설립과 운영 활성화는 중요 핵심과제 중 하나다. 3월 현재, 춘천시 25개 읍면동 중 13개 읍면동에 주민자치회가 설립되었고 5개 읍면동에서는 주민자치회 전환협의체를 구성하게 된다. 20명에서 50명까지 주민들 누구나가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고 마을의 의제를 공론화, 숙의를 통해 마을계획을 수립하여 실행까지 하는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겠지만 이런 참여와 책임의 민주주의를 풀뿌리에서부터 실천하는 과정을 주민들 스스로 실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매년 마을 의제를 주민들로부터 수렴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각종 자생단체, 모임, 공동체로부터 일반 주민들까지 해결하고픈 문제나 살기 좋은 마을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의제가 읍면동별로 많게는 70~80개씩 쏟아져나온다. 물론 이런 의제들이 다 채택되지는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살피고 생각을 이야기하고 투표와 총회를 통해 총화하는 경험은 시민들이 마을의 정책과정에 참여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신나고 즐거운 일일 것이다.  몇 가지 넘어서야 할 과제들도 보인다. 자칫 소위 명망가 또는 의회진출을 노리는 몇몇 위원이나 자치회장에 의해 휘둘릴 소지도 있고, 또 다른 기득권 단체로 전락해 완장만 채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도 상존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고 지난한 다툼이 있는게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차이와 다름을 숙의와 토론을 통해 마을의 공통의제로 합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한 생활권인 마을에 공존하고 있는 각 종 이해관계자들과 기존의 자생단체, 마을공동체들과의 연계와 네트워킹도 주민자치를 풍부히 하고 성숙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작년 마을의제들을 보면 코로나로 인한 아이들과 노인들의 돌봄 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주민들의 관심사로 많이 올라왔다. 또 쓰레기 문제나 환경문제도 주민들이 걱정하는 마을의 숙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주민자치회 단독으로 이러한 의제를 실행하고 의미 있는 결과물로 만들어내기에는 인력도 재원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마을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자발적으로 관심 갖고 활동하고 있던 많은 단체, 공동체들도 있으며 시정부의 행정력과 예산의 뒷받침이 필요함도 느낀다. 주민자치가 스스로 독립적으로 마을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백번 옳지만 고립된 대립 관계가 아닌 민관협력, 민민협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자치(시군)-주민자치(읍면동)-마을자치(통리 등 마을단위)는 ‘국민(시민, 주민)의 주권이 생활터전인 마을에서 실현’되는 가장 확실한 주권행사이며 강력한 방법일 수 있다. 아직은 주민들의 의식도 교육도 경험도 부족하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없음을 잊지 말고 골목에서 마을에서 지역에서부터 행복한 꿈을 꾸며 한발 한발 걸어갔으면 좋겠다.
2021-03-23 | hrights | 조회: 821 | 추천: 6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석샘, 이거 좀 참여해서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비용, 시간 부담 별로 없어요. 한번 봐 주시겠어요?” 평화활동을 하는 이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네 좋은 취지의 활동이니 당연히 함께 해야지요. 신청은 포스터에 있는 대로 하면 되겠지요? 마감이 얼마 안 남아 서둘러야겠네요.” 그저 머리 하나 보태는 마음으로 신청을 마쳤다.  올해로 23회를 맞는 지학순정의평화상은 故지학순 주교의 정신을 실천하고 정의, 평화, 인권 활동을 하는 이들과 단체를 수상자로 선정해왔다. 1997년 제정된 이 상의 첫 번째 수상자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었다. 이후로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해외 단체를 주로 수상했고, 지난해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 사단법인 저스피스로 새롭게 출범했다. 사단법인 저스피스는 정의평화실천 활동으로 풀뿌리 연대, 여성·성소수자·청년 등 새로운 주인공과의 연대, 생태위기·사회부정의에 대한 대응 등을 새로운 활동 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지학순정의평화상은 ‘시민참여형 풀뿌리 일꾼 찾기-시민의 참여와 발굴, 시민의 추천과 선정’이라는 슬로건 아래 시민추천위원단을 구성해 후보 추천을 받고 2차에 걸친 투표 과정을 거쳐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 계획이 있었던’ 저스피스의 큰 그림 속에 덜컥 시민추천위원단으로 참여한 나는 신청서 작성 후 그냥 부담 없이 투표 일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샘, 해외 단체 한 곳도 추천 부탁드려요~~~ 18일 마감입니다.” 마감 이틀 전 이 선생님의 메시지가 당도했다. 난감했다. 베트남과 평화교류 활동을 하고 있지만 베트남은 관 주도의 단체가 대부분이라 사실상 이 상의 취지에 맞는 곳을 추천하기가 어려웠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던 중 내가 잘 아는 선배의 기사를 만났다. 그렇지. 국제분쟁전문기자인 이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의 전화였지만 안부는 짧게, 바로 상황을 이야기하니 기다렸다는 듯 주저 없이 한 단체를 추천한다. “난 이 단체는 꼭 상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해. 왜 아직까지 이들의 활동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가 관심 갖지 않는지 모르겠어.” 선배가 던져 준 기사와 자료를 보고 추천서를 작성했다.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지역의 폭력적 인권상황에 저항하고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 추천서를 작성하고 숙제를 마친 듯 이 선생님에게도 공손히 보내드렸다.  하지만 추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새로이 관심 갖고 알게 된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이 수상자가 되길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추천한 사람의 책임감도 발동했다. 후보로 올라온 전세계 16개 평화인권 단체들의 활동은 훌륭했다. Avaaz 세계행동, HOPE-말레이시아, TAKAD-말레이시아, Womwn Cross DMZ-미국, FED(교육개발재단)-미얀마, Share Mercy-미얀마, Afghan Peace Volunteers-아프간, HRDF-인도, 피스보트 프로젝트-일본, iLAW 표현의 자유 기록 센터-태국, Thai Lawyers for Human Rights-태국, Sounds of Palestine-팔레스타인, CTUHR-필리핀, MPI-필리핀, GABRIELA-필리핀 모두 후보 단체의 이름이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22명의 시민추천위원이 투표에 참여해 두 개 단체로 최종후보를 가렸다. ‘팔레스타인의 소리’,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이 후보에 올랐다. 최종 후보에 오른 만큼 추천서도 다시 보완해 전달했다. 그리고 총 370명의 투표인단으로 진행된 2차 투표에서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이 제23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단체로 최종 선정되었다.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Jammu Kashmir Coalition of Civil Society, 약칭 JKCCS)은 2000년 설립된 인권단체로 20여 년 동안 카슈미르의 폭력적 인권상황에 대응해 사선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단체이다. 잠무카슈미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점령하고 있는 곳으로, 카슈미르인들이 70년 전에 국제사회로부터 약속받았던 자치권을 박탈당하면서 정치적으로 강대국들의 무력개입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JKCCS는 카슈미르인들의 자치를 향한 수년간의 투쟁과 노력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지치지 않고 기록하고 알려왔다. 이 단체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현장에 들어가 고문, 성폭력, 학살과 반인권적 상황 등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알리고 있다. 제23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잠무 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 사진 출처 - (사)저스피스  JKCCS 대표 임로즈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광주민주화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불의에 맞서 싸운 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 양심적인 이웃(국가)들, 아시아 친구들이 카슈미르 이슈에 완전히 무관심한 현실은 내게 꽤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내 귓속에 공명을 일으키며 JKCCS의 활동을 추천하고 애쓰게 만들었다. 그의 말이 나와 같은 이를 향하고 있었다. 고통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해자 피해자라는 단순 등식만으로도 해명되기 쉽지 않다. 베트남전쟁, 미얀마 군부학살, 카슈미르 인권탄압, 어느 분쟁이든 모종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이 상이 오랜 분쟁의 고리를 끊어낼 수는 없겠지만, 현지 활동가들에 대한 격려를 넘어 작은 금 하나를 내기를 바란다. 그저 머리하나 보태는 일로 시작한 일이 큰 보람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2021-03-10 | hrights | 조회: 919 | 추천: 4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방식의 온라인을 활용한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 곳에서 행사를 준비 중이다. 그 중 <제3회 세계여/성노동자대회> 조직위원회는 올해 행사의 초점을 임신과 출산 노동에 맞추고, 임신과 출산이 인간 생산 노동임을 전면에 부각하며 임신과 출산의 생산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하고자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임신·출산을 생산과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 가치화하지 않는 것은 가족과 국가와 시장의 통제와 맞물려 있습니다. 가족과 국가와 시장들은 여성을 통제합니다.”라는 이들의 주장은 구미가 당긴다. 이들의 성 노동론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동안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임신/출산을 재생산 노동이라 칭하며 부차적인 노동, 혹은 노동이 아닌 생물학적 활동으로 가치절하하는 현실에서 여성운동이 전면화하여야 할 의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리아 미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경제를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나누는 전략은 처음부터 자본축적의 과정”, 이라고 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당연히 ‘진짜’ 경제로부터 배제”되지만, “사실상 이 부분(보이지 않는 부분)은 보이는 경제의 근간을 이룬다.”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여성들이 하는 노동은 가사노동과 임신/출산에만 국한되지 않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일차적인 노동과제는 ‘재생산 노동’이라는 가사 및 임신, 출산, 육아로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들의 자리는 여전히 가정이라는 인식, 가정은 공적 영역에서 동떨어진 곳이며 따라서 여성들의 노동은 공적 노동이 아닌 사적 노동으로 가치 평가되며, 무급으로 진행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도록 만들어낸다. 그러나 소위, 생산영역의 노동은 이러한 여성들의 비 가시화된 재생산영역의 노동이 없으면 작동하기 힘들다. 여성들의 노동은 근본적으로 노동력을 생산하는 노동이다. 가정주부가 가정에서 생산하는 것은 단순한 사용가치가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이러한 여성의 생산력이 전제될 때 남성 임노동자의 생산성이 작동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핵가족이야말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생산되는 사회적 공장(달라 코스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정주부인 여성과 그 노동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노동이 아니라, 잉여가치 생산 노동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노동을 사적인 노동으로 비가시화하고, 공적 노동에서 배제함으로써 무급화 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적 착취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제3회 세계 여/성노동자대회 페이스북  그런 의미에서 <제3회 세계여/성노동자대회>가 임신과 출산을 ‘인간 생산 노동!’으로 호명하고, 이의 가치와 의미를 전면화함으로써 노동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현재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여성운동 세대들은 구 여성운동 세대들과 달리 ‘몸의 정치’를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세대들이 법과 제도 등의 제/개정 등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 즉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었던 영역에 끼어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신세대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거부하고, 대의 정치체제를 비판하며, 가부장제가 가장 친밀한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작동한다는 것을 드러내며, 그것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몸의 착취를 통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모든 사적이라고 보여지는 여성들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 착취가 결국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정치가 작동하는 기제라고 문제 제기하고 있다. 여성의 몸을 통해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폭력과 억압이 자본축적의 원천이라고 본다. 이는 가부장제가 공공정치 영역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남성의 여성의 몸-섹슈얼리티와 생식능력-에 대한 통제에 기원한다고 보는 것이다. 남성국가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대표적인 통제가 낙태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와 생식능력을 사회적 노동으로 가치화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에 제동을 거는 행위가 된다.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노동으로 정당화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평가와 보상을 받는 것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 그 착취구조를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정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하면서, 생산의 개념에 대해서도 착취적 구조가 아닌 인간해방의 관점에서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과정과 생산과정의 분리가 아닌, 생산과정이 곧 노동과정이라는 합의, 이윤창출의 과정이 아니라 생산과정이 되는 노동과정, 이러한 인식과 합의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는 정치환경을 구성하게 한다. 이는 결국 경제와 정치, 공과 사, 이성과 감성, 정신과 몸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는, 사회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의 생식능력을 재생산이 아니라 생산으로 호명하는 것은 그 시작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2021-02-24 | hrights | 조회: 1317 | 추천: 2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메디나 오아시스 지역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던 카즈라즈 부족과 아우스 부족은 622년 양측 간에 수자원 확보 문제와 연루된 유혈 분쟁의 조정자로 예언자 무함마드를 메카에서 메디나(야스립: 이슬람 시대 이전 명칭, 본고는 편의상 메디나로 통일)로 초대하였다. 이 두 부족은 아랍인들이라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들이 갖고 있던 종교는 무엇이었을까?  메디나로 이주하기 이전 메카에서 활동하던 예언자 무함마드는 부유한 상인으로 다신교인이던 꾸라이시 부족의 우마이야가문 수장 아부 수피얀 등에게 탄압을 받고 있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꾸라이시 부족의 하심가문 출신이었다. 당시 같은 부족 내에서 개인들이 서로 다른 종교를 갖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다신교인, 유대인, 기독교인, 조로아스터교인, 마니교인 등 다양한 종교인들이 공존하던 메카에서 다신교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지배권을 행사했다.  반면, 메디나는 유대인들의 지배적인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유대교는 무함마드가 등장하기 2세기 전에 이미 메디나에서 잘 확립되어 있었고,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유대인들이 메디나에 거주하였다. 이 유대인들은 경우에 따라 부족 단위로 오아시스 농업, 금은 세공업, 무역업 등 서로 다른 직업을 가졌고, 아라비아반도에서 예언자의 출현 등에 관한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를 견지하고 있었다. 이 유대인들은 아랍어 사용자들이었고, 아랍 이름을 가졌다. 다양한 문서들에 따르면, 메디나의 각 부족들은 하나의 종교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 기독교인, 다신교도 등 다양한 종교인들을 포함한다고 알려져 있다. 메디나는 유대교의 영향력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각 부족 내에 다양한 종교인들이 공존하는 사회였다.  메디나 헌장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주도하는 메카 출신의 이주민 무슬림들과 메디나 주민들 사이에서 체결된 공존 협정으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이듬해인 623년에 만들어졌다. 이 헌장은 무슬림들과 다양한 메디나 주민들, 특히 유대인들이 하나의 공동체(국가)를 결성하도록 규정하였으며,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및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부족들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하였다.  다음은 메디나 헌장의 주요 내용이다. 메디나 헌장 자율적인 유대인 공동체; 무슬림과 유대인은 각각의 종교와 경제권을 가진다. 유대인의 권리: 유대인들은 사회적, 법률적, 경제적으로 무슬림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유대인과 무슬림 동맹: 유대인의 적들은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유대인들과 동맹한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자율적인 다종교 공동체: 유대인 외에도 이 공동체에 포함된 다른 종교인들도 무슬림과 정치 및 문화에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 전사 공동체: 외부인들과의 관계는 모두 전쟁에 참가하거나 완전히 평화 상태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전쟁에서 메디나의 주민들은 모두 같은 편. 이 조약에 서명한 자들은 메디나가 공격을 받을 경우에 서로 도와야만 한다. 무함마드의 위상: 무함마드의 허락 없이 전쟁을 할 수 없다. 전쟁 비용: 유대인들은 유대인들 스스로 전쟁 비용을 부담하고, 무슬림들도 스스로 전쟁 비용을 부담한다. 이 공동체 구성원 중 누가 공격을 당하면 다른 구성원이 도와야만 한다. 유대인들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무슬림들에게 전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메카의 꾸라이시: 적들인 메카의 꾸라이시와 그들의 동맹은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다. 꾸라이시 상인들은 보호를 받거나 지원을 받지 못한다. 꾸라이시 상인들은 메디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돕는다. 9개 부족의 유대인들 명시: 아우프 부족의 유대인들, 낫자르 부족의 유대인들, 하리스 부족의 유대인들, 사이다 부족의 유대인들, 자샴 부족의 유대인들, 아우스 부족의 유대인들, 싸흘라바 부족의 유대인들, 주프나 부족의 유대인들, 샤트비아 부족의 유대인들은 무슬림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종교가 있고, 무슬림들에게는 그들의 종교가 있으며, 이 원칙은 유대인들의 후원자들과 유대인의 친구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나 악한 행동이나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스스로와 가족에게 악행을 불러오기 때문에 여기서 제외된다. 메디나는 성지: 이 헌장에 나오는 주민들에게 메디나 안은 성지다. 사진 출처 - 구글  메디나 헌장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메디나로 초대한 두 부족인 카즈라즈와 아우스 부족을 포함하여 9개 부족(아우프, 낫자르, 하리스, 사이다, 자샴, 아우스, 싸흘라바, 주프나, 샤트비아) 유대인들에 대해서 동맹관계를 강조하였다. 낫자르 부족, 하리스 부족, 사이다 부족은 더 큰 규모의 카즈라즈 부족을 구성한다. 이 헌장은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규정하면서 다른 주민들에 대해서는 유대인들과 가까운 친분관계가 있으면, 유대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명시하였다. 따라서 이 공동체는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다종교 공동체이다.  또한 이 공동체는 전사 공동체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무슬림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유대인들일지라도 적들과 내통하거나 그들 편에 서면,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할 수 있다. 실제로 624년 메카와의 전쟁에서 메카의 꾸라이시 적들 편에 섰던 일부 유대인들이 메디나에서 추방당하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많은 자료는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불화로 몰아감으로써 종교 간 충돌로 결론 내는 경향이 있다.  이슬람이 출현하기 이전인 5세기 후반 아브라함의 순수한 일신교 신앙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무함마드의 증조부 하심 빈 압드 마나프(하심 가문을 세운 시조다. 464-497년)는 증조모 살마와 함께 메디나에 거주하였다. 이 증조모 살마는 카즈라즈-낫자르 부족 출신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조부 사이바 빈 하심(497-578)은 메디나에서 이 증조부모, 하심과 살마의 아들로 태어나 메카로 이주하였고, 카바 신전의 잠잠 우물을 발견하여 관리하였다. 특히 그는 유복자로 태어난 무함마드를 키웠다. 이러한 사실은 무함마드가 무슬림 예언자로 우뚝 서기전에 일신교, 메디나 및 카즈라즈-낫자르 부족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언자가 된 이후 무함마드는 622년 메디나로 이주하면서 카즈라즈-낫자르 부족과 함께 거주하였고, 예언자의 모스크가 카즈라즈-낫자르 부족의 마당에 세워졌다. 또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들은 카즈라즈-사이다 부족이 소유한 건물인 사끼파에서 아부 바크르를 무함마드를 잇는 후계자인 제 1대 칼리파로 결정하였다.  이와 같이 카즈라즈 부족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메디나로 초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메디나에서 정착하여 활동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후 이 부족은 무슬림으로 개종하였으며, 무함마드 사후에도 무슬림들의 정복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메디나 헌장 속에 나타나는 무슬림들은 각 부족 내 유대인들과 매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고, 종교나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하거나 분쟁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021-02-17 | hrights | 조회: 2037 | 추천: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