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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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대선을 앞둔 최근의 예비 경선, 예비 후보 등의 말로 드러나는 바를 보자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여당과 야당들의 인사들을 합쳐 언뜻 추산해도 스무 명은 족히 넘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검증 등의 절차에서 알 수 있듯이 되는 과정도 워낙 어렵거니와, 되고 난 뒤에도 속된 말로 잘 하면 본전이고 욕을 먹기 예사인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죽을 맛을 볼 수밖에 없어 보이는 일을 기꺼이 맡아 헌신해 보겠다고 하니, 한편으로 참으로 고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어렵고 궂은일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 일을 맡아 하게 되었으나,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누구는 국민에게 쫓겨 야반도주하듯 해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또 누구는 잠시 대통령의 자리를 유지하다 마치 자신의 무능력이 군부 쿠데타의 빌미가 된 것인 양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누구는 자신의 정적들은 물론이고, 자신을 비판하거나 자신의 일방적인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고 하다가 자신이 가장 신임한다 여겼던 부하에게 총격으로 사살되었다. 총격 사살된 자를 ‘모범’으로 삼아 역시 수없이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고 대통령 자리를 국민으로부터 강압적으로 빼앗았던 두 인물은 국민에 의해 사형 또는 수십 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곤욕을 치렀다. 그런가 하면, 그야말로 민주화를 내세워 국민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시피 했던 이른바 문민정부를 연 대통령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을 치렀다. 또 누구는 놀랍고 신선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그 뒤 두 인물은 현재 감옥에 갇혀 있다. 다만, 현재의 대통령만이 큰 문제 없이 대통령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으나, 반대쪽에서 나라를 다 망친 자, 나라를 팔아먹은 자, 도저히 용납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 자, 심지어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극언을 듣고 있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치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제대로 인간다운 삶을 오롯이 산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출처 - 구글  정치란, 더욱이 대통령으로서 통치 행위를 수행하다 보면, 반드시 적이 있게 마련이고, 그 적들에 의해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을 당하기 마련이라고 핑계를 대고 본래 정치란 건 그런 게 아니냐, 하고서 넘어갈 수준의 역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한 어느 인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전임 대통령의 잘못이 있더라도 통치 행위에 대한 법적 수용성 범위를 넓혀 인정하기에 보복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조차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은 있지 않겠느냐는 토를 달았다.  이렇듯 누가 보아도 이른바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이미 원죄를 뒤집어쓰는 일인 양,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벌써 스무 명이 넘는 인물들이 심지어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적임자라고 외치며 나서니 고마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대통령 다음의 두 번째 지위인 국무총리를 했으니 이제 대통령이 되어 국가와 민족에 헌신해 보겠다는 뜻이겠고, 또 어떤 이들은 도지사를 했으니 나 또한 더 큰 뜻을 펼쳐 국가에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뜻이겠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국회의원으로서 그동안 오랜 세월 나라를 위해 여러모로 헌신해 왔으니, 이제 그 헌신의 뜻과 힘을 더 크게 세워 나라를 책임지고 헌신하겠다는 뜻이겠다. 어떤 이는 장관을 했으니, 또 어떤 이는 검찰총장을 했으니, 또 어떤 이는 감사원장을 했으니, 이제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뜻인 모양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다’라는 각오를 피력하지 않는 이 없으나, 그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나선 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쉽게 단정하듯 자기 일신의 최고의 영달을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오히려 아주 쉽다. 그것은 능동과 수동의 분간이다.  주체적으로 새로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행위는 능동이고, 새로운 긍정적인 삶을 형성하고자 하는 능동의 행위를 방해하거나 파괴하고자 하는 행위는 수동이다. 이 수동은 달리 말해 반동이라고 한다. 능동적인 삶은 주체적일 뿐만 아니라 창조적이다. 수동 또는 반동적인 삶은 남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타인의 능동적인 삶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방해하고 파괴하는 것 외에 자신이 능동적으로 새로운 일을 창조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능력도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능동의 삶을 살지 않은 자가 대통령이라는 중책을 맡아 국민 모두의 삶을 책임지게 되면, 국민 모두의 삶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민 각자는 자신이 알아서 삶을 살면 될 일이지, 국가가 국민 각자를 위해 할 일이 특별히 없다고 강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거대 집단의 공동의 삶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주어지고 실제로 현실화될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국가는 보편적인 공동체다. 국가는 개인들이 모여 마치 군중을 이루는 것과 같은 양적인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각자 개인으로서는 생성되지 않는 보편적인 가치를 설정하고 구현하는 또 하나의 보편적인 인격체다. 개인 말고 법인이 하나의 통일된 법적인 인격체로 인정받아 활동하듯이, 국가는 거대한 보편적인 법적인 인격체로서 살아 움직인다. 국가는 개인으로서는 결코 상상하거나 추구할 수 없는 가치를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현한다. 그 보편적인 공동의 가치를 생각해 보지 않은 자는 국가를 통치해 나갈 적임자가 될 수 없다.  각자 개인들이 그들의 능력에 따라 다른 개인들을 이용하고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시장에 맡기는 것이 국가 운용의 최선책이라 생각하는 자는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가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설사 그러한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가치를 누가 알 수 있느냐고 강변할 것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서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그 창조의 대상이 개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를 통해 상상되고 기획되고 실현되는 가치임을 안다. 다시 말하거니와, 어떤 처지의 어떤 상황에 놓였다 할지라도 그런 각자의 삶은 그 자신의 몫이며 각자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자는 결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 자에게 대통령직은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에 의해 획득한 자기 개인만의 배타적인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자는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만이 상상하여 실현할 수 있는 가치를 어떻게든 특히 허구적인 이상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방식이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반동의 삶이다.  사회적으로 힘든 처지에 놓인 많은 사람이 자기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그 처지에서 벗어날 희망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를 찾아 그 길을 열어줄 힘은 오로지 보편적인 국가에서만 나온다. 국가는 개인들이 개인만의 역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손쉽게는 사회 인프라의 구축이란 말에서 이를 가늠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서로 돕는 행위가 함께 모여 공동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통일된 상위의 한 보편적인 인격으로 형성된 것이 국가, 특히 민주주의-공화주의 국가다.  그렇다면, 특히 중차대한 국가 통치의 행위를 놓고서 누가 능동이고 누가 반동인가는 그가 과연 국가를 통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도모하는 삶을 살았는가, 아니면 개인의 삶과 그 삶의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는 배타적인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분서주 기회를 엿보며 여기저기 왔다 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밀리에 탈법적이거나 탈도덕적인 삶을 살았는가를 보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일도양단의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완전무결한 자는 있을 수 없기에, 적절함의 상대적인 우열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주인이자 국가의 주체인 국민 된 의무로 각종 신뢰할만한 여론의 매체를 활용하면서 최대한 현명한 판단력을 발휘하여 저 어렵고 힘든 일을 기염을 토하듯 자임하고 나서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 신중에 신중을 다하여 선택해야 할 것이다.
2021-08-19 | hrights | 조회: 853 | 추천: 4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지리산 화엄사에서 노고단 가는 길에는 코재도 있고 눈썹재도 있으며 무넹이길도 있다. 코가 닿을 정도로 오르막길이 너무 힘들다는 말이며, 눈썹 무게라도 줄여야 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름철이면 물이 넘쳐 흐르는 무넹이길에는 가문 여름에도 물이 풍성하다.  무넹이라는 말은 여름 장마철이면 홍수로 물이 넘쳐 흐른다는 물넘이의 와음이란다. 서울 수유리는 물넘이의 한자어이기도 한데, 무넹이 무너미 수유리 전국에서 비슷한 지명을 보곤 한다.  북한산 도선사에서 백운대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하루재 고개가 있다. 미아리에서 걸어 하루가 걸려야 도착했다는 하루재. 하루재 바로 아래는 둥근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 바위쯤에 이르면 안심이 된다고 하여 안심바위라고 한단다. 하루재 옆으로는 휴식년제에 묶여 지금은 가지 못하는 깔딱고개도 있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정도로 힘들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무넹기에서 바라본 구례와 섬진강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  부천(富川)은 내[川가] 부자[富]인 동네다. 높은 건물로 가려진 지금이야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부천에는 개울이 많았다. 부천을 대표하던 예전 이름은 소사(素沙)다. 기차역이 전철역으로 바뀌고 군 단위 행정구역이 시로 바뀌면서 소사라는 지명은 부천이라는 지명 뒤로 이름하게 되었다. 소사 복숭아는 나주 배, 대구 사과와 함께 지역 특산물로 교과서에도 나왔던 거로 기억하는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복숭아밭을 밀어내고 지어 올렸다. 학교 담은 나무가 대신했고 여름철 장마 때면 물이 넘치는 학교 앞 개울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생님이 손잡아 건너편으로 건네주곤 하였다. 공동묘지를 밀어내고 지어 공포의 전설이 많았던 예다른 학교와 달리 소풍 가는 날에도 비 한번 오지 않았다.  소사라는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소사는 모래밭의 한자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바탕 소(素)에 모래 사(沙)라는 한자어에 그 뜻이 담겨있다. 흰 모래밭. 부천이라는 지명과 아주 잘 어울린다 싶기도 하다.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놀다가 지칠 때면 햇볕 가득 받아 뜨거운 모래밭에 누워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설핏 잠이 들기도 했으니까…. 비가 오면 진창이 된 길에서 신발 벗어 던진 아이들이 맨발로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던 벌터는 바닷가의 펄과 같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거라 짐작해 보곤 한다. 지금은 그러한 지명이 낯설 정도로 개울도 모래밭도 벌터도 흔적조차 없다. 3.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 800년 된 보호수이다. 보호수 주변으로는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 그 모양을 보자면 발을 뻗지 못할 좁은 공간에 갇힌 느낌이다. 주변으로는 옛것을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기념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이 우시장 자리였음을 알리는 조형물도 있고, 복사꽃 마을 소사를 설명하는 새긴돌도 있다. 지금은 개울도 없고 모래밭도 없으며 더욱이 복숭아나무가 사라진 지는 더 오래다. 그저 기념물과 설명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4.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으로 높이높이 쌓아 올리면서, 물장구치려고 수영장을 찾아가고, 꽃이름을 알려고 식물원이나 수목원엘 간다. 휴가철이면 많은 자동차의 긴 행렬에 지쳐 어느 다리 밑 물 흐르는 개천에서 쉼에 목마른 욕구를 달랜다. 내가 사는 자리에서 물장구도 치고 꽃이름, 풀이름을 되뇌며 뜀박질하는 개발은 없는 것인지…. 풀빛 가득한 세상을 찾아가고 떠나온 그 자리에는 또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건지….  아시아드대로, 메트로시티 롯데캐슬카이저 마린시티로 월드메르디앙 베스토피아 센텀에스케이뷰 월드컵로 등등 우리가 새로 지어내는 지명과 아파트 이름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바라는 이 유토피아(?)는 이미 오래전에 와 있으니, 우리는 흙을 밟지 못하는 세상에서 벌써부터 살아가고 있다.
2021-08-12 | hrights | 조회: 976 | 추천: 4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  최근 이스라엘이 UAE와 협력하여 중동 역내에서 영향력을 확대 강화하고 있다. 올해 6월 이스라엘의 새로운 베네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임 네타냐후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아 6월과 7월에 아부다비와 텔아비브에 이스라엘 대사관과 UAE 대사관을 각각 개소하는 등, 양측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UAE 실권자는 아부다비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이고, 이 왕세제의 역내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은 그의 특별 고문 무함마드 다흘란이다.  다흘란은 이스라엘 정부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알려져 있다. 역내 정치에 정통한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다흘란은 과거에는 이스라엘의 대리인이었고, 현재는 UAE의 대리인이며, UAE가 역내 정책을 실행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이스라엘과 UAE가 역내 영향력 강화 정책에서 다흘란을 정책 도구로 활용하지만, 사실은 다흘란 자신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이스라엘과 UAE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3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흘란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 중동 역내 정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다흘란의 인생 역정: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의 경쟁자  다흘란은 1961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 난민촌에서 태어났고, 1981-1986년 파타운동을 주도해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10번 이상 체포되어 이스라엘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했으며, 이 기간 동안에 히브리어를 배웠다. 이 때 배운 히브리어는 훗날 이스라엘인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1987년 12월 제1차 인티파다(1987.12.8–1993.9.13, 이스라엘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발발 이후, 이스라엘은 다흘란을 가자로부터 추방하였다. 이때 다흘란은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파타를 비롯한 다양한 팔레스타인 파벌의 연합조직)가 기반을 둔 튀니스로 가서 PLO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의 보좌관으로서 활동하였다.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PLO가 오슬로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제1차 인티파다가 종결되었다. 이때 가자로 귀환한 다흘란은 파타당을 이끌고 보안 작전을 지휘하면서, 오슬로협정에 반대하는 하마스를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1994년 파타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고, 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는 강력한 정보기관으로 팔레스타인 예방보안대를 설립하였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다흘란은 초대 가자지구 예방보안대 대장이었고, 압도적인 권력으로 인해서 가자는 ‘다흘란이스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때 다흘란은 가자에서 2만 명의 병력을 운영하면서, 미국 CIA와 이스라엘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하였다.  2000년 9월에 발발한 팔레스타인 2차 인티파다(2000.9.28-2005.2.8)가 진행 중이던 2001년 다흘란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개혁을 요구함으로써 아라파트 수반을 화나게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4년 8월 다흘란은 노골적으로 아라파트 수반이 부정과 부패로 팔레스타인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가자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8월 1일 쿠웨이트 신문 알 와탄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정부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기부한 총 50억 달러가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우리는 모른다. 팔레스타인 상황은 더 이상의 부패를 견딜 수 없으며, 개혁으로부터 벗어날 방도가 없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전쟁은 분명히 실패했으며, 평화만이 실행 가능한 선택이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10월 아라파트는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보도되었고, 11월 11일 사망하였다.  아라파트 사망 이후, 2005년 1월 마흐무드 압바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이 때부터 압바스는 다흘란을 야심찬 경쟁자로 간주하고 견제하기 시작했다. 2007년 다흘란은 가자에서 진행된 하마스와의 내전에서 패배하여 서안으로 들어왔고, 이 때 압바스와의 권력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다흘란은 부패와 아라파트 살해 혐의로 비난받으면서 파타운동에서 추방되었다. 이로써 다흘란은 압바스 수반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결과 UAE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2020년 9월 이스라엘-UAE가 체결한 아브라함 협정 설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브라함 협정이 타결되자, 팔레스타인 수석 협상가 나빌 샤스는 알 칼리지 온라인과 인터뷰에서 “다흘란이 아브라함 협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조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보안국 대변인 아드난 알 두마이리는 프랑스 24와의 인터뷰에서 “다흘란이 UAE-이스라엘 국교정상화의 공범이자 후원자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는 ‘아브라함 협정은 압바스 자신을 수반 자리에서 축출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해를 끼치려는 다흘란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의 거리 시위대는 도널드 트럼프, 무함마드 빈 자이드, 베냐민 네타냐후 초상화와 함께 다흘란 초상화를 짓밟고 불태웠다. 이와 같이 팔레스타인에서 아브라함 협정에 대한 반대는 다흘란에 대한 반대와 연결되었다. 아부다비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와 무함마드 다흘란(오른쪽) 사진 출처 - alwaght.net □ UAE의 대리인으로 역내 문제에 개입하는 다흘란: 反무슬림형제단 정책  UAE는 국내외에서 확고하게 反무슬림형제단 정책을 견지한다. 2011년 아랍 민중봉기 이후, 아부다비는 무슬림형제단에 맞서기 위하여 역내 무슬림형제단 반대파들에게 상당한 재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자국 내에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무슬림형제단 분파인 알 이슬라흐를 강력하게 탄압한다. 이렇게 아부다비가 주도하는 UAE의 정책은 역내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연동되었다. 이를 위해서 UAE는 이집트, 터키, 리비아, 예멘 등에서 다흘란을 대리인으로 활용해왔다.  2013년 다흘란은 이집트 쿠데타에서 국방부장관 알 시시와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국영 통신사 아나돌루에 따르면, UAE 후원을 받는 다흘란이 이집트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재임:2012.6.30-2013.7.3)를 축출하기 위해 국방부장관 압델 파타 알 시시와 협력하여 쿠데타를 기획하였다. 결국 2013년 7월 3일, 알 시시는 쿠데타로 대통령 무르시를 축출하였다. 6일 후 7월 9일 UAE는 이집트에 30억 달러를 원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무르시 축출에 UAE와 다흘란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 19일, 이집트 대통령 알 시시(재임:2014.6.8-현재)는 가자지구 재건에 기여하기 위해 5억 달러 상당의 원조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다흘란은 다음과 같이 감사를 표했다. “오늘 알 시시 대통령은 가자 지구 재건과 현대적인 기반 시설 건설을 위하여 5억 달러를 할당함으로써 새롭고 주요한 공적을 쌓았다.” 이것은 다흘란과 알 시시 대통령 사이에 긴밀한 협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5월 20일, 친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작가, 니잠 알 마흐다위는 “이집트 대통령 알 시시가 가자지구에 제공한 5억 달러는 UAE가 송금한 자금이다. 이 자금의 목표는 가자지구 재건보다는 가자에서 하마스를 약화시키려는 다흘란의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결국, UAE가 이집트를 통해서 가자지역에 지원한 5억 달러는 다흘란의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터키 정부는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인 에르도안 대통령을 넘어뜨리려던 2016년 귈렌 쿠데타 시도에 다흘란이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2019년 11월 터키정부는 다흘란이 귈렌이 이끄는 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비난하면서, 다흘란을 체포할 수 있도록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는 현상금 70만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11월 터키 내무장관 슐레이만 소일루는 휘리예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다흘란을 최고 순위의 테러리스트 명부에 올려놓았다. 그는 미국에 기반을 둔 터키 사업가 귈렌이 이끄는 테러 단체(FETO)와 연계되어 있다.” 터키 외무장관 메블뤼트 차우쇼을루는 “다흘란은 이스라엘 정보요원이다. UAE는 테러범 다흘란을 수용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를 다흘란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한다.”고 비난했다. 터키인들에 따르면, 다흘란이 이스라엘의 계획에 따라 UAE의 자금 지원으로 역내에서 활동하며, 이스라엘과 UAE는 다흘란을 팔레스타인 수반으로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터키는 확고하게 UAE 정책 및 다흘란에게 반대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21년 7월 9일-11일 압바스 수반은 터키를 방문하여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하마스가 독려하는 反팔레스타인자치정부시위를 막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압바스 수반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인 하마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 내전에서 다흘란은 터키가 지원하는 서부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에 맞서 동부 지역 하프타르를 후원하였다. 뉴아랍 신문에 따르면, 2018년 3월 UAE는 하프타르를 지원하기 위해 리비아 동결자산 중 300억 달러를 다흘란을 통해서 하프타르에게 보냈다. 예멘 내전에서 남부 항구도시 아덴의 지배권을 놓고 사우디가 지원하는 하디 정부와 UAE가 지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가 충돌하고 있다. UAE가 지원하는 무장단체인 남부과도위원회가 예멘의 항구도시 아덴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덴은 사우디가 지원하는 하디 정부의 임시수도이기도 하다. 이렇게 예멘 남부 지역 지배권을 놓고, 사우디와 UAE가 불화하고 있다. 2015년 12월 아덴에서 발발한 폭탄 공격으로 인한 암살사건, 즉 사우디지원을 받는 하디 정부 및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인 알 이슬라흐 정치인 암살사건에 다흘란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 다흘란과 하마스의 전략적 협력: 2017년 권력 공유 협정  현재 UAE 및 다흘란이 중동 역내에서 실행하는 反무슬림형제단 정책과는 달리, 가자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에 맞서 무슬림형제단 연계 세력인 하마스와 협력하고 있다. 2017년 7월 23일,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는 “UAE에 망명 중인 다흘란은 이전에 최대 적이었던 하마스와 가자에 대한 권력공유 협정을 체결하였다. 권력 공유 협정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보안 통제권을 갖고, 다흘란은 가자지구로 귀환하여 외교관계를 다룬다는 내용이다.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후, 다흘란은 가자지구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보도하였다.  2017년 7월 23일, 다흘란은 AP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권력 공유 협정이 이집트/가자의 국경을 개방하고, 심각한 정전 사태를 완화시킬 것이다. 가자와 이집트 사이 국경의 이집트 쪽에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1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UAE로부터 확보되었다. 본인과 새로 선출된 가자의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와(재임:2017.2.13-현재)의 관계가 이집트와 UAE의 지지를 받으며 한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동맹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 둘 다 가자 지구를 위한 탈출구를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이로써, 다흘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집트 알 시시 대통령과 하마스 사이에 이집트/가자 라파 국경 개방 등 새로운 협력이 시작되었다. 2013년 7월 이집트 쿠데타 이후, 알 시시는 축출된 무슬림형제단 세력인 무르시정권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국경을 폐쇄하고 가자를 봉쇄해왔다.  작년과 올해 다흘란은 코로나 확산으로 고통받는 가자를 위하여 UAE가 보내는 의료지원을 조직하였다. 작년 12월 17일, UAE는 가자지구에 1차로 의료 지원품을 보냈다. 올해 1월 10일, 2차 UAE 지원 용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심각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산소호흡기, PCR 진단 키트, 방호복, 산소통 등 대규모 의료 지원으로 구성됐다. 이 의료 지원용품들은 라파 국경을 통해 가자지구에 도착했다.  하마스 사회부 차관인 가지 하마드는 다흘란이 조직한 정치 단체 ‘민주개혁블록’의 지도부 몇 명이 참석한 가운데 라파 국경에서 의료 지원용품 수송대를 환영했다. 여기서 하마드는 이 수송대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UAE에게 의료지원과 가자지구 원조에 기여한 '민주개혁블록'에게 감사를 표했다. ‘민주개혁블록’은 “UAE 의료지원이 하마스 보건부가 도움을 요청한 데 대한 답례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서 하마스와 다흘란, UAE, 이집트 간에 가자지구 운영에 대한 상호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작년 5월 19일, 6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UAE가 이스라엘을 통해 서안지구에 보낸 UAE의 코로나바이러스 의료지원을 거부했다. 거부 이유는 자치정부와 UAE 사이에 사전협의가 없었고, UAE-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6월 9일, 팔레스타인 총리 무함마드 시타야는 “UAE는 에미리트 항공기에 실려 벤구리온 공항에 착륙한 어떤 원조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조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원조에 대해 사전에 듣지도 못했다. 우리는 그 소식을 언론에서 들었다.”고 밝혔다. 또 파타 중앙위원회 부의장 마흐무드 알 알룰은 “UAE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의 정상화 합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분노를 달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다흘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법원이 다흘란을 부정부패와 금품 강탈 혐의로 기소했고, 그는 UAE로 도주하고 있어 대선 출마가 전면 거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및 파타는 UAE 및 다흘란과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마스 정치국 부의장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알 모니터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떤 국가를 통해서든 인도적 지원을 받는 것을 환영하며, 어떤 지원도 정치적인 이유로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UAE-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핑계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UAE 의료지원을 거부한 것에 놀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거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안보협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핑계로 UAE의 지원을 거부한다는 것은 이상한 모순이다. 다흘란은 팔레스타인 선거 출마를 강력히 원하고 있고, 우리는 그의 출마를 개의치 않는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다흘란의 인기와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압바스 수반에 맞서 다흘란과 하마스 사이에 우호적인 협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1월 15일, 압바스 수반은 올해 5월 22일 의회 선거, 7월 31일 수반 선거를 실시한다는 법령을 발표 했다. 3월 17일, 다흘란은 사우디 알-아라비야 TV 인터뷰에서 총선과 수반 선거에 참여할 뜻을 밝히면서, “팔레스타인 국민이 우리에게 충분한 의회 의석을 준다면, 우리는 기존 질서를 바꿀 수 있다”고 야심차게 말했다.  그런데 4월 29일 압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주민들의 선거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선거를 무기한 연기하였다. 게다가 6월 24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안대가 팔레스타인 인권운동가 니자르 바나트를 살해하였다. 이에 분노한 하마스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제휴관계를 갖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광범위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탄압 정책에 항의하면서, 압바스 수반의 즉각 퇴진을 넘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전면 해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8월 2일에도 라말라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나자르 바나트 살해 사건을 규탄하고 그의 살인범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을 촉구하면서, “압바스, 우리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치정부를 해산하고 우리를 떠나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다.  압바스와 그의 측근들은 서안 점령지에서 불붙은 反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시위에 하마스가 기름을 붓고 있다고 주장한다. 궁지에 몰린 압바스 수반은 2021년 7월 9일-11일 터키를 방문하여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하마스의 反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시위독려를 막아 달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황이 팔레스타인 정치복귀를 꿈꾸는 다흘란에게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2021-08-11 | hrights | 조회: 1469 | 추천: 6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2015년 7월, 일본 평화박물관 탐방을 다녀왔다. 피스 오사카,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 국제평화박물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오카마사하루기념 평화자료관을 돌아보며 일본사회가 어떻게 역사를 취사선택하고 있는지 보았고, 또 그러한 역사인식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도 만났다.  어느 날은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하시마섬에 들어갔다. 일명 ‘군함도’라 불리는 그곳은 한때 일본 최초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근대 도시였다. 폐허가 되어 무너져 내린 곳도 있지만, 수영장, 학교 등의 시설이 보였고, 고층 아파트에 사는 일본인들은 꽤 부유한 생활을 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여전히 회색 콘크리트 도시의 위용을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한쪽은 조선인이 반대쪽은 중국인이 탄광 노동자로 징용을 살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지하 공간이라 파도가 들이치는 곳이었다. 탄광에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면 몸을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다. 고작 세 개의 통에 순서대로 몸을 담가 검댕을 씻고 매일 갱도로 들어가야 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곳, 그들이 ‘근대’라 일컫는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야만’이고 ‘지옥’이었다. 쓸쓸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TV를 켜니 일본 사회가 기쁨에 술렁이고 있었다. 그날은 7월 5일, 하시마섬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날이었다.  최근 일본 정부가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킬 때 강제노동의 역사를 함께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에 메이지 시대 산업화 성과 위주의 전시만 있고 징용 피해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는 것, 오히려 군함도의 탄광을 소개하면서 징용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 논란의 발단이었다. 일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 권고를 받아들여 약속한 조치를 성실히 이행해 왔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유네스코의 ‘유감’ ‘경고’ 입장을 연일 보도하고, 일본의 태도와 역사 왜곡에 대해 앞 다투어 강경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군함도 사진 출처 - 필자  하시마섬에서 쓸쓸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돌아선 그때를 생각하면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가 일어야 마땅하겠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한국 언론에 대한 분노가 더 앞선다. 유독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있어 ‘민족’과 ‘피해’라는 편협한 역사 인식 아래 묻지 마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비단 ‘군함도’ 뿐만이 아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중심으로 강제동원 피해 문제, 독도 영유권 다툼 등 일본과 엮여 있는 모든 문제들은 대부분 그렇다.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못지않게 한국 사회에 ‘헤이트 재팬’을 조장하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다. 단지 ‘갈등’을 조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취사선택하지 않고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달, 한베평화재단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베트남전쟁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국내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 주둔지역과 피해 마을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 평화기행’과 달리 국내 평화기행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만날 수 있는 곳을 탐방하고 우리 기억의 현주소를 찾아가 보고자 한 기획이었다. 우리가 찾아본 베트남전쟁의 흔적들, 용산 전쟁기념관, 현충원, 화천 월남파병용사만남의 장, 전국 방방곡곡 서 있는 월남참전기념탑은 6.25전쟁과 더불어 한국 사회 ‘안보’ ‘애국’ ‘이념’ ‘발전’이데올로기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회적 성찰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전쟁 기억은 국가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논리 속에 현재의 전쟁과 해외파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이 불러온 수많은 ‘피해’와 ‘희생’을 외면하는 사이 고통은 잊히고 ‘발전’과 ‘기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18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 법정이 열렸다. 이 법정은 대한민국이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 노력을 할 것과 더불어 용산 전쟁기념관을 포함해 베트남전쟁 한국군 참전을 전시하는 모든 공공시설에 대한민국 군대의 불법행위를 함께 전시할 것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19년 영국 런던에 라이따이한과 어머니를 상징하는 모자상이 세워졌다. 모자상과 같이 한국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점점 커져가는데 한국 언론에는 관심 밖이다. 몇 군데 국내 언론의 단순 보도만이 있었을 뿐이다. 68년 일어난 퐁니·퐁녓 사건에 대한 한국 참전군인의 양심선언도 크게 관심 받지 못했다. 성미산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전쟁기념관 탐방 사진 출처 - 필자  굳이 ‘피해’와 ‘가해’의 구도를 인용해본다면, 가해의 기억을 지우기보다 치열하게 접근한 사회는 성찰이라는 윤리성을 통해 보다 시민의식이 강해지고 다른 나라와 믿음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익히 보아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인식은 어떠한가. 일본의 태도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유독 일본과의 역사문제에만 뜨거운 한국 언론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2021-07-21 | hrights | 조회: 901 | 추천: 7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요즘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들이 있다. 주민자치, 마을돌봄, 돌봄공동체 등이 그것이다. 하고 있는 일과 위치가 그렇다보니 원하지 않아도 부르기도 하고 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귀가 자꾸 향하는 듯도 하다. 예전에는(물론 아직도 그렇지만) 정부-광역시. 도-지방자치단체-읍면동사무소-마을로 내려오는 일관된 하향식 정책과 제도, 사업들이 정보로 전해져오고 할지 말지 선택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았다. 체계화하고 조직화해야 효율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대로 실현된다고 생각한 행정 중심의, 중앙중심의 시스템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정부나 행정이 어렵거나 부족한 부분을 위탁이나 공모방식으로 기관, 단체 또는 국민들이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복지’ 부분에서 대표적으로 구조화된 현실을 보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에서 내리면 현장에서는 읍면동 복지팀이나 복지관, 자생 봉사단체가 그 일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은 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심심찮게 가게 되었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모든 복지대상자를 위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다 감당하기 힘들어서인지 현 정부 들어서서 생활권 단위(마을)를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 마을돌봄체계 구축 등 새로운 복지정책을 모색해보는 듯하다. 이 얼마나 괜찮고 좋은 소식인가. 예전 마을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 이웃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선한 마을생활을 다시 복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계획은 그럴싸하고 취지도 좋고 기관, 단체들도 모이고 하는데 뭔가 삐그덕대는 모습이 보이고 원래 목적대로 현장에 잘 실현되는지는 의문이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초보 농군 딱지를 떼고 마을 이장이 되었을 무렵인 2010년 어느 날로 기억된다. 이장의 중요 임무 중 하나는 면이나 농협 등에서 마을주민들에게 공지해야 할 일을 마을방송을 통해 알리는 일이었다. 감자 종자 신청하신 분들에게 몇월 며칠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가져가시라는 방송을 막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이른 아침 마을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도로에 나와 손짓을 하시며 내 트럭을 세우셨다. 할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집 불이 나간지 일주일이 넘었고 배달시켜야 하는 가스도 끊어진 지 열흘이 넘었다 하신다. 가스는 보통 두 통이 있는데 한 통을 열어보니 가스가 공급되었고, 전기는 누전차단기가 고장나 시내에 나가 사다가 교체해 드렸다. 내게는 이 간단한 일이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는 도시에 사는 아들내미에게 전화를 해 놓고 이제나 저제나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마을에 들어와 산지 5년이나 지났는데 마을의 이런 사정을 미처 몰랐던 내가 한심스럽고 안타까웠다. 젊은 사람들이 없는 농촌에서, 이런 간단한 생활의 어려움을 이웃에게 부탁하고 서로 도우며 살았던 마을공동체는 옛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 출처 - 필자  고민이 되었고 마을 젊은 작목반, 별빛 교육센터 선생님들과 이런 문제를 얘기했고 해결할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긴급출동! 우리마을 119’다. 전기, 가스, 보일러, 수도 등 기본적인 생활의 불편함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요청할 수 있는 구조를 마을에 만들자는 것이었다. 일단은 별빛 사회적 협동조합에 젊은 친구들이 일하고 있으니 스티커를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 댁에 전화기 옆, 냉장고, TV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일일이 방문하여 붙여드렸다. 그렇게 마을 스스로 돌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복지관이나 행정 읍면동사무소에서는 할 수 없거나 어려운 일을 마을은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기어이 2018년 별빛 사회적 협동조합에 ‘나이 들기 좋은 마을 팀’(노인복지팀)도 만들고 마을 119 활동을 기본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고 살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우리마을 119 두 번째 센터는 우리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에 생겼으면 하는 바램과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정부의 정책방향도 bottom up(아래로부터) 방식으로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멀기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색하고 낯설다. 더디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하는 주장도 일면 타당성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마을일은 마을스스로 특히 우선적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도움은 우리사회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춘천시는 ‘우리마을 119 설치 및 지원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에는 곳곳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각 종 봉사단체, 주민자치회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정부는 자치단체는 행정은 이 주민들이, 시민들이 스스로 서로 돌봄을 잘 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환경과 제도와 예산을 지원해주면 된다. 그렇게 될 때 마을돌봄은 곳곳에 풀뿌리처럼 정착할 것이고 공동체가 회복되는 ‘마을’로 진화될 것이다.
2021-07-06 | hrights | 조회: 992 | 추천: 7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제미 버튼(Jemmy Button)이란 아이가 있었다. 남미 파타고니아의 티에라 델 푸에고 섬 사람이다. 스페인어로 ‘불의 땅’이란 뜻인 티에라 델 푸에고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마젤란 해협 남쪽 섬으로 남미대륙의 땅끝이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선이 이 섬을 절반으로 가르고 있다. 중심도시 우수아이아는 남극 여행 크루즈가 출발하는 곳이다. 제미 버튼의 본명은 오룬델리코. 푸에고 원주민 야마나(Yamana)인이다. 황량한 남극지방의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푸에고인들은 불을 피우고, 물개 가죽과 과나코 털을 몸에 걸쳤다. 오룬델리코가 태어난 19세기 초반은 이곳에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다.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등 유럽인들이 계속 탐험을 왔지만, 어느 세력도 확고한 지배권을 갖지는 못했다.  오룬델리코는 어떻게 제미 버튼이 되었을까? 그는 진주 단추 하나와 교환되어 제미 버튼이란 이름을 얻었고 영국으로 끌려가 3년간 머물렀다. 제미 버튼의 여행은 자기 의지로 떠난 길이 아니라 납치로 인한 것이었다. 그를 데려간 사람은 비글호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였다. 비글호는 영국 해군 함정으로 1826년부터 1830년까지 남미 해안선 조사와 경도 확정, 그리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마젤란 해협 일대 탐사를 목적으로 항해를 했다. 티에라 델 푸에고 섬에서 몇 명의 푸에고인이 비글호의 고래잡이 보트를 훔쳐 달아나자 피츠로이 선장은 보트를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야마나인 세 명을 인질로 잡고, 또 다른 한 아이를 납치해 비글호에 태워 영국으로 데려갔다. 진주 단추와 맞바꾼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제미 버튼이었다.  피츠로이가 이들을 영국으로 데려온 명분은 ‘야만인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베풀겠다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통역자로 양성한다는 실용적 목적도 있었다. 일종의 ‘문명화 실험’이었던 것이다. 일행은 1830년 10월 플리머스 항에 도착했다. 한 달 후 한 명은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고, 나머지 셋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영어와 찬송가를 배웠다. 영국식 복장과 헤어 스타일을 하고 사교계에 불려 나가 국왕 윌리엄 4세와 애들레이드 왕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야만인’ 푸에고인을 문명사회로 데려와 기독교도로 개종시키고, 영어를 가르치고, 상류사회의 예의범절을 몸에 익혀 신사숙녀로 만드는 실험, 이것이 제미 버튼 일행이 강요당한 이상한 여행의 실체였다. 피츠로이 선장이 그린 푸에고인 사진 출처 - Jemmy Button in 1833 from 'Fuegians' in The narrative of the voyages of H.M. Ships Adventure and Beagle. Vol. 2. by FitzRoy (1839).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신기한 사물을 유럽으로 가져왔다. 사물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 사람도 수집 대상이 되었다. 식물은 표본을 채집하거나 씨앗을 가져와 식물원에서 재배했다. 동물은 박제로 만족하지 못하고 산 채로 포획해 동물원에서 사육했다. 유물을 원산지에서 분리하고, 동식물을 원서식지에서 이식하는 이 거대한 흐름의 속에서 식물원,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런던에는 다양한 인간 전시가 넘쳐나고 있었다. 사르키 바트만의 ‘호텐토트 비너스’ 쇼가 인기를 끌었고, 이누이트인, 아즈텍인, 산족, 줄루족이 출연하는 인간 전시가 흥행몰이를 했다. 인간을 수집과 전시의 대상으로 삼는 일, 이른바 ‘인간동물원’은 현대의 인권 감수성으로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박물관 발달의 합리적 귀결이었다. 피츠로이 선장이 그린 푸에고인(확대) 사진 출처 - Jemmy Button in 1833 from 'Fuegians' in The narrative of the voyages of H.M. Ships Adventure and Beagle. Vol. 2. by FitzRoy (1839).  물론 제미 버튼이 쇼 무대나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건 아니다. 다윈의 관찰에 의하면, 이 젊은이는 멋 부리기를 즐기고 거울 속 자기 모습에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다윈은 이 불쌍한 푸에고인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미개인’에서 ‘문명인’이 되었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피츠로이 선장의 비글호 두 번째 항해 때 귀국한 그는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 원래 생활방식으로 돌아갔다. 영국에서 보여준 놀라운 적응은 생존전략에 불과했던 것인가? 런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개방형’ 전시물이 되었을지언정, 피츠로이의 문명화 실험은 대실패였다. 제미 버튼이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문명을 동경하고 영국 생활을 즐겼는지, 아니면 단지 견뎌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남은 기록이라고는 피츠로이 선장의 보고서와 다윈의 비글호 여행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둘 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의 시선으로 오염된 텍스트다. 제미 버튼의 이야기는 접촉지대에서 발생하는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만남이 얼마나 비대칭적인지, 나아가 ‘우리’와 ‘그들’ 사이의 평등한 만남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2021-06-23 | hrights | 조회: 1461 | 추천: 8
: 이스라엘 내 아랍 정당들 통합 강타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  2021년 6월 13일, 이스라엘 새 연립정부가 의회 신임 투표에서 전체 120석 중 60 : 59, 1표 차로 승인되었다. 새 정부는 극우파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가 이끌고, 우파와 좌파뿐만 아니라 이슬람주의를 내세운 라암당 등 정치이념이 다른 8개 정당이 합류하였다. 새 총리 베네트는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불법적인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팔레스타인인 살해를 옹호하는 등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바 있다.  네타냐후 정부와 박빙의 대결 구도 속에서, 새 정부 출범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인물은 의회에서 4석을 확보한 이슬람주의자 라암당을 이끄는 만수르 압바스다. 만수르 압바스(왼쪽)와 나프탈리 베네트 사진 출처 - 구글  압바스는 2020년부터 네타냐후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네타냐후 정부와 새 정부 사이에서 어느 쪽에 합류할 것인가를 저울질해왔다. 2020년 11월 19일 예루살렘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압바스는 “다른 아랍계 의원들과는 달리, 나는 네타냐후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2020년 11월 24일 채널 20과의 인터뷰에서, 압바스는 총리 네타냐후에 대한 지지 및 협력관계를 공개하고, “아랍정당들이 모두 좌파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이슈 및 종교와 국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우파다. 정치 체제는 이스라엘 사회가 선택한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맞서 공동명부 소속으로 압바스 동료였던 임따니스 샤하다는 “이러한 만수르의 행위는 공동명부를 탈퇴하기 위한 변명이며, 네타냐후의 마우스피스 노릇을 한다.”고 비난하고, 공동명부로부터 압바스 축출을 요구하였다.  결국, 라암당은 2021년 1월 28일 공동명부를 탈퇴하고, 3월 23일 선거에 단독 출마하여 4석을 획득함으로써 의회 내에서 이슬람주의자의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이후, 압바스는 네타냐후 정부와 네타냐후를 축출하기 위하여 결집한 새 정부 구성 추진 세력 사이를 오락가락하였다. 압바스가 ‘킹 메이커’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종적으로 그는 네타냐후를 버리고, 새 정부 추진 세력, 베네트를 선택하였다. 사실, 인종차별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에 있어 네타냐후와 베네트 사이의 차이는 거의 없다. 압바스는 아랍 통합 세력인 공동명부를 떠나 새로운 이스라엘 정부에 참가함으로써, 이스라엘 내 아랍 정당들 통합에 커다란 타격을 가하였다. 이로써 분할통치 전략을 구사하는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다루기에 훨씬 손쉬운 대상이 되었다.  2015년 이후 이스라엘 내 아랍 정당들의 통합으로 공동명부가 창출되어 아랍 팔레스타인인들을 결집시킴으로써, 현실 정치 참여도가 높아졌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2013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 56%가 참가하였고, 공동명부가 만들어진 2015년에는 63.5%가 참가하였다. 2013년 의회 선거에서 아랍 정당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 투표의 77%(349,000표)를 획득하였다. 2015년 의회 선거에서 공동명부는 팔레스타인 아랍인 투표의 82%(444,000표)를 획득하였다. 2015년 아랍 정당들이 단일 공동명부로 출마하기로 합의한 이유는 2014년 3월 11일 제정된 선거법이 선거 문턱을 득표율 2%에서 3.25%로 높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하나의 정당이 최소 4석을 확보해야 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공동명부 출범 이후, 이스라엘 내 아랍 정당들은 다음의 투표 결과를 얻었다. 2015-2021년 이스라엘 아랍 정당들의 의석 선거일 정당 대표 의석수(총 120석) 득표 % 정당순위 2015.03.17 공동명부 아이만 오데 13 10.54 3/10 2019.04.09 하다시-타알 아이만 오데 6 4.49 5/11 라암-발라드 만수르 압바스 4 3.33 11/11 2019.09.17 공동명부 아이만 오데 13 10.60 3/9 2020.03.02 공동명부 아이만 오데 15 12.67 3/8 2021.03.23 공동명부 아이만 오데 6 4.82 10/13 라암 만수르 압바스 4 3.79 13/13 공동명부는 2015년 이스라엘 내 아랍계 4개 정당 하다시(사회주의), 타알(아랍민족주의, 중도좌파), 발라드(아랍민족주의, 좌파), 라암(이슬람주의)의 정치연합으로 창립됨. 4개 정당 중에서 라암만이 이슬람주의를 표방하였다. 2021년 1월 28일 라암은 공동명부를 탈퇴함.  위의 표에 따르면, 모든 아랍 정당이 통합하여 공동명부로 단독 출마했을 때, 아랍인들의 투표율뿐만 아니라 득표율도 높아짐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랍인들의 통합의식이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7월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파가 주도하여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국가라는 인종차별을 제도화하는 ‘유대민족 국가법’을 제정하는 등 각종 반아랍 입법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인종차별이 제도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공동명부는 이스라엘 내 정당 순위 3위로 부상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다. 특히 2020년 다양한 파벌로 나뉘어 서로 분쟁하는 이스라엘 유대인 정당들은 공동명부를 구성한 아랍인들의 협력을 얻어야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도래한 것 같았다.  그러나 2021년 6월 라암당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을 추진하는 새 정부에 합류하면서,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통합은 커다란 걸림돌을 만난 듯하다.  압바스는 새 정부 구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내 아랍 사회에 만연한 범죄, 폭력, 실업 문제, 주택 부족 문제 등과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지방의 베두인 마을 허가 및 경제 발전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압바스는 이슬람을 내세운 정당을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예루살렘 소재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 및 공격, 동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 축출,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책 등을 새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논의 주제로 내놓지 않았다. 이슬람주의자 압바스는 이슬람 성지나, 성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직면한 긴급한 민족적인 문제를 새 정부에서 해결해야할 중요한 사안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압바스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당면한 민족적인 문제에는 눈을 감고, 세부적인 이스라엘 내 아랍 공동체의 사회∙경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적인 민족 문제와 이스라엘 내 아랍 공동체의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은 모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지배하기 위한 이스라엘 정책에서 나온 것이며,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압바스는 단지 이스라엘 정치 체제에 적극 순응하는 기회주의적인 아랍인 이슬람주의자일 뿐이다.
2021-06-15 | hrights | 조회: 1322 | 추천: 8
이윤/ 경찰관  1993년 개봉한 영화 ‘도망자’에서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주인공은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유죄판결을 받아 호송되던 중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도주하였다. 나는 이 영화에서 끝까지 탈주자를 검거하려 뒤쫓는 역할을 한 토미 리 존스가 경찰이 아니고 마샬(U. S. Marshals)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 마샬은 탈주자가 진범인지 여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검거라는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할 뿐인 현대판 자베르 같은 사람이었다.  미국의 마샬은 무려 1789년에 설립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법집행기관으로, 미국 법무부 소속이며 미 연방법원 집행부서로서 종사한다. 마샬의 임무는 탈주자 및 수배자 검거, 연방 죄수 호송, 범죄 취득 자산 관리, 연방 증인 보호 프로그램 수행 등이다(위키피디아 참조).  한국도 마샬 같은 조직이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호송 중이거나 수감 중인 사람이 도주할 경우 검거는 경찰이 해 왔다. 그런데 재판을 마친 사람에 대한 형집행은 원래 법무부와 검사의 업무다. 따라서 형집행 중 도주하여 집행이 완료되지 못했다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실효성있는 집행이 되도록 하는 것도 법무부와 검사의 일이다. 사진 출처 - 구글  물론 경찰이 이 일에 손을 대지 않을 수는 없다. 탈주범이 도주 중에 국민들에게 가할 위해를 방지해야 하고, 전국적 조직망을 활용하여 검거 지원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책임의 주된 주체는 경찰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탈주범이 발생했을 때 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검거 시까지 비상근무를 하는 것은 주로 경찰이었다. 그리고 도주 후 며칠이 지나도 잡지 못하면 ‘얼빠진’, ‘넋 나간’과 같은 모멸적인 수식어로 비난을 받는 것도 경찰이었고, 천신만고 끝에 검거하더라도 기자들이 도주 행적을 파헤치며 더 빨리 잡을 수 있었는데 놓쳤다면서 칭찬은 고사하고 수사력을 의심받는 것도 경찰이었다. 놓친 사람과 검거 책임자는 숨죽이고 앉아있고, 실컷 고생하고도 빨리 검거하지 못한다고 욕먹는 사람은 따로 있다면, 이건 불공정하고 억울해서 속 터질 일이다. 게다가 경찰은 공안직보다 봉급도 덜 받는데 말이다.  1999년 어느 날 밤 시골 경찰서에서 당직을 하던 중이었는데, 형집행장 발부자가 검거되어 상황실에서 대기시켰다. 지방검찰청은 전주에 있었는데, 경찰관들이 전주까지 호송하여 데려다주거나, 검거자로 하여금 벌금을 납부하도록 한 후 석방해야 했다. 검찰 직원들은 자신들이 수배한 사람임에도 데리러 오지도 않았다. 아마 경찰관이 호송하여 데려다주어도 그 저녁에는 데리고 있을 데가 없어 받아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늦은 밤에 가족이 벌금을 납부하였고, 경찰서에서는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 귀가 조처하였다. 이 사례에서 형집행장은 벌금형 선고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벌금을 납부하도록 협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경찰은 검사 대신 협박을 실행하는 악역을 맡았던 것이다.  형집행 업무는 수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이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형집행 사무는 피고인 구속업무 조항을 준용한다는 형사소송법 조문을 근거로 경찰에게 형집행을 위한 검거와 호송업무까지 지휘하여 시켰었다. 만일 위 사례의 사람이 벌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태로 몰래 도주하였다면 그 비난과 책임은 또 오롯이 경찰에게 쏟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검찰의 벌금형 선고자에 대한 형집행장 발부는 적법하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검찰징수사무규칙에 의하면 벌과금 징수절차는 ①징수금의 조정→②납부명령→③납부독촉→④강제집행→⑤노역장유치집행 순으로 진행된다. 노역장유치를 위한 형집행장 발부를 위해서는 소환불능/도망·도망 염려/소재불명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형집행장 발부는 강제집행 등 다른 수단을 모두 사용하였지만 벌금을 징수하지 못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검찰은 독촉, 소환, 강제집행 절차를 생략·무시하고 형집행장을 발부하는 규칙위반 관행을 계속하고 있다(내일신문 참조).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로 볼 수 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벌과금징수절차를 위반하여 형집행장을 발부한 것이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하여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면서 재발방지를 주문했다. 그러나 검찰은 10년 넘게 이를 무시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 벌금형 집행률은 노역장유치가 57%, 현금납부 14% 수준이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 중 반 이상이 실제로는 징역형과 같은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0% 정도는 제대로 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 역시 공평의 문제다.  누군가에겐 얼마 되지도 않는 벌금인데, 그것을 납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노역장에 가야 하는 현대판 장발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지키는 벌과금 징수업무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소위 재산비례 벌금제를 시행하게 되면 소득과 자산 규모에 따라 벌금이 수억, 수십억 원에 이르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형벌 효과를 위해서 벌금형은 제대로 집행되어야 한다. 세금도 집에 숨기고 내지 않는 요즘 누가 그 벌금을 찾아내고 징수할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형집행장을 발부하여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형벌 실효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더 이상 경찰이 벌금 징수를 위한 위협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이제는 한국판 마샬 도입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 경찰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려 하지 말고, 중요 수배자 및 탈주자 검거와 호송, 벌금형 징수 및 형집행장 집행, 범죄수익 몰수 및 추징, 증인 보호 프로그램 등을 시행할 전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형집행장 발부를 남발하지 말고 규정대로 절차를 지켜서 벌금을 징수하도록 해야 한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업무가 폭증하는데 검사들은 야근이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업무는 조정되었는데 아직도 남아도는 검찰 인력과 예산은 경찰에 이관되지 않았다. 만약 검찰의 잉여인력을 경찰에 전환시키지 않을 것이라면 그 인력을 활용하여 한국형 마샬을 검찰이나 법무부에 설치하길 바란다. 자기 일 남 시키는 것도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2021-06-08 | hrights | 조회: 1941 | 추천: 18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올해 전국 지자체 발행 규모가 15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의 부정유통행위가 전국 일제단속을 통해 최근 112건이 적발됐다.  지난 5월 13일 행정안전부는 지역사랑상품권 부정유통 일제 단속 결과를 발표했다. 소위 ‘깡’ 행위를 저지른 개인과 지역화폐 가맹점을 적발하고 조치한 것이다.  지역화폐 발전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부정유통행위는 크게 물품의 판매 또는 용역의 제공 없이 상품권을 수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너무 어려우니 쉽게 풀자면,  10% 선할인 혜택을 받아 9만 원을 내고 10만 원의 지역화폐를 구매(교환)한 지역화폐 가맹점의 점주, 점주의 가족, 점주의 지인들이 해당 점주의 가게에서 물건을 실제 구매하지 않고, 점주는 이를 그대로 현금으로 환금할 경우 1만 원의 부당 차익을 남기는 것이 기본형이다.  여기서 아예 물건을 팔지도 않는 유령가맹점을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등록한 후 음성적인 자금으로 지역화폐를 대량 구매하거나 구매대행을 시킨 후 그대로 환금하는 기업형 부정유통도 최근 발생했다. 심지어 폭력조직이 고교생을 모아 구매대행을 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밖에 실제 매출금액 이상의 거래를 통하여 상품권을 수취하는 행위, 개별가맹점이 부정적으로 수취한 상품권의 환전을 대행하는 행위, 상품권 결제 거부 또는 상품권 소지자를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등도 포함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행정안전부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7월 시행된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 법률에서 부정유통행위 적발 시 최고 2천만 원의 과태료 규정이 포함되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지역화폐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악재를 강력하게 차단하겠다는 의지였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이번 일제 단속 이후 부정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후속 조치이다. 무엇보다 예방적 조치가 가장 필요하다.  지역화폐는 지류, 모바일, 카드형 결제수단이 있다. 하나의 결제수단만 도입한 지자체는 별로 없고 대부분 중복으로 사용한다. 이들 결제수단 중 모바일 또는 카드형은 발행위탁업체에서 부정사용방지시스템(FDS(Fraud Detection System)을 운영하거나 업그레이드를 진행 중이다. 발행위탁업체 중에서는 지류-모바일-카드 모두 관리가 가능한 통합시스템을 갖춘 곳도 있다.  부정사용방지시스템은 부정유통이 의심되는 사용자와 가맹점의 이상거래패턴을 감지하고 이를 분석하여 관리자에게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발행위탁업체가 지자체 담당자에게 실시간 오픈하고 지자체 담당자들은 항상 스크린하며 의심 대상자들에게 ‘이상거래패턴이 감지되니 주의하시기 바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면 부정유통행위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확신한다. 지역화폐 ‘깡’을 해볼 요량을 피자마자 즉각 경고 메시지가 온다면 웬만큼 간이 크지 않고서야 또 다른 엄두가 안날 노릇일 것이다.  부정유통행위 중 가장 고약한 유령가맹점을 통한 조직적인 깡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별수 없이 현장 실사가 필요하다. 현재 등록제인 지역화폐 가맹점들을 등록 후 반드시 한차례 이상 방문하여 실제 영업을 하고 있는지, 등록신청서와 동일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확인하여 의심업체는 조사에 들어가야 한다. 지역화폐가 원활히 이뤄지는 지자체의 경우 현장지원 서포터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서포터즈들의 업무에 유령가맹점 여부확인을 포함시키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상인조직들과의 예방 노력도 필요하다. 부정유통 방지 현수막 게시 등 정기적인 계도활동을 상인회 등과 함께 한다면 이해당사자들의 책무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부정유통행위인지 잘 모를 수 있는 가맹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공지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예방보다 더 좋은 조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이것이 근원적인 문제해결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지역화폐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했던 인센티브 제공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지역화폐는 깡 행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코로나19 시국에서 골목상권에 지역화폐가 더 많이 돌게끔 정부가 파격적인 구매 할인액을 보전해주고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적절한 규모를 넘어선 높은 재정투입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변죽만 울리는 진단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도입비율도 비교하지 않고 결제수단이나 할인제공 형태별로 부정유통행위가 높거나 낮다는 분석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강조하건대 결제수단이나 할인제공 형태가 아무리 달라져도 할인 차익을 취하기 위해(그 규모가 매력적이면 매력적일수록)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제약이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부정유통 현장단속을 다니며 진이 빠져버렸다. 지역화폐라는 어쩌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소상공인들은 물론 중앙·지방정부 모두.
2021-05-26 | hrights | 조회: 863 | 추천: 1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정치는 정의를 둘러싼 투쟁이다.  흔히 사실과 당위를 구분한다. 둘 다 순수하게 사적인 차원에서 성립해서 작동하지 않고 공공적인 차원에서 성립 · 작동한다. ‘기회는 균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제시하기도 했던 대표적인 당위의 언명이다. 평등으로 균등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과 당위를 구분한다고 해서 둘이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반대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위 취임사의 당위는 ‘기회가 균등하지 않고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결과가 정의롭지 않다’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저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 누구나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실에 이미 당위가 함축되어 있다.  시제로 보자면, 사실은 현재에 이른 과거 즉 현재완료에 해당한다. 당위는 현재에서 미래로 향한 미래완료에 해당한다. ‘그래야만 했다’라는 과거의 당위는 독특한 사실이다. 이 진술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라는 사실이 덧붙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것은 당위가 아니고 필연이다. 필연은 사실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필연은 행위 주체를 수동적으로 규정한다. 행위 주체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사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럴 때, 행위 주체의 능동성에는 암암리에 당위가 작동한다. 그래야만 한다고 판단한 뒤, 그렇게 행위하고 그 행위에 따라 사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수는 기존의 사실을 지속하고자 하고, 진보는 새로운 당위를 현실화하고자 한다.  행위 주체의 능동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를 수행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정치적인 행위야말로 가장 강한 능동성을 띨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만약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그러지 않아야 했고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그 대통령의 통치 행위는 무능함을 나타낸다. 그때는 그래야 한다고 판단해서 능동적으로 행위를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한 것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때도 역시 그때 대통령의 통치 행위는 무능함에 따른 것이다.  기회가 균등하다는 것도 정의에 해당하고, 과정이 공정하다는 것도 정의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결과만 정의롭다고 해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아니다. 시작도 과정도 끝도 정의로와야 한다. 정의가 무엇인가에 관해 온갖 복잡한 논의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절대적인 보편적인 원칙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현실이 각자의 삶을 규정한다고 할 때, 그 규정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가치에 대한 자신의 몫이 어떻게 배분되는가로 귀착된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각자의 몫의 배분이야말로 정의의 근본 내용이다. 노예가 생산한 것을 주인이 다 가져간 뒤, 노예에게 생명 유지에 필요한 만큼의 몫을 나누어주는 것도 정의의 한 방식이고, 농노가 생산한 것에서 지주인 영주가 상대적으로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도 정의의 한 방식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행의 법에 따라 자유롭게 시장 행위를 하여 이윤을 올린 뒤 상응하는 세금을 내고 남은 이익을 온통 자신의 몫으로 가져가 축적함으로써 가난한 자들과 아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를 소유하는 것 역시 정의의 한 방식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현실에서 통용되는 정의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으로 구성된 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다. 통용되는 정의를 정의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들은 현실의 정의가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불만을 느끼고 급기야 견디다 못해 단합하여 노예 반란, 농민 반란, 부르주아 혁명 및 노동자 대투쟁 등으로 불리는 방식으로 대대적인 투쟁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반란과 혁명을 둘러싼 세력 투쟁이야말로 가장 첨예한 정치적 활동이다. 이에 정치는 곧 정의를 둘러싼 투쟁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 현행의 법적 정의의 실현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세워야 할 정의로운 법을 향한 투쟁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다. 2. 문 대통령과 검찰개혁  사회적인 정의를 책임지는 주체는 국가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중심제에서는 국정을 총괄해서 권한을 행사하고 책무를 다하는 자는 대통령이다. 즉 대통령은 국가를 대신해서 사회적인 정의를 책임진 대리자다.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적인 정의에서 기초는 국가 공동체 자체의 안정된 유지다. 이는 기본적으로 형법을 통해 명문화된다. 크건 작건 국가 공동체의 안위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정의는 형법 중심의 법적 정의로 현실화된다. 그동안 국가의 법적 정의를 배타적으로 책임진 조직은 검찰이었고, 이를 위해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검찰은 그 수장인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대통령의 통치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대통령뿐만 아니라 관련 조직이나 인물들의 범법 행위를 짐짓 보아 넘기거나 비밀리에 보호하는 등 통치 권력의 수족 노릇을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현행의 법적 정의를 수호하는 척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검찰이 직접 나서서 새로운 정의로운 법을 세우고자 한 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은 정치의 몫이고, 검찰은 정치적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촛불 시민혁명이 일어났고, 그 시민의 힘으로써 임기를 채우지 않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성과를 올렸고 급기야 현재의 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그래서 현 정권을 일컬어 촛불 정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촛불 시민의 힘을 바탕으로 검찰은 마치 새롭게 거듭난 듯 전직 두 대통령의 반국가적인 행위를 적발해 내어 구속 · 기소하여 재판에 넘겼고, 최종심은 아직 아니지만 적어도 수십 년의 징역형이 선고되도록 했다.  다들 알다시피, 이를 기회로 삼아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대상으로 검찰개혁을 제시했다. 조국이라는 교수에게 민정수석을 맡겼고 조국은 검찰개혁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그러면서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적으로 조치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윤석열을 마침내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는 “청와대든 여당이든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법적 정의에 따른 원칙주의가 발동한 것이다.  윤석열은 두 전직 대통령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함으로써 검찰의 순수성이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자신이 몸담고서 충성한 검찰이야말로 국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한 법적 정의의 화신임을 입증해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살아있는 최고 권력’이라 할지라도 법적 정의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주저하지 말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가 자신이 지휘하는 검찰이야말로 법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임을 실감케 한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윤석열은 검찰 스스로 검찰개혁을 수행해 주기를 자신에게 주문한 문 대통령을 어리석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 여겼을 것이라 짐작된다.  아무튼, 윤석열에게는 두 개의 상반된 임무가 주어졌다. 살아있는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과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검찰개혁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목을 죄는 것과 같다. 이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새로운 정의로운 법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권력을 잡는 것은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 · 기소함으로써 확보한 검찰의 순수성과 위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 기정사실로 만드는 일이다. 윤석열은 후자를 택했다.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조국 민정수석을 살아있는 권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택했고 검찰 조직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그와 그의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인과 장모의 탈법 · 위법이 세간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부하 검사들의 행위가 위법가능성이 충분히 드러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getty image  ‘적폐청산’이란 말은 자신이 그 대상이라 여기는 자들에겐 대단히 폭력적인 낱말이다. 이 낱말을 쓰는 순간, 그동안 일본 강점기로부터 이어지는 오랜 독재정권에 요모조모 빌붙어 현실적인 사회 권력을 확보한 숱한 세력들의 거센 반동의 저항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 반동적인 저항을 어떻게 분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전략 · 전술을 마련해 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 전략 · 전술의 선봉장이라 여겨 내세운 검찰총장이 아예 반동적인 저항을 마치 총괄적으로 이끄는 야전사령관과 같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부랴부랴 조국을 법무부 ― ministry of justice ― 즉 ‘정의 수호의 내각부 기관’ 의 수장으로 내세워 진화 작업에 나섰지만, 이는 이미 대안 부재의 무능을 노출했을 뿐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감옥행을 실현할 정도로 무서운 시민혁명의 힘에 눌려 있던 반동적인 세력, 특히 수구 언론세력은 이를 기회로 조국을 촛불 정권의 대리 표적으로 삼아 대대적인 공격을 무자비하게 가했다. 자신들의 두 대통령을 마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빼앗겨버린 야당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염을 토했다. 그 와중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광훈을 비롯한 태극기 부대가 촛불 혁명으로 다져놓은 민주주의에 따른 집회와 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심지어 청와대 근처에서 ‘빨갱이 문재인을 찢어 죽이자!’ 하는 구호를 외쳐대기도 했다. 야당의 지도부는 이에 편승하여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들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행진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탁월한 ‘K-방역’과 같은 호조건이 작동하기도 했지만, 반동 세력의 대대적인 황당한 쇼 덕분에 오히려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사상 유례없는 대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엄청난 의회 권력을 장악한 여당은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다들 알다시피 검경 간의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는 데 성공했다. 묘한 일은 거대 여당이 밀어붙인 검찰개혁의 성과가 과연 무엇인지 실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고 심지어 공수처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그 실효성을 비관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묘한 일은 거대 여당의 검찰개혁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윤석열은 검찰총장직을 마치 개선장군처럼 사퇴하고 그 이후 설문 조사에서 차기 대선 유력 후보 1위를 오르내리는 기이한 정치적 사태가 벌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윤석열과 대립각을 세웠던 조국과 추미애 두 전직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을 키운 마치 미필적 고의를 저지른 인물들인 양 치부되면서 그들이 일군 검찰개혁의 공은 온데간데없는 것처럼 되고 만 것 역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궁금한 인물은 문 대통령이다. 자신이 윤석열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한 자세로 임할 것을 당부했을 때, 자신의 그 당부가 자신이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부 장관직을 맡긴 조국에게 그처럼 황당한 법적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빌미’가 될 줄 알았을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면서도 민주적인 법적 공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긴 것일까? 두 사람 사이에 한 치 양보 없는 충돌이 일어났을 때, 문 대통령은 왜 두 사람을 조용히 불러 조율 · 조정하여 검찰개혁을 필두로 한 적폐청산의 방향키를 쥐고자 하지 않았을까?  현행의 법적 정의와 정의로운 법은 겹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일치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법은 미래를 향해 있고, 현행의 법적 정의는 현재에 한정된다. 문 대통령은 현행의 법적 정의가 무너지면 정의로운 법을 세울 수 없다고 여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정의로운 새로운 법을 향한 검찰개혁을 부정하는 윤석열 검찰이 조국과 그의 가족을 온통 짓밟듯이 하는 데도 그것이 현행의 법의 정의에 따른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그런 순진무구함이 적폐청산을 내세우면서도 구체적인 전략 · 전술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과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한 순수함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능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문 대통령이 남북 평화를 위해 큰 걸음을 개척하고자 했던 업적이 대미 관계에서 최대한 독자성을 확보하는 길을 여는 것으로 연결된다면, 그래서 그 과정에서 하다못해 임기 내에 거대 여당의 위력을 활용하여 국가보안법 폐지를 실현해 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통치는 충분한 의미를 획득한 것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남은 임기에 정의로운 법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감으로써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진보에 크게 도움을 주기 바라며 그리하여 내년 대선에서 ‘별은 잡은 것 같다’ 운운 되는 인물에게 ‘죽 쑤어 개 주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2021-05-21 | hrights | 조회: 881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