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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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지난 7일 여성가족부는 “2021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발표했다. ‘97년 이후 매년 양성평등주간(2020년부터 9월 1일~9월 7일로 변경)에 발표되는 본 통계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여성들의 삶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여성 가구주와 여성 1인 가구 수가 증가했고, 정치 및 경제영역의 격차는 미약하나마 감소율을 보여준다. 이를 마치 여성들의 정치, 경제적 권리가 커져서 여성들이 독립 가구를 형성하는 것처럼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차별의 극단적 형태인 여성폭력을 보자. 십 년 전에 비해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7.3배(50,277건), 성폭력은 1.7배(33,171건), 불법촬영은 3.8배(1,354건 이중 남성 94.1%), 데이트폭력 및 스토킹 검거 건수는 1.4배(9,858건 및 312건)에 달한다. 연일 뉴스에 보도된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살해, 20개월 딸 성폭력, 데이트폭력 살해 등은 이러한 통계를 현실로 증명한다. 검거 건수가 늘어난 것은 사건 발생 건수 역시 많이 증가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1% 정도만 신고를 하고,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신고를 포기하고, 불법촬영 역시 재유포에 대한 두려움에 포기하고, 데이트폭력 및 스토킹의 경우 처벌할 법이 없다. 이는 실제 사건은 훨씬 더 많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이 결과는 그동안 법과 제도로는 여성 폭력을 제대로 예방·방지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거는 사전 예방이 아니라 사후 대책에 불과하다. 남성에비해 여성들이 사회 안전에 대해 낮게 평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남성 32.1%, 여성 21.6%). 여성가장 및 여성 단독 가구수가 증가는 위험요소를 가중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근절하거나 예방이 불가한 것일까?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인 지난해 5월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나와 자매의 안녕을 바라는 여자들 모임’ 소속 회원들이 쓴 희생자 추모 글들이 붙어 있다.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여성들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양성평등 강국으로 인정되는 스웨덴은 2014년에 ‘페미니스트 정부’를 선언하였다. 세계일보가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을 취재한 것을 보면 시사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성평등 과제의 초점을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Men’s violence against women)”에 두고 있다. 이를 위해 10개년 계획에 따라 40가지의 강력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가해자의 강도 높은 처벌과 피해자의 강력한 보호제도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용어가 너무 모호하며, 이것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관련된 것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고,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젠더 기반 폭력의 대부분이 남성이 가해자이고 여성이 피해자인 점”이라는 이유이다. 나아가 “국가 전략의 제목으로 명시 함으로써 이 문제의 ‘사회 구조적 측면’ 즉, 여성과 남성 간의 권력 관계에서 남성의 권력이 파괴적으로 사용되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강력한 정부의 뒷받침과 그동안 이루어 놓은 정치, 경제적 성평등으로 인해 정책 결정에 여성들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국가 차원에서 폭력 예방의 다양한 측면에 점수를 매기도록 해 관료를 규제하는 한편, 학교에서 폭력 예방의 가치를 다루도록 해서 규범과 인식을 바꿔나가고 있다. 또한, 여성폭력이 구조적 측면-남성과 여성의 위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르게 구조화한다. 시사인이 조사한 20대 여자 현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강하게 생각하는 여성집단과 페미니스트를 남성혐오로 생각하는 남성집단이 사회적 관점에서 반대의 경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여성들의 공통 특징은 이들이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미투운동, 낙태죄 폐지, 강남역사건 등 일련의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페미니즘적 관점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성범죄로 인한 피해’이다. 이에 비해 20대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성범죄 무고’이고, 한국여성들이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에 전체 남성 평균이 ‘크다’에 64.1%를 답했으나 이들은 50%만 ‘크다’고 답했다. 또한, 52.4%는 ‘한국여성들이 성범죄를 당할 위험을 실제보다 과장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다른 사회적 성향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도 있다. 20대에서 강한 페미니즘적 경향을 보이는 집단이 진보 지수가 강한 경향을 보이는데 소수자와의 연대, 사회 제도와 사람에 대한 신뢰 등에서 높은 지수를 보인다. 반대로 소수자에 대한 반감과 제도와 사회에 대한 불신이 높은 20대 남자들은 포퓰리즘 성향이 강하고, 사회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페미니즘을 제도권의 주류라는 인식으로 이어질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20대들은 사회적 박탈감으로 소수자와 일체감이 낮으며,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경향을 보임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강한 페미니즘 성향의 20대 여성들은 자존감이 높고, 여성의 차별적 지위를 사회 구조적 책임으로 생각하며, 차별에 대한 경험은 소수자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이들이 선호하는 정치세력은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 금지와 다양성을 우선하는 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들의 관점과 인식을 페미니스트로 구조화하였다. 그리고 강한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집단은 정치적 진보성향을 보인다. 성차별을 넘어 소수자의 차별과 배제 등 사회적 자원의 분배와 노동 등 사회적 차별구조에 관심이 높다. 이들은 차별의 극복을 위한 정치참여의 필요성을 느끼며, 참여할 의지가 높은 집단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지지하는 현실 정당이 없다는 점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당이 없음을 나타낸다. 20대 남성들이 ‘국민의 힘’ 이라는 보수정당을 선택한 것과 달리 20대 여성들은 이들의 선명한 진보성을 감당할 만한 정당의 부재앞에서 부유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정책은 ‘아무도 위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억압이 존재하는 곳에서 우선 고려될 대상은 피억압 집단이다. 이들이 억압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이들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이다. 20대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젠더’로 퉁치는 모호한 평등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별에 의한 권력관계의 평등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페미니스트가 된 것은 구체적인 남자에 의한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폭력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는 ‘젠더 기반 폭력’을 기각하고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의 근절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 진보정치의 핵심 세력인 20대 페미니즘 집단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21-09-15 | hrights | 조회: 962 | 추천: 3
이윤/ 경찰관  2006년 캐나다 연방경찰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중 당시 다른 교육과정에 들어와 있던 한인 출신 캐나다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다 큰 충격을 받았다.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대한민국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분야에서 심각한 수준의 국가로 분류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 인신매매란 1980년대 후반에 봉고차로 길 가는 여성을 납치하여 성매매업소에 팔아넘기거나 마늘을 까게 한다는 극악무도한 범죄였다. 기가 막힌 나는 “아니, 한국에서 인신매매가 사라진 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냐. 뭘 근거로 캐나다에서는 한국을 인신매매 국가라고 하는 거냐?”라고 물었다. 그 사람 왈, 선불금 등 빚을 못 갚아 빚쟁이들에 의해 반강제로 캐나다나 미국까지 건너와서 유흥업소에 종사하거나 성매매 하는 여성들을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기 때문이란다.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런 행태에 대해 여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내 야트막한 인권감수성의 바닥을 본 느낌이었다.  1990년대 중반 실무수사관이던 나에게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은 그저 귀찮은 업무 대상일 뿐이었다. 그 당시 속칭 신용카드 사기나 선불금 사기가 많았는데 이게 참 성가신 일이었다. 신용카드 사기란 신용카드 사용자가 결제대금을 갚지 못하여 카드회사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당하는 사건이고, 선불금 사기는 유흥업소 종업원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옷, 화장품, 주거, 용돈, 홍보 등에 필요한 비용을 장만하는 명목으로 미리 업소로부터 돈을 빌려 쓴 후 갚지 않아 고소당하는 사건이다.  흔히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하면 사기죄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사기죄가 되려면 ‘속여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편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속이는 건데, 보통은 있지도 않은 오징어 같은 물건을 팔겠다고 속이거나, 잔고 증명서 같은 문서를 위조하여 돈이나 물건을 받는 경우가 사기에 해당한다. 단순히 돈을 빌린 후에 갚지 못한 것일 뿐 속인 것이 없으면 사기죄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문제는 돈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있는 것처럼 속이고 돈을 빌리는 것도 사기죄로 인정하는 형법 교과서와 기존 판례 때문에 그 부분을 확인하는 수사를 해야 하는 데 소액인 경우 사기죄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을 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신용카드란 것이 사용자가 사용대금을 결제할 것이라고 믿고 발행하는 것이고, 그 신용의 근거는 재산이나 소득 상태를 카드회사가 조사하여 갚을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에 있으니, 결제대금을 갚지 못해서 보는 손해에 대한 책임은 카드회사에도 있는 것인데 연체자를 사기죄로 형사처벌까지 해야 하는 게 맞나? 또 선불금을 미리 반강제로 빌려 줘놓고 이런 저런 명목(티켓다방에 지각을 했다거나, 아파서 하루 쉰다거나, 손님이 돈을 주지 않은 경우)으로 빚이 늘어나게 하여 아무리 일해도 빚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후에 몰래 도망갔다는 이유로 경찰에 사기죄로 고소하는 업주는 이미 빚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충분한 이득을 보았으니 사기죄 피해자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내 맘대로 고소장이 접수된 사건을 수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피고소인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거나 출석하지 않으면 수배를 해야 하고, 나중에 검거되면 고소인에게 연락하여 대질조사를 이유로 만나게 해 준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내가 대한민국 경찰 수사관인지, 신용카드 회사나 사채업자, 유흥업소 사장의 채권추심 대행 똘마니인지 의심스러웠다. 나중에는 선불금 족쇄 때문에 외국까지 가서 일하는 여성들이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는 인신매매 조력자 역할까지 했던 것인가 하는 마음에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내 마음 같아서는 악질적 또는 조직적인 사기범죄가 아니라면 단순한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고소한 사건은 고소인과 면담 후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고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경찰은 피고소인 조사 없이 수사를 종결할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수사권 조정이란 수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을 경찰이 알아서 종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신고나 고소된 사건에 대해 경찰이 임의적으로 수사착수 또는 계속 수사 여부를 결정한다고 들었다. 기소할 사건은 검사와 상의하지만 기소하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의 개입이 없다고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올해부터 수사권 조정이 시행되고 있지만, 25년 전 내가 기대한 수사권 조정은 오지 않았다. 예전과 실무상으로 달라진 게 거의 없다. 2020년 접수된 43만 건의 고소사건 중 피의자를 기소(재판을 받게 하는 것)한 비율은 20%가 되지 않을 정도(매일경제, 21. 7. 29.)이니 80%는 불송치 결정을 하게 되는데, 지금도 경찰이 불송치 결정한 모든 사건을 검사에게 보내 숙제검사 받는 것처럼 검토받고, 검사가 재수사하라고 하면 재수사를 한다. 송치한 사건에 대한 검사의 보완 수사요구도 들어줘야 한다. 이런 것까지 더 수사를 해야 하나 싶은 요구·요청도 꽤 있다. 거기에 더해 예전에는 피의자가 여러 명인 사건 중 일부만 기소의견이어도 모든 피의자를 한꺼번에 검사에게 송치하였는데, 이제는 송치와 불송치 피의자를 나누어 처리해야 하므로 그 두꺼운 사건 기록을 복사하는 일까지 생겨 수사관들이 해야 할 일은 더 늘어났다. 수사관 수는 예전과 그대로 또는 미미한 정도로 늘어났지만 할 일은 더 많아지고, 사건 관련자들의 불만은 민원이 되어 괴롭히니 경찰의 수사부서 기피 현상이 심각해진 것도 당연하다.  경찰에게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스스로 범죄 수사에 대해 판단할 권한이다.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는 사건은 경찰에서 바로 종결할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이 사건 말아먹는 게 걱정되실 분들도 있으나 지금도 경찰 수사가 맘에 안 드는 고소인이 해당 경찰서에 이의신청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송치하여 검사가 수사하게 되어 있으니 걱정 마시라.  80%에 이르는 불기소 사건에서 풀려나면 경찰은 한층 여유로워진 인력과 자원으로 유사수신이나 가상화폐 사기, 보이스 피싱, 인신매매 등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범죄를 더 적극적으로 수사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은 범죄를 수사하는 곳이지 떼인 돈 받아주거나 도망간 유흥업소 종업원 찾아주는 곳이 아니다.
2021-09-01 | hrights | 조회: 1431 | 추천: 20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요즘 머리맡에 두고 틈틈이 읽고 있는 책이 있다. 「K를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코리아를 일컫는 알파벳이 아닌 대문자 ‘K-’가 쓰였을 때 느껴지는 특별함, 예를 들어 ‘K-POP’ 같은 현상을 분석한 젊은 인문학자의 글이 익숙한 듯 신선하다. X세대로 호명됐던 나의 입장에선 MZ세대의 인식을 살짝 훔쳐보는 재미도 크다.(하지만 개인적으로 세대론은 너무 안일한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K-’ 현상이 확산되는 기본 바탕을 이렇게 정리했다. 직접 인용해본다.  “사회를 일원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이들을 서열화하는 위계성, 그 피라미드 속에서 어떻게든 위계를 거부하고 상승하고자 하는 상향심, 모든 이들이 표준적 대세를 따르고자 하고 남들도 대세에 따르게 만들고 싶어 하는 적극적 집단주의, 국가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국가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 모순적 국가관, 도덕을 통해서 발언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누구보다도 세속적 상향을 원하는 이중적 심리. 아마 한국문화의 이런 요소가 세계화, 정보화라는 변화를 맞닥뜨려 이 사회에 무언가 유별난 결과물을 만들어내 이 사회를 ‘미래’로 끌고 간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사진 출처 - yes24  고개를 끄떡이게 하기도, 갸웃거리게도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역화폐‘와 연계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법률적 용어로는 ‘지역사랑상품권’, 경기도를 중심으로 많이 쓰이는 ‘지역화폐’가 20여 년 전 우리나라 사회에 처음 선을 보였을 때는 ‘대안화폐’란 명칭으로 불렸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공동체’를 표방하였고, 여기서 돈은 법정화폐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자도, 축적도 없이 화폐 본연의 가치만 가지며 돈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공동체에서 순환하는 그런 돈을 지향했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3,000개의 지역화폐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위와 같은 목적으로 소규모 지역사회 커뮤니티 또는 특정 공동체를 중심으로 스스로 만든 돈을 유휴노동력 및 자원의 교환을 위해 사용하는 공동체형 지역화폐를 운영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역화폐 모범사례로 불리는 영국의 브리스톨 파운드나, 스위스의 위어 같은, 법정화폐와 교환가능 한 지역화폐는 매우 적다.  우리나라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한 것은 지난 1996년부터이다. 충북 괴산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데, 난 가끔 그 당시 이를 추진했던 공무원에게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왜 시작했는지 묻고 싶어진다.  추측건대, 이웃 일본 등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로컬 커런시(local currency)를 참조하여 말 그대로 지역사랑을 실천하는 상품권을 생각했을 것으로 상상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이 먼저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 선을 보였던 후발주자이다.  여하튼 지난 2018년까지 약 65개 정도 지자체에서 활성화된 지역인 성남, 포항, 양구 등을 제외하고 명맥만 유지하던 지역사랑상품권은 2019년, 2020년을 거쳐 현재 거의 모든 지자체(얼마 전 드디어 울릉군에서도 지역사랑상품권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가 도입을 하였으며, 행안부는 2021년 올해 전체 발행액 규모를 20조 원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 주도의 지역화폐가 자리 잡게 된 것은 법정화폐와 동일한 가치로 교환(환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많은 소비처(가맹점)이 동참을 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등을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예산을 들여 제공하는 구매 인센티브가 있어 역시 동참하는 기제가 작동했다. 그리고 폭발적인 발행유통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2021년 20조 원이라는 발행유통량은 정부가 8%를 지원하는 10% 구매할인 인센티브와 각종 지원금을 지역화폐에 태우는 정책발행 덕분이다. 각 지역마다 외부로 유출되는 소비의 부가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 내에서 보다 많이 잠기고 순환되는 효과가 있었다.  반면, 엄청난 발행유통량에 따라 더 많은 소비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대기업상권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던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지역화폐의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는, ‘웬만하면 다 쓸 수 있는 소비쿠폰으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 3년간 어지러울 정도로 급변한 우리나라의 지역사랑상품권, 지역화폐는 앞서 말한 ‘K-’ 현상과 유사하다. ‘K-지역화폐’로 명명해도 될 정도이다.(실제로 경기도는 2020년 기본소득박람회를 개최하며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의 혁신을 강조했다)  그런데 ‘K-지역화폐’ 역시 이 사회만의 무언가 유별난 결과물이 되어 이 사회를 ‘미래’로 끌고 가게 될까? 여러 변수들이 있다. 저변에서 일어나 커뮤니티의 문화로 성장한 것이라기보다 행정에 의해 단기간 성과를 위한 인위적인 인센티브로 일으켜 세운 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역화폐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운영이 되어야 도입의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가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K를 생각한다」에서는 ‘K-’ 현상에 대한 또 다른 분석이 있다. 전문을 인용한다.  “K의 특성은 그 자체로 명확하게 이해되기보다는 어지러움을 더한다는 점에서 혼란한 이 시대에 아주 적합한 듯하다. 그리고 K에 함축되어 있는 상향의식, 위계의식, 속도지상주의, 강력한 국가 역량 같은 것은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류가 빚어낸 오늘날의 세계에 아주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지역화폐의 현실을 분석한 또 다른 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2021-08-25 | hrights | 조회: 777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대선을 앞둔 최근의 예비 경선, 예비 후보 등의 말로 드러나는 바를 보자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여당과 야당들의 인사들을 합쳐 언뜻 추산해도 스무 명은 족히 넘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검증 등의 절차에서 알 수 있듯이 되는 과정도 워낙 어렵거니와, 되고 난 뒤에도 속된 말로 잘 하면 본전이고 욕을 먹기 예사인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죽을 맛을 볼 수밖에 없어 보이는 일을 기꺼이 맡아 헌신해 보겠다고 하니, 한편으로 참으로 고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어렵고 궂은일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 일을 맡아 하게 되었으나,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누구는 국민에게 쫓겨 야반도주하듯 해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또 누구는 잠시 대통령의 자리를 유지하다 마치 자신의 무능력이 군부 쿠데타의 빌미가 된 것인 양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누구는 자신의 정적들은 물론이고, 자신을 비판하거나 자신의 일방적인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고 하다가 자신이 가장 신임한다 여겼던 부하에게 총격으로 사살되었다. 총격 사살된 자를 ‘모범’으로 삼아 역시 수없이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고 대통령 자리를 국민으로부터 강압적으로 빼앗았던 두 인물은 국민에 의해 사형 또는 수십 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곤욕을 치렀다. 그런가 하면, 그야말로 민주화를 내세워 국민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시피 했던 이른바 문민정부를 연 대통령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을 치렀다. 또 누구는 놀랍고 신선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그 뒤 두 인물은 현재 감옥에 갇혀 있다. 다만, 현재의 대통령만이 큰 문제 없이 대통령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으나, 반대쪽에서 나라를 다 망친 자, 나라를 팔아먹은 자, 도저히 용납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 자, 심지어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극언을 듣고 있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치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제대로 인간다운 삶을 오롯이 산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출처 - 구글  정치란, 더욱이 대통령으로서 통치 행위를 수행하다 보면, 반드시 적이 있게 마련이고, 그 적들에 의해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을 당하기 마련이라고 핑계를 대고 본래 정치란 건 그런 게 아니냐, 하고서 넘어갈 수준의 역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한 어느 인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전임 대통령의 잘못이 있더라도 통치 행위에 대한 법적 수용성 범위를 넓혀 인정하기에 보복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조차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은 있지 않겠느냐는 토를 달았다.  이렇듯 누가 보아도 이른바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이미 원죄를 뒤집어쓰는 일인 양,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벌써 스무 명이 넘는 인물들이 심지어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적임자라고 외치며 나서니 고마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대통령 다음의 두 번째 지위인 국무총리를 했으니 이제 대통령이 되어 국가와 민족에 헌신해 보겠다는 뜻이겠고, 또 어떤 이들은 도지사를 했으니 나 또한 더 큰 뜻을 펼쳐 국가에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뜻이겠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국회의원으로서 그동안 오랜 세월 나라를 위해 여러모로 헌신해 왔으니, 이제 그 헌신의 뜻과 힘을 더 크게 세워 나라를 책임지고 헌신하겠다는 뜻이겠다. 어떤 이는 장관을 했으니, 또 어떤 이는 검찰총장을 했으니, 또 어떤 이는 감사원장을 했으니, 이제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뜻인 모양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다’라는 각오를 피력하지 않는 이 없으나, 그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나선 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쉽게 단정하듯 자기 일신의 최고의 영달을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오히려 아주 쉽다. 그것은 능동과 수동의 분간이다.  주체적으로 새로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행위는 능동이고, 새로운 긍정적인 삶을 형성하고자 하는 능동의 행위를 방해하거나 파괴하고자 하는 행위는 수동이다. 이 수동은 달리 말해 반동이라고 한다. 능동적인 삶은 주체적일 뿐만 아니라 창조적이다. 수동 또는 반동적인 삶은 남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타인의 능동적인 삶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방해하고 파괴하는 것 외에 자신이 능동적으로 새로운 일을 창조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능력도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능동의 삶을 살지 않은 자가 대통령이라는 중책을 맡아 국민 모두의 삶을 책임지게 되면, 국민 모두의 삶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민 각자는 자신이 알아서 삶을 살면 될 일이지, 국가가 국민 각자를 위해 할 일이 특별히 없다고 강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거대 집단의 공동의 삶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주어지고 실제로 현실화될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국가는 보편적인 공동체다. 국가는 개인들이 모여 마치 군중을 이루는 것과 같은 양적인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각자 개인으로서는 생성되지 않는 보편적인 가치를 설정하고 구현하는 또 하나의 보편적인 인격체다. 개인 말고 법인이 하나의 통일된 법적인 인격체로 인정받아 활동하듯이, 국가는 거대한 보편적인 법적인 인격체로서 살아 움직인다. 국가는 개인으로서는 결코 상상하거나 추구할 수 없는 가치를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현한다. 그 보편적인 공동의 가치를 생각해 보지 않은 자는 국가를 통치해 나갈 적임자가 될 수 없다.  각자 개인들이 그들의 능력에 따라 다른 개인들을 이용하고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시장에 맡기는 것이 국가 운용의 최선책이라 생각하는 자는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가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설사 그러한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가치를 누가 알 수 있느냐고 강변할 것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서 창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그 창조의 대상이 개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를 통해 상상되고 기획되고 실현되는 가치임을 안다. 다시 말하거니와, 어떤 처지의 어떤 상황에 놓였다 할지라도 그런 각자의 삶은 그 자신의 몫이며 각자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자는 결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 자에게 대통령직은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에 의해 획득한 자기 개인만의 배타적인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자는 보편적인 국가 공동체만이 상상하여 실현할 수 있는 가치를 어떻게든 특히 허구적인 이상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방식이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반동의 삶이다.  사회적으로 힘든 처지에 놓인 많은 사람이 자기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그 처지에서 벗어날 희망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를 찾아 그 길을 열어줄 힘은 오로지 보편적인 국가에서만 나온다. 국가는 개인들이 개인만의 역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손쉽게는 사회 인프라의 구축이란 말에서 이를 가늠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서로 돕는 행위가 함께 모여 공동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통일된 상위의 한 보편적인 인격으로 형성된 것이 국가, 특히 민주주의-공화주의 국가다.  그렇다면, 특히 중차대한 국가 통치의 행위를 놓고서 누가 능동이고 누가 반동인가는 그가 과연 국가를 통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도모하는 삶을 살았는가, 아니면 개인의 삶과 그 삶의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는 배타적인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분서주 기회를 엿보며 여기저기 왔다 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밀리에 탈법적이거나 탈도덕적인 삶을 살았는가를 보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일도양단의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완전무결한 자는 있을 수 없기에, 적절함의 상대적인 우열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주인이자 국가의 주체인 국민 된 의무로 각종 신뢰할만한 여론의 매체를 활용하면서 최대한 현명한 판단력을 발휘하여 저 어렵고 힘든 일을 기염을 토하듯 자임하고 나서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 신중에 신중을 다하여 선택해야 할 것이다.
2021-08-19 | hrights | 조회: 830 | 추천: 4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지리산 화엄사에서 노고단 가는 길에는 코재도 있고 눈썹재도 있으며 무넹이길도 있다. 코가 닿을 정도로 오르막길이 너무 힘들다는 말이며, 눈썹 무게라도 줄여야 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름철이면 물이 넘쳐 흐르는 무넹이길에는 가문 여름에도 물이 풍성하다.  무넹이라는 말은 여름 장마철이면 홍수로 물이 넘쳐 흐른다는 물넘이의 와음이란다. 서울 수유리는 물넘이의 한자어이기도 한데, 무넹이 무너미 수유리 전국에서 비슷한 지명을 보곤 한다.  북한산 도선사에서 백운대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하루재 고개가 있다. 미아리에서 걸어 하루가 걸려야 도착했다는 하루재. 하루재 바로 아래는 둥근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 바위쯤에 이르면 안심이 된다고 하여 안심바위라고 한단다. 하루재 옆으로는 휴식년제에 묶여 지금은 가지 못하는 깔딱고개도 있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정도로 힘들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무넹기에서 바라본 구례와 섬진강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  부천(富川)은 내[川가] 부자[富]인 동네다. 높은 건물로 가려진 지금이야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부천에는 개울이 많았다. 부천을 대표하던 예전 이름은 소사(素沙)다. 기차역이 전철역으로 바뀌고 군 단위 행정구역이 시로 바뀌면서 소사라는 지명은 부천이라는 지명 뒤로 이름하게 되었다. 소사 복숭아는 나주 배, 대구 사과와 함께 지역 특산물로 교과서에도 나왔던 거로 기억하는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복숭아밭을 밀어내고 지어 올렸다. 학교 담은 나무가 대신했고 여름철 장마 때면 물이 넘치는 학교 앞 개울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생님이 손잡아 건너편으로 건네주곤 하였다. 공동묘지를 밀어내고 지어 공포의 전설이 많았던 예다른 학교와 달리 소풍 가는 날에도 비 한번 오지 않았다.  소사라는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소사는 모래밭의 한자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바탕 소(素)에 모래 사(沙)라는 한자어에 그 뜻이 담겨있다. 흰 모래밭. 부천이라는 지명과 아주 잘 어울린다 싶기도 하다.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놀다가 지칠 때면 햇볕 가득 받아 뜨거운 모래밭에 누워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설핏 잠이 들기도 했으니까…. 비가 오면 진창이 된 길에서 신발 벗어 던진 아이들이 맨발로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던 벌터는 바닷가의 펄과 같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거라 짐작해 보곤 한다. 지금은 그러한 지명이 낯설 정도로 개울도 모래밭도 벌터도 흔적조차 없다. 3.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 800년 된 보호수이다. 보호수 주변으로는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 그 모양을 보자면 발을 뻗지 못할 좁은 공간에 갇힌 느낌이다. 주변으로는 옛것을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기념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이 우시장 자리였음을 알리는 조형물도 있고, 복사꽃 마을 소사를 설명하는 새긴돌도 있다. 지금은 개울도 없고 모래밭도 없으며 더욱이 복숭아나무가 사라진 지는 더 오래다. 그저 기념물과 설명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4.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으로 높이높이 쌓아 올리면서, 물장구치려고 수영장을 찾아가고, 꽃이름을 알려고 식물원이나 수목원엘 간다. 휴가철이면 많은 자동차의 긴 행렬에 지쳐 어느 다리 밑 물 흐르는 개천에서 쉼에 목마른 욕구를 달랜다. 내가 사는 자리에서 물장구도 치고 꽃이름, 풀이름을 되뇌며 뜀박질하는 개발은 없는 것인지…. 풀빛 가득한 세상을 찾아가고 떠나온 그 자리에는 또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건지….  아시아드대로, 메트로시티 롯데캐슬카이저 마린시티로 월드메르디앙 베스토피아 센텀에스케이뷰 월드컵로 등등 우리가 새로 지어내는 지명과 아파트 이름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바라는 이 유토피아(?)는 이미 오래전에 와 있으니, 우리는 흙을 밟지 못하는 세상에서 벌써부터 살아가고 있다.
2021-08-12 | hrights | 조회: 947 | 추천: 4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  최근 이스라엘이 UAE와 협력하여 중동 역내에서 영향력을 확대 강화하고 있다. 올해 6월 이스라엘의 새로운 베네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임 네타냐후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아 6월과 7월에 아부다비와 텔아비브에 이스라엘 대사관과 UAE 대사관을 각각 개소하는 등, 양측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UAE 실권자는 아부다비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이고, 이 왕세제의 역내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은 그의 특별 고문 무함마드 다흘란이다.  다흘란은 이스라엘 정부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알려져 있다. 역내 정치에 정통한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다흘란은 과거에는 이스라엘의 대리인이었고, 현재는 UAE의 대리인이며, UAE가 역내 정책을 실행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이스라엘과 UAE가 역내 영향력 강화 정책에서 다흘란을 정책 도구로 활용하지만, 사실은 다흘란 자신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이스라엘과 UAE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3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흘란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 중동 역내 정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다흘란의 인생 역정: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의 경쟁자  다흘란은 1961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 난민촌에서 태어났고, 1981-1986년 파타운동을 주도해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10번 이상 체포되어 이스라엘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했으며, 이 기간 동안에 히브리어를 배웠다. 이 때 배운 히브리어는 훗날 이스라엘인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1987년 12월 제1차 인티파다(1987.12.8–1993.9.13, 이스라엘 점령정책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발발 이후, 이스라엘은 다흘란을 가자로부터 추방하였다. 이때 다흘란은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파타를 비롯한 다양한 팔레스타인 파벌의 연합조직)가 기반을 둔 튀니스로 가서 PLO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의 보좌관으로서 활동하였다.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PLO가 오슬로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제1차 인티파다가 종결되었다. 이때 가자로 귀환한 다흘란은 파타당을 이끌고 보안 작전을 지휘하면서, 오슬로협정에 반대하는 하마스를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1994년 파타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고, 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는 강력한 정보기관으로 팔레스타인 예방보안대를 설립하였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다흘란은 초대 가자지구 예방보안대 대장이었고, 압도적인 권력으로 인해서 가자는 ‘다흘란이스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때 다흘란은 가자에서 2만 명의 병력을 운영하면서, 미국 CIA와 이스라엘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하였다.  2000년 9월에 발발한 팔레스타인 2차 인티파다(2000.9.28-2005.2.8)가 진행 중이던 2001년 다흘란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개혁을 요구함으로써 아라파트 수반을 화나게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4년 8월 다흘란은 노골적으로 아라파트 수반이 부정과 부패로 팔레스타인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가자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8월 1일 쿠웨이트 신문 알 와탄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정부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기부한 총 50억 달러가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우리는 모른다. 팔레스타인 상황은 더 이상의 부패를 견딜 수 없으며, 개혁으로부터 벗어날 방도가 없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전쟁은 분명히 실패했으며, 평화만이 실행 가능한 선택이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10월 아라파트는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보도되었고, 11월 11일 사망하였다.  아라파트 사망 이후, 2005년 1월 마흐무드 압바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이 때부터 압바스는 다흘란을 야심찬 경쟁자로 간주하고 견제하기 시작했다. 2007년 다흘란은 가자에서 진행된 하마스와의 내전에서 패배하여 서안으로 들어왔고, 이 때 압바스와의 권력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다흘란은 부패와 아라파트 살해 혐의로 비난받으면서 파타운동에서 추방되었다. 이로써 다흘란은 압바스 수반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결과 UAE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2020년 9월 이스라엘-UAE가 체결한 아브라함 협정 설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브라함 협정이 타결되자, 팔레스타인 수석 협상가 나빌 샤스는 알 칼리지 온라인과 인터뷰에서 “다흘란이 아브라함 협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조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보안국 대변인 아드난 알 두마이리는 프랑스 24와의 인터뷰에서 “다흘란이 UAE-이스라엘 국교정상화의 공범이자 후원자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는 ‘아브라함 협정은 압바스 자신을 수반 자리에서 축출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해를 끼치려는 다흘란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의 거리 시위대는 도널드 트럼프, 무함마드 빈 자이드, 베냐민 네타냐후 초상화와 함께 다흘란 초상화를 짓밟고 불태웠다. 이와 같이 팔레스타인에서 아브라함 협정에 대한 반대는 다흘란에 대한 반대와 연결되었다. 아부다비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와 무함마드 다흘란(오른쪽) 사진 출처 - alwaght.net □ UAE의 대리인으로 역내 문제에 개입하는 다흘란: 反무슬림형제단 정책  UAE는 국내외에서 확고하게 反무슬림형제단 정책을 견지한다. 2011년 아랍 민중봉기 이후, 아부다비는 무슬림형제단에 맞서기 위하여 역내 무슬림형제단 반대파들에게 상당한 재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자국 내에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무슬림형제단 분파인 알 이슬라흐를 강력하게 탄압한다. 이렇게 아부다비가 주도하는 UAE의 정책은 역내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연동되었다. 이를 위해서 UAE는 이집트, 터키, 리비아, 예멘 등에서 다흘란을 대리인으로 활용해왔다.  2013년 다흘란은 이집트 쿠데타에서 국방부장관 알 시시와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국영 통신사 아나돌루에 따르면, UAE 후원을 받는 다흘란이 이집트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재임:2012.6.30-2013.7.3)를 축출하기 위해 국방부장관 압델 파타 알 시시와 협력하여 쿠데타를 기획하였다. 결국 2013년 7월 3일, 알 시시는 쿠데타로 대통령 무르시를 축출하였다. 6일 후 7월 9일 UAE는 이집트에 30억 달러를 원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무르시 축출에 UAE와 다흘란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 19일, 이집트 대통령 알 시시(재임:2014.6.8-현재)는 가자지구 재건에 기여하기 위해 5억 달러 상당의 원조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다흘란은 다음과 같이 감사를 표했다. “오늘 알 시시 대통령은 가자 지구 재건과 현대적인 기반 시설 건설을 위하여 5억 달러를 할당함으로써 새롭고 주요한 공적을 쌓았다.” 이것은 다흘란과 알 시시 대통령 사이에 긴밀한 협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5월 20일, 친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작가, 니잠 알 마흐다위는 “이집트 대통령 알 시시가 가자지구에 제공한 5억 달러는 UAE가 송금한 자금이다. 이 자금의 목표는 가자지구 재건보다는 가자에서 하마스를 약화시키려는 다흘란의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결국, UAE가 이집트를 통해서 가자지역에 지원한 5억 달러는 다흘란의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터키 정부는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인 에르도안 대통령을 넘어뜨리려던 2016년 귈렌 쿠데타 시도에 다흘란이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2019년 11월 터키정부는 다흘란이 귈렌이 이끄는 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비난하면서, 다흘란을 체포할 수 있도록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는 현상금 70만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11월 터키 내무장관 슐레이만 소일루는 휘리예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다흘란을 최고 순위의 테러리스트 명부에 올려놓았다. 그는 미국에 기반을 둔 터키 사업가 귈렌이 이끄는 테러 단체(FETO)와 연계되어 있다.” 터키 외무장관 메블뤼트 차우쇼을루는 “다흘란은 이스라엘 정보요원이다. UAE는 테러범 다흘란을 수용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를 다흘란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한다.”고 비난했다. 터키인들에 따르면, 다흘란이 이스라엘의 계획에 따라 UAE의 자금 지원으로 역내에서 활동하며, 이스라엘과 UAE는 다흘란을 팔레스타인 수반으로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터키는 확고하게 UAE 정책 및 다흘란에게 반대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21년 7월 9일-11일 압바스 수반은 터키를 방문하여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하마스가 독려하는 反팔레스타인자치정부시위를 막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압바스 수반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인 하마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 내전에서 다흘란은 터키가 지원하는 서부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에 맞서 동부 지역 하프타르를 후원하였다. 뉴아랍 신문에 따르면, 2018년 3월 UAE는 하프타르를 지원하기 위해 리비아 동결자산 중 300억 달러를 다흘란을 통해서 하프타르에게 보냈다. 예멘 내전에서 남부 항구도시 아덴의 지배권을 놓고 사우디가 지원하는 하디 정부와 UAE가 지원하는 남부과도위원회가 충돌하고 있다. UAE가 지원하는 무장단체인 남부과도위원회가 예멘의 항구도시 아덴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덴은 사우디가 지원하는 하디 정부의 임시수도이기도 하다. 이렇게 예멘 남부 지역 지배권을 놓고, 사우디와 UAE가 불화하고 있다. 2015년 12월 아덴에서 발발한 폭탄 공격으로 인한 암살사건, 즉 사우디지원을 받는 하디 정부 및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인 알 이슬라흐 정치인 암살사건에 다흘란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 다흘란과 하마스의 전략적 협력: 2017년 권력 공유 협정  현재 UAE 및 다흘란이 중동 역내에서 실행하는 反무슬림형제단 정책과는 달리, 가자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에 맞서 무슬림형제단 연계 세력인 하마스와 협력하고 있다. 2017년 7월 23일,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는 “UAE에 망명 중인 다흘란은 이전에 최대 적이었던 하마스와 가자에 대한 권력공유 협정을 체결하였다. 권력 공유 협정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보안 통제권을 갖고, 다흘란은 가자지구로 귀환하여 외교관계를 다룬다는 내용이다.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후, 다흘란은 가자지구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보도하였다.  2017년 7월 23일, 다흘란은 AP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권력 공유 협정이 이집트/가자의 국경을 개방하고, 심각한 정전 사태를 완화시킬 것이다. 가자와 이집트 사이 국경의 이집트 쪽에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1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UAE로부터 확보되었다. 본인과 새로 선출된 가자의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와(재임:2017.2.13-현재)의 관계가 이집트와 UAE의 지지를 받으며 한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동맹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 둘 다 가자 지구를 위한 탈출구를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이로써, 다흘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집트 알 시시 대통령과 하마스 사이에 이집트/가자 라파 국경 개방 등 새로운 협력이 시작되었다. 2013년 7월 이집트 쿠데타 이후, 알 시시는 축출된 무슬림형제단 세력인 무르시정권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국경을 폐쇄하고 가자를 봉쇄해왔다.  작년과 올해 다흘란은 코로나 확산으로 고통받는 가자를 위하여 UAE가 보내는 의료지원을 조직하였다. 작년 12월 17일, UAE는 가자지구에 1차로 의료 지원품을 보냈다. 올해 1월 10일, 2차 UAE 지원 용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심각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산소호흡기, PCR 진단 키트, 방호복, 산소통 등 대규모 의료 지원으로 구성됐다. 이 의료 지원용품들은 라파 국경을 통해 가자지구에 도착했다.  하마스 사회부 차관인 가지 하마드는 다흘란이 조직한 정치 단체 ‘민주개혁블록’의 지도부 몇 명이 참석한 가운데 라파 국경에서 의료 지원용품 수송대를 환영했다. 여기서 하마드는 이 수송대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UAE에게 의료지원과 가자지구 원조에 기여한 '민주개혁블록'에게 감사를 표했다. ‘민주개혁블록’은 “UAE 의료지원이 하마스 보건부가 도움을 요청한 데 대한 답례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서 하마스와 다흘란, UAE, 이집트 간에 가자지구 운영에 대한 상호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작년 5월 19일, 6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UAE가 이스라엘을 통해 서안지구에 보낸 UAE의 코로나바이러스 의료지원을 거부했다. 거부 이유는 자치정부와 UAE 사이에 사전협의가 없었고, UAE-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6월 9일, 팔레스타인 총리 무함마드 시타야는 “UAE는 에미리트 항공기에 실려 벤구리온 공항에 착륙한 어떤 원조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조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원조에 대해 사전에 듣지도 못했다. 우리는 그 소식을 언론에서 들었다.”고 밝혔다. 또 파타 중앙위원회 부의장 마흐무드 알 알룰은 “UAE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의 정상화 합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분노를 달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다흘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법원이 다흘란을 부정부패와 금품 강탈 혐의로 기소했고, 그는 UAE로 도주하고 있어 대선 출마가 전면 거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및 파타는 UAE 및 다흘란과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마스 정치국 부의장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알 모니터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떤 국가를 통해서든 인도적 지원을 받는 것을 환영하며, 어떤 지원도 정치적인 이유로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UAE-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핑계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UAE 의료지원을 거부한 것에 놀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거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안보협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핑계로 UAE의 지원을 거부한다는 것은 이상한 모순이다. 다흘란은 팔레스타인 선거 출마를 강력히 원하고 있고, 우리는 그의 출마를 개의치 않는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다흘란의 인기와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압바스 수반에 맞서 다흘란과 하마스 사이에 우호적인 협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1월 15일, 압바스 수반은 올해 5월 22일 의회 선거, 7월 31일 수반 선거를 실시한다는 법령을 발표 했다. 3월 17일, 다흘란은 사우디 알-아라비야 TV 인터뷰에서 총선과 수반 선거에 참여할 뜻을 밝히면서, “팔레스타인 국민이 우리에게 충분한 의회 의석을 준다면, 우리는 기존 질서를 바꿀 수 있다”고 야심차게 말했다.  그런데 4월 29일 압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주민들의 선거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선거를 무기한 연기하였다. 게다가 6월 24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안대가 팔레스타인 인권운동가 니자르 바나트를 살해하였다. 이에 분노한 하마스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제휴관계를 갖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광범위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탄압 정책에 항의하면서, 압바스 수반의 즉각 퇴진을 넘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전면 해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8월 2일에도 라말라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나자르 바나트 살해 사건을 규탄하고 그의 살인범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을 촉구하면서, “압바스, 우리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치정부를 해산하고 우리를 떠나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다.  압바스와 그의 측근들은 서안 점령지에서 불붙은 反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시위에 하마스가 기름을 붓고 있다고 주장한다. 궁지에 몰린 압바스 수반은 2021년 7월 9일-11일 터키를 방문하여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하마스의 反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시위독려를 막아 달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황이 팔레스타인 정치복귀를 꿈꾸는 다흘란에게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2021-08-11 | hrights | 조회: 1434 | 추천: 6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2015년 7월, 일본 평화박물관 탐방을 다녀왔다. 피스 오사카,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 국제평화박물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오카마사하루기념 평화자료관을 돌아보며 일본사회가 어떻게 역사를 취사선택하고 있는지 보았고, 또 그러한 역사인식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도 만났다.  어느 날은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하시마섬에 들어갔다. 일명 ‘군함도’라 불리는 그곳은 한때 일본 최초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근대 도시였다. 폐허가 되어 무너져 내린 곳도 있지만, 수영장, 학교 등의 시설이 보였고, 고층 아파트에 사는 일본인들은 꽤 부유한 생활을 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여전히 회색 콘크리트 도시의 위용을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한쪽은 조선인이 반대쪽은 중국인이 탄광 노동자로 징용을 살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지하 공간이라 파도가 들이치는 곳이었다. 탄광에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면 몸을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다. 고작 세 개의 통에 순서대로 몸을 담가 검댕을 씻고 매일 갱도로 들어가야 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곳, 그들이 ‘근대’라 일컫는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야만’이고 ‘지옥’이었다. 쓸쓸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TV를 켜니 일본 사회가 기쁨에 술렁이고 있었다. 그날은 7월 5일, 하시마섬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날이었다.  최근 일본 정부가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킬 때 강제노동의 역사를 함께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에 메이지 시대 산업화 성과 위주의 전시만 있고 징용 피해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는 것, 오히려 군함도의 탄광을 소개하면서 징용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 논란의 발단이었다. 일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 권고를 받아들여 약속한 조치를 성실히 이행해 왔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유네스코의 ‘유감’ ‘경고’ 입장을 연일 보도하고, 일본의 태도와 역사 왜곡에 대해 앞 다투어 강경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군함도 사진 출처 - 필자  하시마섬에서 쓸쓸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돌아선 그때를 생각하면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가 일어야 마땅하겠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한국 언론에 대한 분노가 더 앞선다. 유독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있어 ‘민족’과 ‘피해’라는 편협한 역사 인식 아래 묻지 마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비단 ‘군함도’ 뿐만이 아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중심으로 강제동원 피해 문제, 독도 영유권 다툼 등 일본과 엮여 있는 모든 문제들은 대부분 그렇다.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못지않게 한국 사회에 ‘헤이트 재팬’을 조장하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다. 단지 ‘갈등’을 조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취사선택하지 않고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달, 한베평화재단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베트남전쟁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국내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 주둔지역과 피해 마을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 평화기행’과 달리 국내 평화기행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만날 수 있는 곳을 탐방하고 우리 기억의 현주소를 찾아가 보고자 한 기획이었다. 우리가 찾아본 베트남전쟁의 흔적들, 용산 전쟁기념관, 현충원, 화천 월남파병용사만남의 장, 전국 방방곡곡 서 있는 월남참전기념탑은 6.25전쟁과 더불어 한국 사회 ‘안보’ ‘애국’ ‘이념’ ‘발전’이데올로기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회적 성찰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전쟁 기억은 국가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논리 속에 현재의 전쟁과 해외파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이 불러온 수많은 ‘피해’와 ‘희생’을 외면하는 사이 고통은 잊히고 ‘발전’과 ‘기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18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 법정이 열렸다. 이 법정은 대한민국이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 노력을 할 것과 더불어 용산 전쟁기념관을 포함해 베트남전쟁 한국군 참전을 전시하는 모든 공공시설에 대한민국 군대의 불법행위를 함께 전시할 것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19년 영국 런던에 라이따이한과 어머니를 상징하는 모자상이 세워졌다. 모자상과 같이 한국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점점 커져가는데 한국 언론에는 관심 밖이다. 몇 군데 국내 언론의 단순 보도만이 있었을 뿐이다. 68년 일어난 퐁니·퐁녓 사건에 대한 한국 참전군인의 양심선언도 크게 관심 받지 못했다. 성미산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전쟁기념관 탐방 사진 출처 - 필자  굳이 ‘피해’와 ‘가해’의 구도를 인용해본다면, 가해의 기억을 지우기보다 치열하게 접근한 사회는 성찰이라는 윤리성을 통해 보다 시민의식이 강해지고 다른 나라와 믿음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익히 보아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인식은 어떠한가. 일본의 태도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유독 일본과의 역사문제에만 뜨거운 한국 언론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2021-07-21 | hrights | 조회: 870 | 추천: 7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요즘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들이 있다. 주민자치, 마을돌봄, 돌봄공동체 등이 그것이다. 하고 있는 일과 위치가 그렇다보니 원하지 않아도 부르기도 하고 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귀가 자꾸 향하는 듯도 하다. 예전에는(물론 아직도 그렇지만) 정부-광역시. 도-지방자치단체-읍면동사무소-마을로 내려오는 일관된 하향식 정책과 제도, 사업들이 정보로 전해져오고 할지 말지 선택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았다. 체계화하고 조직화해야 효율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대로 실현된다고 생각한 행정 중심의, 중앙중심의 시스템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정부나 행정이 어렵거나 부족한 부분을 위탁이나 공모방식으로 기관, 단체 또는 국민들이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복지’ 부분에서 대표적으로 구조화된 현실을 보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에서 내리면 현장에서는 읍면동 복지팀이나 복지관, 자생 봉사단체가 그 일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은 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심심찮게 가게 되었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모든 복지대상자를 위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다 감당하기 힘들어서인지 현 정부 들어서서 생활권 단위(마을)를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 마을돌봄체계 구축 등 새로운 복지정책을 모색해보는 듯하다. 이 얼마나 괜찮고 좋은 소식인가. 예전 마을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 이웃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선한 마을생활을 다시 복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계획은 그럴싸하고 취지도 좋고 기관, 단체들도 모이고 하는데 뭔가 삐그덕대는 모습이 보이고 원래 목적대로 현장에 잘 실현되는지는 의문이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초보 농군 딱지를 떼고 마을 이장이 되었을 무렵인 2010년 어느 날로 기억된다. 이장의 중요 임무 중 하나는 면이나 농협 등에서 마을주민들에게 공지해야 할 일을 마을방송을 통해 알리는 일이었다. 감자 종자 신청하신 분들에게 몇월 며칠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가져가시라는 방송을 막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이른 아침 마을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도로에 나와 손짓을 하시며 내 트럭을 세우셨다. 할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집 불이 나간지 일주일이 넘었고 배달시켜야 하는 가스도 끊어진 지 열흘이 넘었다 하신다. 가스는 보통 두 통이 있는데 한 통을 열어보니 가스가 공급되었고, 전기는 누전차단기가 고장나 시내에 나가 사다가 교체해 드렸다. 내게는 이 간단한 일이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는 도시에 사는 아들내미에게 전화를 해 놓고 이제나 저제나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마을에 들어와 산지 5년이나 지났는데 마을의 이런 사정을 미처 몰랐던 내가 한심스럽고 안타까웠다. 젊은 사람들이 없는 농촌에서, 이런 간단한 생활의 어려움을 이웃에게 부탁하고 서로 도우며 살았던 마을공동체는 옛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 출처 - 필자  고민이 되었고 마을 젊은 작목반, 별빛 교육센터 선생님들과 이런 문제를 얘기했고 해결할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긴급출동! 우리마을 119’다. 전기, 가스, 보일러, 수도 등 기본적인 생활의 불편함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요청할 수 있는 구조를 마을에 만들자는 것이었다. 일단은 별빛 사회적 협동조합에 젊은 친구들이 일하고 있으니 스티커를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 댁에 전화기 옆, 냉장고, TV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일일이 방문하여 붙여드렸다. 그렇게 마을 스스로 돌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복지관이나 행정 읍면동사무소에서는 할 수 없거나 어려운 일을 마을은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기어이 2018년 별빛 사회적 협동조합에 ‘나이 들기 좋은 마을 팀’(노인복지팀)도 만들고 마을 119 활동을 기본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고 살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우리마을 119 두 번째 센터는 우리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에 생겼으면 하는 바램과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정부의 정책방향도 bottom up(아래로부터) 방식으로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멀기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색하고 낯설다. 더디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하는 주장도 일면 타당성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마을일은 마을스스로 특히 우선적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도움은 우리사회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춘천시는 ‘우리마을 119 설치 및 지원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에는 곳곳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각 종 봉사단체, 주민자치회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정부는 자치단체는 행정은 이 주민들이, 시민들이 스스로 서로 돌봄을 잘 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환경과 제도와 예산을 지원해주면 된다. 그렇게 될 때 마을돌봄은 곳곳에 풀뿌리처럼 정착할 것이고 공동체가 회복되는 ‘마을’로 진화될 것이다.
2021-07-06 | hrights | 조회: 959 | 추천: 7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제미 버튼(Jemmy Button)이란 아이가 있었다. 남미 파타고니아의 티에라 델 푸에고 섬 사람이다. 스페인어로 ‘불의 땅’이란 뜻인 티에라 델 푸에고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마젤란 해협 남쪽 섬으로 남미대륙의 땅끝이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선이 이 섬을 절반으로 가르고 있다. 중심도시 우수아이아는 남극 여행 크루즈가 출발하는 곳이다. 제미 버튼의 본명은 오룬델리코. 푸에고 원주민 야마나(Yamana)인이다. 황량한 남극지방의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푸에고인들은 불을 피우고, 물개 가죽과 과나코 털을 몸에 걸쳤다. 오룬델리코가 태어난 19세기 초반은 이곳에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다.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등 유럽인들이 계속 탐험을 왔지만, 어느 세력도 확고한 지배권을 갖지는 못했다.  오룬델리코는 어떻게 제미 버튼이 되었을까? 그는 진주 단추 하나와 교환되어 제미 버튼이란 이름을 얻었고 영국으로 끌려가 3년간 머물렀다. 제미 버튼의 여행은 자기 의지로 떠난 길이 아니라 납치로 인한 것이었다. 그를 데려간 사람은 비글호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였다. 비글호는 영국 해군 함정으로 1826년부터 1830년까지 남미 해안선 조사와 경도 확정, 그리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마젤란 해협 일대 탐사를 목적으로 항해를 했다. 티에라 델 푸에고 섬에서 몇 명의 푸에고인이 비글호의 고래잡이 보트를 훔쳐 달아나자 피츠로이 선장은 보트를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야마나인 세 명을 인질로 잡고, 또 다른 한 아이를 납치해 비글호에 태워 영국으로 데려갔다. 진주 단추와 맞바꾼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제미 버튼이었다.  피츠로이가 이들을 영국으로 데려온 명분은 ‘야만인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베풀겠다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통역자로 양성한다는 실용적 목적도 있었다. 일종의 ‘문명화 실험’이었던 것이다. 일행은 1830년 10월 플리머스 항에 도착했다. 한 달 후 한 명은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고, 나머지 셋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영어와 찬송가를 배웠다. 영국식 복장과 헤어 스타일을 하고 사교계에 불려 나가 국왕 윌리엄 4세와 애들레이드 왕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야만인’ 푸에고인을 문명사회로 데려와 기독교도로 개종시키고, 영어를 가르치고, 상류사회의 예의범절을 몸에 익혀 신사숙녀로 만드는 실험, 이것이 제미 버튼 일행이 강요당한 이상한 여행의 실체였다. 피츠로이 선장이 그린 푸에고인 사진 출처 - Jemmy Button in 1833 from 'Fuegians' in The narrative of the voyages of H.M. Ships Adventure and Beagle. Vol. 2. by FitzRoy (1839).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신기한 사물을 유럽으로 가져왔다. 사물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 사람도 수집 대상이 되었다. 식물은 표본을 채집하거나 씨앗을 가져와 식물원에서 재배했다. 동물은 박제로 만족하지 못하고 산 채로 포획해 동물원에서 사육했다. 유물을 원산지에서 분리하고, 동식물을 원서식지에서 이식하는 이 거대한 흐름의 속에서 식물원,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런던에는 다양한 인간 전시가 넘쳐나고 있었다. 사르키 바트만의 ‘호텐토트 비너스’ 쇼가 인기를 끌었고, 이누이트인, 아즈텍인, 산족, 줄루족이 출연하는 인간 전시가 흥행몰이를 했다. 인간을 수집과 전시의 대상으로 삼는 일, 이른바 ‘인간동물원’은 현대의 인권 감수성으로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박물관 발달의 합리적 귀결이었다. 피츠로이 선장이 그린 푸에고인(확대) 사진 출처 - Jemmy Button in 1833 from 'Fuegians' in The narrative of the voyages of H.M. Ships Adventure and Beagle. Vol. 2. by FitzRoy (1839).  물론 제미 버튼이 쇼 무대나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건 아니다. 다윈의 관찰에 의하면, 이 젊은이는 멋 부리기를 즐기고 거울 속 자기 모습에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다윈은 이 불쌍한 푸에고인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미개인’에서 ‘문명인’이 되었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피츠로이 선장의 비글호 두 번째 항해 때 귀국한 그는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 원래 생활방식으로 돌아갔다. 영국에서 보여준 놀라운 적응은 생존전략에 불과했던 것인가? 런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개방형’ 전시물이 되었을지언정, 피츠로이의 문명화 실험은 대실패였다. 제미 버튼이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문명을 동경하고 영국 생활을 즐겼는지, 아니면 단지 견뎌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남은 기록이라고는 피츠로이 선장의 보고서와 다윈의 비글호 여행기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둘 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의 시선으로 오염된 텍스트다. 제미 버튼의 이야기는 접촉지대에서 발생하는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만남이 얼마나 비대칭적인지, 나아가 ‘우리’와 ‘그들’ 사이의 평등한 만남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2021-06-23 | hrights | 조회: 1384 | 추천: 8
: 이스라엘 내 아랍 정당들 통합 강타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교수  2021년 6월 13일, 이스라엘 새 연립정부가 의회 신임 투표에서 전체 120석 중 60 : 59, 1표 차로 승인되었다. 새 정부는 극우파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가 이끌고, 우파와 좌파뿐만 아니라 이슬람주의를 내세운 라암당 등 정치이념이 다른 8개 정당이 합류하였다. 새 총리 베네트는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불법적인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팔레스타인인 살해를 옹호하는 등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바 있다.  네타냐후 정부와 박빙의 대결 구도 속에서, 새 정부 출범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인물은 의회에서 4석을 확보한 이슬람주의자 라암당을 이끄는 만수르 압바스다. 만수르 압바스(왼쪽)와 나프탈리 베네트 사진 출처 - 구글  압바스는 2020년부터 네타냐후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네타냐후 정부와 새 정부 사이에서 어느 쪽에 합류할 것인가를 저울질해왔다. 2020년 11월 19일 예루살렘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압바스는 “다른 아랍계 의원들과는 달리, 나는 네타냐후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2020년 11월 24일 채널 20과의 인터뷰에서, 압바스는 총리 네타냐후에 대한 지지 및 협력관계를 공개하고, “아랍정당들이 모두 좌파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이슈 및 종교와 국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우파다. 정치 체제는 이스라엘 사회가 선택한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맞서 공동명부 소속으로 압바스 동료였던 임따니스 샤하다는 “이러한 만수르의 행위는 공동명부를 탈퇴하기 위한 변명이며, 네타냐후의 마우스피스 노릇을 한다.”고 비난하고, 공동명부로부터 압바스 축출을 요구하였다.  결국, 라암당은 2021년 1월 28일 공동명부를 탈퇴하고, 3월 23일 선거에 단독 출마하여 4석을 획득함으로써 의회 내에서 이슬람주의자의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이후, 압바스는 네타냐후 정부와 네타냐후를 축출하기 위하여 결집한 새 정부 구성 추진 세력 사이를 오락가락하였다. 압바스가 ‘킹 메이커’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종적으로 그는 네타냐후를 버리고, 새 정부 추진 세력, 베네트를 선택하였다. 사실, 인종차별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에 있어 네타냐후와 베네트 사이의 차이는 거의 없다. 압바스는 아랍 통합 세력인 공동명부를 떠나 새로운 이스라엘 정부에 참가함으로써, 이스라엘 내 아랍 정당들 통합에 커다란 타격을 가하였다. 이로써 분할통치 전략을 구사하는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다루기에 훨씬 손쉬운 대상이 되었다.  2015년 이후 이스라엘 내 아랍 정당들의 통합으로 공동명부가 창출되어 아랍 팔레스타인인들을 결집시킴으로써, 현실 정치 참여도가 높아졌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2013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 56%가 참가하였고, 공동명부가 만들어진 2015년에는 63.5%가 참가하였다. 2013년 의회 선거에서 아랍 정당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 투표의 77%(349,000표)를 획득하였다. 2015년 의회 선거에서 공동명부는 팔레스타인 아랍인 투표의 82%(444,000표)를 획득하였다. 2015년 아랍 정당들이 단일 공동명부로 출마하기로 합의한 이유는 2014년 3월 11일 제정된 선거법이 선거 문턱을 득표율 2%에서 3.25%로 높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하나의 정당이 최소 4석을 확보해야 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공동명부 출범 이후, 이스라엘 내 아랍 정당들은 다음의 투표 결과를 얻었다. 2015-2021년 이스라엘 아랍 정당들의 의석 선거일 정당 대표 의석수(총 120석) 득표 % 정당순위 2015.03.17 공동명부 아이만 오데 13 10.54 3/10 2019.04.09 하다시-타알 아이만 오데 6 4.49 5/11 라암-발라드 만수르 압바스 4 3.33 11/11 2019.09.17 공동명부 아이만 오데 13 10.60 3/9 2020.03.02 공동명부 아이만 오데 15 12.67 3/8 2021.03.23 공동명부 아이만 오데 6 4.82 10/13 라암 만수르 압바스 4 3.79 13/13 공동명부는 2015년 이스라엘 내 아랍계 4개 정당 하다시(사회주의), 타알(아랍민족주의, 중도좌파), 발라드(아랍민족주의, 좌파), 라암(이슬람주의)의 정치연합으로 창립됨. 4개 정당 중에서 라암만이 이슬람주의를 표방하였다. 2021년 1월 28일 라암은 공동명부를 탈퇴함.  위의 표에 따르면, 모든 아랍 정당이 통합하여 공동명부로 단독 출마했을 때, 아랍인들의 투표율뿐만 아니라 득표율도 높아짐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랍인들의 통합의식이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7월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파가 주도하여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국가라는 인종차별을 제도화하는 ‘유대민족 국가법’을 제정하는 등 각종 반아랍 입법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인종차별이 제도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공동명부는 이스라엘 내 정당 순위 3위로 부상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다. 특히 2020년 다양한 파벌로 나뉘어 서로 분쟁하는 이스라엘 유대인 정당들은 공동명부를 구성한 아랍인들의 협력을 얻어야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도래한 것 같았다.  그러나 2021년 6월 라암당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을 추진하는 새 정부에 합류하면서,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통합은 커다란 걸림돌을 만난 듯하다.  압바스는 새 정부 구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내 아랍 사회에 만연한 범죄, 폭력, 실업 문제, 주택 부족 문제 등과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지방의 베두인 마을 허가 및 경제 발전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압바스는 이슬람을 내세운 정당을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예루살렘 소재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 및 공격, 동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 축출,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정책 등을 새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논의 주제로 내놓지 않았다. 이슬람주의자 압바스는 이슬람 성지나, 성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직면한 긴급한 민족적인 문제를 새 정부에서 해결해야할 중요한 사안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압바스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당면한 민족적인 문제에는 눈을 감고, 세부적인 이스라엘 내 아랍 공동체의 사회∙경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적인 민족 문제와 이스라엘 내 아랍 공동체의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은 모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지배하기 위한 이스라엘 정책에서 나온 것이며,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압바스는 단지 이스라엘 정치 체제에 적극 순응하는 기회주의적인 아랍인 이슬람주의자일 뿐이다.
2021-06-15 | hrights | 조회: 1284 | 추천: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