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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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중간지원조직’이다. 춘천시에서 조례를 통해 출자출연기관의 형태로 설립한 재단법인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이하 춘천마자센터)이다. 작년 7월 1일 문을 열였고 나는 6월 15일 홀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49년을 야생이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와 농촌에서 농부로 마을활동가로 살아온 내게 춘천마자센터는 약간의 설레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흔쾌히 동의되지 않는 머뭇거려지는 기관이었다.  이제 1년 6개월밖에 안 되는 미천한 경험과 소회를 가지고 전국의 수많은 중간지원조직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오만일 수도 있겠다. 다만, 요즘 서울시를 보면서 또 이번 시의회에 출석해 한 시의원님으로부터 들은 한마디가 이야기하게 된 자극이 되었다. “마을자치지원센터가 정치색을 띠는 것처럼 비춰지면 안되잖아요. 그래야 혹시 정권(지방자치단체)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될 수 있죠” 비아냥은 아니었길. 우려였고 걱정이었고 휘둘리지 말고 제 역할을 하라는 조언이었을 거라고 애써 맘먹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국의 수많은 분야 – 마을만들기, 공동체, 주민자치,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상권활성화, 문화, 기후위기, 생태, 환경, 사회혁신 등등 – 에서 일하고 있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이 정치색에 의해 좌우되는 또는 개인의 입신양명만을 위해 현장을 떠나 자칫 양쪽(행정과 현장)에서 욕 들어 먹기 딱 좋은 곳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채득한 경험과 가치를 도모하기 위해 뛰어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믿고 싶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행정만이었다면 어려웠을 유의미한 결과물들을 내고 있음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현장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경험, 혁신적인 상상력과 실천력 등 민간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새싹들이 풀뿌리처럼 골목마다 마을마다 전국에서 서서히 움트고 돋아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먼 것 같다. 행정의 민간, 시민들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도 극복해야 하고 현장의 이해 부족으로 인한 우격다짐에도 평화롭게 응대해야 한다. 법과 제도, 규정에 가로막혀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모순을 보며 답답함도 좌절감도 경험하게 된다. 전국 방방곡곡을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배우던 활동가들은 새장 속에 갇힌 파랑새처럼 자유를 속박당하기도 한다. 서글퍼지는 활동가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안락함과 매너리즘에 잡아먹히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야생성과 신념은 마음속에 굳건히 품고 현실에서는 유연함과 여유로움으로 활동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자칫하면 현장성은 잃고 행정에 익숙해지면서 중간꼰대 혹은 중간갑질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pngtree  대부분 중간지원조직은 민간위탁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행정으로부터 요구받는 성과, 실적에 허탈해지고 용역회사 취급하는 갑질에 울분을 삭이기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제든지 위탁취소가 되거나 예산이 깎여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는 불안정성이 늘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야기하다 보니 하소연이고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하지만 나름 애를 쓰고 맘을 쓰며 운동성을 잃지 않으며 살고있는 활동가들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어렸을 때 즐겨 불렀던 노래가 떠오른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 우리들은 청년이다”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이여 힘내시라 그리고 언제든 자유로울 용기를 잃지 않기를 간절한 맘으로 응원한다.
2021-12-29 | hrights | 조회: 697 | 추천: 3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지난 11월 24일 인천지법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60대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이 재판은 국민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다. 현재 이 피고인에 대한 상세한 정보나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려 여러 경로를 통해 노력 중이지만, 이 피고인 – 가정폭력의 피해자 – 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기사(2021년 11월 24일 자 문화일보)를 보면 남편은 의처증이 있었고, 이로 인해 상당 기간 – 아마도 결혼 기간 내내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 가정폭력을 행사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일에도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남편은 집을 나가라고 했고, 이에 아내가 “이혼하자.”라고 하자 목을 조르는 등의 폭행을 저질렀다. 그 과정에서 친정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고 이에 분노한 아내가 함께 몸싸움을 벌이던 중에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경우 국민참여재판은 예전에도 있었다. 2015년 경기도에서는 가정폭력으로 피해를 당해 왔던 아내가 사건 당일에도 술에 취해 흉기를 들고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둔기로 내려쳐서 사망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징역 2년에 처해 진 사건이다. 이 재판에서 국민배심원들 9명 중 5명은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천의 위 사건의 경우에는 배심원들 전원이 10~13년의 구형을 선고하라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6년이라는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퇴행적인 판결이 선고된 것일까?  가정폭력으로 인한 ‘부부살해’는 전체 살인 사건의 10%에 이른다. 2019년 SBS가 ‘부부살해’를 조사한 자룔르 보면 2018년 부부간 살인 사건은 31건이고, 살인 사건은 322건이었다. 이 중 남편에 의한 아내 살인 사건이 2배에 이르고, 부부살해 중 가정폭력이 언급된 사건은 10건 중 8건에 육박한다. 이러한 정황들은 가정폭력이 ‘부부 다툼’이 아니라 중대한 범죄이자 가족 구성원들의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고, 생사여탈의 문제가 달린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범죄/폭력 행위가 일회성이 아닌 결혼 기간 내내 지속된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엄청난 심리/정서적 억압과 두려움을 내장하고 있어야 하고, 신체적인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생각건대, 언제고 자신을 폭행하거나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건 끔찍함을 넘은 공포의 상황일 수밖에 없다. 가해자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범죄는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이러한 경험이 없는 이들은 가해자와 함께하는 일상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사진 출처 -마부작침  이번 판결의 핵심은 무경험의 오류이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법의 해석에, 그리고 아마도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 경험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하지 안/못했거나, 아니면 ‘피해자답지 못’해서였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배심원들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유형과 피해의 유형을 피해자로부터 증거로 제시받지 못했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다. 동일한 경험은 “아!” 하면 “어!”라고 할 수 있는 반응, 즉 수용과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아마도 가정폭력과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배심원들이었다면, 본인들이 경험하지 않고 오로지 상상으로 그려보는 피해와 피해자의 전형이란 것이 있었을 것이고, 장기간 폭력에 노출되어 둔감해진 피해자의 폭력 상황에 대한 설명, 또 우발적 이마나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기력과 자기소외는 충분히 본인의 폭력피해 경험에 대해 자세하고 구체적이고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폭력과 지배를 당해 온다면, 대다수 사람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 법적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이 내 가족이고, 이 사회가 가족 내의 문제는 사생활영역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강요하고, 자녀들이 부모들이 “그냥 너 하나 참으면 조용해진다.”라고 억압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신체적 폭력과 지배는 심리 정서적 지배상황에 놓이게 만든다. 노예로 길들여 진다는 것과 그 상황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우리는 모른다. 경험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간접경험을 통해 직접 경험자들의 고통을 인지할 수도 있다.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처벌의 수위는 관련법이 제정될 당시와 비교해 달라진 것이 없다. 이번 판결은 되레 퇴행한 것으로 비춰진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폭력피해의 경험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직접경험이 아니라 간접경험을 통해. 이는 일찌감치 가정폭력의 부정성에 대해, 이를 실천하지 않을 방안에 대해, 가정폭력 목격자로서 행해야 할 태도에 대해 교육을 통한 간접경험의 기회를 높이는 것이다. 나아가 가정폭력 피해의 지속적, 정기적 특성의 잔혹함을 인정하여, 가해자 남편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여야 한다. 누구도 노예로 살기를 원하지 않고 공식적인 노예는 없지만,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노예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이를 직시하여야 한다. 이에 대해 ‘가정의 평화’ 운운함으로써 피해자를 가해자에게 돌려보내는 법적 판단은 ‘노예제’를 존속시키는 봉건적 행위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여성 인권의 발전 정도가 제발 시간에 역 비례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살고 싶다.
2021-12-08 | hrights | 조회: 849 | 추천: 4
이윤/ 경찰관  얼마 전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특수부대 전역자끼리 어느 부대가 더 강한지 겨루는 설정인데... 훗... 나에게 최강부대는 의경부대다. 수십 년간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 기지를 24시간 철통같이 지켜준 것이 의경부대다. 이 사실 하나로 더 이상 설명은 시간 낭비다. 그래도 납득하지 못하는 분을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 대한민국 부대들 중 실전 경험은 의경이 가장 많다. 하늘을 덮듯 날아오는 화염병과 돌을 피하고 막으면서도 농담하는 여유. 쇠파이프와 물병, 몸싸움, 침 뱉기, 부모 욕 등 무수한 물리적·심리적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 서울 시내 길바닥에 앉아서 시민들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식과 취식, 심지어 취침을 하는 몰아의 경지. 나는 이런 부대에서 소대장 2년, 중대장 1년을 근무했다.  의경부대에서 소모품처럼 근무할 때마다 ‘왜 이렇게 인력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낭비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내 맘대로 내린 결론은 돈이 안 들기 때문이다. 의경은 군복무 중이니 아무리 많은 인력을 동원해도 비용이 더 들지 않는다. 90년대에는 출동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이 없었으니 의경부대 근무 경찰관들에게도 추가 비용이 없었다. 그러니 아낌없이 사람을 쏟아붓는다. 심지어 경비 인력이 시위 인원수보다 더 많을 때도 있었다. 97년 수사부서에 근무할 때에도 젊다는 이유로 비상설부대 소대장으로 차출되어 6개월간 주중에는 수사업무를 하고, 주말에는 07시부터 23시까지 지하철역 테러대비 경비업무를 했다.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 당시부터였다. 내가 영·미식 자치경찰제의 열렬한 옹호론자가 된 것은. 자치경찰제가 되면 인력과 예산, 조직을 오롯이 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재산 보호와 범죄 예방 및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주민 세금으로 운영되니 낭비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효율적 치안정책을 개발하고,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커뮤니티 폴리싱 같은 주민 참여도 활성화될 것이다. 경찰관은 승진을 위해 높은 자리 계신 분에게 줄을 대려 하기 보다는 현재 직무에서 성과 창출로 인정받고자 할 것이다. ‘춤추는 대수사선’이나 ‘다이 하드’ 같은 경찰관련 외국영화를 볼 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서로 자기가 처리하려고 싸우는 모습이었다. 외국경찰이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관할 떠넘기기(속칭 핑퐁)’가 오래된 문제였던 한국경찰과는 너무도 달랐다. 덩치 큰 국가경찰인 한국경찰은 자치경찰에 비해 경찰관 개인의 직무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다양성 문제도 있다. 국가경찰은 전국에 동일한 치안정책을 동시에 적용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일제 검문검색이라는 것을 했다. 전국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도시든 시골이든 관계없이 경찰관들이 밤거리에 쏟아져 나와 검문검색을 했다. 통일된 지휘계통체계에 의한 일사불란한 치안활동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국가경찰 체제를 뒷받침한다. 나는 진화론에 기반하여 그것과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한 국가 내에서 지역마다 다양한 체계와 정책이 공존하는 것이 오히려 환경 적응력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눈으로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환경이 변화하는 요즘, 동일 형질만 존재하는 종은 외부 충격이 있을 때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 동종 내 많은 변이가 존재해야 그 중 적응하는 형질이 있어 전체 종의 생존에 유리하다. 한국은 영토는 좁지만, 지역마다 치안 환경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촉진해야 발전적 적응도 가능하다. 사진 출처 - 행정안전부  좁은 영토는 국가/자치 경찰제의 고려요인이 아니다. 영토가 한국의 절반 정도인 스위스, 비슷한 오스트리아가 자치경찰제를 운영하고, 43개 자치경찰로 구성된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 면적도 한국과 비슷하다. 문제는 영토의 넓고 좁음이 아니라 권한의 집중과 분산이다. 각 지역이 스스로의 권한으로 치안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책임을 지도록 해야 경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아무리 독립성과 중립성을 선언하더라도 중앙집권적 정부조직은 정권의 눈과 입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인사와 예산, 조직구성이 행안부와 기재부 등 중앙부처와 국회에 의해 결정되고, 전국 경찰의 승진과 보직 운영 권한이 경찰청 지휘부에 집중되어 있는 국가경찰 체제에서는 경찰 구성원의 시선이 위를 향할 수밖에 없다.  남북 분단 상황 역시 고려요인이 아니다. 군사적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은 군인의 역할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립경찰이 국군과 함께 전투 참여 및 빨치산 토벌을 하고, 휴전 후에는 무장공비를 토벌하고, 전경대가 김신조 루트를 경계했던 기억은 군사력이 약했던 과거의 역사다. 현재 세계 10위 수준인 국방력을 경찰이 보충해야 한다면 한국군에 대한 심각한 과소평가다.  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을 우려하는 분도 계시는데, 이 문제는 중앙정부의 보조금으로 해결하면 된다. 영국 자치경찰은 독립된 재원인 경찰기금(police funding)으로 운영되는데, 이 중 중앙정부 보조금이 자치경찰 전체 예산의 75%까지 차지했었으나, 예산 종속에 의해 국가경찰화 되는 것을 우려하여 오히려 중앙정부 보조금 비율을 70% 이하로 줄이려고 노력한다.  자치단체장 및 지역 유지와의 결탁도 제도에 의해 예방할 수 있다. 영국 자치경찰은 지역치안평의회(10~20명), 지역치안위원장, 내무부장관, 지방경찰청장의 4원 체계로 운영된다. 주민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지역치안위원장이 지역치안 총괄책임자이고, 그에 의해 임명된 지방경찰청장이 지방경찰을 운용한다. 지역치안평의회는 독립위원으로 구성되고 예산감사, 지방경찰청장 임명 거부권 등 위원장 감시·감독 기능을 수행한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영국 어느 지역의 지방경찰청장 모집 공고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연봉 1억 원에 우리 지역 경찰청장님을 모십니다. 아래 자격요건에 해당하는 유능한 분들은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것이다. 만일 경찰이 자치단체장이나 지역 유지와 결탁을 하거나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일한다면, 독립된 수사기관 즉 국가수사본부나 검찰, 공수처 등의 수사를 받게 되므로 견제가 가능하다. 그리고 자치경찰위원회에 영국이나 미국처럼 다수 인원의 사무국을 별도로 두어 인사, 예산, 조직, 감사 등 업무를 실질적으로 맡기면 자치경찰을 지휘, 감독, 통제할 수 있다.  2021년 7월부터 시행된 자치경찰제는 일원화모델이라고 하는데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완전한 자치경찰제를 하면 혁명적 변화가 예상되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치안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G7에 버금가는 선진국이 된 지금, 국민이 중심인 민주적 경찰체제를 갖추려면 자치경찰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2021-11-30 | hrights | 조회: 1001 | 추천: 10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것도 3개월여 사이에 대선과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큰 장이다.  여당과 제1야당 대선 후보가 선출되었고, 후보 모두 ‘기본소득’을 공약에 염두한 듯 보인다. 특히 여당 후보는 일찌감치 기본소득을 앞세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로 주는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을 제시한 바 있다.  2년쯤 전에 이 지면에서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란 제목으로 기본소득의 지급 형태를 특정 지역의 특정 업종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로 할 경우의 단상을 살짝 끄적인 적이 있다. 한번 다시 펼쳐보자.(결코 지면을 메우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밝히며..)  “… 물론 보편적 기본소득 적용이 현실화된다면 그 모두를 지역화폐로 전달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지역화폐는 말 그대로 지역 내 소비의 순환을 목적으로 하므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소비에 모두 대응할 수 없다. 기본소득 전체 비중에서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19는 꿈틀거리던 기본소득을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했다. 미래 사회는 근로소득자와 기본소득자로 나뉠 것이라는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를 전망도 나온다. 기본소득 그리고 지역화폐와 결합한 기본소득 논의가 향후 어떤 경로를 거쳐 무슨 결과물이 나올지 주목된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은 딱 그림이 안 보인다.  이유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무릇 기본소득이라 함은 말 그대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 생활비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사용처가 한정되어야 ‘만’ 하는 지역화폐와는 미스매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적인 기본소득의 조건 하에서의 가정이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으로 세금도 내고, 여행도 가고, 온라인쇼핑몰에서 당일배송 식품도 주문하고 싶다면 현재의 지역화폐로는 불가능하다. 세금은 물론 해당 지역 외 교통편은 지역화폐 사용처가 되기 힘들다. 온라인쇼핑몰은 말도 못 붙인다.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역외로 유출되는 지역의 소비를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만든 게 지역화폐이기 때문이다. 장보기 딱 좋은 대형마트도 물론 안된다.  그렇다면 ‘지역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고, 유입된 역내소비가 고루 순환되는’ 지역화폐와 ‘그냥 퍼주기가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기본소득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사진 출처 - freepik  얼마 전 국민상생지원금(재난지원금)이 지급됐을 때의 일이다. 사용처가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으로 국한되자 시작 전부터 논란이 일었다. 대다수 국민(경기도는 모두)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인데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나 사행성, 유흥업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뜩이나 지급지역 밖을 벗어나면 쓸 수도 없는데 경기도의 경우 매출 10억이 넘는 병원 등에서는 지역화폐 가맹점이 아니기 때문에 쓸 수 없는 상황을 맞아야 했다.  결국 ‘간주가맹점’이란 이름으로 지역화폐 가맹점이 아닌 곳 상당수를 재난지원금 사용기한인 연말까지만 가맹점으로 허용했다. 이 기간 동안 지역화폐는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 등 일부를 제외하고 웬만하면 다 쓸 수 있는 소비쿠폰, 소비 바우처가 됐다.  시흥시는 현재 대기업 프랜차이즈점(주로 다매체 광고에서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 40여 곳의 프랜차이즈 및 대리점)은 지역화폐 가맹점이 아니다. 뉴스에서 자주 듣던 ‘골목상권을 침투하여 초토화한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말한다.  그래서 이곳 가맹점주들로부터 ‘우리도 소상공인’ 이라며 항의를 많이 받았다. 특히 코로나19 민생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마련한 지역화폐 구매 혜택(10% 할인) 때문에 지역화폐 발행액이 크게 높아지자 더욱 커졌다.  그럴 때마다 지역화폐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양지와 혜량을 구했지만 결국 욕만 배부르게 먹었다. 그런데 재난지원금 사용처가 임시로 확대되자, 집중적인 항의 전화는 거짓말처럼 끊겼다.  만일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지역화폐는 그 목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용처의 범위는 넓어지고, 제한 업종은 온라인쇼핑몰, 대형마트 등만 남을지도 모른다.  물론 온라인쇼핑몰, 대형마트만 지역화폐 가맹점 제한을 둬도 지역 소비의 역외유출이 매우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프랜차이즈, 대기업 상권은 점점 더 골목 곳곳에, 업종 깊숙이 범위를 넓혀 지금도 들어오고 있다.  정책연계성과 사용자 편의성을 앞세워 이들이 속속 지역화폐 사용처가 된다면 골목상권 영세 자영업자들을 정책 우선 대상에 두고 있는 지역화폐는 그저 이름만 남게 될 공산이 크다.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융합이 가능할까? 상호보완? 아니면 양립? 과문한 탓에 이 딜레마를 풀 방법은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닌 채 모두 사라질 수도 있겠다. 묘수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2021-11-24 | hrights | 조회: 623 | 추천: 0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오래전 일이다. 골목 끝, 막다른 집 대문 앞에 교복을 입은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한여름 오후라 인적이 드문 시간인데,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남의 집 대문 앞에 왜 모여 있는 거지 하면서 다가가니,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는 게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숨어서 몰래 피는 것도 아니고 서로 둘러앉아 있기는 했지만 대놓고 피는 모양이 섣불리 다가설 수 없게 했다. 그래도 집으로 들어가려면 아이들을 피할 수는 없으니, 아는 척은 해야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그냥 모르쇠로만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어른들 누구도 관심이 없다면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얘들아, 내가 이 집에 사는데, 어른을 보면 담배를 숨기는 척이라도 해야지? 내가 너희들이 담배 피우는 걸 보고도 아무 말 않고 그냥 들어가 버리면 너희들 기분은 어떨 것 같애?” 하고 나름 우회적으로 말을 하니, 남학생 하나가 못마땅한 듯 침을 뱉으며 불쑥 일어서는데, 여학생들이 남자아이를 잡아끌면서 “아, 네네~ 조심할게요!” 하면서 “거봐, 야, 우리 다른 데로 가자니까~” 하면서 자리를 떴다.  가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이구동성으로 그런다. “그러지 마,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아이들이 무서운 걸까, 무서워진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걸까? 그때 아이들은 핀잔이라고 생각했을까, 관심이라고 생각했을까? 2.  한겨울 늦은 시간, 철시한 공구 상가 거리는 깜깜했다. 모임을 마치고 운동 삼아 집까지 걸어가는데 가로등도 희미한 차도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게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길로 갈 걸, 조금 빨리 가려다~~” 무서운 생각에 걸음을 재촉해 지나치려니, 식별도 되지 않는 깜깜한 차도에 사람이 그야말로 큰대자로 누워있었다. 새 도로가 나면서 구도로가 된 이 도로에는 오가는 차량도 사람도 없었다. 문득 “자동차라도 지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렇게 누워있는 사람을 운전자가 볼 수는 있는 건가? 술 취한 사람인가? 이 추운데 뭐 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에 뒤돌아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불러봤지만 대꾸가 없어, 좀 더 다가가 “아저씨,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차라도 지나가면 그대로 친단 말이에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혹시 죽은 건 아닐까 싶어 어떡하지 하는데,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지금 당신이 나 때문에 그러는 거요?” 한다. 헉, 순간 놀라기는 했지만 “그럼, 여기 누가 있어요, 아저씨 말고!” 참 이상하게 말을 한다 싶은데, “그럼 됐어, 가쇼!” 하는 게 아닌가! 무슨 말인가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서 있는데, “당신이 나 때문에, 나한테 그런 거잖소! 그럼 됐소! 그만 가쇼!” 하는 게 아닌가! “아, 됐단 말이오! 나도 일어나 갈 거니 댁 가던 길이나 가쇼!” 하는 말에 뭔지 모르지만 일단 맘이 놓여 나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 아저씨는 내가 한 행동에서 자신이 원하던 관심을 받은 거라고 생각했을까?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이 세상 어디선가 자신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나, 여기 있다는 인간 실존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이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3.  바쁜 아침 출근길,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전철역이다. 한 할아버지가 턱이 있는 데서 아래로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내리고 있었다. 잠깐 들어드리면 쉽게 옮길 것 같아, 뒷부분을 잡고 아래로 당겼다. 그런데 그게 자전거를 확 잡아당기는 꼴이 되어 손잡이를 잡고 있던 할아버지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할아버지는 “그냥 두면 되는 걸, 뭘 한다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고 그래~~” 하며 크게 화를 내셨다. 지나가던 아주머니도 “그거 잘못하면 노인네 다치겠구만~” 하는 것이다. 아차, 할아버지의 처지는 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간섭하면서 오지랖 폭도 넓게 굴었구나 싶었다. 4.  저녁 무렵,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는 버스는 정류장 못 미쳐서 섰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풀숲에 노란색 물건이 쓰러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밟으면 안 될 것 같아 허공에서 헛돌던 발을 헛디디면서 넘어질 뻔하였다.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고~” 들여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전동킥보드였다. 누군가 사용하고 이리 쓰러뜨려 놓은 모양이다. 나같이 발을 헛디디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한쪽에 세워놓으려는데 이게 또 꿈쩍을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도난방지 경고음까지 울어대니 도적질하는 것 같아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지나가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내도 아까 그거 옮겨놓으려고 했는데 소리만 무지하게 나고 꿈쩍도 하지 않던데~ 에 이 사람들도 저기 세워진 데 놓으면 오죽 좋아~~” 하신다. 그때 든 생각, 버스는 정류장에 정차, 전동킥보드는 설치대에! 그러면 오지랖 넓은 이런 짓은 안 할 텐데~ 5.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역사에서 만난 동료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우리 사이로 틈이 조금 벌어지면서 자전거가 씽 하니 스쳐 지나갔다. “햐, 묘기다! 나라면 그 좁은 틈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옆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저 묘기(?)를 부리는 거는 자전거만이 아니다. 전동킥보드며 오토바이도 그 대열에 합세한 지 오래니 말이다. 걸어가는 사람한테는 위협적인데 정작 타는 이들은 자신만만하다.  “그런데 왜 버려진 전동킥보드는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홀로 길 한복판에 떡하니 서 있거나, 역 입구에 버려져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과 박치기할 준비를 하고 있거나, 바닥에 쓰러져 오가는 사람들 발에 채이거나….”  그때 같이 가던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언니, 나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긴 한데, 그래도 그런 오지랖 넓은 사람이 필요하다구는 생각해!”  관심과 오지랖, 그건 경계가 있는 게 아닌 것을, 그냥 서로 다른 표현인 것을….
2021-11-18 | hrights | 조회: 804 | 추천: 7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마,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차기 대통령 선출을 향한 레이스가 한창이다. 필자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그는 “이재명은 합니다”를 출사표의 통괄적인 일성으로 내걸었다. 이 문장은 불완전 문장이다. ‘합니다’의 목적어가 빠져 있다. 이 구호를 접하는 국민은 과연 그가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를 궁금해할 것이다. 문장의 목적어인 그 무엇은 대통령 출마자로서 내놓는 그의 공약에 담길 것이다.  국민을 향한 공공의 약속 즉 ‘公約’은 헛된 약속 즉 ‘空約’이라는, 정치에 대한 흔한 비아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잘 알다시피, 국가가 집행하는 모든 권력의 원천이자 주체는 국민이다. 정치에 대한 이 비아냥은 정치의 주체인 국민이 정치에 짐짓 무감하도록 한다. 그처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니, 대통령을 하겠다는 ‘놈들’치고 그렇고 그렇지 않은 ‘놈들’이 누가 있냐는 식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필자의 고향인 경남 마산을 찾았다. 한국기원 창원지원에 몇몇 친구들이 모였다. 저녁 내기 바둑을 둔다. 대체로 1급 고수들이다. 필자는 고작 5급 정도에다 평소 거의 바둑을 두지 않다시피 하니, 넉 점 접바둑에도 1승 2패다. 오랜만에 ‘위드 코로나’를 틈타 저녁 겸 술자리에 열 명 남짓 선후배들이 모였다. 보이지 않는 녀석들의 안부와 동정을 묻고 즐겁게 반세기 가깝게 지난 고교 시절 옛이야기를 나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3.15 의거와 부마 항쟁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마산 사람들이 독재자 두 명을 날려 버렸다 아이가! 그기 우리 마산 사람들의 뚜렷한 자부심 아이것나!’ 필자가 거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선 정국으로 말머리가 돌아간다. ‘어이, 조박사, 니 철학박사 아이가, 우찌되는 긴지 한 마디 해봐라.’ 그러자 치과 원장 일을 하는 후배 한 녀석이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마입시더.’ 하고서 힘주어 말한다. 다들 정치적인 입장들이 다르니, 괜히 기분 좋은 술판을 깨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녀석의 취지임은 물론이다. 딴은 맞는 말이다. 더욱이 필자를 포함해 다들 오랜만의 반가움에 술기운이 많이 오른 상태라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이고, 나는 마 대선이니 뭐니 아무 관심도 없다.’ 또 한 녀석이 맞장구를 친다. 내심 기회다 싶어 이재명 후보의 정치적인 위력과 내공을 ‘선전’하려 하던 필자는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놓친 기회를 여기 ‘수요 산책’의 공론장을 빌려 살려보려는 마음이다. 2. 새로운 정치적 언명에 기대를 건다.  대통령 출마자의 공약은 말이다. 본래의 공약은 그냥 말이 아니다. 통치권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현명한 책략으로 활용할 것인가, 그리하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삶을 어떻게 더욱 바람직하게 높여 갈 것인가, 대통령 출마자의 공약은 그 중차대한 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는바 엄중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다. 이재명 후보는 말한다. “어떤 지도자가 일을 맡느냐에 따라 시민의 그리고 국민의 삶이 얼마나 크게 바뀔 수 있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절실하고 적실한 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말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합니다.”  필자는 「현상학적 신체론」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의 핵심 주장 하나가 인간 주체의 근본은 생각하는 정신이 아니라 행동하는 몸이라는 것이다. 생각과 말의 관계에서, 생각은 말로 하는 것이고 말이 곧 생각이라는 것은 철학자 대부분이 인정한다. 하지만, 진정한 삶을 꾸려가는 데 행동이 시작과 끝이고, 따라서 생각이 행동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정하는 철학자는 드물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는 이를 정확하게, 게다가 그의 삶 전체를 통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행동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일과 싸움과 놀이다. 한자 말로, 일은 노동으로, 싸움은 투쟁으로, 놀이는 유희로 표현된다. 행동의 이 세 갈래는 구분되긴 하나, 완전히 따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노동에서는 자연적인 물질의 저항과 싸워야 하고 관련한 사람들의 무능력과 잔인함과 싸워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물건들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기쁨을 통해 노동이 놀이의 성격을 갖는다. 투쟁의 본령은 정치다. 정치는 뭇 사회적 노동이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과 성격을 규정하고 그 분배의 척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이다. 정치적인 투쟁이 일임은 물론이고, 그 성취에서 기쁨이 수반되기에 한편으로 놀이이기도 하다. 바둑 두기나 여느 스포츠 경기 그리고 예술 경연에서 보듯이 유희에서도 경쟁 즉 투쟁이 필수적인 요소고 그 성취를 위한 노력은 노동일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가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그가 행동의 이 세 갈래의 갈등과 조화를 충분히 체화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재명 후보는 ‘억강부약’을 자신의 통치 이념으로 내세운다. 모르긴 해도, 한국의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지 싶다. 강한 지배력을 갖는 자들은 소수이기 마련이고, 약한 처지에서 지배당하기 일쑤인 자들은 대체로 다수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강한 자들을 억누르고 약한 자들을 돕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념임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국민에게 제시한다. 강한 소수를 적으로 삼아 철저하게 싸우겠다는 것이고, 약한 다수를 돕는 것을 그 투쟁의 목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억강부약’을 그저 말로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행동으로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예상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하지만 결코 굴하지 아니하고 끝내 싸워서 이기겠다는 말을 반복한다.  일견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묘한 일반인들의 심리 때문이다. 누구나 투쟁 관계를 벗어날 수 없고, 거기에서 상대적인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그런데 누구나 투쟁 관계에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본능적인 경향을 지닌다. 그래서, 현실 전반으로 보면 분명히 자신이 열등한 위치에 있는데도, 가까운 주변의 관계에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점들에 눈길을 먼저 돌린다. 그리하여 은근히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강자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현재의 자신의 삶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싸우는 일이 힘겹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자신의 현재 삶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세계 8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사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리라 예상된다. 만약 필자의 이런 생각이 옳다면, 자신이 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다수고 자신이 약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소수인 셈이 되고 만다. 굳이 철학적인 개념을 끌어와 풀이하면, 보편과 특수의 불일치다. 보편적인 현실로 보면, 분명 강자가 소수고 약자가 다수다. 그 반대로, 특수한 심리로 보면, 강자가 다수고 약자가 소수인 것이다.  흔히 정치는 심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불안하다. 이재명 후보는 보편적인 현실을 염두에 두고 ‘억강부약’을 외치는데, 유권자인 국민 중 심리적으로 자신이 어느 정도는 강자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그 ‘억강부약’이란 말을 자신을 억압하겠다는 위협으로 듣는 유권자가 많을 수도 있을 것 같기에 불안하다. 말하자면, 객관적인 현실에서의 진실이 주관적인 심리에서의 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왜곡될 수 있기에 불안한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일까? 이재명 후보는 “저는 우리 국민의 집단 지성을 믿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필자가 알기로는, ‘국민의 집단 지성’, 이 말도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다. ‘집단 지성’은 프랑스의 사회철학자인 피에르 레비가 만든 개념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사이버 공간이 보편화하면서 하나의 사안에 관해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주도해서 정보 문건을 작성하고 그에 따라 그것에 대해 배타적인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불특정한 여러 사람이 자발적으로 수정과 개작을 통해 정보 문건을 계속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데 누구나 참여하여 그 지식 정보를 공유하는 현상을 보고서 거기에서 작동하는 공동의 지성 활동을 일컫는 말이 ‘집단 지성’이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그런데 이 ‘집단 지성’이란 개념을 이재명 후보가 국민에게 적용한 것이다. “저는 우리 국민의 집단 지성을 믿습니다.” 이를 옛날식으로 들으면, ‘저는 우리 국민이 바보가 아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보편적인 국민 권리에 따른 복지 정책에 대해 상대편에서 매표행위라고 비판하자, “이제 막걸리 한 사발, 고무신 한 켤레로 표를 사는 때와는 다릅니다.”라고 응수한다. 한때 국민이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서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누구나 쉽게 대학교육을 받을 정도가 되었고 그에 따라 우리 국민이 얼마든지 공통의 지성적 결집체로서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국민의 집단 지성’이란 말을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국민의 지성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고, 다른 한편으로 국민이 정치적인 판단을 하는 데 있어 개인의 주관적인 심리에 이끌리는 데서 벗어나 보편의 지성적인 판단을 해 달라고 요구한다. 거기에는 우리 국민이 얼마든지 그런 정치적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을 갖추었다는 그의 믿음이 깔려있다.  지성의 근본 힘은 반성이다. 지성은 감정적으로 불쑥 떠올라 왜곡되기 일쑤인 자신의 심리적인 판단을 곰곰이 반성해서 검토함으로써 그 부당함을 제치고 진정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생각을 이끄는 힘이다. 이때 지성은 판사인 양 객관적인 진실을 척도로 삼아 저 자신의 심리를 피고로 삼아 판정한다.  그런데 심리적이건 지성적이건 그 판단의 기준은 이익이다. 감정에 따른 심리적인 판단은 어떤 일이 무조건 나에게 이익이 되면 그 일을 옳다고 여김으로써 내려진다. 지성적인 판단은 어떤 일이 나에게 이익이 되려면 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어야만 그 일을 옳다고 여김으로써 내려진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돕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나를 공격할 수도 있음을 정확하게 잘 파악하는 것이 본래 지성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성은 제대로 된 자신의 이익 즉 우선은 자신의 이익이 적게 느껴지더라도 결국에는 자신의 이익을 더 크게 가져가는 쪽으로 판단해서 행동하도록 하는 능력이다. 그 반대로, 감정은 잘못된 자신의 이익 즉 우선은 자신의 이익이 크게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이익을 더 적게 가져가는 쪽으로 행동을 몰아가는 힘이다. 지성을 통해 감정을 억제하고 조절해야 이유는 모두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모두가 제대로 된 이기심을 더 잘 충족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 집단 지성’을 믿는다고 할 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이익을 더 많이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이익을 얻도록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과연 국민에 대한 이러한 이재명 후보의 믿음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일까, 아니면 이념적인 당위를 바탕으로 한 것일까, 아니면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막연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일까?  필자는 그의 그 믿음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즉 우리 국민의 집단 지성이 실제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믿고 싶다. 하지만, 이런 필자의 믿음을 확증할 길이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적이 불안하다. 다만,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 집단 지성’을 향한 이념적인 당위의 부분을 최대한 현실로 바꾸어낼 수 있는 정치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어떤 사안이건 거짓을 진실로 믿고 행동하면, 그 행동은 반드시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진실 자체를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그에 행동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길이기 때문에 진실을 추구한다. 이재명 후보가 자신이 현실주의자임을 주장하고 실용주의자임을 주장할 때, 필자로서는 그가 이념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이념 자체가 목표가 아니고 이념이 현실적 이익의 수단임을 정확하게 파악한 바탕에서 제기되는 것이라 여긴다.  이재명 후보가 뭔가 복합적이고 그래서 이중적인 측면을 지닌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철저히 민주적인 것 같은데, 왠지 독자적으로 고집을 부리며 밀고 나가는 독재의 통치를 할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 순진한 유아적인 미소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인격적으로는 한없이 부드러운데, 정작 현안에 대한 논변이 시작되면 즉각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돌변하는 데서 나타나듯이 정치적으로는 한치 물러남이 없는 고집을 부릴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그를 보면서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의 자격으로 제시한 것, 즉 “올바른 시민이 되려면, 지배할 줄도 알고 지배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떠올린다. 간단히 말하면, 필자가 보기에 이재명 후보의 부드러운 인격의 면모는 그가 제대로 지배받을 줄 안다는 것을 일러주고, 그의 단호한 정치적 표정은 그가 제대로 지배할 줄 안다는 것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뫼비우스 띠처럼 결합해 있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이 권력 자체를 위해 권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이 필요하기에 권력을 원한다고 했다. 권한은 국민이 국가의 권력으로써 제정한 법의 한계 내에서 즉 국민에 의해 지배받는 가운데 권력을 행사할 것을 요구한다. 이재명 후보가 강조한 ‘권한을 위한 권력’은 ‘지배받기 위한 지배’로 번역될 수 있다.  오로지 지배할 줄밖에 모르는 자,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이 마치 자신의 배타적인 능력에서 생겨난 것인 양 정확하게 착각하여 가능한 한 기회가 닿는 대로 줄곧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해 온 자는 진정 지배할 줄 모른다. 그런 자가 나라의 통치권을 장악할 경우, 국민이 권력을 상실하고 따라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필자의 필설이 길어졌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였으면 한다. 그동안 우리네 정치사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이재명 후보의 적어도 네 가지 언사, 즉 “말이 아니라 행동”, “억강부약”, “국민의 집단 지성”, “권한을 위한 권력”에 국민 모두 특별히 귀 기울였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관류하는 이익 우선의 실용주의와 이익을 위한 참다운 이념의 설정과 조절에 아울러 귀 기울였으면 한다. 그리하여, 대내외적으로 명실상부하게 창조적인 평등과 평화의 위력을 갖춘 새로운 나라를 향해 진력하는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2021-11-18 | hrights | 조회: 978 | 추천: 7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종종 뵙는 월남 참전군인이 한 분 있다. 3년 전 처음 만나고 조금씩 활동을 같이하며 지금은 평화활동의 동료가 되었다. 최근에는 더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활동가 역량 향상을 위한 연구지원사업‘(약칭 ‘활력향연’) 때문이었다. 활력향연은 공익활동가들이 스스로 연구주제를 탐색·개발하여 활동 분야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활동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들도록 돕고자 매년 10개 팀·개인을 선발해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나는 ‘참전군인의 평화활동에 대한 연구’로 2021활력향연에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를 위해 평화활동에 함께하는 주변의 참전군인을 만나 그들로부터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45년 전후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두 번의 전쟁을 겪었던 그들은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어린아이 시절엔 총부리 앞에 섰고 청년이 되어서는 총을 들고 전장에 가야 했다. 나는 전쟁경험이 어떻게 평화로 이어지고 있는지(혹은 이어져야 하는지), 꼰대와 태극기 할배를 넘어 다양한 그들을 만나고자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로 주변에서 함께하는 참전군인의 생각을 듣고자 했다. 종종 뵙던 분을 자주 만나게 된 것도 그런 이유다.  사실 잦은 만남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고맙게도 참전군인으로부터 연구 활동에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꺼이 주변 참전군인을 소개하거나 설문조사 응답받는 일을 함께 해주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코로나 상황에서 평소 연락도 없이 지내던 이들에게 한 장 한 장 설문을 받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없이 연구를 위해 애써주었다. 그것은 소리 없는 응원이었다. 나는 이 연구를 통해 좋은 동료를 만나는 행운까지 얻었다. 11월 말 연구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더 정성을 들여야 하지만 이미 과정 속에 많은 배움이 있었다.  이러한 지원프로그램은 나와 같은 활동가에게 전문성과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나는 서울시 NPO지원센터가 시민운동 중간지원조직으로서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 활력향연을 비롯해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 활동가 장학지원, 시민운동 역량강화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더 확장되어 시민운동이 발전하는데 토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생각과 열정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익활동가들의 선의와 열정이 시민운동을 만들어가고, 지방정부와 국가는 그것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월 13일 서울시청에서 시민사회 분야 민간 보조와 민간 위탁 사업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얼마 전, 두 번이나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ATM기로 전락했다’라는 오세훈 시장의 발언이 있었다. 그 말은 마치 쌈짓돈으로 엉뚱하게 공짜 인심을 쓴 것 같은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공적 영역을 함께 담당하고 있는 시민사회에 대한 그의 막말에 기가 막힌다. ‘서울시 곳간’, ‘시민단체 ATM기’라니? 그런 경박한 상상과 단어의 조합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하다. 대장동 일색이었던 (심지어 서울시 국감에서조차) 이번 국정감사에서 그 발언의 배경이 나올까 싶었지만, 오세훈 시장은 아직 감사 중인 사실이라 똑 부러지게 답변하지 못한 채 모든 시민단체를 지칭하는 건 아니라는 궁색한 말만 내놓았다. 실제로 민관협치의 내용과 결과에 일부 문제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행정적으로 처리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할 일이지 기자회견을 자처해 공적 가치를 전면 부정하고, 모든 시민단체를 ATM에서 돈 빼먹는 날강도로 만들어버릴 일은 아니다. 민관협치의 취지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정적 불의, 부조리를 잡아내는 것은 그렇게 기자회견으로 결심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울시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일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발언으로 세간에는 내년도 관련 예산 삭감, 시민단체 출신 공무원에 대한 대량 정리해고, 시민운동 중간지원 조직에 대한 과다 인건비 지출 등을 문제 삼는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이 박원순 전 시장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정치공세라는 분석도 나온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에 불을 지피고 내년 지방선거 때문이든, 정치공세 때문이든 애먼 시민단체를 잡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한다. 올 초 정의연을 둘러싼 후원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시민단체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언론의 무분별한 시민단체 때리기로 시민들의 후원 해지가 잇따랐다. 심지어 조선일보 같은 매체는 ‘시민단체를 못 믿어 나눔도 직거래로 한다’는 따위의 기사를 여전히 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시민운동을 하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시나 어떤 기관의 재정지원을 받아 사업을 한다는 것은 보통 품이 드는 일이 아니다. 사업이 채택되는 것부터가 치열한 경쟁을 뚫는 일이고,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과 증빙을 구하는 일까지 행정적인 업무가 어마어마하다. 단돈 천 원도 증빙 없이는 지출할 수 없으며 심지어 야근을 하며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사진으로 증빙해야 하는 것이 서울시 사업보고의 현실이다. 인건비 사용도 제한이 있어 대부분 사업비에만 지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받고자 함은 사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들을 이루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장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손쉽게 국고를 편취하는 집단으로 시민단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 행정기관의 장으로서 언행은 신중하게, 표현도 숙고했으면 한다. 시민단체는 당신들의 동네북이 아니다.
2021-10-27 | hrights | 조회: 979 | 추천: 7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민지야(가명) 요즘 많이 힘들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원서를 다 써놓고 최저점 공부만 하니 오히려 맘이 좀 편해진 건가 싶기도 하네. 솔직히 얘기하면 다양하고 복잡한 대학가는 방법도, 네가 원서를 쓴 여러 곳의 대학과 학과를 아빠는 아직 다 모른단다. 아빠와 딸인 우리의 대화가 적었던 것은 아닌데 등하굣길 오가며 참 많은 이야기를 지난 1년간 했던 것 같은데 정작 고3 딸의 대학입시를 이렇듯 외면하고 있는 아빠가 너무 무심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구나.  귀농한 아빠 때문에 어려서부터 시골의 아이로 살아온 19년이 네게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단다. 산과 들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고 풀벌레 소리에 잠이 들고 산새 소리에 아침을 맞을 수 있는 농촌 마을이 네에게도 너무 좋은 환경이지 않았을까 가슴 벅찬 설레임도 있었단다.  그러나, 자연과 아빠와만 놀고 지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는 걸 우리는 금방 알아버렸지. 유치원에 가도 동갑내기 친구 한 명 없는 시골 학교 유치원 생활에 외로웠을 거고, 방과 후 40~50도를 오르내리는 그 뜨거운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 따는 아빠와 함께 있어야만 했던 어린 시절 민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미안해지더구나.  뭘 배우고 싶어도 학원차 하나 들어오지 않는 시골 마을의 교육환경은 어쩌면 네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빼앗은 건 아닌가 박탈감도 들었단다. 그나마 별빛공부방을 만들고 별빛선생님들과 마을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너의 든든한 마을 선생님으로 함께했을 때 아빠의 마음이 비로소 흐뭇해지고 자랑스럽기까지 했었지. 농촌유학을 한다고 7년여를 매년 도시유학생들과 함께 살았던 기억도 네게는 미안함으로 남아있단다. 우리 가족 네 식구가 아닌 다른 아이들과 한방에서 자고 먹고 또 놀아야 하는 추억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겠지? 매년 유학생을 집으로 받을 것인지 너의 의견을 묻기는 했지만, 아빠가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큰 반대 없이 유학생들을 받는데 찬성했던 너의 마음이 아빠와 별빛유학센터를 배려한 건 아닌가 감사한 마음도 들더구나. 울기도 많이 울고 다툼도 많았던 너의 초등시절 유학생들과의 생활이 나중에 더 큰 어른이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좋은 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시내로 나올 수밖에 없었으니 등하굣길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 아빠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하교 후 학원에 다니는 것도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다 오고 싶은 것도 시골의 이른 막차 버스 시간에 맞추는 게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해. 그래도 밤길을 혼자 걷기도 하고 뜨거운 여름, 추운 겨울 시내로 가는 버스 타는걸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씩씩하게 다니던 민지를 보면서 자랑스럽기까지 했단다.  우리 부녀지간은 그래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인 게 아빠는 늘 뿌듯하단다. 너는 친구 얘기, 학교 얘기, 공부 얘기를 스스럼없이 아빠에게 털어놓고 아빠는 일 얘기, 철학 얘기(^^), 정치 얘기 등 편하게 네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는데 이제 그럴 시간이 많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크단다. 수험생이 된 지난 1년 아빠는 네가 대학을 가겠다고 한 거에 반대를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험생에 도움이 되는 조력자는 못 되었던 거 같구나. 아빠는 대학만능주의 대한민국의 프레임 속에 네가 빨려 들어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너의 행복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구나. 언제나 밝고 당당하고 쿨한 우리 민지가 저 세상에 나가 사회의 잣대와 기준의 폭력 앞에 너 자신을 잃을까봐 걱정도 된단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아빠는 민지를 19년 함께 옆에서 지켜보면서 늘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단다. 딸자식 자랑하는 게 아니라지만 민지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아빠의 딸이고 그 자체로 빛이 나고 멋진 아이이기 때문이야. 가끔은 시골을 선택한 아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공부를 좀 더 시켰더라면, 생활기록부를 좀 더 신경 써서 봐줬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단다. 다만 민지야, 아빠의 삶의 관점과 철학으로 인해 너의 청소년기를 소홀히 생각한 건 아니었음을 생각해 주었으면 해. 성적이 좀 부족해도 꼭 좋은(?)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너의 인생은 너의 노력과 너의 삶의 가치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아빠는 너를 통해 보고 싶단다. 좀 더 큰 어른이 되었을 때 지난 19년간의 시골에서의 생활이 불편했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 남을 거라 믿어.  수능이 11월인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잘 마무리하고 시험도 즐겁게 편안하게 노력한 만큼 잘 볼 수 있기를 기도할게. 늘 너를 믿고 기다리고 응원할 수 있는 아빠로 또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도록 아빠도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마. 그동안 고생했고 사랑한다 민지야.
2021-10-25 | hrights | 조회: 1358 | 추천: 6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경계선』의 주인공 티나는 매우 못생긴 여성이다. 사실 티나의 정체는 북유럽의 울창한 숲속에 산다고 전해오는 전설의 존재 트롤이다. 『경계선』은 태어나자마자 꼬리를 제거당하고 인간 사회에 섞여 살게 된 트롤 티나가 자신과 같은 트롤인 보레를 만나 사랑하고 변화하는 이야기다. 티나는 뛰어난 후각을 활용해 마약 밀수를 적발하는 세관원으로 일하는 성실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였지만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혐오스런 외모 때문에 늘 움츠리고 숨어야 했다. 집이 필요해 그녀에게 얹혀살고 있는 에뤼는 티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넌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난 너랑 완전히 똑같지만 외모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에뤼의 말에 티나는 크게 상처받는다. 가시로 뒤덮인 자신만의 고치 속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어야 했다. “그녀의 몸은 감옥이라기보다는 작은 우리 같았다. 안에 앉을 수도, 서거나 누울 수도 없는 우리.” 내 몸이 나를 옴짝 못하게 가두는 느낌, 타인의 시선에 내 외모가 끊임없이 평가받는 낯뜨거움, 그래서 숨고 싶은 심정, 친밀한 사이에서 더 가혹하게 들리는 외모 평가. 훌리아 파스트라나(Julia Pastrana)도 틀림없이 티나와 같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여성”이라 불렸던 파스트라나는 실존 인물이다. 선천성 기형으로 잇몸이 돌출되고 얼굴과 몸에 털이 뒤덮인 채 태어난 파스트라나는 프릭쇼 무대라는 감옥에 갇히기 전에 자신의 몸이라는 좁은 우리에 먼저 갇혔다.  파스트라나는 태평양에 면한 멕시코 시날로아 주에서 1834년에 태어났다. 20세가 되던 해인 1854년 흥행사 시오도어 렌트(Theodore Lent)에게 이끌려 고향을 떠나 미국 전역에서 프릭쇼(freak show) 무대에 올랐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통이 아닌 이상한 몸을 보여주는 프릭쇼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파스트라나의 키는 1.35m, 몸무게는 54kg 정도였다고 한다. 시날로아 주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 산맥 어딘가의 동굴에서 발견되었을 때 그녀는 인간이 틀림없는 어머니에게 안겨 있었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루트 디거 인디언(Root-Digger Indians)이라 불리는 원주민 출신이라고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프릭쇼가 돈벌이가 되는 이유는 관람자의 응시가 하나의 서사를 생산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응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을 찬찬히 뜯어 보는 것이다. 손으로 만져보거나 말을 건네고 말을 듣는 행위를 수반하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응시는 관람자의 자기성찰을 수반한다. 경이와 매혹, 당혹과 불편을 함께 자아내는 프릭을 응시하면서 주체는 나를 돌아보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프릭쇼를 함께 보는 경험은 관람자들 사이에 가상의 동질성을 만들고 ‘우리’라는 의식을 갖게 한다.  프릭쇼 선전 포스터와 팸플릿에서 파스트라나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혼종 인디언(Hybrid Indian)’, ‘곰 여인(Bear Woman)’, ‘개코원숭이 부인(Baboon Lady)’, ‘원숭이 여인(Ape Woman)’, ‘수염 난 여자(a bearded woman)’, ‘정체 모를 존재(Nondescript)’ 등이 그녀를 묘사하는 수식어들이었다. 의학적으로 보면 파스트라나의 경우는 극단적인 유전 질환을 앓고 있는 사례였다. 선천성 다모증과 잇몸 과다 발육증이 병명이었다. 그러나 프릭쇼는 그녀를 인간과 동물 사이의 존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존재로 부각해 관람자의 호기심을 극대화했다. 이런 문구들은 이를 위한 전략적 레토릭이었다.  파스트라나를 응시하는 프릭쇼 관람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녀가 무대에 오르면 관중들은 놀라서 큰 숨을 몰아쉬었고, 비명을 지르거나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지는 여성들도 있었다고 한다. 좀 더 꼼꼼하게 보려는 관찰자들은 그녀의 털과 수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유심히 들여다 보기도 했다. 보통의 여자에게 털과 수염을 붙여 가짜 원숭이 여인을 만든 건 아닌지 검열하는 시선도 있었을 것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체를 가려내기 원하는 관객의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 아예 ‘무엇일까(What is it)’라는 별명으로 불린 지프(Zip)라는 프릭쇼 주인공도 있었다.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진화론이 기성 세계관에 충격을 주었던 무렵, 진화가 암시하는 원숭이와 인간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찾기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었다. 인간과 유인원의 진화는 이미 몇 만년 전에 가지가 갈라졌기 때문에 잃어버린 고리 같은 것이 존재할 리가 없다. 하지만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고, 목적을 향해가는 직선상의 상향 운동으로 진화를 이해하는 속류 다윈주의의 영향 속에서 잃어버린 고리라는 상상력은 인기를 끌었다. 따라서 파스트라나를 ‘원숭이 여인’으로 수식하는 표현은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이다. 다윈은 파스트라나를 본 적도 없고,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말한 적도 없지만 다음과 같은 짧은 언급을 남겼다고 한다. “보통보다 많은 치아 때문에 입이 튀어나왔고, 얼굴은 고릴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프릭쇼에서 파스트라나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는 그녀의 몸이었다. 잘록한 허리와 부풀어 오른 가슴을 강조하는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영낙없는 작고 귀여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영국의 자연학자 프랜시스 T. 버클랜드(Francis T. Buckland)는 살아있을 때도 죽은 후에도 그녀를 직접 보았는데, 아름다운 숙녀와 털복숭이 괴물의 혼종이라고 묘사하며, “그녀는 선량하고 우아했다. 특히 작은 발과 미끈한 발목은 완벽 그 자체였다”라고 썼다. 여성적인 몸과 대조적으로 얼굴에는 턱수염, 콧수염, 구레나룻이 나 있었고 길고 윤기나는 털이 목과 팔까지 덮고 있었다. 자웅동체(hermaphrodite), 즉 암수 한몸은 당시 프릭쇼의 단골 소재 중 하나였다. 장미꽃, 리본, 작은 모자, 러시안 댄서 드레스 같은 여성성의 표식을 부착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남성적인 얼굴은 프릭쇼 주인공으로서 그녀의 가치를 극대화시켰다. 여성에게 수염이 난다는 것은 젠더의 경계 넘기 행위로 여겨졌다. 턱수염 난 여자는 여자인 주제에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위험하고 불온한 존재이기 때문에 망신주고 조롱해야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여자가 남자 같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자연의 실수’인지를 파스트라나를 통해 확인했던 것이다.  흥행사 렌트는 파스트라나를 데리고 미국 전역을 순회했을 뿐 아니라 런던, 비엔나, 뮌헨, 모스크바에서 까지 갔다. 공연은 성공을 거두었고 렌트는 큰 돈을 벌었다. 렌트는 파스트라나를 붙잡아 두기 위해 결혼을 했다. 곧 임신한 파스트라나는 1860년 3월 20일 사내 아이를 출산했다. 아기도 파스트라나를 닮은 기형이었고, 태어난 지 35시간 만에 사망했다. 5일 후에 산모도 사망했다. 죽은 후 파스트라나와 이름도 없는 사내아이의 운명은 더 가혹했다. 렌트는 모자가 사망한 지 36시간 만에 모스크바 대학 해부학 교수 수클로프(Sukolov)에게 시신의 해부와 박제를 허락했다. 수클로프는 모자를 방부처리하고 박제해 미라로 만들었고, 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의학지 『랜싯(Lancet)』에 발표했다. 미라는 모스크바대학 해부학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수클로프의 의학적 시선은 몸의 내부로 들어가 파스트라나와 아기를 검시했다. 이제 그녀는 프릭에서 표본이 되었다. 프릭쇼 무대에서 해부학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 그녀에게는 비정상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선천성 다모증과 잇몸 과다 발육증을 앓는 유전성 질병 환자가 그녀에게 주어진 최종적인 분류의 자리였다. 병리학은 혼종성을 비정상성으로 만들고, 프릭을 표본으로 만들었다. 프릭쇼 선전물에서 보이는 선정적 표현은 사라졌지만,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이는 병명이 정상인과 그녀를 갈라 놓았다. 프릭쇼가 인간과 동물, 문명과 미개의 경계선에 파스트라나를 서게 했다면, 의학은 그 경계를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질병의 이분법으로 바꿔놓았을 뿐이다.  두 시신을 500파운드에 팔았던 렌트는 정교하게 제작된 미라의 상업성을 확인하고는 미국 영사가 발행해준 결혼 증명서를 내밀며 수클로포에게 반환 요청을 했고 결국 800파운드에 미라를 되샀다. 1862년 미라가 된 파스트라나와 아이는 런던에서 대중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한 박제 솜씨에 버클랜드도 감동했다고 한다. 이후 모자 미라는 영국, 독일, 스웨덴을 떠돌며 1970년대까지 박람회장에서 대중에게 전시되었다. 도난을 당해 사라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지막에 도달한 곳은 오슬로 대학 의학사 박물관이었다.  박제된 채 약 110년간 유럽을 떠돌던 파스트라나의 유해는 2013년 멕시코로 귀환했다. 멕시코 출신 미국 아티스트 라우라 앤더슨 바르바타(Laura Anderson Barbata)가 2005년부터 오슬로 대학에 청원해온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파스트라나가 몸을 누인 하얀 관 위에는 “훌리아 파스트라나 1834-1860 국제적 활동으로 인정받은 시날로아 주 출신 아티스트.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멕시코 시날로아로 귀환하여 2013년 2월 12일 묻힘. 훌리아 파스트라나 평안히 잠드소서. 시날로아 주정부 시날로아 시의회”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아티스트’라는 호명이 낯설다. 프릭쇼 무대에서 노래와 춤 공연을 한 건 맞지만 그녀가 그 일을 좋아했는지 알 수 없고, 노래와 춤을 익히게 된 것은 인간 전시를 금지하는 도시에서 법망을 피하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따라서 파스트라나에게 아티스트가 적절한 호칭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파스트라나는 ‘원숭이 여인’도, ‘곰 여인’도, ‘정체 모를 존재’도, 프릭도, 아티스트도 아닌 그냥 파스트라나일 뿐이 아닐까? 죽은 지 백 년이 넘어서야 영면에 든 파스트라나가 부디 자신의 몸과 화해했기를 빈다.  
2021-10-06 | hrights | 조회: 1349 | 추천: 11
안동환/서울신문 기자  집에만 머문 긴 연휴, 넷플릭스 드라마 ‘D.P.’ 완주를 실패했다. 30년이 흐른 묵은 기억과 감정들이 TV 스크린에 겹쳐 떠오른 탓일까.      1994년 1월 강원도 화천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한밤 중에 사라진 훈련병이 산 속에서 얼어죽은 채 발견됐다. 신병교육대 조교는 우리들에게 “탈영하면 무조건 서울 가는 버스 터미널로 가도록 합니다.”라고 빈정댔다. 그가 왜 읍내 방향과 반대인 산악 지대로 향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모두는 혹한기 탈영의 끝은 개죽음이라는 걸 절감했다. 봄이 오자 수백명의 훈련병 중 18명이 영문도 모른 채 전경에 차출(差出)됐다. 전남 광주의 전경대에 배치된 우리는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국방부가 내무부에 빌려준 자원으로 취급됐다.      자대 생활은 가혹행위로 실감됐다. 새벽마다 강제 기상해 화장실에서 구두 시험을 봤다. 선임들은 우리 중 1명이라도 작전 암구호와 고참 기수번호를 잘못 답하면 열외없이 주전자에 가득 든 물을 마시게 했다. 얼차려를 빙자한 기수별 구타도 잦았다. 하지만 스물 살 안팎의 우리를 엄습했던 건 ‘오월의 광주’였다.  광주는 90년대 중반 전국적으로 사라진 화염병이 유일하게 출현하던 도시였다. 매일 시내 중심가의 민자당사와 검찰청사를 경비했다. 기습 시위는 시가지 전투를 방불케 했다. 우리는 5월이면 거의 매일 금남로 일대와 전남대 후문에서 대학생 사수 조직인 오월대(전남대)·녹두대(조선대)를 상대로 악다구니 작전을 되풀이 했다. 전대를 다니다 차출된 동기들은 행여 누군가 얼굴을 알아볼까봐 기동복 깃을 목덜미까지 세우고 마스크를 썼다.    소대 후임이 5월 어느날 저녁 전대 후문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백골단이 시위 학생들을 후문 안까지 밀어 부치는 진압 작전을 하면서 격렬한 충돌이 빚어졌다. 화염병과 사과탄을 주고 받으며 대치 거리를 유지했던 시위대와 백골단이 엉키면서 삽시간에 대열이 무너졌다. 후선 전경대가 일제히 최루탄을 쏜 순간 충청도 농사꾼 출신의 A가 고꾸라졌다. 야간 상황에서 사수들이 발사각 지침을 무시하고 시위대를 향해 직사한 최루탄 중 하나가 A의 뒤통수를 때렸다. 전경대 지휘관들은 최루탄 직사의 위험성을 알고도 현장에서는 모른 척 했다. A는 부대로 복귀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의가사제대했다. 서너 달이 흘렀을까. 흰소복 차림을 한 중년 여성이 부대 정문 앞에서 한참을 흐느꼈던 초현실적인 장면이 마지막 기억이다. 부대는 얼마 후 해체됐다.  2014년이 배경인 D.P.는 과거의 집단 기억들을 현재로 소환하는 힘을 발휘했다. 온라인 게시판마다 군필자들이 쏟아내는 병영 폭력과 부조리 ‘썰’들이 댓글 경쟁을 벌였다. 옛 고참들을 은근슬쩍 고발하거나 아예 실명으로 악행을 박제하는 ‘온라인 군투’(군대판 미투) 현상도 나타났다.      D.P.는 현직 국방장관도 소환했다. 서욱 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D.P.와) 현재 병영 현실은 다르다”고 반박한 게 대서 특필(?)됐다. 국방장관의 발언 이튿날 선임들의 폭력과 집단 따돌림에 고통받던 해군 일병이 지난 6월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스마트폰으로 병영 안에서 주식 투자도 한다는 기사가 풍기는 방만한 자유로움과 국방통계연보 통계 사이의 간극은 컸다. 육군참모총장에서 장관으로 직행한 그의 재임 기간 군 자살자는 지난해 40명, 올 1~6월만 37명에 달한다. ‘군 폭행 및 가혹행위 입건 수’는 2019년 854건에서 지난해 946건으로 다시 늘었고, 지난 5월과 8월 성폭력 피해 여군들이 잇달아 죽음으로 내몰렸다.  군대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공간이다. 군필 남성 다수는 양가적 감정을 체험한다. 막 자대에 배치된 이병 시절 맞닥트린 가혹행위와 부조리는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스스로를 피해자의 위치에 쉽게 대입하지만 폭력적인 세계에 조금이라도 일조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아버지 기수가 되면 애들한테 잘해주자’는 소박한 다짐만으로 타인의 고통을 방관했던 자책감이 면책되지 않는다.  드라마가 고통스럽게 느껴진 건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했기 때문 만은 아니다. 잊고 있던 방관자 혹은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1995년 소대원 누구도 A의 죽음이 오발 사고가 아니었다고 증언하지 못했다.  극 중 선임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탈영한 조석봉 일병은 군 당국을 원망한다. “너희들도 알고 있었으면서 그냥 보고만 있었잖아.”
2021-09-29 | hrights | 조회: 1024 | 추천: 10